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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단원(檀園)과 단원고/서동철 논설위원

    경기 안산시는 단원구와 상록구라는 두 개의 행정구로 이뤄져 있다. 단원구의 유래가 된 단원(檀園)은 잘 알려진 대로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인 김홍도(1745~?)의 아호이다. 안산은 김홍도가 스승인 표암 강세황으로부터 그림과 글씨를 배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념해 성포동에는 지난해 단원미술관이 세워졌고, 가을이면 단원미술제도 열린다. 상록구라는 이름은 작가 심훈(1901~1936)의 소설 ‘상록수’에서 따온 것이다. ‘상록수’는 실존인물인 최용신(1909~1935)의 농촌계몽 운동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는 채영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최용신은 일제강점기 안산시 본오동 일대에서 활동했고, 이곳에 2007년 최용신기념관이 들어섰다. ‘문화도시’ 안산의 상징성은 유례없는 문화적 행정구 작명(作名)에서도 드러난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역시 지역이 가진 역사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단원고는 안산의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2005년 개교한 신생 학교지만, 그 역사의 실마리는 18세기 후반 단원이 활동을 펼치던 시대로 올려잡아도 아주 망발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어느 때보다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창조적 예술 활동으로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의 정신이 담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단원고 교가의 2절에도 ‘예술의 향기 품은 단원 동산에… 창조하는 마음으로 인격을 모아’ 라는 구절이 보인다. 단원의 예술가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교육적 의지의 표현이다. 안산의 문화적 전성기는 조선 영·정조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호사설’을 지은 실학의 거목 성호 이익(1681~1763)과 시·서·화의 삼절로 이름 높았던 표암(1713~1791), 단원이 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했다. 물론 최근에는 단원의 고향이 한양의 수표교 아랫마을이었고, 표암 역시 서울의 염천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안산의 처가를 오고 갔을 뿐이라는 미술사학계의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단원이나 표암이 성호처럼 평생토록 안산에 정주(定住)하지 않았다는 연구를 받아들이더라도, 두 사람과 안산의 관계를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원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는 지금 극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럴수록 단원고를 고통의 대명사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천재 화가의 이름을 붙인 학교답게 창조적 정신이 분출하는 국가대표급 학교로 성장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면 어떨까. 그리하여 더욱 자랑스러운 학교가 되었을 때 지금은 가능하지 않을 진혼(鎭魂)도 점차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다이빙 벨/정기홍 논설위원

    숨을 쉬는 공기 중에는 산소(21%)와 질소(78%)가 포함돼 있다. 몸속의 혈액은 이를 신체의 각종 장기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수압으로 인해 육상에서보다 질소와 산소가 체내에 더 많이 용해돼 호흡이 어려워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는 물밑의 기압이 10m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져 10m에서는 2기압, 20m에서는 3기압이 돼 숨이 가팔라진다는 데 근거를 둔 것이다.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구조 방식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다. 작업의 효율성 논쟁이지만 잠수부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기도 하다. 사고 해역의 물살이 빨라 바다 밑에서 작업을 하는 잠수부들이 자칫 물살에 휩쓸려 인명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는 것. 특히 감압병이라 불리는 잠수병은 잠수부에겐 생사의 문제다. 육상과 달리 바다 밑은 혈액 속에 녹은 질소가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는다. 잠수병 증상이 발생하면 팔과 다리에 심한 통증이 유발되고 심하면 신체 마비와 사망에 이르게 된다. 세월호가 35m 바다 아래에 있으니 기압은 육상보다 무려 4배나 높다. 해경이 그제 투입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던 ‘다이빙 벨’(diving bell) 장비를 구조 현장에 재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만든 구난업체의 대표가 현장투입을 거부당하자 “구조 당국이 헛심만 쓴다”는 주장을 하면서 논란을 불렀다. 다이빙 벨은 바지선과 연결돼 있고, 해저에 고정돼 있어 잠수부들이 작업 중 이곳에서 감압을 위한 짧지만 휴식을 취하는 장비다. 잠수부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바다 밑에서 1시간 이상 작업할 수 있다. 이 방식은 16세기에 발명돼 난파선 구조와 보물섬 탐사 등에 사용됐다고 한다. 해경은 “이 장비가 바다 밑에서 유실되면 인명 피해를 당할 수 있고, 사고 지점의 수심이 깊지 않아 산소통을 메는 스쿠버 방식 등이 신속하고 여러 곳에서의 동시작업에도 유리하다”며 투입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느린 구조 작업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이 투입을 요구하자 입장을 바꿨다. 구조현장에는 이 방식 말고도 몇 가지 구조 방식이 동원되고 있다. 일반에 잘 알려져 있는 표면공급방식(일명 머구리)이다. 이 방식은 잠수복을 입은 잠수부가 수면 위와 연결된 호스로 공기를 공급받는다. 1840년 독일인 시베가 발명한 뒤 지금도 우리의 민간 어선에서 널리 사용된다. 하지만 첨단 기기인 크랩스터란 수중 탐사로봇은 구조 현장에 투입됐지만 빠른 해수에 떠내려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다이빙 벨의 투입이 구조 활동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판단은 이르다. 다만 그동안 유용성 여부를 정부에서 검증조차도 않고 지금에 와서 호들갑을 떠느냐는 것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관치금융 재현 유감/오승호 논설위원

    지난 1월 산업은행 수석 부행장 출신이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임명 제청됐을 당시 경제관료 출신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옛 재무부 관료 출신은 “산업은행 출신이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 않음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산업·기업·수출입은행장 등 3개 국책은행장 모두 경제관료 출신이 배제됐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일부 현역 고위 경제관료들은 퇴직한 선배들이 “자리 좀 만들 수 없느냐”고 조르는 통에 피곤해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1961년 5·16 이후 금융회사들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 주도 정책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관치의 대상이었다.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의결기관인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옛 재무부장관이 맡았고, 한국은행 총재는 부의장이었다. 과거 은행감독원장은 재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다. 우리 금융을 관치금융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관치금융은 은행 부실화 원인으로 꼽히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1997년 12월 31일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금통위원장은 한은 총재로 바뀌었다. 한은 독립성 확보 차원도 있지만, 관치금융을 타파하기 위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관치금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모두발언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관치금융이라는 표현은 낙하산 인사와 관련된 경우 많이 쓰는데, 그것은 현상에 불과하며 관치금융의 개념적 본질은 과도한 재량권의 남용이 가능한 법·제도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금융기관의 검사 및 제재는 금융감독상 중요한 수단이기에 중한 제재는 국회의 통제를 받는 법률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를 받은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사퇴 여부와 관련해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문책 경고는 중징계이기는 하지만 해임권고·업무정지 다음으로 강도가 가장 낮다. 금감원은 김 행장이 내년 3월 임기까지 마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현행 제도로는 금감원은 물리력을 행사할 여지가 없다. 설령 해임 권고라 해도 강제력은 없다. 주주총회에서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은행도 기업이기에 경영 실적에 의해 최고경영자(CEO)의 진퇴가 판가름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감독 당국은 투명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징계 조치의 확실한 이행을 담보할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씨줄날줄] 팽목항에 스며든 ‘나쁜 정치’

    1995년 4월 28일 오전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했다. 제1회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2개월 정도 앞둔 때였다.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다쳤다. 등굣길 학생들과 출근길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난 지 4개월,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6개월 만이었다. 민심은 “사람을 살리는 정치부터 하라”며 정치권을 질타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인책 공방과 정국 주도권 싸움에 매달리며 선거 유·불리를 계산하기에 바빴다. 여야는 ‘날이 새면 사고가 나는 사고 공화국’, ‘대구 사건의 정치적 이용’ 운운하며 날을 세웠다. 이후에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대구 지하철이 불타고, 경주 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졌다. 하지만 사회적 비극을 치유하고 재발 방지책을 고민해야 할 정치권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그릇된 행태와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나쁜 정치’는 재연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인동 참사 당시와 닮은꼴이지만 일탈의 수위는 도를 한참 넘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한기호 의원은 북괴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며 색깔론을 폈고, 같은 당 권은희 의원은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는 선동꾼이 있다고 가세했다.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참사가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며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보수 논객인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은 세월호 참사가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이며 ‘시체장사’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색깔론은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에서도 등장했다. 2009년 당시 여당 의원들은 ‘도심 테러’, ‘배후 세력’, ‘반국가단체’ 등의 표현으로 철거민 농성자와 야당을 몰아세웠다. 야권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두고 부적절한 언행을 보였다. 진보진영의 인터넷 매체 서프라이즈 신상철 전 대표는 실종자를 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 구하는 것이라며 정부심판론을 부추겼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의원 예비후보 송정근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현장 방문 때 학부모 대표로 사회를 보다가 신분이 확인돼 결국 탈당했다. 일부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애도를 한답시고 선거운동을 하는 몰염치도 도마에 오른다. 조속한 구조를 바란다며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식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대책본부에 있던 한 공무원은 ‘우리나라 국민성에 문제가 있어 이런 무질서가 발생한다’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차라리 ‘우리 정치권에 문제가 있어’라고 했다면 공감을 샀을지 모른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집단 우울증/문소영 논설위원

    ‘세월호 침몰’ 뉴스를 일주일간 지켜본 시민들이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난뉴스로 도배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서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구토와 탈진 등 신체적 증상과 함께 정신적 허탈감과 무기력증, 죄의식, 분노 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16일 오전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생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반드시 구조될 것이라고 믿고 지켜봤던 생방송은 결과적으로 어린 학생들이 수장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목격한 참사였기 때문이다. TV 앞에 있었던 시청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이라면 실시간으로 그 상황을 지켜봤다. 게다가 사고 당일 탑승객 477명 중 단원고 학생들 대부분을 포함해 370여명이 구조됐다는 뉴스를 접한 뒤 안도했던 사람들은 한 시간 뒤쯤 구조자 숫자가 실종자 숫자로 뒤바뀌면서 ‘멘붕’에 빠졌다. 정부의 우왕좌왕과 무능력함을 지켜보는 일주일 동안 속이 새까맣게 탔다. 결국,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시신을 수습하는 쪽으로 반전되자 더 큰 무력감과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생환한 안산 단원고 학생과 재학생·교사·학부모들이 받은 충격은 헤아리기 어렵지만, 국민이 받은 충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침몰하는 대한민국’이니 ‘이게 국가냐’라는 한탄은 그래서 나온다. ‘세월호 침몰’ 이전에도 한국의 집단적인 우울증은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위의 자살률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꼴찌 수준으로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평가를 해왔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10대, 취업으로 고민하는 20대와 30대, 한창 일할 나이에 명예퇴직으로 집에 들어앉은 40대와 50대, 가난·질병에 시달리는 60대 이후까지 모든 연령에서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한다. 자살예방센터 실무자는 “한국 사회에 자살(自殺)이 어디 있습니까. 다 타살이지요” 라고 한다.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일상적인 구조조정의 시대가 됐다. 그 결과 우리는 더불어 사는 법을 잃어버렸고 좋은 일자리 확대라는 거짓말에 속아 기업의 비도덕적인 이윤 확대를 허용했다. 극소수만 행복하고 절대 다수는 불행하고 위험한 사회에서 살게 된 것이다. 기업만 성장하고 국민은 어려우면 비정상이 아닌가. 높은 자살률과 집단 우울증,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기업의 몰염치한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고, 정치·관료·기업의 유착을 근절해야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조선강국의 명암/오승호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세계 일류라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업체의 명품 기술은 세계 선박 건조시장을 주도한다. 조선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중국에 잠시 세계 1위를 내줬지만 2012년 세계 1위를 탈환했다. 지난 1월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 선박 수는 52척으로 60척인 중국에 비해 다소 뒤졌지만 환산톤수(CGT)로 환산한 수주량은 전 세계 점유율 45.4%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34%였다. CGT는 선박 무게에 부가가치 및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계수를 곱해 산출한 무게 단위로, 건조가 어려운 선박을 수주할수록 CGT는 높아진다. 올 1~2월에도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선박 수주량 1위를 차지했다. 3월에는 중국에 선두 자리를 내주는 등 우리나라와 중국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 중인 1967년 조선공업진흥법을 제정했다. 조선업을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1990년 10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전문위원회(WP6)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다. 우리나라 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선진국과의 공식 회의에 참석하는 자리다. 이후 ‘조선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국내 조선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듬해부터 외국업체들은 우리 조선업체에 선박 발주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진통을 겪은 끝에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조선해양 강국으로 우뚝 섰다. 세계 각국은 우리나라 조선업체에 자국 군함 건조도 의뢰한다. 2012년 해양 강국 영국은 국내의 한 조선업체에 항공모함 군수지원함 4척의 건조를 의뢰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6월에는 노르웨이 방위사업청에서 2억 3000만 달러의 군수지원함 한 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세계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반면 조선 강국인 우리나라는 연안 여객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중고선 수입이 주를 이룬다. 한국해운조합의 ‘2013년 연안해운통계연보’를 보면 전체 여객선 217척 가운데 선령(船齡) 20년 이상은 67척(30.9%)이다. 정부는 2009년 선령 기준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했다. 영세 여객선 업체들이 페리와 같은 여객선 건조 비용에 큰 부담을 느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대참사를 빚은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수입하기 전 일본에서 18년 운항했다. 해운산업의 대세는 선박을 사고파는 비즈니스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 부문은 초보 단계다. 여객선의 노후화는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해양관광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에 맞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씨줄날줄] 수학여행 폐지론/문소영 논설위원

    수학여행(修學旅行)은 글자 그대로 학생들에게 현장학습 및 단체생활의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적 목적의 숙박여행을 말한다. 근대적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한 1900년대 초부터 시행돼, 1945년 광복 후 일반화됐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수학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근대화의 일환이자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학생 신분만이 누리는 특혜였던 셈이다. 여행지도 경주나 공주·부여, 해인사·송광사 등에서 비행기로 이동하는 제주도까지 확대됐다. 하루거리의 소풍보다 학생들이 숙박하는 수학여행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교 수업을 중단하고 부모의 간섭에서도 벗어나는데다 친구들과 낯선 곳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탈선도 빼놓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1970~80년대 남학생들 사이에 간신히 왕복 차비만 갖고 떠나는 무전여행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학생만의 특혜였던 수학여행은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 때 학생의 규모가 커지자 관리의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소득의 상승과 1988년 해외여행 허용 등이 수학여행 무용론을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1980년대 수학여행지를 국내가 아닌 해외로 돌렸듯이 한국도 국외로 여행지를 변경해 지속됐다. 현재 수학여행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 수학여행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도 적잖다. 특히 개별적 여행이 어려웠던 1960~80년대에 수학여행에서 즐거운 경험과 추억을 쌓은 학부모 세대가 그러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백명의 통제하기 어려운 청소년을 낯선 곳에서 몇 명 안 되는 교사의 인솔로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불성설이 아닌가. 또 당시 형편없이 질 낮았던 숙박 서비스와 맛없는 음식 등이 떠오르지 않는가. 게다가 학생 단체여행은 1970년대에는 기차 탈선사고로, 1980년대 이후에는 관광버스 전복사고 등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 문제가 됐다. 교육 당국은 사고 이후 늘 일시적으로 수학여행을 금지했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재개했고 사고는 반복됐다. 이번에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희생시킨 세월호 침몰사고가 추가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000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근대화의 일환으로 시작된 수학여행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가정에서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가족단위의 여행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활성화됐다. 개별 학생이 신청하면 10일 안팎의 현장체험학습도 따로 갈 수 있다. 수학여행이 국내 관광사업 활성화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대규모 단체 수학여행은 이제 그만두고 다른 대안을 찾을 시점이 아닐까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어처구니없는 선장/정기홍 논설위원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있다. 상황이 기가 막힐 때 사용한다. ‘어처구니’란 맷돌의 나무 손잡이인데, 콩을 넣고 맷돌을 돌리려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맷돌 손잡이가 없다는 뜻이다.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기 직전,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가 승객들이 우왕좌왕한 사태에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선장이 제 살길을 찾는 사이 승객들은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있었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꽃다운 젊은 학생을 포함한 260여명은 지금도 칠흑 같은 바다 깊은 곳에 있다. 생사도 알 길이 없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꽁무니 뺀 행동이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하고, 세상마저 허망케 한다. 그는 병원에서 신분을 묻자 “승무원이라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물에 젖은 지폐도 말리고 있었다니 말문이 막힌다. 한 네티즌은 이를 두고 ‘빛의 속도로 빠져나온 선장’이란 비아냥 글을 올렸다. 국민의 마음을 이렇게 분탕질해 놓아도 되는가. 102년 전 침몰로 1500여명이 사망한 영국의 유람선 타이태닉호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 남긴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말이 귓전을 때린다. 그는 마지막까지 승객의 탈출을 지휘하다가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경황없는 중에도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구해 유람선 사고 역사상 여성(70%)과 어린이(50%)가 가장 많이 살아남았다. 1993년 전북 부안의 위도 해상에서 침몰된 서해훼리호 사고 당시의 백운두 선장도 배와 함께한 사례다. 백 선장은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에 힘 쏟았지만 안타깝게도 292명의 희생자만 남긴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세월호의 선장과 같은 이도 있었다. 2년 전 이탈리아의 유람선 코스타콩코르디아호가 암초에 부딪쳐 침몰했을 때 프란체스코 셰티노 선장은 가장 먼저 도망쳤다. 승객을 버린 그에게 검찰은 승객 1인당 8년형씩 2697년형을 구형했고, 재판은 진행 중이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도 “실수로 미끄러져 구명보트를 타게 됐다”는 군색한 변명을 했다고 한다. 2006년 1000명이 숨진 이집트 여객선의 선장도 배에서 불이 났는데도 갑판 위로 나가겠다는 승객들을 막고 문을 걸어 잠갔고, 배가 침몰하자 구명보트에 가장 먼저 올랐다. 선장은 배의 안전을 돌보는 최고 책임자다. 대형 사고 때는 책임자의 판단과 행동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 이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구명조끼도 마다한 채 승객을 구하다 숨진 20대 초반 여승무원 박지영씨와 너무 대비된다. 딸에게 타이태닉호의 비극을 말하며 이번 여행을 말렸다는 한 어머니의 소식도 안타깝게 다가선다. 시대의 ‘리더십 침몰’이다. 벌써 외신들은 이를 조롱하고 있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해난사고 매뉴얼/박홍환 논설위원

    침수를 차단할 수 있는 수밀격실(水密隔室) 등 당대의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해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로 불렸던 타이타닉호가 1912년 4월 14일 빙산에 부딪쳐 2시간 40여분 만에 차가운 북대서양의 4000m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다. 2200여명의 승선자 가운데 1517명이 희생됐고, 가까스로 구조된 사람은 705명에 불과했다. 당시 배에는 20척의 구명보트가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빈 채로 바다에 띄워졌다. 절대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해난사고 매뉴얼’조차 비치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제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102년 전의 타이타닉호 악몽이 오버랩되는 것은 역사적 교훈을 깨닫지 못한 채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분통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진다. 침몰까지 140분, 2시간 20분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타이타닉호와 마찬가지로 ‘해난사고 매뉴얼’이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장이 어린 학생들과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먼저 퇴선하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구명정 46개 가운데 한 개만 제대로 작동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발 부산행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승선할 기회가 있었다. 선장과 해기사들이 24시간 교대로 지키며 배의 안전운항을 이끄는 선교(브리지)에는 화재, 침수, 좌초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사고에 대비한 ‘유형별 비상대응 절차’가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시돼 있었다. 구명정이 선원 숫자만큼 비치돼 있는 것은 물론 전체 선원이 함께 탈출할 수 있는 구명보트도 갑판 양쪽에 각각 한 척씩 준비돼 있었다. 안내한 해기사는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퇴선 훈련과 장비 점검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뉴얼에는 선장의 퇴선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 없이 구명보트 전방 등 사전에 약속된 장소에 집합하도록 돼 있어 낙오자 없이 전원 안전하게 탈출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국제적으로도 타이타닉호 참사 이후 해상인명안전(SOLAS) 협약을 통해 승선자들의 안전을 위한 매뉴얼과 선박 내 장비 등을 계속 보강해 왔다. 선박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짙은 안갯속에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소형 어선과 암초가 불쑥 튀어나올 수 있고, 이번 사고처럼 조타 실수로 선박이 기우뚱하며 뒤집힐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평소에 얼마나 사고 대비를 했느냐다. 준비 없는 상태에서 선장까지 우왕좌왕하다 보면 매뉴얼은 있으나마나다. 세월호 역시 그 같은 평범한 진리를 잊은 것 같아 분통이 터질 뿐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대중탕의 추억/박홍환 논설위원

    소아용 표를 한 장 쥐고 들어갔던 것 같다. 여러 가닥의 천으로 가려진 장막 너머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보이는 벽에는 격자처럼 생긴 작은 상자들이 있고, 가운데쯤에는 대청마루가 떡 하니 놓여 있었을 것이다. 고무줄에 매단 이상한 모양의 열쇠를 작은 상자의 구멍에 넣어 꾹 누르면 ‘틱’ 하고 문이 열려 몇 번이나 장난을 쳤던 것도 같다. 어머니든 아버지든 누군가의 꾸지람에 옷을 벗어 작은 상자 속에 넣고, 알몸으로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청난 열기에 ‘훅’ 하고 숨을 들이켜야 했다. 내부는 안개가 낀 듯 수증기가 자옥해 마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 조심스러웠다. 어디 그뿐이랴. 그 안의 기괴한 소리(한참 후에야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탕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라는 걸 알았다)는 어린 사내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무지막지한 공포였다. 현대식 사우나와 찜질방에 밀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대중목욕탕은 그렇게 기억된다. 한참 동안 그런 ‘트라우마’ 때문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목욕탕 가기를 꽤 싫어했다. 최근 목욕탕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목욕업중앙회가 여탕에 들어갈 수 있는 남자 아이의 연령 기준을 낮춰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공식 건의했다고 한다. 목욕실 및 탈의실에 동반 입장할 수 있는 남녀 연령을 만 5세로 규정해 놓은 현행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을 바꿔 만 4세로 연령 기준을 낮춰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조숙한 아동이 많아져 여성 고객들이 여탕에 엄마와 함께 입장하는 남자 아이들의 시선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종 미디어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온갖 성(性)적인 정보에 노출돼 있어 성인의 몸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런 논란 때문에 만 7세 기준을 정했고, 2000년대 초 만 5세로 한 번 더 낮췄을 것이다. 부모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는 꼬마들이 뭘 알까 싶다가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엄마와 함께 여탕에 다녀왔다”며 그곳의 풍경을 ‘무용담’ 늘어놓듯 세세하게 설명하던 친구를 생각하면 연령 기준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미혼모나 미혼부, 또는 한 부모 가정의 이성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그 아이들은 4살만 넘으면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대중목욕탕에도 못 가게 될 처지에 놓였다. 부모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다니는 것도 먼 훗날 추억으로 되살릴 수 있다면 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논란을 뛰어넘어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담배 소송/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지난 2002년, 30년 동안 콜라를 마셔온 국내의 한 소비자가 코카콜라 회사를 상대로 1억 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우리 법원에 냈다. 콜라에 함유된 산성 성분 때문에 치아가 상해 11개를 뽑았고 콜라를 그만 마시려 했지만 중독돼 끊을 수가 없었다는 게 원고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패소하고 말았다. 충치나 치주염이 생길 수 있는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반드시 콜라가 원인이 됐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결 요지였다. 미국 등 외국에서도 ‘콜라 소송’이 있었고, 그보다는 ‘햄버거 소송’이 더 많다. 햄버거를 1주일에 몇 번씩 먹는 사람들이 햄버거 때문에 비만해졌다며 맥도날드나 버거킹 같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미국 연방법원이 지금까지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준 일은 없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오래 섭취한 사람이 소송을 내는 일이 종종 있지만 원고가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원도 좀처럼 소비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업체들은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지 않느냐며 나쁘면 먹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렇다고 원고가 승소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6년 “코카콜라가 위염을 악화시켰다”며 소송을 낸 러시아의 한 여성이 승소한 것이다. 손해배상 액수는 약 10만원 정도로 적었지만 코카콜라가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극히 드문 사례다. 콜라나 햄버거보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훨씬 큰 담배를 제조하는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역사도 오래되고 승소한 예도 적지 않다. 첫 소송은 1953년 미국에서 있었다.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담배의 유해성을 고지하지 않은 점을 인정받아 4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1990년대 말 미국의 모든 주 정부들이 담배 소송을 제기해 46개 주는 담배회사들과 2060억 달러에 최종 합의를 보았다. 개인들도 거액의 배상을 받았다. 2002년 10월 로스앤젤레스 법원은 폐암을 앓고 있는 여성 흡연자에게 280억 달러를 보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과 프랑스, 독일에서는 담배 회사의 책임이 없다는 판례를 고수하고 있다. 15년을 끌어온 국내 흡연자들의 담배 소송이 최근 원고 패소로 결론이 났다. 그러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나섰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흡연 폐해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고 담배회사의 위법행위를 입증하겠다고 한다. 과연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씨줄날줄] 보커스 vs 바오커스/박홍환 논설위원

    외국인이 중국어를 학습할 때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같은 한자인데도 높낮이 등 4가지 성조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돼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조차 머리를 싸매게 된다. 신문 등을 읽다 보면 뜻과 발음으로는 도저히 유추해낼 수 없는 한자어 표기가 곧잘 등장하는데 이것을 해석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젠푸자이(柬?寨), 멍자라궈(孟加拉國)’라는 단어에서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에서 사스비야(沙士比亞) 또는 사웡(沙翁)으로 불리는 사람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다. 사스비야는 그런대로 이해할 만하지만 ‘모래 노인’이라니. 물론 대부분의 외국 이름과 지명은 뜻과 발음을 적절하게 일치시켜 표기한다. 코카콜라의 중국명은 커커우커러(可口可·가구가락)로 입이 즐겁다는 뜻이다. 발음까지 비슷하다. 프랑스의 세계적 유통업체인 까르푸의 중국어 표기는 ‘가정의 즐거움과 복’이라는 뜻의 자러푸(家福·가락복)이고, 국내 유통업체인 롯데마트는 러톈마터(天瑪特·낙천마특)라고 쓴다. 인생의 즐거움을 뜻하는 낙천의 중국 발음을 차용해 현지인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를 ‘모래 노인’으로 호칭하는 것처럼 중국 네티즌들은 외국인들을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이팡(一胖·김일성), 얼팡(二胖·김정일), 싼팡(三胖·김정은)으로 불린다. 3대에 걸친 그들의 뚱뚱한 체형을 빗댄 조롱 섞인 별칭임은 물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우 아오바마(奧巴馬)라는 이름 외에 아오헤이(奧黑)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흑인이라는 점과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점을 동시에 비꼰 표현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새로 부임한 주중 미국대사 맥스 보커스의 중국어 표기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보커스 대사의 정식 표기는 보카스(博?斯·박카사)이지만 네티즌들은 바오커스(包咳死·포해사)로 바꿔 부른다는 것. 보카스는 무의미한 한자어 차용이지만 바오커스는 발음은 비슷해도 ‘반드시 기침하다 죽을 것을 보증한다’는 살벌한 뜻을 갖고 있다. 베이징의 심각한 스모그 현상을 풍자하기 위해 이 같은 절묘한 이름을 만들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게리 로크 전임 대사 시절 주중 미국 대사관은 초미세먼지 수치를 주기적으로 발표해 이를 애써 외면해 온 중국 당국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뜻과 발음을 적절하게 일치시켜 표현하는 중국인들의 절묘한 작명법이 또다시 빛을 발휘한 셈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광복군총사령부/서동철 논설위원

    대한민국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京)에서 창설됐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조직한 것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과 싸워 이김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뜻이었다. 앞서 장개석 정부는 1937년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에 밀리자 양쯔장(揚子江)과 자링장(嘉陵江)의 삼각주에 자리한 충칭을 임시수도로 삼았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이후 중국의 지원을 받던 임시정부도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옮겨갔다. 광복군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다양한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첩보 작전을 펼친 인면전구공작대(印緬戰區功作隊)도 중요한 군사활동의 하나였다. 공작대는 1943년 충칭에서 현지로 파견됐고 ,1945년 해방 직후 귀환하기까지 최일선에서 광복군의 존재 이유를 세계에 알렸다. 일본어에 능했던 9명의 대원은 3개월 동안 인도 델리 외곽의 가지아바드에서 영어를 비롯한 특수 공작 훈련을 받았다. 이후 영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대표적 전투로 꼽히는 1944년 임팔 대회전에도 투입돼 선무방송, 포로심문, 기밀문서 해독에 전과를 올렸다. 1945년 광복군의 한반도 진공 계획인 독수리작전(Eagle Project)도 같은 목적이었다. 3개월의 첩보 및 통신 훈련을 통과한 대원들을 5개 전략거점인 서울, 부산, 평양, 신의주, 청진에 침투시켜 육·해·공군 기지와 군사 산업 시설, 교통망에 대한 정보를 수집토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지하운동의 규모와 활동 내용, 그리고 한국인의 호응 정도를 파악해 대중봉기를 지원하는 임무도 부여되었다. 하지만 50명의 1기 훈련생 가운데 38명의 수료식이 열린 9월 4일은 이미 전쟁이 끝난 뒤였다. 충칭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엊그제 쑨정차이(孫政才) 당서기를 만나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의 ‘원형복원’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조직의 본거지이자, 한말 의병에서 비롯된 항일무장투쟁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본거지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도심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있는 총사령부 건물을 이전 복원하는 방안을 충칭시와 협의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정 총리가 직접 나서 ‘문화는 있는 자리에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로 제자리 복원에 긍정 답변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하얼빈역의 안중근 기념관에 이은 고위 인사 방중이 거둔 역사 협력의 두 번째 중요한 성과가 된다. 하얼빈이든, 충칭이든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가 중국인들에게도 협력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면 좋을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서촌 vs 세종마을/진경호 논설위원

    경복궁을 바라보면서 왼쪽, 그러니까 서쪽에 있는 동네를 우리는 ‘서촌’(西村)이라 부른다. 조선 초기 인왕산은 서산(西山)이라 불렸고 경복궁 서편 사재감(司宰監)은 서영(西營)이라 했다.(박희용·이익주, ‘조선 초기 경복궁 서쪽 지역의 장소성과 세종 탄생’, 2012) 서촌은 경복궁 서편에서부터 인왕산 동편까지를 일컫는 말로, 서울 종로구 사직동과 통인동, 청운동, 효자동, 통의동 등 15개의 법정동이 여기에 속한다. 요즘 사람들은 경복궁 동편, 즉 삼청동의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맛을 즐기다 심드렁해지면 찾는 색 바랜 옛 동네 정도나, 가회동 등 북촌의 한옥들을 둘러보고는 내처 찾아볼 한옥들이 있는 동네쯤으로 여기지만 기실 이곳은 근·현대사의 영욕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곳이다. 성현의 ‘용재총화’(?齋叢話)나 김상헌의 ‘근가십영’(近家十詠),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등에 묘사된 조선시대 서촌의 아름다움은 옛일이고, 근대 들어서는 억압의 상징이 돼 온 곳이다. 광복 이후 지방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곳이 결정적으로 철퇴를 맞은 계기는 1968년 벌어진 1·21사태, 즉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20여년간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동, 통의동 등은 건물 높이가 10m로, 신교동 등 조금 떨어진 곳은 15m로 묶였고, 그 뒤로 90년대 말까지도 이런저런 규제에 짓눌려 온 곳이다. 권력 가까이 붙어 산 죄(?)로 30년 이상을 갖은 ‘핍박’ 속에 지내온 셈이다. 2004년 6월 서울시의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과 2010년 한옥보전진흥대책 등 개발과 규제의 정책들이 뒤엉킨 뒤로는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개발과 보전을 놓고 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들의 3각 갈등이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2011년 들어서는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이 일대를 ‘세종마을’로 지정하면서 지역 명칭을 둘러싼 갈등마저 얹어졌다. 지금도 포털에 들어가 서촌과 세종마을을 검색하면 같은 지도가 펼쳐진다. 해가 지는 쪽, 즉 쇠퇴의 뜻을 담은 ‘서촌’을 버리고 세종대왕이 나신 곳임을 널리 알려 지역 위상을 높이자는 게 김 청장 등의 주장. 반면 다수의 주민들은 ‘서촌’이라는 이름이 지난 십수 년간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하나의 브랜드가 된 마당에 김 청장이 주민들 의견도 묻지 않고 멋대로 세종마을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맞서 있다. 인터넷상의 사이버 전쟁도 한창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서촌의 내일이 지방자치의 내일이 될 듯싶다. 서촌과 세종마을, 무엇이 살아남아야 하는가. 자치에 답이 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만찬 외교/박홍환 논설위원

    한때 세계 최강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영국 왕실이 주최하는 만찬은 화려하고 세심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버킹엄궁전이나 윈저성 등에서 열리는 만찬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상대방을 배려해 메뉴와 식기 등을 정하고 최고의 의전을 제공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빈방문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초청받은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물론이다. 여왕 초청 국빈만찬은 1년에 상·하반기 각각 한 차례씩 두 번뿐이라니 희소성 때문에라도 만찬 자체가 최고의 외교인 셈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런던 인근 윈저성의 세인트조지홀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더욱 특별한 ‘만찬 외교’가 펼쳐졌다. 손님은 2세기에 걸쳐 영국과 반목했던 아일랜드의 마이클 히긴스 대통령 일행. 영국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사령관 출신 마틴 맥기네스 북아일랜드 제1부장관도 참석했다. 1979년 사촌을 IRA 테러로 잃은 여왕은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며 화해의 건배를 제의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언론들은 “200년간 지속된 양국의 대립을 종식하는 역사적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여왕은 아일랜드의 상징인 초록색 에메랄드가 박힌 왕관과 목걸이를 착용, 상대 측을 배려했고, 만찬장에는 IRA 전사들이 애창하던 아일랜드 민요가 울려 퍼졌다. 영국 왕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미국 백악관 역시 만찬 외교에 상당한 정성을 들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국빈만찬 한 끼 식사 비용으로 20만~50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중국도 화려하고 장엄한 만찬 외교를 선보인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거대한 홀에서 전통 연회음식인 만한전석(滿漢全席)까지는 아니지만 불도장(佛跳墻)이 포함된 일품요리를 내놓고 경극과 소수민족 공연 등으로 손님의 입과 눈, 귀를 만족시킨다. G2인 미·중 간의 만찬 외교에서는 묘한 신경전도 펼쳐진다. 2009년 가을 방중한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후진타오 당시 중국 주석은 두 차례의 국빈만찬을 베풀었다. 앞서 2006년 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 측의 후 주석 국빈방문 요청을 거부했고, 이에 후 주석은 오찬장에서 ‘망악’(望嶽)이라는 두보의 시를 읊어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후 주석은 2011년 초 미국을 국빈방문, 백악관 올드패밀리다이닝룸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사적(私的) 만찬’까지 이끌어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 외교와 관련해선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없다. 우리만의 독특하고도 세련된 만찬 외교를 세계인들이 주목할 날은 언제쯤일까.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사랑의 매’의 어두운 그늘/문소영 논설위원

    재미교포가 아니라, 미국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본 한국인이면 가정의 안팎에서 아이를 크게 혼내는 일이 없다. 아이의 머리나 얼굴을 때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아이의 어깨나 팔을 쥐고 거칠게 흔들지도 않는다. 평소 울컥해서 분노조절에 실패하기 십상인 한국인이 미국이란 새 토양에서 변화된 것일까. 절대 아니다. 행인이나 이웃집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자녀(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서에 신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는 최악의 경우 친권박탈과 같은 황당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미국의 범죄 또는 법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죽 허리띠를 풀어서 자녀를 학대하는 망나니 아버지가 자주 출현하지만, 미국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시민적 합의는 과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격하다. 아무리 친부모라고 해도 친권을 제한·박탈하고, 시설에서 자녀(아동)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양부모를 찾아주기도 한다. 모든 생물학적 부모가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부모가 되는 순간 깨닫게 되는 불편한 진실 중 하나가 자녀가 늘 예쁘고 사랑스럽지만은 않다는 사실 아닌가. 최근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20세가 돼 집을 떠날 때부터 부부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지난해 10월 울산에 살던 서현이가 새엄마의 구타 등으로 사망했던 ‘울산 아동학대’ 사건이 채 잊히기도 전에, 친아빠의 방조 속에 새엄마가 자녀를 폭행해 사망한 ‘칠곡 아동학대’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지속력인 폭행으로 그 흔적들이 노출됐고, 그 때문에 친인척뿐만 아니라 교사, 아동센터까지 학대혐의를 신고했지만, 경찰이 심각한 신고를 친아빠 등의 변명을 믿고 쉽게 혐의를 거뒀다는 것이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가해자를 감싼 아이들의 거짓말을 심리분석하고, 전문의사들이 달라붙어 상처를 확인하고, 친아빠 등의 변명을 검증했더라면 울산과 칠곡의 그 소녀들은 아직 살아있지 않았을까. 자녀를 훈육한다, 사랑의 매를 친다 등은 한국이나 유교문화권의 전통교육방식이었다. 그러나 위인전기나 김홍도의 서당도에서 봤던 목침 위에 아이를 세우고 회초리를 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분노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광폭한 어른의 모습이 ‘훈육’과 ‘사랑의 매’의 실체가 아니었나 싶다. 맞고 자란 아이는 커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 폭력은 대를 잇게 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폭력에 굴종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면 매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GMO 논쟁/오승호 논설위원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상업화가 이뤄진 것은 20년 전. 1994년 미국의 칼젠사가 물러지지 않는 토마토 ‘플레이버 세이버’(Flavr Savr)를 개발한 것이 효시다. 토마토 껍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폴리갈락투로나아제에 의해 펙틴이 분해되면서 무르게 돼 유통 중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어 1996년에는 미국 몬산토사의 제초제 저항성 콩(Roundup Ready Soybean)과 스위스 노바티스사의 병충해 내성 옥수수가 판매되면서 GM작물의 본격적인 상업화 시대가 열렸다. 당시 GMO 재배 면적은 170만㏊였으나 지금은 1억 7000만㏊로 100배로 늘었다. 전 세계 28개국에서 1730만여명의 농업인들이 GM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 GMO 수입국가다. 2012년 옥수수, 카놀라(유채), 콩 등 186만t을 수입해 일본의 뒤를 이었다. 지난달에는 수입업체들이 한국소비자원의 권고에 따라 GMO 원재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놀라유를 전량 회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상업화된 18개 GMO 작물 가운데 7개 품목을 표시 대상으로 하고 있다. GMO 표시제는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2001년 3월 콩, 콩나물, 옥수수를 대상으로 시작해 면화, 사탕유, 감자 등으로 확대됐다. 가공식품은 같은 해 7월부터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GMO 성분이 남아있는 식품이나 원료 함량이 상위 5순위 이내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또 GMO가 검출되더라도 함량 3% 이하이면 생산·유통 과정 중 비의도적 혼입을 고려, 표시 의무를 면제해 준다. 생명공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전자변형농산물의 생산 및 유통이 확대됨에 따라 인체나 환경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GMO는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21세기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잠재적 인체위해성, 환경문제, 사회윤리적 문제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가 9일부터 GMO가 섞인 미국 가공식품을 유기농으로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시작해 결과가 주목된다. 미국은 GMO에 대한 별도의 표시제는 없다. GMO 식품이 특성이나 성분, 함량 등에서 기존 식품과 차이가 없을 경우 동일하게 보는 실질적 동등성 개념을 적용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2012년 곡물자급률은 23.6%로 역대 최저다. 2002년 30.4% 이후 10년째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모작 등 토지이용률을 높이고 난개발 억제로 농지를 확보해 곡물자급률을 우선 30%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GMO 의존도를 낮추는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씨줄날줄] 조림가와 육림가/정기홍 논설위원

    우리나라 최초의 조림가(造林家)는 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경남 함양군의 태수로 있을 때 고을에 흐르는 뇌계(지금의 위천)가 범람하자 쌓은 둑에다 활엽수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의 상림(上林)이다. 12㏊ 규모의 숲에는 100여종의 활엽수가 숲을 이룬다. 상림은 1961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로부터 1000여년, 최치원의 조림사업이 무색할 만큼 우리의 산야는 질곡의 역사를 써왔다. 울창하던 산림은 일제의 산림 수탈과 한국전쟁 등으로 민둥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마나 산이 헐벗었으면 조선 땅을 ‘흰옷’과 ‘붉은산’으로 빗대 표현했을까. 산림녹화가 국가사업으로 시작된 것은 1973년이었다. 1, 2차에 걸친 20년간의 치산녹화사업에서 200만㏊의 산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1차 사업 때는 어린 묘목을 심었고, 2차 때는 비료를 주고 간벌을 하는 등 가꾸었다. 민둥산에 나무를 심던 1960~70년대가 조림의 시기라면, 나무를 키우는 80년대는 육림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조림을 어느 정도 마친 1977년 ‘육림의 날’을 제정한 것은 이를 대변한다. 민둥산의 기적은 독림가(篤林家)로 통칭되는 조·육림가의 몫이 실로 컸다. 1960년대 UN에서마저 “산림 황폐도가 고질적이어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린 나라였다. 이들은 치산녹화가 한창일 때 “우리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르면서 산으로 가자”며 곡갱이와 삽을 들고 하루 종일 산에 파묻혀 나무를 심고 가꿨다고 한다. 많은 산주들은 사재도 털었다. “치산치수도 하고 국가에 봉사도 하는 심정으로 심고 또 심었다”는 이들의 말에는 애국심이 묻어난다. 50년 전부터 전남 장성의 축령산 570㏊(남산은 340㏊)에 편백나무를 심었던 임종국씨의 육림사업은 이를 대변한다. 그는 조림과 육림에 1억원쯤 투자했다고 한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의 재산이 3억원이었다니 규모를 알 만하다. 그가 아들의 이름을 ‘육림’으로, 딸 이름은 ‘자연’으로 지었다는 것도 유명한 뒷얘기다. 이 같은 사례는 전국에서 얼마든지 있었다. 1971년 대규모 독림가가 270명에 이르렀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는 산림 강국으로 자리했다. 경제성장과 산림녹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찬사도 듣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산림사업은 정부가 호언했던 것만큼의 ‘돈 되는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40년 치산녹화사업으로 키우고 가꾼 산림은 치유와 휴양,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변모했다. 산림이 둘도 없는 ‘부가가치의 보고’가 된 셈이다. 이제 ‘녹색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며 그 영역을 무한히 넓히고 있다. 나무를 심는 주간을 맞아 잊힌 독림가들을 찾는 행사를 기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구름빵과 해리포터/최광숙 논설위원

    글로벌 스포츠 기업 나이키의 로고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는 170억 8500만 달러로, 글로벌 브랜드 순위 2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1971년 나이키 공동설립자인 필 나이트의 의뢰를 받고 나이키 로고를 제작했던 여대생 캐럴린 데이비슨이 회사에 청구한 디자인 가격은 불과 35달러다. 너무나 단순했던 로고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디자인 값을 그야말로 헐값에 팔았던 것이다. 회사가 승승장구하자 1983년 나이트 회장은 그녀에게 나이키 주식 500주와 함께 다이아몬드와 금으로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반지를 선물로 줬다. 작가 조앤 롤링 역시 ‘해리포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인세로 불과 2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360만원을 받았다. 12개의 출판사로부터 출판 거절 통보를 받은 끝에 블룸스베리라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자 그녀는 흔쾌히 그 출판사와 굴욕적인 계약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첫 책이 출판된 바로 그해인 1997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미국의 스콜라스틱 출판사에 눈에 띄면서 그녀의 인생 역전이 시작됐다. 스콜라스틱이 해리포터의 미국 내 판권을 10만 500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사들이면서 미국 출판사로부터 높은 선인세를 받게 된 것이다. 저작권 대행업체를 통해 저작권을 당당하게 인정받은 덕분이다. 그 후 책 인세와 영화 등 관련 상품의 로열티도 받게 돼 이제 그녀의 재산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3억 2000만 파운드)보다 훨씬 많은 5억 6000만 파운드로 영국의 갑부 대열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문화융성위에서 동화 ‘구름빵’을 거론했다. “ ‘구름빵’이란 콘텐츠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대박이 났는데 작가 수입은 고작 2000만원도 되지 않는다”면서 “이래서야 한국에서 조앤 롤링이 나오길 기대할 수 없다”고 우리의 불공정한 콘텐츠 산업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최근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신대철도 “현재 음원을 판매하는 서비스업체가 ‘슈퍼갑’이고, 음반유통사는 ‘슈퍼을’이며, 가수와 저작자는 ‘병’, 연주자는 ‘정’인 현실에서 대중음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음악산업 구조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지금 문화계 전반에서는 ‘불공정한 계약’들이 작가들의 창의력을 꺾고 있다. 작가들이 산고 끝에 내놓은 작품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은 멀기만 할 것이다. 아울러 작가들도 자신들의 자식 같은 작품에 대한 저작권 인식을 높여야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조기 유학의 허와 실/오승호 논설위원

    서울 강남에 사는 치과의사의 아들 A(24)군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의 부모는 영어를 빨리 익힐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들을 한국 학생들이 없는 시골학교에 입학시켰다. 고교를 졸업하고는 아이비리그대학에 들어갔지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1학년 때 귀국했다. 결국은 국내 대학에 가기 위해 다시 수학능력시험을 치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군 복무를 하고 있다. 조기 유학의 실패 사례라 할 수 있다. 조기 유학은 2000년 3월 허용됐다. 병역의무 대상자의 해외 여행을 규제한 병무청의 훈령이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정부가 규제완화 차원에서 조기 유학을 자유화했다. 초창기 조기 유학생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2000년 4397명을 시작으로 2001년 7944명, 2002년 1만 132명, 2003년 1만 498명, 2004년 1만 6446명, 2005년 2만 400명 등이었다. 조기 유학을 택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영어 등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이 적잖다는 연구자료들이 있다. 국내 사교육비도 영어 과목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많다.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국내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점도 조기 유학의 한 요인이다. 그러나 조기 유학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기유학생은 2006년 2만 9511명을 정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2년에는 1만 430명으로 6년 만에 절반 이상 줄었다. 10여년 전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인 유학생들의 학비와 체류비 등으로 빠져나간 유학·연수 지급액은 39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6.0% 줄어들면서 2005년(33억 8090만 달러) 이후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어를 잘하거나 외국대학을 나온 것이 취업 등에서 이점으로 작용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에서 학교를 졸업했다고 영어에서 차별화되지 않는다”면서 “영어를 잘하는 인력 수요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영어교육도시 등도 유학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제주 영어교육도시에는 조기 유학 대신 국제학교를 택한 한국 학생들을 태운 고급 승용차들이 줄을 잇는다. 이곳에 있는 한 유명 국제학교는 올해 첫 졸업생 56명 가운데 세계 10위 이내 대학 합격자가 46명이나 된다고 한다. 영어교육도시는 제주도의 인구 순유입률이 세종시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하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러기 아빠’의 76.8%는 영양불량이라는 통계도 있다. 조기 유학도 영어를 위한 사교육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외국대학 유치 등 유학을 대체할 프로그램들을 적극 개발해 조기 유학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 그러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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