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씨줄날줄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국민카드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목걸이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국세청장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업무협약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18
  • [씨줄날줄] 패러디/강동형 논설위원

    패러디는 특정 작가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해학적으로 변형하는 것을 말한다. 시와 소설,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단순한 오락으로 재미 삼아 가사와 곡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 창작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표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패러디(Parody)의 어원은 그리스어 패러디아(Paradia)에서 왔는데 접두어 패러(Para)는 하나가 아닌 이중 또는 양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패러디는 원전을 모방하지만 다르다는 뜻이 있다. 패러디 작품이나 노래가 표절이 아닌 창작물로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창작물이지만 패러디 작품을 원작자의 동의 없이 영리 목적 또는 원곡을 크게 망쳤을 때는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서태지가 자신의 노래 ‘컴백홈’을 ‘컴배콤’으로 패러디한 가수를 상대로 소송을 낸 적이 있다. 외국에는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과 영화 등 많은 분야에서 유명한 패러디 작품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패러디 작품이 적지 않지만 잘 알려진 패러디 작품은 시(詩)에서 쉽게 게 찾아볼 수 있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반복적으로 패러디하는 시는 아마도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작품일 것이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소설가이자 시인인 장정일은 ‘꽃’을 패러디해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란 작품을 썼다.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 오규원 시인은 아예 시 제목을 ‘꽃의 패러디’라고 지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시인과 일반인들이 ‘꽃’을 패러디하고 있다. 우리 민요 ‘아리랑’은 아마도 노래 가운데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으로 손꼽힐 것이다. 강원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이들 모두가 따지고 보면 아리랑을 패러디한 작품들이다. 요즘 뜨는 가수 이애란씨가 노래한 ‘백세인생’이 대박 행진을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 로고송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백세인생’의 인기 비결은 친숙한 가락과 노랫말에 있다.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또 넘어 간다.’ ‘백세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아리랑을 패러디한 노래다. ‘백세인생’ 노랫말은 고령화 사회를 투영하고 있다. 죽음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슬프지만,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대목에서 해학을 느낀다. 많은 사람이 ‘ 백세인생’을 패러디하고 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준다는 점이 반갑다. 아리랑 패러디물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씨줄날줄] 스타워즈 열풍/박홍기 논설위원

    영화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이 개봉된 것은 1977년 5월 25일이다. 38년 전이다. 1970년대 미국은 격동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베트남전, 오일쇼크, 워터게이트 사건 등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스타워즈 각본을 쓰고 감독한 조지 루카스는 “서부극의 자리를 메울 다른 신화가 필요했다”고 첫 구상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서부 개척사에서 우주로의 전환이다. 더욱이 1969년 ‘자국의 방위는 자국이 맡아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 이후 미·소 냉전 체제가 누그러지면서 영화에서 전쟁은 더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스타워즈는 제작사들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동심을 타깃으로 한 영화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념 탓이다. 20세기 폭스사만 달려들었다. 루카스는 각본에 포스(force)라는 개념을 넣었다. 일종의 기(氣)다. 젊은이들에게 영적 감화를 주기 위해서다. 동양 문화와의 융합이다. 제작비는 특수효과 때문에 몇 배 이상 더 들었다. 최초 예산은 350만 달러에 불과했다. 루카스는 장면 장면의 속도감에 매달렸다. 롱테이크가 드물고 신의 전환이 잦은 이유다. 실제 엄청난 속도감을 구현했다. 스타워즈가 우여곡절 끝에 개봉됐다.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라는 자막과 함께 펼쳐진 스타워즈에 전 세계 영화팬들은 열광했다. 미국의 새로운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루카스는 자서전에서 개봉 당일을 이렇게 썼다. “중국 극장 앞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혼잣말로 ‘대체 무슨 영화가 걸렸기에 난리들이야’ 극장 간판을 봤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 영화였다.” 스타워즈는 SF 영화뿐만 아니라 특수효과에서도 새로운 장을 열었다. 대박을 터뜨렸음은 물론이다.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편집, 미술 등 7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에는 1년쯤 늦은 1978년 6월 선보였지만 흥행이 시원찮았다. SF 영화가 허무맹랑한 장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서다. 스타워즈는 이후 제국의 역습(1980), 제다이의 귀환(1983), 보이지 않는 위험(1999), 클론의 습격(2002), 시스의 복수(2005) 등 총 6편의 시리즈가 제작됐다. 루카스는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 주는 속편, ‘프리퀄 ’ 기법을 썼다. 첫 영화 ‘새로운 희망’은 내용상 네 번째 이야기다. 시리즈 7편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18일 개봉됐다. 10년 만이다. 북미 지역에서 개봉일 기준 1억 2050만 달러(약 1426억원)라는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종전 1위인 2011년 작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도 제쳤다. 캐릭터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 데다 곳곳에서 스타워즈의 상징인 광선검을 거리로 들고나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저 이제 스타워즈 영화 보러 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른바 스타워즈 신드롬이다. 한국에서도 스타워즈의 ‘열풍’이 거셀지 두고 볼 만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왕조실록과 포쇄관/서동철 논설위원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지금의 인천 강화 정족산과 강원 평창 오대산, 경북 봉화 태백산, 전북 무주 적상산 등 4곳의 사고(史庫)에 보관됐다. 한결같이 외적의 침탈이 쉽지 않은 섬의 중심부나 내륙의 험준한 산골짜기다. 대한제국이 막을 내리면서 기능을 잃은 사고는 폐허로 변했다. 이후 오대산 사고와 정족산 사고가 각각 1992년과 1999년 옛 모습을 되찾는다. 적상산 사고는 1992년 양수발전소 건설로 옛터가 수몰됐지만, 1999년 자리를 옮겨 다시 지었다. 태백산 사고도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조선왕조는 사고 주변의 절에 관리를 맡겼다. 정족산 전등사, 오대산 월정사, 적상산 안국사, 태백산 각화사가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 면면을 보면 주변에 사찰이 있어 관리를 맡겼다기보다는 관리를 할 수 있을 만큼 규모 있는 사찰이 주변에 있어 사고를 지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오대산 사고는 월정사의 말사인 영감사(靈鑑寺) 곁에 지었는데, 이 절은 이후 사고사(史庫寺)로 불리었다. 사고의 운영은 ‘경외사고수직절목’(京外史庫守直節目)을 지침으로 삼았다. 절목에는 사고 수호를 책임지는 승군(僧軍)은 사고마다 40명을 정원으로 20명씩 1년마다 교대 근무토록 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각 사고를 지키는 승군의 우두머리는 총섭(總攝)이라 했는데 대부분 사고를 관리하는 사찰의 주지가 맡았다. 사고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중요 도서는 당연히 아무나 열어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책에 습기가 차는 것은 물론 공팡이가 피거나 좀이 스는 것은 방지하고자 3년마다 춘추관 관리를 파견했다. 이런 소임을 맡은 관리를 포쇄관(曝?官)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사고에 있는 중요한 서적을 꺼내 주기적으로 햇볕에 쪼이고 바람에 말리는 역할이다. 추사 김정희도 포쇄관의 소임을 맡은 적이 있다는 것은 ‘포쇄를 하러 오대산에 오르다’(曝登五臺山)는 시를 남겨 알 수 있다. ‘굽어보니 온 길이 사뭇 가까워 나도 몰래 들어왔네 아득한 이곳…부처 구름이 밖에서 지켜주고, 산신령이 밝게 빛나게 해주네…’라는 구절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중종 38년(1543) 춘추관 검열 정준이 전주로 장가 들러 가는 길에 포쇄관 벼슬을 얻으려 청탁한 것이 문제가 됐다. 실록을 포쇄하는 것은 나라의 큰일인데 처가에 뽐내려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중종의 질책이었다. 결국 전주 사고에는 다른 사람을 포쇄관으로 보냈다. 임진왜란 이전 전주에도 사고가 있던 시절이다. 엊그제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이 부산기록관 전용서고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이 있었다. 항온항습은 물론 유해생물 피해도 막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국가기록원의 실록 보존 책임자는 ‘포쇄관’이라고 불러 역사성을 높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인스턴트 아티클/임창용 논설위원

    ‘페이스북을 어찌해야 하나’. 세계 미디어 업계가 ‘페이스북앓이’를 하고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모바일 뉴스 플랫폼의 강자로 자리잡아 가는 페이스북을 바라보며 쩔쩔매는 형국이다. 세계의 하루 이용자 수 15억명, 국내도 1600만명에 이른다. 미국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뉴스 소비 비중이 포털을 추월했다. 페이스북이 그 도도한 흐름을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도 페이스북을 통한 뉴스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매체인 위키트리나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페이지뷰의 대부분을 페이스북을 통해 얻는다. 신문들도 뉴스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페이스북의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고 있다. 종이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독자가 ‘희귀’해진 환경에서 페이스북이 모바일 뉴스의 새로운 ‘갑’이 될 조짐까지 보인다. 이런 가능성은 지난 5월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론칭한 ‘인스턴트 아티클’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확장하면서 짙어지고 있다. 인스턴트 아티클은 페이스북이 언론사의 링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콘텐츠를 보여 주는 서비스다. 이렇게 되면 언론사로서는 페이스북 독자를 자사 사이트로 유입시킬 수 없고, 이를 기반으로 한 광고수익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페이스북이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 ‘광고셰어’다. 인스턴트 아티클을 통해 소비되는 콘텐츠에 광고를 붙여 매출액의 70%를 제휴 언론사에 준다. 현재 미국에선 뉴욕타임스 등 350여개 언론사와 제휴를 맺고 서비스하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SBS 등 아시아 지역의 50여개 언론사를 초기 협력사로 선정한 상태다. 뉴스 소비자로서는 인스턴트 아티클이 매력적일 수 있다. 선별된 뉴스를 무료로 빠르고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아티클은 기존에 모바일에서 기사를 보는 것보다 10배 빠른 속도를 제공한다. 클릭하면 1초도 안 돼 기사를 불러낸다. 사진을 시점을 달리해 보는 등 재미도 제공한다. 인스턴트 아티클은 언론사들에 고민거리다. 모바일 뉴스 유통에서 자칫 페이스북에 종속될 가능성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등 디지털 뉴스를 유료화한 곳은 고민이 더 깊다. 우리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포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사실상 빼앗겼던 터라 더 그렇다. 스마트 환경에서 강력한 디지털 네트워크로 무장한 정보기술(IT) 공룡들의 득세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뉴스 시장이 유통 플랫폼 중심으로만 흘러가면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 어려워진다. 특정 플랫폼 맞춤 기사 양산은 뉴스 생산과 소비의 획일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뉴스 소비자들한테도 손해다. 인스턴트 아티클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언론사들과 공생할 수 있는 모델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아베의 총리 3연임/박홍기 논설위원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의원이 2012년 9월 12일 총재직에 출마했다. 국민은 깜짝 놀랐다. 2009년 9월 총리직을 자진 사퇴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재로 당선됐다. 1955년 창당, 이른바 ‘55년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 역사상 퇴진했던 총재가 다시 선출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베 총재는 그해 12월 16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뒀다. 민주당에 빼앗겼던 정권을 3년 만에 되찾았다. 아베 총재는 총리에 올랐다. 두 번째다. 집권당 총재가 총리직을 겸하는 까닭에서다.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이다. 아베 총재는 2006년 9월 20일 총리로 취임했다. 첫 번째다. 당시 ‘전후세대의 첫 총리, 최연소 총리’로 갈채를 받았다. 전후체제의 탈각이라는 기치 아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에 전념했다. 전범국가이자 패전국으로 낙인찍힌 역사를 덮고 새로운 일본을 일구려 했다. 평화헌법의 개정에도 나섰다. 이듬해 9월 12월 저녁 느닷없이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취임 1년 만이다. 테러특별법을 연장할 수 없는 정국을 이유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건강 악화와 함께 파벌들의 밀실 합의도 크게 작용했다. 이후 “무책임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명문 정치가의 도련님인 봇짱” 등의 질타가 쏟아졌다. 두 번째 총리직을 맡은 아베 총리는 첫 번째 때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감과 함께 강한 추진력, 돌파력을 발휘했다. 일본 경제를 장기 침체에서 탈피시키기 위한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정책이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와 서비스의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디플레이션과 엔고 탈출을 위해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화폐를 무제한 찍어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안보법안’도 개정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바꿨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심지어 미국과의 과거사에 대해 ‘자학사관’이라는 입장 아래 멋대로 해석, 대응했다. 노골적인 우경화 정책이다. 첫 번째 총리 시절 못다 했던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강한 일본’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월 자민당 총재에 무투표로 재선됐다. 집권 2기를 무혈 입성으로 맞았다. 정치적 변수가 없는 한 2018년 9월까지 3년 임기는 보장받은 셈이다. 아베 총리의 현재 권력은 사실상 무소불위다. 자민당의 파벌연합체적 성격이 옅어지면서 1강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하토야마 구니오 전 총무상이 “총리직 3연임”을 꺼냈다. “임기 3년을 훌륭히 수행하면 당규를 고쳐 한 번 더 총리직을 맡기는 게 좋다”며 총대를 멘 것이다. 총재 3연임은 당규로 금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한다면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최장수 총리다. 문제는 한국이다. 자칫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역사를 둘러싼 한·일 교착 상태가 재임 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커서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태극기 게양대 논란/박홍기 논설위원

    때아닌 태극기 게양대 논란이 심상찮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아름답다. 보는 것 자체로도 뿌듯하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우러난다. 국기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5조는 ‘모든 국민은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태극기는 곧 대한민국의 엠블럼이다. 다툼의 주체는 국가보훈처와 서울시다. 쟁점은 게양대의 위치다. 태극기를 어디에 다느냐다. 보훈처가 제시한 장소는 수도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광장이다. 2009년 8월 1일 서울의 중심 세종로를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 공간으로 바꾼 ‘한국의 대표 광장’, ‘도심 속의 광장’, ‘도시문화 광장’이다. 보훈처는 지난 6월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서울시와의 협약서(MOU)에 서명한 뒤 광화문광장에 게양대를 세우는 사업을 추진했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이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시가 관리하는 곳이다. 태극기를 광화문광장에 영구 게양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애초 게양대의 높이도 광복 70주년에 걸맞게 70m를 계획했다가 서울시가 난색을 표명하자 광복절을 의미하는 45.815m로 줄였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광화문광장 대형 태극기 상시 설치를 거부한다”는 불가 입장을 보훈처 측에 전달했다. 영구 설치는 시민들 정서에 맞지 않고 주변 경관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회의 결과를 근거로 댔다. 정부서울청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정부 시설 부지 내 설치를 대안으로 내놨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이 필요하다면 내년 3월까지라는 한시적 조건을 달았다. 회의에서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고 한다.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찬반 의견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서울시가 독립공화국이냐”, 다른 쪽에서는 “권위적 시대로의 회귀, 전근대적”이라며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도 보훈처를 거들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어제 “박원순 서울시장의 국가관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며 서울시의 협조를 촉구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는 항상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국기법 제8조에 의거해서다. 광화문광장을 둘러보다 보면 태극기 게양 논란의 인식 강도에 따라 “참 많구나”, “참 적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의식하면 할수록 더 눈에 잘 띈다. 컬러배스(color bath) 효과다. 미국 워싱턴 내셔널몰 앞에는 대형 성조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시벨레스 광장 분수대 주변도 마찬가지다. 중국 톈안먼 광장에는 대형 오성기 게양대가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게양대의 위치나 높이는 다르다. 국가 정체성이나 자존감과는 별개다. 때문에 서울시의 입장도 일리 있다. 보훈처도 다시 심사숙고해봄 직하다. 현명할 필요가 있다. 정치 쟁점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시와 보훈처가 만나 대화하기를 바란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안철수와 스티브 잡스/박홍기 논설위원

    존 스컬리(76)는 마케팅의 귀재로 불렸다. 28세에 사원으로 펩시콜라에 발을 디뎠다. 불과 3년 만인 1970년 마케팅을 총괄하는 부사장에 올랐다. 입사한 지 10년 만에 사장이 됐다. 펩시 사상 최연소다. 코카콜라에 밀려 바닥을 기던 펩시를 라이벌로 끌어올렸다. ‘펩시 세대’라는 광고 전략을 통해서다. 1975년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 광고가 결정적이었다. 시음토록 한 뒤 더 마음에 드는 콜라를 선택하도록 한 광고였다. 코카콜라에 뒤진다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경쟁자라는 이미지를 심은 것이다.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애플의 창업자다. 잡스가 스컬리에게 애플의 CEO를 제안했다. 스컬리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잡스의 설득은 계속됐다. 한마디를 던졌다. “설탕물을 팔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 보고 싶습니까.” 스컬리는 1983년 애플의 CEO로 자리를 옮겼다. 죽이 잘 맞았다. 그러나 1984년 애플의 야심작 매킨토시가 출시되면서 멀어졌다. 엄청나게 광고비를 쏟아부었던 매킨토시의 반응은 싸늘했다. 애플이 휘청거렸다. 잡스와 스컬리의 갈등도 커졌다. 잡스는 이사회를 열고 ‘CEO로 잡스냐 아니면 스컬리냐’를 의제로 올렸다. 스컬리의 팔이 올라갔다. 잡스는 1985년 5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괴팍한 성격도 한몫했다. 스컬리는 평소 “애플은 나와 잡스라는 하나의 지도자를 갖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터다. 스컬리에게는 이후 ‘잡스를 쫓아낸 인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엊그제 혼잣말로 스티브 잡스 얘기를 꺼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창업주였는데 당시 존 스컬리에게 쫓겨났습니다. 그다음은 잡스의 몫인 거죠. 그다음 결과들은….” 새정치연합 ‘공동 창업주’인 자신의 탈당을 잡스에 비유해 ‘쫓겨났다’고 표현한 것이다. 사실관계를 떠나 스컬리는 문재인 대표인 격이다. 안 의원 말대로 “그다음 결과들은…”이 핵심이다. 애플은 1996년 새로운 운영체계를 찾다 잡스가 애플을 떠나 설립한 넥스트(NeXT)사를 인수했다. 잡스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12년 만의 애플 복귀다. 다시 애플의 CEO를 맡을 때 “연봉 1달러만 받겠습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회사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잡스는 종종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재능있는 인재들을 찾아내서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현재 애플 CEO인 팀 쿡(56)은 면접 시작 5분 만에 합류를 결정했다. 잡스가 ‘쫓겨나’ 또 다른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작품인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의 애플도 마찬가지다. 안 의원은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세력화”를 탈당 명분으로 내세웠다. 잡스가 이뤄 낸 ‘그다음 결과들은’ 전적으로 안 의원의 몫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모란봉과 톈안먼의 간극/구본영 논설고문

    지난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 중국의 2차대전 전승절 열병식이 열렸던 광장 성루에서 보기 드문 그림이 연출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나란히 섰다. 61년 전 북한 김일성과 마오쩌둥 주석이 섰던 그 자리에.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단면도였다. 북·중 관계에 또다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이번에는 스냅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12~14일 베이징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던 북한 모란봉악단이 이를 전격 취소하면서다. 하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서우두 공항을 빠져나오던 현송월 단장이 굳은 표정으로 귀국길에 오르는 전 과정이 미스터리다. 애초 이번 공연은 서먹했던 북·중 관계의 정상화 신호로 비쳤다.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서열 5위 류윈산 상무위원의 평양행에 이은 ‘공연 외교’ 이벤트였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방중 정지 작업이란 관측도 나왔다. 모란봉악단은 ‘최고 존엄’ 김정은의 친위 선전대다. 까닭에 이 악단의 공연 취소는 우리 걸그룹의 행사 펑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북·중 관계의 난기류를 말한다는 점에서. 악단의 전격 철수 배경은 현재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북·중 양측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다. 다만 김정은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는 게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중국 외교부가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바란다”(화춘잉 대변인)고 비판적 논평을 내놓으면서 제기된 추론이다. 중국 측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관람 최고위 인사를 정치국 위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으로 낮추자 김정은이 결국 오기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와 다른 소수설도 있다. 김정은이 옛 애인이었던 현송월이 언론에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거나, 단원 2명이 이탈하려 한다는 소문이 중화권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 김정일 사망 4주기(17일)를 앞두고 북한이 전국에 애도 기간을 선포하면서 해외 공연도 취소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어느 게 맞는지는 당장 확인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단순한 ‘공연 결례’를 넘어 북·중 관계의 앞날에 암초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혈맹이었던 북·중 관계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내부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변화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갈수록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 아닌, ‘전략적 부담’으로 여기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탈냉전 기류와 함께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드는 데다 김정은 정권 들어 핵실험 등 외교적 돌출 행위가 빈번해지면서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 중국 5세대 지도부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북·중 관계를 정상적 국가 관계로 치환하려 하고 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철수가 남북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역사에 어떤 변곡점을 만들지 주목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서울역 고가정원/강동형 논설위원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먹을거리에서부터 옷차림까지 무엇이든 ‘변신은 무죄’라는 말을 붙이면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 말 속에서 발전적인 변화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서울역 고가도로 위 차량통행이 어제 0시부터 금지됐다. 서울시는 이곳을 정원으로 꾸민 뒤 2017년 시민들에게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사업 이름이 이채롭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0년에 완공한 이곳을 2017년 공원으로 단장한다는 의미에서 붙였다고 한다. 서울에 고가도로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자동차 수가 급증하고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도심 곳곳에 등장했다. 도로건설 기술력을 보여 주는 것으로 고가도로만 한 것이 없었다. 경제성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서울에만 모두 111개의 고가도로가 건설됐다. 지금까지 철거된 입체도로 및 고가도로는 모두 18개, 아직도 83개가 남아 있다. 초기에 건설된 고가도로는 지하철이 건설되고 버스전용차로가 생기면서 서서히 생명을 잃어갔다. 여기에 시설물마저 노후화하면서 도시 미관을 해치고, 상권을 해치는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아현고가도로는 서울에서 가장 먼저 준공한 고가도로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아현고가는 중구 중림동과 마포구 아현동을 잇는 차도로 1968년 준공했으며, 지난해 철거됐다. 최근 고가가 지나던 곳에 버스 전용차로가 완공됐다. 고가도로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청계고가도로다. 3·1 고가도로라고도 불렸다.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한 역점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놓고도 처음에는 서울시 공무원 사이에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지금도 복원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거론하는 이들이 있지만, 복원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도시에서 걷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이만 한 곳이 없다. 이 전 대통령은 아예 자신의 호를 ‘청계’라고 지었다. 청계천 복원 준공식에는 당시 대통령이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했다. 서울역 고가의 공원화 사업과 청계고가 철거는 다르면서도 닮은 데가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공원화가 고가도로의 ‘변신 사업’이라면, 청계고가 철거는 ‘복원사업’이란 점이다.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면에서 두 사업은 지향점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공원화는 박원순 시장이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를 둘러보고 벤치마킹해 즉흥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들인 돈에 비해 효과가 작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반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씨줄날줄] ‘슈퍼맨 닥터 전’/임창용 논설위원

    ‘슈퍼맨 닥터 리’.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전문의인 이승복(50) 박사를 동료들이 부르는 별명이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에 근접한 체조선수였다. 이 박사는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건너가 체조 선수가 됐다. 재능이 뛰어난 그는 전미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1급 선수로 자랐다.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하던 그는 그러나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마루 훈련 중 도약했다가 턱부터 거꾸로 처박히는 사고를 당했고,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것이다. 꿈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동안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그를 구한 것은 의학이었다. ‘내 몸이 왜 이럴까’라는 궁금증에 의사들에게 물어보고, 의학서적을 읽기 시작하면서 ‘의사가 되겠다’는 제2의 꿈을 찾게 됐다. 그는 재활훈련에 힘을 쏟아부었고, 공부를 시작했다. 뉴욕대와 컬럼비아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마침내 다트머스의대에 진학했다. 이어 하버드의대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레지던트가 됐다. 체력이 약한 그는 거기까지 가려고 친구들보다 몇 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는 병원에서 ‘희망의 아이콘’이다. 동료 의사들은 재활훈련을 포기하려는 환자가 있으면 그를 호출한다.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이 박사의 스토리가 재현될 듯싶다. 지체장애 1급인 서울 동성고 3학년 전병건(18)군이 연세대 의예과에 수시합격했다는 소식이다. 태어날 때부터 근무력증을 앓아온 전군은 혼자 걸을 수도, 연필을 오래 잡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퉜다. 필기가 어려워 최대한 집중해서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도 한때는 불만 가득한 반항아였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수백 번 전화해 사정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전군은 자기소개서에 “고2 때까지 정확한 진단도 못 받고 살아왔다. 의사가 돼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썼다고 한다. 이 박사가 절망을 딛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같다. 전군의 합격은 희망을 갈망하는 장애인들의 목을 축여 주는 단물 같은 소식이다. 지독한 불황에 떨고 있는 서민들의 언 손도 조금이나마 녹여 줄 것 같다. 대학 측의 결단에도 박수를 보낸다. 연세대는 ‘1급 지체장애인도 의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만큼 사회의식이 진보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10여년 전 이 박사가 크게 화제가 됐을 때만 해도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합격은 또 다른 시작이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힘든 과정이 전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슈퍼맨 닥터 전’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구텐베르크보다 빠른 조선 금속활자/서동철 논설위원

    어제 서울시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자치통감’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치통감’은 북송의 사마광이 편찬한 중국 역사책이다. 조선은 세종 18년(1436) 초주갑인자로 294권 100책 분량의 이 책을 찍어냈다. 초주(初鑄)갑인자라는 이름은 뒤에 만든 개주(改鑄)갑인자와 구별하고자 붙여졌다. 갑인자(甲寅字)는 세종 16년(1434) 갑인년 만들어졌다. 서양 금속활자의 선구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라틴어판 구텐베르크 성경이 인쇄된 것이 1445년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한 새로운 인쇄법을 완성한 것도 1440년 이전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갑인자 자체가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것은 물론 갑인자로 찍은 ‘자치통감’도 구텐베르크보다 앞선다. 조선은 금속활자의 천국이었다. 태종 3년(1403)에 벌써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한다. 전 왕조인 고려시대에 이미 금속활자 인쇄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해 주자소에서 만든 활자가 계미자(癸未字)다. 세종은 금속활자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세종 2년(1420) 만든 경자자(庚子字)는 인쇄 능률을 더욱 향상시킨 금속활자다. 조선시대 들어 세 번째 개량한 활자가 갑인자다. 갑인자는 조선시대 금속활자 가운데서도 가장 진보된 형태의 활자로 꼽힌다. 갑인자에 이르러 처음으로 한글활자가 만들어진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 초기 대표적인 금속활자인 계미자, 경자자, 갑인자가 모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이른 시기에 광범위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금속활자본이라면 누구나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을 이야기하지만, 서양에서 금속활자 인쇄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책이 금속활자로 인쇄됐고, 그 많은 활자 및 판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더구나 아무리 금속활자의 나라라지만 최근 논의는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는 것 같다. ‘직지’에 앞서 ‘남명화상찬송증도가’를 인쇄하는 데 쓰인 금속활자라는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는 몇 년째 진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하고 있는 개성 만월대에서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금속활자가 나와 비상한 관심을 부르기도 했다. 반면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외면당하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금속활자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발명품의 하나로 대접받는 이유는 특수층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의 대량 보급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12세기부터 금속활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는 더욱 꽃을 피웠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금속활자가 서양처럼 획기적 지식 전파의 촉매가 되지 못했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웰다잉과 100세 시대/임창용 논설위원

    며칠 전 집에서 TV로 영화 ‘아무르’를 보았다. 칸영화제 수상작이다. 늙는다는 것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영화다. 성공한 음악인 노부부 안과 조르주가 주인공이다. 불행은 아내 안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며 갑자기 찾아온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된 아내. 조르주는 지극정성으로 집에서 아내를 돌보지만, 상태는 계속 악화된다. 그래도 조르주는 병원에 다시 입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아내를 돌보려 한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며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아내의 고통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끝내 베개로 눌러 숨지게 한다. 영화는 요즘 화두가 된 ‘웰다잉’(Well-Dying)과 맞물려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을 툭툭 던진다. 갑자기 쓰러져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할래? 의사 표현조차 할 수 없다면? 중증 치매에 걸려 인격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준비는 돼 있는 거야? 웰다잉이 꼭 노인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브리타니 메이나드라는 여성이 존엄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예고한 날짜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통스러운 삶보다 최소한의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한 그녀의 나이는 29살이었다.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오리건, 워싱턴, 버몬트 등 3개 주는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환자의 존엄사를 합법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소식이다. 지난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웰다잉을 향한 의미 있는 큰 걸음을 뗀 것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원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를 연명의료 중단 대상으로 정했다. 연명의료는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으로 임종기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다. 1997년에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환자를 가족의 요청으로 퇴원시켰던 의사가 살인 방조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연명의료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3.9%에 불과하다. 연명의료가 그동안 본인의 의지보다는 유교에 바탕을 둔 자식들의 효 사상에 의한 것임을 잘 보여 준다. 우리 사회는 이제 100세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해 태어난 여아 100명 중 5명은 100세까지 장수할 것이라고 한다. 장수는 축복이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하면 늘어난 수명은 고난이고 족쇄일 뿐이다. 노화와 건강이 반비례한다는 점에서 웰다잉의 의미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노화를 늦춰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하되 웰다잉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씨줄날줄] ‘NIMT 현상’/구본영 논설고문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 국가의 조직은 관료제의 합리적 권위에 기반을 둔다고 했다. 하지만 관료제도의 장래에 기대와 불안이 엇갈렸던 모양이다. 제대로 된 관료제도가 “영혼이 없는 전문가나 마음이 비어 있는 육감주의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까 염려했다니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관료제의 순기능 못잖게 역기능도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국민보다는 조직 내부만 바라본다거나, 업무량과는 관계없이 기구만 늘려 놓고 보는 관료주의의 병폐를 앓고 있다지 않은가. 베버가 염려했던 대로다. 최근 회자되는 조어인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도 그런 차원인가. ‘내 임기 동안은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이보다 일부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더 잘 설명할 순 없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인 이른바 개발연대엔 관료들이 국가 발전의 견인차였다. 경제기획원을 만들어 맨땅에 헤딩하듯 ‘증산·수출·건설’을 부르짖던 그 시절, 관료들은 ‘하면 된다’ 정신(캔두이즘)의 전령 격이었다. 당시에도 공무원 조직에 문제야 없었겠느냐만, 그래도 우수 인력이 많이 모여 한번 해 보자는 사명감도 컸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인 요즘 관료 조직이 꼭 민간보다 우월한 집단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런데도 혹여 우리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젖어들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인사혁신처가 그제 ‘직무와 성과 중심의 공무원 보수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공무원 조직에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고, 특히 업무 난이도나 중요도에 따라 우대한다고 한다. 공정한 잣대만 세운다면 일 잘하는 관료를 대우한다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게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공직사회에서 님트 현상을 없애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즉 상벌 기준을 명확히 해 혹시 잘못됐을 경우 문책이 두려워 아무 일도 않으려는 공직자들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 깰까 두려워 서로 설거지를 미루는 가정이 화목할 리도, 번창할 리도 없다. ‘실수하지 말고 중간만 가자’는 무사안일주의가 횡행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지역사회 이기주의, 즉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보다 더 무서운 풍조가 님트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관료사회보다 우리 정치권이 더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리 유익한 정책일지라도 자신들에게 표를 줄 계층이나 지역민이 싫어하는 일은 않겠다는 선량들을 보면서다. 일찍이 베버는 신념윤리도 책임윤리도 없는 ‘생계형 정치인’의 출현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들을 ‘영혼 없는 관료’보다 더 해로운 존재로 본 셈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동·금융 개혁을 한사코 가로막으며 격돌하다 외환위기를 부른 김영삼 정부 시절의 여야 대치를 요즘 데자뷔인 양 다시 보면서….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안전 트라우마/강동형 논설위원

    서해대교 주탑에 낙뢰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케이블이 끊어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서해대교’. 총연장 7310m, 다리 폭 31.41m인 왕복 6차선 교량. 완공일은 2000년 12월 15일. 초당 65m의 강풍과 리히터 규모 6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교량. 주탑 높이가 182m, 다리 사이의 간격이 470m라는 ‘교량 제원’을 읽어 내려갔다. 미스터리 화재 사고 소식을 접한 뒤 떠오른 단어는 ‘안전’이라는 두 글자였다. 이어 20년 전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1994년 10월 4일 아침. 서울시청에 출입한 지 일주일도 안 됐다. 출근을 서둘렀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눈을 감았다. 라디오에서 “한강에 버스가 추락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담아듣지 않았다. 버스기사의 운전 부주의로 발생한 단순 사고쯤으로 생각했다. 이어지는 뉴스에서 성수대교 상판이 무너졌다는 현장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너진 상판 위에서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귓전을 스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순 사고가 아니다. 시청 출입기자가 처리해야 할 기사를 생각하며 숨이 막혔다. 교량 전문가들이 안전 점검을 하는 붕괴 현장을 취재했다. 배를 타고 성수대교 밑에 접근하고 나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고쳐서 재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전면 재시공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눈으로 본 성수대교는 재사용이 불가능했다. 이곳저곳에 금이 가 있었다. 금세 붕괴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2차 붕괴를 우려해 일행은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왔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우리 사회에 안전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큰 교훈을 남겼다. 교량을 관리하는 지침서가 만들어지고 예산도 편성됐다. 상시 관리 체제가 확립됐다. 큰 사고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남모르게 고통을 겪고 있는 외상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대형 사건 사고를 취재한 기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면 강박증을 갖게 되는 것도 트라우마의 일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해대교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교량 전문가들이 해상의 기상조건을 고려해 안전 관리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상념이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서해대교 화재와 관련한 속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여러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나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안전 트라우마.’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로공사와 교량 전문가들이 서해대교 사고 원인을 밝혀낼 것으로 믿는다. 그즈음 내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도 사라질 것 같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씨줄날줄] 소통의 판타지 ‘응팔’/황수정 논설위원

    10대 딸과 40대 엄마가 나란히 텔레비전 앞에서 드라마 본방을 사수한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쉽지 않은 풍경이다. 심심풀이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시대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 이야기다. 드라마의 인기가 고공비행 중이다. 케이블 드라마에서 15%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다면 ‘사건’이다. 지상파 드라마도 10% 시청률을 넘기 어렵다. 10대에서 5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에서 고르게 인기를 확보하고 있다는 통계가 번번이 덧붙는다. 이쯤 되면 이의를 달 수 없는 신드롬이다. 다섯 이웃들의 사연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배경은 언제나 골목이다. 80년대 후반 서울에서도 발전이 뒤처졌던 변두리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그 시절과 지금의 간극이 얼마인지 한눈에 보인다. 콩나물 300원어치를 한 봉지 수북이 담는 장면 한켠에 시든 바나나 한 개 값이 무려 2000원이다. 부엌 요지에 버텨 선 키 높은 쌀통도 시대를 말해 준다. 밥이 여전히 최고의 먹거리로 대접받던 시간임을. 월동 준비로 창고에 연탄을 사 쟁이고, 연탄가스에 비몽사몽인 가족은 동치미 국물을 사발째 마시고, 어느 집에서 별난 음식이라도 만들면 어김없이 집집에 접시가 돌려지고. 휴대폰이란 것이 없었으니 골목 10대들의 소통 방식은 철저히 아날로그식일밖에. 그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40대와 그 이전 세대들에게도 새삼스럽기는 마찬가지인 풍경들이다. 요즘 드라마 인기의 헤게모니를 쥐는 쪽은 10대들이다. 별나라 이야기 같을 이 생소한 장면들에 그들이 더 열광하는 모양이다. 소셜미디어 트위터 등에서 언급된 횟수(버즈량)로 측정하는 화제성 지수가 110에 가깝다고 한다. 평상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화제성 지수가 60쯤. 그 열기를 가늠할 수 있다.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는 딸아이는 질문이 많다. 이웃들이 저렇게 친할 수 있었냐고, 엄마 아빠 대학생 때는 왜 데모를 했으며 최루탄은 어떤 맛이었냐고, 엄마도 힘들어서 몰래 울기도 하냐고…. 들썩이는 엄마의 어깨 너머에서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학생 딸이 함께 눈물을 찍어 낼 수 있다면, 덮어 놓고 고마운 시간이다. 어떤 장르의 드라마든 판타지를 팔아야 성공한다. 갈등 구도 없는 순진한 드라마로 위장했을 뿐 ‘응팔’에는 거대 판타지가 넘실댄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소통’의 판타지. 골목이 사라진 이 시대로서는 도무지 머리로는 상상하기 힘든, 잃어버린 공동체 문화에 대한 향수다. 가족, 이웃, 세대 간의 불통(不通)이 상식이 돼 버린 현실에서 돌아보는 지독한 그리움이다. 드라마 속에나 들어가야 몸을 녹일 수 있는 현실이 춥다. 가뜩이나 시린 손이 더 시려 온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씨줄날줄] 비셰그라드식 체제 전환의 교훈/구본영 논설고문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의 앞 구절이다. 이국의 황량한 공간을 배경으로 가을의 쓸쓸함을 잘 형상화했다는 명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인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란 역사적 비극이 일제의 폭정으로 고달팠을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을 법하다. 중유럽의 체코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체코·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 등 4개국 정상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른바 비셰그라드 국가(V4) 정상들을 한꺼번에 만난 것이다. 비셰그라드 그룹은 중유럽 4개국 지역 협력체다. 옛소련이 해체되면서 그 위성국의 처지에서 벗어난, 뼈아픈 과거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헝가리의 비셰그라드에서 결성했다. V4는 역사적으로 주변 ‘공룡국’에 번갈아 유린당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김광균 시인이 읊은 것처럼 폴란드 도룬시가 독일 나치정권의 포화로 이지러졌듯이…. 폴란드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 등 강국의 등쌀에 시달렸던 것처럼 체코와 헝가리도 마찬가지였다. 동서 냉전기에 체코인들은 둡체크 주도로 민주화 운동을 벌였으나 소련군이 탱크로 진압하면서 1988년 ‘프라하의 봄’ 때까지 긴 겨울을 보내야 했다. 냉전 시절 먼 나라였던 V4가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느낌이다. 한·V4 정상회담을 계기로 50조원대에 이르는 중유럽 신규 인프라 시장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됐다니 반갑다. 슬로바키아 신규 원전이나 헝가리 지하철 보수 사업에 뛰어들 기업들엔 발판이 마련됐다면 말이다. 하지만 더 반겨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과거 북한과 사회주의 블록에 속했던 V4가 북핵 포기를 합창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이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의 성공적인 체제 전환을 언급한 대목이 주목된다. 한·V4 정상회담 직후 공동회견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과정, 통일 이후 통합 과정에도 의미 있는 교훈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 것을 감안한 것일까.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비셰그라드 정상들이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갈 때 겪은 어려움과 실책들이 (한국에) 참고가 될 것이고, 아낌없이 자신들의 경험을 우리와 나누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부연 설명했다. 당연히 일리가 있다. 옛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도미노 붕괴’를 거친 뒤 요즘 V4 국가들이 괄목할 만하게 도약 중인 배경이 뭔가.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복수 정당제와 자유선거 등 민주화에도 연착륙하면서 진정한 체제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쪽인 북한이 외려 교훈을 얻어야 할 듯싶다. 이제라도 시대착오적 유일체제와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메기효과/박홍기 논설위원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1889~1975)는 생전에 ‘청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 자신의 이론, 이른바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효과적으로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청어는 영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생선이다. 청어는 영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북해나 베링해협에서 잡혔다. 그러나 성질이 워낙 급한 탓에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거의 죽었다. 활어 상태의 청어는 냉동 청어에 비해 값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런데 항상 한 어부만이 청어를 싱싱하게 산 채로 내다 팔았다. 동료들의 끈질긴 성화에 못 이겨 털어놓은 어부의 비결인 즉 메기였다. 청어를 넣은 통에 메기 한 마리씩을 넣는다는 것이다. 청어 떼는 메기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줄곧 도망 다니다 보니 자연 그대로 운반됐다는 얘기다. ‘메기효과’다. 토인비는 “좋은 환경과 뛰어난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주창했다.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명저 ‘역사의 연구’는 도전과 응전의 논리를 집약했다. ‘큰 성공을 거둔 탁월한 사람, 아웃라이어(Outliers)는 타고난 환경과 특별한 기회의 조합에서 비롯된다’는 맬컴 글래드웰의 주장과 다르다. 지난해 12월 18일, 세계 1위 가구업체인 스웨덴의 ‘이케아’가 경기 광명시에 첫 매장을 열었다. 당시 미디어들은 ‘이케아 공포’, ‘공룡의 습격’이라는 표현마저 서슴지 않았다. 국내 업계에 대형 악재로 본 셈이다. 전 세계 42개국 300여 매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인 까닭에 당연한 지적이었다. 내수 부진에 침체된 국내 가구업체들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이케아 광명점 누적 방문객 수는 1000만명, 연 매출은 2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케아 공포’가 아닌 ‘이케아 효과’라는 말이 업계에서 나온다. 이케아라는 ‘메기’로부터 ‘청어’처럼 살아남기 위해 국내 업체들도 원가 절감에다 매장 대형화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서면서다. 대대적 체질 개선으로 변모에 성공하면서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퍼시스, 에이스침대 등 ‘빅5’ 가구업체의 올 3분기까지 매출은 2조 3027억원에 달했다. 전년 동기보다 19.8% 늘어난 수치다. 최근 카카오뱅크와 K뱅크라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첫 관문을 통과했다. 예비인가를 얻었다. 1992년 평화은행 이후 23년 만에 은행라이선스를 내준 사건이다. 금융 지형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두 마리의 메기를 만난 것이다. 글로벌 핀테크(금융+기술) 경쟁에 뛰어든 것과 같다. 인터넷 세상에는 벽이 없다. 언제든지 엄청난 힘을 가진 ‘메기’와 부닥칠 수 있다. 때문에 변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고는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남기가 버겁다. 개인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도전에 대한 응전이 필요한 이유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DMZ의 후고구려 도성/서동철 논설위원

    지난해 도로명 주소를 쓰기 시작하면서 강원도 철원군에서는 역사책에나 나오던 오래된 이름들이 부활했다. 철원군청이 있는 갈말읍 외곽의 궁예로가 그렇고, 동송읍과 나란히 놓인 태봉로가 그렇다. 궁예(?~918)는 말할 것도 없이 후고구려를 창건한 인물이고, 태봉(泰封)은 그가 철원을 도읍으로 세운 나라 이름이다. 궁예의 신분을 두고 ‘삼국사기’는 이렇게 적었다. ‘궁예는 신라 사람이니 성은 김씨이다. 아버지는 신라 제47대 헌안왕으로, 어머지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다. 혹자는 궁예가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궁예가 태어나자 “장차 나라에 이롭지 못할까 염려한다”는 천문관의 말에 왕은 궁예를 죽이려 했고, 아이를 포대기 속에서 꺼내 다락 밑으로 던졌는데 유모가 몰래 받다가 손가락으로 눈을 다치게 하여 한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신라는 9세기 후반 통치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부실한 재정을 메우려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전국에서 잇따라 반란이 일어난다. 중이 되었던 궁예는 진성여왕 5년(891) 지금의 경기도 안성인 죽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기훤의 휘하에 들어간다. 이후 지금의 강원도 원주인 북원의 반란군 두목 양길에게 다시 투신했다. 궁예가 강릉 땅 명주를 점령했을 때 그의 세력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궁예는 명주로부터 서북진(西北進)해 주변 각 고을을 모두 휩쓴 뒤 철원에 자리 잡는다. 895년이 되자 궁예 세력은 국가의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듬해 송악의 대호족 왕건 부자가 귀순해 오자 898년 도읍을 지금의 개성인 송악으로 옮긴다. 궁예는 이후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충북을 아우르는 세력으로 성장하면서 901년에는 후고구려의 왕을 자처한다.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고치고 905년에는 다시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다. 911년에는 국호를 태봉으로 바꾼다. 본격적인 철원 왕도(王都)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길지 않았다. ‘삼국유사’에는 ‘무인년 6월 궁예가 죽으니 태조가 철원경에서 즉위했다. 기묘년에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다’는 대목이 보인다. 무인년은 태조 원년인 918년, 기묘년은 919년이다. 이렇듯 철원은 태봉의 도성에 그치지 않고 고려의 도성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철원의 후삼국시대 도성은 그동안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도성 터가 비무장지대(DMZ) 한복판에 놓여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도성은 둘레가 1.8㎞인 왕궁성, 7.7㎞인 내성, 15.5㎞인 외성으로 이루어진 3중성이다. 최근 정계를 중심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이 도성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도 군부의 반대가 문제일 뿐 조사 자체를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도성 터에는 경원선 철길이 놓였다. 공동 조사의 첫 단계로 철길을 이설하는 문제부터 남북이 마주 앉아 풀었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의원실의 카드 단말기/박홍기 논설위원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이른바 ‘갑(甲)질’을 했다. 최근 로스쿨에 다니는 아들이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압력을 넣어 물의를 빚은 신기남 의원, 대기업을 압박해 로스쿨에 다닌 딸을 취업시킨 의혹을 사는 윤후덕 의원에 이은 또 하나의 갑질이다. 노 의원은 3선 의원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 대표의 최측근 중의 한 명이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운동권 출신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이란 중책도 맡고 있다. 상업·무역·공업·통상·에너지·지하자원 등 공기업뿐만 아니라 민간기업과도 상당 부분 직결된 업무를 다루는 위원회다. 노 의원의 갑질은 희한하다. 의원회관 사무실에 출판사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라는 자기 시집을 팔았다. 이미 10월 30일 지역구인 청주에서 시집 발간 북콘서트까지 열었던 터다. 대한석탄공사는 지난달 2일 시집 50만원어치를,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피감기관에 판 책 대금은 400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카드 단말기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한 의원들 같은 사람을 위해 의원 사무실에다 갖다 놓았다는 얘기다. 국회에서의 ‘책장사’나 다름없다. 출판기념회는 한동안 정치인들의 음성적 정치자금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때문에 지난해 검찰이 나서서 손대려 하자 국회의원들이 자정에 나섰다. ‘출판기념회 경계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가 판매 원칙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횟수 제한(4년 임기 중 2회) 등을 담은 출판기념회 준칙안도 마련했다. 법제화까지는 못 갔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출판기념회의 비용과 수익을 정치자금에 준하게 관리해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노 의원의 기발한 갑질은 도덕성 문제를 넘어 형사처벌감이다. 노 의원 측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지만 현행법은 엄격하다.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사업장이 아닌 곳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판사 몰래 의원실에서 전자 영수증을 허위로 발급했을 때 조세범 처벌법 위반 소지도 있는 목소리도 적잖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소관 상임위원회의 직무와 관련한 영리 행위를 할 수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 혁신을 위해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이란 섬뜩한 표현마저 서슴지 않았던 게 불과 6개월 전이다. 앰브로스 비어스(1842~1913)는 저서 ‘악마의 사전’에서 ‘정치는 범죄 계급 중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 수단’이라고 신랄하게 풍자했다. 노 의원은 이에 뭐라 답할까 묻고 싶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복면 시비/황수정 논설위원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잘 알려진 에밀 아자르는 시공을 넘어 회자되는 프랑스의 거물 작가다. 한 사람이 중복 수상할 수 없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상을 받기 전에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그 상을 받았다. 그때의 필명은 로맹 가리. 본명인 로만 카체브 대신 여러 필명으로 작품을 내놓았다. 그가 필명을 바꾸는 이중의 삶을 선택했던 이유는 하나. 어떠한 편견도 없이 선명하게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공쿠르상을 처음 받은 뒤 로맹 가리라는 유명세에 달라붙는 허구의 이미지들을 견딜 수 없었다. 펜에 ‘복면’을 씌웠던 그의 실험은 유효했다. 로맹 가리를 퇴물 취급하던 프랑스 문단은 에밀 아자르를 혜성 같은 천재 작가라고 극찬했다. 작가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세상 사람들은 그 실험에 감쪽같이 속았다.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누가 어떤 옷을 입더라도 마침표를 찍는 관건은 얼굴이라는, 외모 지상주의 결정체의 유행어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은 요즘 이런 대중적 취향을 역공하는 무대를 자주 만드는 모양이다. 겐조, 웅가로, 랑방, 콤데가르송 등 패션 거장의 브랜드들이 ‘패완얼’의 편견을 깨보려 획기적 발상을 한다는 외신이 들린다. 톱스타를 쓰는 대신 모델에게 복면을 씌워 런웨이에 내보내는 방식이다. 오로지 작품에만 주목하게 하여 객관적인 성적표를 받아 보고 싶은 욕망은 예술가의 본령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대중 환상의 거품을 십분 활용해야 헤게모니를 쥘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건 통하는 공식이다. 그런 일반 논리를 애써 거슬러 보는 작업에 호기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멀리 눈 돌릴 필요가 없다. 우리 곁에는 TV의 인기 가요 프로그램 ‘복면가왕’이 있다. 아이돌 그룹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얼굴, 외모가 많이 기우는(?) 예능인이 우승자로 복면을 벗는 순간은 모두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인기, 외모, 나이 같은 ‘반칙’ 없이 계급장을 뗀 ‘정의’에 박수를 보내는 드문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카타르시스의 인기 프로그램이 난데없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한창 논란을 빚고 있는 복면시위금지법이 엉뚱하게 불똥을 튀겼다. 인터넷은 “복면가왕도 폐지?” 운운하는 네티즌들의 비아냥과 설왕설래로 나날이 뜨겁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로보캅 같은 할리우드 가면 캐릭터들이 복면금지법에 쌍수 들고 반대한다는 우스개도 온라인 공간에서 넘쳐난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복면시위 금지를 풍자하는 그라피티가 선보이고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벗기려는 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려는 쪽. 유의미한 메타포 한 줄 없이 성토와 조롱으로 일관하는 시비가 시시각각 공허하게 울린다. 이야말로 피로사회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