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아가씨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연예대상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권고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독성물질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아산병원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11
  • 강성산 총리 사위 康明道씨/韓國花 연변대 교수와 결혼

    姜成山 북한총리의 사위로 94년 5월 귀순한 康明道씨(39)가 24일 하오 3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부는 중국 연변대 음대 교수이자 소프라노 가수인 조선족 韓國花씨(40). 康씨는 지난 해 가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성악을 공부하던 韓씨를 만났다.이후 국제전화 및 편지를 통한 6개월여간의 열애 끝에 이날 결혼식을 가졌다. 康씨는 “독신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배우자를 찾았으나 서울의 깍쟁이 아가씨를 배우자로 택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며 “천사같은 韓씨의 성품에 반해 청혼을 했다”고 말했다.
  • IMF 손님 끌기 퇴폐영업 극성

    ◎룸살롱·단란주점 등 나체쇼 예사로/신촌 일대 낯뜨거운 게임도/노래방도 아르바이트 접대부 고용 IMF 한파로 장사가 안되자 손님을 끌기 위해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의 퇴폐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체쇼 등의 음란공연을 벌이는 룸살롱,접대부를 고용해 술시중을 드는 단란주점,술을 파는 노래방 등 업태위반 영업이 이 전국 곳곳에서 판치고 있으며 일부 업소는 종업원들에게 윤락행위까지 시키고 있다. 관계당국의 단속 소홀도 이같은 불법·탈법을 거들고 있다. 지난 19일 하오 10시30분 서울 무교동의 한 단란주점.어느정도 손님들의 취기가 오르자 접대부들이 차례로 몸을 과잉 노출시킨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퇴폐 분위기를 연출했다. 서울 북창동 일대의 단란주점에서는 한동안 사라졌던 나체쇼가 다시 등장했다.서울 강남 일대에서도 ‘북창동형 단란주점’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삼각동 P노래방.캔맥주를 팔면서 손님들이 원하면 젊은 여성들이 술시중을 들도록 한다.봉사료는 1시간에 2만원.주인은 “낮에는 직장에 다니는 아가씨들”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단란주점 형태의 노래방들이 얼마 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학들이 밀집한 서울 신촌 일대 일부 술집에서는 저녁 시간에 ‘흑기사’‘백기사’게임이 유행하고 있다. ‘흑기사’게임은 여자 손님이 거부한 ‘폭탄주’를 남자 손님이 마시면 여자손님이 키스를 해줘야 하는 게임이고 ‘백기사’게임에서는 남자손님이 여자손님 1명을 골라 꽃을 선물하되 거절 당하면 폭탄주 1잔을 벌주로 마셔야 하며 꽃을 받아주는 여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꽃을 받은 여자는 남자에게 키스를 해야 한다. 경북 구미시에서는 지난 19일 이른바 ‘호스트바’에서 10대 남성 접대부들이 전라 상태로 여자 손님을 접대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 소주방들은 접대부를 고용,탈선을 부추기고 있으며 지하철 4호선 노원역 일대 단란주점들은 최근 10대를 겨냥,소주를 메뉴에 추가했다. 서울 서초동과 논현동 일대 레스토랑과 카페들은 ‘출장 판매’에 나선 접대부들을 고용,손님을 끌고 있다.한 카페 주인은 “요즘들어 ‘여자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 명성황후 피란 일화(비록 남가몽:4)

    ◎뱃사공에 금반지 빼주고 한강 건너 피신/경기도 광주땅 지나는데 아낙네들 험담/“중전때문에 이 고생… 군졸에 밟혀 죽었다”/두달후 환궁 “아낙네마을 없애 버려라” 1882년 6월의 임오군란으로 민비는 실각하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대원군으로서는 실각한지 8년만의 일이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창덕궁까지 가는데 여덟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팔인교)를 탔고 앞뒤에는 파초선을 든 하인들이 그를 인도했다.대원군의 공복 등에는 거북 등(구배)이 붙어 있어 사람들은 그가 곱추처럼 보여 아니꼽기만 했다.더욱 가관인 것은 그동안 운현궁 사랑방을 출입하던 문객,즉 가신들을 중앙과 지방의 요직인 각 도 감사(도지사)와 유수(시장) 그리고 군수직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가던 민비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그러니 그야말로 절치부심 이를 갈며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중전이 나루터에 서서 급히 사공을 불러 배위에 올라타니 수레바퀴같은 붉은 해는 비웃듯이 솟아 오르고삼각산의 뜬 구름도 즐겁기나 한 듯 뫼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삼국지에 보면 옛날 한나라 환관 십상시의 난에 개똥벌레가 한소제를 북망산천으로 인도하였고 채모 장군이 추격함에 유비가 말을 타고 단계천을 뛰어 건넜다고 하는데,그 쓸쓸한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드디어 뭍에서 내려 길을 가다가 얼마후 깨끗한 여관에 들어가니 아침밥을 지어 바치는데 한나라 광무황제가 호타하에서 먹던 보리밥처럼 꿀맛과도 같았다.그러나 비록 이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였다.도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시끄럽게 자주 서울의 군란소식을 전하여 주었는데 들어보니 곤궁(민비) 전하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고 혹은 서거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그 밖에 흉흉한 설은 이루 다말하기 어려웠다. 듣기를 마치고 드디어 수레를 타고 수행원의 보호를 받으며 바로 충주 옛고을로 향하여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화를 피하였다. 며칠이 지나 잠깐 조보에 발표된 내용을 보니 ‘민중전이 군란의 와중에서 서거하여 백성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이 슬퍼하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온 나라는 악기를 일체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생국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명성황후가 여주로 피난할 때 남긴 일화가 많다.한강을 건널때 사공이 민비를 건네줄 수 없다고 버티었다고 한다.한강을 차단하라는 긴급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공의 주장이었다.이에 민비는 즉각 금가락지를 빼어 사공에게 던져 주었고 사공은 뇌물을 받고서야 순순히 배를 저었다는 것이다. ○대원군,시신없이 국상 채비 한강을 건너 충주로 가는 도중에도 괘씸한 일이 일어나 민비의 가슴을 쥐어짰다.경기도 광주땅을 지나가다가 교자꾼들이 가마를 길에 놓고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길가던 아낙네들이 “이렇게 어여쁘신 아가씨가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민비는 재치있게 “서울에서 충주로 피난가는 길이요”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아낙네들이 “중전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까지고 생하는 구려” 하면서 “중전은 군졸들에게 짓밟혀죽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겠는가.민비는 이들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두달 후 서울로 환궁하자 곧 아낙네들이 사는 마을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또 수행원들이 “한강의 뱃사공은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묻자 민비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한다.그도 그럴것이 사공이 뇌물을 거절하고 한강을 건네주지 않았던들 민비는 잡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대원군이 민비의 국상을 서둘렀다.시신이 없어 국상을 치를 수 없다는 반대가 강했다.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대원군은 민비의 옷을 시신으로 삼아 염을 한뒤 관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그리고는 장례식부터 치러 민비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장례식부터 치르려 한 대원군의 심사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할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대원군은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청국군에게 납치되어 머나먼 중국땅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민비는 살아 돌아왔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몇 개월이 지났다.고종과 세자는 아득하게 소식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슬프고 애통할 뿐이었다. 이 때에 군란의 소요가 가라앉자 곤궁 전하는 고종에게 소를 올려 ‘신은 죽지 않고 지금 충주 장호원 등지의 민가에서 피란하고 있으며 처분이 어떠하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고종 부자분은 소를 자세하게 살펴본 뒤에 심신이 황홀하여 꿈결도 같고 술에 취한 것도 같았다.즉시 궁궐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은 교를 내려 조처를 취하니 하늘의 해가다시 밝았고 땅의 바람이 일어나 솟아오르는 듯하였다.안으로 3천명의 관료와 밖으로는 800명의 관료가 축하하여 일시에 만세를 부르니 남산과 북악의 초목과 곤충들도 모두 정채가 감돌았다. 우선 급무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시상하는 건이었다.무슨 벼슬로 상을 줄것인가.양주목사 자리이다.양주목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이번에 충주까지 수레를 태워주고 수행하여 보호하는 일을 맡은 홍태윤(홍계훈의 잘못)이었다.” ○한때 ‘육백팔흑’ 유행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자취를 감춘 것이 6월이요,돌아온 것이 8월이었으니 불과 두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사람들은 6월에 흰 옷을 입고 울었다가 8월에 검은 갓을 쓰고 살아돌아온 국모를 환영했다 하여 육백팔흑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다. 명성황후를 업고 나온 공으로 양주 군수로 발탁된 홍계훈 이외에도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데 필요한 여비 500궤미(말을 판 돈이었다)를 댄 조충희는 전남 영광군수로 임명되었다.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북청 물장수 출신의 이용익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과 충주를 왕래하면서 중앙의 정세 변동을 민비에게 보고하였으니 그 뜨거운 충성심과 추종을 불허하는 건각은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홍계훈은 뒷날 동학란 토벌대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용익은 대한제국의 탁지부대신을 맡아 이른바 광무개혁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임오군란은 개항 6년만에 국고가 바닥이 나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대사건으로 조선왕조가 망해가는 첫걸음이었다.그러므로 민비와 대원군 사이의 사전쟁 이상의 것이었다.이 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서울이 분탕질을 당하고 일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여 열강에 의한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 금세기 신심리주의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간속에 매몰되어 가는 자아/시간·공간 초월 ‘존재 의미’ 되찾아 가는 과정 20세기 신심리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김창석 옮김,국일미디어)가 11권으로 완역돼 나왔다.이번에 선보인 ‘잃어버린 시간…’은 지금은 절판된 85년 정음사 판을 토대로 역자인 불문학자 김창석씨가 시대 감각에 맞게 새로 다듬어 펴낸 것.‘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스완네 집 쪽으로’‘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게르망트 쪽’‘소돔과 고모라’‘갇힌 여인’‘사라진 알베르틴’‘되찾은 시간’ 등 모두 7편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화자인 ‘나’가 침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떤 현재’에서의 독백으로 시작된다.감수성이 풍부하고 환상적인 성향을 지닌 주인공 ‘나’는 귀족들이 모이는 사교계에 출입하며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사귄다.인생의 모든 것에 절망한 어느날 그는 우연히 홍차에 프티트 마들렌 과자를 적셔 먹는다.바로 그 지점에서 주인공은 과거의 무의식적인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길을 자각한다.프루스트는 우리의 자아란 시간 속에 매몰되면서 해체된다고 믿는다.때문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사랑이나 고통에서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작품 속의 주인공들인 스완,오데트, 질베르트 등이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 소설에는 뚜렷한 줄거리나 극적인 상황이 없다.그런 만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행동의 필연성이 아니라 ‘기억의 미학’이다.프루스트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자기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그린다.이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화자인 ‘나’에 의하면 모든 사물과 존재는 시간에 의해 파괴된다. 그러나 과거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가 언제든 사물을 통해 되살아난다.프루스트는 결국 순간적인 시간을 정복해 영원한 시간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특성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서른 여덟살 때부터 쉰 한살로 사망할 때까지 13년동안 쉼없이 이 작품에 매달렸다.그는 고질병인 천식이 도질까봐 창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바깥의 잡음을 막기 위해 사방에 코르크를 댄 방에 틀어박힌 채 신들린 사람처럼 쓰고 또 썼다.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앙드레 모루아는 그 신산한 과정을 “시간에 맞서는 정신의 긴 투쟁’이라고 불렀다.
  • 중 최고배우자는 ‘간판’ 아닌 인품

    ◎50∼70년대 결혼땐 당 간부·군인 인기 1위/최근엔 돈·권세보다 “사랑 전제로한 인성”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50년대는 당간부,70년대는 군인,80년대는 졸업장이 있는 사람,그러나 98년에는 인품…’.지난 40여년동안 중국에서의 배우자 선택기준은 이른바 ‘끗발’이나 ‘간판’이 우선이었으나 최근의 한 조사결과는 과거와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최근 신화사 부속 공산주의청년단위원회와 중앙신문학원이 북경시의 보통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교장구 골목의 156가구를 대상으로 공동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 선택기준 1∼3위는 인품,건강,성격이었다.그 다음은 키,용모,직업,학력,재능이었다. 이들 북경인들은 혼인기준에서 먼저 인격을 금보다도 중시했다.다만 시대와 경제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배우자 선택 면에서 맹목적으로 정신만 강조하던 타성에서 벗어나 사랑을 전제로 해서 실제적인 키나 용모,직업 등을 따지고 있다. 혼인기준에서 맨 하위는 뜻밖에도 상대방의 가정환경과 경제소득으로 나타났다.돈 있고 권세있는 가정환경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의 배우자 선택기준으로 선망시되지만 이를 쫓다가 결혼생활을 파탄으로 끝낸 뼈아픈 전례를 이웃에서 봤기 때문이다. 10년전 이 골목에 살면서 간호원으로 일하던 한 아가씨는 고급간부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그러나 결혼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풍파를 만났다.시어머니가 가정부를 해고하고 며느리에게 걸레질과 빨래를 시키는 등 사실상 고용인으로 부렸기 때문이다.그집 식구들의 신분차별 대우로 그녀는 결혼한 지 1년도 못돼 이혼을 하고 만 사실을 교장구사람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 ‘아빠’라는 말/김희진 국립국어연 학예연구원(굄돌)

    자기 남편을 가리켜 ‘아빠’라 불러도 되는가.이 문제를 놓고 표준 화법을 다루는 학자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결론은 ‘곤란하다’로 나왔다. 다만,어린 자식에게 남편을 지칭할 때에 한하여 ‘아빠’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전통 예의 연구가는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아빠)’란 말을 남편에게 쓴다는 것은 예의 문제를 넘어 존속 모독이며 인륜을 문란케 하는 일이라 하였다.국어학자들 역시 ‘아빠’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한 원로학자는,부녀지간으로 보이고 뭔가 음성적인 듯한 부부 사이에서 여자가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던 일본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이렇게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빠’를 즐겨 쓰는 사람들은 아이 이름 뒤에 ‘아빠’란 말이 붙었던 것이 아이 이름을 빼고 간단하게 ‘아빠’만 남은 말이니 상관없다고 할지 모른다.그러나 아이를 기대어 부르는 일이 온당한 방법은 아니다.‘아가씨’,‘도련님’이라고 해야 할 자리에 아이를 기대어 ‘고모’,‘삼촌’으로 부르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뜻 있는 분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남편을 ‘아빠’로 부르지 않도록 계도해 왔다.방송국에서도 여성 출연자에게 친정 아버지는 ‘친정아버지’로,남편은 ‘제 남편’으로 구분해서 사용해 달라고 당부하는데 출연자는 그러마고 하고서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남편에 대해‘아빠’를 무의식적으로 연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방송 도중에라도 말을 고쳐 줄까 하여“ ‘아빠’라고요? 친정 아버님 말씀이세요?”하고 눈치를 줘도 끝내 ‘아빠’소리를 못 고칠 때에는 방송을 중단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토로한다.말이 아무리 시절 따라 변한다 하더라도 남편을 남에게 ‘아빠’로 부르는 일은 삼가자.아버지와 남편을 ‘아빠’로 함께 부를 수는 없잖은가.
  • 입영열차 13년만에 부활/광주서 5백여명 태우고 이별의 기적소리

    ◎눈물 훔치는 어머니 모습은 옛날 그대로 지난 85년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됐던 입영열차가 13년만에 다시 출발했다. 20일 상오 6시 50분 광주발 의정부행 3252호 무궁화호 열차는 입영자와 가족,연인 등 5백여명을 태운채 광주역을 떠났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가씨들이 기차를 따라 달리는 모습과 눈물을 훔치는 어니,친구들의 헹가레는 마치 시계바늘을 10여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 했다. 그러나 열차내 분위기도 사못 달랐다.미처 현지까지 가지 못하는 연인과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전자오락 게임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아들을 입영시키기 위해 함께 열차를 탄 이모씨(52·회사원·광주시 화정동)는 “30여년전 어머니의 눔물을 뒤로 하고 열차를 타고 한없이 울었었는데 다시 입영열차에 탑승하니 감회가가 새롭다”면서 “입영자들의 행동이나 표정이 비교적 활달하고 밝은 것이 옛날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입영통지서와 함께 ㎞당 45원씩으로 계산한 여비를 미리 지급,희망자에 한해 열차를 타도록 했다”며 “경제적 부담도 줄이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이번에 시범운행한 뒤 반응이 좋으면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입영열차는 낮 12시 10분 의정부역에 도착했다.
  • 참다운 ‘나’를 찾는 계기로(박갑천 칼럼)

    영하의 강추위 아랑곳없이 무릎위로 많이 올라간 치마 입는 아가씨들이 있다.그걸본 옛날 할머니들은 끌끌 혀를찼다.“멋내려다 냉증들지”.하지만 냉증은 커녕 고뿔도 안걸린다. 한겨울 엷은셔츠 하나로 돌아다니는 거지에게 누군가 춥지도 않은가고 묻는다.거지는 없어 못입지 있어도 안입겠나 하는 옥생각에 찜부럭낸다.“괜찮수다.하지만 선생도 얼굴은 내놓고 있지 않수.말하자면 나는 온몸이 선생의 얼굴과 같은거요”.몽테뉴의 (1권36장)에 나오는 얘기.그 추위속의 얼굴과 같이 아가씨들 아랫도리도 환경에 익게되면 견딜만해지는 듯하다. 텔레비전에서 물이 귀한 아프리카땅 실상을 비친다.맑은물 못구한 그들은 웅덩이물을 마신다.그결과 저항력 약한 어린이들이 수인성질환에 걸려 죽기도 한다.하지만 그들은 그땅에서 유사이래를 살아오지않은가.물이 넉넉한데사는 사람들로서는 사람살곳 못된다 하겠지만 그들도 거기서 살아야할 상황으로 되면 살게된다.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같이.습관은 그렇게 본래의 능력을 바꾼다. “절에가면 중이되라”고 했다.그러나 되려고 않는다해도 상황을 바꿀수 없으면 될밖엔 없다.우리도 그 적응력으로 고려때는 원이 지배하는 고난의 터널을 뚫었고 조선조때는 임란7년의 언걸을 이겨냈다.현대에 와서는 6·25의 죽살이도 참아냈고.그것이 추위앞에 “온몸이 얼굴같이”노출됐을때의 사람모습.IMF한파의 아픔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갈수록 “춥지않게”돼갈 것이다. 다만 이과정에서 뼈를깎는 성찰을 해야한다.잠시 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참(진)이 무엇인가를 잊은데 대해 언짢아했던 장주의 그 성찰을.그건 장주가 조릉을 산책하다가 겪은일이 계기로 된다.까치 비슷한 새와 매미와 사마귀와 장주 자신 모두가 눈앞의 이끗 때문에 ‘나’를 잊은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고.장주는 탄식한다.“나는 겉허울(형)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의 진실을 잊고 있었다.흐린물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맑은연못을 보고도 그 연못의 맑음이 물의 참모습인가 의심한것과 같다”면서.(산목편·망진우화) 그동안의 우리가 그랬다.‘흐린물’에 익숙해지면서 ‘맑은물’의 진실을 잊은채 부픗하고 신둥지게 살아온게 아닌가.‘온몸의 추위’를 참다운 ‘나’찾는 계기로 삼아나가야겠다.
  • 피카레스크 소설 새롭게 떠오른다

    ◎원로영문학자 이가형 교수 문학이론서 발간/16세기 스페인서 발생… 유럽문단 영향/악한들의 모험 다뤄… 현대작가들 주목 피카레스크 소설(picaresque novel).악한소설 혹은 건달소설로 불리는 이 소설은 16세기 중반 스페인에서 발생해 17세기까지 크게 유행했던 문학양식이다.피카로(picaro,악한)라고 불리던 스페인 사회의 무직자·불량배 등을 주인공으로 한 자전적 형식의 소설로,생존을 위해 무작정 떠돌아다니며 되는대로 살아가는 악한들의 모험을 주로 다룬다.최근 원로영문학자 이가형 국민대 명예교수가 펴낸 ‘피카레스크 소설’(민음사)은 구체적인 작품분석을 통해 악한소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문학이론서로 관심을 모은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1554년 스페인에서 출간된 작자미상의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에서 비롯된다.그러나 피카레스크 소설의 진정한 원형은 마테오 알레만의 ‘구즈만 데 알파라체’(1599)에서 찾을수 있다.이 작품은 스페인 소설에서 사실주의가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이 책에서는 특히 피카레스크 소설이 영·미와 유럽 소설에 끼친 영향을 상세히 살핀다.영국 최초의 악한소설은 이른바 ‘대학재사’중의 한 명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작가 토머스 내시의 ‘불행한 나그네:잭 윌튼의 생애’이다.주인공 윌튼은 유럽을 돌아다니는 귀족 주인을 둔 악한 하인이다.이 작품은 전체적인 주제의식과 통일성이 부족하고 성격묘사가 결여돼 있다.그런 관점에서 평론가 엘리자베스 드루는 이를 피카레스크 소설(novel)이 아니라 ‘피카레스크 픽션’이라고 불렀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악한소설의 하나는 독일에서 나왔다.살기 위해 피카로의 본색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한 부랑자의 방황을 그린 그리멜스하우젠의 ‘짐플리치시무스’가 그것이다.소설의 주인공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절해 고도에서 은둔생활을 한다.그러나 그와는 달리 속세로 돌아가지 않고 섬에 남는다.정신의 정화를 위해 절대 고독의 경지에 머무는 것은 전통적인 피가로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이러한 내면성의 추구는 훗날 독일 고유의 성장소설로 이어지는 토양이 됐다.스페인의 피카레스크 소설은 17세기 프랑스 소설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독일의 ‘짐플리치시무스’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피카레스크 소설은 르사주의 ‘질 블라스’이다.스페인 피카레스크 소설의 전통에 따라 르사주는 사회의 풍속을 폭로하는 일련의 희극적 또는 소극적 모험들을 엮었다.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피카로라기 보다는 로맨스의 주인공에 더 가깝다.고전적 피카로들에게서 나타나는 무지막지한 면이 없기 때문이다.‘질 블라스’보다 훨씬 낙천적인 피카레스크 히어로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서 발견할 수 있다.볼테르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형태를 빌어 그의 철학사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철학적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 부를 만하다.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독특한 피카레스크 소설이 선보였다.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그것.‘라사리요’가 16세기 스페인의 피카로라면 ‘헉’은 19세기 미국의 피카로다.이러한 피카레스크 소설의 맥은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한결 분명하게 드러난다.그 한 예로 프랭크 노리스의 ‘맥티그’나 시어도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같은 작품은 피카레스크 소설로 읽힌다.돌팔이 치과의사 맥티그와 가난한 시골 아가씨 캐리는 비정한 대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각 피카로와 피카라가 되지 않을수 없다.이 두 작품은 자연주의 소설의 인간관과 피카레스크 소설의 인간관이 약육강식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줘 눈길을 끈다. 피카레스크 소설은 20세기 들어 새롭게 부활했다.이 교수는 현대의 대표적인 피카레스크 소설로 미국 작가 솔 벨로의 ‘오기 마치의 모험’,프랑스 소설가 셀린의 ‘밤의 끝으로의 여로’,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등 3편을 꼽는다.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피카레스크 소설형식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이 교수는 피카레스크 소설의 다양한 소설적 가능성에 주목한다.“피카로로 태어나는,자아가 강한 현대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거나 사회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지향할 때 피카레스크소설의 방식을 택하게 된다”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 정치적으로 이용된 풍경화/마르틴 바른케 저 ‘정치적 풍경’

    ◎군주위세 나타내려 주문한 그림 등 분석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출전한 이브리 전투장면을 그리면서 마치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연출,고대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기병대의 전투는 전쟁사에 이른바 근대적인 쌍방의 전면적 ‘총기 기병전’으로 기록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그러나 루벤스는 전쟁을 지휘자들끼리의 영웅적인 결투양상인양 변형시켜 놓았다.권력을 쥔 주문자의 요구대로 실제 전쟁상황을 은폐하고 신화화한 것이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풍경화에서 이러한 ‘정치적으로 점거된’ 풍경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최근 도서출판 일빛에서 펴낸 ‘정치적 풍경’(마르틴 바른케 지음,노성두 옮김)은 풍경화의 겉 주제아래 얽혀있는 복합적인 의미의 매듭을 풀어낸 인문교양서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근들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적 풍경’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제3제국 곧 나치제국의 선전상이었던괴벨스가 하를란 감독의 영화 ‘콜베르크’를 보고 “이 영화는 정치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브라질 태생의 독일 미술사가인 바른케는 이 ‘정치적 풍경’이란 말 대신 ‘정치화한 풍경’이란 표현을 쓴다.풍경화에 대한 해석법은 자연히 미학적이기기 보다는 문화사·정치사적인 데로 기운다.조그만 경계석에서 거대한 기념비에 이르기까지,바른케는 풍경에 새겨진 조형에서 정치적 신호를 읽어낸다. 15세기 초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시력그림’에는 소박하지만 정치적인 신호가 분명하게 깃들여 있다.초기 풍경화 요람기의 작품인 이 그림은 영주가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주문해 그려진 것이다.첨탑 모양의 성체현시대처럼 서있는 ‘십자로의 실 잣는 아가씨’라는 이름의 도로표석은 군주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또 1435년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성채 풍경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도시는 천국,성채는 지옥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이그림은 성채가 지배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은유이자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징표로 읽힌다.바른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적인 의미때문에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한층 더 명료해질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 치치하얼의 조선족(흑룡강 7천리:6)

    ◎20년대 첫 이주… 1만9천명 ‘공생’/눈강평원 드넓은 초원/서광촌·명성촌·선명촌서 농사일­상업으로 생계 이어 흑룡강 한 지류인 눈강유역의 평원은 장관이다.달리는 열차에서 바라본 차창밖으로 푸른 벌판이 아득했다.하늘을 흐르는 흰 뭉게구름과 초원에서 풀을 뜯는 새하얀 양떼가 어울린 평원은 그야말로 목가적이었다.그 망망한 초원 한 가운데 옹기종기한 마을은 마치 섬처럼 보였다.조선족들도 일찍 눈강평원에 들어와 그 섬같은 외로운 마을을 꾸렸다.눈강유역인 흑룡강성 치치하얼지구의 조선족은 지금 1만9천명을 넘는다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눈강평원의 조선족 이주는 1929년에 시작되었다.조선시대 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을 배출한 성씨가문의 22대손이 식솔을 이끌고 첫발을 들여놓았다.오늘의 흑룡강성 용광현 서광촌이었는데,당시 지명은 눈강성 대유수다.그 손자 성영석씨(46)는 지금 서광촌에 살고있다.할아버지가 처음 서광촌으로 들어올때 이끌고 온 식구는 여섯이었다는 것이다.지금은 성씨네 일가가 100명으로 늘어났다는 그는 이주해온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당시 지식인이었던 모양입네다.한일합방이 되자 벼슬할 꿈을 버리고 경상도 청도읍에서 서당을 꾸렸다고 기래요.한학에 능하셨던 할아버지는 일제의 농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서리 관리들의 밉상을 받았디요.그래서리 고향을 등지고 만 것입네다.아들 삼형제와 사촌까지 여섯이 고향을 떠나왔다고 합데다.봉천까지는 기차로 왔으나 더 갈만한 노자가 있어야디요.꼬박 두달을 남부여대하고 걸어서 대유수(서광촌)에 도착했다는 것이디요” ○성삼문 22세계 첫발 그들 일가는 비록 일망무제한 옥토에 짐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부릴 소나 말은 고사하고 씨앗도 없었기 때문이다.그 할아버지는 당시 눈강성 이몽기 성장에게 글을 올렸다.문장에 감복한 성장은 성소재지 치치하얼로 불러들였다.한주일여를 성장집에 머물면서 필담으로 교유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다.성장은 마차 두대에 쟁기며 양식,씨앗을 선물했다.첫해의 농사도 대풍을 이루었다.그래서 사람을 고향 청도로 보내 일가친척들을 서광촌으로 데리고 왔다. ○일제때 강제이주 시작 오늘날 눈강유역 평원에는 서광촌 말고 치치하얼시 메리스구 명성촌과 선명촌에도 조선족이 몰려있다.서광촌이 자생마을인 것과는 달리 이들 명성촌과 선명촌은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다.당시 눈강성에는 이같은 집단 이주마을이 13군데나 되었다고 한다.한 마을에 100호씩이 자리잡았다.모두가 경상북도 사람들이었는데,이주 초기인 1942년에는 일제가 배급도 주었다.그러다 일제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른바 대동아전쟁에 광분한 일제는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놓은 쌀을 모두 군량미로 빼앗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 등쌀에 견디다 못해 마을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경상도에서 온 전병형씨네 일가도 겨우 이태를 살고 도망치다시피 내몽골로 들어갔다.해방을 맞고서도 십수년이 지난뒤 그들 일가는 치치하얼로 돌아왔다.아들 성렬씨가 한국전쟁때 북한 인민군 소대장으로 참전했다가 대퇴하고 식솔 모두를 치치하얼시 메리스구로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한때 선명소학교 교장을 지낸 아들도 이미 세상을 떴다.지금은 치치하얼시 교육위원회 종교처장으로 일하는 손자 창국씨(49)가 가계를 잇고 있다.창국씨는 1968년 치치하얼 조선족고급중학 재학 당시 반혁명분자로 몰렸다.그는 이듬해 제적되어 선명촌으로 쫓겨났다.반혁명분자이기는 했지만 선명촌에서 촌장 아래 직급인 생산대장으로 올라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그가 쫓겨나서 일했던 선명촌은 눈강을 사이에 두고 명성촌과 마주한 마을이다.모두 조선족 마을이지만,한때는 남조선 북조선이라 불렀다.요새는 한국 북조선으로 바뀌었다.그렇다고 다른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단지 강남북에 자리한 마을 위치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그가 반혁명분자로 쫓겨났던 선명촌은 말하자면 북한이다.요즘에 와서 보면 두 마을의 별칭에는 유머러스한 구석도 있다.그러나 문화혁명 당시 그의 선명촌생활은 말이 아니었다.1975년 중앙민족대학으로 진학하기 이전까지 옹근 여섯해를 오로지 농촌에 매달렸다.기왕 농촌으로 들어온 바에야 조선족 농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각오로 별별 궂은 일을 다 맡았다. “아마 1973년인가 그럴겁네다.그 무렵 여기서는 농사일에 부릴 수 있는 한마리 말값이 3천원이라 싼 말을 사러 내몽골로 갔디요.하라이얼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자동차와 말을 갈아 타고 우숴무에 도착했수다.거기서는 말 한마리에 550원을 해서리 20마리를 사디 않았갔수.그 말을 끌고 초원을 지나 대흥안령을 넘어오는데 40일이 걸렸디요” 그 시절 총각 전창국은 마을 처녀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처녀들은 아무런 사심없이 일에만 매달린 그의 열정에 흠뻑 반했던 것이다.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전통가치관이 사뭇 달라졌다.그런 신랑감이라면 거들떠 보지않는 세월로 변한 것이다.농촌처녀들은 파랑새처럼 도시로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그래서 힘을 들여 농사일을 하는 총각들이 짝을 못 찾는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그런데 치치하얼에 머무는 동안 선명촌으로 가는 강가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를 만났다.“옳지,아직은 짝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총각은 치치하얼시에서 소문난 업소 금복문술집(금복문주점)주인 김홍률씨(51)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내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외지 농촌에서 왔다는 예쁘장한 처녀는 바로 금복문주점 종업원으로 주인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2백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치치하얼시에서 손꼽는 금복문주점을 들렀다.남향으로 나앉은 술집은 칸막이 온돌방에 식탁을 갖춘 홀을 갖추었다.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출수 있는 또 다른 홀과 별채의 숙소가 있어서 마시고 놀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아가씨가 열둘에 강씨라는 마담 한사람을 둔 금복문주점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제법 흥청댔다. ○시골주점 손님 북적 강마담은 한달에 천원을 받는다고 했다.아가씨들은 아예 월급이 없다는 것이다.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라서 아가씨들은 팁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연변에서 왔다는 미스김은 말이 아가씨였지 사실은 유부녀라고 실토했다.연길시 철남구가 집인 그녀는 한국으로 갔던 남편이 빚 5만원만을 진채 강제 송환되어하는 수 없이 치치하얼로 흘러들어왔다.내가 연길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시콜콜한 화류계 속사정을 다 까발려 놓았다. “팁이야 주는 사람 마음에 달렸디요.한국사람들은 보통 백원씩은 줍데다.그것도 침대에 올라가야 백원을 주디요.한국사람은 팁은 꽤 주지만 손이 점잖지 않아서 싫더라…”
  • 주검으로 돌아온 나리양 영결식 이모저모

    ◎유괴없는 하늘나라 예쁜천사 되거라/영정앞엔 좋아하던 곰인형·원피스 가지런히/마지막 피서갔던 대천앞바다서 한줌의 재로 유괴된지 14일 만에 숨진채 발견된 박나리양은 국민들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다에 뿌려졌다.13일 상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강남병원에서 거행된 나리양의 영결식에는 가족과 친지,급우들이 참석,하늘나라에서 잘 살아줄 것을 기원했다. ○…이날 서울강남병원 영안실 나리양의 영정 앞에는 평소 좋아했던 붉은색 원피스와 분홍색 곰인형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같은 반 친구 한지영양(8)은 “나리야,하늘나라에서도 곰인형과 즐겁게 놀아야 한다”며 울음을 터뜨려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 ○…나리양의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어머니 한영희씨는 관을 부여잡고 “나리야,어서 일어나”라고 외치며 한때 실신. 나리양의 시신은 가족들의 뜻에 따라 성남에서 화장을 한 뒤 충남 대천 앞 바다에 뿌려졌다.나리양의 아버지 박용택씨(40)는 “나리가 유괴되기 일주일전 함께 피서갔던 곳에재를 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상오 원촌초등학교 2학년5반 교실 나리양의 책상에는 흰 국화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급우들은 나리양의 책상 주위에 모여 국화꽃을 매만지며 나지막이 “나리야,나리야…”를 되뇌었다. 현도희양(8)은 “지난번 고무줄놀이를 하다 나리와 다툰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화해를 못했다”며 “나리가 돌아와 준다면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울먹였다.칠판에는 ‘나리야,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다오.우리 친구들은 모두 너를 잊지않고 영원히 기억할 거야’라는 글씨가 씌여 있었다. ○…급우들은 나리양을 위해 추모의 글을 올렸다.장이슬양(8)은 ‘나리야,하늘나라에서 잘살아.그리고 우리도 도와줘’라고 적었고 홍지연양(8)은 ‘나리야,하늘나라에서도 예쁜 아가씨가 되길 바래’라고 편지를 썼다. ○…안정을 되찾은 범인 전현주씨(29)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13일 새벽 1시까지 조사에 순순히 응한뒤 잠자리에 들었다.그러나 12일 저녁 식사로 나온 된장찌개는 거의 먹지 않았으며 목이 마른듯 음료수를 자주 요구.
  • 고향 명승지로 가족나들이/추석연휴에 가볼만한 곳

    ◎수도권­근교 공원마다 민속놀이·가두공연 풍성/중부권­초가을 뱃길따라 단양팔경 유람 좋을듯/영남권­신라의 맥박이 뛰는 토함산 일출은 장관/호남권­승주 낙안읍성 조선시대 민가 정취 “물씬”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는 한가위 연휴.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은 4일도 짧지만 집에서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은 추석날 제사를 지낸뒤 성묘를 하고 나면 시간적 여유가 많다.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가볍게 찾을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외국인 장기자랑도 펼쳐 ▷수도권◁ 과천 서울랜드는 가족들이 윷놀이와 투호,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수 있도록 연휴기간동안 연꽃분수 주변에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설하고 한가위 특집 퍼레이드도 선보인다.16,17일에는 전통민속 놀이팀인 ‘뿌리패’가 사물놀이와 농악놀이로 흥을 돋운다.하오 10시까지 개장한다. 용인 애버랜드도 14∼17일까지 순라군(포졸)과 뺑덕어멈 등 고전해학 캐릭터들로 분장한 공연단들이 가두행진을 벌인다.17일에는 250여명의 공연단원이 나와 왕의 행차를 재현한 어가행렬,친영의례,강무시취 등 조선시대 궁중행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16∼17일에는 외국인 장기자랑도 펼쳐진다.하오 9시까지 문을 연다. 잠실롯데월드는 15∼17일 하오 8시에 가족대항 윷놀이 대회를 연다. 16,17일 하오 4시에는 김덕수 사물놀이 초청공연이 펼쳐지며 하오 1시와 3시에는 민속박물관에서 화관무,살풀이 등 한가위 민속한마당이 열린다. 용인 한국민속촌은 추석날인 16일 낮 12시30분 북청사자놀음을 공연하며 17일 하오 3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송파산대놀이를 공연한다.공연장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속씨름,줄넘기,투호놀이,줄당기기 대회가 곁들여진다.민속촌은 이와 함께 송편 빚어보기,햇곡식 찧기,인형놀이마당 등의 행사도 개최한다. 이밖에 서울시내 5대 고궁이 개방되며 특히 덕수궁,경복궁,창경궁에는 널뛰기,제기차기,팽이치기,윷놀이,투호 등을 즐길수 있는 실습장이 마련된다.10일부터 2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광장에서는 전통민속놀이마당이 개설돼 윷,제기,팽이,줄다리기,굴렁쇠,투호 등을 즐길수 있다. 귀성인파가 한산해지면 경춘가도,팔당유원지 등의 국도를 승용차로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다.수도권의 달맞이 명소로는 임진각을 비롯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남산 팔각정·행주산성·남한산성 등을 꼽을수 있다. ○동해 달맞이·야경은 황홀 ▷중부권◁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은 추석 연휴기간동안 평소처럼 문을 연다.민속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가을 초입의 호수를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충주호 유람선은 이 기간동안 충주댐 선착장에서 단양 장회나루까지 100리의 뱃길을 하루 4∼6차례 운행한다.소요시간은 1시간10분. 청명한 하늘과 산자락 그림자가 드리워진 잔잔한 호반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가족과 함께 하는 초가을 여행치곤 감출 맛이 그만이다.배를 타고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월악산과 단양팔경중 하나인 옥순동,도담삼봉 너머로 다가오는 소백산의 웅장한 자태 등은 뱃길관광의 백미이다. 소백산맥의 끝머리에 있는 월출산은 천황봉,구정봉,향로봉 등의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답다.특히 용암골이라고 불리는송계천 골짜기 동쪽 능선에 얹혀 있는 월대에서의 달맞이는 장관이다. 손수운전자는 충남 서산군 천수만 방조제로 나가면 서해 낙조를 즐길수 있다.간월암,부남호 등의 명소는 물론 인근에 아산,온양,덕산,도고온천 등 이름난 온천이 있어 귀로에 몸을 풀수도 있다. 경포대는 예로부터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경포대에서만 볼수 있는 해돋이와 낙조,달맞이,고기잡이 배의 야경,초당마을에서 피어 올리는 저녁연기 등은 경포팔경이라 하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칭송대상이 돼왔다.하늘과 바다,호수,술잔,그리고 마주앉은 님의 눈동자에 똑같은 달이 다섯개나 뜬다는 경포호는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든 선경에 몰입하게 한다.추석은 물론 평소에도 달맞이 인파로 붐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는 명절 또는 연말,연초가 되면 실향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멀리 금강산을 바라볼수 있는 것은 물론 푸른 바다에 이어진 낙타봉과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전망대에 오르면 북녘땅에 해가 떠 오르는 것을 볼수도 있다. ○한복아가씨 선발대회 ▷영남권◁ 대구 우방타워랜드는 16일에는 영타운무대에서 트로트 가수왕 선발대회를 개최하며 16∼17일 이틀동안 국악과 재즈의 만남 행사를 연다.이 행사에는 대금,사물놀이와 색소폰,전자바이올린,재즈 싱어 등이 한데 어울린다.또 17일에는 한복 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려 입상자에게는 상금 1백만원을 비롯 해외여행권 등 푸짐한 시상품이 주어진다. 경주는 발닿는 어느 곳이나 신라의 맥박이 느껴지는 역사의 고장이다.경주의 동쪽 끝을 감싸고 있는 토함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해내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푸른 바다가 하늘과 맞닿고 서쪽으론 하늘을 찌를듯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맑은날 토함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한마디로 장관이다.그 유명한 동해 해맞이는 대기에 습기가 적은 가을철에 제대로 볼수 있느니 만큼 추석 연휴기간동안 한번 부지런을 떨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한가위 달맞이도 이에 못지 않다.동해바다로 쏟아지는 달빛에 흠뻑 젖어볼수 있기 때문이다. 망양정,월송정,불영사,백암온천 등이 이어지는 울진 인근의 동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보는 것도 괜찮다. 부산 해운대는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누구나 손쉽게 접근할수 있어 한가위 때마다 달맞이 구경꾼들로 붐빈다. 부산 인근의 통도 환타지아는 16∼17일 이틀동안 한가위 큰 잔치를 벌인다.전통 놀이패의 민속공연이 하루 세차례 펼쳐지며 하오 7시30분에는 입장객들을 대상으로 트롯 가요제,트롯 청백전,트롯 따라하기,한가위 한복콘테스트 등 다양한 게임식 행사를 갖는다.입상자에게는 연간회원권,캐릭터 상품 등이 제공된다. ○광주비엔날레도 계속 ▷호남권◁ 승주 낙안마을은 조선시대 민가를 보존한 민속촌으로 전통적인 한가위 분위기에 젖어볼수 있다. 호남 5대 명산중 하나인 영암 월출산은 이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달맞이 명소.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기묘하고 빼어난 산세가 절경을 이룬다. 암봉 사이로 두둥실 떠가는 달의 모습은 기암괴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춘향의 도시 남원과 내장산,덕유산,덕유산,무주 구천동 등이 모두 2∼3시간 거리에 있어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번 둘러봄직 하다. 광주 중외공원 일대에서 개최되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는 추석 연휴에도 계속 이어진다. 광주 인근에는 전통정원이 널려 있어 정원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수 있다.담양군 남면 일대에는 자연의 운치가 그대로 살아있는 소쇄원,송강 정철의 풍류를 느낄수 있는 식영정,배롱나무로 둘러선 자연속의 휴식처 명옥헌 등의 명소가 있다.담양호를 끼고 도는 드라이브코스도 환상적이며 굽이굽이 산자락에서 호수를 보고 달리는 맛도 뛰어나다. 동계 무주유니버시아드 대회이후 전주∼진안간 국도는 호남의 새로운 관광벨트로 부상되고 있다.전주와 무주가 시원스럽게 이어진데다 주변에 관광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 신포서 만난 북한사람들(경수로 착공 방북 취재기:하)

    ◎“선생님 고맙습네다” 순박한 인상/양화부두 종사자 구리빛 얼굴에 고달픈 표정 “김정일 비서동지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이는 김비서동지의 소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아직도 김일성 주석의 배지를 달고 있으며 김정일이 언제쯤 주석자리에 취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양화항 출입국검사소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렇게 답했다. 다른 주민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으나 답은 비슷했다.“인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추대행사를 갖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자신(김정일)께서 허용을 안하신다”며 김비서가 겸손해서 승계를 미루고 있는 것 같다는 ‘인민들의 현실 인식’을 강하게 내비쳤다. 지난 19일 아침 7시45분쯤.보슬비가 내려 물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양화항에서 8㎞가량 떨어진 해상 파일롯스테이션(도선안내지점)에서 입국서류절차와 검역을 위해 KEDO대표단이 타고 있던 한나라호에 승선,우리와 첫 대면한 9명의 출입국 검사원들도 대표단이나 내외신 기자들 모두에게 순박한 첫인상을 남겼다.누구에게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협조를 요청할때마다 ‘고맙습네다’‘부탁합네다’ 등 깍듯한 인사를 했다.그들의 얼굴에는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땅인 양화부두에 새로 만들었다는 ‘양화항 세관검사소’.이 건물에는 맥주와 평양소주 등 주류와 음료수를 파는 ‘양화카운터’가 있다.여기에는 북한의 전형적인 계란형 미인인 2명의 아가씨가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네다”며 손님을 맞고 있었다. 장선섭 경수로기획단장이 다가가 “뭐라고 불러야 되느냐”고 묻자 “필요한데로 불러주십시요”라며 오히려 남쪽대표들이 당황할 정도로 격의없는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남쪽대표들의 요청에도 주저함이 없이 응해 주었다. 함남 최대의 어항이라는 소문에 걸맞게 넓은 면적의 부두와 수산물판매소 등 관련건물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제복을 입은 세관원,경수로대상 사업국 직원들을 제외하고 일반주민들은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그들은 양화카운터의 아가씨들과 달리 미소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이들은 한결같이 시커먼 구리빛 얼굴색을 띠고 있었고 지쳐보이는 표정이 역력했다.이처럼 공동취재단이 현지에서 만난 다양한 북한사람들은 직업과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다만 공통된 느낌은 이들의 관심이 ‘명분’보다는 ‘실리’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 연극 연출 정진수(이세기의 인물탐구:142)

    ◎탁월한 기획·연출 ‘흥행의 마술사’/“현대인의 삶에 정답은 없다” 작품은 관객판단에/‘아가씨와 건달들’ ‘티타임의 정사’ 등 70여편 연출 그의 외모는 예술하는 사람만의 낭만이나 퇴폐적인 멋은 찾아볼수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세련되어 외교관이나 앵커맨타입이다. 옳은 말을 잘하고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여 원칙에 어긋난 일은 ‘그것이 왜 어떻게 잘못되었으며 어떻게 시정돼야 하나’를 논리정연하게 집고 넘어간다. 천재적인 기획력과 연출력으로 ‘관객이 들지않는 연극’은 만들지 않고 남들이 불황을 겪는속에서도 연속 황금알을 탄생시키는 ‘흥행을 만드는 교수연출가’로 유명하다. ○외무는 외교관·앵커맨 타입 순발력을 발휘하여 가장 빠르게 해외문제작·화제작들을 끌어들였고 연극에서의 낭송조의 대사, 무용적 움직임, 희랍극의 코러스적인 요소와 ‘자유롭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방식’등을 여러 무대에서 차용한 바 있다. 89년에는 국내연극사상 최초로 소련작가 블라디미르 구바리예프의 작품 ‘아 체르노빌’을 공연, 이 작품은공연윤리위 대본심의에서 ‘부적격’판정을 받자 한국연극협화 등과 협력하여 문공부에 상연허가를 요청하는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4차례 이상이나 공연일정을 변경한 끝에 1년여만에 동숭아트홀개관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그의 연출의 특징은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기 보다 관객의 이성적 판단에 맡기는 식이다. ‘현대인의 삶에서 정답이란 있을수 없으며 관객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서로가 다르게 판단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그의 연출포인트다. ‘관객이 없다면 무대가 무슨 소용인가’ ‘무대라는 약속이 전제된 이상 거창한 구호나 무거운 주제의식을 아무리 내세워도 공허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금까지 70여편의 연극을 연출했고 83년, 문예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 에이브 비리우스작 ‘아가씨와 건달들’은 지금까지도 해마다 장기공연되는 인기 레퍼토리의 하나다.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선인장 꽃’‘꿀맛’‘신데렐라’도 관객이 확보된 민중극단의 고정레파토리다. 극단수입은 단원들과 공평히 나누고 끊임없이신인을 발굴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 나간다. 그가 연극을 시작한것은 서강대재학중 서강연극회에서 레디 그레고리의 ‘헛소문’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이후 ‘은하수를 아시나요?’‘용감한 사형수’의 주역을 맡았으나 그때마다 연출자와 작품해석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자 차라리 ‘내가 연출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뒤늦게 연극과가 있는 중앙대대학원 연극과에 가는가하면 70년부터 2년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 유학, 극단 실험극장 연구생을 거쳐 자신이 연출한 ‘스니키치의 부활’을 만들었고 부친이 남겨준 자투리땅을 팔아 연극으로 몽땅 날린 일도 있다. 연극과 관련해서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이어진다. 지난 74년에는 한 원로연극인이 3개의 희곡을 동시에 발표하는 것을 보고 ‘브로드웨이에서도 한작가의 작품이 1년에 3편이나 무대에 올려진것은 닐 사이먼이 유일하다’고 전제하고 ‘관객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권위의식으로 밀어부치는 식은 우리 문화예술의 발전이 늦어지는 원인일수도 있다’고 꼬집어 연극계를 놀라게 했다. 이 사건직후 이 원로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명동예술극장 대관신청에서 민중극단이 탈락했고 그는 심사위원이던 원로를 찾아가 ‘우리극단이 왜 떨어졌느냐’고 조목조목 따지기도 했다. 개인적인 감정때문이 아니라 연극계 발전을 위한 발언이 ‘어째서 사적으로 작용되느냐?’는 것이 그의 항의요지였다. ○미흡함 용서않는 완벽주의자 그는 이처럼 정의감과 책임감이 투철하고 만사에 절연하여 어떤 작은 일에도 미흡함을 남기지 않는다. 정연한 이론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연극과 연기력을 통박하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옳은 말을 하되 편벽이 없고 어설픈 지식의 과시는 하지 않는다. 그런 성격을 아는 연극계는 그가 주장하지 않은 일도 입바른 소리는 당연히 ‘정진수’로 단정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고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기도 했으나 그가 장본인이 아니라는 것이 결국 증명되어 지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선거때는 모두가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날카로운 투명성이 단점이기도 하지만 대인관계의 폭이 넓은 편이며 하루에도 서너개의 연극이 막을 올리는 동숭동에서 살다시피한다. 68년 결혼한 부인 이진희씨는 같은대학 후배로 서강대 캠퍼스커플 1호다. 자녀는 딸만 둘. 3년전에는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일생을 그린 영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출연하여 ‘매끄러운 영어구사력과 연기력’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외독자인 그는 어릴때부터 병약하고 수집음이 많은 편이었다. 수원 농림교출신이던 부친 정경모씨는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교육자였으나 6·25때 타계하고 어머니 손순덕씨(92)와 이웃에 살던 숙부 정준모씨가 그의 철저한 보호자였다. 그러나 보사부장관 출신에다 범양화학을 경영하던 숙부가 약대에 진학하기를 극구 권유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않아 그는 대입실패후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가꾼다는 생각에서 숙부곁을 떠났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취임후 공연질서확립을 위해 종로구청과 합의하여 대학로에 문화게시판을 증설한 것과 서울연극제를 세계연극페스티벌로 격상시켜 이번 9월1일부터 45일간 막올리는 97’세계연극제에는 25개국이 출품한 40여편의 연극외에 음악극 무용등 100여편을 펼치는 최대규모의 행사로 이는 그의 뚜렷한 공적으로 치부된다. 정진수는 한마디로 일꾼이다. 무슨 일을 맡겨도 100% 이상의 성과를 거둬올리는 초절의 발군이다. 지금도 협회일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에도 지난 1월 오스카 와일드의 ‘이상적 남편’을 번역·연출했고 6월에는 국립극장장막희곡 공모에 당선한 ‘무주별곡’을 무대에 올렸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출연 이제 내년부터는 협회 이사장직을 떠나 본래의 자리인 교수와 연출가로서의 역할에만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게 될것이다. 시들지 않는 정열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는 연극계의 기린아로 우뚝 서서 언제라도 관객을 외면하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누군가 ‘정진수가 없는 동숭동은 무의미하다’고 한 것처럼 낭만과 퇴폐적 여유는 배제되어 있으나 그는 그의 세대에서 가장 높이 가장 빠르게 날고있는 새로운 타입의 기수에틀림없다. □연보 ▲1944년 서울 출생 ▲1966년 서강대 영문과 졸업 ▲1967년 민중극단 입단, 뒤렌마트작 ‘노부인의 방문’ 첫연출· 출연 ▲1968년 중대 대학원 연극과 졸업 ▲1968­74년 실험극장 연구생 ▲1973년 ‘스니키치의 부활’ 연출 ▲1974년 민중극단 재창단 대표, ‘우리는 뉴헤이븐을 폭격했다’연출 ▲1981­현재 성균관대 교수 ▲1983년 민중극단창단 20주년기념 ‘아가씨와 건달들’연출 초연이래 해마다 앙코르공연 ▲1985년 ‘식민지에서온 아나키스트’연출, 한국연극연출대상 ▲1986년 민중소극장 개관 ▲1990년 ‘칠산리’연출로 한국연극 연출상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회 상임간사 ▲1992년 에이컴 설립 ▲1994년 영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출연 ▲1995­현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1997년 97’세계연극제 집행위원장 ▷연출작◁ ‘꿀맛’‘뜻대로 하세요’‘그해 치네치타의 여름’‘사자와의 경주’ ‘신데렐라’‘마피아’‘박람회 다음날’‘선인장꽃’귀족수업’‘올리버 트위스트’‘티타임의 정사’‘아메리카 들소’‘카바레’‘타이피스트’‘서푼짜리 오페라’‘M나비’‘누가 누구’ 등 70여편 연출
  • 성악가 박수길(이세기의 인물탐구:141)

    ◎미성과 볼륨 지닌 바리톤의 선도자/독특한 가창법엔 철학적 예술성 가미/오페라도 40여편 출연·연출한 재주꾼 위대한 인물중에서 피나는 노력없이 정상에 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또 노력하지 않은 천재가 일찍이 사회에 공헌한 일이란 드물다.바로 바리톤 박수길이 걸어온 역경의 뒤안길은 한낱 흘러간 추억일 수 없는 진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준다.어둡고 외롭고 험란한 가시밭길을 걸어왔으나 그의 얼굴은 햇살처럼 밝고 항상 즐거움에 넘쳐있다.극단적인 아픔을 이겨낸 노래 또한 증류수와도 같은 청정이 깃들어 그가 슬픈 노래를 부르면 심장이 울리고 기쁨에 찬 노래는 환희의 감동을 전달해준다. ○함흥서 출생 1·4후퇴때 월남 지난 68년 ‘사랑의 묘약’을 첫 오페라로 그는 ‘라보엠’의 마르첼로역만 6차례,‘아이다’ ‘리골렛토’ ‘라트라비아타’ 등 40여개의 오페라에서 주역과 조역을 해냈다.그중에서도 그의 노래의 백미는 슈베르트 가곡인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전곡연주를 들 수 있다.특히 지난날을 자전적으로 읊조리는 듯한 ‘겨울 나그네’의 ‘얼어붙은 눈물’은 마음속으로 쓰는 시와 마음속으로 흘러내리는 차가운 눈물을 느끼게 한다. 그는 오페라 가수로서 자신의 역할에 도취하여 역할의 성격들을 철저히 표현해 내는가 하면 피부에 스며드는 음악성을 엘레지아코(비가조)로 살리는데 혼신을 다한다.가곡을 부를때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풍부한 성량을 가지고 어떻게 소리를 내느냐에 치밀하게 접근한다.지금도 50대 중반의 예술가로서 사고의 여백과 서정적 시정을 담아 함축성있는 창법이 한층 내공화하는 시기다. 음악평론가 김형주는 ‘한국의 명연주가 집중연구’에서 “인간미 넘치는 표정뒤에는 음악에 대한 인내와 집념이 숨어있고 감미롭고 특이한 가창법과 유려한 가요성은 그만의 매력”이라고 평한다.더구나 그의 탁발한 창법은 오랜 연주생활 경험에서 얻어진 ‘철학적인 예술성’을 발휘하여 오성적인 인식이 고도화된 경지다.‘온화하고 차분한 학자적 풍모’가 있는가 하면 ‘옳다고 판단된 일은 끝까지 밀어부치는 고집과 행동력’ 또한 만만치가 않다. 박수길은 어쩌면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곤두박질치는 인생의 전환을 겪은 예라고 할 수 있다.그는 함남 함흥에서 신교육을 받은 박영록씨의 3남2녀중 장남.그러나 6·25의 와중에서 1·4후퇴때 외조모를 따라 먼저 피란을 내려온 것이 지금까지 이산가족으로 남게된 동기가 된다.어릴때는 부친이 아코디언을 켜는 가정환경에서 풍족하게 자라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전부터 노래에 뽑혀다니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외삼촌댁이 있는 전라도 이리에서 동산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중학교시절은 서울에 있는 백부댁에서 기식,친척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동성고를 졸업했으나 대학진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오히려 노래실력이 뛰어난 그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들이 음대진학을 권유해 주었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세대교수이던 황병덕씨를 소개받아 생전 처음으로 발성법이며 창법 호흡법을 배울수 있었다.그리고 60년,연세대 성악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그러나 등록금이 없어 한달만에 자퇴해 버렸고 그로부터는그의 인생의 길은 터널속처럼 멀고 암담하기만 했다.무엇에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실마리란 없어보였다.생계해결을 위해서 시계모형을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철판을 자르는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단지 그는 절망이나 포기대신 언젠가는 자신이 무엇인가가 되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해 가을,한양대가 설립되었고 당시 한양대 음대학장인 오현명씨와 총장인 김연준씨의 배려로 전학년 장학생으로 발탁되었다. ○한양대 음대 장학생 발탁 그는 오페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작품이 갖는 내용의 주제와 시가 갖는 운율을 남보다 전달하는 노력이 투철하다.이는 ‘인간에 대한 심오한 사랑이 내부에 도사려있기 때문’이며 ‘젊은 날의 방황과 고통이 음악적으로 양성됐기 때문’일 것이다.그의 음역은 베이스의 깊은 음색과 테너의 화려함을 동시에 지닌 테너 바리톤으로 인생의 쓸쓸함과 순수한 청춘의 아름다움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지난 61년 서울에 와서 독창회를 연 독일의 세계적인 바리톤 게르하르트 휘시의 연주를 보고나서부터다.당시 휘시는 60을 넘긴 나이였으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침이슬’처럼 불러주었고 그후 슈베르트 가곡을 부를때마다 그는 휘시의 음유적인 음악세계를 되살려 노래의 참맛과 멋에 빠져들수 있었다. 최근에는 오페라연출에도 손대어 ‘피가로의 결혼’과 지난해 ‘사랑의 묘약’을 연출했고 요즘은 국립오페라단의 하반기공연인 ‘섬진강 나루’를 지휘감독하면서 오페라단 운영,연출의 새로운 모색 등 오페라발전을 위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69년에 바이올린을 전공한 부인 김진희씨와의 사이에 남매. 그동안 그를 둘러싼 수많은 호평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음악평론가 이유선씨가 ‘독일 리트의 사전인 카를로 베르곤지의 미성과 볼륨을 가진 한국 바리톤의 일인자’로 지적해준 것과 78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때 뉴욕타임스가 ‘장래가 촉망되는 감명깊은 노래’로 평해준 것이 그의 음악생애에 커다란 힘이 되어 주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연출 그는 명실공히 한국 오페라와 가곡을 이끄는 리더의 입장에 서있다.이제 그가 할 일은 그가 두고온 고향산천과 그리운 부모,삶의 축적을 희로애락으로 담아 늙어서도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눈물의 가곡을 전생애적으로 노래부르는 ‘진실한 예술의 혼’으로 존재하고 싶은 것이다. □연보 △1941년 함남 함흥 출생 △1964년 한양대 음대 졸업 △1968년부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순교자’출연 △1972년 국립극장 독창회 △1978년 뉴욕 매네스 음대 졸업,뉴욕데뷔 독창회(카네기 리사이틀홀) △1978∼84년 성심여대 음대 부교수 △1979년 귀국독창회(국립극장) △1982년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전곡 우리말번역연주,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첫연출 △1984∼현재 한양대 음대 교수 △1987년 슈베르트와 슈만가곡의 밤(호암아트홀) △1989년 국립합창단 ‘독일진혼곡’ 협연(나영수 지휘) △1995∼현재 국립오페라 단장 △1997년 9회 독창회(국립극장) ▷오페라 출연◁ ‘아이다’‘리골렛토’‘파리앗치’‘일트로바토레’‘세빌리아의 이발사’‘오델로’‘호프만의 뱃노래’‘마담 버터플라이’‘춘향전’‘파우스트’‘탄호이저’‘논개’‘카르멘’‘원효’‘결혼’‘돈파스칼로’‘원술랑’‘돈카를로’‘돈조반니’‘심청’‘무당’ 등 40여편,현재 한양대 교수·국립오페라단 단장·예울음악무대 대표,‘섬진강 나루’제작 예술감독(8월19일부터 국립극장)
  • EMI클래식스,CD2장 출시/‘전설의 테너’엔리코 카루소등 망라

    ◎20세기 대표하는 성악가 80인의 목소리 지난 한세기를 대표할만한 80인의 위대한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은 음반이 나왔다. 올해 창립 1백돌을 맞은 EMI클래식스가 지휘자편에 이어 성악 가편으로 내놓은 두장의 앨범 ‘전설의 목소리’와 ‘마법의 목소리’가 그것으로 지난 1백년을 빛낸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부른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등을 각기 두 장의 CD로 제작했다. ‘전설의 목소리’는 이미 작고한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성악의 역사책’.1902년 녹음한 전설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너무도 유명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중 ‘의상을 입어라’를 필두로 스페인의 전설적 소프라노 엠마 칼베,19세기 비르투오조 성악가의 표본으로 불린 나폴리의 테너 페르난도 디 루치아,호주출신의 명 소프라노 넬리 멜바,벨칸토 아리아의 명테너 베냐미노 질리등 약 60년간 녹음된 불멸의 명성악가 40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마법의 목소리’는 현재 무대에서 활동중이거나 은퇴했지만 생존해 있는 성악가 40명의 노래 40곡을 담은 CD.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1951년 런던에서 녹음한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중 ‘초조’를 시작으로 오페라·가곡·종교음악 등 전분야에서 불세출의 명성을 쌓은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감미롭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청순가련형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96년 녹음한 신예 소프라노 루스 앤 스웬슨에 이르는,거장부터 신예까지 40명의 목소리를 망라했다.80명의 역사적 성악가의 노래를 한자리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1세기전 명가수에서 신예에 이르는 다양한 성악가들의 예술세계를 비교해볼수 있는 것이 큰 장점.
  • 다른 나라에 태어나고들 싶다는데…(박갑천 칼럼)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되돌이켜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할리우드의 명배우 글렌 포드도 그런 경험을 했다.그는 최면이 풀린 다음 자신의 녹음테이프를 듣고 도리머리 흔든다.『이럴 수가….이건 내 신앙에 어긋나는 현상인데』 1978년의 어느날 그는 처음으로 최면을 받는다.그의 전생은 찰리 빌이라는 콜로라도평원 카우보이.찰리 굿나이트라는 목장주아래서 들무새하다가 총맞아 죽는다.캘리포니아대학 조사반이 나가 알아본 결과 그 두사람은 실재했었다.두번째 최면.그는 스코틀랜드 엘긴에 사는 찰스 스튜어트로 말괄량이 아가씨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교사였다.본디 피아노를 칠줄 모르는 그였으나 최면상태에서는 멋지게 쳤다.찰스 스튜어트의 묘를 찾아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놀랍군.이건 분명 내가 묻혔던 곳이야』 이런 유형의 얘기는 동서양 가릴 것없이 숱하다.또 이같은 윤회는 사람과 짐승사이를 왔다갔다 하기도.「천예록」에 적혀있는바 서울 동쪽 수구문안 무인 아들의 경우도 그런 사례이다.그 무인이 어느날 수구문으로 들어오는 구렁이를 때려죽인다.그 뒤에 그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어려서부터 제아비를 빗떠보며 아드등거리기까지.하루는 아이가 제아비를 죽이려다 들켜 아비한테 되죽었는데 구렁이였다.무인은 문을 열어 내몰면서 이른다.『이젠 네가 가고싶은 좋은 곳으로 가거라』 이건 미물한테 한 말이지만 이승의 삶이 유별나게 불행한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그런 뜻으로 빌어준다.『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라』고.이럴때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생­차생­내생을 믿는 마음으로 된다.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신라 문무왕이 동해의 용이 되겠다면서 눈을 감고 송강정철이 먼저간 동갑내 이율곡을 제사하는 글에서 『기린이나 봉황이 되어 만가지 복을 몰아다 주라』고 기원하는 것도 그런데 바탕한다고 하겠다. 사람의 생각이 이러하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가 좋은가』하는 설문조사도 나올수 있다.한 생명보험회사도 그래서 얼마전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걸 물어본다.그랬더니 미국(29%)·프랑스(16.3%)·영국(6.9%)·일본(3.9%)… 등 외국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대답이 64.9%에 이르렀다 한다. 역시 잘사는 나라를 생각하고들 있다.나라현실 보면서 소들해져서이겠지.하지만 뭔가 허전해진다.〈칼럼니스트〉
  • 이승희 돌풍(외언내언)

    참으로 맹랑한 아가씨다.일방적으로 비하하기도,그렇다고 장하다고 칭찬하기도 그런 조그만 몸매의 재미 한국인 누드모델 이승희.세계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그가 일시 귀국,국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젊은층의 적잖은 인기를 모으는 것은 뛰어난 몸매와 미모 때문만은 아니다.몇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무엇보다 그는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가상공간)를 통해 탄생한 첫 세계적 누드모델로 꼽힌다. 국내에 이승희가 본격 소개된 것은 지난해 가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자매지 「란제리」커버모델로 등장,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은 직후다.그러나 한 두해 전 이승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70여장 누드사진으로 이미 미국은 물론 국내 젊은 인터넷 동호인들에게도 화제의 인물이 돼 있었다.인터넷의 위력을 실감케하는 대목이다. 이승희의 입지전적 삶도 국내에서 인기를 모으는 한 요인이다.부모의 이혼때문에 미국으로 이민간 8세 꼬마가 오하이오 주립대 의대의 장학생이 됐다.어느날 163㎝ 키의 이 조그만한국인 여학생이 누드모델로 변신,자기보다 20㎝씩은 더 큰 미국인 모델들과 경쟁하여 톱모델로 떠올랐다.가상하기 조차 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100여개 홈페이지와 팬들을 자랑하는 이 「인터넷의 누드여왕」을 다만 대견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민족간 문화와 윤리관 차이다.누드모델과 외설적 포르노 배우와는 분명 구분되지만 그 경계가 분명치 않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국내에선 금년초 인터넷에 실린 그의 누드사진을 PC통신에 옮겨 실었던 한 회사원이 음화등 반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일이 있었다.성과 여성을 상품화하는 측면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찮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성충동을 겨냥한 저질 비디오가 널리 유통되고 있고 국경없는 인터넷에는 누드가 아니라 완전 성희를 담은 수백의 성인용 홈페이지가 청소년들의 컴퓨터를 노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많은 논란만큼이나 이승희는 이미 상업적으로는 성공한듯 하다.차제에 외설의 한계,명백히 위험스런 미디어의 가정 침투문제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겠다.
  • 디디에·박대박/코미디 영화로 세상사 짜증 “훌훌”

    ◎박대박­법조가족 부자의 가족사랑과 충돌/디디에­몸은 성인남자… 행동은 개와 똑같아 짜증나는 세상살이,웃을 일 없는 사회 분위기속에 모처럼 웃음을 한껏 터뜨릴만한 코미디 2편이 나란히 극장가에 오른다.26일 개봉하는 한국영화 「박 대 박」과 5월3일 선보이는 프랑스작품 「디디에」가 그것. 법조계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박 대 박」은 코미디의 소재를 넓혔다는 점에서 제작 초부터 주목받은 작품.게다가 부자관계를 축으로 끈끈한 가족사랑을 내세운 것도 관심을 모았다. 홀아버지 아래서 자란 박수석(이정재 분)은 무슨 계략을 써서라도 이혼소송에서 꼭 이기는 신세대 변호사.그는 인간미 넘치고 고지식한 아버지 박기풍 판사(주현)와는 사사건건 부딪치고,애인인 김미정검사(이혜영)에게는 늘 구박만 받는다.박수석이 얼떨결에 살인사건의 국선변호인을 맡는 바람에 세 사람은 판사·검사·변호사로 한 법정에서 만나는데…. 술집아가씨를 놓고 부자가 다투는 장면을 비롯 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최근 쏟아져 나온 국내 코미디영화들이 대부분 상스러운 말이나 행동,무리한 상황설정으로 억지웃음을 끌어내는데 견주면 이 영화는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럽다.서울대 법대 출신인 신인 양영철감독이 그려내는 법정 주변 풍속도도 볼거리. 「디디에」는 기발한 발상과 그에 따른 예측불허의 사건전개가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프랑스 코미디라면 왠지 어려운 듯하고 우리 정서에도 안맞다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이 작품의 유머감각은 편안하게 마음에 젖어든다. 개가 어느날 사람으로 변해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을 그렸지만 그동안 자주 써먹은 「몸 바뀌기」 소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곧 몸은 성인남자이되 본성은 여전히 개 그대로라는 틀이다.따라서 지나가는 여자의 엉덩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든지,자리에 앉기 전에 꼭 한두차례 그 주위를 빙빙 돈다든지 모든 행동을 개와 똑같이 하는 모습이 웃음을 끌어낸다. 각본·감독에 주연을 도맡은 알랭 샤베의 연기가 완벽하달 만하다.개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볼수 있을듯.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