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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농구] 신경전에 무너진 LG

    신경전이 최고조에 이른 경기였다. 27일 원주에서 열린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 2차전 동부-LG전. 경기 시작 전부터 그랬다. 1차전에서 나온 심판 판정 때문이었다. 당시 4쿼터, 애매한 판정이 나왔다. 51-56으로 LG가 5점 뒤진 상황. 책부 김주성과 문태영이 얽혀 넘어졌다. 공격 코트로 뛰어가던 문태영의 어깨에 김주성 팔이 엉켰다. 심판은 더블파울을 불었다. 문태영 5반칙 퇴장. 사실 문태영 파울을 불 상황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흐름이 이상해졌다. 에이스가 빠진 LG는 급격히 균형이 무너졌다. 결국 동부가 승리했다. LG 강을준 감독은 2차전 시작 직전 “사실 당시 선수단을 철수시키고 싶었다. 흐름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정이 흔들리면 안 된다. 정확히 판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LG는 올 시즌 내내 유독 석연찮은 판정에 시달려 왔다. 피해의식이 크다. LG 구단의 한 관계자는 “한두번이면 우연이지만 같은 일이 자꾸 반복된다. 억울하다.”고 했다. 문제는 엉뚱한 쪽으로 번졌다. 동부 강동희 감독이 발끈했다. 강동희 감독은 “그러면 우리가 판정 때문에 이겼다는 말인가. 우리도 불리한 판정이 많았다.”고 했다. “그 더블파울은 LG가 억울할 수 있지만 LG도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인 뒤 보상성 콜을 2~3번 받았다.”고도 했다. 결국 1차전 심판진의 애매한 판정은 연쇄 효과를 일으켰다. 경기 주체 모두가 서로를 신뢰 못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2차전 역시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예고됐다. 실제 경기는 그렇게 진행됐다. 강을준 감독은 경기 내내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보였다. 작전 타임을 항의하는 데만 쓰기도 했다. 심판 앞에서 상의를 벗어 던지려는 모습도 포착됐다. 벤치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4쿼터 7분여를 남기곤 아예 선수들에게 지시를 중단했다. 망연자실, 넋 놓고 앞만 바라봤다. 강을준 감독은 경기가 끝난 직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속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했다. 경기는 다시 동부가 이겼다. 2연승이다. 76-63으로 LG를 완파했다. 로드벤슨(23점 15리바운드)이 골밑을 지키고 황진원(15점)이 외곽에서 지원사격했다. LG는 문태영(26점 7리바운드)이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LG는 동부의 3-2드롭존을 전혀 공략 못 했고, 실책도 지나치게 많았다. 선수들도 경기 외적인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다. 원주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3) ‘신문화운동의 기수’ 최남선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3) ‘신문화운동의 기수’ 최남선

    1906년 3월, 17세의 최남선은 일본 와세다대 고등사범부 지리역사과에 입학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초행길은 아니었다. 이태 전인 1904년에도 그는 일본을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는 대한제국 황실유학생단의 최연소 유학생이자 반장이었다. 당시 열 다섯이었던 소년의 눈에 비친 일본은 이전까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듣던 과거의 일본이 아니었다. 그곳은 눈부신 신세계였다. 그 신세계의 거리에서 소년은 서점 유리창 너머로 매달 쏟아지는 수십 종의 잡지들에 매혹당했다. 소년에게 그것은 문명의 상징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그리고 남들보다 비교적 일찍 시도된 그의 유학생활은 모두 짧게 끝이 났다. 도쿄부립 제1중학에서의 첫 번째 유학은 조선유학생들의 무질서와 준비 부족 때문에 석 달만에 중단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유학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갑작스레 파국을 맞았다. 문제의 발단은 와세다대 법정학부 학생들의 모의국회였다. 망해 버린 조선왕이 일본을 방문한다면 어느 정도의 의전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했던 것. 이 사건은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 유학생들에게 심한 굴욕감을 안겨주었다. 최남선은 조선 유학생 대표로 총퇴학을 주도하는 등 강경 대응했지만, 결국 학교를 자퇴해 버렸다. ●‘소년’ 창간 통해 대륙 중심 패러다임 바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학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지만 문명에 대한 열망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최남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년은 스스로를 ‘신보잡지광’(新報雜誌狂)이라 자처했다. 얼마 후, 소년은 신세계로부터 최신 인쇄기를 구입하고 인쇄를 위한 전문 식자공까지 대동하여 그렇게 바다와 함께 귀국했다. 신문명의 메카임을 자부하는 인쇄소 겸 출판사 신문관(新文館)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그리고 1908년 11월 1일, 바다 건너편의 것이었던 문명은 지금 이곳에서 최초의 근대적 잡지 ‘소년’(少年)이 되었다. ‘소년’은 최남선 1인 잡지였다. 일본을 경유한 새로운 지식들은 편집자 최남선을 거치면서 또 한번 선별되고 분류되어 마침내 전파되었다. 이 시기 최남선은 그 자체로 근대 지식의 매체(미디어)였다. 최남선은 일본 유학 시절 구입한 많은 신간 서적들과 당대 잡지들에 등장하는 담론들을 번역했을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그만큼의 글을 썼다. 문명은 그렇듯 지식을 통해 식민지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창간호에 실린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도래하는 문명의 힘과 미래에 대한 최남선의 태도와 각오가 잘 드러나있다. ‘텰썩 텰썩 텩 쏴’ 하는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바다의 위력 앞에서는 ‘큰 산이나 거대한 바윗돌’ 같은 무엇도, ‘아무리 권세를 가진 누구’도 힘없이 쓸려버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돌이킬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시대의 조류이기에 끝내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그 어마무지한 새 기운이 대륙이 아닌 바다로부터 온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유사 이래 수천년간 대륙만을 바라보고 있던 반도 조선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日제의 만주건국대학 교수직 수락 지조냐 학자냐의 양자 중 그 일을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으라고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 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여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임도 내가 잘 안다(‘자열서’(自列書) 중). 신문관 창립 이후 3·1운동까지 10여년간, 최남선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문화운동의 기수였다. 하지만 ‘기미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3년여의 수감생활을 마친 후 그는 지조와 학자의 길 사이에서 학업을 선택한다. 학자로서의 최남선은 민족주의로 나아갔다. ‘조선역사통속강화’(1922)를 시작으로 최남선은 ‘불함문화론’(1925), ‘단군론’(1926), ‘살만교차기’(1927) 등 굵직한 역사 연구 저술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들은 모두 ‘단군에 기원한 조선 역사’라는 그의 민족주의 역사학을 구성하는 중요한 뼈대였다. 동시에 그는 ‘풍악기유’(금강산, 1924), ‘심춘순례’(지리산, 1925), ‘백두산근참기’(1927), ‘금강예찬’(1928) 등 조선의 산천을 둘러보고 이에 대한 기행문을 남겼다. 그에게 있어 기행문은 여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순례기였다. 민족은 그에게 이념이었고, 그는 이념에 입각한 자신의 이러한 작업을 조선학(朝鮮學)이라고 불렀다. 그가 했던 연구의 중심에는 언제나 조선 민족이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가 버린 지조란 무엇이었을까. 대중들이 열망했던, 그리고 그 자신이 지켜오던 지조란 바다를 통해 흡수하려던 문명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남선에게 그 문명은 일본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바다를 맞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눈을 돌려 대륙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지조를 바칠 만한 어떤 것도 없는 현실. 그렇기에 최남선은 지조있는 학자가 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지조 그 자체를 ‘휘뿌리고’ 학자의 길을 택한다. 그가 가고자 했던 학자의 길은 바다도 대륙도 아닌 새로운 지반에 대한 탐사였다. 모든 지조가 사라진 자리, 그 자리에 세울 새로운 시공간. 학자란 새로운 시공간의 발굴자들이었다. 최남선은 지조가 불가능한 현재를 버리고 과거 속으로 침잠한다. 문명화되어야 할 미래의 민족을 등지고, 대륙 바라기 조선의 시간을 넘어 순정한 시간, 그 태초의 시간인 단군으로 그는 깊숙하게 달려 들어갔다. 어느 순간 최남선은 그 태초의 시공간 속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순정한 지반이란 건 현실 위에서는 세워질 수 없었다. 문명이란 바다를 통해 조선을 덮치던 제국주의의 시대. 그 바다 앞에 쓰러져간 ‘큰 산이나 거대한 바윗돌’처럼, 그의 세계는 무력했다. 바다를 동경했던 ‘담 크고 순정한 소년’. 그 담대함으로 바다를 버리고 순정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소년. 하지만 그 소년이 도착한 곳은 결국 바다의 친구였다. 1939년 4월, 최남선은 만주 건국대학의 교수 자리를 받아들인다. ●노년엔 민족주의와 결별 최남선은 그가 도착했던 태초의 시간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그는 샤먼(살만교) 및 민족주의와 결별한다. 그리고 1955년 최남선은 가톨릭에 귀의했다. 어쩌면 최남선에게 그곳은 샤먼과 민족 등이 없는 시공간, 아니 모든 시공간이 탈각된 지각 불가능한 무엇은 아니었을까. 최남선은 말한다. “민족이란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며, 당연히 있어도 안 될 것이요, 다만 ‘대립’의 의식으로만 성립된 것”이다. 민족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며 인류의 평등한 평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진실한 마음에 입각하여 이전의 가치를 완전히 쓸어버리는 민족혁명이다.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는 모든 지조를 쓸어버릴 것! 그에게 가톨릭은 “평화가 아닌 칼을 통해 불의를 없애고 정의를 세우는 교문(敎門)”이었다. 최남선이 지조 대신 학자를 선택한 것은 격변의 시대를 피해 달아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일생 동안 단 한순간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학자로서 자신의 시대를 덮쳐오던 바다와 맞섰다. 현실을 뚫고 나갈 새로운 시공간을 발굴하는 지식인 최남선. 하지만 언제나 자신이 발굴한 그 시공간 속에 갇히고 방향을 잃을 위험에 놓인 지식인. 최남선은 끊임없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식인의 숙명을 가리키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현재를 넘어서고자 하나 너무도 쉽게 현실에 포획되고 마는! 문성환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자네는 왜 시를 쓰지 않나?” 노(老) 시인은 대뜸 묻는다. 그저 농담인가 싶어 머뭇거리니 다시 묻고 재촉한다. “자네도 시를 쓰시게. 제대로 된 시 두편만 남기면 그 어떤 훌륭한 정치인, 그 어떤 훌륭한 학자보다 더 오랫동안 역사가 기억할 거야.” 진지했다. 65년 시력(詩歷)의 시인답게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식과 지혜를 내보였고, 92세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얘기 중간중간 유쾌한 농담을 잊지 않던 그는 지긋한 눈빛으로 정색한 채 손주뻘 되는 기자에게 시 쓰기를 권했다. 머리를 배반한 입이 절로 움직였다. “네,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4일 시조시인 정완영을 만났다. 최근 열일곱 번째 시집 ‘詩菴(시암)의 봄’(황금알 펴냄)을 내놓은 그다. 공식 집계는 없건만 창작 시집을 내놓은 최고령 시인임에 분명하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그의 집과 백수문학관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제 강점 기 고문이 시로 터져나와 그의 호는 백수(白水)다. 정갈히 맑은 물이라는 뜻과 함께 고향 김천의 천(泉)을 쪼갠 글자(破字)다. 2008년 정부와 경북도 등이 예산을 들여 백수문학관을 개관했다. 시조시인으로 개인의 문학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난 시 지상주의자이면서 시 전도사야. 남녀, 학력, 노소 가리지 않고 늘 시를 권하지. 시를 쓰는 것이 즐거우니까 권하는 거지. 시를 안 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시에는 별 재주 없는 이가 많을 텐데 무작정 시를 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짐짓 놔보는 어깃장에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면 많이 거두는 이도 있고, 조금밖에 못 거두는 이도 있지. 그러나 아무것도 못 거둔 이는 없는 법이야.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한 만큼은 반드시 거두게 돼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말 그대로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정완영은 일제 강점기 ‘불령선인’(일본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으로 찍혀 경찰에게 고문당해 오른쪽 중지를 쓸 수 없게 됐다. 고통은 시가 되어 터져나왔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만들며 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민족적 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장르로서 시조만을 고집해 온 민족사적 배경이자 개인사적 이유다. 1970~8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시조 ‘조국’에서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와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게끔 살아온 것이다. 정완영은 청마 유치환의 강권으로 공식 등단의 필요성을 느꼈고 곧바로 1960년 서울신문, 국제신보, 1962년 조선일보, 1967년 동아일보 등 신춘문예를 휩쓸다시피하며 중앙문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몸으로 꿰뚫고 살아온 시 세계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시인이 가난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시인의 가난함은 훈장이라고 머리로 외면서도 몸은 한사코 명예와 돈을 좇아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느 시인들의 비루한 현실이니 말이다. “시는 벌판에서 와. 외롭고 쓸쓸할 때, 그때 시가 나와. 안일하거나 가득 차면 시가 안 나오거든. 시가 떠오를 때는 일부러 밥도 두세 끼니씩 거르기도 해.” 하지만 어쩌랴. 짜여진 형식의 틀과 고루한 인식에 갇혀 있는, 낡은 장르로 치부되는 것이 문단에서 시조가 겪고 있는 대접이다. 그는 “시조의 형식에는 종장 세 글자를 제외하면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들어 있다. 시의 정서와 시어 역시 다루지 못할 것이 없다.”면서 “시조를 모르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시조 변형 자유로워… 낡은 장르 치부는 편견” 그의 신작 시집 ‘시암의 봄’을 펼쳐 읽어 보면 시조에 대한 편견이 단박에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감꽃’ 중), ‘동구 밖 개 짖는 소리로 먼 마을에 눈 내렸다’(‘먼 마을에 내리던 눈’ 중),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것인가’(‘적막한 봄’ 중) 등과 같은 시편들은 젊은 시인의 모던함과 무람 없이 견줘도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길 만하다. 특히 ‘함부로 꽃 피지 않고, 함부로 열매 안하는 석류나무’를 보여준 ‘우리 집 석류나무는’는 품격 있는 시어 조련과 범우주적 가치에 대한 사유의 정수를 확인시켜 준다. 지금도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시를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는 진짜배기 시인 정완영. 그러고 보니 김천은 소설 쓰는 김연수(41), 시 쓰는 문태준(41)의 고향이다. 그냥 불쑥 튀어나온 문재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 사진 김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공지영 “신정아 에세이, 대필 의혹”…신세계 정용진도 곤혹

    공지영 “신정아 에세이, 대필 의혹”…신세계 정용진도 곤혹

    신정아씨의 자전 에세이 ‘4001’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대필 의혹 및 대기업 임원과의 만남설 등 각종 의혹과 소문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24일 소설가 공지영씨는 신씨의 에세이를 누군가 대신 썼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신정아씨 책을 읽는데 생각보다 지루하다.”며 “그냥 기자들이 호들갑 떨며 전해주는 이슈들만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을 듯”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서문과 본문의 문장이 너무 달라, 대필 의혹이 상당히…논문 리포트도 대필이라는데”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공씨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책 ‘상처없는 영혼’과 신씨의 책 표지가 너무 비슷하다고 주장하자 “왜 하필 나랑. 근데 이거 너무 비슷하잖아. 철저하게 묻어가기인가?!”라며 표지 디자인 표절 의혹도 제기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애매한 글을 썼다가 신씨와 ‘저녁식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어제 베스트셀러 작가님과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 책이 많이 팔릴까 봐 걱정을 하시더라는…그래서 속으로 설마 했는데…설마가 사람 잡았네...ㅠㅠ”라는 글과 함께 신씨의 책이 잘 팔린다는 기사를 링크했다.  단순히 ‘베스트 셀러 작가와 저녁’이라는 말과 링크된 신씨 관련 기사만 연관지어 보면 정 부회장과 신씨가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 글이 곧바로 네티즌들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오해가 시작됐다. “정 부회장과 저녁을 먹은 사람은 신정아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났다는 이야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점점 확산되자 신세계는 24일 정 부회장이 트위터에서 언급한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 이모씨 이며 신씨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도 이날 트위터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국어가 잘못된 건가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가끔 틀리기는 하지만”이란 글을 올리며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오해는 ‘신정아님=베스트셀러작가’라는 기자님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 제 무식이 원인입니다”, “베스트셀러작가의 의미를 재정의 해야겠어요” 등의 글을 연이어 올리며 거듭 해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제주 추사 유배길 체험하러 오세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제주 유배생활을 체험하는 산책로가 다음 달 개장한다. 제주대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는 ‘제주 유배문화의 녹색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1차연도 사업의 하나로 ‘추사의 길’ 3개 코스 기획을 마치고 다음 달 23일 문을 연다고 22일 밝혔다. 추사의 길은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자 학자인 추사의 흔적과 자취가 남아 있는 서귀포시 대정과 안덕을 중심으로 유배 노정을 따라가며 8년 3개월간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중심의 도보체험 코스다. 1코스는 국가지정 사적 제487호인 추사 유배지를 기점으로 대정향교를 순환하는 코스로, ‘위리안치’(탱자나무 울타리를 통한 가택연금) 신세였지만 자신이 기거한 초막에서 학문·예술세계에 몰입, 추사체를 확립하고 세한도(국보 제180호) 등 작품을 남긴 추사의 유배생활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추사 유배지를 출발, 오설록까지 이어지는 2코스에선 수선화 등 꽃을 사랑하고 편지쓰기를 좋아하며 차문화를 즐겼던 추사의 멋을 음미할 수 있다. 또 대정향교에서 산방산을 거쳐 안덕계곡으로 이어지는 3코스에서는 사색을 즐겼던 추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간호사 출신 소설가 정유정 새 장편 ‘7년의 밤’

    간호사 출신 소설가 정유정 새 장편 ‘7년의 밤’

    “그러니까 이게 전부 사실은 아니지요?”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그러니까 사실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는 소설의 초입부에서 ‘살인마의 아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묻는다. 사실이 진실이냐고. 그리고 소설 내내 침묵한다. 대신 어마어마하게 끔찍하면서 너무나도 불편한 얘기, 으스스하게 오래 가슴 졸여야 하는 서사(敍事)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그리고 소설의 끄트머리 즈음에서 스스로 대답한다. 사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고. ●냉소적 표현… ‘의도적 거리두기’ 그렇다.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한복판에 들어가 있어도 진실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수 년의 시간을 두고서 복판과 외곽을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할 뿐 아니라, 두려움 없이 바닷속 심연을 들여다보며 사실의 조각들을 꿰맞출 수 있는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리고 소설을 덮을 때쯤 그는 침묵으로 웅변한다. 진실을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고. 명백해 보이는 죽음과 죽임, 죄와 벌, 그리고 선과 악 등의 경계도 흐려질 수 있고, 진실과 사실이 갖고 있는 간극 만큼이나 서로 스치듯 교차하면서 공존하고 있을 뿐이라고. 2009년 세계문학상을 받은 ‘내 심장을 쏴라’ 이후 2년 동안 내내 웅크린 채 소설 쓰기에 몰두해온 정유정(45)이 장편소설 ‘7년의 밤’(은행나무 펴냄)을 내놓았다. ‘7년의 밤’은 한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한 ‘세령호의 재앙’이라는 대참사를 저지른 살인마와 그의 아들 서원, 그리고 또 다른 미치광이 살인마와 그의 딸 세령이 끌고 가는 이야기다. 7년 전 그날 밤의 사건 이야기가 그날 이후 7년 동안의 이야기 속에 액자 소설 형태로 담겨진다. 열 두 살의 서원은 7년 동안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 속에서 세상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쉼 없이 학교를 전전하다 결국 등대마을까지 떠밀려 온다. 그날 밤의 또 다른 증언자인 승환은 서원과 함께 지내며 그 시간 동안 사실의 틈바구니에 버려진 진실을 찾아 헤맨다. 병적 집착증을 보이는 또 다른 미치광이 살인마는 교통사고 뒤 목졸려 숨진 딸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비이성적인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그후 7년 동안 가슴 서늘한 복수를 준비한다. 정유정은 ‘7년’에서 격정적이면서도 탄탄한 문장과 짜임새 가득한 상황 설정으로 읽는 이들을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게 만들다가도 문득 중간중간 냉소적인 표현을 배치해 ‘의도적 거리두기’를 주문한다. 진실을 찾는 여정은 몰입만으로도, 관조만으로도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며 서둘러서도 더뎌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서사와 모든 인물들, 모든 사실 관계들은 7년 전 그날 밤의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거나 맹렬히 모여든다. 또한 발과 땀으로 쓰여진 소설이기도 하다. 작품 곳곳에 풀어헤쳐진 취재와 노력의 흔적들은 2년 전 ‘내 심장을 쏴라’에서 보여줬듯 정유정 소설이 갖는 소중한 미덕 중 하나다. ●죽음·복수… 인간 내면 치밀한 묘사 ‘7년’에서는 스쿠버다이버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려내는 심해 깊은 곳 풍경들이 마치 산소탱크를 짊어지고 직접 바다로 뛰어든 듯 생생히 눈앞에 펼쳐진다. 몰아치는 물의 흐름 속에서 느낄 법한 불안과 공포심의 미세한 변화까지 놓치지 않는다. 세령호와 세령댐, 그리고 등대마을이라는 정교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낸 뒤 나무 한 그루, 작은 둔덕 하나, 고양이 한 마리까지 촘촘히 배치하는 집요함도 보여준다. 정유정은 “스티븐 킹(미국 추리문학 대표작가)의 작품을 갖고 문장 공부를 했다”고 거리낌 없이 고백한다. 문예창작과 출신들이 잡고 있는 주류 문단에서 ‘간호사 출신 소설가’라는 이력 자체가 이미 독특하다. 스티븐 킹을 사숙(私淑)한 작가답게 죽음, 폭력, 복수, 애정 같은 격정 앞에 고스란히 내던져진 인간의 내면 심리를 치밀하게 따라가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은 채 잔인하리만치 덤덤히 풀어가는 솜씨는 전작(前作)을 뛰어넘는 성취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특파원 칼럼] 나카히로 이와타/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나카히로 이와타/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나카히로 이와타. 도쿄신문 워싱턴 특파원이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난 건 지난 9일이다. 워싱턴에 부임하기 전 도쿄신문 서울 특파원인 시로우치 야스노부가 “아주 유능한 특파원이 워싱턴에 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전화번호를 적어줬었다. 나카히로와 나는 워싱턴 시내 ‘내셔널 프레스 빌딩’ 꼭대기층 라운지에서 만났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일본인 특유의 예절이 몸에 밴 중년 남성이었다. 우리는 일본어 악센트가 묻은 영어와 한국어 악센트가 담긴 영어로 인사를 나눴다. 임기가 6개월 남았다는 나카히로는 외국 기자로서 미국 정부를 취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정말 ‘처절하게’ 얻어냈다는 한 정부 관리의 연락처를 적어줬다. 일종의 ‘영업비밀’을 선뜻 공개한 셈이다. 그는 “연락처를 몇개 더 알고 있는데 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를 표시하면서 커피값을 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인데요.”라면서 내 지갑을 따돌렸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켰을 때 놀랍게도 나카히로가 그새 보낸 이메일이 두 통이나 들어와 있었다. 거기에는 그가 발로 뛰어 얻어낸 연락처들이 담겨 있었다. 나카히로가 그날 ‘패키지’로 베푼 친절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 룰로 따지자면 그는 나한테서 보답을 ‘테이크’할 기회가 앞으로 거의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노하우를 나한테 ‘기브’한 것이다. 그리고 이틀 뒤 일본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문득 나카히로를 떠올렸다. 나는 이메일을 열어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카히로씨, 당신의 나라가 엄청난 재난을 당한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당신을 비롯한 일본 국민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일본 국민이 이 재난을 반드시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야 좀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인터넷에 들어가 보고 나는 나의 감정이 나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봇물 터진 한국인의 온정이 벌써 현해탄에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이런 현상이 이례적이라면서 구구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한국인이 지금 일본에 베풀고 있는 마음은, 관계의 특수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류의 보편적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두고 맹자(孟子)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정의한 이후 2000년이 지나도록 과학은 이 심리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분석해 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구하려 달려든다. 이는 그 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라고 맹자가 지목한 바로 그 마음이 지금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마음인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한·일은 다시 독도와 과거사, 교과서 왜곡 문제 등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 혹여 우리가 ‘아낌없이 베풀었더니 결국 이렇게 보답하는군.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한테는 잘해주는 게 아니었어.’라고 섭섭해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고결한 측은지심을 절하(切下)하는 격이 된다. ‘이번 온정의 물결을 한·일 관계를 개선시키는 계기로 삼자.’는 얘기도 우리 입으로 할 말은 아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기브’하고 ‘테이크’를 바라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 사랑을 주고 나서 아예 잊어 버리는 국민의 품격은 얼마나 고매한가. 편지를 보낸 며칠 뒤 나카히로한테서 위로해줘 고맙다는 답장이 왔다. 갑자기 터진 고국의 재앙에 슬퍼하랴, 기사 쓰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사태가 좀 수습되면 나카히로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해야겠다. carlos@seoul.co.kr
  • 동물 입 빌려 ‘인간 만행’을 말하다

    소설의 운명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2002년 ‘파이 이야기’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얀 마텔은 이 같은 물음에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런 바탕에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무거운 공통분모가 깔려 있다. 41개국어로 번역된 ‘파이 이야기’ 이후 9년 만에 침묵을 깨고 새로 선보인 장편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에서도 마텔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 온 끈질긴 집념을 깔면서 ‘파이 이야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독창적인 우화형식을 빌려 흥미롭게 전개해 나간다. 전작 ‘파이 이야기’가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아 태평양 한가운데를 표류하는 소년과 호랑이의 공존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나치에 의해 자행된 학살, 즉 홀로코스트를 상징적으로 그려 나간다. 왜 그는 홀로코스트에 동물들을 등장시켰을까. 아마도 동물의 입을 빌려 인간의 추악한 만행을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번역을 맡은 강주헌은 “마텔이 동물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가 인간의 목소리에는 냉소적인 반응을 띠더라도 똑같은 이야기가 동물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는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는 ‘파이 이야기’와는 달리 박제된 동물을 등장시킨다. 그것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두 주인공 ‘베아트리체’(영어식으로는 베아트리스)’와 ‘베르길리우스’(영어식 버질)라는 안내자의 이름으로. 소설 속의 화자(話者) 헨리는 작가 마텔을 연상시킨다. 동물 소설로 큰 명성을 얻은 헨리는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방식이 아닌 상상력을 동원한 비유의 방식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소설을 완성하지만 책으로 펴내기도 전에 혹평을 받고 글 쓰기를 그만둔 채 익명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그에게 의문의 소포가 배달된다. 그 속에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완성 희곡 ‘20세기의 셔츠’가 들어 있다. 헨리는 희곡을 쓴 사람을 찾아간다. 한 뒷골목에서 박제상점을 하는 노인을 만나고, 희곡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박제된 당나귀와 원숭이도 보게 된다. 이때부터 박제사 노인의 말을 들으며 헨리가 희곡의 완성을 돕는다는 것이 책의 줄거리.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는 ‘구스타브를 위한 게임’을 제시한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질문이 12번째까지 계속되다가 13번째의 질문은 빈칸으로 남겼다. 왜? 소설의 운명에는 독자들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1만 2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고유가속 ‘설상가상’… 엔低사태땐 수출경쟁력 큰 타격

    고유가속 ‘설상가상’… 엔低사태땐 수출경쟁력 큰 타격

    세계 경제 2위국인 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8.8의 강진은 세계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는 중동사태, 남유럽 재정 위기와 함께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심야 회의를 갖고 경제 및 금융에 미칠 파장과 대책을 점검하면서 범정부 차원에서 비상상황에 들어갔다. 일본 지진 소식은 이날 국내 주식시장 마감 이후 전해지면서 파장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24시간 거래되는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130원선까지 치솟았고, 엔·달러 환율은 한때 83.29엔까지 올랐다. 반면 엔저 현상은 시간이 가면서 엔·달러 환율이 82엔대로 안정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 불안으로 오히려 안전자산인 엔화를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진 데다가 일본인들이 해외에 뿌려놓은 외화를 복구자금으로 쓰기 위해 다시 엔화로 바꿀 것이라는 예상이 더해지면서 투기 세력이 가세한 것으로 분석된다. 관건은 주말이 지나고 시장이 개장하는 14일부터다. 현재로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국제유가 강세와 사우디아라비아 시위 사태에 지진 효과까지 가세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월요일 개장과 함께 1130원대로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外人 증시서 자금회수 기폭제 될수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세계 증시뿐 아니라 우리 증시도 뒤흔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도쿄 주식시장은 닛케이평균지수가 어제보다 179.95포인트 급락한 1만 354.43포인트로 마감했다. 지난 1월 31일 이후 한달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만, 일본과 경쟁하는 자동차와 전자 등 시가총액이 큰 종목들은 오히려 이를 호재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 지진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의 GDP는 세계GDP의 8.7%에 달한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3%에 해당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진은 그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줄 것으로 관측된다. ●日 경제적피해 GDP 3% 넘을 듯 2008년 중국의 쓰촨성 지진의 직적접 경제피해만 1500억 달러였던 점을 볼 때 피해액은 산정조차 힘든 수준이 된다. 외딴 지역이었던 쓰촨성과 달리 일본 동북부 지진의 경우 자동차 및 철강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각종 발전소 및 정유공장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세를 부추기면서 물가에도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강진 사태가 일시적으로 끝나면 엔고가 지속되겠지만 피해가 커져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우리 수출경쟁력도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동완 국제금융센터 상황정보실장은 “지난해 일본이 경제침체로 세계 경제성장률에 별 기여를 못한 점을 생각하면 지진이 제한적일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의 피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금융과 산업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비상대응체계를 운영키로 했으며,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는 각각 긴급대응반과 상황실을 설치했다. 기획재정부도 긴급회의를 열고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포토]최악의 대지진…일본열도 아비규환의 현장
  • 몸에 좋은 ‘면 생리대’ 써보세요

    몸에 좋은 ‘면 생리대’ 써보세요

    가임기 여성에게 한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월경. ‘날개 달린’ 일회용 제품을 쓰는 여성이 많지만, 날로 오염되는 환경 등을 생각해 대안 생리대를 찾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섬유 수출사업을 하는 윌비스에서는 유기농 면과 한지사를 사용한 여성 위생용품 ‘건강한 엄마’를 내놓았다. 임신 준비기간에 체내 노폐물을 내보내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면 패드, 호르몬의 변화로 분비물이 많아지고 예민해지는 임신 기간에 땀을 신속하게 흡수·발산시키는 팬티라이너 등 제품 종류가 다양하다. 출산 뒤 상처가 덧나지 않고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항균작용을 도와주는 맘 패드도 있다. 2003년 생긴 피자매연대(www.bloodsisters.or.kr)는 면 생리대 쓰기 운동을 벌이는 단체다. 면 생리대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바느질교실을 여는 등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홈페이지에 면 생리대 만드는 동영상과 바느질 본, 재료 구하는 법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집에서 남는 자투리 천으로 생리대를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가장 큰 난점은 세탁. 외출 시에는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했다가 찬물에 생리혈을 빼고서 손세탁하거나 세탁기에 따로 모아서 빤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강수연 “한지와 사랑… 닥나무 키워 종이 떠볼 생각”

    강수연 “한지와 사랑… 닥나무 키워 종이 떠볼 생각”

    네살 때 카메라 앞에 처음 선 뒤 40년이 흘렀다. 작품의 빈도에 관계없이 대중들의 뇌리에서 떠난 적은 없다. 여배우란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강수연(45)이 “아버지이자 가장 친한 친구, 연인이자 스승”이라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17일 개봉)를 통해 스크린에 복귀한다. 한지(韓紙)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 역할을 맡아 박중훈, 예지원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간다. ●한지 다큐멘터리 찍는 감독 역할 영화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강수연과 임 감독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다. 동양권 배우로는 처음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씨받이’(1986), 러시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은 ‘아제아제바라아제’(1989)까지 모두 임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한지와 사랑에 빠져 아파트 베란다에 닥나무(한지 원료)를 키우고 욕조에서 종이를 떠볼까란 생각도 한다.”는 강수연을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화제 등에서 자주 모습을 보여서인지 낯설지는 않은데. -그렇긴 하다. 40년을 인터뷰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없으실 것 같다. 그러니까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얘기부터 나오고… 도와달라. 소개도 해 주시고. 이제는 연상이나 연하를 가릴 나이가 아니다(웃음). ●“박중훈과 키스신 첫 시도에 OK사인… 섭섭했죠” →처음 지원 역은 어떻게 제안 받았나. -감독님이 한지 영화를 찍는다는 얘기만 들었다. 어느 날 감독님이 ‘네가 할 만한 역할이 있는데 할 거냐.’고 하시더라. ‘당연하죠. 카메오라도 해야죠.’라고 했다. 촬영 시작하기 7~8개월 전으로 시나리오도 없을 때다. 그때부터 감독님이 한지와 관련한 책과 다큐멘터리 테이프 등 숙제를 한 보따리씩 주셨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떤가. -우리끼리는 너무 좋아했다. 다만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한지나 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이라는 소재가 나오니까 재미없을지 모른다는 선입견도 있겠지만 한지를 다루는 사람들의 드라마란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 →박중훈(팔용)과 키스신이 화제인데(스크린 왼쪽 하단에 실루엣과 소리 위주로 묘사된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어른들의 사랑, 성숙하고 과하지 않은 관계를 찍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이해를 못했다. 극 중 지원과 또래지만 ‘어른이나 애들이나 똑같이 사랑하고, 뽀뽀하고, 싸우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더니 감독님이 ‘니가 철딱서니가 없어서 그런다.’고 하시더라. 2개월 동안 끊임없이 토론했다. 굉장히 어렵게 찍을 줄 알았는데 첫 시도 만에 오케이 사인이 났다. 섭섭했다(웃음). ●“색깔있는 단역·카메오 출연도 좋아” →평생을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힘들지 않나. -여배우가 아닌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 없다. 다른 배우와 달리 네살 때부터 시작했다.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성인으로 가는 단계를 잘 보냈고 이젠 중년이다.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야 하는 건 다 똑같지 않을까. 기자들이 글을 쓰는 것이나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나 다를 건 없다. →TV 드라마를 빼면 영화 주연작은 ‘써클’(2003) 이후 8년 만이다. 너무 뜸했는데. -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 활동은 오랜만이지만 촬영 안 할 때가 더 바쁘다. 국내외 영화제나 영화정책, 관계자들과의 교류 등 할 일이 쌓여 있다. 물론 이젠 끊임없이 작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나한테 맞는 좋은 역을 하는 게 중요하지 다작이나 비중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월드스타’를 단역이나 카메오로 쓰기는 미안하지 않을까. -감독님들이 안 써주셔서 그렇지 옛날부터 색깔 있는 단역이나 카메오로 써달라고 말했다. 외려 시켜주시는 게 안 미안한 거다. 나 같은 사람들이라고 굶을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아들 조심… 니 부부 정말 재수없다, 조심하라”

    “아들 조심… 니 부부 정말 재수없다, 조심하라”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과 불륜 파문을 일으킨 덩신밍(鄧新明·33)이 이들 외교관 중 한 명인 K(42) 전 영사(지식경제부 소속)에게 자녀의 안전까지 협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9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문건과 K 전 영사가 덩의 남편 J씨와 주고받은 메일에 따르면 K 전 영사는 ‘한국에 있는 자녀를 살해할 수도 있다.’는 덩의 협박에 불면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H 전 영사와의 사이를 내가 방해했다고 생각한 덩이 어느 날 청년들을 데리고 와 자녀 사진까지 보여 주면서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해 덩이 불러주는 대로 각서를 썼다.”면서 “당시 돈이나 신체 일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귀국 이후 조용히 숨어서 지내고 있다.”면서 “매일 새벽 5시 교회에 가 주님께 ‘제 가족을 지켜 달라’고 기도한다. 그 각서 하나면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는데,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 두렵다”고 호소했다. 덩이 K 전 영사에게 건넨 협박문은 A4 용지 한 장 분량이며, “아들 조심…너 죽…2명 다… 學…한국. 니 부부 정말 재수 없다. 조심하라…18세기”라고 적혀 있다. 말미에 2010년 10월 1일이란 날짜도 있다. 메모 형식으로 작성된 문서는 한국말을 잘 구사하지만 쓰기에는 서툰 덩이 한자 간체와 욕설을 뒤섞어 쓴 것으로 보인다. K 전 영사는 2008년 11월쯤 상하이 영사로 부임하면서 이삿짐이 중국 세관에 걸려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덩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알게 돼 이후 상하이엑스포 업무 준비 등을 협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쯤 중신은행 비자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그 후 협박을 당했으며, 지난해 10월 초 가족의 신변까지 위협해 서약서를 쓰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덩의 모함으로 도리어 덩과 내연 관계인 H(41) 전 영사의 부인과 불륜 관계라는 의심까지 받았다고 했다. K 전 영사가 쓴 서약서에는 “다시는 괴롭히지 않고 이상한 메시지와 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사랑은 진심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순녀·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상하이 총영사관 직원들, 덩신밍 비호 왜

    상하이 총영사관 직원들, 덩신밍 비호 왜

    상하이 ‘마타하리’ 덩신밍(鄧新明·33)은 상하이 한국총영사관 직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교민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중국 고위 관료를 움직이는 ‘파워 인맥’ 외에도 총영사관 직원들의 비리를 낱낱이 꿰고 있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덩의 ‘불법 비자 장사’ 실태를 조사해 달라는 현지 교민의 투서가 묵살되는 등 덩과 관련된 교민들의 민원이 번번이 ‘퇴짜’를 맞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덩은 현지 교민과 국내 기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녀에게 찍히면 끝장나는 데다 하소연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 여성 A씨가 덩과 마찰을 빚었다. A씨는 현지의 한 기업 임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덩은 A씨를 도와준 임원을 찾아 보복했다. 그의 아내가 모는 자가용을 파손하기도 했다. 한 교민은 “덩은 그 기업이 ‘세무조사’까지 받도록 조치했다.”면서 “덩은 자신과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면, 도와준 사람까지 철저히 응징한다. 상하이 한국 교민들에게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을 도와 줄 경우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교관 중 한 명에게는 자녀의 안전 문제까지 언급하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친필 서약서’를 써줘 덩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받고 있는 지식경제부 소속 K(42) 전 영사가 공개한 덩의 협박문에 따르면 “아들 조심…너 죽…2명 다… 學…한국.니 부부 정말 재수없다. 조심하라…18세기”라고 적혀 있다. 메모 형식으로 작성된 이 문서는 한국말을 잘 구사하지만 쓰기에는 서툰 덩이 한자 간체와 욕설을 뒤섞어 쓴 것으로 보인다. 총영사관 직원들과 덩의 유착 정황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한 교민이 “요즘 상하이 총영사관의 H 영사와 부부라고 하면서 ‘비자를 내줄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니는 여자가 있다. 그 여인의 의지대로 총영사관에서 비자를 내준다고 한다.”면서 덩의 비위와 관련된 투서를 총영사관에 접수시켰다. 그러나 투서 내용에 대한 조사는 무시됐고 그 내용이 고스란히 덩에게 넘어가기까지 했다. 한 교민은 “지인이 덩과 마찰을 빚은 사람을 알아 도움을 줬다가 심한 욕설을 듣고, 재산상 손해를 본 적이 있다.”면서 “당시 너무 억울해 총영사관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영사들은 덩을 싸고돌았다.”고 증언했다. 상하이 주재 모 기업의 임원은 “덩은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대다수 영사들의 비리를 훤히 꿰고 있고, 심지어 이들의 금품 수수 내역까지 모두 알고 있다.”면서 “총영사관 직원들이나 교민들 중 그녀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탄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총영사관 관계자는 “김정기 전 총영사가 덩을 비호해 덩과 관련된 민원을 알아도 해결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자치구별 이색 학교 정책 3제] 성북구, 사고력 교실 운영

    성북구가 고려대와 손잡고 지역 초등학생을 위해 사고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강사진 전체가 석사와 박사이고, 영어강좌에는 원어민 선생님이 강의한다. 영어EQ와 논술사고력, 창의력 등 3개 분야에서 11개의 강좌가 개설되며, 모집인원은 각 강좌에 15명이다. 질 높은 강의에도 수강료는 5만원으로 저렴하다.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 복지급여수급자 가정의 학생들은 총정원의 20%(32명) 안팎으로 우선 선정되고 참가비도 전액 면제된다. 강좌는 오는 26일부터 5월 28일까지 10주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에 2시간씩 고려대 라이시움 내 평생교육원에서 진행된다. 수준과 학년, 관심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 영어EQ 교실은 노래와 역할놀이로 즐겁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챈트& 롤플레이’(Chant & Role Play)와 영화보기·글쓰기를 통해 영어실력을 높이는 ‘영화&글쓰기 클리닉’(Screen & Writing Clinic) 강좌로 짠다. 사전 테스트를 통해 기초반과 중급반으로 나뉜다. 논술사고력교실은 ▲일기는 내 친구(1∼2학년) ▲재미있는 책읽기와 글쓰기(3∼4학년) ▲생각하며 책읽기와 글쓰기(5∼6학년) 등 3개 강좌. 창의력교실은 ▲신나는 수학교실 ▲창의력쑥쑥 과학교실 프로그램이 마련되는데, 3∼4학년과 5∼6학년 반으로 나뉜다. 신청은 오는 15일 오후 11시까지 성북구청 홈페이지(www.seongbuk.go.kr) 모집/강좌란에서 받고, 전산추첨 결과는 17일 오전 11시에 발표한다. 교육지원담당관 920-3741.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람 아끼고 존중하는 게 최고 가치”

    고종주(63)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8일 부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정년퇴임을 한다. 이는 흔히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지 못하면 일찌감치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온 관례를 깬 것으로 상당히 드문 일이다. 고 판사의 이력도 그만큼 특이하다. 경남 남해 출신인 고 판사는 1974년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행정고시에 합격, 당시 문교부 산하 행정기관에서 5년 2개월간 근무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업무를 계속 맡게 되자 사법시험에 도전, 1980년 사시 22회로 합격해 28년 6개월간 부산과 마산, 대구, 울산 등에서 법관으로 근무했다.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후배 법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온 고 판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판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9년 2월 성전환자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처음으로 유죄를 인정했고, 그해 1월에는 ‘부부강간죄’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3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고 판사는 2004년 첫 시집 ‘우리 것이 아닌 사랑’을 발간했고, 2009년에는 두 번째 시집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를 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30년 가까운 법관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기억에 남는 판결과 소회, 합리적인 판결을 위한 제언 등을 담은 415쪽짜리 산문집 ‘재판의 법리와 현실’을 발간했다. 고 판사는 6일 “인생 60년 세월을 통해 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것이 인생사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이런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1) 글쓰기 ‘프리랜서’ 연암 박지원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1) 글쓰기 ‘프리랜서’ 연암 박지원

    ●두 개의 미스터리 하나 1792년 10월 19일 정조는 동지정사 박종악과 대사성 김방행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청나라에서 들어오던 명청소품 및 패관잡서에 대해 강경하게 수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리기 위해서다. 동시에 과거를 포함하여 사대부 계층의 글쓰기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실시된다. 타락한 문풍을 바로잡고 고문(古文)을 부흥시킨다는 명분 하에 정조와 노론계 문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이 사건이 바로 ‘문체반정’이다. 사건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정조는 느닷없이 이렇게 말한다.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 ‘열하일기’를 내 이미 익히 보았거늘 어찌 속이거나 감출 수 있겠느냐?” 열하일기가 세상에 나온 지 이미 10여년이 지났고, 당시 연암은 개성 근처 연암협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근데, 열하일기가 사건의 배후라고? 웬 뒷북? 아니면 국면전환용 포즈? 둘 “예로부터 훌륭한 글은 얻어보기 어려운 법/ 연암 시를 본 이 몇이나 될까?/ 우담바라 꽃이 피고 포청천이 웃을 때/ 그때가 바로 선생께서 시를 쓸 때라네”-연암 그룹의 일원인 박제가의 시다. 3000년에 한번 핀다는 꽃 우담바라. 살아서는 서릿발 같은 재판으로 유명하고 죽어선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포청천. 그가 웃는다고? 차라리 황하가 맑아지기를 바라는 게 나을 터. 그렇다! 연암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시가 사대부 교양의 척도였던, 하여 저 이름 없는 향촌의 선비들까지 수백, 수천 수를 남기던 그 시대에 연암은 고작 평생 50수 정도를 남겼을 뿐이다. 대체 왜? ●청년기 - 우울증과 탈주 연암 박지원. 1737년(영조 13년) 2월 5일 새벽. 서울 서소문 밖 야동에서 태어났다. 노론 일당독재 시절에 노론 벌열가문에서 태어났고, ‘붓으로 오악을 누르리라.’는 꿈의 예시까지 받았으니 일단 출생은 고귀했던 셈이다. 초상화로 보건대 거구에다 카리스마 또한 장난이 아니다. 명문가의 천재에게 주어진 코스란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뿐. 하지만 연암의 생애는 그 입구에서부터 꼬여버린다. 십대 후반 한창 과거공부에 매진할 즈음,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청년 연암은 저잣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분뇨장수, 건달, 이야기꾼 등 수많은 ‘마이너 그룹’과 접속한다. 이들에 대한 ‘톡톡 튀는’ 기록이 처녀작 ‘방경각외전’이다. 우울증과 ‘마이너리그’, 그리고 글쓰기. 이 일련의 체험 속에서 연암은 돌연 과거를 포기한다. 평생 권력의 외부에 남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또한 미스터리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탈주를 감행케 한 것일까? 흔히들 정쟁의 격화 때문이라 여기지만 과연 그럴지는 미지수다. 만약 그 때문이라면 이 청년의 기질상 오히려 현실참여 의지가 솟구쳐야 더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그는 격식과 관습에 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가 까다로운 격률이 싫다며 한시를 그토록 멀리했으니,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어디 있으랴. 말하자면 그는 ‘본 투 비 프리랜서’였던 것. 우울증은 이런 ‘원초적 본능’을 일깨워주기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 아니었을지. ●‘백탑청연’ - 18세기 소셜 네트워크 사대부 문인이 과거를 포기하면 남는 건 시간이다. 연암은 그 시간들을 사유와 글쓰기로 충만하게 채웠다. 더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을 ‘벗’들과 함께했다는 것.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 그의 평생의 철학 또한 타고난 기질에 속한다. 문중별, 당파별 강학이 일반적이었던 시절, 연암은 당파와 신분을 가뿐히 뛰어넘는 ‘우정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근거지는 다름 아닌 백탑(탑골 공원). 이덕무, 박제가, 정철조 등 다양한 벗들과 더불어 백탑 근처에 모여 살면서 밤마다 맑고 드높은 지성의 향연을 누렸다. 이름하여 백탑청연! 그들이 주고받은 지식의 스펙트럼은 실로 드넓다. ‘시서예화’는 기본이고, 천문지리에서 기술문명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인생과 우주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되었다. 그런 점에서 백탑청연은 18세기 지성사의 ‘소셜 네트워크’였던 셈. ‘청 문명으로부터 배우자!’는 북학의 이념이 탄생된 것도 거기였고, 소품문과 척독(편지글)을 통해 고문의 기반을 뒤흔드는 문체적 실험이 일어났던 것도 그 장에서였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정판이 바로 열하일기다. ●“살았노라, 그리고 열하일기를 썼노라!” 1780년, 연암의 나이 44세, 마침내 그토록 열망하던 중국여행의 기회가 다가왔다.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애초 목적지는 연경이었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는 무려 2300리. 때는 바야흐로 폭우에 무더위가 교차하는 한여름이다. 천신만고 끝에 연경에 도착했건만 황제는 연경에 있지 않았다. 동북부 변방의 피서지, 열하에 가 있었던 것. 그리고 한밤중 당장 열하로 들어오라는 황제의 명령이 도착한다. 이리하여 연암과 그의 일행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고북구 장성을 넘는다. 그것도 ‘무박나흘’의 살인적 여정으로. 이 지독한 고난이 그의 글쓰기 본능을 촉발했던 것일까. 이 여정에서 불후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5000년래 최고의 문장이라는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생사의 문턱을 넘으면서 마침내 도를 깨달았다는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코끼리를 통해 우주의 이치를 터득하는 ‘상기’(象記) 등등. 열하일기가 일으킨 파급력은 실로 뜨거웠다. 당장 태워버려야 한다는 극단적 ‘안티’에서 천고의 기이한 문장이라는 열렬한 찬사까지. 그래서인가. 열하일기는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공적으로 간행되지 못했다. 오직 필사본으로 떠돌면서 수많은 버전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호학군주였던 정조는 충분히 감지했으리라. 고문에서 소품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글쓰기가 성리학적 지반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그런 점에서 문체반정 때 열하일기를 배후로 지목한 것은 ‘뒷북’도, ‘쇼’도 아니었다. 열하일기 없이 18세기 지성사를 논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음을 왕의 입으로 직접 증언해준 것일 뿐이다. 연암은 묘비명의 대가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누이와 홍대용, 정철조에 대한 묘비명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에 해당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정작 연암 자신에 대한 묘비명은 없다. 이 또한 미스터리다. 안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 아무튼 지금이라도 누군가 그에 대한 묘비명을 쓴다면, 아마도 이 한 줄이면 족하리라. “살았노라, 그리고 열하일기를 썼노라!” ●연암 vs 다산 -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18세기는 별들의 시대였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선도한 정조의 시대이자 연암의 시대였고, 또한 다산의 시대였다. 이 화려한 ‘스타워스’에는 아주 놀라운 수수께끼가 하나 숨어 있다. 연암과 다산, 조선 후기 실학사에서 한쌍의 커플처럼 따라다니는 이 두 거성이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 둘 다 서울 사대문 안에 거주했을뿐더러 정조를 중심으로 늘 양편으로 분립했던 두 파벌(연암그룹/ 다산학파)의 대표주자였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연암의 절친들이 다산과도 깊은 교유를 했었는데도 말이다. 더 놀랍게도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둘은 전혀 상이한 궤적을 밟았다. 연암이 일찌감치 권력의 궤도로부터 이탈해갔다면, 다산은 정반대로 권력의 중심을 향해 달려갔다. 재야 남인 출신임에도 그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 정조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왕의 남자’였다. 그 엇갈림이 극단적으로 연출되었던 사건이 바로 문체반정이다. 보다시피 연암은 배후조종자로 찍힌 반면, 다산은 정조의 입장을 옹호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린다. “국내에 유행되는 것은 모두 모아 불사르고 북경에서 사들여 오는 자를 중벌로 다스리라.”는. 요컨대, 그 둘은 평행선이었다.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헤어지지도 않는다! 만나지도, 헤어지지도 않는 이 운명적 조우 속에서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던가. 어디 친구만 그런가. 적을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연암은 실로 인복을 타고난 인물이다. 평생을 벗들과의 교유 속에서 살았고, 사후엔 이토록 강력한 라이벌을 짝으로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지복은 그가 평생을 권력의 외부에서 글쓰기의 향연을 누렸기에 가능했던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미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주말 영화]

    ●싸움의 기술(OBS 일요일 밤 11시 20분) 우리 모두 배워야 할 싸움의 기술, 맞다보면 생각나는 싸움의 기술들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맞고 사는 게 일과이며 쉼 없이 구타를 유발시키는 소심한 ‘부실고딩’ 송병태(재희·오른쪽). 병태는 안 맞고 사는 평안한 삶을 꿈꾸며 온갖 책을 독파했으나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날 대명 독서설 특실 B호에 기거 중인 한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놀라운 어록들과 고수의 포스를 지닌 그분. 그의 이름은 오판수(백윤식·왼쪽). 15년 전, 전설적인 싸움실력으로 전국을 제패했던 고수 중의 고수. 모든 것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병태의 숨은 재능은 그의 흥미를 자극한다. 하지만 맞고만 살아온 자의 두려움을 깨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응용력 부족, 경험 부족 속에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싸움의 연속인 세상에서 그렇게 초절정 부실고딩 병태와 전설의 은둔고수 판수가 만났다. 그분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다. 과연 병태는 판수의 기술을 통해 진정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을까. ●명화극장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KBS1 토요일 밤 12시 35분) 25년 전 잊을 수 없는 살인사건과 말할 수 없는 사랑이 동시에 시작됐다. 벤야민 에스포지토는 25년 전 목격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강간살인 사건이 가슴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 기억의 편린을 쫓아 사건 당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자신의 상사이자 사랑했던 여인 이레네가 떠오르고, 기억 속 사건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을 예고하는데…. 1970년대 아르헨티나, 끔찍한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남편과 여검사, 검사보의 합심으로 범인은 잡혀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반정부 게릴라 소탕에 협력한다는 이유로 범인을 풀어주고,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 ●나바론 요새(EBS 토요일 밤 11시 00분)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2000명이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케로스섬에 고립된다. 독일군 최정예 부대는 영국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출전 준비를 끝내고,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공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케로스섬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나바론 섬에는 두 대의 거포가 버티고 있다. 최신 레이더 장비를 갖춘 이 거포는 어떤 전함도 거뜬히 폭파시키는 괴력을 자랑하며 나바론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공세를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거포를 폭파하고 고립된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작전을 세운다. 그리고 나바론 섬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기 위해 암벽 등반가 맬로리 대위와 폭파 전문가 밀러 하사 등 6인의 특공대를 급파한다.
  • “사람 사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재외동포 삶 담아”

    “사람 사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재외동포 삶 담아”

    평생 남북 분단의 비극을 그려온 소설가 이호철씨가 팔순을 맞아 소설집을 냈다.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글누림 펴냄)이다. 책은 팔십대에 접어드는 그가 재외동포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 인생을 돌아본 소회를 담았다. 1932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만 18세에 혈혈단신 월남, ‘탈향’ ‘나상’ ‘판문점’ ‘남녘사람 북녁사람’ 등을 발표하며 ‘분단 문학’의 대표 작가로 활동해 왔다. 데뷔작 ‘탈향’을 1955년 발표해 60년 가까이 전쟁과 분단문제에 천착한 그는 어느덧 한국 문단의 ‘최고참’ 작가가 됐지만 “늙을 틈이 없을 정도로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며 여전히 현역임을 과시하고 있다. 소설은 KBS의 ‘해외동포 체험수기’에 응모한 중국, 러시아 등 재외동포들의 수상작을 바탕으로 했다. 먼저 그들의 수기를 소개하고, 작가가 “이 글을 읽은 소감이 어떠신가?”라며 몇몇 사람들과 허물 없이 소감을 주고받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씨는 실제로 수상 수기를 읽고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로 다시 풀어냈다. 그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라며 “동포들의 수기를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식으로 구성했는데, 쓰면서도 재미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며 형식을 초월한 소설 쓰기에 대해 설명했다. 팔순을 맞은 소회에 대해서는 “가만 생각해 보니 36년 전에 감옥에 들어갔는데 이 나이가 되니 꼭 어제 같다.”며 “서정주, 김동리 선생의 팔순 기념행사에 간 기억이 나는데 내가 팔십이라니 세월이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문학의 본령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문학의 시대는 끝났다는 소리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문학이 사람을 끌지 못하고 내쫓는 꼴이 된 것은 일단 문학의 책임이죠. 박완서 소설처럼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몇명 없어요.”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출장안마 운영’ 세력 확장 조폭 일당 검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출장 안마를 운영하면서 영업권 확장을 위해 경쟁 업주를 협박하고 성매매 여성 등을 감금·폭행한 중앙동파 행동대장 한모(37)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행동대원 이모(35)씨 등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은 또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성매매를 한 정모(39.여)씨 등 9명과 성매매 전단을 제작한 인쇄업자 조모(51)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이씨 등 3명과 2007년 11월부터 영등포 등 서울 서남부권에서 출장 안마를 운영하며 조직원을 동원해 경쟁 업주를 협박하고 종업원을 폭행하는 등 폭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교도소에서 7년간 복역한 후 2007년 말 출소한 한씨는 조직 운영자금과 생활비 등을 마련하려고 출장안마 운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씨 등은 경쟁 업자의 영업을 방해해 3년 만에 영등포, 구로, 강서 지역의 출장안마 영업권을 사실상 장악했고 이 덕에 6억 5000만원 상당을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09년 6월부터는 경쟁업체 성매매 여성을 불러 112에 신고하는 수법을 쓰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폭’의 대가로는 한 씨 등은 일당 100만원 씩을 지급했다. 한씨 등은 또 전단을 돌리는 경쟁업체 종업원들을 붙잡아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갑옷에 싸인 뜨거운 가슴…절제·신중함이 브람스 매력”

    “갑옷에 싸인 뜨거운 가슴…절제·신중함이 브람스 매력”

    “브람스란 사람 자체가 표현을 막 폭발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뜨거운 가슴은 있지만 많은 갑옷을 껴입은 것처럼 절제하고 은근하면서 신중하게 표현하는 게 그의 매력인 것 같다.”(임헌정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10일 예술의전당서 첫 막 예술의전당이 지난해 시작한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The Great 3B Series)의 두 번째 주인공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다. 19세기 후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동시에 독일음악의 전통을 계승한 브람스야말로 지난해 베토벤(1770~1827)에 이어 또 한명의 ‘위대한 B’(Great B)로 손색 없을 터. 내년에 펼쳐질 ‘3B 시리즈’의 마지막 주자는 바흐다. 브람스의 교향곡과 협주곡 등 전곡 대장정을 이끌 지휘자는 1999년부터 5년간 말러교향곡 전곡을 연주해 ‘말러 신드롬’에 불을 지폈던 지휘자 임헌정(58·서울대 교수)이다. 그와 22년 동안 호흡을 맞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임 교수는 “단원들에게는 항상 영혼을 담아 살아 있는 음악을 연주하자고 강조한다.”면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음표가 아닌 브람스의 마음을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와 부천 필하모닉은 그동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1991)과 말러 교향곡(1999~2003), 베토벤 교향곡(2003), 슈만과 브람스 교향곡(2010) 등 끊임없이 전곡 연주에 도전했다. 음악단체로는 처음으로 ‘호암상’을 수상하며 국내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경선·송영훈… 화려한 협연 총 4회(3·5·9·11월)로 이뤄진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브람스’의 첫 막은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오른다. 프로그램은 ‘교향곡 제1번 C단조’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브람스가 22세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해 완성까지 무려 21년이 걸린 ‘교향곡 제1번’은 ‘베토벤의 열 번째 교향곡’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운명 교향곡’을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인지 베토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엄숙한 분위기나 깊이 있는 선율, 목가적인 분위기는 물론 4악장에서 모든 갈등이 해결돼 강물처럼 흐르는 느낌은 브람스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브람스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인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은 중후한 악상 속에 차분하고 독특한 로맨티시즘이 스며든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협연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은 1993년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와 199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등에서 연속 입상하면서 ‘제2의 정경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국내 최고의 첼리스트로 꼽히는 송영훈은 피아졸라의 곡을 모은 솔로 앨범 ‘탱고’를 발매하는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 예정된 네 차례 공연을 동일한 좌석의 등급으로 한번에 예매하면 20% 할인해 준다. 매회 2만~4만원. (02)580-1300.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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