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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침 약속뒤 슬쩍 토정비결 노인 봉변

    대전 지검에서는 전정아양(18•가명)을 절도혐의로 구속했는데…. 전양은 대전 원동 T여관에 유숙중인 박모(69) 관상가의 방에서 박노인과 동침 할 것을 자청하여 함께 투숙하고 난뒤 박노인의 토정비결책 92권 (5천2백원 어치)를 훔쳐 달아났다는 것. 동침후 토정비결책을 슬쩍한 아가씨나 밑천인 그 책자를 빼앗긴 박노인 모두 올해 토정비결에 액운이 끼었던 모양 [선데이서울 70년 2월 8일호 제3권 6호 통권 제 71호]
  • 김창숙(金昌淑)양- 5분 데이트(68)

    김창숙(金昌淑)양- 5분 데이트(68)

    『4년전 고향인 경남 거창(居昌)에서 여고를 나온 뒤 죽 놀고 있다가 첫 취직한지 반년쯤 됐으니까 아주 초년생이지요』 「허스키」한 음성으로 사투리가 뚜렷한 말씨. 그 음악적인 느낌이 표준말에만 익숙한 사람의 귀에는 이국적(異國的)으로조차 들릴 것 같은 말씨다. 하얗게 피부색이 바래버리기 마련인 직장여성의 티가 얼굴에없다. 키가 166cm나 되는 대형(大型)미인이지만 이 초년생 아가씨는 충주비료 본사(本社)사원들간의 귀염동이. 무경험(無經驗)을 조금도 부끄러워 않고 무슨일이든 물어가면서 배운다. 6남매중 다섯째. 『6남매에 홀어머니신데 모두들 고향에 있고 전 서울 언니집에 있어요. 엄마가 담가서 보내주시는 청국장을 제일 좋아하고 잘 먹죠』 달리기와 농구에 소질이 있어서 여고때는 선수생활도 조금 했단다. 『요즘은「라디오」를 들으면서 수놓는게 취미예요.「스포츠」중계도 듣지만 주로 음악을 들어요. 경음악을 많이 듣죠』 영화배우 중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고은아. 『뜸직하고 맘씨 착하고 그런데도 곱게 생겼잖아요. 여성의 이상형일 거예요』 신랑은 키 큰 사람이라야 하겠단다. 『제가 키가 크니까 첫째 조건이 키예요. 제가 올려다 봐야지 내려다 봐서야 되겠어요?』 [선데이서울 70년 2월 8일호 제3권 6호 통권 제 71호]
  • [깔깔깔]

    ●진짜 믿음 어떤 사람이 교회에 기도하러 들어갔다.누군가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아버지 만원만 주세요. 만원만 주세요.” 그래서 이 사람이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꺼내서 기도하던 사람에게 주었다. 기도하던 사람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나갔다.그리고 이 사람이 조용히 두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제 기도에만 집중해 주십시오.” ●수영금지구역 어떤 젊고 예쁜 아가씨가 산길을 넘어 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었고 아가씨는 문득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마지막 옷까지 다 벗고 저수지에 막 들어가려는 순간 수풀 속에서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농부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가씨 여긴 수영이 금지돼 있슈.” 그녀는 화들짝 놀라 옷으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아저씨, 그럼 옷 벗기 전에 미리 말해주셔야지요.” 그러자 농부가 말했다. “옷 벗는 건 괜찮혀유.”
  • [깔깔깔]

    ●변기통과 낚시터 피닉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조지가 변기통에서 신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의사 제프가 와서 말했다. “고기 잘 잡혀요?” “미쳤어? 변기통에 물고기가 있어?” 그러자 제프는 드디어 조지가 정신을 되찾았구나 싶어 기뻤다. 조지는 제프가 가는 것을 보고 “휴∼ 좋은 낚시터 뺏기는 줄 알았네.”●산타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가 좁은 굴뚝을 통해 겨우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만 집을 잘못 찾아 들어갔다. 방에는 아이들 대신, 금발의 미녀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자고 있었다. “아이구, 또 잘못 찾아왔군!” 산타 할아버지는 자고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며 “정말 난처하게 됐군. 이 아가씨에게 무엇인가를 하면 난 이제 천국에 돌아갈 수 없을 테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놈의 거시기가 걸려서 굴뚝을 빠져나갈 수 없을 텐데.”
  • [길섶에서] 그녀는 모르리/송한수 출판부 차장

    “만지지 말고 물어 보세요. 손 대지 말고 보기만 하라니까요∼.” 동네 슈퍼마켓 주인 아줌마가 과일을 사려던 손님에게 눈을 치뜨고 내뱉은 말이다.“어쩜 저럴 수 있지?” 그래, 생각해 보니 그 가게는 언제 보아도 파리만 날리고 있지 않았나. 언뜻 듣기에 사람들은 무얼 사더라도 그 옆집에 간다고 했다. 보기좋게 들킨 ‘만지지 말라.’는 폭언으로 그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안됐지만 속으로는 샘통이라며 혀를 찼다. 아니나 다를까. 탐스레 복숭아를 쳐다 보던 할머니는 이어지는 주인의 손사래에 팩 돌아섰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들려준 백화점 사탕 판매원 이야기가 떠올랐다.“옆에선 울상인데 이 아가씨는 실적이 뛰어났지 뭐야. 사탕을 되질하는 방식이 다른 판매원과 차이가 났대. 성공의 주인공은 처음엔 정직하게 담았다가 덤을 얹었어. 그런데 실패한 아가씨는 거꾸로였지. 고봉으로 쌓았다가 한 되로 깎아냈단다.” 복숭아를 깨물어 보라고 자신있게 내밀어도 시원찮았을 슈퍼 아줌마가 이 얘기를 이해하기나 할까?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 (2) 에티오피아에 가거든 손톱을 깎으세요

    (2) 에티오피아에 가거든 손톱을 깎으세요

    에티오피아의 주식(主食)은 인제라이다. 떼프(Teff)라는 모래알 같이 생긴 곡류가 주원료인데 이것을 지름 50센티 정도로 얇게 부쳐낸 것이 인제라이다. 떼프를 물에 불려 며칠 발효 시키면 시큼한 냄새가 나는데 이때가 인제라를 만드는 적기다. 만드는 방법은 우리나라 부침개를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 텐데 잘 달구어진 팬에 건더기 없는 떼프 반죽을 순식간에 부어 부쳐낸다. 인제라를 부칠 때는 재료를 붓는 속도가 중요한데 이는 빈 공간을 채우다 보면 인제라의 두께가 제 각각이 되기 때문이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인제라가 익으면 매끄럽던 표면이 해면조직처럼 변한다. 익은 느낌이 들었을 때 살짝 뚜껑을 덮어놓으면 인제라가 완성된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가마솥 뚜껑 같이 생긴 도구를 이용해 인제라를 만들었는데 요즘 좀 사는 집들은 전기를 이용한 기계로 인제라를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만든 인제라에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여러가지를 올려 놓고 싸 먹는다. 무슬림들이 난이라고 생긴 아무 맛도 안 나는 밀가루빵으로 뭔가를 싸 먹는 것처럼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인제라에 뭔가를 싸서 먹는다. 막 부쳐낸 그대로의 인제라 위에 각 종 소스를 부어 싸 먹기도 하고 야채 같은 걸 올려서 싸 먹기도 한다. 보통은 부쳐낸 인제라를 돌돌 말아서 10센티 정도의 크기로 뚝뚝 잘라 접시에 수북이 담아내는데 그걸 각자의 접시에 가져가 이것저것 싸 먹는다. 인제라와 인제라 사이에 소스를 발라 몇겹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시루떡처럼 만들어 그냥 먹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집이든 식당이든 어딜 가나 인제라를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에티오피아의 Dire Dawa(에티오피아의 부산과 같은 곳)라는 곳이 수해 피해가 극심해 BBC와 CNN에서 그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었는데 이 곳에 도착하는 구호식품들 중에서 이 인제라를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식락이나 빵, 우유쯤이 제공될 텐데 여기서는 쟁반에 인제라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소스를 얹어 수재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 곳의 주식은 빵도 우유도 아닌 인제라기 때문이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 사람 눈에 이 곳 사람들이 맨 손으로 인제라를 먹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다. 멋지게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소스로 뒤범벅이 된 손으로 인제라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또 매니큐어를 예쁘게 바른 아가씨가 인제라로 접시 바닥을 싹싹 닦아가며 먹는 모습도 상상해 보라. 쟁반 하나에 인제라를 놓고 다 같이 조금씩 찢어가며 이것저것 싸 먹는데 인제라만으로 능숙하게 바닥까지 훑어 먹는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소스 같은 걸 인제라에 얹으면 인제라 표면으로 액체 같은 게 스며 흘러 나오는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꼭꼭 저며 에티오피아 사람처럼 먹는다는 게 아직은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먹을 때는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을 사용한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뭔가를 먹을 때 인도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오른손을 사용하지만 화장실에서 왼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화장실에서는 화장지를 사용한다(?)고 한다. 먹을 때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을 닦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쉽게 만날 수가 있다. 그러나 손톱이 길면 인제라를 먹을 때 아주 낭패다. 에티오피아에 갈 계획이 있다면 손톱을 바짝 깎고 가기를 강추한다. 저녁에 직접 부쳐낸 인제라를 접시에 올려놨는데 집에서 일하는 친구가 부쳐낸 인제라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모양도 두께도 고르지가 않다. 그래도 이 곳에서는 너무도 먼 나라, 코리아에서 온 친구가 만든 인제라라고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맛있게 먹어줬다. 아머세끄날로! (암하릭어로 Thank you!)       <윤오순>
  • “편견은 이제 버려”…코믹·퇴폐 발레가 온다

    “편견은 이제 버려”…코믹·퇴폐 발레가 온다

    발레가 귀부인처럼 우아하고, 고상하다고? 모르시는 말씀. 발레도 때로는 이웃집 아가씨처럼 장난기 넘치고, 선술집 요부처럼 퇴폐적일 수 있다. 못 믿겠다면 새달 잇따라 무대에 오를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10월14·15일 성남아트센터)와 스웨덴 출신 마츠 에크가 안무한 국립발레단의 ‘카르멘’(10월24∼28일 예술의전당)을 놓치지 마시길. 짝을 찾는 선남선녀의 좌충우돌 코믹극, 유혹과 질투로 점철된 처절한 난투극이 발레에 대한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날려버릴 것이다. 둘다 국내 초연작으로, 발레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는 흔치않은 기회다. ●이보다 더 코믹할 순 없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소문으로만 알려진 발레리나 강수진의 코믹 연기를 마침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애절한 표정과 몸짓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렸던 강수진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며 남자를 골탕 먹이는 고집불통 아가씨로 분한다. 섬세하고 절제된 표현력으로 드라마틱 발레의 주역을 독차지해온 강수진은 1997년 이 작품으로 처음 희극에 도전했다. 당시 레이드 앤더슨 예술감독에 의해 강제로 카트리나역을 떠맡았던 강수진은 자신도 미처 몰랐던 내면의 숨은 끼를 발산하면서 발레리나로서 폭넓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1960년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최정상에 올려놓은 안무가 존 크랑코의 작품.‘로미오와 줄리엣’‘오네긴’‘카르멘’등 고전문학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즐겼던 그는 말괄량이 아가씨가 온순한 아내로 길들여지는 과정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뛰어난 안무력을 가미해 재치넘치는 희극 발레를 만들어냈다. 2002년 ‘카멜리아 레이디’,2004년 ‘오네긴’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고국을 찾은 강수진의 변신이 기대를 모은다.5만∼18만원.(031)783-8022. ●이보다 더 치명적일 순 없다 토슈즈를 벗어던진 무용수, 허공에 자욱한 담배 연기, 대담한 성적 유희와 격투가 난무하는 무대…. 국립발레단의 ‘카르멘’은 파격의 연속이다.1992년 이 작품을 초연한 마츠 에크는 대머리 백조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로 국내에도 이미 소개된 적 있는 안무가. 유머가 깃든 독창적 안무로 유럽의 모던발레 선구자라는 찬사를 얻고 있는 그는 비제의 걸작 ‘카르멘’을 50분 분량으로 압축해 자신만의 기발하고, 독특한 시각으로 재창조해냈다. 마츠 에크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진행중인 이번 공연에는 초연 당시 카르멘을 연기했던 안나 라구나와 스위스 바젤발레단 주역 무용수 출신의 허용순, 독일 뒤셀도르프발레단 주역 무용수 유룩 시몬이 조안무자로 참여해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시아 초연인 만큼 무대 세트와 의상 등에도 해외 스태프가 참여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치명적인 유혹과 질투가 번득이는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 건 역시 무용수들.‘팜프 파탈’카르멘으로는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과 노보연, 영화 ‘셸 위 댄스’의 여주인공 구사카리 다미요가 번갈아 출연하고, 호세로는 장운규와 이원철이 더블 캐스팅됐다.‘카르멘’에 이어 비제의 음악에 조지 발란신이 춤을 입힌 ‘심포니 인 C’가 함께 공연된다.2만∼10만원.(02)587-618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英 “직장서 나이차별 NO”

    英 “직장서 나이차별 NO”

    영국에선 새달부터 나이를 이유로 고용하지 않거나 해고할 수 없다. 정년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늘어난다. 영국 ‘나이차별 금지법’은 아일랜드, 덴마크에 이어 유럽연합(EU) 평등규정을 따랐다는 점에서 향후 선진국들의 보편적 기준이 될지 주목된다고 BBC 인터넷판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나이차별을 부분 규제해 온 미국, 호주와 달리 영국은 채용과 승진, 해고, 직업훈련 등에서 65세를 넘지 않는 한 나이가 많거나 적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전면 금지했다. ●나이 암시하는 채용공고도 금지 이에 따라 영국 기업들은 앞으로 채용할 때 나이제한 규정을 둘 수 없다. 지원자의 나이를 단순히 물어볼 수는 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아스다’가 생일을 묻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선언하고 나서 벌써부터 파장이 크다. 채용공고에도 나이와 관련된 문구를 넣을 수 없다.‘팔팔한 젊은이 급구’,‘원숙하신 분 우대’ 등 이런 광고는 차별로 간주된다. 해고할 때는 65세가 되기 6개월 전에 통보해야 한다. 통보하지 않으면 65세가 넘어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노동자가 요청할 권리가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직업특성상 ‘객관적으로 정당한’ 경우는 허용되는데 가령 소방관이나 조종사처럼 강한 육체를 필요로 할 때다. 조종사의 정년은 60세로 뒀으며, 바텐더 등 음주관련 직종은 18세를 넘어야 한다. 군인과 자원봉사자도 법으로 예외를 명시했다. 따라서 명시되지 않은 예외들은 여전히 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10대를 겨냥한 의류점에서 젊은 아가씨를 고용하고 싶을 때 차별이 인정되는지 여전히 모호하다. ●고용주 40% “나이차별 분쟁 늘것” 특히 연금이 기업으로선 부담이다.65세로 늘어난 정년에 맞춰야 하는 문제 때문에 연금 적용은 12월로 시행이 늦춰졌다.‘고령화 대비 사용자 포럼’의 조사에서 고용주 40%가 “법적 분쟁의 절반 이상이 나이차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들은 청년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정부는 덴마크, 아일랜드 사례에서 무더기 소송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나이차별 금지가 고령자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어린 새내기 노동자에게도 혜택이라고 강조했다. 인턴사원이 교육이란 명분으로 동일노동에 저임금을 받는 현실이 새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정부와 개인연금 회사들은 거꾸로 부담을 덜 전망이다. 고령자를 배제하는 구조조정이 일반화되면서 정부가 지급해야 할 연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다분히 정부의 필요에 의해 도입된 만큼 기업의 호응은 아직 미지수다. 다만 인종, 성, 장애, 종교, 성적 취향 등에 이어 점차 나이가 차별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껄떡쇠 4명에 대해 일기써요”

    “껄떡쇠 4명에 대해 일기써요”

    “남자들, 정말 그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어 보는 게, 정말 처음 알았다는 표정이다. 남자 기자들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 그 덕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하기야 스물 두엇 즈음에 이런 질문 안 해본 여자가 어딨고, 거기다 대고 ‘오빠는 달라.’ 말고 똑바로 대답한 남자들은 몇이나 되겠나. 탤런트 소이현이 CJ미디어가 새로 만드는 케이블채널 tvN의 개국드라마 ‘하이에나’(10월11일 방영)에서 하나 부족한 게 없지만 성과 연애에는 0점인 ‘이정은’역을 맡았다.‘하이에나’의 주요 캐릭터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껄떡쇠’들. 직접 ‘강남 선수’를 인터뷰하는 등 주변 남자 인맥들을 총동원해 대본을 썼다는 이성은 작가의 말처럼 꽤나 사실성이 높고, 그러니 수위가 당연히 치솟는다. 야심한 밤에 케이블채널을 통해 방영될 프로그램이니 더 그렇다. 김민종·윤다훈·오만석·신성록 등 네 배우가 각기 다른 하이에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사이에 끼인 이정은은 어떤 역할일까.“말하자면, 일종의 ‘충격보고서’를 쓰는 역할이에요. 남자들의 세계를 알아가면서 받는 충격을 일기로 풀거든요. 드라마에서는 내레이션으로 처리 되고요.” 이를테면 ‘섹스&시티’에서 소설을 쓰는 형식으로 드라마를 정리하는 캐리 역할이다. 물론 거기에만 그치진 않는다.“그러면서 또 배우고 실천하려 드는 역할이에요. 남들이 하는 거 보고 놀라긴 하는데, 따라하려 들고, 그런데 뭔가 어설프고 안 섹시한 인물이에요.” 노출이 강할 법하다.“드라마에서 샤워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몸 전체를 찍은 건 처음이에요.” 한 마디 덧붙인다.“물론 가슴 아래 쪽은 대역이에요. 감독님이 전 벗겨놔도 안 섹시하대요. 호호….” 정말 남자에게 궁금한 건 뭐가 있을까.“여자의 어떤 부분을 보고 반하는지요.” 또래 아가씨들의 평범한 호기심이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궁금증은 조금 풀렸을까.“여자들은 대개 성격이나 유머 이런 거 보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정말 심하게 따지는 거 같아요. 몸매, 가슴, 다리, 얼굴을 보고 그 다음에 성격이나 그런 걸 보잖아요. 이번에 그런걸 보고 느끼면서 조금 놀랐죠.” 얼마 전 방송에서 공개했던 남자친구는 어떤 하이에나 같냐고 물었더니 그냥 배시시 웃을 뿐이다.“그냥 또래 여자들이 하는 그런 만남이에요.” 아무래도 자기 남자친구는 하이에나가 아니라고 믿는 듯했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깔깔깔]

    ●명동으로 갑시다 술 취한 사람이 명동에서 택시를 불러 세우고는 “명동으로 갑시다!”라고 했다. “여기가 바로 명동인데요.”라고 택시기사가 말했다. 취객은 만원을 운전사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다음번엔 이렇게 빨리 운전하면 안돼요.” ●개종 젊은 가톨릭교 아가씨가 어느 개신교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그 아가씨의 어머니는 그 둘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청년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승낙하겠다고 했다. 아가씨는 자기의 남자 친구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후, 어머니:“얘야, 왜 울고 있니?얼마 전에는 그 청년이 거의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니?” 딸:“그게 문제예요. 너무 성공하고 말았어요. 그는 사제가 되고 싶대요.”
  • ‘죽여도 좋다’ 각서를 쓸때

    ‘죽여도 좋다’ 각서를 쓸때

    연약한 여자를 고위층과 친분이 두텁다고 속여 정조를 유린한 다음, 못질을 한 방에 가두고 폭행을 일삼는 등 모진 학대를 해온 파렴치한이 경찰에 붙들렸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월 16일 자칭 철도청 영등포 공작창 화물 하역소장이라는 민병진(閔丙振)(35)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여심(女心)을 울린 이 사기한의 행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민(閔)은 지난해 9월 10일, 전직 국회의원 金모 여사의 중매로 알게된 신정숙(申貞淑)양(24·가명·서울영등포구 상도동)을 총각이라고 속이고 농락한 뒤 강제로 자기 집 방에 가두어 놓고 모진 학대를 하며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모여인으로부터는 돈까지 갈취했다는 것. 주로 처녀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해온 민(閔)이 행여나 다른 여자에게 또이런 사기행각을 할까 두려워 경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신(申)양은 한숨짓듯 말한다. 민(閔)의 사기극에 걸려들어 감금생활을 하면서 학대를 받아오던 신양의 입을 통해 그의 행각을 들어보면-. 신(申)양이 민(閔)을 알게된 것은 지난해 9월. 이미 작고한 신(申)양의 아버지가 어느 고을 군수로 재직때 뒤를 도와주던 전직 국회의원 김모여사의 중매로 맞선을 본 것이 신(申)양에게 인간 지옥 속을 헤매게 한 동기였다. 지난 해 9월, 신(申)양과 민(閔)이 맞선을 보는 자리에는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여인과 중매를 선 김여사가 자리를 같이 했다. 김여사의 신랑감에 대한 칭찬은 정(鄭)여인으로 하여금 딸을 맡겨도 안심이 될 정도로 홀딱 반하기에 충분했다. 소개가 끝나자 두 여인은 이 남녀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위해 자리를 떠났다. 민(閔)은 신(申)양에게 자신이총각이라면서 35세가 되도록 장가를 못간 것은 청년운동을 하다 때를 놓친 때문이라면서 자기 소개를 그럴듯 하게 청산유수 처럼 늘어놨다. 『그 사람 첫 인상은 별로 탐탁치 않았지만 그만 그의 감언이설에 제가 속은 것이지요』 신(申)양은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민(閔)은 신(申)양에게 『앞날의 설계를 세울 우리 집을 가보자』고 유인, 민을 따라간 신(申)양은 그 날로 그의 집에서 정조를 빼앗겼다. 그가 신(申)양에게 들려준 학력과 이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학생운동에 참여해 오다가 도덕재무장 한국본부 부총장을 거쳐 대한 국토건설단 중앙단 부단장, 전국 청년단체연합회 기획위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국민도의선양회 회장에 있노라고 제법 굵직굵직한 직함들을 장광설로 늘어놓았다는것. 신(申)양은 민(閔)의 거짓말이 뻔히 들여다 보일 때도 남자의 허세이거니 생각하고 탓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민(閔)의 가면은 신(申)양앞에 하나씩 그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閔)은 자신의 가면을 벗기지 않으려고, 차차 의심을 품기 시작한 신(申)양의 어머니를 찾아가 신(申)양과 약혼식을 올려줄 것을 강요하면서 만약에 이를 거절한다면 폭탄을 들고와서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민(閔)의 강압에 못이긴 정여인은 지난해 10월 25일 8만원을 들여 약혼식을 올려주었다. 민(閔)은 전처의 소생이 3명이나 있는 홀아비. 신(申)양은 약혼식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신(申)양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민(閔)은 신(申)양의 태도가 점점 자기 곁을 빠져 도망칠 것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지난해 11월 2일부터 밖에 나갈 때는 신(申)양을 방에 가두고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민(閔)은 신(申)양을 방에 가두고 방문을 쇠창살로 굳게 못질하고 큰 자물쇠를 채워놓고는 식사는 식모를 통해 부엌으로 통하는 샛문으로 들여보내게 하고 대소변까지 방안에서 보도록 했다. 『작년 가을이었읍니다. 일요화가회에서 미술전을 열었을때의 일입니다』 그때 민(閔)은 신(申)양이 보는 앞에서 방문객 「사인」난에 「金鍾X형」이라고 쓰고는 『이래도 날 의심하느냐』고 할 정도로 지능적이었단다. 신(申)양은 68연도 M미술대학 서양화과를 나온 아가씨. 『그래도 저는 모든 것을 믿으려 했읍니다.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읍니다. 아마 학대만 하지 않았어도 그를 고발치는 않았을 것』이라고 신(申)양은 한숨짓는다. 그의 감시·학대벽은 점점 극에 달해 하다못해 극장에서 화장실을 가면 여자화장실까지 쫓아와 도망치려고 하느냐면서 마구 엉덩이를 구둣발로 차기도. 이런 날은 집에 들어와 단도를 빼어들고 『배반하면 죽여버려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강요하기가 일쑤였다. 만일 신(申)양이 각서를 쓰지 않으면 뜨거운 주전자물을 머리에 붓는 등 그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했다. 그 때 그가 신(申)양의 머리에 부운 물에 신(申)양은 화상을 입고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이렇게 난폭한 민(閔)은 항상 주머니에 명함대신에 요인들과 찍은 사진 3장을 넣고 다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할때는 사진을 내보이며 요인들의 팔과 같은 일꾼이라고 속여 청와대를 무상으로 출입한다고 큰 소리쳐 왔다는 것. 딸의 이런 생활을 까마득히 모르던 신(申)양의 어머니 정(鄭)여인은 신(申)양이 지난해 12월 29일 수면제를 먹고 음독자살을 기도했을 때야 뒤늦게 알고 경찰에 고발했다. 지금은 K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申)양은 『더 이상 상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 때의 감금생활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난다고 부르르 떨었다. 경찰이 민(閔)의 집을 수색한 결과 그의 「캐비니트」 속에서 신(申)양 이외에도 다른 여자로부터 『배반하면 죽여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발견, 경찰은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민(閔)은 경찰신문에 1건의 전과도 없다고 딱 잡아떼어 그의 사기술을 활용하려다 지문조회결과 68년 6월28일자 서울 서대문서에서 폭행혐의로 구속된 것을 비롯, 전과 5범으로 판명됐다. 민은 경찰에 검거되던 날도 전화로 당직형사계장을 찾아 『나같이 높은 사람이 어떻게 경찰에 출두할 수 있겠느냐』면서 담당형사가 직접 찾아와 조서를 받도록 하라고 호통을 칠 정도로 허풍을 떨었다. 장석영(張錫英)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딸자랑] 변호사申淳彦씨 둘째딸 善華양

    [딸자랑] 변호사申淳彦씨 둘째딸 善華양

    변호사 신순언(申淳彦)씨는 주위에 다복한 가장(家長)으로 소문이 나 있다. 미남 미녀의 자녀를 그것도 6남매나 두고 효도(孝道)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지금 가장 효도 삼매경의 처지에 있는 게 둘째따님 선화(善華)양. 대학 졸업 후 2년동안 줄곧 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다. 『우리 집은 요새 부모답잖게 효도만은 마음껏 받고 있죠.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부모 밥상만은 꼭 딸들이 차려서 저희들이 들고 들어와서 권합니다』 신순언(申淳彦)씨는 흐뭇한 표정이다. 3남3녀 중에 순서로는 다섯째, 딸로는 둘째 딸인 선화(善華)양은 청덕여고를 거쳐 덕성여대 상과를 졸업한 1946년생. 바로 위가 언니인데 CPA 의 「스튜어디스」. 효도하는 버릇은 이 언니에게서 부터 실천되던 가풍(家風)이란다. 『고등학교만 들어가면 부엌에 나가서 일하는 걸로 돼있어요. 제 언니때부터』웬만하면 불평들을할텐데 재미가 나서들 한다고 어머니 손(孫)여사도 늘 기특해 하고 있다. 『정성을 들여서 그런지 얘 요리솜씨가 이 아버지 입에는 썩 맛있어요. 어떤 때는 요리책을 보고 창작을 하는데 잘 만들거든요. 음식점 것 보다 낫다고 칭찬을 해주죠』 그래서 아버지 신순언(申淳彦)씨에게는 사무실과 자택이 하루의 직행 「코스」로 결정돼 있다. 고교 때부터 부엌일 돕고 아빠 시중 잘드는 글래머 『아버지께선 보수적이시고 대하기 어렵지만 정말 가정적이세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밖에 나왔다가도 아버지께서 들어와 계실 시간이면 얼른 들어가 시중 들어드려야 한다고 서두르니까 친구들에게 핀잔을 받죠』 방안을 온통 환하게 만들어 버릴 것처럼 화사하게 웃으면서 선화(善華)양은 아버지 자랑을 한다. 『그렇다고 무취미한 아이도 아니어서 신통합니다. 어려서 부터 예술방면에 소질을 보였어요. 고전무용으로 무대에도 더러 섰지요』 본업으로 삼게하고 싶지않은 부모 뜻에 좇아서 이제는 무용쪽은 폐업을 했단다. 『덕성여대 졸업반 때는 학교에서 「퀸」을 정하는데 뽑혔더군요. 그리고 나니까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나중에는 무슨 영화사에서 출연교섭이 와요. 아예 안된다고 호통을 쳐 주었지요』 대학(大學) 땐 「퀸」으로, 영화출연 교섭받기도 67년 연방영화사에서 몇편의 영화를 갖고 한동안 교섭이 왔었단다. 부모뜻을 어겨본 일이 없는 선화(善華)양은 미련도 없이 거절했다. 역시 재학시절이지만 TBC-TV 아침방송 『생활의 지혜』사회도 한동안 맡았었다. 그런 쪽에서 탐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미모의 아가씨다. 1백 64cm, 체중 53kg, 체위 35-23-36「인치」니까 수준이상의 「글래머」. 『양재학원에 다니면서 바느질도 배우고 틈틈이 수(繡)를 놓는 것이 요즘 얘 일과입니다』 『효도 받는 것이 흐뭇한 한편 우리 내외는 어깨가 무겁습니다. 막내딸은 아직 어리지만 선화(善華)까지 합쳐서 위의 5남매가 모두 매사에 「부모 뜻 대로」하라는 순종형이에요. 연애할 생각도 한번 안 하거든요. 그러니 걱정은 안 시켜서 좋으나 좋은 배필 구해줄 책임이 여간 무겁습니까? 한창 나이인데 무단외출 한반 안하니까요』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이분득(李分得)양 - 5분 데이트(66)

    이분득(李分得)양 - 5분 데이트(66)

    『여고 졸업한 뒤 곧 취직이 되어서 벌써 5년이나 은행원 생활을 하고 있어요。그동안 직장생활이 여성수업(女性修業)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본 일은 한번도 없었어요』고운 반달 눈썹밑에서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한다。 경남 김해가 원 고향이고 부산진여상(女商)을 나온 경상도 아가씨。 사투리는 음악적인 「리듬」을 말끝에 넣어 줄 정도인데 음성이 무척도 낮고 조용하다。사투리가 자랑처럼 공중 앞에서 버럭버럭 음성을 높이는 현대형은 아니다。『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서 수를 붙잡고 앉아요』 학교때 재봉·수예 선생님의 애제자였다。어느 핸가는 수 병풍이 국제전에서 입선한 적도 있는 「베테랑」급。『월급은 일어(日語)학원의 월사금과 교통비 면제하고는 적금을 들고 있어요』 주산 1급에 「타이프」도 곧잘 치는 A급 사무원이지만 꿈은 「패션·디자이너」。 『대단한 명성을 얻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조그맣게 자기 「워크·숍」을 갖고 자립하는 생활이 꿈이에요』일어(日語)강습도 혹시 일본(日本)에 가서 「디자이너」수업을 하게 되면 싶에서 - 받고 있다。 공무원인 오빠와 단 남매。아버지는 작고하셨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요즘은 또 새로운 취미를 개발했다。등산과 「클래식」음악감상。 『「오페라」가수 「스테파노」를 제일 좋아해요』 [선데이서울 70년 1월25일호 제3권 4호 통권 제 69호]
  • [길섶에서] 옐로하우스/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인천의 집창촌인 ‘옐로하우스’는 지난날 서울의 대학가에서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했다. 술자리에서 풀어대는 ‘썰꾼’들의 스토리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게 뻔했지만, 얘기를 듣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진지했다. 특히 “아가씨가 아침에 옷 다려주고 양말도 빨아준다.”는 대목은 살벌한 서울 사창가와 대비돼 신선감마저 주었다. 때문에 옐로하우스는 ‘짠 당구’와 함께 인천을 상징하는 ‘전설’로 통했다. 말로만 떠벌렸지 실제로 가본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환상은 더욱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취재차 들른 옐로하우스는 일반 숙박시설처럼 단정했다. 머릿속에 각인된 노란색은 찾기 힘들었고 붉은 벽돌로 된 집들만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 역시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다. 상당수가 다른 업종으로 전환했으며 종사 여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 업소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대원들이 마지막으로 회포를 풀었다는 이곳도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 신부 저승에 홀로 잠들었건만

    신부 저승에 홀로 잠들었건만

    27세의 젊은 시인이 죽은 약혼녀의 사진을 들고 결혼식을 올렸다. 마침 이 날은 죽은 약혼녀의 4·7제(만 28일째)를 지내는 날이자 두 사람의 결혼식 날로 택일해 두었던 날. 싸락눈이 내리던 1월 10일 서울 신흥사(新興寺)에서 있은 일이다. 독경속에 사진 안고 입장 손님들이 먼저 울어 버려 이 날 하오 3시. 신흥사(新興寺) 대법당은 조촐한 결혼식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신랑 XXX군, 신부 XXX양의 결혼식장이란 알림쪽지도 붙어 있지 않았다. 법당안엔 주례를 맡아 볼 주지스님과 25명 남짓한 하객(?)들이 말없이 앉아 있을 뿐. 이윽고 대법당의 문이 열리고 신랑 성영일(成英一·27·서울성북구)이 검은 띠를 두른 신부의 사진을 들고 입장했다. 「웨딩·마치」대신 주지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랑했다. 약 10분간에 걸린 이 산신랑과 죽은 신부의 결혼식은 조용히 진행되었다. 이따금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하객들이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뿐. 식이 끝나기 전에 끝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신부의 어머니가 터뜨린 울음을 신호로 결혼식장 안은 온통 울음 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끝내 울지 않은 단 한사람이 있다. 신랑 成군이었다. 成군은 식이 끝날 때까지 울지 않았을 뿐더러 식이 끝난 다음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장인·장모를 부축해 약1백m 떨어진 피로연 식장까지 모셔갔다. 성급한 놀이꾼들의 장구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열린 피로연 식장서도 신랑은 끝내 울지 않았다. 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신부쪽 일가친척들. 신랑쪽이라곤 신랑의 절친한 친구 3명밖에 없었다. 신랑쪽 부모는 물론 친척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목메이는 울음 참던끝에 신랑은 신부이름을 외쳐 1시간반 남짓한 피로연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돌아간 뒤 맨 마지막으로 신랑 成군이 친구들과 함께 눈 길을 내려왔다. 길이 미끄러워서였을까? 신랑 成군은 비탈길을 내려오다 그만 눈구덩이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신랑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아야- 』 두 남녀가 서로 알게 된 것은 두 사람 모두 20세 되던 해 여름이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던 成군은 우연한 모임에서 이영(李映·가명·신랑과 동갑)이란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E여고를 졸업, E여대 가정학과에 재학중인 아가씨였다. 두 사람은 서로 첫 눈에 사랑을 느껴, 이후 7년동안 한시도 보지 않고선 못견딜 사이가 되었다. 신랑 成군은 H고교를 졸업, 모대학 불문과를 졸업했고 62년도엔 모신문 신춘문예 詩 부문에 당선하기도. 李양은 D철강 사장을 아버지로 둔 6남매의 셋째 딸. 6남매중 가장 똑똑하다하여 온 집안의 귀염을 독차지해온 아가씨였고 成군은 장남.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차례 파란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끝내 69년 12월6일 약혼식을 갖게 되었다. 12월6일 약혼하면서 두 집안서 결혼날짜로 택일해 두었던 날이 바로 1월10일. 그러나 죽음의 신이 돌연 덮쳐왔다. 약혼식이 끝난지 나흘뒤인 12월10일, 李양은 원인모를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급히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월12일 병상에서 숨지고 말았다. 정확한 병명은 의사들도 내리지 못한 채 사망진단서엔 급성뇌염으로 적혀 있었다. 장인·장모는 가슴이 아파 훌훌 서울을 떠나버리고 처음엔 成군의 집은 물론 李양의 집에서도 펄쩍 뛰었다. 成군의 장인이 될 李양의 어버지까지도 『내 딸을 잊지 못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젊은 사람이 장래를 생각해야지』 하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成군은, 막무가내. 두 집안에서 다 반대하면 혼자서라도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우겼다. 마침내 李양 집에선 成군 부모들을 찾아가 동의를 얻은 뒤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른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뒤 成군의 장인은 成군을 「자네」라고 부르며 하루 빨리 자기딸을 잊고 새 장가를 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언제든 우리 집을 찾아오면 사위 대접을 하겠다』고. 죽은 딸에게서 사위를 본 이 장인·장모는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인 11일 아침 9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떠났다. 가슴에 맺힌 슬픔이 풀릴때까지 서울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이 날 제주도에 갔어야 할 장본인은 成군과 죽은 李양. 즐거운 신혼여행길에 올라 있어야 할 신랑 成군은 결혼식 올리던 날 밤 윗 동서와 친구들과 어울려 무교동 거리에서 술에 취해 있었다. 술취한 신랑은 친구에게 “그녀는 어엿한 나의 부인” 成군은 친구들에게 『비록 육체는 없어도 영아는 이제 내 본부인이란 말야』 하며 주정을 했다. 그가 굳이 결혼식을 고집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첫째 이유가 李양과의 결혼식을 올려 눈 감지 못하고 죽었을 李양을 위로해 주자는 것. 둘째는 자기자신을 위해서.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자기사랑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다음이 장인·장모들을 위한 마음. 평소 자기를 친아들 이상으로 잘 대해주던 장인·장모에게 결혼식으로나마 효도를 하고 싶었다고. 아직 27세니까 물론 앞으로 다시 결혼해야 할 젊은이다. 成군 자신도 다시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成군에 의하면 그 결혼은 자신에게 재혼이 될 것이며 李양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조강지처로 있으리라는 것. 『누군들 재혼이야 안하느냐?』는 게 成군의 주장. 결혼식 날 밤 成군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 李양이 생전에 보내온 사랑의 시들을 읽었단다. 이틀 뒤인 12일 월요일 成군은 아침 9시정각, 직장에 출근했다.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깔깔깔]

    ●멋진 간판 장난감 가게 주인은 기가 막혔다. 장사가 잘되기로 소문난 자기 가게 바로 왼쪽에 다른 장난감 가게가 들어선 것이다. 새로 문을 연 가게는 커다란 간판을 내걸었다. ‘최고상품 취급’ 며칠 후 이번엔 오른쪽에 또 다른 장난감 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그 가게도 커다란 간판을 내걸었다. ‘최저가격 보장’ 졸지에 두 가게 중간에 끼이게 된 주인은 며칠 밤을 고민했다. 그리고 커다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 간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주출입구’●영업사원의 성공 비결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외판을 해서 대성공을 한 영업사원이 성공의 비결을 밝혔다. “그건 첫마디가 중요합니다. 문을 열어주는 여자에게 무조건 한마디 하는 겁니다.‘아가씨, 어머님 계신가?’라고요.”
  • 미스·수산개발공사(水産開發公社) 장재연(張在演)양 - 5분 데이트(65)

    미스·수산개발공사(水産開發公社) 장재연(張在演)양 - 5분 데이트(65)

    『아직 오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직장생활이 정말 재미 있어요. 고달프다든지 싫증 난다는 친구 언니들 얘기가 좀 이상할 정도예요』 그 말이 사실인 것은 그늘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그 얼굴의 귀티가 나는 표정이 증명을 한다. 수산개발공사(水産開發公社)에 취직한지 1년이 채 못된 장재연(張在演)양. 『이름이 꼭 남자 같아서 놀림도 더러 받아요』 그러나 허리가 한 줌에 잡힐 듯 얄팍하고 양순하게만 보이는 모습은 더 없이 여성(女性)스럽다. 상업을 하는 장준재(張濬梓)씨의 4남1녀중 맏딸. 이화여고를 거쳐 이대(梨大)를 작년에 졸업한 47년생. 『결혼 같은 것은 생각도 안해봐서 신랑감의 뚜렷한 이상형도 없어요』 그런 일에 보다는 「스포츠」쪽에 훨씬 관심이 깊은 아가씨다. 배구는 「프로」급에 속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 여름에는 수영을 즐긴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니까 주말외에는 「스포츠」에 낼 시간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그 대신 다른 취미에 좀 더 시간을 보낸다. 『「클래식」음악을 많이 들어요. 「월츠」를 좋아하죠. 「푸른 다뉴브」를 제일 좋아해요』 학교에서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했고 「피아노」도 「아마추어」 연주가급(級). 지금도 가끔 「피아노」를 혼자서 쳐보는 「로맨티스트」. [선데이서울 70년 1월18일호 제3권 3호 통권 제 68호]
  • [길섶에서] 미용실 아가씨/이호준 뉴미디어국장

    동네에 하나 있던 ‘보통 이발소’가 문을 닫은 뒤로 머리를 깎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머리 손질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도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 일쑤다. 갈 곳이라고는 미용실밖에 없는데, 아주머니들이 ‘상주’하는 그 곳의 문을 여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단골 미용실이 생겼다. 그 곳에 정착하게 된 건 순전히 미용사 아가씨의 친절 덕분이다. 그녀는 누가 문을 열면 뛰어나갈 듯 반갑게 인사를 한다. 종일 서 있으니 피곤하련만, 얼굴은 늘 보름달처럼 밝다. 머리 손질도 꼼꼼하게 정성을 다한다. 또 손님과 대화하는 걸 즐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물론 자신의 애인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친절이 항상 달가운 건 아니다.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할 땐 대화를 꺼리는 나로서는, 그런 호의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웃는 낯에 찬물을 끼얹을 만큼 독하지 못하니 그저 맞장구를 치는 수밖에…. 그래도 매달 한번씩 그녀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 노인 돌보기 ‘老’가 나섰네

    노인 돌보기 ‘老’가 나섰네

    “총각, 잘 지냈어. 아픈 데 없고….” “형님, 오셨어요. 아가씨는요?” “만날 우리 홍일점만 찾나.” “맛있는 것만 갖다 주는 분이니까 좋아하죠.” 지난 1일 서대문구 천연동 뒷골목 낡은 전세방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립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 소속 어르신 4명이 홀로 사는 김모 할아버지를 방문한 것이다. 동네 꼬마들이 친구에게 장난치듯 어르신들 대화가 정겹다. 김재현(69)할머니가 부엌에 들어가 가져온 도시락을 챙기며 “집이 깨끗해야 건강하다.”고 잔소리를 한다. 장근춘(75)할아버지는 “침대가 넓구먼. 같이 잘까.”하고 농을 던진다. 김 할아버지도 “잠버릇이 험해 형님이 발에 차여서 안 된다.”고 응수한다. 또 한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장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도 총각, 아가씨라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특별한 호칭’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들 어르신은 지난 3월부터 건강한 노인(65세 이상)이 생활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Care)’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매주 화·금요일 독거노인 12명을 방문해 도시락을 전달하고 혈압을 측정한다. 작성한 건강기록표를 보건소가 수시로 확인해 독거노인의 건강을 관리한다. 활동비로 매달 20만원을 받는다. 어르신 10여명은 방문일 오후 1시쯤 복지관에 모여 독거노인(47명)에게 배달할 도시락을 챙긴다. 생활형편과 건강상태에 따라 도시락 내용물이 달라 꼼꼼하게 확인한다. 이날은 겉절이김치·연근·나물무침·김, 죽·흑미찰밥, 요구르트·배 등 내용물이 다양했다. 어느새 배달 손수레가 가득 차올랐다. 1조인 장 할아버지 팀은 분업과 협동이 잘된다. 장 할아버지는 혈압 측정을, 안중기(70) 할아버지는 건강기록표 작성을, 이기석(73) 할아버지는 손수레 운반을, 김 할머니는 도시락 배달을 맡는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이심전심으로 정해졌다. 방문할 때도 이들만의 노하우가 있다. “돈이 없으니까 지하방이나 옥탑방에 살거든. 혼자 살고 더우니까 속옷만 입고 있는 사례가 많아. 그래서 총각 집은 남자가, 아가씨 집은 여자가 먼저 들어가지.” 또 혈압이 조금 높게 나와도 노인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혼자 살다 보면 작은 일에도 금세 마음이 상하기 때문이다. 노노케어를 하다보니 마음도, 몸도 건강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할아버지는 “비슷한 처지라 말 몇마디로도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힘을 많이 얻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달로 계약 기간이 끝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일에 익숙해질 만하니까 끝난다.”면서 “건강한 노인들이 꾸준히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정부는 노노케어 등 노인일자리 사업에 한 노인이 7개월만 참여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새해첫날밤에 첫날밤을 꾸민한쌍

    새해첫날밤에 첫날밤을 꾸민한쌍

    『1970연대의 첫 발을 내딛는 오늘 1월1일 정초의 뜻 깊은 순간에 새로운 삶의 항로에 나서는 신랑·신부에게 축복을 드려 마지않습니다』- 주례를 맡은 사람도 이 이상 반가운 일이 없다는 듯. 70년 1월1일을 골라서 식을 올린 어느 결혼식장의 어느 신랑·신부. 문닫은 상가 한복판에서 설잔치 아닌 결혼잔치가 그토록 붐비던 서울시내의 여러 결혼예식장도 이날 만은 조용했다. 「셔터」를 내리고 직원들은 연휴를 즐기려는 태세에 들어갔다. 사실 1월1일 남들이 일손을 쉬고 새해를 맞는 이날에 결혼식을 올리려는 엉뚱한 신랑·신부는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세상은 넓다. 「웨딩·마치」를 울린 젊은이가 서울에 있었다. 결혼예식장 경영자의 처지로서도 달가운 날이 못된다. 아무리 「서비스」업이라지만 남이 놀 때는 놀고 싶다. 단한쌍의 결혼식을 위해 직원들을 특근시킨다면 적자를 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정초의 결혼식은 반가운 일이고 새해의 행사 치고는 운수대통의 조짐이라고 해서 선뜻 그날을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신랑·신부도, 예식장 주인도 정월 초하루라는 날짜에 혹해서 잔치를 벌인 셈이다. 식은 서울 종로5가에 자리잡은 이화예식장에서 올려졌다. 신랑은 박응준씨이 장남 주섭군(27·농업·경기(京畿)도 광주(廣州)군 오포면 문현1리), 신부는 이용애씨의 질녀 연숙양(23·무직·서울 동암동), 주례는 김동모씨(전대한「메리야스」협회이사장).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이날의 예식을 받기로 했다는 예식장쪽의 말대로 이날은 신랑·신부, 하객, 그리고 예식장의 3자가 모두 2중의 축하기분에 들떴고 순전히 그 기분 하나로 만족한 것이다. 이날의 예식을 무사히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저 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 신랑쪽 이유의 제일 큰 것은 새 가정을 꾸미는데 있어서 70연대의 시발점인 1월1일을 택하면 온누리의 보이지 않는 축복을 받을 것이고 평생토록 결혼 날짜를 잊지 않을 것이니 경삿날로는 얼마나 안성맞춤이냐는 것이다. 농촌근대화 앞장선 신랑 부모와 처가를 설득시켜 신랑 박주섭군은 현주소에서 태어나 광주(廣州)고교를 졸업하자 부모를 모시고 약 4천평의 논밭과 약 1천평의 과수원과 씨름하는 농군이 됐다. 요즘은 과수원 3백평을 헐어서 「비닐 · 하우스」를 만들고 상치를 심어서 전통적인 주곡(主穀)생산에서 부업에 의한 농가소득증대의 한 「모델·케이스」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농촌근대화 전위부대의 일원. 그만큼 그로서는 아버지 박응준(50)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 고향에서 돼지잡고 소잡는 결혼식에는 반대였다. 근대화와 간소화의 바람이 부는 시대에 자기 결혼식 하나만이라도 모범을 보여 경비를 절약하고 합리적으로 올려보자고 생각했다. 신랑·신부는 맞선을 보고 69년9월에 알게 됐다. 12월에 식을 올리기로 했지만 식장의 예약이 잘 안되는 동안에 신랑에게 명안이 떠올라 1월1일로 잡았다는 얘기. 설마 1월1일에는 식장이 만원이 아니겠지… 자기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치고 혼자 좋아했다. 그러나 넘어가야 할 벽이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첫째가 부모를 설득하는 것. 부모, 특히 어머니는 맏며느를 보는데 신이 나서 사주장이에게 음력 날짜를 받아왔는데 아들에게 거부권을 행사당해서 불만. 약 70호가 사는 동네에서는 국수를 못먹게 됐다고 야단. 신부집에서는 1년 열두달 하고많은 날 중에서 남들이 다 쉬는 날을 택할 것이 무엇이냐고 반대. 청첩장을 돌려도 올 사람이 적을 것이니 자연 결혼식이 쓸쓸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신부쪽 반대의 제일 큰 이유였다. 이 3자를 다 납득시키는 데도 무진 힘이 들었지만 그다음에는 식장을 잡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결혼예식장은 예식장이라기 보다 젊은 부부를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콤베어·벨트」에 싣고 대량생산해 내는 공장과 같다고 해도 과연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10쌍의 부부를 마구 「찍어내야」수지가 맞는다. 이 부부 한 쌍만을 위해서 선뜻 식을 올려 주겠다는 장소가 서울시내 예식장이 많다해도 그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이화예식장. 여기는 실내 주차장이 있어서 이 날 전세 「버스」로 상경할 고향사람들을 위해서도 편리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예약교섭을 벌인 결과 처음에는접수담당의 아가씨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그 날은 다 노는 날인데요』 - 여러 예식장에서 들은 소리를 또 들은 것이다. 예식장측선 큰 경사라고 식장비 안받고 무료봉사 그가 요구한 「홀」은 1백50명을 수용하는 5천원짜리. 예식장쪽이 거절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5천원을 위해 4층까지 있는 「빌딩」의 전 기능을 움직이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 예식장이 그 혼례를 받기로 한 것은 채산을 도외시한 사장 백낙균(白樂均)씨의 용단에서였다. 白씩의 설명을 들어보면 - 『이 한 건의 결혼식을 올려서는 수지는 맞지 않습니다. 그 식을 올려 드리기로 한 것은 정초에 반가운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예식장 경영 20년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서비스」를 하기로 결심했죠』 그래서 「홀」사용료를 안받고 무룡봉사하기로 했다. 『새신랑·신부는 복을 갖다 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이렇게 해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결혼당일 낮12시 30분 전에 광주에서 신랑의 친척과 하객을 싣고 전세「버스」가 도착했다. 신부의 화장도 특별봉사하는 예식장 전속 미용사에 의해 깨끗이 끝났다. 정오, 예식장의 3층 2호실에 특별출근한 예식장의 전속 「피아니스트」의 부드러운 손길로 「웨딩·마치」가 울려 펴졌다. 식이 끝난 뒤 신랑·신부는 절약한 돈 5천원을 살려 더 여유있는 신혼여행을 유성온천으로 떠났다. 이 결혼식을 제일 반가와 한 사람은 무료봉사로 손해를 본 예식장 사람들이지도 모른다. 이들은 경사 치르는 우리집에 2중경사가 겹쳤다고 신랑·신부를 신주 모시듯 했다. 예식장주인 白씨는 신랑·신부에게 꽃다발을 증정하고 「빌딩」입구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그것은 70년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흐믓한 잔치였다.[선데이서울 70년 1월11일호 제3권 2호 통권 제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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