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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해녀 인터뷰 봤더니..“춥지 않아요?” 걱정에 “씨X, X쳤냐?” 상황보니..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해녀 인터뷰 봤더니..“춥지 않아요?” 걱정에 “씨X, X쳤냐?” 상황보니..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배우 이태임이 걸그룹 쥬얼리 출신 예원에 대한 ‘욕설 논란’에 사과한 가운데, 디스패치가 당시 목격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6일 디스패치는 이태임과 예원이 출연한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장인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마을을 방문해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해녀 2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전했다. 30대 베트남 출신 해녀 A씨와 70대 할머니 해녀 B씨다. 배트남 출신 해녀 A씨는 예원에 대해서 “예원 씨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싹싹하고 친절해서 굉장히 좋았다. 말투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A씨는 ‘욕설 논란’이 있던 당시를 목격했다고... A씨에 따르면 예원이 물에 들어갔다 나온 이태임에게 “언니, 춥지 않아요?”라고 묻자, 1분간 정적이 흐른 뒤 이태임이 씨X, X쳤냐? XX버린다” 라고 심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 “(이태임이) 심지어 때리려고 자세를 취해 스태프들이 뜯어 말렸다”고 A씨는 이 매체에 말했다. 욕설 내용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이태임은 촬영장을 이탈했지만 예원은 끝까지 남아 상황을 수습했다고 이 매체는 밝혔다. A씨는 탈의실 화장실에서 30여 분간 눈물을 쏟은 예원이 “미안하다”면서 오히려 본인을 다독여줬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인증사진도 찍어줬다”며 고마워했다. 반면 B 할머니는 이태임을 ‘딸’이라고 부르며 “우리 딸이 그럴 아가씨가 아니다. 그런 심한 욕을 했다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B씨는 “딸이 나를 보자마자 ‘어머니’하면서 끌어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얼굴이 아주 우울해 보였다”라며 “(이태임이) ‘10년 동안 탤런트 생활을 했는데 전부 실패했다. 지금 출연하는 드라마도 잘 안 될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B씨는 전했다. B씨는 예원에 대해서도 “아주 싹싹했다.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었다”라며 “그 아가씨(예원)가 이태임한테 반말을 하고 그럴 수는 없지. 싹싹하고 열심히 하던데. 게다가 이태임과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태임은 5일 소속사 를 통해 예원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태임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예원 씨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건 사실이다. 처음 만난 분이었기에 나를 걱정해주는 친근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라며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은 나 자신이 후회스러우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이에 예원도 “여러 가지 개인적 문제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던 이태임 선배님은 평소 친분이 없었던 저를 오해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실 선배님께서 용기를 내 먼저 사과를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사진 = 서울신문DB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연예팀 chkim@seoul.co.kr
  •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사건의 전말 보니..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사건의 전말 보니..

    디스패치 이태임 예원 배우 이태임이 걸그룹 쥬얼리 출신 예원에 대한 ‘욕설 논란’에 사과한 가운데, 디스패치가 당시 목격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6일 디스패치는 이태임과 예원이 출연한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장인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마을을 방문해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해녀 2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전했다. 30대 베트남 출신 해녀 A씨와 70대 할머니 해녀 B씨다. 배트남 출신 해녀 A씨는 예원에 대해서 “예원 씨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싹싹하고 친절해서 굉장히 좋았다. 말투에 문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A씨는 ‘욕설 논란’이 있던 당시를 목격했다고... A씨에 따르면 예원이 물에 들어갔다 나온 이태임에게 “언니, 춥지 않아요?”라고 묻자, 1분간 정적이 흐른 뒤 이태임이 씨X, X쳤냐? XX버린다” 라고 심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 “(이태임이) 심지어 때리려고 자세를 취해 스태프들이 뜯어 말렸다”고 A씨는 이 매체에 말했다. 욕설 내용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이태임은 촬영장을 이탈했지만 예원은 끝까지 남아 상황을 수습했다고 이 매체는 밝혔다. A씨는 탈의실 화장실에서 30여 분간 눈물을 쏟은 예원이 “미안하다”면서 오히려 본인을 다독여줬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에는 휴대폰 카메라로 인증사진도 찍어줬다”며 고마워했다. 반면 B 할머니는 이태임을 ‘딸’이라고 부르며 “우리 딸이 그럴 아가씨가 아니다. 그런 심한 욕을 했다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B씨는 “딸이 나를 보자마자 ‘어머니’하면서 끌어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얼굴이 아주 우울해 보였다”라며 “(이태임이) ‘10년 동안 탤런트 생활을 했는데 전부 실패했다. 지금 출연하는 드라마도 잘 안 될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B씨는 전했다. B씨는 예원에 대해서도 “아주 싹싹했다.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었다”라며 “그 아가씨(예원)가 이태임한테 반말을 하고 그럴 수는 없지. 싹싹하고 열심히 하던데. 게다가 이태임과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연예팀 chkim@seoul.co.kr
  • 38. 6년 묵은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복고풍 탄 조용필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8. 6년 묵은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복고풍 탄 조용필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요즘은 ‘가왕’(歌王)이란 호칭이 남발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고유명사로서 우리 가요계 ‘가왕’ 타이틀의 주인공은 단언컨대 단 한 사람, 조용필입니다. 주민등록상 1950년생인 그의 나이, 올해로 66세가 됐습니다. 숱한 명곡과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는 조용필이지만 역시 ‘가왕’으로서 출발점은 ’돌아와요 부산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71년 발표했다가 그냥 묻혀버렸던 걸 1976년 우연찮게 재취입한 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조용필 자신은 이 노래 부르는 걸 꽤나 마뜩치않아 했던 모양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조용필 인터뷰 기사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8. 6년 묵은 노래로 복고풍(復古風) 탄 조용필 -1977년 3월 13일자 가요계에 별난 이단아가 나타났다. 때아닌 복고풍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조용필. 가요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보컬리스트로선 꽤 경력을 지녔다. 1971년 선데이서울이 주최한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서 가수왕으로 뽑힌 일이 있었을 정도니까… 다음은 돌아온 중고신인 조용필의 음악적 산책. “꽃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이렇게 시작되는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황선우 작사 작곡)이 요즘 전국을 석권하고 있다. 트로트 멜로디에 고고 리듬으로 편곡된 이 노래는 다소 흐느끼는 듯한 허스키의 목소리로 불려지고 있는, 마치 흘러간 노래를 듣는 듯한 복고풍의 무드. 별로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없는 데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자신이 ‘뽕짝’(트로트)이라 해서 외면하던 곡. 이 노래는 또 서울서부터 히트돼 전국으로 번지는 통례를 깨고 부산 다방가에서부터 히트되어 서울로 북상, 전국을 누빈 지방 출신의 히트곡이기도 하다. 부산에서부터 히트를 한 이유를 조용필은 “부산항이라는 지명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이 노래는 조용필이 이미 1971년 아세아레코드에서 취입했던 곡이다. 디스크까지 내놓았으나 녹음이 잘 안된 불량음반이어서 방송에서 틀지를 못해 사장됐던 노래다. 이 노래가 다시 햇볕을 보게 된 것은 조용필이 지난해 6월 킹레코드와 인연을 맺으면서다. 이 레코드사에서 독집 디스크를 내놓기로 한 그는 회사 측의 권유로 ‘뽕짝’도 한 곡 넣기로 했다. 그때 떠오른 곡이 바로 이 곡. “사실은 뽕짝이라 다시 부르기 싫었어요.” 대개 팝계열의 가수들은 트로트를 외면하기 일쑤다. 멜로디는 그대로 두고 현대 감각에 맞게 템포만 고고 리듬으로 바꾸어 취입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독집의 타이틀곡이 “너무 짧아”였고 ‘돌아와요 부산항’은 제1면의 두번째 곡으로 깔았다. 그러니까 취입할 때부터 괄시를 받았던 곡이다. 그런데 독집을 낸 지 두 달쯤 지나자 부산에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묘하게도 반응을 보인 게 타이틀곡이 아니라 괄시를 하던 ‘돌아와요 부산항’이었다. “너무 기가 차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돌아와요 부산항’과 비슷한 케이스로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있다. 이 곡도 디스크의 맨 끝 곡으로 수록한 게 히트되어 나중에 다시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제작했던 것. “실은 30살이죠” 그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노래를 불러 일약 유명해진 조용필의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은 앳되다. 166cm의 자그마한 체구에 애송이 같은 인상과 달리 연예계 경력은 자그마치 10년. 경동고를 나온 그는 1967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를 치는 보컬리스트로 데뷔했다. 정릉에 살 때였다고 한다. 한 동네에 살던 미8군 무대의 드럼을 치는 친구의 소개로 미8군 쇼의 대행업자인 한국흥행에 들어갔던 것. 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만졌던 악기. 그러니까 취미가 직업이 된 것이다. “처음엔 조금만 하다가 집어치우려고 했었죠.” 그러나 어느새 2년이란 세월이 흘러 공부를 하려고 미8군 무대를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지 못했다는 그는 미8군 무대를 나선 지 8개월만에 4인조 보컬그룹을 조직해 일반 무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호텔에 있던 고고클럽이 일반 쪽으로는 첫 무대. 보컬그룹 계열에서 무명에 지나지 않던 그에게 영광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 연예협회 산하 연주 분과의 그룹사운드 분실장이던 김대환이 이끌던 3인조의 ‘김트리오’ 멤버가 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무렵인 1971년 선데이서울이 주최한 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출전, ‘길잃은 철새’를 불러 가수왕이 된 것. 당시 그를 가수왕으로 뽑았던 심사위원들은 “언젠가는 빛을 볼 유망주”라고 입을 모았다.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아무튼 그때의 유망주는 마침내 정상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일반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가수왕이 된 뒤로 그는 보컬그룹 계열에서는 스타급 대우를 받으며 밤무대를 누벼왔다. 1974년에는 자신이 리드하는 6인조 보컬그룹 ‘그림자’를 조직, 부산의 살롱에 있다가 1975년 3월에 서울로 올라와 현재 나이트 클럽과 카바레 2곳에 출연하고 있다. 한곡의 히트로 주가가 껑충 오른 그는 요즘 하루 5회 이상의 방송 출연과 밤무대의 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한달 수입도 3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뛰었고, 여자팬의 극성에도 시달린다고 한다. “대개 살롱에선 젊은 여자들이, 카바레에선 중년부인들이 프로포즈를 해와요.” 중년 부인들이 웨이터를 시켜 “술 한잔 하자”는 주문을 하고 어떤 여인은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한번 연락하라”고 유혹해 오기도 한다며 씁쓸한 웃음이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단 한번도 빠져본 일은 없다고. “여자 친구는 몇 명 있어요. 하지만 정해놓은 애인은 아직 없습니다.” 동료들간에 퍽 착하다는 말을 듣는 그는 70이 넘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 경기도 화성 태생에 3남4녀중 3남. 주량은 2홉 들이 소주 한병쯤이란다. 아무리 히트곡을 냈다 해도 보컬그룹은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귀국 이병헌 이민정, 공항패션 ‘완벽하게 가린 배+하이힐’ 임신7개월 산모의 패션

    귀국 이병헌 이민정, 공항패션 ‘완벽하게 가린 배+하이힐’ 임신7개월 산모의 패션

    귀국 이병헌 이민정 동반입국, 임신 7개월 이민정 공항패션 보니 ‘완벽하게 가린 배’ ‘귀국 이병헌 이민정 동반입국’ 배우 이병헌 이민정 부부가 동반 입국했다. 이병헌 이민정 부부는 26일 오전 7시 11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나란히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웃음기 없는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이민정은 임신 7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공항패션과 변함없는 미모를 과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병헌은 이민정을 먼저 보낸 후 취재진 앞에 서 “좀 더 일찍 여러분들께 사과 말씀 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잘 알려진 사람으로서 가장으로서 너무나 큰 실망감과 불편함 마저 끼쳤다. 저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에 오롯이 그에 대한 비난도 저 혼자 감당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지연 다희 협박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앞서 이병헌은 지난해 10월 모델 이지연과 글램 출신 다희를 자신에게 50억 원을 요구,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지연과 다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공갈) 혐의로 체포돼 구속 기소됐으며,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15일 이지연과 다희에게 각각 징역 1년 2개월과 1년을 선고했다. 네티즌들은 “귀국 이병헌 이민정, 이제 같이 들어오는구나”, “귀국 이병헌 이민정, 공항패션이 아가씨 같아”, “귀국 이병헌, 이민정 먼저 보내고 혼자 사과했구나”, “귀국 이병헌 이민정, 앞으론 다신 그런 일 없길”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36. 그땐 그랬지(6)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6. 그땐 그랬지(6)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6.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6)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용변보다 엉덩이에 불…전치 12주 중화상 소독을 위해 변소 안에 뿌려 두었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 앉아 있던 사람의 엉덩이에 전치 12주 화상을 입혔는데. 부산에 사는 윤모(21)군은 7월 16일 아침 8시쯤 이웃에 사는 박모(24)씨의 변소에 용변을 보러 가 바지를 벗고 쭈그리고 앉으며 피우고 있던 담배꽁초를 버리는 순간 아래에 뿌려 놓았던 휘발유에 불이 붙어 그만 엉덩이 전면에 화상을 입고 만 것. 봉변을 당한 윤군은 변소 주인 박씨에 대해 중과실 상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1970년 8월 2일자 ▒▒▒▒▒▒▒▒▒▒▒▒▒▒▒▒▒▒▒▒ 소매치기인 줄도 모르고 차에 태워 못된 짓 하려다… 길가는 여인에게 엉큼한 마음을 먹었던 회사원이 돈 잃고 봉변까지 톡톡히 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25일 길가던 여인을 자신의 승용차로 유인, 욕을 보이려던 나모씨(32•회사원•서울 강동구 둔촌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는데....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23일 새벽 1시쯤 용산구 한남동 H국교 앞길에서 길을 가고있던 20대여인의 옆에 차를 세우고 “내 차로 가는 데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유인해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동부 이촌동에 이르러 여인을 차안에서 욕보이려 했다는 것. 여인이 반항하며 지른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네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힌 그는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경찰에서 조사를 받던 나씨가 주머니를 뒤지다 현금 5만원이 든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뒤늦게 이 여인을 찾았지만 여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뒤. 20대 여인은 나씨를 끌고 가는 주민들에게 “자신의 연락처이니 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전화번호를 적어준 뒤 사라졌는데 경찰수사에서 그 전화번호는 가짜로 밝혀졌다. 나씨는 “오너드라이버의 주머니를 노리는 미인계인줄 모르고 차안에서 접근해 오기에 순순히 따를 줄 알고 몸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그 시기를 교묘히 이용해 소란을 피우며 소매치기를 해갔으니 진짜 피해자는 내가 아니냐.”며 투덜투덜. 경찰은 이 여인이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접근, 차를 타라는 청에 못이기는 체하며 동승해 엉큼한 남자가 다가오면 옥신각신하면서 지갑을 슬쩍하는 상습적인 여인으로 보고 주책없는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주의를 당부. 이렇게 되자 경찰은 피해자 입장인 나씨의 처리문제가 난처하게 됐다. 결국 계획적으로 지나던 여자를 유인해 욕을 보이려 했다는 점만은 사실이니 이를 문제삼아 입건하는 선에서 수사를 일단락 지었다. 그리고 수사경찰은 “목적한 것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 돈뺏기고, 형사입건까지 당했으니 나씨의 망신살이 가련할 정도”라고. -1985년 7월7일자 ▒▒▒▒▒▒▒▒▒▒▒▒▒▒▒▒▒▒▒▒ 간통혐의 문초받던 아가씨 맞춤법 강의…조서 쓰던 경관 머리만 긁적 부산시 동래 경찰서 수사과에서 간통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이모(25)양이 진술서를 쓰고 있는 담당형사 L(38)씨에게 맞춤법이 틀렸다고 호통을 치면서 맞춤법 강의를 한바탕 해서 모두들 어리둥절. 이양은 진술조서를 받던 중 L형사가 조서에 ‘올키’라고 쓰자 ‘옳게’라고, ‘부엌’이라고 쓰자 ‘부엌’이라고 고쳐주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일침과 동시에 L씨를 붙잡고 맞춤법 강의를 친절하게 해주었다는 것. 친절한 선생님을 만난 L형사는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고. -1970년 5월 3일자 ▒▒▒▒▒▒▒▒▒▒▒▒▒▒▒▒▒▒▒▒ 도둑일망정 나도 의리의 사나이 며칠 전 부산의 한 경찰서를 찾아온 K(41)씨는 ‘의리있는 강도님’을 잡아달라는 색다른 신고를 했는데…. K씨는 전날 밤 집안에 침입한 강도에게 “다른 것은 다 가져가도 좋지만 단벌신사이니 양복만은 좀 봐달라”고 사정했더니 딱한 사정에 감동한 강도씨가 “날씨가 더워졌으니 저고리만 가져 가겠다”면서 바지는 남겨 주더라는 것. -1970년 5월 31일자 ▒▒▒▒▒▒▒▒▒▒▒▒▒▒▒▒▒▒▒▒ 죽는 약과 사는 약을 섞어 먹은 아가씨 9월 22일 오후 6시쯤 광주의 한 야산에서 약을 먹고 신음 중인 이모(20)을 칡덩굴을 걷으러 갔던 사람이 발견, 대학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이양은 수면제 25알과 잠 안오는 약 15알을 함께 먹었다고. 왜 그렇게 섞어서 먹었느냐고 의사가 물어보자 “차마 죽기는 싫어서 그렇게 섞어 먹었다”는 황당한 답변. -1970년 10월 4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35. 그땐 그랬지(5)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5. 그땐 그랬지(5)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5.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5)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5일 오후 6시쯤 부산 서면의 한 다방에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들어와 의자에 앉더니 점잖게 커피를 한잔 시켜 마시고는 엄숙히 목탁을 서너번 두드린 뒤 아무 말 않고 홀연히 다방을 따났다. 찻값을 받지 못한 다방 아가씨가 스님을 뒤쫓아 가 승복 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찻값을 요구하자 스님 왈, “복을 많이 빌어 주었는데 무지하게도 찻값을 받으려 하느뇨?”라며 호통. 때마침 지나가던 불교신도 한 사람이 대신 찻값을 물어주어서 무사히 사태는 수습되었다나. 나무아미타불! -1970년 3월 15일자 ▒▒▒▒▒▒▒▒▒▒▒▒▒▒▒▒▒▒▒▒ 냇가서 목욕하며 물장난한 옆사람, 알고보니 ‘경악’ 경남 창녕에 사는 안모(21)양은 냇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큰 망신을 당했는데.... 7일 저녁 7시쯤 안양은 친구 3명과 함께 동네앞 냇가로 목욕을 갔는데 어둠이 깔리자 안양은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인 줄 알고 껴안고 물장난. 머리칼을 잡아보니 기다란 장발이어서 마음 놓고 친구에게 주물림을 당하다가 한참뒤 상대방을 껴안은 다음 가슴깨를 더듬었더니 어럽쇼, 운동장처럼 밋밋. 기겁한 안양은 날 살리라고 도망쳤는데 알고보니 동네 장발족 총각들이 슬쩍 끼어들어 처녀행세로 재미를 봤다는 것. -1972년 8월 20일자 ▒▒▒▒▒▒▒▒▒▒▒▒▒▒▒▒▒▒▒▒ 여관 침대밑에 몰래 숨어 현장보고 돈 훔치다 결국… 남녀가 재미보는 현장을 훔쳐보고 물건까지 슬쩍하려던 20대 얌체가 철창신세.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6월23일 동대문구의 한 K여관 객실에 숨어들어가 침대 밑에 숨었다가 투숙한 손님의 물건을 훔쳐 나오려던 서모(23·인천)씨를 야간 주거침입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서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10시 30분쯤 K여관 바로 옆에 있던 여인숙에 1차로 투숙한 뒤 팬티와 러닝셔츠만 입은 채 K여관의 비상구를 통해 3층으로 올라가 304호 침대밑에 숨어 있었다. 이방에 투숙한 최모(49)·김모(23·여)씨가 잠이 들자 다음날 새벽 3시 30분쯤 최씨가 벗어놓은 옷에서 현금 10만원을 훔쳐 달아나려다 인기척에 놀라 깨어난 최씨에 의해 붙잡힌 것. 서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우리 집인 줄 알고 그랬다”고 엉뚱한 변명. 그러나 서씨가 투숙했던 여인숙 주인은 서씨가 한달전부터 새벽 3~4시쯤에 나타나 여관쪽 방을 기웃거렸다고 진술. 한편 최씨의 고함소리에 잠에서 어난 김양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5분 정도 기절을 했다가 최씨의 인공호흡으로 겨우 깨어났다고. -1985년 7월7일자 ▒▒▒▒▒▒▒▒▒▒▒▒▒▒▒▒▒▒▒▒ 아수라장 된 2중 결혼식의 현장 내연의 처가 있는 청년이 묘령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정체가 발각돼 예식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부산의 한 회사 경리과장인 김모(29)씨는 동거중인 홍모(26) 여인에게 “회사에 출근한다”고 속이고 집을 나와 엉뚱하게 예식장으로 출근(?), 결혼식을 올리려다 이런 사고를 빚은 것. 자기 남편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별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임신 9개월의 홍 여인은 웨딩마치를 듣자 그만 넋을 잃었고 새 신부 아버지 송모씨는 3층 계단에서 2층 계단으로 떨어져 실신. 가끔 일어나는 중혼극(重婚劇)이긴 하지만 정말 왜들 이러실까? -1969년 11월 23일자 ▒▒▒▒▒▒▒▒▒▒▒▒▒▒▒▒▒▒▒▒ 재혼 위해 산 처를 죽었다며 사망신고한 패륜男 딴 여자와 살기 위해 멀쩡히 살아 있는 본처를 사망신고까지 한 패륜 남편이 꼬리를 잡혔다. 지난 20일 공문서 부실기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A(38·전남 함평)씨는 10년 전 결혼해 엄연히 살아있고 3형제까지 둔 본처 B(35·무안)씨를 1969년 2월 15일자로 사망신고. 그리곤 C(27·목포) 여인과 재혼해 12월 4일자로 다시 혼인신고 한 것이 본처에게 들켜 쇠고랑을 차게 됐다. -1970년 3월 8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32. 그땐 그랬지(2) 바람 피운 자랑 하고 보니 그녀의 어머니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2.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2) 아내가 남편 외도 칭찬한 기가 막힌 사연 바람 피운 자랑 하고 났더니 그녀의 어머니 지난 1일 오후 9시쯤 마산에 사는 정모(28)씨는 과거에 여자와 사귀다 바람 피웠던 얘기를 무심코 지껄였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투덜투덜. 한 대폿집에 들러 주인 마담과 마주 앉아 권커니 잣거니 기분을 돋구다가 1년 전 헤어진 옛 애인 C양의 이야기를 자랑 삼아 털어놨는데 어찌된 일인지 마담이 얘기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너 이놈, 이제야 만났구나”하고 고함을 치며 정씨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고. 사연인 즉, 정씨가 차버린 아가씨가 바로 마담의 딸이었던 것. ‘외나무다리에서 원수 만난 격’으로 꼼짝 못하게 된 정씨는 당시 받은 실연의 타격으로 부산시내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C양을 문병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성의 표시를 하고서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됐다고. -1971년 4월 18일자 ▒▒▒▒▒▒▒▒▒▒▒▒▒▒▒▒▒▒▒▒ 사내아이 하나에 아버지가 둘이나 한 여인의 불장난으로 두 남자가 12개월 된 어린애를 두고 서로 “내 자식”이라며 삿대질을 하고 있는데…. 16일 충북 조치원 경찰은 “내 아들을 찾아달라”는 김모(38)씨의 호소를 접수,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사연인 즉 이렇다. 김씨의 처 강모(33) 여인은 남편 몰래 얻어 쓴 50만원으로 가정불화를 일으켜 1968년 12월 가출, 행방을 감췄다. 김씨는 아내의 행방을 수소문하다가 천안의 한 여관에서 이모(48)씨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한 뒤 1969년 4월 아내를 다시 맞아 들였다고. 그런데 강 여인은 그 후 현재의 12개월 된 아이를 낳았다. 김씨는 당연히 자기 아들로 알고 입적까지 시켰는 강 여인의 정부 이모씨가 나타나 “내 자식이니 돌려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 이씨는 “내가 딸만 5자매를 둔 가장인데, 당시 아들을 보기 위해 강 여인과 정을 통했던 것”이라면서 특히 “날짜를 계산하면 틀림없이 내 아들이 분명하다”고 버티고 있는 중. -1971년 4월 4일자 ▒▒▒▒▒▒▒▒▒▒▒▒▒▒▒▒▒▒▒▒ 외도한 남편, 아내가 격려한 기가 막힌 사연 지난달 18일 밤, 부산의 한 식당 주인 장모(41)씨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한 끝에 기분이 거나해지자 사창가(집창촌)로 기분을 풀러 갔는데…. 방안에 들어섰다가 두 눈이 그만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까닭인즉 상대방 아가씨가 지난 3월부터 자기집 식당에서 식모로 일하다 도망친 종업원이었던 것. 이 종업원은 얼마 전 12만원짜리 다이아 반지 등 14만여원어치의 물건을 장씨 집에서 훔쳐 줄행랑을 쳤다. 장씨는 하필이면 사창가에 놀러 왔다가 도둑을 잡은 게 창피하기는 했지만 질끈 눈감고 경찰에 고발했다고. 장씨의 부인은 남편의 고발정신에 감동했음인지 “이번은 당신의 외도 사상 최고의 히트였다”고 책망은커녕 오히려 격려를 했다나. -1970년 12월 6일자 ▒▒▒▒▒▒▒▒▒▒▒▒▒▒▒▒▒▒▒▒ 다이아몬드 구경하다 꿀꺽 1월 18일 대구 경찰서는 이모(23·주거부정)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 이씨는 1월 16일 오후 7시쯤 대구의 한 보석상에 들어가 주인 홍모씨에게 다이아몬드를 구경하겠다고 수작을 부렸는데, 30만원짜리 다이아몬드를 보여주었더니 만지작거리다가 홍씨가 잠깐 눈을 판 사이에 ‘슬쩍’ 하고 시치미를 뗐다고. 귀신 곡할 노릇으로 멀쩡히 눈뜨고 30만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잃은 홍씨는 이씨의 몸을 아무리 뒤져봐도 온데간데 없더라는 것. 미칠 지경이 된 그는 마지막으로 이씨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엑스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문제의 다이아몬드가 이씨의 위 속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더라나. -1971년 1월 31일자 ▒▒▒▒▒▒▒▒▒▒▒▒▒▒▒▒▒▒▒▒ 애인이 쌍둥이인 줄이야 부산에 사는 노총각 P(32)씨는 모처럼 지난 봄부터 K(25)양과 사귀고 있었는데…. 지난달 28일 우연히 S다방에 들렀던 P씨, 눈에서 불꽃이 튈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K양이 어떤 청년과 나란히 앉아 정답게 차를 마시고 있더라는 것. P씨와 몇번 눈이 마주쳤는도 K양은 본체만체 계속 그 청년과 오손도손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쪽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원망스런 애인을 저주하고 있던 P씨는 다음날 결판을 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K양을 불러내어 어제의 사실을 추궁했다. 그랬더니 여자는 “죽어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딱 잡아뗐는데, 분노한 P씨 “내눈은 가죽이 모자라 뜷어놓은 장식품인 줄 아나?” 호통을 쳤더니 K양 “우린 쌍둥이”라면서 전화로 동생을 불러내 결백을 입증했다나. -1970년 10월 18일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33. 그땐 그랬지(3) 여비서에 미쳐 우물에 빠져 죽은 사장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3. 그땐 그랬지(3) 여비서에 미쳐 우물에 빠져 죽은 사장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3.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3) 여비서에 미쳐 우물에 빠져 죽은 사장님 벗었을 때만 드는 도둑, 보고도 못잡아 부산의 한 주택가에 ‘괴도 루팡’을 능가하는 교묘한 도둑이 판쳐 주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 도둑은 초저녁 때 주부들이 목욕하는 틈을 이용해 물건을 훔쳐내가고 있다고. 21일 저녁 8시 30분 강모(38) 여인이 목욕을 하려는 찰나에 때마침 도둑이 침입, 라디오·선풍기 등을 유유히 들고 나갔는데, 강 여인은 알몸 상태였기 때문에 소리 한마디 못 질렀다고. 그런데 이 도둑은 길 옆 창문을 통해 집주인이 목욕을 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침입하기 때문에 이젠 목욕조차 못하게 됐다고 주민들의 푸념이 대단. -1971년 8월 8일자 ▒▒▒▒▒▒▒▒▒▒▒▒▒▒▒▒▒▒▒▒ 여비서에 미쳐 우물에 빠져 죽은 사장님 얼마 전 서울 용산경찰서에 회사 사장의 여비서가 살인방조 혐의로 붙잡혀 와 쇠고랑을 찰뻔 했는데…. 50대 순정파 사장이 여비서에 반해 구애를 하다 결국 황천길로 가고 말았던 것. 여비서에 홀딱 빠져있던 사장이 갖은 달콤한 말로 애정을 구걸했지만 여비서는 냉담하기만 했는데. 사장은 여비서를 유원지로 데리고 가 마지막 설득 작전을 펴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럼 나 죽어버리고 말겠어”라며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단지 여비서의 반응을 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만 차가운 물에 심장 쇼크를 일으켜 진짜로 사망하고 말았던 것. 결국 의사의 진단으로 여비서의 누명은 벗었는데 “왜 우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잡지 않았느냐”는 경찰 질문에 “나를 정복하기 위한 쇼를 부리는 줄 알고 가만 있었다”고 진술. -1971년 6월 13일자 ▒▒▒▒▒▒▒▒▒▒▒▒▒▒▒▒▒▒▒▒ 폭음탄에 아가씨 속옷 몽땅 타버려…중학생들 장난에 자칫 알몸 보일 뻔 부산 서부경찰서는 4일 중학생 김모(14)군을 즉심에 회부. 김군은 추석날인 3일 서구의 한 도로에서 친구들과 폭음탄 놀이를 하다 박모(22)양이 지나가자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박양에게 폭음탄을 던졌는데 그만 박양의 원피스에 불이 붙어 속옷까지 홀랑 태워버린 것. 박양은 직접 김군을 붙잡아 경찰서에 데려왔는데, “다 큰 처녀의 신세를 망치려 하다니”라면서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 -1971년 10월 17일자 ▒▒▒▒▒▒▒▒▒▒▒▒▒▒▒▒▒▒▒▒ 술 한방울 못한다던 새 사위가 부산 영도에 사는 김모씨(31)는 평소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신다는 점이 색시와 장인·장모의 눈에 들어 한달 전 결혼을 했는데…. 그런데 며칠 전 처가에 가는 길에 김씨는 주당의 본색을 드러내 친구들과 진탕 두들겨 마시고 한밤중에 흐느적거리며 처가에 들어섰다. 이를 본 장인·장모는 깜빡 속은 것에 분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난 사위를 위해 밥상을 차렸는데, 잠깐 변소에 다녀온다고 나간 사위가 몇십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 결국 변소엘 가 보았는데 김씨는 발을 변소에 빠뜨린 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더라고. 기가 막힌 장인·장모는 변 냄새나는 사위를 끌어내다 목욕까지 시켜 방에 뉘어 놓고 밤새 한숨만 쉬었다고. “결혼을 무르자고 할 수도 없고 우짜면 좋노?” -1970년 9월 27일자 ▒▒▒▒▒▒▒▒▒▒▒▒▒▒▒▒▒▒▒▒ 폭처 시하에 벌벌떨던 남편 고소 며칠전 부산에 사는 안모(40)씨는 “호랑이 같은 마누라를 처벌해 달라”는 색다른 고소장을 경찰에 냈다. 안씨는 지난해 봄 키 175cm, 몸무게 70kg의 여장부 이모(30) 여인과 재혼을 했는데 이 여인은 걸핏하면 남편과 전처의 자식들을 두들겨 패 온 집안이 불안과 공포에 싸여 떨고 있다는 것. “이건 엄처시하가 아니라 폭처시하군” 경찰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1970년 9월 20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34. 그땐 그랬지(4) 수영솜씨 뽐내던 아가씨, 목숨 구해준 사내의 뺨을 ‘철썩’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4. 그땐 그랬지(4) 수영솜씨 뽐내던 아가씨, 목숨 구해준 사내의 뺨을 ‘철썩’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4.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4) 수영솜씨 뽐내던 아가씨, 목숨 구해준 사내의 뺨을 ‘철썩’ 40대 남성, 초상집에서 세상 떠난 친구 부인에 키스 부산에 사는 김모(45)씨는 며칠 전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가 세상을 뜨자 그날 밤 초상집에 문상를 갔다. 초상집에서 으레 그렇듯 김씨는 당일 여럿이 어울려 화투를 치며 밤샘을 했는데…. 새벽녘이 되자 술에 취한 김씨는 엉뚱한 충동에 못 이겨 미망인 박모(40) 여인을 끌어 안고 연거푸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다른 때라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괘씸한 소행이거늘 하물며 상을 당한 친구의 부인에게 그런 못된 짓을 하다니.” 분을 참지 못한 박 여인이 김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서에 끌려온 김씨 “고인도 심정을 알아 줄거라”고 사뭇 애원의 표정이었다는데…. “괘씸한 놈인 줄은 고인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경찰이 일침. -1970년 4월 19일자 ▒▒▒▒▒▒▒▒▒▒▒▒▒▒▒▒▒▒▒▒ 수영솜씨 뽐내던 아가씨, 목숨 구해준 사내의 뺨을 ‘철썩’ 16일 경남 마산 가포해수욕장에서 멋드러진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가 자기를 부축해 데려온 청년에게 느닷없이 따귀 선물을 날렸는데…. 이 아가씨는 수영 솜씨를 뽐내려고 지나치게 멀리 헤엄쳐 나갔다가 그만 지쳐서 허우적거리게 됐는데, 이를 본 젊은이 한 사람이 재빨리 달려가 뒤에서부터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구조. 거기까진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생각이 달라졌던 것인지 젊은이는 아가씨의 가슴을 만지고 말았는데 물 속에서 당장에 반항할 수 없었던 아가씨, 모래사장으로 나오자 방금 전 추행 당한 앙갚음으로 따귀를 때리고 하고 만 것. -1972년 7월 30일자 ▒▒▒▒▒▒▒▒▒▒▒▒▒▒▒▒▒▒▒▒ 그토록 원하던 부부 별거생활, 철창에서 스타트 현재 이혼 소송 중에 있는 이모(57·부산)씨 부부는 법원에서 판결이 날 때까지 별 도리 없이 한집에 살면서 으르렁거려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 며칠 전 이씨의 부인 임모(55) 여인이 한밤중 술을 마시고는 영감(편집자주: 당시에는 50대에게도 영감이란 표현을 사용)에게 욕설을 퍼붓자, 이씨는 “그렇지 않아도 심기가 사납던 판에…” 하며 아령으로 부인의 얼굴을 난타, 6주의 상해를 입혔다. 아령 세례를 받은 임 여인도 이에 질세라 돌로 영감의 머리를 쳐 4주의 상해를 입혔다고. 결국 법원의 이혼소송 판결이 나기도 전에 이들 부부는 쇠고랑을 찬 채 숙원이던 ‘별거생활’을 철창에서 하게 됐다. -1970년 3월 15일자 ▒▒▒▒▒▒▒▒▒▒▒▒▒▒▒▒▒▒▒▒ 미남인줄 알았는데 자고나서 보니 곰보…“억울해” 고소한 아가씨 23일 경남 삼천포 경찰서에는 A(23)양이 강제로 납치돼 난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내용을 알고 보니 A양은 22일 저녁 7시쯤 길거리에서 정모(21)군을 우연히 만나 초고속으로 친해져 그 길로 여관으로 직행했던 것. 그렇게 밤새도록 즐겼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어럽쇼, 정군이 곰보였더라는 것. A양은 정군을 늘씬한 미남으로 잘못 보고 따라갔던 것인데 어두워서 곰보인줄 몰랐다가 몸을 허락해 준 것이 억울해서 “난행을 당했다”고 고소를 했던 것. -1972년 3월 12일자 ▒▒▒▒▒▒▒▒▒▒▒▒▒▒▒▒▒▒▒▒ 스님이 가발쓰고 아가씨 희롱했다가 결국… 지난 10일 인천 경찰은 수원 시내 팔달사의 스님(24)을 경범죄로 즉심에 회부. 스님은 9일 오후 10시쯤 인천시내 한 다방에서 박모(17)양을 희롱하다가 손님으로 있던 경찰관에게 들통이 났는데…. 취조를 당하자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백배사죄하더니 급기야는 팔목시계까지 풀어주며 “잘봐달라”고 애걸복걸. 신분을 확인해 본즉 팔달사의 승려인 것은 맞았는데, 이날 스님 머리에 가발을 쓰고 신사복에 날씬한 넥타이까지 착용했다는 것. -1971년 4월 25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31. 그땐 그랬지(1) 돼지 차비 안 물려고 치마폭 속에 숨겨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1. 그땐 그랬지(1) 돼지 차비 안 물려고 치마폭 속에 숨겨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많은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사건 기사들을 소개하는 <그땐 그랬지> 코너를 신설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기사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현실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1.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1) 돼지 차비 안 물려고 치마폭 속에 숨겨 돼지 차비 안 물려고 치마폭 속에다 숨겨 3일 경남 양산에서 물금으로 가던 경남○○○○ 버스 안에서는 느닷없이 여자손님 치마 속에서 꿀꿀거리는 돼지 비명 소리가 나와 아수라장이 됐는데…. 이날 양산 장에서 새끼 돼지를 산 김모(30) 여인은 차장의 시선을 피해 새끼 돼지를 치마 밑에 숨기고 승차했던 것. 그러나 눈치를 챈 여자 차장이 돼지 승차요금도 달라고 하자 “무슨 돼지냐”고 시치미. 화가 치민 차장이 발길로 김 여인의 치마를 걷어 차자 숨어있던 돼지가 꿀꿀거리며 비명을 지른 것. -1972년 6월 18일자 ▒▒▒▒▒▒▒▒▒▒▒▒▒▒▒▒▒▒▒▒ 대폿집 아가씨들 손님끌기 육탄전…애매한 술꾼만 옷 찢겨 남대구경찰서는 7일 각각 27세와 23세의 접대부 김모양 2명을 즉심에 넘겼는데…. 두 김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빤히 마주보며 경쟁하는 대폿집 H와 C의 접대부. 이들은 6일 밤 10시 30분쯤 지나가던 손님을 서로 자기 집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끝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옷을 찢는 육박전을 벌였던 것. 이 바람에 넥타이와 와이샤쓰까지 갈갈이 찢겨버린 손님은… -1971년 9월 19일자 ▒▒▒▒▒▒▒▒▒▒▒▒▒▒▒▒▒▒▒▒ 삼킨 금반지 찾으려 대변 뒤진 수사경찰 제주경찰서는 금반지를 삼켰다는 신고를 받고 혐의 여인을 보호실에 보호하고 대소변을 감시했으나 허탕을 쳤는데…. 27일 김모 여인은 이모 여인(34•제주)이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아기의 손에서 몰래 금가락지를 빼내다가 들키자 입 속으로 넣어 집어 삼켰다고 경찰에 신고. 신고를 받은 경찰서에서는 금반지를 찾아내기 위한 묘안을 수사관들이 짜냈는데, 끝내 묘안이 안 나오자 하는 수 없이 이 여인을 보호실에 가두고 29일 아침까지 이 여인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따라가 대변에 금가락지가 섞여 나오는가를 수색했지만 끝나 실패하고 돌려보냈다는 것. -1972년 10월 15일자 ▒▒▒▒▒▒▒▒▒▒▒▒▒▒▒▒▒▒▒▒ 안방문 열었더니 발이 넷 부산의 회사원 유모(30)씨는 회사일로 야근을 하고 밤 늦게 집으로 들어가 안방문을 열어보았더니 남녀 한 쌍이 한자리에서 정답게 취침 중이어서 기겁을 했는데…. “웬 놈이냐”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자고 있던 남자도 벌떡 일어나 마주보며 “넌 웬 놈이냐”고 고함,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이웃사람들이 달려와 싸움을 말려 피까지 보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유씨는 그날 아침 출근하면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간다는 부인의 말을 들었는데도 회사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그만 부인의 말을 깜빡하여 습관대로 집을 찾아 들었다가 그런 실수를 범한 것이라나. “이사 자주 다녀야 하는 가난뱅이 신세가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유씨는 한탄. -1970년 9월 13일자 ▒▒▒▒▒▒▒▒▒▒▒▒▒▒▒▒▒▒▒▒ 정력 한번 좋아질 발가락 나이가 40줄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점 정력이 감퇴돼 가는 것에 고민해오던 C씨(44)는 며칠 전 정력강장제라는 영약을 구하는 데 성공. 몇 차례 사용해보니 과연 약효가 신통해서 C씨는 회춘의 꿈에 들떠 있었는데…. 10월 10일 양복을 세탁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던 부인이 마치 치약처럼 생긴 이 약을 발견, 무슨 약이냐고 C씨에게 물었다. 부인 몰래 이 약을 써오던 C씨는 얼결에 무좀 특효약이라고 대답했는데 아내는 “그거 마침 잘됐다”면서 버선을 벗어버리고 비싸게 산 그 약을 몽땅 발가락 사이에 발라 버렸다고. 말도 못하고 울상으로 이를 지켜보던 C씨 “그 발가락 정력 한번 좋겠구나” -1970년 10월 25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압구정백야 백야, 남편 잃고 자살하려다 돌연 시댁행 ‘임성한 작가 의도는..’

    압구정백야 백야, 남편 잃고 자살하려다 돌연 시댁행 ‘임성한 작가 의도는..’

    ‘압구정백야 백야’ 드라마 ‘압구정백야’에서 백야가 죽은 남편 조나단의 가족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 84회에서는 백야(박하나)가 남편 조나단(김민수)이 죽은 후 홀로 바닷가를 찾는 모습이 그려졌다. 앞서 백야는 퇴원 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홀로 사라졌다. 백야는 바닷가에서 조나단과 찍은 사진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던 백야는 오빠 백영준(심형탁 분)을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했다. 백야는 “그래도 오빤 나 위로했어. 걱정 말라고. 어떻게든 뒷바라지할 테니까 공부 열심히 하라고...나 약해빠졌다고 원망 마. 잊을 수 없어. 소장님 마지막 모습”이라며 삶을 포기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이어 백야는 “신이 있나요. 있다면 나랑 맞장 한 번 뜨세요”라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그러나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악착같이 살겠다”고 소리치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후 백야는 조나단의 아버지 조장훈(한진희 분)을 찾아갔다. 백야는 “조나단 대신 나 보고 살면 안 되겠나. 성가시고 귀찮으면 내쳐도 된다. 이제 바라는 것 아무것도 없다. 조나단 대신에 여기 들어와서 살겠다”며 “이제 행복이라는 단어는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식구로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백야는 이어 “우리 억지로 조나단 잊지 말자. 생각나면 추억하고 그리워하자.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추억거리가 많더라. 나에게 식구 만들어주고 떠났다. 며느리도 자식이고 가족이지 않냐. 내게는 아버님, 어머님, 아가씨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조장훈은 “너는 우리 며느리”라며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한편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백야’는 방송국 예능국을 배경으로 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평일 오후 8시55분에 방송된다. 압구정백야 백야, 압구정백야 백야, 압구정백야 백야, 압구정백야 백야, 압구정백야 백야 사진 = 서울신문DB (압구정백야 백야) 연예팀 chkim@seoul.co.kr
  •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폭로에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폭로에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김영민 레이싱모델 김나나가 남편인 넥센 김영민 선수의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고 고백했다. 김영민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은 아내에게 반성하고 속죄하며 야구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영민과 김나나의 글은 모두 삭제됐으며, 진위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김영민 레이싱모델 김나나가 남편인 넥센 김영민 선수의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고 고백했다. 김영민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은 아내에게 반성하고 속죄하며 야구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영민과 김나나의 글은 모두 삭제됐으며, 진위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김영민 레이싱모델 김나나가 남편인 넥센 김영민 선수의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고 고백했다. 김영민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은 아내에게 반성하고 속죄하며 야구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영민과 김나나의 글은 모두 삭제됐으며, 진위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무슨 일?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무슨 일?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흠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잘 살고 있어요” 무슨 일? ‘김나나 김영민’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 선수가 불륜설에 휩싸인 가운데, 레이싱모델이자 아내 김나나가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며 불륜 논란에 입을 열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는 글이 게재돼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김영민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은 아내에게 반성하고 속죄하며 야구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했다. 논란이 일자 김나나는 SNS를 통해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을 해명했다. 한편 넥센 구단 측은 한 매체를 통해 “애리조나 현지 숙소의 인터넷 환경이 썩 좋지 않아 김영민이 이것저것 누르다 비공개 설정이 공개로 잠시 전환됐다. 1분가량 노출됐다 곧바로 다시 비공개로 전환했는데 퍼져나간 모양”이라고 해명했다. 김영민이 1년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 1분여간 공개됐다는 것. 넥센 관계자는 “아내가 용서했고, 유혹을 느끼거나 생각이 흐려질 때 반성문을 보며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미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징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나나 SN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페북글 대체 뭐길래? 입장보니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페북글 대체 뭐길래? 입장보니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 선수가 불륜설에 휩싸인 가운데, 레이싱모델이자 아내 김나나가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을 해명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는 글이 게재돼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사진=김나나 SNS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김나나 김영민 불륜설 해명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우리 잘 살고 있어요” 김나나 남편 김영민 레이싱모델 김나나가 남편인 넥센 김영민 선수의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고 고백했다. 김영민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은 아내에게 반성하고 속죄하며 야구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영민과 김나나의 글은 모두 삭제됐으며, 진위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도대체 무슨 내용?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도대체 무슨 내용?

    김나나 남편 불륜설 해명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도대체 무슨 내용? 김나나 남편 김영민 레이싱모델 김나나가 남편인 넥센 김영민 선수의 불륜설을 해명했다. 김나나는 지난 9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임에 돈 쓰는 것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우리 여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어나 보니 위로의 카톡이 100개.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맞춤법만 봐도 아닌 거 딱 알지 않나”라며 불륜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앞서 지난 8일 김영민의 페이스북에는 “결혼 내내 쓰레기 짓을 했다. 연애할 때부터 바람을 폈다. 불법 안마시술소 등의 업소를 일주일에 한두 번 씩 갔고 룸살롱, 도우미를 불러 놀았다. 룸살롱 아가씨와 반 년동안 연애도 했다”고 고백했다. 김영민은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은 아내에게 반성하고 속죄하며 야구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영민과 김나나의 글은 모두 삭제됐으며, 진위 여부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군 장성들부터 성희롱 예방교육 받아라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군 장성들부터 성희롱 예방교육 받아라

    지난해부터 끊이지 않고 있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과 이에 대응하는 군 당국을 보고 있으면 기가 막힌다. 장성급부터 영관급 지휘관까지 가해층이 광범위할 뿐 아니라 병영문화 혁신 요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게 빗발쳤던 지난해 말 이후에도 성추행·성폭력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군 당국이 사단장(현역 소장)부터 관련자들을 긴급 체포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하고 계급을 강등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잇따라 내놓는 대책의 실효성과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 더욱이 기무사령관을 지낸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부하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여단장 행위를 ‘외박 못 나간 탓’이라는 취지로 얘기하면서 피해 여군을 ‘하사 아가씨’로 지칭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육군 1군사령관의 여군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은 여군에 대한 군 고위 지휘관들의 왜곡된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여군 대상 성범죄는 2010년 13건에서 2011년 29건, 2012년 48건, 2013년 59건으로 늘었고, 2014년 8월 말까지 모두 34건이 적발됐다. 피해자 183명 중 109명(59.5%)이 여군 하사다. 남윤인순 새정치연합 의원은 20대 초반인 여군 부사관들의 피해가 많은 이유는 이들이 장기복무 예정자로 장기복무 선발권을 쥐고 있는 남군 상사들의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해 군인권센터가 여군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잘 나타난다. 설문조사에 응한 여군의 90%는 ‘성 관련 피해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 ‘소용이 없어서’(47.7%), ‘불이익 때문에’(44.7%) 등을 꼽았다. ‘여군 1만명 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여군의 더 큰 역할이 기대된다고도 말하지만 아직 우리 군대는, 특히 남군 지휘관들은 여군을 동료, 부하 직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여군을 대하는 태도나 호칭 등에는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군 하사관을 ‘하사 아가씨’로 부르고, 심지어 군 인권센터에 접수된 민원 중에는 여군을 ‘아줌마’로 부른다는 기사를 보면서 23년간 군 법무관을 지내고 지난해 말 퇴역한 이은수 고등군사법원장을 위관 시절 ‘이 대위’가 아니라 ‘미스 리’라고 부르던 때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기강이 무너진 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면서 군 당국이 지난달 말 서둘러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지경이다. 언론에 공개된 성 군기 관련 행동수칙에는 남성 군인 또는 여군이 혼자 이성 관사를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신체 접촉 시에는 한 손 악수만 허용하며, 남자 군인과 여군 단둘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전장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해야 할 남군과 여군을 물리적으로만 분리해 놓으면 된다는 식의 근시안적이고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대책을 내놓은 군이 과연 우리 사회의 엘리트 조직이 맞는지 회의마저 든다. 물론 군 당국은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인 ‘원아웃 제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육군은 이 밖에 육군본부에 전담반을 설치, 각급 부대의 성 관련 사고 징계 수위를 감시하겠다고도 밝혔다. 종합선물 식으로 쏟아놓은 대책들이 군대 내 변화를 가져오려면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군 장성 등 지휘관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여군들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거부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장성들이 있는 한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군대는 명령에 죽고 사는 조직이다. 장성들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개혁은 말에 그칠 뿐이다. 각군 본부나 사단 차원에서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17분짜리 영상을 보고 외부 강사의 강연을 듣는 것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마쳤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장성들이 성희롱과 성추행 등에 대해 강경한 원칙을 갖고 대처해야만 예하 부대 문화도 바뀔 수 있다. 차제에 440여명의 군 장성들을 여가부에 보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게 하자. 상징성 못지않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 [사설] 새누리 송영근 의원 정치 못 하게 해야 한다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이 그제 ‘국회 군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혁신특별위원회’에서 내뱉은 말은 우리가 정말 정신적으로 얼마나 척박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실감케 한다. 송 의원은 최근 육군 여단장이 부하 여성 하사를 성폭행한 사건을 놓고 “열심히 일하려고 외박을 거의 안 나간 것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런가 하면 피해 여군을 “하사 아가씨”라고도 지칭했다. 여러 가지로 여물지 못한 한 개인의 치기 어린 소리라고 흘려듣기에는 너무나도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황당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앞으로도 국회의원이라는 ‘군림하는’ 직업을 갖고 또 어떤 말을 해 우리 사회를 천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지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 우리 군은 지금 성과 뇌물의 늪에 빠져 하루하루 기록을 경신하듯 수치스러운 어둠의 역사를 써 가고 있다. 그런 마당에 기무사령관까지 했다는 사람이 정신의 현주소를 의심할 만한 말을 했다니 이는 군은 물론 온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사람을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시켜 줬는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전문성도, 대표성도 인정하기 어려운 비례대표라면 무엇에 쓰겠는가. 국방부는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군의 전반적인 인식 수준이 송 의원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라면 만사휴의다. 군 당국이 내놓은 성군기 대책이란 것이 고작 남녀 군인 단둘이 차량 이동을 못 하게 하고 한 손으로만 악수를 하도록 하는 ‘남녀군인부동석’ 수준이라니 딱한 노릇이다.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여성을 파괴하는 성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 장난하고 있냐”는 볼멘소리를 들어도 싸다. 최근 성추행 혐의로 창군 이래 처음 장교가 일계급 강등 조치를 받은 일도 있다. 군내 성군기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계급 강등은 물론 군인연금까지 박탈하는 등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강력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송 의원도 해명했듯 성폭행 사건을 옹호하려는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명백히 부적절한 말을 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특위 위원직을 사임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평생 군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가 우리 사회에 끼친 정신적 폐해를 생각하면 국회의원을 그만두는 것으로도 오히려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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