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지음
●전통연희의 역사적 전개과정 살펴
연희(演)의 사전적 의미는 ‘말과 동작으로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그러면 전통연희란 무엇인가.그동안 우리 학계에선 동아시아 고대와 중세의 기예적인 연희를 일컫는 산악(散樂)과 백희(百戱)에 해당하는 연희들을 전통연희라 불렀다.반면 조선 후기 들어 등장한 연극적 갈래의 새로운 연희들은 본산대놀이,판소리,가면극 등의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전통연희와 구분했다.
그러나 고려대 전경욱(45·국어교육과)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의 전통연희’(학고재 펴냄)에서 이런 연희들을 하나로 묶고 현재 전해지지 않는 연희까지 포괄해 전통연희란 말을 사용한다.지금까지 전통연희는 연극사의 한 분야로만 취급돼 왔지만 저자는 전통연희를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 설정해 그 역사적 전개과정을 다룬다.
●백제엔 백제악·신라엔 독자적 연희 발달
상고시대 연희종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삼국지’ 위서(魏書)동이전 등의 문헌자료와 암각화를 통해 풍농과 공동체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의적 성격의 국중대회가 성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저자는 이 제천의식에서 행해진 가무와 제례의식의 전통이 우리 전통연희의 자생적인 발전 기반이 됐다고 본다.
삼국시대의 전통연희는 초기엔 중국의 모방단계에 그쳤지만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점차 외래적인 요소를 자기화했다.각저총 벽화의 각저희(角抵戱,씨름) 장면이나 안악3호분 벽화의 ‘발꼰춤사위’ 등을 보면 고구려는 중국뿐 아니라 서역과도 직접적으로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는 남조 음악의 영향을 받은 백제악이 발달했고,신라는 원효의 무애무나 동물 가면을 쓴 가면희인 신라박 같은 서역과는 다른 독자적인 연희종목을 개발했다.고려시대엔 교방을 두고 궁중에서 전문적인 연희자를 키워 세련된 궁중정재를 펼쳤고 북방 유목민 출신의 양수척,거란족,달단 등이 재인촌을 이루고 전문적인 연희자로 활약했다.
●조선시대 연희는 유가적 가치 중시
조선시대의 전통연희는 어떤 모습일까.조선은 불교를 중시한 고려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유교를 숭상하고 유가적 가치인 검박함을 중시했다.고려 때 성행한 팔관회와 연등회는 자취를 감췄고 수륙재나 우란분재 같은 불교행사도 약화됐다.대신 중국 사신 영접행사나 나례 등에서 대규모 연회가 이뤄졌고,과거 급제자 축하잔치인 삼일유가(三日遊街)와 문희연(聞喜宴)을 성대하게 벌였다.
한편 조선 후기 들어 발달한 상품화폐경제와 신분제의 모순에 관한 민중의 고양된 의식은 전통연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남녀간의 사랑이나 말뚝이로 대변되는 서민 주인공의 현실비판을 담은 새로운 연희로 판소리,본산대놀이 가면극,꼭두각시놀이 등이 등장한 것이다.
●도판 200여점… 읽는 재미 더해
책은 이처럼 각 시대별로 연행된 전통연희들을 빠짐없이 다루지만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저자는 한국의 전통연희를 과거 활발했던 실크로드 교류의 맥락에서 다룬다.그런 만큼 우리 문화와 서역 문화의 교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전통연희에 대한 연구가 이론적으로 어떻게 이뤄져 왔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이두호·서연호·윤광봉 등 전통연희 연구 1세대 학자부터 신진 연구자들의 업적까지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살핀다.200여컷의 풍부한 도판이 전통연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3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