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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이틀 끝내기 패배…뒤집기 꿈꾸는 LG

    연이틀 끝내기 패배로 벼랑 끝에 몰린 LG 트윈스는 반전을 이뤄 낼까. 지난 6일 시작된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준PO·5전 3승제)는 키움 히어로즈가 LG의 뒷문을 무너뜨리며 시리즈 전적 2승 무패로 절대우위를 점했다. LG는 1차전 선발 타일러 윌슨(30)의 8이닝 무실점 호투와 2차전 선발 차우찬(32)의 7이닝 1실점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연속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제 LG는 1패도 허용할 수 없는 배수진을 치게 됐다. 역대 5전 3승제 가을 야구에서 1·2차전을 내주고도 ‘뒤집기 쇼’가 펼쳐진 사례는 총 4차례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가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에서 사상 첫 리버스 스윕을 달성했다. 2009년 SK 와이번스도 두산 베어스에 1·2차전을 내줬지만 뒤집은 바 있다. 준PO에서 리버스 스윕을 달성한 팀은 현재까지는 두산이 유일하다. 2008년부터 준PO가 3전 2승제에서 5전 3승제로 바뀌었고, 두산은 2010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와 2013년 넥센과의 경기를 뒤집으며 ‘미라클 두산’의 면모를 과시했다. LG는 역대 5번의 준PO(1993·1998·2002·2014·2016년)에서 모두 PO에 진출한 100% 확률을 가지고 있는 만큼 전력을 다시 가다듬고 팀 역사를 이어 가려는 기세다. 키움으로서는 시리즈를 일찍 끝내고 여유롭게 SK와 PO를 치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2008년부터 1·2차전을 승리한 팀이 PO에 진출한 사례는 7번 중 5번(2008·2012·2014·2015·2018년)이다. 지난해 넥센이 한화 이글스에 1·2·4차전을 잡아내고 PO에 진출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노노재팬’ 모나미·하이트진로 주가 급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거세지면서 반사이익 수혜주로 떠오른 종목들이 일제히 신고가를 기록했다. 대내외 악재가 겹쳐 국내 주식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가운데 이른바 ‘애국 테마주’들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모나미는 전날보다 12.86% 급등한 667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상한가를 기록한 데 이어 이날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장중 7460원까지 올랐다. 문구류 제조업체인 모나미는 일본 필기구 불매에 따른 대표적인 수혜주로 꼽힌다. 이날 하이트진로홀딩스도 장중 1만 4150원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우선주인 하이트진로홀딩스우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아사히, 삿포로 등 일본 맥주를 국내 브랜드들이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정보제공 사이트인 ‘노노재팬’에는 아사히맥주의 대체 상품으로 하이트가, 제트스트림펜의 대체 상품으로 모나미가 소개돼 있다. 국내 속옷 업체들도 수혜주로 떠올랐다.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여름철 대표 상품인 ‘에어리즘’ 등 속옷 수요가 국내 브랜드로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TBH글로벌은 상한가(29.86%)까지 뛰어오른 3240원에 장을 마쳤다. TBH글로벌은 의류 브랜드인 베이직하우스를 통해 속옷을 판매하고 있다. 토종 속옷 브랜드 쌍방울도 이날 상한가를 기록했다. 이 밖에 좋은사람들(10.15%), BYC(5.64%) 등 다른 속옷 관련 종목도 나란히 상승세를 보였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부고] 박장우씨 모친상, 유시민씨 모친상, 최선호씨 장인상, 김성태씨 모친상

    ●박숙희·박장우(법무법인 미래 대표변호사)·박홍우(법무법인 미래 변호사)·박선희·박규희씨 모친상, 손일원(법무법인 미래 변호사)·천영철씨 장모상, 김정은·신해영씨 시모상, 박천효(SK C&C 직원)씨 조모상, 22일 오전 11시14분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 발인 24일. 02-3410-6915 ●유시춘(EBS 이사장·소설가)·유시훈·유시정·유시은·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유시주(희망제작소 기획이사)씨 모친상, 손병국·신현능·유동환씨 장모상, 임영희·한경혜씨 시모상, 22일, 일산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 24일 오전 6시. 031-900-0444 ●박영지·박영미·박해븐씨 부친상, 이성범·최선호(군인공제회 대체투자본부 대체투자2팀 차장)·박태관씨 장인상, 21일 오전 5시께, 서울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5호실, 발인 23일 오전 10시. 02-2030-7905 ●김성태(쌍방울그룹 회장)·김영모·김귀임·김귀남·김봉림·김양임씨 모친상, 21일 오전 10시37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23일 오전. 02-2072-2091
  • ‘키움-KT 경기 1158명 입장’ 고척돔 역대 최저 관중

    ‘키움-KT 경기 1158명 입장’ 고척돔 역대 최저 관중

    고척스카이돔 역대 최저 관중 ‘불명예 기록’이 새로 나왔다. 10일 KBO에 따르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키움과 KT의 정규시즌 경기에는 1158명의 관중이 찾아 최저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해까지 고척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 역대 최저 관중은 2018년 7월 24일 KT와 넥센의 경기(1515명)에서 나왔고, 지난 9일 열렸던 키움과 KT의 고척 경기에는 1377명이 찾아 기록을 경신했었다. 그리고 불과 하루 만에 그보다도 219명 적은 1158명 관중이 찾아 불명예 기록이 새로 나온 것이다. 키움과 KT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창단이 늦은 편에 속해 아직까지도 팬층이 두텁지 않다. 키움은 2008년부터 KBO에 뛰어들었고, 10개 구단 중 막내인 KT는 2015년부터 프로야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군다나 KT는 올 시즌 초반부터 최하위(10위)로 처져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팬층이 얇은 두 팀이 평일에 맞붙자 관중 동원이 미적지근했던 것이다. 프로야구 역대 최저 관중은 1999년 10월 7일 전주에서 열린 현대와 쌍방울 경기의 54명이다. 2002년 10월 19일 사직 경기(한화-롯데)가 69명, 1999년 10월 6일 전주 경기(LG-쌍방울)가 87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한편 키움은 이날 6.2이닝을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한 선발 투수 안우진을 앞세워 KT를 4-2로 제압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부고]

    ●김혜경(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회장)씨모친상 12일 대구파티마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53)940-8196 ●최기석(국가유공자)씨 별세 한정(전 쌍방울 대표)한민(전 서울시재향군인 회장)홍령(월드짐 대표)은수(MBN 산업부장·부국장)씨 부친상 유영은(연세팰리스 대표)씨 장인상 14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30분(02)2227-7580 ●장덕수(KBS 기자)경수(삼성디스플레이 책임)익수(대우조선해양 대리)씨 부친상 황윤미(KTDS 과장)씨 시부상 14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30분 010-5151-3039 ●장원용(대구시 소통특보)씨 장모상 14일 경북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53)200-6141 ●유기원(사업)형주(한국유리 부장)씨 부친상 주은기(삼성전자 부사장)최훈(삼성SDI 상무)김병록(사업)씨 장인상 14일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063)284-4444
  • “南 한계 탈출·北 경제 발전… 패션 경협은 윈윈”

    “南 한계 탈출·北 경제 발전… 패션 경협은 윈윈”

    南 아웃소싱·관리 정체… 돌파구 필요 노후한 北 패션봉제단지 현대화 구상 패션테크 지원·기술자 교육 등도 고려“남북 패션 경협을 통해 우리 패션 업계를 살리고 북한 경제도 살리는 ‘윈윈’ 전략을 추진하겠습니다.” 주상호(62) 한국패션산업연구원장은 3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조건 퍼주는 것이 아니라 북한도 발전시키면서 우리 업체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 보자는 차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 원장은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눈여겨본 뒤 지난 5월 연구원 내에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정체된 패션 업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업계의 남북 경협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 원장은 1981년 ㈜쌍방울에 입사한 뒤 한국의류산업협회와 한국패션협회 상무이사를 거쳐 올해 1월 한국패션산업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연구원의 역할과 관련, “업계 의견을 모아서 정부 정책에 반영하거나, 정부 지원 사업들을 수행하기 위한 합법적인 로비스트 활동을 해야 한다”면서 “업계 요구 사항을 정부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특히 “우리 패션 업계가 디자인뿐 아니라 상품기획(MD)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업체들이 아웃소싱과 관리 등에서 한계에 와 있어 더이상 효율성을 강구할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주 원장이 북한에 눈을 돌린 것도 패션 산업 발전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 때문이다. 주 원장은 북한의 패션봉제단지를 현대화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남북 경협이 제대로 추진되면 위기에 직면한 패션 산업이 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과 남한의 패션 산업의 간극은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에는 86개 섬유기업과 251개 봉제기업이 있다. 봉제단지는 평양, 신의주, 개성, 함흥, 원산 등에 있다. 섬유기업은 한국의 1970년대 기술 수준이고, 봉제기업은 1980~1990년대 수준으로 노후화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원장은 “남한은 패션 감각이 전 세계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북한은 주로 교복이나 인민복 등 단일 아이템 위주로 개인 취향이 반영된 패션이 나오지는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주 원장은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를 대비해 남북 경협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북한의 어느 지역에 공장이 있고, 봉제기계와 인력이 얼마나 있는지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북한 지역에 거점별로 패션테크 지원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는 방안을 시범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경협 TF를 통해 북한 기존 공장의 현대화에 도움을 주고, 북한 기술자들에게 봉제 교육을 실시해 남한 패션 업체들이 주문을 주면 북한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프로야구] 펑~ 펑~ 펑~ 펑~ 로사리오 4연타석 홈런 폭발

    [프로야구] 펑~ 펑~ 펑~ 펑~ 로사리오 4연타석 홈런 폭발

    한 경기 최다 홈런 4번째 타이 기록도 이진영 2000번째 경기 2000안타 달성로사리오(한화)가 역대 세 번째로 4연타석 홈런을 폭발시켰다. 로사리오는 16일 수원에서 벌어진 KBO리그 kt와의 경기에서 4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줄대포를 쏘아 올렸다. 1회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고른 그는 4-0이던 2회 2사 1루에서 선발 주권을 상대로 2점포를 터뜨렸다. 5회 선두타자로 나서 정대현을 상대로 중월 솔로포를 날리더니 6회 1사 1, 3루에서 배우열을 가운데 담장을 넘는 3점 아치로 두들겼다. 로사리오의 대포는 식을 줄 몰랐다. 한화가 14-10으로 앞선 7회 1사 후 로사리오는 강장산을 상대로 좌월 솔로포(시즌 13호)를 쏘아 올렸다. 4연타석 홈런은 KBO리그 통산 세 번째 대기록이다. 박경완(SK)이 2000년 5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처음 작성했고 야마이코 나바로가 삼성 소속이던 2014년 6월 20~22일(경기 없는 21일을 포함해 두 경기에 걸쳐) 마산 NC전에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 경기 4연타석 홈런은 로사리오가 박경완에 이어 두 번째다. 또 로사리오는 2000년 박경완, 2014년 전 넥센 박병호(미네소타), 올해 최정(SK)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한 경기 최다 홈런 타이(4개)도 세웠다. 한편 이진영(37·kt)은 통산 2000번째 출장에서 2000안타를 작성했다. 1999년 쌍방울에 입단한 이진영은 이날 2번 지명타자로 나서 역대 아홉 번째로 통산 2000경기에 출장했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LG 정성훈에 이어 두 번째다. 이진영은 이날 1회 내야 땅볼로 물러났으나 3회 중견수 쪽 2루타, 5회 우중간 2루타를 터뜨렸다. 전날까지 통산 1998안타를 생산한 그는 통산 2000안타도 완성했다. 역대 열 번째이자 kt 선수로는 최초다. 더불어 전 삼성 양준혁(2135경기-2318안타), 전 히어로즈 전준호(2091경기-2018안타), 전 kt 장성호(2064경기-2100안타), LG 정성훈(2063경기-2051안타)에 이어 역대 다섯 번째로 2000경기 출장과 2000안타를 모두 일군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한화 선발투수로 나선 배영수(36)는 1회 말 이진영과의 대결에서 2아웃째를 잡아 통산 2000이닝 투구를 달성했다. 배영수는 전날까지 1999와 3분의1이닝을 던졌다. 역대 2000이닝 이상 던진 선수는 2001년 한화 송진우를 시작으로 모두 5명이 있었다. 배영수는 2007년 SK 김원형 이후 10년 만이자 역대 여섯 번째로 2000이닝을 소화한 투수로 기록됐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데스크 시각] 홈런 때리고 밟아야 할 길/송한수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홈런 때리고 밟아야 할 길/송한수 체육부장

    당신, 오늘 어디에서든 홈런을 때렸는가. 그러나 기쁨을 아끼는 게 좋다. 너무 지나친 표현은 삼가야 한다. 먼저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그라운드에 ‘나’만 존재하진 않는다. 홈런을 맞은 쪽에선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응원하는 관중은 또 어떤가. 달아오른 쪽이나 가라앉은 쪽 모두에게 금세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사례는 적잖다. 최근 대학야구에선 희한한 풍경이 벌어졌다. 만루 기회에 친 공이 담장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타자는 울 뻔했지 뭔가. 규정을 어긴 죄(?)로 아웃 판정이 돌아왔다. 하도 좋아서 앞선 주자를 추월하고 말았다. 어언 35년 역사를 뽐내는, 내로라하는 프로에서도 몇 차례 나온 광경이다. 제1호는 1999년 4월 21일 충북 청주구장에서 탄생했다. 한화-쌍방울 경기 때였다. 홈팀 송지만(44·현 넥센 코치)이 6회말 투런 아치를 그렸다. 그러나 들뜬 나머지 홈 베이스를 스치지도 않았다. 판세를 굳힐 태세로 흥분한 그는 덕아웃에 뛰어들어 박수를 받았지만 곧장 아웃 통보에 몸을 떨었다. ‘동네 야구’도 아닌 ‘진짜 선수’들이 규정을 어긴다. 다른 이들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어쩔 수 없다. 경기에 넘치게 몰두한 뒤탈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홈런을 친 다음을 생각하자. 반드시 절차를 거쳐 홈으로 들어와야 한다. 먼저,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선행 주자를 존중할 책임을 진다. 더구나 90피트(27.4m) 간격으로 놓인 베이스를 단 하나라도 밟지 않으면 허사다. 어기면 아웃 선언과 더불어 홈런을 취소한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치기 위해선 홈까지 4개 베이스, 최소한 110m를 달려야 하는 것이다. 며칠 전 프로야구 관계자를 만났다. 야구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였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날짜와 숫자를 두루두루 꿰뚫고 있는 예의 전문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는 “야구계 내부 이기주의도 스포츠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라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또 “이런 모순이 바깥에서 퍼붓는 터무니없는 비난에 맞서는 움직임까지 무색하게 만든다”며 다시금 한탄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도 샌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국민 건강과 행복을 도맡아야 하는 게 스포츠의 역할인데, 내외부에서 한꺼번에 닥친 입김 탓으로 최선을 다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꽤 오래 지낸 후배는 이렇게 되물었다. “관람료로 치면 메이저리그에 견주지도 못하도록 아주 낮지 않으냐. 그런데 왜 관중석을 채울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됐느냐”는 얘기였다. “외국인 선수를 제한해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덧붙였다. 돌아온 대답이 “선수 단체에서 반대한다”였다. 선수 2세를 둔 야구인도 한몫한단다. 스포츠의 생명을 ‘질서와 공존’으로 줄일 수 있다. 이로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한다. 존재의 이유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게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페어플레이’를 외친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스포츠를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난 ‘평화의 마당’으로 여기는 것이다. 정치권이나 반사회적 무리들이 이런 특징을 악용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야구, 스포츠로 그치지 않는다. 세상에 지름길은 숱하다. 어느 부문도 마찬가지다. 때론 슬기롭게 선택할 일이다. 그러나 룰(rule)을 깨면서 가도 괜찮은 지름길은 어디에도 없다. 홈런을 치고도 베이스를 밟지 않거나, 동료를 추월하는 강타자처럼 못난 처지를 곱씹을 뿐이다. 환영받지 못할뿐더러 물까지 흐린다. onekor@seoul.co.kr
  • 김성근 감독, ‘야신’ 찬사와 ‘혹사’ 비난…영욕의 지도자 인생

    김성근 감독, ‘야신’ 찬사와 ‘혹사’ 비난…영욕의 지도자 인생

    김성근(75) 한화 이글스 감독이 또 유니폼을 벗었다. 그의 야구인생에서 12번째다.한화 이글스는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마지막 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 감독은 한화를 이끌며 “내 마지막 유니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 이글스 구단은 23일 “김성근 감독이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한화는 이날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리는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방문 경기를 이상군 투수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치른다. 김성근 감독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는 프로야구 7개 구단에서 2651경기를 지휘해 1388승 60무 1203패를 기록했다. 경기 수와 승리 부문 KBO리그 역대 사령탑 2위다. 두 부문 1위는 김응용(2910경기,1554승 68무 1288패)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다. 김성근 감독은 내심 ‘김응용 감독 기록 돌파’를 꿈꿨다. 하지만 그 꿈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2014년 11월 김성근 감독은 한화 팬의 환호와 프로야구팬들의 깊은 관심 속에 한화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초대 감독이었던 김 감독은 팀이 해체되면서 야인이 됐고, 김응용 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한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한화에서의 2년 6개월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2∼2014년, 3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쳤던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첫해인 2015 정규시즌을 6위로 마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신이 한화의 체질을 바꿨다”란 찬사와 “혹사 논란을 부르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는 실망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2016년 7위에 그치면서 김성근 감독의 반대 여론이 더 힘을 받았다. 여기에 한화 프런트 내부에도 ‘반 김성근 감독 정서’가 자랐다. 한화는 2016시즌 종료 뒤 1군 사령탑 출신 박종훈 단장을 영입하며 김성근 감독의 영향력을 ‘1군 운영’으로 한정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을 중심으로 한 현장과 박종훈 단장을 앞세운 프런트의 마찰은 계속됐다. 결국, 김성근 감독은 한화와 계약 기간인 3년을 채우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은 1969년 마산상고 사령탑에 오르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기업은행, 충암고, 신일고를 거친 그는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OB 베어스 투수코치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마지막 7경기를 감독대행으로 치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것도 1984년 OB에서다. 이후 김 감독은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를 이끌었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LG와 결별한 뒤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 순회코치로 일한 김 감독은 2007년 SK 와이번스 사령탑으로 부임해 지도자 경력을 꽃피웠다. 약팀을 중상위권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김 감독은 2007년 SK에서 프로 첫 우승을 일궜다. 2011년 8월 경질될 때까지 김 감독은 SK에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독립구단 원더스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 감독은 한화에서는 명성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프로야구] NC ‘사직 무패’

    [프로야구] NC ‘사직 무패’

    특정 구장 원정 최다 연승 타이 NC 모창민 3경기 연속 홈런포 사직구장만 가면 힘이 솟는다. 홈 팀 롯데 얘기가 아니다.NC는 2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원정경기에서 롯데를 5-4로 눌렀다. 사직구장에서 거둔 14연승이다. 특정 구장 원정경기에서 한 팀을 상대로 거둔 KBO리그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이다. NC는 이날 승리로 이번 시즌 4연승을 달리며 10승7패로 kt와 공동 2위를 달렸다.NC는 2015년 4월 16일 사직구장에서 롯데를 꺾은 뒤 지금까지 사직구장에서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NC에 앞서 특정 팀과의 특정 구장 원정경기에서 14연승을 달성했던 팀은 삼성뿐이었다. 삼성은 1985년 8월 25일부터 1987년 6월 18일까지 인천 도원구장에서 홈팀 청보 핀토스에 14경기 연속 승리를 거뒀다. 홈 경기에선 쌍방울이 1996년 8월 14일 더블헤더 1차전부터 1997년 4월 13일까지 홈인 전주구장에서 이어 간 17연승이 KBO리그 특정 구장 최다 연승 기록이다. 롯데는 NC를 상대로 올 시즌 개막전까지 15연패의 수모를 당한 뒤 2차전에서 3-0으로 이겨 겨우 연패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사직구장에서의 연패는 2년 넘게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NC와 시즌 상대 전적도 2승 4패로 다시 열세에 놓였다. 이날 롯데는 1회 말 볼넷 하나에 2안타를 날리고도 주루사와 도루사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등 수차례 기회를 날리고는 끌려갔다. 반면 NC는 모창민이 최근 3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는 등 상대를 압도했다. KIA는 선발투수 헥터 노에시의 활약에 힘입어 kt를 9-2로 가볍게 꺾고 13승4패로 선두를 질주했다. 헥터는 7이닝 동안 5피안타(2피홈런) 무사4구 8탈삼진 2실점(2자책)으로 호투했다. 타선 역시 팀의 시즌 첫(시즌 8호, 통산 75호) 선발 전원 안타를 비롯해 13안타를 집중했다. 시즌 4경기 전승을 거둔 헥터는 제프 맨쉽(NC) 등과 다승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넥센은 인천 방문경기에서 SK를 5-3으로 따돌리며 SK의 8연승을 저지하며 6연패 늪에서 힘겹게 탈출했다. 2-3으로 역전을 허용한 뒤 8회 초 김하성의 좌월 투런포를 포함한 4안타를 집중해 3점을 쌓아 재역전승을 거뒀다. 전날 넥센을 꺾고 1700일 만에 7연승을 달성했던 SK는 연승 행진을 멈췄다. LG는 류제국의 4승째 호투를 앞세워 한화를 4-3으로 제쳤고, 두산은 2-2로 맞선 8회말 양의지의 2타점 적시타에 힘입어 삼성을 4-2로 눌렀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하프타임]

    프로축구 서울 시즌 티켓 판매 프로축구 서울이 18일부터 한 시즌 동안 모든 홈 경기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즌 티켓을 판매한다. 스카이라운지 100만원, 테이블석 50만원, 서쪽 지정석 30만원, 동쪽 지정석 20만원, 일반석 16만원으로 차별화했다. 구단 홈페이지(www.fcseoul.com)와 페이스북(www.facebook.com/fcseoul), 전화(02-306-5050)로 문의하면 된다. 프로야구 넥센 고형욱 단장 임명 프로야구 넥센이 16일 고형욱(46) 스카우트팀장을 단장으로 임명했다. 넥센은 “고 신임 단장이 구단 육성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선수 출신으로서 프런트와 선수단의 가교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진흥고-인하대를 졸업하고 1994년 쌍방울에서 투수로 활약한 고 단장은 “구단의 목표와 방향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NC 이호준 올 시즌 끝으로 은퇴 베테랑 거포 이호준(41)이 16일 창원 마산구장 등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선수단 신년회를 마치고 올 시즌 뒤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이호준은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며 “비시즌 기간 만난 동갑내기 이승엽(삼성)과 은퇴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인식 WBC 감독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김인식 WBC 감독

    1회말-야구 시작 1년 만에 올해의 선수·실업야구 신인상… 무리한 투구로 24세 은퇴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34년 만에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관중 800만 시대를 열었고, 메이저리그 못지않은 최신 구장과 돔구장도 들어섰다. 이 폭발적인 야구 열풍 뒤에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을 맡은 김인식 감독이 있다. 지난해 그가 이끈 프리미어12 대표팀이 감동적인 우승을 안겨 주면서 올 시즌 개막 전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해보다 높았다. 그가 한국을 WBC 준우승,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이끌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반복됐고 이제 프로야구는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야구사(史)와 함께한 그의 야구인생은 올해로 57년째. 내년 3월 열리는 WBC를 준비하느라 여전히 바쁜 김 감독을 지난 19일 서울 잠실구장 인근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평생을 야구와 인연을 맺으려 그랬는지 어린 시절부터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태어났는데 집 근처에 야구로 유명한 경동고등학교가 있었다. 당시 한성대 가는 쪽에 개천이 있었는데 거기서 공 던지기를 하면서 놀던 기억이 난다. 야구는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배문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야구선수가 됐다. 내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연식야구’라 해서 곰보처럼 구멍이 숭숭 난 고무공으로 야구를 했다. 나는 우완투수였고 야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대한체육회 선정 야구 부문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당시에 나보다 잘하는 선수는 많았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직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라서 집에서는 내가 야구를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6남매(3남3녀) 중 차남이었는데 내가 4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고 전쟁 직후라 많이 힘들었던 시기다.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이 열악했다. 야구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1963년 한국이 제5회 아시아야구대회를 개최해 우승하고 나서부터다. TV중계를 하니까 그때서야 집에서도 좀 관심을 갖더라. 우승 직후 실업야구팀이 연거푸 생겨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야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니 실제 야구를 하는 선수들에 비해 팀이 많이 생겼다. 한일, 제일, 기업, 농협, 조흥 등 각 은행이 야구단을 만들었고 서울시청, 인천시청, 체신부, 상무까지 팀이 13개나 됐다. 이듬해 팀은 11개로 줄었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9개팀으로 정리돼 있었다. 나는 야구를 꽤 하는 축에 속했고, 졸업하기도 전에 한일은행 관리기업체였던 크라운맥주에 스카우트됐다. 또 운이 좋게도 1965년 실업야구에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에 뽑혔다. 젊은 나이에 빨리 빛을 보는 계기가 됐다. 1967년 7회 아시아야구대회에도 동기들 중 가장 먼저 합류하게 됐다. 당시 대표팀 주축은 2~3년 선배인 김설곤, 김청호, 최관수 등이었고 김응용 전 감독은 대표팀에서 중간 정도 위치에 있었다. 가장 위 선배들로는 재일동포 출신 신영준, 김영덕 등이 있었다. 5회 대회 때도 재일동포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전력이 보강돼 우승할 수 있었고 이후 야구 붐이 일기 시작했으니 실제로 한국야구발전에 영향을 많이 준 분들이다. 물론 일본야구가 가장 수준이 높았지만 그땐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국제대회에 나와 해볼 만했다. 그 외에 대만, 필리핀 등이 참가했다. 필리핀은 야구 수준이 꽤 높았는데 이후 경제가 어려워져 야구를 안 하게 됐고 중국은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야구를 시작했다. 3회말-최강 해태팀 코치로 4년 내내 우승… 꼴찌팀 쌍방울 감독 시절 쓰라림 통해 탄탄해져 어쨌든 실업야구계에서 10년간 최고 강팀으로 군림했던 한일은행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야구 잘하면 연봉 많이 받고, 이런 것도 없었다. 야구단 소속 선수도 일반 직원과 같았고 호봉제였다. 연차가 쌓일수록 월급이 올라갔다. 야구 관두면 직원으로 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야구를 관두고 지점장까지 올라간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일찍 어깨를 다쳐서 야구를 그만두고 군 제대 후 은행에서 일했다. 어깨가 망가진 건 무리한 투구, 연속 투구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실업리그 외에도 실업 우승팀, 준우승팀, 미군 4개팀, 육군, 해병대팀이 참여하는 8군 리그도 뛰어야 했다. 여기에 전국체전, 군실업대회, 각종 지방 대회 등 작은 토너먼트 대회까지 나가야 해서 우승, 준우승 하는 팀은 게임 수가 상당히 많았다. 투수 로테이션이 물론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늘 던지고 내일 또 던지라 하면 어쩔 수 없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원래 초창기 때는 무리한 투구를 많이 했다. 메이저리그 처음 시작할 무렵 전설적인 투수 사이영이 7000이닝 던지지 않았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한국이 투수들 역할 분담하는 것을 빨리 터득한 편이다. 은행에서 일을 하다 모교인 배문고에서 연락이 와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상문고를 거쳐 동국대에서 1985년까지 감독을 하다가 김응용 전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듬해 프로야구 해태 코치로 옮겨 4년 내내 우승을 경험했다. 1990년에는 신생팀 쌍방울 감독으로 부임해 3년간 지도했다. 창단 첫해는 2군에서 뛰었고 이후 LG와 공동 6위를 했는데, 아마 공동 6위 해서 스포츠조선 올해의 감독상 받은 건 내가 처음일 거다. 지금처럼 자유계약선수(FA)나 외국인선수 제도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에는 그런 게 없어 창단팀이 성적을 잘 내기가 힘들었다. 쌍방울 감독 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 지나고 보니 그때 꼴찌팀 감독으로 겪은 시련이 내 야구 인생에 엄청난 도움이 됐던 것 같다. 해태에서는 우승만 해보지 않았나. 야구는 기본적으로 전력이 세면 이기는 것이다. 100게임이 넘어가는 정규리그는 더욱 그렇다. 어떻게 보면 해태 시절 선수들에게 크게 해준 것도 없었는데 강팀이기 때문에 늘 이겼다. 그런데 약팀 감독으로 있다 보니 지는 횟수가 많아지더라. 감독이라는 자리는 이겨도 보고 지기도 해 봐야 한다. 400패는 해 봐야 뭔가 느끼는 것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잘나가다가 쓰라림도 겪어 봐야 탄탄해질 수 있다. 전력이 약한 팀은 지고 있다가 7·8회에 기껏 동점까지 따라붙었는데 마지막에 1점 뒤집혀서 진다. 강팀은 마지막에 뒤집어서 끝낸다. 과거 삼성은 6회까지만 리드하면 무조건 그 승리를 지켰지만 지금은 6회 이후에 역전되지 않나. 이것이 바로 전력상의 문제다. 류중일 (전 삼성) 감독도 몇 년 잘했는데 갑자기 전력이 뚝 떨어졌다. 아마 본인도 굴곡을 겪고 더 탄탄해질 것이다. OB(현 두산)제자였던 김태형 두산 감독도 지금은 전력이 세니 잘 이기지만 오히려 야구는 져 봐야 늘 수 있다. 계속 이기다가 어느 날 전력이 약해졌을 때 당황하게 되는데, 차라리 미리 내려와 보면 전력이 약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6회말-부담 큰 국가대표 감독 벌써 5번째… 우완 투수 없어 내년 WBC 1차예선 통과 목표 약팀이었지만 쌍방울 시절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특히 1991년 여름 해태와의 경기를 잊을 수 없다. 우리 팀에 김원형이라고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입단한 투수가 있었다. 선발로 키우려고 계속 기용했는데 1승8패, 9패까지 갔다.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래도 김원형이 커야 된다는 생각에 계속 선발투수로 내보냈다. 그런데 이날 김원형이 당대 최고의 투수인 선동열하고 맞대결을 하게 된 거다. 결과는 1-0으로 우리가 이겼다. 그 후 김원형이 6연승을 하고 ‘어린왕자’라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내가 팀을 떠난 뒤에도 김원형은 오랫동안 투수로 활약했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믿음의 야구’라고 하더라. 쌍방울 이후 OB에 가서 9년 동안 우승을 두 번 했다. 1년 뒤부터 한화를 맡아 한화에 5년 있었다. 한화 있을 때 뇌경색이 왔다. 당시에는 엄지손가락 까딱까딱 움직이는 것도 못했는데 한 달 만에 퇴원해서 전지훈련에 갔으니 기적이 일어났던 것 같다. 지금은 건강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그때 야구를 관두려고 했는데 한화 김승연 회장이 계속 하라고 독려해 줬고 그게 늘 고맙다. 두산이 내가 감독할 때 우승하고 이번에 우승했더라. (내년 열리는 WBC) 국가대표도 두산 선수들이 제일 많기도 하고, 현재 가장 전력이 세다. 아마추어, 프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루 거쳤지만 역시 국가대표 감독 자리가 부담이 제일 크다.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으로 국가대표 감독직도 벌써 다섯 번째다. 사실 지난해 프리미어12 대회 끝나고 공항에서 인터뷰하면서 “이제는 젊은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야 할 때”라고 넌지시 그만하겠다는 뜻을 비췄었는데 결국 또 내가 하게 됐다. 실은 젊은 감독들 몇 명 추천했는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달라고 해 수락했다. 물론 이 자리가 보람은 있다. WBC 1회 때 미국을 이겼을 때는 “아, 우리도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일본과도 10번 정도 싸워 많이 이겼다. 지금은 상대전적이 비슷할 것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내가 경기 전 선수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는지 궁금해하는데 그때마다 선수들에게 한마디도 안 한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일본전을 앞두고는 그냥 놔두는 편이다. 선수들도 일본전은 각자 다 느낌이 있어서 오히려 내가 이 말 저 말 하고 강조하다 보면 선수들이 긴장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WBC는 걱정이 많다. 그동안 우리가 4강도 가고 준우승도 했으니 국민 눈높이는 높아졌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만 WBC는 메이저리거 등 최고의 선수들만 나오는 대회이지 않나. 대회 수준으로 치면 ‘WBC-프리미어12-올림픽’ 순이다. 일본에서는 오타니 쇼헤이(닛폰햄) 같은 선수도 나오고 하는데 부러운 게 사실이다. 솔직히 지난 프리미어12는 우리가 우승했고, 잘했지만 오타니의 벽이 높았다. 인정한다. 야구에서는 투수가 제일 중요한데 최근 몇 년 동안 우완투수가 없어 고민이다. 일단 이번 대회는 1차 예선 통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다. 그래야 2차도 갈 수 있는 것이니까. WBC 끝난 뒤에 무엇을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프로에서 불러주면 갈 생각이 있다. 야구가 묘한 게 한번 빠지면 못 빠져 나와. 조현석 체육부장 hyun68@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김인식 WBC 감독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을 맡은 김인식(69) 감독은 특유의 뚝심과 인화력으로 ‘인내와 믿음의 야구’를 펼치는 명장이다. 선수 시절 촉망받는 우완투수였지만 해병대에 입대한 뒤 어깨 부상을 당해 24세에 은퇴했다. 아마추어 지도자 시절 동국대를 대학 최강팀으로 올려놔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두산 감독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두 차례 우승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도 한국을 WBC 준우승, 프리미어12 우승 등으로 이끌었다. ▲1947년 5월 1일 서울 출생 ▲배문중-배문고 ▲1965년 크라운맥주(한일은행) 입단, 최우수신인선수상 ▲1967년 제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 대표팀 ▲1972년 현역 은퇴 ▲1973~77년 배문고 감독 ▲1978~80년 상문고 감독 ▲1982~85년 동국대 감독 ▲1986~89년 해태 타이거즈 코치 ▲1990~92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1995~2003년 두산 베어스 감독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4~09년 한화 이글스 감독 ▲2006년 제1회 WBC 국가대표팀 감독 ▲2009년 제2회 WBC 국가대표팀 감독 ▲2015년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 감독 ▲제4회 WBC 국가대표팀 감독
  • [플레이오프 4차전] ‘리버스 스윕’ 노리는 LG…선발투수 허프 ‘불펜 대기’

    [플레이오프 4차전] ‘리버스 스윕’ 노리는 LG…선발투수 허프 ‘불펜 대기’

    벼랑 끝에 몰린 LG 트윈스가 ‘리버스 스윕’을 노린다. 그동안 5전 3승제로 진행되는 KBO리그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과 2차전을 한 팀이 모두 승리한 건 13번 있었다. 그중 끌려가던 팀이 내리 3연승에 성공한 건 1996년 현대 유니콘스(쌍방울 레이더스 상대), 2009년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 상대)까지 2번 뿐이었다. 15.4%의 확률이다. LG 트윈스가 이 확률에 도전한다. 일단 24일 열린 NC 다이노스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연장 11회 승부 끝에 2-1로 이겨 벼랑 끝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여전히 2경기 중 1패만 해도 탈락이지만, LG는 확실하게 분위기를 바꿨다. 마산으로 가는 버스에 시동을 넣기 위해 LG는 25일 NC와 4차전 총력전을 예고했다. 이날 LG는 선발투수로 우규민을, NC는 에릭 해커를 예고했다. 우규민은 후반기 기복 있는 투구를 보여줬고, LG가 치른 9번의 포스트시즌 경기 중 단 1경기만 출전한 뒤 벤치를 지켰다. 선발 싸움에서 다소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 LG는 이날 투수 전원이 불펜에서 대기한다. 그중에는 후반기 왼손 에이스로 거듭난 데이비드 허프도 포함됐다. 허프는 22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 7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 침체로 패전을 기록했다. 원래 허프는 27일 5차전 선발투수로 내정됐지만, 3차전에도 불펜 대기를 자청해 혹시 모를 등판을 준비했다. 양상문 LG 감독은 25일 “오늘은 불펜에 전원이 대기한다. 어제 던진 (헨리) 소사는 가급적이면 안 쓸 예정이지만, 어제 길게 던진 임정우는 대기한다. 허프도 게임 조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기문 테마주’ 줄줄이 하락 전환…성문전자는 급등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과 충청권 인사의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 소식에 ‘반기문 테마주’가 연일 들썩이고 있다. 대부분 테마주는 급등 하루 만에 하락 반전했지만 일부 종목은 여전히 급등세를 나타냈다. 17일 코스닥시장에서 대표적인 ‘반기문 테마주’인 보성파워텍은 전 거래일보다 300원(2.03%) 내린 1만4천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10%대의 급락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여전히 테마주 심리에 기댄 매수세가 유입되며 장중 낙폭을 줄였다. 전력산업 기자재 생산업체인 보성파워텍은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호씨가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전날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반 총장의 고향인 충북 음성에 기반을 둔 씨씨에스(-8.19%), 사내이사와 반 총장이 대학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된 휘닉스소재(-8.00%), 한창(-8.97%) 등 전날 장중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던 종목들도 일제히 하락 반전했다. 전날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가증권시장에서 성문전자는 전날 상한가로 치솟은 데 이어 이날도 18.26% 급등 마감했다. 성문전자는 이 회사의 한 임원과 반 총장이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됐다. 주식분할로 현재 거래 정지 중인 광림이 지난 3월 반기호 보성파워텍 부회장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는 소식에 이 회사를 최대주주로 둔 쌍방울은 전날 7.89% 상승한 데 이어 이날은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반 총장의 방한을 앞두고 여권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힘을 받으며 관련 테마주가 연일 출렁이는 모습이다. 반 총장은 오는 25일 제주에서 열리는 ‘제주포럼’ 참석을 시작으로 ‘한국→일본→한국’을 오가는 6일간의 방문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작년 5월 ‘2015 세계교육포럼(WEF)’ 참석차 방한한지 1년 만이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비서실장으로 충북 출신 이원종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장을 임명한 것도 반기문 테마주에 대한 투자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치인 테마주는 대부분 막연한 인맥과 시장의 소문만을 근거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테마주는 기업 펀더멘털(기초여건) 개선과 무관하게 투기 세력이 몰리며 가격이 급등락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추종 매매를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 [프로야구] 짐 될까, 힘 될까… 너는 팀 운명

    [프로야구] 짐 될까, 힘 될까… 너는 팀 운명

    2016 KBO 정규시즌이 1일 닻을 올렸다. 10개 구단은 이날 개막전을 시작으로 팀당 144경기, 총 720경기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올 시즌에는 NC, 한화, 두산이 우승 후보로 꼽히지만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박빙의 전력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혼전이 예상된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등을 거쳐 겨우내 전력 보강에 힘써 온 각 팀마다 특히 기대하는 선수가 있다. 이른바 ‘키플레이어’다. 팀 전력 강화를 위해 새로 영입하거나 부상에서 회복돼 그 어느 때보다 활약이 예상되는 선수들이다. 이들의 활약 여부가 올 판세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어서 시선을 모은다. 프로야구 해설위원 등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팀의 운명을 쥔 각 구단의 키플레이어를 선정했다. 챔프 두산, 구멍난 좌익수 걱정 없네 지난해 챔피언 두산은 간판 스타 김현수(볼티모어)의 미국 진출로 공수에 구멍이 생겼다. 현재도 김현수의 좌익수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김태형 감독은 일단 박건우를 후보 1순위로 지목했다. 이 때문에 박건우(26)는 올 시즌 남다른 기대에 차 있다. 지난해까지 쟁쟁한 선배에 밀려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올해는 욕심을 낼 각오다. 박건우는 장타력과 정확성을 겸비한 타자다. 줄곧 주전 외야 한 자리를 꿰찰 선수로 꼽혀 왔다. 그는 지난해 70경기에 나서 타율 .342에 5홈런 26타점을 기록했다. 이번 시범 14경기에서 타율 .282에 1홈런 7타점을 올렸다. 2루타 3개, 3루타 1개도 터뜨렸다. 박건우의 출장 기회가 많아질수록 두산이 걱정을 덜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체인지업 갈고닦아 삼성 뒷문 지키리 다시 왕좌를 노리는 삼성에는 심창민(23)의 활약이 절실하다. 최강 마무리 투수였던 임창용이 도박 파문으로 벌금형을 받으며 팀에서 방출됐고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셋업맨 안지만도 경찰 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삼성의 불펜이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필승조에서 뛸 것으로 보이는 심창민은 안지만이 나서지 못할 경우 유력한 마무리 후보로 꼽힌다. 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이제는 내가 팀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볼 컨트롤과 체인지업을 중점적으로 연마했다. 그 결과 심창민은 시범경기에 4차례 등판해 시속 150㎞ 이상의 위력적인 직구를 선보이며 평균자책점 0, 피안타율 .077의 인상적인 성적을 냈다. 심창민의 어깨에 삼성의 우승이 달려 있다. 석민씨 하나면 3루 수비 해결·타력 ‘업’ 삼성의 주포였던 박석민(31)은 역대 자유계약(FA) 최고액인 4년 96억원에 NC 유니폼을 입었다. NC는 그의 영입으로 단숨에 우승후보 1순위에 올랐다. 박석민은 감각적인 3루 수비에 8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등 최강 3루수로 꼽힌다. NC의 취약 포지션이던 3루 수비는 강화됐고 지난해 최고 화력(팀타율 .289, 팀홈런 161개)을 자랑했던 팀 타선은 폭발력을 더하게 됐다. 좌타자가 많은 NC 라인업에서 참을성 강한 ‘우타 거포’ 박석민의 가세로 좌우 균형까지 맞췄다. 박석민은 지난해 타율 .315에 홈런 27개를 치며 데뷔 11년 만에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 시즌을 보냈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까지 풍부한 그가 NC 첫 우승에 한몫할지 주목된다. 굴러온 3할 거포… 넥센 하위권 아닐세 채태인(34)은 줄곧 삼성의 중심 타선에 자리했다. 삼성의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삼성은 ‘도박 파문’에 휩싸인 마무리 임창용을 퇴출시키고 윤성환과 안지만의 투입도 불투명하다. 그러자 채태인을 넥센에 내주고 투수 김대우를 받는 고육책을 단행했다. 주포 박병호와 유한준의 이탈로 고심하던 화력의 팀 넥센도 채태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좌타 거포 채태인은 당장 넥센의 중심 타선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타율 .348에 8홈런 49타점으로 활약했다. 지난 9시즌 동안 통산 타율 3할대(.301)를 감안하면 변치 않는 활약이 예상된다. 뜻하지 않게 버림받은 그가 오기까지 발동할 경우 하위권으로 점쳐진 넥센의 ‘복덩어리’로 거듭날 수 있다. 흔들린 투수왕국 SK 구할 희수 왕자 SK는 막강 불펜을 구축했던 정우람(한화)과 윤길현(롯데)을 한꺼번에 잃어 뒷문이 허전하다. SK는 경험이 풍부한 박희수(33)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다. 그는 예리한 제구력을 앞세워 2013년 24세이브로 맹활약했고 2014년에도 13세이브로 마무리 입지를 굳혔다. 2012년에는 홀드왕(34개)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온전치 않은 몸 상태 탓에 14경기에서 2홀드, 평균자책점 5.40으로 부진했다. 올 시범경기에서도 7경기(6과3분의1이닝)에서 8안타 6사사구 7실점(6자책), 평균자책점 8.53으로 제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 타선 강화로 기대를 부풀리지만 허약한 불펜으로 한 시즌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다. 박희수의 활약이 더 절실하다. ‘슬러브’ 장착한 은범 독수리 비상할 때 송은범(32)의 지난해 성적은 초라했다. FA 선수로 연봉 4억 5000만원에 한화로 이적해 치른 첫 시즌에서 2승 9패, 평균자책점 7.04로 고개를 떨궜다. 2013년부터 세 시즌 연속 7점대 평균자책점이다. 그는 지난겨울 절치부심했다. 스프링캠프 동안 니시구치 후미야 투수 코치로부터 ‘슬러브’(커브와 슬라이더의 중간 공)를 전수받았고 체인지업도 가다듬었다. 그 결과 시범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80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KIA와의 마지막 등판에서는 3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기대감을 더했다. 에이스 로저스의 팔꿈치 부상으로 송은범의 비중은 더 커진 상황이다. 14년차 송은범이 부진을 씻어내고 한화 돌풍에 앞장설지 이목이 쏠린다. KIA 투수진 OK… 제발 4번만 살아나라 KIA는 지난해 팀 타율 꼴찌(.251)였다. 무엇보다 주포 나지완(31)이 지독히 부진했다. KIA는 올해 막강 선발진을 구축하며 명가 부활을 꿈꾼다. 빅리그 출신 헥터와 프리미어12 미국대표팀의 지크를 영입했고 윤석민까지 포함시켜 양현종과 튼실한 선발진을 꾸렸다. 마무리 임창용도 후반기 가세할 태세다. 하지만 허약한 타선에는 변화가 없다. 결국 방망이가 팀 운명을 좌우할 전망이다. 타선이 살아나려면 나지완이 제 몫을 해 줘야 한다. 그는 2009년 SK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포를 날린 주인공이다. 2014년까지 6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도 기록했지만 지난해 타율 .253에 7홈런 31타점에 그쳤다. 체중 10㎏을 감량하며 절치부심한 나지완은 올해 30홈런 이상을 일궈 믿어준 감독과 팬에게 보답할 각오다. 역전패 그만! 우리 롯데가 달라질게요 올해 KBO리그 관전포인트 중 하나는 ‘달라진 롯데’다. 지난해에도 롯데는 고질적인 불펜 난조 탓에 막판 역전을 허용하는 경기가 잦았다. 올 시즌 롯데는 불펜 강화를 위해 FA 시장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손승락(34)을 4년 60억원에 영입해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게 됐다. 손승락은 4년 연속 20세이브를 달성하는 등 꾸준한 구위를 자랑했다. 그가 올 시즌에도 20세이브 이상을 올린다면 구대성 이후 역대 두 번째로 ‘5년 연속 20세이브’를 일구게 된다. 손승락은 직구와 커터 위주의 단조로운 투구 탓에 최근 3년간 세이브가 46-32-23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겨울 캠프에서 포크볼과 슬라이더를 연마해 반등을 노린다. 올 시즌 롯데의 운명은 손승락의 활약과 무관하지 않다. LG 선봉 ‘봉 기사’ 5선발로 새출발 지난해 마무리 봉중근(36)은 잇단 부진에 시달렸다. 어느덧 노장 반열에 들어선 봉중근에게 마무리는 정신적,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다. 그러면서 시즌 막판 선발로 나서 보직 변경을 시도했다. 봉중근은 양상문 감독의 결단으로 5선발로 낙점돼 올 시즌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다. 일본 오키나와 캠프에서 허벅지 통증을 호소했다. 다행히 현재 통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선발 시험 무대인 시범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올 시즌 확 달라진 모습으로 도약을 다짐한 LG로서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2군에서 실전 등판을 한 뒤 정규리그에 뒤늦게 나설 전망이다. LG의 기대가 큰 만큼 그의 활약 여부는 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막내 kt 큰형님, 부상 딛고 부활 노린다 ‘막내 구단’ kt 선수들에게 이진영(36)은 한없이 큰 존재다. 1999년 쌍방울에서 데뷔해 프로 18년 차를 맞이하는 이진영은 프로야구 통산 타율이 .303에 달하며,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며 ‘국민 우익수’라고 불린 프로야구 정상급 선수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이진영에게도 이번 시즌은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에서 kt로 이적해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 게다가 지난달 시범경기를 앞두고는 우측 갈비뼈에 미세 골절을 당했다. 그 여파로 시범경기에서도 8타수 1안타에 그쳤다. 상황이 어렵지만 이진영은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훈련에도 열심히다. SK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난 후 9년 만에 재회한 조범현 kt 감독도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한재희 기자 jh@seoul.co.kr·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스스로 한계 만들면 진다 야구도 인생도 그렇다”

    “스스로 한계 만들면 진다 야구도 인생도 그렇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 최고 인기 유행어는 단연 ‘마리한화’였다. 최근 6년간 다섯 차례나 꼴찌를 기록했던 ‘동네북’ 한화가 2014년 11월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74)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지더라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상대를 괴롭히는 ‘쉽지 않은 팀’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매 경기 숨 막히는 총력전을 펼친 한화는 지난해 전반기에만 27번의 역전 드라마를 썼다. 눈을 뗄 수 없는 한화 경기에 팬들은 마리화나처럼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의 ‘마리한화’라는 별명을 붙였고, 한화는 전년 대비 38.3%나 증가한 65만 7385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며 2015년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떠올랐다. 한화 열풍의 중심에는 김 감독이 있었다. 승리가 간절했던 한화 팬들은 인터넷 청원, 본사 앞 1인 시위까지 벌이며 적극적으로 김 감독을 원했다. 그의 한화행이 결정된 이후 야구팬들의 관심은 줄곧 ‘김 감독이 만들어낸 SK 신화를 한화에서도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렸다. ‘김성근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한화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 마지노선인 5위 안팎에서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는 등 달라진 전력을 과시했다. 올 시즌 한화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핵심 선수들을 영입하며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김성근의 한화는 한국 프로야구의 또 다른 신화로 남을 수 있을까. 스프링캠프 막바지 치열한 담금질을 하고 있는 김성근 감독을 지난 26일 일본 오키나와현 아야세 고친다 구장에서 만났다. ●‘마리한화’ 이끌어 낸 악바리 야구 대장 따뜻한 오키나와에 때아닌 한파가 찾아왔다. 비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아침저녁 날씨는 마치 한국의 겨울 같았다. 김 감독도 감기를 피해 가지 못했다. 말을 하기 힘들 정도로 목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김 감독은 평소처럼 고친다 구장에 가장 먼저 나와 제일 늦게 숙소로 들어갔다. “아까 지역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한화 우승 못한다고 했습니다. (기사가 나가면) 대전에서 난리가 날 거예요. 하지만 현실입니다. 더 뜨거운 경쟁이 필요해요.”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다섯 살, 일반 회사원이라면 은퇴 시기가 훨씬 지났지만 김 감독의 열정은 여전했다. 2007년 중위권 팀이었던 SK를 맡아 팀을 네 번 한국시리즈에 올려 놓고, 세 차례 우승컵을 안겨주며 ‘우승 청부사’로 불렸던 그다. 비주류 출신에 매번 구단(현실)과 부딪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는 김 감독의 모습에는 야구계뿐만이 아니라 진정한 리더에 목마른 한국 사회가 뜨겁게 반응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감독 자리에 있는 그가 무엇 때문에 계속 도전을 하는지 궁금했다. “물러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요? 저는 나이를 의식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이를 잊어버려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들면 점잖게 있으라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나이 속에서 헤매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가 야구를 계속 하는 이유도 “불러주는 곳이 있어서”다. 그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이라며 “70대이지만 20대, 30대 젊은 친구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의 ‘경쟁자’인 2030세대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어른’ 중 한 명이다. 강연을 하면 50~60대 기업 임원진부터 20대 대학생까지 그의 철학을 듣기 위해 몰려온다. 포기를 모르는 ‘김성근 야구’에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야구도 인생도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면 져요.” 개인의 의지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개인에게 한계를 지어주는 시대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그렇기 때문에 더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힘든 세상이죠. 그런데 실패했다고 포기해버리면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 앞가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상대는 나를 절대 쉽게 보지 못해요. 그런 과정이 가치가 있는 것인데 이상하게 한국 사회는 그 과정을 보지 않아요.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좌절을 하는 것도 결과만 중요시하는 사회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오는 위기가 시행착오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때 그는 “우승 못하는 감독”으로 불렸다. 1996년 쌍방울 감독으로 부임해 최약체였던 팀을 정규리그 2위까지 끌어올리는 기적을 연출했지만 감독 커리어에 우승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하위권 팀을 중상위권으로 올려놓는 것은 잘하지만 큰 경기는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야신’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공교롭게도 SK 감독 시절 첫 우승을 하고 난 뒤였다. 그의 나이 66살이었다. ●“‘무에서 유 창조한 감독’ 기억되고 싶어” “마라톤 경기를 한다고 칩시다. 늘 2,3등 했던 선수가 1등 하는 것과 100등 했던 선수가 3등 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승부의 세계에서 1등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 1등’인지, ‘어떤 3등’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젊은 사람들이 쉽게 물러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강조했다. 야구 인생 60년을 향해 가는 그에게 야구란 어떤 존재일까. “야구는 제게 물입니다. 물은 평소에 잔잔하다가도 어느 순간 사람을 집어삼킬 만큼 무서운 존재죠. 동시에 물이 없으면 모든 생물이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그는 “평생 야구를 했지만 아직도 야구를 잘 모르겠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 은퇴 이후를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래 살아야죠. 저를 불러줄 때까지 야구를 할 겁니다. 안 불러줄지도 모르겠지만(웃음)…” 그는 “우승 잘하는 감독도 좋지만 먼 훗날 사람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야구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3년 정도는 한화를 맡으면서 (예전)SK 같은 팀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며 다시 필드로 나갔다. 글 사진 오키나와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금융실명제·공직 재산공개… OECD 1년만에 외환위기

    금융실명제·공직 재산공개… OECD 1년만에 외환위기

    ■ YS가 남긴 功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내외의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功)과 과(過)가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역사적인 평가와 재평가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김 전 대통령 시절의 대표적인 공적으로는 ‘금융실명제 도입’ ‘군 사조직(하나회) 숙청’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일제 잔재 청산’ 등이 꼽힌다.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등도 주요 성과로 기록됐다. 김영삼 정부의 첫 번째 업적으로 금융실명제를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모든 금융 거래를 실제 명의로 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2년 ‘이철희·장영자 거액 어음 사기 사건’ 발생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제도 도입 전에는 가명이나 차명, 무기명으로도 금융 거래가 가능해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의 음성적 거래가 심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를 발동했다. 그는 당시 “국회의 법 개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금융시장 동요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 ‘긴급명령’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또 “금융 거래에서 부정부패, 부조리를 연결하는 고리를 차단해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데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의 ‘검은돈’을 걷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리적 과세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금융실명제는 부동산 실명제로 이어졌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자금이 부동산 투기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1995년 1월 6일 부동산 거래 실명제 실시 계획이 발표됐다. 입법도 단 3주 만에 이뤄졌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정치 개혁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은 군의 대표적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했다. 하나회는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포함된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주도해 만든 조직이다.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에 참여한 군부세력들이 주요 회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일 만인 1993년 3월 8일 하나회 멤버였던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다음날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모두 깜짝 놀랬제”라며 웃었다고 한다. 이어 군부 실세들이 줄줄이 경질됐다. 모두 42개의 별이 날아가며 군사 정권의 종식을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전격적으로 숙청을 단행해야만 저들이 규합할 시간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베일에 가려 있었던 30조원 규모의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비리에도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쇠말뚝 뽑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과 같은 일제 잔재 청산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1993년 8월 광복절을 앞두고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지시가 떨어진 이후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8월 15일 중앙돔 해체가 시작돼 1996년 11월 13일 지상 부분 철거까지 모두 완료됐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취임 사흘째인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며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다. 17억 7822만 6070원이었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화의 첫 출발점이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자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판검사들이 잇따라 재산을 공개했고 이 과정에서 전·현직 국회의장의 부정 축재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위 관료들의 부동산 투기 정황도 대거 노출됐다. 또 청와대 국무회의나 각종 회담 자리에서 제공된 ‘칼국수’는 개혁의 상징이 됐다. 시민사회운동 활성화, 정상외교 확대, 지방자치제 부활, 2002년 월드컵 유치 등도 김 전 대통령이 일궈낸 성과다. 현행 초·중·고교에서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제도 기틀을 잡은 1995년 5·31 교육개혁도 김영삼 정부의 공으로 평가된다. 민선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켜 지방분권 시대를 연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 YS가 남긴 過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대한 기대감은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지만 동시에 금융위기 사태를 초래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은 패착으로 인식된다. 김영삼 정부는 9%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이 이뤄지자 1996년 12월 OECD에 가입했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40여년 만에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여권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야권은 “외화 출자, 개발도상국 지원 등 의무 사항이 많다”며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OECD 가입은 1년 만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방만한 경제 운영과 부실한 대처는 결국 ‘외환위기 사태’를 불러왔다.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맞았다. 삼미와 기아자동차, 쌍방울, 해태, 고려증권, 한라그룹이 연이어 쓰러졌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었다. 해외 금융기관들의 부채 상환 요구가 쇄도했고 정부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불 유예)을 가까스로 면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판이 김 전 대통령과 한국에 쏟아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11월 22일은 공교롭게도 18년 전인 1997년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의 개인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잊지 못할 ‘역사적인 날’이 된 셈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공기업 민영화와 재벌 정책 등에서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 공정 거래를 강조하면서도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펼친 까닭에 ‘대재벌’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세계화’ 역시 방향 설정은 좋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만 생기면 내린 고위 공무원 경질이라는 ‘충격적 처방’은 관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과도한 사정은 역풍을 가져왔다. 정권 말 정작 자신의 차남인 현철씨가 알선 수재·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부패 척결 드라이브는 빛이 바랬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금융실명제에서 IMF까지 ‘대통령 김영삼’의 공과

     22일 새벽 서거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공과는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 뚜렷하게 갈린다.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등 과감한 개혁 정책을 펼쳤다는 점은 주요 성과로 기록된다. 하지만 무리하게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다가 임기 말 외환위기를 맞은 점은 김 전 대통령의 과(過)로 지적된다.  5·16 군사정변 이후 31년간 동안의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 시대를 연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초 과감한 개혁으로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 마자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사회 투명성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또 과거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줄줄이 구속시켰다. 쇠말뚝뽑기, 구조선총독부 철거와 같은 일제 강점기 잔재 청산 작업이 이때 이뤄졌다.  특히 “변화와 개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던 김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둘러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우선 금융·부동산의 양대 실명제를 이룩해 부패 차단과 과세 형평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성과로 꼽힌다. 당시 가명과 차명을 쓴 금융거래가 각종 비리·부패 사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자,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발동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했다. 또 금융실명제 실시로 부동산 투기 우려가 높아지자, 1995년 부동산 실명제를 전격 도입했다.  대외적으로는 임기 전반기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점도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OECD 가입은 급속하게 시장개방과 자본 유출입을 허용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초래했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이어진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는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아가게 된다. 같은 해 삼미그룹과 기아자동차의 도산 사태가 터졌으며 쌍방울그룹, 해태그룹, 고려증권, 한라그룹도 차례로 위기를 맞았다. 해외 금융기관의 부채 상환 요구에 외환보유액이 바닥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을 가까스로 면했다.  집권 초 지지율이 90%에 달했던 김 전 대통령은 부패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아들 김현철씨의 뇌물수수 및 권력형 비리가 드러나자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IMF 사태와 친인척 비리는 정권교체의 빌미로 작용해, 1997년 대선에서 영원한 ‘경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주게 된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하프타임]

    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에 조원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8일 이종운 감독을 경질하고 조원우(44) SK 와이번스 수석코치를 제17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조 신임 감독은 계약기간 2년에 계약금 3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7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부산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조 신임 감독은 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해 2008년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15년간 통산 1368경기에 출전해 타율 .292에 68홈런 443타점 123도루를 기록했다. 박인비 ‘LPGA 명예의 전당’ 가입 눈앞 미국 골프전문 매체 골프채널은 8일 ‘골프 여제’ 박인비(27)가 올해 안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명예의 전당 가입 자격을 획득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명예의 전당 가입 요건은 LPGA 투어에서 10년 이상 뛰면서 대회 우승 등에 부여하는 포인트시스템으로 27점을 채워야 한다. 현재 박인비는 메이저 대회 7승(14점), 일반 대회 9승(9점), 2012년 최저타수(1점), 2013년 올해의 선수(1점) 등 25점을 획득했다. 올해 남은 대회에서 2승을 거두거나 올해의 선수와 평균 타수 부문을 석권하면 27점을 채울 수 있다. 컵스, 피츠버그 꺾고 7년 만에 NLDS 시카고 컵스가 강정호가 빠진 피츠버그를 꺾고 7년 만에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에 올랐다. 컵스는 8일 피츠버그 PNC 파크에서 열린 NL 와일드카드 결정전 단판 승부에서 피츠버그를 4-0으로 완파했다. 컵스는 10일부터 세인트루이스와 리그 디비전시리즈(5전3승제)를 벌인다. 지난 9월 무릎을 다친 강정호는 가을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경기 전 선수 소개 때 이름이 불렸다. 유니폼을 착용한 강정호가 휠체어를 타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홈 팬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고 강정호는 손을 흔들어 답했다.
  • [연예 포스토리 16] 20대에 할머니역 제안받고 대본 던진 김수미가 마음 돌린 이유는?

    [연예 포스토리 16] 20대에 할머니역 제안받고 대본 던진 김수미가 마음 돌린 이유는?

    최근 김수미는 한 예능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과한 감정 표현으로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요. 이 일로 그녀는 방송 하차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해서 좋은 듯하면서도, 때로는 너무 화끈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녀의 성격. 과거 그녀와 얽힌 사연들을 통해 실제 성격이 어떤지 함께 추측해보시죠. ●대학 입학과 바꾼 연기자 생활 1949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김수미는 70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합니다. 그가 탤런트 시험을 본 데에는 지인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김수미가 고3이던 해에 그녀의 부모님은 모두 그녀 곁을 떠나고 맙니다. 대학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내줄 사람이 없어 김수미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데요. 상심한 그녀에게 한 지인이 “너 배우해도 되겠다”며 공채 시험을 볼 것을 권했고, 김수미는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어머니 역’으로 데뷔한 고두심보다 더 억울한 그녀의 사연 배우 김수미를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시킨 캐릭터는 단연 전원일기의 ‘일용엄니’일 겁니다. 지난 포스토리 14회에서는 고두심이 엄마 역할로 데뷔하며 “대한민국 감독들은 다 눈이 삐었다”라고 불만을 표했다고 언급했는데요. 김수미는 고두심보다 더 억울했을 법합니다. 스물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몸빼바지와 나일론 버선 차림으로 왈가닥 할머니를 연기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김수미는 ‘동갑인 고두심은 꽃다운 새댁 역인데 내털리 우드를 닮은 서구적 미인인 내가 할머니 역할이라니!’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국민할매 일용엄니’의 탄생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수미가 연기한 ‘일용엄니’는 전원일기에서 최고의 감초 캐릭터로 자리매김합니다. 20대의 나이에 할머니 역할을 제안받고 대본을 던져버렸던 김수미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습니다. ‘할머니 역이던 귀신 역이던 확실하게 하자’란 각오로 그녀는 일용네를 신명나는 역으로 재창조합니다. 흔히 ‘할머니’라 하면 무기력한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김수미는 자신이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환갑을 맞은 할머니가 그녀 또래와 줄넘기를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김수미의 어린 시절 경험과 창의력 덕분에 ‘일용엄니’라는 세기의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향심 넘치는 의리女 김수미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 하차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김수미의 화법은 굉장히 직설적인데요. 말투가 직설적인 사람들을 보면 왠지 굉장히 의리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김수미는 이 공식에 들어맞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1998년 3월, 김수미는 모그룹 부도 이후 경영난을 겪고 있는 프로야구 쌍방울 구단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데요. 김수미는 전북 이리가 연고인 그룹 코리아나에게도 함께 모금활동을 할 것을 제안했고, 코리아나는 이에 응했습니다. 당시 쌍방울 구단 박효수 사장은 “IMF시대에 힘을 모아줘 고맙고, 이런 노력들이 애향심을 높이고 구단의 자부심을 키워 난국을 헤쳐나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구단은 리그에 참여,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수미 삭발, 알고 보니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7월 김수미는 악성댓글을 보고 충격받아 머리를 직접 잘라버렸다고 밝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헤어스타일이 그리 낯설지 만은 않은데요. 실제로 김수미는 과거에도 여러 번 삭발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녀는 1998년 머리를 짧게 자른 이유에 대해 “심사가 복잡하고 미묘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이 “엄마는 알 거 없어”하며 툭 내뱉는 말해 섭섭해지고, ‘나는 혼자다’라는 서글픔이 밀려온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그녀가 머리를 자른 것도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 일이겠죠? 댓글을 쓰는 네티즌들이 연예인의 심정을 딱 한 번만 더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연예인이 구설수에 오를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우선이겠지만요. ●“책을 쓰니 내 삶을 더 열심히 살게 됐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취미’가 있다는 건 참으로 복받은 일인 것 같습니다. 김수미는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녀는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가끔 도망가 버리고 싶다’, ‘미안하다, 사랑해서’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에세이스트입니다. 최근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써왔는데 제 삶을 더 열심히 살게 됐어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죠.”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깨닫고 싶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김수미는 대학에 지원할 때도 국문학과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당시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그녀는 대학생활을 경험했는데요. 김수미는 방송에서 “대학을 정말 다니고 싶었는데 못 다녀 아쉬움이 남았다”라면서 “캠퍼스를 거닐어보는 게 꿈이었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제일 중요한 건 깨닫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배움의 장에 있는 많은 분들이 김수미의 발언을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한번 더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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