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씨줄날줄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기성용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주식 대박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 탄수화물
    2026-02-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03
  • [씨줄날줄] 캥거루족/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캥거루족/박홍환 논설위원

    천연기념물 올빼미의 육아법은 나무 위나 풀숲 등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보살피는 일반적인 조류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방이 탁 트인 평지에 둥지를 틀고 포란과 육아를 한다. 사람들 눈에도 잘 띄는데, 주변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어미 올빼미가 그 큰 눈을 부라리며 새끼들의 위기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목격된다. 알에서 깬 지 3주 정도 지나면 새끼들은 스스로 걸어 어미가 마련해 둔 제2의 둥지로 이동하고, 5주 정도 지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비행훈련을 하다가 마침내 어미 곁을 떠나 이소(移巢)하면서 독립된 성체의 삶을 시작한다. 오세아니아에는 몸에 주머니를 갖고 있는 유대(有袋)류 포유동물이 유난히 많다. 캥커루가 대표적이다. 주머니는 오로지 육아용이어서 육아낭(囊)으로 불린다. 어미 캥거루는 임신한 지 30여일 만에 미성숙한 새끼를 낳는데 육아낭이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실제 갓 태어난 캥거루 새끼는 몸길이가 2~3㎝, 몸무게는 1g에 불과하다. 벌레만 한 크기의 새끼 캥거루는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어미 배를 거슬러 올라 육아낭에 들어선 뒤 젖꼭지에 달라붙어 자란다. 새끼 캥거루는 9개월 정도 육아낭에서만 지낸 뒤 육아낭을 들락거리다가 생후 1년 6개월쯤 되면 1m가 넘는 성체로 자라나 완전히 독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체 캥거루의 수명이 최대 20년을 넘지 않으니 사람으로 치면 8살쯤 독립의 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흔히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고 부른다. 위험이 닥치면 부모의 방어막으로 몸을 숨겨 ‘자라족’이라고도 하고, 일본에서는 ‘기생 독신’이라고도 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세 미만 성인 10명 중 3명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동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에서도 미혼자 2명 중 1명은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한다. 취업난과 치솟는 주거비 등의 경제적 이유로 캥거루족이 젊은층뿐 아니라 장년층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이쯤에서 캥거루들의 항변이 나올 성싶다. “우리는 인간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다고!”
  • [씨줄날줄]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서동철 논설위원

    마드리드에 가면 프라도미술관, 국립소피아왕비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미술관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프라도미술관은 스페인 왕실이 15세기부터 수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언젠가 프라도미술관을 찾았을 때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엘 그레코의 명작들이 동네 화랑처럼 벽면에 두 단, 세 단으로 겹겹이 걸려 있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소피아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가 중심을 이루는 현대미술관에 해당한다. 그리스 공주 출신인 소피아는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부인으로 현 국왕 펠리페 6세의 어머니다. 티센보르네미사는 르네상스와 플랑드르파, 인상파 등 스페인 밖 유럽 미술의 양상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상보적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스페인 정부가 배우자 투어 일정에 소피아미술관을 포함시켜 눈길을 끈다. 서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왕궁을 둘러보고 왕립오페라극장(Teatro Real)에서 새달 공연되는 베르디의 ‘나부코’ 리허설을 참관하는 일정도 있다. 소피아미술관의 상설 전시실은 크게 3개의 주제로 이뤄져 있다. ‘20세기의 돌입: 유토피아와 갈등(1900~1945)’과 ‘냉전시대의 미술(1945~1968)’, ‘저항부터 포스트모더니티까지(1962~1982)’가 그것이다. 20세기 사회 변화에 미술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 준다. 가장 정치적이고 논쟁적인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유토피아와 갈등’ 주제관에서 볼 수 있다. 세로 349.3㎝, 가로 776.6㎝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란이 한창이던 1937년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나치 공군이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을 맹폭해 2000명 남짓한 시민을 학살한 사건을 그렸다. 프랑코는 이후 ‘국왕 없는 왕국’의 섭정이 되어 독재를 이어 갔고,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975년 프랑코가 죽은 뒤에야 국왕에 즉위했다. ‘소피아 왕비’도 이렇게 탄생했다. 김건희 여사도 당연히 소피아왕비미술관을 방문한다. 굵직굵직한 전시회를 기획한 미술전문가인 김 여사는 이전에도 소피아미술관을 찾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번에는 기획자가 아닌 대통령 부인으로 예술의 힘, 문화 정책의 방향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 [씨줄날줄] 런던왕립학회/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런던왕립학회/임병선 논설위원

    자연과학 진흥을 위한 런던왕립학회는 1660년 찰스 2세의 후원으로 창립됐다. 영국 정부로부터 해마다 4000만 파운드(약 631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 나라의 과학아카데미 구실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학회로 362년 동안 거쳐 간 인물들이 화려하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중성자 별을 발견한 조슬린 벨 버넬 등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최근에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도 이름을 올렸다. 노벨상의 산실임은 물론이다. 최근 트래펄가광장 근처에 있는 학회 건물에서 신규 회원 가입식이 열렸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이 쟁쟁한 이름들로 가득한 헌장에 이름을 적어 넣는 영예를 누렸다. 해마다 60명을 새 회원으로 받아들이는데 10명은 외국인으로 채운다. 이 부총장은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와 함께 지난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선발됐다. 김 교수는 가입식엔 불참했다. 가입식은 여왕을 상징하는 메이스(Mace·장식용 지팡이)가 입장하며 시작해 퇴장하며 끝난다. 새 회원이 단상에 올라가 헌장에 서명한 뒤 회장과 악수하며 가입 선언을 듣는다. 새 회원들은 362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헌장에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모여 서명 연습까지 했단다. 기존 회원의 추천과 동의를 거쳐 신규 회원을 받아들인다. 현재 회원은 1600명. 물질적 혜택은 없지만, 진정한 과학자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최근 들어 이 학회는 기후변화,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AI), 데이터 사이언스 등 과학 이슈와 관련해 위원회를 운영하며 정책 조율을 돕고 영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이 부총장은 시스템대사공학 창시자로 미국공학한림원, 미국국립과학원까지 세계 3대 주요 학회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미국과 영국 외 국적자로는 선례를 찾기 힘들다. 런던왕립학회가 지난해 한국인을 두 사람이나 회원으로 선발하고, 코로나 탓에 뒤늦게 열린 가입식 취재를 주선하는 등 한국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소원해진 유럽을 대신해 한국 등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노력으로 보인다.
  • [씨줄날줄] 묘한 기름값 시즌 2/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묘한 기름값 시즌 2/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지금처럼 물가가 고공행진하던 2011년 1월 13일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고 공개 저격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있는데 국내 휘발유값은 거의 제자리인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정유사와 주유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내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는데 (기름값이 적정한지) 정유사 회계장부를 뜯어 보겠다”고 가세했다. 정유사는 휘발유값을 리터당 100원씩 내렸다. 정부가 새달부터 유류세를 법정 최대한도인 37%까지 더 내리기로 했다. 휘발유는 리터당 57원 인하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그간의 유류세 인하에도 불구하고 휘발유값은 2100원을 뚫고 계속 오름세다.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 요인이 크다. 그럼에도 수조원 세수를 포기한 정부로서는 묘하다고 여길 법하다. 아니나 다를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행위가 없는지, 유류세 인하분이 가격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현장조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10여년 전의 데자뷔다. 당시 ‘회계장부’ 으름장을 놨던 최 전 장관은 공교롭게 윤석열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으로 막판까지 경합했다. 그래서 기시감이 더하다. 정부는 정유사를, 정유사는 주유소를, 주유소는 세금을 탓하는 ‘네 탓 공방’도 비슷하다. 기름값은 절반 이상이 세금(교통세, 에너지세, 환경세 등)이다. 지난해 걷은 교통세만 16조원이다. 교통세에 교육세(15%)와 주행세(26%)가 얹어진다. 유류세는 1994년 도로·철도 등 교통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10년만 걷겠다며 도입한 목적세다. 목적이 거의 달성됐음에도 30년 가까이 건재 중이다. 가격이 아니라 물량에 붙는 종량세이다 보니 에너지 소비가 많은 부유층일수록 유류세 인하 혜택이 크다.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기후변화에 맞춰 유류세를 탄소세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영국처럼 정유사 등의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도입해 ‘국민 배당’을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올 2분기에만 1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MB 때의 현장조사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름값이 이내 다시 묘해졌음은 물론이다. 근본적인 처방을 고민할 때가 됐다.
  • [씨줄날줄] ‘포청천’ 조순/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포청천’ 조순/박현갑 논설위원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한 도시에서 시민의 쉼터인 공원은 허파나 다름없다. 미세먼지를 흡수하며 공기를 정화하고 열섬화 현상도 덜어 준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외국의 대도시에는 이런 도시공원이 곳곳에 있다. 서울의 경우 1999년 만들어진 여의도공원이 도시계획에 따라 조성된 대표적 도시공원이다. 검은 아스팔트를 걷어 내고 녹색 쉼터로 꾸미면서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순 민선 초대 서울시장의 작품이다. 조 전 시장은 강동구의 빠이롯트 공장 부지, 영등포구의 오비 맥주공장 부지도 공원으로 만들고 남산 외인아파트도 철거해 남산 모습을 살려 냈다. 이후 서울은 시장이 바뀔 때마다 굵직한 공원이 하나둘 생기면서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후임인 고건 전 시장 때 상암동의 노을공원·하늘공원이 들어섰고. 서울숲(이명박), 북서울꿈의숲(오세훈)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제 조 전 시장이 별세했다. 그는 ‘조순 학파’를 이룰 정도로 경제학계의 거목이었다. 제자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함께 지은 ‘경제학 원론’은 1990년대 경제학도의 필수 교재였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영어 교수요원으로서 가르친 생도 중 한 명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88년 경제부총리로서 토지 공개념 도입을 주도했고,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도 했다. 1995년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설득으로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정치권에 데뷔했다. 당시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처럼 하얗고 짙은 눈썹 덕분에 ‘포청천’, ‘산신령’ 등으로 불렸다. 초대 민선 시장이었으나 취임식을 앞두고 삼풍백화점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취임식도 생략한 채 사고 수습에 나서야 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한 서울’, ‘시민 제일주의’를 강조했다. 남산 1, 3호 터널을 오가는 1~2인승 승용차에 부과하는 혼잡 통행료도 도입했다. “정치권에서는 미디에이터(중재자), 정부 내에서는 코디네이터(조정자), 국민에게는 내비게이터(방향키)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를 두루 경험한 고인이 제자가 국무총리가 됐을 때 당부한 말이다.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하다.
  • [씨줄날줄] 홍콩 점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홍콩 점보/박록삼 논설위원

    점보(Jumbo)라고 불렀고, 전바오(珍寶)라고도 불렀다. 중국의 황궁을 본떠 1976년 만들어진 세계 최대 수상 해산물 식당이었다. 80m 길이에 23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관광 명소 그 자체였다. 자신의 통치 지역을 살피기 위해 홍콩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기꺼이 찾았음은 물론이다. 홍콩 관광객이라면 음식값이 비싸 직접 먹어 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보트 투어로 주변을 돌며 사진 찍고 구경하는 것만큼은 빼놓지 않았다. ‘용쟁호투’, ‘무간도2’ 등 숱한 홍콩영화와 ‘007 시리즈’, ‘컨테이전’ 등 할리우드 영화를 촬영한 장소이기도 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점보가 지난 20일 남중국해 시사군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2013년 이후 1300만 달러(약 168억원)의 적자가 쌓인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2020년 영업 종료 뒤 매각을 기다리며 조선소로 이동 중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홍콩은 대륙에서 숱한 왕조가 명멸했음에도 별 관심 받지 못한 채 적은 수의 어민들이 고기 잡으며 살던 섬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1839년 중국에 불법으로 아편을 팔기 시작했고, 아편 금지령을 핑계 삼아 영국은 군함을 보내 청나라 군대를 굴복시켰다. 3년에 걸친 ‘아편전쟁’의 결과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홍콩은 영국에 할양됐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땅 곳곳이 조차지, 조계 등의 이름으로 서구 열강에 빼앗기게 됐다. 덩치만 컸지 무기력하기 짝이 없던 중국은 1898년 아예 홍콩과 주룽반도 일대의 땅에 대해 99년간 영국에 조차권을 내줬고 1997년 7월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치욕의 역사를 복원하게 된 중국은 환호했지만, 많은 홍콩인은 슬퍼했고 사회주의와의 공존을 두려워한 이들은 떠났다. 봉건 잔재 타파의 문화대혁명 기운이 중국 대륙을 휩쓸며 정점을 이루던 무렵인 1976년 영국의 식민지 홍콩에서 카지노로 막대한 돈을 번 재벌이 중국 황궁의 외형을 복원하는 상업 식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거나 기묘하기도 하다. 중국과 홍콩, 영국을 모두 기억한 채 가라앉은 점보는 경제성이 없어 인양하지 않을 계획이라 한다. 수장(水葬)된 점보가 홍콩의 쇠락을 상징하는 듯해 씁쓸한 기분이다.
  • [씨줄날줄] 청와대 나무/ 문소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청와대 나무/ 문소영 논설위원

    청와대는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후원으로 충순당과 취로정이라는 전각이 있던 자리다. 이 충순당과 취로정에서는 조선의 임금과 개국공신의 후손들이 모여 대규모 회맹(會盟)을 실시했다고 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104년 고려 숙종 때 완공된 남경(서울의 옛이름)의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은 200년 넘게 방치되다가 1868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재건됐다. 후원에 과거제를 열던 융문당과 군사훈련을 하던 융무당을 지었고, 국왕의 휴식공간이 있는 경무대, 즉 지금의 수궁(守宮)터도 만들었다. 경무대를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총독이, 해방 후 미군정 시절에는 존 하지 사령관이 관저로 썼다. 정부 수립 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가 됐다. 4ㆍ19혁명 이후 집권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개명해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의 청와대 건물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 신축한 것이다. 고려·조선의 왕과 외세의 수장,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거주하면서 1000년을 넘긴 역사적 공간이 청와대다. 1000년 넘게 인간의 손이 닿은 곳답게 청와대에는 180여종의 나무 5만여 그루가 있다. 대표적인 나무가 수령 740여년 된 주목이다. 수궁터 근처에 상왕처럼 버티고 있는데, 고려 충렬왕 때부터 권력의 부침을 지켜봐 왔다. 한 뼘 남짓한 폭으로 띠처럼 이어진 일부 줄기만 살아남았는데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의 이름값을 한다. 회화나무·말채나무·용버들 등은 조선말 경복궁 후원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령이 100년이 넘은 역사적인 나무들이다. 박정희를 비롯해 역대 대통령이 경내에 기념식수도 했다. 청와대 본관 앞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심은 구상나무, 수궁터 근처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산딸나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나무가, 상춘재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백송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동백나무 등이 있다.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은 역대 대통령 기념식수 24그루와 노령 수목 76그루를 대상으로 집중 관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문화재이자 자연유산이 합쳐진 국가유산이다. 국민에게 개방해 쓰레기도 넘친다는데 잘 관리해 미래에 넘겨줬으면 한다.
  • [씨줄날줄] 워케이션/김성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워케이션/김성수 논설위원

    “충남을 ‘워케이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 6·1 지방선거 때 충남도지사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태흠 후보는 이런 공약을 내걸었다. 충남도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 기반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지역 관광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일시적이나마 별도의 전입지원금 없이 젊은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남뿐 아니라 강원, 제주 등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지자체들이 최근 앞다퉈 워케이션에 뛰어들고 있다. 워케이션(Workation)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다. 재택근무의 변형된 형태다. 집 대신 휴가지에서 일도 하고 휴식도 즐긴다. 회사가 숙식 비용 등을 전액 지원해 준다. 이제 더이상 ‘어디서’ 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들로선 워케이션이 직원의 근무 만족도를 끌어올리면서 업무효율을 최고로 높일 수 있다면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근로자도 업무집중도가 높아지고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적극 환영한다. 워케이션의 원조 격은 바하마, 바베이도스, 버뮤다, 도미니카, 케이맨제도 등 관광산업 비중이 높은 중남미 카리브해 섬국가들이다. “이왕 집에서 일할 거, 천국에서 일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들 국가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미국의 전문직들이 대거 몰렸다. 이들을 대상으로 일반 관광비자보다 훨씬 긴 3~18개월짜리 ‘워케이션비자’ 발급 경쟁도 치열하다. 코로나 확산 이후엔 가족을 동반한 정규직 중년층이 늘고 있다. 요즘엔 남미, 중동, 유럽 가리지 않고 디지털노마드족이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있다. 국내에선 티몬, 야놀자, 토스 같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워케이션 근무가 최근엔 한화생명, CJ ENM 등 대기업까지 확산됐다. 네이버는 7월부터 도쿄와 춘천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다. 신청 직원 중 매주 10명씩 추첨으로 뽑아 4박 5일간 원격근무를 지원할 예정이다. 작년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인사담당자 63.4%가 워케이션 제도 도입에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일과 휴가를 함께 즐기는 ‘워케이션’이 보편적인 일상으로 자리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
  • [씨줄날줄] 광장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광장무/박록삼 논설위원

    코로나19와 무관하던 시절 중국을 찾았던 이들이라면 해질 무렵 널찍한 공원 등에 60대 이상 아주머니들이-드물게 젊은 여성, 중년 남성들도 있긴 하다-모여서 단체로 춤을 추는 광경을 목격하기 마련이었다. 중국 민족 특유의 문화, 이른바 광장무(廣場舞)다. 이런 아주머니들을 ‘다마’(大?)라고 부른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춤추는 진풍경에 함께 어우러져 따라 춤을 추거나 이를 배경 삼아 사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언제부터 유래했는지 설은 분분하다. 1960년대 후반 시작했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개인주의 풍조를 배격하는 사회주의, 특히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였던 문화대혁명 시절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광장무 또는 집단 사상교육 등에 참여하지 않고 집 안에 혼자 남았다가는 자칫 홍위병에게 혹독한 고초를 겪던 시기였으니 나름 일리가 있다. 물론 이와 달리 사회주의 이전 농경문화에 기반했다는 주장, 혹은 중국인이 원체 흥이 많아서 그렇다는 주장 또한 있긴 하다. 어떤 기원이건 간에 이제 중국인과 광장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시끄러운 음악과 화려한 조명에 중국인들조차 소음공해, 빛공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2년 전 중국 정부가 광장무를 금지했지만 최근 다시 광장무를 추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도, 코로나19도 못 막는 광장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광장무가 한국에도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 대림역 주변 도림천 산책로 옆 공터에서 광장무를 추는 중국 동포들에 대해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곤 하지만 구청도 마땅한 단속의 근거가 없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반중 정서가 만만치 않고, 중국 동포들로 인해 지역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피해의식이 있으니 항의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미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다. 다양성 존중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도 도림천, 안양천, 중랑천 등 공터에서 주기적으로 모여 강사 따라 에어로빅 추며 건강 챙기는 일군의 아주머니들이 있지 않나. 산책하는 주민들과 춤추는 중국 동포 사이에 상생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 [씨줄날줄] 배우자 학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배우자 학대/임창용 논설위원

    은퇴를 앞둔 친구들과 모이면 “앞으로 뭐하면서 살 거야?”란 주제로 대화가 모아지기 일쑤다. 경제력이나 인적 네트워크 등 각자 처한 여건에 따라 계획이 갈리면서도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소재가 있다. 배우자와의 ‘공존’ 문제다. 은퇴 전과 달리 평일에도 온종일 배우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 데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아내가 각자 직장이나 집안일에 바빠 관심 밖에 있거나 대충 넘기던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의견 충돌이 잦다고 한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성인 남녀 17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 대한민국 젠더의식’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배우자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는 남성은 ‘60대 이상’에서 60.9%로 가장 많았다. 60대 이상 여성도 58.4%로 만만치 않았다. 노인가구가 늘어나면서 ‘황혼이혼’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상담을 받은 남성 중 60대 이상이 47.7%에 달한다. 2011년 15%에서 3배 넘게 증가했다. 배우자와의 갈등은 학대 문제로도 연결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발간한 ‘2021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으로 배우자가 아들을 제치고 최다 가해자로 집계됐다. 노인학대 건수 6774건 중 29.1%가 배우자에 의해 자행됐다. 아들에 의한 학대는 27.2%로 두 번째다. 복지부는 노인가구 비율이 높아진 데다 코로나19로 자녀들 발길이 끊기면서 부부가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이런 현상이 생긴 것으로 분석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가 붙어 있어서 갈등과 학대로 이어진다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그렇다 보니 은퇴 후 계획도 어떻게 하든 집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찾는 데 모아진다. 모임을 최대한 많이 만들자느니, 공동으로 사무실을 내자는 등등. 하지만 계획 실천엔 충분한 돈과 친구가 필요하니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가정법률 전문가인 양소영 변호사는 최근 한 특강에서 “은퇴 후 나를 지켜 주는 것은 배우자”라며 최고의 은퇴 준비는 ‘내 배우자 끝까지 지키기’라고 조언했다. 집을 빠져나갈 계획을 친구들과 세우기보다는 은퇴 후 부부 중심의 삶을 설계하는 대화를 배우자와 자주 나누는 게 더 낫지 않을까.
  • [씨줄날줄] 횡재세/문소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횡재세/문소영 논설위원

    정부가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법인에 초과이익분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 초과이윤세, 일명 ‘횡재세’(Windfall profit tax)다. 영국 보수당 정부가 이 횡재세를 도입한다. 리시 수낵 영국 재무장관은 최근 의회에서 “석유와 가스 기업들이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혁신이나 효율성, 위험 관리를 잘해서가 아니다. 그 수익에 공정하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횡재세 도입 의사를 밝혔다. 올 2월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국제 유가가 폭등해 석유, 가스 등 에너지 회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떼돈을 벌었으니 기존 법인세에 25%를 더 얹어 초과이윤만큼에 대해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전기요금을 전년 대비 19% 올린 영국 정부는 이 횡재세로 저소득층에 650파운드(약 102만원)를 지원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정부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큰 수익을 얻은 대기업에 15%의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식료품, 에너지, 농산물 관련 기업 등이 대상이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소수가 큰 이익을 봤다. 국가가 용납할 수 없는 부도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을 벼르는 ‘에너지 징벌세’는 미국판 횡재세다. 미국 상원 론 와이든 금융위원장은 이윤율이 10%를 넘어서는 석유회사에 추가로 21%의 연방세를 물리는 법안을 7월에 제출한다. 기존 법인세 21%에 21%를 추가해 최대 42%의 연방세를 내야 한다. 세금을 두 배로 맞기 싫으면 석유 가격을 내리거나 공급을 확대하라는 압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연설에서 “엑손모빌(석유회사)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비판했다. 스페인은 일찌감치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발전소에서 초과이익세를 걷었고, 이탈리아와 헝가리도 기업들에 초과이윤세를 매긴다.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는 각국 정부가 그 책임을 외부 요인으로 돌려 성난 민심을 무마하고 한계상황에 몰린 시민을 도울 재원을 마련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우리는 횡재세를 부과할 기업이 없다는 게 아쉽다.
  • [씨줄날줄] ‘3관왕’ 도전 남해 죽방렴/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3관왕’ 도전 남해 죽방렴/서동철 논설위원

    정부가 ‘문화재’라는 이름을 ‘국가유산’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문화재청’이라는 기관 이름도 ‘국가유산청’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조직 개편이 하반기로 미뤄지면서 아직 옛날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국가유산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문화유산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바람직스럽다. 문화재청의 손길이 미치고 있는 문화유산은 국보, 보물, 사적, 명승, 국가무형문화재, 국가등록문화재, 시도문화재, 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여기에 해양수산부의 국가중요어업유산과 농림축산식품부의 국가중요농업유산도 국가유산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어업자산을 보전하고자 해양수산부가 시행하는 제도다. 제주 해녀어업을 1호로 보성 뺄배어업, 남해 죽방렴, 신안 갯벌 천일염업, 무안·신안 갯벌낙지 맨손어업, 하동·광양 재첩잡이 손틀어업, 신안 흑산도 홍어잡이 등이 지정됐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은 같은 취지로 농업자산을 대상으로 지정한다. 국가중요농업유산과 국가중요어업유산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0년 시작한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제도와 궤를 같이한다. 문화재청에 국가유산 지정 제도가 있고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 제도가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농업유산’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만 FAO가 만든 제도답게 ‘먹거리 확보’에 초점을 맞춰 농업유산은 물론 어업유산도 일부 포함된다.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우리 것은 청산도 구들장논, 제주 밭담, 하동 전통차농업, 금산 인삼농업, 담양 대나무밭이 등재됐다. 국가유산의 범위 확대에 따라 눈길을 끄는 것이 남해 죽방렴이다.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은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이기도 하다. 그런데 해양수산부는 죽방렴어업을 빠르면 올해 안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현지 실사와 서류심사를 거치는데 등재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자신한다. 죽방렴의 국가지정문화재, 국가중요어업유산, 세계중요농업유산이라는 ‘문화유산 3관왕’ 등극이 멀지 않다.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 [씨줄날줄] 정치 훌리건/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정치 훌리건/박홍환 논설위원

    1989년 4월 15일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축구 역사상 가장 슬픈 날로 기억되고 있다. 이날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의 힐즈버러스타디움에서 이른바 ‘힐즈버러 참사’가 발생해 관중 94명이 목숨을 잃었다. 리버풀과 노팅엄포레스트 간 잉글랜드 FA컵 준결승전을 관람하러 몰려든 양측 팬들로 시작 전부터 만석을 이뤘고, 입석표 또한 정원의 두 배 이상 판매돼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힐즈버러스타디움에는 훌리건들이 필드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중석과 선수들이 뛰는 경기장 사이에 높은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 급기야 펜스가 무너졌고, 관중들이 그 위에 겹겹이 깔리면서 대참사가 발생했다. 부상자도 800명에 육박했다. 훌리건은 경기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광적인 축구 관중을 일컫는 말이다. 어원은 종잡을 수 없지만 클럽 축구가 성행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남미 등으로 확산됐다. 월드컵 등 대형 축구경기가 벌어질 때는 훌리건들의 난동을 막는 일이 해당 국가 경찰의 가장 큰 임무다. 영국은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훌리건 경력이 있는 자국민 8500여명의 출국을 막기도 했다. 훌리건이 무서운 것은 군중 폭동 등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집합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승패는 상관없다. 이기면 기뻐서, 패하면 화나서 충동적인 폭동으로 이어지곤 했다. 상대팀 훌리건들과의 단체 충돌은 경기장에서 일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국내 정치에서도 훌리건 논란이 한창이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논란이 점화됐지만 연승한 국민의힘도 자유롭지 않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시작한 국내 팬덤 정치의 극심한 후유증을 정치권에서도 이제 자각하기 시작한 셈이다. 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엊그제 ‘수박’ 발언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이낙연 전 총리와 그 지지자들을 겉과 속이 다른 수박에 빗대 조롱해 온 이재명 의원 지지층을 향한 경고다. 국민의힘은 ‘윤심’을 따르겠다는 이른바 ‘민들레’ 모임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훌리건식 집합행동의 폐해, 정치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씨줄날줄] 스포츠워싱/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스포츠워싱/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올 2월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세계로 전파를 탔을 때 화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무명이나 다름없는 디니거 이라무장 크로스컨트리 선수가 마지막 성화 주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출신이다. 스포츠워싱(Sports Washing) 논란이 거셌다. 스포츠워싱은 말 그대로 ‘스포츠로 씻는다’는 의미다. 국가나 기업이 독재, 부정부패, 스캔들 등으로 나빠진 여론과 이미지를 스포츠 이벤트로 세탁하는 것을 말한다. 2015년 아제르바이잔이 국제 스포츠 행사를 공격적으로 유치하면서 사용되기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부국이지만 고문과 인권 탄압으로도 얼룩진 나라다. 중국 역시 소수민족인 신장 위구르족 강제 수용과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 월드컵 대회를 여는 카타르도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카팔라’(kafala)로 악명 높다. 영국 런던에서 엄청난 상금을 내건 신생 프로골프대회가 어제 막을 내렸다. 우승 선수가 챙긴 상금만 475만 달러(약 60억 8000만원)다. 꼴찌도 1억 5000만원이나 거머쥐었다.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이다. 이 대회의 후원사는 전 세계 금융시장 ‘큰손’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다. 펀드를 이끄는 이는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그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사건 배후 혐의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9·11 테러 희생자들은 사우디가 테러세력을 지원하고 있다며 LIV 대회는 스포츠워싱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앞서 사우디가 영국 프로축구단(뉴캐슬)을 인수한 것과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를 홍보대사로 활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런 부담 탓인지 타이거 우즈는 사우디의 은밀한 ‘10억 달러(1조 2500억원) 참가비’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영국 가디언은 “2022년은 베이징으로 시작해 카타르로 끝나는 스포츠워싱의 해”라며 냉소했다. 거기에 사우디를 추가해야 할 듯싶다. 지난해 국제앰네스티는 족쇄와 수갑이 달린 강철의자(일명 ‘타이거’ 의자)에 사지를 묶는 중국의 위구르족 고문 실상을 공개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스포츠는 죄가 없다지만 스포츠워싱에 무뎌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씨줄날줄] 자율주행 택시/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자율주행 택시/박록삼 논설위원

    먼 훗날일 것 같던 미래가 현재가 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본격적인 자율주행 시대가 열린다. 지난 8일 오전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날 시범운행을 시작한 자율주행 택시 ‘로보라이드’의 첫 손님이 됐다. 안전을 위해 비상 운전자가 탑승한 가운데 강남 테헤란로 3.4㎞를 달렸다. 2대로 시작한 자율주행 택시는 앞으로 두 달 동안 기술적 보완을 거쳐 8월부터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미 지난 2월부터 서울 상암동에서 자율주행 택시가 시범운행되고 있지만, 이 택시는 정해진 구간을 운행하며 정해진 지점에서만 승하차가 가능하다. 상암동 자율주행 택시가 셔틀에 가까운 제한적 이동 방식이라면 강남 복판을 움직인 자율주행 택시는 기존 택시와 마찬가지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혼자서 유턴도 하고, 차선도 바꾸는 등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장면이 그대로 구현되는 셈이다. 자율주행 택시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도심 교통 체증 유발 요인이 되지 않고, 안전성도 검증받아야 하는 등 시범운행 두 달 동안 할 일들이 대단히 많이 있을 테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자유롭게 했다. 기계는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그 기계가 노동하는 이의 소유가 아니기에 자유와 해방이 아닌 소외와 갈등이 오기 일쑤였다. 실제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증대하는 데 혁혁한 기여가 있었지만,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내모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실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인물인 네드 러드 장군 주도하에 조직적으로 방직기계를 망치로 때려 부수고 기계에 모래를 뿌리는 등 기계 파괴 운동, ‘러다이트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구속과 사형이 잇따랐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러다이트운동 당시 상원 연설에서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기계의 잘못도 아니다. 정부의 정책이 잘못이다”라고 노동자들을 옹호했다. 머지않은 미래 자율주행 택시가 보편화되는 세상이 온다면 택시 노동자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겠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편리함, 노동자의 생존이 공존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 [씨줄날줄] 3만 5373달러/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3만 5373달러/임병선 논설위원

    스태그플레이션에다 곡물 가격이 폭등하는 어려움이 닥치는 와중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소식 하나가 발표됐다.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국민계정(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사상 최고액인 3만 537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평균 환율을 적용하면 4048만원, 4인 가족이 1억 6200만원 가까이 벌어들인 셈이다.  이 지표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것으로 생활 수준의 척도가 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67달러였으니 70년이 안 돼 520배 이상 커졌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나라 중 이런 성장세는 유일하다.  2017년 3만 달러를 넘어선 뒤 코로나19 영향으로 2년째 줄다가 3년 만에 10.5%나 반등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3% 정도 내린 덕을 봤다. 전년 대비 증가액 3369달러를 해부하면 경제성장이 1315달러, 물가는 825달러, 환율이 1066달러 기여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2020년 일본이 4만 달러였으니 우리 눈앞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에 4만 달러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 5000만명을 넘는 나라 가운데 일곱 번째라니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눴느냐는 질문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재난지원금 지급 등으로 소득 불평등은 줄었지만 자산 불평등은 심화됐다. 자산 불평등을 가리키는 지니계수가 0.603으로 1에 더욱 가까워졌다. 2019년 상대적 빈곤율은 1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네 번째, 노인 빈곤율은 2018년 기준 43.4%로 OECD에서 가장 높았다. 장애인을 돌보던 어머니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월 160만원으로 살길이 막막해 극단을 선택하고, 보육시설을 퇴소하는 ‘18세 어른’의 손에 정착금 500만원을 쥐여 주며 열심히 살라고 당부하는 실정이다.  4만 달러를 오르락내리락 했던 일본과 3만 달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탈리아의 출산율이 각각 1.36명과 1.27명으로 성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우리는 0.84명이다. 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영향인데 이를 촘촘히 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 [씨줄날줄] 함무라비식 대응/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함무라비식 대응/박홍환 논설위원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였던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역전의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 북한의 불법 기습공격으로 이창기 준위를 비롯한 46명의 젊은 용사가 무고한 목숨을 잃었다. 군 안팎에서는 ‘비례성 원칙’에 따른 보복공격 요구가 빗발쳤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결정을 주저했고, 북한 소행이 맞다는 국제합동조사단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상응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면전을 막았다면서 이 전 대통령의 ‘결정장애’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군 내부에서는 수십 명의 장병이 희생됐는데도 상응한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군을 욕보이고 장병들의 사기를 꺾었다는 힐난이 들끓었다.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뮌헨’은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저항단체 ‘검은 9월단’이 자행한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와 이스라엘의 그 보복 대응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스라엘은 7년에 걸쳐 테러와 관련된 검은 9월단 지도자들을 암살했는데 작전명은 ‘신의 분노’로 명명했다. 영화에서는 보복에 나선 모사드 대원들의 심적 동요 등도 엿보이지만, 작전을 지휘한 마이크 하라리는 타계 후에도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싸운 가장 위대한 전사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최초의 성문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법전의 ‘동해(同害)복수’ 원칙이다. 타인의 눈을 상하게 한 자는 눈을 상하게 하고, 이를 상하게 한 자는 똑같이 이를 상하게 하라는 조문이 전해지고 있다. 부모를 구타한 아들은 손목을 자르라고도 돼 있다. 함무라비법전의 대응 방식은 현대 국제법상 자위권의 범위를 규정하는 원칙으로도 원용되곤 한다. 한미가 현충일인 그제 탄도미사일 8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날 북한이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8발을 발사한 데 대해 동종·동량으로 대응한 것이다. 함무라비식 대응은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복의 악순환’ 우려는 떨칠 수가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금도 여전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대응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씨줄날줄] 20대 울화병/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20대 울화병/박현갑 논설위원

    개인의 이익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 상충할 때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면 개인주의 사회이고, 개인적 이해관계보다 집단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면 집단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는 집단주의적 사고 경향이 강하다. 반면 서구사회는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의 국민 금 모으기 운동,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코로나19 발생 초기 불편을 감수하며 온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한 건 집단주의 성향의 긍정적 사례였다. 집단주의 문화는 그러나 부정적 폐해도 적지 않다. ‘화병’이 그러한 경우다. 화병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과 관련돼 나타나는 분노와 억울함 등의 부정적 정서가 해소되지 않은 채 누적돼 나타나는 만성화된 분노증후군이다. ‘울화병’이라고도 한다. 화병에 걸리면 답답함, 숨 막힘, 두통, 몸과 얼굴의 열기, 화끈거림, 소화장애, 목과 가슴에 덩어리가 있는 느낌 같은 증상이 신체에 나타난다. 심리적으로는 우울, 불안, 신경질, 짜증, 과민함, 무기력 등을 보인다. 권위적이고 수직적 인간관계가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이러한 화병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20대 화병 환자 증가 추이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5년(2015~2019)간 화병 환자는 11만 3704명에서 16만 2630명으로 43% 증가했다. 특히 20대 환자는 1만 5412명에서 2만 7323명으로 77% 증가해 전체 연령대 중 1위를 차지했다. 화병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에서 더 잦은 게 일반적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그 원인으로 사회문화 요인을 꼽는다. 2000년대 이후 화병 연구들을 메타분석한 결과 자아존중감 등 개인의 심리정서적 요인과 고부관계나 부부관계 등 가족관계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관계, 사회문화 요인도 화병 요인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공정성과 정당성 요인들이 화병 증상과 유의미한 관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2030을 중심으로 국민적 분노를 부른 조국 사태나 이번 정부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아빠 찬스’ 논란 같은 절차적 공정성 부재가 젊은층의 울화병을 키우고 있었던 셈이다. 울화병 요인을 최소화할 정치를 기대해 본다.
  • [씨줄날줄] 용산공원 개방의 조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용산공원 개방의 조건/박록삼 논설위원

    용산은 오욕의 역사를 품은 땅이다. 13세기 말에는 원나라 군대가, 15세기에는 왜군이, 1882년에는 청나라 군대가 각각 기지로 삼았다. 한강이 가까워 물자가 들고 나기 좋았고, 멀지 않은 곳에 궁궐이 있으니 위협하기에 딱 좋았을 테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6년 아예 300만평을 강제로 수용해 대규모 병영 기지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 미군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사용했다. 2017년 7월 주한미군은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주둔기지를 옮겼다. 충분히 감격스러울 만한 일이다. 하지만 2004년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 체결 이후 실제 반환 시기는 2008년→2016년→2018년→2019년으로 계속 미뤄졌다. 지난해 7월 50만㎡ 추가 반환 합의에 따라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출퇴근 경로로 사용하는 13번 게이트와 주변 도로 등 5만 1000㎡를 반환받는 등 총 63만 4000㎡를 돌려받았다. 이미 450만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및 이주 비용 14조원을 우리 정부가 사실상 전액 부담했음에도 용산기지 반환이 계속 미뤄져 온 이유는 딱 하나다. 기지 오염이다. 그리고 오염 정화비용 부담 책임 문제였다. 미군기지는 환경오염의 철저한 사각지대였다. 특히 용산은 국내 미군기지 중 가장 많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 토양 지하수 복합 오염이 심각하다. 지난해 5월 환경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반환된 용산기지 스포츠필드와 숙소, 학교 등의 부지 토양과 지하수에서 구리ㆍ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다수 검출됐다. 일부 지점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기준치보다 34.8배 초과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오염 정화가 필요한 부지에 대한 정화 공사 진행에 7년 정도 소요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10~19일 용산공원을 시범 개방하기로 했다. 하루 5회, 회별로 500명에게 2시간씩 관람을 허용한다. 인조잔디를 깐다고 오염물질 유출이 막아질 수 있는 것인지.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방진복 입고 용산공원 가자’는 조롱도 나온다는데, 무엇보다 가장 책임이 큰 미국이 더욱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 [씨줄날줄] 플래티넘 주빌리/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플래티넘 주빌리/임병선 논설위원

    영국인들은 2일부터 나흘 연휴를 즐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축하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덕이다. 버킹엄궁 앞에는 텐트들이 즐비하다. 이 궁전에서 트래펄가광장까지 1㎞의 도로에는 유니언잭이 펄럭이고 인파가 북적인다. 한 나라의 군주가 재위 70년을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하며 나랏일이 평온해야 한다. 즉위 50년이면 골드 주빌리, 60년이면 다이아몬드 주빌리라 한다. 지금까지 재위 70년을 채운 군주는 루이 14세 프랑스 국왕(재위 1643~1715년), 요한 2세 리히텐슈타인 대공(재위 1858∼1929년),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재위 1946∼2016년) 등 셋뿐이었는데 1953년 6월 2일 왕관을 쓴 여왕이 네 번째가 됐다. 영국인들은 브렉시트 후유증, 우크라이나 전쟁, 파티 게이트 등 궂긴 일들을 잠시 뒤로 물리고, 떠들썩하게 축제를 즐기는 데 한마음인 것 같다. 야당인 노동당 키어 스타머 대표마저 플래티넘 주빌리를 축하하는 일은 애국적 임무라고까지 했다. 일간 가디언은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인터넷과 전화가 안 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라고 농을 섞어 권할 정도다. 플래티넘 주빌리의 첫날 행사는 ‘군기분열식’(Trooping the Colour)으로 시작해 여왕의 공식 생일을 축하하는 축포 발사, 왕실 가족의 발코니 인사, 공군기 70대 이상이 출동하는 공중분열식에 이어 영국과 영연방 주요 도시들에서 조명이 일제히 켜진다. 지난 4월 21일 96번째 생일상을 받은 여왕이 얼마나 많은 행사에 몸소 얼굴을 내밀어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다독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여왕이 즉위한 해에 태어난 플래티넘 주빌리 세대가 부동산 가치 상승 등으로 역대 가장 많은 소득 증가를 누린 것으로 꼽혔다. 이들이 다른 어느 세대보다 뜨겁게 축하하고 있다. 앤드루 왕자의 성추문 의혹에다 해리와 메건 마클 부부의 왕실 이탈, 돈만 낭비하는 왕실 운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여전한데도 유니언잭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고 결속을 다지는 차원에서 영국인들은 대영제국과 과거의 향수에로 기꺼이 끌려가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