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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義士와 將軍/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삶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고 재는 큰 틀로 사람들은 흔히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들춰 세운다. 대의가 큰 차원의 도리나 본분이라면, 명분은 대의를 향한 협의의 구실이고 이유다.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유교식의 대의가 있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식의 처세 격의 치레와 명분이 있겠다. 대의와 명분은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닌 맞물린 주종과 융합의 명제가 아닐까. 군(軍)에서 전략과 전술이 잘 결합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널리 회자되어온 의사(義士), 여기에 무인·군인을 부각시킨 장군(將軍) 호칭의 맞섬이다. 안 의사 자신이 ‘의군 참모중장’이라 칭했고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 본분’이라는 글을 남겼다며 내세우는 ‘장군 밀어붙이기’도 명분은 있을 터. 국제적으로 안 의사의 의거를 합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장군 호칭이 합당하단다. ‘나라를 침탈한 원흉을 쏘았다.’는 의거의 근저엔 어두운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과 평화정신이라는 근본 대의가 있다는 의사론. 따져보면 나라와 민족 없는 장군이 어디 있을까. 뜬금없는 대의명분 싸움이 부질없다. 협심·협량의 다툼 속에 던져진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화두가 가슴을 친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 학술회의에서 꺼낸 ‘안중근 동양평화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근본은 동양평화에 있고, 그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 구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침략 원흉을 쓰러뜨린 ‘장군 안중근’과 ‘의사 안중근’을 넘어선 세계평화의 실천적 의인으로 안중근을 보라는 대국적 외침이다. 그것도 일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대의명분 다툼에 매달린 우물 안 개구리 격 협심이 부끄럽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선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보훈처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등 2000명이 모여 안 의사 행적 낭독과 추모공연, 추념사를 한다는데. 모처럼 마련된 뜻깊은 자리의 언저리에서 행여 장군입네 의사입네 운운의 다툼은 없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순국 100주년에 맞춰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에 적극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이 어디 안중근을 그저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시자는 차원에 머물까. 의사 안중근도 좋고, 장군 안중근도 좋을 것이다. 이제 안중근을 제대로 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호메고로시/이춘규 논설위원

    일본인은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말로 드러내는 마음)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이 이중적이기 때문에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낭패할 수 있다는 경구다. 심지어 실제 이상으로 칭찬해 상대가 방심,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한다는 호메고로시라는 말도 있다. 칭찬하다는 의미의 ‘호메루’와 죽인다는 뜻의 ‘고로스’를 합성한 명사다. 모두 일본인들의 말은 끝까지 새겨들어야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인을 자주 만나는 한국사람들은 가끔 호메고로시 느낌을 얘기하곤 하지만 혼네 등을 과잉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들의 생존전략에서 봐야 불필요한 낭패를 면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인은 상대를 칭찬하거나 좋은 말은 하지만 욕하거나 깎아내리는 건 거의 피한다. 상대의 마음을 열어 장점을 취하려는 실용적인 태도다. 그들의 언행에 신중히 대응해야 할 이유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 전까지 300개 가까운 번(藩)의 번주들이 통치하는 분권사회였다. 사법권도 독립적이었다. 자연자원이 부족한 번들은 경쟁하고 협력했다. 상대 번을 칭찬, 정보를 얻어내야 생존에 유리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선진 문물을 취하기 위해 외국인을 실제 이상으로 칭찬하는 경우가 많아 호메고로시로 비쳐졌다는 해석도 있다. 일본인은 엄살이 심하다고도 한다. 일본은 큰 잘못을 인정하거나 발각되면 할복할 수밖에 없는 문화였다. 침략전쟁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것이 이런 문화적 배경으로도 설명된다. 영화 나라야마부시코에는 마을에 해악을 끼친 일가족 전원을 마을사람들이 생매장해 버리는 끔찍한 장면도 있다. 약점은 들켜서도 안 되는 이유다. 약점은 철저히 감추며 상대는 치켜세워 마음을 놓게 하는 것이 엄살로 비칠 수도 있다. 역시 엄살이 아니고 생존전략이란 의미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일본 ‘엄살론’을 거론해 화제다. 최 장관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산하에 한국실 설치를 검토하는 것이 한국 배우기로 해석되자 “일본이 엄살을 떨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강한 중저가제품 시장에서 앞선 전술을 배우려는 일본 특유의 실용성을 일깨운 것으로 풀이됐다. 정말 엄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인은 배울 게 있으면 배운다.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이다. 제3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든 일본인들은 그들의 길을 간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디지털 지적도/이순녀 논설위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장수왕 59년(471)에 위(魏)나라에서 도망온 민노(民奴)들에게 전택(田宅)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도 농경지와 주거지를 계량해 소재지와 규모 등을 적은 문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문서 ‘약목 정두사 5층석탑조성형지기’는 8대 현종 22년(1031)에 시행된 토지측량(量田)의 과정을 적었는데, 양전사를 중앙에서 파견한 것으로 미뤄 고려 초기부터 양전을 상당히 엄격히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양전을 법으로 규정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모든 토지는 6등급으로 나누며, 20년마다 한 번씩 전국적으로 토지측량을 실시해 오늘날의 토지대장과 유사한 양안(量案)을 작성하도록 했다. 양안의 목적은 나라에서 토지세(田稅)를 정확한 근거에 따라 부과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통해 모든 신분층 및 기관의 토지소유현황과 농가소득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과 가뭄, 양전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등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된 사례는 드물고 대부분 일부 지방에서만 토지측량이 이뤄졌다. 토지측량을 관장하는 지적과가 처음 설치된 건 1895년이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고종은 1898년 미국인 측량사 크럼을 초빙해 서구측량술을 도입하고 전국적인 토지 조사를 시도했지만 결국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일부에서만 전답관계(田沓官契)를 발행했다. 이후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1910년 토지조사국이 창설되고, 토지조사법 제정을 통해 본격적인 지적도 작성이 이뤄지게 됐다. 일제는 1917년까지 7년간 전국의 토지를 측정해 처음으로 지적도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적도가 바로 이것이다. 국토해양부가 100년 만에 전국의 지적도를 재작성하는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전국 3715만 7000필지를 대상으로 GPS와 인공위성을 활용한 지적 재조사를 벌여 2020년까지 디지털 지적도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존 지적도와 실제 땅의 생김새, 크기가 다른 측량 불일치 토지가 전체 필지의 15%에 이르고, 엉터리 지적도로 방치된 국유지도 418㎢가 넘는 등 사회적 비용이 큰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실측 결과에 따라 문서보다 실제 땅 면적이 큰 경우는 땅값만큼 국가에 돈을 내야 하고, 반대로 면적이 작을 경우엔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한다. 땅값 합의를 둘러싼 무더기소송 사태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땅 한뼘 없는 처지를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캄보디아 신부/구본영 논설위원

    포카혼타스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영국인 존 롤프와 결혼한 아메리카 원주민 소녀였다. 나중에 월트 디즈니의 동명 애니메이션 영화로 세계적 저명인사가 됐지만, 기독교로 개종해 남편 이름을 따 레베카 롤프로 개명했다. 시쳇말로 잘사는 나라 사람에게 시집 간 제3세계 여성의 ‘로망’이다. 하지만 국제결혼을 꿈꾸는 모든 여성이 포카혼타스가 될 순 없을 게다. 최근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가정의 월평균 수입은 100만∼200만원이 38%로 가장 많았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출신 중에는 월소득 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도 많았다. 그런데도 다문화가정의 한국생활 만족도는 뜻밖에 높았다. 여성 결혼 이민자의 57%가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캄보디아·베트남 등 동남아 출신의 만족도가 높고 북미나 서유럽 출신 결혼 이민자들에 비해 차별을 받는 느낌도 적었다. 동남아 출신 결혼 이민자들이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알 정도로 매사에 긍정적이고 소박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당분간 금지했다는 소식이다. 왜 캄보디아 전체 국제결혼 가운데 60%를 차지하는 한국인이 기피 대상이 된 걸까. 국제결혼 중개업자를 통한 1 대 다(多) 맞선이 빌미가 됐다고 한다. 지난해 9월 한국인 1명에게 25명의 캄보디아 여성을 맞선 보게 한 중개업자가 10년 징역형이란 중형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캄보디아는 2008년에 이미 국제결혼 중개업 금지조치를 취했다. 국내에서도 국제결혼 중개업이 무분별하게 번창하면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적이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지방의 도로변 곳곳에 나붙었던 ‘○○○ 출신 신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비용 ○○○ 만원에 숫처녀 보장’ 등 낯뜨거운 현수막이 생각난다. 이쯤 되면 상대국의 자긍심을 건드리는, 국제결혼 중개 행태에 경종을 울려야 할 때라고 본다. 물론 한국이 오해를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인신매매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매춘이나 마사지 일을 하는 자국 여성들의 사례를 보고 분노하고 있지만, 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이긴 하다. 더군다나 결혼이민으로 한국에 들어온 동남아 여성 모두가 한국판 포카혼타스 같은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일 순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퇴폐 유흥업소도 아닌데 1대25 맞선이라면 금도를 잃어도 한참 잃은 일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세치 혀/김성호 논설위원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다.’는 화두로 유명한 중국 당대의 조주 선사. 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탐낸 선비가 섣부른 거량을 한다. 지팡이를 달라며 건넨 말. “부처님은 중생이 바라는 바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주 선사 왈.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습니다.” 질세라 응수하는 선비.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내처 받아친 선사의 할(喝). “노승도 부처님이 아닙니다.” 유교와 불교를 에둘러 비유한 욕심과 탐냄의 경계. 선비와 선승의 거량에 담긴 임기응변의 말솜씨가 기발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지만 말이 어디 좋은 일만 부를까. 순간의 말이 화근이 되는 게 다반사다. ‘강을 건너면 배를 버려라.’ 불교경전 금강경 속 일화. 부처님이 남겼다는 ‘사벌등안(捨筏登岸)’의 교훈이다.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면 그동안 썼던 모든 도구를 다 버린다는, 집착에 대한 경계일 터. 버리고 놓으라는 교훈의 핵심도 말과 언어의 조심이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며 모든 출판물의 절판을 당부한 법정 스님. 스님의 유언도 집착에 대한 경계를 넘은, 말 조심 글 조심의 당부가 아닐까. 혹여 내 말로 화를 불렀거나 부르지나 않을까 하는 챙김이 클 것이다. 불교에서 내 몸과 말, 뜻이 선악을 조장하고 과보를 부른다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구업을 놓음도 세치 혀에 놀아나는 말의 폐해와 업의 강조이다.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의 구업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신동아 인터뷰 중 쏟아낸 말들이 화근이다 .“큰집이 김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 “MBC좌파 대청소는 70∼80% 정리됐다.”…. 공영방송 MBC를 쥐락펴락하는 방문진 수장의 말치곤 험악하다. 야당은 현 정권의 방송장악 의도를 명확히 노출한 발언이라며 청문회 개최를 들먹이고, 당사자인 MBC 구성원들도 그냥 넘길 수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린다. 민감한 시기에 터뜨린 ‘말 폭탄’의 파편들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양상이다. 권력과 방송의 관계를 넘어 말 폭탄의 진의가 애매하다. 무엇을 위한 발설인지, 도대체 파장의 수위를 의식이나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결자해지’의 멍에를 지고 내린 사퇴만으론 해결될 조짐이 안 보이는 상황. 구업의 과보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강을 건너려면 아직도 물길이 멀기만 한데 뗏목부터 버리려 들었으니…. 세치 혀가 문제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당포 최씨/박대출 논설위원

    우리나라엔 286개 성씨(姓氏)가 있다. 귀화인은 제외된 수치다. 본관(本貫)은 4179개다. 2000년 기준 통계청 자료다. 1985년부터 15년간 새 성씨는 없다. 그런데 본관은 15개 늘었다. 한양 강(姜)씨, 장지 김()씨, 태백 김()씨, 덕산 박(朴)씨, 하화 박(朴)씨, 웅천 방(方)씨, 제천 백(白)씨, 한밭 서(徐)씨, 태안 석(石)씨, 홍주 석(昔)씨, 대전 여(呂)씨, 익산 염(廉)씨, 달성 임(林)씨, 달성 범(苑)씨, 강화 증(曾)씨 등이다. 성씨는 한 혈통을 잇는 족속(族屬)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성씨는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고유한 특징도 늘어났다. 본관은 시조(始祖)가 난 곳이다. 분파해 본관을 새로 내기도 한다. 성과 본관 체계는 고려때 확립됐다. 940년 태조 왕건이 호족들에게 성씨를 하사하면서다. 성씨와 본관은 남계(男系) 중심이었다. 통상 아버지 성을 따랐다. 조상이 같아도 성을 달리하기도 했다. 성이 같아도 조상이 다른 경우도 있다. 때론 어머니성을 이어받는다. 2008년부터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늘었다. 배우 최진실씨가 자녀의 성을 변경한 것도 한 사례다. 중국은 2500여개의 성이 있다. 일본은 10만개가 넘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씨는 선우(鮮于)라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랜 성은 ‘강(姜)’이다. 강태공이 시조다.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최인해(崔仁海·31)씨. 최근에 첫 ‘당포 최씨’가 됐다. 원래 이름은 아제니쓰 에이치레이에스. 그녀는 전남 해남군 화원면 당포마을에 산다. 당포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식으로 개명(改名)했다. 성은 남편 최성욱씨의 성씨를 따랐다. 이름은 ‘어질 인(仁), 바다 해(海)’로 지었다. 갯내가 물씬 풍긴다. 해남군이 무료 개명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주여성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현재 이곳에는 이주여성 403명이 산다. 131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49명은 아직 한국식 이름이 없다. 군은 이들의 개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해남의 읍·면이나 마을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줄을 잇게 됐다. 삼산 김씨, 화산 이씨, 현산 박씨, 황산 강씨, 송지 정씨….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국내에 사는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었다. 한국 국적과 한국 이름은 이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출발에 불과하다. 모자란 2%를 채운 게 아니다. 진정한 한국인으로 가는 길은 멀다. 그들을 보듬는 마음도, 제도도 갖춰야 할 때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씨줄날줄] 골프황제의 복귀/이춘규 논설위원

    황제(皇帝)는 제국의 세습군주를 칭한다. 왕국의 군주인 왕보다 상위 개념이다. 중국에서 황제라는 명칭은 진의 시황제 영정이 처음 사용했다.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각국에서 수많은 ‘왕’이 난립, 왕보다 권위있는 칭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황제’라는 칭호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에서는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과 칭호에서 비롯했다. 영어 ‘엠퍼러(emperor)’와 독일어 ‘카이저(Kaiser)’ 및 러시아어 ‘차르(tsar)’ 등으로 불렸다. 중화(中華) 사상에서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는 당, 송, 원, 명, 청 등 황제국뿐이었다. 그 아래 제후국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황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주독립 국가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조선은 청나라가 기울어 가던 1894년 청나라 연호를 폐지했다. 1897년에는 대한제국을 수립하여 황제로 칭하고 일제에 국권을 잃을 때까지 13년간 연호를 사용했다. 21세기에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있지만 시민권이 성장하면서 절대군주제의 황제를 칭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1975년 에티오피아가, 1979년 이란이 제정을 폐기한 것이 마지막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황제는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황제라는 칭호는 스포츠나 문화계의 걸출한 스타들에게 그 분야의 최고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며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전설적인 축구스타 펠레는 축구황제로 호칭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팝스타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로 불렸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범죄계의 거물을 밤의 황제라고도 칭한다. 골프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황제로 추앙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교통사고 뒤 불미스러운 성추문이 연쇄적으로 폭로되면서 황제의 지위를 영원히 잃는 듯했다. 전세계의 골프 인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 골프황제 우즈가 복귀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우즈가 4월 마스터스 대회를 통해 복귀한다고 밝히고 나서자 전세계가 난리다. 미국언론들은 그의 복귀전 시청률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식에 필적, 사상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한다. 광고주도, 도박사들도 신났다. 다만 팬들은 냉담하다. “미안하다.”는 말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것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복귀가 이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골프황제의 복귀식이 논란 속에 치러질 것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B-Boy兵 /김성호 논설위원

    유행가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히기 시작하면 늙는 징조란다. 늙는다는 게 어디 나이만의 궤적일까. 세상 이치를 막연히나마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인정의 지혜를 겨눈 말일 게다. 유행가. 사랑의 테마가 보편적이지만 우리네 삶과 처지를 녹인 축소판이겠다. 나라 잃은 설움의 응축인 ‘황성옛터’며 ‘울밑에선 봉선화’, 동족상잔의 비극을 노래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군사정권 시절 아침 저녁 귀찮을 만큼 귀를 자극했던 ‘새마을 노래’도 따져보면 유행가라면 유행가가 아닐까. 일부러 만들어낸 억지의 건전가요였지만. 어쨌든 늘상 생기고 사라지곤 하는 유행가는 어쩔 수 없이 시대와 세태를 담아내기 마련이다. 유행가가 노랫말로 대중을 움직인다면, 유행어는 촌철살인의 짧은 말로 심중을 겨눈다. ‘지구를 떠나거라.’ ‘잘돼야 할텐데….’처럼 경색된 사회상을 꼬집은 풍자가 흔했다가 요즘엔 실업이나 어려운 생활상을 빗댄 은어풍이 유행이다. 이태백, 사오정에 청년실신까지. 개그맨이나 연예인들이 입에 올려 젊은 층을 대상으로 급속히 퍼져나가는 요즘 유행어가 지닌 함의, 기지는 신기할 만큼 번득인다. 아무래도 대중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한 사회적 요인과 계기가 충만할 탓일 게다. 유행가, 유행어의 생멸은 사회의 변천을 닮는다. 갈라지고 확산되는 영역의 투영인 셈이다. 지금도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푸념조로 뱉곤 하는 ‘말세야 말세.’ 탄식이 아득히 먼 태고에도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보편의 정서야 어디 갈까마는, 그래도 역시 유행의 노래나 말들은 사회를 빼닮게 마련인가보다. 물론 상식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더욱 흡인력이 강할 터. 그러지 않아도 젊은 층의 유행어는 이젠 선량들이나 학자들까지 허물없이 입에 담아 낸다지 않는가. 군(軍)은 보통의 사회에선 동떨어진 이색지대로 통한다. 국토방위의 우선적 가치에 매몰된 특수상황의 분리된 별세계인 셈이다. 유행가, 유행어란 도통 먹힐 것 같지 않은…. 그런데 요즘 현역병들이 가진 천양의 주특기를 들여다 보면 군이 더 이상 특별한 이색지대가 아닌 것 같다. 병영에서 발생하는 사망자 장례를 도맡는 장의 전문 ‘영현등록병’, 조종사들의 비행 시뮬레이션을 담당하는 ‘e-스포츠병’, 전세계에서 춤 기량을 인정받은 비 보이(B-Boy)들로 구성된 ‘동아리 지도병’까지. 육군에만도 무려 289개의 주특기병이 있단다. 이쯤되면 군대가 아닌 군사회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군 참 많이 변했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고추장 등급제/이순녀 논설위원

    한우에만 등급이 있는 건 아니다. 고추장에도 등급이 있다. 한우는 고기의 육질이 기준이지만 고추장은 얼마나 매우냐가 기준이다. 정부가 고추장의 매운 맛을 나타내는 표준규격으로 ‘GHU(Gochujang Hot taste Unit)’를 확정하고 다음달부터 표준 등급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매운 맛의 정도를 숫자 0~100 사이에서 5개 구간으로 나눠 표기한다. 가령 ‘25GHU 이하’는 순한 맛, ‘100GHU 이상’은 가장 매운 맛이고, 그 중간에 있는 ‘25~50GHU’, ‘50~75GHU’, ‘75~100GHU’는 각각 약간 매운 맛, 보통 매운맛, 매운맛을 나타내는 식이다. 고추장 등급에 대한 논의는 2년 전부터 시작됐다. 국내 고추장업계 1·2위인 CJ제일제당과 대상이 한식 세계화를 위해 2007년 3월 한국식품연구원과 매운 맛 표준규격의 공동연구에 나섰다. 그리고 1년3개월 연구 끝에 고추장 맛을 5단계로 등급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등급 구분에는 합의했지만 매운 맛의 단위에 대한 의견은 달랐다. CJ는 매운 맛의 국제단위인 스코빌(SHU)을, 대상은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의 함량인 ‘PPM(생화학적산소요구량)’을 끝까지 고집하는 바람에 합의는 불발됐다. 이에 따라 대상은 지난 1월부터 PPM단위를 적용한 등급 표시를 하고 있고, CJ도 조만간 독자적인 등급 표시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정부가 절충안으로 GHU를 내놓으면서 단일화의 물꼬가 트였다. 매운 맛의 단위로 널리 알려진 스코빌은 1912년 미국의 화학자 스코빌이 만든 것으로, 고추 추출물을 물로 얼마나 희석해야 매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멕시코 타바스코 소스의 단위로 사용된다. PPM은 고추장에 포함된 캡사이신 성분을 100만분의1단위로 표시한 것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이 개발한 GHU는 캡사이신 함량을 기준으로 하되, 평균적으로 캡사이신이 얼마일 때 사람들이 맵다고 느끼는지 관능시험한 결과를 반영해 등급을 정했다고 한다. 스코빌 기준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는 멕시코의 ‘아바네로’ 품종으로 10만~30만 SHU에 이른다. 맵기로 유명한 한국의 청양고추가 1만 2000 SHU이니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매운 맛이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이들을 위한 희소식. 매운맛을 즉석에서 측정하는 ‘매운맛 센서’가 시중에 곧 선보일 예정이라니 고추 잘못 집어먹었다가 고생하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법정스님과의 인연/함혜리 논설위원

    파리 교외 토르시라는 곳에 길상사 파리 분원이 있다. 특파원으로 있을 때 마침 길상사 파리 분원 10주년 행사가 있었다. 기념법회에 법정 스님께서 직접 참석하셨다. 아직 바깥 바람은 싸늘했지만 화창했던 날 법회와 함께 열린 수계식에서 스님으로부터 수월화(水月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수월관음의 ‘수월’이다. 스님께서는 “달빛이 물에 골고루 비치듯이 좋은 글로 세상을 맑게 비추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가슴에 고이 간직했다. 2007년 여름 법정 스님을 다시 만나 뵐 기회가 왔다. 길상사 신도인 친구가 스님께서 순천 송광사 불일암(佛日庵)에 내려 오신다는 기별을 받았다면서 함께 친견하러 갈 것을 권했다. 주저없이 따라나섰다. 8월16일.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던 날이다. 불일암은 송광사 뒷산으로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 스님께서 직접 지으셨다는데 스님 성품처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세련됐다. 마당의 매화와 산후박나무, 웬만한 집 거실보다도 깨끗한 해우소가 일품이다. 스님이 1992년 강원도 산골로 거처를 옮기신 이후에도 일년에 서너 차례 불일암에 오셔서 휴식을 취하곤 하셨다. 처소에 외부인을 들이지 않으시는 스님은 마당 한편에 지어진 공양간의 다실에서 우리 일행을 맞으셨다.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의 편안한 차림이셨다. 그날 스님께서는 “마음이 재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재물이란 많든 적든 우리가 이생에서 잠시 맡았다가 가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이만큼이 내 몫이고, 저 사람 몫은 저만큼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라고 하셨다. 내 몫도 아닌 것에 괜한 욕심을 부리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은은한 향이 좋다며 황차를 내주시면서 스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야.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지.” 그날 스님은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떠나셨다. 차로 7시간 걸리는 거리를 손수 운전을 해서 가신단다. 오두막에서 일을 하다가 가슴뼈를 삐끗했는데 영 개운하게 낫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스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자연의 품에 안기셨다. 다정하게 차를 권하시던 모습, 밀짚모자를 쓰고 대나무 사잇길을 훠이훠이 걸으시던 모습, 커다란 부채를 부치며 산후박나무를 지그시 바라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인도 女權 혁명/박대출 논설위원

    승당(承堂) 임영신은 여성 장관 1호다. 초대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승당은 대한여자국민당 창당을 주도했다. 최초의 여성 정당이다. 광복 첫해인 1945년 10월3일 창당됐다. 승당은 또 여성 국회의원 1호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경북 안동 보궐선거를 통해 등원했다. 여성 당수(黨首) 1호는 박순천 여사다. 1965년 민주당 때다. 임시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면 방순희 여사가 있다. 그는 1938년 임시정부 의정원 한남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사실상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인 셈이다. 반세기를 넘어 여풍(女風) 의 시대다. 정치권도 상승세다. 선두그룹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합쳐서 보면 부녀 당수 1호다.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은 최초의 여성 대변인이다. 이후로 여성 대변인 시대가 열렸다. 조 의원은 두번째 대변인을 그만둘 때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그 기록은 지난달부터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이어가고 있다. 17대 총선 때부터 여성 대변인 트로이카 체제가 구축됐다. 이제 정당 여성 대변인은 최소한 절반이다. 양적으로 살펴보자. 15대 국회까지 여성 의원은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제헌 의회부터 합쳐봐야 85명. 전체 의원의 2.3%에 그쳤다. 16대 들어 16명으로 처음으로 두 자릿수에 올랐다. 17대는 39명으로 배가됐다. 이번 18대는 41명이다. 전체 의원의 13.7%로 늘었다. 그래도 수적으로 열세다. 인도 상원이 최근 파격 법안을 가결했다. 연방·지방의회 의석 중 3분의1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게 골자다. 14년 표류하다 성사됐다. 다음 주 하원 표결도 무난하다고 한다. 여성 차별이 심한 인도 현실에서 가히 혁명 수준이다. 여성 비율은 연방 하원 10.8%, 상원 8.8%, 지방의원 8.8%에 불과하다. 우리 국회도 최근 공직선거법을 바꿨다. 지방의원 정수의 2분의1 이상을 공천하는 지역에선 여성을 1명 이상 공천해야 한다. 현재 광역의원 12%, 기초 의원 15%가 여성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개정안대로 하면 여성 의원이 8~10%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얼핏 보면 인도에 근접한다. 그런데 허울만 그럴듯하다. 지방선거만 해당된다. 국회의원과는 무관하다. 남성 위주의 국회는 요지부동이다. 하나 더 있다. 여성 후보난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등록한 여성 예비후보는 한 자릿수에 그친다. 광역단체장 4.5%, 기초단체장 3.3%, 광역의원 3.3%, 교육감 6.3%. 여야의 영입 노력이 아쉽다. 물론 더 채우는 건 여성들의 몫이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씨줄날줄] 열반과 상실의 사이, 무소유/김성호 논설위원

    일체의 마음과 몸이 얽히고 엮였다는 불교의 인다라망 세계일화(世界一華). 내 한몸 치중해 살다 보면 어찌 남 생각이 앞설까. 나도 살고 남도 살리자는 연기와 인연의 궁극적 가치는 영원히 바래지 않는 형형한 빛인 것을. 현실의 아둔하고 미련한 인생은 그래서 초월과 초탈을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고승대덕들의 ‘버리고 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의 일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세속의 티끌과 터럭에 매달리고 쏠려 사는 미물 중생의 삿된 욕심에서랴. 그래서 현실을 뛰어넘어 치달았던 선승과 대덕들의 죽음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어제 열반에 든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無所有). 스님의 법신에 따라 속인들에게 남겨진 대명사 격의 유명한 명제. 마지막 찰나에 스님이 몸을 맡긴 길상사도 무소유의 산물이다. 권번 출신 소유주 김영한이 운영하던 고급요정 대원각을 무보상, 무조건으로 스님에게 기부해 태어난 길상사이니. 스님의 베스트셀러 ‘무소유’가 전한 울림의 현현한 증거다. 무소유의 증거가 길상사뿐일까. 감화의 물결은 수녀, 목사들의 개종과 천선으로 숱하게 이어졌고. ‘버리고 놓으라.’는 방하와, ‘나누고 전하자.’는 무소유가 어디 서로 다른 것일까. 불이(不二)의 두 가치들은 그래서 스님의 열린 행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암울하고 답답했던 시절, 이웃종교와의 교감과 열린 소통이 어디 우연한 것일까. 세속에 휘말리겠다 싶으면 홀연히 벗어던지고 떠나곤 했던 스님의 삶이다. 출가본사 송광사 뒷산 불일암의 은둔수행이며, ‘무소유’의 유명세를 피해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의 두문불출…. 나를 다스리고 속된 도취에 젖지 않겠다는 극한의 경계였지만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목소리는 아끼지 않았으니. 1960년대 말 함석헌, 장준하와 함께했던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철폐 운동.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동행이 모두 다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판사판의 그 어떤 가름에도 헛되이 놓이지 않으려던 스님은 이제 속세의 육신을 벗고 해탈에 들었다. 스님이 생전 지극하게 말, 행동으로 보여줬던 무소유의 실천은 이제 누구의 몫일까. 스님들의 다비(茶毘)장에선 웃고 우는 감정의 엇갈림이 흔히 있게 마련. 스님이 열반의 경지에 들었으니 웃고 환영해야 하겠고. 한편으론 속세의 인연이 다한 상실의 아쉬움이 겹친다. 그래서 두 마음이 겹치는 스님의 입적은 유난히 더 사무친가 보다. 언제까지 죽음의 상실과 열반의 가치에 휘둘릴 수만은 없을 터인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베스트셀러 만들기/이순녀 논설위원

    ‘베스트셀러’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80년간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앨리스 페인 해케트에 따르면 뉴욕의 어느 책 판매인이 집으로 가는 길에 가판대 상인에게 가장 잘 팔리는 책, 즉 베스트셀러가 뭐냐고 물은 이후 보편적인 명칭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최초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1895년 창간된 문학잡지 ‘북맨’에 실렸다. 대도시 16개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6권을 뽑아 매달 ‘6권의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국내에선 1950년대 중반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7만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회자됐지만 공식적인 베스트셀러 집계는 교보문고가 문을 연 1980년대 이후부터다. 베스트셀러의 영예가 온전히 작품의 힘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제 웬만한 독자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마케팅이란 ‘마법의 손’이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흙 속에 묻힌 진주일 뿐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이 책이라고 해서 비껴갈 리 없다. 독일 학자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1984년 출간한 책에서 베스트셀러를 “체계적인 판촉활동으로 ‘만들어진’ 성공적인 책”으로 규정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출판 마케팅은 진주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한 줄로 잘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일에 비견할 수 있다. 문제는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대한 과도한 열망이 정당한 마케팅의 선을 넘어 비정상적인 수법에 빠져들 때 생긴다. 책 사재기, 배보다 배꼽이 큰 경품과 이벤트 등이 대표적이다. 출판사와 서점 간의 검은 거래 의혹도 거론된다. 외국도 예외가 아니다. 몇년 전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신간 서적을 매대의 좋은 자리에 진열하기 위해 출판사가 서점에 거액을 지불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가 그제 출판사 4곳을 사재기 혐의로 당국에 신고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책을 동일한 주소로 주문하고, 1만 2000원짜리 책을 사면 2만원을 돌려주는 수법으로 온라인 판매량을 늘려 베스트셀러 순위를 조작했다고 한다. 광고보다 비용은 덜 들면서 효과는 더 크기 때문에 상당수 출판사들이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고정관념화하고 있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이며, 아편과 같은 것”이라는 파울슈티히의 경고가 새삼스럽다. 창작의 세계를 다루는 전문가답게 좀 더 창조적인 마케팅에 대한 출판인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국가 CTO/함혜리 논설위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갖고 기업을 대표한다. 기업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화되면서 CEO의 권한은 재무, 기술, 정보, 보안, 마케팅, 고객관리 등으로 점점 분권화·전문화되는 추세다. 기술을 개발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활용하기 위한 경영지원 활동을 총괄하는 최고기술경영자를 CTO(Chief Technology Officer)라고 한다. CTO는 기술과 관련한 유용한 정보를 CEO에게 조언해 주는 한편 기업의 비전에 맞는 연구개발(R&D) 전략과 신제품 개발전략을 짠다. 기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가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해 지속적으로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기술의 변화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기술 경쟁력이 기업성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CTO 역할의 중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앞다퉈 CTO 제도를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각국 정부도 CTO의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한경쟁 시대에 기술 경쟁력은 국가의 미래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미 행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국가 CTO제도를 도입했다. 장관급인 초대 국가 CTO 는 인도계 미국인인 애니시 초프라(37)가 맡고 있다.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버지니아주 기술장관을 지낸 초프라는 정보기술(IT)과 헬스케어, 투자 방면에 정통한 인물이다. 일본은 지난 2001년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통합한 이후 내각에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급 특명대신직을 신설했다. 우리나라에도 국가 CTO제도가 도입된다. 지식경제부는 국가 R&D 사업 전반을 총괄하는 전략기획단을 신설해 지경부 장관과 함께 기획단 공동단장으로 이공계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글로벌 시장 경험을 갖춘 CTO를 영입하기로 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성장동력 산업 추진전략을 세우는 것은 물론 각 부처가 추진하는 계획들이 국가경제 성장을 위해 효율적으로 추진되도록 조정자 역할도 하게 된다. 우리나라 R&D 예산은 2000년 13조 8000억원에서 2008년 34조 5000억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그에 비례하는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가 CTO제도 도입을 계기로 이런 비효율부터 당장에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비날론의 역설/구본영 논설위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주말 함흥시 2·8비날론연합기업소에서 열린 군중대회에 ‘이례적으로’ 나타났다. 경제 관련 대규모 군중대회 참석은 사상 처음이다. ‘현지지도’는 그가 애용하는 통치술의 일환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비날론 공장이었을까. 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이 유달리 비날론에 애착을 가졌던 사실을 주목해야 할 듯싶다. 비날론은 일제 때인 1939년 이승기 박사의 발명품. 듀폰사의 나일론 개발 이후 2년만에 나온 세계 두번 째 합성섬유였다. 이승기는 연구여건이 좋았다면 한국 화학의 태두격인 이태규 박사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받았을 만한 인재로 꼽힌다. 김 주석은 광복 후 서울대에 몸담다 월북한 그를 그래서 중용했다. 하지만 당시로는 획기적 발명품인 비날론은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석회석과 무연탄에서 얻은 카바이드가 주원료인 비날론은 가볍고 질기지만, 염색이 잘 안 되는 게 단점이다. 특히 석유가 원료인 나일론계에 비해 생산 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게 치명적 결함이었다. 그런데도 김 주석은 여운형의 아들이자 북한의 또 다른 저명 화학자인 여경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용화를 밀어붙였다. ‘주체섬유’라는 수사와 함께. 질겨서 ‘입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1961년 세워진 연산 5만t급 생산공장 2·8비날론기업소는 김 주석이 사망한 뒤 1994년 가동을 멈췄다. 연료난 탓이었다. 비날론을 생산하는 데 드는 석탄과 전력 비용이면 중국에서 더 질좋은 섬유를 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북한은 김 주석의 지시로 평남 순천에 100억달러가 드는 연산 10만t 규모 비날론 공장을 짓다가 이마저 외화난으로 공사를 접었다. 비날론이 버리기도, 취하기도 어려운 북한판 ‘계륵’으로 전락한 형국이다. 김 위원장의 군중대회 참석은 16년만의 비날론 부활을 주민들에게 알린 셈이다. 하지만 비날론 공장의 재가동이 북한경제를 재건하는 버팀목이 될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생산비용이 제품가보다 비싼 역설을 극복했다는 기술진보의 징후가 없는 까닭이다. 며칠 전 지식경제부는 국방부와 손잡고 최첨단 ‘스텔스 섬유’를 개발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북한경제도 회생하려면 계륵 같은 비날론에 연연하기보다는 기술진보의 시계 태엽을 앞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북측은 이제라도 남쪽이나 외부세계에 진정성을 갖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분지(盆地)적 사고/이춘규 논설위원

    분지(盆地)는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인 평평한 지역을 말한다. 위치에 따라 산간분지, 내륙분지로 나눈다. 생성원인에 따라서는 침식분지, 퇴적분지 등으로 불린다. 미국 서부의 대분지는 산간분지이며 아프리카의 알제리는 침식분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구가 유명한 분지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도 분지다. 파리, 런던도 지층이 아래쪽으로 완만하게 변형되며 형성된 분지다. 분지에 정치경제의 큰 도시가 발달했음을 알게 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동쪽에는 구미산, 남서쪽에는 단석산, 남쪽에는 남산(금오산), 동쪽에는 토함산과 여러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다. 백제의 수도였던 충남 부여도 분지 지형이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도 평양대동강분지에 속해 있고, 후삼국 시대 궁예의 태봉이 도읍했던 철원도 분지지형이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 서울도 분지형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분지 지역은 우리민족 역사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분지는 기후변화가 혹독하다. 대구는 여름에 기온이 40도까지 올라간다. 일본도 분지지역은 무덥다. 도쿄 북쪽에 있는 군마현이 대표적이다. 사방이 2000m 안팎의 고산이다. 여름에는 40도를 오르내리고 겨울에는 춥다. 자연환경이 혹독해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다 보니 ‘인물’이 많다고 한다. 외부 진출 욕구도 강한 진취적 성격을 갖게 된다고 일본의 한 교수가 설명했다. 실제 군마현은 경제력이 강하지 않은 광역단체지만 4명의 총리가 나온 곳이다. 후쿠다 다케오,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현대 일본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총리의 출신지다.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총리도 군마현 출신이다. 메이지유신 주역들의 고향으로 총리를 8명이나 배출한 야마구치현에 이어 일본 47개 광역단체 중 총리를 두 번째 많이 배출했다. 역시 분지인 대구지역 연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는 것과 연결시키면 흥미롭다. 세종시 역차별 논란에 휘말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일 대구에 가 “포항과 연결되고 낙동강이 뚫린 만큼 대구가 내륙이라 불리하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서 생각을 크게 해야 한다.”면서 “분지적 사고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해 화제다. 또 “대구·경북이 어떤 지역인데 만날 피해의식을 갖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대구가 분지 생각에 제한돼 있고 그 안에서 네 편 내 편 가르면 어떻게 발전하겠느냐.”고 토로했다. 분지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경제의 중심 무대가 되고 있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공룡 멸망/이춘규 논설위원

    중생대 3기 백악기 말에 해당하는 6550만년 전 공룡이 멸종한 원인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소행성 충돌설, 성불균형설, 화산 활동설, 알 도난설, 환경 변화설, 중력 변화설 등 100여가지 설이 다투고 있다. 우선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며 엄청난 먼지가 일어 태양이 가려지면서 큰 식물이 죽고, 이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죽으며 공룡이 멸망했다는 게 소행성 충돌설이다. 암수의 성비가 깨져 멸망했다는 성불균형설, 화산폭발로 인한 기후변화로 멸종했다는 화산 활동설, 새로운 포유류가 공룡의 알을 훔쳐 먹어 멸망했다는 알 도난설, 대륙이 이동하며 계절 변화가 생길 때 적응하지 못해 멸망했다는 환경변화설이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궤도를 이탈한 소혹성(혹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해 기후가 변하며 공룡이 멸망했다는 설이 유력했다. 루이스 알바레스가 1980년 제창했다. 91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지름 180㎞의 소혹성 충돌흔적이 확인되며 지지세를 넓혔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그런데 일본 등 12개국 지질학, 고생물학, 지구물리학자 등이 세계 각지의 지층과 자료 등을 정밀조사, 충돌설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5일자 사이언스지에 발표한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학자들은 세계 350여개 지점의 지층에 소혹성 충돌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이리듐이나 변질된 석영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유카탄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이들 성분의 농도가 약해 충돌설을 뒷받침했다. 시기는 생물의 대량멸종기와 일치했다. 당시 지름 15㎞의 소혹성이 초속 20㎞의 속도로 바다였던 유카탄반도에 충돌했다. 충돌 에너지는 히로시마형 원폭의 10억배, 리히터 규모 11 이상의 지진과 비슷했다. 300m의 지진해일이 인 것으로 추정됐다. 1000억∼5000억t의 유산염과 연기가 발생해 태양광을 차단, 지구의 기온이 5~30도 떨어졌고 산성비가 내렸다. 10년간 계속되자 생물의 60% 정도가 멸종했다. 1억 5000만년 계속된 공룡시대는 이렇게 끝났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다. 학자들은 “30년간의 자료가 충돌에 의한 생물 대량멸종설을 뒷받침했다. 공룡 멸종 원인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성과”라고 주장하면서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설명했다. 학자들은 당시 해저에 살아남은 일부 플랑크톤이나 몸집이 작아 먹이를 적게 먹어도 살 수 있는 포유류가 살아남았다고 밝혔다. 그 후 다양화되면서 지금의 생태계를 형성했다. 이제 공룡 멸망 논란이 종식될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초대받지 않은 손님/김성호 논설위원

    ‘사람이 자리를 만들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사회 조직의 순환을 들 때 흔히 하는 말. 자리라 함은 위상과 가치를 가리킬 터. 높고 낮은 자리 개념의 바탕엔 사람이 으뜸이다. 그래서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빠진다면 허전함과 공허함이 남는다. 그런가 하면 마땅치 않은 의외의 사람이 현신하는 자리엔 이런저런 불편과 거추장이 들먹거려지기 마련.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리에 맞는, 들고 남을 예사롭지 않은 격식으로 따지곤 한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끼임을 피하려는 것이다. 편견과 손가락질의 방비랄까. 흑인 의사와 백인 처녀의 결혼을 모티프로 삼은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1967년 미국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흑백의 차별과 신분의 가름을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의 얼개와 투르기도 다름아닌 자리와 사람의 갈등이다. 흑인 의사와 백인 처녀의 지순한 사랑을 좀먹는 편견과 협심. 피부색이 달라 어색한 양가 부모, 그러니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불편과 어색이 드러내는 차별의 묘사가 극적이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왁자하게 만들었던 미국 백악관 불청객 사건도 어디 다른 것일까. 얼굴 한번 디밀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백악관 국빈 행사에서 빚어진 해프닝.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으로 보란듯이 참석해 만찬장을 휘젓고 다닌 부부를 향한 눈길도 따져보면 자리와 사람의 부조화 때문이다. 사흘 전 ‘금의환향’한 밴쿠버 올림픽 한국선수단의 귀국 회견장. 개인기록을 경신, 13위를 차지하며 선전한 곽민정의 홀대에 누리꾼의 불만이 이어진다. 회견장 단상의 메달리스트들에 집중된 질문공세며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서 1시간 내내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켰다는 차별과 무시에 대한 불만이다. ‘제2의 김연아’니 어쩌니 입에 발린 찬사가 무색할 만큼 그저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비쳐진 어색한 자리지킴이 안쓰럽다. 있어야 할 자리에 당연히 있었건만. 응당 대접받고 위로받아야 할 16세 소녀의 상처받은 자존심은 어떻게 보상할까. ‘자리에 민정이를 앉히라.’는 누리꾼들의 항의와 불만이 괜한 것일까. 자리가 만드는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자리. 자리에 맞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아주 중요할 터. 하지만 자리에 끼지 못한 차별이 낳는 희생은 어찌할까. 요즘 흔한 ‘1등만 챙기는 더러운 세상’의 비아냥이 결코 공허하지 않다. 정상의 영웅이 아닌 그늘의 영웅들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늘에서 눈물짓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우리사회에 그득하기 때문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에너지 제로 하우스/노주석 논설위원

    서울 종로구 효자동 152 ‘청와대 사랑채’가 5일이면 집들이 석 달째를 맞는다.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으로 사용됐던 청와대 분수대 앞 ‘효자동 사랑방’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청와대를 방문하는 2000여명 등 하루평균 4000여명의 내외국인 관람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과 유물이 전시돼 있지만, 대통령 집무실을 재현해 놓은 대통령 체험관과 포토존이 인기 관람코스. 대통령 체험관에서는 국새를 직접 종이에 찍어 간직할 수 있다. 포토존에 가면 대통령 내외와 기념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비록 합성사진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건물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서울시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시공한 청와대 사랑채는 에너지효율 측면에서 상징적인 건물이다. 태양에너지와 지열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시스템이 돌아간다. 건물 전체는 고효율 친환경 LED 조명을 쓴다.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한 방울의 에너지도 헛되이 날아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절하는 에너지 종합 제어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에너지 절감률이 무려 40%에 이른다. 국제에너지기구의 2008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36%가 건물에서 나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아파트는 1㎡당 16ℓ의 등유를 사용하고 있으며 연평균 약 41㎏의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뿜는다는 것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면 ‘에너지 먹는 하마’인 건물을 녹색건물로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건설업계의 에너지 절감 신기술개발 노력도 눈물겹다. 대우건설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용하는 전력이나 난방을 단지 내부에서 충당하는 에너지 절감률 100%의 아파트를 2020년까지 짓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관리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기료나 냉난방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가 어제 내놓은 ‘에너지절약형 친환경 건축물 건설방안’을 보면 청와대 사랑채가 달성한 에너지 절감률 40%가 결코 가상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마포구 상암동 평화공원 안에 짓는 ‘에너지 제로 하우스’는 우리가 이미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올 12월 완공될 예정인 이 집은 자연에너지인 태양광과 지열을 사용해 냉난방과 환기, 온수공급, 조명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연간 에너지 사용량 이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래형 에너지 자급자족형 건축물이다. ‘저비용 친환경’만이 살 길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씨줄날줄] 금연고통/이춘규 논설위원

    우리나라 최고의 애연가는 오상순(1894~1963) 시인이 꼽힌다. 불교에 귀의한 이후 공초(空超)라 자처했다고 하는데, 꽁초라는 세칭이 오히려 익숙하다. 공초는 보통 하루 담배 9갑에 해당하는 180개비를 피웠다. 결혼식 주례를 보면서도 담뱃불을 끄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배가 손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임종을 앞두고 담배를 물지 않았음에도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공초는 담배가 근심을 잊게 해준다며 망우초(忘憂草)라고 불렀다. 공초의 일화는 금연운동이 일상화되기 전에나 가능한 전설 같은 얘기다. 공초의 사후 폐암 유발 등 흡연의 폐해가 부각되면서 흡연자 스스로 금연을 시도하거나, 주변에서 금연을 재촉한다. 금연을 시도한 다수는 수없이 금연에 실패한다. 꿈속에서 시달릴 정도의 고통, 금단현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 대부분의 흡연자들처럼 흡연과 금연을 되풀이했다. 국회의원 시절 애연가였으나 대통령이 된 뒤 금연과 흡연을 오갔다. 경호원에게 “담배 있나.”라고 물은 것이 이승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을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의 초대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국회부의장도 정치권에서 유명한 애연가였다. 하루 5갑 가까이 피웠다. 사무실에서도, 차 안에서도, 집 안에서도 줄담배를 피워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 때는 담배연기를 유난히 싫어한 대통령을 면담한 뒤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한꺼번에 서너 개비의 담배를 연달아 피워 물었다. 그도 금연 생각은 자주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2002년 1월 심하게 몸살을 앓아 “근 1주일 담배 피울 힘도 없어 못피운 뒤” 담배를 끊게 되었다. 두어 달 동안 심한 금연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성공해 금연전도사가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금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단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에 나서면서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에게 금연을 약속했다. 대선 과정에서 담배를 끊기 위해 니코틴 껌을 사용했지만 담배의 유혹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가끔 도둑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지난해 6월엔 “담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고 금연의 고통을 토로했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말 취임 후 첫 건강검진 뒤 주치의로부터 금연 권고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에는 금연에 성공할까. 세계인의 시선이 쏠린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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