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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탁위의 녹색신호등 ‘그린푸드’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정민(39)씨는 “녹색은 기분을 좋게 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음식으로 만들면 신선하고 싱그러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그는 깻잎 롤 스시와 녹차팥빙수,오이·아스파라거스 냉국,푸실리 콜드 파스타 샐러드를 만들어 보였다. 그린푸드는 사실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먹어 왔다.인류의 가장 오랜 먹을거리인 그린푸드는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섭생연구원 허봉수(45) 박사는 “예전에는 필수 아미노산을 중심으로 한 단백질 보충이 관심사였다면 이젠 체내의 이물질과 독소 처리로 초점이 옮겨졌다.”며 “독소 처리에는 녹황색 채소 즉 그린푸드가 가장 적격”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제철 채소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이 풍부하고,야채의 섬유질이 장 운동을 도와 장내 이물질 배출을 원활하게 한다.”고 말했다. 요리연구가 윤민선(35)씨는 “녹황색의 산야초와 야채는 우리나라에선 나물류로 발달했고,서양에선 샐러드로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식에 청량감을 주는 녹색 물을 들인 것은 무척 오래 됐다.김수인(32) 전남도립남도대학 호텔조리학과 교수는 “과거엔 산나물 종류인 수리취와 쑥·모시 잎으로 녹색 물을 들였다.”며 “데칠 때 소금을 넣으면 변색을 막을 수 있고,너무 오래 삶으면 엽록소가 파괴되니 살짝 데쳐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올해 특히 눈길을 끄는 그린푸드는 클로렐라와 녹차.클로렐라나 녹차는 이미 건강성이 입증됐다.세계 최장수국 일본에서 녹차와 클로렐라가 녹색바람을 주도하고 있다.‘꿈의 식품’으로 불리는 클로렐라는 5대 영양소가 가득한 천연 식품이고,녹차는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카테틴 등과 함께 비타민C가 풍부해 성인병 예방이나 체질 개선 등에 효과가 높은 식품이다. 이런 녹차를 물에 우려 마시거나 클로렐라를 알약 형태로 먹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밀가루 반죽을 할 때 클로렐라나 녹차 가루를 뿌려 녹색을 내면서 양분도 함께 섭취한다.서울 구의동 옛당칼국수 김성호(37) 실장은 “클로렐라는 1% 미만의 극히 미량만 넣어도 색깔이 제대로 난다.”며 “원기소 비슷한 클로렐라의 맛과 색깔을 음식 재료와 조화를 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녹차 가루는 백화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반면 클로렐라 가루는 제과·제빵재료상에서 살 수 있다.몸과 마음까지 청량감을 주는 그린푸드가 더운 여름에 딱 맞는 웰빙음식이다. ■ 강추!!! 그린음식점 서울 올림픽대교 북단 4거리에서 구의4거리 쪽으로 200여m쯤 가면 클로렐라 칼국수 전문점이 나온다.옛당칼국수(02-455-1345)는 서민 음식 칼국수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점심 메뉴는 클로렐라 칼국수(6000원).밀가루 반죽에 클로렐라 가루를 섞은 것으로 색상이 녹색으로 진하면서 면발이 졸깃졸깃하게 살아 있다.칼국수 육수는 바지락·새우·미더덕 등을 넣어 시원하고 깔끔하다.또 저녁때는 클로렐라 돼지고기 수육(1만 2000·1만 8000원)도 인기메뉴다.돼지고기를 삶을 때 클로렐라 가루를 함께 넣은 것으로 돼지 특유의 잡냄새를 없애준다.어린이를 위한 클로렐라 돈가스(6000원)는 돈가스 튀김옷을 만들 때 클로렐라를 넣은 것이다.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2층의 이탈리아 식당 메짜루나(02-3783-0003)는 클로렐라를 응용한 음식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지난 4월부터 내놓은 클로렐라 음식은 모두 4가지.가장 인기가 높은 클로렐라 피자(1만 7000원)는 도를 반죽할 때 클로렐라 가루를 섞어 넣은 탓에 구워도 녹색을 낸다.위에 갑오징어·문어·홍합·새우·관자·전복·주꾸미 등의 해산물과 함께 양파·양송이,파마산 치즈 등을 넣고 구워낸 것.또 파스타 종류인 파파르 델리(1만 7000원)도 클로렐라를 섞어 면발 색상이 싱그럽다.우리의 만두와 비슷한 라비올리(1만 8000원),볶음밥인 리조토(1만 8000원)에도 클로렐라를 넣었다. 낙지로 유명한 무교동낙지(02-442-7711)도 최근 해초 수제비와 해초 칼국수를 각 5000원에 내놓았다.짙은 녹색의 수제비와 칼국수는 다시마와 미역의 엑기스를 뽑아 밀가루 반죽에 섞어 뽑은 것이다.권혁흔(44) 본부장은 “다른 기능성 칼국수는 분말 건조된 가루를 밀가루 반죽에 써지만 우린 엑기스를 뽑아 쓰기 때문에 영양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내 호텔들도 그린푸드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JW메리어트서울의 중식당 만호(6282-6741)는 이달 말까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한 아스파라거스 프로모션을 연다.우리의 죽순처럼 서양에선 아스파라거스로 입맛을 돋운다.라마다호텔 카페 스타시오(6202-2033) 역시 이달 말까지 유기농 샐러드를 모은 ‘테이스트 오브 그린’을 9900원에 행사를 계속한다.아미가호텔 베이커리 아마도르(3440-8133)는 촉촉한 카스텔라에 클로렐라를 넣은 클로렐라 카스텔라(6000원)와 호두·건포도를 함께 넣은 클로렐라 파네토네(5000원)를 내놓았고,서울프라자호텔 델리프라자(310-7358)도 클로렐라 브레드·시금치 식빵 등을 판매한다. ■ 김정민의 그린푸드 요리조리 ●깻잎 롤 스시 재료 깻잎 12장,김 2장,밥 4공기,아보카도·오이 ½개씩,맛살 1개,날치알 약간,배합초(설탕·식초 4큰술씩,소금 1½큰술) 만드는 법 (1)밥은 고슬하게 지어 배합초에 잘 섞어 식힌다.(2)아보카도는 껍질을 벗겨 1㎝ 두께로 썰고,맛살은 반으로 가른다. 오이는 맛살과 같은 두께로 썬다.깻잎은 줄기 부분을 잘래 내는 것이 좋다.(3)도마 위에 발을 놓고 그위에 랩을 얹고 김을 깔아 놓은 후 밥을 펴서 전체에 얇게 깐다.(4)김 크기의 가운데 부분에 깻잎을 얹고 뒤집어 다시 김위에 밥을 얹은 후 재료를 잘 놓고 김밥 말듯이 돌돌 말아 썬다.랩으로 만 채 10∼20분간 두었다가 먹기 직전에 썰면 좋다. ●시금치 푸실리 콜드 파스타 샐러드 재료 시금치 푸실리 1컵,토마토 1개,리코타 치즈 적당량,말린 크렌베리 약간,드레싱(다진 샬럿 2큰술,식초 1½큰술,마늘 다진 것·설탕 1큰술,오렌지 주스 2큰술,올리브 오일 ¼컵,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시금치 푸실리는 끓는 물에 8∼10분 정도 삶아서 건져 올리브 오일에 버무린다.(2)토마토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껍질과 씨를 제거한 후 잘게 썬다.(3)드레싱 소스를 만들어 (1)과 (2)와 버무린 다음 접시에 담아낸다. ●오이·아스파라거스 냉국 재료 오이 1개,아스파라거스 5줄기,얼음 약간,냉국(찬물 1½컵,설탕 1작은술,식초 1큰술,다진 마늘 약간,소금 ½작은술) 만드는 법 (1)오이는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뒤 두께가 일정하도록 곱게 채를 썬다.(2)아스파라거스는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친 후 채썬 오이와 비슷한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3)냉국은 식초에 다진 마늘을 담갔다가 체에 거른 뒤 마늘은 버리고 찬물에 설탕·식초·소금 등을 넣고 고루 섞어 차게 둔다.(4)오이와 아스파라거스에 차갑게 준비한 냉국을 붓고 고루 어우러지도록 섞은뒤 먹기 직전까지 냉장고에 두었다가 얼음을 띄워 낸다. 팁 오이 대신 무나 미역을 넣어도 맛이 싱그럽고 좋다. ●녹차 빙수 재료 얼음 적당량,빙수용 팥 4큰술,녹차가루 2큰술,연유·떡 약간씩 만드는 법 얼음을 빙수기에 갈아 볼에 담은 다음 연유를 뿌린 후 팥과 떡을 얹은 다음 녹차 가루를 뿌려낸다. ●빙수용 팥 재료 붉은 팥·설탕 ⅓씩,소금 약간 만드는 법 (1)팥은 돌없이 깨끗하게 씻어 냄비에 찬물과 팥을 5대 1의 비율로 넣고 팥이 물러질 때까지 푹 끓인다.(2)설탕과 소금 약간을 넣고 약한 불에서 물이 없을 때까지 졸인다.(3)(2)를 식힌다. ●김정민씨는 ‘푸드스타일링 사관학교’라는 스타일링큐브 아카데미의 푸드스타일링 학과장이다.1984∼9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대학원 등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요리를 즐겨왔고,먹는 것을 밝히는 까닭’에 98년 푸드스타일리스트로 돌아섰다.요리책과 식품 광고 등 스타일링을 도맡아 하고 있다.그는 “‘음식의 맛과 향에 멋을 더하는’ 푸드스타일링은 창조적인 식공간 예술”이라고 말했다.˝
  • [꼬불 꼬불 뒷골목] 광주 금남로 예술의거리

    경기침체로 화랑가들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예술의 거리를 찾는 발걸음도 뚝 끊어졌다.요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 화랑 주인들의 푸념이 허튼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부르는 게 그림값,눈먼 돈을 마구 챙길 때가 있었다.개발독재가 서슬퍼렇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말,5월 광주의 상징인 금남로 뒤편 화랑골목에는 돈이 넘쳐났다. 지난 87년 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광주시 동구 궁동 동부경찰서 앞에서 중앙로를 잇는 300여m.남도의 멋과 끼가 배어 있어 ‘예향’ 광주를 찾은 이방인들이 꼭 들러가는 곳이다.표구점과 화랑,갤러리(전시관),화방과 필방(서양화와 수묵화 재료상),골동품 공예품점,미술 서점,전통찻집,소극장 등 53개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토요일이면 차 없는 거리가 되고 개미장터가 열린다.고서예품·엽전·떡살·비녀·놋그릇·민화·향로·연적·목각품 속에는 쓸 만한 물건도 있다.야외 전시대에는 학생들의 창작품이 선보이고 매달 한차례는 음악회,빛의 축제 등으로 열기가 더해진다. 예술의 거리는 원래 50∼60년대에 막걸리 골목이었다.이후 여고생들의 수예표구가 유행하면서 광주여고,전남여고,조대부여고 등 이들 학교의 중간지점인 지금의 장소로 표구점들이 모여들면서 화랑가로 변모했다. 이후 70년대 후반 80년대 말까지 호황기를 구가하다 90년대 들어 극심한 불황에 빠져 있다.자유당 때는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직접 내다팔아 호구지책으로 삼았다.한 화랑주인은 “당시 힘이 세던 검사 명함 뒤편에다 ‘잘 부탁한다.’는 검사 사인을 받아서 기관에 들러 그림을 팔았다.”고 말했다. 그림값은 경기침체와 정비례한다.이 골목이 내리막길로 들어선 것은 95년 민선단체장 시대부터.또 문민정부 때 공직자 선물 안주고 안받기로 대못이 질러졌다.그림값을 결정하던 진급용이나 선물용 구입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주 고객은 90%가 건설업자들이나 이들이 그림 대신 현찰 박치기로 관행을 바꾸었다.송림화랑 양원호(52)씨는 “80년대 후반 소나무 몇개만 그려놔도 없어서 못 팔 때가 있었다.”고 호시절을 회고했다. 또 그림값은 권력자들의 눈치를 본다.붓글씨를 잘 썼던 박정희와 JP,5공의 실세인 전경환은 의제 허백련 그림을 선호했다.전씨가 광주에 뜨면 광주 화랑가에 그림이 동났다고 한다.DJ는 남농 허건의 조부인 소치 허유의 산수화를 좋아했다. 이 골목에서 남종화(시·서·화를 겸함)의 일맥인 남농 허건의 그림은 전지 크기(40호·1호는 엽서크기) 산수화가 7년 전 1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떨어졌다.표구값은 30년 전보다 2만원 오른 12만원.30∼40년 된 중견화가들의 산수화는 같은 크기에 80만∼100만원이다.이마저 팔리지 않아 “입에 풀칠하려면 공사판이라도 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화가들이 말한다.반면 의제의 그림은 희귀성으로 수요가 높아 전지 1장에 3000만∼4000만원을 호가한다. 70년대 그림 전시회는 다방.Y다방,희다방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큰’ 낭만도 있었다.제자 전시회에 스승이나 선·후배들이 자신들의 그림을 찬조 출품했다.전시자의 그림을 사면 수백배 비싼 유명인사의 찬조작품을 추첨해 덤으로 나눠줬다. 예술의 거리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터줏대감이 있다.한국화와 고미술품 감정가인 박당화랑 박환승(66)씨.정확히 50년에 이쪽에 뛰어들었으니 올해로 만 54년째다.의제와 남농의 어깨너머로 눈썰미를 익혔다.그는 “가짜에도 솜씨에 따라 등급이 있다.요즘에는 인쇄술 발달로 정교하게 인쇄된 가짜가 많지만 돋보기로 보면 인쇄지는 그물망이 나온다.”고 웃었다.가짜는 현금과 맞교환이 가능한 유명인사의 것이 많다고 했다. 가짜중에는 남농의 것이 많다.범인은 대개 제자들로 드러났다.수요자들이 작품 내용보다는 유명화가의 그림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가짜 시비가 줄지 않는다.설경(雪景) 작가로 일본인 고객들이 많은 영창필방화랑 안재홍(56) 화백은 “손님들이 표구해 달라고 가져온 유명한 작품 중에 가짜도 있었다.하지만 그림을 판 상대가 있기 때문에 절대 가짜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나이 든 화가들은 가짜와 뒤섞인 자신의 작품도 분간해 내지 못해 가짜를 양산하는 빌미를 주기도 한다.한때 다방이나 여관 등에 내걸렸던 그림은 무명화가들이 판화찍듯이 개수치기로 그린 것들이다.건달들이 유명화가들을 여관방에 가둬두고 억지로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이를 강매해 활동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기로의 한국경제] ② 돈을 돌게 하자

    돈이 안 돈다.은행 등 금융기관에서도,주식 등 자본시장에서도 좀체 돈의 흐름이 감지되지 않는다.그렇다고 고질병이던 부동산 투기로 돈이 몰리는 것도 아니다.기업-가계-시장을 관통하는 자금의 수요·공급 고리가 끊어진 탓이다.시중에는 온통 부동(浮動)자금과 부동(不動)자금뿐이라는 말까지 나돈다.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사모펀드 활성화 등도 당장 깨어진 수급기반을 수습하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다. ●“시장의 자금중개 기능 극도로 약화” 한국은행 관계자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맞아 은행예금도 매력이 없고,주식시장은 너무 위험하고,회사채 시장은 신뢰도가 떨어지고,간접투자는 정착이 안돼 있고,부동산시장은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모든 부문에서 안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자금중개의 기반이 극도로 허약해져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에 의존해 겨우 지탱되고 있는 주식시장은 개인들의 이탈에 더해 중국 쇼크,유가 상승 등 국내외 변수가 너무 많아 수시로 요동치고 있다.회사채 시장은 최근 순상환(발행보다 상환이 더 많은 것)에서 순발행 기조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활성화될 기미가 없다. 과도한 빚과 소비냉각으로 가계대출 수요도 좀체 일어나지 않고 있다.기업들도 투자위축 등으로 은행이나 주식·채권시장을 찾지 않는다.지난 4월 국내은행의 기업대출은 2조 5000억원에 그쳤다.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주로 자금을 찾지만 이쪽에는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린다.한은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이 모두 부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그러나 경기가 살아나 자금수요가 많아지는데 공급이 지금처럼 부진하면 자금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그나마 활발한 부문은 국채,통안증권 등 이른바 ‘무위험 채권’ 시장뿐이다.최근 지표금리(국고채 3년물 수익률)는 4.2% 안팎으로 1개월새 0.3%포인트가량 빠졌다.수요가 많아지면서 채권값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채권값이 오르면 수익률은 떨어진다.시장 관계자는 “최근 국채 수익률이 내려가는 것은 경기회복이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감 때문에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 맡긴 돈 절반이 부동자금 이에따라 시중자금의 안정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언제든지 돈되는 곳으로 옮겨갈 계획인 ‘대기성 자금’만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한은에 따르면 올 1·4분기 금융권의 6개월 미만 단기수신 잔액은 387조 6000억원으로 금융권 총수신의 49.0%에 달했다.1년 전(376조 1000억원)에 비해 금액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총수신 비중은 47.5%에서 큰 폭으로 확대됐다. 또 지난달 말 현재 8개 시중은행의 머니마켓펀드(MMF) 잔액은 15조 4088억원으로 한달 전 14조 7366억원보다 6722억원(4.6%)이 늘었다.반면 안정적으로 묻어두는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193조 1545억원에서 193조 3207억원으로 0.09% 증가하는 데 그쳤다.MMF는 투신사가 고객의 돈을 모아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단기수신이다.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 금리인하와 주식·부동산시장의 불안정으로 목돈을 굴리는 고객들이 아무 때나 돈을 찾을 수 있는 MMF 등 단기상품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유동성 증가율 사상 최저수준 돈이 제대로 안 돌면서 돈의 순환을 나타내는 지표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올 1분기 국내 총유동성(M3)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5.1%에 그쳤다.M3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만 해도 12.4%에 달했으나 2분기 9.6%,3분기 8.1%로 떨어지다 4분기에 5.4%로 급락했다.M3는 돈이 얼마나 활발하게 돌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통상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합한 것을 적정 증가율로 친다.올해 경제성장률은 5%대,물가상승률은 3% 안팎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8%는 돼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정책당국의 대응여지는 극히 좁은 상황이다.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연구위원은 “자금이 안 도는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금리를 올리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방법을 쓰기에는 경기가 너무 안좋다.”면서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힘들지만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국방부 ‘환경친화적 軍관리’ 한다

    국방부가 군 주둔지나 부대 주변지역의 환경오염을 막는 데 신경을 쓰기로 했다.군 비행장·사격장 등의 소음 개선을 위한 대책도 마련키로 했다. 국방부는 4일 주둔지 주변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오는 2005년부터 2년 동안 2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오·폐수 처리시설과 소각시설,소음방지시설,대기오염 방지시설 등 6000여개의 환경시설을 갖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경시설의 준공에 맞춰 이를 관리·운영하고 환경문제를 체계적으로 전담할 1600여명의 요원도 확충할 예정이다.토양환경 보전을 위해서도 현재 5곳에 대한 토양정화사업을 진행 중이며,올해 601개의 유류저장시설에 대한 토양오염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군 비행장과 사격장 등의 소음문제도 개선하기 위해 ‘소음방지 종합대책’을 추진 중이다.소음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선 비행항로,고도,비행시간 등을 조정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열린세상] 굶주림과 웰빙/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얼마 전 ‘굶주리는 세계’라는 책을 읽었다.책의 요지는 굶주림은 식량 절대량이 부족하거나 인구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잡지에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새삼 ‘먹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한국 경제에 대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찬에 우쭐했던 우리들에게 굶주림이나 식량부족은 남의 얘기로 여겨진다.그러기에 처음에는 굶주림에 관한 책을 나와 별 상관없는 일로 생각하고,부담없이 집어 들었었다. 그러나 풍요의 상징이라는 미국에서도 빈곤과 영양실조로 많은 아이들이 시달린다는 지적과 기아가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라는 저자의 주장을 대하며,보다 진지한 태도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시장이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대목은 우리 현실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특히 IMF 이후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계층간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적은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하고,월드컵 4강까지 진출한 ‘대한민국’에서는 굶주림을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기 쉽다.실감나지 않게 먼 곳,아프리카의 불모지나 혹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진 북한에서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엄연한 현실로서의 굶주림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다만 잘 눈에 띄지 않고,사회적·정책적 관심이 적을 뿐이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점심 급식비를 지급하는 결식아동의 숫자가 약 30만명이다.한 추정치에 따르면,최대 117만명이 결식의 위협에 처해있다고 한다.절대 빈곤으로 시달리는 계층과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노숙자 가정의 증가 등을 생각하면 굶주림은 결코 아프리카의 문제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은 줄었다고 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다른 한편 현대인들은 영양 과잉과 비만으로 고민한다.소득증가에 따른 육류 소비량의 증가와 패스트푸드의 확산은 세계적으로 약 3억명의 비만인구를 낳았다.우리나라에서도 비만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어려운 시절 먹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주말이면 음식점마다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곳곳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그렇게 배불리 먹고 나서는 살찐다고 걱정하고,다이어트를 위해 애쓴다.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다이어트 제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웰빙(well-being) 열풍이 뜨겁다.웰빙의 중요한 요소가 음식으로 유기농 식품의 소비를 강조한다.유기농산물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2∼3배나 비싼데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이에 따라 유기농 음식점과 유기농 매장이 빠르게 늘고 있다.특히 고소득 전문직과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 소비자들이 주요 고객이다.건강에 대한 관심과 돈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싸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한국 땅에서 누구는 배고파서 울고,누구는 음식 과잉 섭취 때문에 신경 쓰고,어떤 사람은 건강에 좋은 비싼 음식만 골라먹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직하지 않다.의·식·주 가운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특히 ‘식’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먹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것이다.먹을 것 없어 주린 창자를 달래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내 입에 맛난 것 잘 들어가지 않는다.먹을 것의 불평등은 현재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어린이들의 굶주림은 그들의 육체는 물론 정신에도 큰 영향을 끼쳐,그들의 미래를 갉아먹는다.따라서 배고픈 아이들을 먹이는 일은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이다.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절대빈곤으로 굶주리고,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은 없도록 해야 한다.웰빙도 좋지만,그 웰빙이 끝 모르는 개인주의로 치닫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고,그래서 더불어 먹을 때,내가 먹는 음식이 몸에 좋은 것 아닐까.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토대로 한 사회적 웰빙을 생각할 때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 모의 수능 출제방향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모의평가에서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에 맞추기 위해 EBS 수능강의 내용을 ‘변형·보완한 뒤 가급적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모의평가와 수능강의 연계 방식은 11월17일에 실시되는 본수능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또 모의평가에서는 기출문제라도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핵심내용은 문항 형태,발상,접근방식 등을 다소 수정해 출제했다.출제위원 중 고교 교사의 비율도 지난해 28%에서 올해 35%로 높여 고교 과정을 충실하게 반영토록 했다.본 수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강정 평가원장은 “교과서든,EBS 수능강의든,기출문제든 문항을 똑같이 출제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평가원이 내놓은 모의평가의 출제방향과 함께 수능강의의 영역별 연계 내용을 분석한다. ●언어 기존의 경향을 유지,수험생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했다.출제범위는 기존의 수능시험처럼 문항의 소재를 특정 과목에 한정하지 않고 범교과적 소재를 활용했다. 전반적으로 학생들이 생활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낯익은 지문이 주류를 이뤘다. 읽기의 비문학 분야에서는 고교 과정에서 대학 과정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글이 지문으로 선정됐다.김부식의 ‘진삼국사기표’와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序)’를 복합지문으로 구성한 인문지문,인체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을 다룬 사회지문,생물 다양성과 환경문제를 결부시킨 과학지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읽기 문학의 지문에서는 이현보의 ‘어부단가’,김영랑의 ‘독을 차고’,이어령의 ‘폭포와 분수’ 등 제7차 국어교과의 검인정 문학교과서에 실린 작품이 나왔다.이현보와 김영랑의 작품을 포함,박목월의 ‘가정’ 등과 현대소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은 EBS 방송교재와 일부 일치하거나 같은 작품의 다른 장면들이다. ●수리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문제가 줄었다.기본적 계산능력이나 수학적 개념·원리·법칙의 이해를 확인하는 문제가 다수 포함됐다. 문항의 유형은 ▲수학의 기본 개념·원리·법칙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능력 ▲기본적인 계산 원리와 문제풀이 절차인 알고리즘을 이해·적용하는 능력 ▲참·거짓을 판별하는 능력 등을 평가하는 것들이다.난이도는 중·하위권 학생들의 기본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쉬운 문제와 난이도가 중간 수준인 문항이 중점적으로 나왔다.단답형 문항의 출제 비율은 30%였고,단답형 문항의 답은 3자리 이하 자연수로 표기하도록 했다. 평가원측은 “EBS 수능강의나 방송교재에서 취급한 부분을 적극 출제했다.”면서 “학교교육을 충실히 이수하고 수능강의를 이해하면 무난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외국어(영어) 대화·담화·문단 등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과 대학 수학에 필요한 영어사용 능력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그렇기 때문에 의사소통기능 중심의 유창성과 정확한 언어 사용능력이 중요하게 다뤄졌다.출제범위도 공통영어에서 심화선택과목 수준으로 확대됐다.하지만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용빈도가 높은 어휘를 중심으로 출제됐다. 특히 유창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예전 수능과 달리 영어사용의 정확성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문법·어휘 분야도 강화됐다. 읽기는 지문의 길이가 늘었다.배경 지식과 글의 단서를 활용,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쓰기에서는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봤다. ●사회탐구 교과목의 특성에 따라 윤리·역사·지리·사회적 상황 등을 소재로 해 창의적 사고를 측정했다.평가원측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과 시사적인 내용도 활용,문항을 출제했다.”고 밝혔다.기본적인 개념이나 원리에 대한 이해·적용 능력을 보는 문항 ▲핵심적인 주장을 탐구하는 문항 ▲자료에 나타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항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문항 등이 골고루 나왔다.EBS 교재의 본문과 문항을 외워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항은 배제됐다. ●과학탐구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과 과학적 상황을 소재로 한 이해·적용,문제인식과 가설 설정,자료분석과 해석,결론 도출 등을 측정했다.특히 개념을 이해해 적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문항이 40% 정도나 차지했다. 문항별 소재와 관련,컴퓨터 키보드나 유량계,물의 독특한 성질,플라스틱 재활용,복제실험,화성 생명체 탐사,약물 오남용,폭발성 화산 등이 활용됐다. ●직업탐구 실업고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감안,해당 전문과목의 교육과정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지식,이해,적용,탐구 능력을 평가했다.단편적인 지식이나 원리에 대한 문항보다 실제 상황에 응용하고 탐구할 수 있는 문항이 많이 출제됐다.또 표·그래프·그림·삽화와 전공관련 실험·실습 상황을 많이 활용했다. ●제2외국어/한문 어휘·원리·도표·그림 등을 참고하고,지문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했다.문법보다 실생활에서의 의사소통과 사고력에 비중을 뒀다. 한문은 실용한자의 이해와 활용능력을 측정했다.평가원은 “문항의 난이도는 예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개발,문항의 질적 수준을 높였다.”고 말했다. 박홍기기자 hkkpark@seoul.co.kr˝
  • 수능 대비 이렇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험생을 위한 ‘학습안내 자료’을 냈다.평가원측은 “본 수능의 출제 원칙에 대한 ‘가늠자’인 만큼 자료에 맞춰 대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영역의 읽기(문학)는 고전시가·고전산문·현대시·현대소설 및 수필·희곡·시나리오 등이 지문으로 제시되는 만큼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중심으로 깊이있게 공부해야 한다.비문학 읽기는 주어진 시간에 많은 양의 지문을 읽어야 하는 만큼 폭넓게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다양한 대상과 개념에 익숙해지고 시각과 배경을 넓히기 위해서다. 수리는 무엇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제시된 개념·원리·법칙을 철저히·정확히 이해해야 한다.특히 평소 수학의 유용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수학적 개념과 원리가 실생활이나 다른 학문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관심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 읽기에서는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매개체로 사용되는 대명사에 주목해야 한다.대명사가 가리키는 대상을 분명히 알면 글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쓰기에서는 글의 흐름이 단절되거나 전환되는 부분에 주의해야 한다.시간의 흐름,내용의 일관성,글의 전개방식에 따라 불필요한 정보나 문장을 삭제하거나 추가하는 훈련,구두점(콜론,세미콜론,하이픈 등)을 바르게 사용해 짧은 글을 써보는 훈련 등도 필요하다. 사회·과학탐구는 교과서의 단원별 목표와 주요 개념·원리를 요약·정리하면서 다른 사례에 적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문제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분석,결론을 끌어내거나 가치판단을 하는 학습도 효과적이다.통계나 도표,지도,사진,그림 등을 토대로 규칙성이나 경향성을 파악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제2외국어는 발음 및 철자,어휘,문법을 교육과정에 제시된 기본어휘와 ‘의사소통 기능 예시문’을 중심으로 공부하면 된다.한문은 교과서와 중·고교용 기초한자 1800자를 충분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 박홍기기자 hkkpark@seoul.co.kr˝
  • 노량진 학원가 7·9급 준비생들로 ‘북적’

    김상현(31·가명)씨.지방 명문 B대 출신이다.애초 가정형편 때문에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뿐 어릴 적부터 머리가 명석하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던 김씨다.대학 4학년 되던 해 큰 결심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처음에는 신림동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했다.몇번의 불합격과 함께 생활비도 떨어져갔고 아르바이트로 버티던 생활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그래서 찾은 곳이 노량진 학원가다.7·9급 공무원시험의 메카로 불리는 노량진 학원가.그러나 김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자신은 눈높이를 한단계 낮추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노량진 생활 6개월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신림동은 ‘큰 꿈’이라도 있었지만 노량진에서는 ‘삶의 고단함’ 뿐이었다. ●비명문대라는 원죄 수험생 증가세는 뚜렷하다.상대적으로 시험이 어려운 7급은 덜하지만 9급 시험 응시생 증가추이는 뚜렷하다.2002년 출원자 수 1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치러진 1차 시험 출원자 수는 15만명,응시자 수는 10만명을 넘어섰다.지난해와 비교하자면 올해 출원자 수는 5만여명,응시자 수는 3만여명이 늘었다. ‘이상과열’로까지 비칠 수 있지만 학원 관계자들은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취업문이 아주 좁은 상황에서 ‘비명문대’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학생들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강사들은 최근 강의실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한교고시학원 관계자는 “특히 지방대생들이 상경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지난해부터 학원가 부근에 고시원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지방대생들은 대개 공무원시험을 4∼5차례 정도 응시한다.국가직 한번,지역제한이 없는 서울시에 상반기·후반기 한번씩 모두 두번,본인 주민등록상 주소지에서 또 한번 치르는 식이다.서울지역 학생들도 마찬가지다.응시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잡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경기도나,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지는 강원도로 옮기기도 한다.그러다보니 신림동과 달리 수험생들은 1년 내내 긴장감에 시달린다. ●대학 신입생도,명문대생도 기웃기웃 대학 신입생들의 문의전화도 크게 늘었다.학원마다 하루에 최소한 1∼2통씩 지방대 1∼2학년생들의 상담전화를 받는다.다른 직장을 생각하기보다 처음부터 공무원으로 정해놓고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휴학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다. 남부행정고시학원 박옥수 부장은 “대학 저학년생들의 상담내용은 주로 6개월이나 1년 정도 휴학을 하면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심지어는 고등학생들이 언제부터 공부해야 좋을지를 묻는 경우도 있다. 명문대생 일부도 노량진 학원가를 기웃거린다.한교고시학원 관계자는 “수강신청 때 신원확인 과정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지만 수험생들 가운데 명문대생들이 상당수 된다고 들었다.”면서 “이들 대부분은 최근 고시제도의 변화 때문에 고시공부를 접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이들은 7급시험에 주로 몰려 있다.그래서 7급시험도 요즘은 ‘고시’로 통한다. ●경기침체에 상인도 수험생도 울상 노량진 학원가 일대 식당은 전형적인 ‘박리다매’ 형식을 취하고 있다.‘음료수 하나에 샌드위치 하나’ 하는 식으로 메뉴를 구성해 1000원에 판다.이런 메뉴는 가게마다 5∼6가지씩 있다.또 한달 단위로 식권을 끊을 경우 15만∼20만원이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시내 식당 가격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경기불황은 이마저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P식당을 운영하는 박순례(58·여)씨는 지난해 식당을 넓히고 메뉴를 고급화하면서 가격을 올렸지만 결국 원위치로 되돌아갔다.박씨는 “공무원시험 열풍이 불면서 학원수강생이 늘었다는 말을 듣고 애써 돈을 들여 투자했는데 오히려 손해만 봤다.”고 말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고시원의 경우 안전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신림동의 경우 그래도 고급 원룸 위주의 고시원이 많이 들어서고 있지만 노량진은 고작 2∼3평짜리 고시원이 즐비하다.심지어는 이 공간마저도 칸막이를 해서 두 사람이 같이 쓰기도 한다. 서울고시학원 박춘택 실장은 “고시원들이 합판 등으로 날림공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수험생들의 불편함도 문제지만 불이라도 나면 큰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림동과 달리 노량진은 인근지역으로 뻗어나갈 곳이 마땅찮은 데다 수험생들 주머니가 가볍다 보니 수험생들은 이런 고시원마저 못 들어가서 안달이다. 조태성 강혜승기자 cho1904@seoul.co.kr˝
  • 태안국도 국비로 확장·포장

    충남 태안군이 바닷모래 채취를 허가한 대가로 올해부터 태안지역 국도들이 국비로 확장·포장된다. 30일 태안군에 따르면 정부의 ‘골재수급 안정종합대책’에 따라 국도 77호선(태안읍∼남면 15㎞)과 32호선(태안읍∼소원면 17㎞)의 확장·포장 공사가 국비로 추진된다. 또 바닷모래 채취로 영향을 받을 해수욕장 복구를 위해 모래 포설비를 지원하고,현재 모래가격의 10%인 공유수면 점·사용료를 20∼30%로 인상해 해양생태계 복원사업에 쓰기로 했다. 정부는 불법 바닷모래 채취를 막기위해 주민들의 어선을 감시선으로 활용하고,주민 소득증대를 위해 태안반도 해역에 인공어초를 설치해 주기로 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KPGA SK텔레콤오픈] 예이츠 ‘15전 16기’

    4일 내내 구름 같은 갤러리들을 몰고 다닌 ‘탱크’ 최경주(34·슈테리어·테일러메이드)도,‘미국의 자존심’ 프레드 커플스(45)도 사이먼 예이츠(34·스코틀랜드)의 한국무대 첫승을 막지 못했다. 예이츠는 23일 경기도 이천의 백암비스타골프장(파72·7016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SK텔레콤오픈(총상금 5억원) 마지막 4라운드에서 버디 3개,보기 1개로 2언더파 70타를 쳐 합계 9언더파 279타로 우승했다.한국 투어 도전 15번 만에 이룬 정상 등극.특히 지난 2001년 이 대회에서 위창수 강욱순과 연장전을 벌여 위창수에게 패했고,2002년 신한동해오픈에서도 허석호와 연장접전 끝에 패한 터라 기쁨은 더욱 컸다.전날 선두로 대회 3번째 우승을 노린 위창수(32·테일러메이드)는 버디 2개,보기 2개로 타수를 줄이지 못한 채 합계 8언더파 280타로 공동2위에 그쳐 역전의 희생양이 됐다. 홀을 살짝살짝 빗나가는 퍼트로 탄식을 자아내게 한 최경주는 버디 2개,보기 4개로 2오버파 74타를 기록,합계 1오버파 289타로 공동 14위에 그쳤다.빠듯한 일정으로 인한 연습부족 때문에 정상의 샷을 보여주지는 못한 최경주는 대회 상금 720만원과 개인돈을 더 보태 미숙아들을 돕기로 해 고국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최경주는 “귀국하기 전 미숙아를 다루는 TV프로그램을 보고 꼭 우승해 상금을 모두 미숙아들을 위해 쓰기로 다짐했다.”면서 “많은 돈을 내놓지 못해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계속 소외받은 이웃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커플스는 이날 버디 3개,보기 2개를 쳐 합계 4언더파 284타로 공동5위에 올랐다.커플스는 “매우 뜻깊은 한국 나들이였다.”면서 “갤러리들의 뜨거운 관심과 젊은 선수들의 열정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이천 이창구기자 window2@˝
  • [문화마당] 골방의 기록/ 백지연 문학평론가

    청춘의 고독과 방황을 섬세하게 그려낸 여러 소설들 중에서도 김승옥의 작품들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우리 소설사에서 김승옥만큼 화려하고 짧게 당대의 소설계를 빛낸 작가도 드물 것이다.그의 소설은 6·25전쟁 후 황막한 폐허 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예술적 자의식을 새로운 형태로 보여주었다.한 예로 그의 ‘무진기행’의 마지막 구절은 지금 읽어도 그 청신한 감수성에 가슴이 설렌다. “한 번만,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안개를,외롭게 미쳐가는 것을,유행가를,술집 여자의 자살을,배반을,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꼭 한 번만.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라는 주인공의 고백 속에서 자신의 방황에 대한 위로와 확인을 얻은 문학 청년이 한 두 명이 아니었으리라.청춘이 증명하는 자기결벽과 우울증을 이처럼 아름답고 명징하게 그려낸 소설가도 없다. 얼마 전 출간된 김승옥의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작가)을 읽으면서 새삼스러운 감회에 사로잡힌 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작가의 투병과정 중에 출간된 이 책은 한 시대의 빛나는 기록들을 담고 있는 솔직한 자기고백서라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준다.물론 제목이 상징하듯이 산문집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작가의 절실한 신앙간증이다. 신선한 감수성으로 한국소설사를 장식했던 명민한 재능의 소유자가 어느 순간 소설쓰기를 중지하고 종교에 귀의하게 된 일은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소설을 쓰다가 영화각본을 쓰고 영화감독으로 데뷔도 하였다가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등 여러 행로를 거친 김승옥은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유신시대와 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적 격류 속에서 충격과 분노 때문에 글을 쓰지 못했다는 그의 기록은 가슴 저릿하게 다가온다.그의 문학적 결벽증과 섬세한 감수성을 생각한다면 그를 찾아온 ‘종교적 계시’가 갑작스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그 어느날 갑자기 ‘하얀 손’이 나타나 “인도에 가서 전도하라”(‘내가 만난 하나님’)는 명언을 내렸다는 그의 간증은 단순한 신앙고백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실제로 이 책에서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종교 이야기보다도 유년기와 대학시절에 관한 회고담이었다.‘옛날,하나님을 만나기 전’으로 표기되어 있는 과거사들은 작가 김승옥을 이해하는 또 다른 코드를 제공한다. 특히 ‘나의 첫 창작’은 김승옥 자신이 처음 ‘꾸며낸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로 읽힌다.어린 김승옥에게 외사촌형과 그의 친구들이 속삭이던 여자친구 이야기와 음담패설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높은 탑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있는 이상한 서울’에 대한 소년의 환상은 이후의 김승옥 소설에서도 자주 되풀이되는 문학적 모티프가 된다. 도시에 대한 동경과 좌절을 젊은이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한 김승옥의 소설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빛나는 소설의 기억이다.정든 누이와 어머니가 있는 서늘한 해풍을 등지고 찾아온 서울은 젊은이에게 안식을 주지 못한다.그에게 “우뚝우뚝 솟은 빌딩들이 몸뚱이의 한편으로는 저녁 햇빛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짙은 푸른색의 그림자를 길게길게 눕”(‘力士’)히는 도시의 고독한 풍경은 문학의 골방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김승옥의 글을 읽으면서 그 연약하고 섬세한 청춘의 감수성이 가슴 한 구석에 만든 생채기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괴롭고도 행복한 일이다. 백지연 문학평론가˝
  • [세상속으로] 건설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

    “하루 품삯을 다달이 외상으로 받습니다.그나마 안 떼이면 다행이죠.”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날품을 파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중삼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중소 건설현장에 돈이 돌지 않아 ‘1일 현찰결제’ 관행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하도급 업체들이 결제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아예 품삯을 떼먹고 달아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외상결제도 제때 받으면 다행 서울 광진구 군자동의 11층짜리 오피스텔 건설현장에서는 외상결제를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4월치 품삯을 받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다.지난 10일 결제해 주겠다는 약속도 벌써 열흘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이곳에 노동자 3명을 소개한 성동구 행당동 A인력개발 박모(32) 과장은 “2년 전부터 거래해 왔는데,날삯은 고사하고 외상결제조차 미뤄지는 일은 처음”이라면서 “사업주와 안면이 있는 사이라 떼를 쓰기도 곤란하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노원구 상계동 한 주택건설 현장에서는 하도급업체가 일용직 노동자 5명의 한달치 외상결제 금액 700여만원을 주지 않고 달아났다.이곳에 노동자를 보냈던 도봉구 도봉동 광명인력공사 최종선(54) 소장은 “최근 1년 사이에 비슷한 일을 4∼5차례 겪어 3000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고 혀를 찼다. ●일거리 아쉬워 품삯 독촉도 못해 외상결제가 제때 이뤄지지 못해도 일용직 노동자들은 제대로 따질 수 없다.건설현장은 한정돼 있고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최근에는 신용불량자나 과다채무자 등 건설현장을 찾는 인력이 늘어나는 데다 인력소개업체끼리 경쟁까지 붙어 날삯을 7만원에서 6만원 이하로 내려도 일거리가 없어 일을 못하는 실정이다. 광주 서구 상무근로자대기소에서 만난 이동필(45·광주 서구 풍암동)씨는 “한달 뼈빠지게 일한 뒤 월급식으로 모아주는 품삯마저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소연했다.지난해에는 건설현장이 많아 이곳에서 하루 20∼30명이 일을 나갔으나 올해는 5∼6명선에 그치고 있다.이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외상결제에 응하게 되고 밀린 품삯을 달라고 직접 따지기도 어렵다. 대기소에 있던 김모(57)씨는 “나이 든 일용직들은 힘이 부족해 주로 아파트 현장에서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품삯이 좀 늦게 나온다고 불평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광주지역 건설노동조합 유광수(37) 위원장은 “일용직들이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아예 떼여 신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현장에서 매월 20일 한달치 품삯을 주기로 암묵적 합의가 돼 있지만,열흘 이상씩 미뤄져도 일거리가 아쉬운 노동자들은 말도 못 꺼낸다.”고 지적했다. ●영세 인력업체들도 위기감 토로 자금이 부족한 영세 인력업체들도 덩달아 전전긍긍하고 있다.아예 휴업하거나 폐업까지 고려하는 곳도 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B인력개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10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보름이나 한달 단위로 외상결제하자고 제의해 온다.”면서 “자금력이 있는 인력사무소는 과거부터 ‘월말결제’가 관행인 큰 건설회사를 상대로 용역수주를 따지만,영세 인력사무소는 서로 노동자를 내보내려고 외상결제를 거절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도봉동의 한 인력업체 관계자는 LG·동아·대림 등 대형 건설업체들은 대부분 품삯을 제때 주지만,중소규모 현장은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몰라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대전 중구 현대인력 이상은(44) 소장은 “건설회사들이 2개월에 한번씩 품삯을 몰아서 주는 바람에 우리 돈으로 먼저 노동자에게 일당을 준다.”면서 “이마저 일거리가 2∼3년 전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어 큰 일”이라고 말했다.대전 서구의 서남부인력은 두 달째 휴업중이다.유준(56) 소장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지만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해 곧 폐업 신고를 내기로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광주·대전 남기창 이천열·이재훈기자 kcnam@seoul.co.kr˝
  • 농촌체험프로그램 ‘팜스테이’ 전도사 권혁진 이장

    직장이나 도시생활에 지쳤을 때,사람들은 말한다.“고향가서 농사나 지을까.”하지만 농사일 한 번 해본 적없는 ‘도시 무지렁이’가 돌아갈 고향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고향으로 간들 어디 터잡고 살기가 그리 쉬운가. 삶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고향이 되겠다는 사람이 있다.여주 금사면 상호리 이장 권혁진(61)씨.“누구나 귀농할 수는 없고 고향도 옛날 그 모습은 아닙니다.그러나 농촌에서 잠깐,낭만과 여유를 느끼면 도시 스트레스는 쉽게 날릴 수 있지요.다음날이면 생기가 펄펄 납니다.고향이 그리운 분이라면 누구라도 오세요.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권 이장은 ‘농사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농부다.농사가 노동이나 일상이 아니라 그에게 있어 축제같아 보인다.“정말 농사일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저도 서울에서만 30여년 살았고,돈도 좀 만져봤지만 지난 10년간의 농사만은 못해요.하기는 제가 프로 농사꾼이 되지 못한 이유도 있긴 해요.하지만 나의 일상이 도시인에게 놀잇감이 되고,놀잇감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다보니 저 역시 매일매일 재미있습니다.” ●99년 국내최초 ‘팜스테이’ 고향서 시작 얼핏보면 맘씨좋은 이장님이지만 그는 국내 최초로 팜스테이(farm stay)를 시도해 현재 ‘팜스테이전국연합회장’을 맡고있고,‘녹색농촌체험마을 전국연합회장’등 굵직한 타이틀이 많은 농부다.또 그를 ‘그린투어리즘’ 실천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린투어리즘’이란 팜스테이 농가 석수공원 대표인 권 이장의 또하나의 일이다. “농촌을 찾은 도시민들이 재미있게 하루를 놀다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농민의 입장에서는 일하면서 농사일의 즐거움과 성취를 도시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는 겁니다.그러면 농촌도 도시사람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도시인의 휴식과 농촌의 미래까지 함께 생각하는 권 이장이 ‘그린투어리즘’실천가이자 농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서울의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님이었던 그는 우연히 친구로부터 외국의 팜스테이 성공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그후 오랫동안 잊었던 고향생각이 자꾸 났고,결국 그는 고향마을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됐다. “첩첩산중인 고향 상호리를 등진 것은 가난때문이었습니다.그런데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팜스테이를 시작하면 젊은이들이 가난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기는 겁니다.”팜스테이 생각에 빠진 지 2년 만인 93년,그는 탄탄하게 자리잡았던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아내와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TV도 나오지 않고 문화시설이 전무한 곳으로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아내와 아이들을 설득하는데만 6개월이 걸렸습니다.저의 꿈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지요.”끝내 가족들은 “우리 농촌이 잘 사는데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는 그의 새로운 계획에 뜻을 함께 했다.그러나 그가 설득해야 할 사람은 가족만이 아니었다.막상 돌아온 고향에서도 그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다.서울로 돌아갈 것을 몇 번이나 고민했다.“마을주민들은 단어도 생소한 ‘농촌관광’을 위한 마을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며 상대를 해 주지도 않았어요.”설득과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한 끝에 그가 5가구를 규합해 팝스테이를 시작한 것은 고향으로 돌아온 지 무려 6년이나 지나서였다. ●지난해만 2만여명 방문…가구당 1000만원 소득 그렇게 99년,팜스테이가 문을 열었고 시골을 찾아오는 서울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그리고 농부들이 일상을 즐겁게 바꿔나가는 것을 본 주민들이 점차 뜻을 합했다.60여 가구의 조용한 마을인 상호리에서 참여하는 가구도 15가구로 늘어났고,한해 2만명이 넘는 도시사람들이 찾을 만큼 유명해졌다.팜스테이로 얻는 소득이 가구당 연 1000만원,농산물 직거래 등 간접적으로 얻는 소득까지 계산한다면 대단한 성공을 한 셈이다. “성공 비결은 간단합니다.한 곳에서 체험·놀이·숙식 등 해결하며 어른이나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도록 해주면 됩니다.”그는 아이들에게는 농촌의 현실과 자연학습을,어른들에게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봄에는 표고버섯 따고 산으로 올라가 산나물도 캡니다.여름엔 동네 뒷산과 공동묘지에 담력을 키우는 훈련코스를 마련해 온 가족이 시원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게 했구요.가을에는 콩서리하고 산에서 보리수·산수유·꽃사과·도토리·밤 등을 따먹으며 자연의 소중함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지요.겨울에는 동네에서 인절미와 손두부를 만들어 밤참으로 먹으며 가족들이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넣고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겨울밤을 보낼 수 있지요.”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은 농촌을 알고,또한 팍팍한 도시생활을 아는 권 씨의 머릿속에서 나왔다.지금도 권씨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져 산다.최근에는 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위해 인근마을 체험원정까지 넣었다.“차로 10분만 가면 남한강에서 밤낚시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꽁꽁 언 장흥저수지서 빙어낚시를 하며 추억을 낚습니다.외평리 참외,금사리 고구마,보통리의 땅콩과 도곡리의 허브농원도 가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03년에는 2억원의 정부지원금을 받기도 할 만큼 팜스테이가 자리잡았다.“지원금은 우리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도시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했습니다.도자기 가마,야외무대,산책로 등을 정비했습니다.아이들을 위해서 조그마한 천문대도 만들었습니다.” 권 이장은 앞으로 정기적인 마을축제를 개최해 농가에서 생산한 유기농 야채 등을 직접 팔 수 있는 길을 만들 것이라 했다. 권 이장은 이 동네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그의 휴대전화는 쉬지 않고 울린다.돈 잘 벌 때 승용차 뒷자리에 앉았던 그가 직접 봉고를 몰고 여주 곳곳을 돌아다닌다.그러나 그의 얼굴은 편안하고 행복해보인다.“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정말 편합니다.좋은 공기,깨끗한 물,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산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무한 잠재력 가진 농촌… FTA파고 넘는다” ‘걱정없는 사람’이라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욕심이 없다.“텃밭에서 농사 지어 먹고,열심히 뛰어 다니니 몸 건강하지요.매일매일 도시사람들이 찾아와 잔치를 벌이니 동네가 웃음꽃이 피지요.아마 서울에서 계속 사업을 했다면 지금처럼 젊어보이진 않을 겁니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정말 60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젊다. 그런 그도 하나의 욕심은 있단다.농촌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는 것.“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되면서 농촌에서 ‘생산’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하지만 농촌을 도시민들을 위한 ‘관광자원’과 ‘환경’이라는 시각으로 뒤집어 본다면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시장입니다.” 그런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서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세제 지원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덧붙였다.(031)886-4900.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한국의 가족’ 연구로 박사학위 받는 니콜라

    “이젠 백자가 조선조 어느 때인지,삼국시대 건축물은 백제,신라,고구려 중 어느 나라 건지 보기만 하면 알아요.” 역사나 고고학을 공부하는 한국인 이야기가 아니다.오는 7월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한국 가족의 초상(가제)’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인 이탈리아인 귀세피나 드 니콜라(33 )의 말이다. 니콜라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자원봉사를 했다.지금은 논문 마무리 작업으로 쉬고 있지만 논문이 끝나면 이탈리아에 돌아갈 내년 초까지 다시 자원봉사를 할 생각이다.니콜라는 내년 3월부터 밀라노의 라비코카 대학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자원봉사기간 동안 박물관에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에게 박물관을 안내하고 박물관이 펴내는 각종 자료의 번역작업을 돕는 것이 니콜라의 일이었다.니콜라는 이탈리아어 외에 영어,불어,일어,한국어 등 5개 언어를 할 수 있다.박물관에 온 외국인들은 대부분 신라시대 미술품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조선 백자의 검소함·깨끗함에 대해 많이 질문했다고 회상했다. ●우연히 접한 ‘한글’에 빠져 한국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자원봉사를 오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더군다나 지금까지 외국인 자원봉사는 니콜라를 포함,2명이었다는 것이 박물관측 설명이다.박물관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서비스다.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를 한 연유를 물었더니 “사랑에 빠져서”다.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배운 것이 고마울 뿐이란다. 니콜라의 한국 사랑은 한글에서 시작됐다.대학교 시절 일본어를 배우면서 다른 동양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때 우연히 본 한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공부를 시작했다.역사를 공부하면서 작은 나라지만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고,외세에 시달렸으면서도 ‘외교적 타협’이 뛰어나 독립을 유지하는 독특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박사학위를 한국에서 따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했다. “아마 그 때로 되돌아간다면 한국에 오는 걸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니콜라는 웃었다.낯선 언어에 혼자 외국에서 생활하는 환경,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다소 경직된 시선.모두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된 건 어머니였다.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96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아버지는 니콜라가 이탈리아에 도착,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장례를 며칠 미뤘다.니콜라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평생 가슴에 남을 것 같단다.“힘들 때마다 내가 공부를 마쳐야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걸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버텼다. 니콜라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근 8년을 한국에 머물고 있다.현재 외국어대학교 이탈리어과에서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다.논문을 쓰기 위해 영어 가정교사를 자청,한국인 가정에서 2001년 한 해를 살기도 했다. ●어른에 대한 존경심 엷어져 안타까워 지금은 본인 스스로가 한국인인지 이탈리아인인지 헷갈리는 ‘정체성 혼란’에 가끔 빠진다고 농담을 던진다.한국에 처음 왔을 때 그렇게 낯설었던 연장자에 대한 행동이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다.이제 3∼4명만 모이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고,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문화가 편안하단다. 니콜라는 한국 젊은이들이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많이 버리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2000년 넘어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개인주의가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결합된다면 훌륭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이런 존경심이 사라지는 데는 학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니콜라 연구의 중심은 한국의 가족과 결혼문화이다.9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던 나폴리 동양학대학에서 92년 ‘한국 가족 체계-전통과 변화’라는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니콜라는 지금 한국 가족이 핵가족시대라고는 하지만 핏줄을 중시하는,대가족과 핵가족의 중간쯤 된다고 본다.니콜라 생각에는 중국과 일본이 핏줄을 한국만큼은 중시하지 않는다.아주 옛날의 한국도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조선시대에 유교문화가 정착되고 외세의 침공을 여러번 겪으면서 핏줄 집착이 생겼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유럽서도 한국 IT 등에 관심 커져 내년 3월에는 홍콩 중국대 인류학과와 홍콩 인류학회 후원으로 ‘한국 결혼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결혼을 둘러싼 풍토가 많이 변하므로 그 변화를 통해서 사회변화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결혼식,폐백은 물론 야외촬영,결혼앨범 자체 등을 담았다. 중매쟁이로 나서 결혼을 직접 성사시키기도 했다.미국인으로 친한 친구인 북한전문가 티모시 새비지에게 자신이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던 한국 친구를 소개,두 사람이 지난 1일 결혼식을 올렸다.그러나 막상 본인은 미혼이다. 니콜라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럽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이탈리아만 해도 90년대 말부터 로마나 베니스에서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한국의 영화나 정보기술(IT)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한국에는 아무 관련 없는 시저나 나폴레옹을 한국인이 아는 것처럼 세종대왕도 유럽인이 알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프로필 ▲1984년 이탈리아 포자 가톨릭국제대학 졸업 ▲1992년 나폴리 동양학연구대학 석사 ▲1992년 전일본항공 밀라노 지사 홍보담당 ▲1994년 밀라노 대학에서 ‘현대 일본’ 강의 ▲2001년 한국외국어대학 이탈리아어과 전임강사 ▲2004년 7월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예정 ▲2005년 5월 ‘한국 결혼 앨범’ 출간 예정 ▲2005년 9월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새 사회문화 정체성을 찾아서’ 출간 예정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 儒林(93)-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3)-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어느덧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왕복 6차선의 준 고속도로였다.관리가 말하였던 대로 수원으로 가는 43번 국도였는데,43번 국도가 나타난 것은 가르쳐준 대로 정확한 방향을 따라 가고 있음을 증명해준 것이었다. 연이어 새로운 도시가 나타났다.지금까지 내가 달려온 것보다 더 새로운 신 개발지였다. 그러나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어제 내게 특별히 강조했던 관리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43번 국도를 따라 곧장 달려오시면 안 됩니다.그러면 곧장 북수원으로 직행하시게 될 것입니다.한 5분가량 달려오시다 보면 오른쪽으로 ‘수지초등학교’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나올 것입니다.그 표지판이 나오면 샛길로 들어오셔야 합니다.절대로 입구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나는 메모지를 들어 다시 한번 확인하여 보았다.메모지에는 ‘수지초등학교’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나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으로 중얼거려 외워보았다. “수지초등학교,수지초등학교” 나는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迷路)에 빠진 느낌이었다.수 없는 반복훈련으로 출구를 발견하는 실험용 쥐처럼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미로는 나를 실험용 미아로 만들고 있었다. 마침내 도로 한 옆에 세워진 철제기둥에서 내가 찾던 ‘수지초등학교’의 표지판을 찾을 수 있었다.하마터면 지나칠 뻔 하였으므로 황급히 핸들을 꺾어 출입구처럼 빠져 나왔다.갑자기 2차선으로 접어든 옛길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찾아가고 있는 목적지가 거의 다 와가고 있음을 느꼈다. 첫 번째 네거리에 이르자 왼쪽으로 관리가 말하였던 것처럼 대기업의 기술원 건물이 보였고,키가 낮은 야산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시작되었다.아직 무시무시한 난개발의 발톱이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한 듯 오월의 신록들이 야산을 새파랗게 뒤덮고 있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그러자 싱그러운 숲 냄새가 훈풍을 타고 스며들었다.이곳의 옛 지명은 ‘서원골’,지금은 용인시의 상현동이지만 옛사람들은 이곳에 ‘심곡서원’이 있다 하여서 ‘서원골’이라고 불렀을 것이다.기록에 의하면 심곡서원은 광교산(光敎山)의 끝자락과 이진산(離陣山)을 잇는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하였는데,그렇다면 저 신록으로 뒤덮인 산의 이름이 광교산일 것인가. 어쨌든 서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연보에 의하면 이곳에서 조광조는 젊은 시절 10년 가까이 머물렀던 것처럼 보인다.연산군 6년(1500년) 조광조 나이 19세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막을 짓고 시묘하였으며,끝난 후에는 선영묘 근처에 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이때의 기록을 연보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선생은 이미 상을 벗었으나 애통함을 다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묘 밑에다가 초당 몇 칸을 짓고 영원이 사모하는 곳으로 하고 또한 못을 파고 축대를 만들어 연꽃과 잣(은행,느티)나무 두 종류를 심어놓고 쉬는 것을 의뢰하였다.어머니를 봉양함에는 맛있는 음식을 드리고,겨울에는 따스하게 하고,여름에는 서늘하게 해드림을 삼갔다.힘써 글 읽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여 소학(小學),근사록(近思錄),사서(四書)로서 위주로 삼고,그 다음의 모든 경서와 성리학에 대한 글들과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을 읽었다.매일 닭이 울면 세수하고,머리 빗고,엄숙히 단정히 앉아 심기를 편안히 하고,구부리고 읽으면 우러러 생각하며 생각하여 터득하지 못하면 비록 날이 다하고 밤을 새우더라도 터득할 것을 기약하고 스스로 한정적인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참을성을 쌓고,힘쓰기를 오래하며,덕의 그릇이 성취되었으나 오히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으로 힘씀을 삼았다.이때 사화(戊午士禍)가 성하여 사람들은 선생이 하는 짓을 보고 어떤 사람은 미치광이라 칭하고,어떤 사람은 재앙의 근원이라 칭하여 친구들이 간간이 끊어지기도 했으나 선생님은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 儒林(93)-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어느덧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왕복 6차선의 준 고속도로였다.관리가 말하였던 대로 수원으로 가는 43번 국도였는데,43번 국도가 나타난 것은 가르쳐준 대로 정확한 방향을 따라 가고 있음을 증명해준 것이었다. 연이어 새로운 도시가 나타났다.지금까지 내가 달려온 것보다 더 새로운 신 개발지였다. 그러나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어제 내게 특별히 강조했던 관리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43번 국도를 따라 곧장 달려오시면 안 됩니다.그러면 곧장 북수원으로 직행하시게 될 것입니다.한 5분가량 달려오시다 보면 오른쪽으로 ‘수지초등학교’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나올 것입니다.그 표지판이 나오면 샛길로 들어오셔야 합니다.절대로 입구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나는 메모지를 들어 다시 한번 확인하여 보았다.메모지에는 ‘수지초등학교’라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나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으로 중얼거려 외워보았다. “수지초등학교,수지초등학교” 나는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迷路)에 빠진 느낌이었다.수 없는 반복훈련으로 출구를 발견하는 실험용 쥐처럼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미로는 나를 실험용 미아로 만들고 있었다. 마침내 도로 한 옆에 세워진 철제기둥에서 내가 찾던 ‘수지초등학교’의 표지판을 찾을 수 있었다.하마터면 지나칠 뻔 하였으므로 황급히 핸들을 꺾어 출입구처럼 빠져 나왔다.갑자기 2차선으로 접어든 옛길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찾아가고 있는 목적지가 거의 다 와가고 있음을 느꼈다. 첫 번째 네거리에 이르자 왼쪽으로 관리가 말하였던 것처럼 대기업의 기술원 건물이 보였고,키가 낮은 야산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시작되었다.아직 무시무시한 난개발의 발톱이 이곳까지는 미치지 못한 듯 오월의 신록들이 야산을 새파랗게 뒤덮고 있었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그러자 싱그러운 숲 냄새가 훈풍을 타고 스며들었다.이곳의 옛 지명은 ‘서원골’,지금은 용인시의 상현동이지만 옛사람들은 이곳에 ‘심곡서원’이 있다 하여서 ‘서원골’이라고 불렀을 것이다.기록에 의하면 심곡서원은 광교산(光敎山)의 끝자락과 이진산(離陣山)을 잇는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하였는데,그렇다면 저 신록으로 뒤덮인 산의 이름이 광교산일 것인가. 어쨌든 서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연보에 의하면 이곳에서 조광조는 젊은 시절 10년 가까이 머물렀던 것처럼 보인다.연산군 6년(1500년) 조광조 나이 19세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막을 짓고 시묘하였으며,끝난 후에는 선영묘 근처에 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이때의 기록을 연보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선생은 이미 상을 벗었으나 애통함을 다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묘 밑에다가 초당 몇 칸을 짓고 영원이 사모하는 곳으로 하고 또한 못을 파고 축대를 만들어 연꽃과 잣(은행,느티)나무 두 종류를 심어놓고 쉬는 것을 의뢰하였다.어머니를 봉양함에는 맛있는 음식을 드리고,겨울에는 따스하게 하고,여름에는 서늘하게 해드림을 삼갔다.힘써 글 읽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여 소학(小學),근사록(近思錄),사서(四書)로서 위주로 삼고,그 다음의 모든 경서와 성리학에 대한 글들과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을 읽었다.매일 닭이 울면 세수하고,머리 빗고,엄숙히 단정히 앉아 심기를 편안히 하고,구부리고 읽으면 우러러 생각하며 생각하여 터득하지 못하면 비록 날이 다하고 밤을 새우더라도 터득할 것을 기약하고 스스로 한정적인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참을성을 쌓고,힘쓰기를 오래하며,덕의 그릇이 성취되었으나 오히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으로 힘씀을 삼았다.이때 사화(戊午士禍)가 성하여 사람들은 선생이 하는 짓을 보고 어떤 사람은 미치광이라 칭하고,어떤 사람은 재앙의 근원이라 칭하여 친구들이 간간이 끊어지기도 했으나 선생님은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 [열린세상] 기업 중심의 혁신시스템으로/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제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최근의 유가 급등은 어려운 우리 경제의 발목을 더욱 옥죄고 있다.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은 물론 대처방안에 대해서 당정의 목소리가 다르고,정부부처 간에도 견해의 차이가 심한 것 같다.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불확실성의 제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우리 경제가 워낙 대외환경에 민감하다 보니 불확실성이 높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치부해도,왜 정부가 경제주체들의 불안마저 가중시키는지 모르겠다.따라서 대통령은 경제주체들이 불안감을 털어낼 수 있는 조치부터 취해야 한다.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기업중심의 혁신시스템을 운용하겠다고 말이다. 집권당의 총선 승리는 잃어버린 1년의 국정 만회와 8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회생에 대한 무한책무를 동시에 부여받은 것이다.이 막중한 책무를 풀기 위해 청와대를 비롯하여 정부부처의 시스템도 바꿀 모양이다.그런데 정부의 이런저런 노력이 경제주체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지독한 사회적 불감증 때문일까.아닌 것 같다.우리 정부는 좋다고 하는 보약(정책)들은 다 구비하고 있고 정책수행 능력도 그동안 검증을 받아왔다.문제는 국가혁신시스템에서 아직도 정부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정부가 기업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것이 능력이 아니다.기업이 정책을 따라오게 하는 것이 능력이다.즉,기업이 주인공이 된 정책이 구현되어야 한다.정부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전후 일본의 성장신화를 말할 때 항상 붙어 다니는 괴물이 바로 통상산업성(MITI)의 산업정책이다. 한때 ‘MITI와 일본의 기적’을 쓴 캘머스 존슨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MITI의 엘리트 관료의 손에서 나온 산업정책이 일본의 경제기적을 일궈냈다고 보았다.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도 MITI의 산업정책 따라하기를 시도했고,우리나라는 일본의 정책을 거의 베껴 쓰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MITI의 산업정책에 대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다.존슨이 본 일본의 성공은 1970년대 중반까지라는 것이다. 즉,그 때까지는 MITI의 산업정책이 어느 정도 유효했지만,그 이후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일본의 경제성장에서 창조적인 기업가들의 열정과 노력을 더 큰 성공요인으로 보고 있다.우리의 경쟁력도 기업에서 나온다고 볼 때,기업중심의 혁신시스템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아닌가. 최근 현 정권의 최고 정책브레인이 대학 강의실에서 뱉은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평소에 사려 깊은 논리 전개로 호감이 갔던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실망스럽다.1년 동안 5000차례 이상 회의를 하고 정책을 다듬었는데 왜 정책 부재라고 비판만 하느냐는 것이다.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데에는 이론을 검증할 실험실이 없다.따라서 정책의 실패에는 엄청난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는 좋은 예가 된다.정책담당자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해도 그 대상인 기업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실패한 정책이다. 지금 우리는 빛의 속도보다도 빠른 생각의 속도 시대에 살고 있다.경제 환경도 복잡하다. 순수이론으로 무장하여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경제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경제개혁이란 결국 창조적인 기업가가 마음껏 기업을 하게 해주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경제 살리기 처방의 백가쟁명을 잠재울 수 있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일성이 기대되는 것은,정부가 이솝 우화의 양치기소년은 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웰빙푸드’ 두부의 화려한 변신

    두부.‘밭에서 나는 쇠고기.’ 콩의 가장 화려한 변신이다.콩이 두부로 거듭나는 과정이 사뭇 숙연하다.물에 불린 후 맷돌에서 갈고,가마솥에서 펄펄 끓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그리곤 육중한 돌덩어리 밑에서 눌려 속이 단단하게 굳는다.제조 과정이 어떤 식품 못지않게 복잡하고,정성이 필요한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 먹자먹자 웰빙푸드 두부 최근 두부가 각광받고 있다.주로 산기슭에 많이 있던 두부 음식점들이 시내 한복판으로 진출해 성업중이다.잘 먹고 잘 살자는 요즘의 음식 코드인 ‘웰빙’과 맞물리면서 두부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집에서도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는 사람도 많아졌다. 두부는 세계 최장수국 일본의 장수마을 오키나와 사람들이 즐기는 다시마·돼지고기와 함께 3대 식품 가운데 하나다.이들은 하루 2끼 두부를 먹는다.오키나와의 대표적인 음식 ‘참푸르’는 두부를 돼지고기와 숙주나물·파를 넣고 볶은 것이다.두부의 영양이 높게 평가되면서 미국·캐나다와 유럽에서도 두부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고려시대부터 두부를 먹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다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두부를 먹는 방법이 그렇게 다양하지 못하다.기름에 지지거나 찌개와 순두부로 먹는 것이 고작이다.두부 요리 전문 책을 낸 김수인(32) 전남도립남도대학 교수는 신세대의 취향에 맞는 두부크림치즈를 제안했다.두부와 크림치즈를 2대1의 비율로 섞은 다음 레몬즙을 1작은술 정도 넣어 섞으면 된다.그는 “두부크림치즈를 베이글이나 호밀빵에 버터 대신 발라 먹으면 아주 좋다.”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젊은이의 취향에 맞는 두부 샌드위치와 두부 쿠키 등 5가지 요리를 만들었다.“두부는 소화 흡수율은 높고 열량은 낮아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이라고 말했다. 두부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은 얼린두부로 알려져 있다.중국에서 한 스님이 두부를 겨울철에 바깥에 두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딱딱하게 굳어있었던 것.이를 버릴 수 없어 국에 넣고 끓여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그후에는 아예 얼려먹었다 한다.콩 단백질이 동결 건조된 두부에는 수분은 빠져 나갔지만 영양가의 손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김 교수는 “두부를 물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서 물을 자주 갈아주면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두부를 신선하게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프랑스 파리 주부들이 빵을 묵히지 않듯이,두부도 묵히지 않고 그날 다 먹어치우는 것이란 설명이다.그러면 언제 두부가 가장 맛있을까?“두부의 담백한 맛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감미롭다.”고 표현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사를 나눈 후에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몹시 난처하다. ■ 장소 강남수도쿠킹아카데미(555-2884) ■ 하자하자 두부 만들기 주말 집에서도 두부를 만들어 보자.생각만큼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다.대두(5컵)와 응고제(20㏄),물만 있으면 준비 끝.만드는 법 (1)콩을 깨끗이 씻어 3시간 정도 불린다.(2)콩의 4∼5배 정도의 물을 준비해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믹서기에 간다.(3)커다란 그릇에 베보자기를 깐 다음 (2)를 부어 두유와 콩비지를 분리한다.(4)두유를 냄비에 붓고 눋지 않도록 저어가면서 끓이면서 응고제를 3∼4차례 나누어 넣는다.거품이 많이 생기면 식용유를 몇방울 넣어주면 가라앉는다.(5)두부가 몽글몽글하게 엉길때 주걱으로 천천히 저어준다.빨리 저으면 엉긴 두부가 분리되므로 주의한다.(6)물이 빠지는 네모난 틀에 면보를 깔고 (5)를 부은 다음 무거운 것을 올려 굳힌다.두부가 굳으면 30분 가량 물에 담가둔다. ■ 김수인의 두부 요리조리 ●두부 샌드위치 재료 두부 ½모,식빵 8장,삶은 계란 2개,당근 ¼개,오이피클 ⅓개,양파 ½개,마요네즈 2큰술,레몬즙 1작은술,소금,후추 만드는 법 (1)식빵은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놓는다.(2)두부는 체에 2∼3번 걸러서 준비하고 여기에 마요네즈와 소금,후추,레몬즙을 넣는다.(3)삶은 계란과 오이피클,당근은 잘게 잘라준다.양파는 가늘게 채썰어 식초물에 20분 정도 담근 다음 잘게 잘라 주고 준비한 내용물을 (2)에 넣고 버무린다.(4)식빵위에 상추를 깔고 (3)을 얹고 다시 식빵을 올린다.기호에 따라 마요네즈 대신 머스터드를 이용해도 좋다. 사진 강성남기자 snk@ ●두부 소고기 덮밥 재료두부 1모,소고기 300g,달걀 3개,붉은 피망 ½개,다시마 국물 적당량,양파·팽이버섯·생강·마늘·후추·소금·설탕·간장·청주·맛술·브로콜리 약간씩 만드는 법 (1)두부는 사방 3㎝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2)닭가슴살은 후추와 생강즙을 뿌려 냄새를 제거한 다음 두부와 같은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3)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양파를 볶은 다음 (2)를 넣고 같이 볶는다.(4)닭고기의 겉표면이 익으면 다시국물을 넣고 끓으면 두부를 넣고 양념을 넣은 후 자작자작하게 끓으면 풀어 놓은 달걀을 위에 넓게 뿌려주고 팽이버섯과 대파를 얹는다.달걀이 너무 익지 않게 해야 맛이 좋다.(5)국물이 너무 졸아들지 않게 준비한 (4)를 밥위에 끼얹어 내놓는다. ●튀긴두부 샐러드(4인) 재료 두부 1모,땅콩 ½컵,비트 ¼개,양상추 4장,깻잎 4장,크레송 2줄기,녹말가루 약간,소스(간장 2큰술,화이트 와인 1작은술,다시마 국물 2큰술,올리브유 2작은술,레몬즙 조금) 만드는 법 (1)두부는 물기를 충분히 제거한 다음 깍둑썰기하고 녹말가루를 묻혀서 중간 온도에서 튀긴다.(2)비트는 가늘게 채썰고,양상추와 깻잎,크레송은 먹기 좋은 크기로 뜯어 놓는다.(3)만들어둔 소스에 튀긴 두부와 땅콩을 함께 섞어 내놓는다. ●두부 쿠키 재료 밀가루 200g,설탕 80g,소금,베이킹파우더 10g,버터 170g,두부 120g,우유 20g,계란 1개 만드는 법 (1)두부는 물기를 제거한 다음 부드럽게 으깬다.(2)밀가루와 설탕,소금,베이킹파우더,버터를 넣고 섞어서 우유와 계란,두부를 넣고 다시 한번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3)준비된 반죽은 30분 정도 냉동보관한 다음 잘 치대어 모양을 만들어 낸다.(4)160℃의 오븐에 25분간 구워 낸다. ●두부볼 프라이 재료 두부 1모,검은깨 2큰술,그린피스 2큰술,당근 ¼개,표고버섯 5장,소금·설탕 조금씩 만드는 법 (1)두부는 물기를 제거해 체에 곱게 걸러둔다.(2)표고버섯과 당근은 가늘게 채썰어 준비한 다음 (1)과 검은깨·그린피스를 넣고,소금과 설탕을 넣고 섞어준다.(3)둥글게 모양을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조금 묻혀 튀겨준다.기호에 따라 다시국물에 물녹말을 풀어 끼얹어 먹어도 좋다. ■ 두루 맛보세요 두부 맛집 두부 마니아들은 가장 대표적인 두부 음식점으로 서울 공릉동 북부지원 뒷길의 제일콩집(02-972-7016)을 꼽는다.2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장 유병규(60)씨가 매일 새벽 직접 맷돌로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든다.콩을 갈아 비지처럼 만들어 끓이는 콩탕·두부찌개·청국장·순두부가 5000원씩.두부에 각종 야채와 돼지고기를 넣어 끓이는 두부고기 전골은 2만원(대)·1만 5000원(소)이다.날이 더워지면서 내기 시작한 콩국수(5000원)도 고소하면서도 걸쭉한 국물 맛이 별미다. 두부 전문점들이 산기슭에 주로 있는 반면 예성(02-755-1900)은 시내 한복판 명동에서 성가를 누리고 있다.롯데백화점 맞은편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사이의 골목에 있는 이 집의 1층 주방이 홀보다 넓어 보인다.매일 두 가마니의 콩을 갈아 두부를 직접 만들어 쓰기 때문이다.점심 시간대에 가장 불티나게 팔리는 순두부의 종류가 9가지에 이른다.순두부를 만들땐 물을 많이 섞지 않는 것이 특징.그래서 순두부가 무르지 않고 고소한 맛이 살아있다.순두부정식,소고기·돼지고기·김치·양념·굴·버섯순두부가 각 6000원이고,해물순두부가 6500원.돌솥밥과 함께 계란이 나온다.또 손두부(1만원)를 주문하면 컬러 두부가 나온다.흰색 두부와 함께 검은 콩으로 만든 검은 두부,두부를 만들때 붉은색 파프리카를 넣어 만든 핑크빛 두부가 나와 식욕을 돋운다.또 저녁에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두부완자와 두부꼬치도 나온다.콩요리로는 콩돈가스,콩갈비,콩스테이크,콩양념치킨,콩불고기 등 콩으로 만든 고기류가 1만 4000∼1만 9000원이다.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못미쳐 우리은행옆의 콩두(02-722-0272)는 프랑스식 식단에 두부와 콩요리를 결합시킨 퓨전 음식점이다.실내가 동양적이며 세련돼 로맨틱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두유와 콩국수 등이 나오는 점심 세트 메뉴는 1만 5000원,두부 스테이크는 2만 4000원이다.한때 거스 히딩크 축구감독이 즐겨 찾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기철기자˝
  • 40년 ‘무등산 지킴이’ 박선홍씨

    무등산은 광주의 상징이다.도심 근처에 해발 1187m 높이로 솟아 웅대함이 돋보인다.그러면서 정상 가까이에 발달한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의 절경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광주 사람들에게 무등산은 이 고장의 역사이자 기념비다.백제 땐 무진악(武珍岳),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렸다.북쪽은 나주평야,남쪽은 남령산지의 경계에 있다.버스 토큰 하나로 산자락에 내려 등산을 즐기고 지인들과 만나 담소하는 휴식처다.그래서 주말 휴일이면 시민들로 북적이는 살아 있는 산이다.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바꾼 광주토박이 이런 무등산도 6·25전란을 거치면서 황폐화의 위기를 거쳤다.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70년대 이전까지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다.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놀고 산새가 지저귀는 울창한 숲으로 바뀐 지는 최근이다.153과 897종의 식물이 분포한다.이 가운데 465종은 약료작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의 무등산이 제 모습을 찾게 된 뒤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베어 있다.그럼에도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없어 박선홍(79)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공동의장을 추천한다.그는 ‘무등산 지킴이’‘무등산 박사’‘광주토박이’등으로 통한다.무등산과 함께 해온 광주의 산증인이기도 하다.“모든 시민의 사랑으로 무등산의 자연생태계가 복원됐습니다.지금은 야생동물이 인근 농작물에 피해를 줄 정도이니 ‘상전벽해’가 아니겠습니까.”.박의장은 모든 공을 시민에게 돌린다. 그가 무등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청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충장로 5가에서 태어난 그는 1940년대 초까지 천연 원시림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그러나 일제의 세계2차 대전 도발과 전쟁물자 고갈에 따른 연료난으로 산림 남벌이 시작되면서 옛 모습을 잃어갔다.해방후 광주시청 공무원으로 잠시 재직하다가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겼다.그는 같은해 보이스카우트 ‘무등소년대’ 대장으로 무등산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는다. ●산악회 창설·책발간 등 무등산 보호 앞장 이어 55년 이 지역 최초의 산악회인 ‘전남산악회’를 조직하고,69년엔 ‘전남 산악연맹’ 창설을 주도했다.“개구쟁이 시절 노닐던 산자락이 무차별 벌채로 망가져가는 것을 그대로 볼 수만 없었다.”는 그는 산악인을 중심으로 무등산 보호에 나서기로 맘 먹는다.매일 산을 누비벼 자생 동·식물을 관찰하고 사찰,문화재 등을 조사했다.관련 자료가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 주워 모았다.유래나 전설을 담은 자연물에 대해서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무등산에 대해 무언가 알아야 ‘보호’라는 명분을 내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당시만해도 ‘무등산 보호’를 시민운동으로 이끌어낼 만한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는 이를 토대로 1976년 ‘무등산’이란 507쪽짜리 책을 펴냈다.무등산의 유래와 전설·경관 등을 망라했다.“풀 한 포기 돌 한조각에도 생명이 있음을 느겼다.”는 박씨는 “내 삶을 부려 놓을 때까지 살아 움직이는 무등산에 대한 기록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현재 6번째 개정 증보판을 내 놓았다.소설가 송기숙(전남대 명예교수)씨는 “폐허가 된 절터를 찾아 하나 하나 유래와 전설을 밝히고 유려한 필치로 구수하게 이야기를 펼쳐간다.”며 “이 책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고증이 담긴 향토문화의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무등산이 70년대 산업화 이후엔 벌채가 아닌 개발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등산객이 아무데서나 밥을 짓고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산중에서 고성방가와 술주정까지 벌어졌다.그는 자연보호운동을 시작할 때라고 판단했다.1989년 지역 산악단체와 YMCA,흥사단 등 12개 단체가 참여,‘무등산 보호 결의대회’와 ‘오물수거 캠페인’이 열렸다.그는 이를 계기로 같은해 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창설했다.거창한 구호 보다는 ▲쓰레기 버리지 말기 ▲취사 삼가기 ▲세제류 안쓰기 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지금은 800여개 단체가 가맹한 대표적 시민단체로 성장했다.협의회는 최근 모 업체가 무등산 자락에 추진중인 ‘온천개발’을 백지화하도록 유도했다.시민들의 호응도 급속히 확산됐다. 그는 2001년 ‘무등산 공유화 재단’을 설립하고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펼치고 있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뛰어들었다.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무등산의 사유지를 사들여 영구 보존하는 운동이다.시민과 지역 기업들의 협조로 지금까지 무등산 자락 사유지 7만 5000여평을 사들였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등 공감대 확산 노력 그는 또 지방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86년 ‘민학회’를 창설했다.고향의 발자취를 더듬고 자기 정체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19세기말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주의 향토자료와 역사를 집대성한 ‘광주 1백년’이란 3권짜리 책도 펴냈다.“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정신이 건강한 후세들이 태어날 것이라 믿습니다.무등산 보호도 결국은 삶의 터전을 풍요롭게 가꾸자는 실천운동이지요.”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보지 않았고,이 곳에서 숨쉬고 부대끼며 80평생을 살아온 그의 얼굴에는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글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보이스카우트 ‘무등소년대’대장 ▲ 55년 이 지역 최초 산악회인 ‘전남산악회’ 조직 ▲ 69년 전남산악연맹 창설 ▲ 89년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창설 ▲ 94년 조선대 이사장 ▲ 99년 광주전남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창설,초대회장 ▲ 2000년 제1회 대한민국 산악대상 산악환경상 수상 ▲ 2001년 무등산 공유화 재단 설립 ˝
  • [儒林 속 한자이야기](18)

    유림 76에 무소불위(無所不爲)가 나온다.無는 원래 기구를 가지고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본 뜬 글자인데,‘없다’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이에 ‘춤추다’라는 본 뜻을 살리기 위해 無자에 ‘춤추는 두 발을 본뜬 천(舛)’을 넣은 舞(춤출 무)자가 만들어졌다.無자가 들어간 한자는 憮(어루만질 무), (밟을 무) 등과 같이 대부분 음은 ‘무’이며 뜻은 나머지 부분이 된다.所는 ‘∼하는 바,것,곳’을 뜻하는데,所자 다음에는 대체로 소위(所謂),소행(所行)처럼 동사가 놓인다. 不는 나무나 풀의 뿌리를 본뜬 것 또는 아래로 늘어진 한 송이 꽃부리를 본뜬 것이라는 두 설(說)이 있다.흔히 마시는 주량(酒量)이 많은 경우를 주류불사(酒類不辭)라고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두주불사(斗酒不辭)라 해야 한다.왜냐하면 이는 다음 일화에서 유래된 관용어(慣用語)이기 때문이다.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공조 관계였는데,항우는 유방이 자기보다 먼저 진(秦)의 서울 함양을 함락시킨 것에 대해 화가 났다.이에 유방이 항우의 진영을 찾아가 해명하는데,그때 항우의 참모 범증(范增)이 유방을 죽이려 하였다.위급한 상황을 안 유방의 심복 번쾌가 방패와 칼을 들고는 그 자리로 뛰어 들어갔다.항우가 잠시 놀랐으나 유방의 참모임을 알고는 번쾌에게 술을 주도록 하니,번쾌는 한말의 술을 단숨에 마셨고,안주로 돼지 생고기를 방패 위에다 놓고 썰어 먹었다.이 모습에 감탄한 항우가 한잔 더 권하자 번쾌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 제가 어찌 말술(斗酒)을 사양하겠습니까(不辭),다만 유방이 먼저 입성하여 장군(항우)을 기다리려고 했던 것인데,그런 유방을 해치려 함은 장군답지 않은 처사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爲는 ‘∼을 하다,∼이 되다,∼을 위하다,∼이라 여기다’라는 뜻으로 쓰인다.진시황제(秦始皇帝)의 신하인 환관(宦官) 조고(趙高)는 진시황이 죽을때 태자(太子)인 부소(扶蘇)를 황제로 계승시키도록 유언하였으나,승상(丞相) 이사(李斯)와 함께 그 유언을 속여 자신들이 다루기 쉬운 진시황 둘째 아들인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웠다. 그 후 조고는 이사 등을 죽이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左之右之)했는데,어느 날 王에게 사슴(鹿)을 바치며 “이것은 말(馬)입니다(指鹿爲馬 지록위마)”라고 했다. 그러자 王이 웃으며 “사슴(鹿)을 말(馬)이라 합니까”라며 좌우를 둘러보자,신하들 중에 ‘말입니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가 하면 ‘사슴입니다’라고 말한 자가 있었다.이때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죄를 씌워 모두 죽였다.그래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행사하는 것을 ‘指鹿爲馬’라 하는데,훗날 그 뜻이 확대되어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이상으로 볼 때 무소불위(無所不爲)는‘어떠한 일도 하지 못함이 없다.즉 못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무소불능(無所不能)과 함께 흔히 절대적 권력을 쥔 사람과 연결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박교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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