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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4대 천왕’ 망령/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4대 천왕’ 망령/안미현 수석논설위원

    4대 천왕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 허리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동쪽은 지국(持國), 서쪽은 광목(廣目), 남쪽은 증장(增長), 북쪽은 다문(多聞) 천왕이다. 모두 우락부락한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런데 손에 든 물건이 각기 다르다. 칼(기쁨), 삼지창과 보탑(분노), 용과 여의주(사랑), 비파(즐거움)다. 각각의 감정을 상징하면서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 이후 실력이나 명성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뜻으로 변주되며 한류, 게임, 바둑 등에서 수많은 4대 천왕을 탄생시켰다. 금융권에도 4대 천왕이 존재했다. 저 유명한 강만수 전 산업은행, 어윤대 전 KB금융, 이팔성 전 우리금융,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다. 강 전 회장은 이명박(MB)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나머지 세 명은 MB의 대학(고려대) 동문으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라인으로도 유명했다. 이들은 MB정부 때 4대 금융그룹 회장을 동시에 맡아 금융권을 쥐락펴락했다. MB와 사이가 별로였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 천왕은 모두 물러났다. 이때가 2013년 여름이다. 그런데 10년 만에 4대 천왕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오는 13일 윤곽이 드러나는 BNK금융 회장에 이팔성 전 회장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기재부 출신인 김창록 전 산은 총재 이름도 들린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고문인 변양균씨와 부산고 동창이기도 하다. 내부 연임으로 기우는 듯했던 농협금융 회장에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내정설이 파다하다. 기재부 차관도 지낸 그는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초기 멤버다. 우리금융 회장과 기업은행장 후임에도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등 MB맨과 기재부 출신이 거론된다. 4대 천왕이 여든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자가발전’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예금보험공사 사장에 기재부 출신이 6년 만에 컴백한 점, 현 정부에 MB맨과 기재부 출신이 유난히 많이 포진한 점 등을 들어 ‘낙하산 부활’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4대 천왕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아직도 그때의 ‘몸집 불리기’ 과당경쟁 후유증을 성토하는 이들이 많다. 과거로의 회귀는 보고 싶지 않다.
  • [씨줄날줄] 유리천장 시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유리천장 시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취업 여성이 겪는 승진 차별을 뜻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언제 누구 입에서 맨 처음 나온 말일까. 언어에 꼬리표를 달 수 없으니 객관적 입증이야 불가능하다. 통설로는 1978년 뉴욕에서 열린 ‘직장 여성 박람회’가 연원으로 꼽힌다. 박람회의 토론회 패널로 참가한 뉴욕전화회사 인사과 여직원 매릴린 로든이 처음 썼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그러던 것이 1986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를 언급한 기고문을 실으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유리천장’은 각 분야 여성의 차별을 뜻하는 용어로 줄기차게 변주됐다. 아시아계 여성의 이중차별에는 ‘대나무 천장’, 종교계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공직에서는 ‘대리석 천장’ 등으로. 삼성그룹에서 오너가 출신이 아닌 첫 여성 사장이 탄생했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여성도 사장까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 지 11년 만이다. 주인공 이영희 삼성전자 사장은 2007년 입사 후 갤럭시의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일궜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객관적 능력을 인정받은 성취로 평가된다. 지난달에는 5대 그룹 중 처음으로 LG가 여성 사장을 배출했다. 두 대표 그룹에서 잇따라 기록을 세웠으나 기업들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공고하다.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5.6%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해마다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 명단에서 우리나라는 10년 연속 부동의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직장의 성별 다양성 문제는 세계 어디서나 더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상장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권고했다. 우리나라도 제도적인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이 지난 8월 시행됐다. 소리소문 없이 등장한 구호성 제도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리천장’에 유의미한 사회적 요구가 담긴 시간은 줄잡아 반세기가 다 됐다. 몇 달 전 타계한 로든은 “이 단어가 나보다 더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유리천장’의 단어 수명은 얼마나 더 남았을까.
  • [씨줄날줄] 월드컵과 전쟁/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월드컵과 전쟁/박록삼 논설위원

    기적과도 같은 16강 진출 이후 월드컵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월드컵은 철저한 국가별 대항전이기에 애국심 또한 따라서 치솟는다. 더욱이 나라별로 월드컵에서 실제 역사 속의 전쟁을 소환해 내기도 한다. 그만큼 관심은 증폭되겠지만 자칫 피해 국가의 해묵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들기 일쑤다. 얼마 전 잉글랜드와 이란의 경기에 한 영국 팬이 십자군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입장하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무모하거나 몹시 무례한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십자군전쟁은 서구 세계에서는 성전(聖戰)으로 통한다.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물론 이슬람교ㆍ유대교 등 여러 종교에서도 성지다-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되찾겠다는 이유로 1095~1290년 약 200년 동안 공식적으로만 9차례, 비공식적으로는 수십 차례 무슬림 지배 지역 곳곳을 침략했다. 반면 이슬람권에서는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던 십자군은 공포 그 자체였고, 십자군전쟁은 일방적 침략 전쟁일 뿐이다. 실제로 십자군 연대기의 저자 라울 드 카엥은 ‘마라(현 시리아)에서 우리는 이교도(무슬림) 어른들은 솥에 삶아 죽이고, 어린이들은 꼬챙이에 꿰어 구웠다’고 썼을 정도였다. 이번 월드컵을 비롯해 축구 경기에 일본 팬들이 간혹 욱일기를 들고나와 응원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을 당한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 욱일기는 전범기로 통한다. 서구의 역사적 인식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반대로 누군가 같은 전범인 나치의 깃발을 들고 월드컵을 응원한다면 전 세계가 발끈할 것이다. 만인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서구권이 대체로 욱일기에 무감하거나 무지할 뿐이다. 국민들을 잠시나마 위로하고, 환호하게 하며, 한마음으로 묶어 놓는 것은 축구의 순기능이다. 하지만 자칫 퇴행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망령을 부활시키는 식이라면 더이상 환영받을 수 없다. 밤잠을 설치면서 남의 나라 경기까지 챙겨 보는 것은 ‘전쟁 같지만 전쟁이 아닌’ 월드컵의 매력 덕이다. 머지않아 곧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펼쳐질 수도 있는 한일전 역시 그 영역을 넘어서서는 곤란하다.
  • [씨줄날줄] 부자의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부자의 기준/임창용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의 자산을 보유해야 부자로 인정받을까. 일반인의 경우 막연하게 서울 강남의 비싼 아파트나 고급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상위 1% 정도의 고소득자 정도로 추측할 듯하다. 그런데 사실 딱 잘라 부자의 기준을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부자 관련 조사를 하는 주체들조차 자기들의 목적에 맞춰 결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올 상반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펴낸 ‘2022 대한민국 상위 1%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위 1% 가구의 순자산 커트라인은 29억원 정도다. 이들의 평균 총순자산은 51억원이었고, 10명 중 9명은 본인 명의 아파트에 살았다. 평균 연소득은 2억 1500만원에 달했다. 평균 생활비 500만원 정도와 세금 등을 빼고도 연 9000만원 정도가 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에 사용했다. 하지만 ‘상위 1%’는 편의적 구분일 뿐이고, 부자의 기준은 조사마다 제각각이다. 특히 설문조사 대상에 따라 기준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난해 한 언론사가 실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득을 구분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은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을 포함한 총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의 기준으로 꼽았다. 100세시대연구소가 제시한 상위 1% 기준(29억원)의 3분의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상위 1% ‘부자’는 자신을 부자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난 4일 KB금융그룹이 발간한 ‘2022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조사 대상자의 과반수는 총자산이 100억원 이상은 돼야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위 1% 자산가들보다 3배는 넘게 가져야 진정한 부자라고 인정하는 셈이다. KEB하나은행이 수년 전 이 은행 PB 고객 10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산가들끼리도 부자 기준에 대한 인식 편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고객들은 부자의 최소 자산이 100억원 이상이라고 한 반면 30억~50억원 고객은 129억원, 50억~100억원 고객은 153억원, 100억원 이상 고객은 215억원을 가져야 부자라고 인정했다. 꼭 철학적 가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진정한 부자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 [씨줄날줄] 월드컵과 반정부 시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월드컵과 반정부 시위/이순녀 논설위원

    자국 축구 대표팀의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에 환호하던 이란 청년이 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지난달 29일(현시지간) 미국과의 경기 직후 발생한 일이다. 이란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를 알지 못한다면 귀를 의심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자국의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축하하며 자동차 경적을 울린 국민도, 무방비 상태인 20대 청년의 머리를 조준사격한 정부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란은 지난 9월 중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한 사실이 알려진 후 전국적으로 ‘히잡 시위’가 들끓고 있다. 정부가 사태 초기부터 강경 진압에 나서 어린이 60명을 포함해 448명을 처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극한 대결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카타르월드컵이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한 연대의 장으로 부각됐다. 이란 선수들은 지난달 21일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서 국가 제창을 보이콧하는 방식으로 시위대에 동조했다. 응원단에서도 시위대 구호인 ‘여성, 삶, 자유’ 팻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1차전 직후 선수들에게 반정부적 행태를 보이면 가족이 고문을 당할 수 있다고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고, 16강 탈락에 환호하던 남성을 사살하면서 이란 국민들에게 카타르월드컵은 악몽으로 남게 됐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백지혁명’의 배경 중 하나로 카타르월드컵의 나비효과가 주목받고 있다. A4 용지 크기 백지로 반정부 의사를 표현하는 백지혁명은 지난달 24일 우루무치 화재로 코로나 봉쇄에 갇혀 있던 주민 10여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방역 완화를 촉구하기 위해 시작됐다. 때마침 카타르월드컵 중계방송을 통해 노마스크 외국 응원단을 보면서 정부의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불타올랐고, 이후 ‘시진핑(習近平) 퇴진’까지 외치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던 때도 있었지만 구두선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엔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는 경우가 흔했다면 지금은 스포츠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졌다. 카타르월드컵에 얽힌 두 나라의 사례처럼 말이다.
  • [씨줄날줄] 교권과 학생부/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교권과 학생부/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교육 현장을 넘어 이제는 시중에서도 낯설지 않은 용어가 ‘교권침해 보험’이다. 교권침해에 대비해 교사들이 개인 돈을 들이는 이 보험은 해마다 가입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477명이던 교권침해 특약 가입 교사는 지난해 6739명으로 급증했다. 가입자의 75%는 여교사였다. ‘중대 교권침해’라는 용어 조합이 조만간 교육 현장에 새로 편입해 세를 떨칠 듯하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하면 그에 대한 징계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남기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수업 도중에 학생이 교단에 드러눕기까지 하는 교실 붕괴 위기 속 고육지책인 것이다. 교육부가 이런 얼개의 대책을 내놓자 벌써 설왕설래는 뜨겁다. 교권 보호는 시급한 문제이지만 학생부에 징계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무엇보다 학교폭력 처벌 방안의 실패한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수 있다는 걱정들이 많다. 시행 매뉴얼이 여러모로 학폭과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학폭 처벌의 핵심도 전학이나 퇴학 등 조치를 받은 ‘중대한 학폭 가해자’의 학생부에 징계 기록을 남기는 것. 하지만 학폭은 되레 늘고 있고 관련 행정소송도 덩달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초동 대처’하는 방법에서부터 행정소송까지 도맡는 ‘학폭 전담 변호사’ 시장이 따로 형성됐을 정도. 학부모들 사이에는 “학폭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전문 변호사나 행정사한테 전화 상담부터 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돈다. 교권침해 심판을 둘러싼 살풍경이 이제 더 추가될 위기다. 중고교생들에게 학생부는 진학에 절대적인 자료다. 평생이 걸린 중대 기록물에 ‘빨간줄’이 남는다면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줄을 이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교사들이 편의점 점원이 되고 있다”고 교육 현실을 통박한 적이 있다. 어떤 순간에도 학교가 교육 상품과 서비스를 팔며 손익을 따지는 곳은 아니어야 한다는 통찰이다. 학생 교육에 백기를 들면서 학생들의 아킬레스건인 학생부로 위협하는 모양새가 아닌지, 말할 수 없이 초라한 교육정책이 아닌지 백번 돌아봐야 한다.
  • [씨줄날줄] 北 ‘핵무력 완성 5년’/황성기 논설고문

    [씨줄날줄] 北 ‘핵무력 완성 5년’/황성기 논설고문

    북한의 핵 개발 역사는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 비밀 창고에서 관련 문서를 찾아내지 않는 한 특정이 어렵다. 한국전쟁 때 김일성이 결심해 1960~70년대 개발이 시작됐다는 설에서부터 냉전이 끝날 무렵 중국과 러시아가 뒷배가 돼 줄 수 없다는 냉혹한 국제정치를 확인한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80~90년대 개발에 전력투구했다는 설까지 있다. 시초가 언제든 2022년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십 발은 우리에겐 무거운 현실이다. 얼마 전 고각으로 발사한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은 미국 본토까지 너끈히 도달한다. 당연히 남한이나 일본, 괌 미군기지를 타격하는 중단거리의 전술핵 개발은 완료됐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다. 그로부터 2년간은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때였다. ‘영변의 낡은 핵시설 포기’ 카드 한 장으로 미국과의 수교, 핵 보유 인정을 받아 내려는 기망이 곧 드러났지만 말이다. 지난 5년간 미국의 트럼프나 바이든 정권이 진정성을 갖고 북한과 교섭했더라면 어땠을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이 자신을 지켜줄 ‘보검’ 핵·미사일을 결코 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국회의원이 되기 전 태영호가 일찍이 예견한 바 있다.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앞에서 했던 가짜 비핵화 약속을 요즘 북한의 거칠어진 입들이 재확인해 주고 있다. 고도화하는 북핵 5주년인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한다면 “지금까지 취하지 않았던 대응들”을 꺼내들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한을 견제하려고 동해에 전개됐던 미 핵추진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 근처로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이다. 미국은 ‘핵에는 핵으로’란 확장억제를 말하지만, 그들의 본토가 북핵에 노출돼도 우리를 지켜 줄지는 의문이다. 물끄러미 북녘만 쳐다볼 게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핵 논의를 시작하자는 ‘핵 자주파’의 증가는 당연한 추세가 아닐 수 없다. 비대칭 전력에 맞설 수 있는 건 비대칭 전력밖에는 없다. 중국이 대북 통제력을 국제정치의 지렛대로 쓰는 것처럼 우리의 핵 논의도 북핵 위협에 맞설 대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 [씨줄날줄] 한국판 나사 도전史/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국판 나사 도전史/박록삼 논설위원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지름 58㎝, 83.6㎏에 불과한 이 작은 위성은 밤하늘 우주에 대한 인류의 관심을 ‘낭만’에서 ‘현실’로 돌려놓았다. 같은 해 소련은 떠돌이개 시베리안허스키 ‘라이카’를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웠다. 내친김에 1961년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08분 동안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냉전시대였다. 인공위성을 쏘고 우주를 개발하는 것은 장거리 미사일 등 군비 경쟁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스푸트니크 충격’ 직후인 1958년 케네디 대통령 직속으로 우주항공연구개발기관인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설립했다. 항공우주기술부, 우주과학응용부, 우주비행부, 우주자료부, 유인우주정거장건설부 등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나사는 1970년이 오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아폴로 계획’을 세웠고 결국 1969년 아폴로호 달 착륙으로 10년 넘게 소련에 뒤처졌던 우주항공 전세를 순식간에 뒤집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 달은 월계수 아래 옥토끼가 방아 찧는 수준의 커다란 별에 불과했다. 관심도 없었지만 기술은 더더욱 없었고 제약 또한 컸다. 1979년 박정희 정부 시절 미국과 맺은 사거리 180㎞ 이상 로켓(미사일)은 개발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에는 군사용뿐 아니라 과학ㆍ산업용까지 로켓 개발을 금지하도록 개악됐다. 이후 사거리는 300㎞, 800㎞로 조금씩 늘어났고 지난해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완전 폐기에 합의했다. 지난 6월 한국형 위성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은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미래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한국판 나사’인 우주항공청 설립을 통한 우주시대 개막이 핵심이다. 계획대로라면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 우리도 화성에 착륙하게 된다. 탑재 위성 중량 증대, 장거리 비행 가능 발사체 기술 확보, 유인우주선 발사 등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주는 미래 먹거리이기도 하다. 우주로 가는 길엔 그 무엇보다 민관의 합심과 노력이 필수다.
  • [씨줄날줄] 재벌가 장례 송사/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재벌가 장례 송사/박현갑 논설위원

    기업가는 본업인 사업으로 주목받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국민들은 대형 프로젝트 수주 등 기업가의 성공 스토리에 환호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1년 조선사업에 필요한 차관을 유치한 일화도 그런 예다. 당시 정 회장은 영국 선박회사의 회장을 찾아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 돈을 빌려 달라”며 회장의 마음을 움직여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기업가가 주목받는 일은 또 있다. 자녀 결혼, 부모상 등 애경사를 치를 때다. 평범한 사람을 가족으로 맞아도 뉴스가 되고 재벌가와 결혼을 시켜도 입길에 오른다. 아쉬운 건 가족 간 소송이다. 특히 종종 나오는 재벌가 장례 소송은 부자들의 재물욕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준다. 최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부모의 장례식 방명록 공개 문제로 동생들과 송사를 벌였다. 이들의 부친인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과 모친은 2020년 11월과 2019년 2월에 각각 별세했다. 정 부회장의 동생들인 해승ㆍ은미씨는 지난해 3월 정 부회장을 상대로 장례식 방명록 인도청구 소송을 냈다. 조문객 명단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자신들과 관계된 조문객 명단만 보여 주자 낸 소송이었다. 1심 재판부는 “장례식 관습과 예절을 고려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방명록은 망인의 자녀가 모두 열람·등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동생들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정 부회장측은 “부친상 방명록은 이미 동생들에게 줬고, 모친상 방명록은 이사 중 분실해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 줬다. 부의금 없이 치렀다는 장례인데도 소송까지 간 걸 보면 재산 문제로 인한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재벌가 부의금 송사도 적지 않다. 2013년 신격호 롯데 회장이 여동생 장례식에 낸 부의금을 놓고 조카들 간 분쟁이 있었다. 여동생이 큰오빠를 상대로 “수십억원의 부의금을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나눠 달라”고 했으나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벌가 장례 송사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건 옛말이고,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것만 보여 주는 듯해 씁쓸하다.
  • [씨줄날줄] ‘양치기’ 일회용품 규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양치기’ 일회용품 규제/이순녀 논설위원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고 들른 작은 카페.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테이블마다 전부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가 놓여 있었다. 잠시 뒤 나온 우리 음료도 마찬가지였다. 일회용품 규제가 확대된 첫날인 24일 적어도 동네 카페에선 평소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가게를 나오면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손님이 몰리는 점심 때는 일손이 달려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멋쩍게 웃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방문한 편의점에선 좀 달랐다. 물건을 담아 갈 비닐봉지를 달라고 하자 직원은 “일회용 비닐봉지는 이제 판매하지 못한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곧이어 “생분해되는 친환경 비닐봉지는 구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100원을 내고 생분해 비닐봉지를 사면서 “대체 이게 무슨 차이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일회용품 금지 품목과 규제 대상을 확대한 자원재활용법 개정 시행규칙이 지난해 12월 공포된 지 1년 만에 이날부터 효력이 발휘됐다. 편의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판매가 금지되고, 식당·카페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해선 안 된다. 그러나 환경부가 뒤늦게 계도 기간을 설정하고, 일회용품 허용 예외 조항을 두면서 혼란이 일고 있다. 즉 앞으로 1년 동안은 금지된 일회용품을 써도 과태료(300만원 이하)는 내지 않아도 되고, 매장 사정이나 손님 요구에 따라 일회용품을 쓸 수 있다. 생분해 비닐봉지도 당초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었지만 친환경 인증을 전제로 2024년까지 허용했다. 기존 규제들도 현장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해 단속과 처벌에 앞서 매장과 소비자의 인식 전환을 유도하려는 환경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차 떼고 포 떼는’ 방식의 허술한 일회용품 규제가 제대로 효과를 낼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 곳곳에 깊숙이 들어온 일회용품을 줄이는 건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초래한다. 일회용 컵을 안 쓰려면 개인은 컵을 휴대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고, 매장은 다회용기 세척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친환경 소비습관 정착을 위해선 시민의 자발적인 동참이 가장 중요하나 규칙 준수를 강제하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도 필요하다.
  • [씨줄날줄] ‘강변호텔’과 소프트파워/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강변호텔’과 소프트파워/박현갑 논설위원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호텔’(2018)이 최근 중국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텅쉰스핀(텐센트 비디오)에서 ‘장볜뤼관’(江邊旅館)이란 제목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중국이 한국 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문제 삼아 2017년부터 드라마나 영화, 게임 등 한국 콘텐츠의 자국 내 유통을 틀어막는 ‘한류 제한령’(한한령)을 내린지 6년 만의 한국 영화 서비스 재개다. 지난 3월 중국의 또다른 동영상 플랫폼인 바이두의 아이치이(iQIYI)에서 한국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업로드하긴 했으나 영화 서비스 재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5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문화·인적 교류의 중요성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불법 다운로드 등 비공식적 방법으로 우리 콘텐츠가 중국에서 유통되는 점을 감안하면 무슨 뉴스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한한령 조치의 전면 해제 등 우리 콘텐츠의 대중국 수출길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가 간 문화·인적 교류는 ‘소프트파워’를 지닐 때 의미가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가 냉전시대 힘의 원천이었다면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의 국력은 문화 등 소프트파워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프트파워는 무형의 매력, 가치, 관계 등에 호소해 다른 나라의 인식이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영화 ‘기생충’, ‘오징어게임’과 BTS 음악 등이 대표적인 우리의 소프트파워 자원이다. K-, K드라마, 한류, 대박 등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라간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공자학원이나 영국 문화원 등 각국에서 공적 조직을 통해 해외로 전파하려는 소프트파워를 우리는 민간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셈이다. 근대화 시기에 광부나 간호사 해외 파견 등으로 달러 벌이에 나선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진정한 국력은 이러한 문화역량과 이를 확산시킬 정부의 대외정책이 결합할 때 극대화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호응하는 대외정책이 한류와 결합한다면 하드파워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소프트파워로 세계 초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게다.
  • [씨줄날줄] 월드컵 AI 심판/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월드컵 AI 심판/이순녀 논설위원

    첫 중동 개최, 첫 겨울 경기, 첫 개최국 개막전 패배 등 월드컵 최초의 역사를 갱신 중인 카타르월드컵은 오프사이드 판정에 처음으로 인공지능(AI) 심판을 도입한 대회이기도 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야심차게 선보인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이 지난 21일 새벽(한국시간) 카타르와 에콰도르 간 개막전 시작 3분 만에 오프사이드를 잡아 내면서 축구장의 신기술 혁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프사이드는 축구 경기에서 가장 민감한 판정 중 하나. 공격팀 선수가 최종 두 번째 수비팀 선수보다 골대에 더 가까이 있을 때 선언되는 오프사이드는 순식간에 공격팀 선수와 수비팀 선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 등에서 오프사이드 오심 논란을 겪었다. FIFA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스위스 취리히공대와 3년간 개발한 SAOT는 과학기술의 결집체다. 경기장 아래 설치된 12대의 카메라가 선수들의 신체 부위 29곳을 초당 50회 측정하고, 축구공에는 관성측정센서(IMU)를 달아 초당 500번 위치를 전송하는 등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AI가 분석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단한다. SAOT 도입으로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의 오프사이드 판정 평균 시간도 기존 70초에서 25초로 대폭 단축돼 속도감 있는 경기 진행이 가능해졌다. SAOT가 육안이 놓친 찰나의 순간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획기적 도구인 건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판정은 인간 심판의 일이다. 이번 월드컵에는 주심 36명, 부심 69명, 비디오 판독 심판 24명이 투입됐다. 피에르루이지 콜리나 FIFA 심판위원장은 SAOT에 대해 “판정 속도가 빠르고, 오류가 거의 없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라면서도 “여전히 판정을 내리는 최종 주체는 주심이라는 점에서 심판의 권위를 흔드는 게 아니라 보호하는 기술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이 하는 일엔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심판도 예외가 아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스포츠계에 회자되는 이유다. AI 심판이 사람의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씨줄날줄] 95세 신인가수/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95세 신인가수/박현갑 논설위원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신념과 사랑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확신해요. 어떤 것도 너무 늦은 건 없어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23회 라틴 그래미 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은 올해 95세인 앙헬라 알바레스가 기립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한 말이다. 그녀는 2000년부터 시작된 라틴 그래미 어워즈의 역대 최고령 수상자다. 쿠바 출신인 그녀는 10대 때부터 음악 활동을 해 왔지만 첫 공연을 91세에 하고, 앨범은 지난해 냈다. 평소 기타를 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으나 쿠바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네 자녀 뒷바라지에다 아버지가 가수 되는 걸 반대해 자신이 만든 곡을 친구나 가족들에만 들려주고는 공개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음반 제작자인 손자가 할머니가 작곡한 노래를 보고는 가족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며 공연을 마련했고 지난해 음반을 냈다. 그녀는 “95세란 나이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는 미국의 시인 새뮤얼 울먼의 시 ‘청춘’을 실천한 셈이다. 알바레스는 남편과 외동딸을 암으로 먼저 보내는 고통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스토리에 감동한 건 역경 속에서도 꿈을 이뤄 냈기 때문일 게다. 나이가 들면 보거나 듣는 게 예전 같지 않다.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런 현상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멀리만 보고, 필요한 소리만 들으라는 뜻이라고 애써 위로하면서도 돋보기를 찾고, 보청기를 귀에 꽂는다. 물건을 깜박하는 것도 시시콜콜한 기억이나 일상과 거리를 두라는 뜻이라고 스스로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지만 약을 챙기게 된다. 노익장은 육체적 건강을 챙기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배우자나 친구와의 고통스런 이별을 이겨 내며 욕할 게 있더라도 웃어넘기고, 함부로 남을 험담하지 않는 ‘불언장단’의 지혜를 깨달을 때 가능하다.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순 없지만 마음속 열정만은 잃지 말자.
  • [씨줄날줄] 김정은의 딸/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김정은의 딸/임창용 논설위원

    북한 조선중앙TV가 2020년 김정은(국무위원장)의 청소년 시절 사진을 여러 장 공개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조선인민군 원수를 지낸 현철해 국방성 총고문이 사망하자 그의 생애를 다룬 기록영화 ‘빛나는 삶의 품: 태양의 가장 가까이에서’를 방영하며 어린 김정은이 현철해와 함께했던 장면들을 소개한 것이다. 사진들은 10대 중후반의 김정은이 현철해 등 고위 간부들과 함께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10대 모습을 공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사진 공개 전까지만 해도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으로 처음 쓰러진 이듬해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은이 이미 10대 때부터 아버지의 현지지도에 동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문가들은 이미 2000년 이전 후계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판단하게 됐다. 이때부터 김정은은 이미 다른 간부들보다 김정일 가까이 서 있었고, 기록영화에서 보듯 현철해가 후계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 있기 전까지 남한 등 외부 세계에선 장남 김정남과 차남 김정철의 후계자설이 분분했지만 어린 김정은이 이미 낙점돼 있었던 것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을 시험발사한 가운데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그의 딸이 동행한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19일 전했다. 북한 공식 매체가 김정은의 딸 모습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흰색 외투를 입은 소녀가 군 간부들에게 손짓하며 지시하는 김정은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 등을 담았다. 2009년 결혼한 김정은·리설주는 2010년과 2013년, 2017년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의 키가 150㎝ 안팎으로 보이는 걸 감안하면 첫째 아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3년 북한을 방문한 미국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먼은 “딸 주애를 안았으며 리설주와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한 바 있다. 로드먼이 안아 줬던 김주애가 이번에 동행한 아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쨌든 김정은의 현지지도에 처음으로 자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 ‘김씨 세습왕조’의 후계 작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게 됐다.
  • [씨줄날줄] 그래도 월드컵/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그래도 월드컵/박록삼 논설위원

    그때 초등학생이었건, 점잖은 중년이었건, 축구를 좋아했건 아니건 중요치 않았다. 2002년을 살았던 한국 사람이라면 월드컵과 관련한 각자 기억을 품고 산다. 시청 앞 광장에서 소리 지르다 방배동 집까지 걸었다는 사람, 지각했는데도 꾸지람 대신 부장님과 하이파이브했다는 사람, 밤낮 환청처럼 ‘대~한민국’이 들려 병원 다녔다는 사람, 차였던 연인을 다시 만나 결국 결혼했다는 사람 등 얘기는 진부하기조차 하다. 줄곧 하락세이던 출산율은 이듬해 반짝이지만 상승했다.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은 과거에 없었음은 물론 아마도 이번 생에는 다시 없을 일이었다. 말 그대로 신화(神話)였다. 신화의 시대를 건너온 이로서 얘깃거리 한 토막 가지지 않을 리 없다. 한국 사회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월드컵이 열리기 보름 전인 6월 13일 의정부 동네에서 길을 걷던 중학생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그에 앞선 6월 7일에는 미군의 고압선에 감전됐던 전동록씨가 숨졌다. 일부에서 반미 시위가 있었지만 산발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 열기가 이를 가볍게 덮었다. 감격의 여운은 월드컵 이후에도 쉬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고 미국으로 유유히 떠나자 시민들은 격앙했다. 월드컵의 열기는 고스란히 또 다른 분노의 열기로 이어졌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탱크라도 구속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평화 시위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촛불집회의 시작이었다. 오는 20일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2002년 그때처럼 애먼 젊은 목숨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열리는 월드컵이기에 마냥 들떠 신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마련에 대한 관심과 심도 깊은 논의가 월드컵 열기 속에 묻혀 슬그머니 지나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도 월드컵이다. 우리에겐 기적과 신화와 같은 긍정의 기운을 품고 있다. 분열과 대립이 아닌 통합의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2002년과 같은 성적은 아니더라도 축구를 통해 또 다른 위로를 받고, 또 다른 통합의 동력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 그렇지! 저렇게 로프를 친친 감아야 멋진 모습 담을 수 있지

    그렇지! 저렇게 로프를 친친 감아야 멋진 모습 담을 수 있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프리 솔로’ 감독 지미 친의 사진집 ‘거기, 그곳에 세상 끝에 다녀오다’(There and back, 진선books, 320쪽, 2만 7000원)를 들추면 수많은 사진 중에 자신의 모습을 담은 단 두 장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들어가며’ 옆에 있는 사진이 그 하나인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캐피탄에서 ‘프리 솔로’를 촬영하며 로프를 온 몸에 친친 감고 있는 모습이다. 바위에 늘어 뜨린 로프의 양도 상당하다. 그렇구나, 저렇게 많은 로프 없이는 멋진 사진이나 화면은 얻어질 수 없는 것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지은이에 대하여’에 엘 캐피탄의 퍼시픽오션월을 오르는 그의 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다. 경쾌한 발놀림이 허공을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자는 이 사진집 속의 어떤 사진들보다 두 사진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을 양보한 참 주인공이랄까?1999 차라쿠사를 시작으로 금지된 타워 원정, K7 2001, 파타고니아, 창탕 2002, 티턴 산맥, 에베레스트 스노보드 2003, 딘 포터, 에베레스트 영화 촬영, 말리 2004, 스테프 데이비스, 에베레스트 스키 2006, 남위 180도 2008, 메루 2008, 보르네오의 거벽, 샹그릴라 원정, 요세미티 2010, 차드 2010, 디날리 산 스키, 메루 2011, 오만, 부가부 산군, 트래비스 라이스, 프리 솔로 2016, 제1세계무역센터, 스콧 슈미트, 남극대륙 2017까지 18년의 여정과 함께 했던 등반가들을 씨줄날줄로 망라했다. 멋지고 겸손하며 지구를 사랑하는 기업인의 표본을 제시한 이본 쉬나드와의 우정 어린 등반을 담은 남위 180도 2008도 그야말로 멋짐! 대폭발이었다. 중국계 이민자의 아들로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친은 20년 이상 노스페이스 소속 등반자이자 스키 선수였다. 2006년 그는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미국인으로 처음 스키 강하를 성공했고, 5년 뒤 인도 메루 봉의 화강암 벽인 샥스핀 초등에 성공했다. 그의 작품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뉴욕 타임스 매거진, 베니티 페어, 아웃사이드 매거진 등에 실렸고, 201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포토그래퍼 상으로 연결됐다. 아내 차이 바서렐리와 함께 만든 영화 ‘메루’는 2015년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받았고, 2016년 아카데미 최고의 다큐멘터리상 후보로도 올랐다. 또 둘이 힘을 합쳐 만든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는 2019년 아카데미상 최고의 다큐멘터리상과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상, 프라임타임 에미상 일곱 부문을 휩쓸었다.거친 곳에 도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모험가로서의 삶을 꿈꾸다 영원한 친구이자 멘토이며 동료인 키트 델로리에, 알렉스 호놀드를 비롯한 모험가들을 만나면서 이들의 얘기를 사진과 함께 기록하겠다는 삶의 목표를 찾아냈다. 전설적인 등반가이며 에베레스트에서 조지 맬러리의 시신을 발견한 콘래드 앵커와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여름 콘래드를 처음 만났는데 그의 K7 등반 계획을 듣던 콘래드가 끼워달라고 해 무척 놀랐다는 후일담도 들려준다. 닷새나 포탈렛지 안에 숨어 있다가 폭풍이 물러나자 눈과 얼음이 덮인 바위를 이틀 더 오르다 식량 때문에 결국 등반을 포기한 사연도 곁들인다. 디즈니 플러스로 접했던 ‘프리 솔로’는 지상 최대의 단일 화강암인 900m 높이의 엘 캐피탄을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오르는 호놀드의 모험을 담아 보는 내내 오금이 저렸는데 친의 사진들로 다시 그 위용과 기백을 접한다. 수려하고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짜릿한 사진들이 가득한데 친의 문장도 침봉들 만큼이나 날카롭고 명징하다. 도서 유통 사이트에 영어판을 검색해 봤더니 적어도 6만원은 지불해야 한다. 아! 바위와 거벽에 달라붙은 이들이 내뱉는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산에 가고 싶다!
  • [씨줄날줄] 구글의 횡포/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구글의 횡포/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기어이 밥솥을 바꿨다. 멀쩡한 밥솥을 바꾼 것은 순전히 유튜브의 강권 탓이다. 새 밥솥으로 바꾸면 밥맛이 좋아지려나. 잠시 전자제품 매장을 들렀고 한번쯤 밥솥 브랜드를 검색했던 게 내가 기억하는 내 행동의 전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유튜브에서는 밥솥 광고만 나왔다. 나중에는 온갖 영상마다 밥솥 광고가 붙었다. 그것도 특정 브랜드. 한 달을 버티다 결국 두 손 들었다. 유튜버로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외통수였다. 밥솥을 온라인 구매한 그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밥솥 광고는 사라졌다. 내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 나도 모르는데, 내 관심사와 취향을 구글이 더 잘 읽고 있다면. 그날 이후 나는 내 무의식까지 단속하려는 강박증이 생겼다. 유튜브의 운영사가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다. 구글은 이용자의 위치 정보를 무단 수집해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3억 9150만 달러(약 5160억원)를 배상하기로 했다. 지도 앱,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으로 위치 정보를 동의 없이 챙긴 구글에 미국의 40개 주가 소송을 걸었고 조사 지원 명목으로 그 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구글의 주요 수익 모델은 검색엔진 부문의 광고다. 이용자가 어디를 자주 가는지 등을 수집한 빅데이터를 광고주에게 넘겨 맞춤형 광고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2018년 AP통신이 이런 의혹을 처음 보도하면서 미국과 호주 등에서 검찰 조사는 시작됐다. 구글이 배상금을 토해 내자 “기술 의존 시대에 소비자의 역사적 승리”라는 해설이 외신을 통해 들린다. 단속과 처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국내 이용자들은 그런 선언마저도 딴 나라 이야기다. 우리도 구글의 사생활 침해 실태 조사에 착수는 했으나 지금껏 구글코리아의 답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위치 정보를 이용한 구글의 돈벌이가 우리나라에서 예외일 리는 만무한 일이다. 구글은 ‘빅브러더’(big brother)를 넘어 ‘비기스트브러더’(biggest brother)로 수식어를 바꾸어 덩치를 무한확장하는 중이다. 한국 이용자가 ‘봉’이라는 습관적인 말만 할 때가 더는 아니다. 정부가 자료 제출을 강제 요구하는 법안 마련에라도 당장 나서야 한다. 무슨 영문일까. 구글의 강매로 산 밥솥으로는 영 밥맛이 없다.
  • [씨줄날줄] 사막의 미래도시 ‘네옴’/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막의 미래도시 ‘네옴’/이순녀 논설위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별명은 ‘미스터 에브리싱’이다.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부를 양 손에 거머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17년 왕세자에 책봉된 뒤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해 온 그는 지난 9월 국가의 공식 수반인 총리에 올라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가 됐다. 추정 재산은 약 2조 달러(약 2633조원)로, 비공식 세계 1위 부자로 꼽힌다. 사우디가 ‘제2의 두바이’를 목표로 조성하는 네옴시티는 ‘미스터 에브리싱’의 야심찬 비전이 투영된 역대 최대 규모의 친환경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다. 총사업비 5000억 달러(660조원)를 들여 사우디 반도와 이집트 사이 아카바만 동쪽 사막과 산악지대에 서울 면적 44배 규모의 인공도시를 세운다. 그리스어와 아랍어로 ‘새로운 미래’라는 의미의 네옴시티에는 길이 170㎞의 직선 도시 ‘더 라인’, 지름 7㎞ 규모의 팔각형 산업단지 ‘옥사곤’, 60㎢ 규모 산악관광단지 ‘트로제나’가 들어설 예정이다. 2017년 프로젝트가 처음 공개된 이후 지난해 1월 네옴시티의 중심인 ‘더 라인’ 계획이 발표됐고, 올 3월 트로제나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었다. 1차 완공은 2025년, 최종 완공은 2030년이 목표다. 이 엄청난 도시 건설에 참여하려는 세계 기업들의 수주전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에선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지난 6월 10억 달러(1조 300억원) 규모의 ‘더 라인’ 인프라 공사를 따냈다. 한미글로벌도 용역사업을 일부 수주했다. 측면 지원에 나선 우리 정부도 바빠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건설, 모빌리티, 정보기술(IT) 분야 기업이 참여하는 ‘원팀 코리아’를 이끌고 사우디를 방문해 네옴시티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기반 확대에 힘을 보탰다. 17일 방한하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19년 이후 3년 만의 방한으로, 이날 새벽 입국해 당일 저녁 혹은 이튿날 일본으로 출국하는 짧은 일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이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심각한 경제 위기의 경고음을 뚫고 낭보가 들려오길 기대한다.
  • [씨줄날줄] 청년도약계좌 논란/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청년도약계좌 논란/안미현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때인 올해 초 ‘청년희망적금’이 첫선을 보였다. 만 19~34세 청년이 매월 50만원 한도 안에서 2년간 저금을 하면 저금액의 2~4%를 정부가 얹어 주는 상품이다. 이자에는 세금을 한 푼도 물리지 않는다. 직전 과세 기간, 그러니까 지난해 총급여가 3600만원 혹은 종합소득이 2600만원을 넘지 않아야 가입 가능하다. 290만명이 몰리면서 히트를 쳤다. 하지만 “저금을 할 형편이 안 되는 청년들은 어쩌라는 것이냐”며 ‘청년절망적금’이라는 냉소도 따라붙었다.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석열 정부는 ‘청년도약계좌’라는 것을 만들었다. 청년희망적금과 구조는 비슷하다. 청년 나이는 19~34세로 같지만 개인소득이 6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매월 40만~70만원을 저금하면 납입액의 3~6%를 정부가 지원해 준다. 만기는 5년이다. 아직 금리 등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략 월 70만원씩 5년 모으면 50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게 해 준다. 내년 6월 출시를 목표로 정부가 후속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데 논란이 여전하다. 가난한 청년들은 “그림의 떡”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청년희망적금보다 가입 기준을 완화하고 지원액도 늘렸지만 그럼에도 저소득층 36만 4910가구 가운데 월 40만원 이상 저축할 여력이 있는 청년가구는 11만 1941가구, 30.7%에 불과하다. 자고 나면 이자가 오르는 요즘 같은 고금리 시절에 만기를 2~5년 묶어 두는 게 혜택이냐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자칫 중도해지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중장년들은 전혀 다른 측면에서 볼멘소리다. “세금은 우리가 가장 많이 내는데 온갖 혜택은 청년에게 집중된다”는 역차별 성토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엊그제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수치화한 경제고통지수를 발표했다. 청년층(15~29세) 고통지수가 25.1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밥값ㆍ교통비 등 청년층 지출 비중이 높은 분야의 물가가 많이 오르고 취업난은 가중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됐다. “젊은 게 벼슬이냐”고 꼬아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내일을 책임질 청년들의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좀더 많은 청년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청년도약계좌의 설계를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청년좌절계좌라는 냉소를 또 받아서야 되겠는가.
  • [씨줄날줄] ‘나쁜’ 밀크플레이션/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나쁜’ 밀크플레이션/이순녀 논설위원

    오는 17일부터 우유값이 줄줄이 오른다. 서울우유 대표 제품인 흰 우유 1ℓ는 대형마트 기준 2710원에서 2800원 후반대, 매일유업 흰 우유 900㎖는 2610원에서 2860원으로 인상된다. 남양유업과 동원F&B도 이달 중 우유 가격을 올린다. 인상폭은 회사별로 6~9%대다. 우유업계는 낙농가가 원유 가격을 대폭 올린 탓에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변한다. 지난 3일 낙농가와 우유업계는 내년 음용유용(흰 우유) 원유값을 ℓ당 947원에서 996원으로 5.2%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2013년 ‘원유가격연동제’ 시행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원유값을 생산비, 물가상승률과 연계해 결정하는 제도다. 낙농가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도입됐지만 우유가 남아돌아도 싼값에 마실 수 없고, 소비가 줄어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우유값 인상에 주목하는 건 소비자가 장바구니에 우유를 담을지 말지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 빵, 커피음료, 아이스크림, 치즈, 버터 등 가공유제품과 식료품의 가격 상승을 연쇄적으로 촉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 현상을 일컬어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정부는 지난 9월 우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유업계가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사들일 때 음용유용 가격은 올리되 가공유에 사용되는 원유값은 내리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흰 우유는 ℓ당 947원에서 996원으로 인상되지만, 발효유ㆍ탈지분유ㆍ크림 등 유제품 원료인 가공유용 원유값은 ℓ당 800원으로 147원 낮아진다. 그런데도 우유업계는 이들 가공유제품 값마저 줄줄이 올리고 있다. 빙그레는 편의점 바나나맛 우유(240㎖)와 요플레 오리지널 가격을 각각 13.3%, 16% 인상하기로 했다. 서울우유는 지난달 체다치즈 등 40여종의 가공유제품 출고가를 20% 올렸고, 남양유업은 ‘프렌치카페’ 등 컵커피 11종 가격을 평균 7~12% 인상했다. 가공유 원유값이 내렸는데 유제품값을 올리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업체들은 물류비용 증가와 환율 상승 등을 이유로 들고 있는데 군색하다. 낙농가의 희생과 비난을 무릅쓰고 원유차등가격제를 도입한 정부를 우습게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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