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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이색 애독자 2人] 2代 70년 독자 이기형 치과원장

    [서울신문 이색 애독자 2人] 2代 70년 독자 이기형 치과원장

    “우리 집안이 서울신문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지. 어릴 적 읽었던 매일신보부터 지금의 서울신문까지…. 서울신문 106년 역사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시간을 우리 가족이 함께 했다니 영광인걸.(웃음)” 서울 남가좌2동에서 34년째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이기형(77) 원장은 평생에 걸친 서울신문의 애독자다. 부친이 구독한 기간까지 합치면 이 원장 가족이 서울신문과 인연을 이어온 기간이 70년을 훌쩍 넘는다. 이 원장은 “내가 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국민학교 1학년 당시인 1940년쯤 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를 읽은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아버지는 그 훨씬 전부터 구독하셨다.”고 회상했다. 이 원장은 서울 공덕동 한옥집에서 보낸 유년 시절, 매일 아침 서울신문을 보던 아버지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배달돼 있는 신문을 주워다가 건넌방 아버지 서재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게 내 일이었지. 글자 읽기에 재미를 붙인 당시 국민학교 1학년생 이 원장은 신문을 통해 글을 배우고, 세상을 읽었다. 이 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서울신문이 지금까지 상식이나 어휘력 향상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 가족과 서울신문의 인연은 남다르다. 공덕동에서 군수용 산소 제조회사를 운영하던 부친은 해방 후 제호를 바꾼 서울신문 지면에 소개된 적도 있다. “48년쯤인가. 당시 서울시청 앞에서 수소로 가는 자동차를 시범 운행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 아버지 회사가 관여했었지. 10분도 못가서 차가 멈춰서는 바람에 실험은 실패였지만, 아버지가 나온 기사라 자랑스러웠어.” 이 원장은 군의관으로 14년간 군생활을 마친 뒤 71년 중령으로 예편해 서울신문사가 위치한 바로 뒤편 중구 다동에 치과를 개원했다. 그때부터 치과에서 서울신문을 직접 구독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체육회관 바로 옆 건물이 내 첫 치과병원 자리였어. 거리가 가까워서 서울신문 직원들도 많이 왔는데, 내가 보는 신문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진료비도 깎아주곤 했지.” 이 원장은 70년대 중반까지 서울신문을 모아두었다. 보고 싶은 기사를 언제든 다시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치과 안쪽 사무실 벽면이 신문 박스로 가득찰 정도였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지난 기사를 찾아보지만 당시엔 신문을 보관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어. 70년대 중반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신년사 같은 게 1면에 실린 걸 봤었고, 84년도였던가? 서울신문이 보신각종을 새로 만드는 모금운동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네.” 그는 76년 치과 사무실을 이사하면서 짐이 많아 그 많던 신문을 다 버린게 아쉽다고 했다. 남가좌동으로 치과를 옮긴 후에도 구독은 이어졌다. 그 후로 40년 가까이 오전 9시 치과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서울신문을 훑어보는 것이 생활화됐다. 이 원장은 가장 먼저 1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을 살펴보고, 맨 뒤로 넘겨 오피니언면을 읽는다. 사설 제목을 먼저 보면 오늘의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오피니언면 ‘씨줄날줄’과 ‘길섶에서’ 코너의 ‘왕팬’으로 자처했다. “짧은 수필을 읽는 기분이라 참 재밌어. 소소한 삶 속에서 느낀 바를 담아내는 재주가 어찌나 좋은지 늘 감탄하지.” 이 원장은 서울신문 논설위원들의 이름을 줄줄 읊으며 오늘은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 찾아보는 것도 큰 재미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오고가는 사람들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서울신문을 환자 대기실 탁자 위에 올려두곤 한다. 서울신문의 변천사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 원장은 행정과 지역뉴스를 서울신문만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전국으로 가는 중앙지이면서도 자치구 소식 등을 세세하게 담아 지역신문을 같이 보는 것 같은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정부 비판적인 기사가 늘어난 점도 장점으로 언급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는 것이 신문 본연의 역할이지. 내가 보는 서울신문은 그 역할을 다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 대신 중도를 표방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무색무취는 곤란하지. 제 색깔을 더 뚜렷이 내는 신문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 이 원장은 지금도 전화번호부보다 더 두꺼운 국어사전을 책상 가장 가까운 곳에 놔두고 있다. 신문을 읽다 이해가 안가거나 순우리말이 아닌 단어가 나오면 바로바로 사전을 뒤진다. ‘무대뽀’와 같은 일본어 잔재가 버젓이 신문 제목에 올라 항의 전화를 한 적도 있다. 이 원장은 그만큼 우리말과 글에 관심이 많다. 평생 신문을 손에서 놓지 않은 덕에 생긴 습관이라고 했다. “서울신문에서 앞장서 순 우리말을 소개하고 잘못된 용어 사용을 바로잡아주는 코너를 만들면 어떨까? 신문은 정보만 주는게 아니라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도 하니까. 그러면 난 앞으로도 서울신문의 열혈 독자로 남을거야.” 이 원장은 인터뷰 내내 손에 들고 있던 서울신문을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놀란 감독 SF블록버스터 ‘인셉션’ Up & Down

    놀란 감독 SF블록버스터 ‘인셉션’ Up & Down

    2008년 ‘다크 나이트’가 공개됐을 때 전 세계 영화계는 경악했다. 도무지 허점을 찾아보기 힘든 걸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무결점 영화로 갈채를 받았던 ‘천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2년 만에 새 작품을 공개한다. 타인의 생각을 훔친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든 공상과학(SF) 액션 스릴러 ‘인셉션’(Inception)이다. 놀란 감독이 연출에, 시나리오에, 제작까지 맡았다. 16살 때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메멘토’를 통해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낸 10년 전부터 구체화시켰다는 역작이다. 청춘 스타의 허물을 벗고 연기파로 거듭나고 있는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아 기대를 더욱 부풀린다. 21일 개봉하는 ‘인셉션’이 올 여름 국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업(Up) & 다운(Down)’으로 살펴봤다. [UP] 147분이 짧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우리에겐 우주만큼이나 미지의 세계인 사람의 뇌, 기억, 꿈 등을 소재로 했다는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비슷한 소재를 다룬 SF 영화는 ‘인셉션’이 처음은 아니다. 우선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시리즈(1999~2003)가 떠오른다. ‘13층’, ‘엑시스텐즈’(이상 1999), ‘다크 시티’(1998), ‘쟈니 니모닉’(1995·국내 개봉 제목 코드명 J), ‘토탈 리콜’(1990) 등이 세기 말에 집중되며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기도 했다. 전작들이 대개 기억과 가상 현실을 기반으로 했다면, ‘인셉션’은 꿈과 무의식까지 한발 더 나아간다. 21세기에 걸맞은 화려한 액션과 스펙터클, 순애보도 씨줄날줄로 촘촘하게 엮으며 관객들의 시선이 허투루 새나갈 여지를 없앤다. 주인공들은 평면적인 꿈의 세계가 아니라,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꿈속의 꿈속에서 또 다시 꿈을 꾸는 다층적인 세계를 롤러코스터처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다. 현실에서의 5분은 첫 번째 꿈속에선 1주일이고, 꿈속의 꿈에서는 6개월이고, 꿈속의 꿈속의 꿈속에서는 10년이라는 설정 등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헤어나오기 힘든 꿈의 밑바닥을 의미하는 림보, 다른 사람의 꿈속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을 뜻하는 토뎀, 강제적으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인 킥 등 세세한 설정이 많아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놀란 감독의 출세작인 ‘메멘토’에 견주면 양반이다. 앞서 많은 작품들이 꿈과 기억의 문제를 사회 전체 시스템 문제까지 연결짓곤 했는데, ‘인셉션’은 도둑질이라는 상당히 ‘형이하학적’인 수준으로 끌어 내리며 오락 요소를 강화한다. 무의식에 침투해 비밀을 훔치거나 새로운 기억을 심기 위한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잘 만들어진’(웰-메이드) 범죄 스릴러를 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무엇이든 가능한 꿈속을 재현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상의 끝을 보여주기 위해 무려 2억달러(약 2400억원)라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여기에서 빚어진 스펙터클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파리 길거리의 슬로 모션 폭발 장면, 세상이 폴더 휴대전화처럼 접혀지는 장면, 호텔 복도에서의 무중력 격투 장면 등은 명장면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147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Down] 상상 그 이하! “상상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영화 ‘인셉션’에 대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자부심은 꽤 대단했다. 영화에 대한 자화자찬이야 주연배우의 의무일 수 있겠지만 그 스스로 ‘새로운 개념의 블록버스터’, ‘영화혁명’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관객들에게 큰 기대감을 심어줬으니. 미안하지만 이런 말을 돌려주고 싶다. “디카프리오, 상상 그 이하를 봤다.” 사실 이 영화는 홍보 단계부터 ‘매트릭스’(1999)의 상상력과 ‘다크 나이트’(2008)의 스케일이 혼합돼 있다고 주장해 왔다. 비교 한번 해보자. 일단 매트릭스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을 조종당하고 있다는 거대한 음모론을 통해 인간의 실존 문제를 제기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뒤 ‘배고파도 실존이 낫느냐.’와 ‘배부른 가상이 낫느냐.’의 질문을 던진다. 권력, 더 나아가 사회에 의해 침식되고 있는, 인간 주체성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 고민이다. 하지만 인셉션이 사용하고 있는 인간의 꿈과 무의식은 영화의 소재로 그칠 뿐이다. 꿈과 무의식이란 의미심장한 심리학적 주제를 차용해 놓고 더 나아갈 생각이 없다. 냉철한 해부가 없다.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메스만 바라보다 수술을 끝낸다. 그저 “남의 꿈속에서도 나의 무의식을 마주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부다. 매트릭스의 상상력과 철학적 고민이 아쉽다. 다음으로 다크 나이트를 보자. 놀란 감독은 닳고 닳은 ‘배트맨’ 시리즈를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한몸에 받는 역작으로 탈바꿈시켰을 정도로 대단한 감수성을 지녔다. 그 특유의 긴박감은 인셉션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인셉션은 스스로 만들어 낸 복잡한 개념들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느라 어지간히 힘을 뺀다. 그러다 갑자기 스케일이 큰 장면을 삽입시키고, 다시금 복잡한 개념설명을 이어가는 순환구조다. 비주얼 테크놀로지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게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코너로 보일 뿐이었다. 그만큼 서로 엇갈린다. 끝으로 마지막 반전. 글쎄다. 예상됐었다. 기자가 접신(接神)한 점쟁이 같은 혜안(?)을 갖지 않았음에도 영화를 보면서 왠지 그럴 것 같았다. 관객들이 마지막 부분에서 머리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을 느껴보길 원했다면, 유감스럽게도 실패다. 번뜩임이 없는, ‘아쉬운 대작’이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씨줄날줄] 친일파의 은사금(恩賜金) /최광숙 논설위원

    독립운동가 장태수(張泰秀·1841~1910)는 1910년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했다. “개와 말도 주인의 은덕을 생각하는데, 역적 신하들은 어찌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 수 있는가.”라며 통곡했다. 그는 일제가 회유책으로 권한 은사금(恩賜)을 거부했다. 24일간 식음을 전폐하다 결국 그해 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장태수가 비난한 역적들은 일왕으로부터 거액의 은사금을 받아 호사롭게 살았다. 일왕은 친일파 귀족들이 한일합방에 협조한 대가로 은사금 3000만엔을 하사했다고 한다. 최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은사금을 가장 많이 받은 친일 인사는 병합조약 체결에 직접 참여한 궁내부 대신 이재면으로 83만엔(현재 화폐가치로 약 166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순종 장인인 후작 윤택영은 50만 4000엔(100억 8000만원), 매국노 백작 이완용은 15만엔(30억원), 을사오적 송병준은 10만엔(20억원)을 각각 받았다. 은사금의 시혜를 받은 의외의 인물도 있는데 박영효다. 그는 태극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개화사상의 중심 인물로 28만엔(56억원)을 받았다. 은사금으로 친일파들은 전국의 토지를 사들였다. 이완용만 보더라도 일제 초기 소유한 땅이 여의도의 1.9배나 되는 1573만㎡에 이르렀다. 1925년 경성 최대의 현금 부호인 그는 갖고 있는 현금만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60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은사금은 친일파 귀족 외에도 효자 및 효부, 홀아비와 과부, 노인, 고아, 정신병자의 구제금 등으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민심 수습용으로 복지사업에도 은사금을 뿌린 셈이다. 은사금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일왕과 관련된 단어이다 보니 일본 귀족층 등에서 한정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도쿄 근교의 우거진 숲을 다니다 보면 은사림(恩賜林)을 볼 수 있는데 일왕이 내려준 돈으로 숲을 조성해 붙여진 이름이다. 올해는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민족정기 회복과 과거사 청산을 위해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수 있도록 특별법이 시행된 지도 벌써 5년째다. 지난해 기준으로 친일파 77명의 소유이던 여의도 면적의 70%에 달하는 토지 554만㎡를 국가로 귀속시켰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재산을 되찾으려는 소송을 계속 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은 다른 것 같다. ‘못난 조상도 다 내 복(福)’이라고 우기는 것 같아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돼지저금통/박대출 논설위원

    1961년 한 국산 영화가 개봉됐다. 제목은 돼지꿈. 주인공은 순박한 중학교 교사다. 아내, 아들과 어렵게 산다. 어느날 돼지꿈을 꾼다. 아내가 이웃의 권유를 받아 부업으로 돼지를 키운다. 그러다가 약을 팔면 큰 이익을 남긴다는 사기꾼의 꾐에 빠져 우여곡절을 겪는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로는 안성기가 나온다. 배우 이덕화, 허준호의 작고한 부친 이예춘, 허장강 등 원로 배우가 출연한다. 소설가 추식의 ‘재건주택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당시 서울신문 시나리오 공모 당선 작품이다. 60년대 한국 영화의 걸작 중 한 편으로 꼽힌다. 영어 제목은 A Dream of Fortune. A Dream of Pig가 아니다. 돼지를 직역하지 않고,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 돼지는 다산(多産)과 부(富)의 상징이다. 돼지해에 태어나면 건강하고 부귀를 누린다고 한다. 중국 당사주(唐四柱)에 나오는 사주풀이다. 그러다 보니 저금통으론 돼지가 으뜸이다. 돼지저금통은 방 안을 장식하는 단골메뉴였다. 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매개체가 됐다. 돼지저금통은 ‘개인의 경제적 영역’에서 머물러 왔다. 부모님이 사주면, 동전을 모으고, 예금통장에 붓고…. 그런데 출발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나눔의 영역’에서 비롯됐다. 미국 캔자스 주 마을에 윌버란 어린이가 있었다. 용돈 3달러로 새끼 돼지를 샀다. 돼지를 키워 판 돈으로 한센병 환자 가족을 도왔다. 그 내용이 한 신문에 소개됐다. 감동을 받은 독자들이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이웃돕기에 나섰다. 이것이 최초의 돼지저금통이다. 2002년 돼지저금통의 영역 이동이 있었다. 사적(私的), 공적(公的)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왔다. 노무현 대선 후보의 ‘희망의 돼지저금통’ 얘기다. 이회창 후보에겐 ‘절망의 돼지저금통’이 됐다. 모금운동은 노무현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논란은 대선 와중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불법 선거운동 논란은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다. 모금액의 허위 논란도 벌어졌다. 그제 돼지저금통이 또 등장했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돼지저금통 3개를 들고 전교조 사무실에 나타났다. 야당과 전교조는 ‘정치쇼’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강제로 막을 길이 없다.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조 의원은 “한 달에 한 번 내 발로 현금을 들고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우리에겐 늘 친근한 돼지저금통.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소란스러워진다. 원래 영역에 머무는 게 나을 것 같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씨줄날줄] 병역기피 논쟁/최광숙 논설위원

    “평안도의 양덕, 성천의 매 잡는 사람은 40호만 두게 하고, 그들에게는 병조에서 차첩(임명장)을 주게 했다. 첩이 없이 행세하는 자는 그 고을 관청에 군인으로 편입시키니 이 때문에 혁파된 시파지(매를 기르는 사람)가 수백호나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이다. 당시 매 사냥에 나선 임금의 수레 뒤를 따르며 보필했던 이들에게는 부역을 면제해 줬다. 자연 군역을 피하려는 이들이 청탁도 넣고 허위로 매 사냥 자격증도 위조해 사회문제가 됐나 보다. 조선시대에는 심지어 군역을 피하기 위해 승려가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병역기피 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시기는 1997년 대선 때가 아닌가 싶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 사유가 논란이 됐다. 키 179㎝의 정연씨가 45㎏의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를 받은 것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것. 아들은 소록도의 봉사활동으로 참회했으나 그 아버지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그 이후 공직사회에서는 ‘한 자리’ 하려는 아버지의 출세길을 막지 않으려는 공직자들의 아들들이 줄줄이 군입대를 자원하는 풍토가 생겨났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다 보니 어느 나라에서나 대선후보의 병역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가면서 병역의무가 면제됐다. 베트남전을 피하기 위한 병역기피가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대선전에서 한때 병역 논란에 시달렸다. 한 시민단체가 주 공군 방위군에서 복무했다는 부시의 병역기록을 증명해주는 이에게 5만달러를 주겠다며 의문을 제기하면서다. 전당대회를 앞둔 한나라당에서 병역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당 대표경선에 나선 안상수 후보의 군 면제 사유는 ‘고령’. 홍준표 후보가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20세 때 징병검사 기피로 시작된 병역문제는 입영연기, 기피, 입영후 귀가, 보충역으로 이어지다 32세에 병역에서 해방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안 후보는 “고시 공부하러 산에 가면서 통지서를 받지 못한 것이지 범법으로 입대를 기피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날 선 병역기피 논란에 안 후보가 ‘좌파 주지’로 지목했던 명진 봉은사 주지 스님이 “병역기피는 할 수 있어도 진실을 기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거론하며 병역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진실’을 감출 수 없다는 말이 더 무섭게 들린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방관 사회/함혜리 논설위원

    1964년 3월13일 새벽. 뉴욕 퀸스지역 주택가. 젊은 여인의 외마디 비명이 정적을 깼다.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자택 인근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사투를 벌이던 그녀는 무자비하게 난자당한 채 숨졌다. 그녀의 이름은 키티 제노비스. 당시 27살이었다. 범행시간 35분 동안 인근 아파트에서 사건을 목격하거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한 사람은 모두 38명이었다. 애타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제노비스를 도와주러 나오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된 것은 그녀가 사망한 지 20분이 지나서였다. 이 끔찍한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목격자들의 몰인정함에 비판의 화살이 맞추어졌다. 사회문제 전문가들은 현대 도시인들의 도덕성 결여와 소외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한 심리적 법칙의 소산이라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졌다. 뉴욕대의 존 달리, 컬럼비아대의 빕 라타네 교수는 주위에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를 주저하게 되는 방관자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변에 여러 사람이 있을 때 개인이 나서서 돕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제노비스 신드롬이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상황이 위급한 것인지 판단이 애매할 때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실제 도움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모호할 때에도 사람들은 도움을 주기를 주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책임감 분산이다. “나 말고 누군가 도와주겠지.”하는 생각에 행동을 취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제노비스 신드롬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친부모 없이 어렵게 살아 온 20대의 청년이 서울 송파구 잠실동 길거리에서 시비 끝에 집단 폭행 당해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숨졌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전 서울 영등포에서 일어난 김수철 사건 발생 당시에도 초등생 여자 어린이가 부자연스럽게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지하지 않았다. 주변의 조그만 관심이 끔찍한 범죄를 막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고 만다. 나 말고 누군가 하겠지, 행여 나에게 불똥이 떨어질까, 나중에 증인으로 경찰서에 불려가서 시간을 뺏기는 번거로움이 생길까봐, 오지랖 넓다는 소리 들을까봐서다. 범죄는 이런 무관심을 먹고 커간다. 누군가에게 미루기보다 ‘내가 먼저’ 라는 생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임을 명심하자.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연꽃과 정치인/최광숙 논설위원

    “저기 바다에 떠있는 게 연꽃 아니냐. 저렇게 큰 연꽃은 처음이다. 저 연꽃을 건져 와라.” 연꽃 속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심청이 고운 자태로 나타난다. 바닷속 용왕이 아버지 심봉사를 만나려는 심청을 연꽃에 태워 육지로 보낸 것이다. 우리 민족 심성에 살아 있는 고전 ‘심청전’의 한 장면이다. 연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게 사랑을 받아 왔다. ‘심청전’에서 연꽃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나중에 화려하게 부활한 심청의 화신(化身)이다. ‘춘향전’에서는 춘향의 청초한 모습을 물속에 핀 연꽃에 비유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침 이슬 머금고 함초롬히 핀 연꽃이 청순한 춘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으리라. 또한 연꽃은 전통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에서 예술로 승화돼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인도, 중국의 전설 등에서도 연꽃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고대 인도에서 연꽃은 다산(多産), 힘과 생명의 창조 등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속세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꽃’으로 여겼다. 서양인들의 연꽃 사랑도 이에 못지 않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모네가 말년에 그린 대작 ‘수련’이다. 인상주의파의 거장 모네는 자신이 살던 집 연못에 수련을 심고 화폭에 담아내 ‘수련’ 연작(連作)을 완성했다. 86년 생애 중 마지막 30여년을 ‘수련’ 연작에만 온힘을 쏟아부은 것을 보면 모네의 연꽃 사랑은 대단했다. 최근 경남 함안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700여년 만에 싹을 틔우고 활짝 꽃을 피워 화제가 되었다. 그 오랜 시공을 뛰어넘는 강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꽃은 불교에서 가장 대접받는 꽃이기도 하다. 진흙투성이 연못에서 자라지만 정작 자신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 부처를 닮았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다 보니 기독교 장로인 김영삼 대통령 시절 연꽃이 애꿎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랫사람들의 빗나간 충성심 때문에 청와대와 독립기념관 연못에 있던 연꽃을 모두 뽑아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총리실 민간사찰 의혹 사건을 보면서 대통령을 위한다고 큰소리치는 이들이 엉뚱하게 ‘세상의 연꽃’을 뽑아 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특히 여권 내 혼탁한 권력 싸움으로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면 그야말로 이전투구 진흙탕이 따로 없다. 그들의 마음속에 한 송이 연꽃을 품으라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스파이 교환/이춘규 논설위원

    1962년 2월10일 독일 베를린과 포츠담을 잇는 그리니커 다리 동·서쪽 끝에 각각 한 사람이 섰다. 이들은 다리를 건너가 자국 인수팀에게 갔다. 미국과 소련의 첫 스파이 교환. 미국은 뉴욕에서 고정간첩 활동을 하다 검거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대령 루돌프 아벨을 풀어줬다. 상대는 소련 영공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다 미사일을 맞고 추락한 미 중앙정보국(CIA)의 U-2기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였다. 이런 스파이 교환은 양국의 복잡한 계산이 맞아떨어질 때 가능하다. 69년에는 영국 스파이 제럴드 브룩과 소련 스파이 피터 크루거 등의 교환이 이뤄졌다. 81년에는 동독 비밀경찰 권터 기욤과 서방 스파이의 교환이 이뤄졌다. 85년에는 동구권에 수감됐던 미국 스파이들과 폴란드 스파이 마리안 자차르스키가, 86년에는 러시아 반체제 인사 샤린스키를 포함한 3명의 서방 스파이와 KGB 스파이 코처 부부가 교환됐다. 냉전체제가 붕괴된 뒤에는 전형적인 스파이 교환보다는 외교관 맞추방으로 대체됐다. 스파이는 국가나 단체의 비밀정보를 대립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 또는 단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주는 사람으로 간첩이라고 한다. 스파이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 모세를 이은 유대 지도자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여리고에 2명의 첩자를 파견했다는 구약성서 내용도 있다. 김춘추의 목숨을 건 고구려 첩보전과 백제 왕실에 미녀 스파이를 침투시킨 신라의 교란전이 없었다면 삼국통일은 어찌 됐을지 모른다. 9일 미국과 러시아 간 스파이 교환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뤄졌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 등 러시아 스파이 10명과 러시아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미국 스파이 4명이다. 스파이 스캔들이 장기화될 경우 양국이 입을 외교적, 경제적 피해를 감안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 것.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의 스파이 교환이다. 교환장소로 왜 빈이 등장할까. 19세기 말부터 오스트리아 빈은 세계 정보유통의 중심이었다. 빈은 동서유럽의 중간지대다. 1차대전을 전후한 유럽의 혼란기 때는 망명객과 난민들이 빈으로 쏟아져 들어와 정보를 교환했다. 2차대전 후 냉전체제 아래서의 빈은 중립국 수도였기 때문에 동·서독이 대치하던 독일 베를린과 함께 유럽대륙의 양대 스파이 중심지였다. 냉전이 종식된 현재도 빈에는 2000~3000명의 스파이들이 산업, 기술, 외교안보 분야에서 암약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젊은 歌客 보내는 구슬픈 이별가

    젊은 歌客 보내는 구슬픈 이별가

    노래 한 곡에 담긴 것은 그저 즐거움 혹은 사랑, 이별 등의 정조만은 아니다. 시대와의 약속,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의 어우러짐, 대의를 향한 다짐, 개인의 운명에 대한 구원 등이 고루 담긴다. 심각하게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담은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뙤약볕 아래 콩밭 노동의 힘겨움을 달래주는 민요 한 자락도, 황량한 안데스 산맥의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불렀던 머나먼 라틴대륙의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운동)도, 희뿌연 최루탄 연기 속에 쿨럭대며 불렀던 투쟁가도, 누렇게 모서리 파인 선술집 탁자 반주에 흔들거리던 뽕짝의 들썩임도…. 모두 마찬가지다. 조용호의 첫 장편소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 펴냄)는 노래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가객(歌客)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한 젊은이를 떠나보내는 구슬픈 이별가다. 나아가 노래의 선율 안팎에서 그 시대를 겪어냈던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눈물겨운 송가(送歌)다. 또한 절대자의 조롱과도 같은 운명 앞에 무기력하게 놓인 개인이 죽음으로나마 불같이 맞설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기도 하다. 조용호 자신이 젊은 시절 연행패로, 또 노래꾼으로, 노래운동을 하며 살았던 경험이 핍진하게 투영돼 있다. 작품 제목은 아르헨티나 음유시인이자 ‘누에바 칸시온’의 선구자인 아타우알파 유팡키(1908~1992)가 부른 노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그는 기타 반주를 애써 아끼며 호소력 짙은 낮은 목소리로 ‘…/ 이 밤은 왜 이다지도 기냐/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라고 노래했다. 소설은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린 시대의 노래꾼 ‘연우’와 그의 행적을 뒤쫓으며 헤매는 ‘나’와 연우의 아내 ‘승미’가 끌고 간다. 연우는 ‘나’에게 ‘나의 노래가 사라진 곳으로 떠난다.’면서 비망록을 남긴다. 비망록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종적을 감추기 전까지 자신의 짧지 않게 격정적이었던 삶을 그저 아침, 오전, 대낮, 오후, 저녁과 같이 하루의 시간으로 갈음한다. 대학 시절 연우와 함께 노래패 활동을 했던 나, 그리고 후배 승미는 연우의 비망록을 따라 그를 찾아 나선다. 비망록에 담긴 연우의 일생, 그를 찾는 숨바꼭질과 같은 과정, 젊은 시절 그들의 치열했던 시간들이 씨줄날줄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 대륙 칠레까지 가서 이대(二代)에 걸쳐 반복되는 연우와 ‘해금의 여인 선화’가 얽힌 기구한 운명의 농간까지 목도하게 된다. ‘40년을 훌쩍 넘겼을 터이건만, 돌이켜보니 그저 하루만큼의 삶일 뿐이었더라’ 하는 연우의 비망록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아온 당대 젊은이들의 바래진 청춘을 보는 듯해 가슴 저릿해진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왔던 그이들은 밤무대로, 룸살롱 밴드로 내몰려 벌거벗은 채 취객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노래가 주는 꿈에서 헤어나지도, 혹은 내버리지도 못했다. ‘기타여’의 연우, 승미, 선화의 삶이 향하는 발길은 그들과 궤적은 약간 다를지라도, 결국 본질적으로 맞닿는다. 토지문학관, 만해문학관, 연희문학창작촌을 전전하며 6년 동안 썼다고 한다. 199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뒤 단단한 단편을 주로 써온 조용호이기에 서사의 굵직함 이상으로 문체의 미려함이 돋보인다. 소설에는 실제 열일곱 곡에 이르는 노래가 침묵의 선율 속에 담겨 있다. 이 노래들이 부록으로 CD에 담겨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객의 삶과 노래의 운명을 한두 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독자들이 소설을 읽을 때 좀 덜 숨가빴을텐 데 하는 그런 아쉬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도시고속도로 유료화/노주석 논설위원

    일본에서 차를 몰아본 사람들은 살인적인 통행료에 질린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거리는 약 500㎞인데 14만원 정도의 편도 통행료를 물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수도권을 제외한 고속도로의 주말 통행료를 1000엔 미만으로 내렸다. 고속도로변 유명 음식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요즘은 더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고속도로 무료화 실험’이다. 일본 집권 민주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달 28일 0시부터 오는 2011년 3월 말까지 일본 전국 37개 노선 50구간에서 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전체 도로의 20%에 해당한다. 교통량이 60% 정도 늘어나는 등 경기활성화 낌새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야당인 자민당은 세금의 수익자 부담원칙에 어긋나며, 23조원의 증세가 불가피하고, 자동차 배출량이 늘어나고, 항공과 철도교통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특이한 사례지만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는 차량정체나 교통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 전역에 혼잡통행료 징수 시스템을 갖춰놓고 통행료를 자동부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총량을 정해놓고 자동차 구매를 제한한다. 자동차를 사려면 폐차의 차량등록증을 비싼 웃돈을 주고 공매방식으로 사들여야 한다. 차량은 오토바이를 포함해 80만대 선을 유지하고 있다. 차를 운전하려면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한다. 서울시의 싱크탱크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어제 내놓은 보고서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름하여 ‘도시고속도로 유료화 정책 도입방안 및 효과분석 연구’이다. 요약하면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유료화해 정체를 줄이고, 유지관리 재원도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1㎞당 통행료를 401원으로 잡으면 평일 출근시간대 두 도로의 총통행량이 32~35% 준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통행속도가 21~24% 빨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연간 200억원 이상의 순수입은 덤이다.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는 “내부 연구보고서에 불과할 뿐”이라며 정책 추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냄새가 난다. 떠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결코 효과만 계산해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두 도로의 유료화가 주변도로와 시내교통에 미칠 치명적인 악영향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싱가포르식 철벽통제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일본의 고속도로 무료화 배경을 생각해 보라.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씨줄날줄] 송덕비/이춘규 논설위원

    전국의 도시·마을 입구에서 송덕비(頌德碑)를 쉽게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현감의 공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불망비(不忘碑)가 다수다. 임진왜란 때 지원했던 명나라 장수 송덕비도 있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수십개씩 송덕비가 늘어선 이른바 ‘비석거리’가 많다. 지방관들의 선정을 칭송하는 글을 새겨 선정비(善政碑)라고도 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세운 송덕비였다. 마음대로 송덕비를 세울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공적 내용을 엄격히 심사했지만 엉터리도 많았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아버지의 송덕비를 세운다는 핑계로 돈을 거두어들이기도 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한 배경이다. 주민들에게 비석 건립을 강요한 관리들의 위선과 악정에 대한 분풀이로 ‘비사치기(비석차기)’ 놀이가 있을 정도다. 반대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우려 해도 끝내 사양한 청백리도 적지 않았다. 순절비(殉節碑)·충렬비(忠烈碑)·대첩비(大捷碑) 등도 있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변 높이 5.7m의 거대한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쟁하다 삼전도로 나와 항복한 뒤 세운 청 태종 공덕비이다. 굴욕의 상징이라며 고종과 주민들에 의해 두 번이나 땅 속에 묻혔다가 홍수로 드러났고, 이전을 거듭하다 371년이 지난 올 봄에야 원래 위치에 옮겨졌다. 비문의 글씨를 쓴 오준은 치욕을 참지 못해 오른손을 돌로 짓이겨 못쓰게 됐고, 벼슬도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끄러운 송덕비가 많았다. 해방 뒤 상당히 사라졌다. 을사5적 박제순 등의 송덕비는 철거 논란이 뜨거웠다. 현대에도 송덕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 경제인, 예술인 등의 송덕비가 많지만 때로는 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물론 송덕비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수백년이 지나면 풍화작용으로 내용의 해독이 어렵다. 오래 전의 한자들은 읽기 어려운 것이 많다. 이처럼 송덕비는 무상할 뿐이다. 12년간 재직하고 퇴임한 전직 동작구청장의 송덕비가 화제다. 서울 동작문화원이 지난달 30일 퇴임한 김우중(68) 전 구청장의 업적을 새긴 너비 1m, 높이 1.5m의 표지석을 최근 문화원 앞에 세웠다. 표지석에는 그의 약력과 학력, 수상 내역, 부모와 배우자의 이름 등이 쓰여 있다. 큰 덕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자발적 모금으로 세워졌다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경부고속도로와 4대강 사업/함혜리 논설위원

    1967년 4월 제6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다. 3년 전 서독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기반으로 경제부흥을 했다는 설명을 듣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의 비판과 여론의 반발은 극심했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여전히 가난한 시절이었다. 총공사비 429억 7300만원은 당시 국가예산의 23.6%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42달러에 불과했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고작 5만대였다. 재정파탄의 우려와 시기상조라는 비난 속에서 단군 이래 최초의 대규모 국책사업은 첫삽을 떴다. 1968년 2월1일 서울~수원 간 공사를 시작으로 2년 5개월 만인 1970년 7월7일 대구~대전 구간을 끝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총연장 429㎞의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됐다. 지금부터 꼭 40년 전이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전국이 1일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물류혁명이 시작된다. 전국에서 제작·생산되는 제품이 단 하루 만에 수요자에게 전달되는가 하면 대구와 부산 등 경부축 대도시에서 섬유와 신발 등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도 증가했다. 본격적인 고속도로 시대가 열리고 자동차 수요가 급증했다. 자동자 생산이 늘어나면서 제철 수요가 커지고 부품 산업이 발달하는 등 제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컸다.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경인, 호남, 남해. 구마, 영동 등 고속도로가 잇따라 뚫리고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의 격자형 간선도로망이 갖춰졌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경제뿐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패턴, 여가활동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관광지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관광·레저산업도 급격히 발달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가치 창출이었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 발표 당시와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다. 야권과 종교·환경단체 등 반대론자들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4대강 공사가 수질악화와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친환경+녹색성장’의 새 기회를 열어갈 국책 치수사업임을 강조한다. 국토 개조에 대한 인식의 틀을 통째로 바꿔놓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성공신화가 4대강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 아니면 엄청난 재앙을 부를지 예단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자동차 다니는 길과 물 흐르는 강이 다르다는 점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서울광장의 비극/육철수 논설위원

    미국의 생물학자인 개럿 하딘은 1968년 사이언스 지에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란 유명한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하자원, 초원, 공기, 호수의 물고기처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이용해야 할 자원을 시장기능에만 맡기면 고갈 위험이 크다는 이론이다. 목초지는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어느 마을에 주민 공동소유의 목초지가 있었는데, 주민들은 여기에 적당한 수의 양떼를 풀어 기르면서 불편 없이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의 한 청년이 양을 더 들여와 방목했다. 그의 수입이 늘자 다른 주민들도 앞다퉈 양을 더 풀었다. 양떼로 가득찬 풀밭은 곧 황폐해졌고, 결국 풀도 양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자원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리하거나,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해서 이용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념·정파 간 갈등은 자칫 공유지의 비극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2004년 5월 시청 앞 교차로를 없애고 조성된 서울광장은 시민의 문화예술 및 휴식 공간이 애초의 목적이었다. 조례에도 그런 용도를 명시했다. 그냥 놔두면 시위꾼들이 독점할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일부 사회·시민단체와 야당은 이곳에서 집회와 시위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서울시 주도로 광장을 사용할 게 아니라 시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사회단체 등이 모두 시민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내용물’이 서로 다른 시민이라는 게 문제다. 이번에 민주당 의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 의회가 서울광장의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겠다고 한다. 집회·시위도 명백하게 위험하지 않으면 허용하겠단다. 민주당 시의원이 75%(106석 중 79석)여서 조례 개정은 다 된 거나 마찬가지다. 조례가 개정되면 서울광장에서 문화를 갈망하는 시민과 집시의 자유를 향유하는 시민 사이의 다툼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서울광장을 개방하려면 시의회의 지혜가 필요하다. 두 부류의 시민에게 행사 날짜를 공평하게 배분하든가, 공간을 딱 절반씩 나눠 주든가 해서 일방의 독점을 막아야 한다. 이런 내용을 아예 조례에 명문으로 박아 두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서울광장의 비극은 필연이다. 서울광장이 문화공간으로 요충지인 동시에, 집시공간으로 군침을 흘릴 만한 곳이어서 이런 기구한 운명을 겪는 것 같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씨줄날줄] 축구의 正義/육철수 논설위원

    축구에는 ‘아름다운 전쟁’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실제 전쟁과 달리, 제한된 규칙 속에서 승패를 겨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빚어지는 오심과 반칙은 ‘추한 전쟁’을 보는 듯해 실망할 때가 많다. 그렇더라도 비신사적인 행위와 ‘심판의 선물’ 운운하며 승리를 낚은 팀들이 하나둘 ‘신(神)의 응징’을 받는 것을 보면 월드컵에 정의(正義)가 살아 있는 것 같아 위안을 받는다. 우루과이-가나의 월드컵 8강전에서 ‘신의 손’이 또 한 명 탄생했다. 우루과이의 수아레스다. 한국과 16강전에서 2골을 넣은 선수다. 그는 연장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이나 다름없는 가나의 슛을 손으로 막아냈다. 수아레스는 곧바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하지만 가나는 페널티킥을 실패했다. 우루과이는 승부차기에서 이겨 4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수아레스는 “팀과 국가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내 손은 2010년판 신의 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루과이 감독은 “비겁한 방법으로 승리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치 않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수아레스의 행위는 스포츠의 생명인 정정당당함을 잃었다. 그는 축구 규칙의 허점을 이용해 승리를 훔쳤다. 우루과이 국민은 열광하고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겠지만, 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상벌위원회를 열어 추가 징계를 내린다지만 경기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깨끗이 승복한 가나 감독의 말은 심금을 울린다. 라예바츠 감독은 “우리는 이렇게 질 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게 축구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루과이-가나 전은 정의가 패배한 경기다. 지금까지는…. 노자(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이라 했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긴 듯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렷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앙리의 핸들링 반칙으로 본선에 오른 프랑스는 예선리그 꼴찌로 보따리를 쌌다. 예선리그 코트디부아르전에서 핸들링 반칙으로 골을 넣은 브라질은 8강에서 멈췄다. 한국과의 경기에서 오프사이드 반칙으로 골을 거저 얻은 아르헨티나는 8강전에서 독일에 참패했다. 심판의 오심과 선수의 반칙에 대해 신이 이렇게 마무리한 게 우연일까. 우루과이는 물론이고,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오심 탓에 결정적인 골을 덕 본 독일이 남은 경기에서 ‘하늘의 그물’을 피할 수 있을까. 정의를 위한 ‘신의 심판’이 궁금해진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씨줄날줄] 택시 드라이버/최광숙 논설위원

    뉴욕 밤거리를 운전하는 외로운 택시 드라이버(운전기사).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남자 주인공인 트래비스는 빈민가 지역에서 택시를 몬다.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한 주인공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작은 택시 공간에서 고립된 그는 오로지 사회의 악을 쓸어버려야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다. 어느날 12살 어린 창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를 만나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어린 창녀를 구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아이리스의 포주를 총으로 쏴버린 것. 명감독 스코세이지는 택시 드라이버를 현대사회의 상처입은 영혼으로 설정했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택시 운전기사를 통해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온갖 이야기를 귀동냥할 수 있다. 세상 민심을 알려주는 ’세상 통신원’이 따로 없다. 우리 정치인들이 택시 운전을 ‘서민정치’ 실현의 홍보수단으로 할용하는 이유가 다 거기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 쇼라고 하지만 분명 배우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민심 탐방을 내세워 택시 운전기사를 했다. 노태우 비자금 청문회 스타였던 박계동 전 의원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하자 택시 핸들을 잡았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변호사를 하기 전에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 하지만 과거 처음 택시가 거리에 등장한 1910년대만 해도 택시 운전기사는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1912년 서울 낙산 부자 이봉래가 일본인 2명과 함게 ‘포드 T 형’ 승용차 2대를 도입, 택시를 만들면서 등장한 최첨단 직업이 택시 운전기사다. 1920년대 쌀 한 가마 가격이 6~7원인데 택시를 전세내 서울시내를 한 바퀴 도는 운임이 6원. 택시운전기사의 월급은 쌀 스무 가마 가치였다고 한다. 택시가 귀하니 자연 운전기사는 고액 연봉을 받는 최고의 전문직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운전자격증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직업이 택시 운전기사다. 그들의 경력을 걸러주는 장치가 없다 보니 자연 범죄에 노출되기 쉬워졌다. 3명을 연속 살해한 택시 운전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뒷좌석에 앉은 여성 손님에게 못된 짓을 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최근 내년부터 성범죄 전과자들에게 택시 운전을 못하도록 했다. 강도 살인이나 마약 범죄 관련자도 5년간 택시운전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따뜻한 영혼을 지닌 택시 드라이버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알몸투시기/박대출 논설위원

    미국 시민권 보유자인 A씨. 요즘 서울에서 주로 지낸다. 대수술을 받아 몸 속에 보형물이 박혀 있다. 최근 미국 공항에서 곤욕을 치렀다. 검색대를 지나는데 경고음이 나왔다. 보형물 때문이었다. 검색요원에게 설명해도 허사였다. 검사실로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당했다. 인권 침해에 분개했다. 알몸투시기가 더 편했을 것이라는 하소연이다. 알몸투시기 논란이 거세다. A씨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반대론은 인권 침해를 근거로 삼는다. 찬성론은 시민 안전이 명분이다. 최근엔 후자가 힘을 얻는 추세다. 알몸투시기를 가동하는 공항들이 늘고 있다. 인천공항 등 국내의 4개 국제공항에도 설치됐다. 국가인권위가 설치 금지를 권고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46.4%로 반대 33.7%보다 높다. 미국 여행객 78%가 찬성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폭발물 등 테러장비를 숨기려고 온갖 수법을 동원한다. 웬만한 검색 기법으론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이 아픈 기억이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사용한 폭탄은 C4 350g과 PLX 액체폭탄 750㏄. 당시 공항 검색대에서는 탐지가 어려웠다. 테러와의 전쟁은 진화 중이다. 공항 검색대는 첨단 장비들로 바뀌고 있다. 미국 보스턴과 LA 공항,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에는 냄새로 탐색하는 장비가 운영되고 있다. 공기를 쏘아 몸이나 옷에 묻은 폭발물 흔적을 찾아내는 검색대도 개발됐다. 4중 극자공명장치는 주파수가 낮은 라디오전파를 쏘면 폭발물 원자가 특이한 주파수를 나타낸다. 1시간에 350개 화물을 검사할 수 있다. 후방산란 X선 투시기. 저출력 X선을 쪼여 금속·비금속 물체를 3차원 영상으로 보여준다. 칼이나 권총, 폭발물, 마약 등을 빠르게 탐지할 수 있다. 문제는 신체 부위도 그대로 투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알몸스캐너(FULL- BODY scanner), 즉 알몸투시기로 불린다.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무력화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유럽 공항을 돌면서 실험까지 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정부는 이달 중순부터 알몸투시기를 가동한다. 인권 보호가 급선무다. 일각에선 유명 연예인 등에게 악용되는 상황을 걱정한다. 그들의 알몸 투시 사진이 ‘몰카’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상황을 가정하기도 한다. 기우에 그치려면 빈틈 없는 관리가 필수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씨줄날줄] 우측보행 시대/함혜리 논설위원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 가장 널리 사용된 교통수단은 마차였다. 마차에서는 마부가 오른 쪽에 앉아야 채찍을 휘두르기 쉽고, 왼쪽의 승객이 안전할 수 있다. 오른쪽에 마부가 앉는 관습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제작되고 증기 자동차가 실용화되는 과정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한편 1885년 가솔린 3륜 자동차를 만들어 시운전에 성공한 독일의 칼 벤츠는 운전석을 왼쪽에 둔 자동차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여서 운전석을 왼쪽에 두는 것이 기어를 변속하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대륙 국가들과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능성을 감안한 왼쪽 운전석 방식을 따랐지만 보수적이고 자존심 강한 영국에서만은 오른쪽 운전석 방식을 버리지 않았다. 영연방 국가들과 영국의 기술 혹은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 태국 등도 오른쪽 운전석 방식을 따르고 있다. 왼쪽에 운전석이 있는 나라는 자동차가 도로의 오른쪽을 이용하는 우측 통행 방식을, 반대로 우측에 운전석이 있는 나라는 자동차가 도로의 왼쪽을 이용하는 좌측 통행 방식을 사용한다. 자동차가 우측 통행이면 사람도 우측 통행이고, 자동차가 좌측 통행이면 사람도 좌측 통행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우측 통행과 좌측 보행이 뒤섞여 있었다. 원래 1905년 대한제국의 경무청령에서는 우측 보행을 규정했으나 일제시대인 1921년 조선총독부령 ‘도로취체규칙’에 의해 일본과 같은 좌측 보행으로 바뀌었다. 자동차의 우측 통행은 미군정청에 의해 1946년 결정됐다. 뒤섞인 좌우통행방식을 통일해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차에 정부가 지난해 4월 제1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교통운영체계 선진화방안으로 우측 보행을 확정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하철역과 공항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시범 시행을 거쳐 오늘부터 본격 시행된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오른손잡이인 나라에서 우측 보행은 보행 편의와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보행안전사고와 교통사고 감소효과가 크다고 한다. 좋은 정책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반발도 컸다. 우측 보행을 선진교통문화라는 식으로 논리를 펴며 강제하는 것이 문제였다. “우파정부가 들어서 우측통행을 시행하느냐?”,“ 왜 걷는 방향까지 정부가 일률적으로 강요하느냐?”며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이왕에 결정된 것, 왈가왈부할 것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좌·우가 아니라 보행자의 편리와 안전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새만금 통선문(通船門)/노주석 논설위원

    통선문(通船門)이란 말 그대로 배가 드나드는 ‘열린 나루’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통선문이 설치된 곳은 영산호다. 1981년에 준공된 영산호 갑문은 높이 13.6m, 너비 30m로 당시로서는 동양최대 규모였다. 물을 바다로 빼내 범람을 막고, 담수호의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갑문 옆에 문을 만들어 30t급 선박이 수위에 관계없이 출입을 하게 한 것이 통선문의 시초였다. 정부는 4대 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영산강의 죽산보에 통선문을 설치해 배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황포돛배와 고대 나주선이 오갈 수 있고, 내륙에서 강을 통해 바다로 연결되는 리버크루즈선을 띄우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들어 있다. 그러나 ‘수중 보의 설치는 대운하의 전제’라면서 반대하는 시민·환경단체들은 통선문 확장사업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통선문도 만병통치약은 아닌 셈이다. 전북 군산시 비응도와 부안군 변산반도를 잇는 길이 33㎞의 새만금 방조제의 일부를 허물어 통선문을 내기로 했다는 정부의 계획이 어제 언론에 보도됐다. 지난 4월27일 준공될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길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그 방조제에 구멍을 내겠다는 것이다. 19년 동안 3조 8000억원을 투입해 지은 방조제에 ‘작은 문’을 내는 비용은 물경 7900억원이다. ‘막자마자 트는 주먹구구 공사’ ‘새만금 방조제는 모래성’이란 비난과 질책이 뒤따르고 있다. 욕을 먹어도 싸다. 사정을 알고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새로 생긴 세종시의 5.7배에 이르는 땅을 메울 흙을 운반하려고 새 방조제를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만금 간척지를 메우려면 4대 강 전체에서 파낸 흙 5억 2000만㎥보다 많은 7억㎥의 흙이 필요한데, 운반비용을 계산해 보니 통선문을 만들어 배로 바닷모래를 운반하는 것이 가장 싸게 든다는 얘기다. 이 경우 매립비용은 3조 7000억원 정도로 추정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노무현 정권 때인 2008년 새만금매립지가 농업용지에서 명품복합도시로 용도가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관계자들은 용도를 바꾸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방조제 공사는 사실상 완료단계였다고 변명하고 있다. 서울시내 초등학생과 중학생 전원에게 1년간 무상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 예산이 4300억원이라는 통계가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시됐다. 관리들이 멀쩡한 방조제를 허물지 않도록 잘 챙겼으면 2년간 무상급식이 가능했다. 책임질 자 누구인가.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씨줄날줄] 도둑 맞은 골/육철수 논설위원

    월드컵 축구대회는 지역예선과 본선에 걸쳐 2년여의 레이스를 펼친다. 남아공 월드컵에는 대륙별 예선을 포함해 세계 206개국이 참가했다. TV시청 연인원이 263억명으로 추산될 만큼 지구촌 대축제다. 그런데 심판의 잦은 오심으로 경기의 흐름과 결과가 달라져 실망스럽다. 오심은 선수와 팀에 치명타가 되고, 한 나라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월드컵 16강, 8강, 4강, 우승은 실력에 덧붙여 심판과 신(神)의 도움 없이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도 오심과 ´신의 장난´에 웃고 울었다. 아르헨티나와의 예선리그 경기에서 박주영의 무릎을 스치고 우리 골문으로 빨려들어간 골은 온전히 신의 뜻이었다. 반면 1대2로 뒤지다가 먹은 세 번째 골은 명백한 오프사이드 반칙이었다. 그러나 심판은 골로 인정했고 태극전사들의 추격 의지를 꺾어놓았다. 신의 뜻과 오심이 없었다면 경기 결과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과 잉글랜드의 16강전에서 대형 오심이 있었다. 1대2로 뒤지던 잉글랜드가 전반 38분 골을 넣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크로스바를 맞은 공은 누가 봐도 골문 안쪽에 떨어졌다. 오심으로 동점 기회를 놓친 잉글랜드는 기가 푹 죽었고, 결국 1대4로 대패했다. 이어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전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선제골은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 멕시코 선수들 역시 사기가 뚝 떨어졌고 1대3으로 지고 말았다. 눈깜짝할 새 벌어지는 경기상황에서 심판의 오심은 인간의 한계일 수 있다. 그러나 오심이 경기의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정당한 골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프사이드, 핸들링 반칙 등에 의한 골은 당하는 팀으로선 ‘도둑 맞은 골’이다. 결승전까지 가는 동안 또 어느 나라 팀과 국민이 오심 탓에 땅을 칠지 모른다. 첨단시대에 인간의 오심으로 세계인의 축제가 더 이상 훼손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대안은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는 길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판정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야 한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다. 현재 기술로 그라운드의 심판들과 비디오 판독관 사이에 얼마든지 경기중단 없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육상에서는 1만분의1초까지 비디오로 판독하며, 펜싱·테니스 등 여러 종목에서도 이를 채택하고 있다. 월드컵 중계료 등으로 4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면서 비디오 판독기 운영을 외면하면 곤란하다. 권위 있는 월드컵을 위해서 공정성은 생명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씨줄날줄]軍과 문민통제/노주석 논설위원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맥아더(1880~1964) 원수는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전설적 군인이자 당대 누구 못지않은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정치감각은 좀 지나친 측면이 있었다. 태평양전쟁 초기 3개월 동안 태평양사령부에서 나온 언론성명서 142건 중 109건이 맥아더 장군의 이름으로 공식발표됐다. 다른 장교의 이름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모든 공문서 표지에 ‘맥아더사령부’라는 겉표지를 따로 붙였다. 이 시기 사령부는 공식 명칭 대신 맥아더사령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병력감축 문제를 놓고 맥아더와 갈등을 빚던 트루먼 행정부는 1945년 9월과 10월 두 차례 맥아더에게 귀국을 요청했다. ‘요청’이라는 격식을 갖췄지만 사실상 군통수권자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최고 연장자이며 선임 장교인 맥아더는 불응했다. 맥아더는 너무 바쁘고 위험하기 때문에 도쿄를 떠날 수 없다는 이유를 대 트루먼을 격앙시켰다. 야심만만하던 맥아더는 자신이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에 필적하는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그저 그런’ 대통령에 불과했다. 맥아더는 이 사안의 중요성과 의미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아마 나는 역사상 본국으로 소환하려는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첫 번째 군인이 될 거야. 할 일이 많아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할 작정이야.”라고 보좌관에게 말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후에도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미국의 타이완 정책을 놓고 정부와 장군 간 불협화음이 계속됐지만, 맥아더의 대중적 인기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대통령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51년 4월11일 마침내 트루먼은 대통령의 안보정책에 관한 함구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한 맥아더를 명령 불복종으로 해임했다. 트루먼은 탄핵위기를 맞았고, 맥아더의 해임에 반대하는 여론에 의해 미국에는 헌정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미국 국민과 의회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Civil Control )’ 원칙을 수호했다.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도 ‘군은 항상 민정당국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이 해임되지 않으면 민정당국의 군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됐다고 미국 국민이 비난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면서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아프간 정책을 비판한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을 소환해 전격 경질했다. 맥아더 이후 60년 만의 항명장군 파동이지만 미국의 문민통제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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