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아가씨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질병관리본부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존댓말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현대가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군사력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04
  • 마누라도 참다못한 목사님「프리섹스」

    마누라도 참다못한 목사님「프리섹스」

    『「섹스」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처자를 버려두고 놀아나던「카사노바」목사가 아내의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광주(光州)시 모 종합병원의 목사 박형주(朴炯柱·31)씨가 성직자(聖職者)에서 성직자(性職者)로 둔갑한 이야기. 결혼하자 남편 소행알고 호소하고 설교도 했으나 62년 충남 대전시 D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모 신학교 3학년에 편입, 성직자로서의 교육을 마친 다음 광주 제중병원 원목으로 근무하던 박형주(朴炯柱)목사는 65년 8월14일 충남 대전시에 있는 어느 외국인 선교사 집에서 현재의 부인 허(許)모여인(29)과 찬물 한그릇을 떠놓고 문자그대로 재건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기전 넘지 못할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식을 올려야만 했던 허여인에게 박목사의 달콤한 속삭임은 모두 진실로만 들렸다. 그러나 두사람의 결합은 식을 올리자마자 먹구름이 일기 시작. 결혼을 하고 난 뒤 허여인은 박목사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린것. 그러나 허여인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이제부터 새출발하면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나 박목사의 여자관계는 날이 갈수록 더욱 난잡해지기만 했다. 허여인은 만인의 귀감이 돼야 할 목사로서의 몸가짐을 조심하라고 충고도 하고 성경에 있는 귀절을 들려주며 성직자의 길을 지키기를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와 놀아나는데 맛을 들인 박목사 귀에 아내의 설교가 들어올리 만무. 식모 손대고 홍등가 출입 놀아난 이야기 자랑삼아 법무부 대전소년원 원목으로 2년동안 일하다 67년 11월25일 종합병원의 목사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친정에 가고 집을 비운새 박목사는 식모 이경순양(당시16·가명)을 자기 방으로 조용히 불러들여 가까이 앉히고는 변태적인 장난을 강요했다. 질겁한 이양은 얼마뒤 그 집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박목사의 추태는 이 사실만이 아니었다. 그는 1주일에 한두번은 홍등가를 드나들어야 직성이 풀릴만큼 정력(?)이 왕성한 사람. 박목사가 의외로 한달 동안 아내에게 접근하지 않기에 수상하게 생각한 허여인은 그 이유를 따졌다. 끔찍한 대답-『성병에 걸렸다』고 고백을 하더라는 것. 허여인은 남편과 같이 약을 먹어가며 속죄의 뜻으로 기도했단다. 그러나 박목사는 구약성서를 아내에게 그릇되게 풀이해 들려주며「섹스」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자기 멋대로의「프리·섹스」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허여인은 남편의 외도를 원망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아내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한것이 아닌가』하고 여러모로 남편시중에 신경을 쓰며 남편이 마음돌릴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박목사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놀아난 이야기를 자세한 부분까지 아내에게 고했다. 이럴 때마다 허여인은 회개하라고 타이르며 함께 손을 모았다. 남편의 마음은 점점 믿을수 없이 변해갔다. 남편의 퇴근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마음이 돌아설 기미는 전혀보이지 않았다. 허여인은 마침내 남편에 대한 희망을 단념했다. 마음을 모질게 먹고 남편의 꼬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병원교회 목사를 기화로 입원한 아가씨 환자하고 마침 3월22일은 박목사의 생일. 준비 해놓은 보람없이 새벽3시가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이 양반이 이젠 자기 생일도 몰라 볼만큼 여자에 미쳤구나』- 새벽4시가 넘어서야 남편이 돌아왔다.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날이 새자 다그치는 아내에게 박목사는 근무하는 병원5병동 17호실에 있었다고 고백. 허여인은 부리나케 17호실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예감은 들어 맞았다. 얼굴이 예쁘장한 정복숙(鄭福淑·23·광주시 산수동74)이「베드」에 누워있었다. 알고본즉 정양은 3월 10일 결핵으로 이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있는 중. 정양이 입원한 첫주일에 설교에 나선 박목사는 병원부속교회에서 정양과 눈이 맞은것. 이날부터 박목사는 17호실을 자주 드나들게 됐고 서로 친숙해졌다. 자주 만나면 정들게 마련. 허여인은 4월10일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목에서「키스·마크」를 발견하고 누구와 놀아났는지 따지자「미스」정이라고 고백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다는 것. 그런데 그 날 밤 남자의 목소리를 빌어『정양이 음독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한 인간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서 허여인은 할수없이 남편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6시쯤 돌아온 박목사는 정양이「세코날」을 먹고 중태에 빠졌더라고 아내에게 능청을 부렸다. 그것도 말짱한 연극이었던 것. 정양에 미쳐버린 박목사는 정양과 함께 병원을 나와 광주시 충효동 무등산 기도원으로 밀회장소를 옮겼다.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마음껏 즐겼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전북 정읍군 내장사로 사랑의 보금자리를 바꿨다. 박목사의 머리에서 가족은 이미 사라졌고 오직 정양뿐. 이때부터 그는 퇴근후 거의 집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 『우리가 처음 일을 저질렀을때 어느쪽에서 먼저 한것도 아니었고, 둘이 서로 진실했기에 진실을 토했을 뿐이에요. 단 한번 뿐이었읍니다. 그걸로 모든게 이뤄졌고 더욱 진실해졌읍니다』정양의 알쏭달쏭한 첫날밤 고백. 『목사의 직을 내놓고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인간이 되기위해 사랑을 찾은 것입니다. 서로 울고 몸부림치며 사랑을 했읍니다』 이것은 박목사의 인간적(?)인 고백. 그들은 모든것을 등지고 무등산장 아래 깊숙한 원효사에 도피하기로 결심. 지난 4월29일 밤 10시쯤 입산하여 5월4일까지 마음껏 단꿈을 꿔오다 허여인의 끈덕진 추격에 덜미를 잡혀 결국 쇠고랑을 찬것. [선데이서울 70년 6월 14일호 제3권 24호 통권 제 89호]
  • [맑은 공기 꿈꾸는 서울, ‘자전거 천국’] 한강변, 자전거·행인·인라인 뒤엉켜 ‘사고천만’

    [맑은 공기 꿈꾸는 서울, ‘자전거 천국’] 한강변, 자전거·행인·인라인 뒤엉켜 ‘사고천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자전거 천국이다. 대한민국 서울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인구 1035만명이 살고 있는 서울과 74만명이 사는 암스테르담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서울시민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두바퀴 천국’을 꿈꾸는 서울의 현실을 진단하고 풀어야 할 과제를 시리즈로 싣는다. 서울·암스테르담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경사 급하고 표지판 부족… 도심선 교통방해꾼 취급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대형 트럭이나 버스와 나란히 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포구 월드컵경기장∼동대문구 광희동 동사무소(22㎞)를 자전거로 출근하는 이병목(50)씨를 길동무 삼아 뒤쫓아 가기로 했다, ●아름다운 서울, 가파른 경사로 월드컵경기장에서 불광천으로 이어지는 나들목에 들어섰다. 나들목의 경사로가 너무 가파르다. 자전거에서 내려 걸을 수밖에…. 한강에 접어들자 서울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한강을 붉게 물들이는 태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변북로의 차량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신나게 강바람을 갈랐다. 자전거 초보지만 시속 15㎞를 유지했다. ●뒤로 달리는 보행자 요주의, 안내표지판 부족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사고위험도 높아진다. 특히 2∼3m의 좁은 도로에 자전거와 인라인, 보행자가 뒤엉켜 더욱 그렇다. 특히 거꾸로 뛰는 보행자가 위험 특급이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라도 듣고 있다면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자전거도로에는 안내표지판이 턱없이 부족했다. 도심으로 나가는 계단이 보이지만 도대체 어디로 연결되는지 모른다. 한강다리를 보며 대충 짐작할 뿐이다. 이씨도 자전거 출근길을 발굴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도로에서 만난 안내표지판은 세 종류. 도로 바닥에는 성산대교에서 몇 ㎞ 떨어졌는지 적혀 있다. 서울숲까지 몇 ㎞ 남았는지 그림표지판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위험구간’이라는 빨간색 표지판이다. ●도심에서 자전거는 이방인 한강변을 빠져나와 1호선 옥수역 찻길에 섰다. 한남역으로 나오면 직장과 가깝지만 나오는 길이 없어 돌고 돌았다. 도심에서 자전거는 이방인이다. 도로교통법상 차이기 때문에 차도를 달려야 하지만 자동차는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빵빵’ 경적을 울리고 길가로 밀어붙인다. 보도로 올라가라는 압력이다. 보도에는 따가운 눈총과 지하철 환기구·노점상 등 장애물이 기다린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차로에 자전거도로 조성 그래도 이씨는 희망을 읽었다.“차량이 예전보다 많이 친절해졌습니다. 버스나 택시도 교통흐름만 방해하지 않으면 자전거를 눈감아 준답니다.” 초보자인 탓에 2시간20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씨는 평소 1시간쯤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비슷하다. 마지막 고민거리는 자전거 보관. 보관대도 없지만 있다해도 안전하지 않다. 이씨는 자전거를 사무실까지 끌고 들어갔다. 자전거의 꿈은 소박하다. 도로의 빗물받이를 포함해 도로에 폭 1.1m를 자전거 전용도로로 조성하는 것. 빗물 받이가 폭 50㎝ 정도니까 자동차가 60㎝만 양보하면 된다. 자출족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페달을 밟는다. ■ 전용신호등·무단횡단 방지턱 갖춰… 車보다 우선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오스도르프(Osdorp)∼암스테르담 중앙역(10㎞)을 출근 코스로 잡았다. ●거리를 누비는 자전거 도로에 나서자 자출족이 물결을 이룬다. 두 딸을 앞에 태운 정장차림의 아빠, 높은 구두를 신은 아가씨,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강아지와 산책하는 아주머니…. 아이들이 부모의 자전거 앞좌석에서 자라, 세발자전거로 독립하고 기어자전거로 살아간다고나 할까…. 이용자가 많지만 사고위험은 높지 않다. 자전거도로가 전차·자동차·보행자도로와 명확히 분리되기 때문이다. 자전거도로는 보행자도로가 넓은 외곽에서는 보도에, 보도가 좁은 도심에서는 차도에 조성됐다. 자전거도로는 자동차, 보행자도로처럼 끊김없이 이어진다. ●사고율 줄이는 시민의식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도 사고위험을 0%로 만들 수 없는 법. 도심 대로에서 ‘꽈당’하고 넘어졌다. 초보자인데다 안개비로 노면이 미끄러운 상태였다. 게다가 오가는 자동차, 전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습관처럼 도로를 무단횡단했다. 넘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똑같아 보이지만 자전거도로와 자동차도로, 전차도로의 높이가 2∼3㎝씩 다르다는 것을.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 낮은 턱을 넘지 못하고 자전거를 내동댕이치고 만 것이다. 당황한 순간, 젊은 남자 2명이 달려왔다. 한 명은 기자를 부축해 보도로 옮기고 다른 한 명은 다가오던 전차를 막아섰다.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여러번 확인하고서야 그들은 떠났다.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은 시민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안내표지판 건널목과 교차로에는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있다. 좌회전 신호등에는 자전거 표시 아래 왼쪽 화살표를 넣었다. 어린이를 위한 키작은 신호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보행자 겸용인 경우엔 자전거와 보행자가 신호등에 나란히 등장한다. 자전거도로에 횡단보도를 꼼꼼히 만들었다. 골목길은 물론 대형할인점 입구에도 그려져 있다. 보행자가 많이 오가는 곳이라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정표도 다양하다. 중앙역 방향은 어디며 몇 ㎞ 남았는지 곳곳에서 알려 준다. 관광명소가 즐비한 도심에는 더 많은 이정표가 붙어 있다. ●자전거는 도심의 주인 도심에서 자전거는 전차·버스와 더불어 어엿한 주인이다. 오히려 자동차가 이방인이다. 자동차는 자전거에 습관처럼 양보한다. 도심을 지날 때다. 자전거도로가 좁아 승용차도로를 넘나들다 뒷덜미가 후끈해 뒤돌아봤다. 자동차 5∼6대가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당황해 옆으로 자전거를 세웠다. 운전자들이 추월하며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1시간10분 만에 중앙역에 도착했다. 중앙역 주차장에는 자전거 수천대가 차곡차곡 자리잡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유료 실내주차장도 25곳이나 있다. 암스테르담은 두바퀴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미스·수도여사대(首都女師大)」이문옥(李文玉)양-5분데이트(85)

    「미스·수도여사대(首都女師大)」이문옥(李文玉)양-5분데이트(85)

    수도여사대(首都女師大) 70연도「5월의 여왕」으로 뽑힌 아가씨가 이문옥(李文玉)양. 48년생. 수도여사대 부속 중고등학교를 거쳐 지금 가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다. 서울 태생으로 제과업을 하는 아버지 이윤용(李潤鎔·57)씨의 2남 4녀중 세째 딸. 양친은 물론 언니 둘, 오빠 하나 그리고 남동생과 여동생을 고루 하나씩 갖춰 가진 다복한 아가씨다. 아버지가 제과업을 하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과자는 마음껏 먹고 자랐다는 부러운 아가씨이기도. 취미는 자수와 등산. 특히 대학 3학년부터 재미를 붙인 동양자수를 놓는 솜씨는 놀랍다고. 5월30일의 수도여사대 개교 23주년 기념 전시회에는 액자와 병풍을 출품했다는 이야기. 『일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 근교로 등산을 가곤 해요. 그밖에는 학교에 다닌 것 빼놓고는 별로 외출을 하지않아요』 부드럽고 섬세한 선의 얼굴,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는 전통적인 동양 여성의 인상 그대로. 그러나 조용하기만한 인상과는 달리「발레」와 기계체조의 특기도 가지고 있다는 것.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희망. 좋아하는 꽃은 모란. [선데이서울 70년 6월 7일호 제3권 23호 통권 제 88호]
  • 술집 숫처녀 20세 못넘겨

    술집 숫처녀 20세 못넘겨

    「섹스」라는 낱말은 현대인의 일상용어가 되다시피 누구의 입에서도 쉽게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일반이「섹스」에 관해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이낙경(李洛炅)씨가 최근 조사한 접객업자들의 성백서(性白書)는 그런 뜻에서 재미있는 참고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조사한 1천1백78명중 총각있어도 처녀는 없어 더우기 이 조사의 대상은 남녀간의 접촉기회가 가장 많은 서울시내의 「바」「카바레」 술집 요정 다방 식당 이발소 미용원 여관 「호텔」 목욕탕 등의 남녀 종업원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모으고 있다. 1천1백78명의 조사대상자 중에서 결혼전에 이미 성의 경험을 가진 남녀는 65%나 되었고, 거의 17~18세에 첫 경험을 가졌다는 응답이 나왔다. 남자의 경우 27세가 넘는 「숫총각」(?)도 4명이 있었지만 여자는 26세까지 예외없이 모두 「경험자」들이었다. 13~14세에 벌써 처녀 총각을 면한 조숙한 사람도 있었지만 성 경험의 「피크」는 남녀가 모두 17~20세 사이. 결혼전의 성경험율은 식품위생관계업소(식당 다방 술집 「카바레」 「바」 요정등)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이 환경위생관계의 업소(이용 미용 여관 「호텔」 목욕탕등)의 종업원보다 훨씬 많았다. 이들의 교육정도별로 따진 「섹스」의 경험율을 보면 국문해득 정도가 가장 높았으며, 다음이 중학교졸업, 고등학교졸업, 국민학교졸업의 순서였고, 무학과 대학졸업 또는 재학생은 두명중의 한명꼴로서 가장 낮았다. 그런데 대학졸업이나 재학생의 수는 전체의 4%(49명)이나 되어 「카바레」나 또는 다방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중에 밤에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대생들이 뜻밖에도 많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낙태 기혼자 3명에 한명 세번까지 수술한 미혼도 여자가 생리적인 변화기를 맞는 시기는 이들의 경우 평균 14.2세였고, 남자의 자위행위를 처음 경험한 것은 여자의 초경 연령보다 거의 1년이 늦은 15.1세였다. 이들이 「섹스」에 관한 지식을 처음 얻은 길은 세사람중 한사람은 친구로부터 알거나 배운다는 것이었다. 또 책이나 「매스콤」의 영향도 커서 28%가 이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여자의 경우는 특히 어머니나 학교의 교사들로부터 「섹스」의 지식을 얻을 기회가 남자보다 훨씬 많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들의 결혼관계를 보면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2배나 많았는데, 결혼방법은 둘중 하나의 꼴로 중매결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연애 결혼을 한 비율도 기혼자 4명에 한사람 꼴로 되어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기혼자 중에서 동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70%나 되지만 나머지는 별거나 이혼, 배우자의 사망등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기혼자 중 3명에 한명꼴로 인공유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한두번의 경험이 가장 많았으나 다섯번 이상의 낙태경험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미혼자의 경우도 세번까지의 인공유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한편 「섹스」의 개방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있는 성병은 남자 10명중 1명꼴로, 여자는 25명중 1명꼴로 앓은 경험이 있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높은 비율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큰 문젯점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성병이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전체의 반정도 밖에 안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섹스」경험을 성병과 관련시킬 때 거의 무방비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는 성병에 대한 지식이 남자보다 뚝 떨어져서 열이면 여섯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성병이 어떻게 옮겨진다는 것은 남녀가 다같이 열이면 아홉은 알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처녀 18세가 가장 위험해 총각의 고비는 20세까지 이번 조사결과 특히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의 초조(初潮) 나이가 무척 앞당겨졌다는 점이다. 1923년 이영춘(李永春)씨가 조사한 한국여학생의 평균 초조나이는 15세, 그리고 12년 뒤인 1935년 박용해(朴容海)씨가 조사한 바로는 평균 14.9세, 1962년 김고성(金固成)씨의 조사에선 14.8세, 68년 권이혁(權彛赫)·박순영(朴淳永)씨의 조사에선 14.5세로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선 평균 14.2세로 나타났다. 이 평균치는 한국 일반부인의 평균 초조나이인 15.2세보단 엄청나게 빠른 것. 이런 결과는 생활수준의 향상, 급식개선에 따른 영양, 그리고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의 차이등으로 생긴 것이라고 조사자는 분석했다. 첫 성경험의 나이를 살펴보면 사춘기인 17세에서 20세가 가장 위험한 고빗길. 17~18세에 처녀를 잃은 아가씨가 43.3%이며, 19~20세가 29.7%. 그러니까 17~20세의 4년동안 전체 아가씨의 73%가 첫성경험을 갖는다는 「쇼킹」한 사실이다. 남자쪽도 마찬가지. 면(免)숫총각한 나이를 보면 17~18세에서 38.4%, 19~20세에서 37.6%로 17~20세 사이에 동정을 잃은 총각이 76%나 된다. 여성쪽에 비해 남성쪽이 17~18세에 첫경험을 가진 숫자가 더 적다는 것은 여성쪽이 더 조숙(?)하다는 의미. 이래서 남녀를 불문하고 17~20세에 초혼(初婚)한 사람은 44.2%. 그러니까 아무리 좋게 보아 주어도 결혼상대 아닌 첫 경험이 30%나 된다는 얘기다. 남성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20~23세에 결혼한 남성이 불과 34%로 17~20세에 동정을 잃은 남성 76%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접객업소 종사자의 65%가 미혼이며 특히 여성쪽이 미혼경향이 더 많다는 점은 접객업소 영업에 미혼여성이 가장 알맞기 때문. 그러니까 처녀 아닌 처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선데이서울 70년 6월 7일호 제3권 23호 통권 제 88호]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재란씨는 가창력, 좋은 노래, 외모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만능가수’이자 여러 리듬에 따라 다양한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실력파 가수.‘항상 웃음을 띤 얼굴’로 기억되는 가수 박재란은 건강한 보이스 컬러에 경쾌한 노래들로 특히 어려웠던 시절, 삶에 지친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마치 남쪽에서 불어 오는 남풍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가수 박재란. 그 역시도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수시로 잔병치레를 할 정도로 몸이 허약해 전염병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앓았고 특히 일곱 살 나던 해에 걸린 ‘뇌염’으로 인해 가망이 없다며 장례 치를 준비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의사를 불렀을 때 다행히도 살아났다. 아울러 초등학교 시절,6·25전쟁 중이던 그의 나이 열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마저 여읜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나섰다.‘럭키 모닝’,‘푸른 날개’,‘해피 세레나데’ 등 초기 히트곡을 시작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방방곡곡 전파하며 사회 분위기를 밝게 리드해 나갔다. “저는 트로트풍의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어요. 대신 대부분 노래들이 폴카나 트위스트, 부기우기, 룸바, 탱고, 삼바, 차차차 등 신나는 멜로디였죠. 때문에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매우 즐거워했어요. 물론 한꺼번에 여러 멜로디를 동시에 불러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지만 정말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죠.” 그의 회고처럼 최초 히트곡 ‘럭키모닝’을 시작으로 ‘푸른 날개’, 민요풍의 ‘맹꽁이 타령’, 그리고 ‘님’,‘둘이서 트위스트를’,‘산 너머 남촌에는’,‘소쩍새 우는 마을’,‘아나 농부야’,‘밀짚모자 목장아가씨’,‘행복의 샘터’,‘진주조개 잡이’,‘강화도령’ 등 SP시대에서 출발해 LP시대를 수놓았던 그의 히트곡들은 얼추 손꼽아 봐도 템포가 사뭇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양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소화했던 가수는 우리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바이브레이션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창법으로 장르에 따라 발성을 달리하는 뛰어난 가창력은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탐이 날 수밖에 없다. 가수 박재란은 불과 열여섯 살 때, 처음 무대에 발을 디딘다. 본명은 이영숙.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던 부친 이수천씨와 성가대원이었던 모친 유순남씨 사이의 1남5녀 중 4녀로 서울에서 출생했다. 네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이 전근함에 따라 가족 모두 천안으로 이사했다. 천안 제일국민학교(지금의 천안초등학교), 천안여중을 거치는 동안 그는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당시 인기 있던 유행가를 전파시킨 메신저 역할은 늘 그의 몫이었다. 특히 백난아씨가 부른 ‘망향초 사랑’을 즐겨 불렀다고 기억한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무대 활동을 적극 권유한 인물이 당시 인천경찰악대장 박태준씨. 그의 추천을 통해 육군본부 산하 군예대(KAS) 3기생으로 발탁되면서 대구에서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수양아버지까지 되어 주는 박태준씨로부터 받은 예명이 박재란. 일선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문공연이 주 임무였던 군예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말 그대로 ‘일인다역’. 노래는 물론 무용, 악극 등 쇼에 관한 한 모든 걸 소화해야 했던 어린 재란은 대구에서 2년, 서울에서 2년간의 군예대 생활을 거치는 동안 무대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군예대 시절, 대구에서 첫 취입해 발표한 노래는 나화랑 작곡의 ‘뜰아래 귀뚜라미’와 김학송 작곡의 ‘코스모스 사랑’. 그러나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악극단으로 자리를 옮겨 첫 히트곡 ‘럭키모닝’이 발표될 때까지 무명인 채로 ‘희망악극단’과 ‘무궁화악극단’ 그리고 ‘반도악극단’ 등을 옮겨가며 무대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는 사이 그의 가창력과 미모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뭇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미스·한일합섬(韓一合織)」정정배(鄭貞培)양-5분데이트(84)

    「미스·한일합섬(韓一合織)」정정배(鄭貞培)양-5분데이트(84)

    「미스·한일합섬(韓一合織)」정정배(鄭貞培)양은 꽃다운 20세의 아가씨. 어린아이처럼 최고 유연한 피부, 통통한 몸매의 인상은 「차일드·우먼」바로 그것이다. 상업을 하는 아버지 정연삼(鄭然三)씨(61)의 3남3녀 중 세째딸. 형제는 많지만 위로 오빠 둘, 언니 둘이 결혼한 뒤 분가해 나가서 지금은 남동생과 양친의 단촐한 네식구만의 살림이라고. 서울 태생으로 풍문(豊文)여고를 졸업했다. 한일합섬에 근무한지는 1년6개월째. 현재 총무과에서 경리, 문서정리 등의 일을 맡아보고 있다고. 취미는 음악감상. 「샹송」을 좋아하고 특히 「줄리에트·그레코」라면 무조건 좋아한다고. 이유는 『그냥 좋아서』란다. 결혼은 2년뒤쯤으로 예정하고 있고.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남성으로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이라면 되겠죠. 솔직한 사람, 꾸밈이 없는 경상도 사나이 같은 남자가 좋아요』 「스테디」한 남자 친구는- 『아직 없어요. 정말로 없어요』좋아하는 음식은 야채로 만든 것들은 모두. 과일로는 사과를 잘먹고. 일요일이면 야구구경을 즐긴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31일호 제3권 22호 통권 제 87호]
  • [로칼뉴스] 본업은 장사, 처녀 더듬는건 부업?

    [로칼뉴스] 본업은 장사, 처녀 더듬는건 부업?

    5월 19일 동대구경찰서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전(田)모군(23)등 두 사람을 즉심에 넘겼는데… 전군 일당은 장사차 대구에 왔다가 18일 밤 9시쯤 대구시 산격동 수원지 뒷산에 올라가 산책 나왔던 고(高)모양(21·대구시 산격동)을 끌어 안고 돌아가며 온몸을 만지면서 『 딴데 가서 재미 좀 보자』 고 억지를 쓰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혔다는 것.경찰서에서 『 처녀 몸 더듬는 것이 장사냐?』 는 담당 형사의 호통에 넉살 좋은 이 친구들 『그건 부업입니다』 하더라나.<대구(大邱)>■ 도둑일망정 「나도 의리의 사나이」 ?며칠전 부산시 D서를 찾아온 K씨(41)는 「의리있는 강도님」 을 잡아달라는 색다른 신고.K씨는 전 날 밤 집안에 침입한 강도에게 『다른 것은 다 가져가도 좋으나 단벌신사이니 양복만은 좀 봐달라』고 사정했더니 딱한 사정에 감동(?)한 강도씨가 『날씨가 더워졌으니 저고리만 가져 가겠다』면서 바지는 남겨 주더라는 것.<부산(釜山)>■ 「대리아빠」 부업 -공술먹고 재미보고 부산시 대창동 모 회사의 최(崔)모씨 는 요즘 「대리아빠」노릇에 톡톡이 재미를 보고 있는데….최씨는 업무상 거의 매일밤 「살롱」 에서 술을 마시는 처지인데 요즘 각 학교의 소풍철이 되자, 아비 없는 아이(?)를 둔 「살롱」아가씨들이 최씨에게 소풍날 하루만이라도 아빠 노릇을 해주어서 아이를 기쁘게 해달라고 눈물로 간청, 마음 약한 최씨는 아무리 회사일이 바빠도 조퇴를 해가며 그들의 청을 들어 주고 있다는 것.그렇게 대리 아빠 노릇을 한 그날 저녁은 아가씨들로부터 대접이 그게 아니라는 얘기.<부산(釜山)>[선데이서울 70년 5월 31일호 제3권 22호 통권 제 87호]
  • “한국인 되면 시각장애인 돕는 일 할래요”

    “컴퓨터가 좋아요. 한국 사람이 되면 더 열심히 배워서 저같은 시각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할래요.” 중국 동포 이진니(24·여)씨는 17일 치른 귀화 필기시험에서 90점을 맞았다.60점을 넘으면 합격인데,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씨 덕분에 귀화시험에 처음 도입된 점자 필기시험은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됐다. 법무부는 이씨와 같은 시각 장애인 외에도 청각 장애인과 지체 장애인 등 다른 장애인 귀화 신청자도 시험을 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씨가 199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어머니 정명희(50)씨를 따라 입국한 것은 2005년 10월.10여년간 어머니와 떨어져 중국에서 시각 장애인 학교를 다닌 그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한국시각장애인 복지관 기숙사로 보냈다. 이씨는 중국에서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세살 때 병치레를 한 뒤 시력을 잃어 어슴프레 빛만 보일 정도다. 그나마 언제 실명이 될지 몰라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걷는 연습도 한다. “중국에서는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못다녔어요. 한국에서 공부도 하고, 컴퓨터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훈련도 재밌어요.” 재활훈련과 컴퓨터 외에도 이씨는 점자공부, 한국 역사 공부를 하며 어느새 어머니의 바람대로 강하고 똘똘한 아가씨가 돼 있었다. 귀화해 한국인이 되는 방법도 이씨 스스로 찾았다. 귀화신청을 한 뒤 법무부 국적난민과에 연락해 시각 장애인이라고 밝히며, 시험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법무부가 한국시각장애인협회 도움을 얻어 점자로 시험을 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넉달 동안 한국 역사를 배우고 답안지를 깨끗이 쓰는 법도 배웠어요. 한글을 만든 왕이 ‘새종대왕’인지 ‘세종대왕’인지 익히느라 힘들었어요.” 이씨는 “그래도 시험 덕분에 점자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웃었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씨는 한국에 온 뒤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장래희망도 안마사에서 사회 복지사로 바꾸었다. “귀화시험 준비를 하면서 ‘내가 살 나라에 대해 모르는게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남대문’이 뭔지,‘이순신’이 누군지 몰랐던 게 부끄러워요. 시험에 합격했어도 더 공부해야겠어요.”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남매’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집안이 결딴?

    “호미로 쉽게 막을 일을 미봉(彌縫)하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중국 대륙에 재혼해 금실 좋게 살아가던 부부가 자신들의 의붓 남매간의 성폭행 등 불미스런 일을 감추기 위해 혼인시켜려다 실패하는 바람에 화목하던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일이 발생,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남녀가 재혼해 각각 데려온 아들·딸과 화목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던 중 의붓 남매인 아들·딸을 억지로 결혼시키려다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상주일보(常州日報)가 16일 보도했다. ‘사건’의 장본인들은 재혼한 추궈칭(邱國慶·40)·뤼루(呂茹·37)씨 부부와 의붓 남매인 추하오(邱皓·20)·장윈(17)씨.지난 19991년 이혼의 아픔을 딛고 결혼한 추·뤼씨 부부는 추씨가 전처와의 아들 추군을,뤼씨가 전부(前夫)와의 딸인 장양을 각각 데려와 함께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이들이 재혼할 당시 추군은 14살,장양은 11살이었다. 재혼한 추·뤼씨 부부의 금실이 너무 좋은 덕분에 이들 가족 네식구는 웃음꽃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특히 추씨는 국영기업 중견 간부이고 뤼씨는 능력 있는 보험 설계사여서 집안의 셈평도 나날이 펴졌다. 하지만 이들 집안에 ‘불행의 싹’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2002년 9월부터 17살이 된 추군이 고교 2년,장양은 14살로 중학 2년생이 됐다.고교 2년생이 된 추군이 사춘기에 접어들자,아리잠직한 장양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충동’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심한 경우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고생을 했다.장양은 14살이지만 조숙한 탓에 몸매가 이미 성숙할대로 성숙한 까닭이다.그해 11월10일 일요일이었다.추·뤼씨 부부는 직장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하고 추군과 장양 단둘이만 남았다. 의붓 남매이지만 사이가 좋은 이들은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쳐 온몸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장양은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에 난 땀을 식히기 위해 물을 끼얹고 있었다.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은채…. “쏴,쏴….”사워 소리를 들은 추군은 갑작스런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사워중인 장양을 끌어안고 성폭행을 자행했다.그녀가 끝까지 버티며 반항했으나 오빠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끝내 무너져버렸다.정조를 잃어버린 장양은 추·뤼씨 부부가 돌아왔을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사태를 알아챈 뤼씨는 너무 화가난 나머지 경찰에 신고,의붓아들 추군을 감옥으로 보낼 생각이었다.추씨는 아내 뤼씨에게 백배 사죄한 뒤 아들 추군을 불러 어머니와 동생에게 용서를 빌라며 마구 때렸다.추군은 “어머니,용서해주세요.내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혼돈에 빠진 뤼씨는 추씨 부자의 사죄에 못이겨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뤼씨는 고통스럽지만 참기로 했다.이혼의 아픔을 딛고 재혼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추씨가 워낙 성품이 좋고 수입도 안정되고….이런 행복한 가정생활을 깨기 싫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이 아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 갔다.1∼2년이 지나면서 이들 가정에 과거의 아픔을 떨쳐버리고 또다시 웃음소리가 넘치기 시작했다.특히 2004년 여름 추군은 공부를 열심히 한 덕택에 대학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유명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화불단행(禍不單行·불행은 한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겹쳐 온다는 뜻)인가.그해 7월말 대학 합격을 한 추군이 무료하게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이때 샤워를 하고 타월로 몸을 감싼 뒤 머리를 털며 나오는 장양을 본 순간,또다시 흑심이 발동했다.더욱이 지난번 일도 용서받은 만큼 이번에도 조금 잘못했다고 빌기만 하면 쉽게 용서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사워한 뒤의 물기 묻은 섹시한 모습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추군은 이때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지난번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하다가 들켰지만,수면제를 먹인 뒤 일을 치르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착각도 하게 됐다. 이틀 뒤 추·뤼씨 부부가 출근한 이후 수면제를 사온 그는 장양이 마시는 물컵에다 몰래 집어넣었다.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그 물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 위에서 통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추군은 또다시 동생을 범했다.잠에서 깬 뒤 자신의 하복부에 통증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당한 사실을 눈치챘으나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머니 뤼씨는 여자의 직감으로 장양이 당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뤼씨가 장양에게 집중 추궁하자 눈물을 흘리며 “사실 몸이 너무 아프다.”며 사실을 털어놨다.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뤼씨는 모든 사실을 남편 추씨에게 털어놓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마음먹었다. 추씨는 집안의 스캔들이 밖으로 알려지면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다며 제발 참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대신 혼인서약서를 쓰겠다고 했다.의붓 남매인 만큼 이들이 결혼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추·뤼씨 부부는 의붓 남매를 데려다 놓고 ▲추군은 장양을 성폭행했으나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형사책임도 묻지 않으며,▲추군은 법정 결혼연령이 되면 반드시 장양과 결혼한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했다.의붓 남매간 불행한 사건은 이로써 묻혀지는 듯 했다. 이들 부부는 의붓 남매가 당연히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고 “추군과 장양이 결혼을 하면,우리들은 이미 가족인 데,너희 둘이 또 결혼하면 우리들 사이는 더 가까워지니 얼마나 좋으냐?”며 흐믓해 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2005년 들어 나이가 들면서 장양에 대한 추군의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그해 10월 중순 장양은 학교 기숙사에 있는 ‘장래 남편’인 그를 찾아갔다. 이때 추군의 친구들이 “저 아가씨가 아내냐?”라고 묻자,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니,나의 여동생이야.”이라고 말한 뒤 식당으로 데려가 점심을 사준 뒤 아무 말 없이 되돌아가버렸다.너무 황당하다고 느낀 장양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사실을 안 추씨도 몹시 화가 나 추군을 찾아가 “장양과 결혼할 것이냐,말 것이냐?”고 따지자,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추군은 그때 이미 한국 유학생 김(金)모씨와 사귀고 있었다. 지난해 4월 중순,추군은 뤼씨와 장양에게 “정말 죄송하게 됐다.하지만 장양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해버렸다.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우두망찰하던 뤼씨는 “우리 모두 각서를 썼다.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욱대겼다. 며칠 뒤 이들 뤼씨 모녀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추군의 대학교 기숙사에 있던 한국 유학생 김씨를 찾아 저간의 사정을 털어놨다.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도 깜짝 놀랐다.김양은 그를 찾아가 “너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치사한 남자다.왜 나를 속였니?너를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 뒤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이에 화가 난 추군은 이들 모녀가 김씨를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말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죽었으면 죽었지,너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잼처 강조했다. 이 말을 들은 모녀는 모든 생의 의욕을 잃어버렸다.여름방학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추군이 8월말 생활비를 타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마침 추씨는 출근하고 없는 상황이었다. 추군을 보자 이성을 잃은 뤼씨는 “왜,장양과 결혼하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그는 “죽어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거리했다.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뤼씨는 주방으로 들어가 식칼을 꺼내 들고 나와 추군을 마구 찔렀다. 이날 사고로 추군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충격이 너무 커 장애인이 되는 것은 물론 기억상실,실어증에 걸렸다.뤼씨 모녀는 현재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추씨는 입원중인 아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추씨는 곧 뤼씨와의 이혼 수속을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미스·현충사(顯忠祠)」이재복(李載福)양-5분데이트(83)

    「미스·현충사(顯忠祠)」이재복(李載福)양-5분데이트(83)

    애써 가꾸지 않아도 봄이면 싹이 돋아나고 소담스런 꽃을 피우는 이름없는 들꽃처럼 그렇게 소박하고 다소곳한 인상의 아가씨가 이재복 양. 올해 나이 20세. 온양여고를 졸업한 뒤 곧장 현충사 관리사무소에 취직했고 2년째 근무하고 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아버지 밑의 3남4녀중 둘째 딸. 족보로 따져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충무공(李忠武公)은 재복양의 15대 할아버지가 된다는 주변의 귀띔이다. 『항상 바쁘고 특히 남들이 쉬는 주말이면 도시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정신이 나갈 정도로 바빠 「데이트」할 시간조차 없다니까요』 그러나 아직은 나이가 어려 별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면서 수줍은 듯 살짝 웃는다. 시골 아가씨라고는 생각 할 수 없게 쪽 고른 이와 희고 정결한 피부를 가진 아가씨다. 취미는 유행가를 듣는 것. 이미자가 부른『섬마을 선생님』 을 좋아한다고. 학교 다닐때는 운동을 즐겼으나 지금은 시간이 없어 퇴근후나 「배드민턴」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단다. 구수한 농촌음식 특히 보리 섞은 잡곡밥과 시큼한 김치를 좋아 한다는 소박한 식성. 직장에서의 별명은 복슬강아지. 이상적인 남성으로는 능력있고 과묵한 사람, 나이 차이는 4~5년인 사람이라고. [선데이서울 70년 5월 24일호 제3권 21호 통권 제 86호]
  • 미스·대원(大元)보일러 박순영(朴順英)양-5분데이트(82)

    미스·대원(大元)보일러 박순영(朴順英)양-5분데이트(82)

    「미스·대원(大元)보일러 」박순영(朴順英)양은 방년 23세의 아가씨. 몸 가짐이며 말솜씨, 이야기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도시 꾸미는 데라곤 없이 서글서글한 아가씨다. 홀 어머니 신학분(申學分)여사(67)의 2남4녀중 막내동이. 위의 세 언니들은 모두들 결혼을 했고 지금 서울 갈현동(葛峴洞) 집에는 어머니와 미혼인 두 오빠 그리고 박양, 이렇게 4식구만이 단촐하게 살고 있다고. 서울 태생으로 서울여상(女商)을 졸업했다. 「대원보일러」에 입사한 지는 만 7개월, 경리과에 근무하고 있다. 『직장을 갖게 된 여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는 수다만 떨것이 아니라 뭔가 유익한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모임을 독서회 비슷한 성격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어요』 「은하(銀河)」라는「멤버」는 모두 7명. 그중 2명은 벌써 결혼을 했지만 한달이면 꼭 한번씩 모여 독후감을 주고 받는다는 착실한 아가씨들이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미스」박은 『대지(大地)』와『숨은 꽃』. 결혼은 올 가을이나 내년봄 쯤 이상적인 남성으로는 『「핸섬」하기보다는 뜸직한 사람, 활동적인 사람이 좋아요』라고. 취미는 수예. [선데이서울 70년 5월 17일호 제3권 20호 통권 제 85호]
  • 여자가 싸우려면 가발(假髮)을 쓰라

    여자가 싸우려면 가발(假髮)을 쓰라

    5월4일 부산시 송도 방파제로 놀러갔던 부산의 P「홀」「바·걸」들과 O「홀」「바·걸」40여명 사이에 편싸움이 벌어졌것다. 술에 곤드레가 된 40여명의 아가씨들이 한데 엉켜 붙어 엎치락 뒤치락 하기 10여분- 워낙 숫자가 많아서 쉽사리 승부를 가릴 수가 없게 되자 1대1로 싸우자고 제의, 대표선수 2명씩을 선발, 출전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오로지 자기「홀」의 명예를 두주먹과 열개의 손톱에 걸고 나온 여투사들이 치고 받고 할퀴기 한참만에, P「홀」쪽의 대표 金모양이 O「홀」의 朴모양 머리채를 휘어 잡기에 성공, 물실호기 확 잡아채는 순간에 김양은 그만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엉덩방아…. 어이 없게도 박양은 가발을 쓰고 있었던 것. [선데이서울 70년 5월 17일호 제3권 20호 통권 제 85호]
  • 이미자(李美子)와 소녀가수(歌手) 5각(角) 편지

    이미자(李美子)와 소녀가수(歌手) 5각(角) 편지

    이미자의 그늘에서 울고 있는 소녀가수들. 여자가수의 정상을 달려 온 이미자천국에는 그녀때문에 빛을 못보고 울고 있는 소녀가수들이 있다. 제2의 이미자로 꼽힌 남정희(南貞姬), 『동백아줌마』의 정은숙(鄭銀淑), 『사랑했어요』의 여이주(呂梨珠) 그리고 문주란(文珠蘭)까지도- . 본의든 아니든 이미자 때문에 출세에 지장을 받았다는 이들의 또하나의 「엘레지」는. 미움을 받게된 까닭 먼저 정은숙(21)의 경우. 그녀는 『이미자때문에 몇번인가 가수를 걷어치울 결심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이미자가 정은숙을 굉장히 미워하고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 미워하는 이유는 69년 이미자 가출 사건때부터 발단했다. 전까지는 정은숙은 「미자언니」를 굉장히 따랐고 이미자도 동생처럼 사랑해줬다. 『정은숙이 이미자의 남편 이모씨와 어쩌구』하는 소문이 두사람 사이를 적대관계로 만든 것이다. 『이씨에게 출연료를 받으러 갔다가 3,4명의 연예계사람과 어울려 자리를 같이 했을 뿐인데- 』「스캔들」의 올가미를 씌워 1년이 넘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너무 큰 영향력 가져 이미자가 미워한다는 사실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야 하는 신인가수에겐 큰 위협이 되는 것같다. 이미자는 작곡가들에게 압력을 넣어 정은숙에겐 곡을 주지 말라고 할 수 있고 제작사에게는 「디스크」를 내지말도록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 작곡가들이 이미자에게 자기 곡을 불리려고 경쟁을 벌이고 제작사도 이미자 때문에 돈을 번다고 (그래서 부사장이란 별명도 있다)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은숙은 지난해 『석류의 계절』 이후 1년이 가깝도록 취입을 못했다. 방송 출연도 어렵게 얼마전에 『하얀 그림자』를 「타이틀」로 한 독집을 냈는데 『이미자가 어찌 야단을 치는지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는 소문. 그뿐만 아니라 이미자는 「쇼·스테이지」나 방송 「스테이지」에도 『정은숙과는 함께 서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했다는 얘기. 병아리 가수라면 몰라도 이른바 간판 가수인 이미자가 안 나온다면 낭패일 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 정은숙은 방송, 「디스크」등 활동무대를 모조리 빼앗겨 왔다고 울상. 작곡가를 움직이고 그다음 제2의 이미자로 불렸던 남정희(19)의 경우. 그녀는 67년에 「히트·송」『새벽길』을 내놓은 뒤, 이렇다 할 「히트」 하나 없이 3년을 넘겼다. 호소하는 듯한 가냘픈 목소리와 창법이 흡사 이미자의 그것이래서 퍽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레코드」사와 작곡가에게 묶여 있는 그는 「히트」가 가능한 곡이 배당되지 않았다. 『쓸만한 곡』은 모조리 이미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기다리다 지친(?) 남정희는 요즈음 일본공연으로 가냘픈 「레지스탕스」-. 전속 옮겨간 경우도 비슷한 경우에 걸려든 게 여이주(20)와 문주란이다. 68년에 『사랑했어요』로 「데뷔」한 여이주는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1곡의 「히트」도 못내 놓고 아직도 기다리는 가수다. 문주란은 항창 인기 절정일 때 이미자가 『가장 미워한 가수』였고 그래서 전속사도 「지구(地球)」에서 「신세기(新世紀)」로 옮겼다는 소문이었다. 문주란의 인기가 전만 못하고 은퇴소문을 날리면서부터는 약간 두사람사이가 호전됐다는 소식. 여왕(女王) 7년의 존재로 64년 『동백아가씨』 이후 7년동안 줄곧 정상의 위치를 지켜 온 이미자이기에 그의 영향력은 작곡가, PD, 제작사들에게 거의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대중가요계에 복고조「붐」을 일으키면서 누려온 그의 생활은 울고 짜는 식 노래와는 달리 화사하고 방자(?)했다. 그 그늘에서 또 몇명의 「제2의 이미자」가 빛도 못보고 스러질지 그건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는 문제다.
  • [기고] 올케와 며느리,그리고 도련님,아가씨의 호칭/최기호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한글학회 이사

    한국여성민우회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여성비하 호칭을 바꾸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족 관계에서 쓰이는 여러 호칭 속에 불평등하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숨어 있다는 주장이다. 민우회는 이미 말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온전하지 못한 의미를 주는 ‘편부모’ 대신 ‘한부모’로 바꿔 쓰자고 제안하여 부모가 다 있지 않은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일도 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번 여성비하 호칭 바꾸기는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올케, 며느리, 아가씨, 도련님, 형님 등의 어휘 선정 문제이다. 잘못된 주장이나 가설을 그대로 믿고 맹종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셈이 된다. 특히 어원은 객관적이고 문헌의 고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학설이 되는 것이다. 호사가나 전문가가 아닌 재야 필자들이 억측으로 내놓는 수많은 주장을 가려 쓸 줄 알아야 한다. 민우회에서 ‘올케’의 어원은 ‘오라비의 겨집’에서 유래한 비칭으로 ‘오라비의 계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올케의 어원은 ‘두시언해’ 등에 나타나는 오라비(오빠)에 겨집(아내)이 합쳐져서 ‘오랍겨집’이 되었고, 그것이 축약되어 ‘올케(올겨집)’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올케는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보통의 말이며 ‘겨집´ 또한 여성을 비하하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옛날에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을 ‘겨집’이라고 지칭했다. 이것이 의미변화를 일으켜서 ‘계집’이 되었다.‘마누라’라는 말도 옛날에는 임금이나 상전에게 붙이던 아주 높임말이었는데 점점 변하여 지금은 아내를 낮춰 부르는 말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며느리’는 기생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니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했다. 며느리는 며늘/미늘/마늘+아이의 구조에서 어원을 주장하는 이가 천소영이다. 그러나 며늘/미늘/마늘이 기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옛 기록이 없다.‘며느리’의 ‘리’를 ‘아이’로 해석하는 것도 근거가 없는 틀린 해석이다. 그리고 며느리를 메(진지, 밥)+나르(다)+이로 분석한 이가 백문식이다. 그는 며느리를 제사 때 음식(제삿밥+메) 나르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이것도 아무런 증거 자료가 없다. 틀린 어원설을 가지고 여성비칭을 설명하려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문헌자료인 ‘왜어류해’에는 ‘며 리’가 보이고,‘훈몽자회’에는 ‘며느리’가 보이며,‘가곡원류’에는 ‘며 ’이 보이고,‘청구영언’에는 ‘며늘아기’가 보인다. 이들 자료에서는 여성 비하호칭이라는 근거가 전혀 없다. 민우회는 또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아가씨’와 ‘도련님’을 문제삼고 있다. 과거에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극존칭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극존칭에 문제는 있지만 현재는 극존칭을 거의 쓰지 않으며 여기에 여성 비하의 의미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호칭어와 지칭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기 아내를 부를 때 ‘여보’라고 하면 호칭어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내 집사람’이라고 말하면 지칭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호칭어에서 역사성을 알아야 이해할 수가 있다. 서양은 수렵사회이고 수평사회이며 부부중심사회로 직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며 수직사회이고 부모자녀 중심사회로 간접호칭이 발달하였다. 서양은 대통령이나 아버지에게도 ‘너(you)’라고 부를 수 있고,‘부시’라고 직접 이름을 부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대통령이나 아버지 이름을 직접 부를 수도 없고 ‘너’라고 직접 호칭했다가는 난리가 나는 것이다. 최기호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한글학회 이사
  •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1849년 골드러시를 이룬 황금의 땅 캘리포니아. 남자들은 한줌의 사금에 영혼을 팔고, 여자들은 한숨 잘 곳을 위해 몸을 팔았다. 노다지를 찾아 헤매는 남자들의 욕정을 채워주는 창녀들이 필요악처럼 존재하던 시기, 먹고 살 길이 없어 창녀가 된 이들은 ‘더러운 비둘기(soiled doves)’‘주홍 아가씨(scarlet ladies)’ 등으로 불리며 굴욕의 삶을 살았다. 미국의 여성작가 프랜신 리버즈의 소설 ‘구원의 사랑’(김지현 옮김, 김영사 펴냄)의 주인공 엔젤도 그런 삶의 멍에를 짊어진 아름다운 창녀다. 저주받은 운명 속에 살아가는 엔젤은 남자, 아니 이 세상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런 어느날 미가엘 호세아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첫눈에 알아본 자신의 반쪽. 그러나 창녀의 몸으로 호세아의 순수한 영혼을 더럽힐 수 없다고 여긴 엔젤은 사랑을 애써 피한다. 그때마다 엔젤을 보듬어 주는 호세아. 둘은 결국 하나님의 품안에서 하나가 된다. ‘구원의 사랑’은 구약성경 ‘호세아서’에서 소재를 빌려온 기독교 소설이다. 기독교 소설은 우리에겐 아직 낯선 장르지만 미국에선 로맨스, 추리, 판타지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큰 사랑을 받고 있다.성경 구절을 모티브 삼아 글을 써온 리버즈는 로맨스 작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리타(Rita)상을 세차례나 받은 미국 최고의 감성작가. 작가는 로맨스 소설기법을 활용해 성경 속 인물을 재창조해 냈다. 아담과 하와,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라헬, 보아스와 룻, 다윗과 알비가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호세아와 고멜…. 위로와 인내, 성숙과 존경, 믿음을 보여준 성경속 사랑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커플의 사랑이 바로 창녀를 사랑한 호세아의 사랑이다. ‘호세아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단을 좇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이다.‘구원의 사랑’에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한 남자의 순애보를 다룬 이 소설은 인스턴트식 사랑이 난무하는 이 시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1만 2000원.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배갈 36병을 2시간에 마신 미녀 4명의 그후

    ‘미녀 4걸이 술과 한판 승부를 벌이다.’ 중국 대륙에 늘씬한 몸매의 미녀 4명이 모여 술 시합으로 벌이며 곤죽이 되도록 마시는 추태를 부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중국 중부 충칭(重慶)직할시 주룽포(九龍坡)에 살고 있는 젊은 늘씬한 여성 4명이 2시간 동안 ‘얼궈터우술(二鍋頭酒) 을 무려 36병이나 마셨다가 모두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건이 발생,‘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고 중경상보(重慶商報)가 최근 보도했다. ‘얼궈터우술’은 곡류를 원료로 해서 당화 발효를 거쳐 증류하는 방법으로 제조한 대표적인 중국 서민들의 술이다.11년간의 숙성시켜 출시하는 만큼,향미(香未)가 향긋하고 온화한 느낌이다. 특히 색깔은 무색이고 지방분이 많은 중국 음식에 안성맞춤이다.도수는 55∼56%이며,가격은 보통 음식점에서 2∼3위안(약 240∼360원,125㎖ 기준)으로 비교적 싸기 때문에 서민들이 많이 즐기고 있다. 구랍 29일 밤 11시쯤,충칭시 주룽파 한 훠궈(火鍋·샤브샤브 요리와 비슷)전문 요리점에 쭉 빠진 몸매를 자랑하는 미녀 4명이 들어섰다.이들 미녀 4명이 음식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모든 손님들의 눈이 한꺼번에 이들에게 쏠렸다.이들 미녀 4인방이 원체 늘씬하고 미모가 뛰어난 까닭이다. 붉은 스웨터에 스키니 진을 입어 팔등신 미녀임을 한껏 자랑하는 한 아가씨가 “라오판(老板·주인이나 사장),여기 얼궈터우술 12병!”하고 호기롭게 소리쳤다.술을 주문한 이들은 곧 “하하”,“호호” 웃으며 수다 떨기에 바빴다. 잠시 후 훠궈 요리와 얼커토우술 12병이 나오자마자,이들 미녀 4인방은 마치 누가 빼앗아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그마한 잔에 따라 빠른 속도로 들이켰다. 이들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훠궈 요리는 손에 대지 않은 채 얼궈터우술 12병만을 깨끗이 비워버렸다.라오판은 물론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들도 하나같이 이들의 주량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술병의 크기는 125㎖에 불과하지만,도수가 55∼56도짜리여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한 두잔만 마셔도 취해버리는 엄청난 독주이다. 따라서 독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마시면 마치 목구명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도저히 삼킬 수도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반시간이 지나자,붉은 스웨터의 아가씨는 또다시 “라오판,여기 24병 추가!”라고 왜장쳤다.깜짝 놀란 주인 장(張)모씨는 “벌써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사고날지 모르니 그만 먹는 것이 어떠냐?”고 권고했다. 이에 한 아가씨는 “우리를 뭘로 알고 이러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그녀는 “우리 4명은 누가 술이 센지 시합하고 있다.”며 “주량이 적은 사람이 지는 것으로 승부를 내고 있다.빨리 술을 갖다달라.”고 말했다. 장씨는 할 수 없이 24병의 얼궈터우술을 내놨다.그리고 1시간쯤 흘렀을까.또다시 테이블 위에 놓인 24병의 얼궈터우술이 동나버렸다.다 마신지 10분여쯤 지나자 이것으로 ‘미녀 4인방’은 완전히 ‘시체’가 돼 버렸다. 한 아가씨는 온몸에 요리를 쏟아 화려한 옷이 얼룩덜룩 보기 흉했고,옆에 있던 한 아가씨는 얼굴에 핏기 하나없이 창백했으며,또 한 아가씨는 연신 구토를 하고,마지막 한 아가씨는 술이 너무 과해 입에서 피까지 토하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보다 못한 주인 장씨는 곧바로 경찰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보냈다.이틀이 지난 이들 ‘미녀 주당 4걸’은 다행스럽게도 생명이 위험한 순간을 넘겨 병원에서 퇴원,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국어학자들 “올케등 호칭 그대로 사용해야”

    여성민우회의 ‘여성비하적 가족 호칭 바꾸기 캠페인’에 대해 국어학자들은 3일 일단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여성민우회는 지난해 말부터 ‘호락호락-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용어 바꾸기’(hoho.womenlink.or.kr) 사이트를 개설,‘올케’ ‘아가씨’ ‘도련님’ 등 성 불평등을 조장하는 가족간 호칭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리의도 춘천교대 교수는 “어원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설사 올케의 어원이 ‘오라비의 계집’이라 하더라도 언중(言衆)은 어원에 대한 의식이 없이 ‘오빠·동생의 부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어원을 밝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차별의식을 오히려 부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도 한말글연구회장은 “우리말을 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자말로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가족간 호칭도 될 수 있으면 우리말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술집 아가씨로 오해받는 선생님들

    경남 충무시 A국민학교 여교사들이 요즈음 술집아가씨 취급을 받고 있는데…. 사연인즉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술집에서 전화를 공동으로 쓰기 때문이라고. 전날밤 술자리에서 아가씨를 눈여겨 보아 두었던 손님들이 낮에 전화를 걸어 전화를 받는 여교사들에게 『미스 金?』『미스 李, 지금 만날까?』 운운… 징그럽게 굴기가 일쑤라는 것. 아무리 궁하다고 학교 전화를 술집에 빌려 줘서야.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누가 좋아서 삥땅을 하나

    누가 좋아서 삥땅을 하나

    『삥땅?』유식한 체하기 좋아하는 친구를 그거 혹시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가수의 원산지 발음이 아닐까 넘겨 짚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전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낱말이고 그것도 국어사전을 뒤져 보아야 나오지 않는 개운찮은 뒷맛을 가진 치사한 낱말. 4월 28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열린 색다른 모임-「버스」여차장의 「삥땅」의 정의와 그 슬프기조차한 내력을 들어보면-. 「버스」차장을 3년동안 해온 한 아가씨가 어느 날 한국노사문제연구협회 회장 박청산(朴靑山)씨를 찾아와 눈물겨운 호소를 했다. 『저는 3년 동안 「버스」차장을 해 온 19세의 여차장 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죄악과 양심의 갈림길에서 괴로와 하고 있읍니다. 차장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지 않으면 안되는 「삥땅」 때문입니다. 하루 3백여원 씩을 회사의 눈을 피해서 빼 가지는 「삥땅」 수입이 없으면 저의 집안은 살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런 도둑질을 하면서 제가 어떻게 하느님의 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읍니까? 아무래도 저는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하겠읍니다. 양심상 괴로워서 도저히 더 이상 나갈수가 없읍니다』 이 애절한 소녀의 호소를 들은 박씨는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찾아가 의논한 사람이 천주교 원주 교구장으로 있는 지학순(池學淳) 주교이었다. 이 두사람이 뜻을 모아 마련한 것이 YMCA 에서 가진 『여차장의 「삥땅」에 대한 심포지움』이라는 색다른 모임이었다. 우선 「삥땅」 의 정의부터 내려보면 「별로 힘 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조그만 소득」 쯤으로 풀이 할 수가 있다. 차장의 경우 승객으로부터 받은 요금 중에서 얼마를 빼서 실례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택시」운전사의 경우에는 그날의 수입 중에서 차주에게 입금시키기로 돼있는 액수(대개 하루 6천원 정도)를 제한 나머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택시」운전사의 경우 영업이 부진한 날이면 자칫 자기 주머니의 돈 까지 보태서 차주에게 입금시켜야 할 때도 있게 된다. 「삥땅」의 어원은 화투노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섰다에서 「삥」이라고 하면 송학 즉 1자를 이른다. 이 「삥」자만 갖게되면 이른바 족보축에 끼는 「9삥」「장삥」「4삥」「1·2」「삥땅」(1땅) 등이 될 확률이 많아서 노름꾼에게는 행운의 패. 그리고 「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섰다판에서는 임금이다. 이 「삥」과 「땅」이 합해서 「삥땅」이라는 묘한 발음의 복합어를 만든것. 일설에는 「삥땅」의 「삥」은 남의 것을 가로챈다는 뜻의 은어이고 「땅」은 「일당(日當)」의 「당」이 강하게 발음된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즉 그날의 정당한 보수와 부수입을 뜻한다는 것인데 어느 설이든 간에 정당하지 못한 수입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삥땅」의 역사는 멀리 1·4 후퇴 직후로 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그때는 운수업 한 사람치고 돈 벌지 못하면 병신이라고 할 만큼 운수업계의 황금기. 군용「트럭」을 헐값에 불하받아 「드럼」통을 펴서 얹어놓으면 갈데 없이 「버스」가 되었고 그렇게 해서 굴린 「버스」가 석달만 지나면 어김 없이 또 한대의 「버스」를 만들만큼 돈이 굴러 들어 왔다는 「기막히게 좋은 시절」이었다. 눈사람처럼 돈이 불어나는데 신이 난 차주들이 운전사와 차장 조수에게 몇푼씩의 막걸리 값을 쥐어주곤 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 몇푼의 막걸리값 「선심」이 「삥땅」의 초기 형태였다. 이 차주의 「선심」은 운수업의 기업화와 함께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대신 그때까지 수동적으로 「선심」을 누려 오던 종업원들이 능동적인 방법에 의해서 수입을 가로채는 형태로 발전해갔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삥땅」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버스」의 차장은 남자들로서 그들은 「삥땅」에 대한 욕심보다는 운전기술을 배우겠다는데 더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남차장의 시대가 가고 여차장의 시대가 오면서부터는 갑자기 「삥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여자의 경우 남자와는 달리 오로지 보수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 하루 18시간을 일해야 하는 고달픈 중노동에 비해 월급은 고작 6천~7천원. 그것도 식비 숙박비 등을 제하고 나면 4~5천원밖에 손에 쥘 수 없는 실정이니 어쩔수 없이 「삥땅」에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없으면 도저히 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 없는 형편이다. 「삥땅」을 눈 감아 준다는 조건으로 정기적인 여감독들이 「세금」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삥땅」은 비단 운수업계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날 「심포지움」에서 연세대의 이계준(李桂俊)목사는 『큼직한 부패에 비한다면 여차장의 「삥땅」쯤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다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있는 여차장들이 죄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어 장래의 어머니가 될 그들의 정신위생이 크게 염려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 주장한 「삥땅」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1)적정시간의 근로 (2)적정임금 (3)경영자의 합리적인 기업운영 (4)환경시설의 개선 (5)여감독제도의 폐지 (6)운수업의 대기업화내지 공영화 (7)노동조합의 강력한 단결력 등이었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미스·강원도청(江原道廳) 한명희(韓明熙)양-5분데이트(81)

    미스·강원도청(江原道廳) 한명희(韓明熙)양-5분데이트(81)

    신사가 뽑은「퀸」84호의 아가씨는 한명희(韓明熙)양. 부리부리한 눈매, 뜸직한 체구의 47년생이다. 학력은 성심여대(聖心女大)를 2년에서 중퇴했고. 학교를 그만두자 곧장 택한 직장이 바로 강원도청(江原道廳). 2년째 계속 도청 내무국장실에 근무하고 있는 성실한 아가씨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한 때 축구선수를 지내기도 했던 한상헌(韓相憲)씨(48). 1남2녀중에 맏이답게 체격도 뜸직하고 성격도 부드러워 동생들의 상담역을 많이 한다고. 직장에서의 별명은「맏며느리」. 혼담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취미는「스포츠」. 아버지를 따라 한겨울에는「스케이트」를, 여름에는 수영을, 또한 봄 가을에는 등산을 즐긴다는「스포츠」만능 아가씨이다. 즐겨듣는 노래는「언체인드·멜로디」. 체구가 풍겨주는 인상과는 달리 식성은 꽤 까다롭다. 육류(肉類)는 전혀 먹지 않고 냉면이나 산뜻한 야채요리만을 먹는다고. 좋아하는 빛깔은 검정색 계통의 것들. 비교적 큰 체구를 감출 수 있어 검은색이 마음에 든단다. 『결혼은 항상 스스로의 일에 충실할 줄 아는 남성으로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만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OK란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