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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젖가슴 건드렸다고 건져주고 뺨맞아

    8월4일 하오 3시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남자의 팔에 안겨 물 밖으로 나온 미모의 아가씨가 백사장에 서기가 무섭게 자기를 안고 나온 남자의 따귀를 갈겨 주위 사람들이 어리둥절. 파도가 심했던 이 날 피서객들은 파도타기를 하며 즐겼는데… 남자가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면서 아가씨의 젖가슴을 치자 놀란 아가씨가 잠시 기절(?)-. 그대로 물 속으로 잠겨버려 그 남자가 안고 나온 것이라고. 뺨을 맞고도 할 말이 없어 멀건히 서있는 남자에게, 『아가씨 옆에서 파도를 탄게 죄였다』고 주위 사람들이 위로. [선데이서울 70년 8월 16일호 제3권 33호 통권 제 98호]
  • 「미스·중앙관상대(中央觀象臺)」최성자(崔星子)양-5분데이트(95)

    「미스·중앙관상대(中央觀象臺)」최성자(崔星子)양-5분데이트(95)

    후보로 지명된 5명의 아가씨가 열띤 경쟁을 벌인끝에 「미스·중앙관상대」로 뽑힌 최성자양(23)은 차근차근하고 얌전한 느낌의 아가씨. 66년에 금란(金蘭) 여고를 졸업한 서울태생이다. 2남 3년중 둘째딸. 중앙관상대에 근무한지는 1년 8개월째. 『처음에는 비서실에 근무했고, 지금은 총무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 싫증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란다. 그러나 그건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동료들이 재미있는 때문이라고. 부드럽고 가족적인 직장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남성동료를 동반하고 5분「데이트」에 응한 최초의 OL로 「마크」되었다. 결혼은 내년 가을쯤에나 할 예정. 그러나 아직 상대는 정하지 못했다는 단서를 붙인다. 털털하고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나타난다면… 여운을 남기고. 좋아하는 음식은 노상 먹어도 싫지 않은 김치 깍두기. 취미는 꽃꽂이와 영화감상. YMCA의 꽃꽂이반에는 두달가량 다녔고, 즐겨 꽂는 소재는 「글라디오라스」와 백합. 영화는 개봉하는 즉시 몽땅 보지않고는 못배길 정도의 「매니어」. 그러나 국산영화는 빼고 란다. 최근 본 영화중에는 『방문객』이 인상적이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8월 16일호 제3권 33호 통권 제 98호]
  • [여성&남성] 그와… 그녀와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왜?

    [여성&남성] 그와… 그녀와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왜?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수필가 피천득은 아사코라는 여성과의 오랜 ‘인연’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피천득은 태평양전쟁이 일찍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했다면 아사코와 같은 집에서 살 수도 있었을 거란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의 인연이란 어떤 걸까. 내 가슴을 적셔오는 상대의 마음을 알면서도, 정작 그와 약지를 걸지는 못했던 그들의 사연을 들어본다. ■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 ●이런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을 봤나 회사원 김모(27)씨는 소심한 상대 남자의 1% 성격 결함에 질려 99% 장점을 포기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알게 된 그 남자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씨를 착실하게 챙겨주는 편안함에다 진한 눈빛으로 나만 바라봐줄 것같은 마음을 표현해준 사람이었다. 호감을 갖고 만나기 시작했지만 그 남자는 정작 둘만 있는 자리에선 긴장 탓에 안절부절했다. 결국 그 남자는 꼭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둘만의 만남을 원하는 김씨를 살짝 실망시켰다. 이후에도 그는 “널 좋아해.”란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전화나 메신저로 ‘애매모호한 신호’만 보내왔다. “일종의 모멘텀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그 남자에게 끌렸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사실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굉장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결국 1년 정도 지나 관계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회사원 서모(26)씨는 부모의 황당한 개입 때문에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과의 관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서씨는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주선자로 나왔던 엄마 친구의 아들을 처음으로 만나 한눈에 쓰러졌다. 타이완 배우 금성무를 닮은 얼굴에 송승헌같이 짙은 ‘숯댕이’ 눈썹을 갖춘 완벽한 외모에다 밥집에 가면 쌀농사 지은 사람들 때문에 밥 한톨 남기길 꺼려하는 진중한 성격까지 갖췄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서씨와 첫눈에 반했고 둘은 호감이 99%까지 차 올랐다. 하지만 2개월 뒤 그가 갑자기 소식이 뜸해져 서씨는 ‘차였구나.’ 생각하며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샜다.“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엄마가 그쪽 부모의 이혼 경력을 이유로 그 남자의 엄마에게 저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얘기했더군요. 몇년 뒤에야 알고 너무 속이 상했어요.”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남자의 결혼 압박이 맘에 걸려 ‘괜찮았던’ 그에게 결국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소개팅으로 만난 여섯살 위의 그 남자는 젠틀한 매너에 준수한 외모, 신중한 성격까지 갖췄다. 한번 꼬시긴 힘들어도 정작 꼬셔두면 계속 내 남자일 것만같아 마음이 점점 동하던 찰나, 문득 물어본 “올해 목표는 뭔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올해 안에는 무조건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다 잡고 한 번 더 목표를 물었지만 그는 똑같은 답을 ‘한 번 더’ 던져 김씨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만난 지 3∼4번밖에 되지 않았는데 늘 입에서 결혼이야기를 달고 살아 결국 그게 발목을 잡더군요. 머뭇거렸더니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었어요.” ●그가 옆에 없음이 두려워서 그만…. 회사원 정모(29)씨는 외로움이라는 장벽이 두려워 놓쳤던 그 사람에게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있다.2년 전 모임에서 알게된 그는 곧 연수를 떠날 계획이었다.“얘기를 하면 할수록 매력적이었고 매일 함께 있고 싶었지만, 한참 사랑해야 할 나이에 2년이나 그를 옆에 두지 못한 채 인내해야 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죠.” 이후 2년이 지나 그는 돌아왔지만 예전같이 자신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는 정씨. 그는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혼자일 게 두려워서 놓아버린 날 다시 찾을지 모르겠다.”면서 “2년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며 한숨지었다. 그는 또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으면 소중한 걸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양모(25)씨는 2년전 여름 한달동안 중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가서 만난 미국 남자와의 인연을 아직 잊지 못한다. 그 남자는 특별한 외모나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함께 있으면 왠지 힘이 되고 마냥 행복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도 양씨에게 계속 호감을 표시했지만 둘은 한달 뒤 각자의 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만약 한국 사람이고 같은 나라에 계속 있었다면 두말할 것없이 사귀었을 거예요.” 회사원 이모(27)씨는 ‘신분의 장벽’에 막혀 남자와 등을 돌렸다. 몇년 전 만났던 그는 함께 미술관 등을 다니며 취미를 공유할 수 있었고 속상해 울면 득달같이 달려와 밥을 사주며 다독거려줄 줄도 아는 남자였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맞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 남자는 법관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그 남자가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여자를 찾길 원하는 것 같았고 결국 결혼도 그런 여자와 하더라고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잘난걸(Girl)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 남성 대부분이 오래전 사랑했던 혹은 짝사랑했던 여성을 가슴에 담아둔다. 사귀고 싶었지만 인연이 너무 짧았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고백하지 못했기에 마음 아프다. 회사원 유모(40)씨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인 28살 때 한 여성을 사귀게 됐다. 서로 결혼할 마음까지 있었지만 유씨의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아가씨는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결혼을 하면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혼자서 병수발해야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겠지요.”부담스럽기는 유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다음 차례는 이별이었다. 벤처기업 사장 최모(33)씨는 첫사랑을 2년 전 서울 영등포역에서 다시 만났다.“한 손엔 애를 잡고 한 손에는 애를 업고 있었죠. 다른 손엔 가방을 들고요. 단발머리만 간직하고 싶었는데 세파에 찌든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거시기’합디다. 전화번호는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어떻게 지냈느냐는 말만 하고 헤어졌지요. 왜 그 때 잡지 않았느냐고 원망하는 눈빛이 느낌으로 왔는데 여운이 한 달 가더라고요.” 고3때 만났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재수를 하게 되면서 최씨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상업고등학교에 다녔던 그 친구는 취업을 했지요.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더라고요.” 최씨는 가끔 “그 친구가 취직했던 전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생각해 본다.“그 친구가 데리고 있던 아기들이 내 새끼가 될 수도 있었겠지요.” 염모(30)씨도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경우다. 군대 동기가 여동생을 소개해줘 1년 넘게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1년 가까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었다. 서로 끌렸는데도 끝내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을 거쳐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는 박모(38)씨는 학내커플을 터부시하는 청교도적 분위기가 연애 전선에 딴죽을 걸어 버렸다.“1학년 때부터 공부를 같이 했던 동기 유모씨와 서로 좋아하면서도 차마 말을 못한 채 3년이 흘러가 버렸어요. 그런데 우리 둘이 동거를 한다는 소문이 난거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 사실을 부인하면서 화를 냈는데 그게 그 친구에게 상처가 돼 버렸어요.” 그 이후론 겉으로 친구처럼 지내던 것조차 서먹서먹해지고 말았다. 그 후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여학생은 박씨에게 “우린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때론 너무 바쁜 게 원수다. 유모(35)씨는 후배 소개로 어린이집 교사를 만났지만 어렵게 얻은 첫 직장은 일이 너무 많았다. 직장일에 의욕이 넘치던 유씨. 토요일 데이트 약속을 잡을 때마다 꼭 일이 생겼다. 그런 식으로 두 달 가량이 지나가 버리니 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도 까먹을 지경이 돼 버렸고 흐지부지 헤어지고 말았다. 나중에야 그 후배를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그 아가씨는 결혼할 마음까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데이트 때마다 기대를 했는데 번번이 바람맞고,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하지도 못하고. 결국 지쳐 버린거죠.” 우정이냐 사랑이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3때 독서실에 같이 다니던 친구 셋이 한 여자를 좋아해서 고민했던 걸 생각하면 한모(34)씨는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1학기쯤 아주 예쁜 여학생이 독서실에 왔는데 세 명이 동시에 그 여학생에 반했습니다. 모두들 ‘내가 저 여자애 찍었다.’며 경쟁이 붙었지요. 처음엔 넷이서 영화도 보고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여학생이 나를 뺀 두 친구를 저울질하는 걸 눈치챘어요.” 한씨는 좌절감에 혼자 술도 먹다가 결국 “나는 원래 걔한테 관심없었다.”며 마음에 없는 소릴 했다. 이제 두 친구가 경합을 벌였다. 물론 승자는 한 명.“선택을 못받은 친구는 많이 마음 아파했죠. 선택받은 친구도 의리 때문에 많이 미안해 하고요. 그래도 그 친구는 그 여학생과 결혼까지 했어요. 선택 못받은 친구만 노총각이죠.”그들은 지금도 친한 친구다. 네명이서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고 술도 마신다. 그래도 한씨 마음 속에선 지금도 그 친구에게 미묘하게 샘을 낸다고 한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70년간 가사 5000곡 쓴 한국가요계 거목 반야월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70년간 가사 5000곡 쓴 한국가요계 거목 반야월씨

    단장(斷腸)의 고통이란 이런 것일까.1950년 9월초였다.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는 할 수 없이 어린 딸과 피란길에 나섰다. 서울 미아리고개를 막 넘었을 때였다. 허기를 견디지 못한 어린 딸이 자욱한 화약연기 속에 숨을 헐떡이다 그만 명줄을 놓고 말았다. 오열을 토해내던 아내는 정신을 차려 딸의 시신에 간신히 흙을 덮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남편과 재회한 것은 그로부터 몇달 뒤였다.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어느 겨울날, 남편은 아내와 함께 딸이 묻힌 미아리고개 근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딸의 무덤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얕게 묻어서 이리 저리 발끝에 차이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고 여겼다. 남편은 비통한 마음에 아내의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흐느꼈다. 저절로 한 편의 시를 썼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작사가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눈물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절며∼.” ‘단장의 미아리 고개’, 말 그대로 장(腸)이 끊어지는 아픔의 노래다. 이 시는 1956년 이해연의 목소리로 처음 불려진 후 지금까지도 애송되는 국민 가요가 됐다. 이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90) 선생.191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91세인 셈. 부인인 윤경분(86) 여사도 살아 있어 가끔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반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가요사(史)의 백과사전이요, 산 증인이다. 올해로 70년 가요인생을 맞는다. 그동안 무려 5000곡에 가까운 노래를 만들어냈으니 기네스북 등재가 부럽지 않다. 특히 노래비만 해도 ‘울고넘는 박달재’‘단장의 미아리고개’‘만리포사랑’‘소양강처녀’‘삼천포아가씨’ 등 10여개에 달해 생존 가요인으로는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지고 있다. ●청계천 주제로 10곡 선보인다 그는 요즘도 여전히 현역이다. 보통 사람의 나이로 보면 눈과 귀가 멀어 뒷방에 나앉을 법도 하건만 매일 오선지 위에 시를 써내려간다. 최근에도 ‘청계천 트위스트’,‘청계천 엘레지’,‘꿈꾸는 청계천’ 등 청계천을 소재로 한 가사를 10곡이나 만들어 놓았고, 이 가운데 여러 곡이 녹음 중이어서 늦어도 상반기 중 팬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무엇이 그토록 반 선생의 창작열을 달구고 있을까.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에 위치한 한국가요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반 선생(협회 원로원 의장)과 어렵게 마주 앉았다. 파란 체크무늬 넥타이에 정장을 한 모습이 90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더니 “이젠 잘 안들려. 성질은 급하고 할말은 많은데 말야.”라며 웃는다. 이어 “다리도 좀 쑤시지만 전철타고 다녀.(다리)부러지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있지.”라고 특유의 괄괄한 성격을 드러냈다. 병원에서 가끔 건강을 체크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아픈데는 없다고 했다. 채식 위주의 소식(小食)도 건강비결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이 나이에 매일 일기 쓰고 4개의 일간신문을 다 보고 살아. 사회면은 물론 사설까지 몽땅. 그러다 보니 잠은 새벽 1시쯤에나 자게 돼. 모든 것이 정신 통일이야. 그리고 말야, 아직까지 작품을 쓰고 있잖아. 그러니 치매 걸릴 틈이 어딨어? 음식? 거 많이 먹으면 못써. 그저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도락하고, 즐거움 속에 그냥 소리내어 크게 웃는 거야. 하늘이 놀랄 정도로 말야. 자, 따라해 봐.‘우하하하’, 이게 최고지, 암.” 그는 가끔 택시를 타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자신을 알아보는 운전사에게 자신의 나이를 물으면 70대라고 한단다.“기자양반, 다니다보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 많아. 그러니 내가 세수 안하고 꺼벙하게 다닐 수 있겠어.‘꼰대’소린 듣기 싫거든.”이라며 깔끔한 옷차림을 자랑하는 그다. 최근 작품으로 화제를 옮겼다. 주저없이 서랍 속에서 악보를 꺼내더니 막 작업을 끝낸 ‘꿈꾸는 청계천’을 먼저 낭송한다.‘아, 청계천아 꿈꾸는 청계천아/육백년 긴 세월에 부귀영화 속절없고/임금님께 바친 절개 치마폭에 한을 담고/낙화되어 사라져간 궁녀들의 눈물이여.’ 고저장단, 정확한 발음과 감정이입이 사뭇 감동적이다. 듣는 자세가 진지해서일까. 그는 “자 들어봐, 이번에는 ‘청계천 블루스’야.”라며 다시 낭송을 했다.“네온등 꽃물결에 황혼빛 청계천/새단장 곱게 꾸민 분수가 꿈을 쏟네/그이와 만나자고 약속한 광교다리/퇴근길 늦은시간 가슴만 조마조마/아 서울의 연인이여 청계천 블루스/울어라 색소폰아 밤새워 같이 울자∼.” “어때, 괜찮아? ‘청계천 시리즈’로 10곡을 만들고 있어.(옆에 앉아 있는 작곡가 김병환씨를 가리키며)작곡이 훌륭해. 청계천을 가끔 걷다 보면 이 생각, 저 생각 많아. 그래서 쓰기 시작했어. 이봐, 청계천의 다리가 몇갠줄 알아? 광교, 수표교, 배오개….22개나 돼. 다들 600년의 역사와 한이 담겨 있거든.” ●“‘꼰대´ 소린 듣기 싫다고” 옛날에는 을지로 3가 일대를 ‘스카라 계곡’으로 불렀다고 한다. 남산에서 내려온 물이 스카라 극장 앞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갔다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이곳 일대가 생활무대여서 제2의 고향으로 여길 정도다. 그가 왜 ‘청계천 시리즈’ 노래를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눈 감는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어디 (죽는 것도)맘대로 돼야 말이지. 먼저 간 동료나 선배들이 꿈속에서 천천히 오라고 자꾸 그래.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살면서 후배들을 이끌고 뒷바라지하라는 팔자지 뭐겠어.”라며 또한번 크게 웃는다. 요즘의 가요계 세태와 관련해서는 “국적 불명의 노래가 많은 데다 기승전결이 없어 영 맛이 없어. 또 듣는 노래가 아닌 보는 노래로 변질돼가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고….”라며 원로다운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제시대 때)노래도 글도 다 빼앗긴 시절에 눈물로 우리 노래를 지켜왔어. 온돌, 김치, 된장만이 전통이 아니라 노래도 전통이 있는거야. 살려야 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라서 매년 한번씩 ‘가요사랑 뿌리찾기 운동’을 펼칠 예정이라면서 살아 있는 동안 전통가요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본명은 박창오(朴昌吾).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1939년 조선일보와 태평레코드사가 주관했던 전국가요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뽑혀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예명은 ‘진방남’.1940년 ‘불효자는 웁니다’로 일약 스타가 된다.1942년에는 작사가 ‘반야월(半夜月)’로 또다른 인생을 시작했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이왕이면 곧 일그러질 보름달보다 앞으로 점점 커질 반달이 희망적이라는 뜻에서 ‘半夜月’로 했다. 이밖에 추미림, 박남포, 남궁려, 금동선, 허구, 고향초, 옥단춘 등의 예명으로 암울했던 시절을 노래했다. ●“가요 뿌리찾기 운동 할 거야” 그는 애주가로 소문나 있다. 지금은 부인의 건강 때문에 일찍 귀가하지만 그 전만 하더라도 항상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렸다. 술시(時)가 되면 초걸이(1차)를 시작으로 소걸이(2차), 중걸이(3차)까지는 기본이다. 이 때마다 ‘자, 사랑합시다.’라며 권주사를 드높인다. 가끔 중중걸이(4차)까지 해도 귀가 때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얼마전에는 70여년의 음악인생을 정리한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930쪽짜리 회고록을 펴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흥미진진한 가요사의 이면까지 담아 사료적으로도 중요한 저술이다. 슬하에 2남4녀를 두었으며 대부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 주요 노래 꽃마차, 고향만리 사랑만리, 불효자는 웁니다, 세세년년, 잘 있거라 항구야 등. # 주요 작사 두메산골, 만리포사랑, 무너진 사랑탑, 벽오동 심은 뜻은, 비 내리는 삼랑진, 산장의 여인, 삼천포 아가씨, 유정천리, 울고넘는 박달재, 잘했군 잘했어 등. # 주요 저서 반야월 히트가요 선집, 반야월 명작가요 전집, 반야월 가요야화, 불효자는 웁니다 등.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총각사원 김신조(金新朝) 결혼 반보전(半步前)

    총각사원 김신조(金新朝) 결혼 반보전(半步前)

    지난 4월 14일 귀순자 환영대회에서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서울시민 김신조(28)에게 애인이 생겼다. 『올해엔 꼭 장가를 가야겠수다』하던 자신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서 일까?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삼복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총각 김씨는 목하 뜨거운 「데이트」에 한창인데…. 김씨의 결혼 반보직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직장인 삼부(三扶)토건 총무과에 전화를 걸었다. -애인이 생기셨다는데? 『글쎄요…』 -올해엔 꼭 결혼하신다고 했는데? 『가을쯤 식을 올릴까 합니다』 -신부후보의 이름은? 『곧 청첩장 보내드리지요』 그뿐이다. 굳이 신부후보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건 확정 될 때까진 신부쪽 입장을 생각해서 신중해야 되겠다는 소신 때문인듯. 이보다 앞서 약 2주일 전인 지난 7월 중순께 서울 충무(忠武)로에 자리잡고 있는 관상가 S씨의 집에 전라도 사투리의 모녀가 나타났다. 궁합을 보아 달라는 것이었다. 신랑의 이름은 김신조(金新朝). 『하하하…신랑될 사람은 말띠. 또 여자는 닭띠라 이거 천생연분입니다. 아주 좋아요』 이런 대답에 두 모녀는 무척 흐뭇해하며 돌아갔다는 소식이다. 선량한 서울시민이자 총각인 김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가씨는 과연 누구일까? 이보다 앞서 김씨가 지난 4월 기자회견서 밝힌(「선데이 서울」4월 19일자 12~13 페이지)신부후보의 조건부터 살펴보자. 『만 25세미만의 대한민국 여성으로 신체건강하고 사상 건전한 아가씨면 OK』란 조건에 『반드시 형제들이 많을것』이란 단서를 덧붙였다. 형제들이 많아야 한다는 조건은 김씨 자신이 남한에 일가친척이나 친지가 없어 외롭기 때문에 처가쪽이라도 형제가 많아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학력은 여고졸업정도면 충분. 김씨 자신이 현재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으나 흥남(興南)고등기계고업학교를 나온 정도인데 대졸 신부는 너무 과분하다고도 했다. 이런 김씨의 신부조건이 현재 「데이트」중인 최정희(崔貞姬)양(25·가명·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에게 꼭 들어맞는 것은 우연이랄까, 천생연분이랄까? 지난 4월 1일 삼부토건에 입사한 김씨는 그 서글서글한 성품 때문에 동료들에게서 호평을 받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곧잘 막걸리「파티」에도 어울렸다. 그러던 김씨가 5월에 접어들면서 좀 달라졌다. 퇴근후 동료들이 『생맥주 한잔만』하고 잡아 끌어도 뒷머리를 긁으며 『좀 볼 일이 있어서…』하고 꽁무니를 뺀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가 하면 퇴근 무렵 아리따운 음성의 아가씨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김씨를 살짝 빼낸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최정희양. 최양은 전남 보성(寶城) 태생, 서울에서 H여고를 졸업한뒤 한동안 고향의 어느 여자중학교 서무과 직원으로 있다가 지난 2월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상경이유는 『서울의 여고동창도 만나볼겸 좋은 일자리도 구할겸』-. 그래서 현재 대방동에 전세 13만원 짜리 방 한간을 얻어놓고 자취를 하고 있다. 「만 25세 미만」이란 김씨의 신부후보 조건엔 최양이 올해로 만 25세니까 적격자이고 「신체건강·사상건전」은 H여고 동창들이 보장한다는 소문. 게다가 5남매중의 둘째딸이라 『형제가 많아야 한다』던 단서조건에도 맞아 김씨로선 이상적인 신부후보다. 최양이 김씨를 알게된 건 신문지상을 통해서였다. 김씨가 선량한 서울시민이 되었다는 소식에 김씨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낸 많은 아가씨들중에 최양의 편지도 들어 있었다. 그 많은 격려편지속에서 하필이면 최양의 편지가 김씨의 관심을 끌었을까? 최양의 편지가 김씨의 마음을 움직이게한 것이 바로 「인연」이 아니겠냐는 것이 최양의 가까운 친구들의 평이다. 아무튼 최양의 편지에 김씨의 마음이 움직였고 김씨는 최양에게 답장을 냈다. 이렇게 되니 최양은 다시 김씨에게, 김씨는 또 최양에게 답장을 내는 공식적인 「스케줄」이 펼쳐졌다. 그리고는 정석대로 『한번 만나자』는 제의가 어느편에선가 나오고 두사람은 어느 호젓한 다방에서 첫선을 겸한 「데이트」를 했고, 「데이트」가 잦아지는 동안 이에 비례해서 정이 두터워지고…. 워낙 외로운 처지의 김씨였으므로 두사람의 「데이트」는 보다 빨리 「스테디」해질 수 있었다. 마침내 지난 6월말게 김씨는 두차례나 최양의 집을 찾아와 놀다 가기도 했다. 총각인 김씨가 처녀인 최양의 집을 두차례나 방문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의 영역을 넘어선 것. 이래서 최양은 고향집에 편지로 이런 경위를 알리고 결혼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혔다. 처음 최양의 집 부모들은 반대했다는 소문. 그러나 최양의 뜻이 하도 강경하고 보니 부모로서도 어쩔 수 없어 전권특사로 최양의 어머니가 서울에 파견되었다. 7월초순께 최양의 어머니는 딸 소개로 사윗감인 김씨와 대면했다. 이 첫 대면에서 김씨는 장래의 장모에게 어지간히 점수를 땄던 모양. 그러기에 처음엔 결혼반대파이던 최양의 어머니가 궁합을 보기에 이르렀고 「천생배필」이란 관상가의 괘에 기분이 흡족해 결혼찬성파로 급전환했다고. 현재 최양은 어머니아 함께 고향인 보성에 내려가 있다. 아버지 설득을 위해 모녀합작으로 대공세를 펴고 있다는 소식. 현지의 설득공작이 어느정도인지 모르지만 김씨가 『올가을 청첩장 보내지요』할 정도면 상당히 자신이 선 모양. 이래서 총각 김신조씨의 결혼전략은 「스케줄」대로 착착 진행중. 정어리의 명산지 청진(凊津)에서 태어난 사나이 김신조가 전남 보성산(寶城産)인 아가씨 최양을 아내로 맞게된다면 이 결혼은 장장 3천리를 잇는 뜻깊은 결혼식이 된다. [선데이서울 70년 8월 9일호 제3권 32호 통권 제 97호]
  • 「미스·바캉스」윤수정(尹水靜)양-5분데이트(94)

    「미스·바캉스」윤수정(尹水靜)양-5분데이트(94)

    「미스·바캉스」윤수정(尹水靜)양은 48년생 아가씨. 홀어머니 이귀녀(李貴女·63)씨 의 3남5녀중 막내동이다. 서울 태생으로 67년에 명성(明星)여고를 졸업했다. 3명의 오빠들, 4명의 언니들은 모두 결혼했고 지금 어머니와 함께 큰 오빠부부와 살고 있다고. 국제복장학원「차밍」과에 다니고 있는데「패션·모델」이 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아가씨. 가무스름한 피부,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이다. 이 아가씨의 꿈은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란다. 『영화를 즐겨 보는데 그 가운데 멋진「신」이 나올때면 저도 꼭 한번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야무지게 입을 꼭 다문다. 어머니 오빠들 언니들 모두가 배우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지만 자신은 꼭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결심이 대단하다. 남자친구는 아직 한명도 없고…. 그래서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리기까지 한다는 것. 尹양은「알랑·들롱」같이 미남인 남자가 좋다고…. 멋진 몸매도 가다듬기 위해 매일 저녁 자리에 들기 전에는 30분동안 미용체조를 하는 아가씨. 음식물도 조심조심 야채만을 골라 먹는다고. 아직도 인상에 남는 영화는『애정(哀情)』.「로렌스·올리비에」가 주연한 작품이다. [선데이서울 70년 8월 9일호 제3권 32호 통권 제 97호]
  • 셋방 아가씨에 칼들고 구혼(求婚)

    셋방 아가씨에 칼들고 구혼(求婚)

    옆방에 세든 아가씨와 결혼하기위해 아들은 칼을 들고 방에 뛰어들고 어머니는 방문을 잠근 모자(母子)합작추행극 한토막. 광주서는 7월30일 P모군(27)과 P군의 어머니 K여인(49)을 추행혐의로 입건했는데, 이들 모자는 지난해부터 자기집 아랫방에 들어있는 S양(18·회사원)을 짝사랑, P군은 S양과 결혼하기위해 몇차례 구혼의 손길을 뻗쳤으나… 끝내 S양이 말을 듣지 않자 7월15일 P군이 칼을 들고 S양 방에 돌입, 강제로 욕을 보였는데 이때 며느리 얻기에 혈안이 된 어머니 K여인은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망을 보았다나. 그뒤 S양이 『이 일을 발설하지 않으면 고소는 않겠다』고 했으나 P군은 끝내 결혼할 욕심에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창피도 하고 화도 난 S양의 고발로 P군과 K여인은 끝내 쇠고랑을 차게된 것. 과부를 업어와도 그렇게는 하지않는 법인데… [선데이서울 70년 8월 9일호 제3권 32호 통권 제 97호]
  • [깔깔깔]

    ●왜 나랑 결혼했어? 신혼부부가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고 있었다. 이때 여자가 남편에게, “자기야, 자기는 내가 저 17번처럼 섹시해서 결혼했어? 아님 22번처럼 청순한 외모 때문에 결혼했어?” 이 말에 남편은 “어. 나는 자기의 그런 유머감각 때문에 결혼했지.”●카페인 어느 신사가 다방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아가씨가 커피잔을 놓다가 실수로 신사의 옷자락에 커피를 쏟았다. 아가씨가 민망해서 “선생님, 대단히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수건으로 바지 앞자락을 열심히 닦아주었다. 그러자 신사가 “아가씨, 그만 됐어요. 그런데 이 커피 카페인이 들어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그랬더니 신사가 자기 물건을 가리키며 “허, 이놈 밤새 잠 못자며 고생하겠는 걸.”
  • 차승원·유해진 출연 ‘이장과 군수’ 29일 개봉

    차승원·유해진 출연 ‘이장과 군수’ 29일 개봉

    29일 개봉하는 ‘이장과 군수’는 ‘충무로 웃음 단짝’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기대감을 부풀리는 영화다. 두 배우가 갖고 있던 이미지를 180도 뒤집은 시도는 입맛을 당긴다.‘농촌 총각’ 차승원과 ‘군수님’ 유해진의 연기변신 또한 볼만했다. 사회적 신분이 역전된 동창생 두 명이 20년 만에 만난 뒤 벌이는 해프닝은 영화적 소재로도 손색없다. 그러나 웃음의 강도는 후반으로 갈수록 약해진다. 아무런 소신 없이 집어 넣은 현실 정치에 대한 조롱과 풍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충청도 한 시골마을의 이장 조춘삼(차승원)은 어릴 적 친구 노대규(유해진)가 군수가 되어 나타나자 기가 막힌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아 하던 자신 밑에서 만년 부반장 신세를 면치 못하던 대규가 아니었던가! 그런 대규가 떡하니 ‘군수님’이 되고 또 자신의 옛사랑과 결혼까지 했다. 대규와 자신을 차별하는 동창들의 태도에 춘삼은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던 중 대규는 지역 발전을 위해 방폐장 유치를 추진한다. 사사건건 대규에게 딴지를 걸던 춘삼은 얼떨결에 방폐장 유치반대 주민위원회 대표까지 맡아 대규와 감정싸움을 벌인다. 지방 선거와 마을 이장 선출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언제까지 니들이 돌아가면서 할겨? 젊은 놈들 시켜!” “아무나 뽑아. 다 거기서 거기여.” “하기 싫다니까 바꿔야지. 바꿔야혀.” 등등 현실 정치판을 비웃으며 시작한다. 지역 발전을 한답시고 카지노, 관광호텔, 경마장, 디즈니랜드, 향토아가씨 선발 등 향락산업 유치에만 몰두하는 무차별적인 지역 행정과 공무원의 복지부동도 꼬집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춘삼과 대규의 대립을 부각시키기 위해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지역민 갈등까지 끌어들여 판만 거하게 벌려 놓은 영화는 수습은커녕 제대로 웃겨보지도 못한 채 두 사람의 ‘급 화해모드’로 부실하게 막을 내린다. 예고편이나 보도자료 어디에도 ‘정치풍자 코미디’라는 수식을 달고 있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짐작이 간다. 두 사람의 뒤집힌 캐릭터에만 꽂혀 극장을 찾았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낚였다.”고 이마를 칠 수도. 하지만 영화가 새로운 재미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업무를 시작하고 가방끈 짧은 춘삼의 무식함을 수정해주는 ‘엘리트 군수’ 유해진의 발견이다. 첫 주연으로 출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기대와 달리 정극(正劇) 연기를 펼친다. 웃음의 몫은 바지에 볼 일을 볼 정도로 심하게 망가지는 차승원에게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멀쩡하게 나오는 유해진의 모습도 키득키득 웃음을 터지게 만드는 요소다. ‘선생 김봉두’를 만든 장규성 감독의 작품.12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결혼전야 성폭행범이 된 사내의 기막힌 사연

    “쯧쯧,인생에서 가장 기뻐야 할 결혼식을 올린 날이 가장 슬픈 날로 바뀌었네!” 중국 대륙에 30대의 한 사내가 결혼 하루 전날 10대 후반의 소녀를 성폭행하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러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새 신랑은 중국 중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에 사는 뤼후이(呂輝·30·가명)씨.그는 결혼 하루전 찻집 아가씨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 뒤 호텔 방으로 가 성폭행을 한 혐의로 결혼식 당일 붙잡혀 빈축을 사고 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뤼씨는 차는 물론 집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생활의 여유도 있는 등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하루를 참지 못하고 성폭행을 저지르는 바람에 차디찬 철창 속에서 젊음을 보내야 하는 ‘조종(弔鐘)이 울린 인생’이 됐다. 그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파렴치한이 된 사연은 이렇다.지난 1월21일 일요일 오후 1시쯤,아리잠직한 소녀가 “자신은 성폭행당했다.”며 눈물로 호소하며 정저우시 공안국 진수이(金水)분국에 찾아오면서 사건은 서서히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왕리리(王麗麗·18·여).찻집에 근무하는 종업원이라고 밝힌 왕씨는 한참 동안 마음으로 가라앉힌 뒤 뤼씨와 얽히게 된 저간의 사정을 하나하나 털어놨다. 3개월전 엄장이 크고 얼굴이 길쭉한 젊은 남성이 찻집을 찾아왔다.그는 차를 마시며 잡상스런 몇마디의 말을 나눈 뒤 곧 나갔다.그후 가끔씩 들러 차를 마시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갔는데,특별이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왕씨는 그 젊은 남성이 찾아와 허섭쓰레기 같은 농담을 해도 즐겁게 대거리를 해줬다.그것이 바로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중 1월 19일 오후 그 사내는 다시 찻집을 찾아왔다.당시 찻집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왕씨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무려 4시간 동안 그와 가벼운 주제로 여러가지 얘기를 즐겁게 나눴다.이때야 비로소 그 젊은 남성의 이름이 ‘뤼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뤼씨는 떠나면서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고,왕씨는 흔쾌히 알려줬다.하루가 지나 20일 오후 7시40분쯤,왕씨는 뤼씨로부터 여느때와 다른 진지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내가 결혼식을 올려요.총각으로 마지막인 오늘 밤을 당신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뤼씨의 정중한 초청에 응한 왕씨는 그를 만나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가라오케로 가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즐겼다.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녀에게 술을 권했다.하지만 술을 잘 못마시는 왕씨는 달착지근하게 칵테일한 양주를 그의 강권에 못이겨 몇 잔 거푸 마시고 말았다.이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술기운이 올라왔어요.어떻게 방으로 들어왔는지도 몰랐습니다.한참을 잤을까.술이 조금 깨면서 어떤 남자가 나의 옷을 벗기는 것 같았어요.처음에는 나의 남자친구인줄 알고 가만히 있었습니다.그런데 뭔가 이상했어요.해서 자세히 보니 남친이 아니고 뤼후이였습니다.깜짝 놀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어서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죠.” 사건 다음날 21일 오후 4시쯤,진수이 공안분국 대원들은 뤼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모두 떠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새신랑 뤼를 체포했다.한순간의 실수로 신혼 초야도 치르지 못한 뤼는 차디찬 철창 속에서 ‘암울한 꿈’을 곱씹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길섶에서] 주먹이 운다/이호준 뉴미디어국장

    청년이 버스에 오른 건 고갯길 직전의 정류장에서였다. 출근버스답지 않게 좌석이 몇개 비어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청년이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꽤 불량스러워 보이는 태도였다. 비스듬히 앉은 그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찬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봄이라고 하지만 바람 끝은 여전히 매서웠다. 청년 뒷자리의 아가씨가 몸을 공처럼 웅크렸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느긋하게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못 본 척 눈을 감았다. 다행히 청년은 얼마 가지 않아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열어놓은 창은 끝내 닫을 줄 몰랐다. 요즘 세상에 옛날 잣대를 들이대며 예의 운운하는 자체가 시대착오일 것이다. 하지만 재떨이를 앞에 두고도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툭툭 던지거나, 어깨를 치고 가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을 만날 땐 화가 치솟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용기없는 소시민의 주먹은 호주머니 속에서 혼자 운다.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 「미스·시벨산업(産業)」최순화(崔淳花)양-5분데이트(93)

    「미스·시벨산업(産業)」최순화(崔淳花)양-5분데이트(93)

    「미스·시벨 산업」최순화양(23)은 사근사근하고 상냥한 아가씨. 성격도 명랑해서 누구하고도 금방 사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아가씨다. 건국여자 초급대학 가정학과를 졸업하자 곧장 「시벨산업」에 입사, 3년째 계속 근무하고 있다. 「시벨산업」은 속눈썹 가발을 제조, 해외에 수출하는 회사. 최양은 현재 개발과에서 눈썹의 「스타일」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아보고 있다. 최양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고된 근무를 하고 있지만 하는 일이 즐겁고 재미있어 힘든줄 모르고 일한다는 것이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자신이 「디자인」한 상품「샘플」이 인기를 얻고 솜씨가 인정을 받을 때. 상업을 하는 아버지 최귀 (崔貴 )씨 (49)의 1남 4녀중 맏딸. 가끔 만나서 차를 마시는 정도의 남자 친구는 있지만 결혼할 상대는 아직 없고…. 결혼은 3년쯤 뒤에나 세상 구경을 많이한 다음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멀지 않아 외국 시장의 눈썹 유행을 살피고자 도미(渡美), 1년정도 머무르면서 눈썹기술을 습득할 것이라고. 좋아하는 배우는 『초원의 빛』의 「워렌·비티」. [선데이서울 70년 8월 2일호 제3권 31호 통권 제 96호]
  • 신안 ‘흑산도’ 홍어 아리랑

    신안 ‘흑산도’ 홍어 아리랑

    뱃길이 요즘 같지 않았던 시절, 섬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곳이었다. 요즘은 참 많이 변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뭍사람들이 한없이 그리는 곳이 바로 섬. 특히 흑산도 등 1004개의 섬을 거느린 ‘천사의 섬’ 신안군은 도시인들에겐 신기루와 같은 곳이다. 파시를 이루던 시절, 항구의 개들도 돈을 물고 다녔고, 요즘처럼 보궐선거라도 치를 때면 일가붙이 3대가 말을 안 할 만큼 작은 대륙 흑산도와 소금처럼 하얗게 빛나는 비금·도초도를 다녀왔다. 글 사진 흑산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다도해 뱃길 여행의 진수 유달산을 뒤로하고 흑산도행 쾌속선이 미끄러지듯 목포항을 빠져나갔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92.7㎞. 뱃길로는 230여리나 된다.5월이 지나야 겨울이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일교차가 심하고 바람과 안개가 많은 곳. 쾌속선을 타고 나는 듯 달려도 2시간30분가량 걸린다. 그나마 배가 연중 120일 가까이 출항을 못할 만큼 변덕 심한 날씨는 체감상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한다. 목포에서 비금·도초도까지는 그야말로 다도해 뱃길의 진수다. 하늘보다 파란 옥빛 바닷길에 늘어선 섬들이 다가서는가 하면 어느새 멀어져 간다. 섬 어귀를 돌아서면 조그만 수중여 위에 앉아있던 바다 가마우지들이 길동무 하자는 듯,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 오른다.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잠시 비금·도초도에 들러 승객을 내려준 배가 드디어 큰바다로 나왔다. 물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비금·도초도까지 포장도로를 달려왔다면, 흑산도까지 1시간 남짓한 바닷길은 마치 놀이공원의 ‘롤러 코스터’나 ‘바이킹’을 타는 듯했다. 홍도의 절경에 취해 웃다가 사나운 흑산도 바닷길에 눈물 흘린다더니, 딱 그 모양이다. 흑산도에 다가서자 속도를 줄인 쾌속선이 길게 누운 S자 모양을 그리며 예리항 여객터미널로 들어섰다. 이미자의 노래 ‘흑산도 아가씨’가 흘러나왔다. 서울의 어느 오래된 다방에서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어디선가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던’ 흑산도 아가씨가 뛰쳐나와 팔을 부여잡을 것만 같다. 관광객과 주민들을 내려놓은 쾌속선은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듯 지체없이 사라졌다. 뭍과 단절된다는 생각에 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섬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런 단절감을 느끼면서 살아왔을 게다. # 처녀신과 피리부는 소년 서둘러 섬 일주에 나섰다. 해안선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구경할 수도 있지만, 섬마을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는 육로여행이 제격. 섬 일주도로 포장률이 85%에 달해 별 어려움 없이 둘러볼 수 있다. 본섬을 비롯해 홍도, 가거도 등 유인도 11개와 무인도 89개 등 1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25개 마을에 5000명 가까운 주민이 사는 제법 큰 섬이다.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바다에 제물로 던져졌던 처녀의 혼을 모신 진리(鎭里)의 처녀당. 귀신을 부른다는 초령목(招靈木)을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처녀의 단심(丹心)인 양 붉디붉은 동백꽃이 흩뿌려진 이곳엔 처녀신과 피리부는 소년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뭍에서 잘생긴 소년 하나가 옹기 장수들과 함께 섬을 찾았다. 소년이 사당 옆 소나무 위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더니, 아름다운 피리소리에 반한 처녀신이 옹기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바람과 파도를 일으켰단다. 소년을 놔두고 가야만 배가 뜰 수 있다는 무당의 말에 옹기 장수들은 소년을 마을로 심부름 보내고는 몰래 떠나버렸다. 결국 소년은 마냥 옹기배만 기다리다 굶어 죽었다는 얘기. 그래선가, 한서린 소년의 무덤에는 이상하게도 풀이 자라질 않는다. 가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소년이 추울까 하여 덮어준 솔잎만이 무덤 위에 수북하다. 큰 소나무 밑이라 그늘이 져서 풀이 자라지 못할 뿐인데도, 어쩐지 스산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 흑산도 최고의 절경 상라봉 죄인을 감금했던 옥섬과 흰 비단을 펼쳐놓은 듯한 배낭기미 해수욕장을 지나 상라산으로 오르는 12굽이 ‘용고개’와 마주했다. 일주도로 여행의 백미인 곳. 꽃보다 아름다운 잎이라던가. 상라산을 뒤덮은 100∼150년된 동백나무의 잎들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사면이 뻥 뚫린 상라봉 전망대에서 굽어본 다도해의 모습이 장관이다. 흑산도 최고의 절경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12굽이 도로와 함께 진리, 예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으로는 기다란 장도와 홍도가 줄을 섰다.‘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주변 스피커에서 예의 낭랑한 가락이 울려퍼지자 물밀 듯 감흥이 몰려왔다.‘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들은 대부분 뭍을 향해 떠났지만, 비경만은 남아 이방인들을 반겨주는 듯하다. # 절경들과 나란히 달리는 일주도로 24㎞에 달하는 해안 일주도로는 곳곳에 아찔함을 숨겨 놓았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절벽 따라 길을 낸 480m짜리 ‘하늘다리’와도 만난다.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일주도로의 가장 큰 장점. 어느 화가가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한반도 모양의 지도바위와 서산머리 칠형제 섬, 그리고 곤촌리, 심리 등 아름다운 해안마을들이 캔버스를 수놓는다. 문암약수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사리마을(모래미)로 들어섰다. 다산 정약용의 형 약전이 유배돼 15년을 머물렀던 곳.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돌담길이 인상적이다. 돌담길 끄트머리에는 정약전이 섬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복성재(復性齋)가 퇴락한 모습으로 서있다. 이 마을 이장이었던 박찬식(70)씨는 바닷가 마을 주변 해안에도 저마다 주인이 있다고 했다. 바닷가에 있는 지형지물을 경계로 마을과 마을간, 그리고 마을내 주민들간에 일정한 해산물 채취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 이태원이 쓴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장다랭이 토지바위에서 대구밀인 둔벙까지’‘상낭기미 취개에서 짝지개까지’‘줄여목에서 이참봉 손 씻는 개까지’ 등으로 적고 있다. 순 우리말 표현이 정겹다. 섬을 통틀어 논이라곤 한뼘도 없는 까닭에 쌀 대신 인동초와 더덕, 천궁 등으로 농주(農酒)를 만들었다. 사리마을 부두민박(061-246-3587)에서는 마을마다 맛이 다르다는 흑산도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1ℓ 한통에 5000원. 거북손과 톳 등 인근에서 채취한 싱싱한 해산물 안주는 무료다. # 홍탁에 취하고 흑산도 절경에 취하고 흑산도를 대표하는 해산물은 단연 홍어. 수놈의 경우 ‘같잖은 가오리’가 생식기는 두개인 데다 ‘암컷을 잡으면 수컷은 부록’이라고 할 만큼 연중 짝짓기를 해 ‘본초강목’에서는 ‘해음어(海淫魚)’라 일컫기도 했다. 모두 9척의 배가 20∼60마일 떨어진 동지나해 주변 어장에서 ‘걸낙’을 이용해 잡는다. 걸낙은 미끼를 쓰지 않는 낚시방법.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4∼5일, 많게는 10일 정도 설치해 둔 다음, 오가는 홍어를 잡는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꽃이 필 무렵인 3월까지가 절정이다.5∼6월은 산란철 금어기. 여름철에 잡히는 놈은 ‘개홍어’라고 해서 맛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출어를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흑산 홍어가 맛이 좋은 이유는 산란을 위해 연평도로 올라가기 직전 잡히기 때문. 살이 찰지기도 하려니와 불그레한 고깃결이 슬레이트 지붕처럼 올록볼록하다. 다소 밋밋한 칠레산과 비교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무게를 기준으로 8㎏이 넘는 1등급 대홍어(40만∼50만원을 호가한다)부터 2㎏ 미만의 ‘폴랭이’까지 모두 7등급으로 나뉜다.‘1코 2날개 3꼬리’라 해서 몸의 각 부분마다 맛 등급을 정해 놓기도 했다. 내장은 물론, 뼈까지 연해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른 봄 보리싹과 함께 끓인 ‘홍어애(간 또는 내장) 국’은 애간장을 녹일 지경. 수컷은 대부분 5㎏ 미만으로, 몸무게도 적고 맛도 덜해 암컷에 비해 값이 훨씬 눅다. 요즘 흑산도엔 홍어가 풍년이다. 눈엣가시 같던 중국어선들이 해경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눈에 띄게 줄어든 데다, 어부들의 자발적인 불법조업 규제로 홍어의 개체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칠레산 가오리에 만족해야 했던 식도락가들에게 입맛 당기는 희소식이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삭힌 홍어가 오늘날 대표적인 발효음식의 하나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흑산 어부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체험이 숨겨져 있다. 돛단배로 뭍에 이르기 위해서는 1∼2주일이 걸리던 옛날, 잡은 생선을 내다 팔아야 하는 어부들에게 순풍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게다. 육지에 도착하는 날이 늦어지면 생선이 모두 썩게 마련. 끼니를 잇기 위해 상한 생선을 먹는 과정에서, 다른 생선과는 달리 홍어는 전혀 탈이 없었다. 오히려 암모니아처럼 톡 쏘는 냄새가 심해질수록 맛 또한 깊이를 더해 갔던 것. 나주 영산포에 이르러 삭힌 홍어를 먹는 ‘즐거운 고통’이 세인들을 ‘별스러운 중독성’에 빠뜨리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은 현지에서 택배도 가능하다.18만∼45만원선. 흑산도수협 (061)275-5033. # 하얗게 빛나는 비금도 큰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섬, 비금도(飛禽島)는 소금의 섬이자 바람의 섬. 여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다는 천일염전에서 희디 흰 소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목포에서 54㎞, 쾌속선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3900여명의 주민이 48㎢ 크기의 섬에서 올망졸망 살아간다. 선왕산과 함께 비금도를 대표하는 여행지는 하누넘 해수욕장. 아담한 하트모양을 하고 있어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딱 좋은 곳이다.‘하누넘’은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밖에 없다’는 뜻. 이처럼 비금도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이 많으니, 시간이 된다면 나만의 해변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도초도는 1996년 우아한 아치형의 서남문대교가 완공되면서 비금도와 형제섬이 됐다. 반달처럼 생긴 백사장이 3㎞ 가까이 이어진 시목해수욕장과 거무스름한 절벽이 이채로운 시목리 일대의 해안 절벽지대가 가볼 만한 곳. 오는 2020년엔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생동물 사파리가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초면사무소 (061)275-6696. # 여행정보 ●홍도+흑산도 여행 홍도와 흑산도는 하나의 여행코스로 묶어지게 마련.1박2일 여행 프로그램을 계획해 보자. 서울 용산역 오전 8시30분 KTX→11시57분 목포 도착→오후 1시 흑산도행 쾌속선→오후 3시 흑산도 도착후 섬 일주→이튿날 오전 9시50분 홍도행 쾌속선→오전 10시20분 홍도 도착→12시20분 홍도유람선(2시간,1만 7000원)→오후 3시40분 홍도 출발→오후 6시10분 목포 도착→오후 7시 서울행 KTX. 홍도 해상 유람선 (061)246-2244. 솔항공여행사(www.soltour.co.kr)는 함평해수찜과 비금·도초도를 KTX전용차량으로 둘러보는 상품을 준비했다. 어른 18만 5000원, 어린이 16만원.(02)2279-5959. ●제1회 흑산도 개매기 체험축제 4월14일 배낭기미와 진리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리는 숭어잡이 축제. 매년 이곳에는 한식을 전후로 맨손으로 잡을 만큼 숭어떼가 몰려든다. 각종 체험행사와 청정해산물 판매행사 등이 열린다. 신안군청(www.sinan.go.kr)문화관광과 (061)240-8356. # 가는 길 목포에서 비금·도초도와 흑산도를 거쳐 홍도까지 가는 쾌속선이 오전 7시50분, 오후 1시 두차례 운항한다. 성수기엔 오후 2시에 출발하기도 한다. 비금·도초도까지 1만 4900원, 흑산도 2만 6700원, 홍도 3만 2600원. 동양고속 (061)243-2111∼4, 남해고속 (061)244-9915∼6. 흑산도에는 택시 9대와 관광버스 5대가 운행 중이다. 섬 일주 택시요금은 2시간 기준 6만원, 버스요금은 1인당 1만5000원. 동양택시 (061)246-5006,(011)9559-1429, 개인택시 (061)246-4110,(011)644-9776. 관광버스 (061)275-9744. 해상유람선은 오전 8시와 오후 1시,5시 세차례 운항.1인당 1만 5000원.(061)275-9115,(011)633-9115.
  • 어린 여중생과 동거하면 무슨 죄가 될까요?

    “뭐요,강간죄라고요? 너무 억울합니다.우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앞으로 평생 해로할 작정인데 무슨 죄가 된다고 그럽니까.” 중국 대륙에 어린 10대 소녀와 동거생활을 하다가 강간죄를 선고받은 20대 남성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상하이(上海)시 자베이(閘北)구에 살고 있는 차이밍(蔡明)씨.그는 부모님의 묵시적 동의로 미성년자인 나이 어린 여중생과 동거생활을 했다는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최근 보도했다. 차이밍씨가 동거녀 샤오이(曉怡)양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5년 11월 어느날.차이씨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장닝루(江寧路)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아리따운 한 소녀를 만났다.그녀의 이름은 ‘샤오이’였다. 늘씬한 몸매에다 길게 기른 생머리 덕분에 성숙한 아가씨로 보이는 샤오이를 본 순간,차이씨는 그만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그의 평소에 생각하던 ‘이상형’이 나타난 까닭이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다잡은 다음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이에 샤오이양도 날렵한 인상에 그윽한 눈길로 보는 차이씨가 마음에 들어 서로의 앙가슴에 큐피드의 화살이 꽂혔다. 이들의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으로 달아올랐다.그러던 어느날,차이씨는 그녀가 14살인 1992년생,이제 여중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실에 화들짝 놀란 차이씨는 샤오잉양이 너무 어려 도저히 사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헤어질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은 더욱 증폭돼 도저히 헤어져서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들의 만남이 하룻밤 풋사랑인 엔조이 상대라기보다 순수한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 두 사람은 결국 성관계를 갖는 등 넘지 못할 선도 넘고 말았다. 이후부터 샤오이양은 차이씨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그녀는 이미 3년전 집을 가출,혼자 살고 있는 ‘싱글족’ 학생인 까닭에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1개월여가 지나면서 그녀는 옷가지 등 자신의 물건을 갖고와 차이씨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는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샤오이양의 학교로 가 그녀를 데려오는 등 애정을 과시했다.이같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한 차이씨 부모도 그와 샤오이양이 동거를 할 수 있도록 방 한칸에 내주며 깨끗이 도배를 해 신접살림을 차리도록 도와줬다.정식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그 어느 부부 못지않게 행복한 신혼살림은 꾸려나갔다. 그러나 이들 두사람의 ‘행복한 신혼 살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샤오이양의 부모가 그녀를 찾기 위해 샤오양의 친구집에 찾아갔다가 이미 떠나버리고 없어 공안(경찰) 당국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상하이 자베이구 인민법원은 부모의 동의 아래 동거생활을 해왔지만,샤오이양이 너무 어린 미성년자인 탓에 차이밍씨에게 강간죄를 적용,징역 3년형을 선고했으나 정상을 참작해 3년유예한다고 판결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28년만에 올리는 이 연극, 인혁당 피해자에 바친다

    “이 빚만 갚으면 연극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십년 넘게 걸렸습니다. 앞으로 매년 한편씩 남들이 쉽게 안하는 카프카의 ‘심판’과 같은 연극을 만들겠습니다.” 국내 유례가 드문 100만 관객을 동원한 뮤지컬 ‘명성황후’의 연출가 윤호진(59)씨가 15년 만에 연극을 만든다.현재 에이콤 대표와 단국대 연극영화과 교수직을 맡고 있는 윤씨는 ‘아일랜드’ ‘사람의 아들’ ‘신의 아그네스’ 등 한국 연극사에 획을 그은 작품을 만든 주인공이다. 하지만 1994년 ‘아가씨와 건달들’ 이래 뮤지컬 제작에 몰두해오다, 에이콤이 재정적 안정에 들어서자 다시 연극무대로 복귀했다.윤호진씨가 이번에 연출할 희곡은 아서 밀러가 쓴 ‘시련’으로 그에게는 각별한 사연이 있는 작품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 최고의 희곡작가 밀러의 작품을 1970년대 유신말기에 접한 윤씨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이정길, 최형인, 이낙훈 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극을 연습하던 도중 10·26사태가 일어나고, 제5공화국 군사정권이 집권하면서 결국 ‘시련’은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시련’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전대미문의 마녀 재판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1950년대 공산주의자 색출에 혈안이 됐던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비판하고 있다. 밀러의 희곡은 1996년 ‘크루서블’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영화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정의와 신념의 대변자 존 프락터 역은 드라마 ‘대조영’에서 검모잠으로 열연한 김명수가 맡았다.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한 발칙한 소녀 에비게일은 이승비가 맡았다. 숲속에서 어린 소녀들이 발가벗고 춤을 추며 혼령을 불러내는 금기된 장난을 벌인다. 목사에게 발각된 소녀들은 처벌이 두려워 악마에 사로잡힌 듯 거짓 연극을 하고, 마을 주민들은 정말 악마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마녀 색출이란 명목으로 고소, 재판, 교수형이 벌어지고 사람들의 이기심은 극에 달한다. 윤호진씨는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과 판결자들을 연극에 모시고 싶다. 판·검사로 임용되기 전에 필수교양 과목으로 이 연극을 감상하면 앞으로 좋은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연극이 끝날 때 관객이 제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예술의전당이 ‘토월정통연극’ 시리즈로 제작하는 작품이며, 오는 4월11∼29일 토월극장에 오른다.1만 5000∼3만 5000원.(02)580-1300.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미스·한은 광주지점(韓銀 光州支店) 오유령(吳裕齡)양-5분 데이트(92)

    미스·한은 광주지점(韓銀 光州支店) 오유령(吳裕齡)양-5분 데이트(92)

    「미스·한국은행 광주지점(光州支店)」오유령(吳裕齡)양은 올해 22세의 상냥하고 귀여운 아가씨. 동그란 두 눈과 티없이 맑은 피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러운 느낌을 갖게 한다. 홀어머니 박정애(朴貞愛·49)여사의 2남1녀중 외딸. 어머니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하는 막내동이 딸이다. 광주「수피아」여고를 졸업했고 한국은행에 들어온지는 1년6개월이 조금 넘었다고. 은행에서는 주로 못쓰게 된 헌돈과 소액환을 교환해주는 손권교환 임무를 맡고 있다. 은행에서도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창구근무를 하기 때문인지 말소리도 또렷하고 무척 친절한 아가씨다. 구체적인 결혼계획은 아직 없고…. 2,3년 뒤쯤 어머니가 골라 주는 사람에게「얌전히」시집갈 생각이란다. 이상적인 남성으로는『진실한 사람, 내면생활에 충실할 줄 아는 사람』을 든다. 성악에는 특별한 재질이 있어 여학교때는「소프라노」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오양의 18번은『사랑의 기쁨』. 취미로는 고전음악을 즐겨 듣고 비가 오는 휴일에는 소설을 쌓아놓고 읽어젖히는 독서광이기도. [선데이서울 70년 7월 26일호 제3권 30호 통권 제 95호]
  • [딸자랑] 수유 유리공업사 대표 김영주(金永周)씨 세째 딸 영숙(英淑)양

    [딸자랑] 수유 유리공업사 대표 김영주(金永周)씨 세째 딸 영숙(英淑)양

    「수유 유리공업사」대표 김영주씨(54)의 3남5녀중 세째 딸인 영숙양은 올해 23세의 「영·레이디」. 올 봄 숙명여대(淑明女大) 교육학과를 졸업, 바야흐로 신부수업중인 아가씨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더러 교편을 잡도록 권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서 못하게 했읍니다. 봉건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역시 여자의 큰 일은 가정을 지키는 일이니까… 차분히 살림이나 배우도록 하다가 결혼을 시킬 생각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좇아 영숙양은 요리솜씨를 익히고 꽃꽂이 강습을 받기도 하면서 한창 주부수업을 닦고 있는 요즈음이다.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자란 때문인지 영숙이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쾌활하고 명랑했어요. 학교에서 아동심리학을 배워서 동생들을 다루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죠. 두 언니가 모두 출가하고 없어 동생들에게는 지금 맏언니 구실을 도맡아하고 있답니다』 평소에는 동생들의 훌륭한 「카운슬러」역을 하면서 뒷치다꺼리를 맡아서 하고, 가끔 동생들의 친구들이 몰려 오기라도 하는 때에는 훌륭한 요리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고 아버지는 칭찬이다. 꼬마친구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메뉴」는 「도너츠」. 또한 기분이 나면 가끔 집에서 만드는 「오물라이스」도 일미라고. 『아버지의 손님이 왔을 때도 언제나 엄마를 도와 음식을 마련한답니다. 요리학원엘 다닌다기에 뭘 하랴 싶었는데 정작 음식을 만든 것을 보니까 훌륭해요』 아버지는 자못 흐뭇하다는 눈치. 『나이 든 지금에도 그렇지만 학교에 다닐 때도 부모들을 걱정시킨 일이라곤 없는 아이예요. 중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말썽을 부려 속을 썩인 일이 없죠. 순조롭게 학교를 졸업했고…. 도시 부모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딸이예요』 또한 유별난 유행옷을 입겠다고 조르는 법이 없어 아버지 김영주씨는 더욱 세째 따님을 마음에 들어 한다. 『어느 옷이고 아버지가 좋으시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좋다고 칭찬하시더군요. 그래서 전 아버지가 좋으시다는 옷만을 입기로 했어요. 옷 때문에 아버지와 옥신각신한 적이 없는걸요. 아버지는 엄격하신 듯하면서도 의외로 저희들 몸 치장에 신경을 써주셔서 여간 좋은게 아니예요』 영숙양은 슬쩍 아버지를 추어 올린다. 세째 따님이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는 솜씨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 있는 터. 기분만 잘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타내는 솜씨도 능란해서 형제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또한 봄날의 「피크닉」, 여름철의 피서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영숙양. 부모님들과 언니, 오빠 그리고 동생들 사이에서 여러가족들의 의견을 전담하고 종합해서 실행하도록 한다는 것. 중학교 2학년때부터 익힌 「피아노」솜씨는 「베토벤」의 소품(小品)들을 즐기는 정도. 『학교에 다닐 때는 이 핑계 저 핑계로 「피아노·레슨」을 게을리 하더니만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들어 앉고 부터는 자연 시간이 나니까 차분히 앉아서 「피아노」를 치더군요. 요즈음 들어 부쩍 「레슨」에 열을 올리더니 아주 솜씨가 늘었어요』 아버지는 자못 희색이 만면해서 딸의 「피아노」 솜씨를 자랑한다. [선데이서울 70년 7월 26일호 제3권 30호 통권 제 95호]
  • 뮤지컬 앙코르무대 ‘봇물’

    그들이 돌아왔다.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던 인기 뮤지컬들이 속속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다. 지난해 7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단 일주일간의 공연으로 팬들의 애를 태웠던 뮤지컬 ‘바람의 나라’가 오는 5월5∼25일 역시 토월극장에서 재공연된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손자 ‘무휼(대무신왕)’을 주인공으로 한 ‘바람의 나라’는 만화적 상상력을 독특한 형식으로 무대에 옮겨 만화팬들을 열광시켰다. 만화가 김진의 원작이다. 11개의 독립된 만화 장면들을 클래식, 락, 하우스, 힙합,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역동적이면서도 절제된 움직임으로 연출했다.‘헤드윅’ ‘그리스’ 등을 연출했던 이지나씨의 감각이 빚어낸 명장면으로 이번에도 이씨가 연출을 맡았다. 고영빈, 홍경수, 김호영, 도정주 등 지난해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이 대부분 다시 무대에 선다. 특히 뮤지컬의 전쟁 테마곡으로 사용됐던 ‘무휼의 전쟁’은 드라마 ‘하얀거탑’에서도 테마곡으로 쓰여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과 드라마의 음악을 모두 이시우씨가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1년 초연이래 전세계인 6500만명이 열광한 ‘캣츠’는 오리지널팀의 월드투어로 5월31일부터 대구, 서울, 광주, 대전에서 5개월간의 대장정을 펼친다. 이미 한국에서도 1994,2003,2004년 내한공연을 통해 지금까지 38만명이 관람했다. 과거 ‘캣츠’의 내한공연과 비교할 때 배우들이 훨씬 젊어졌고, 안무가 더욱 강조돼 힘있는 무대를 선보인다. 이번 월드투어팀은 런던 공연의 종연이후 유일한 투어팀이자 마지막 투어 공연이란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 공연에서는 국립극장의 무대를 돌출시켜 거대한 고양이들의 놀이터로 바꾼다. 곳곳에 비밀통로를 만들어 배우들이 깜짝출연해 즐거움을 선사한다. 1983년 국내 초연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됐던 ‘아가씨와 건달들’은 비보이와 뭉쳐 새로운 공연으로 재탄생했다. 러시아 무용수와 마술사, 비보이들이 합류해 브레이크 댄스, 탭댄스, 재즈댄스, 플라멩코 등 화려한 춤의 향연을 펼친다. 줄거리는 1950년대 뉴욕에서 1200회나 장기 공연된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따왔다. 하지만 11명으로 구성된 비보이팀 ‘더 아트’가 참여하면서 춤이 강조된 역동적 공연으로 변모했다. 폐막 기한없이 서울 명동 메사 뮤지컬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여름밤에 옷 벗은게 뭐 나빠

    여름밤에 옷 벗은게 뭐 나빠

    7월15일 남대구경찰서는 대구시 봉산동에 사는 접대부 한모양(21)과 윤모양(23)을 즉결에 넘겼는데…. 이 두 아가씨는 15일 상오 0시40분 쯤 술에 취해 기분을 낸다고 옷을 훌훌 벗어 팽개치고는 「팬티」 바람으로 중앙로 거리로 나와 춤을 추다 잡힌 것이라고. 경찰에 연행되어 온 이 아가씨들, 『한여름 밤에 옷을 벗었기로소니 무슨 잘못이냐』고 큰소리 쳤더라고. <대구(大邱)> ● 영업하던 창녀가 적발되자 나체「쇼」 7월15일 동인천 경찰서는 황모양(25·인천시 창영동)을 윤락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즉심에 넘겼는데…. 황양은 창녀로 생활하며 여러차례 경찰신세를 진 경력이 있는데다가 7월14일에는 인천시 화평동 D여인숙에서 배모씨(25·인천시 송월동)와 동침하다가 순찰 나온 순경에게 적발 당하자 돌연 입고 있던 옷을 훌훌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는 갖가지 「쇼」를 벌였다는 것. <인천(仁川)> [선데이서울 70년 7월 26일호 제3권 30호 통권 제 95호]
  • 인기탤런트 아가씨가 한번 먹은 마음

    인기탤런트 아가씨가 한번 먹은 마음

    『이번 일을 전기(轉機)로 해서 새출발의 결의를 단단히 했습니다.』 7월 1일 7년동안을 몸담고 자라 온 TBC-TV에서 툭툭 털고「프리」가 된 안은숙(安恩淑)양(27)은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는 이야기. 『앞으로 내가 얼마나 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번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달려 있는거죠.』 전속은 괴로울 때도 1943년, 경남 마산 출생. 성균관대(成均館大) 영문과(英文科)를 졸업했고 TBC-TV「탤런트」1기생으로 안방극장과 인연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이 1백편이 넘는다. 이 1백편이라는 것이 모두 TBC 작품. -「프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연기자로서 어떤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서였어요.「탤런트」란 것이 상품은 아니잖아요? 맘이 내키지도 않는 역을「전속이라는 굴레」때문에 억지 출연해야 하는 괴로움이 싫었던 거에요.「프리」가 되면 그만큼 고독하겠지만 또 그만큼 다른 것에서 얻는게 많으리라고 믿었어요. 요컨대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느냐 하는게 문제가 아니겠어요?』 -충실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충실이죠.「탤런트」는 어떤 의무감이랄까 사명감이랄까 하는 봉사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모든 다른 직업도 모두 그런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겠지만,「탤런트」의 경우 연예인으로서의 화려함 보다는 오히려 대중속의 수수함을 좆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그만큼 같이 호흡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자기나름의 철학이랄까 하는게 있어야 하고 주관적인 주장이 있어야 하죠 강해질 수 있는 터전이 필요해요.』 그 강해질 수 있는 길이「프리」가 되는 것이란 논리다. 번의 권고 받았으나 상당한 기간을 매우 고차적(?)인 견지에서 가름해보고 결정한「프리」결심인 듯. 일부 신문에서「프리」를 번복했다고 보도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씀. 『계속 TBC에 있으라는 권유를 여러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 결심에는 변동이 있을 수가 없어요.「한번 먹은 마음」을 쉽사리 버릴 수가 있겠어요?』 꽤나 딴딴히 맺힌 마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 계기를 잘 넘길까 하는 생각 밖에는 없다는 얘기. TV만 전념할 생각 -TV 말고 다른 것은? 『아주 옛날에 영화에 한 서너편 나가 보았지만 포기하고 말았어요. 무대에도 한 20편 출연했는데 역시 TV가 제일 나한테 맞는 것 같아요. 오로지 TV에만 전념할 생각이에요.』 -어떤 역이 제일 마음에 드는지? 『요즈음 하고 있는 역이에요. 정숙하고 조용하고 모든 걸 감수하는, 말하자면 가장 한국적인 여인상이죠. 특별히 모나지 않은 성격 탓이겠죠.』 자기가 출연한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는 정성파. 외출했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채널」을 맞힌다고. -제일 기쁜 때는? 『칭찬을 들을 때 하고 상을 탈 때에요. 동아연극대상(화니), TBC 최우수대상「탤런트」대상을 두번,「핑크·리본」최우수 대상을 탔어요. 대상만 탄 셈이죠? 조그만 것이라도 옆에서 칭찬을 해주면 말할 수 없이 기뻐요. 작은 것에 만족하는「타이프」이죠.』 돈을 적당하게 벌고 -그만큼 욕심이 없다는 뜻 인가요? 『아니에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요. 내가 TBC에서 주는 전속료를 안받았다고 마치 욕심이 없는듯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아요. 그렇다고 돈만 아는「샤일록」은 아니에요. 적당히…』 전속료를 안받는다고 해서 일부에서는 그까짓 것쯤 할만큼 쌓아놓은 돈이 많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라고. 『요즈음 한회 출연료가 2만원이에요.「꿈은 좋았는데」(유호(兪湖) 작 황은진(黃垠軫) 연출)하고「통곡의 종)(서윤성(徐允成) 작·全世權(전세권) 연출) 두편하고 있는데요. 한 달에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보면 알 수 있잖아요? 그것도 출연료가 좀 후해진 요즈음이 그 정도인데 옛날에는 어땠겠어요? 무슨 수로 제가 돈을 쌓아 놓았단 말인가요?』 서울 신당동에서 부모가 안 계시기 때문에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다. 하얀「코로나」를 지난 해에 사들였다. -결혼은? 『인연이 없는가 보죠? 서른살 안에는 해야 할텐데…』 -남성상은? 『꼭 이렇다 하는 남성상이 없어요. 그때 가봐서…』 [선데이서울 70년 7월 19일호 제3권 29호 통권 제 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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