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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추억/최태환 수석논설위원

    대중가요에 꽤 조예가 깊은 선배가 있었다. 특히 1940∼50년대 흘러간 노래의 탄생 내력이나, 노랫말에 숨은 뒷얘기 등을 그럴싸하게 풀어나가곤 했다. 때론 ‘구라’가 섞인 것 같았지만 즐겁게 맞장구를 쳤다. ‘사십계단 층층대에/앉아 우는 나그네/울지 말고 속 시원히/말 좀 하세요/…피란살이 처량스레/동정하는 판잣집에/경상도 아가씨가/애처로워 묻는구나.´ 한국전쟁 피란민의 애환을 그린 ‘경상도 아가씨’다. 전란 중에도 레코드가 엄청 팔렸다고 한다. 선배는 피란살이 아저씨를 짝사랑한 부산 처녀의 애달픈 심정이 녹아 있다고 했다. 행여 북의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 날이 올까 애타는 심경이 담겼다고 했다. 사십계단 층층대는 영도 부근에 있었단다. 부산 중구청장이 한국전쟁 당시 대중가요와 자료를 모아 책으로 냈다.‘그때 그 가요’다.10년간 자료를 모았단다. 한 초등학교 배지는 일본에서 구했다고 했다.‘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걸쭉했던 선배 목소리가 새삼 그립다. 선배는 몇년 전 작고했다. 살아 있다면 책을 펼치며 ‘구라’를 풍성하게 보탤 텐데.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어떻게 하길래 이발 한번에 1만(萬)원

    어떻게 하길래 이발 한번에 1만(萬)원

    지금 미국에선 남성미용이 바야흐로 유행을 이룰 단계가 되고있다. 특히 50대를 넘긴 초로(初老)의 신사들에게 인기를 얻고있는 이 남성미용은 일종의 회춘(回春)제. 해가 갈수록 멀어져가는 젊은 모습을 어떻게해서든 잡아두고 연장시켜보자는 마지막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외양의 젊음 뿐아니라 내적인 정력도 얼마간 회복시킬수 있다고 선전되고있는 이 남성미용은 일종의 이발업. 이발업에서 발전한 특수이발소가「뉴요크」를 비롯한 미국의 이곳 저곳에서 성업을 이루고있다. 고객은 돈많은 실업가들 늙기전에 젊음 지키자고 주로 돈많은 실업가들이 고객인 이 남성특수미용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발사 미용사등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문자그대로 전신 미용이다. 머리손질에서부터 얼굴「마사지」, 몸통, 둔부, 허벅지 그리고 다리와 발, 발톱정리는 기본순서. 그밖에 갖가지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베풀어져 비단 젊은 모습을 지킨다는 욕심이 아니더라도 한번 맛을 들이게되면 다시 들르지 않고는 못배긴다. 최근엔 젊은 실업가고객도 상당히 늘고있는데 이들은 미녀의「마사지」맛에 그리고 기왕이면 늙어지기 전 젊음을 지키자는 1석2조의 욕심에서라는것. 이밖에도 이들 특수 이발관의 특징은 대머리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수가발을 제공하고있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뉴요크」에 있는「바이달·사순」.「본위트·텔러」건물 2층 전관을 사용하고 있는 이 이발관은 차라리「클럽」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넓고 화려하며 호화롭다. 전용「엘리베이터」에 의해 입구에 들어서면, 그러나 가위를 든 흰「가운」의 이발사는 보이지 않는다. 상냥한 아가씨가 안락 의자로 안내한다. 우선 머리가 충분히 길었는가 그리고 고객의 요구가 어떤것인가가 검토되고 그리고 천국이 시작된다는 것. 그들의 명분은 굳이 젊음을 잡아준다는데 매달리지 않는다.『사장에게는 사장답게 정치인에게는 정치인답게 그리고 그들의 개성에 맞는 가장 훌륭한 이발을 해드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선 정신부터 늙었다는 사실을 잊게하려는 계산. 만약 고객이 수염을 기르고 있으면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을 하고 다닌다고 그들은 말한다. 수염이 없는 것이 좋다고 판단할땐 본인의 동의를 구해 수염을 밀어버린다. 머리 손질만 할때 수석 이발사에 의할 경우 15「달러」(약5천원) 일반 이발사에 의할 경우 12「달러」. 그러나 여기에 갖가지「서비스」가 가산될경우 이발 한번에 30「달러」(약1만원)가 거뜬히 오른다. 분명히 5년은 젊어보여 마치 인간재생 공장같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객이 몰려 오는것은 그 돈의 값어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모 회사의 부사장「시들러」씨는 특히 발톱미용에 죽고 못살겠다고 말하면서 돈은 아깝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물거품을 일으키는 특수 대야속에 발을 담가 놓고 모든것을「서비스·걸」에 맡기면 나는 천국에라도 오른 기분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떤 쾌감보다 이들에게 값비싼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은 젊음이 되살아 난다는 사실이다. 화장품판매업으로 거부가 된「투메이」씨는 얼굴에 대한 특수「마사지」는 긴장을 풀어주고 실제야 어떻든 다시 젊음이 소생하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들 이발관의 특수 미용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는 확실히 5년쯤 젊어보인다는 것이 보는 사람들의 견해이고보면 그들이 자신을 갖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상에 열거한 이야기 말고도 「뉴요크」에 있는 이들 특수이발「클럽」은「사우나」, 증기탕, 특수별실, 미녀「호스테스」의「마티니·서비스」등 목욕과「마사지」및 휴식 시설등을 갖추고 모든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종의 인간재생공장이다. 이들은 또 모든 사람들이 VIP(중요인사)취급을 받으려 한다는 심리를 이용, VIP 단골제를 운용하기도 한다. 이것의 특징은 요금을 연불로 하는것.「서비스」료를 제한 기본요금 2백50「달러」(약 10만원)을 1년에 한번씩 내고 등록을 해두면 일체의 이용에 우대를 받게해준다. 이들에게만 특별히 허락되는 것은 단골을 위한 특수한 방을 이용할수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방에는 TV, 전축, 받아쓰기 기계, 전화, 태양등과 전용의 「사우나」및「샤워」가 달려있다. 대부분의 사업가 실업인들은 대머리라는 점에서 이들 특수이발관의「서비스」로 인기를 모으는것은 가발이다. 고객의 용모따라 대머리엔 특수가발도 이들이 제공하는 가발은 그러나 일반 가발과는 다른 특수가발. 전체 가발이 아닌 부분가발이 많다. 대머리도 적당히 벗어진 대머리는 정력과 박력의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고객의 용모를 최대로 살린다는 것. 이미 가발이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닌것이 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가발 덕분에 10년은 젊어 보이게 되었다는 모 석유회사 사장「월렌」씨는 언제나 불편없이 가발을 치장해 주는 이발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발비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 이 가발 이라는것을 그들도 인정한다. 2백「달러」에서 4백「달러」(약15만원)까지 지불해야하지만 일단 하나를 구입하면 오래쓸수있고 가발손질비는 겨우 5「달러」정도이니만큼 대부분의 고객이 미국의 부유한 상류사회의 사장족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별로 큰 문제가아니다. 그러나 50대를 넘긴 사장족의 경우엔 대부분이 동정적이고 긍정적이지만 30~40대의 장년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종업원의「서비스」중에서도 특히 여자 종업원의「서비스」만을 노리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요구로 이발업당사자들을 당황케 만든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의 기지로 문제가 처리되며 그것은 개인들의「프라이버시」로 외면해 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노년의 경우도 아름다운여자「마사지」사의 보드라운 손길이 지나갈때엔 감정이 격해지지만 억제력이 강하며, 그 사실 자체만으로 그들은 대사작용이 활발해져 혈색이 좋아지고 젊음을 얼마간 회복할수있다는 색다른 주장을「오프더·레코드」로 펴는 업자도 있다. <외지에서>[선데이서울 70년 12월 20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6호]
  • 아가씨 24세를 집시처럼

    아가씨 24세를 집시처럼

    양가집 귀염동이 딸로 태어났으나「집시」처럼 살아온 아가씨-「모델」을 거쳐 영화에 출연하자『조지·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 국제적인 여배우가 된「샬로트·램플링」양이 영국을 떠나「할리우드」로 옮겨왔다. 쾌활해서 별명「찰리」…「조지·걸」로 유명해져 그녀의 별명은「찰리」. 「찰리」란 별명은 흔히 남자들에게 쓰이는 애칭인데 그녀의 성격이 워낙 쾌활해서「찰리」로 불린다. 「샬로트·램플링」이란 이름이 알려진 것은『조지·걸』에서「린·레드그레이브」와 공연한 이후부터다. 날씬한 몸매에「섹시」한 모습이 그녀를 단번에 영국 제일의 신인여배우자리에 올려 놓은 뒷받침이 되었다. 『조지·걸』이후「루치노·비스콘티」감독의『저주받은 자』에서 다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 연기파 배우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올해 24살인「램플링」양은 영국과「유럽」일대에선 널리 알려진 여배우지만「할리우드」엔 올해 처음 발을 디뎠다. 올 봄「램플링」양은『스키·붐』이란 서부극을 찍기위해「콜로라도」로 「로케」를 왔었는데 이때『「콜로라도」의 협곡과「할리우드」의 기후에 반해』미국에 오래 머무를 결심을 했다고. 영국 돌아가려 했다가「텍사스」풍물에 반해 『스키·붐』의 촬영이 끝나자「램플링」양은 한동안 영국,「프랑스」, 중동 지방에서 휴가를 즐긴뒤『소점(消點)』의 촬영을 위해 다시 남부「캘리포니아」로 돌아와야 했다.『消點』의 촬영이 끝나자「램플링」양은 곧 영국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이번엔 또다시「텍사스」에서 새 영화를 찍을 일이 생겼다. 새 영화의 이름은『모두 떠나가다』.이 영화서 「램플링」양은「페기·조」의 역을 맡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페기·조」는 야심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남성(「로버트·블레이크」분(扮))과 결혼하는데 남편은 자동차 경주왕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으나 끝내는 꿈을 못이루게 된다.「램플링」양은「텍사스」의 풍물에 담뿍 정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좋은 가문서 자라왔으나 취미는 모두 집시풍 『「텍사스」와「아메리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제 자신에게도 큰 공부가 되었어요. 전 이제까지 제가 줄곧 맡아오던 어떤 일정한「타이프」만이 아니 어떤 역이든 해낼 자신을 갖게 되었거든요』 「램플링」양은 자신을 가리켜 흔히「집시」라고 표현한다. 그녀 자신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의 취미는 모두「집시」취향이다. 그녀가 입은 옷은 전부「집시·스타일」. 미국에 와서 일하기 전까지 그녀가 살던 집은「런던」교외에 있는「나이트·브리지」에 있었는데 집이라는게「집시」들이 사는 통나무 집. 또 그녀의 단골「디자이너」인「런던」의 「오시·클라크」나「파리」의「데어·포터」는 두사람 모두「집시」풍의「디자인」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스포츠맨 대졸후 한때 모델도 그녀의 고향은 영국「케임브리지」. 아버지는 육군장교였는데 지금은 영국 제일의「스포츠맨」이다.「램플링」양은「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뒤 다시 성(聖)「힐다」여고를 졸업,「해로」공과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졸업후 잠시「모델」생활을 거쳐 영화계에 투신,「리처드·레스터」감독의『요령』에 첫 출연 했다. 그후 다시「런던」의「로열·코트」극단에서 연기력을 닦은뒤 영화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며『조지·걸』한편으로 완전히 국제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0일호 제3권 51호 통권 제 116호]
  • 「미스·농협」김기영(金基瑛)양-5분데이트 (113)

    「미스·농협」김기영(金基瑛)양-5분데이트 (113)

    「미스·농협」김기영양(23)은 농협 중앙회 교육공보실장 비서로 근무한지 만2년3개월. 동명여고를 나온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아가씨. 남과 얘기를 할 때면 그냥 부끄러워 장갑이나 손에 낀 반지만을 애꿎게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최영주(崔英珠)여사(47)의 4남1녀중 셋째. 외딸이라 집안에서는 귀여움도 많이 받고 응석도 꽤 부리는 아가씨. 김양 자신은 이젠 응석같은건 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의 애교 넘치는 음성이나 귀여운 태도로 보아 믿을 수만은 없는 얘기. 『어머니가 아직 젊으셔서 그런지 양장점이나 미장원, 또는 구두를 맞추러 갈 때 늘 저랑 동행해 주셔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저를 굉장히 부러워 하는 것 같아요』 하나 뿐인 딸을 좀더 예쁘게 보이게 하시려고 어머니는 어디가나 같이 다니며 딸의 시중을 들어준단다. 기영양이 3년전부터 「브로치」나 목걸이 귀걸이 반지같은 여성 「액세서리」를 취미로 수집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딸을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조금만 돈의 여유가 생겨도 한가지씩 사오신 것이 동기. 3년동안 모은 「액세서리」는 모두 20여가지. 옥색 비취귀걸이에서부터 「크림」빛 진주반지등, 값으로 따져도 상당하다. 그녀의 취미는 그뿐이 아니다. 각종 인형과 「마스코트」도 모으고 있다. 석고로 된 인형, 나무로 된 것등 상당수에 달한다. 남성과의 「데이트」는 『시간도 없고 아직 관심도 없어』한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12월 20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6호]
  • 「미스·중앙대」정국경(鄭菊瓊)양-5분데이트(112)

    「미스·중앙대」정국경(鄭菊瓊)양-5분데이트(112)

    지난 11월 1일 「눈의 날」기념으로 삼일제약이 실시한 제 5회 「미스·아이·콘테스트」에서 최고의 영예인 「미스·골드」로 뽑힌 정국경(鄭菊瓊)양(22). 착하고 청순해 보이기만한 그 커다란 두 눈을 껌벅일때마다 천진스러운 귀여움을 물씬 풍기는 아가씨. 아직도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그러면서도 성숙한 여인의 품위있는 매력을 지녔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에 재학중. 그러나 요즘은 학교 공부는 뒤로 미루고 TV 「탤런트」로 훈련받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월 MBC-TV가 실시한 제3기 「탤런트」시험에 뽑혀 요즘은 아침 10시부터 저녁5시까지 방송국에서 「탤런트」가 되기 위한 일과로 바쁘다. 『「탤런트」라고 하면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요. 남다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해요』 「탤런트」시험에 뽑혔다고 해서 금방 「스타」가 되는듯한 안이한 기분으로 시작하려다간 탈락되기 안성마춤인 것 같더라고. 『학교에서 연극무대에 조금서본 것이 동기라면 동기겠지요』 차근차근히 말하는 정양은 앞으로 「탤런트」로 성공하기위한 결심과 각오가 돼 있다고 야무지게 한마디. 영등포여고를 나온 그녀는 별로 친구가 많지 않다. 『애인은 더구나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혼자서 조용히 공상을 펼치거나 낙서하는 것이 취미. 많은 사람앞에서는 몸 둘 곳을 모르는 성격이라 집에서 걱정들을 하지만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 보겠단다. 수예와 재봉솜씨는 「아마추어」이상의 수준. 하나뿐인 언니가 시집갈 때 방석이며 앞치마등을 모두 국경양이 만들어 주었을정도. [선데이서울 70년 12월 13일호 제3권 51호 통권 제 115호]
  • 드러난 구직(求職) 아가씨 매매(賣買) 비밀조직(組織)

    드러난 구직(求職) 아가씨 매매(賣買) 비밀조직(組織)

    「여공모집」「타이피스트모집」등의 구인광고를 낸 뒤, 일자리를 구하려는 여대생, 또는 가출소녀 3백40여명을 「호텔」, 여관등에 팔아 매음행위를 시켜오던 3개 악질범죄단체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검찰서 밝힌바로는 서울시내에 이런 범죄단체 30여개가 있어 일자리를 구하려는 소녀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고. 서울시내에 30여개소나 감금해놓고 매음을 강요 서울지검 강력부 황공렬(黃公烈)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구인광고를 내어 찾아온 처녀들을 창가에 팔아온 명재천(明在千·27·주거부정), 안경애(安京愛·38·서울 중구회현동1가 113), 차원복(車元福·29·주거부정)등 5명을 직업안정법위반, 매음행위단속법위반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에 앞서 29일에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처녀들을 창가에 넘긴 조갑주(曺甲州·25·서울중구 충무로3가 131), 윤영운(尹英雲·33·서울중구 회현동1가 125), 또 모여관 지배인 장병곤(張炳坤·44·서울종로구 서린동114의1)등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한편 서울지검 강력부의 서동권(徐東權)검사도 70여명의 처녀를 같은 방법으로 꾀어 주로 미군기지촌에 팔아오던 주거부정의 정찬모(27), 김진자(36·경기도파주군), 김연자(29)등 3명을 영리유인, 매음행위단속법위반, 직업안정법위반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매일 신문광고난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구인광고. 바람난 시골처녀,「아르바이트」일자리를 구하는 여대생들의 구미를 돋우기 위해『초봉7만원』『침식제공』등 달콤한 미끼를 아끼지 않는다. 이번 8명의 악질 인신매매업자를 적발한 황부장검사는 연말을 기해 신문 광고난을 이용한 처녀 매매업자에 대한 일제단속을 계속 벌이는 한편 순진한 구직아가씨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기위해「매스콤」을 이용, 계몽에 나섰다. 검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문 구인광고난을 이용하여 처녀를 모집한뒤 한집에 5~10여명씩 감금해 놓고「호텔」여관손님에게 매음행위를 시키거나 기지촌「바」등에 팔고 사는 조직이 서울 시내에 30여개 처나 있을 뿐 아니라 악의 소굴에 빠져 밤이면「호텔」문을 두드려야 하는 밤의 꽃이 무려 5백여명이나 된다고. 일본인 사장이라는 자가 여관에서 주민증 뺏더니 쇠고랑을 차고 황부장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던 안경애 여인과 윤영운 여인은『서울시내 각여관에서 아가씨를 보내달라는 전화가 밤새도록 걸려온다』고 성업(?)을 자랑했다. 피해자 진술을 하기 위해 검사실에 온 김현숙(金賢淑 가명·20)양은 D여대 2년을 중퇴한 평범한 얼굴의 아가씨. 바로 이 아가씨의 신고로 이들 범죄조직은 그 꼬리가 잡혔다. 박봉으로 생활을 이끌어오던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자리에 눕게되자 지난 2학기 등록을 못하고 9월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타이프」학원엘 다녔다. 「좋은 일자리가 없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로 매일 조석간 광고난을 빼놓지 않고 보던 어느날 아침-『「타이피스트」모집 월수6만원』이란 구인광고가 김양의 눈에 띄었다. 보던 신문을 든채 뛰어나간 김양은 집앞 약방에서 연락장소인 (23)XX34의「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거기서「타이피스트」구합니까?』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40대남자의 목소리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침 10시 XX극장 앞 공중전화에 와서 다시 전화해 주십시오』 약속된 시간에 지정된 극장앞 공중전화「복스」에서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곧 나가겠다. 손에 신문지를 말아들었다』고 먼저의 40대 남자가 말했다. 깨끗이 차려입은 그 신사를 따라 남산밑 어느 여관까지 갈 때 그가 독사의 이빨을 가진 인신매매업자란 사실을 알아차리기엔 김양의 나이와 세상경험이 너무 어렸다. 여관 2층방에 김양을 안내한 그 신사는 신원을 확인해볼 터이니 주민등록증을 맡기라고 요구, 김양이 내어주니까『기다리고 있으라』고 명령조로 말하며 방을 나갔다. 하오 3시쯤, 문을 두드리기에 열었더니 여관에서 일하는 16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아가씨를 채용할 일본 사장님이 무척 바빠 만나 보려면 저녁 8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글거리며 말하고 내려갔다. 저녁 7시40분쯤 40대의 한신사가 나타나 일본인 사장이 아가씨를 쓰기로 했다며 만나러 가자고 서둘렀다. 여관앞에는 까만「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E「호텔」502호로 안내받은 김양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50대 일본인과 처음 먹어보는 양식에 맥주 몇잔까지 억지로 마셨다. 20년간 고이 간직한 처녀를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빼앗기기 직전 위기를 모면한 김양은 도망쳐나와 경찰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시골서 올라왔다 기지촌에 팔려가기도 악질 인신매매업자들은 신문광고 외에 서울역 부근 골목길이나 시외「버스」정류장에 구인벽보를 붙여 상품(?)을 낚기도 한다. 고향이 전남 보성인 성정숙(成貞淑 가명·18)양은 지난달 16일 서울에 있는 외삼촌 집을 찾아왔다가 집을 못찾고 다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앞 G고속「버스」정류장에 갔다가 전신주에 붙어있는『여공모집 침식제공』이란 구인광고를 보고 약도에 그려진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님으로 불리는 중년부인과의 간단한 면접을 끝낸뒤 남자직원과 같이 낡은「지프」에 올랐다. 차가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에 다다랐을 때 남자직원이『아가씨는 시골공장에서 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순진한 시골처녀가 일선지구 미군기지촌이 어떤 곳이란 것을 알리 없었다. 성양이 팔려간 곳은 경기도파주군 미군기지촌에 있는 어느 미군「클럽」. 매음행위를 강요하는「클럽」여주인의 등쌀에 못이겨 팔려간 다음날 흑인 미군병사에게 처음으로 처녀의 몸을 더렵혔다. 울며 집에 보내달라는 성양에게 주인여자는『너를 3만원에 샀으니 3만원 벌어놓고 가라』고 말했다. 다행히 고향 오빠 친구를 만난 성양은 악의 소굴에서 구출되어 고향으로 내려 갔다. 이 오빠친구의 신고로 검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 바로 정찬모, 김진자등 일당 3명. 서울시내 여관에서 공공연히 불러주는 밤의 여인들이 대부분 이런 경로를 밟아 몸을 짓밟힌 아가씨들. 검찰의 일제단속이 이들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내야겠지만 우선 아가씨들은 구인광고를 조심할일이다. <金 建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2월 13일호 제3권 51호 통권 제 115호]
  • 『검은고양이 네로』부른 박혜령(朴慧鈴)어린이

    『검은고양이 네로』부른 박혜령(朴慧鈴)어린이

    「이탈리아」의 「칸조네」한국판 『검은 고양이 네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베스트·셀러」로 등장. 홍현걸(洪鉉杰) 역사·편곡에 5살짜리 박혜령양이 부른 이 노래가 의외의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키자 몇몇 「레코드」사에서는 뒤쫓아 『검은 고양이-』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가 하면 이를 복사한 도용판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맨처음 「디스크」를 낸 지구(地球)는 판을 찍기가 무섭게 팔려 『동백아가씨』이후의 경기라고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발매 2주만에 1만장 정도는 팔렸을 거라는 추측. 『유아(幼兒)를 상품화시켰다』는 비난(?)이 없지도 않으나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들은 귀엽게 받아들여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이 노래의 역사(譯詞) 편곡 그리고 박양을 「픽·업」한 작곡가 홍현걸씨의 말이다. 지구「레코드」사쪽은 『검은 고양이 네로』복사판이란 것을 내세울 뚜렷한 증거물은 입수하지 못했으나 「크리스머스·카드」형식으로 「레코드」에 복사된 『검은 고양이 네로』의 「소니·시트」 가 대학가 주변에서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것. 『검은 고양이 네로』는 서울뿐만이 아니고 차차 지방 도시에 까지도 파급되면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최근 계속 「슬럼프」상태였던 지구「레코드」를 돈방석위에 올려놓게 되었다고.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아내가 외도 격려

    아내가 외도 격려

    지난 11월18일밤, 부산(釜山)시 서(西)구 동대신(東大新)동의 모식당 주인 장(張)모씨(41)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한 끝에 기분이 거나해지자 완월(玩月)동 사창가로 기분을 풀러 갔는데…. 방안에 들어섰다가 두눈이 그만 휘둥그래졌다. 까닭인즉 상대방 아가씨는 지난 3월부터 자기집의 식당에서 식모로 일하던 종업원이었는데, 얼마전 싯가 12만원짜리 「다이어」반지등을 비롯해서 14만여원어치를 훔쳐 줄행랑을 친 장본인이었다는 것. 하필이면 사창가에 놀러 왔다가 도둑을 잡은게 창피하기는 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경찰에 고발했다고. 장씨의 부인은 남편의 고발정신에 감동했음인지 『이번은 당신의 외도사상(?) 최고의 「히트」였다』고 책망은 커녕 오히려 격려(?)했다나…. 재수좋은 오입(?)이군 그래. <부산(釜山)>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깔깔깔]

    ●악어먹이 한 농부가 자신의 소유인 농장안에 있는 호수로 수영을 하러 가면서 오는 길에 나무 열매를 따오려고 양동이를 하나 들고 갔다. 호수 가까이에 이르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가보니 아가씨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농부가 가까이 온 것을 본 여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얼른 가버리지 않으면 안 나갈 거예요.” “알았습니다. 난 숨어서 보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고는 양동이를 높이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난 이 호수에 있는 악어에게 먹이를 주러 왔거든요.” 그러자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뭍으로 도망쳐 나오기 시작했다.●취중미인 여자가 경찰에게 달려가 말했다. “어떤 남자가 자꾸 따라오면서 말을 걸려고 해요. 술에 취한 것 같아요.” 그러자 경찰이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며 하는 말, “그 사람 술에 취한 게 틀림없군요.”
  • 「미스·신탁은행」 민태희양 - 5분데이트(111)

    「미스·신탁은행」 민태희양 - 5분데이트(111)

    큼직한 눈, 이국적(異國的)인 「마스크」의 민태희(閔泰姬)양(23). 이화여고를 거쳐 지난 봄에 이화여대 사범대학 사회생활과를 졸업, 3개월전부터 신탁은행 행장비서실에 근무하는 직장생활 초년생 아가씨다. 비서라는 직업탓은 아니겠지만 태도가 여간 싹싹하고 친절하지 않다. 『물론 많은 손님을 접대하려면 「매너」가 세련되고 정중해야 되겠죠』그러나 민양의 태도가 겸손하고 예의 바른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육을 통해 몸에 익혔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는 답십리에 있는 민중병원 내과의사 민영현(閔永鉉)씨(60). 2남3녀중 둘째 딸. 비서로 근무하다보니 아침 출근해서부터 저녁 7시 퇴근할 때까지 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자유로운 시간을 좀처럼 가질수 없는 것이 조그마한 아쉬움. 행장 김진흥(金振興)씨가 너무너무 잘해줘 불만은 없단다. 직장 일이 끝나면 대개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것이 정상적인 일과. 그러나 일요일만은 거의 빼놓지 않고 가까운 대학친구 5,6명이 모여 서울 근교의 고적이나 유원지로 1일 여행을 떠난다. 원래 그녀는 여행을 좋아한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면 평생 여행을 즐기고 싶단다. 서울 근교의 웬만한 곳은 물론 설악산, 계룡산, 속리산 등 멀리까지도 가보았단다. 사귀고 싶은 남자는 성격이 소탈하고 믿음직해야 되겠단다. <란(蘭)>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쥔있는 몸끼리 무허가(無許可) 사랑 30년

    쥔있는 몸끼리 무허가(無許可) 사랑 30년

    30년전- 30고개의 유부남에게 순결을 주었던 18살의 처녀가 50고개에서 우연히 60대가 된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이순간 이들 남녀가 다시 불태운, 맺어서는 안될 사랑은 결국 나이에 어울리지않는 죄명으로 쇠고랑을 나란히 차고 말았지만 긴 다홍치마의 멋이 「미니」세대로 변모한 세월에 이르기까지의 30년을 이어온 색다른 이 불의의 사랑 3막이 사연은-. 30년전 아내있는 사내와 이웃사는 처녀가 남몰래 [제1막] 해방이 되기 1년전인 44년봄 아내를 둔 차광희(車光熙)청년(가명·28)은 한마을에 사는 10년연하의 임복영(林福榮·가명) 처녀와 깊은 관계에 빠졌다. 대구시 칠성동 청년단장을 하면서 비교적 마을일에 밝았던 차(車)청년은 그때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구기예(技藝)중학교를 나오고 대구지방법원 교환양으로 일하던 방년18세의 임(林)양과 이웃에 살면서 청년단 일을 핑계로 잦은 접촉을 갖는동안 어느새 정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어쩔수 없는 사이가 되고말았다. 그러나 10개월동안 지켜진 이 비밀은 별로 뜬소문없이 끝내 비밀로 묻혀진채 19살 되던해 임양이 대구시 삼덕동 김(金)모씨에게 시집을 가게되면서 「피날레」 간통 제1막은 이로써 무사히 끝났다. [제2막] 이런 내용을 알리없는 불행한 사나이 신랑 김씨는 6·25동란때 군에 입대했으나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결국 그는 아내의 비처녀성을 영원히 모르게 돼고, 임여인과 결혼생활 단3개월을 누렸을 뿐이었다. 「미스」아닌 19살의 「미시즈」임은 그럭저럭 짧은 결혼생활에서 얻은 아들과 단둘이 살다가 6·25 이듬해인 51년 10월 지금의 남편 김기호(金基鎬)씨(가명·46)와 재혼. 그러다 시집간 아가씨는 남편잃고 또 결혼했으니 그때 남편은 28살. 전실소생이 없고 오히려 전남편의 아들이 딸린 그녀 입장에서 재혼생활은 바로 서울로 이사해 옮기면서부터 남편에 대한 정성이 한결 더해졌고 알뜰한 주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들딸을 낳으면서 날과 달이 흐르기 만10년….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지는 운명의 61년 겨울이 왔다. 이해 12월 어느날 대구시 태평로3가 통운창고 옆에 있던 언니집에 다니러온 임여인은 그 옛날의 남자 차씨와 식당에서 딱 마주쳤다. 운명이란 참으로 우연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16년만에 만난 그녀는 차씨가 이끄는대로 장소를 옮겨 다방엘 갔고 저녁을 같이든 다음 극장을 거쳐 밤11시30분이 되자 자석에 끌린 사람처럼 그를 따라 나란히 여관을 찾았다. 재회가 빚은 간통 제2막은 그이튿날 그녀가 서울로 올라가기까지 서로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불을 뿜었다. [제3막] 8년이란 세월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또 흘렀다.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대구로 옮긴지도 몇년이 지났다. 무더위가 「아스팔트」를 엿판처럼 녹이는 작년 8월의 어느 하오. 모「택시」회사에 볼일이 있어 좌석「버스」를 타고 영남대학교앞을 지나던 임여인은 누군가 뒤에서 탁치는 촉감을 느끼고 돌아본 순간 까무라치게 놀랐다. 빙긋이 웃으며 서있는 차광희씨는 이제 54살의 「로맨스·그레이」-. 두사람은 「버스」를 내려 그길로 「아카데미」극장옆 A다방에서 밀어를 나누게 됐다. 5년전 아내가 집안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러떨어져 숨진 얼마후 지금의 아내인 권(權)모여인(46)과 재혼했다고 차씨는 말했다. 그러면서 『재혼하기전에 당신을 만나지못한게 한스럽다』고 그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이로부터 몇시간뒤의 일이지만 이들은 어렵지않게 간통 제3막째의 1장을 근처 어느 여관에서 갖고 말았다. 노년기의 마지막 남은 정염을 몽땅 불태울듯 본격화된 제3막째의 50대와 40대의 이 남녀는 얼마전까지 꼬박 1년을 대구근교인 파계사와 동화사며 성당곱창집과 수성못등 유원지를 번갈아가며 밀회를 즐겼다. 그런데 바로 전남편 소생인 임여인의 아들 김모씨(25)가 의붓 아버지에게 귀띔해줌으로써 어머니의 부정이 탄로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임여인으로선 기막힌 업보(業報)인 셈. 시내 향촌동 C다방을 연락「아지트」로 삼은 이들은 작년12월 차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임여인이 다방 「메모」판에 꽂아달라고 어쩌다 아들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다. 이때 슬쩍 편지를 호기심에 뜯어본 아들은 그로부터 이를 미끼로 2~3천원씩 수10차례나 어머니를 괴롭혀 돈을 타냈다. 연서(戀書)심부름 부탁받은 전처 소생 아들이 별 직업없이 따로 살림을 해오던 아들 김씨는 궁할때마다 어머니를 위협했다. 아무리 아들이지만 뜯기다못한 그녀는 지쳐 자연 짜증날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거절당할때도 많아진 아들은 어머니가 미웠다. 지난 7월. 아들은 의붓아버지인 김씨에게 넌지시 『어머니에게 딴남자가 있다』는 정도로 일러주었다. 김씨는 머리에 선뜻 지피는게 있었다. 그때마다 외박은 단한번도 없었으나 밤늦게 돌아오는 아내의 잦은 외출이 수상쩍던 남편은 그럴싸한 구실로 또 통금시간이 되어서 들어오는 아내를 불러 따졌다. 지난 11월7일의 일이었다. 아내가 부정을 부인할수록 남편의 의심은 더욱 굳어만갔다. 『재혼이라 하지만 저만을 얼마나 사랑해왔는데…』이렇게 생각하자 온몸의 피가 일시에 거꾸로 흐르는것 같은 격한 감정에 빠진 남편은 빨갛게 불에 단 연탄짚게를 임여인의 얼굴에 들이대고 자백을 재촉. 다 듣고난 김씨는 4남매를 낳은 아내와의 이혼소송과 함께 간부 차씨의 처벌을 호소하는 간통고소를 동대구경찰서에 지난 21일 냈다. 남편 김씨(46)는 종업원 4명을 데리고 흑판등 교재도구를 만들어 월5만원 수입으로 착실하게 살아온 가장이었으며, 임여인과함께 구속된 차광희씨(54)는 건축업을 하다가 지금은 C은행본점 00부장대리로 있는 외아들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처지. 그는 임여인을 『책임지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미안하다고만 말할뿐 K검사앞에 머리를 조아린 그녀는 더할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구(大邱)=임양은(林樑銀)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50호 통권 제 114호]
  • 「미스·광주고속」최현진(崔賢珍)양 - 5분데이트(110)

    「미스·광주고속」최현진(崔賢珍)양 - 5분데이트(110)

    깨끗하고 청초한 인상, 소곤대듯 조용히 말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매혹적인 최현진양은 [미스·광주고속]. 올해 22세. 162cm의 늘씬한 키에 가녀린 몸매, 차분하고 명랑한 성격은 그녀의 요정과 같은 아름다움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수도여사대 부고를 나와 이화여대 미술과를 1년동안 다니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교를 중단했다. 한국 수출진흥공사 사장 비서로 1년동안 근무하다가 광주고속으로 옮긴 것은 이제 불과 석달 전. 지금은 경리부에서 일하고 있다. 『운전사 아저씨와 차장 아가씨 등 모두 6백명이나 되는 사원들의 봉급을 비롯해서 엄청난 액수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하다 보면 잠깐 실수로 큰 골탕을 먹을뻔한 일이 자주 일어나죠』 그래서 그녀는 돈을 계산할 때면 정신을 바짝 긴장시킨단다. 항공대학 역학교수이던 아버지를 여의고 지금은 홀어머니 우유순(禹有順)여사(42)와 함께 살고 있는 우여사의 무남독녀. 형제가 없어 가끔 외로울 때가 있다는 그녀는『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분에게 친형제처럼 따르게 되는 것도 그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취미는「팝송」듣기. 좋아하는 가수는「톰·존스」 [선데이서울 70년 11월 29일호 제3권 48호 통권 제 113호]
  • ‘한국전쟁 본질’ 동화로 풀다

    ‘한국전쟁 본질’ 동화로 풀다

    늙은 종지기는 새벽 4시면 종을 쳤다. 꼬물거리는 벌레와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새벽잠 설치며 노동하는 가난한 이웃에게 들려주려, 그는 날마다 낡은 쇠를 두드렸다. 종지기의 삶과 글은 아름다웠으나, 종지기의 병든 몸이 견디며 산 세월은 고통스러웠다. 어려서 얻은 전신결핵으로 평생 아팠다. 굶주리고 상처난 이를 바라보며 평생 슬펐다. 가족 없이 홀로 평생 외로웠다.“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니 용감하게 죽겠다.”던 종지기는 죽기 직전 콩팥에서 피를 쏟았다.1초도 참기 힘들어 목숨을 놓고 싶을 때, 신부인 친구에게 편지로 기도를 부탁했다.“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제발 그만 싸우라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함께 살라고. 인세를 북녘 굶주린 아이들에게 보내달라고. 권·정·생. 떠난 지 두 달, 이름 석 자가 먹먹하다. ●80년대 초반 인민군 주인공 삼아 집필 떠난 이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동화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보리 펴냄)가 나왔다. 그의 여느 글처럼 아름다우면서, 고통스럽다. 생전 작가가 출간을 준비하던 마지막 책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초반, 작가는 ‘감히’ 인민군 병사를 주인공으로 전쟁의 실체를 고발했다. 출판사는 옛 간행물 속에 묻혀 있던 작품을 사실적 그림과 함께 되살려냈고, 작가는 책 출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북한·중동·아프리카·티베트 아이들이 맘에 가시처럼 걸려, 숨을 놓는 순간까지 뒤채었던 작가는 이 책을 남기며 안도했다.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주저했던 그였지만, 이 책 출간은 유독 반겼다고 편집자는 전한다. ●“인민을 위한 전쟁서 죽은 건 가엾은 인민뿐” ‘곰이’는 동화지만 사회과학 논문 이상으로 날카롭다. 전쟁과 분단의 본질을 어떤 전문서적보다 예리하게 통찰한다.6·25전쟁으로 죽은 인민군 오푼돌이 아저씨와 피란민 아이 곰이는 1951년 강원도 치악산에 묻혔다.30년이 지난 시점 둘은 영혼으로 만나 지난 일을 회고한다. 곰이가 묻는다.“아저씬 누구랑 전쟁을 하셨어요?” 오푼돌이 아저씨가 대답한다.“나하고 똑같은 사람이야. 나는 북쪽에 살았고, 그들은 남쪽에 살았다는 것밖에 다른 게 없었어.” 곰이의 눈가가 젖는다.“아저씨, 전쟁을 피해 달아나려 했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금방 따라온 거예요. 살려고 갔는데도 난 죽은 거예요.” 아저씨도 소나무 둥치에 얼굴을 묻고 운다.“인민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 뿐이었어.” 호랑이 예화는 분단의 감춰진 속살을 드러낸다. 어머니를 잡아먹은 두 호랑이(미국과 소련)가 남매의 집에 도착해 앞문과 뒷문에서 서로 진짜 엄마라고 주장한다. 누나와 동생(남과 북)은 다투다 각기 다른 문을 열고, 결국 둘 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고 만다. 군부정권은 이성적 사고를 망각시켰으나, 짧은 동화는 분단의 핵심을 꿰뚫었다. 그을린 양은냄비와 석유풍로가 가진 재산 전부였던 늙고 병든 종지기. 많은 인세를 자신을 위해 쓴 적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스테디셀러 작가.2년전 쓴 유언장에서 그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썼다.25살이 되면 22살이나 23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고,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 그는 먼저 간 이오덕 선생과 감자를 구워먹으며 선생의 연애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유언장을 보면 환생은 영영 어려울 것만 같다.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어느날 갑자기 사창가(私娼街)서 만난 누나

    어느날 갑자기 사창가(私娼街)서 만난 누나

    지난 11월 2일밤. 창백한 고교생이 어릿어릿 춘천(春川)의 사창가를 헤매고 있었다. 『절절 끓는 방이 있어요. 학생 놀다가요』하는 소리에 그 고교생은 고개를 들었다. 「클로스·업」되는 창녀의 얼굴, 『누나…』하는 고함. 이 하늘아래 둘도없는 비통한 어느 오뉘의 사연인즉-. 어둠속에 “학생 놀다가요” 듣던 목소리 돌아다보니 지난 2일. 쌀쌀한 소양강 밤바람이 불어오는 춘천역에 핏기없는 한 고등학생이 내렸다. 어둠이 내려오는 시가지를 보며 고등학생은 한장의 편지봉투를 꺼내 보았다. <춘천시 근화동 X구 XX번지> 난생 처음 와보는 춘천, 근화동이 어느쪽에 붙어 있는지, 또 근화동하면 서울에선 옛날 「종(鍾) 3」으로 통하는 사창가인지는 알길이 없었다. 서울 H고등학교 야간부 3학년에 재학중인 김(金)경호군(가명·18·서울서대문(西大門)구)은 5년동안이나 헤어져 만나지 못했던 누나 김영자(가명·23)를 만나보기 위해 무턱대고 내려온 것이다. 매달 5~8천원 안팎의 생활비를 보내주며 항상 자상하게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편지만을 보내 주었던 누나.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누나가 그리워 가슴까지 설레며 그는 역 광장을 걸어 나갔다. 『근화동이 어느 쪽이죠?』 김군은 행인에게 주소를 물었다. 행인은 잠자코 역의 오른쪽을 가리켜주었다. 김군은 우선 역에서 가까와 좋다고 생각했다. 김군은 게딱지같은 판자집을 지나 근처의 「빌딩」을 기웃거리며 『여기 김영자란 여자가 있읍니까?』하고 찾아헤맸다. 그러나 있을 턱이없었다. 몇시간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역뒤에 있는 판자촌까지 이르렀다. 처마가 땅에 닿을듯 나지막한 판잣집들이 줄지어 섰고 그 안에는 밤의 아가씨들이 거의 속옷차림새로 옹기종기 둘러앉아 히히덕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은 쳐다보는 품이 심상치않게 느껴졌다. 지리하고 긴 사창가를 누비면서도『누나가 많지 않은 월급으로 생활비까지 대자니 자연 이렇게 허술한 판자촌에서 고생을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콧마루를 시큰하게 했다. 바로 그때 벽에 달라 붙어서 있던 한여자가 『학생 놀다가세요』하는게 아닌가. 귀에익은 낮은 음성.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설마 누나가 이런 곳에서 창녀생활이야 않겠지 하고 자위하려던 믿음의 벽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다. 노름에 아편맞던 아버지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자 그렇게 몽매에도 그리던 누나가 또 그렇게 소망스럽고 자랑스럽던 누나가 창녀라니 이 엄청난 사실앞에 5년만에 모처럼 만난 남매는 말한마디 못건네고 그대로 영영 헤어져야하는 운명이 됐다. 『누나』소리에 놀란 영자양은 질겁을 하고 어디론지 행방을 감췄고 경호군은 너무 큰 충격에 그만 미쳐 버리고 말았다. 영자양이 쓰던 방에 들어가 단하나뿐인 「트렁크」를 다 불태워 버리고 벽에 걸린 옷가지는 모두 갈기 갈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 그 싸늘한 늦가을 밤을 소양강 백사장에서 뜬눈으로 울며 지샜다. 『제가 돌았나 보죠』라고 오히려 자신의 정신착란 상태를 알고있으면서도 때때로 발작을 일으켜『누나는 창녀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맨발로 길위를 뛰어다니기도. 처음에는 그저 미친 놈이니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김군의 사연에 차차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찰과 시민들은 백방으로 영자양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영자양은 현재로선 자취를 감춘채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 남매의 고향은 전남 광주(光州)시 변두리에서 그래도 넉넉하다는 살림에 두남매는 별로 구김살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이 단란한 가정에도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노름판에 미치게된 것이다. 땅문서 집문서등을 모두 가져다 노름판에 버리고 알거지가 됐다. 이를 만류하는 어머니에게 전에없던 욕설과 매질까지 했다. 한섬지기가 넘는 농토와 적잖은 집을 모두 노름판에서 빼앗긴 아버지가 얼마후에는 아편을 맞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귀여운 자식들조차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고, 병색이 완연한 아버지는 어린 남매를 데리고 남의집 셋방살이로 들어갔다. 그 때 영자양이 중학교 2학년인 15살때, 경호군은 국민학교 3학년인 10살이었다. 재산을 날리고 어머니까지 쫓아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는 이미 자식들의 원망을 들을만한 기력도 없었다. 겨울동안 내내 객혈을 하다 다음해 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셋집주인도 폣병환자 가족에게 더이상 집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리로 내 쫓았다. 두남매는 그날 밤새도록 거리를 방황하며 울기만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호남선 상행 화물열차를 비집고 올라탔다. 서울역에 내려 먼일가뻘 되는 아저씨집을 찾아들었다. 영자양은 이집에서 월급없는 식모살이를 했고 경호군은 누나덕에 더부살이로 얹혀지내게 됐다. 공부에 미친 동생을 위해 돈 벌 결심으로 몸을 팔아 그러나 경호군이 주인 집 식구들에게는 눈의 가시. 아무일도 않고 밥만 치우는 것이 못마땅해 구박투성이었다. 결국 경호군도 밥벌이 작전에 나섰다. 구두닦이 「검」팔이등 닥치는대로 했다. 밤에는 야간재건학교에도 다녔고. 64년에는 중학입학검정 고시에 합격, 그해 서울 H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는 새벽먼동이 틀때 나가 밤10시에 돌아와서는 주인집의 눈치를 살펴가며 전등대신 촛불을 켜놓고 밤새껏 쪼그리고 앉아 공부에 미쳐버리기 일쑤였다. 공부에 미친동생을 볼수없어 영자양이 돈벌이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영자양은 동생에게 거짓말을 했다. 춘천 모회사에서 월급을 많이 주겠다고 하니 취직을 하겠다고 하며 앞으로 힘겨운 구두닦이는 그만 두도록 했다. 이렇게해서 춘천에온 영자양은 제일 손쉬운 사창가에 뛰어 들었다. 이곳 윤락여성들의 친목단체겸 자활단체인 장미회장 박옥자(朴玉子)여인은 『그애는 아직「검」한개 제돈주고 사먹는 일 없었어요. 서울에 동생이 있다는 것도 생활비를 대줬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죠』라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김군도 대학 입시 예비고사도 모두 망쳐 버리게 됐다면서 설사 대학은 가지못하더라도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누나를 꼭 찾아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편지마다 구구절절이 『참된 사람이 돼라』『남에게 욕먹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고 하던 누나가 창녀였다니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김군은 경찰들의 도움으로 며칠뒤 다시 상경했다. <춘천=김선중(金瑄中)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1월 22일호 제3권 47호 통권 제 112호]
  • 「미스·인천(仁川)시청」민인기양-5분데이트(109)

    「미스·인천(仁川)시청」민인기양-5분데이트(109)

    매끈하고 흰 피부, 조용 조용한 목소리, 차분한 몸가짐이 사뭇 청초한 느낌의 민인기(閔仁基)양은「미스·인천시청」으로 뽑힌 아가씨. 48년생으로 인천에서 상업을 하시는 아버지 민병택(閔丙澤)씨(48)의 2남3녀중 맏이. 인천 인성(仁聖)여고를 거쳐, 대구의 경북(慶北)대학을 1학년 다니다 중퇴했다. 인천시청에 근무하기는 꼭 10개월째. 현재 시장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시장님이 자상하시고, 동료들이 모두 친절해서 직장일은 무척 재미가 있어요』라고. 토요일이면 여자 동료들과 주로 극장구경을 다니고, 주일이면 독실한「크리스천」으로 교회 장로님이신 아버지를 따라 일가 총동원해서 교회에 간다. 여학교때부터 취미로 모으기 시작한 우표는 3백여장에 이르렀고, 틈이 나는 때는 책을 보거나 수를 놓는등 조용한 일로 시간을 보낸다. 틈틈이 수를 놓아 만든 수예품도 결코 적지 않다고. 좋아하는 음식은 구수한 김치찌개. 월급은 그녀의 표현대로 『아주 조금타지만 적금도 들고, 동생들 용돈도 집어준다』는 알뜰한 아가씨다. 『아침 8시면 출근을 했다가, 저녁 7시에나 퇴근을 하고,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고, 이런 생활을 하니 별돈이 들 필요가 없어요』 월급은 적지만 전혀 곤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태평스런 얼굴이다. 결혼을 한다면 아무리 적은 월급이라도 잘 쪼개어 쓸 수 있을 듯하다고 자신만만이다. [선데이서울 70년 11월 22일호 제3권 47호 통권 제 112호]
  • 과테말라 커피이야기

    |과테말라시티 임병선특파원|‘Cafe Guatemala!´ 하면 커피 전문가들은 ‘세계최고’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 톡 쏘는 향기가 일품이다. 과테말라시티의 한 쇼핑몰 안 커피점에서 스페인어 통역을 통해 ‘엘 풀칼’과 ‘산타 바바라’,‘안티과 로잘리타’를 수소문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장 높은 풍미를 지닌 커피의 나라, 커피점에서 일하는 이들이 자기 땅에서 나는 명품 커피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기에 서울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200g짜리 ‘갓 볶은 신선한 커피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1만 4500원에 팔리는데 이 가게에선 460g짜리를 55퀘찰(약 329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세계화 시대,10배에 가까운 가격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아했다. 남한만 한 면적(10만㎢)의 과테말라에 그토록 다양하고 품격 높은 커피들이 공존하는 이유로는 지역별로 완연히 다른 연중 기온과 강우량, 습도, 화산지대 지질 여부 등이 꼽힌다. 과테말라는 ‘지구의 미니어처’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기후가 공존한다. 이 나라에서 커피 재배가 본격화한 것은 19세기 후반 스페인 총독부가 옛 수도 안티과 주변에서 염료 원료로 재배하던 인디고와 코치니얼 수출 길이 막히면서였다. 인디고는 메뚜기떼 습격으로, 코치니얼은 인공염료 개발로 농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총독부는 이에 수도원과 일부 농장에서 재배하던 커피에 수출세를 유예하고 십일조 헌금을 줄여주는 한편, 재배농에 포상금을 지급하고 매뉴얼을 보급하는 등의 독려를 했다. 이런 노력 덕에 프라이하네스, 코반, 아티틀란, 산마르코스 등에서 대대적인 커피 생산이 이뤄졌다. 지금도 미국의 커피 수집상들이 아름다운 아티틀란 호수 근처의 커피 경작지에 수천만달러를 투자해 작고 더 단단한 커피를 ‘입도선매’하고 있다고 한다. 안티과 커피는 시에라마드네 산맥 곳곳에 산재해 있는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미네랄과 질소를 흡수해 부드러우면서도 톡 쏘는 스모크향이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낮에는 강렬한 햇볕이 커피를 키우고 저녁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커피의 알갱이를 여물게 한다. 이런 안티과 커피의 장점을 가장 압축한 것이 앞에서 말한 엘 풀칼로 카모나 농장에서 재배되고 있다. 또 자극적인 신맛과 꽉 차오르는 스모크향이 돋보여 인도네시아의 셀레베스를 닮았다는 평을 듣는 산타바바라,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커피에 어울리도록 풍미가 꽉 들어찬 안티과 로잘리타 등이 커피 애호가들의 미각을 유혹한다. 특히 앞의 커피점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아티틀란, 안티과, 휴휴테낭고 등의 커피를 뒤섞은 제품이 오리지널 브랜드보다 훨씬 싼값에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지 여행사에선 화산활동이 이 나라에서 가장 활발한 파카야 화산 아래 농장에서 커피에 관한 교육을 받고 커피맛도 즐기는 4시간 투어를 45달러(약 4만 1000원), 안티과 근처 커피경작지를 농민의 안내로 돌아보는 8시간 상품을 68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bsnim@seoul.co.kr
  • [현장 행정] 강동구 위생과 불법카페 단속반

    [현장 행정] 강동구 위생과 불법카페 단속반

    지난 3일 밤 10시30분 강동구 성내동의 불법 카페 ‘에이스’. 합동단속반의 현장 급습에 접대부와 남자 손님이 허둥지둥했다. 테이블에는 양주와 맥주, 과일 안주, 술잔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오영교 위생과 팀장은 “일반 음식점에서 접대 행위는 불법”이라면서 “손님과 접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적발대상”이라고 말했다. 강동구가 성내동 일대의 ‘카페촌 고사(枯死)’에 들어갔다. 주택가 인근의 카페 90여곳이 일반음식점 간판으로 퇴폐·불법 영업을 일삼자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한 것이다. 경찰 7명과 구청 위생과 5명, 주민 6명 등으로 이뤄진 합동단속반의 단속현장을 동행취재했다. ●불법 카페촌 ‘고사 작전’ 성내동길 주변은 ‘단속 한파’로 아예 문을 닫아 버린 업소도 꽤 있었다. 문을 연 카페도 접대부로 보이는 아가씨만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단속반이 카페 ‘여인의 향기’를 시작으로 ‘나나’,‘오렌지’ 등을 덮쳤지만 손님은 없었다. 단속 사실을 눈치챈 몇몇 업소는 서둘러 셔터를 내리기도 했다. “서로 연락해서 손님을 뒷문으로 빼내거나 셔터를 내리고 아예 배짱 좋게 장사하는 업소도 있어요.” 위생과 직원의 귀띔이다. 거의 모든 카페가 7∼8평 남짓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뒷문을 마련해 놓았다. 단속반과 업주간 신경전도 곳곳에서 불거졌다. 단속반은 업소마다 주방 기구와 냉장고 음식물의 상태, 건강진단, 미성년자 등을 확인했다. 업주들은 볼멘 소리를 토해냈다. 한 업주는 “장사가 안돼 죽겠는데 허구한 날 단속만 하냐.”고 거칠게 항의하자 단속반 관계자는 “새벽에 손님 한 명만 받아도 수십만원의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어설픈 하소연”이라고 맞받아쳤다. 구는 지속적인 단속으로 업주들의 업종 전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집중 단속사실을 공개한 만큼 손님들의 발길도 끊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구 관계자는 “1년 이상 단속을 지속할 것”이라며 “누가 이기나 보자.”고 의지를 드러냈다. ●“술 먹는데 기분 나쁘다” 밤 11시30분. 성내동 안길로 단속반이 투입됐다. 문을 닫고 영업하는 일부 업소가 감지됐다. 확인만 하고 다른 업소로 이동했다. 단속 공무원은 “혹시라도 손님이 없으면 우리가 뒤집어 쓸 수밖에 없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기가)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카페 ‘수채화’에서는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단속반이 업주를 대상으로 조사하자, 술에 취한 한 손님은 “신분증을 내놔라. 술 먹는데 기분 나쁘다.”며 오히려 시비를 걸었다. 김성동 주임은 “경찰과 함께 오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라면서 “접대부와 손님이 한자리에 있는 현장을 잡지 못하면 단속반이 손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합동단속반은 이날 49개 업소를 단속해 접대부 고용과 무단 확장, 건강진단 미필 등으로 업소 10곳을 적발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4)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4)

    한국불교연합회 소속 대학생 50여명이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고구려의 옛 땅인 중국 동북지역 탐방을 떠났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의 인도로 ‘코리아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이번 탐방길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편집자주- 6월 28일 탐방 4일째 아침.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계속 이어졌다. 비옷과 우산으로 무장하고 ‘오녀산성’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오녀산성’이라는 이름은 전설 속의 용감한 다섯 자매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던 흑룡이 산에 살았었는데 이들 다섯 자매가 맞서 싸워 용을 죽이고 자신들도 모두 죽었다는 전설이다. 현재 오녀산성은 마르지 않는 우물인 ‘천지’와 일부 담벼락만이 남아있다. 오녀산성에서 4시간 거리를 이동해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석회암 동굴 ‘본계수동’에 도착했다. 어두운 동굴 안을 보기 위해서는 보트를 타야했다. 본계수동을 둘러보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요녕성 내 최대의 도시 심양에 도착했다. 이곳이 흔히 ‘만주벌판’이라고 말하는 지역이다. 비 오는 심양의 거리에서 만주벌판을 그려본다. 평양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우리 일행은 평양 아가씨들의 공연에 더 관심이 쏠렸다. 평양관에서 공연을 하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평양 친구들을 보면서 가슴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6월 29일. 탐방 5일째 아침이 밝았다. 새벽녘에 아침을 먹고 고구려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는 ‘백암산성’을 향했다. 백암산성은 뒤쪽으로 ‘태자하’라는 강이 흐르고 앞쪽은 가파른 경사 위에 자리잡고 있어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웠던 산성은 성벽을 쌓은 돌을 가져다가 인근 가정집 보수에 쓸 만큼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웠다.백암산성에서 내려와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처음 본 ‘녹두 아이스크림’이다. 예정대로라면 바로 ‘비사성’으로 달려가야 했다. 중국에서의 ‘옆집거리’ 4시간 정도를 갔어야 했지만 일정이 너무 늦어져 다음날로 일정을 연기했다. (계속) 글=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김옥미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1)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2)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3)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미스·경희대」 전영선양-5분데이트(108)

    「미스·경희대」 전영선양-5분데이트(108)

    경희대 사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전영선(全永善)양(22)은 무척 상냥하고 세련된 인상의 아가씨. 1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졸업시험을 앞두고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는 그녀는 무슨 일이고 한번 시작하면 그 일에 빠져 버린다는 열성파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몇차례 연극을 해본 것이 동기가 되어 지난 7,8일 이틀동안 신문회관 강당에서 열린 극단 「현대극회」의 단막극 『가정상담소』(박경창(朴景昌)작)에 30대 여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기성극단의 공연무대에는 처음 서보았다는 그녀는 『30대 여인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진땀을 뺐다』 면서 활짝 웃는다. 무대에 처음 서본 느낌은 『연기란 진짜 어렵다』는 것 이었다고. 봄·가을에 걸쳐 국립극장이나 에서 공연되는 연극은 거의 빠짐없이 가보았다는 연극광.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직도 한국연극의 대중화가 멀다는점. 하루빨리 한국연극계가 안고있는 난문제들을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제법 비판적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본격적으로 연극을 해보겠다고 의욕이 대단. 이번 가을무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은 『노트르담의 꼽추』. 좋아하는 연극배우는 신구(申久)와 노경자(盧京子)라고 서슴지 않고 꼽는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영선양은 5남매중 막내. 『그동안 「그룹·데이트」는 여러번 해보았어도 진짜 연애는 한번도 못해봤어요』 친한 친구 7명이 모여 항상 집단으로 「데이트」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애인이 없단다. 『앞으로 신랑감을 구한다면 첫째로 인간성이 좋아야 될 것 같아요. 외모같은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라고. 『그리고 아무래도 주관이 강하고 박력있는 남자가 좋겠지요?』 하면서 생긋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예쁘다. [선데이서울 70년 11월 15일호 제3권 46호 통권 제 111호]
  • [깔깔깔]

    ●빠른 진급의 이유 멋진 젊은 신입사원 한 명이 혜성같이 등장하더니 입사 3개월만에 대리,6개월만에 과장,1년만에 이사가 됐다. 그는 전 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회장이 그를 불러 말했다. “자네는 우리 회사의 기둥이야.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주게나.” 그러자 그 청년은 흥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알았어. 아빠.”●은행에 간 할머니 할머니가 통장과 도장이 찍힌 청구서를 은행 창구에 내밀며 돈을 찾으려고 했다. 은행원:“통장도장이 다릅니다. 통장도장을 갖고 와야 합니다.” 할머니는 급하게 오느라 실수했다며 통장을 은행원에게 맡기고 금방 온다고 말하고 나갔다. 은행문을 닫을 때쯤 헐레벌떡 들어온 할머니가 은행원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할머니:“아가씨 미안한데 반장도장으로는 안 될까? 통장님이 안 계셔, 어디 갔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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