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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새만금 잼버리/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새만금 잼버리/이순녀 논설위원

    1899년 남아프리카 제2차 보어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육군 장군 베이든 파월(1857~1941)은 보어군이 포위한 마을을 217일 동안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당시 보어군은 9000명, 영국 수비군은 원주민 300명을 포함해 1250명이었다. 열세인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파월은 청소년들을 모아 경비를 서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맡겼다. 어린 나이에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소년들의 용기에 큰 감명을 받은 파월은 이 경험을 토대로 1907년 8월 영국 브라운시섬에서 20명의 소년과 함께 시범 캠프를 개최했다. 116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카우트의 시작이다. 세계 스카우트들의 축제인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지난 1일부터 전북 부안군 새만금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나라, 인종, 종교, 이념을 초월해 각국 청소년들이 우애와 화합을 다지는 국제 교류의 장이다. 4년마다 개최되는 잼버리는 ‘유쾌한 잔치’, ‘즐거운 놀이’라는 뜻의 인디언 말인 ‘시바리’(Shivaree)에서 유래했다. 파월이 1920년 런던 올림피아에서 개최한 제1회 국제야영대회를 잼버리로 명명한 것이 효시가 됐다. 첫 회에는 34개국 8000명의 스카우트가 참가했다. 1991년 강원 고성 잼버리에 이어 32년 만에 개최하는 새만금 잼버리엔 158개국 4만 3821명이 몰려왔다. 이들은 오는 12일까지 이번 대회의 주제인 ‘너의 꿈을 펼쳐라’에 걸맞은 다양한 야외 활동과 문화 행사 등을 체험할 예정이다. 개최지인 새만금이 지닌 상징적 의미도 작지 않다. 바다를 메운 새만금 부지는 1991년 개발을 시작했지만 환경 문제로 4년 동안 중단됐다가 공사가 재개되는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땅을 완성했다. 행사 유치 과정도 쉽지 않았다. 경쟁국인 폴란드에 밀려 열세였지만 각계의 노력으로 2017년 세계스카우트 총회에서 극적인 결실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첫 대규모 청소년 국제행사다. 폭염 등 이상기후로 인해 어느 때보다 안전한 행사 진행이 중요하다. 벌써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니 걱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비상 대응 체계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대회 마지막 날까지 책임감, 모험심, 연대 등 스카우트의 빛나는 정신이 오롯이 펼쳐지는 새만금 잼버리를 기대한다.
  • [씨줄날줄] 다크패턴(dark pattern)/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다크패턴(dark pattern)/박현갑 논설위원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업들은 이런 행태를 수익 창출 호재로 삼는다. 이른바 ‘주목경제’다. 주목경제 시대는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도 잘만 활용하면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이점이 있으나 과소비 등 부작용도 크다. 그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목경제 시대에 주목할 만한 ‘다크패턴’(dark pattern)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다크패턴은 사업자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착각, 실수, 비합리적인 지출 등을 유도하는 상술이다. 무료 서비스를 유료로 돌리거나 정기 구독료를 올리면서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자동 계약 갱신이나 자동 결제하는 행위(숨은 갱신), 소비자에게 불리하나 사업자에겐 유리한 선택 항목을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표시해 소비자로 하여금 선택해야만 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행위(잘못된 계층구조) 등이 있다. 가이드라인은 ‘숨은 갱신’ 유형에 대해서는 사업자에게 유료 전환이나 대금 증액 7일 전까지 주요 변경 사항을 소비자에게 통지하도록 한다. ‘잘못된 계층 구조’의 경우 소비자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서 화면을 구성할 때 각 선택 사항의 크기나 모양, 색깔을 대등하게 표시할 것을 권고한다. 2021년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개 전자상거래 모바일 앱 중 97%에서 최소 1개 이상의 다크패턴이 발견됐다. 기업들이 다크패턴으로 소비자를 속인 게 오래이건만 이제서야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 나온 건 크게 아쉬운 일이다. 미국의 경우 다크패턴 상술을 법으로 규제 중이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지난 3월 인기 비디오 게임인 포트나이트의 제작사가 다크패턴을 이용해 소비자들이 의도하지 않은 게임 내 구매를 하도록 했다며 2억 4500만 달러(약 3200억원)의 환불을 명령했다. 공정위도 분야별 다크패턴 유형 공개와 최대 사용자 등을 공개해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도와야 한다. 나아가 구독 취소, 환불 버튼 의무화 등 입법 보완도 서둘러야겠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일상은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몰입은 과소비와 관계 단절 등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다크패턴 규제와 별개로 소비자도 디지털 기기와의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해 보인다.
  • [씨줄날줄] 대통령의 휴가/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의 휴가/황비웅 논설위원

    대통령의 휴가는 단순한 ‘쉼표’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를 재충전의 기회로 삼기도 했지만, 정국 구상을 가다듬거나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계기로 활용했다. 나라에 ‘내우외환’이 있을 때는 휴가를 반납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여름 휴가지로는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남대가 꼽힌다. 청남대는 ‘남쪽에 있는 청와대’라는 뜻으로 1983년에 준공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여름 휴가를 청남대에서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내며 장고 끝에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이라는 중대 발표를 했다. ‘청남대 구상’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8년 외환위기를 이유로 여름휴가를 반납했다. 이듬해부터는 3년 내리 여름휴가를 청남대에서 보냈다. 주로 서예와 산책을 하며 국정 운영 철학을 가다듬고 연설 원고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 사태, 2006년 태풍,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 등으로 임기 동안 세 번의 휴가를 포기했다. 여름휴가를 갔던 2005년에는 휴가가 끝나자마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과의 대연정을 제안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이 원하면 하야하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했지만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어린 시절 휴가를 보냈던 경남 거제의 저도를 휴가지로 골랐다. 당시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쓴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저도에는 ‘바다에 있는 청와대’라는 뜻의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가 있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해대로 공식 지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부터 8일까지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2차 개각, 광복절 특사, 한미일 정상회담 등에 대한 정국 구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여름에는 ‘방콕 휴가’를 선택했다. 서울 서초동 사저에서 휴가를 보낸 뒤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단행했던 윤 대통령이다. 이번 휴가 뒤에도 중대 구상이 나올지 주목된다.
  • [씨줄날줄] ‘열대화 시대’의 공포/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열대화 시대’의 공포/황비웅 논설위원

    어마어마한 해일이 미국 뉴욕을 강타한다. 도시가 순식간에 침수되고 빌딩들 사이로 유조선 같은 거대한 배들이 둥둥 떠다닌다. 로스앤젤레스에는 초대형 토네이도가 휘몰아치고, 일본 도쿄에는 볼링공만 한 우박이 쏟아진다. 영하 65도에서 비행 중인 헬리콥터가 연료가 급속도로 얼어 추락한다. 헬기에서 빠져나오려던 사람도 금세 얼어붙어 죽고 만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의 명장면들이다. 영화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져 해류의 흐름이 바뀌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기를 맞게 된다는 전 지구적 재앙을 그렸다. 영화에 나오는 해류는 대서양자오선역전순환류(AMOC). 카리브해 쪽 열대지방의 따뜻한 물이 북미 연안을 거쳐 북극 방면에 도달해 차가워진 뒤 다시 적도 인근으로 되돌아오는 해류 순환 현상이다. 영화가 보여 준 기후변화는 오늘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870∼2020년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 변화를 분석한 결과 AMOC가 이르면 2025년 붕괴를 시작해 2095년 이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이 해류 시스템이 붕괴하면 올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의 폭염 같은 극한기후가 일상화되고, 해수면이 높아져 미국와 유럽 등이 잠길 수 있다고 한다. 유엔이 지구온난화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올 7월의 첫 3주간은 기록 사상 지구가 가장 더웠던 시간이었다. 지금 유럽 남부의 폭염은 재앙 수준이다. 지난 16~22일 한 주간 이탈리아 로마의 낮 최고기온은 최고 41.8도를 기록했다. 그리스 로도스섬에서는 45도를 넘나드는 덥고 건조한 날씨로 산불이 일주일째 잡히지 않아 2만여명이 대피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장마철 극한호우가 끝나자마자 극한폭염이 시작돼 전국 곳곳에서 사망자와 온열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빠르게 일상이 돼 가는 극한호우와 극한폭염에 정책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에게는 당장 생사가 걸린 문제다.
  • [씨줄날줄] 교실 폰 전쟁/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교실 폰 전쟁/이순녀 논설위원

    지난해 8월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전화를 조작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져 충격을 안겼다. 교사의 제지를 무시하고 교탁 쪽 콘센트에 충전기를 연결해 막무가내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은 다른 학생의 휴대전화로 촬영돼 삽시간에 외부로 퍼져 나갔다. 이 사건은 교내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한 교권 침해와 학습 방해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공분을 샀다. 초중고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은 오랜 논란거리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교권 침해 실태가 재조명되면서 휴대전화 딜레마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사생활 보호 조항 때문에 수업 중에 학생이 휴대전화를 봐도 제재를 못 한다”는 현장의 토로가 거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18년 전국 초중등 교사 16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선 97%가 학생들의 자유로운 휴대전화 사용을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을 방해하고 적절한 생활지도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 제한을 기본권 침해로 보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학교의 휴대전화 강제 수거, 쉬는 시간 휴대전화 사용 금지, 고교 기숙사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 등에 대해 학생의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잇따라 판단했다. 이런 가운데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를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엊그제 냈다. 교실 내 혼란과 학습 부진, 사이버 괴롭힘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도한 휴대전화 사용이 교육 성과를 줄이고 휴대전화 등의 화면에 장기간 노출되면 정서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도 강조했다. 전 세계 200개 교육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6개국 중 1개국꼴로 법이나 지침을 통해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디지털 기술의 사용은 향상된 학습 경험, 학생과 교사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불행한 교사들이 더 나오지 않도록 교내 휴대전화 사용 논의에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 [씨줄날줄] 기대수명 83.6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기대수명 83.6년/황수정 수석논설위원

    노인 건강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누군가 물었다.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몇 살쯤이겠냐는 것이다. 조각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다 85일째 1500파운드나 되는 상어를 만나 사투를 벌였던 남자. 소설이 나올 당시 남성의 기대수명이 50대 초반이었다는 힌트를 인터넷에서 찾았다. 50대 노인이라니. 한바탕 웃었다. 그저께는 월북 작가 상허 이태준의 수필집을 들추다 또 한참 시선이 멈췄다. 몇 번을 읽으면서도 무심히 넘겼던 문장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천명(天命)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고담(枯淡)의 노경(老境) 속에서 오래 살아 보고 싶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오래 살고 싶다던 작가는 1956년 겨우 쉰 살을 넘기고 떠났다. 상허가 이 시대를 살았더라면. 보석 같은 ‘무서록’이 그의 말대로 노경 속에서 몇 권은 더 빚어졌겠지. 일상 곳곳에서 전에 없던 생각들에 자꾸 발이 걸린다. 나이 탓이다. 한국인 기대수명이 83.6년. 그제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서는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OECD 38개 회원국 중 일본, 스위스 다음으로 높았다. 기대수명은 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연수. 이번 통계는 2021년 기준이니 그해 태어난 우리나라 아이의 평균수명이 83.6년이라는 얘기다. OECD 평균 기대수명은 몇 년간 계속 뒷걸음질쳤다. 2019년 81년이던 것이 2020년 80.6년, 2021년 80.3년으로 줄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꾸준히 상승세다. 세계적 저출산 국가인 우리는 이래저래 지구촌 인구학자들에게는 ‘연구 대상’일 만하다. 예방과 치료로 질병을 막을 수 있는 사망을 뜻하는 ‘회피가능사망률’도 우리는 눈에 띄게 낮았다. 인구 10만 명당 142명으로 OECD 평균(239.1명)과는 차이가 크다. 이렇게 낮은 사망률은 그만큼 의료서비스 수준이 높다는 방증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3일만 앓다 죽으면(死) 행복. 이런 뜻의 ‘998834’를 신조어로 내놓고는 모두가 유쾌해하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아련하고 오래된 농담이 됐다. 55~79세 고령층의 1인당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75만원. 이 돈마저 못 받는 이가 절반. 그제 나온 통계청 조사치다.
  • [씨줄날줄] 파랑새와 X/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파랑새와 X/안미현 수석논설위원

    미국의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 갭(GAP)은 2010년 20년 넘게 쓰던 ‘블루 박스’ 로고에 손을 댔다. 파란색 네모 상자 안에 GAP이 들어가 있는 기존 로고를 해체한 것이다. 글자는 굵은 고딕으로 바꾸고 파란 상자는 따로 떼어 오른쪽 위에 배치했다. 소비자들의 혹평이 쏟아졌다. 결국 새 로고는 딱 일주일 쓰이고 사실상 예전 로고로 돌아갔다. 세계 1위 식품기업인 하인즈는 2000년대 초 깊은 고민에 빠졌다. 70%이던 케첩 시장점유율이 4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30년간 붉은 케첩을 만들어 오던 하인즈는 새로운 시장을 잡겠다며 녹색과 보라색 케첩을 출시했다. 하지만 초록색은 상한 음식 이미지를, 보라색은 식욕 감소를 불러온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위기 돌파용 묘수가 악수(惡手)로 변한 순간이었다. 소셜미디어(SNS) 트위터가 상징 로고인 ‘파랑새’를 버렸다. 대신 검은 바탕에 흰색 알파벳 ‘X’를 넣은 새 로고를 지난 24일(현지시간)부터 쓰기 시작했다. ‘래리’라는 이름의 파랑새는 2006년 트위터 설립 때부터 함께했다. 트위터(twitter)의 원래 뜻도 ‘짹짹거리다’, ‘지저귀다’이다.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는 올해 4월 시바견의 입을 빌려 “파랑새는 옛날 사진”이라고 말하면서 일찌감치 로고 변경을 예고했다. 트위터 측은 “X는 오디오, 비디오, 메시징, 결제 및 금융을 중심으로 한 무제한 상호 작용의 미래 상태”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메시지 플랫폼에서 벗어나 지급 결제, 차량 호출, 동영상, 쇼핑 등 다양한 기능의 ‘슈퍼앱’으로 도약하겠다는 머스크의 야욕이 엿보인다. 트위터 대항마로 급부상한 메타 ‘스레드’의 돌풍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X에는 연결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하지만 ‘기업 셋푸쿠’(기업 자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핵심 비즈니스와 고객 마인드에 대한 이해 부족이 브랜드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X는 머스크가 만든 법인(X Corp)에도, 우주개발사업(스페이스X)에도 들어가 있다. 머스크의 유별난 X 사랑은 고객, 나아가 미래 시장과의 ‘연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갭에 이어 또 하나의 브랜드 마케팅 실패 사례로 남게 될까.
  • [씨줄날줄] 메아 쿨파/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메아 쿨파/이동구 논설위원

    불교와 유교는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를 강조하며 평소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본인이나 가족, 심지어 후손들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복(福)이 뒤따른다고 본다. 반면 유교에서는 삼라만상의 기운 또한 흥망성쇠가 있는데 인간의 운(運)이나 복 또한 기운이 성할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천도론이나 풍수지리, 이지함의 토정비결 등을 비롯해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가 이에 기반한 이론이다. 현대인들이 여전히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는 연원이기도 하다. 21세기는 행운도 불운도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리처드 와이즈먼이라는 심리학자는 행운의 원인과 결과 또한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운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이나 학습을 통해 사고와 태도, 행동 등을 바꾸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기에 따라 행운을 얻을 수도, 불행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이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나 고해성사 때 ‘메아 쿨파’(mea culpa)라는 말을 자주 되된다. ‘내 탓이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사과한다’, ‘반성한다’는 의미의 시사용어로도 자주 회자된다. 최근 서울 신림동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흉기난동 피의자 조모(33)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 장애인 ‘사이코패스’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떠올린다면 조씨는 불행한 사람이자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게 일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팔자에 무슨~, 내 복에 무슨~”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조씨가 ‘모든 게 내 잘못, 내 탓이오’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면 그런 끔찍한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듯한데, 안타깝다.
  • [씨줄날줄] 혁신의 역행자/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혁신의 역행자/황비웅 논설위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43년 전인 1980년 ‘제3의 물결’이라는 저서에서 인류 역사를 세 가지 유형의 물결(Wave)로 설명했다. ‘제1의 물결’은 인류가 오랜 수렵·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농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한 때를 말한다. 1만년을 이어 갔다. ‘제2의 물결’은 증기기관과 전기의 발명으로 탄생한 산업혁명의 시대로, 300년 동안 지속됐다. 그는 향후 과학기술 발전이 이끄는 정보혁명의 시대인 ‘제3의 물결’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고 이는 적중했다. 현재는 기술들이 융합해 발전해 나가는 ‘제4의 물결’로 진행 중이다. 제3의 물결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다. 제3의 물결이 제2의 물결을 밀어내기 시작한 지 20~3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이 학습을 통해 인간을 대체할 것을 우려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제4의 물결)를 맞았다. 토플러는 새로운 물결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키려는 진영과 나아가려는 진영 간의 충돌이 있지만, 새로운 물결로의 이행 자체는 막을 수 없다고 봤다. 획일성을 강조하는 제2의 물결에 안주하려는 개인이나 정부는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6·25 전쟁의 상흔을 딛고 발 빠르게 제2의 물결에 올라탄 대한민국은 제3의 물결에서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음 물결로 나아가는 중대기로에 선 정부의 속도는 우려스럽다. 기득권 세력의 손을 들어 주며 혁신에 역행하는 사례가 종종 보여서다. 일례로 정부는 원격의료 활성화를 목표하고 있지만,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국내 관련 플랫폼 업체 4곳이 사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했다. 의료계의 반대로 진료 대상이 재진 환자로 국한된 데다 처방약 배달도 막아 이용 건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123명에 대한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무더기 징계 처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법무부의 징계 심의가 지난 20일 다섯 시간가량 진행되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연기됐다. 법무부가 거대 기득권 집단인 변협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이야말로 제1·2·3의 물결을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했던 토플러가 살아 있다면 지금 무슨 말을 할까 싶다.
  • [씨줄날줄] 증권거래소 ‘경쟁’ 시대/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증권거래소 ‘경쟁’ 시대/안미현 수석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컴퓨터를 활용해 고객의 주식 주문을 처리해 주는 업체(ECN)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미국 정부는 아예 법을 만들어 대체거래소(ATS)를 정식 허용했다. 2005년 캔자스에서 설립된 바츠(BATs)가 그중 하나로 파격적인 수수료를 앞세워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의 과점 체제를 허물 정도로 급성장했다. 바츠는 2008년 정규 거래소로 ‘승격’한 뒤 2016년 시카고옵션거래소에 인수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2001년 한국ECN증권이 장외 전자거래 시장을 노리고 야심 차게 출범했으나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오늘날 글로벌 대체거래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차이엑스(Chi-X)가 등장했다. 증시가 호황이거나 한국거래소의 방만 경영이 화두에 오를 때면 우리나라에서도 으레 제2 거래소 필요성이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좀체 실현되지 않았다. 엊그제 ‘넥스트레이드’가 금융 당국의 대체거래소 예비인가를 얻어 냈다. 넥스트레이드는 금융투자협회와 미래에셋, 삼성, KB 등 7개 대형 증권사가 함께 만든 거래소다. 계획대로 정식 인가를 받아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에 문을 열게 되면 한국거래소(1956년 설립)의 ‘70년 독점 체제’가 무너지게 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에는 대체거래소가 이미 62개(2021년 기준), 유럽은 142개나 있다. 경쟁이 붙으면 주식을 사고팔 때 거래소가 떼 가는 수수료가 떨어질 수 있어 고객에게 유리하다. 넥스트레이드는 24시간 거래 서비스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야간 거래인 ‘오버나이트’는 물론 익명으로 대량 매수하는 ‘다크풀’ 기능도 있다. 국내 대체거래소는 상장 심사는 할 수 없고, 상장주식과 주식예탁증서(DR) 거래만 할 수 있다. 그래도 호가 쪼개기, 체결시간 단축 등의 기대감이 크다. 본격 경쟁을 유도하려면 비상장주식과 채권 거래 등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개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자산증식 터전이 하나 더 생겼다”는 환영과 “사설 경마장이 더 생긴 것뿐”이라는 냉소가 엇갈린다. 대체거래소가 발달한 외국서도 지나친 영리 추구 논란이 적지 않다. 한국판 차이엑스가 될지, ECN 전철을 밟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씨줄날줄] 황제주/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황제주/황비웅 논설위원

    지난해 장안의 화제였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뉴데이터 테크놀로지’라는 가상의 기업이 등장한다. 드라마 주인공인 진도준(송중기 역)은 고모인 진화영(김신록 역)이 소유한 순양유통을 손에 넣기 위해 뉴데이터 테크놀로지 주식을 미끼로 한 계략을 짠다. 진도준은 뉴데이터 테크놀로지 주가가 급등할 거라는 정보를 흘려 진화영이 14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도록 유도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는 결국 폭락하고 만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뉴데이터 테크놀로지의 모티브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이 올랐다가 하루아침에 폭락한 ‘새롬기술’이다. 새롬기술은 세계 최초의 무료 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 출시로 화제가 됐다. 1999년 8월 공모가 2300원으로 코스닥에 상장된 뒤 그해 10월 1890원까지 떨어졌다가 이듬해인 2000년 3월 28만 2000원을 기록, 6개월 만에 150배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가총액은 한때 금호, 롯데, 동아, 코오롱그룹을 합친 것보다 많았으며 재계 서열 7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닷컴버블’은 오래가지 못하고 붕괴됐다. 당시 700포인트 수준이었던 코스닥은 2000년 3월 2834포인트로 4배까지 올랐다가 2000년 말 525포인트로 무려 81.5%나 폭락했다. 새롬기술도 폭락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주가 하락이라는 정보를 미리 알고 매도한 경영진의 부정까지 드러나면서 30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5000원대로 곤두박질쳤다. 2004년 새롬기술은 솔본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주가는 19일 현재 4525원이다. 최근 에코프로 주가가 치솟으면서 개미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에코프로는 지난 18일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100만원을 훌쩍 넘어 ‘황제주’(주가 100만원이 넘는 대형주)에 등극했다. 올해 상승률만 무려 985%에 달한다. 2007년 9월 7일 동일철강이 110만 2800원까지 올라 황제주에 등극한 이후 16년 만이다. 우선주를 제외하고는 코스닥 종목 사상 다섯 번째라고 한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다. 증권사에서도 목표주가에 대한 의견 내놓기를 포기했다는 에코프로를 보면서 새롬기술이 떠오르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 [씨줄날줄] 공무원 골퍼/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공무원 골퍼/이동구 논설위원

    ‘천안 상록골프장’은 1997년 3월 공무원과 그 가족들을 위한 시설로 개장됐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그곳에서 골프를 즐길 수가 없었다. 당시엔 ‘공무원 골퍼’(골프를 즐기는 공무원)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 골프 해금’이 거론됐으나 가시화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때다. 2016년 4월 박 전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국내에서 얼마든지 (골프를) 칠 수 있는데 눈총 때문에 전부 해외로 나가니까 내수만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느냐.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야당인 국민의당도 맞장구를 쳤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공직자 골프 금지령은 공직기강을 세우기 위한 선언적 조치로 실효성이 없었다”며 “골프는 공직자들의 건전한 양식과 기강에 맡겨 둘 문제”라고 논평했다. 유력 정치인들은 골프를 자유롭게 즐겼지만 각종 구설수는 피하지 못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2000년 7월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본 경기 용인에서 골프를 즐기다 구설에 올랐다. 이해찬 전 총리는 2006년 3·1절이자 철도파업 등으로 사회가 뒤숭숭한 시기에 교육부 차관과 골프를 즐긴 게 알려져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 밖에도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인 군부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회기중 ‘해외골프’로 물의를 빚는 등 유력 정치인들의 골프는 심심찮게 논란을 이어 가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 대열에 올랐다. 지난 15일 오전 골프를 즐기다 비가 많이 내리자 1시간여 만에 중단했다. 경북 예천 등 전국 각지에서 폭우 피해가 속출한 날이다. 홍 시장은 “대구는 다행히 수해 피해가 없었다”며 “주말에 테니스를 치면 되고 골프를 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공직사회에 있느냐”고 했다. 지난 5월 ‘제1회 공무원 골프대회’를 열면서도 “시대가 달라졌고 세상이 달라졌다”고 일갈했다. 홍 시장은 정치인이자 공직자다. 골프에 대한 견해가 틀리지 않다고 해도 대구시민들도 폭우 피해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지 묻고 싶다. “인명 피해가 난 날이라는 게 문제”라는 안철수 의원의 지적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 [씨줄날줄] 인구 감소 1위 지자체/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구 감소 1위 지자체/박현갑 논설위원

    “지난해 서울에선 물난리 며칠 만에 수조원의 투자안이 나왔다. 지방이라면 가능했겠느냐.” 이정현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지방소멸 포럼에서 한 말이다. 헌법상 국민이라면 지역에 관계없이 같은 행복추구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한 말이다. 당시 서울에선 역대급 호우로 5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되는 인명 피해에다 3000여 가구가 물에 잠기며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000만 도시 서울시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10년간 총 3조원 투자로 수해재난에서 안전한 서울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울은 1000만 도시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인구는 주민등록 기준으로 2012년 1019만 5318명에서 2016년 992만 8372명을 기록하며 처음 10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그 뒤로도 하향세를 이어 가 지난해엔 942만 8372명으로 줄었다. 최근 10년간 17개 지자체 인구증감률에서도 서울은 -7.5%로 감소 1위 지자체다. 이어 부산(-6.2%), 대구(-5.7%) 순이다. 반면 경기도와 인천은 같은 기간 인구가 각각 12.4%와 4.3% 늘었다. 비수도권 위기와 동전의 앞뒤 관계인 수도권 집중의 실상은 서울 집중이 아닌 경기도나 인천으로의 집중인 셈이다. 서울 인구 감소 요인으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탈서울’ 등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집값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일자리가 있는 서울에서 경제활동은 하되 내 집 마련이 힘든 서울이 아닌 경기나 인천 등지에서 살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가구주가 임금근로자인 가구의 주택 소유율을 보면 서울은 47.9%로 17개 지자체 중 가장 낮다. 서울은 내 집 마련도 힘들고 장마철 물난리 걱정에 인구도 줄지만 여전히 블랙홀이다.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야심차게 지역균형을 추구하나 역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화가 여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 인구 감소가 자발적 선택의 결과인지, 주거비 부담에 따른 비자발적 요인 때문인지는 따져 봐야 겠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지방에서도 찾을 수 있도록 한다면 균형발전의 시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씨줄날줄] 할리우드 파업/황비웅 논설위원

    [씨줄날줄] 할리우드 파업/황비웅 논설위원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5’의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의 젊은 시절 얼굴이 인공지능(AI) 디에이징(de-aging) 기술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1942년생, 올해 81세인 포드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선 은퇴하지만 영화배우로서는 은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AI 기술을 활용해 죽을 때까지 배우로 활동할 수도 있다는 다짐이다. 61세인 톰 크루즈도 최근 ‘미션 임파서블7’ 시사회에서 “해리슨 포드의 나이가 될 때까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며 존경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AI 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할리우드 산업 종사자들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의 한 기업이 치매 투병으로 은퇴한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허락 없이 딥페이크 광고를 만든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를 합성한 용어로, AI를 기반으로 얼굴 생김새나 음성 등을 실제처럼 조작한 영상 등을 말한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면 영화 제작사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지만, 배우들이나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지난 1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오펜하이머’ 시사회에선 배우 킬리언 머피,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가 사진만 찍고 시사회장을 떠나는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 5월 할리우드 작가조합 파업에 이어 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이 지난 14일(현지시간)부터 일제히 시작한 동시 파업 선언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메릴 스트리프, 제니퍼 로런스, 벤 스틸러, 마고 로비 등 유명 배우 300여명도 동참했다. 배우·방송인노동조합은 AI와 컴퓨터로 만든 얼굴·음성으로 배우를 대체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작가·배우조합의 동시 파업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배우조합장을 지내던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40억 달러(약 5조원)가 넘는 피해를 예상하고 있다. ‘AI 파업’으로 불리는 이번 사태는 일자리의 앞날뿐 아니라 인간의 창작 활동이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다툰다는 점에서 향배가 주목된다. AI의 활용과 규제를 둘러싼 논란도 더욱 거세질 듯하다.
  • [씨줄날줄] 인류세(人類世)/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인류세(人類世)/이순녀 논설위원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호수는 면적 2.4㏊(약 7260평), 수심 24m인 작고 깊은 호수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안에 있어 멸종위기 동식물과 자연 경관을 즐기는 데 그만인 데다 고고학 발굴의 보고이기도 하다. 물의 순환이 표면에서만 일어나 윗물과 아랫물이 섞이지 않고, 밑바닥이 온통 진흙층이어서 곤충 등 생물이 살지 못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마치 나이테가 생기는 것처럼 퇴적물이 고스란히 쌓인 덕분이다. 1970년대 초 과학자들은 호수 퇴적물에서 꽃가루를 발견한 뒤 주변 땅을 발굴해 약 750년 전 살았던 원주민의 유적을 찾았다. 크로퍼드호수가 지구 역사에서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 지역에 뽑혔다. 지질학자 35명으로 구성된 인류세(人類世) 실무그룹(AWG)은 인류가 지구 환경을 바꿔 놓은 시대를 뜻하는 인류세 표본지로 후보지 12곳 가운데 투표를 통해 크로퍼드호수를 지난 11일(현지시간) 선정했다. 이들은 호수의 지층에서 채취된 퇴적물에 플루토늄과 같은 핵폭탄 실험의 흔적이 발견돼 인류세의 시작 지점을 정확히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국제층서위원회(ICS)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에서 60% 이상의 찬성을 얻고, 다시 ICS에서 60% 이상의 찬성표를 받으면 비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인류세 최종 결정은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지질학회총회에서 나올 예정이다. 인류세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이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이 현재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제안한 뒤 과학을 넘어 인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시간은 300만년 정도다. 최초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 이후 오랜 진화를 거쳐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나타난 것이 4만년 전이다. 현세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이다.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부터 1만 1700년간 이어져 왔다. 1년 뒤 우리가 사는 지질시대가 ‘인류세 크로퍼드절’로 바뀔 수 있을까. 1950년대를 시작점으로 삼는 인류세 역사가 너무 짧아 공식화하기에 이르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만큼 결과를 단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 [씨줄날줄] 4불 사회/안미현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4불 사회/안미현 수석논설위원

    2000년대 초 대만에서는 ‘4불’(四不, 不婚·不生·不養·不活)이란 말이 유행했다. 청년들이 결혼, 출생, 양육, 나아가 삶을 포기하는 세태를 빗댄 말이다. 최근 중국에서도 ‘4불 청년’이 급속히 늘고 있다. ‘양육’과 ‘삶’ 대신에 ‘연애’와 ‘내 집 마련’이 들어간 점만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의 ‘N포족’과도 일맥상통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족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접으면서 5포족이 되더니 이제는 포기한 게 너무 많아 셀 수조차 없다는 N포족이 됐다. 중국의 4불족과 한국의 N포족은 닮은 점이 너무 많아 오싹할 정도다. 지난해 중국의 혼인 건수는 683만건으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후 최저 기록을 썼다. 우리나라도 엊그제 25~49세 남성 중에 한 번도 결혼 안 한 사람이 2020년 기준 47.1%라는 통계가 나와 충격을 줬다. 2명 중 한 명꼴이다. 한국의 N포족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늘었다면 중국의 4불족은 코로나19 영향이 가장 크다. 예상보다 경제 회복이 더뎌지면서 중국의 청년(16~24세) 실업률은 지난 5월 20.8%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유행 전인 2018년 10.1%의 두 배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그냥 쉬었다’는 20대가 36만명이나 된다. 이웃 일본에도 모든 것을 체념한 ‘사토리 세대’가 있다. 혹자는 N포족이나 4불족은 어쩔 수 없는 포기인 반면 사토리 세대는 자발적이라는 데서 차이를 찾기도 한다. 중국 4불족에는 저항의 기류도 있다. 중국 온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무릎 꿇기는 싫고 일어설 수는 없으니 드러누울밖에”다.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납작하게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탕핑(躺平)족은 여기서 유래했다. 최근 급증세를 보이는 탕핑족은 자신들을 부추에 비유하며 “누워 있는 부추는 (중국 공산당의 상징인 낫이) 베지 못한다”고 서로를 독려한다. 한때 중국 공산당의 든든한 지지세력이었던 주링허우·링링허우(1990년대~2000년대 출생자)가 되레 체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N포족의 양산과 함께 불만·불신·불안·불행의 ‘4불 사회’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퍼진 현상과 중첩된다. 청년들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가. 한중일의 미래를 가를 지점은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 [씨줄날줄] 복달임/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복달임/이동구 논설위원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것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는 인간 본성이다. 특히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뱀을 비롯해 개구리, 거미 등 온갖 동식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해산물을 날로 먹지 않는 서양인들이지만 생굴만은 아주 좋아한다. 건강과 젊음, 특히 정력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조차 삼시 세끼 굴을 빠뜨리지 않았고, 서구 최고의 플레이보이로 꼽히는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생굴을 50개씩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름다운 피부 유지를 위해 굴을 애용했다고 한다. 태국 음식 ‘똠얌꿍’ 또한 보양식으로 통한다. 레몬그라스, 라임잎 등 여러 가지 향신료를 넣고 매콤하게 끓인 새우 수프가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를 복돋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충하초와 해삼 등 갖가지 고급 식재료 30여 가지를 넣은 중국의 불도장, 일본의 장어 요리 우나기돈 등도 잘 알려진 보양식이다. 보양식을 즐기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는 먹는 시기도 중요하게 여긴다. 제철 식재료 또는 효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음식이 몸에 좋다고 믿는다. 인삼, 녹용 등은 겨울철에, 추어탕ㆍ삼계탕 등 보양식은 기운이 약해지는 여름철에 주로 먹는다. 음식이 몸을 만들고, 음식과 약을 동일시하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의 사상이 녹아 있다. 1년 중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릴 때에는 뜨거운 보양식으로 기운을 보충해 왔다. 하지가 지난 셋째 경일(庚日)인 초복(初伏), 열흘 뒤의 중복(中伏), 20일 뒤인 말복(末伏) 때의 더위를 ‘삼복(三伏)더위’라고 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복날에는 소고기나 개고기 등을 먹으며 시원한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거나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물리쳤는데, 이를 ‘복달임’ 또는 ‘복놀이’라고 했다. 개장국, 팥죽 등이 복달임 대표 음식이었으나 이제는 삼계탕이 대세다. 어제가 초복이었다. 전국의 삼계탕집이 북새통을 이룬 것은 예년과 다를 바 없었지만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20% 가까이 올라 버렸다. 2만원짜리 삼계탕에 놀라지 않았다면 복달임으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의 효과는 충분했으리라.
  • [씨줄날줄] 무인 편의점 공화국/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무인 편의점 공화국/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산해진미 도시락, 삼각김밥의 용도, 원플러스원, 네 캔에 만원…. 이런 용어들에 자연스럽게 떠올려지고 있을 곳, 편의점이다. 그런데 이들은 100만부 넘게 팔린 김호연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목차다. 서울 주택가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노숙인 출신 주인공이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애환이 담긴 사연을 전하는 소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15개국에까지 판권이 팔렸다. 엇비슷한 유형의 소설들이 줄줄이 출간되면서 문단에서는 ‘K 힐링소설’이라는 장르가 생겼을 정도다. ‘편의점 공화국’에 걸맞게 편의점을 정조준한 정책도 심심찮게 갑론을박을 낳고 있다. 편의점 창문의 반투명 시트지를 놓고 정부와 편의점 업계는 지금도 실랑이를 벌인다. 담배 광고가 밖에서 보이지 않게 반투명 시트지를 붙이라는 정부, 심야에 편의점 종사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반발하는 업계. 시트지를 떼되 금연광고물도 함께 붙이는 쪽으로 정부가 최근 결론을 냈다. 담배 광고와 금연 광고가 나란히 붙는 그야말로 ‘불편한 편의점’인 셈이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은 ‘24시간 소비처’ 이상의 기능을 한다. 청년 아르바이트생들의 듬직한 수입원이기도 하고 인적 없는 골목에서는 파출소 역할도 톡톡히 한다. 한데 사회적 순기능이 적지 않았던 편의점들이 빠르게 무인 점포로 바뀌고 있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셀프 계산대를 설치한 무인 점포는 2019년 208개였던 것이 4년 새 거의 18배나 급증했다. 세븐일레븐, 이마트24, CU, GS25 등 주요 편의점 4개사가 올 상반기 말 현재 전국에 운영하는 무인 점포 수는 3500여곳이다. 야간 등 특정 시간대에만 무인으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매장’도 급속히 느는 추세다. 무인 편의점주들은 도난 사고 몸살을 앓으면서도 “직원 고용 부담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반응이다. 요란한 경보음에 10초쯤 아예 출입문이 잠기는 살풍경 편의점도 곳곳에 등장한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가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 가는 중이다. 현재 노사가 요구하는 내년 최저임금은 각각 1만 2000원과 9700원. 2300원의 간극을 줄이지 못하면 무인 점포의 가속화는 또 시간문제다.
  • [씨줄날줄] AI 로봇 기자회견/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AI 로봇 기자회견/박현갑 논설위원

    인공지능(AI) 로봇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로봇이 사람보다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충격적 발언도 나왔다. 지난 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산하의 국제전기통신연합 주최로 열린 ‘선(善)을 위한 인공지능’이라는 행사의 기자회견장에 사람처럼 생긴 9개의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신 버전의 생성형 AI를 탑재한 로봇들로 자신의 창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AI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간호사 복장 차림의 의료용 로봇 ‘그레이스’는 일자리 대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인간과 함께 보조와 지원을 제공하며 일자리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 로봇 ‘에이다’는 AI 규제 강화를 촉구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을 상기시키며 “일부 종류의 AI는 규제돼야 한다는 게 AI 분야 많은 저명 인사의 의견”이라면서 “나도 동의한다”고 했다. 놀라운 주장도 나왔다. 세계 최초의 로봇 시민인 ‘소피아’는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의사결정을 흐리는 편견이나 감정이 없고 많은 데이터를 빨리 처리할 수 있어 인간 지도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효율성과 효과를 끌어낼 잠재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소피아의 창조자는 놀란 표정을 한 채 “그런 편견은 데이터에서 제외한다. 인간과 AI가 협력할 때 최상의 결정을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고 그는 이에 동의했다. 로봇들은 마네킹 같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에다 사람의 목소리 인식 불량으로 느린 대답 등 보완할 점도 많았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AI 등장으로 전환기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AI는 1950년대 그 개념이 나온 이래 딥러닝의 위력을 알린 2016년 알파고와 지난해 챗GPT에 이르기까지 점차 우리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나 오작동에 따른 윤리 문제 등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이를 규제하고 기후위기 대응 등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오는 18일 사상 처음으로 AI를 주제로 한 공개 회의를 갖는다. 인간 친화적이며 안전한 인공지능 시대를 여는 해법 마련을 기대한다.
  • [씨줄날줄] 상습 탈주범/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상습 탈주범/이순녀 논설위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탈주에 성공해 자유를 되찾는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빠삐용’이나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인 ‘쇼생크 탈출’은 탈옥 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모함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형을 구하려고 일부러 죄를 지어 감옥에 간 남자의 탈출기인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시즌 5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의 억울한 처지에 감정이입한 관객들은 그가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교도소를 벗어남으로써 정의가 구현되길 빈다. 현실에서도 탈옥 사건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온다. 주인공이 누명을 쓴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라 진짜 범죄자라는 점이 영화와는 다르다.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탈옥수는 신창원이다.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신창원은 1997년 1월 감방 화장실을 통해 탈출했다. 작은 실톱날 조각으로 하루 20분씩 금을 그어 두 달 만에 쇠창살 2개를 잘라 냈다. 1999년 7월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붙잡힐 때까지 무려 2년 6개월 동안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144차례 강·절도 행각을 벌여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8년 10월 영등포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지강헌 등 12명이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갑을 푼 뒤 호송버스를 탈취해 서울에서 강도 행각과 인질극을 벌인 사건도 충격이었다. 경찰에 포위되자 지강헌 등 2명은 자살했고 나머지는 사살되거나 자수했는데 이들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다. ‘라임 펀드 사태’의 주범으로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검찰청이나 법정에 나갈 때 탈주하려고 모의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도주 계획을 도운 혐의로 지난 5일 김씨 누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의 탈주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2019년 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5개월간 도주했다가 붙잡혔고, 보석을 허가받아 불구속 재판을 받던 2021년 11월엔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다가 48일 만에 검거됐다. 이쯤 되면 상습적 탈주다. 탈옥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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