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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중국과 ‘아편전쟁 트라우마’/구본영 논설고문

    “미국에서 경찰에 대들거나 중국에서 마약을 운반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오랜 외교관 경력으로 해외 사정에 밝은 선배가 한 얘기다. 전자는 오래전 미국 연수 생활 중 실감했다. 시민에게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미국에선 집회 시 폴리스라인만 넘으면 사고를 막으려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갑을 채울 정도니 말이다. 어제 중국이 한국인 마약사범 1명의 사형을 집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도 집행 후 1주일이 지나서야 우리 정부에 통보해 왔단다. 잊고 있었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달에도 한국인 14명이 마약 밀수 혐의로 중국 공안 당국에 석연치 않게 구속됐다는데…. 재외 국민, 특히 중국에 체류하는 국민과 여행객 보호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중국이 마약사범에 관한 한 ‘무관용 정책’을 펴고 있는 배경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중국 형법은 1kg 이상의 아편이나 50g 이상의 헤로인·필로폰 등을 제조·판매·운반·밀수할 경우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적용한다. 2010년엔 일본인 4명, 2011년·2013년엔 각각 필리핀인 4명과 1명을 처형했다. 지난해에도 파키스탄인과 일본인 1명씩을 사형시켜 상대국과 외교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09년엔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까지 나서 영국인의 사형집행을 막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마약사범에 대한 중국의 가혹한 처벌이 인권 침해 소지가 농후한 건 물론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긴 했지만, 아직 ‘세계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마약사범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단속은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아편전쟁과 무관치 않다. 산업혁명 후 영국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중 아편 수출을 선택했다. 강희·옹정·건륭제 등 3대 황제가 통치한 황금기가 끝나고 쇠퇴기에 접어든 청(淸)의 생활고에 찌들린 백성들을 아편의 잠재적 수요자로 본 것이다. 청 조정은 처음에는 아편 몰수에 나서는 등 완강히 저항했으나, 아편전쟁(1840∼1842)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신병기로 무장한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경제사가들은 아편전쟁 전인 1820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GDP의 3분의1에 육박했다고 추정한다. 그 이전에도 세계 제일의 경제 규모였지만. 아편전쟁 무렵부터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잠자던 중국을 흔들어 깨운 1970년대 후반까지 150여년은 중화(中華)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시기였던 셈이다. 중국의 마약사범 무관용 정책이 이런 ‘아편전쟁 트라우마’와 맞닿아 있기에 쉽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이는 대(對)중 영사업무에 관한 한 일이 터지기 전에 예방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당장엔 억울한 국민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수습에 주력해야겠지만.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클럽메드/문소영 논설위원

    ‘클럽메드’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휴양·레저 체인 기업이다. 프랑스 수구 국가대표였던 제라드 블리츠가 38살이던 1950년에 설립했다. 모임을 의미하는 클럽(Club)과 지중해를 뜻하는 프랑스어 메디테리니의 약자인 메드(Med)를 합쳤다.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블리츠는 두 번의 전쟁으로 지치고 암울한 유럽인들에게 국경을 뛰어넘어 휴식을 즐기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비영리법인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자’는 새로운 휴가 개념은 당시 300프랑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모으자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리조트에서 태평양의 타히티섬 등으로 리조트를 확대했다. 이때 영리법인으로 전환됐다. 클럽메드는 리조트 안에서 숙박, 식사,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별도의 비용 없이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고급 휴양지 개념인 ‘올 인클루시브 서비스’(All Inclusive Service)를 최초로 고안해 냈다. 또 G O 시스템(Gentle Organizer System)을 도입해 리조트 내에서 클럽 매니저를 따라 스노클링, 스키,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배우거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세계 26개국 70개의 리조트 빌리지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신혼부부들이 신혼여행지를 제주나 경주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렸는데, 이때 눈 밝은 한국인들은 ‘클럽메드’를 이용했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 가입해 관광 위주의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가 대다수였지만. 클럽메드를 알고 찾은 사람들은 문명과 분리된 채 자연을 즐기는 유럽형 휴양지에 환호했다. 타이밍도 좋았다. 클럽메드는 1990년대 유럽의 경제침체와 1992년 전세기 추락으로 인한 사상자 발생, 리조트 체인 PIC와 같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으로 경영난을 겪는데 이를 타파하고자 젊은 계층을 위한 중저가 휴양지 상품들을 내놓았다. 일본인들이 1980년대 다녔던 휴양지를 1990년대부터 한국인들이 뒤쫓는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중국 민영기업 1세대인 푸싱(復星) 그룹이 클럽메드를 인수한다고 대만 연합보가 4일 보도했다. 인수 경쟁을 벌이던 이탈리아의 글로벌리조트 소유주인 안드레아 보노미가 2일 인수를 포기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클럽메드의 고객이 유럽인에서 일본·한국인으로 바뀌더니 다시 중국인으로 바뀐 흐름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지난해 클럽메드 신규 이용객 중 80%가 중국인이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중국 기업들의 세계적인 기업 인수를 지켜보면 일본 미쓰비시가 1989년 미국의 상징인 록펠러센터를 사들여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것이나, 1987년 일본 야스다해상화재보험사의 고흐 ‘해바라기’ 사들이기가 떠오른다. 일본의 ‘세계 사들이기’는 실패로 끝났다. 중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빛의 해/진경호 논설위원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이 물체에 의해 반사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깨달은 건 10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의 이라크 바스라에서 서기 965년에 태어난 아부 알하이삼이 1011년부터 1021년 사이에 쓴 ‘광학의 서(書)’(키탑 알마나지르)라는 책을 통해 이를 밝혀내기까지 인류는 ‘눈에서 빛이 나가 사물을 볼 수 있다’(프롤레마이오스류)거나 ‘물체에서 빛이 나와서 볼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류)고 생각했다. 천문학자이자 안(眼)과학자, 철학자인 알하이삼의 이 발견은 현대 광학에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에 버금갈 공헌으로 기억된다. 빛의 반사와 굴절, 그리고 눈의 착시현상 등을 실험과 계산을 통해 증명해 보임으로써 후세 인류에게 빛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현상과 심지어 우주의 신비까지도 풀어 갈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그가 현대물리학과 광학 등에 얼마나 공헌을 했는지, 이슬람권에서 얼마나 추앙을 받는 학자인지는 이라크의 1만 디나르 지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달 표면 크레이터와 소행성 ‘59239’에도 그의 이름 ‘알하젠’이 붙어 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빛의 해’다. 알하이삼이 1000년 전 광학의 새 장을 연 것을 기념하고, 뒤로는 현대물리학의 뿌리를 이루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탄생 100년을 기리고자 유네스코는 오는 19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성대한 행사와 함께 올해가 ‘빛의 해’임을 공식 선포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다음 빛을 창조(창세기 1장 3절)하셨든, 현대물리학이 추정하듯 137억 년 전 대폭발(빅뱅)과 함께 우주와 빛이 동시에 탄생했든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인류에게 미래를 열어 줄 열쇠이기도 하다. 하위헌스의 파동설과 뉴턴의 입자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 등을 거쳐 현대 양자역학을 통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는 에너지 알맹이’로 정리됐다지만 아직도 빛은 미지의 세계에 있다. 그만큼 이를 응용한 산업의 영역 또한 무궁무진하다. 우주를 이해하는 단서 대부분을 인류는 여전히 별빛에서 얻고 있고, X레이와 MRI 같은 의료영상장비나 인터넷 무선통신, 태양광 발전 등 인류 문명의 새 장을 빛을 통해 열고 있다. 12월 말 포항에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선다. 4298억원의 건설비가 투입된 이 가속기가 완공되면 단백질 구조 등을 밝혀냄으로써 신약 개발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와 미국, 유럽연합(EU) 등 7개국의 참여로 2007년 가동에 들어간 대전의 차세대 핵융합 설비 ‘K스타’는 올해 안에 열출력 500MW급 핵융합 발전을 시도한다. 20년 뒤면 지금의 화석연료 걱정을 털어낼 인공 태양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빛의 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신년사의 수사/정기홍 논설위원

    신년사가 쏟아지는 시절이다. 직장인들이 갖는 신년사의 단상도 다양하다. 눈도장 때문에 참석하는 시무식에다 어김없이 담겨진 위기 극복의 메뉴는 식상함 자체일지 모른다. 대체로 신년사를 낭독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연설가가 아니어서 엄숙함과 지루함으로 전해진다. 더러 고사성어를 인용하지만 곁가지이고 오로지 ‘혁신과 전진’만 요구한다. 요즘처럼 안팎으로 어려울 때는 조직 개혁 등의 날 선 단어를 접하면 정신이 바짝 드는 게 또한 신년사다. 이른바 ‘복도통신’의 분석에 귀를 쫑긋 세우고 향후 파장을 가늠하는 것도 이때의 모습이다. 이러한 신년사가 조직원의 마음을 포근히 할 리 만무하다. 긴장감이 다분하다. 조직원도 한 해 계획을 세우는 때여서 시기적으로 지시가 잘 먹히는 시점이다. 다만 개인의 포부와 소회를 내놓는 취임사·퇴임사와 딴판의 분위기이기에 구분을 못 해선 안 된다.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프로모션을 하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떠올렸다간 낭패감을 갖기 십상이다. 실제 2000년 새해 코카콜라 회장의 신년사는 살생부를 만들어 놓고 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생에서 일이 전부가 아니고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멋진 신년사 이후 직원 20%를 내보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신년사에 주는 점수가 후하지는 않은 듯하다. 1959년 국내의 한 신문은 “각계 명사의 신년사 내용이 천편일률적인 미문여사(美文麗辭)여서 염증이 날 정도”라고 논평했다. 내용이 허장성세여서 언행의 일치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 신년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49년 1월 1일 발표한 이후 지금껏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신문사에서도 꽤 오랫동안 1면 머리기사로 신년사를 돋보이게 실어 왔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내용이 보다 살벌해졌고 그 내용은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 이어졌다. 경기불황으로 어려운 지금에도 분위기는 유효하다. 초등학생에게 포부를 물으면 “정규직이면 족하다”고 답하는 게 지금이다. 정치·외교적으로도 남북 관계가 긴장과 화해를 거듭할 때마다 신년사의 내용은 달리하며 쓰였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일 육성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한 지 사흘 만이다. 단연 올해의 메가톤급 신년사로 이름을 올렸다. 회담 제의에 몇 가지 단서를 달아 행간이 복잡하지만 곧바로 반응을 보여 우리 정부도 부산해졌다. 육중한 신년사 말고도 원희룡 제주지사가 ‘어머니’란 이름으로 올린 자작시 신년사도 특별하게 와 닿는다. 문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감성적인 신년사다. 하향식, 일방이 아닌 파격이 그럴싸해 보인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고 한다. 이제 신년사에도 내용의 강제 이식이 아니라 다양한 수사(修辭)가 접목되는 시대가 됐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국제시장’/문소영 논설위원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한 줄 소개는 이렇다.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영화는 오프닝에서 노란 나비가 ‘꽃분이네’ 상점을 비롯해 부산 국제시장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국제시장 내 상가 옥상에 앉아 있던 80에 가까운 할아버지 윤덕수가 아내에게 한가하게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이야기한다. 버럭 화를 내 손녀를 겁먹게 하는 윤덕수의 꿈은 ‘선장’이었다. 이어 1950년 흥남항 철수를 시작으로 격동의 한국현대사가 펼쳐진다. 영화 ‘해운대’로 1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때아닌 이념 논쟁의 대상이다. 지난해 말 영화평론가 허지웅씨가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다.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라고 발언하면서다. 88만원 세대가 양산되고 젊은이들이 ‘미생’(未生)으로 내몰리는 경제·사회적 구조를 만들어 놓은 산업화 세대들이 ‘이만큼 산 것은 모두 우리 덕분이다’라고 큰소리친다는 하소연으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월 29일 ‘국제시장’을 두고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라며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자 논란은 커졌다. ‘국제시장’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등 과도한 국가주의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다. 또 ‘서북청년단 재건’이나 일명 ‘가스통 할배’라고 부르는 극우 세력의 준동을 정당화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1970년대로 돌아가 전 국민을 ‘얼음땡’처럼 만드는 하절기 오후 6시 국기 하강식도 부활시키고,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영화 관람 전 애국가 방송도 추가하고, 가요 테이프 끝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불분명한 ‘건전가요’라도 덧붙여야 하는 것이냐는 상상이 덧붙여져 일부 40~ 50대는 짜증을 냈다. 아무튼 이념논쟁 덕분인지 1월 1일 현재 영화 관람객은 600만명을 돌파했다. 소니사의 B급 영화 ‘인터뷰’가 대박 영화가 된 것과 비슷한 논리라고나 할까. 윤덕수는 사실 평범한 아버지는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1960년대 독일 광부로 가고,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기술자·군인으로 참전하고, 1980년대에 중동 사막의 땡볕에서 일한 그 근성을 평범하다 할 수 없다. 근성 있는 한국인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도 맞다. 못내 불편한 것은 그런 근성 있는 아버지들 뒤에 숨어서 정부가 자신들의 무능과 정책의 실패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를 키우고서 부의 재분배를 하자’던 박정희 정부의 약속도, ‘아랫목이 따뜻해져야 윗목이 따뜻해진다’며 노동계를 다독이던 김대중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빈부 격차는 확대돼 아랫목은 쩔쩔 끓어 장판이 다 타버릴 정도지만 윗목은 냉골이다. ‘국제시장’이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선량하게만 살지말고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라”던 브레히트를 기억해야 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양(羊)/서동철 논설위원

    양은 평화와 순종의 아이콘이지만, 일단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성격도 감추고 있다고 한다. 한자의 양(羊)은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리고 꼬리를 늘어뜨린 모습의 상형문자다. 이 글자가 맛있을 미(味), 아름다울 미(美), 상서로울 상(祥), 착할 선(善), 옳을 의(義)로 변주가 이루어졌으니 양의 품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양과 염소를 분명하게 구분 짓지 않았다. 양의 해에 태어난 사람을 양띠라고도 하고, 염소띠라고 부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산양(goat)와 면양(sheep)을 명확하게 구분해 부른다. 생물학적으로도 산양과 면양은 다른 속(屬)으로 염색체 수도 다르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 옛 기록에는 그저 양(羊)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 많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도 ‘다산필담’에서 ‘산양, 즉 염소를 양이라고 잘못 부른 사례가 많아 분간하기 어렵다’고 했다. ‘목민심서’에서는 ‘우리는 산양을 염소라 하고, 고(?) 또는 하양(夏羊)이라고 면양과 구별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면 수염 염(髥)자를 쓴 염소(髥牛)라는 이름에서는 외모의 특징이 드러난다. 고(?)는 고트(goat)를 음차했을 것이다. 야생 면양의 가축화는 아시아의 서부 고원지대와 중앙아시아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란고원의 유적에서 발견된 면양의 뼈는 BC 7000년 것으로 측정됐다. 산양의 가축화를 보여 주는 최초의 증거는 BC 6500년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의 제리코 유적에서 나왔다. BC 6000년 안팎 카스피해 유적에서도 출토됐으니 역시 이란 북부 지역이다. 고대 한반도에서 양의 존재는 미미하다. 1세기 유적인 김해 패총에서는 멧돼지와 사향노루, 사슴, 소, 말의 뼈가 대거 출토됐지만 양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후한시대(25~219) 사전인 ‘석명’(釋名)에서는 삼한에는 중국에서 볼 수 없는 양이 있으며, 육포를 만들어 먹는다고 적었다. 한반도 산양 사육의 기원을 짐작하게 해 주는 기록으로 받아들여진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양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책인 ‘서기’에는 599년 낙타 1두와 노새 1두, 양 2두, 흰꿩 1쌍을 백제로부터 받았다는 대목이 보인다. 일본은 이것을 양 사육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로 내려오면 예종 11년(1116) 거란족의 요나라 유민이 양 수백 마리를 몰고 투항했는데, 이것이 면양의 한반도 최초 유입 기록이다. 이후 양은 상서로운 짐승으로 대접받았다. 특히 양꿈은 길몽으로, 이성계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가 초야에 묻혀 있던 시절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곧 왕위에 오르리라고 해몽했다. 양(羊)에서 뿔과 꼬리를 떼니 곧 왕(王)이 된다는 것이었다. 을미년 양띠해가 밝았다. 우리 국민 모두 양꿈 꾸고 소원 성취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경단녀’/문소영 논설위원

    ‘경단녀’는 결혼이나 출산·육아 등으로 사회·경제적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말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시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수년간의 공백이 원인이 돼 어려움을 겪는 여성이어야 경단녀다. 육아 휴직에 들어갔다가 ‘육아에만 전념하라’는 남편과 시집 등의 압력으로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순응해 일자리를 찾지 않는다면 경단녀라고 볼 수 없다. ‘경단녀’라는 단어가 거론될 때마다 밤톨만 한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 삶은 떡에 팥고물이나 꿀이나 엿물을 바른 달콤한 경단(瓊團)이 떠올랐다가 지나가지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경단녀의 현실은 북풍한설처럼 가혹할 것이다. 왜 기혼 여성들이 경단녀가 돼 다시 일자리를 찾게 됐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는 시카고 쿡카운티 주검사장인 남편 피터 플로릭이 수뢰 혐의로 감옥에 들어가자 생계를 책임지게 된 아내 알리샤 플로릭이 13년 만에 변호사로 재취업에 나선다. 15년 전엔 직장에서 성공한 여성들은 “자아실현”이라고 발언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경단녀의 일자리 찾아주기를 두고 누가 자아실현을 운운할까 싶다. 집안일에 전념해야 한다던 여성 다수를 사회로 불러낸 첫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공장을 돌릴 노동력이 부족했던 때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갔으니 말이다. 코코 샤넬이 ‘샤넬라인’이라고 종아리가 드러나는 치마를 선보이고, 웃옷에 주머니를 단 활동적인 의상들을 선보이던 무렵이다. 전쟁이 끝나고서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불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기업 측에서 볼 때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쌌던 탓이다. 남성의 임금은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하게 되면서 하락하기 시작한다. 남성 노동력의 대체재로서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미숙련된 어린 소년과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산업혁명 초기의 혹독한 자본주의를 지나 대량생산과 경영의 ‘포디즘’으로 노동 가격이 상승했지만, 그 황금기를 지난 요즘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기계 노동이나 해외이민 노동 등이 끼어들었다. ‘저녁이 있는 삶’도 필요하고, 부모가 육아를 책임질 수 있도록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생활이 유지되는 사회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경단녀가 필요하다면 제대로 된 인센티브가 작동해야 한다. 정부가 새해부터 경단녀를 고용하는 중소기업의 세금을 깎아 준다는데, 그 기준이 너무 엄격해 논란이다. 단절 기간 3년 미만이 가장 많은데 정부의 세제 혜택은 3~5년 이내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실효성은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접점을 찾아야 할 듯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메이드 인 USA’의 부활/구본영 논설고문

    6·25 피란민들이 고단한 삶을 잇던 시장통은 미국 제품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요즘 뜨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 속 풍경이다. ‘흥남 철수’ 장면의 스펙터클도 대단했지만, 1950년대 부산 국제시장을 리얼하게 재현함으로써 영화는 올드팬의 시선을 사로잡은 듯싶다. 국제시장에 가 본 적은 없지만, 필자도 어릴 적 ‘미제(美製)=최고급품’으로 인식했던 세대에 속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미 연수 생활 중 그런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가전제품 매장 맨앞 진열대엔 일제 소니 TV가 자리 잡았고, 브라운관 시대를 연 RCA 등 미국산은 삼성·LG 제품과 함께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미국의 퇴조를 예언한 폴 케네디의 책 ‘강대국의 흥망’이 나온 뒤의 얘기다. 2008년 미국 출장 중 찾은 워싱턴의 가전 매장에서도 미국 제품은 여전히 찬밥이었다. 소니 대신 삼성·LG 제품이 앞자리를 차지한 반전에 얼마간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도요타와 혼다 등 일제 차들이 홍수를 이룬 주차장에 드문드문 현대·기아차가 눈에 띄는 게 약간의 변화였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건가. 미국 경제가 다시 고속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 3분기 성장률이 5.0%를 기록한 것으로 추계된단다. 개발도상국도 아닌데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유럽연합(EU)과 중국·일본이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가 살아나니 대통령 연임 중 업적이라곤 없다는 평가를 받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도 최근 20개월 만에 최고치(48%)를 기록했다. 그가 성탄절 연휴 중 하와이에서 ‘골프 삼매경’에 빠진 배경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나홀로 질주’ 비결이 뭘까. 다수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 시장’ 등 각 분야에서 미국의 혁신 역량을 주목한다. 실리콘밸리처럼 돈과 인재, 그리고 기술이 몰려드는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은 타국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미국을 유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셰일혁명’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에너지 비용 감소로 미 제조업이 다시 황금시대를 맞았다는 해석이다. 오바마 정부에서만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체 150개사가 ‘유턴’했다니 그럴싸하다. 나무 블록 장난감 ‘링컨 로그’를 만드는 케넥스가 중국 공장 문을 닫고 귀환한 게 상징적이다. 케네디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인구 이동에 대한 비관적 예측으로 미국 경제의 쇠퇴 가능성을 점쳤다면 ‘메이드 인 USA’의 부활은 제조업이 경제의 펀더멘털임을 방증한다. 미 제조업의 부흥은 한국 경제에도 산 교훈이다. 오바마 정부의 고용장려금 지원 등 기업 육성 정책과 생산성에 연동하는 미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힘입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도시재생/서동철 논설위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공간이자 관광 자원으로 떠오른 서울의 북촌(北村)도 한때는 계륵(鷄肋)이었다. 1930~1950년대 지어진 이곳의 서울형 한옥은 1980~1990년대 아파트가 주거 문화의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적지 않은 한옥의 주인은 낡을 대로 낡아 버린 기와집을 헐어 버리고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을 짓고 싶어 했다. 한옥을 보존하기 위한 규제만 만들었을 뿐 지원할 재원이 없었던 행정관청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규제의 허점을 뚫고 무리하게 지었던 한옥 사이의 양옥이 오히려 눈총을 받는 시대가 됐다. 자연발생적 도시 재생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도시재생이란 구도심에 밀집한 퇴락 주택을 완전히 쓸어 버린 뒤 지형마저 바꾸어 새로운 공동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형태의 재개발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북촌의 한옥보다 늦게 지어진 1960~1970년대 주택을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재개발한 아파트가 세월이 흘러 다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도시의 흉물로 바뀌었을 때 어떤 방식의 재개발이 가능할 수 있을지는 답이 없다. 지금은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기존 방식의 재개발마저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지난 정부 시절 경쟁적으로 지정됐던 서울의 뉴타운지구는 올해 들어 줄줄이 해제되고 있다. 숭인·창신지구는 지난봄 뉴타운지구에서 풀린 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지정됐다. 풍수지리적으로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남쪽 지역에는 안양암과 청룡사를 비롯한 유적이 곳곳에 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동대문 의류 상가의 배후 생산기지라고 할 수 있는 봉제 골목은 역사적 의미도 적지 않다. 관점은 다르지만 삼청동에 버금가게 발전할 수 있는 문화적 잠재력이 크다. 엊그제 서울시가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 사업’ 지역 5곳을 발표했다. 선사유적지가 있는 강동구 암사동과 신발을 비롯한 피혁제품 제조 업체가 밀집한 성동구 성수1·2가 주변, 대표적 대학가인 서대문구 신촌동과 과거 신흥 주택가였던 성북구 장위동과 동작구 상도4동이 대상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지원과 주민의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살기 좋은 마을을 넘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동네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파급 효과가 큰 문화시설의 재배치는 자생적 도시재생을 결정적으로 촉진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서울시는 새로운 문화시설은 물론 이전이 필요한 기존 문화시설도 재생이 필요한 지역에 배치해 주변에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영화 ‘인터뷰’/문소영 논설위원

    “영화 ‘인터뷰’(The Interview)를 온라인에서 볼 방법을 아시나요?” 이런 게시물을 한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적잖게 볼 수 있다. 콘텐츠를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관련한 기자, 호기심 많은 지식인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화 ‘인터뷰’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암살을 다룬 미국 영화사의 코미디 영화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크리스마스인 그제 미국에서 개봉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발단은 소니사 해킹이었다. 북한은 해킹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대신 영화를 개봉하면 영화관에 테러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대표의 이메일 계정이 해킹돼 전 세계와 영화업계에 망신살이 뻗쳤던 소니사는 관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 위협에 굴복해 영화 상영을 포기했다. 이번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발끈했다. 북한에 대한 사이버 보복이 이뤄졌다. 이틀 동안이나. 정말 미국 정부가 했느냐고? 그 사실을 미국 정부가 확인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 정부가 보복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통령의 엄호와 표현의 자유를 신봉하는 미국인들의 지지로 영화는 극장 개봉과 인터넷 비디오 상영 사이트에서 동시에 풀렸다. 시더인터뷰(www.seetheinterview.com)와 ‘구글 플레이’와 ‘유튜브 무비’, ‘엑스박스 비디오’ 등에서 5.99달러를 내면 주문형 비디오인 VOD로 볼 수 있게 됐다. 영화 ‘인터뷰’가 홍보되는 과정을 보면 네거티브 마케팅의 강렬한 효과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라이트는 확인되지 않은 북·미 간의 사이버전쟁 논란이다. 미국 영화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B급인 데다 코미디치고는 너무나 재미가 없다고 낮은 평점을 주었다. 해킹이나 테러 위협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개봉 직후 사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모를 미국인조차 보고 싶은 영화가 됐다니 아이러니다. 미국이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선언해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기회가 열릴까 주목했는데 이 영화로 다 날아간 것이 아닌가 싶다. 별 관심이 없다가 권력자가 ‘금지’를 선언하면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다. 2008년 국방부가 장병의 금서 목록에 영국 대학 교수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을 넣었고, 그 후 5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1990년대 말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나 장정일의 ‘네게 거짓말을 해봐’는 음란 도서로 찍히고서 저자와 책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등도 한때는 금서였다. 지금 읽으면 그 선정성이 싱겁기조차 한데 말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우버택시와 공영택시/정기홍 논설위원

    택시업계가 ‘우버택시’ 문제로 시끄럽다. 검찰이 우버택시의 영업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해 미국 본사 대표와 한국 법인, 렌터카 업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현행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서울시도 우버택시의 영업행위를 신고하면 최고 100만원을 포상하기로 했다. 여기에 서울시가 공영택시 도입을 검토한다는 말까지 나온 상태다. 알려진 것처럼 우버택시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차량을 호출하면 승객과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 2010년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국내에는 지난해 8월 도입됐다. 50개국, 250여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상당수 국가에서 불법영업 논란으로 소송 중이다. 우버 측은 “이미 영업 허가를 받은 렌터카 업체와 계약을 했고,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른 단순한 정보 제공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서울시와 검찰은 “우버가 렌터카 업체와 계약은 했지만 영업 허가를 받지 않아 엄연한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우버 측이 영업 수수료(요금의 20%)를 챙기는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했는지가 판단의 주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는 무허가로 사업용 자동차 및 렌터카로 승객을 태우고 요금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른 변수도 있다. 이미 다음카카오가 서울시 택시운송사업조합과 함께 내년 초에 우버택시와 비슷한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음카카오의 택시와 우버의 렌터카를 법적으로 어떻게 대별할 것인가의 문제다. 공유 경제를 강조해 온 서울시가 우버택시 서비스가 나온 직후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멈칫했던 이유다. 박원순 시장은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좋지만 현실적으로 7만명의 택시업계 종사자와 그 가족이 굶어 죽는다”고 어려움을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한 언론 매체가 서울시가 사납금 없이 완전월급제로 운영하는 공영택시 업체를 설립한다는 보도를 했다. 서울시는 “서울형 택시발전 모델 실행 방안을 택시운송사업조합, 택시노동조합 등과 협의할 예정이지만 공영택시를 설립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한발 뺀 모양새를 보였지만 언젠가 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 여론을 떠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택시 체제를 놓고 우버택시와 공영택시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은 어렵다. 이해관계 등 변수가 많다. 하지만 택시업계와 서울시가 매를 산 것만은 분명하다. 요금 인상에도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승차 거부를 일삼는 틈새를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이 비집고 들어섰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버택시와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택시업계가 큰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시진핑의 승부/오일만 논설위원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있다. ‘총명하기는 어렵고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는 의미다. 청나라 문학가 정판교(鄭板橋)의 말인데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경구다. 손자병법에서 ‘자신의 의도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손자가 말한 시형법(示形法)이다. 덩샤오핑의 유언인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와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난세에 살아남는 처세술을 가르친 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권을 거머쥔 것도 이런 처세술 때문이다.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시 주석은 지방에서 조용히 인맥을 쌓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중앙정치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없다. 다만 공청단과 태자당의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부지리 전략을 썼다. 당시 공청단을 이끌던 후진타오 전 주석이 자신의 후계자로 리커창 카드를 내밀자 태자당의 리더 장쩌민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과정에서 타협책으로 공청단과 태자당 모두에게 거부감이 없는 시진핑이 주석으로 낙점된 것이다. 시진핑의 인생은 평실(平實), 저조(低調), 겸화(謙和), 대기(大氣)란 네 단어의 좌우명에 압축돼 있다. 소박하고 수수한(평실)한 성품을 바탕으로 재능과 능력을 뽐내지 않는 처세(저조)와 겸허하고 온화함(겸화)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대범하고 당당(대기)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도 진시황이나 한 무제, 당 태종 같은 화려한 영웅이 아니라 후한을 연 유수(劉秀)나 촉나라를 세운 유비(劉備)처럼 인화단결을 중시하는 인물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조용한 처세로 2012년 11월 당서기에 등극했지만 이후 그는 승부사로서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상하이방과 태자당을 향해 반부패 척결을 앞세워 가차 없이 칼을 뽑아들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자신의 집권에 반대해 정변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 신4인방에 창을 겨눴다. 지난해 8월 태자당의 핵심인 보시라이 전 충칭 당서기를 법정에 세워 단죄한 데 이어 장쩌민의 군부 대리인이었던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상하이방의 핵심인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을 차례로 감옥에 넣었다. 최근 공청단의 핵심이자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을 부패 혐의로 낙마시켰다. 시 주석이 사실상 1인 체제를 굳힌 것이다. 어찌 보면 마오쩌둥보다 더 무서운 책략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씨줄날줄] 옛 사람의 글씨 공부/서동철 논설위원

    사진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역사적 명필의 글씨를 배우는 데 모사본이나 금석문의 탁본을 이용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모사본은 글씨를 아무리 교묘하게 베낀다고 해도 원작의 생명력은 아무래도 감소한다. 게다가 세월이 흘러 모사본이 낡아 버리면 또 다른 모사본을 만들 수밖에 없었으니 원작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니 시간적 간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원작에 가까운 옛 집자비(集字碑)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집자비는 명필의 글씨를 여기저기서 모아 비문을 새긴 비석이다. 집자비 애호 열풍은 뜻밖의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경북 군위의 인각사 보각국사비는 이런 연유로 손상을 입은 대표적 집자비일 것이다. 보각국사는 바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1206~1289)이다. 국존(國尊)의 지위에 있던 일연이 인각사에서 입적하자 충렬왕은 문신 민지(1248~1326)를 시켜 비문을 짓게 하는데, 서성(書聖)이라는 왕희지(307~365)의 글씨를 모아 비석을 세웠다. 보각국사탑의 글씨는 일찍부터 왕희지의 행서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명품으로 꼽혔다. 어득강(1470~1550)은 ‘제(題)인각사’에서 ‘기껏 비석이나 보려고 멀리서 찾은 나를 하인들은 조롱하겠지’라면서 문장과 글씨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수광(1563~1628)은 ‘지봉유설’에서 ‘임진년 왜란 이후 명나라 장수가 왕희지의 필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 중국에서 다투어 원하니 부임하는 관찰사마다 왕명으로 탁본을 해야 했다고 적었다. 인각사탑은 정유재란 당시 청나라 군사들의 방화로 허리 부분의 표면이 심하게 훼손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누구나 탁본을 갖고 싶어 했고, 청나라 사신들도 줄기차게 요구했으니 손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오늘날 남아 있는 인각사비는 비석이라기보다 그저 검은색 바위 조각이라고 하는 게 옳을 지경이다. 탁본 요구를 견디다 못한 승려들이 고의적으로 파손한 결과일 수도 있다니 불행한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시실에서 ‘서예의 길잡이 중국 법첩(法帖)’전이 열리고 있다. 법첩은 옛 명필의 글씨를 모사하거나 탁본해 만든 서첩이다. 30점 남짓한 법첩 가운데 왕희지 행서를 집자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가 눈길을 끈다. 용문거사 윤광주는 숙종 2년(1701) 어렵게 구했다는 인각사비 탁본에 ‘왕희지의 글씨로는 삼장첩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나, 완연히 묘법에 가까운 인각사비의 글씨보다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내용의 서문을 붙여 놓았다. ‘삼장첩’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다. 보각국사비는 후세의 서예 교육에 생명을 바쳤다고 해야 하나.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사이버 반달리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가 북한 노동당 김정은 제1비서의 암살을 다룬 ‘인터뷰’를 상영 취소하면서다. 당장 북한과 ‘테러 위협에 굴복한’ 소니사에 대한 비판론이 들끓고 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북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소니사 해킹 사건을 ‘사이버 반달리즘’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반달리즘은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에 따른 문명 파괴 행위를 일컫는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짓뭉갰듯이 말이다. 5세기 초 로마를 초토화한 반달족의 약탈·파괴 행위에서 유래한 용어이지만 오바마는 반달리즘의 사이버 버전을 언급한 셈이다. 다만 오바마는 소니사 해킹을 전쟁 행위로는 간주하지는 않는다면서 군사적 옵션은 일단 배제했다. 그런데도 북한 국방위원회는 그제 “백악관과 펜타곤(국방부), 미 본토를 겨냥한 초강경 대응전을 벌일 것”이라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사실 인터뷰는 미 영화 평단에서도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연·감독·각본 등 1인 3역을 맡은 세스 로건조차 “김정일을 다루려다 갑자기 죽자 아들 김정은으로 모델을 바꿨다”고 고백할 정도로 급조한 인상도 든다. 그렇고 그런 오락영화일 뿐이지만, 북한의 민감한 반응으로 외려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모양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조롱하는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제작하는 미국 문화와는 전혀 다른 북한의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통에 큰 ‘사고’를 친 격이다. 소니사 해킹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오바마는 사이버 반달리즘에 상응하는 ‘비례적 대응’을 공언했다. 그 일환으로 미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단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언급한 대북 상응 조치와 관련, 북한의 언론매체 연결망을 교란하는 컴퓨터 정보전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정보작전 등이 취해질 가능성을 내다봤다. 앞서 미국 뉴욕 소재 인권단체 ‘인권재단’은 인터뷰의 DVD를 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살포하겠다고 밝혔었다. “역사적 사건엔 역사의 진로를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리는 성질이 있다.” 영국 사학자 버터필드의 경구다. 하찮은 사건이 역사의 물꼬를 왕왕 바꾸기도 한다는 뜻이다. 북한 당국자들이 소니사의 전산망을 해킹하는 ‘충성 범죄’를 저지른 게 사실이라면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B급 코믹영화 한 편이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70년 세습독재를 감내 중인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된다면 이번 사건의 에필로그는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발해의 미소/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발해의 미소/서동철 논설위원

    크라스키노는 러시아 연해주의 마을 이름이다. 최근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철도로 이어진 러시아 하산 지역에 속한다. 이국적인 지명이지만, 두만강 바로 건너 마을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크라스키노의 남동쪽 평원지대에는 8~9세기 토성(土城)이 남아 있다. 남북 400m, 동서 300m 정도인 토성의 성벽은 2.0~2.5m 높이로, 안팎에는 돌을 쌓고 내부에는 흙을 채웠다. 성의 북쪽과 동쪽, 남쪽에서 각각 성문(城門)이 발견됐는데, 모두 옹성(甕城)의 흔적이 보인다. 발해의 염주(鹽州) 성터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규합하고 걸사비우가 이끄는 말갈 세력과 손을 잡아 당나라 손아귀에서 벗어나 698년 지금의 중국 지린성 돈화성 부근 남만주 동모산에 세운 나라다. 고왕(高王) 대조영에 이어 제2대 무왕(武王·재위 719~737)과 제3대 문왕(文王·재위 737~793)은 영토를 넓히면서 내치와 외교에도 힘써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했다. 이후 제10대 선왕(宣王·재위 818~830)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한 것은 물론 연해주까지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국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크라스키노는 동쪽의 포시예트만(灣)과 맞닿아 있다. 서쪽으로는 중국의 훈춘이 멀지 않다. 훈춘에는 문왕이 한때 수도로 삼았던 동경용원부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발해가 염주성을 세운 이유는 뚜렷하다. 이 도시에 한반도 남쪽의 신라, 동해 건너 일본열도의 왜(倭)와 교류하는 창구 역할을 맡긴 것이다. 염주성은 이른바 신라도(新羅道)와 일본도(日本道)라는 교통로의 출발점이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러시아사회과학원의 발굴조사 결과 염주성은 도로를 정연하게 구획하고 설계한 계획도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발해 유적에서 도로망으로 구획한 계획도시는 상경도성 말고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러시아 연해주 문물전’이 열리고 있다. ‘러시아의 발해 유물, 한국에 오다’라는 부제처럼 한국 관련 유물 500점이 전시되고 있다. 우리 역사의 흔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유물이다.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역사학고고학민족지학연구소와 러시아 국립극동대 박물관,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에서 빌려 왔다. 특히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염주성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온화하면서도 절제된 미소는 백제의 서산마애불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서산마애불을 ‘백제의 미소’라고 한다면 염주성 불상은 ‘발해의 미소’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방송 포맷 수출/문소영 논설위원

    한국의 오락·예능방송은 15년 전만 해도 일본 방송을 무단복제했다. 방송개편 시기를 앞두고 일본이나 일본 방송을 볼 수 있는 부산으로 출장을 떠나 길면 한 달, 짧으면 1~2주일 동안 재미있는 오락·예능 프로그램을 ‘발굴’하려 애썼다며 PD들은 고백한다. 일본 학자의 책에 SBS는 1997년에 방송한 ‘특명! 아빠의 도전’이 무단복제 사례로 나온다. 원형은 일본 TBS의 ‘해피 패밀리 플랜’(Happy Family Plan)으로, 항의를 받고 SBS는 그 프로를 1999년 6월 종영했단다. 무단복제를 원해도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불가능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 방송들이 ‘포맷 바이블’이라는 제작 노하우 문서를 만들어 수출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 시작점은 2003년 중국 CCTV에 KBS1의 ‘도전! 골든벨’이다. 2004년에 역시 중국 CCTV에 MBC의 ‘러브 하우스’를 판매해 중국판으로 제작되었다. 91개 국가에 팔려나간 MBC의 킬러 콘텐츠 드라마 ‘대장금’ 등이 있지만, 그것은 프로그램 자체 수출이고 포맷 수출은 아니다. 2011년 중국 후난위성TV가 MBC ‘나는 가수다’의 포맷을 구입해 2013년 1월 중국판을 방송했는데, 전국 시청률 1위로 대박이 났다. 이에 중국 방송사들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 수입에 박차를 가했다. 2013년 연말 중국을 뒤흔든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큰 역할을 했다.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 ‘아빠, 어디가?’, KBS의 ‘불후의 명곡’, ‘1박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개그 콘서트’, SBS의 ‘러닝맨’ 등의 포맷이 중국에 수출됐다. 제작진 인력들도 수출됐다. ‘나는 가수다’의 김영희 PD 등이 중국 촬영에 합류해 공동제작했고, ‘1박2일’의 최재형 PD도 제작 자문을 위해 중국을 왕래했다. 케이블TV와 종편의 포맷 수출은 더 놀랍다. CJ E&M계열 케이블TV는 ‘더 로맨틱’, ‘슈퍼스타 K’, ‘꽃보다 할배’를, JTBC는 ‘히든싱어’의 포맷을 중국에 수출했다. 미국이나 유럽, 남미에도 수출한다. CJ E&M의 ‘더 지니어스’는 세계적인 포맷 수출국인 네덜란드와 영국 프리맨틀미디어(FremantleMedia)에 올해 수출됐다. CJ E&M의 ‘슈퍼 디바’는 멕시코·콜롬비아·아르헨티나 등으로 수출됐다. 중국에 수출된 ‘꽃보다 할배’는 미국 NBC방송에 수출돼 ‘더 늦기 전에’(Better Late than Never)로 방송된다. JTBC의 ‘히든싱어’도 올해 11월 미국 NBC 유니버설에 포맷을 수출됐다. MBC의 ‘우리 결혼했어요’는 최근 일본에 역수출됐다. 다매체 시대에 강도 높은 국내 경쟁 탓에 수준 높은 보편적인 프로를 만들어야 하고 수출도 하는 방송들이 안쓰럽지만 기특하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아바나와 애니깽/정기홍 논설위원

    1997년 카리브해에 위치한 쿠바를 방문한 기억은 상반된다. 체류 기간 동안 수도 아바나의 이국적이고 자유분방함에 흠뻑 취했고, 한편으로 우리의 슬픈 이민 역사를 간직한 ‘애니깽’(멕시코·쿠바 이민 1세대)과의 소중한 만남도 있었다. 우리와 비수교국임에도 건물마다 내걸린 쿠바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사진을 배경으로 달리는 중고 엑셀 승용차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비공식으로 이웃 파나마를 통해 들여온다고 들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정취들이다. 아바나공항의 입국 심사는 까다로웠다. 자본주의 서적은 철저하게 추려 냈고 미국풍의 의상과 소지품은 압수됐다. 수속을 끝내면 상황은 달라진다. 문 밖을 나서면 밤낮 없이 춤과 노래가 있는 곳이다. 시가의 나라이기 때문이겠지만 담배 연기가 자욱한 호텔 클럽에서 미녀들이 추는 살사춤은 눈을 떼지 못할 만큼 매혹적이다. 뱀이 움직이는 유연함이랄까. 전국의 관광특별구역에 있는 오픈식 나이트클럽에는 미녀와 관광객이 뒤섞여 자본주의 국가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유혹도 당연히 많다. 관광 가이드가 “매춘 요구에 홀리지 마라”고 다짐을 줄 정도다.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인 ‘라 보데기타 델 메데오’는 좁은 공간이지만 쿠바가 주는 또 다른 이국 정서다. 쿠바는 이처럼 ‘정열과 유혹’의 나라다. 스페인풍의 건물에 카리브 해변의 풍광, 구릿빛 여성의 살사댄스는 가히 최상의 볼거리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자존을 지키며 ‘카리브해의 보석’ 값어치를 톡톡히 한다. 미국이 1961년 외교를 단절한 지 53년 만에 쿠바에 빗장을 풀었다. 낡은 보트와 고무 튜브에 의지한 채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간 보트피플의 애절한 역사도 뒤로했다. 쿠바가 단번에 개방한 것은 아니다. 혁명 정부를 세웠던 피델 카스트로가 1994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개방정책을 선언한 뒤 관광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근근이 국가 경제를 지탱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쿠바의 개방 소식에 외벽이 허물어진 채 방치돼 있던 구(舊)아바나 시가지의 스페인풍 건물들을 떠올린다. 하루빨리 재건돼야 할 것 같다. 멕시코에서 쿠바로 넘어와 근 100년을 살고 있는 1000명 남짓한 애니깽은 개방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지난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조국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을지 모른다. 3~4세대들은 한국어를 아는 이가 별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방문 당시 1세대 애니깽 할머니는 “한국 소식도 잘 안다”고 말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고단한 삶에도 독립운동 자금까지 댔던 그들이다. 우리 정부도 쿠바의 개방에 맞춰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푸틴의 위기/구본영 논설고문

    전국에서 휘발유 값이 가장 비쌌던 국회 앞 한 주유소가 얼마 전 가격 파괴를 선언했다. ℓ당 550원이나 내렸단다. 제 돈 안 내고 기름을 넣는 국회의원실 등이 주고객이라 유가 변동에 둔감했던 곳인 데도 말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던가. 미국의 ‘셰일혁명’이 서울의 여의도에서 후폭풍을 일으킨 모양새다. 물리학의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토대가 된 ‘나비효과’의 함의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미 대륙의 셰일층에 묻혀 있던 석유·가스의 효과적 채굴을 가능케 한 ‘수압파쇄공법’의 위력을 보라. 그리스계 이민 2세 조지 미첼의 이 아이디어 덕택에 미국은 석유수출국으로 부상 중이다. 유가 급락과 함께 국제정치의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전통적 에너지 부국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셰일혁명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될 조짐이다. 국제유가가 반 토막 나면서다. 그러잖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던 러시아였다. 이번에 저유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루블화 폭락과 함께 디폴트(채무불이행)위기로 내몰렸다. ‘현대판 차르’ 푸틴의 15년째 집권을 가능케 한 원동력 중 하나가 고유가였다. 오일머니로 러시아 근로자의 수입이 급증한 덕분이다. 하지만 유가 폭락으로 푸틴이 다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물론 기준금리를 10.5%에서 17%까지 올리는 극약처방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러시아가 당장 국가부도를 맞을 개연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저유가 흐름이 이어지면 2018년 대선서 승리해 2024년까지 집권하려는 그의 야심은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도 푸틴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셰일석유의 경제성 유지의 관건인 배럴당 60달러선이 무너졌는데도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뒷짐을 지면서다. 사우디가 미국발 셰일혁명의 효과를 상쇄하기보다는 숙적인 이란과 비(非)OPEC 산유국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형국이다.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가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국민 다수는 수니파이지만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이 집권 중인 시리아를 역성드는 러시아를 길들이려 한다는 분석이다. 유가가 그려내는 천변만화(千變萬化)가 한반도에선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싶다. 러시아 천연가스 배관의 한반도 연결 프로젝트가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방 공포증을 갖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게 걸림돌이지만, 셰일혁명은 러시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할 모멘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닌자거북이 박격포의 변신/정기홍 논설위원

    박격포 훈련은 보병의 훈련과 달리 특이한 게 많다. ‘조포 훈련’(포 조정 훈련)을 할 때 “전방에 차려포”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사수와 탄약수 간에 시간과의 싸움은 시작된다. 뒤이어지는 “겨냥대 똑바로 꽂아! 빨리 뛰어”라고 채근하는 고참의 쩌렁쩌렁한 고함은 훈련 내내 졸병의 얼굴에 땀깨나 흘리게 만든다. 졸병 탄약수는 겨냥대를 들고서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고, 사수의 지시에 따라 발을 쉼 없이 움직여 겨냥대를 박고 포가 차려진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관측 초소(OP)에서 지휘하는 관측병의 발사 명령이 떨어지면 1분30초 안에 초탄을 발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중률은 낮은 편이어서 사격을 할 때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멍텅구리’로 불리는 연습용 포탄은 잘못된 조준 등으로 인근 민가에 떨어져 피해를 주고, 훈련 중인 장병이 포탄에 맞아 숨지는 사고도 간혹 발생한다. 포탄이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져 지근에서 탄착 지점을 어림하기가 꽤 어렵다. 관련한 일화도 있다. 어느 박격포 경연대회에서는 노련한 고참 관측병이 찍은 ‘좌표’를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이등병이 달리 찍어야 한다고 고집해 1등을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박격포가 ‘똥포’로 불리는 까닭이다. 행군할 때에는 탄약수의 포판(17㎏대)을 멘 모습이 거북이와 비슷하다고 해 ‘닌자거북이’로 불리기도 한다. 무게가 42㎏에 달하는 81㎜ 박격포는 이동할 때 포수와 탄약수 등이 포신과 포다리, 포판을 나눠 등에 지고 운반한다. 방위사업청이 ‘무거운 똥포’로 불리는 81㎜ 박격포 개량에 나선다. 2018년까지 무게를 줄이고 명중률을 높이려는 사업이다. 그동안 주로 하던 도수(徒手) 운반을 차량적재 방식으로 모두 바꾸고, 겨냥대와 겨냥틀을 이용하던 수동 방식을 각종 센서를 활용한 디지털 가늠자로 교체한다고 한다. 박격포는 견인포나 자주포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구조가 간단하고 운반도 보다 쉬워 보병의 진지전(陣地戰) 등에 주로 쓰여 왔다. 폭발 때의 파편이 일반 포탄보다 많이 발생해 참호 공격에 효과적이고, 다른 박격포와 달리 분당 최대 30발을 지속 사격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 때문에 전차를 공격하기 전에 박격포 포병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특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에 적합한 무기다. 81㎜ 박격포는 재래식 포임에도 그동안 무게를 줄이고 사거리를 늘리면서 지금껏 군 화기(火器)로 활용되며 제자리를 뺏기지 않고 있다. 81㎜ 박격포의 개량 사업이 완성되는 몇 년 후엔 구구절절한 박격포 훈련 애환들도 사라질 것이다. 군대 생활은 이래저래 추억만을 만들고,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씨줄날줄] 황병기류(流) 가야금산조/서동철 논설위원

    우리 음악을 대표하는 기악 독주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산조(散調)라고 답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산조는 매우 느린 장단으로 시작해 조금씩 빨라지다 가장 빠른 장단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형태의 민속 악곡이다. 진양조나 중모리 같은 느린 장단에서는 고도의 음악성이, 자진모리나 휘모리 같은 빠른 장단에서는 고도의 기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느리게 시작해 빠르게 끝나는 모음곡이라는 형식은 정악을 대표하는 영산회상과 같다. 우리 음악의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산조에 대한 오해는 매우 오래된 음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산조의 기틀을 만든 사람은 전라도 영암의 가야금 명인 김창조(1856~1919)라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화순의 한숙구, 영광의 유성천, 충청도 청주와 서산의 박팔괘와 심정순도 가야금 산조의 독립 장르화(化)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산조는 빨라야 19세기 후반 발생한 음악 장르다. 이후에도 산조는 한동안 특정 지역 음악에 머물렀다고 한다. 1930년대 남도 출신 명인 명창들이 서울에서 조선성악연구회를 결성해 공연 및 후진 양성에 나서면서 비로소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야금산조의 전승 계보는 해당 가락을 짠 명인의 이름 뒤에 ‘류’(流)를 붙여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죽파류, 강태홍류, 최옥산류, 성금련류, 김윤덕류, 김병호류, 서공철류, 김종기류, 심상건류, 신관용류, 유대봉류 등이 그것이다.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해금, 피리, 대금, 아쟁 산조도 다르지 않다. ‘류’를 붙이는 구분법은 1960년대 황병기 명인이 처음 시도한 것으로 1970년대 이후에야 일반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황병기 명인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가락을 궁여지책으로 ‘류’라고 썼지만, 지금도 그 용어보다 적절한 용어는 찾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산조는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옛적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불과 100년이 조금 넘은 오래지 않은 과거에 비로소 만들어졌으니 역사가 일천한 것은 물론 20세기도 중반에 들어선 뒤에야 본격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음악 형식이다. 황병기 명인이 최근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발표했다. 전바탕을 타는 데 장장 70분이 걸린다. 황병기는 정남희(1905~1984)의 손자 제자다. 김윤덕(1918~1978)이 47분에 이르는 정남희 가락을 황병기에게 물려주었다. 정남희제(制)라 이름 붙인 것은 그의 음악적 개성이 강조된 본바탕 가락이라는 뜻이겠다. 흥청거리지 않는 고도의 정교함이 특징이라고 한다. 우리 음악이 지금도 진화를 멈추지 않고 있는 증거라는 점에서 반갑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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