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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棺)에 쓰인 나무, 가구 제작용으로 재판매…中서 논란

    ‘관’(棺)에 쓰인 나무, 가구 제작용으로 재판매…中서 논란

    장례식에 쓰기 위해 만들어졌던 관이 목공소에 재판매 돼 가구 제작용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중국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건네고 관을 수거하는 ‘화장(火葬)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노인이 집 안에 관을 보관해 둘 경우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믿는 풍습이 있다. 한국에서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수의를 미리 사서 보관하는 풍습과 유사하다. 중국 당국은 이미 몇 해 전부터 토지를 보호하는 동시에 매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화장을 권장해왔고, 이에 따라 관을 수거하고 돈으로 보상하는 화장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이에 따라 미리 준비해 둔 관을 쓸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목재소를 통해 관을 재판매하고, 이것이 가구제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현지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지난주 장쑤성(省) 난징시(市)의 한 지역 방송국 프로그램에 따르면 장쑤성 쑤첸시(市)의 일부 목재소는 주민들로부터 수거한 관을 부수어 쌓아놓은 뒤, 이를 다른 지역의 가구업체에 재판매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지의 한 목공업자는 기존의 관을 잘게 부수고 분리해 가구제작업체에 재판매하며, 이를 사는 가구제작업체는 자신들이 사는 것이 본래는 관에 쓰인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이 구입한 가구가 관으로 쓰인 나무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매우 불쾌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가운데, 사람들이 관을 내다팔게 하도록 만든 정부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근 중국 정부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들며 관뿐만 아니라 장례식 때 태우는 종이돈 등의 사용도 제한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헤이룽장성(省) 하얼빈시(市) 등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식에 쓰이는 종이돈과 관 등 장례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시장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당국은 “문명적이고 건강하며, 환경적이고 안전한 장례식 전통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러한 장례전통은 대대로 내려져 오는 신앙과 같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친척과 일가족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불법이 될 수 있나”라며 비난했다. 자신이 사망했을 때 쓸 관을 보관하고 있던 시민들도 관을 압수당하고, 그 관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며 분노와 반발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경기도, 작은 일자리 만들자 ‘노동일자리 대책본부’ 구성

    경기도, 작은 일자리 만들자 ‘노동일자리 대책본부’ 구성

    경기도 일자리 증가폭이 2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함에 따라 ‘새로운 경기노동일자리 대책본부’를 구성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경기도는 20일 이재명 지사가 긴급 소집한 일자리 대책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행정 1·2부지사와 평화부지사 등 3명이 공동본부장을 맡게 되는 대책본부는 일자리책임관, 더 좋은 일자리추진단, 공익적 일자리추진단, 평화미래 일자리추진단 등 4개 추진단을 두고, 해당 분야별로 일자리 추진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도는 대책본부 출범과 함께 시민순찰대와 체납관리단 같은 공공일자리와 버스종사자 확충 지원 등 공익적 민간 일자리 창출에도 힘쓰기로 했다. 도는 최근 추경예산안에 720억원의 일자리 관련 예산을 편성한 가운데 생활불편 해소와 방범 활동 등을 지원하는 50명 규모의 시민순찰대 5개를 시범 구성, 운영할 계획이다. 도는 이와 함께 폐업률을 줄이기 위해 소상공인 경영환경개선사업 등에 50억원을 투자하고, 연말까지 소상공인 교육과 컨설팅, 창업과 상권 활성화 등 소상공인 전담 지원기관인 ‘시장·상권진흥원’을 조기 설립하기로 했다. 또 이 지사가 추진 중인 지역화폐 도입 역시 차질 없이 추진하고, 구리·남양주 등 곳곳에 조성을 추진 중인 테크노밸리 관련 행정절차를 최대한 단축해 신규 일자리 창출을 앞당길 방침이다. 이밖에 2021년까지 도시재생뉴딜사업과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21만여 개의 신규 일자리도 만들 예정이다. 도는 이같은 일자리 정책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22일 도지사와 중소기업중앙회장 간 면담을 하고, 23일 시·군 부단체장 회의와 24일 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를 할 계획이다. 도가 이날 긴급 대책회의까지 하며 일자리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7월 고용동향 자료에 도내 일자리 증가가 6만5000 개에 그쳐, 2016년 4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최저 증가 폭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 이 지사는 “한꺼번에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다해서 쉽지 않다”며 “작은 영역을 세부적으로 나눠 일자리를 발굴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안희정도, 사법부도 유죄다”…분노한 여성들, 거리로 나서다

    “안희정도, 사법부도 유죄다”…분노한 여성들, 거리로 나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일을 비롯해 일상에서의 성폭력·성차별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시민들은 경찰과 검찰, 법원, 언론을 통틀어 국가가 성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지 않는 현실을 규탄했다. 3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모였고, 남성들도 더러 있었다. 집회는 원래 오는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가 지난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집회가 한 주 앞당겨졌다. 시민들의 손에는 ‘#MeToo, #WithYou’, ‘우리는 김지은을 지지합니다’, ‘안희정은 유죄’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조모(36)씨는 안 전 지사에 대한 법원 판결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조씨는 “판사가 가해자의 잘못을 외면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이번 사건을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았다”면서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냐고 물을 게 아니라 가해자에게 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냐고 따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장명진(37)씨는 “안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과 같은 상징적인 사건에 있어서 법원이 또다시 현실에 안 맞는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부소장은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해야 피해자로 인정하는 법원의 태도를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안 전 지사 사건의) 1심 재판부는 가해자(피고인) 측 증인들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단서 하나하나를 모두 ‘피해자가 원했다’는 증표로 읽었다”면서 “재판부는 우리나라에 새 법이 도입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했지만, 법원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일상, 직장 생활 등 일거수일투족을 문제 삼으며 ‘이건 피해자답지 않다’고 인식하는 한 어떤 법이 도입돼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서는 안 전 지사를 고소한 김지은씨가 쓴 편지가 낭독되기도 했다. 정혜선 변호사가 대독한 이 편지에서 김씨는 “지난 14일(안 전 지사 1심 재판 선고일) 이후 여러차레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살아내기가 너무나 힘겹습니다.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가 인정될 수 있다면 지금 죽어야 할까 생각도 수없이 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김씨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목소리엔 귀를 닫고, 가해자의 잘못은 묻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세 분 판사님, 제 목소리 들으셨나요. 당신들 질문에 답한 제 목소리를 들으셨나요. 재차, 3차 확인한 증거들 읽어 보셨나요. 확인하지 않으실 거면서 제게 왜 물으셨나요. 안희정에겐 물으셨나요. ‘왜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그렇게 여러차례 농락했느냐’고 물으셨나요. 검찰 출석 직후에 왜 자신의 휴대전화를 파기했냐고 안희정에게 물으셨냐요.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셨나요.” 김씨는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제발 함께 해주십시오. 계속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진실을 지켜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도 집회에 참여했다. 최영미 시인은 “김지은씨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진술을 번복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김씨의 폭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혔더니 재판이 시작되니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돌변했다. 두 번이나 진실을 번복한 사람은 안 전 지사”라고 말했다. 최영미 시인은 최근 고은 시인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연대 발언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은 ‘안희정은 유죄다, 사법부도 유죄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가해자 측 받아쓰기, 너희가 언론이냐’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이후 시민들은 행진에 나섰다. 광화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은 청와대 방향으로 함성을 질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해 광화문, 인사동, 종각역을 지나 다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돌아오는 행진은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시민들은 집회 주최 측의 선창을 따라하며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더 이상은 못참는다. 강간문화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계속 외쳤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놀라운 토요일’ 황치열 “팝송 한글로 적어 외워..받아쓰기 에이스”

    ‘놀라운 토요일’ 황치열 “팝송 한글로 적어 외워..받아쓰기 에이스”

    18일 방송되는 ‘놀라운 토요일’에는 가수 황치열이 게스트로 출연해 큰 활약을 펼친다. ‘놀라운 토요일’은 tvN의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인기 코너인 ‘도레미 마켓’에서 신동엽, 박나래, 혜리, 문세윤, 키, 김동현, 한해는 전국 시장의 핫한 음식을 걸고 노래의 특정 부분을 정확히 받아쓰는 미션을 수행한다. 이날 녹화에는 ‘대륙의 황태자’ 황치열이 게스트로 출연해 ‘놀토’ 멤버들과 함께 받아쓰기에 도전했다. 붐은 황치열을 두고 “오늘 에이스가 왔다. 팝송 외울 때도 영어로 안 쓰고 들리는 대로 쓴다고 한다”며 “영어를 한글로 쓰는 전문가”라고 소개해 멤버들을 기대에 부풀게 만든 것. 특히 이날 미션곡에는 영어 단어가 포함돼 있어 황치열은 기대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는 첫 미션곡을 들은 직후 옆에 앉은 신동엽의 답을 베끼는 모습이 걸려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이날 녹화 현장에서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한해의 고군분투가 펼쳐져 흥미진진함을 유발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온 한해는 이날 녹화 현장에서 “진짜 자신있다. 이제 저를 믿어달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 한해는 노래를 받아쓸 때뿐만 아니라 간식 타임에도 키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 멤버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인간 복사기’라 불리는 황치열의 개인기와 의외의 받아쓰기 실력, 그리고 한해의 에이스 탈환 여부는 내일(18일, 토) 방송하는 ‘놀라운 토요일’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한편 tvN 주말 버라이어티 ‘놀라운 토요일’은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송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남성들에게도 반바지와 양산을 허하라

    남성들에게도 반바지와 양산을 허하라

    연일 이어지는 폭염이 남성 직장인의 정형화된 복장까지 바꿀 기세다. 직장에서 반바지를 입게 해 달라는 남성의 목소리가 커지는가 하면,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양산을 쓰겠다는 남성도 등장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은행에서 근무하는 신모(28)씨는 흰색 긴 셔츠에 정장 바지,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출근한다. 고객을 상대한다는 이유로 은행에선 이런 ‘드레스 코드’가 관례화돼 있다. 신씨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정보기술(IT) 계열 기업 직원들이 부럽다”면서 “남성 은행원들에게 반바지 정도는 허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이모(34)씨는 “더운 여름에 통풍이 잘되는 ‘리넨’ 소재의 셔츠를 입고 다니지만 여전히 덥다”면서 “올해 여름은 며칠 남지 않았지만 내년이 벌써 두렵다”고 호소했다. 금요일만 자율복장이라는 직장인 이모(31)씨는 “내년부터는 매일 반바지를 입게 해달라”고 덧붙였다.지난 1일 수원시 공무원노동조합 익명 신문고에는 “너무 더워 반바지 입고 출근하고 싶어요. 그래도 되는 거죠?”라는 글이 올라와 많은 공무원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호응해 염태영 수원시장이 지난 3일 반바지를 입자 수원시청과 일부 동주민센터에의 일부 직원들도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풍경이 나타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대기업들과 사회적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반바지를 자유롭게 착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직원 이모(32)씨는 “지난해부터 남자 직원 대부분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다”면서 “일부 임원들도 반바지를 입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성동구 성수동의 한 사회적기업에 근무하는 권모(31)씨는 “아직 과거의 고리타분한 인식에 머물러 이 더운 날씨 속에서도 드레스 코드만 강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폭염 속에 남녀노소 구분없이 양산을 쓰자는 캠페인도 등장했다. 전북도청은 온열 질환자 발생을 줄이기 위해 ‘양산 쓰기 운동’을 했다. 남성 직장인 중에도 양산을 쓰겠다는 사람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직장인 서모(32)씨는 “햇볕을 그대로 쬐면 체감온도가 45도에 육박하지만 양산을 쓰면 30도 아래로 떨어진다”면서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어 양산이 필수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양산을 썼다는 황모(32)씨는 “남자가 양산을 쓰면 이상하게 바라볼까 봐 걱정했었는데, 한 번 쓰고 나니 왜 진작 쓰지 않았을까 후회가 될 정도”라며 ‘양산 예찬론’을 폈다. 오한진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양산을 쓰면 그늘이 생겨 체온을 떨어뜨리고, 직사광선을 가려 피부노화를 예방한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양산 쓰기 현상에 대해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남성들도 고정관념이나 규범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남의 눈을 점점 의식하지 않게 되는 경향과 무더위가 겹쳐서 반바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남성들이 나타났다”면서 “문화적 측면도 있지만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도 복장을 시원하게 입도록 해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남명-퇴계를 통해 보는 조선 선비의 아름다움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남명-퇴계를 통해 보는 조선 선비의 아름다움

    우리 옛시조보다 조선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문학작품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그들이 쓴 몇 줄의 평론문이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더 조선선비의 내면을 잘 비춰주기도 한다. 먼저, 유학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남긴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인물평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송시열은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거물이다. 우리나라 유학자 중 ‘자(子)’자가 붙은 유일한 인물로, 송자(宋子)라 불린다. 말하자면 성인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함께 당대의 유학을 영도한 두 거두 중 한 사람으로, 그야말로 조선 선비정신의 화신이라 할 만한 강직한 인물이다. 그는 나라의 정치가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상소문에서 왕의 모후 문정왕후와 명종에 대해 “대비는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국왕은 아직 어리니 돌아가신 왕의 한 고아일 뿐이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거리낌없이 쓰기도 했다. 임금이 그 문구에 진노했다지만, 그래도 조식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못한 것을 보면 조선의 위대함이 새삼 느껴진다. 일개 신민으로서 조식을 능가하는 강골(强骨)은 동서고금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같은 남명에 대해 한 세기 뒤의 후학 송시열이 쓴 인물평은 다음과 같다. “천길 절벽에 우뚝 서서 일월(日月)과 빛을 겨루는 기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품게 하여, 완악한 벼슬아치들을 청렴하게 하고 나약한 선비들을 떨쳐 일어나게 한다.” 이처럼 서릿발 같은 인물이었지만 남명이 남긴 시조 한 편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진경산수화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겨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지리산의 딴 이름. *두 갈래 물줄기 재미있는 것은 위의 시조와 똑같은 소재와 주제로 짝이 될 만한 시조 한 수를 퇴계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 닮음이 자못 신선하고 재미있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수다스러우랴. *고기잡이 남명 조식은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산림처사로 자처하며 살았다. 처사(處士)란 세속에 발을 들이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이 시조에서 보듯이 자연에 완전 귀의하여 처사로 살다가 동갑인 퇴계가 죽은 이듬해 표표히 떠났다. 앞으로는 큰 여울이 흐르고, 뒤로는 수려한 산을 등지고 있는 산청의 덕천서원이 남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다른 평론은 퇴계 이황(1501~1570)이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어부가’를 평한 것으로 이 또한 명문인데, 우선 농암이 살았던 곳의 빼어난 풍광부터 일별해보자. 안동 도산서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예안의 농암 고택은 운치 넘치는 고가로, 앞으로는 낙동강 상류인 분강(汾江)이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는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다. 이 강에서 고향 선후배간인 농암과 퇴계는 가끔 배를 띄우고 술잔을 물에 흘려보내면서 음풍농월의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두 사람은 나이차가 34년이나 되는데도 함께 즐김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계의 집에서 농암 종택은 강을 따라 두어 시간은 좋이 걸어야 하는 거리로, 참으로 아름다운 강변 길이다. 퇴계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이 길의 아름다운 풍광이 빚어낸 노래이다. 농암은 서른 둘에 벼슬길에 올라 일흔 넷이 되어서야 겨우 병을 핑계로 낙향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는 조선조 5백 년 역사에서 유일하게 은퇴식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그의 은퇴식에는 임금과 당시 정계, 학계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전별시들을 지어 그를 전송했다. 배 타러 한강으로 가는 길에는 장안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그를 전송했다. 평생을 벼슬살이했지만 배에 실은 짐이라고는 화분 몇 개와 책보따리 그리고 바둑판 한 개뿐이었다고 한다. 청춘에 집을 나서 백발에 귀향길에 오른 농암이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며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분강촌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어부사’의 한 편이 그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굽어는 천심녹수 돌아보니 만첩청산 십장 홍진*이 언매나 가렸는고 강호에 월백하거든* 더욱 무심하얘라 *열 길이나 되는 속세 먼지. *달이 밝거든 밤이 되어 강과 호수에 달빛마저 휘영청하면 마음은 무욕, 더없는 평화로움을 누리는 심경을 농암은 담담히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10여 년을 더 유유자적 자연 속을 노닐다가 떠났다. 참으로 복 받은 삶이라 하겠다. 이 농암이 남긴 연시조 ‘어부사’의 발문을 퇴계가 썼는데, 그 평론이 실로 멋스럽기가 한량없다. “부귀를 뜬구름에 비기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생각을 물외(物外)에 부쳐 낚시터를 노니는 선생의 강호지락(江湖之樂)은 가히 진의(眞意)를 얻었다.” 이보다 멋스러운 평론이 또 있을까. 역시 사람들이 멋스러우니 이런 멋스런 글도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선비들은 실로 아름다웠다. (위 시조들은 ‘우리 옛시조 여행(이광식 저)’에서 인용)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책꽂이]

    [책꽂이]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자서전 쓰기 열풍이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기록해 보는 일은 바람직하다. ‘지(知)의 거인’으로 불리는 저자는 여기에 ‘역사’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역사적 사건을 투영해 개인사를 살펴보란 이야기다. ‘자기 역사 연표’를 비롯해 철저한 취재와 분석법을 담은 글쓰기 방법도 큰 도움이 된다. 309쪽. 1만 7800원.읽거나 말거나(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봄날의책 펴냄)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서평집. 전방위적인 독서 편력을 자랑하는 그가 1967년부터 2002년까지 읽고 감상평을 쓴 책 138권을 다룬다. 춘향전과 삼국지 등도 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지성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는 순수한 ‘애호가’로서 면모가 잘 드러난다. 460쪽. 2만원.헌법의 현장에서(김선수 지음, 오월의봄 펴냄) 대법관 취임 전 변호사를 폐업해 화제가 됐던 김선수 대법관이 그동안 맡은 12개의 헌법재판 변론을 묶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등에 담긴 그의 고군분투기가 생생하다. 신임 대법관이 된 그가 이야기하는 헌법재판소의 한계와 개선 방향은 무엇일까. 392쪽. 1만 8800원.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이소영 지음, 모요사 펴냄)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고 하는데 그건 뭘 모르는 소리다. 화가들은 당대 최신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는 데 누구보다 앞선 ‘얼리어답터’였다. 금속과 암석, 심지어 벌레를 달걀과 기름에 섞어 물감으로 만들어 낸 괴짜들 덕분에 미술도 한 발 나아갔다. 304쪽. 1만 7500원.우리 괴물을 말해요(이유리·정예은 지음, 제철소 펴냄) 드라큘라, 토미에, 기생수, 블러드 차일드, 워킹데드. 만화책,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등장하는 괴물의 이름이다. 우리가 만들어 낸 괴물을 우리는 왜 두려워할까. 인간의 내면이자 시대의 내면이 이들에게 투영됐기 때문 아닐까. 292쪽. 1만 6000원.왜 그러세요, 다들~(전국 중고등학생 89명 지음, 창비교육 펴냄) ‘초췌하고 해쓱해질 때, 표정이 어둡고 지쳐 보일 때…약보다는 축구’. 역시나 어른의 생각과는 다르다.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제작한 1011종의 학급 문집에서 글 94편을 가려 엮었다. 청소년들의 꾸밈없는 생각과 진솔한 마음이 글에 드러난다. 212쪽. 8500원.
  • 미식가의 성지 이탈리아…현지인 휴양지 ‘마르케’에서 먹고 놀기

    미식가의 성지 이탈리아…현지인 휴양지 ‘마르케’에서 먹고 놀기

    伊 중북부 동쪽 아드리아해 위치 현지인들 휴식 위해 찾는 휴양지 예술·사색 좋지만 먹고 놀기가 기본 단순한 재료·조리법에도 놀라운 맛 입안이 즐거운 천국…행복이 녹아내렸다여행작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소설가들이 대부분 소설 쓰기를 좋아하지 않고 요리사들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같다. 회사원도 회사에 가길 싫어하질 않나? 솔직히 말하자면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여행작가지만 ‘깨달음을 얻는 곳은 푸른 하늘 아래지만 좋은 일은 집에서 생긴다’를 모토로 삼고 있다. 누가 등 떠밀면 마지못해 나서는 척하는 인간이 나란 인간이다. 하지만 그곳이 이탈리아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는 곳이 어딘지, 숙소가 어떤지 묻고 따지지 않는다. 일단 간다. 누군가 내게 “마르케에 좀 다녀와 주세요” 하고 요청했을 때 “거기가 어디죠?” 하고 시큰둥하게 물었다가 “이탈리아예요”라는 답을 듣고는 군말 없이 짐을 꾸렸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는 들어봤어도 마르케 하면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이탈리아 중북부 동해안, 그러니까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와 마주한 마르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쯤 된다. 주도는 안코나(Ancona)다. 페사로(Pesaro), 우르비노(Urbino), 페르모(Fermo), 아스콜리 피체노(Ascoli Piceno), 예시(Jesi), 세니갈리아(Senigallia) 등이 마르케의 주요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맛있는 음식 때문이 아닐까. 예술도 좋고 ‘인생의 의미’ ‘자아 찾기’도 좋지만, 올바른 여행이 되기 위해선 우선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한다. 여행의 기본은 먹고 노는 것이니까. 여행이 뭔가 의미 있는 행동이었던 건 항해시대였던 19세기까지였다.마르케에 도착해 처음 먹은 음식은 탈리아텔레①였는데, 이 음식은 한입 뜨자마자 역시 이탈리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탈리아텔레는 우리나라 칼국수처럼 납작한 면으로 만든 파스타의 한 종류다. 셰프가 탈리아텔레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 밀가루에 달걀 노른자를 넣는다. 100g당 달걀 하나. 그 후에는 그냥 열심히 반죽을 치대는 일이 전부다. 마르코라는 건장한 셰프는 굵은 팔뚝으로 아주 오랫동안 반죽을 치댔다. 한참이 지나 마르코는 반죽이 마음에 드는지 야구방망이만 한 밀대를 밀며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면을 뽑은 다음에는 새우와 조개 등으로 만든 육수를 붓고 볶으면 완성. 쫄깃한 면발이 해산물 육수, 올리브 오일 등과 어우러져 풍미가 보통이 아니다.우르비노에서 맛본 염소치즈를 올린 파스타②는 지금까지 맛본 모든 파스타를 무효로 만들 정도로 맛있었다. 13시간 동안 저온 조리한 송아지 스테이크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입에 들어가자마자 눈처럼 녹아내렸고 야생 사과로 만든 잼을 바른 치즈③와 나무화덕에서 막 구워낸 빵은 이탈리아 여행 내내 도시락으로 배달시켜 먹고 싶을 정도였다.아스콜라나 올리브④라는 음식도 있다. 올리브의 씨를 빼고 그 안에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가슴살, 채소, 토마토, 육두구 등을 버무린 소를 채운 뒤 얇은 튀김옷을 입혀 튀긴 것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병사들이 즐겨 먹은 음식인데, 짭조름한 맛과 고소한 기름맛이 어울려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예시에서 맛본 베르디키오 와인도 기억에 남는다. “베르디키오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재배했다는 청포도 품종이죠.” 검은 테 안경을 쓴 안드레아가 시음용 와인을 졸졸졸 따랐다. 와인잔에 코끝을 대니 상쾌하면서도 분명한 신맛을 가진 향이 파고들어 미간을 살짝 찡그리게 만들었다. “베르디키오는 숙성력이 탁월합니다. 빈티지가 좋기만 하면 10년은 너끈하게 묵힐 수 있죠. 잘 숙성된 베르디키오에서는 농익은 사과향이 난답니다.” 시음해 본 베르디키오는 아주 상큼하고 향기로웠다. 금방 빚어 내놓은 것 같았는데, 아몬드 향이 나는 것도 같았고 여름의 쌉싸름한 풀향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거장이 숨쉬는 도시…문화가 녹아 있었다●라파엘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우르비노’ 마르케의 주도는 안코나이지만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도시는 우르비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화가 라파엘로가 1483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우르비노 시내에는 14세기에 지어진 라파엘로 생가(Casa di Raffaello)가 남아 있는데, 중정을 품은 3층짜리 저택에는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가구들이 그대로 놓여 있고, 화구를 놓곤 했던 자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르비노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성기를 이룩한 도시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1998년 우르비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는데 아마도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우르비노의 전성기를 이룩한 주인공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다. 이탈리아 최고의 용병으로 활약하던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그 돈으로 르네상스 초기에 지어진 궁전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을 지었다. 이곳에선 라파엘로를 비롯해 ‘회화의 군주’로 불리는 티치아노의 작품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걸작 ‘세니갈리아의 성모’ 등 눈부신 ‘르네상스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작곡가 로시니에 헌정된 도시 ‘페사로’ 우르비노에서 자동차로 1시간 떨어진, 인구가 10만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 페사로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로시니가 태어난 곳이다. 1792년 페사로에서 태어난 그는 6살에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14살에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가 첼로와 피아노, 작곡을 체계적으로 배운 곳은 볼로냐 음악학교였는데 지루한 수업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그만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바그너를 기념하는 독일의 바이로이트, 모차르트를 기념하는 잘츠부르크와 함께 한 음악가에게 증정된 축제가 있는 도시가 바로 페사로입니다. 그만큼 로시니에 대한 페사로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죠.”181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극장인 로시니 극장(Teatro Rossini)의 음악 감독인 안토니오는 매년 8월 열리는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 기간에 전 세계 오페라 마니아들이 이곳 페사로로 몰려든다고 자랑했다. 시내 한켠에는 1882년 로시니의 유산으로 세운 로시니 음악학교(Conservatorio di Musica)도 있다. 학교를 기웃거리다 어느 피아노실을 엿보게 됐는데, 호기심 어린 낯선 여행자를 발견한 학생은 ‘세비야의 이발사’의 한 대목을 신나게 연주해 주기도 했다. 마르케 여행의 마지막은 아스콜리 피체노라는 도시였다. 로마보다 오래된 도시다. 아링고(Arringo) 광장 앞의 산 에미디오(San Emidio) 대성당에서 르네상스 화가 카를로 클리벨리의 그림을 보고 나와 노천 카페에 앉아 젤라토를 먹었다. 마르케의 환한 햇살 아래 앉아 달콤한 젤라토를 먹고 있자니 여행이란 어쩔 수 없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거창한 명분이나 위대한 성취만을 추구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역시 이탈리아 여행은 우리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준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 여행가방 알리탈리아항공의 직항편을 이용해 로마까지 간 다음, 안코나행 국내선으로 갈아탄다. 로마~안코나 구간의 비행시간은 약 1시간 10분. 안코나 공항에서 약 25분 거리의 산 피에트로(San Pietro)에 호텔 몬테코네로(hotelmonteconero.it)가 자리한다. 12세기 수도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호텔로 재단장한 것으로, 고풍스러운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발 550m의 산자락에 자리한 까닭에 조용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장점이다. 아드리아 해의 멋진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페르모(Fermo)에는 로마시대의 지하 물탱크(Le Cisterne Romane)가 있다. 모두 15개의 홀로 이루어져 있는데 무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질 유지를 위해 기온이 1년 내내 14℃로 유지된다고 한다. 도시 아래 강에서 끌어올린 물을 정화하는 데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 “널 괴물로 만든 건 나야”..‘아는 와이프’ 지성의 각성

    “널 괴물로 만든 건 나야”..‘아는 와이프’ 지성의 각성

    ‘아는 와이프’ 지성이 한지민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 16일 방송된 tvN ‘아는 와이프’에서는 서우진(한지민 분)에게 관심을 보이는 윤종후(장승조 분)에게 신경이 쓰이는 차주혁(지성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윤종후와 서우진은 회사 연수를 떠났고 차주혁은 아내 이혜원(강한나 분), 장인, 장모와 함께 골프 여행을 갔다. 차주혁은 가족 모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서우진과 윤종후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결국 야릇한 상상까지 한 차주혁은 미친 듯이 차를 몰고 연수원으로 갔고 아무일 없는 두 사람을 보며 안심했다. 카페 테이블에 엎드려 잠든 서우진을 보며 차주혁은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이 ‘괴물’이라고 말했던 와이프 서우진. 그러나 지금의 서우진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차주혁은 깨달았다. “네가 괴물이 된 게 아니라 내가 너를 괴물로 만든 거였어” 그는 서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후 두 사람은 회사에서 어색하게 마주쳤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서우진은 결국 “제가 확인할 게 있다”면서 차주혁의 손을 잡고 자신의 머리 위에 갖다 댔다. 그때 차우진의 아내 이혜원이 등장하며 6회는 막을 내렸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애니멀구조대] 카메라 뒤서 죽어가는 동물…방송 소품 닭 이야기

    [애니멀구조대] 카메라 뒤서 죽어가는 동물…방송 소품 닭 이야기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여운 동물들. 우리는 화면에서 동물들을 보는 일에 익숙하다. 그런데 그 많은 동물들은 카메라가 꺼지거나 촬영이 끝나면 전부 어떻게 될까? 카메라 뒤에는 무관심 속에 학대 받고 죽어가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 그리고 용감하게 그 담을 넘어 기적처럼 우리에게 온 닭 한마리가 있다. ‘사탕이’ 이야기다. 나는 식량이 아니라고, 하나의 온전한 삶을 사는 소중한 생명이라고 말해주는 사탕이의 일기를 전한다. 동물은 방송 소품이 아니다 5월 말, 식재료가 생산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식량의 소중함’을 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방송에서 직접 병아리를 부화시켜 닭볶음탕으로 만들겠다는 tvN의 새로운 예능 ‘식량 일기: 닭볶음탕 편’이 방영을 시작했다. 이런 충격적인 내용에 동물권 단체와 활동가들은 즉각 반발했고, 연대체를 꾸려 반대 행동을 조직했다. 제작진은 촬영장에서 무려 47마리의 병아리를 부화시켰다. 식량의 소중함을 굳이 방송에서 알을 부화시키고 죽여야 알 수 있는 걸까? 방송 구성을 위해 수반될 것이 뻔한 불필요하고도 불가피한 동물학대. 이는 동물들의 삶과 목숨을 갈아 흥밋거리로 만들어 예능에 녹여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식량일기 촬영 세트장을 수차례 방문해 모니터링했다. 촬영장의 환경은 열악했다. 폭염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랐던 순간은 15마리의 닭이 사라진 때였다. 벌써 도축장으로 보내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사라진 육계들 확인한 결과 사라진 닭은 육계들이었다. 공장식 축산에 쓰이는 종인 육계는 고기로 쓰기 위해 계량된 종이기 때문에 몸이 빠르게 커져 다리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걷는 것조차 힘들어 몸무게 하중을 못 이겨 다리가 부러지고, 각종 심혈관계 질환에 노출되곤 한다. 반대 행동은 ‘육계의 빠른 성장 속도’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스럽게 살 닭들의 현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육계를 12마리나 부화시킨 제작진들을 강력 비판했다. 무책임하게 부화시킨 육계가 다른 종보다 몸집이 커져 문제를 일으키자, 제작진들은 육계 12마리만 골라 박영준 농부의 닭농장에 처분해버렸으며, 활동가들이 육계의 행방에 대해 물을 때마다 “잡아 먹힐 걱정 없는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의 대답으로 일관했다. 반대 행동은 직접 박영준 농부를 찾아가, 데려간 육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육계들은 사료를 너무 많이 먹기 때문에 다 잡아먹었고, 지금은 4마리 정도 남아 있으며, 닭들은 손으로 직접 목을 부러뜨려 도살해 먹는다”고 말했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동원된 동물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져야 마땅할 제작진들은 박영준 농부가 데려간 육계들을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카메라 뒤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지난 8일, 반대 행동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항의로 식량일기는 닭들을 도축장에 보내지 않고 ‘닭 없는 닭볶음탕’을 먹으며 마지막 방송을 방영했다. 반대행동은 시작부터 수차례 “보호소를 준비해 촬영이 끝난 닭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줄 수 있으니 닭들을 우리에게 보내라” 요구해 왔으나 제작진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제작진들은 살아 남은 닭들 중 14마리를 또 다시 육계를 잡아 먹었던 박영준 농부에게 선물로 보내는 방식으로 처리했으며, 나머지 사라진 닭들은 그 위치를 아무리 물어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기적처럼 농장을 탈출한 사탕이 포기하지 않고 박영준 농부를 만나기 위해 농장을 찾아간 첫날, 우리는 우연히 농장을 탈출한 작은 닭 한 마리를 발견했다. 급하게 먼저 구조해 임시보호자에게 안전하게 보낸 뒤 솜사탕처럼 하얗고 작은 그 닭에게 사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집에 온 첫날부터 품에 안겨와 새근새근 잠들 정도로 적응을 잘 해주었던 사탕이는, 잘 걷다가도 종종 힘든지 주저 앉곤 했다. 병원에 가 확인해보니 사탕이는 육계 종이었다. 탈출한 농장의 특성과 사탕이의 나이로 봤을 때 사탕이는 식량 일기 제작진들이 처분했던 육계 중 아직 죽지 않았던 4마리 중 한 마리임을 알 수 있었다. 반대 행동이 농장을 찾아간 그 때 기적처럼 농장을 탈출해준 사탕이는 그렇게 식량 일기가 부화시킨 47마리 병아리 중 유일하게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머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작진들은 반대 행동에서 구조하려던 박영준 농장에 다시 찾아와 닭들을 전부 알 수 없는 곳에 보냈다. 이 참혹한 현실이 식량 딱지가 붙은 동물들의 진짜 일기일 것이다. 생명을 방송에 부적절하게 동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은 갖지 않는 낮은 윤리의식이 방송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다.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생명을 소품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시청자의 예리한 시선이 필요하다. 앞으로 식량일기와 같은 기획이 다시는 방송계에 움틀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지영 동물권 운동 단체 MOVE move_foranimal@daum.net  
  • 더 노련해진 발차기 리우의 아픔은 없다

    더 노련해진 발차기 리우의 아픔은 없다

    리우 충격패 이후 각종 대회 석권 전략 노출·견제 1순위…방심 금물 “다른 선수나 승부에 집착 않고 내 장점 발휘하면 金 따라올 것”“예전보다 노련해졌다고 자부합니다.” 지난 8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태권도 남자 58㎏급의 김태훈(24)에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때와 달라진 것이 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당시 김태훈은 첫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깡마른 체구와 달리 강력한 발차기를 뽐내며 결국 54㎏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겨루기 세부 종목이 줄어듦에 따라 체급을 올려 다시 한번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김태훈은 “인천 대회 때도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나이가 어렸고 경기 운영이 미숙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성숙해졌고 체급을 올리면서 전체적으로 파워도 많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이나 태국, 중국 선수들과 금메달 경쟁을 할 것 같다”며 “그들을 신경 쓰기보다는 나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에 집중해 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훈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당시 세계선수권(2013년·2015년)과 2014 아시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상태라 올림픽에서만 정상에 오르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것이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첫 경기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좌절할 수도 있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2017 세계선수권 우승, 2017 월드태권도 그랑프리 파이널 1위, 2018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꿰차며 충격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김태훈은 “리우 올림픽에서는 성적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커서 오히려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못 보여줬다. 너무 아쉬웠다”며 “올림픽 이후에 크게 성장한 것 같다. 올림픽을 경험해 보니 다른 경기 때는 별달리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감이 많이 붙고 여유도 생겼다. 앞으로 점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근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한 김태훈은 다른 선수들의 견제 1순위다. 전략도 많이 노출돼 자칫 어려운 경기를 펼칠 수도 있다. 김태훈은 “이제는 다른 선수들이 나를 잘 파악하고 대회에 나온다. 내가 체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방어적으로 나서다 마지막에 반전을 노리는 전략을 쓰더라”며 “초반에 점수가 나 줘야 여유롭게 경기를 펼치는데 그렇지 않으면서 발차기만 많이 하다 보니 체력이 떨어질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를 효과적으로 압박해 공격을 유도해는 전략을 쓰려고 한다”며 “승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끊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수행하면 금메달이 따라오지 않을까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매년 25㎝씩 가라앉는 도시는? 아시안게임 여는 자카르타!

    매년 25㎝씩 가라앉는 도시는? 아시안게임 여는 자카르타!

    한 해에 무려 25㎝씩이나 지반이 내려앉는 지역을 끼고 있는 무시무시한 도시는? 오는 18일 제18회 하계아시안게임의 막을 올리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다. 1000만명이 모여 사는 이 도시는 해마다 산불로 인한 연무, 극심한 공기 오염, 하수구 같은 수질로 악명 높은데 앞으로 32년쯤 뒤에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것이란 끔찍한 경고까지 나와 있다. 원래 늪지에 건설된 이 도시는 자바해가 끊임없이 밀려와 뭍을 갉아먹고 13개의 강물이 흘러 홍수가 일상 다반사가 됐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거대한 도시가 차츰 땅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라고 영국 BBC가 12일(현지시간) 전했다. 반둥공과대학에서 지난 20년 동안 자카르타의 지반 침식을 연구한 헤리 안드레아스는 “자카르타가 수면 아래 잠길 가능성은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며 “우리의 예측 모델에 따르면 2050년이면 북자카르타의 95%가 물 아래 잠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전조가 시작됐다. 북자카르타는 10년 동안 2.5m가 가라앉았다. 이는 해안을 낀 전 세계 대도시의 평균 침하 폭의 곱절이 넘는다. 자카르타의 연간 침하 폭은 1~15㎝이며 이미 시의 절반 가까이가 해발고도 아래 위치해 있다.특히 북자카르타가 심각한데 무아라 바루 지구에는 통째로 폐가가 된 건물이 있는데 어업회사가 소유했다가 포기했는데 1층 베란다 빼대만 남아 있다. 1층 바닥에는 물이 잔뜩 고여 있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의 노천 생선시장 건물 중에도 금간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건물이 적지 않다. 중국계 자본이 뛰어들어 이곳을 고급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는 노력도 한창이다. 자카르타의 다른 지역도 천천히 진행될 뿐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자카르타의 지반은 매년 15㎝씩 가라앉고, 동자카르타는 10㎝, 자카르타 정중앙은 2㎝, 남자카르타는 1㎝ 가라앉고 있다. 세계의 바다를 낀 대도시는 어디나 예외없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이라는 위험에 맞닥뜨리고 있지만 자카르타는 그 속도를 훨씬 뛰어넘어 전문가들도 놀라게 한다. 그런데도 자카르타 시민들은 날마다 마주하는 일상이라 여겨 별달리 놀라지도 않고 대책 마련의 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는 것 때문에 또한 번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든다.원인은 지하수를 과다하게 뽑아 쓰기 때문으로 모아진다. 먹는 물이나 씻는 물 등등으로 무분별하게 관정을 파 쓰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역에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아 모두들 각자 관정을 파 지하수를 쓰고 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지하수가 비워지면 지반이 내려앉는 식이다. 단독주택 소유자건 대형 쇼핑몰 주인이건 마음대로 관정을 파게 하는 느슨한 규제도 한몫 한다. 당국은 자카르타만 바깥 바다 32㎞에 걸쳐 17개의 인공섬들을 만들고 연안에 담을 세워 도시를 구하는 프로젝트에 400억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네덜란드와 한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여 인공 산호를 만들어 바닷물 높이를 낮추고 강물의 범람을 막는 계획을 돕고 있다. 이렇게 하면 비가 올 때 문제가 됐던 범람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환경단체 등은 지난해 보고서를 내 인공섬 계획이 지반 침하를 막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물연구소 델타레스의 얀 얍 브링크먼은 “오직 한 방법 밖에 없으며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며 “모든 지하수 개발을 중단시키고 빗물이나 강물, 인공 저수지에서 가져오는 수돗물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아니에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는 덜 극적인 방법에 기대고 있다. 법적으로 허용된 양만큼만 지하수를 퍼올리게 하고 이른바 ‘배수구’라 불리는 방법을 해보자는 것이다. 구멍을 뚫을 때 그 구멍을 통해 지상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 수 있게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도쿄가 50년 전에 시도했던 이 방법은 너무 비싸게 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에 지하수 개발을 전면 금지했고 기업들은 쓰는 만큼 관정 비용을 대게 했다. 그 결과 상당히 지반 침하에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자카르타 주민들이다. 그들 대다수가 그저 운명처럼 지반 침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소피아 포르투나는 “여기 사는 건 위험한데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宋 세력·金 확장·李 소통…약점 극복에 당권 달렸다

    宋 세력·金 확장·李 소통…약점 극복에 당권 달렸다

    이해찬, 송영길·김진표에 앞서 ‘1강 2중’ 최대 표밭 서울·경기·인천 대회가 관건송영길 후보의 ‘세력’, 김진표 후보의 ‘확장성’, 이해찬 후보의 ‘불통’.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8·25 전당대회가 12일로 반환점을 돌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해찬 후보가 송영길·김진표(기호순) 후보를 앞서며 1강 2중의 구도가 짜였지만 최대 표밭인 서울·경기·인천 지역 대의원대회가 남아 있어 어느 후보가 약점을 최대한 극복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판세가 뒤집힐 수 있다. 송 후보의 약점은 ‘세력’으로 꼽힌다. 송 후보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정인이 뒤에서 밀어주는 두 후보와 달리 세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문(친문재인) 중심 그룹에 속하는 김·이 후보와 달리 송 후보는 이보다 먼 ‘범친문’이라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송 후보는 유일한 호남 출신 후보라는 점을 내세워 당의 지지 기반인 호남을 공략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송 후보는 연일 소통을 강조하며 이 후보의 불통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진을 대상으로 경청회를 여는 등 당심을 공략했다. 김 후보의 약점은 ‘확장성’으로 분석된다. 전당대회 레이스 초반 조폭과의 유착 의혹을 받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탈당을 요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지만 반대로 이 지사의 지지자는 등을 돌렸다. 김 후보는 문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전해철 의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확장성을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군림하지 않는 민주적 소통의 리더십을 갖고 당 혁신의 방향과 실천 의지가 명확하며,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정책 등을 실현해 국정 성공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당 대표가 선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통화에서 “이런 리더십을 가진 후보는 김 후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 또 권리당원에게 영향력이 큰 최재성 의원이 16일쯤 지지 후보를 밝힐 계획으로 김 후보가 최 의원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 후보는 최대 약점인 ‘불통’ 이미지를 벗는 게 가장 큰 과제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불통 이미지에 대해 “진지하게 정책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게 소통이지 밥 같이 먹고 악수 잘하는 건 재래식 소통”이라고 반박했다. 또 딱딱한 이미지를 의식한 듯 이날 경북에서 연설 끝에 “여러분, 한 표 주이소”라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기도 했다. 이 후보는 온라인 권리당원과의 소통에 신경쓰고 있다. 최근 의원실 막내 비서로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과외를 받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던 이 후보는 13일 두 번째 과외를 받는 모습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할 계획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김희중 “이팔성, MB 가족뿐 아니라 정권 실세들에게도 인사청탁”

    김희중 “이팔성, MB 가족뿐 아니라 정권 실세들에게도 인사청탁”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족뿐만 아니라 당대 정권 실세들에게도 인사청탁을 했다는 진술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 심리로 10일 열린 이 전 대통령의 속행공판에서 검찰은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김 전 실장은 15년 동안 이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인물이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팔성이 저에게 연락해서 증권거래소 이사장이나 산업은행장에 임명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얘기했는데, 저 외에도 소위 실세라는 사람들에게 본인 거취에 대해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실장은 ‘실세’ 인물들로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한나라당 이춘식 의원, 원세훈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가리켰다. 김 전 실장은 “이 사람들이 모두 서울시 인맥이어서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였던 이팔성과 다들 아는 사이”라고 진술했다. 이들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얘기는 이 전 회장이 직접 자신에게 말해줬다고 김 전 실장은 진술했다. 이 전 회장은 증권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원했지만 당시 청와대에서 반대 의견이 있어 무산됐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증권거래소 노동조합이 강성이라 이팔성을 이사장으로 임명하면 서울시 인맥이란 이유로 노조의 반대가 심할 것이란 얘기가 청와대 경제 파트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청와대 내에서는 이 전 회장을 증권거래소 이사장뿐 아니라 산업은행장이나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임명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는 게 김 전 실장의 진술이다. 김 전 실장은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었고, 역량에 대해서도 금융지주 회장감은 아니라는 비판적인 얘기가 청와대 내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청와대 내의 이런 비판적인 얘기를 이 전 대통령도 보고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재판에서는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이 낱낱이 공개됐다. 공개된 비망록 일부 내용을 보면, 이 전 회장은 2008년 3월 28일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면서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비망록에 기록했다. 같은 달 23일에도 “이명박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건 왜일까”라고 쓰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 젓가락 호로록~ 허기진 마음 채웠다

    한 젓가락 호로록~ 허기진 마음 채웠다

    국수는 서민들의 오랜 친구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 국수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서로 소통했다. 이상국 시인은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고 노래했다. 지역에 가면 그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친근한 국수를 만날 수 있다. 사람 냄새 물씬 나고 옛 향기가 담겨 있는 국수를 먹다 보면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혹자는 말했다. 국수는 ‘캔버스처럼 하얀 면 위에 지역별 식문화라는 화가가 그려 나간 작품’이라고.①진한 팥국물 침샘 폭발 ‘팥칼국수’ 팥칼국수는 진한 팥국물과 졸깃한 면발이 일품인 전라도의 별미다. 곱게 거른 팥물을 끓이다가 밀가루로 반죽한 칼국수를 넣어 익으면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칼국수 대신 국수나 수제비를 이용하기도 한다. ‘맛의 고장’ 전북 전주에서는 팥칼국수집이 사계절 인기다. 물리지 않는 팥의 단맛과 식감 좋은 칼국수가 어우러져 식욕을 돋운다. 국산 팥을 사용하기 때문에 풍미가 뛰어나고 뒷맛이 깔끔하다. 쌀로 만든 새알심과 달리 식혀 먹어도 면이 붇지 않아 간식으로도 좋다. 팥은 1차로 고농도 소금물에 삶는다. 1차로 삶은 물은 버리고 찬물에 깨끗이 헹궈 짠맛을 없앤다. 2차로 삶을 때는 센불을 이용해야 팥이 부드럽다. 팥물을 내는 방식은 두 가지다. 예전에는 잘 익은 팥을 채에 넣고 갈아 팥물을 내렸다. 최근에는 껍질까지 모두 믹서에 넣고 갈아 쓰기 때문에 색깔이 더 곱고 영양가도 풍부하다.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엽산, 인, 칼륨 등이 많이 함유돼 있다. 칼국수는 졸깃한 맛이 나도록 반죽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칼로 썬 면을 바로 넣지 않고 다시 한번 치대어야 엉겨 붙지 않고 식감이 살아난다. 시원한 동침이를 곁들이면 개운함과 든든함을 만끽할 수 있다.②사골·닭 육수에 전분으로 감칠맛 더한 ‘밀면’ 사골 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전분이 함유된 면발에다 갖은 고명을 얹어 먹는 음식으로 부산의 대표적 향토 음식중 하나다. 밀면의 유래는 6·25전쟁 때 북한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고향에서 즐겨먹던 냉면을 구호물품인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던 데서 유래했다. 실향민인 고 이영순 할머니가 1952년 남구 우암동에 문을 연 ‘내호냉면’이 부산 밀면의 원조로 전해지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마음이 만들어 낸 음식인 셈이다. 전분이 함유돼 일반 국수보다 쫄깃한 맛이 감칠맛을 더해 준다. 육수는 돼지나 소의 사골, 혹은 소고기의 양지나 사태 부위, 닭 뼈 등을 넣어 푹 고아 만든다. 밀가루가 주재료인 밀면의 특성상 소화가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감초, 당귀, 계피 등의 한약 재료를 첨가하기도 한다. 부산시는 2009년 밀면을 지역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선정했다.물밀면과 비빔밀면, 온밀면이 있는데 여름철에는 찬 육수의 물밀면과 비빔밀면을 즐기고, 겨울철에는 따뜻하면서도 얼큰한 온밀면을 주로 먹는다. 물밀면과 비빔밀면에는 고추장 양념장을 넣는 것에 비해 온밀면에는 고추장 양념 대신 잘 익은 김치를 고명으로 올려 간을 맞춘다.③멸치 육수에 애호박·배추 곁들인 ‘누른국수’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국수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그만큼 대구사람들의 국수 사랑은 유별나다, 누른국수는 동인동찜갈비, 납작만두, 막창구이 등과 함께 대구 10미(味) 중 하나다. 밀가루에 콩가루, 물, 소금을 넣어 반죽한 뒤 얇게 밀어 가늘게 채썬다. 끓는 물에 내장을 제거한 멸치를 넣어 육수를 우려낸 뒤 채썬 애호박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배추를 넣는다. 여기에 김가루나 지단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이렇게 하면 누른국수 한 그릇이 만들어진다. 누른국수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에 영양까지 보탰다. 대구에는 유명한 누른국수집이 많다. 중구 노보텔 뒤는 한때 누른국수골목으로 유명했다. 그곳에서 ‘암뽕에 소주 한 병 바람’이 일어났다고 한다. 서문시장에는 국수가게 300여개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가게마다 누른국수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소개된 ‘동곡원조할매 손칼국수’는 반죽에 계란물을 넣어 면에 고소한 맛과 쫄깃함을 더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중구 삼덕동의 대백칼국수, 중구 서성로의 금와식당, 달서구 송현동의 참한손칼국수, 중구 종로2가의 다전칼국수 등도 누른국수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④쫄깃쫄깃 탄력 있는 메밀국수 ‘콧등치기국수’ 쫄깃쫄깃 탄력이 있어 ‘후루룩~’ 하고 메밀국수를 먹을 때마다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콧등치기국수다. 강원도 정선의 대표 토속음식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메밀가루를 즉석에서 빡빡하게 반죽한 뒤 투박한 부엌칼로 숭덩숭덩 썰어 삶아 내 면발이 굵고 탱글거린다. 이런 메밀칼국수에 삶은 애호박과 갖은 양념 간장을 올린 뒤 냉육수를 부어 한입 베어 먹으면 면발 끝이 콧등을 툭 치며 웃음과 재미를 더한다. 요즘에는 냉육수보다 뜨겁게 삶아 한 사발씩 내는 음식점이 더 많아졌다. 콧등치기국수는 일반 칼국수나 메밀국수보다 굵고 납작한 면발이 특징이어서 일반 국수보다 씹는 식감도 좋다. 콧등치기국수를 더 재미있게 먹으려면 그릇에 코를 박고 먹어야 하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한다. 코를 박고 먹다 보면 면발이 콧등을 쳐 정신이 번쩍 든다는 사람도 있다. 척박한 산촌에서 화전으로 밭을 일구어 메밀을 뿌려 배를 불리던 사람들이 음식에도 해학을 넣어 맛과 재미를 더했다. 콧등치기국수와 궁합이 맞는 김치는 갓김치가 제격이다. 국수에 고명으로 얹어진 갓김치는 남도에서 나는 갓이 아니라 정선 지역에서 나는 키 작은 갓이다. 갓김치가 없으면 메밀국수 맛도 살아나지 않는다.⑤민물고기 푹 삶아 양념장 풀어낸 ‘생선국수’ 대청호와 금강 덕분에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한 충북 옥천에 가면 생선국수를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매운탕 국물에 국수를 넣어 허겁지겁 먹던 그 맛이 생각난다면 강력 추천한다.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먼저 민물고기를 뼈까지 뭉개질 정도로 10시간 가까이 푹 삶아 육수를 만든다.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체에 걸러 가시를 골라낸 뒤 양념 고추장을 풀어 간을 하고 국수사리를 넣어 삶는다. 마지막으로 파, 애호박, 깻잎, 미나리, 풋고추 등을 썰어 넣어 한 번 더 끓이면 완성이다. 생선을 뼈째 푹 우려낸 국물에 국수사리를 넣어 구수하고 담백하다. 단백질·칼슘·지방·비타민이 풍부해 보양식으로도 좋다, 얼큰하고 진한 육수 때문에 해장국 대용으로도 좋다. 생선국수는 보청천이 휘감아도는 청산면에서 시작됐다. 주민들은 모내기가 끝나면 보청천으로 천렵을 나갔다,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었는데 1960년대 면을 넣어 먹은 것이 시초가 됐다. 청산면에만 9곳의 전문 식당이 성업 중이다. 청산면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생선국수 축제를 열고 있다. 한 그릇 가격은 6000원이다.⑥구룡포 명물 해물 칼국수 ‘모리국수’ 모리국수는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의 명물 해물 칼국수다. 주재료는 ‘미역추’나 ‘장치’, ‘바다메기’라고도 일컬어지는 장갱이 혹은 아귀다. 사철 잡히는 장갱이는 장어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을 풀고 장갱이나 아귀를 푹 곤 뒤 기호에 따라 홍합, 새우나 콩나물, 파 등을 첨가한다. 여기에 두툼한 국수를 넣어 가열하면 모리국수가 완성된다. 오래 끓이면 생선살이 으깨질 정도로 부드러워져 깊은 맛이 더해진다. 매우면서도 진한 풍미가 독특하다.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다지 비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국수를 건져 먹고 나서는 빡빡한 국물을 들이켠다. 면이 불어 버리면 흐물흐물해져서 식감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모리국수는 1970년대 초반 포항에 공업 단지가 막 들어서던 시절 뱃사람과 서민들의 손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을 ‘모디’(모아의 사투리) 넣고 한 사람씩 따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냄비째로 ‘모디가 먹는다’고 모디국수로 불리다가 모리국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음식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도 모린다”고 말한 게 입으로 전파되면서 모리국수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정선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옥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일본에서 무역업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러일전쟁이었다. 고베에서 안정적 생활을 하던 베델은 돌연 영국 일간지의 특별통신원이 돼 한국에 왔다. 그가 훗날 항일 언론인으로 죽어가던 조선을 위해 싸우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베델이 잠시 사업을 접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던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았다. 2월 8일 일본 함대가 중국 랴오닝성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베델은 이때까지도 일본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당시 전쟁은 언론사들의 최고 인기 아이템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월드컵이나 미국 대선처럼 세계인이 큰 관심을 갖는 뉴스거리였다. 유명한 종군 기자는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종군기자로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작품을 썼다.러일전쟁을 전후해 ‘로이터’를 비롯한 영국의 주요 매체들은 한국으로 특파원을 보냈다. 영국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도 종군기자로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찾았다. ‘데일리 크로니클’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는 전장을 하루라도 빨리 묘사하고자 우선 동북아 사정을 잘 아는 현지 통신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영국 런던에서 정식 특파원을 파견할 경우 물리적으로 한 달 가까이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일본이나 러시아 사정에 밝지 않아 배경지식이 풍부한 기사를 쓰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데일리 크로니클’은 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 있던 토마스 코웬을 임시직인 특별 통신원에 임명해 조선에 보낸 뒤 베델을 두 번째로 파견했다. 3월 10일이었다. 일본 업체들의 소송과 형제 간 불화 등으로 고베 사업을 접었던 베델은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통신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조선행을 결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영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브리스톨 지역 최고 사립고교를 졸업한 베델 역시 기자로서의 바탕은 충분했다. 이때부터 그에게 언론인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한국 황궁의 화재’ 5면 톱기사로 실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관련 기사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의 기사가 적국인 러시아에 들어가면 군사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이 사실을 모르던 외신기자들은 종군 취재 허가를 받으러 도쿄에 갔다가 4월 초순까지 발이 묶였다. 이들은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고베에서 16년을 살며 일본어에 능통했던 베델은 이들보다 한 달이나 앞서 조선에 들어왔다. 베델은 조선에 온 지 36일 만에 ‘특종’을 발굴했다. 4월 16일자 ‘한국 황궁의 화재’ 기사였다. 베델은 14일 저녁 고종이 머물던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사건을 추적해 ‘일본군이 방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기사를 전송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이듬해부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 궁궐에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 중화전과 그곳에 있던 보물이 모두 탔다. 당시 ‘데일리 크로니클’은 그가 쓴 기사를 5면 톱기사로 편집해 전 세계에 타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델과 코웬은 이 기사 때문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친일 성향의 데일리 크로니클이 일본에 비판적 기사를 쓴 베델을 문책했다는 것과 전장인 한반도에 통신원을 두기보다 본지 기자들이 일본 정부에서 자료를 받아 기사를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데일리 크로니클, 일본에 우호적 기사 지시” 훗날 베델은 이 사건에 대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일할 때 받은 지시는 ‘우리 신문은 일본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통신원이 쓰는 기사 역시 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또 동양에 간 특파원들이 전쟁터에서 얻는 정보보다는 영국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듣는 사실이 더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1872년 창간된 ‘데일리 크로니클’은 1930년 ‘데일리 뉴스’와 합병해 ‘뉴스 크로니클’로 바뀌었다. 이 매체는 1960년 ‘데일리 메일’에 흡수돼 지금도 운영 중이다. 학계에는 베델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경운궁 화재 기사 한 건만 쓰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말고도 그가 쓴 기사가 하나 더 있다는 주장이 있다. 서울신문이 취재도중 만난 영국 출신의 역사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에 따르면 베델은 경운궁 화재 기사보다 보름 앞서 4월 1일자에 조선의 전통놀이인 ‘석전’(두 편으로 나뉘어 돌팔매질로 승부를 겨루던 놀이)과 축구를 비교하는 글을 썼다. 해당 기사는 지금도 ‘데일리 크로니클’ 데이터베이스(DB)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베델은 통신원으로서 모두 2개의 기사를 쓴 것이 된다. 코웰은 “당시 통신원들은 자신이 쓴 기사를 다른 매체에도 팔 수 있었다. 이 글을 뉴질랜드 언론사에도 판매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그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32세 나이에 3개월 만에 신보와 KDN 펴내 특종 기사를 남기고 회사를 떠나게 된 베델은 곧바로 자신이 이곳에서 직접 신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단 3개월 만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행했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20년 가까이 무역 일만 하던 베델이 갑자기 일사천리로 언론사를 창간한 이유를 두고 지금까지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우선 신문 발행은 당시로서는 첨단산업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종이 몇 장만 사면 알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정보화 혁명에 비견될 충격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동북아시아 지역은 영자신문 창간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조선에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영어신문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1896년 서재필이 한글판 ‘독립신문’과 영문판 ‘인디펜던트’를 창간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899년 12월 폐간했다.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호머 허버트(1863~1949)가 월간지로 발행하던 ‘코리아 리뷰’가 유일한 영어 간행물이었다. 베델은 이런 조선에서 하루빨리 영어신문을 창간해 시장을 선점하면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또 투자금을 모아 회사를 차리는 일은 베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본을 모으는 이른바 ‘펀딩’은 16년간 무역업을 하며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베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여기에 그는 일본 시절부터 언론 친화적 모습을 보여줬다. 베델이 고베에 있을 때 발행되던 영어신문 ‘고베 크로니클’은 그가 활동하던 스포츠 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 클럽(KR&AC)이 주최하는 연례 총회와 스포츠 경기, 콘서트 등을 단골 기삿거리로 삼았다. 그 역시 여기에 수차례 기고글을 쓰며 논쟁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그가 영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베델연구가 코웰은 “19세기 당시 영국 사정을 감안할 때 베델 정도면 (귀족이나 거대자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소규모 언론사를 운영하거나 기사를 쓰는 데 있어 기본적인 소양은 충분했다”고 말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사설] ‘맹탕’에 베껴 쓰기까지, 부실 판결문 이대론 안 돼

    서울신문의 기획보도 ‘어떻게 사법이 그래요’는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게 했다.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이 왜 유죄인지 이유가 빠진 ‘깜깜이’ 판결문은 물론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베낀 ‘복사기’ 판결문이 수두룩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국민이 이기적이라 대법관 판결을 원한다’고 주장했지만, 부실한 판결문과 재판거래의 우려 때문에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이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가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판결에서 유무죄나 책임의 소재, 양형 등 결론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는가 하는 배경 설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판결 이유가 명쾌해야 1심 판결에 승복할 텐데 판결문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송 당사자나 변호인은 판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판사의 생각을 헤아려 가며 항소이유서를 쓴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항소이유서가 부실한 탓에 항소심에서도 피고인에게 결코 유리할 수가 없다. 이런 부실하고 엉망인 판결문조차 받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헌법 제109조나 형사소송법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누구나 열람·복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예규가 까다로워 판결문 공개는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니 이 또한 놀랍다. 미국 416건과 일본 353건과 달리 한국 판사는 1인당 연간 600여건의 사건을 처리한다. 업무가 과도하더라도 유무죄와 양형에 목을 매는 소송 당사자의 절박함을 생각한다면 부실한 판결문과 비공개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판결문에 판결 이유 등을 담도록 요건을 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재판 건수로 평가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의 폐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법개혁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성의 있게 쓴 판결문의 투명한 공개도 사법개혁의 일부다.
  • [고든 정의 TECH+] 삼성, 인텔 QLC 낸드 SSD 공개 - 고용량 SSD의 새로운 대세 될까?

    [고든 정의 TECH+] 삼성, 인텔 QLC 낸드 SSD 공개 - 고용량 SSD의 새로운 대세 될까?

    다른 저장 장치와 달리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셀(cell)에 기록하는 데이터양에 비례해서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이 낮습니다. 셀에 기록하는 데이터가 1,2,3비트로 올라갈수록 (각각 SLC, MLC, TLC) 용량 대 가격은 저렴해지지만, 내구성은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영구적으로 지우고 쓰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횟수가 정해져 있으며 그 횟수는 SLC, MLC, TLC 순으로 급격히 낮아집니다. 따라서 소비자용 SSD 시장에서 낸드 플래시의 마지노선은 TLC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업계는 셀당 4비트 데이터를 기록하는 QLC (Quad-Level Cell) 제품의 대량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비록 내구성은 TLC보다도 낮지만, 늘어나는 용량과 컨트롤러를 포함한 SSD 기술 발전 덕분에 실사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1TB, 2TB, 4TB 용량의 QLC SSD의 대량 양산에 들어갔다고 발표했습니다. 구체적인 스펙과 가격은 미정이지만, 충분히 일반 소비자가 사용해도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판단했으니까 양산했을 것입니다. 이 QLC SSD는 1Tb 64층 V 낸드 플래시 메모리 기반으로 읽고 쓰기 속도는 SATA 규격의 상한선에 가까운 540/MB/s와 520MB/s입니다. 얼마나 지우고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가장 작은 용량이 1TB인 점으로 볼 때 기존의 TLC SSD보다 횟수가 작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낸드 플래시 기반 SSD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는 용량을 늘리는 것입니다. 200회 지우고 쓰기가 가능하다면 100GB 기준으로는 20TB 내구성이지만, 1TB 용량 기준이면 200TB의 내구성을 지닌 것입니다. 하루에 100GB 정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도 2000일은 사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소비자가 하루 10-20GB 정도 쓰는 일도 많지 않으므로 이 정도면 충분한 내구성을 확보한 것입니다. 용량이 커질수록 쓰기 내구성도 비례해서 커지는 만큼 QLC SSD는 상당히 대용량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전자는 2.5인치 SATA SSD를 먼저 출시하고 나중에 M.2 NVMe 기반의 고성능 QLC SSD 역시 출시할 계획입니다. 한편 인텔은 더 구체적인 정보를 들고 QLC SSD를 공개했습니다. 인텔 660p SSD는 역시 1Tb 64층 QLC 3D 낸드 기반으로 모두 M.2 PCIe 3.0 x4, NVMe 1.3 SSD입니다. SATA보다 훨씬 빠른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순차 읽기와 쓰기 모두 1800MB/s이며 4K 랜덤 읽기와 쓰기도 220K IOPS입니다. 쉽게 말해 SATA 기반 일반 SSD보다 훨씬 빠르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TLC/MLC 기반 M.2 NVMe SSD보다는 다소 느린 속도지만,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컴퓨터 환경에서는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아마 속도보다 신경 쓰이는 부분은 내구성일 것입니다. 보증 기간은 넉넉하게 5년이지만, 쓰기 내구성 (write endurance)는 200회 정도입니다. 용량이 512GB/1TB/2TB인데 각각 쓰기 내구성이 100TB/200TB/400TB인 것입니다. 물론 이 정도 용량은 일반 소비자에게 부족하지 않겠지만, 데이터를 자주 쓰고 지워야 하는 작업을 많이 하는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가격은 512GB가 99달러, 1TB가 199달러로 경쟁력 있게 책정됐는데, 저렴한 QLC 낸드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DDR3 메모리도 256MB로 조금 넣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했기 때문에 속도에 민감한 사용자는 충분히 생각한 후 구매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 QLC SSD는 단점이 있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쓰기는 한 번 해도 읽기는 많이 해야 하는 데이터의 경우 적당한 저장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QLC SSD는 선택의 폭을 넓히고 SSD 시장의 가격 경쟁을 유발하는 좋은 제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용도에 맞지 않으면 MLC나 TLC SSD를 선택해야 하겠죠. 각기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한동안 SSD 시장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제품이 공존하는 시장이 될 것입니다. 다만 TLC가 그랬던 것처럼 소비자용 고용량 SSD는 QLC가 새로운 대세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형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제가 조물주도 아닌데 말이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인형에 생명을 주고 싶었어요.제가 조물주도 아닌데 말이죠.”

    인형작가 류오동이 말하는 헝겊인형의 세계란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인형을 좋아한다. 작고 귀엽고 예쁜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이다. 아주 먼 옛날 주술적인 측면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수호신을 형상화했다거나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인간 속죄물 대용으로서 인형이 생겼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미적 감각이 담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거나 애착 대상의 장난감으로 장르가 다양화됐다. 애착 대상의 인형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독거 노인들까지도 좋아하며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정겨운 느낌을 주는 헝겊인형을 만들고 이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를 창작해낸 인형작가 류오동(48)씨를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갤러리인사아트에서 만났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벽에는 인형이 서 있고, 옆에서는 못질 소리가 한창 났다. 전시 작업 준비에 한창이던 류오동씨는 “제가 만든 인형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끊임 없이 말을 걸어와요. 그 말을 따르다보니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졌죠.”라고 말한다. 바닥을 정리하고, 조명의 각도를 손질하는 이들은 남편과 아들, 두 언니와 사촌 여동생이란다. 손발이 척척,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인형, 인형 의상, 인형 가구, 인형 수공예품 손수 만들어 류오동씨는 이곳에서 8~13일 자신의 인형소설 ‘마담 리우의 인형이야기 1: 두루비 갤러리엄’ 등을 출판한 기념으로 ‘류오동 인형 조형전’이라는 전시회를 연다. 그는 단순히 헝겊 인형을 만드는 차원을 넘었다. 인형 텍스타일, 인형 가구와 더불어 인형들이 사는 가상의 세계까지 구축했다. 인형을 이용한 베개, 텍스타일을 활용한 쿠션과 가방 등 수공예품도 개발했다. “두루비를 상표로 등록도 해뒀죠.” - 인형 만들기는 언제부터 했나요.☞ 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코바늘로 인형을 떴던 기억이 나요. 그땐 그냥 재미로 해 본 것이었구요. 제가 인형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는 2011년 8월쯤이었어요. 그때부터 저 만의 인형을 만들고자 연구를 시작했고, 다른 작가들의 인형을 수집하고 인형 관련 자료들도 모으기도 했지요. 인형이 산업으로서는 발달해 있는데 대학교에 전공학과도 없고, 관련 인문학적 책도 상당히 부족하더라구요. 주로 퇴근해서 잠자기 전까지 집에서 3시간 정도 집중해서 만들지요. ●“인형을 완성했을 땐 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쁨이 오죠”- 인형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여러 수공예 활동을 해보았지만, 인형을 완성한 후의 기쁨과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좋았어요. 첫 인형인 ‘비비아나’가 완성됐을 때의 그 느낌은 저에게 딸이 생긴 그런 감동이었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그 설레고 벅찬 환희가 밀려왔죠. 그래서 인형을 계속 만들게 된 것 같아요. - 누구에게서 배웠나요.☞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들고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코바늘뜨기나 대바늘뜨기는 언니들이 하는 걸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고, 친정어머니께서 손바느질하시는 걸 보고 혼자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인형 만드는 것을 특별히 배우지는 않았지만, 재봉틀, 퀼트, 프랑스 자수, 십자수, 비즈 공예 등 다양하게 경험해 봤지요. 이런 수공예 활동이 많이 도움됐어요. ●“헝겊인형, 동심 자극···인간 본연의 순수에 가까워져” - 특히 헝겊인형 작가로 알려졌는데.☞ 인형 재료는 아주 다양합니다. 헝겊·나무·도자기·우레탄·흙·옥수수 잎 등···. 작가에 따라 때로는 재료를 혼합해 쓰기도 하지요. 제가 헝겊인형을 선택한 이유는 천이라는 소재가 부드럽고, 편안하며, 따뜻해 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헝겊인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꿉놀이 동심을 자극한다고 할까요, 아니면 인간 본연의 순수에 가까워진다고 느껴요. 저는 헝겊 인형에 생동감을 넣어주기 위해 관절을 만들어줬지요. - 인형을 만들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나요.☞ 특정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인형을 만들지 않습니다. 소수를 위한 인형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거든요. 제가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성별·연령·국적·장애에 관계 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제 인형은 특별히 아름답거나 독특한 인형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저의 전시회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해 합니다. 그게 최고의 만족이죠.- 헝겊인형에 ‘마담 리우’라는 이름이 있던데.☞ 마담 리우는 제가 만든 관절헝겊인형 이름이고, 제가 쓴 인형 소설 속의 주인공이랍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바로 저 자신이 투영됐다고 할 수 있어요. ‘리우’라는 이름은 저의 성인 ‘류’를 본떠서 지은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저 자신이 되는군요. 또 ‘두루비’는 ‘두루두루 비추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제가 창작한 관절헝겊인형들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입니다. 두루비의 특징은 얼굴이 입체적이고 어깨·팔꿈·손목·고관절·무릎·발목이 연결돼 있어서 자세를 바꿀 수 있지요. 굳이 관절헝겊인형을 만든 것은 좀 더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서죠. 반면에 ‘두루비아’는 두루비 즉, 관절헝겊인형이 아닌 모든 인형을 말합니다. 두루비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재료는 빈 병·깨진 컵·키친 타올 홀더·하프 돌 등으로 다양합니다. ●“인형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며 어울려 사는 커뮤니티를 만들었죠” - ‘두루비 갤러리엄’은 뭐죠?☞ 두루비 갤러리엄은 마담 리우가 운영하는 지상 3층, 지하 1층짜리 인형가게예요. 백조 모양을 한 건물 지하에는 그녀(마담 리우)가 만들었거나 소장한 인형들이 전시된 화랑이 있죠. 1층에는 인형을 만드는 다양한 재료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2층에는 사무실과 강의실이, 3층에는 리우네 가족이 사는 주택이 있어요. 사실, 이 건물은 실제로 제가 짓고 싶은 인형박물관의 모델이랍니다. 인형을 만들에 한참 들여다보면 인형이 제게 속삭여요. 말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두루롬어’ ‘두루한어’를 만들어줬죠. 이들 인형이 읽는 신문도 있어요. 새로운 옷이 필요하다고 하면 제가 디자인을 하죠. 가구도 만들어주고, 집도 만들어주고···. 이렇게 해서 하나의 세계가 인형 세계가, 두루비 커뮤니티가 만들어진거죠.- 삽화도 직접 그렸네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림을 직접 그리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장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서죠. 전문가들의 시각에선 형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인형 공예활동의 연장으로 시도해 본 것입니다. 종이인형도 어릴 적 직접 그려서 놀던 추억이 생각나서 두루비 캐릭터들을 그려봤지요. - 텍스타일 디자인도 직접 하나요?☞ 텍스타일은 원단에 프린팅하기 위한 패턴인데, 몸집이 작은 인형 의상에 적합한 패턴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디자인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제가 디자인한 텍스타일로 인형 뿐만 아니라 양산, 가방, 쿠션도 만들었지요. ●“인형 커뮤니티에선 각자의 입장과 갈등을 풀어나가죠” - 그런 인형을 소재로 이야기를 쓴 이유는.☞ 제가 만든 인형들이 많은 사람과 공유할 방법을 찾다가 스토리텔링을 생각해 냈죠. 인형을 소재로 한 이야기나 영화들을 찾아봤죠. 대개 공포영화에서 인형들이 등장하는 사례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제가 인형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른이 무슨 인형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는냐’, ‘무섭지 않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래서 인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야기를 통해서 인형의 따스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야기는 제가 만든 인형을 사람들과 공유하기에도 아주 좋은 방법이고요. 처음에 책을 쓸땐 어린애나 소녀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50~60대 남성들에게서도 ‘신기하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의외였죠. 책은 영어로 번역도 할 거예요.- 인형 이야기의 특징은?☞ 저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같은 판타지를 좋아합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트와일라잇’ 등을 읽고 작가의 상상력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제 작품이 감히 그 대작들과 견줄 정도로 스케일이 크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습니다만 제 인형들이 등장하는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제 이야기에는 선과 악의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아요. 절대적인 악의 무리에 맞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도 없지요. 오히려 수공예의 따스함과 느림의 미학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각자의 삶에서 등장 인물들이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또 규중칠우쟁론기와 조침문을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끌어와서 현대판 규방문학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말하는 투가 전업 작가들과는 다르게 느껴져 직업을 물었더니 중학교 교사란다. ‘미술 선생’이냐고 확인하니 뜻밖에도 “영어를 가르칩니다”고 답한다. 교사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인형작가라는 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단다. 그래서 그가 인형작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도 많다. “본업 대신 인형을 한다는 것이 마치 ‘외도’하는 것같아서···. 학교 일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아서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열심히 가르쳐요.” 영어 교사인 점이 해외 인형 작가의 동향이나 인형 정보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단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MB 법정서 낱낱이 공개된 ‘이팔성 비망록’… “MB 족속들 파렴치”

    MB 법정서 낱낱이 공개된 ‘이팔성 비망록’… “MB 족속들 파렴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이 낱낱이 공개됐다. 이 전 회장은 2007년 12월 대선을 전후로 이 전 대통령의 사위와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에게 거액을 건네며 인사 청탁 등을 한 경위는 물론, 인사 청탁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전 대통령을 원망하는 내용을 비망록에 자세히 남겼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검찰은 서류증거 조사를 통해 이 전 회장이 자필로 기록한 비망록을 날짜별로 제시했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3월 28일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면서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비망록에 기록했다. 검찰은 “이 만큼의 돈을 지원했는데도 (자신이 원하는) 인사상 혜택이 없어 이에 대한 분개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같은 달 23일에도 “이명박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건 왜일까”라고 쓰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2007년 1월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에게 5000만원을 건넨 것을 시작으로 대선을 앞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변호사에게 총 8억원을 전달했다. 이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첫째 사위를 아낀다고 들었고, 언젠가는 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러다 대선이 임박한 2007년 12월에는 5일, 10일에 각 1억원을, 12일에는 5억원을 이 변호사에게 줬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제가 올인을 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2007년 12월 16일이 전 부의장 측 김모 비서관에게도 5억원을 전달했고,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도 이 변호사와 이 전 부의장 측에 돈을 지속적으로 건넸다. 이처럼 이 전 대통령은 2007~2011년 이 전 회장에게 22억 5000만원의 현금과 1230만원 어치의 양복값은 뇌물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특히 비망록에 자신의 인사 문제를 비롯해 이 전 대통령 측에 집요하게 청탁을 한 과정을 자세히 기록했다.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2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인수위원회 사무실을 거듭 찾았고, 2월 23일엔 이 전 대통령과 만나 “대선 전에 최선을 다해 자금 지원을 해드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금융위원장, 산업은행 총재, 국회의원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금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이 전 회장의 인사 청탁에 이 전 대통령은 “이 전 부의장과 상의해보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또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1기 내각의 장관으로 내정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향해 “모두 즐거운 표정. 나만 제외된 건가?”라는 씁쓸한 메모를 남기는 등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해 조급한 모습을 여러 군데 비망록에 남겼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2008년 3월 7일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을 통해 이 전 회장에게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 이사장직을 제안했고,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원한 자리가 아니라며 거절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권유하자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종 후보로 2배수까지 압축됐지만 결국 낙마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8억을 건넨 이 변호사를 향해서도 “왜 이렇게 배신감을 느낄까. 이상주 정말 어처구니 없는 친구다”, “젊은 친구라서 그러는 걸까”라면서 “소송을 해서라도 내가 준 8억원 청구 소송을 할 것임. 나머지는 어떻게 하지. 사모(김윤옥 여사)도 할까” 등의 기록을 남겨 비난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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