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씨줄날줄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폭발사고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음주 운전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전체회의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학자금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19
  • [씨줄날줄] 우주인 논란/안미현 논설위원

    요즘 장안의 화제인 영화 ‘그래비티’는 우주 미아가 된 우주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생명의 끈을 놓아야 하는 순간, 베테랑 우주인(조지 클루니)은 시시껄렁한 ‘작업 멘트’와 함께 전임자의 우주 유영 기록을 깨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세계 최초로 우주 유영을 한 이는 옛 소련의 알렉세이 레오노프다. 1965년 3월 18일 우주선 밖으로 나가 12분 동안 우주를 유영했다. 그런데 우주복이 팽창해 하마터면 미아가 될 뻔 했다. 밸브를 열어 우주복 압력을 빼낸 뒤 간신히 우주선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레오노프가 짜릿한 우주 산책을 처음으로 즐겼다면, 유리 가가린은 우주 문턱을 넘은 세계 최초의 우주인이다.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나가 우주에서의 지구를 감상했다. 귀환하면서 남긴 말이 저 유명한 “지구는 푸른빛이다”이다. 최초로 골프 티샷을 한 우주인도 있다. 가가린보다 한 달쯤 뒤에 우주로 나간 미국인 앨런 셰퍼드는 최초 기록을 놓친 게 아쉬웠는지 몰래 준비한 골프채를 꺼내 휘둘렀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35)씨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1만 8000대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이씨는 2008년 4월 8일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갔다. 이때도 남의 나라 우주선을 차비를 내고 탄 것뿐이니 ‘우주관광객’이라는 주장과, 우주에서 일정 실험을 한 만큼 ‘우주인’이라는 반론이 맞서 시끌시끌했다. 최재천 민주당 의원은 그제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256억여원의 국민세금을 들인 우주인 프로젝트가 후속사업 미비 등으로 일회용 쇼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이씨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밟고 있고, 또 다른 우주인 후보 고산씨는 3D프린터 사업을 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방은 더 커졌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미국 국적의 교포의사와 결혼한 것까지 문제 삼아 ‘먹튀’라고 비방한다. 애초 국민 공모라는 이벤트로 접근해 비전공자를 우주인으로 뽑은 것부터가 잘못이고, 단순한 우주비행 참가를 우주시대 개척이라며 뻥튀기한 정부의 자업자득이라는 반박도 팽팽하다. 이씨나 고씨나 우주인 프로젝트에 따른 의무봉사 기간(2년)은 끝난 상태다. 엄밀히 따지면 자유의 몸이니 어떤 삶을 살든 두 사람의 선택이다. 항우연은 이씨가 “미국 국적을 딸 생각이 없으며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말이 꼭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이씨의 어깨에 얹어진 우주인의 꿈과 경험이 너무 소중하지 않은가. 출발이 쇼든 아니든 256억원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은가.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씨줄날줄] 황혼이혼/박현갑 논설위원

    10여년 전 일본에서 유행처럼 확산하던 ‘황혼이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사로 확인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3만 쌍이 결혼해 11만 쌍이 이혼했고, 이혼 4쌍 가운데 한쌍(26.4%)은 결혼생활 20년 이상의 이른바 황혼이혼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혼사유는 성격차, 경제문제, 배우자 부정 순이었다. 특히 4년 미만의 ‘신혼이혼’(24.6%)을 앞질러 주목된다. 황혼이혼은 가정의 해체는 물론 고독사, 극단적 자살 등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사회의 위기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민법에 재판상 이혼 사유는 모두 6가지다. 배우자의 부정행위,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사유가 있을 때 등이다.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말고는 대체로 애매모호하다. 결국 이혼 청구 당시 사회통념이 잣대가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황혼이혼의 일상화는 사회통념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거나 “다 늙어 주책 바가지처럼 이혼해서 뭐 하느냐”는 수동적 인생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여성 노년층의 인생관이 자식이나 주변의 이목보다는 자신의 노후 행복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에는 늘어난 기대수명과 명예퇴직, 여성의 사회적 지위상승 등 여러 요인이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끝내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고집하다간 경제력 있는 아내와 충돌하게 되고 결국엔 갈라서게 된다는 것이다. 세대별 이혼사유를 소개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50대는 외출하는 아내 따라나서다 이혼당하고, 60대는 살만 닿아도, 70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혼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로 명예퇴직자들이 늘어난 가정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소중한 것을 묻는 조사에서 남편들은 아내, 부인, 마누라, 아기 엄마, 집사람 등 ‘일편단심’이었으나 정작 배우자 인식은 달랐다. 돈, 건강, 딸, 친구, 연속극 등을 꼽았다고 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려면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배우자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인생반려자로서 존중하는 자세가 관건이다. ‘누구누구의 엄마와 아내’라는 종속개념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동반자’라는 대등관계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씨줄날줄]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안미현 논설위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 입사했다. 이때 나이 열아홉. 배치된 곳은 2라인 식각공정이었다. 벤젠 등 화학물질이 담긴 수조에 반도체 판을 담갔다가 꺼내는 이른바 ‘퐁당퐁당’ 담당이었다. 속이 메스꺼웠지만 참았다. 하지만 두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2003년 12월 회사를 그만뒀다. 2008년 4월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2009년 11월 24일 스물아홉 살의 김경미씨는 어린 아들을 두고 끝내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약 4년이 흐른 지난 18일. 서울행정법원은 고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백혈병의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동안 발암물질을 포함한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이 발생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산재 인정 배경을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고인이 어떤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는 영업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기흥공장의 발암성 물질이 일반적인 대기 수준이라는 측정 결과를 제시하며 백혈병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김씨가 충분한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삼성의 측정 결과보다 많은 양의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 반도체 공장 직원이 산재 인정을 받은 것은 세 번째다. 2011년 6월 법원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이숙영씨에게 산재를 처음 인정했다. 2007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황씨도 고(故) 김씨처럼 ‘퐁당퐁당’ 조였다. 딸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6년 넘게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황씨 아버지의 이야기는 영화(‘또 하나의 가족’)로도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다. 10억원의 제작비 가운데 2억여원을 시민 700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금(소셜 펀딩)해 외신에도 소개됐다. 이미 세상을 떠난 6명 외에도 9명이 삼성전자 근무 뒤 뇌종양, 재생불량성 빈혈, 난소암 등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앞서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건강보험공단의 ‘진료비 청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산업 종사 여성노동자의 자연유산 위험도가 비경제활동 여성보다 최고 1.8배나 높다고 지난 13일 공개했다. 잇단 산재 인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올해 ‘신경영 20년’을 맞은 삼성은 여전히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다음 달 1일 뇌종양을 앓고 있는 삼성전자 퇴사직원 한혜경씨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씨줄날줄] 로비스트의 명암/최광숙 논설위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에서도 요즘 잘나가는 코너 중의 하나가 ‘로비스트’다. 몸뻬 바지의 뽀글이 파마를 한 개그우먼 박지선과 김민경이 바로 아줌마 로비스트들이다. 이들은 영국의 명문 축구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사러 가서는 “3조 6000억원 달라”는 구단을 “그냥 3억에 줘”라며 가격을 후려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전개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실제 로비스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정서가 있는 게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각종 특혜 의혹과 스캔들의 중심에 섰던 린다 김이 거기에 한몫했다. 현직 국방장관과 전직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샌타바버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 한 그 추억을 음미하며… 안아보고 싶다”는 진한 러브 레터를 받았던 미모의 로비스트를 누군들 곱게 볼까.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권력형 비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관여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 정권 실세들이 감옥행을 한 것도 모두 음지에서 로비스트로 활동을 하다가 철퇴를 맞은 것 아닌가. 정몽준 의원 등이 지난 17대 국회에서 부패 근절을 위해 로비스트를 양성화하자는 관련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 미국처럼 국회와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로비스트의 등록을 의무화해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거래를 없애자는 취지였다. ‘로비의 제도화’의 저자 조승민 연세대 객원교수는 “로비스트의 양성화로 정부의 정책 결정에 어떤 이익집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이 공개됨으로써 국민들의 알권리를 확보하게 되고, 정치자금 등도 투명하게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비스트의 양성화가 마치 불법 로비활동을 용인하는 것처럼 오해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로비스트연맹’이 앞으로 로비스트라는 단어 대신 대(對)정부 전문가로 불러달라고 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로비스트가 단순히 의회를 돌아다니며 입법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홍보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국정감사가 열리는 요즘 기업에서 대국회·정부 업무를 위해 정·관계 인물의 영입에 적극 나서면서 국회 보좌관들의 몸값이 상한가라고 한다. 대국회·대정부 로비스트로서 이들이 무슨 일을 할 지는 짐작이 간다. 이들의 활동을 바라만 봐야는지, 아니면 로비스트를 합법화해 이들의 활동을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국민들의 감시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더 나은지 꼽씹어 보게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관광경찰/박현갑 논설위원

    ‘Tourist Police.’ 우리말로 관광경찰이다. 그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관광경찰 발대식이 있었다. 101명의 한국관광 지킴이들이다. 이들은 명동, 이태원, 인사동, 청계천 등 서울시내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를 순찰한다. 업무는 관광지 범죄예방 및 기초질서 유지, 외래 관광객 대상 불법행위 단속·수사, 외래 관광객의 관광불편사항 처리 등이다. 외래 관광객들은 바가지 요금이나 환불 거부 등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가까이 있는 관광경찰에게나 관광 안내전화(1330)로 신고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광경찰은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경찰청은 내년에는 부산, 제주, 인천 등지로 관광경찰 도입을 확대할 예정이란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관광객이 1100만명을 돌파했다. 외래 방문객이 500만명이었던 2000년에 비해 곱절 이상 늘어난 셈이다. 2015년 무렵엔 150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관광대국처럼 관광을 산업자원으로 활용한 기본 토대는 구축된 셈이다. 그런데 외국 관광객들을 ‘봉’으로 인식하는 수준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09년 468건이었던 외국 관광객 상대 범죄는 지난해엔 897건으로 늘었다. 지난 5년간 외래 관광객 불편신고 중 환불 거부, 가격표시제 미실시 등 쇼핑과 관련한 불편신고도 해마다 증가했다. 2008년 23.6%에서 2012년에 34.7%로 늘었다. 택시 바가지요금, 콜밴 불법 영업 등 교통 불편사항도 해마다 전체 불편신고의 15~ 20%를 차지한다. 이러한 불편사항은 우리나라 관광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결국 재방문을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다. 관광경찰은 이런 연유로 도입됐다.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이다. 또 외화획득, 고용창출, 투자촉진 등 다양한 파급 효과를 유발하는 고부가가치산업이다. 게다가 사람의 관심사가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문화, 레저 등 정신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더 주목받고 있다. 교통과 정보통신 발달로 관광산업을 둘러싼 각 국 간 경쟁도 치열하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1985년부터 관광경찰을 운영해 오고 있다. 태국의 휴양지 푸껫에서도 관광경찰이 ‘1155’라는 관광객 안내전화로 관광객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5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만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사회적 자산은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풍부하다. 관광경찰이 코리아 이미지도 개선하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작은 주춧돌이 되기를 바란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씨줄날줄] 입도세/오승호 논설위원

    시카고는 여행객에게 부과하는 세금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초에는 호텔세를 3.5%에서 4.5%로 올려 총 호텔세는 16.4%로 높아졌다. 시카고 인기 여행지의 경우 하루 여행에 지출되는 세금이 40달러 31센트라는 조사도 있다. 세금은 소비자 행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US여행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높은 여행세 때문에 더 저렴한 호텔에 머무는 등 여행 계획을 바꾼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49%나 됐다. 응답자의 10%는 세금 때문에 여행지를 바꿨다고 했다. 호놀룰루나 올랜도 등 여행객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도시들이 여행세를 너무 많이 부과하지 않으려는 이유일 것이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2010년 시위세(稅) 도입을 추진한 적이 있다. 크고 작은 시위로 로마가 몸살을 앓는 것이 계기였다. 당시 지아니 알레마노 로마 시장은 “노조원 등 수천명이 로마에 몰려올 때는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 “청소와 경찰병력 동원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시에서만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시위세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같은 해 로마는 호텔에 머무는 여행객에게 최고 10유로의 여행세 징수 방안을 내놓았다가 관광업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관광객에게 사실상 입도세(入島稅)인 ‘환경기여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환경수도 조성 지원특별법 제정안’ 에 따르면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환경기여금으로 항공 또는 선박 이용료의 2%를 내도록 되어 있다. 용역을 맡은 한국법제연구원은 2%를 상한선으로, 초기에는 1% 선으로 시작해 저항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경기여금은 생물 다양성 증진, 온실가스 배출 저감, 훼손된 환경 복원 등 제주를 ‘세계환경수도’로 조성하기 위한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3관왕인 제주도는 2020년까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인증하는 사상 첫 세계환경수도가 되는 것을 목표로 연말까지 특별법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주도는 올 들어 그저께 외국인 관광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1980년 연 2만명의 100배 수준으로, 눈부신 성장세다. 환경기여금은 항공료나 선박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항공사나 여행사는 유류할증료와 각종 세금을 모두 포함한 항공요금의 총액을 광고에 표기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환경기여금이 관광객 감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한번 발길을 돌린 관광객을 다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씨줄날줄] 애물단지 공중전화/손성진 수석논설위원

    한국 최초의 전화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하고 나서 20년이 지난 1896년 덕수궁에 가설되었는데 공무용이었다. 당시 전화는 ‘텔레폰’(telephone)의 음을 딴 ‘덕율풍’(德律風), ‘다리풍’(?釐風)이나 ‘전어기’(傳語機), ‘어화통’(語話筒) 등으로 불렸다. 한국 최초의 공중전화는 언제 생겼을까. 1902년 3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개통되었는데 교환시설을 갖춘 ‘전화소’라는 관서가 설치됐다. 일반인도 이곳에서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전화소는 1902년 한성·인천·개성에, 이듬해엔 평양·수원·마포·도동(남대문)·시흥(영등포)·경교(서대문) 등 아홉 곳에 설치됐다. 이 전화소를 최초의 공중전화로 볼 수 있겠다. 전화소에는 장리(掌吏)라는 관리가 있어서 교환원 역할을 하면서 요금도 받았다. 말이 들릴락말락하는 거리에 앉아서 통화 내용을 감시하기도 했다. 장리는 저속하거나 불온한 말을 하면 통화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외국인 사용자들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요금은 서울에서 인천까지 5분에 50전이었고 전화 받을 사람을 불러주는 호출 서비스도 있었는데 거리 1리마다 2전씩 더 내야 했다. 6·25전쟁으로 전화시설이 대부분 파괴되고 1954년 8월 첫 공중전화가 설치되었는데 사람이 지키는 유인(有人) 공중전화였다. 옥외 무인공중전화기는 1962년 7월 1일 첫선을 보였다. 주홍색의 ‘벽괘(壁掛)형’이다. 한 통을 거는 요금은 5원이었다. 이때부터 명실공히 공중전화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공중전화는 그 뒤 변신을 거듭했다. 구멍가게에도 탁상형 공중전화가 있어서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 수 있었다. 1971년 DDD라 부르는, 교환원 없이도 걸 수 있는 장거리 직통 전화가 개통되었고 DDD 공중전화도 1977년 등장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공중전화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0년 5만 8017대였던 공중전화는 1999년 56만 4054대까지 늘어났다가 지난해 말에는 7만 6783대로 줄었다. 한달에 한명도 사용하지 않는 공중전화가 전국에 200대가 넘는다고 한다. 1990년대 말에는 공중전화 옆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행위를 과소비의 전형이라고 욕하기도 했을 만큼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말이다. 공중전화는 한달에 500대꼴로 철거되고 있다. 5년 동안 1700억원의 적자를 보았다고 하니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다. 그래도 공중전화는 휴대전화가 없는 극빈층이나 군인 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연락 수단이다. 길게 늘어서서 통화 차례를 기다리던 추억 또한 아직 공중전화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심수관과 도자기 역사/서동철 논설위원

    중국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鎭)은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는 1000년 가까이 세계 도자기의 메카였다. 징더전의 관요(官窯)에서 생산된 청화백자는 이슬람 세계를 넘어 유럽에 수출돼 왕실과 귀족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유럽 고성(古城)에 가면 어디서든 영주들이 쓰던 청화백자 몇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은 그릇조차 전시관에 애지중지 모셔 놓은 것을 보면 유럽에 불던 청화백자의 열풍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1602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가 중국산 도자기 수십만 점을 실은 포르투갈 상선 캐슬리나호를 약탈했다. 암스테르담으로 수송된 도자기는 경매에 부쳐졌는데 구름같이 몰려든 응찰자는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이었다. 프랑스왕 앙리 4세와 영국왕 제임스 1세도 백자 식기를 낙찰받았다고 한다. 청화백자의 명성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징더전의 청화백자는 한동안 명맥이 끊긴다. 1616년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면서 극도의 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징더전은 1620~1630년대 가마에 불을 지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후금이 건국한 청나라는 한동안 도자기 교역을 금지시킨다. 청화백자의 주문은 넘쳐나는데 공급이 완전히 막히자 유럽 상인들은 대안을 찾아나서야 했다. 혼란의 틈을 파고든 것이 일본 도자기다. 일본의 도자기 역사는 다도(茶道)와 궤를 같이한다. 일본의 차문화는 16세기 중반 선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센노 리큐의 다도가 유행하면서 소박한 조선 막사발이 각광받는다. 자연히 조선 도공의 명성은 높아졌고, 부산과 김해 민간 자기소와의 교역도 시작됐다. 한편으로 일본은 징더전이 청화백자를 수출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징더전 것을 흉내내어 청화백자를 만들기도 했지만 품질은 크게 뒤졌다. 이런 상황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혁신하는 계기가 됐다. 명청 교체의 혼란기에 조선 출신 도공이 주축이 되어 생산을 시작한 일본의 청화백자는 빠르게 유럽시장을 파고들었다. 임진·정유 양난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심수관 도예전이 어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막을 열었다. 알려진 대로 남원 출신의 심수관은 일본의 도자기를 국제화한 조선 도공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존재이다. 이번에는 심수관의 12대부터 15대까지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도자기 역사를 한번쯤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통화 스와프의 진화?/문소영 논설위원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100억 달러 규모의 양자 통화스와프를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인도네시아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외환 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네시아와의 이례적 통화스와프는 양날의 칼일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외환 안정성을 떨어뜨릴 위험성과 원화를 무역결제 통화로 직접 사용해 원화의 국제화를 도모할 수 있는 이점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이 박근혜 대통령과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난 12일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즉 CEPA 협상을 연내에 타결하기로 합의한 직후에 나와 주목된다. 양국은 올해 수교 40주년을 맞았다. 에너지·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교역 규모는 약 300억 달러 수준. 양국 간 통화스와프 규모를 달러로 표현하니 서로 달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원화(KRW)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IDR)가 교환되는 것이다. 통화스와프 한도 안에서 무역대금을 양국의 화폐로 결제하면, 달러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의 3분의1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석유 등 원자재 수입액이 2012년 3282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62% 차지한다. 이번 합의로 인도네시아의 철, 니켈, 석유, 가스를 달러 환율 변동에 덜 영향받고 수입할 수 있다. 올여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리스크가 높아지자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 자본이 순식간에 빠져나가 루피아화의 가치가 폭락하는 등 몸살을 앓았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으로 동남아시아 신흥국들이 어떤 타격을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는 한국과의 통화스와프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외환위기의 안전판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통화스와프 발표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로 혹여 달러 가뭄이 닥칠까 우려했던 정부와 한국은행이 한·미, 한·중·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무사히 위기를 넘기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5년 전과 현재 한국의 위상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동남아시아 신흥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지만, 대체 투자처로 인식된 한국 증시에는 10조원 가까운 자금이 유입됐다. 한국과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는 동남아 국가가 더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에서는 동남아 국가와의 통화스와프로 원화의 국제화에 시동을 걸고, 지역적 경제연대를 강화할 생각인 것 같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맥도날드 할머니/문소영 논설위원

    권하자씨는 한국외국어대 불문과 59학번으로 1976년부터 1991년까지 외무부(현재 외교통상부) 직원으로 일했던 재원이었다. 대학에서 ‘5월의 여왕(메이퀸)’으로 뽑히기까지 했다. 그가 ‘맥도날드 할머니’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10년 한 방송국에서 그를 취재한 덕분이다. 그는 매일 밤 9시가 되면 서울 정동의 맥도날드에 나타나 새벽 4시까지 새우잠을 자다가 사라진다고 해 그런 별명을 얻었다. 맥도날드에서 7시간의 밤을 보낸 그는 교회에서 다시 4시간을, 이후 광화문 스타벅스 등에서 13시간이나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무렵, 서울 광화문 스타벅스 2층에서 간혹 부딪치던, 몸피가 자그마한 인텔리 할머니가 낡은 신문들을 들고 다녀서 눈여겨봤는데, 맥도날드 할머니 보도 이후로 누구인지 알게 됐다. 통칭 ‘맥도날드 할머니’가 된 그가 지난 7월 12일 송파새희망요양방원에서 무연고 변사자로 처리돼 사망했다는 소식이 3개월 뒤인 지난 10일 전해졌다. 지난 5월 서울역 인근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그는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 이송됐으나 암이 복막까지 전이된 말기암 환자였다. 치료가 어려워 지난 7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고, 입원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73세였다. 서울 중구청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유족을 수소문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무연고 변사자’로 처리됐고, 서울시립 무연고 추모의 집 납골당에 안치됐다는 소식이다. 최근 5년 만에 확인된 부산의 무연고 고독사도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목장갑까지 끼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홀로 누워 5년 동안 발견되길 기다린 생각을 하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된다. 무연고 고독사는 2009년 587명, 2010년 636명, 2011년 727명으로 계속 증가 추세이고, 이 중 60세 이상이 전체의 48.6%를 차지하고 있다. 무연고 고독사가 남의 일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는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613만 7702명으로 전체 인구의 12.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에는 1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노래하지만 과연 축복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 일본의 단카이세대처럼, 한국 산업화에 기여한 베이비붐 세대들도 은퇴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 간 유대는 점차 희박해지고 있고, 그 결손을 채울 만한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미미하다. 공무원연금을 일시금으로 또는 매월 받은 공무원 출신도 노후가 불안정한 실정이다. 그러니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운주산 고산사/서동철 논설위원

    세종특별자치시 서북쪽의 운주산(雲住山)에는 고산사(高山寺)라는 작은 절이 있다. 운주산은 ‘구름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해발고도가 460m 정도이니 다른 고을에 있었다면 이렇게 번듯한 이름이 붙지는 못했을 듯하다. 하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천안과 공주, 조치원과 청주를 비롯한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삼국시대에 벌써 이곳에 산성을 쌓은 것도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외성 3210m, 내성 1230m의 운주산성은 3개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石城)이다. 고산사는 운주산 등산로 초입에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백제루(百濟樓)다. 절집 누각으로는 독특한 이름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가 눈에 들어온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나당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비명에 숨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달래는 원찰(願刹)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큰 법당인 극락전에서는 의자왕과 백제 부흥군, 원병으로 백촌강 전투에 참전한 왜군의 위패도 한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절이 운주산에 세워진 것은 부흥군이 최후를 맞았다는 주류성이 이 주변일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주류성의 위치를 두고 역사학계의 견해는 충남 홍성의 학성산성, 충남 서천 한산의 건지산성, 전북 부안의 위금암산성, 고산사가 있는 세종시 전의면으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전의설(說)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곳이 ‘농사 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이 많고 척박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는 ‘일본서기’의 묘사와 가장 근접하다고 본다. 고산사는 1966년 창건됐으니 역사랄 것도 없다. 부흥군 원찰로 성격을 굳힌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그럼에도 고산사는 이미 세종시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제의 옛땅에서 백제 유민의 원혼을 달래는 절이라는 상징성이 답사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데다, 절집은 갈수록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있다. 운주산성도 복원작업으로 상당 부분 옛 모습을 되찾았다. 12일 고산사에서는 스무 돌을 맞은 ‘백제 고산대제’가 열린다. ‘백제 부흥군을 위한 천도제’는 흔치 않은 볼거리가 될 것이다. 오늘날 백제의 흔적은 삼국 가운데 승자인 신라는 물론 백제와 같은 처지였던 고구려와 비교해도 너무나 적다고들 푸념한다. 하지만 고산사는 꼭 옛것을 그대로 물려받아야 역사 유산이고, 문화 유산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사를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방법의 하나를 고산사는 가르쳐 준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조어(造語)의 기술/최광숙 논설위원

    ‘오도이촌’(五都二村)이란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이틀은 농촌에서 작은 밭을 가꾸며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이런 말도 있어요’라는 코너에서 알게 된 신조어다. 이 코너는 국립국어원이 최근 생겨난 새로운 말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인 ‘웃프다’라는 말도 있다. 재미가 있어 웃기면서도 마음이 아프다라는 의미다. 살아 있는 언어는 시대와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유독 신조어가 대세인 것 같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새누리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을 한다며 ‘손톱 밑 가시 제거 특위’를 구성했는데 ‘손가위’로 불린다. 민주당은 약자의 편에 서서 을(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며 ‘을지로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정도 신조어라면 이해가 되지만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들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좀처럼 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 ‘갠소’(개인 소장), ‘개드립’(순간적인 재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 ‘꿀잼’(매우 재미 있음)의 뜻을 아는 기성세대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말들이 표준어인지 몰라도 기성세대들에게는 소통의 단절을 가져다 주는 언어 파괴로 느껴질 뿐이다. 어디 신조어뿐인가. 일본어와 같은 외래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멋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간지난다’ 같은 일본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배탈이 났을 때 먹는 ‘정로환’의 유래는 ‘러시아 군대를 정벌하러 간 일본군을 위한 약’이라니 충격적이다. ‘출산’도 일본식 한자다. 우리말은 ‘해산’을 쓰는 게 맞다. 우리 헌법 조문 중 약 30%가 일본식 용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한글날인 어제 법제처의 용어 정비 중 일본식 한자·표현·어투를 기준으로 헌법 조문을 분석한 결과 전체 130개 조문 중 29%인 37개 조문 53곳에서 일본식 용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문서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타’(그 밖에), ‘당해’(해당) 등은 일본식 용어다. ‘~없는 한’, ‘~한하여’도 일본어투이기에 ‘~없으면’ 등으로 바꿔 써야 한다고 했다. 헌법은 우리의 얼굴인데 많은 부분이 일본식 용어로 쓰여 있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개헌 작업이 쉽지 않으니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개헌 절차 없이 일본식 용어만이라도 개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쟁이나 일삼는 정치권이 이런 일에 열과 성을 보인다면 박수 받지 않겠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공휴일 한글날/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인류 문명의 불평등은 무기와 병균, 금속에서 비롯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퓰리처상 수상작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의과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글 예찬론자로도 유명하다. 올해 76세인 다이아몬드 교수는 20대로 돌아간다면 첫번째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을 배우기 쉽고 읽기 쉬운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칭찬하면서 만약 세계의 여러 문자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면 무조건 한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문자올림픽’에서 한글이 27개 언어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 언어학자들이 공인했으니 한국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든 이런 자화자찬식 대회는 중단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이다. “한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의 사치이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문자다.”(미국의 언어학자 레드야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영국의 문화학자 존 맨) 그런 한글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고, 유네스코는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에게 ‘세종대왕상’을 수여하고 있다. 한글이 우수한 이유는 세상의 거의 모든 소리를 글자로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자는 8만 7000자나 되지만 소리는 427가지밖에, 일본 문자는 50자로 301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이론적으로 한글의 24개 자모로 만들 수 있는 글자는 1만 1172자나 된다. 표음문자인 한글의 장점은 디지털 시대와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표의문자인 한자 입력은 발음에 해당하는 영문 알파벳을 쳐서 맞는 글자를 찾는 이중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 문자도 비슷하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번갈아 쳐주기만 하면 글자가 척척 만들어진다. 내용이 똑같은 문장을 입력하는 데 한자나 일본 문자는 한글보다 몇배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23년 만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때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이다. 조선어연구회가 그해 음력 9월 29일(양력으로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그러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었고 반포일이 10월 9일로 확인돼 기념일을 바꿨다. 단일 민족, 단일 언어와 함께 한글은 대한민국의 통합과 발전에도 지대한 기여를 했음에 틀림없다. 공기처럼, 늘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모르는 존재들이 있다. 한글도 그렇다. 한글의 소중한 가치를 안다면 인터넷 세대의 한글 파괴는 이젠 좀 멈추었으면 한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과 손주/최광숙 논설위원

    역대 대통령들은 막중한 국정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가족과의 만남에서 풀곤 했다. 특히 어린 손주들과 놀 땐 평범한 할아버지로 돌아간 모양이다. 참여정부 시절 김우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낙’(樂)은 손녀와 노는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아들 건호씨의 딸과 지낼 때 매우 즐거워한다. 그 손녀가 재롱을 잘 떨어 대통령을 아주 즐겁게 한다. 그래서 비서들이 평일에도 퇴근 시간 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빨리 관저로 가서 손녀랑 노시라’고 등을 떠밀기도 한다.” 딸 부자 이명박 대통령도 외손녀들을 예뻐해 딸 셋이서 번갈아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한다. 해외 순방 시 딸 주연씨와 함께 외손녀를 동반했다가 야당의 정치 공세를 받기도 했다. 사실 청와대는 직원들이 퇴근하면 적막강산의 절간 같다고 한다. 그러니 대통령들이 구중궁궐의 외로움을 어린 손주들과 노는 일과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달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퇴임 후에도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기에 손주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욱 소중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몇년 전 맏손주가 국위선양자 전형으로 모 대학에 입학하자 대학 입학식에 직접 참석했다. 그 대학 총장을 초청해 만찬도 함께했다고 전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주 사랑도 각별해 ‘마지막’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이웃 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맏손자(김홍업 전 의원의 아들)를 향한 애틋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다음 대선 출마여부는 손주의 출생에 달려 있다는 외신 기사가 최근 보도됐다. 이 외신은 “만약 힐러리가 내년에 할머니가 된다면 아마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 같다”며 힐러리의 측근의 말을 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한 방송에 출연해 “아내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할머니가 되기를 더 바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클린턴 부부의 딸 첼시는 “엄마는 나와 남편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손주를 재촉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때 ‘권력의 화신’으로 불리며 대통령을 꿈꾸던 힐러리가 대통령보다 할머니가 되는 것에 목을 맨다는 사실이 다소 믿기지 않는다. 65세의 힐러리로서는 이제 국사(國事)를 돌보는 것보다 손주의 재롱을 보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식에겐 엄해도 손주에게는 마냥 자애로운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닌가. 그래도 굳이 뭐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나. 할머니도 되고, 대통령도 출마하면 되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이란의 한국문화/서동철 논설위원

    가락국의 수도였던 경남 김해 김수로왕릉의 삼문 문설주에는 쌍어문(雙魚文)이 그려져 있다. 두 마리 물고기가 인도의 초기 불탑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다. 김수로왕비(妃)는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공주 허황옥이다. 아동문학가 이종기 선생은 1977년 인도의 아요디아를 찾았다가 건물 곳곳에 새겨진 쌍어문을 보고 김수로왕릉을 떠올렸다는 글을 남겼다. 두 마리 물고기를 영물(靈物)로 보는 신어(神魚) 사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고고학자 김병모 선생은 동·서양문화의 융합이 이루어진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와 중국 쓰촨성에서도 쌍어문을 발견했다. 곧 신어 사상이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결국 옛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 파사르가다에의 키루스 2세 궁전 입구에서 쌍어문을 찾아냈다. ‘쌍어문 루트’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확인한 것이다.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는 페르시아와 한반도 사이에 좀 더 적극적 교섭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국과 이란에 모두 놀라움을 안겨준 ‘쿠쉬나메’는 오랜 세월 구전되다 11세기에 필사된 1만 129절의 대서사시이다. 7세기 아랍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중국에 망명한 페르시아 왕자가 한반도로 건너와 신라 공주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이란의 영웅이 된다는 내용이다. 페르시아와 신라의 문물 교류는 고고학적 유물로도 증명된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특별전이 열렸는데, 페르시아 유물과 경주에서 출토된 외래 유물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황남대총의 봉황머리 모양 유리병과 유리잔, 계림로 출토 금제장식검 등이 출품됐는데, 특히 유리병과 유리잔은 이란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비슷하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지금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음식축제와 영화축제, 관광사진전, 태권도대회 등이다.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세종학당도 문을 열었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 원유 매장량 3위의 이란은 한국의 중요한 자원 공급국이다. 인구 7500만명의 이 나라는 한국의 중요한 수출시장이기도 하다. 프라이드의 이란 버전 사이파(Saipa) 승용차가 거리를 메우고 삼성, LG의 TV와 냉장고, 에어컨이 인기를 끄는 나라가 이란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교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수록 적극적 문화 교류는 자칫 서먹해질 수도 있는 두 나라 국민의 마음을 굳건히 이어가는 역할을 해낼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홍시욱함(艦)/서동철 논설위원

    홍시욱 이등병조는 해군 첩보부대의 특수공작요원이었다. 그는 1950년 8월 24일 16명의 전우와 북한 치하의 인천 영흥도로 잠입했다. 이후 인천과 서울, 수원의 적진을 뚫고 적의 병력배치 상황과 화력 등 정보를 수집했다. 연합군에 전달된 이들의 정보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적인 북한군의 영흥도 공격에 일부 공작대 요원이 포위되고 말았다. 홍 이등병조는 소총으로 6명의 적을 사살했다. 마지막 한 발이 남자 그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는 불과 스물 둘의 나이에 자결했다. 생포될 경우 기밀 유지가 어려울 것을 우려한 결단이었다. 이등병조는 현재의 중사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6·25전쟁의 영웅이지만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홍시욱 이등병조가 해군의 최신예 유도탄 고속함(PKG)의 이름으로 되살아났다는 소식이다. 방위사업청이 어제 유도탄 고속함의 11번째 함정인 ‘홍시욱’함을 해군에 인도했다는 것이다. 홍시욱함은 해군의 노후한 고속정을 대체하는 450t급 고속함이다. 함대함유도탄과 76㎜ 함포를 비롯한 최신 무기체계를 갖추고 최대 40노트(74㎞/h)로 연근해 초계임무를 수행하는 함정으로 알려진다. 함정의 이름은 그동안 철저하게 역사적 위인의 몫이었다. 3900t급 구축함은 광개토대왕함, 을지문덕함, 양만춘함이다. 고구려 영웅들이다. 4400t급 구축함은 이순신함과 문무대왕함, 대조영함으로 지어졌다. 7600t급 한국형 이지스함에는 세종대왕, 이이, 류성룡의 이름이 붙여졌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임진왜란 당시 성웅 이순신(李舜臣) 휘하의 또 다른 이순신(李純信), 나대용, 이억기 장군의 이름을 땄다. 함정 이름은 2008년 유도탄 고속함 1호가 윤영하함으로 명명되면서 역사적 인물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윤영하함의 작명은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명의 용사를 기리는 뜻에서 이루어졌다. 윤영하 소령은 당시 격전을 벌인 참수리호 정장이었다. 홍시욱함과 동시에 진수된 유도탄 고속함인 임병래함과 홍대선함도 전쟁 승리에 공헌한 이름 없는 군인들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갖는다. 임병래 중위는 해군 특공대 조장으로 홍시욱 이등병조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대선 삼등병조는 1952년 1월 4일 옹진반도 순위도 주민의 철수작전 도중 피란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북한군에 돌진해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왕후장상이 아닌 잊힌 작은 영웅들을 현실에 재진입시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해군의 진일보한 의식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콜더의 모빌과 잡스/문소영 논설위원

    알렉산더 콜더는 ‘모빌’(mobile), 즉 움직이는 조각을 1930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다. 오귀스트 로댕이 건축물에서 조각을 독립된 예술로 분리해 근대조각을 이끌었듯이, 모빌의 탄생은 현대조각의 주요한 혁신이었다. 189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콜더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조각가, 어머니가 화가인 예술가 집안이었지만 스티븐슨 공대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결국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25살에 뉴욕 아트스튜던트리그에 입학해 그림을 공부했다. 콜더는 1926년 파리로 가 철사와 천, 가죽, 고무, 코르크 등을 활용한 관절 인형을 만들어 두 시간짜리 ‘콜더 서커스’를 6년간 운영했다. 아파트 월세를 내려고 시작한 이 서커스로 화제를 모은 콜더는 자신의 몽파르나스 작업실을 찾아온 피터 몬드리안, 호안 미로, 장 아르프, 마르셀 뒤샹 등 당대의 화가들과 장 콕토 등 작가와 교류하게 된다. 특히 콜더는 1930년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방문해 흰 벽에 걸린 원색의 색면분할된 그림에 충격을 받았다. 몬드리안에게 “이 사각형이 움직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슬쩍 말할 정도였다. 이 만남 이후 콜더는 직접 추상화 20여점을 그리며 궁리를 한 끝에 ‘움직이는 그림’이자 ‘움직이는 조각’인 모빌을 만들었다. 철사에 매달려 바람에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색색의 조각들을 보고 ‘모빌’이란 이름을 붙여준 이는 뒤샹이었다. 콜더의 모빌은 미로의 추상화를 감상하는 듯하기도 한데, 둘이 영향을 주고받은 덕분이다. 현대 조각사의 혁신은 이처럼 1920~30년대 세계 미술의 선구자들이 서로 만나 거리낌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전 세계에 ‘애플빠’를 거느리고 있는 스티브 잡스도 골방에서 나홀로 작업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5년 선배이자 휼렛 패커드(HP) 직원인 스티브 위즈니악를 설득해 ‘차고 창업’에 끌어들이고, 마침내 최초의 개인용컴퓨터 애플Ⅱ를 세상에 내놓았다. 물론 애플이 제시한 아이폰의 혁신은 생각보다 놀라운 것이 아니라고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정보기술(IT)의 천재들이 이미 시장에 내놓은 기술 중 소비자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기술과 디자인을 골라 과거와 다른 상품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기술을 새롭게 인식하고 발굴해 신기술과 접목하는 능력은 개방적인 교류와 소통에서 싹트는 것이 아니겠는가. 창조의 원천은 밀폐된 공간의 책상머리에 앉아 죽은 지식을 암기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콜더 전시가 ‘혁신’의 방식과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셧다운 (shutdown)/박현갑 논설위원

    미 연방정부가 어제 0시부터 부분 업무정지(shutdown)에 들어갔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 이후 17년 만이다. 군인·경찰·소방·전기·수도 등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보호 등에 필수적인 ‘핵심 서비스’ 인력을 제외한 약 100만명의 연방공무원들이 때아닌 강제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연방정부 청사는 물론 국립공원과 자유의 여신상 등 주요 관광명소도 문을 닫았다. 의회의 트위터 계정도 폐쇄됐다. 미국의 상·하원이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30일 자정(한국시간 1일 오후 1시)까지 2014년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아서다. 미국 회계연도는 우리나라(1월 1일~12월 31일)와 달리 10월 1일부터 다음 해 9월 30일까지다. 우리는 예산안 처리시한을 넘겨도 전년도에 준해 예산집행을 할 수 있는 준예산 시스템이 있어 이런 불상사는 없다. 셧다운 사태는 이른바 ‘오바마 케어’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시각 차이에서 생겼다. 오바마 케어는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건강보험 개혁법이다. 여야 갈등 끝에 2010년부터 시행 중이며, 의무가입 조항은 1일부터 발효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히스패닉계가 많은 무보험자의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보험료를 분담하자고 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 지출이 10년간 1800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인 공화당은 국가 주도 의료보험이 나라를 망칠 사회주의 실험이라며 예산을 삭감하거나 시행을 1년 늦추자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기초연금, 무상보육 등 복지문제로 시끄럽듯 미국도 복지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셈이다. 미국 셧다운 사태가 장기화되면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야 한다. 재정지출 중단이 오래 지속되면 그만큼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경기가 꺾이고, 세계경제 전반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오는 17일이면 미 재무부의 현금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다고 한다. 16조 7000억 달러인 국가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사상초유의 미국 부도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일본발 경제불안 요인도 우리 경제에는 부정적 변수다. 어제 일본 정부는 현행 5%인 소비세율을 내년 4월부터 8%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소비세는 우리의 부가가치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19%에 달하는 국가 빚을 줄이려는 고육지책이다. 17년 만의 소비세 인상으로 일본 국민의 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국내 금융시장과 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걱정스럽다.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코리아의 현주소를 짚어볼 때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씨줄날줄] 브랜드 가치/오승호 논설위원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미국의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체험 매장’을 만들었다. 미국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의 각종 모바일 기기와 카메라, 액세서리 등을 직접 만져보고 서비스를 경험하는 전용 매장이다. 베스트 바이에 입점한 것은 삼성 제품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베스트바이와 손잡는 것을 필수 코스로 여긴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1990개나 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베스트바이의 인지도를 활용해 제품을 알리는 마케팅이다.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이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잖다. 바로 이들의 평판 때문이다. 개인 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워런 버핏은 알아도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버핏은 미국의 2014회계연도 예산안 처리 협상과 관련해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치 리스크, 즉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이 미국 경제의 새 뇌관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리 아이아코카는 최고경영자(CEO)의 브랜드 이미지가 회사를 압도하는 예로 꼽힌다. 그는 1달러의 연봉만 받겠다고 선언하고 부도 직전의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회생시켰다. 우리나라는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1조 145억 달러로 세계 14위를 차지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10년 8월 세계 100개 국가를 대상으로 경제, 정치환경, 교육 등을 종합 평가해 우리나라를 ‘세계 베스트 국가’ 15위로 선정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20위권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이미지 브랜드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07~2010년 148개국 35만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은 ‘이민가고 싶은 나라’에서 50위에 머물렀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영국의 인터브랜드는 그저께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2013’을 발표했다. 애플이 14년 아성의 코카콜라를 누르고 브랜드 가치 1위를 차지했다. 삼성은 8위로 한 단계 올라섰다. 현대자동차는 43위, 기아자동차는 87위다. 독일의 안홀트-GMI가 발표한 한국의 국가 브랜드 순위는 2010년 30위다. 국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상책은 없을까.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씨줄날줄] 항명의 역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1597년 1월 조선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왜 적장 가토 기요마사가 한 척의 배로 바다를 건너오니 잡아오라고 명령하지만, 이순신은 함정이라며 항명(抗命)을 하고 출정하지 않았다. 왕명을 따르지 않은 이순신은 파직되어 압슬(壓膝) 등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그해 4월 1일 백의종군 명령을 받고 풀려났다. 만약 이순신이 명령을 따라 출정했다가 간계에 빠져 죽음을 당했다면 조선의 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항명은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에서 나온 말이다. 부당한 명령도 있기 때문에 항명을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우리 정치사에도 항명 파동이 자주 있었다. ‘국민복지연구회 사건’은 1968년 당시 민주공화당 김종필 계열의 연구회가 박정희 대통령의 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3선 개헌 저지 활동을 벌이다 제명 처분을 받은 당내 항명 파동이다. 김종필은 이 파동으로 또다시 정계를 떠난다. 1971년 9월 당시 제1야당 신민당이 실미도 사건·광주대단지사건 등의 책임을 물어 오치성 내무장관 등의 해임안을 발의하자 박 대통령은 당이 결속해 부결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공화당 비주류 인사들이 신민당과 손잡고 주류인 오 장관의 해임안을 가결해 버렸다. 이에 공화당은 중대한 항명행위로 규정, 항명을 주도한 의원들을 탈당시키거나 징계하는 숙당(肅黨)을 단행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검찰에서도 항명 파동이 여러 차례 있었다.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향응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퇴를 종용받던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은 사퇴를 거부하고 검찰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요구했다. 검찰 사상 첫 고위직 항명이다. 1964년엔 인혁당 관련자들의 기소를 거부하며 검사들이 집단 사표를 낸 일이 있었다. 이 밖에도 2005년 “한국전쟁은 북한의 통일전쟁”이라고 발언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거부하고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지난해 말에는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고 이에 맞서 최 중수부장은 한 총장을 공개 비판해 결국 한 총장이 사퇴한 일도 있다. 항명은, 항명을 할 당시에는 불충(不忠), 불손(不遜)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기 쉽다. 그러나 상관의 잘못을 잘했다고 할 수 없는 부하가 선택할 길은 항명밖에 없다. 항명이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한 판단은 후세의 몫이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의 사직서 반려에도 불구하고 사의를 굽히지 않아 사실상 항명을 했다. 진 장관의 행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수십년 후면 나올 것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