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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1964년‘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그러나 이후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아울러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황금가지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 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가요계가 트로트 붐으로 급선회했고 아울러 한국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로 꼽히던 지구레코드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일곱명의 ‘38 따라지’들이 고물을 주워 모아가며 부산에서 설립한 미도파레코드사는 9·28수복 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 임정수·김능억 공동사장으로 운영되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듬해인 65년 1월부로 결별, 각각 독립한다. “두 공동사장이 분가할 때 그동안 미도파 라벨로 출시된 음원들도 똑같이 분배했지요. 그런데 정작 분가의 불씨를 제공한 선택 1호 ‘동백아가씨’ 만큼은 임정수 사장의 ‘지구’ 몫이었습니다. 미도파 전속 후 별다른 히트곡이 없던 작곡가 백영호씨의 그동안 밀린 월급을 임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구’는 출발부터 돈방석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도파레코드사에 근무하던 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68) 이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임 사장은 지구를, 김 사장은 그랜드를 각각 설립, 결별한 이후에도 미도파 당시에 출시한 동백아가씨 판매수익 지분을 놓고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구의 출발과 함께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키 위해 자청,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이미자씨는 백영호 곡인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여로’,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취입으로 그녀의 목은 늘 잠겨 있었다. 따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어 ‘녹음이 곧 연습’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성대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한 연구기관이 그녀의 성대를 사들였다는 소문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물론 낭설이었지만 이미자씨 역시 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그리고 ‘촌스러움’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이미자씨 노래는 89년 10월,30주년 기념공연을 기해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오른다.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와 관객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결사반대에 부딪혔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격이 낮다’는 노골적인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정작 시작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가닥 한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sachilo@empal.com)
  • 분수에서 한밤중의 정사

    분수에서 한밤중의 정사

    映畵街이얘기저얘기-金洙容(김수용)감독 우리들은 항상 선의의 피해자이다. 작품 하나를 놓고 두 감독을 저울질하는 제작자나, 배역 하나에 두 배우가 걸려들어 본의아닌 경합을 하게 되고 끝내는「라이벌」의식이 노골화 되어 동료사이의 정을 끊어놓는다. 빼앗긴 쪽은 빼앗은 자를 저주하지만 체면상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상황은 쉽게 역전이 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여자주연을 선정할 때 우선 세아가씨의 이름이 후보자로 동시에 대두되며 그들의 이름은 南貞妊(남정임) 文姬(문희) 尹靜姬(윤정희)양이다. 도매금으로 물망에 올랐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는 두사람은 항상 의미없는 피해자가 된다. 이것은 쏟아지는 작품에 비해서 숫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 하기만한 「톱·스타」들의 유명세이며 한국영화계의 피할 수없는 악순환이기도 하다. 항상 여주인공 선정에서 톱스타 文姬·尹靜姬경합 「엘리자베드·테일러」와 「소피아·로렌」정도의 개성 차이가 있다면 몰라도 文姬와 尹靜姬 두 여우를 놓고 볼때 그들 사이엔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선의로 해석하면 두 사람의 연기의 폭이 넓고 유사형이란 뜻이 되겠지만 이것은 배우로서는 결코 장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배우의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강렬한 개성이라고 대답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리 잘 생기고 예뻐도 그 용모에 개성이 깃들지 않았으면 배우의 자격은 없다. 결코 미남이라고 말할 수없는「장·폴·베르몽드」나 「스티브·매퀸」의 줏가가 높은 것도 개성 제일주의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연희의 장편 『石女』를 「스크린」에 옮기게 되었을 때 그 주인공으로 두 아가씨가 예외 없이 물망에 오르게되었고 文姬양으로 낙착될 때까지 제작자와 감독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이러한 뒷 이야기를 듣고도 못들은 체 하며 「카메라」앞에서 태연히 연기를 해야하는 장본인의 마음도 약간은 괴롭겠지만 배역의 경합이 심하면 심할수록 열연의 도는 뜨겁게 마련이다. 사랑의 환상적인 의식도 영화에선 실제로 찍어야 그날밤 J공원 분수를 밤새도록 내뿜게 하고 그 솟구치는 물줄기 속에서 정사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다. 쉴새없이 폭발하는 수압(水壓)과 열띤 사랑의 유희….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러한 영상세계에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차라 서슴지 않고「카메라」를 그 곳에 세우게 된 것이다. 성격차이와 정신적인 학대속에서도 가정이란 굴레를 오히려 자신의 오만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책으로 삼고 있는「인텔리」가정주부 文姬의 밀회장소…사나이 申星一은 긴 침묵을 깔고 뜨거운 눈빛으로 여인을 뇌쇄시키려 든다. 여인은 견디기 힘든 시선을 피해 분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나이의 뜨거운 애무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의 눈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말이나 글로는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있지만 은막의 언어란 좀체로 간단하지가 못하다. 분수속에서 애무하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가 실지로 물속에 몸을 잠그고 그 숱한 물줄기를 다 맞아야 한다. 이런때 文姬양 만큼 고분 고분하게 감독의 말을 들어주는 여우도 흔치 않다. 『옷을 어떻게 할까?』 『또 불려 가게요』 요즈음 음란물 단속의 여파는 확실히 우리들의 작업장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나는 남녀 배우들 앞에 옷을 하나도 벗지않고 정사「신」을 연기할 수있도록 미리 연구한 도표를 내놓았다. 여배우의「클로즈·업」된 얼굴 둘과 남배우의 大寫(대사)된 손두「커트」, 그리고 남녀의 전신 한 장면으로 구분된 그림을 연결하는 것이다. 침대위에서 옷을 입고 뒹굴었다면 보는 사람의 빈축을 사기 안성마춤이겠지만 야외 나무 그늘이나 풀밭이라면 그래도 용서받을 수가 잇을 것같다. 보는 사람에겐 시원하기만한 분수지만 그 힘센 물줄기를 통째로 맞아가며 애무하는 연기를 해낸다는 것은 분명히 커다란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게 된다.「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文姬는 쉴새없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申星一의 뜨거운 호흡에 말려드는 동작은 계속되었고 감독이「카메라」를 멈출 때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참고삼아 여기 그 장면 하나 하나를 설명해 보자. 먼저「카메라」를 뒤로한 男과 女는 서로 얽혀 쓰러진다. 두번째는 남자의「클로즈·업」 된 손을 따르는「카메라」. 그 손이 여인의 허리에서 옷속으로 등을 향해 뻗어가고 다시 서서히 앞 가슴 쪽으로 옮겨진다. 세번째 그림은 여인의 충격적인 얼굴에서 특히 눈언저리를 크게 잡는다. 네번째는 다시 남자의 손. 이번 손은 목에서부터 서서히「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게 되고 그 손은 다시 배꼽아래로 뻗는다. 다섯번 째는 여인의 얼굴이 대사되고 특히 윤기있는 입언저리를 「클로즈·업」 한다. 이러한 장면들이 차례로 찍히는 동안 모름지기「섹스」나 음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카메라」에 포착된 곳만 움직임을 갖기 때문에 도무지 정사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촬영이 끝났을때 여배우의 양쪽 귀에선 물이 주르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 돼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밤중 물속에 잠겨 본의 아닌 뜨거운 정사를 연기하는 여배우의 얼굴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끝내 배역을 얻지 못한 또 한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톱·스타」들은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항상 경합속에서 살아야 하고 차가운「라이벌」 의 눈초리를 참아 넘길 수 있는 무딘 신경이 또한 필요한 것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8/24 제2권 34호 통권 제48호 ]
  • 미스·세기상사 김영란(金英蘭)양 - 5분 데이트(47)

    미스·세기상사 김영란(金英蘭)양 - 5분 데이트(47)

    바닷가에서 주워온 동글동글 예쁜 차돌 같은 인상이다. 직장과 사회생활의 때같은 것은 그 동그란 얼굴에 묻을 데가 없어서 못 묻었을 것 같다. 『벌써 6년이에요. 세기상사에 들어온게. 매표에 반년 있다가 바로 회장비서실로 올라 왔어요. 여자중에는 그래서 제가 고참이에요. 좀 과장을 하자면 회사 사정에는 「통(通)」이라고 할 수 있죠』 「미스」세기상사(世紀商事) 김영란(金英蘭)양이 생글 거리면서 하는 말이다. 상업하시는 김동현(金東顯(55)) 씨의 3남매중 맏이. 동구여상을 졸업한 44년생. 『취미는 노래하는 것 듣는 것』 말하는 음성조차도 노래처럼 즐겁고 「리드미컬」해서 던져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영화감상은 그 다음으로 英蘭양이 즐기는 취미. 『「닥터·지바고」를 네 번이나 봤어요. 그 주제음악은 한 소절도 빼지 않고 다 욀 수 있어요. 요즘 제가 반해 있는 음악은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테마송」예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늘 속으로 흥얼거립니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콧노래 같은 것은 부르는 경박한 아가씨는 아니란다. 머릿속의 소리없는 「허밍」이 결코 신중하고 정확한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일이 없으니까 안심하란다. 『비서실은 정확한 출퇴근 시간이 없거든요. 「데이트」같은 것 할래야 할 수가 없어요. 월급은 엄마에게 맡기고 영화구경값이나 옷사는 돈을 타서 서요. 집에서도 직장생활 6년생을 아직도 애기 취급이에요』 「만년소녀」라는 말이 실감나는 그 얼굴이 「애기」처럼 활짝 웃으면서 하는 불평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8/24 제2권 34호 통권 제48호 ]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4년만에 재기 혼혈가수 박일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4년만에 재기 혼혈가수 박일준

    떠남과 돌아옴이 무척 길었다. 그 간격에 켜켜이 쌓여진 고독과 시름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랬다. 살면서 늘 떠나야 했다. 반기는 사람보다 멀리하는 사람이 많았다. 행복보다 참아야 하는 눈물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길의 유일한 친구는 술이었다. 술과 같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이제 웃는다. 새로 시작한다. 얼굴엔 술픔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채워진다. 진정한 행복도 알았기에 사랑의 정열도 생긴다. 노래를 부른다. 경쾌하고 빠르다. 사랑과 진실을 그리워한다.‘누구는 소주먹고/누구는 양주먹고/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사랑과 진실은 실종된 지 너무 오래야/왜 왜 왜 왜 그럴까 말도 안돼’ 가수 박일준(52). 혼혈 고아 출신이다.1977년 ‘오 진아’로 데뷔해 ‘아가씨’ 등의 히트곡으로 많은 팬을 거느렸다.20대에겐 다소 낯설지만 지금의 30대 중반 이후에는 여전히 기억된다. 박씨는 91년 7집 앨범을 내고 팬들의 곁을 훌쩍 떠나버려 한동안 기억에서 멀어졌다. 이후 꼭 14년이 지났다. 최근 존재의 이유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제2의 가수 인생을 시작한 것. 신곡 이름은 앞서 언급된 ‘왜 왜 왜’이다. 앨범 발표 소식은 지난해 있었지만 아직 시중에 내놓지 않았다. 우선 ‘가수 박일준’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궁금해진다. 앞으로의 음악활동과 대중과 멀어졌던 지난 세월이…. 또 혼혈로서 겪었던 많은 사연들,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에서 박씨를 만났다. ●신곡 ‘왜왜왜´ 양극화된 세상 풍자 먼저 신곡 얘기부터 나왔다.“노랫말처럼 양극화된 세상을 풍자하면서 빈부차이와 못 사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친한 후배 형제가 작사(성주)·작곡(성현)을 하면서 권유한 것이 신곡 발표를 앞당기게 됐다고 부연한다. 이어 “원래 저는 쉽게 따라부를 수 없는 ‘팝쪽’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세월이 오래 가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곡을 불러보자고 했어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방송국에 찾아갔더니 알아주는 PD들이 없어 애를 먹었다.“중고신인이세요?”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할 수 없이 지방공연부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박씨 자신이 직접 홍보물을 제작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재기’를 알리는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다. 이같은 외로운 노력끝에 차츰 반응이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최근에는 ‘가요무대’와 ‘가요큰잔치’ 등 전국 공중파 방송에도 얼굴을 내밀어 팬들과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들어 각종 가요차트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아내와 같이 이번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위에서 ‘박일준이 다시 왔구나’ 하는 얘기를 들으니 행복해요. 모든 것이 고맙죠.” 그동안 노래와 멀어진 이유에 대해 “가수는 후속타가 없으면 서서히 잊혀져가지요.”라고 대답한다. 박씨는 81년부터 3년간 MBC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인 ‘폭소대작전’에 출연했다. 코미디언 배일집씨가 운영하는 햄버거집 종업원 역을 맡았다.4일 연습하고 하루 녹화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또 영화 ‘상한 갈대’ 등에 출연하다 보니 자연히 노래와 멀어졌다. 아차 싶어 신곡을 내려고 했으나 아무 곡이나 낼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공백이 생겼다. ●간경변으로 쓰러져 “살 확률 50%” 진단받기도 때마침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혼혈인으로서 사업을 이끌어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자연히 술만 퍼 마셨다.4년전 어느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간경변으로 식도정맥이 파열됐던 것. 병원에서 살아날 확률이 50%라는 얘기를 들었다. 식구들이 막 울자 “그러면 나보고 죽으라는 얘기냐.”고 하면서 밝게, 또 밝게 마음을 먹었다. 몇달간 입원끝에 다행히 호전돼 퇴원할 수 있었다. 이때 가수의 길을 다시 걷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박씨는 “열다섯때부터 술을 마셨어요.”라고 고백한다. 혼혈이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늘 혼자 있게 만들어 술에 의지했다. 이렇게 말못할 스트레스를 혼자 떠안고 30년 넘게 술을 마시다 보니 죽음 직전까지 갔던 것. “다시 살아났기에 식구나 모든 사람들이 고맙게 여겨지더군요. 가수로서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다짐했지요. 용서하는 마음도 아울러 생겨났습니다. 조금 전 인터뷰하러 오는 도중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어요. 가해자가 젊은 친구였는데 화를 내지 않고 대신 ‘일진이 안 좋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타일렀지요.” 부인과도 새로 연애하는 기분이 든단다. 남편이 잘나가던 과거에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수준으로 생각했으나 신곡을 준비하면서 같이 발품팔고 고생을 하다 보니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 태어났다며 웃는다. ●代이어 놀림받던 아들 9년간 미국에 보내 박씨는 아들과 딸, 자식 둘을 두었다. 아들이 미국에 가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얼마전 9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정말 보내고 싶지 않았거든요.”라고 한맺힌 듯 말꼬리를 흐린다. 잠시 먼 곳을 응시하더니 “제 아들도 파키스탄이나 인도인, 동남아쪽 사람처럼 생겨 초등학교때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박씨 자신도 어렸을 적부터 혼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지낸 터에 아들한테도 똑같이 벌어지자 더는 참지 못했다. 결국 미국 뉴저지에 사는 지인에게 부탁, 아들을 그곳에 등 떠밀듯 떠나보냈다. 세월이 지나 아들이 커서 현지 대학에 진학하자 “얘야, 이젠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귀국시켰다. 아들은 목사가 되려고 현재 모 신학대 4학년에 재학중이다. “곁에 두어야 할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장애인이 따로 없어요. 혼혈이라는 편견으로 멀쩡한 사람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갑니다. 정말이지 우리 대(代)에서 모든 것이 끝나야 합니다.” 박씨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54년에 태어났다. 미군이 돌아가면서 아버지도 미국으로 건너갔고 박씨는 세살 때 친어머니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 어렸을 때부터 얼굴이 검어 ‘연탄’으로, 머리가 곱슬이어서 ‘라면’이란 별명으로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이후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양부모는 박씨가 가수로 성공을 거둘 무렵인 70년대 후반 세상을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박씨는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혼혈이란 이유로 거절당한다. 예비 장모가 워낙 완강하게 반대했다. 고민끝에 ‘임신작전’을 썼다. 하지만 예비 장모는 “그래도 안 된다. 애를 떼라.”며 성화가 대단했다. 할 수 없이 예비신부가 산부인과 병원에 갔으나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그냥 돌아오는 바람에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처음 낳은 자식이 아들. 장모는 손자를 무척 사랑했다. 미국에 갈 때에도 직접 따라가 온갖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박씨 역시 25년동안 장모(지난해 작고)를 친어머니처럼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 박씨 자신의 팔자에 모두 다섯 부모를 둔 셈이다. “워드가 한국에 왔을 때 워드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봤어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모습이었어요. 저의 친어머니도 아마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워드로 인해 혼혈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냄비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식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트남의 혼혈아 위한 사업 하고파 혼혈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슬픔인 6·25전쟁이 있었기에 생겨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남들과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죄를 지은 것처럼 차별과 편견의 굴레속에서 살아야 하느냐고.“내 것은 소중하고 남의 것은 장난을 쳐도 되는 건가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박씨는 혼혈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을 제시한다. 부모와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쟤 하고 놀지 마라. 시커멓게 된다.’가 아니라 ‘쟤 하고 놀면 영어도 배우고 재미있거든’하고 유도해주면 된다는 것. 이어 “농촌 총각들이 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합니까. 우리가 안 봐주기 때문이죠. 자연히 혼혈이 생겨납니다. 늘 내 생각만 하는 쪽으로 가면 안 돼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아닙니까.”라고 호소한다. 박씨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가수의 길만 걷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베트남의 혼혈아들을 위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한국으로 초청, 서로 부둥켜 안고 반쪽 모국인 한국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4년 서울 출생 ▲77년 ‘오 진아’로 가수 데뷔 ▲79년 ‘잘가요’ 발표 ▲80년 ‘아가씨’ 발표 ▲81년 ‘누나야’ 발표 ▲81∼83년 코미디프로 ‘폭소대작전’ 출연 ▲84년 영화 ‘상한 갈대’ 출연 ▲83년 ‘너는 지금 어디에’‘닻’ 등 발표 ▲91년 ‘가 가지마’‘사랑은 3.14’ 등 발표(7집 앨범) ▲2005년 9월 신곡 ‘왜왜왜’ 등 8집 앨범 제작 ▲06년 지방공연 및 방송활동 재개
  • [섬에서 온 봄편지] 청산도·여서도를 가다

    [섬에서 온 봄편지] 청산도·여서도를 가다

    ■ 완도에서 뱃길 45분…청산도를 가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야 너도 가자/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청산도나 여서도처럼 베일 속에 감춰진 섬들의 이름을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설렘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중독과도 같다.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짧은 일탈, 그리고 해방감. 청산여수(靑山麗水)란 뜻에서 이름붙여 졌다던가. 푸른 보리밭과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곳. 청산도와 여서도를 다녀왔다. 글 사진 완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뭍과 하늘, 그리고 바다 등이 온통 쪽빛으로 물든 것 같다고 해서 ‘청산(靑山)’이란 이름을 갖게 된 청산도.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이다. 문학작품 속에서나 접했던 그 섬에 가기 위해 완도항에서 청산페리호에 올랐다. 뱃길로 45분. 청산도에 대해 ‘예습’이라도 할 생각으로 운항실 문을 열어 항해사 이기정(56)씨를 찾았다.13년 동안 완도와 청산도를 오가며 뭍 사람과 섬 사람들을 실어나른 베테랑 항해사다.“ 청산도 처녀들이 시집갈 때꺼정 쌀을 서말(세말)을 못먹는당께요.”청산도는 농사지을 땅이 모자라 항상 쌀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세말만 먹으면 ‘부잣집 처녀’소리를 들었단다. 뭍에서 자란 처녀를 ‘청산도로 시집보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이런 얘기도 들려준다. 육지 처녀가 청산도로 시집을 갔다. 어느날 아침. 시어머니가 새색시에게 “오늘 안으로 12개의 밭을 매라.”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느 분의 영이라고 거역하랴. 하루종일 밭을 맨 새색시가 저녁무렵 허리를 펴고 세어보니 아무리 봐도 11개밖에 안 되더란다. 설움에 북받쳐 울던 새색시가 털고 일어서는 데, 바로 그곳이 12번째 밭이었더라는 얘기. 작디 작은 섬을 일구며 살아온 섬 사람들의 고단한 생활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일 게다. 풍요로운 때도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바다뿐인 천혜의 어장에서는 사시사철 고기가 끊이질 않았다. 주로 잡혔던 어종은 멸치와 고등어, 삼치 등. 특히 70년대초 청산도의 고등어 파시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했다. 청산도 입구 도청항에는 건착망(巾着網)이라는 그물로 무장한 수백척의 고등어잡이 배들이 몰려들었다. 건착망은 그물아래쪽에 죔줄을 대 두 척의 어선이 고등어떼를 포위하고 주머니모양으로 조여가며 잡는 방법. 청산도 뭍과 바다가 밤, 낮을 가리지 않고 흥청거렸던 건 당연지사였다.“아, 그때가 좋았지라. 뱃놈들 보고 뭍에서 건너온 술집 아가씨들이 200명도 넘었당께라.” 항해사 이씨의 말끝에 향수가 묻어나왔다.“도청항 주변으로 한집 건너 술집이 들어섰제.” 요즘엔 고등어가 잘 들지 않는다. 해수의 온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고등어의 먹이가 되는 멸치를 모두 잡아버렸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느덧 해거름에 도착한 청산도 도청항. 섬색시의 따스한 환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다소 휑한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도청항 주변을 일별한 다음, 서둘러 숙소에 짐을 풀고 밥집으로 향했다. 뭍에서 손님이 왔다고 마중을 나온 정성희(57) 청산면장과 함께 찾은 곳은 바다식당(061-552-1502).‘체도(본섬을 뜻하는 현지말)’ 내의 다른 식당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산 활어가 주종이다. 우럭과 광어를 다진 배추 위에 얹어 내오는데, 한 접시에 5만원을 받는다. 곰삭은 김장김치인 ‘묵은지’에 싸서 먹는 회맛이 일품. 무엇보다 특이한 음식은 ‘꾸죽(참소라)’구이다. 청산도와 소안도 등 일부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꾸죽을 참기름과 함께 볶은 것. 껍질에 불퉁스러운 뿔이 나 있는 것이 다른 소라들과는 영 딴판이다. 술이 한 순배 돌고나자, 정 면장이 청산도에 얽힌 옛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고등어가 파시를 이루던 60~70년대. 유난히 교육열이 높았던 청산도에는 부산이나 광주는 물론, 일본으로까지 유학가던 학생들이 많았다.‘청산도에 가서 글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 돈은 골목마다 지천으로 넘쳐났다.“그 시절엔 서울에만 명동이 있는 거이 아니고 청산에도 명동이 있었당께.” 요즘엔 다른 어촌들과 마찬가지로 청산도에도 젊은이들이 없다. 모두가 저마다의 ‘명동’을 찾아 도회지로 떠난 것.60세 이상이 주민의 절반을 넘고,40세가 넘은 택시운전기사가 이 섬의 ‘막내’급이다. 사람이 없다보니 “면장이 쓰레기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총총히 뜬 별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얼핏 눈에 띈 노래방만 해도 서너곳. 청산은 아직도 옛 영화를 잊지 못하는 듯하다. 이튿날 날이 밝기 무섭게 찾은 곳은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당리. 도청항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닿는 거리에 있다.1993년 청산도를 세상에 알렸던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다. 이웃마을에서 ‘소리’를 팔고 돌아오던 유봉(김명곤)과 의붓딸 송화(오정해), 그리고 의붓아들 동호(김규철)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돌담길이 바로 이곳. 현재 당리에 남아 있는 유일한 초가집도 이때 만들어졌다. 최근엔 ‘봄의 왈츠’라는 한 방송사의 주말연속극이 촬영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다시한번 ‘청산도 붐’이 불기를 기대하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 이 드라마를 위해 당리와 읍리 등의 민가지붕이 모두 새로 칠해져 넓은 ‘세트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드라마 촬영을 위해 돌담길 언덕 위에 세워진 ‘그림 같은 집’ 때문에 예전의 토속적인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당리는 청보리가 무릎언저리에 이를 만큼 자라고, 유채꽃이 노오란 꽃잎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지금부터가 가장 아름답다. 마치 시인 정지용의 ‘향수’를 연상케 한다. 당리에서 바닷가쪽 도락리 포구까지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읍리쪽에서는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소리가 들린다.“차마 꿈엔들 잊힐리” 없는 곳이다. 다음에 들른 곳은 부흥리의 구들장논.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해 산비탈에 논을 만든 것으로 계단식 논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윗논과 아랫논의 높이차이가 2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산자락을 깎아 돌을 평평하게 깐 다음 그 위에 흙을 얹은 모습에서 섬사람들의 억척스러움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왔다. 대부분을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박토의 천수답에 물을 대고 작대기 모를 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선비기질이 남달라 ‘똥지게를 지고도 한시(漢詩)를 읊조리는’ 이 섬의 남정네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청산도로 시집오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난 듯하다. 구장리에서 본 ‘초분’은 외지인에겐 다소 당혹스러운 장례풍습이었다. 망자를 돌 위에 얹고 짚으로 만든 이엉으로 지붕을 삼아 초가집처럼 만든 것. 이곳에서 2∼3년간 머물다 뭍으로 나간 후손이 돌아와 다른 곳에 이장하게 된다. 일종의 풍장(風葬)으로 청산도 등의 일부 섬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아직도 청산도 안에 3∼4기의 초분이 남아 있기도 하다. 청산도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또다른 명소가 ‘유두봉’. 여인네의 가슴언저리와 비슷하다 해서-반대편 화랑포쪽에서보면 상당히 설득력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 현지 남자들이 명명했다. 이곳에서 보는 주변모습 또한 절경이다. 가깝게는 거북바위와 저멀리 다도해 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5월쯤 전망대가 들어서면서 정식명칭도 생길 예정. 권덕리 주차장에서 도보로 15분정도 걸린다. 청산도 여행이 가장 즐거울 때가 바로 지금부터. 푸르른 보리가 섬을 수놓고, 바다에서는 삼치잡이가 한창일 때다. 이때부터 비로소 청산(靑山)이 훨훨 날갯짓을 한다. 가는길 완도항에서 청산페리호가 하루 4회(오전 8시,11시20분, 오후는 2시30분과 6시) 운항한다. 요금은 편도 5800원. 승용차를 실을 경우 편도 2만 3000원,1인은 무료. 여름 성수기에는 8∼10회로 증편된다. 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061)550-5421. 완도 여객터미널 (061)552-0116. 숙박업소 등대모텔(061-552-8558) 등 4∼5개의 깔끔한 숙박업소들이 도청항 주변에 몰려 있다. 현지교통 여객선 입출항 시간에 맞춰 청산운수(051-552-8546)소속 버스가 선착장에 나와 있다. 개인택시는(061-552-8747) 지프차로 모두 4대. ■ 청산도에서 25km…여서도의 봄 ‘그 곳에 가면 애 배 나온다.’는 섬 여서도. 청산도에서도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외딴섬이다. 배가 여서항 선착장에 닿자 서너명의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섬의 형상이 쥐와 같다 해서 고양이 모습을 한 거문도 사람과는 혼인을 하지 않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을만큼 순박한 섬사람 모습 그대로다. 청산도보다는 다소 차가운 날씨. 습도가 높아선지 말할 때마다 입가에 김이 서렸다.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섬답게 벌써 제비들이 하늘을 주름잡고 있었다. 청산도와 여서도 등의 해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제주도 출신이라는 것과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것. 채민자(60)씨도 돈을 벌기 위해 청산도를 찾았다가 섬마을 총각과 눈이 맞아 눌러 살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다. 고향은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 제주도에서 해녀생활을 하다 30여년 전 청산도에 돈과 해산물이 많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고향을 떠났다. 그때 나이 23세.‘물질’의 고단함이야 어디라고 다를까.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객지생활 끝에 ‘불과’ 4개월 만에 남편 정규만(61)씨의 포근한 품에 안겨버렸다. 지금껏 편안하게 대해준 남편을 의식해서였을까. 힘들었던 기억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점은 대화를 나눴던 다른 해녀들도 마찬가지. 그러나 자식들 얘기를 하면서는 목소리가 촉촉이 메었다. “고 어린 것들을 배에 두고 물 속에 들어갔다 오면 언 놈은 토해놓기도 하고, 또 언 놈은 기절이라도 한 듯 쓰러져 있기도 했지라.” 뭍의 친척집에 맡겨두고 나올 때도 있었다. 밤 9∼10시쯤 빈손으로 돌아와 저녁도 거른 채 쓰러져 자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는 것.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삼남매가 참 고맙단다. 맑은 날이면 청산도에서도 보이는 고향 제주도. 떠나온 후 지금까지 4∼5번밖에 찾아가 보지 못했다.“볼 때마다 반갑지라. 언니랑 동생, 그리고 친구들도 보고잡고….” 55가구 100여명이 주민의 전부인 섬. 이렇게 조용한 섬에 여자가 들어오면 애를 밴다는 난잡한 얘기가 나돌게 된 이유는 뭘까. 여서도는 예로부터 제주도의 해녀들이 많이 들락거릴만큼 완도보다는 오히려 제주도에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에 ‘물질’하러 온 제주 해녀들이 ‘청산도 모퉁이까지는 장담을 해도 여서도까지는 가봐야 안다.’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뱃길이 막혀 묶이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젊은 처녀가 한달이고 두달이고 갇혀 있다 보면 섬총각과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러구러 시간이 지나 앳된 처녀가 그 섬을 나올 때면 어느덧 애엄마가 되었다는 얘기다. 외진 곳에서 ‘물질’로 살아가는 섬아낙네들의 애환을 질펀한 해학으로 풀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세 말을 못먹는 곳’이 청산도라면, 여서도에는 ‘평생을 살아도 쌀 한 가마니를 못먹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만큼 먹을거리가 궁하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섬이란 뜻이다.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섬총각과 ‘애 밴’여인네들은 산모퉁이를 깎아내 논을 일구었다. 마치 계단처럼 산자락을 돌아나간다고 해서 ‘두렁논’이라 불렀다. 요즘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그나마 소의 방목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여서도는 아직까지도 때묻지 않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이다. 특히 30∼40m 깊이의 바닷속이 훤히 보일 만큼 맑은 물색이 자랑이다. 여서도로 시집가던 새색시의 앞섶이 풀어지며 옷고름이 바닷물에 빠져 황급히 들어보았더니 옥색으로 물들어 있더라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맑고 곱다. 이 맑은 바닷속 비경을 보기 위해 해마다 스킨 스쿠버 다이버들이 여서도를 찾아 오기도 한다. 미역, 다시마 등의 해산물과 함께 많이 나는 것이 문어. 마을 앞이 문어밭이어서 문어를 잡아 던지면 집안 빨랫줄에 바로 걸릴 정도란다. 구멍 등에 숨기를 좋아하는 문어의 특성을 이용한 ‘단지어업’도 성행하고 있다. 자그마한 단지모양을 한 플라스틱 통을 그물에 연결해 바닷물 속에 사나흘 넣어두면 통마다 문어들이 가득차 있다는 것. 여서도에는 학교가 한 곳, 청산초등학교 여서분교뿐이다. 학생은 김민욱(11), 은빈(8)남매와 정주훈(9)군 등 세 명. 반면에 선생님은 김금남(48) 분교장 등 두 명이다. 교육환경만큼은 무척 좋은 편(?)이다. 요즘 여서도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뭍에서 오는 낚시꾼들을 돌봐주는 것이다. 섬 주변에 고기들이 많아 사철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이들에게 밥도 지어주고 잠도 재워주는 것이 주업이 되었다. 며칠 조용하게 쉬다 오기에는 딱 좋은 섬이다. 청산도에서 휴가를 즐기다 1박정도는 이 섬에서 보내도 좋을 듯하다. 단, ‘애 배는 불상사’를 피하려면 사전에 기상정보를 꼼꼼히 살펴보고 가야 한다. 가는 길 완도항에서 섬사랑 3호가 매일 오후 2시30분에 출항한다. 소모도와 대모도, 장도 등을 들러가는 ‘완행’이다. 요금은 여서도까지 편도 8800원. 승용차를 싣고 가는 데는 편도 2만 8000원이다. 운전자 요금은 무료. 문의 완도군청 문화관광과(061)550-5421. 완도 여객터미널 (061)552-0116. 숙박업소 민박집 외에는 없다. 대부분의 집에서 민박이 가능하다. 문의 김명남 이장 (061)552-8927.
  • 미스·정아물산 김정옥(金靜玉)양 - 5분 데이트(46)

    미스·정아물산 김정옥(金靜玉)양 - 5분 데이트(46)

    저 커다랗고 둥글고 쌍꺼풀 진 눈이 왜 저렇게 동양적일 수가 있을까 하고 쏘아 보는 이 편의 시선을 피해 얼른 숙인다. 동서(東西)의 미(美)와 덕(德)을 모두 갖춘 몸매요, 얼굴이다. 1백 63cm 47kg의「튀기」적 몸매와 갸름하고 작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과 기다란 목덜미와 몹시 부끄럼 타는 다소곳한 행동거지가 아무튼 온갖 미덕의 조화(調和)다. 『첫 월급 타가지고 엄마에게는 한복 한벌 해드리고 나머지 식구들에게 선물 한가지씩 했어요. 그리고 친구들한테 한턱 냈더니 빈봉투가 됐어요』 정말 신나게 썼다는 얼굴이다. 분위기가 다소곳하고 동양적이라고 해서 소심하기만 한 아가씨는 아니라는 증거다. 지금 두번째 월급봉투를 기다리는 중인 정아물산(正亞物産)「타이피스트」초년생. 『홍익대학 상학과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취직했어요. 바빠서 친구들 자주 못만나는 것만이 좀 속상해요』 상업하시는 김현종씨의 1남4녀중 막내. 『문학소녀도 아닌데 국어과목을 참 좋아했어요. 지금도 문학서적, 소설 읽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어렸을 때 감명깊게 읽은 것 중엔「메밀꽃 필 무렵」이 있어요』 『이렇게 말랐어도 몸은 튼튼해요. 등산이 제 취미예요. 뭐「프로」까지 될 생각은 아니지만요. 멀리는 안가요. 작년에 속리산의 제일 높은「코스」를 친구들 하고 갔던 게 제일 먼 데였읍니다』 아마 충실한 직장여성 노릇 하려면 등산은 힘들 것 같아서 금년에는 단념할 생각이지만 내년부터는 1주(週) 한번 서울 근교 등산을 꼭 실천하겠다는 것만이 지금 이 아가씨의 작은 소망. [ 선데이서울 69년 8/17 제2권 33호 통권 제47호 ]
  • ‘무릉도원’ 영덕 복사꽃마을

    ‘무릉도원’ 영덕 복사꽃마을

    ‘봄나물 뜯으러 나온 아낙/불그레 얼굴 붉히며 복사꽃에 취해가네/아∼ 어찌할꼬, 어찌할꼬….’ 사랑의 노예라는 꽃말때문일까. 복사꽃은 화려함보다는 왠지 처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꽃.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경상북도 영덕군에서는 지금 유치환의 시처럼 ‘열여덟 아가씨의 풋마음같은 새빨간 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말뚝에도 푸른 빛이 돈다는 봄. 복사꽃잎 한송이 편지지에 얹어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 한통 써보면 어떨까. 영덕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폐허에 가꾼 복숭아밭 ‘영덕 효자´로 예로부터 이상향(理想鄕)을 상징했던 복사꽃은 유난히 사람의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복사꽃의 화사한 빛깔과 은은한 향기에 취해 과년한 딸이나 새색시의 춘정(春情)이 살아난다고 여겨 집안에는 복숭아 나무를 심지 않기도 했다. 복숭아밭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일대처럼 ‘무릉도원’을 이루는 곳은 흔치 않다.4월 초, 중순쯤이면 지품면 일대는 복사꽃이 출렁거리며 물결을 이룬다. 영덕군 초입의 오십천 개울가를 따라 펼쳐진 복사꽃 물결은 달산면의 옥계계곡을 거쳐 지품면 ‘복사꽃 마을’일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딱히 어디라 할 것 없이 차에서 내리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 얼마나 복사꽃이 예뻤으면 인근 지역 산이름을 무릉산이라 지었을까. 파아란 하늘과 연분홍빛 복사꽃의 극명한 대비는 보는 이에게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특히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 오십천변을 걷노라면 복사꽃, 살구꽃이 어우러져 선계(仙界)가 따로없다. 영덕이 복사꽃 고장으로 알려진 이면에는 아픈 과거가 묻혀 있다. 복숭아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이상근(48)씨에 따르면 예전엔 지품면 일대가 실개천이었다고 한다. 용 한마리가 노닐고 갔다해서 용천수라고 불렸다. 그러다 1959년 태풍 사라호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을 때 이 지역의 논과 밭은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 오십천이 범람해 실개천이 자갈과 토사가 가득한 척박한 땅으로 바뀐 것. 이씨와 이 지역 농민들은 고심끝에 복숭아 나무를 심기로 결정했다. 다른 곡식이 자라날 수 없는 토양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복숭아의 특성에 주목한 것이다.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복사꽃은 영덕대게와 함께 영덕관광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씨가 이장으로 있는 삼협리 복사꽃마을은 20년 이상된 복숭아 나무들이 많아 봄이면 사진작가들과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4월 중순 복사꽃이 질 때 쯤엔 꽃잎이 진분홍색으로 더욱 붉어진다. 이씨의 말을 빌자면 봄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모습은 중국의 시성 이백의 표현처럼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다.“우리 사는 세상이 더이상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것이 이씨의 감상. 영덕군 일대에는 지품면 복사꽃 마을외에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그림’이 되는 복사꽃 촬영지가 널려 있다. 지품면 오천1리 오천솔밭이 그 중 으뜸. 동요 ‘고향의 봄’을 연상케 할만큼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사각의 앵글을 잡아 보면 어떨까. 오른쪽으로는 오십천 푸른물을, 왼쪽으로는 화사한 복사꽃 들판을 넣고, 앞쪽은 저멀리 복사꽃으로 춤을 추는 듯한 산등성이로 채운다. 그리고 위쪽엔 두둥실 떠 있는 흰구름을 넣어 마무리. 어느 화가라도 탐낼 듯한 풍경화가 그려지는 순간이다. 사진을 찍다 목이 마르면 오십천 맑은 물로 목을 축이고,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은어요리로 배를 채운다. 두번째는 달산면 주응리 입구의 대서천변. 영덕읍에서 10㎞가량 떨어진 신양리에서 옥계유원지로 가는 69번 지방도로변에 있다. 오십천 지류인 대서천을 거슬러 오르다 옥계계곡 조금 못미쳐 주응리가 나타난다. 복사꽃밭 한가운데엔 함석지붕을 인 원두막이 있고, 사이사이 우람한 바위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앞산엔 대나무 숲이, 더 멀리는 영덕의 명산 팔각산이 있다. 해마다 아는 사람만이 즐겨 찾는 곳이다. 휴가삼아 7∼8월쯤에도 이곳을 다시 한번 찾아 보시라. 수밀도(水蜜桃)처럼 한입 베어물면 꿀물이 흐르는 복숭아가 기다린다.‘동양의 선약’으로 일컬어질 만큼 몸에 좋은 과일이 복사꽃 열매, 복숭아 아니던가. 감미로운 봄바람이 부는 달밤에 저 혼자 흐드러지게 피어난다는 복사꽃. 현란한 봄꽃들의 위세에 눌려 얼굴만 붉히고 있다가, 지금 소리없이 영덕을 붉게 물들여가고 있다. #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를 나와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방향으로 직진하면 지품면. 문의 복숭아영농조합 (054)734-2220. # 가볼 만한 복사꽃 마을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의 백족산 일대도 복사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백족산 무량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발품을 팔아 인근을 돌아보면 수십만평에 달하는 무릉도원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4월 하순쯤 개화예상. 문의 (031)641-5211∼3.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의 두독마을도 복사꽃단지로 많이 알려진 곳. 치악산 국립공원과 가까워 산행을 겸해 찾아볼 만하다. 개화시기에 맞춰 4월 하순쯤 복사꽃 축제(tourism.wonju.go.kr)가 열린다. 문의 소초면사무소 (033)741-2602,2642.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 학사가수 1호’ 김상희(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 학사가수 1호’ 김상희(2)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빨간 선인장’ 같은 서정적인 노래들과 더불어 김상희씨는 지극히 보편적인 소시민의 시각을 담은 경쾌한 노래들로 뭇 선남선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의 ‘3대 걸작 서민가요’를 보면 60년대 당시 청춘남녀의 이상향과는 사뭇 거리가 먼 캐릭터조차 따듯하게 감싸 안는다. 텁수룩한 얼굴이 나이보다 7∼8세 위로 보이지만 그래도 내겐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경상도 청년’, 단벌옷에 넥타이 두 개뿐인 서른한 살 노총각으로 주머니가 텅텅 비어 영화구경 한번 제대로 못할지언정 그래도 듬직하다고 치켜세우는 ‘단벌신사’, 행여나 장가간 게 아닐까 궁금할 정도로 나이 들어 뵈지만 그래도 내일 또 만나질까 기다려진다는 ‘대머리 총각’. 이렇듯 그의 노래는 당시 이상향의 주류에서 한참 비껴난, 일종의 ‘괄호 밖의 남자’들에 대한 따듯한 포용이 물씬 배겨 있다. 이뿐인가.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가 많고 많지만 그래도 순박한 ‘울산 큰애기’가 제일 좋더라 하는 식의 삼돌이의 편지 내용은 또 어떤가. 이렇듯 단순명쾌하고 자신만만한 그녀의 메시지는 ‘만인의 연인’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러한 범국민적인 지지로 그녀는 68년 ‘연예인 납세실적 1위’라는 전성기를 누린다. 가수 김상희에 대해 특히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70년을 전후해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시도했다는 점.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타이틀 롤인 2대(代) ‘아랑’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고,‘성불사의 밤’ ‘그대에게 내 말 전해주’ 등을 담은 가곡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또한 작곡가 신중현씨와 손잡고 ‘어떻게 해’를 비롯,‘나만이 걸었네’ ‘파도소리’ 등을 담은 ‘사이키델릭 음반’을 취입하는 등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시도,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한껏 펼쳐보였다는 점이다. 이 즈음 그녀는 또한 ‘월드스타’로 도약한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각각 음반을 발표하게 된 것.70년, 일본에서 ‘EXPO 70’이 열릴 때 그녀는 우리 문화의 기수로 가수 패티김과 함께 파견, 도쿄에서 한 달간 ‘아리랑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일본 측으로부터 음반 취입을 제의받는다. 이 여세로 세계적인 트럼펫 주자인 히노데루 마사와의 합동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고 홍콩, 태국 등 해외공연과 더불어 미국 MGM과도 계약,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 대형가수의 세계무대로의 진출은, 오히려 국내에서 ‘한국가수의 월드스타 출현’이라는 기대와 맞물려 국내에서도 팝송만을 불러 취입, 수출용 음반을 출시하기도 했다. 김상희씨는 현재까지도 가수활동과 더불어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녀 스스로도 가수 활동보다 ‘방송국 월급쟁이’로 지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할 정도. 어느덧 그녀는 ‘방송 진행은 옷 입는 것같이, 노래는 밥 먹는 것같이’한다고 토로한다.40년 가까이 하다 보니 그만큼 자연스러워졌다는 얘기다. 그녀가 방송 진행자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7년 KBS TV ‘당신의 멜로디’라는 쇼 프로그램. 당시로서는 여성 진행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담당 PD가 방송이 잘 안되면 사표를 쓰겠다며 방송국 간부들을 설득했다. 그 PD가 바로 지금의 남편인 유훈근씨다. 유PD와는 이듬해인 68년에 결혼했다.4선 의원을 지낸 그녀의 시아버지 유청(柳靑)씨는 광복 후 한민당 전라도당 위원장을 지낸 유직양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인기 가수와 종갓집 7대손 장남이 결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편 유훈근씨는 KBS PD로 일하다가 MBC에서 뉴스 앵커를 지냈다.79년 MBC 보도부 차장으로 근무할 때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다.10·26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면복권 되면서 공보비서로 들어가게 된 것. 이 여파일까, 김상희씨는 5공화국 들어서면서 무대에 설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화여대 옆에서 반평짜리 공간을 얻어 샌드위치 장사를 하기도 했다. 김상희씨는 연예인 봉사단체 ‘한마음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벌써 30여 년째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노인 복지시설을 열댓 번쯤은 찾았다고 한다. 주로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무허가 시설 같은 데를 주로 가기 때문에 보통 방이 비좁아 악기도 겨우 전자오르간 하나만으로 노래를 해야 할 경우도 다반사. 그래도 돌아올 때는 다들 눈물을 흘리곤 한다. 가수 겸 방송인 김상희씨는 2004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당시 조선극장을 운영하는 상당한 재력가의 딸로, 그리고 4선 의원을 지낸 종갓집 7대손의 맏며느리로 결코 쉽지 않은 가수활동과 방송활동을 병행하면서도 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김상희씨, 그녀는 여전히 ‘만인의 연인’이자 ‘서민들의 변함없는 친구’다. sachilo@empal.com
  • 王서방요리 金서방이 판다

    王서방요리 金서방이 판다

    자장면집 「王서방」들은 요즘 입맛이 쓰다. 한국인 경영의 중국 음식점이 자꾸 늘어나 이제는 그들의 경제권 마저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이 이거 장사 안돼. 정말 안돼 이거-』. 장안 「자장면 재벌」의 판도가 「王서방」에서 「金서방」으로 국적이 바뀔 판국이라는데…. 한국인 경영의 본격적 중화 요리점 제1호는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삼풍상가에 문을 연 「W」. 어찌된 셈인지 문을 열자 마자 손님이 몰려 들기 시작, 개점 반년만에 화교가 경영하는 명문 「A원(園)」과 어깨를 겨루는 대요식업소로 성장했다. 「W」은 특히 가족 동반, 외국인 동반 손님이 많아 재미를 보고 있으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번 꼭 들러 음식을 시식(試食)할 정도로 어느새 서울시내 관광「코스」의 하나로꼽힐만큼 되었다. 「W」의 「클린·히트」에 고무되었음인지 이번엔 스타일」의 새 한국인 경영 중국 음식점이 종로 번화가에 선을 보였다. YMCA근처 8층 「빌딩」안에 자리잡은 「H」-지난 7월 23일 문을 열었다. 8층 「빌딩」의 1층부터 5층 까지를 몽땅 도려 냈으니 규모는 「W」나「A園」보다 오히려 더 큰셈. 가위 「매머드」급이다. 기성 「자장면 재벌」의 판도를 바꿔놓을만한 두개 한국인 경영 중화 음식점의 면모를 먼저 살펴 보자. 「W」는 개점하자 마자 손님이 쇄도, 이틀뒤 문을 닫고 주방을 넓히는등 시설을 개조하여 그달 25일 재개점했다. 주인은 군출신의 김응한(金應漢)씨. 「W」은 「홍콩」의 「얌차」(飮茶)식 식당에서 「힌트」를 얻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중국 음식점이다. 전통적으로 「코리아나이즈」된 재래식 중국음식을 지양, 사천(泗川), 광동(廣東), 북경(北京)식 요리를 도입하여 선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는 식당 경영을 기업화 하는등, 「머리를 쓴」흔적이 보이는 음식점, 『청결·친절·음식맛 이세가지를 「모토」로 삼고있읍니다. 유흥장으로 보다는 가족동반 친지동반으로 조용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식당으로 가꾸려고 애를 많이 썼읍니다. 외국인들과 아이들이 많이 드나들더니 술 취해 떠드는 사람들이 없어지더군요. 분위기가 아늑하고 순수하게 지켜지는 편입니다』 김영한(金寧漢)상무는 무엇보다 「W」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고심했음을 실토한다. 중국집에서 흔히 불 수 있는 떠들썩한 분위기와 음식이 나올 때까지의 오랜 기다림, 한국인의 생리에 잘 맞지 않는 「서비스·매너」등 많은 「터부」의 요소들을 「W」는 대담하게 청소해 버렸다고 자랑이다. 4백여평의 넓은 「홀」에 「테이블」은 70여개. 10여개의 「카트」(손수레)가 이리저리 돌아 다니며 음식을 판다. 철두철미한 「빌」제, 복잡한 중국 요리의 한국식 표기등도 고객에 「어필」된 큰 요소인 듯 하다. 지난 7월 23일 개점한 「H」는 우선 손님수용력이 「W」보다 월등하다. 2층과 3층은 고대 중국의 호족 내실을 연상시키는 휘황한 「데코레이션」의 넓은「홀」이다. 2층의 「테이블」은 42개, 3층이 32개. 4층엔 11개의 방이 있고 5층에 4백명 수용의 대 연회실이 있다. 전관(全館)의 치장은 홍대(弘大) K모 교수 솜씨. 『3개월동안 시장조사를 했읍니다. 거기서 W「스타일」은 안되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그래서 연회석 위주로 음식도 보통 재래식 중화요리로 내 놓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장 홍형표(洪瀅杓)씨의 말. 「H」의 음식은 90원짜리 특제, 자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비싼건 한 상 1만 몇천원짜리까지. 중국인 「쿠크」11명을 세종 「호텔」등에서 「스카우트」했다. 붉은 「꾸냥」복의 아가씨들도 특수 훈련된 반 중국인 처녀들. 한국인 경영이기 때문에 분위기는 보다 「중국적」이어야 한다고 洪사장은 알 듯 모를듯한 경영론을 편다. 『외국서도 보면 큰 중국 요리점을 중국인 경영 아닌게 많습니다. 중국 음식의 맛을 분명히 살리면서 그네들 식당의 단점을 개선해 나간다면 실패 할 염려는 없으리라 믿습니다』 홍형표(洪瀅杓)사장의 자신에 찬 경영론. 한국인 경영의 중국음식점은 서울 변두리에만 50여개소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물론 호떡이나 자장면류를 만들어 파는 영세업자들. 분명히 중국음식점쪽에 위협이 되기 시작한건 W와 H의 출현이다. 이들 두 업소는 하루 매상 1백만원대를 올리고 있다. 지난 7월 말 현재 서울시의 집계에 의하면 서울시민이 유흥업소에 뿌리는 돈은 하루 평균 9천4백41만원꼴이다. 이중 3종 음식점의 경우만을 보면 한식이 하루 1천7백58만원, 중국음식 9백2만원, 양식 4백32만원, 일본식 3백9만원의 순서. 중국 음식의 경우는 값이 1백원 이상인 것만을 대상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루 1천~1천5백만원의 매상을 올릴 것으로 추상하고 있다. 이렇게 볼때 W·H등 한국인 경영 중국음식점이 기존 중국음식점 사회에서 얼마나 두려운 존재로 「크로스·업」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되도록 중국인들이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전통적인 「韓中친선」도 그렇지만 잘못하다가는 음식 재료 공급 중단등의 압력(?)을 중국사람들로부터 받을 것을 두려워 한 때문. 몇 년전 진해(鎭海)에서는 시민들이 중국음식 불매동맹(不買同盟)을 벌여 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이 소동의 발단이 한국인 경영 중국음식점에 재료 공급을 중단한 때문이라니 딴은 신경을 안쓸 수도 없는 일. 새로운 요리, 청결, 친절한 「서비스」, 거기다 「플러스·알파」로 국가의식 같은 것까지 호소하는 한국인 경영 중국 음식점의 상혼은 제법 인기를 모으고 있는 셈.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미스·바캉스 서병희(徐丙嬉)양 - 5분 데이트(45)

    미스·바캉스 서병희(徐丙嬉)양 - 5분 데이트(45)

    꼭 다문 입가에 늘 진지한 표정이 첩첩대문안 별당 아가씨의 그것처럼 범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가졌다. 아무말이나 섣부르게 걸었다가는 무표정한 그 얼굴을 가만히 돌려 버릴 것만같다. 떠들석한 이 서포리에서 이처럼 조용한 아가씨를 만난 것이 신기해서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의 어느 구석에「바캉스」의「퀸」으로 뽑힐만한 분방함, 발랄함이 있을까하고. 쌍꺼풀 없이 얄팍한 눈두덩아래서 반짝이는 까만 눈. 그 까만 맑은 눈이 뛰고, 웃고, 또 새침하게 도사리는 표정만점의 요술장이었다. 『 학창시절의 마지막 여름을「비치」로 택한 것은 어린애처럼 천진할 수 있는 곳이 바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내년이면 전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연세대 음대 기악과 4년. 46년생. 키 1백60cm, 체중 45kg. 「피아노」가 전공이란다. 『취미는「피아노」말고 다른 것이랬으면 좋겠는데 불행하게도 음악감상이에요. 대가(大家)들의「피아노」연주 듣는 것이 정말 좋아요. 한 음악도로서 본다면 그것이 공부도 되고요』 그중에도 제일 듣기 좋아 하는 곡은『소녀의 기도』. 『작곡자가 같은 여자인데다가 소녀라면 한번쯤은 다 반해 버리는 그 곡을 여학교때 홀딱 반해서 들었어요. 음악감상이 취미가 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언니, 오빠들이 모두 결혼했고 5남매중 막내. 아버지는 교육자 서원출(徐元出)씨. 몇해전에 작고하셨다. 「어린애 처럼 열심히 수영을 배워서 이번 수영강습회 겸 피서여행은 1백%의 투자였다고」.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선우용녀 혼인길 터지나봐

    선우용녀 혼인길 터지나봐

    1945년 8월15일. 이 날 저녁 6시5분-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64의 아담한 기와집에서 한 딸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은 정용례(鄭蓉禮). 이 딸아기가 바로 TV연속극 『상궁나인』『추격자』『다방골 알부자』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탤런트」 선우용녀(鮮于龍女)양. 그 선우용녀양이 현재 젊은 청년실업가 한사람과 「뜨거운 사이」다. 『제 생일이 8월15일 이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이 순조로우면 내년 8월15일엔 결혼식을 올릴까 해요』 어머님이 골라주신 그이 만나뵈니까 마음에 들어 한때 동경서 영화 『동경 나그네』(최무룡(崔戊龍)감독) 촬영도중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던 선우용녀.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TBC-TV연속극 『추격자』의 전야제에 나타났던 선우용녀. 한때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張勳)과 「스캔들」을 뿌리기도 했던 선우용녀. 그 선우용녀가 이제 혼인길에 접어든 것이다. 『젊은 여자가 혼자 있으니까요. 별의별 소문이 다 나지 뭐예요. 지금 그이는 어머님이 골라주신 분인데요. 몇번 만나 뵈니까 젊은 분이 참 착실하더군요. 현재의 계획으론 약혼식이나 올리고 내년 7월에 TBC-TV 전속계약이 끝나니까 그뒤에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어요. 제 생일이 공교롭게도 8월15일이잖아요? 그러니 이왕이면 결혼식도 8월15일에 올렸으면 좋겠어요. 이건 제 생각이고요. 부모님도 계시고 또 그이의 생각도 들어보아야 하니까 확정적인 건 아니지만요』 이러면서 살짝 얼굴을 붉힌다. 그럼 선우용녀양이 말하는 「그이」의 정체는? 『다른 건 다 좋지만 그 이의 이름만은 곤란해요. 뭐 결혼식 올릴 때 쯤이면 아실텐데요』 이 「그이」는 올해 28세. 용녀양의 표현을 빌면 「조그맣게 장사하는 분」이라지만 현재 사업관계로 일본(日本)에 가있는 정도니까 그리 「조그맣게 장사하는 분」도 아니다. 청년실업가 K씨(본인의 요청으로 실명(實名)을 밝히지 않음)라면 대체로 알만한 사람은 안다. 헌칠한 키에 건강한 체구, 어떤 여자가 보아도 첫눈에 반할 만큼 호남형의 젊은이다. 용녀양이 K씨에게 얼마나 열중해 있는 가는 어느 「데이트」날 양식점 「라·칸티나」의 한구석에서 약속 시간에 늦은 K씨 오기를 무려 37분간이나 기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어디가 좋다고 할것없이 그이의 모든점 그저 좋아 『어디가 좋다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그이」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는 용녀양의 간접화법이다. 이 「알짜 해방동이 아가씨」용녀양이 태어난 집은 3代 63년째 살아오던 집. 남들은 소개를 간다고 법석을 떨던 날, 용녀양의 아버지 정성덕(鄭成德·63·신문사 근무)씨는 신문사에서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집으로 뛰어왔다. 집에 돌아와서 부인 李남훈(54)씨에게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려고 방문을 여니 부인은 진땀을 흘리며 아래목에 누워있고 장모가 조산역을 맡느라 물수건을 짜고 있더라고. 『그래도 순산이었으니 효녀였던 셈이지』 그 효녀를 꼭 한번 잃어버릴 뻔한 때가 있다. 바로 1·4후퇴 때. 당시 6세된 용녀양은 대전(大田)으로 피난을 갔다. 아버지 정성덕씨가 큰 딸과 큰 아들을 데리고 길가에 서있고 부인 李씨와 용녀양을 밥먹고 오라고 식당엘 보냈단다. 그런데 그 식당에서 부인 李씨가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 틈엔가 용녀양이 없어졌더라는 것. 연예계 나올 때 부모님이 반대 하셨지만 『3시간반쯤 어디가서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서 있던 자리서 그대로 서서 기다렸지. 그랬더니 어디선가 「엄마!」 하면서 얘가 걸어오지 않겠어?』 하마터면 사랑하는 딸을 잃을뻔 했던 부모의 고백이다. 『애가 마음이 순해서 별 걱정은 안시켜 주었지만, 커서는 부모 속좀 썩힌 셈이지. 그 딴따란가 뭔가 하는 거 처음 시작할 때 얼마나 우리가 반대했었다구. 그래도 요새 애들 뭐-부모 말 듣나? 그저 제맘대로니 할 수 없지』 차라리 자기 딸이 이름없는 얌전한 규수이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다. 대전서 국민학교 입학, 환도후 이태원 국민학교를 졸업. 상명(祥明)여고엘 들어갔다. 이때 교회에 나가며 성가대의 한사람이었고 여고시절엔 「발레」를 배웠다. 서라벌예대(藝大) 연극영화과 입학때 처음으로 반대하는 부모의 명령을 거역한 셈. 서라벌예대 1학년 재학시절 TBC-TV가 개국에 앞서 제1기 「탤런트」를 모집했다. 이때 뽑힌 것이 용녀양. 그래서 첫 출연한 『상궁나인』 시절만해도 지금의 예명(藝名)이 쓰이지 않았다. 선우용녀란 이름을 정해준 것은 김기영(金綺泳)감독. 당시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란 영화에 용례(蓉禮)양을 「데뷔」시키면서 金감독이 지어준 것. 그뒤 TBC-TV 연속극 『갑이』『여성이 가장 아름다울 때』『김유신』『풍운아 김옥균』『추격자』등에 출연. 영화로는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이후 『여대생과 노신사』 『소문난 아가씨들』의 2편에 출연, 그러니까 단 3편의 영화에 출연한 셈이다. 『TV에서는요, 액수가 적어도 꼬박꼬박 보수를 주잖아요? 그런데 영화계에는 그런「룰」이 없더군요. 영화 3편에 나갔어도 아직껏 보수를 받아 본 기억이 없어요』 해방동이 아가씨가 본 한국영화계의 어느 한 부분이다. 8·15에 결혼식 올린다면 생일날이자 결혼 기념일 『제일 마음에 들었 던건 TV「드라마」「추격자」였어요』 -일본서의 증발 사건은? 『형부의 소개로 태국(泰國)에 갔었죠. 영화촬영을 위해 일본에 갔다가… 태국서 초청이 왔지 뭐얘요』 이것이 용녀양이 밝히는 「전부」. -장훈과의 「스캔들」은? 『꼭 두번 만났어요. 언니의 소개로 「블루·룸」서 한번, 다음이 반도「호텔」「코피·숍」이었죠. 그런데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더군요. 나중에 장훈씨가 일본에 돌아간 뒤 3일만에 국제전화를 걸어왔더군요. 자기 때문에 엉뚱한 소문이 터져 미안하다고요』 현재 TBC-TV 전속으로 『다방골 알부자』(月 後 8·30) 『빨간 카네이션』(金 後 8·30)에 출연하는 한편 극단 실험(實驗)극장의 부산(釜山)공연 『맹진사댁 경사』서 첫선을 보이고 올 9월18일부터 있을 실험극장공연에도 계속 나갈 계획. 3남3녀의 세째이자 2녀. 35-23-36의 몸매에 키 1백65cm, 체중 50kg이다.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고 가장 다정한 친구는 TV「탤런트」 김희준(金喜俊)양. 『내년 8월15일, 꼭 만25세 되는 날 결혼할 수 있게 제발 그 이의 이름만은 아직 숨겨 주세요』 혼인길 트인 해방동이 아가씨의 「윙크」섞인 부탁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8/10 제2권 32호 통권 제46호 ]
  • [토요영화]

    [토요영화]

    ●레전드 오브 리타(EBS 오후 11시)이 영화를 연출한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이 누구인지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양철북’(1979)을 떠올리기를. 같은 감독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프랑스 누벨바그에 비견되는 독일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로 평가받았다.1970년대 실제 있었던 서독 적군파 테러리스트 잉게 비트의 실화를 소재로, 이념보다는 개인의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조직이 붕괴돼 정치적 고아가 된 리타의 모습은 80년대 이후 서독 시민들의 탈정치화로 관객을 잃고 방황 했던 뉴저먼 시네마 감독들의 모습과 겹쳐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때 ‘세일즈맨의 죽음’(1985)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도 했던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2000년 ‘레전드 오브 리타’로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유럽영화상을 받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최근에는 옴니버스 영화 ‘텐 미니츠 첼로’(2002)에 참여하기도 했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테러 운동에 뛰어든 리타(비비아나 베글라우)는 남자친구 앤디(해럴드 슈로트)의 탈옥을 돕다가 변호사를 살해하게 된다. 쫓기던 이들은 동독의 비밀요원 에빈(마틴 부트케)의 도움을 받아 파리로 간다. 신념도 흔들리고 앤디와도 멀어진 리타는 어느날 우발적 사고로 경찰을 숨지게 한다. 리타는 동독 측의 도움으로 날염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아가씨 수잔나로 생활하게 된다. 서독행을 꿈꾸는 동료 타탸나(나트야 울)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신변 노출을 직감한 리타는 도망치듯 타탸나를 떠나 캠프관리교사 사비나로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데….2000년작.100분. ●레옹2-와사비(SBS 오후 11시55분)장 르노가 나오고 뤽 베송이 제작했다. 그 때문에 ‘레옹’(1994)의 인기에 기대려는 듯 수입사에서 제목을 이상하게 붙여 개봉했지만 ‘레옹’과는 상관없는 작품이다.‘레옹’을 기대하고 봤다가는 크게 실망한다. 무리한 설정에 어색함도 있으나 ‘레옹’과 따로 떼놓으면 ‘와사비’도 그럭저럭 볼 만한 액션 코미디 영화이다.‘비밀’(1999)과 ‘철도원’(1999)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있는 히로스에 료코의 발랄한 연기도 볼거리. 프랑스 파리의 강력계 형사 위베르(장 르노)는 유능하지만 다혈질로 숱한 사고를 일으킨다. 그는 19년전 사랑했던 일본 여인 미코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고 일본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낯선 소녀 유미(히로스에 료코)를 만나는데….2001년작.9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미스·서울여대 박옥조(朴玉照) - 5분 데이트(44)

    미스·서울여대 박옥조(朴玉照) - 5분 데이트(44)

    「왁자지껄하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이렇게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구나-하는 감탄 때문에 한참을 소곤대는 얘기만 듣고 있었다. 눈에 가득 웃음을 담고 조그만 입으로 들려주는 애교스런 경상도 사투리가 시각과 함께 청각을 즐겁게 해주는 아가씨 박옥조양. 경남 함양이 고향. 부산에서 살아오면서 부산여고를 졸업한 「미스·서울여대」. 지금 공예과 3학년 재학중이다. 자율(自律)점수 1백점(1학기에)에서 자율 규정위반으로 깎이고 깎여 50점 미만이면 자퇴(自退)를 해야된다는 가장 엄한 대학으로 알려진 서울여대생이라 박양의 자율점수가 알고싶다. 『한방에 4명씩 있는데 한사람이 불 안끄고 책을 보다가 연대책임을 지고「소등(消燈)위반」으로 3점 깎이고「식사당번 불참」으로 5점 깎여서 합해서 8점 깎였지요』 생활관 생활이「너무 재미있어 죽겠다」며 3학년 2학기 때부터는 따로 마련한 생활관에서 동급생 끼리 한방에 3명씩 자취를 하면서 자신들이 살림을 직접 하게된다고 신나한다. 생전 미장원 출입 할줄 모른다는 생머리가 그대로 곱게 자라 등을 덮었는데 164cm, 45kg의 가는 몸매에 어울려 갈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공예과에서 매년 가는 하기(夏期) 실습으로 올 여름방학에는 이천으로 도자기실습을 간다고 준비중이란다. 5남3녀 중 막내. 47년생. [ 선데이서울 69년 8/3 제2권 31호 통권 제45호 ]
  • 전라의 뜨거운 연기 현장

    전라의 뜨거운 연기 현장

    映畵街(영화가)이얘기저얘기-레디•고 金洙容(김수용)감독 「레디•고!」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지르는 이 외마디 소리는「필름」에 배우의 연기를 수록하는 최초의 신호. 촬영기사도 조명기사도 그리고 조감독과 모든「스태프」들이 잠시 호흡을 멈추고「카메라」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지켜보는 이 엄숙할이만큼 긴장한 순간과 순간들….「필름」의 회전소리가 감독의 심장 깊숙이 울려오는 이 시간이란 참으로 울고 싶도록 안타깝고 가슴 가득히 기도같은 갈망이 밀려오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천하의「코메디언」이 제아무리 우스꽝스럽게 굴어도, 비극배우가 제아무리 눈물을 짜도 감독의 얼굴에 그어진 무표정과「스태프」들의 긴장한 숨소리는 헝클어지지 않는 시간들이기도하다. 주연 배우가 全裸(전라)로 촬영 했다는 데 옷을 벗었느니 안벗었느니 또는 감독이 시키는대로 했다는둥, 제작자의 강요에 못이겨 그랬느니 외설시비에 소환받았던 감독과 여배우의 후일담이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는 요즈음, 나는 어느 신문에 실린 담당검사의 글에서『이번에 문제가 된 영화중의 하나인 XXXX의 경우 남녀 주연이 전라로 촬영했음이 밝혀졌다』 는 귀절을 읽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찌기 배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카메라」앞에 선 것을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다. 더욱이 정사「신」을 찍기위해 남녀배우가 알몸이 됐었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이론을 펴도 그렇게 수치스러운 모양을 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연기를 했다면 그것은 마땅히 음화취급을 받아야 하지않을까? 그러나 설마 그럴수가 있었을까? 물론 감독들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부득이「베드•신」도 찍어야 하고「키스」도 실감있게 연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작된 기술이지 실지의 행위는 결코 아니다. 관객에게 실감을 주려는 나머지 배우들에게 실기를 시키는 감독도 없을뿐더러 감독이 시켰다고 선뜻 응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부부배우가「카메라」앞에서「키스」를 할때도 그들은 결코 실기를 하지않는다. 그러고 보면 연기란 어디까지나 흉내에 지나지 않는 것. 가령 전투영화에서 적을 사살하는 장면은 촬영할 때 우리는 한사람도 희생자를 내지않고도 얼마든지 치열한 전투장면을 묘사한다. 이것이 바로 감독의 연출능력이라고 한다면 어느 의미에서 관객의 눈을 잘 속이는 사람이 명감독인 지도 모른다. 情事(정사)신은 배우의 고생문 얼굴은 닿아도 몸비틀려 나의 체험을 토대로 정사「신」의 촬영 현장과 그 작업과정을 우선 소개해보자. 머리는 하나 몸은 둘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남녀의 정사「신」을 연출할 때 배우들의 위치를 두고 말한 것이다. 즉 얼굴과 얼굴은 서로 맞닿은 것 같이 보여 놓고 두사람의 몸은 따로 따로 분리돼 있다. 오히려 두사람의 몸이 서로 닿을까봐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런때 까다로운 아가씨 배우들의 신경질은 가히 볼만하다. 끝내는 몸이 비비 꼬이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만다. 옷을 입은 하체가 서로 떨어져서 상체만으로 「러브•신」을 연기하는 곡예는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곡예와 같은 연기를 척척해내는 배우가 적지 않다. 우리들은 아무리 노골적인 정사「신」을 모아도 촬영할 때의 현장이 떠오르기 때문에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가 없으며 오히려 연민의 정으로 그러한 장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남우중에도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 남궁원 박노식 김진규 제씨의 「러브•신」은 볼품이 좋아 무도회에서 「파트너」를 맵시있게 「리드」하듯 촬영현장에서도 부담없이 쉽게 해치우지만 신인인 경우 감독의 고심은 보통이 아니다. 하기야 여러 사람이 바라보는 앞에서 애무하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배짱이란 쉬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상대역 선배 여배우게게 미안스럽고 황송하기만 해서 우선 접근하질 못한다. 이런때 신인의 떨리는 손을 꼭잡아주고 서서히 연기할 수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여배우에 D양이 있다. 그녀는 자칫 쑥스러워지기 쉬운 장면을 부드럽게 수습하는 지혜가 있다. 배우가 옷을 벗는다는 것은 정사장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샤워」나 목욕「신」을 찍을 때도 여배우들은 모두 중무장을 하고「카메라」「플레임」속에서만 벗은 것 처럼 행세하지만 남배우들이 상의쯤 벗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옷입고 목욕하는 법 없다.” 故 金勝鎬(고 김승호)씨는 정말벗어 우리의 명우 김승호선생은 연기의 실감을 내기 위해 목욕「신」을 찍을 때 번번이 전라가 되시곤 했다. 도시 옷을 입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느냐고 호통을 치시던 얼굴이 선하다. 하기야 남자들 끼리고 보면 정사「신」도 아닌 그러한 장면에 굳이 옷을 입힐 사람은 없다. 대중탕에 들어간 기분으로 작업을 진행시킬 뿐이다. 최근 오락 일변도의 미국 영화의 체면을 세운『스위머』란 문제작에선 남자 주연 「버트•랭카스터」가 엷은「팬티」하나만 입고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내용은 상류사회의 가정용「풀」을 통해서 현대의 미국 물질문명을 통렬히 비판한 것이지만 이 영화가 크게「히트」한 원인의 하나는 「버트•랭카스터」가 시종 전라에 가까운 육체미를 보여준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육체의 아름다움이란 여성만이 가진 특권은 아닌 것 같다. 「로댕」의 조각들 처럼 싱싱하고 늠름한 남자들의 체구는 보는사람에게 형용할 수 없는 환희를 안겨다 준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도시 음탕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느 날 편집실에서「필름」을 정리하다가 D양의 찍혀서는 안될 여자의 가슴을 발견하고 당황하여 잘라버린 일이 있다. 「스웨덴」영화가 대담하다고 하지만 남녀 배우는 모두 살색으로 된 엷은 옷을 분명히 입고 있으면서도 나체처럼 행세하지만 우리들의 환경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자의 가슴에서 「브래저」의 선이 한계를 이루며 「카메라」는 항상 그 윗부분을 포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짜하여 여자의 젖가슴이 찍혔을까? 촬영할때 그렇게 시간을 들여 싸매고 가리고 법석을 떨었는데도 실수는 있는 법. 움직이는 피사체에서 숨어야 할 것이 제멋대로 노출되는 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선데이서울 69년 8/3 제2권 31호 통권 제45호 ]
  • 자유항 홍콩 꾸냥 호스테스

    자유항 홍콩 꾸냥 호스테스

    <홍콩=申禹植(신우식)특파원> 동양의 眞珠(진주)니, 세계의 3대美港(미항)이니 백만「달러」짜리 夜景(야경)이니,「홍콩」에 항용 갖다 붙이는 말씀들. 그러나 술과 美女에 관해서도「방콕」, 臺北(대북)과 더불어「동남아 3大」라는 冠頭語(관두어)가 붙는 놀기 좋은 곳이다. 놀기 좋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영국신사」적인 질서가 우선은 요구되고 있다. 그 하나가 술과 美女의「2權分立(2권분립)」이다.「나이트•클럽」에서는 술과 음식과「쇼」뿐「호스테스」는 없고, 「볼•룸」에 가서야만 비로소 美女와 더불어 춤출 수 있는 그런 민주방식이다.「방콕」의 불야성속에서 타오른 불꽃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홍콩」의「걸•헌트」-역시 즐겁다. 「코리어•하우스」서 만난 서울의 아가씨 첫날밤, 오랜 항공기 여행, 더위속의 강행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쳤음인지 한국적 분위기속에 발길이 옮겨졌다. 九龍(구룡)쪽「카나본」路(로)에 있는「코리어•하우스」(漢字(한자)로는 梨花園(이화원))-.「홍콩」엔 모두 여덟개의 한국음식점이 있지만 이 집만이「레스토랑•앤드•나이트•클럽」. 치마 저고리입은 한국 아가씨가 30명, 한국 춤, 노래등「프로어•쇼」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브랜디」와 육계장을 한국식으로 마시고 먹었다. 옆에 앉은 여자는 宋(송). 『옥류장에 좀 있었어요…』까지는 좋았는데 아무개 아느냐, 아무개 잘 있느냐 그 사람 술 버릇이 어떻다…나오는덴 그만 질겁. 맛있게 먹은 육계장이 어떻게 되기전에 일어서자, 여기까지 와서 宋언니를 괴롭힐 것 까지는 없지 않으냐. 밤도 제법 깊어가는데 거리엔 미국水兵(수병)들이 설친다. 술과 여자가 함께 있는「호스테스•바」가 그들의「스트레스」해소OP. 「홍콩」쪽의 灣仔(만자), 九龍쪽의 尖沙嘴(첨사취) 부근에 즐비한 이들「바」엔「酒吧(주파)」란 간판이 붙어있다. 월남전 경기가 이 酒吧(주파)「붐」을 가져와 요즘도 나날이 간판이 늘어간다는 얘기. 九龍쪽 渡船場(도선장)께 있는「레인보우」란 간판 달린곳에 쑥 들어가봤다. 이건 서울의 변두리「바」가 무색한 모습. 앉았다. 중국복의「호스테스」가 왔다. 이름은 李 靑이란다. 자유중국의 인기 여배우의 이름과 꼭 같은데 그렇게 잘 생긴 편은 아니다. 맥주를 시켰다. 여기서도「산•미규엘」이 잘 팔린다. 작은것 한 병에 4「홍콩•달러」. 通貨(통화)환율은 美貨(미화) 1「달러」가 6「홍콩•달러」. 부둣가 싸구려 술집에는 바가지 전문의 아가씨가 그녀도 술을 시켰다. 내가 잔을 비우니까 또 시킨다. 슬쩍 그녀의 잔을 코에다가 대봤다. 영락없는「사이공•티」. 한 잔 8「홍콩•달러」짜리가 자꾸만 쌓여간다. 손님보다 두배나 비싼 술값을 속사포로 계산 하는 것. 어물 어물 하다보면 60「홍콩•달러」(美貨10달러)는 쉽게 오른다. 안되겠다. 쿡 찔러 보았다. 새벽 2시까지는 곤란하다는 것.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容個多少錢(용개다소전)?』(얼마 줘?)-직설적으로 흥정에 들어 갔다. 그녀는 웃었다. 무슨 뜻일까. 손가락 두개를 가리켰다. 2백「홍콩•달러」면 3x6=18에다가, 이크 30「달러」가 넘지 않나.「방콕」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홍콩」의 酒吧(주파)를 조심하라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그 동안에도 US NAVY는 열심히 進水式(진수식)을 향해 나가고 있었지만. 『我明天再來(아명천재래)』(내일 또 올께) 그만이다. 다음날은 영국신사가 되기로 했다. 역시「볼•룸」과 「나이트•클럽」. 순서는「볼•룸」부터.「舞廳(무청)」이라고(하기야 이발관도 이발廳이니까)쓴다. 대소 50개소나 있다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크다는 九龍쪽의「東方舞廳(동방무청)」엘 들어갔다. 「보이」가「메뉴」를 들고 왔다. 또 바가지를 씌우려나.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이건아니다. 음식「메뉴」아닌 人事(인사)「카드」다. 1백명도 넘는 아가씨의 명단. 漢字, 영어의 이름옆에 어느나라 말을 할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죽 훑어보았다. 陳明華(진명화, Chan Ming Wha)라, 회화는 영어와 국어(北京語(북경어)). 그 이름앞에「체크」했다. 明華가 왔다. 키도 크다. 매혹적인 長衫(장삼)이 눈부시다. 이름은 알겠다. 나이는 26, 학력은 大卒(대졸)이라고만 한마디. 『어서 오세요』『성함은?』『「홍콩」엔 언제?』-물론 술은 없으니까,「주스」와 수박씨뿐.「可口可樂」(코카콜라)을 마시면서 開會辭(개회사)에 15분은 지났을까.『잠깐 실례합니다』다. 딴자리로. 그러나 화날 일은 아니다. 「홍콩」의 舞廳엔 들어가는 어귀에 1시간에 얼마라는 팻말이 붙어 있게 마련. 그러나 그 1시간을 60분으로 알았다가는 큰 일. 보통 15분~20분. 明華도 그래서「실례」. 그 1시간에 1급이면 보통 5•5「홍콩•달러」-어떤데는 7, 8 HK「달러」에서 아랫동네로 내려가면 2HK「달러」까지 있다. 15분짜리 한시간 두시간이 지났을까. 明華가 왔다. 大卒이니만큼 상당히 유식한 체한다. 한국에도「오페라」가 있느냐 따위로「차이니스•오페라」(이른바 京劇(경극))를 자랑한다. 점잖은 것 좋아하네. 하지만 춤은 출 수 없으니. 3, 4류 舞廳(이름도「舞院(무원)」으로 바뀌지만)에선 발로 춤을 추는게 아니라 앉아서(또는 왔다 갔다 발만 움직이면서) 손가락춤(?) 을 춘다. 컴컴한「아베크」용 자리에 앉아서들 야단이지 춤추는「홀」은 비어있게 마련인 그런 곳. 이런 舞院에서는 앉자 마자 갖다 주는 차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춤 끝에 지친 손을 씻는 것. 하지만 여기는 그런 舞院이 아니라 舞廳이다.「발춤」은 출 수 없고 미안하지만 절충안을 내 놓았다. 약간의 손가락 춤 교환이라는. 子正넘어 아가씨와 나와 다시 나이트•클럽을 거쳐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다. 5•5HK「달러」곱하기 6이 됐고 어느새 子正(자정). 어떻게 뜻이 통했다. 舞廳은 새벽 한시까지니까, 그녀의 한시간 값을 또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한 시간을 60분으로 잡았다가는 큰 실수, 5시간으로 계산해서 5•5HK「달러」x5. 하룻밤「데이트」의 보수 2백 HK「달러」를 살짝 약속하고는 함께 나왔다. 다음 순서는「나이트•클럽」(夜總會(야총회))이다. 「호스테스」가 없이 먹고 마시는 것. 우리 같은 그렇고 그런 사이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상관없이 푸짐하게 廣東料理(광동요리)를 먹기도 한다. 무대에선 한국의 꼬마들「식스•코인즈」가 열연하고 있다. 이「나이트•클럽」의 간판은 九龍쪽의 「오세니아」. 오늘의「테이블•차지」는 (「쇼」에 따라 다르다)3HK「달러」. 그리고 술값 요리값 89HK「달러」. 새벽 2시5분전에 함께 나왔다. 明華도 미안했던지 비싼「호텔」아닌「게스트•하우스」 (招待所(초대소)란 간판)로 가자는 고마운(?)제의. 하루 저녁 방값 80HK「달러」. 그녀는 초저녁에 교양이 있었지만「베드」에선 또한 거기에 어울리는 교양이 있었다. 한국의 어떤 아가씨들 처럼 깡패가 되기는 커녕 아주 종이 돼 주었다. 당신에게 바친 몸이라나. 赤線(적선), 靑線(청선)지대는 잠깐이면 20HK「달러」지만 여러가지로 침을 뱉을 일이므로 아예 접근을 않았다. 하지만 Please do not spit!의팻말 그대로 침을 함부로 뱉었다가는 벌금 5백 HK「달러」-조심할 일. [ 선데이서울 69년 7/27 제2권 30호 통권 제44호 ]
  • 절단장애 딛고 ‘희망의 방송’ 김진희씨

    절단장애 딛고 ‘희망의 방송’ 김진희씨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신체에서 일부가 잘려나간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장애를 딛고 열정적으로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희(40)씨는 절단 장애인들의 희망이자, 어려운 이웃들의 고민 해결사로 통한다. 김씨는 요즘 가수 강원래씨 진행으로 KBS-2TV에서 월요일 오후 4시에 방송되는 ‘사랑의 가족’에서 ‘김진희의 희망통신’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재활의 길을 안내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웃들의 훈훈한 얘기들을 전해준다. 구김살 없는 김씨지만 사고 당시를 떠올리면 온몸이 떨려온다.1997년 3월. 의정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김씨는 출근 길에 중앙선을 넘어 돌진해오는 덤프트럭을 피하지 못했다. 왼발은 복숭아뼈까지 잘려나가고, 왼팔은 15㎝가량 뼈가 없어졌다. 치아는 모두 부러지고, 왼쪽 눈은 튀어나가고, 머리는 깨져서 함몰되고…. 1년8개월 동안의 병원생활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퇴원한 뒤 삶의 의지를 잃고 있을 때 신문에 난 외신기사가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김씨는 “미국의 스물한살짜리 아가씨가 두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고서도 모델·육상선수로 활약하고 있다는 기사였다.”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치료를 받았다는 영국의 도셋병원을 찾아갔다.”고 새로운 삶을 찾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메일로 1년 동안 몸상태를 체크하여 병원에 보내는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김씨는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절단 장애인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하루에도 절단 장애인이 25명이나 발생한다는데 혐오스럽다는 주위인식 때문에 숨어 지내기 일쑤”라면서 “이들이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도록 보다 현실성 있는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절단장애인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인터넷사이트(uk-ortho.co.kr)를 운영하고 절단장애인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1만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절단 장애인과 이들의 가족이 대부분이다. 보장구 소개와 함께 절단 장애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신경종, 환상통 같은 질병 대처법 등 재활을 돕는 정보를 교류한다. 김씨는 “사고 당시는 열등감에 잡혀 약혼자를 떠나보냈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랑을 기다릴 만큼 여유도 되찾았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토크쇼 MC와 패션쇼에도 한번 나서 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책꽂이]

    |실용| ●씨앗은 어디에서 왔을까?(와시타니 이즈미 지음, 김창원 옮김) 식물은 일종의 ‘생체기계’를 통해 씨앗을 멀리 떠나보낸다. 포유동물의 자궁에 해당하는 씨방이 강한 힘으로 씨앗을 튀어 나가게 만든다. 씨앗은 털에 매달려 뿌리내리기 적합한 장소를 찾아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제비꽃처럼 곤충이 좋아하는 먹이를 씨앗에 붙이기도 하고 동물들을 유인하기 위해 달콤한 열매 속에 씨앗을 넣어두기도 한다. 씨앗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1만 5000원. ●풍수 유어 라이프(제이미 바렛 지음, 서강익 옮김, 물병자리 펴냄) 집을 고를 때 남향을 선호하고 동향을 기피하는 것처럼 풍수는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요즘은 서양에서도 풍수가 일상화되어 많은 풍수 컨설턴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부인인 셰리 여사는 풍수전문가들을 초빙, 이들의 조언을 참고해 총리 관저를 꾸미기도 했다.‘느낌이 좋은 환경’을 만드는 풍수의 원리를 소개.2만 2000원. ●아버지의 덫(지그리트 슈타인브레허 지음, 이승은 옮김, 들녘 펴냄) 남성 중심 가부장적 체제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어린 딸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심층적으로 분석. 저자는 일관성 없고 무조건 순응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태도로 말미암아 어린 딸이 정체성를 잃고 철저하게 종속적으로 되어간다고 주장한다. 파파걸(papagirl)은 어른이 되어 한 남자를 만날 때에도 아버지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아버지를 대신해 상대 남자에게 집착하고 순응하면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1만원. ●벼랑 끝에서 만나는 처칠(김형진 지음, 기파랑 펴냄)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지치지도 않을 것이며, 비틀거리지도 않을 것이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60여년 전 처칠의 연설문을 인용하며 국민의 용기를 북돋웠다. 책은 절망의 바다를 넘어 20세기 최고의 영웅이 된 처칠의 리더십을 소개한다.1만원. |유아·아동·어린이| ●돌돌돌 내 배꼽(허은미 글, 김선숙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우리 몸의 구멍’의 작가가 이번엔 재미있는 배꼽 이야기를 꺼냈다. 누구나 엄마 뱃속에 있었고, 탯줄로 세상과 연결되고 있었음을 귀띔해주는 과학그림책.4∼7세.8000원.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김은정 그림, 대교베텔스만 펴냄) 아동에게는 세상 구석구석이 곧 놀이터이자 학습의 장. 주위환경으로 관심의 범위를 넓히기 시작하는 시기의 유아들에게 관찰력과 변별력을 키워주는 놀이책.3∼7세.8500원. |초등·청소년| ●큰발 중국 아가씨(렌세이 나미오카 글, 최인지 옮김, 달리 펴냄) 좋은 신부감이 되기 위해 발을 묶는 풍습(전족)을 거부한 용감한 소녀 이야기. 신체를 훼손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자기존엄을 돌아보게 만드는 청소년 성장소설. 초등 고학년 이상.9500원. ●남산골 한옥마을(이흥원 글, 김순남·김수현 그림, 해피북스 펴냄)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시리즈 두번째. 우리의 전통한옥과 정원에 대한 기본지식은 물론 체험학습을 돕는 현장소개글이 실렸다. 이 책을 들추며 남산골 한옥마을을 한번쯤 현장답사해볼 일이다. 초등3년 이상.6500원.
  • 미스·태국교민 임미혜(林美惠)양 – 5분 데이트(42)

    미스·태국교민 임미혜(林美惠)양 – 5분 데이트(42)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태국인, 하지만 그 딸은 한국인이고 싶어하고 한국인임을 우쭐댄다. 그래서 이 아가씨의 소원은 아버지의 나라, 아니 내 나라 한국의 흙을 만져보는 것. 『쉐이, 쉐이!』영화배우라도 나타난양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 「쉐이」란 태국말로 아름답다. 예쁘다는 뜻. 역시「미스·태국교민(泰國僑民)」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자태. 남국의 정취속에 눈부시게 아름다운「카우리」(한국인) 나타났다. 이름은 임미혜(18)양. 4백이 넘는 유서깊은「방콕」의 사원(寺院)들 – 그 중에서도「누워있는 부처님상(像)」(키 49m, 손가락의 길이만도 3m의 거대한 모습)으로 유명한「와트·포」의 이국(異國)정서 속에 아가씨는 섰다. 역시 아가씨는 한국의 아가씨였다. 입고있는 옷 빛깔이 무색할이 만큼 얼굴이 홍당무가 돼버렸으니까. 지금 고등학교 졸업반,「데이트」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살짝 눈을 흘긴다. 내년 4월에 태국에서 제일좋은「주라롱공」대학에 들어가자면 밤잠을 안자고 공부해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아마 자신이 있는 모양이죠? 글쎄, 합격을 하면 자동차 한대 사줘야한다고 사뭇「공갈」이지 뭡니까, 허허…』아버지의 흐뭇한 웃음이다. 아버지는 28년째 태국에 사는 임진동(林鎭東)씨. 「풍원무역(豊源貿易) 합자회사(合資會社) 총경리(總經理)」란 명함, 무역업이다. 어머니는「피쿤·빠디드웡」여사. 아버지와 동갑, 김치 담그는 솜씨는「방콕」교민사회에서 정평이 있고 한국요리는 뭐든지 OK다. 이런 아빠 엄마의 세딸중 맏이. 김치 잘 먹고 공부 잘하고 부모 잘 위하는 이 아가씨의 또하나 자랑거리는 태국 고전무용. 발표회에 자주 나가서 인기를 모은다. 『결혼요? 아직 그런 것 몰라요. 하지만 우리 아빠 같은 한국 청년이라면…』수줍음으로 말꼬리는 흐린다. <주소·40 Rong Muang Road, Bangkok, Thailand> [ 선데이서울 69년 7/20 제2권 29호 통권 제43호 ]
  • 오토바이 빌려주고 1日 여보도

    오토바이 빌려주고 1日 여보도

    7월은 「바캉스」의 계절 - 주말이면 서울근교 유원지에는 으례 몇 10만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중에서도 특히 뭇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오토·하이킹」. 쌍쌍이 어울려 시속 100km로 달리는 광경은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그러나 - 「스카프」를 날리며 주말 「하이웨이」를 누비는 그 「오토·하이킹」에 이상있다. 1백25cc 못되는 소형은 면허만 있으면 번호없이 우리나라에 「오토바이」가 본격적으로 상륙한 것은 G산업이 63년3월, 「오토바이」를 생산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 「유럽」등지서 「비트·붐」이 한차례 지나가고 난 뒤였다. 「선글라스」에 「리더·자키트」(가죽잠바), 「블루·진」(푸른 작업복바지)과 함께 「모터·사이클」은 「비트」족의 필수품의 하나. 좌절당한 젊음을 「모터·사이클」의 「스피드」속에 불살라버리던 「비트족」족의 풍속은 내용이야 어쨌든 3,4년 뒤늦게 우리나라에도 상륙해왔다. 처음엔 대부분이 자가용.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오토·하이킹·붐」이 일기시작하면서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일대절 「오토바이」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동반할 여성을 경품부(景品付)로 붙여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선 배기량(排氣量) 1백25cc 이하의 「모터·사이클」은 「넘버」없이 마음대로 탈수 있다. 배기량 1백25cc이상의 대형 「모터·사이클」은 소형 자가용 「넘버」를 얻어야만 운행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히 「넘버」없이 탈 수 있는 1백25cc이하의 것이 인기다. 시중에 나와있는 것중 90%가 90cc, 50cc의 것. 한편 이 「모터·사이클」을 타려면 타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경찰당국으로부터 운전면허를 얻어야한다. 1백25cc 이상의 대형 「모터·사이클」이면 소형자동차운전면허를, 그 이하의 것이면 원동기 자전거 운전면허를 얻게 되어 있다. 원동기 자전거면허는 일반상식정도로 누구나 탈 수 있는 것. 이렇게 쉬운 면허만 갖고 있으면 아무때나 1백25cc이하의 「오토바이」는 빌어 탈수 있다는 얘기다. 1백25cc이하의 「오토바이」는 「넘버」없이 운행할 수 있다는 법규정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 중고(中古) 「오토바이」판매업자들의 교묘한 상흔. 오토바이삯은 2~3천원 1日여보 8천원~1만원 그중의 어떤 업자는 비밀조직망(?)을 통해 주말 「오토·하이킹」 희망자들을 모은다. 희망자들은 하루 2~3천원을 내고 「오토바이」를 빌어 탄다. 단순히 이것으로만 끝난다면 별 탈이 없다. 그러나 「오토·하이킹」에 뒷좌석이 비어있어서는 재미가 없다. 뒷좌석에 태울 여자 동반자를 자신의 능력으로 메울 수 있는 사람은 별문제지만 그렇지 못한 무능력자는 여자구하는일까지 「오토바이」상회에 위임하기 마련. 이런 경우 1일 8천원에서 1만원의 돈을 내면 「오토·하이킹」희망자는 「오토바이」와 뒷좌석 숙녀(?)를 하룻동안 소유(?)할 권리를 갖게 된다. 업자측으로 보아선 뒷좌석숙녀가 책임지고 「오토바이」를 되돌려 주어 1석2조의 효과. 희망자로부터 받은 돈은 업자측과 숙녀측이 반반씩 나눠 가진다. 그러니까 뒷좌석 숙녀의 하루일당은 4~5천원. 괜찮은 하루 수입이다. 여기에 숙녀의 「서비스」(?) 여하에 따라 응분의 「팁」이 따른다. 하루 6~7천원벌이가 상쾌한(?)「하이킹」 속에 이루어 진다. 식사, 음료수등 부수비용은 신사측이 부담하기 마련. 다방·터키탕·바의아가씨와 여대생(女大生)도 이래서 「오토·하이킹」엔 「오토·걸」이 따르기 마련이다. 「오토·걸」의 성분을 따져보자. 이들은 비밀「루트」를 통해 「오토바이」 상회와 연락을 갖게되는데 다방「레지」, 「터키」탕의 「서비스·걸」, 「비어홀」의「호스테스」, 그리고 고급 「콜·걸」의 순위다. 개중에는 여대생까지 끼여 있다는 소문. 이들은 전화연락을 받고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간다. 어느 「오토·하이킹·클럽」의 희망자들을 모으는 조직은 간첩망 못지않게 철저한 장막속에 감추어져 있다. 이들은 기존회원들의 추천으로 신청된 희망자들의 신원을 내사, 신원이 확실해야함은 물론, 이런 기밀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을 사람이라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단 회원수가 확정되면 상회에서 직접「오토바이」를 수교하는게 아니라 지정된 장소서 인수인계, 일반사람들의 눈을 피한다. 「오토·하이킹」의 「피크」는 목적지에 닿았을 때. 개인행동의 시간이 주어지면 1일연인 뒷좌석 숙녀를 요리(?)하는 것은 각자의 수단에 달렸다. 그러나 상습 「하이커」들의 말로는 숙녀들 자신이 이미 어느 정도의 각오(?)는 출발전에 되어 있으며 특별「서어비스」(?)는 불문율(不文律)처럼 되어있다는 것. 물론 1~2천원의 「팁」이 없을 수 없다. “손목쯤 될줄은 알았지만” 혼날뻔 한 여대생의 고백 모든 「오토·하이킹」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시내 M「클럽」처럼 매주일 회비 5백원씩 거둬 정기적으로 「하이킹」을 나가는 곳도 있다. 그러나 D극장주변에 집결되어있는 「오토바이」상회의 반수가량은 「오토바이」 판매·수선보다 「오토·하이킹」 알선으로 수지를 맞추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음은 일당 5천원에 매혹된 한 여대생이 혼날뻔한 얘기. ▲李정임(21·가명·H대학회화과 3년)양의 말=하루에 5천원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길래 친구를 따라 나갔어요. 물론 하루쯤 대행애인노릇 해야한다는 건 알았어요. 그러나 기껏해야 손목쯤 잡히거나 어디 교외로 나가서 춤의 「파트너」노릇만 하는 줄 알았지요. 경춘(京春)가도를 2시간쯤 달려서 등선(登仙)폭포에 이르렀어요. 점심을 먹자며 들어간 곳이 여관도 아니고 음식점도 아닌 묘한 곳이더군요. 그러더니 맥주를 권하고 점점 태도가 이상해지지 않겠어요? 같이 갔던 친구를 찾았더니 곧장 춘천(春川)으로 갔다지 않아요? 방에서 튀어나와 「오토바이」 세워둔 곳에서 기다렸죠. 돌아오는 길엔 『기분잡쳤다』며 마구 속도를 내더군요. [ 선데이서울 69년 7/20 제2권 29호 통권 제43호 ]
  • 마구벗는 10代의 베이비러브

    마구벗는 10代의 베이비러브

    지난해 영국(英國)의 「프랑코·제프렐리」감독이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주역으로 「틴·에이저」들인 「레오날드·휘팅」과 「올리비아·후세이」를 「데뷔」시켰을 때 전세계 영화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틴·에이저」들이 주역을 맡았다는 사실외에 그 철없는 「틴·에이저」들이 대담한 「누드·신」을 벌였기때문. 이 때문일까? 현재 영화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엔「베이비·러브」(어린애들 사랑)란 새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베이비·러브」란 한마디로 철없는 10代의 철없는 사랑. 여고(女高)도 채 졸업하지못한 15살짜리 아가씨가 LSD와 「마리후아나」를 애용하는가 하면, 18세의 소녀가 대담한 「누드」로 자기 애인을 뺏으려는 어머니와 대결. 또 한편에선 15세의 소녀가 자기 어머니의 정부를 유혹, 파멸시켜 버리는등 「스크린」에 나타난「베이비·러브」의 주인공들은 무서울 정도로 철이 없다. 철이 없어서 마구 벗어젖히고, 철이 없어 마음내키는대로 행동하고, 철이 없어 자신의 행동이 기성 「모럴」 에 반역하는 불륜(不倫)인지조차 모르는 「베이비·러브」의 주인공들. 말하자면 그들은 60년대말의 「앙팡·테러블」(무서운 아이)들. 이「앙팡·테러블」의 3주역이 15세의 「데보라·윈터즈」, 18세의 「홀리·니어」, 15세의 「린다·헤이든」양이다. 「데보라·윈터즈」양은, 5세때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를 따라 「뉴요크」 로 이사, 7세때 학교에 들어갔으나 공부대신 선생이나 곯리는 문제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결국 12세때 학교를 그만둔 「윈터즈」 양은 줄곧 가정교사를 대고 공부, 그후 학교문턱엔 가보지도 않았다. 13세 되던해 어머니의 권유로 「스텔라·애들러」배우학교에 입학, 그해 연극 『피크닉』에 「프레드·바네트」의 상대역으로 출연, 13살짜리 아가씨가 37세의 중년남성과 열렬한 「키스·신」을 서슴없이 해 내었다. 곧 「윈터즈」양은 27세의 배우 「델라노·스켈포」군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실패. 그러자 이 깜찍한 아가씨는 아버지에게로 적을 옮기는 한편 「스켈포」군과 공공연히 동거, 16세가 되면 정식 결혼하겠다고. 이런 그녀를 발굴해 낸 것은 CBS-TV. CBS-TV는 「윈터즈」양을 연속극 『이웃사람들』 에 출연시켜 호평을 받자 「패티·듀크·쇼」의 『저 「나탈리」에요』에 기용. 그러자 「할리우드」는 그녀를 「커크·더글러스」의 아들 「미첼·더글러스」의 상대역으로 『영웅(英雄)만세!』에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英雄만세!』의 「로케」 중 「윈터즈」양은 촬영을 중단하고 매일 하루 2시간씩 가정교사로부터 과외수업을 받는다. 그때만은 참한 학생이 되는 「윈터즈」양이 2시간후 장에 되돌아오면 「카메라」앞에서 마구 「시미즈」를 벗어던지며 「섹시·걸」로 돌변, 「윈터즈」양은 또 묵고있는 「호텔」에 돌아오면 LSD, 「마리후아나」, 「위스키」등을 제멋대로 애용. 「윈터즈」양을 뺨치는 아가씨가 『천사(天使)여, 하강(下降)하시라』에 출연중인 18세의 「홀리·니어」양. 「캘리포니아」태생의 그녀는 「로큰롤」가수의 딸. 일생 통틀어 꼭 30분동안 UCLA대학 TV에 출연한 경험밖에 없는 「니어」양이 『天使여-』에선 명우 「제니퍼·존스」와 대결한다. 『天使여-』에서 그녀는 「제니퍼·존스」의 딸. 그녀는 한 미남의 「로큰롤」가수에게 홀딱 반해 그 남자를 유혹, 공원의 잔디밭, 남자의 자동차속, 남자의 「아파트」에서, 닥치는 대로 벗어젖히고 육체로 돌격한다. 그런데 어머니인 「제니퍼·존스」역시 그 남자를 사랑하는 몸. 「니어」양은 남자를 어머니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내걸고 어머니와 대결한다. 18세의 나어린 아가씨가 애인앞에서 「스트립·쇼」를 벌이는가하면 벌거벗은 채 「러브·신」을 벌이고, 음담패설을 마구 한다. 이런 「니어」양은 정작 태연하다. 그녀의 놀라운 돌격정신에 입을 딱 벌리는 기성 세대를 향해 그녀는 담담히 대꾸한다. 『사실 그런게 인생인걸요, 뭐. 안 그래요?』 이쯤되면 대답할 말을 잃기 마련. 이미 「미아·패로우」쯤에게선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는지 이런 「틴·에이저」들을 주연으로 한 「베이비·러브」영화가 올해들어 벌써 10여편 제작되었고 개봉될 때마다 흥행성적은 최고. 이중 가장 흥행성적이 좋았던 것이 이름마저 『베이비·러브』라고 붙인 영화. 이 영화는 영국(英國)서 만들어 졌는데 주연배우는 역시 英國 태생의 15세 아가씨 「린다·헤이든」양. 영화속의 「헤이든」양은 어머니가 자살하고나자 한때 싸구려 창녀노릇을 하다가 어머니를 자살로 이끈 중류(中流)가정의 가장인 사내를 발견. 그녀는 15세의 어린나이로 그 중년남성을 유혹한다. 벗어젖히고 그 남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쯤은 약과, 그녀는 그 남자와 벌거벗고 「파티」를 벌이기도. 정작 『베이비·러브』가 완성되었을때 「헤이든」양은 미성년자란 이유로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 들어 갈 수 없었다. 이래서 올해 「할리우드」는 「베이비·러브」의 선풍속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7/13 제2권 28호 통권 제4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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