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물량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6세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문명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남미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478
  • 국제선명회 북 지원용 곡물/미,10만t 반출 승인

    미국 정부가 국제선명회(총재 딘 허시)의 대북한 곡물 추가 공여분 10만t 반출을 공식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한국선명회(회장 이윤구)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국제선명회측이 지난 4월 19일 제출한 「대북 10만t 양곡지원건」에 대해 적성국 교역법 조항에 따라 5월 30일자로 승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 재무부가 국제선명회측에 통보한 회신에 따르면 옥수수,쌀,밀,식용유 등 인도적 목적으로 제공되는 대북 지원곡물은 10만t까지 어느 나라에서든지 구입해 공급이 가능하고,승인 유효기간은 96년 5월 31일까지 1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선명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대만,캐나다,태국등 20여개국 국제 선명회지부가 소속국 잉여농산물을 제공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조만간 국제선명회 총재단 회의에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그러나 우리측이 당국차원에서 조건없는 대북 곡물제공의사를 밝힌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선명회측이 민간차원에서 10만t이라는 엄청난 대북 지원물량을 모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북은 남북대화로 돌아와야(사설)

    우리는 북한이 최근 보이고 있는 태도에 실망하며 모든 문제는 남북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한다.최근 북한이 『한국과 쌀문제에 관해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일본측에 전달해왔다』고 일본정부의 관방장관이 밝힌 사실이나 지금 콸라룸푸르에서 계속되고 있는 북한과 미국간 경수로회담에서 북한이 10억달러규모의 경수로부대시설비용을 추가부담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한국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실리만을 챙기려는 모순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경수로지원비는 물론 부대시설도 해주게 되면 결국 그 태반을 낼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현실을 북한측이 더 잘 알고 있다.미국도 그 문제는 한국형경수로를 수용한 뒤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경협차원에서 논의할 일이라고 일러주었으나 북한은 막무가내로 미국측에 요구하고 있다. 그런 억지에서 벗어나서 경협차원의 남북대화를 갖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우리 정부는 이미 그 문제는 근본적으로 북한과 미국간에 논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못을 박은 바 있다.문제는 결국 남북대화인 것이다. 한국돈을 받아내도 미국을 통해 받으면 괜찮다는 북한의 논리란 어떻게 된 것이며 경수로건설도 미국기술자들이 들어가 하면 되고 한국기술자들이 들어가면 체제가 위협을 받는다는 발상은 또 어떻게 가능한가.북한은 그동안 줄기차게 한국을 비방해왔지만 「미제축출」은 그보다 더 큰 북한정권 존립의 대의명분이 아니었던가. 84년 수재때 북한쌀을 우리가 조건 없이 받았듯이 북한이 지금 원하는 쌀을 조건 없이 주겠다고 한 것은 우리정부다.그런 말까지 일본을 통해서 하면 국가적 체면이 선다는 것인가.북한의 「주체사상」이란 민족주체인가 아니면 정권주체인가. 남북대화는 남북간 모든 문제의 시작이고 결론인 것이다.북한은 보다 현명하고 보다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 대북 식량지원 성사되려나/북 「쌀회담 우회수용」과 정부 입장

    ◎「한국 쌀 반입」 알려지면 체제동요 우려/제3국통해 민간차원 지원 희망하는듯/정부 “당국간 협의 필수”… 평양직접반응 기대 대북식량지원의 성사여부가 중대한 분기점에 처한 것 같다.북한이 공식적으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제3자인 일본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관방장관이 5일 『한국과 쌀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는 뜻을 북한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김태지 주일대사등 외교채널을 통해 북한의 이같은 의사를 간접확인했다는 후문이다.이에 따라 현충일인 6일 나웅배 통일부총리·송영대 차관등 당국자들은 구수회의를 갖는등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식량부족 적발한듯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쌀문제와 관련,남북 당국간 회담에 응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다.이가라시를 통한 간접적 의사표시를 북한이 한국쌀을 수용하겠다는 공식반응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측은 대북쌀제공과 관련,당국간 최소한의 절차협의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송 차관은 6일 남북직통전화와 편지·방송통지문등 구체적 통보수단까지 제시하면서 『직접적 반응을 기다리겠다』고 밝히는등 자세를 분명히 했다. 물론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이 내핍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우리측의 식량지원을 무조건 거부할 수 만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북한 곡물사정은 90년대 들어 줄곧 생산량이 연간 수요량을 밑돌고 있다.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백81만t(90년)·4백43만t(91년)·4백27만t(92년)·3백88만t(93년)·4백13만t(94년)인데 비해 연간 총수요량은 대략 6백72만t이었다.해마다 2백만t이상씩 쌀이 부족한 것이다.북한은 부족분을 해외도입으로 채우려 하지만 만성적 외화부족으로 이마저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적 식량난 강조 어쨌든 우리측은 이번에 일본채널을 통해 식량문제에 대한 북한당국의 절박감을 재확인했다.북측은 최근 노동신문을 통해 「식량위기로 세계 수억인구가 굶주리고 있다」면서 식량난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임을 강조,우리쌀을 받기 위해 은근히 명분을 축적하는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식량난이절박하다 해도 우리측에 공식적인 SOS를 보낼 가능성은 여전히 작은 것으로 보인다.북한당국의 자존심이라는 걸림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화 나설지 미지수 더욱이 북한당국은 남한쌀 제공사실이 북한주민에 알려지면 체제동요가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이 때문에 북한은 가능한 한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으로,그것도 제3국을 통해 우리쌀을 받아들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대북쌀지원 실현여부는 북측이 우리당국과의 직접대좌를 언제쯤 결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와타나베 전일 외상 만언을 듣고/신희석(기고)

    ◎일 신보수주의의 한심한 역사왜곡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일본외상이 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의 근거가 되었던 한·일합방조약은 평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결되었다고 발언하여 또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파문이 커지자 「평화적」이라는 발언을 취소하고 사죄의 뜻을 표명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의 발언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역대 일본의 총리나 각료,국회의원등 지도급 인사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를 비롯해 최근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이런 발언을 되풀이해 왔다. 그들의 발언양상은 마치 휴화산과도 같다.조용해질까 하면 또 다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발언을 되풀이함으로써 한·일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한·일 우호협력관계의 중요성,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한·일관계를 가일층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임을 감안할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와타나베전외상의 발언은 세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시기적 문제점이다.일본정부가 전후청산을 위해 노력해왔고 일본국회가 중·참 양원에서 부전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정부가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일본에 의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이에 강력히 대처하기로 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겠다. 전후 50주년을 맞이해 부전·사죄결의를 하자는 일본 연립정권의 노력이 진행되는 시기에 이런 도발성 발언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겠다.더구나 일본과 북한의 수교교섭 재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발언의 진의를 의심하게 한다.왜냐 하면 일본의 경제협력과 자본,기술,그리고 쌀을 필요로 하는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시기적으로 와타나베 발언에 강력 대응하기에는 불리한 입장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둘째,발언내용의 문제다.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 지배」를 한 적이 없다니 도대체 와타나베전외상의 역사인식과 양식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본의 보수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애국주의적인 감상주의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국내에 신보수주의 내지는 신민족주의 사조가 있음을 알고 있다.하지만 이같은 일본 국내의 사상사적 흐름과 배경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와타나베 발언은 한·일관계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매우 한심한 노릇이다.한·일합방은 전전의 일본이 제국주의 대륙침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책략으로 이루어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강화도수호조규 을사보호조약등의 불평등조약 역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상까지 지낸 일본의 지도급 정치인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솔한 발언을 한 것은 당연히 규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다케시타,가이후,호소카와등 역대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일본의 기존 자세로부터도 크게 후퇴하고 있다.이같은 여건 속에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우호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셋째,상황적으로도 적당하지 못하다.와타나베전외상이 도치기현 자민당지구대회라는 공식 장소를 빌려서 이런 발언을 경솔하게 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소양에도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향후 일본 수상을 바라고 있는 지도자가 이같은 상황 판단을 한다면 대국 일본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한다.아·태 협력시대에 제일 중요한 동반자는 한·일 양국이다.이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 지도급 인사의 경솔한 발언은 우리를 다시 슬프게 하고 있다.우리는 두 민족 모두를 위해 오로지 평화스러운 한·일관계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다.
  • “북은 쌀협상 직접 나서라”/정부 「조건없는 지원」 재확인

    정부는 6일 북한에 쌀등 식량을 조건없이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북한이 이를 위한 당국간 절차협의에 직접 호응해 올 것을 촉구했다. 송영대 통일원차관은 이날 북한이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 일본 관방장관을 통해 우리측과 쌀문제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간접 표명한 것과 관련,통일원에서 쌀지원 실무대책협의를 마친뒤 『정부는 일본 정당으로부터 북한이 한국쌀을 받겠다는 입장을 전해 받았으나 현재까지 우리와 절차협의를 갖겠다는 북한의 공식 반응은 전달받지 못했다』며 직접대화를 촉구했다. 송 차관은 『우리는 이 기회에 북한측에 아무런 정치적 조건없이 쌀과 다른 식량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재확인한다』고 전제,『쌀 제공문제와 관련,북한측에 절차문제 논의를 위한 당국자 접촉을 이미 제의해 놓고 있는 상황이므로 북한이 직접 우리의 제의에 호응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김정일 주석직 승계 새달말께 이뤄질듯”/미 리처드슨 의원

    빌 리처드슨 미하원의원(민주·정보위소속)이 6일 하오 나흘간의 북한방문일정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했다. 리처드슨 의원은 이날 북경을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방북기간동안 북한의 정부·당·군 고위인사들과 9차례에 걸쳐 회담을 갖고 쌀지원문제,우성호 송환,경수로 협상등 현안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리처드슨 의원은 『평양에서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양형섭 최고인민의회의장 등 고위지도자들을 두루 만났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몇몇 고위인사들은 김일성의 사망 1주기를 맞는 오는 7월말쯤 북한이 애도기간을 끝내고 김정일의 국가주석과 노동당 총비서직 취임과 관련된 중대발표를 할 것임을 시사했다』면서 북한은 지난해 12월 첫 북한방문 때에 비해 김정일체제가 더욱 안정된 듯 보였다고 말했다.리처든슨 의원은 이에 앞서 북경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교적 자세히 방북결과를 밝혔다. 리처드슨 의원은 지난 3일부터 아시아지역 국가 방문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며 7일 이한한다.
  • 북 “한국과 「쌀회담」 용의”/일 관방장관 밝혀

    ◎직정여당에 응할뜻 전달 【도쿄 로이터 연합】 북한은 한국과 식량원조와 관련된 회담에 응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 일본 관방장관이 5일 밝혔다. 이가라시 장관은 이날 지지(시사)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일본 집권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들은 북한으로부터 사실상 한국과 쌀문제에 관해 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당 중에서는 유일하게 북한과 긴밀하고 정기적인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당 소속인 이가라시 장관은 그러나 북한에 관한 정보의 출처나 남북한간의 회담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북한의 관영 언론매체들은 식량난이나 식량원조 요청 등과 관련된 내용을 보도하지 않고있다. 일본관리들은 북한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2백만t의 쌀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와타나베망언 강력 대처/당정방침/“파렴치한 역사왜곡”… 취소 요구

    정부는 4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일본중의원 의원의 한일합방 조약 망언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강력히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논평을 통해 『한일합방조약은 우리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음이 명백하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히고 『특히 와타나베의원의 발언은 다시한번 일제 36년 식민지 지배의 쓰라린 역사를 상기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망언으로 부총리겸 외무부장관까지 역임한 인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무부는 이와 관련,일단 일본정부의 조치여부를 지켜본뒤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파렴치한 망언을 즉각 취소하고 사과하라』면서 『일본의 일부 지도층이 망언을 계속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지역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일 합방조약 우호적 체결/식민지지배 한적 없다”/와타나메 망언 물의 【도쿄=강석진 특파원】 와타나베 미치오(자민) 전회상은 3일 일제의 한반도 강점(1910∼1945)의 근거가 됐던 한일합방조약은 우호적으로 체결됐으며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지만 식민지 지배한 적은 없다고 망언,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4월 연립여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바 있으며 최근 북한에 대한 쌀 제공을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적극 추진하고 있는 와타나베 의원은 이날 도치기현의 한 강연우 기자회견에서 『한일합방조약은 무력으로 한 거서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성립됐으며, 식민지 지배라는 단어는 전후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등 어떤 공적 문서에도 씌어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북,이집트에도 쌀 요청

    【도쿄 연합】 일본에 쌀을 빌려달라고 공식 요청한 북한은 이집트에도 쌀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산케이신문이 외무성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2일 보도했다. 북한 이성록 국제무역추진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연립여당 방북단장과 가진 회담에서 「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태국·일본 외에 구체적으로 나라이름이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또 북한이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중동지역에도 광범위하게 쌀 지원을 요청한 것은 식량사정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추곡 올 9백60만섬 수매/작년보다 90만섬 줄여

    ◎WTO허용 최대 물량/정부 잠정 책정 올해 정부의 추곡 수매량이 9백60만섬으로 잠정 책정됐다.지난 해의 수매량인 1천50만섬보다는 90만섬이 적다. 2일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농림수산부는 지난 달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올해 정부의 추곡수매량 중 농협의 차액지급 수매 방식으로 사들일 양을 4백10만섬으로 정했다.이에 따라 올해 정부의 추곡 수매량은 이미 올 예산에 편성돼 있는 정부의 직접 수매량 5백50만섬에 농협의 차액지급 수매분 4백10만섬을 포함,9백60만섬이다. 농협의 차액지급 수매는 예컨대 시중 가격이 80㎏ 한 가마에 10만원인 쌀을 농협이 11만원에 사들인뒤 정부가 나중에 차액인 가마당 1만원씩을 정부 예산으로 농협에 보조해 주는 수매방식이다. 이같은 정부의 올 추곡수매 계획량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 의해 올해 처음 적용되는 국내 보조금의 감축을 고려해 사들일 수 있는 최대의 양이다.WTO의 규정은 정부 수매가와 시중가의 차액에 수매량을 곱한 액수인 국내 보조금을 올해부터 오는 2004년까지 10년동안 13.3%를 감축하도록 돼 있다.
  • 한·러/연해주서 합작 쌀농사/민간차원 추진

    ◎연 35만섬 생산… 북과 물물교역 한국의 민간단체와 러시아의 기업이 러시아 연해주지방에서 합작투자로 쌀을 재배해 북한에 제공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은 지난 달 26일 연해주를 방문,이 지역에 농지를 소유한 포세트사 대표 발렌틴 박과 「우리나라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 러시아가 농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쌀을 재배한다」는 내용의 의향서에 합의했다고 1일 밝혔다. 그는 포세트사가 북한·중국과의 접경지역이며 두만강과 접하는 남핫산의 농지 2만㏊(6천만평)를 제공하고 노동력은 북한과 중국의 연변 조선족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농업개발원은 이를 위해 농기계·농기구·종자 등을 공급하기로 했으며 이에 필요한 자금은 1백만달러 선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포세트사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연간 약 35만섬(5만t)의 쌀을 북한에 제공하고 대가로 북한의 물자를 받는 방안에 대해 북한측과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이번에 의향서를 작성함에 따라 국내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의향을 타진하고 있다』며 『상당수의 기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빠르면 이달 중순까지 기업을 선정해 연해주를 방문,본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북은 납북어선 즉각 송환하라(사설)

    북한경비정이 우리의 비무장어선에 총격을 가해 선원을 살상하고 납북한 것은 반민족적이며 비인도적인 행위다.납북된 제86우성호가 나침반 고장으로 항로를 잘못잡아 북방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배가 무장을 갖추지 않은 꽃게잡이보조어선에 불과하고 납북지점이 북한영토에서 12해리이상 떨어진 공해상이었다는 점,그리고 이런 정황을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대낮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사상자를 낸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북한당국은 이같은 불법적인 과잉대응을 솔직히 시인·사과하고 납북어부들을 지체없이 송환해주기 바란다. 북한에 의한 우리어선 납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56년 제3선진호가 동해에서 피랍된 것을 시발로 16차례에 이른다.이중 87년1월15일 서해 백령도근처 공해상에서 납치된 제27동진호 선원 12명을 포함,25명의 어부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그뿐 아니다.휴전이후 강제납북돼 지금까지 억류돼 있는 사람은 4백29명이나 된다. 우리정부는 인도주의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문제나 핵문제와 연계시키지 않고 어떤 남북현안보다도 이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고 그동안 여러차례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해왔다.이번에도 우리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납북어부들을 조속히 송환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그러나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은 불투명하다.북한은 최근 정전협정의 무력화를 꾀하며 비무장지대 정찰병사들에게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을 고의적으로 침범케 하는등 일련의 무력시위를 벌여온만큼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우려도 없지 않다.그럴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정부는 최근 아무 전제조건 없이 북한에 쌀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따라서 북한당국도 조건 없이 납북어부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남북이 인도적인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간다면 신뢰는 쌓이게 될 것이고 민족화해에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북한당국의 성의 있는 반응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 이농현상/개방바람 타고 돈벌이 찾아 도시로(두만강 7백리:14)

    ◎문혁이후 젊은이 떠나고 부녀자만 남아/7백가구 부동촌엔 농사꾼 한사람도 없어 연변의 조선족들은 지금 식생활에는 걱정이 없다.해방전 대지주들 보다 더 잘 먹고 산다.옛날의 지주집이래야 호주만 이밥을 먹어대고 다른 식구들은 조밥에 된장국이 고작이었다.그러나 요즘은 웬만하면 모두가 이밥을 밥상에 올려놓는다. ○옛 지주보다 더 잘살아 농촌의 소득도 높아졌다.용정시 백금향의 1인당 연간수입은 1천6백원으로 조사되었다.화룡시 숭선진은 1천3백원,두만강 연안 산골의 향진지역도 1천2백원을 웃돌았다.문화대혁명 시기 뙤약볕에서 동이땀을 이틀은 흘려야 10원을 벌었던 때에 비하면 천양지판이다.당시 편지 한통 부치는데 8원이었으니 기가 막힌 노임이었다.그래서 문화대혁명 이야기만 나오면 목청 안 높이는 사람이 없다. 『사시사철 뼈 빠지게 일하고도 굶기는 밥먹듯 했수다.쑥에 소나무 껍질에 안먹어 본 별식이 없드랬시요.그런 주제에 밭고랑 타고 앉아서 세계 혁명에 관심을 가지라고 족쳐댑데다.미친 광대놀음을 한 거디요.등소평동지 개혁개방 안했더라면 모두 굶어죽었을 겁네다』 연변지역 신문에는 농촌소식들이 왕왕 실린다.예전같이 해방전 살림에 비교하는 잠꼬대는 없어졌으나 농촌수입이 해마다 올라간다는 기사가 많아졌다.그런데 물가가 오른 것을 생각하면 농촌소득 높아진 것 만을 자랑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이러한 사실은 농가와 인구가 함께 줄어드는 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화룡시 숭선진의 경우 지난 1990년 1천25가구의 농가가 지금은 9백90가구로 줄었다.호적만 숭선진에 두고 도시로 빠져나간 사람만도 6백20명이나 된다. ○초가집 한채에 1천원 두만강 연안에 임자를 잃은 밭들은 풀이 무성하고 마을마다 주인없는 집들이 쓸쓸히 서 있다.화룡시 노과진 호곡촌은 무산과 마주한 오붓한 17호 인가를 가진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3개의 굴뚝에서만 연기가 날뿐이다.그리고 화룡시 덕화진 부동촌은 독립군 안무 일가가 자리잡고 항일을 해온 유서깊은 마을로서 광복후 7백여호였다.그런데 이제는 황폐해져 농사꾼은 한 집도 없다.두만강 언덕에 자리 잡은 초가들은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대머리 모양으로 볏짚이엉이 훌렁 벗겨져 귀신 살기 알맞는 마을이 되었다.그같이 을씨년스러운 마을에 유독 한 집만이 앞마당에 닭 몇마리가 구구구 모이를 쪼고 개가 행인을 보고 콩콩 짖는다. 지나가던 걸음에 그 집을 들렀다.늙은 양주가 따뜻한 온돌에 앉아서 이불을 꿰매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대단히 반가워했다.아이들 소꿉장난 모양으로 개와 닭 하고 동무하며 적적하게 살아가던 양주는 낯도 성도 모르는 길손이지만 찾아온 것이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인간무리에서 살면 인간이 혐오스럽다가도 인간이 없는 곳에 살면 오히려 그리워 한시도 인간을 떠나 살수 없는 것이 사람인가 보다. 주인의 이름은 이성국(60)인데 화룡시에 거주하는 퇴직 노동자였다.지난해 8월 4백원에 버린 집을 사서 들었다고 한다.오랜 간염환자라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휴양삼아 와 있다는 것이었다.화룡시에 있는 자식들이 쌀이며 채소며를 날라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영감이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십리 밖 남평에 가서 사오기도 한다는 것이다.농사꾼들이 삶을찾아 버리고 간 산수 좋은 이 땅은 서서히 주인이 바뀌고 있다.텃밭이나 가꾸면서 여생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휴양지로 변해가고 있다. ○도시인 「별장」 구입 늘어 도문시 위자구진 하남촌은 20여호의 마을인데 2∼3년 사이에 절반정도의 초가를 도시에서 퇴직한 노인들이 차지했다.연길에서 40리 거리라 집값이 꽤나 비싸다고 하는데 한채의 초가가 1천원 내외다.마을을 통째로 산다고 해도 3만원이면 남는다.한국을 드나들면서 현대 문명에 머리가 튼 젊은 사람들은 초가를 사서 주말 별장삼아 쓰고 있다. 화룡시 덕화진 용현촌 박서양(69)노인은 일제때 울릉도에서 속아 이민을 온 사람이지만 연변의 농촌을 지키고 있다.일본인들이 만주로 가면 들판에서 해가 뜨고 지는데 감자가 하도 커서 둘이서 하나를 다 못먹는 복지라고 하는 말을 듣고 19 38년 고향을 등졌다.그런데 웬걸,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넜더니 하늘만 보이는 산골이었다.아름드리 나무를 베어 부지런히 농토를 개간,그런대로 배불리 먹었다. 그러다 해방에 이어 문화대혁명을 맞았다.문화혁명 시기에는 겨우 감자톨을 구워먹으면서도 거지로 빌어먹고 산다는 고향(한국)으로 돌아가지 안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고향에서 연변땅 밀림지대로 함께 이주했던 24가구가 해방 이후 거의 귀국해버린 뒤였다.혼자 남은 그는 그저 공산당 은덕에 감사했다. 『일본놈한테 속고 공산당에 속아 살다가 이 나이가 됐제.지난 90년에 고향 울릉도에 갔더니 없는게 없이 살데.나도 밥술이나 먹어 잘 사는줄 알았더니 그게 아이데.그래도 여기 살수 밖에 없제.땅파먹고 사는 사람은 땅 떠나면 몬 산다구…』 노인은 「농자천하지대본」이 다시 올 날을 기다렸다.고지식한 땅을 믿는 노인 역시 고지식한 마음으로 또 한해 농사철을 맞고 있다.
  • 정치적 부대조건없이 북한에 쌀제공/20일까지 북 답변 기대

    ◎나 부총리 국회답변 국회 통일외무위는 31일 나웅배 통일부총리와 이시영 외무부차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북한에 대한 쌀 지원문제와 북한·미국간 경수로협상에 관해 보고를 듣고 정책질의를 벌였다. 나 부총리는 대북 쌀지원문제에 대해 『정부는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마땅히 곡물지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국내 쌀수급상황도 지원에 별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나 부총리는 또 『북한이 수용한다면 정부는 수량과 인도방법등 절차에 있어 가능한 북한측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이번 제의를 받아들여 가까운 시일안에 곡물지원문제를 함께 협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나 부총리는 남북종교인교류추진문제에 대해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내부에서 통일운동 및 북한접촉에 관한 경쟁적 과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순수종교활동에서 벗어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나 부총리는 『정부의 제안은 인도적 견지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에 어떠한 전제조건이나 정치적 부대조건이 없다』면서 『따라서 한국쌀 제공과 일본쌀 제공은 연계돼 있지 않다』고 일본의 쌀제공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나 부총리는 『그러나 가능하면 한국쌀이 먼저 지원되고 일본쌀도 남북관계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정부의 제안에 대한 북한의 대답을 6월20일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 본격적인 전쟁준비(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8)

    ◎새로 밝혀진 사실들/김,방중전에 “6월말 공격개시” 확정/조작논란 「3단계 작전」 6월 15일 수립 한국전쟁 발발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8회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이 포함돼 있다.특히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정부에 넘겨준 문서에는 19 50년6월 상황을 담고 있는 문서가 거의 빠져있는 사실을 감안할때 긴박한 순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이번 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중요한 새로운 사실들중의 하나는 김일성이 50년5월중순 모택동을 만나기위해 중국을 방문하기전부터 공격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이는 남침에 임박해서야 전쟁개시일을 7월에서 6월로 앞당겼다는 그동안의 일반적인 주장과 해석을 뒤엎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하나의 사실은 6월15일에 확정된 3단계작전이다.그동안 오랫동안 조작논쟁을 불러일으켰던 3단계작전이 진실임이 밝혀졌다.일부에서는 전쟁후 한국과 미국에 의해 공개되어 남침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3단계작전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있었다.그러나 3단계작전은 지금 워싱턴에 보관중인 러시아어로 된 인민군 작전명령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이번 회의 내용으로 볼때 위싱턴에 있는 자료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으며 6·25는 남침임이 결정적으로 증명됐다. ◎작전개시직전 국지전서 전면전으로 전환/김일성,50년 5월12일 방중전 공격일 소 통고/북­소 49년 6월4일 무기지원 「특별협정」 체결 전쟁개시에 대한 3자간 합의가 마무리되자 막바지 전쟁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전쟁준비의 두 축은 소련과 북한이었다.하지만 김일성의 전쟁준비는 이미 1년전부터 본격화됐다.소련에 대한 무기지원요청이 이어졌고 소련역시 이를 충실히 도와주었다.김일성은 49년5월1일자로 추가 무기지원을 요청하는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띄웠다.그는 49년5월까지 기계화부대 증설을 비롯,공군을 제외한 모든 군의 개편문제를 마무리짓고 9월까지는 공군개편을 끝내고 싶다며 추가무기지원을 요청했다. ○추가 무기지원 요청 슈티코프대사가 보낸 이 전문에 의하면 김일성 ⓛ2개 탱크연대를 거느린 탱크여단 ②독립 탱크연대③각 사단에 박격포부대 추가창설 ④공군사단 ⑤엔지니어링 대대 ⑥박격포 여단의 창설을 건의했다.이와 함께 장문의 필요한 무기목록을 덧붙였다.스탈린은 이 요청을 90%정도 집행해 주었다.이를 위해 북한·소련 양국은 49년6월4일 『소련은 북조선정부의 무기 및 군사기술장비 지원요청을 전부 만족시키는 데 동의한다』는 요지의 특별협정을 체결했다.이 특별협정에는 북한에 제공될 소련무기 목록이 첨부됐다.주요목록은 다음과같다. ▲공군장비:IL­10기(30대) WIL­10기(4대) YAK­9기(30대) PO­2기(4대) YAK­18기(27대) YAK­11기(6대) ▲기갑장비:탱크 T­34(87대)장갑차 BA­64(57대)장갑차 SU-76(1백2대)모터사이클 M­72(1백22대) 이외에도 소련은 각종 포탄·대구경총·자동화기·저격용 소총·전함·상륙정·지뢰·도하장비·무전기·전화선·어뢰정·대잠함을 비롯,북한이 요청한 탄약 일체를 인도키로 약속했다.이들 무기원조에 대해 북한은 쌀을 비롯한 곡물과 광물로 갚기로 동의했다. 김일성은 49년12월말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50년도분 추가무기지원 1억1천2백만루블어치를 소련정부에 요청했다.상환방법은 보석류 및 비철금속으로 갚는다고 했다.슈티코프 대사가 50년1월1일자로 본국에 보낸 전문에 나타난 추가요청내역은 다음과 같다.1개 모터사이클연대 창설,기존 1개 보병여단을 사단에 편입시키고 무기보강,최근 창설한 해군보강을 위한 전함 2척. 50년3월14일 김일성은 51년분 차관을 50년도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모스크바에 요청했다.전용목적은 무기·탄약 및 군사기술장비 구입이었고 필요한 무기목록을 전문 뒤에 별첨으로 보냈다.육해공군의 각종장비,탄약을 망라,수백종에 이르는 물품이었다.김일성은 전문에다 별도로 『북조선인민공화국정부는 소련정부가 신생국 조선공화국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요청한 물품을 조속한 시일내에 보내줄 것을 기대합니다』라는 서신을 첨부시켰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50년4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은 남조선에서 빨치산으로 활약하던 김달삼이란 사람이 평양으로 넘어왔다는 전문보고를 본부에 보냈다.이 전문은 『남조선언론들이 정부군의 토벌작전중에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그는 지금 평양에 와있으며 방문목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남침개시를 앞두고 남한내부 혼란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북경방문 출발 하루 전인 5월12일 슈티코프 대사를 불러 전쟁개시일을 6월로 잡겠다는 최초의 언질을 주었다.『본인은 이미 남조선에 대한 공격준비 명령을 총참모장에게 내렸음.전쟁계획은 이미 짜여졌음.준비가 예정대로 마쳐질지 모르지만 공격개시일은 6월로 잡겠음』.슈티코프대사는 즉각 이 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북경방문을 마치고 온 김일성은 전쟁준비를 예정대로 진행시켜나갔다.5월29일 슈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에게 전쟁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6월8일 병력이동 『김일성은 공격준비상황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음.모스크바회담에서 지원키로 합의한 무기 대부분이 도착했다고 함.김일성은 새로 창설한 사단을 시찰한뒤 6월말 공격개시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함.김일성의 명령을 따라 인민군총참모장이 공격작전을 수립했음.인민군 총참모장과 소련고문단장 바실리예프 장군이 이 작전계획을 김일성에게 보고,승인을 받았다고 함.군편성은 6월1일까지 완료예정.6월 전투개시에 아무런 차질이 없다고 함.김일성은 작전개시일을 6월말로 잡고있다고 함.더 늦출 경우 첫째 작전계획이 남조선측에 유출될 우려가 있고 둘째 7월이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음.김일성은 6월8∼10일 사이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했음』. 같은날 슈티코프 대사는 소련군사고문단의 바실리예프·포스트니코프 장군과 만나 의견을 듣고 이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두 장군은 처음에 김일성의 6월말 공격개시에 반대했다.작전준비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7월이라야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그러나 이 두사람도 결국은 장마 때문에 6월말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는 데 동의했다.슈티코프 자신도 장마철 공격개시는 너무 위험하다며 김일성의 생각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이렇게 해서 공격개시일은 6월말로 확정됐다. 마침내 운명의 6월이 왔다. 북한은 3단계작전중첫번째인 평화공세를 시작했다.6월10일 북한은 남측에 대해 평화통일방안을 논의키 위해 전조선민주연합전선 중앙위를 개최하자고 제의했다.슈티코프는 이튿날 6월11일 남한의 반응이 나오자 스탈린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남조선이 이 제의를 거부했음.공격계획을 예정대로 진행시켜 나가야겠음.병력을 38도선부근으로 이동시키고 추가 평화통일제의를 하겠음』. 6월12일 슈티코프는 13일부터 38도선 10∼15㎞지역으로 인민군의 병력이동이 시작된다고 스탈린에게 보고했다.총참모장 주재로 사단장을 비롯한 각급 지휘관 회의가 열려 구체적인 임무가 하달됐다.6월15일 3단계로 나누어진 최종작전계획이 확정됐다.슈티코프는 6월15일 이 작전계획을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작전개시는 6월25일 이른새벽에 시작됨.1단계작전은 옹진반도에서 국지전형태로 시작한 뒤 주공격선은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감.2단계 작전은 서울과 한강을 장악함.동시에 동부전선에서 인민군은 춘천과 강릉을 해방.이에 따라 남조선군 주력은 서울일원에서 포위당해 궤멸됨.마지막 3단계작전에서는 여타지역 해방.적의 잔여세력을 소탕하고 주요 인구밀집지역과 항구를 점령함』. 여기서 알수있듯이 김일성이 세운 당초 작전계획은 전전선에 걸친 전면공격이 아니라 옹진반도를 시작으로하는 단계적 공격이었다.이것이 그뒤 작전계시직전에 전면남침으로 바뀐 것이다. ○소련병력 승선거부 이렇게 최종작전계획을 수립해놓은 뒤에도 북한은 평화선전공세를 계획했다.6월16일 북조선인민최고회의가 남한국회앞으로 평화통일 제의를 내놓았다.이 평화제의의 허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슈티코프의 전문보고를 인용해본다. (19 50년6월16일.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조선동지들은 이 평화제의와 이에 대해 남조선이 보일 부정적인 반응(반대할 것이 쉽게 예상됨)이 갖는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음』. 6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통해 상륙작전에 쓸 전함의 추가지원을 소련측에 요청했다.동서해안에서 동시에 상륙작전을 감행,적을 포위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었다.김은 전함을 보내면서 『인민군내에 전함운용 요원이 없기 때문에 상륙선을 운행할 소련해군 요원을 함께 보내줄 것』도 요청했다.스탈린은 21일 답전을 통해 전함추가지원은 받아들이되 적에게 개입명분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소련병력 승선은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21일 김일성은 슈티코프대사를 통해 중대한 메시지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작전변경에 관한 건의였다. 『김일성은 남조선 방송청취 및 정보보고에 의거,남측이 인민군의 작전계획내용을 입수한 것같다고 말했음.이에 따라 남측이 전투력 강화,방어선 강화,옹진반도 방향에 병력추가배치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함.이같은 상황변화로 인해 원래의 작전계획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함.김일성은 전면공세 전 옹진반도를 기점으로한 국지전 시작 대신 6월25일 전전선에서 전면공격을 감행하자고 제의했음』. 스탈린은 이 작전변경 건의를 이의없이 승인했다.6월25일 새벽 전전선에서 공격개시로 최종확정된 것이다.
  • 대북 쌀지원 관련/일 연정 대표단 한국방문 거부

    【도쿄 연합】 김태지 주일대사는 30일 일본이 북한에 대한 쌀 지원에 앞서 사전이해를 얻기 위한 연립여당 대표단의 한국방문을 사실상 거부했다. 김 대사는 이날 일본 연정 제1당인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 정조회장을 국회로 방문,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북한측으로부터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는 만큼 좀더 기다려보자고 밝혀 방한단 파견을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이어 연립여당측이 언제든지 방한단을 파견할 수 있으나 북한측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쌀 먼저 받아야/일,북한에 공급할것/사이토 외무장관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외무성의 사이토 구니히코 사무차관은 29일 북한에 대한 쌀 공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한국쌀을 지원받는 것이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사이토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한국쌀은 싫다면서 일본쌀만을 고집하는 것은 인도적 필요에서 일본에 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도 『북한이 한국의 쌀 공급 제의를 거부한 적도 있는 만큼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앞서 일본정부와 연립여당은 이날 상오 고위 당·정 회의를 열고 한국측의 이해를 얻어 북한에 쌀을 공급하기로 공식 결정했었다. 당·정 회의는 ▲북한과 국교가 없으나 이웃국가가 식량난을 겪고 있는 만큼 인도적 지원은 불가피하고 ▲한국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북한에 쌀을 지원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 남한쌀 받는게 남북관계 도움(해외사설)

    북한 국제무역촉진위원회의 이성록위원장이 일본을 방문,지난 3월 북한방문단 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외상과 회담했다. 이 위원장은 이회담에서 북한의 식량부족을 처음으로 공식인정하며 쌀을 대여해달라고 요청했다.일본측이 84만t의 쌀재고가 있다고 설명하자 이 위원장은 『전부도 좋지만 80%정도라도 대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그는 장마가 시작되기전 쌀원조가 실현될 수 있도록 서둘것을 요청했다. 북한은 4,5년전부터 냉해와 농업정책 실패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그런 가운데 나타난 북한의 쌀지원 요청은 쌀부족이 매우 절박한 상황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같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이와관련,『인도적 차원에서 실현될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며 구체적인 검토를 지시했다.그러나 북한에 대한 쌀지원이 실현되려면 우선 대여방법과 한국의 이해를 구하는 두가지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은 『국가와 국가의 거래는 국교가 없으면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했다.그점에 대해서는 그러나 인도적 조치라면 국제적십자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등을 이용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일본정부로서는 쌀대여를 양국관계개선과 연계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위원장은 이번에 『한국으로부터도 쌀의 원조나 대여 제의가 있으면 검토하고 싶다』고 밝혔다.지금까지 한국은 여러차례 인도적 식량원조를 제안해왔다.그러나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한국은 「북한이 일본에 대해 원조를 요청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저의가 있다」며 일본의 신중한 대응을 요청해왔으나 이번에는 유연한 대응 방침을 시사하고 있다. 한반도안정에는 남북한 관계개선이 필수적이다.이때문에 북한은 먼저 한국의 원조를 받기 바란다.국제기관을 통해 남북한이 협력하는 방법도 있다. 인도적 원조는 신속히 실행할 필요가 있다.그렇지만 간단치 않은 것은 북한의 핵문제등이 국제사회의 불신을 사고 있는등 북한이 외교적 고립에 빠져있기 때문이다.북한은 그러한 점을 잘 생각하여 쌀의 지원을 받을수 있는 조건을 정비하기 바란다.
  • 대북식량지원/남북협력기금 활용/쌀 재고 감안 물량 신축 결정

    ◎운송은 직항로·판문점 경유… 평양선택 맡겨/정부 9개부처 실무대책회의 정부는 29일 대북 곡물제공을 민족내부거래및 남북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간주,올 연말기준 2천억원 규모에 달하는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해 북한에 곡물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송영대 통일원차관 주재로 9개부처 관계 실·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북 곡물제공을 위한 실무대책회의를 열어 이같은 입장을 정리했다. 정부는 또 대북지원 곡물량은 추후 북한의 반응과 약 7백1만섬에 이르는 예상 쌀재고량과 세계무역기구(WTO)협약에 따른 35만섬의 의무수입미를 포함한 우리측 수급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축적으로 결정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곡물의 수송방식으로는 목포∼남포,부산∼원산등 직항로와 판문점을 경유한 육로수송등 가능한 방법 가운데 당국간 절차협의때 북한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는 통일원을 비롯,청와대 총리실 재정경제원 외무부 농림수산부 건설교통부 공보처 안기부등 9개부처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쌀 1백만섬 북에 제공땐/전주민 21일분 끼니… 시가 1천8백억 우리나라가 쌀 1백만섬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며칠동안 먹을 수 있으며 쌀 값은 어느 정도나 될까. 쌀 1백만섬을 무게로 환산하면 약 14만2천8백57t.우리나라 기준으로 볼 때 1인당 쌀 소비량은 연간 1백7.5㎏이다.따라서 1인당 하루 소비량은 2백95g인 셈이다.현재 북한 인구는 약 2천3백만명이므로,21일동안 먹을 수 있는 물량이다.우리나라는 인구가 2배 가까이 되기 때문에 10일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쌀 1백만섬을 모두 94년산 일반 쌀로 제공한다고 할 때 쌀 값은 일반 쌀의 경우 현재 80㎏들이 한가마에 10만4천5백원 선이므로 약 1천8백81억원어치가 된다. 통일벼 쌀(국제 수출가격 수준)로 제공된다면 80㎏들이 한가마에 3만2천5백원 선이므로 5백85억원어치가 된다.
  • 대북 쌀원조 관련/일,전외상 곧 파한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연립여당은 북한에 대한 쌀 원조문제와 관련,한국측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전 외상을 한국에 파견할 방침이라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