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자금 개선 로드맵
야당의 엄청난 규모의 불법 대선자금이 검찰에 의해 밝혀지자 또다시 정치자금에 관한 격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더욱이 도덕성을 내세웠던 여당도 이러한 불법시비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훌륭함과 책임감 측면에서,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은 바람둥이,주정뱅이,마약중독자와 함께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활동성 측면에서도 정치인들은 홀아비,게으름뱅이와 함께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한마디로 정치인은 권력은 있지만 훌륭하지도 책임감도 없으며,활동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일반 국민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정치인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따라서 우리는 정치현실을 개탄하고 정치인을 비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다 함께 고해성사하고 내일부터 깨끗하게 정치를 하자는 주장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치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개선책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첫째,한국 정치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그동안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비교적 순조로운 민주화를 이루어왔다.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지나친 자만감이나 성급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우리는 1945년 광복 이후에서야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다.더욱이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뽑고 있는 전통을 이제 세우고 있는 중이다.사실 선진국들이 정치부문을 비롯해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이러한 공공영역을 구축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아직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는 않지만,6공화국 초기의 대선자금에 비해,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불법 정치자금의 규모는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물론 여전히 그것이 불법인 것은 사실이고,더욱더 그 규모를 줄여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우리가 쓰레기봉투나 은행 순서대기표의 실행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현실에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제도와 체계이다.물론 현행 법체계에서도 충분히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문제는 사람들의 가치와 태도에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그러나 적절한 체계와 제도를 만들어 놓지 않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조만을 구하는 것은,상습정체지역에 적절한 교통시설을 만들어 놓지 않고 서로 양보하라고 현수막만 걸어 놓는 것과 똑같다.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실현하거나 보장받고 싶은 것은 현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 당선이 모든 것을 얻고 낙선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아울러 정치권력이나 행정부가 민간의 경제활동을 불필요하게 간섭하는 각종 규제를,민간이 참여하는 중립적인 기구가 중심이 되어 없애야 한다.정치권력과 행정부는 규제를 권력행사의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쉽고,이로 인해 부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는 보다 중립적인 기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검사 출신의어떤 변호사가 이야기한 대로,정치권력의 영향을 받는 검찰에서 권력을 가진 여당과 그렇지 못한 야당을 공평하게 수사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물론 검찰의 중립에 대한 전통과 사회적인 합의가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수사를 받는 당사자나 일반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사실 여부를 떠나 그러한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명 진 국민대교수 정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