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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천구 무상급식 쌀 품평회 가보니

    금천구 무상급식 쌀 품평회 가보니

    “수확 전과 후 두 차례 잔류농약 검사를 하는 안전한 쌀입니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지었습니다.”(전북 남원시) “논산 하면 군대를 떠올리죠. 입대한 아드님을 보살핀다는 심정으로 지었습니다. 한번 믿어보세요.”(충남 논산시) ●학교 관계자 등 선거인단 200명 2차 투표 지난 3일 쌀 품평회를 개최한 금천구 대강당은 ▲경남 거창군(미부인) ▲경북 영주시(선비숨결) ▲전남 고흥군(수호천사 건강미) ▲전북 군산시(철새도래지쌀) ▲전북 남원시(자연섭리) ▲충남 논산시(예스미) ▲충북 진천군(생거진천쌀) 관계자와 관내 학부모 등 400여명으로 붐볐다. 지난해 상반기 다른 자치구도 비슷한 행사를 열었지만 무상급식을 본격화한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다. 아이들에게는 양질의 급식을 제공할 수 있게 하고, 농가에는 친환경쌀 재배를 확산시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행사는 크게 학부모, 학교 관계자 등 선거인단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설명회와 직접 쌀밥을 먹어보는 시식회로 나뉘었다. 설명회 뒤 1차 투표, 시식회 뒤 2차 투표가 열렸다. 지자체들은 ‘우렁이’를 이용한 잡초제거와 사탕수수·쌀겨·깻묵 등을 활용한 친환경비료, 저온숙성저장법 등을 앞다퉈 강조했다. 경쟁 기관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순박한 농심(農心)이 그대로 묻어났다. ●공정성 위해 전자개표기도 동원… 군산시 1위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선거인단은 판매가격과 재배기술을 메모하기에 바빴다. 일부 학부모는 직접 생쌀을 만져보고 씹어보면서 질감을 파악했다. 문교초등학교 행정실 이병갑(54)씨는 “아이들을 위해 급식 질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시식회였다. 번호를 매긴 7개의 솥에서 밥을 퍼담는 학부모들의 손길이 세심했다. 포만감 탓에 다른 밥 감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시식에는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썼다. 학부모들은 쉬지 않고 10~20분이나 쌀알을 곱씹는 끈기를 보였다. 찰기와 윤기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냄새도 맡았다. 개표결과 1위는 군산시(111표)에 돌아갔다. 고흥군(86표), 논산시(56표), 남원시(53표)가 2~4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2년 계약에 연간 400t의 쌀을 공급한다. 부정을 막기 위해 전자개표기까지 동원됐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6일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하는 게 공공기관의 책무이지만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장류와 반찬까지 품평회를 확대해 학부모들의 먹을거리 고민을 덜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식품위생법 제정 50주년… 그때는 이랬어요

    ‘식당에서 쌀밥 못 팔게 하라.’ ‘가수도 식품위생법 적용 대상이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6일 식품위생법 제정 50주년을 맞아 식품 안전 변천사를 소개했다. 식품위생법은 1900년부터 여러 규칙 등으로 존재하던 식품 관련 위생법규를 통합해 1962년 1월 20일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는 ‘보릿고개’ 시대였지만 식품의 기준·규격, 위해 식품 판매 금지 등 오늘날 ‘식품위생법’의 근간이 되는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1963년에는 라면이 처음 등장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치킨’을 내세운 라면으로 가격은 10원이었다. 첫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라면이라는 용어도 생소해 일부에서는 ‘면’을 섬유나 실로 오해하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 혼·분식 운동이 전개됐고, 1976년에는 아예 쌀을 먹지 못하게 하는 ‘무미일’(쌀 없는 날)까지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음식점에서는 매주 5회 이상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밥을 못 팔았으며 반드시 잡곡을 20~30%씩 섞어야 했다. 1974년에는 바나나 우유가 등장했다. 식량난과 국민의 영양 결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우유 먹기를 권장했지만 생각처럼 우유 소비가 늘지 않자 우유에 달콤한 바나나맛을 첨가해 시장에 내놨던 것이다. 1975년에는 비싼 음식만 파는 ‘전문음식점’도 등장했다. 짜장면 한 그릇이 350원이던 시절에 이들 전문음식점의 한정식은 1인분에 2500원씩이었다. 그 후 전문음식점은 1985년에 대중음식점으로 통합됐다. 1976년부터는 음식점과 다방 등 8개 접객업종에 대한 업소별 가격 기준을 정해 그 이상은 받지 못하게 했으며 정부 합동단속반이 전국적으로 단속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가격 기준에 따르면 한정식 최고가는 2500원, 불고기 백반은 1150원, 짜장면은 350원이었고 커피는 100원이었다. 가수나 연주자, 무용수가 식품위생법의 적용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1999년 식품위생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가수 등이 유흥종사자로 분류돼 식품위생법에 따라 관리됐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서울광장] 투자 개념의 남북통일/이도운 논설위원

    [서울광장] 투자 개념의 남북통일/이도운 논설위원

    25.1%. 지난 26일 발표된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남북의 실질적인 통일이 대북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한 응답자의 비율이다. 74.5%는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가 ‘평화적인 공존’이라고 답변했다. 쉽게 말하면 통일하지 말고 이대로 살자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왜 이렇게 낮을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첫째는 세대적인 요인.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돌아갈 고향이 아니라 골치 아픈 이웃이다. 끌어안아야 할 한 민족이 아니라 우리 땅에 포격을 해대는 적일 뿐이다. 둘째, 정치적인 이유. 그동안 여나 야나, 보수나 진보나 통일 문제를 너무나 많이 우려먹었다. 통일은 나와 관련된 민생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끼리나 떠드는 문제다. 셋째, 막대한 통일비용에 대한 두려움. 통일비용이 수백조원이다 수천조원이다 하는 보도를 보면서 경제적인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넷째,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 통일은 남북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작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주 어려운 문제는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고 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나도 지난 1년간 통일 문제를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무관심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올해 초 선진통일연대라는 조직을 만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에게 왜 통일 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박 이사장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한반도 관련 비공개 세미나에서 미국의 저명한 학자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청천강 이북은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박 이사장은 “당신 정말 큰일 날 사람”이라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그랬더니 그 학자는 “왜 말이 안 되느냐. 한국 사람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지 않느냐. 내가 여기 여론조사 결과 다 갖고 있다.”고 다시 반박했다고 한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통일을 명분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명분만으로 통일을 말할 수 있는 시대는 가고 있다. 명분을 뛰어넘을 새로운 통일의 논리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투자 개념으로서의 통일이다. 통일이 우리에게 부담이 아니라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안보 문제를 다루는 정부 고위관계자가 매우 재미있는 얘기를 해줬다. 그는 “통일 비용이 얼마다, 얼마다 하고 여기저기서 발표들 하지만 다 엉터리다. 우선 북한 주민의 소원이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 주민 전체가 쌀밥에 고깃국 먹어도 그 비용이 얼마 안 된다. 우리 국내총생산(GDP)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낙후한 북한의 기반 시설을 새로 세우거나 현대화하는 비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 북한의 땅값은 이론적으로 0원이다. 국가소유니까. 물론 평양을 비롯해서 일부 지방의 토지는 중국이 구입하기도 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개발이 시작되면 땅값이 오른다. 한 평당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오른다고 치자.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냐. 또 북한이 개발되면 그 막대한 건설 장비와 인력은 모두 어디서 들어가겠느냐.”고 반문했다. 통일의 이익은 경제적인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외교부의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나 중국과의 관계에서 좀 더 대등하게 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북한 요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념 갈등, 지역주의, 고령화, 노동력 부족, 투자 부진, 양극화, 실업과 고용, 복지 확대… 이런 문제들이 내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겠지만, 해결책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가운데 많은 부분은 통일을 통해 해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큰 문제가 해결되면 작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dawn@seoul.co.kr
  • 흰쌀밥 같고 영양 많은 현미밥 맛보세요

    흰쌀밥 같고 영양 많은 현미밥 맛보세요

    수확한 벼는 어떻게 찧느냐에 따라 크게 현미와 백미로 나눈다. 왕겨와 겉껍질만 벗겨낸 현미에는 씨눈과 쌀겨가 그대로 남아 있어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 지방질(불포화지방산), 식물성 섬유질, 미네랄, 탄수화물 등 인체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에 비해 백미는 현미를 여러 번 도정해 씨눈과 쌀겨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벌거숭이 쌀’이라 할 수 있다. 현미 배아와 외 속의 지방은 양질의 불포화지방산으로 육식으로 인해 생기는 악성 콜레스테롤을 제거한다. 비타민E와 함께 구성돼 있어 체내 에너지원으로 흡수한 좋은 지방을 산화시키지도 않는다. 현미는 몸에 좋은 작용을 하는 박테리아를 증가시켜 장내 세균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 변의 체내 정체시간을 짧아지게 한다. 이에 따라 소화기관을 신속히 청소해 대장암이나 결장암, 당뇨병, 정맥류, 만성변비 등을 예방하고 치료를 촉진한다. 현미 외피에 있는 섬유소는 인체 내의 독물(화학물질, 방사성물질, 중금속 등)과 흡착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현미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리법이 비교적 까다롭고 맛이 거칠어 소비자들이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라이스본(www.riceborn.com)에서 출시한 ‘현미로만’은 이런 단점을 개선한 제품이다. 기존 현미의 딱딱하고 먹기 불편했던 부분을 특허가공 공법으로 개선해 맛이나 조리법이 백미와 똑같다. 표피에 있는 과피층(파라핀-왁스층)만 깎아내는 독자특허 기술로 현미의 껄끄러움과 조리의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업체 관계자는 “현미에는 쌀의 모든 영양소가 100% 살아 있어 현미밥 한 그릇은 백미 19그릇을 먹는 것과 같은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이라며 “‘현미로만’은 소량씩 도정해 늘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02)553-9044.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삼계탕은 고열량탕!

    삼계탕은 고열량탕!

    가장 열량이 높은 외식 음식은 삼계탕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내 외식 음식 130여종의 1인분 중량과 영양성분을 분석한 결과 삼계탕이 1인분(1000g) 당 열량이 918㎉로 가장 높았다고 22일 밝혔다. 다음은 잡채밥(650g·885㎉), 간짜장(650g·825㎉), 짜장면(650g·797㎉), 제육덮밥(500g·782㎉), 잡탕밥(750g·777㎉), 볶음밥(400·773㎉), 꼬리곰탕(700·766㎉), 김치볶음밥(500·755㎉), 짜장밥(500·742㎉) 등의 순이었다. 국민들이 실제 먹는 음식에 대한 실측값이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지난 14일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보듯, 국내 19세 이상 성인 10명 가운데 3명이 비만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적잖게 신경이 쓰이는 결과인 셈이다. 식약청 측은 “삼계탕은 말 그대로 닭과 쌀밥이 들어가 열량을 내는 기본 요소인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 모두 풍부하게 포함돼 있어 수치가 가장 높게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식약청 조사는 서울·경기·충청·강원·경상·전라권 등 6개 권역의 3개 중점도시를 선정한 뒤 도시마다 선택한 4개의 음식점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식약청은 각 음식점에서 음식을 직접 구매한 뒤 냉동차로 운송해 18개 연구기관에서 열량과 구성 성분 등을 분석했다. 1인분 중량 설정은 전국에서 구입한 음식 72개의 평균값과 중간값 등을 활용, 중량값을 산출하고 이를 국민건강영양조사의 섭취량과 비교해 정했다. 지역·업소별 음식의 양은 천차만별이었다. 짜장면의 1인분 중량은 최소 400g에서 최대 840g으로 2배를 넘기도 했다. 짬뽕도 최소 550g부터 최대 1200g에 달했다. 만둣국은 1인분이 340~940g까지 2.7배의 차이가 났다. 심지어 갈비탕은 적게는 290g, 많게는 1200g로 무려 4배의 중량차를 보였다. 식약청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외식 음식의 영양성분을 정리한 ‘외식음식 영양성분 자료집’을 홈페이지(www.kfda.go.kr/nutrition/index.do)에 공개했다. 자료집에는 1인분의 실물크기 사진과 해당 식품의 1인분당 열량·탄수화물·단백질·나트륨 등 20여종의 영양성분이 표시됐다. 자료에 수록된 음식 정보는 식약청 영양관리 애플리케이션인 ‘칼로리 코디’에도 추가된다. 식약청 측은 “국민들이 지금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영양정보를 확인하고 자신에게 맞는 식품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도 영양성분 자료를 이용해 열량과 나트륨을 줄인 건강메뉴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관에서도 다이어트 식단 개발에 참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씨줄날줄] 신(新) 라면전쟁/곽태헌 논설위원

    현대식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다. 신용조합 이사였던 안도 모모호쿠가 1956년 술집에서 생선튀김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2년 뒤 닛신식품에서 라면이 처음 나왔다. 당시의 라면은 면에 양념이 가미돼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다. 묘조식품은 세계 최초로 분말 형태의 수프를 갖춘 라면을 개발했다. 삼양식품은 묘조식품과 제휴해 196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라면을 선보였다. ‘귀한’ 쌀밥이 최고로 인식되던 시절 라면은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삼양식품은 라면 판촉을 위해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밀가루를 원조해 주면서 쌀이 부족했던 정부가 밀가루 소비를 권장하자 라면도 서서히 인기를 끌게 됐다. 국물에 친숙했던 소비자의 입맛도 라면이 인기를 얻게 된 요인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농심은 안성탕면과 짜파게티, 신(辛)라면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으며 1986년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뒤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1989년 검찰이 무리하게 발표한 우지(牛脂) 파동까지 겹쳐 한때 벼랑 끝 위기로 몰리기도 했다. 1997년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우지 파동에 따른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라면은 34억개가 넘는다. 세계 6위의 라면시장이다. 금액으로는 1조 9000억원 정도. 1인당 소비량은 70개로 세계 1위다. 농심의 점유율은 70% 안팎으로 절대적이었다.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나머지를 놓고 싸우는 상황이다. 신라면의 점유율만 20%가 넘을 정도다. 농심이 장악한 라면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8월 출시한 꼬꼬면이 새바람을 몰고 왔다. 8월에는 900만개가 팔렸고 지난달에는 1750만개나 팔려 나갔다. 없어서 못팔 정도라고 한다. 빨간 국물 일색이던 라면시장에 흰색 국물 라면의 반란이다. 꼬꼬면보다 1주일 먼저 나온, 역시 흰색 국물인 삼양식품의 나가사끼짬뽕의 인기도 상한가다. 여기에 오뚜기까지 흰색 국물에 칼칼한 맛을 내는 기스면을 그제 내놓았다. 흰색 국물 라면의 인기로 시장점유율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9월 국내 라면시장에서 농심의 점유율은 65% 정도로 소폭이지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흰색 국물 라면의 인기는 안주하면 뒤처지게 되고, 고정관념은 깨뜨려야 한다는 평범한 교훈을 확인시키는 사례로 꼽힐 만하다. 라면시장이든 다른 제품이든 경쟁이 치열할수록 소비자는 즐겁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우리 음식 지켜 온 중앙亞 고려인들

    우리 음식 지켜 온 중앙亞 고려인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결정으로 연해주에 거주하던 많은 조선인들은 연고도 없고 기반도 없는 중앙아시아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결국엔 모국어를 잊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가 금지된 채 살아가야 했다. 오는 3일 오후 7시 30분 KBS 1TV에서 방송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강제 이주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밥상을 차린다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 본다. 타슈켄트 인근의 한 마을에서는 이제 막 돌을 맞은 고려인 5세 아기의 돌잔치가 한창이다. 그런데 아이의 미래를 점치는 돌잡이 상에는 찰떠기(찰떡)가 세 접시 놓여있다. 지금도 쌀밥과 찰떡을 밥상에 올리고, 된장과 간장을 담가 시락장물(시래기된장국)을 끓여내는 고려인들. 우리말도 잊고, 이름도 러시아식으로 지은 채 짧은 성씨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이 우리네 밥상을 지켜올 수 있었던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고려인들은 살기 위해 불모지와 다름없는 땅을 일구고 어렵게 챙겨온 볍씨를 뿌렸다. 농사일에 능하고 부지런했던 고려인들은 가축밖에 기를 수 없었던 중앙아시아 땅에 벼농사를 보급했고, 그네들의 밥상에 쌀밥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국제결혼 단꿈, 인신매매 악몽으로

    국제결혼 단꿈, 인신매매 악몽으로

    한가위 연휴 내내 김재민(가명)씨의 집에는 떠들썩한 웃음소리 대신 정적만 감돌았다. 노모는 빈 방에서 넋을 놓고 있는 아들을 보고 소리죽여 울었다. 숫기가 없어 이성을 잘 만나지 못하던 40대 중반의 노총각 아들에게 국제결혼을 권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저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외국인 배우자를 만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실수’로 김씨는 사람도, 돈도, 믿음도 모두 잃었다. 김씨는 최근 인터넷에 오른 ‘몽골 여성 국제결혼 중개’ 광고를 보고 회원으로 가입했다. 항공료, 가입비까지 수천만원을 중개업체에 지불했다. 신부 측에도 지참금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건넸다. 몇 달 뒤 다른 3명의 남성과 함께 몽골로 날아갔다. 한데 모든 것이 이상했다. 업체 측은 김씨 일행을 작은 쪽방에 감금하다시피 한 뒤 은밀하게 아가씨들을 소개했다. 식사는 단무지에 쌀밥, 멀건 된장국이 전부였다. 맘에 드는 아가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지만 김씨는 몇 시간 뒤 경찰에 체포돼 철창에 갇혔다. 현지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업체 주선으로 아가씨를 만났다.”는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주몽골 한국 영사관 관계자는 “몽골의 정서상 업체가 개입된 결혼 자체를 인신매매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결국 김씨는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고 나서야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결혼은 했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신부가 집을 나갔다. 수소문한 결과 한국에 먼저 온 애인을 찾으러 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남은 것은 금전적 피해와 극심한 정신적 고통뿐 이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제결혼 중매 업체를 통한 현지 결혼이 불법 인신매매로 통하는 줄 알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돈벌이에 눈먼 일부 업체와 외국인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는 전혀 손을 쓰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현행법상 ‘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씨처럼 자국민이 타국에서 억류되거나 벌금을 내는 등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에서 확인한 한국인 불법 결혼 중개 건수는 2008년 4건, 2009년 5건, 지난해 7건이었다.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등에서는 아예 불법 결혼 중개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지난해 기준, 국내 결혼이민자 가운데 60%가 동남아권에 집중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배우자를 만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국제결혼 피해사례는 2005년 64건, 2006년 96건, 2007년 72건, 2008년 137건, 2009년 176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민이 타국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지 않은 탓에 정부의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업체와 민간기관 또는 정부가 손잡고 국제결혼 자문기관을 만들거나 영리 목적이 아닌 정부 차원의 중개시스템 개발을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한가위 연휴 백배 즐기기] 휴식·놀이 한번에 즐기는 리조트

    [한가위 연휴 백배 즐기기] 휴식·놀이 한번에 즐기는 리조트

    한가위가 코앞이다. 휴일이라고는 달랑 4일. 먼 여행지보다는 가까운 놀이공원 등으로 나들이 가는 가족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놀이공원과 리조트 업체들이 마련한 한가위 특별 프로그램들을 모았다. 아울러 고향 가는 길에 들러볼 만한 경치 좋은 고속도로 휴게소도 꼽았다. 보름달처럼 넉넉한 추억 많이 많이 만들고 오시길.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대명리조트 홍천 비발디파크는 12일 오후 7시 30분 특설무대에서 80년 전통의 대한민국 대표 서커스단 ‘동춘 서커스’의 공중 퍼포먼스 ‘2011 비천’ 공연을 연다. 관람은 무료다. 공중 줄타기와 외발 자전거타기, 애크러배트 등의 묘기가 펼쳐진다. 불꽃놀이도 밤하늘을 수놓는다. 9~11일 저녁 8시부터 가든비어 특설무대에서 통기타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도 이어진다. 또 경주는 송편(1실 1팩)을 무료 제공하고, 제주는 전통 탈 만들기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한화리조트 포천 산정호수에서 10~12일 ‘행운의 객실 이벤트’를 벌인다. 입실시 프런트 추첨함에 객실 번호를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숙박권과 조식뷔페 이용권, 온천사우나 이용권 등 경품을 준다. 양평은 11~13일 ‘뜨락 마당’에서 투호놀이, 12일 도시락 탁구 대회 등을 진행한다. 참가자에게 사우나와 식사 무료 이용권을 준다. ●서브원 곤지암리조트 10~13일 민속놀이는 물론, 영화와 오케스트라 공연 등 다양한 한가위 이벤트를 펼친다. 대형 윷놀이 등 민속놀이가 12일까지 열리고, 10일엔 마에스트로 김남윤과 W오케스트라의 ‘재미있는 오케스트라 이야기’ 공연이 펼쳐진다. 11일엔 곤지암시네마, 12일은 7080 통기타 가요무대가 뒤를 잇는다. 모든 이벤트는 무료다. ●엘리시안 강촌리조트 ‘2011 한가위 전통 체험 한마당’을 개최한다. 화살던지기, 제기차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노래자랑대회를 열어 입상자에게 무료숙박권과 스키 시즌권 등 푸짐한 경품을 준다. ●하이원리조트 마운틴광장에서 풍물공연과 가족장기자랑, 팔씨름 왕중왕전 등이 진행된다. 전통민속마을도 꾸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통 놀이장과 에어바운스 놀이터, 농기구 민속박물관도 운영하며, 전통 엿과 짚공예 체험도 할 수 있다. ●오크밸리 10일 오후 7시 30분부터 빌리지센터 앞 야외광장에서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이미자 데뷔 50주년 기념 특별콘서트’를 연다. 11일에는 이광조, 권인하, 남궁옥분, 고인호밴드 등 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특별공연을 선보인다. 다양한 민속놀이체험, 모차렐라 치즈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현대성우리조트 10일 이야기가 있는 신기한 매직쇼, 10∼12일은 야외무대에서 통기타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송편빚기 체험은 11일과 12일 리조트 본관 3층 야외테라스에서 열린다. 한지 만들기 체험과 천연염색 체험 등 이벤트도 즐길 수 있다. ●휘닉스파크 추석 맞이 알뜰 패키지를 선보였다. ‘허브스파 블루캐니언 패키지’는 객실과 조식, 블루캐니언 종일권이 포함됐다. 평소보다 최대 50% 정도 저렴하다. 태기산 케이블카를 타고 양떼목장을 둘러볼 수 있는 ‘허브스파 블루캐니언 PLUS패키지’도 있다. ●양지파인리조트 11일 직접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떡메치기 행사를 연다. 12일에는 리조트 측에서 준비한 차례상이 차려지고, 전통 연 만들기 체험이 이어진다. 저녁엔 가족대항 윷놀이 대회가 진행된다. 한가위 객실 패키지는 알파인슬라이더, 파크골프 등 위락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빅3파3패키지와 야외바비큐를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바비큐패키지가 있으며 10만 8000원부터다. ●리솜스파캐슬 11일부터 13일까지 한복을 입고 가면 천천향 입장료 50%를 할인해 준다. 3대가 함께 입장해도 최대 50%까지 할인. 라커 안에 천천향 무료이용권, 피자이용권, 구명조끼이용권 등 행운의 선물을 넣어 두는 ‘행운의 복불복’ 이벤트도 연휴기간 진행한다.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10~12일 특별한 추석 저녁 뷔페 메뉴를 선보인다. 갓 추수한 햅쌀로 지은 쌀밥과 생선전 등이 제공된다. 스위트룸 1박과 ‘더 스파’ 무료 입장권이 포함된 ‘늦여름 패키지’(2인 기준 50만원)를 추석 기간 이용할 경우 추석 저녁 뷔페를 추가 요금 없이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해 키즈 파라다이스 로고 티셔츠와 물통, 모자와 비치볼 등으로 구성된 키즈팩도 제공된다.
  • 호남 정자 문화의 메카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

    호남 정자 문화의 메카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

    절경을 두고 굳이 탐승의 적기를 따지는 것이 부질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배롱나무꽃 흐드러진 전남 담양의 명옥헌 앞에서라면 누구라도 늦여름날의 선경에 마음 뺏기지 않을 재간이 없겠습니다. 담양은 지금 연분홍으로 빛납니다. 나락 익는 길가, 절집 뜰, 그리고 옛 선비의 고졸한 정원에 배롱나무꽃이 무시로 피었습니다. 이 꽃이 세 번 피고 지면 가을이라지요.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여름도 막바지입니다. 배롱나무 붉은 꽃비 맞으며 가을을 맞는 건 어떨지요. ●피고 지길 세 번…이 꽃 지면 가을 담양의 대표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대나무다. 여기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엇비슷한 무게감을 갖는다. 하지만 한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맘때라면 대나무도, 메타세쿼이아도 배롱나무에 한 수 접어줘야 한다. 연분홍 배롱나무꽃이 담양 전체를 더없이 화사하게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이 장하기로는 단연 명옥헌 원림(鳴玉軒 苑林)이 꼽힌다. 명옥헌은 정자의 이름, 원림은 정자에 딸린 정원을 뜻한다. 정자 오른쪽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이 옥구슬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해서 이름지어졌다. 명옥헌 원림은 예쁘다. 첫 눈길에 정신을 쏙 빼놓는다. 좁은 고샅길을 올라가다 느닷없이 골목 어귀에서 튀어 나오는데, 명옥헌은 보이지 않고, 불그레한 꽃잎과 이를 담담하게 비춰내고 있는 연못이 장관을 이룬다. 명옥헌은 인조반정의 주역 오희도(1583~1623)의 집터 위에 넷째 아들 오이정(1619∼1655)이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정자다. 정자 앞뒤로 네모난 연못을 파서 주변에 적송, 배롱나무 등을 심고 가꿨다. 각진 연못 안엔 원형의 섬을 만들어뒀다. 대지는 네모, 하늘은 둥글다는 당시의 우주관이 반영된 공간이다. 명옥헌 ‘원림’의 한자를 정원의 일반적인 표현인 ‘園林’으로 쓰지 않고 굳이 ‘苑林’이라 표현한 것엔 까닭이 있다. 윤재득 담양군 문화재담당은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담장의 유무”라며 “바깥 공간과 구분짓는 담장이 있으면 ‘園林’, 담장 없이 바깥과 소통하고 있으면 ‘苑林’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명옥헌 원림엔 담장이 없다. ‘숲은 그대로 두고, 주변에 정자를 적절하게 배치한’, 이른바 차경(借景) 형태의 자연순응적인 정원양식이다. 차경은 자연을 경관 구성 재료의 일부로 빌려왔다는 뜻이다. 숲 위쪽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를 세웠다. 가운데 방을 들이고 사방엔 마루를 깔았다. 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정원과 배롱나무꽃의 절창을 그윽하게 굽어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100일 붉은 꽃, 백일홍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발음 나는 대로 백일홍, 배기롱 등으로 불리다 배롱나무로 굳어졌다. 독특하고 애처로운 사연이 깃든 다른 이름도 많다. 세 번을 피었다 지면 쌀밥 먹을 때가 됐다고 해서 쌀밥나무, 줄기를 긁으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흔들려서 간지럼나무 등으로 불린다. 자줏빛 ‘자’(紫)에 장미 ‘미’(薇)를 써 자미나무라고도 한다. 이름만큼 평가도 엇갈렸다. 송명숙 문화관광해설사는 “매끈하고 붉은빛을 띤 줄기에서 여인의 몸이 연상된다거나, 꽃이 너무 붉어 집 안에 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며 “귀신을 잘 쫓는다고 해서 묘지나 사당 주변에도 흔히 심었다.”고 했다. 반대로 청렴과 무욕을 상징하기도 했다. 스님들은 100일 동안 매일 번갈아 가며 돋아나는 꽃에서 용맹정진을 배웠고, 선비들은 껍질을 벗은 줄기에서 무욕의 청빈한 삶을 보았다. 배롱나무꽃은 보통 한 가지에서 피고 지기를 세 번 거듭한다. 송 해설사는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8월 초와 하순께 두 번 절정을 이룬 뒤 9월 초~중순께 마지막 정열을 불태운다.”고 설명했다. 명옥헌 주변엔 4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80~150년 된 노거수(巨樹)가 30여 그루, 2002년 해체 보수 당시 심은 후계수들이 10여 그루 된다. 늙은 몸이건, 젊은 몸이건, 하나같이 연분홍 꽃술을 우박처럼 매달고 있다. 꽃은 지고 난 뒤에도 진한 흔적을 남긴다. 동백처럼 꽃송이째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줄기에 매달린 꽃이나 바닥에 떨어진 꽃이나, 주변을 연분홍으로 물들이긴 마찬가지. 필경 꽃은 분홍빛 카펫을 깔아 함께 붉었던 여름을 배웅하려는 게다. ●자연 위에 흔적 없이 얹은 인공미 명옥헌의 ‘연관 검색어’로 꼭 찾아봐야 할 곳이 소쇄원 등 정자들이다.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의 메카가 경남 함양이라면, 담양은 호남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린다. 그만큼 풍치 좋은 정자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소쇄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세상을 뜨자 자연에 숨어 살겠다며 꾸민 곳이다. 초록빛 대나무숲과 배롱나무들이 둘러친 계곡 안쪽에 광풍각이 있고, 그 뒤로 제월당이 내려다 보고 있다. 송강 정철이 노닐던 식영정과 송강정도 소쇄원에 버금갈망정 뒤지지는 않는다. 특히 소쇄원과 이웃한 식영정은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만큼이나 운치가 넘친다. 정철의 대표작인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으로, 아름드리 노송과 배롱나무, 연못 위 정자 부용당 등이 어우러져 그림과 같은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길 모퉁이에 있어 스쳐가기 쉬운데, 꼼꼼하게 짚어보는 게 좋다. 봉산면 제월리의 면앙정은 송순의 체취가 묻어 있는 곳. 1533년(중종 28년) 건립됐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꼽히는 송순이 퇴계 이황 등과 학문을 논하고 후학들을 길러내던 곳이다. ●느릿한 발걸음에 풍경 걸리고 창평면 삼지내 마을은 장흥군 유치면,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등 우리나라에 있는 총 4곳의 슬로시티(Slow City) 가운데 한 곳이다. 16세기 초에 형성된 전통마을로, 옛 멋을 그대로 간직한 한옥과 아름다운 돌담길 사이로 ‘싸목싸목’ 걷는 맛이 각별하다. 마을 내에는 자연을 차용해 건축미가 빼어난 ‘고재선 가옥’ 등 여러 채의 전통 한옥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돌과 흙을 사용한 토석담도 정겹다. 최근엔 복개됐던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등 삼지천(三支川)을 원래 모습대로 되돌려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먹거리도 많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했다던 창평 쌀엿과 한과는 물론, 막걸리, 약초 등을 직접 만들거나 맛볼 수 있다. 한과(강정) 체험은 1만원을 받는다. 체험 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막걸리는 2시간에 2만원이다. 발효 등의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려 자신이 만든 술을 직접 맛볼 수는 없고, 앞서 다른 체험자가 만든 1ℓ를 선물로 받는다. 쌀엿은 1㎏에 1만 5000원이다. 최근 포장도로를 걷어 내고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간 메타세쿼이아 숲길도 걸어볼 만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중 약 1.2㎞ 구간의 아스콘을 벗겨내고 흙길로 ‘리모델링’했다. 차들이 쌩쌩 내달리던 가로수길 바로 위 88고속도로 또한 멀찌감치 이전시켰다. 담양군은 이 구간에 대해 차와 자전거의 통행을 일절 금지하고 보행자 통행만 허용할 방침이다. 글 사진 담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을 나와 60번 지방도를 따라 고서 방향으로 달리면 왼쪽에 명옥헌(380-3150) 이정표가 나온다. 차는 후산마을 주차장에 두는 게 좋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등을 먼저 보려면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낫다. 담양 시티투어버스 이용은 군 홈페이지(tour.damyang.go.kr) 참조. ▲맛집 삼지내 마을 초입 전통시장 주변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창평시장국밥(383-4424)이 그 중 유명하다. 머리고기·내장·선지 국밥 6000원. 대나무에 밥을 지은 대통밥은 읍내 박물관앞집(381-1990)이 잘한다. 1만 2000원. ▲잘 곳 삼지내 마을에서 한옥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창에 ‘남도민박’을 치면 민박집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한옥에서’, ‘매화나무집’, ‘명가혜’ 등이 알려졌다. 주말 4인 가족 기준 10만원 선.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3)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이팝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3)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이팝나무

    축구 골키퍼가 되고 싶은 초등학교 5학년 나윤호. 손수 만든 물폭탄을 들고 이팝나무 꽃이 환하게 피어난 운동장 가장자리의 꼭짓점 부분에 섰다. 반대편 꼭짓점을 향해 날려보낼 채비를 하는 중이다. 바닥을 잘라낸 페트병 두 개를 마주 끼우고 공기가 새지 않도록 접착제와 테이프로 마감한 물폭탄에 물을 절반쯤 채우고 발사대에 세운다. 한쪽 주둥이에는 공기를 주입할 펌프를 연결한다. 같은 반 소녀 빈주영이 펌프질을 거들고 나선다. 물폭탄에 터질 듯 공기를 가득 채운 뒤 운동장 반대편에 서 있는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윤호가 기세 좋게 발사한다. ●흉년 들어 죽은 아기들의 무덤가에 심어 선생님의 머리 위쪽으로 날아가는 물폭탄을 바라보는 윤호와 주영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떠오른다. 바로 곁에서 무더기로 하얀 꽃을 피운 이팝나무의 꽃향기가 소년 소녀의 밝은 표정 위에 살랑 얹힌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군락이 있는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마령초등학교의 늦은 봄날 풍경이다. “꽃이 쌀밥처럼 피어나서 이팝나무라고 하는 거예요. 이팝이 쌀밥이거든요. 저 이팝나무들이 우리 학교의 자랑이에요. 이게 우리 교지인데요. 뒤에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읽어보세요.” 나무 이야기를 물어보자 머뭇대던 주영이가 쪼르르 교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곧바로 지난가을에 펴낸 교지 ‘마령글동산’을 들고 와 이야기를 풀어낸다. 학교 정문 좌우로 늘어선 이팝나무는 옛날에 아기 무덤 앞에 심었던 나무들이라고 교지 뒤표지에 쓰여 있다. 또 아기 무덤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꺼렸기 때문에 나무들이 잘 지켜졌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 자리에 왜 아기들의 무덤이 있어야 했는지 모른다. 아기들의 무덤을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아기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도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의 아이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한 맺힌 이 땅의 가난한 아비들의 꿈 “농사가 잘 안 되는 바람에 아이들이 굶어 죽었다나 봐요. 아이들이 죽으면 어른들은 죽어서라도 쌀밥을 먹으라고 쌀밥나무를 심은 거라고 선생님이 알려 줬어요.” 윤호에게 아기 무덤의 이팝나무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그저 ‘전설’일 뿐이다. 또래 아이들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게 특별하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배 고플 때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당연한 일을 놓고 굳이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윤호는 당차게 반문한다. 그러나 300년 전만 해도 굶지 않는 일은 부모와 하늘에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다. 흉년이 들면 아기들은 젖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어미의 빈 젖을 물고 죽어갔다. 아비들은 어미의 품 안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이의 주검을 말 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아비는 아이의 시체를 가마니에 곱게 싸고 눈물의 끈으로 질끈 동여매서 지게에 짊어지고 뒷동산으로 올랐다. 양지 바른 자리를 찾아 구덩이를 파고, 지게 위의 아이 주검을 내려놓아야 했다. 아비는 차마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아기 무덤 앞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을 죽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생각에 못난 아비는 쌀밥을 닮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를 심고 겨우 발길을 돌렸다. 햇살 좋은 아기 무덤 앞에서 자라난 이팝나무의 사연을 아는 사람들도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나무를 심었다. 역시 이팝나무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평지리 아기 무덤은 마침내 이팝나무 동산을 이루었다. 봄이면 아기 무덤의 이팝나무들은 마을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려는 듯 환장할 만큼 아름답게 무더기로 꽃을 피웠다. 이팝나무 꽃 천지가 된 아기 무덤을 마을 사람들은 ‘아기사리’라는 지방말로 불렀다. 천연기념물 제214호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 군(群)은 그렇게 봄마다 한 맺힌 이 땅의 슬픔으로 아름다운 꽃 대궐을 이루었다. 이 아름다운 이팝나무들은 결국 이 땅의 아이들을 더 풍요롭게 지키기 위한 뚜렷한 상징으로 남았다. ●이팝나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날 아이들을 위해 이팝나무 꽃동산이 아이들의 동산으로 바뀐 건 90년 전인 지난 1920년의 일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부모들의 한풀이라도 하듯 아기 무덤을 갈아 엎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세웠다. 바로 마령초등학교다. 사람들은 그토록 찬란했던 이팝나무들을 하나 둘 베어냈지만, 그 가운데 7그루는 남겼다. 높이 13m쯤 되는 가장 큰 이팝나무와 그에 못 미치는 작은 이팝나무들은 학교 정문 옆 울타리에 줄지어 서 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아이들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지키는 표상이다.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도담도담 꿈을 키워 가는 학교 아이들이 굳이 이 나무들에 얽힌 슬픈 사연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또 피 맺힌 과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애쓸 부모도, 선생님도 없다. 그저 지금의 환경에서 윤호와 주영이처럼 어린 시절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기를 바랄 뿐이다. 화려하게 꽃 피운 이팝나무를 바라보면,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이팝나무 꽃처럼 풍성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짚어 보게 된다. 글 사진 진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991 마령초등학교 내. 새로 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의 진안 나들목으로 나가서 남원 임실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이라 불리는 진안의 명산을 바라보며 8㎞쯤 가면 나무가 있는 마령초등학교가 나온다. 진안 너른 벌에 펼쳐지는 농촌 풍경을 즐기려면 지방도로 49호선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순천~완주 간 고속도로의 상관 나들목으로 나가서 우회전하여 11㎞ 지점의 관촌면까지 가서 동북쪽으로 풍요로운 평야 지대를 14㎞쯤 가면 학교에 닿는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2)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32)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

    봄볕 짙어지면 농부는 한 해 농사를 위해 논밭으로 나선다. 싹 틔운 볍씨를 가지런히 세운 모판을 경운기에 잔뜩 싣고 논으로 향하던 농부는 마을 어귀의 나무 앞에 잠시 멈춰 선다. 올해 농사가 잘될지를 가늠하기 위해 농부는 환하게 꽃 피운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띠운다. 나무에 꽃이 잘 피어나면 풍년이 든다는 오래된 믿음에 기댄 미소다. 쌀밥처럼 온 가지 위에 하얀 꽃을 수북이 피워 올린 이팝나무를 바라보다가 덜커덕거리는 경운기 엔진을 끄고 농부는 뒷주머니에서 전화번호가 적힌 꼬깃꼬깃한 종잇장을 꺼내든다. 농부는 흙 묻은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이팝나무의 오월 꽃 소식을 먼 도시로 전한다. ●농부가 전해주는 이팝나무 화신 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평지마을 농부 이순옥(69)씨가 전화로 전해 준 이팝나무의 개화 소식을 받고는 부리나케 평중리 이팝나무를 찾아 나섰다. 바로 건너 마을인 낙안면에서 나고 자란 시인 최인서(36)씨가 고향길 나무 답사에 동행했다. 이팝나무는 오월에 보름 남짓 동안 넉넉하게 꽃을 피우는 느긋한 나무이거늘, 절정의 개화 순간을 맞추어 찾아보는 건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농부의 화신(花信)은 언제나 고마울 수밖에 없다. 농부 이씨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 늦은 봄이다. 답사 날짜가 예년의 개화 시기보다 조금 늦었다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평지마을을 찾았다. 아직 여름이라 할 수 없는 봄날이었지만, 나무는 이미 낙화를 마친 뒤였다. 낙심한 표정으로 나무 앞에 서 있다가, 마침 논을 갈러 나온 이씨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꽃잎 떨어진 게 아쉽다.”고 하자, 그는 선뜻 “다음부터는 꽃 피어나면 소식 전해 줄 테니, 전화받고 오라.”며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냉큼 전화번호를 적은 수첩 한 장을 찢어 농부의 주머니에 접어 넣어준 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농부가 이끌어 주는 평지마을 이팝나무 답사는 늘 행복한 길이 될 수 있었다. 올해의 평중리 이팝나무도 농부의 꽃 소식 따라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농촌의 봄을 찬란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20m 넘게 자라는 큰 나무 가운데 이만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나무는 흔치 않다. 벚꽃이 아름답다지만 절정의 순간이 짧아 아슬아슬한 것과 달리, 이팝나무는 벚꽃만큼 화려한 꽃을 그보다 훨씬 오래 피우는 넉넉한 나무여서 좋다. 마침 나무 앞을 지나는 이홍수(75)노인에게 ‘올해는 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풍년이 들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산들바람에 실려온 꽃 향기로 흥에 겨워진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팝나무에 꽃이 잘 피는 마을은 흉년도 피해간다고 대거리했다. ●보드랍고 환한 숨결을 가진 나무 “나무마다 제 빛깔에 맞는 숨결이 있는가 봐요. 이 이팝나무의 숨결은 유난히 보드랍고 환하지 않아요? 마을 노인도 이 나무의 부드럽고 넉넉한 숨결을 닮은 듯해요.” 노인이 지나가자 동행한 시인 최인서(36)씨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최 시인은 노인이 남긴 이야기에 남도 농부 특유의 넉넉함이 담겼다고 했다. 이 마을이라고 해서 딱히 쪼들릴 때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언제나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이팝나무꽃의 풍요를 닮았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세상의 모든 나무를 대지에 우뚝 선 “햇빛과 비와 바람의 집 한 채”(‘나무와 나’에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시(詩)에서처럼 시인은 고향에 돌아와 오랫동안 쌓인 도시 생활의 객수를 달래려는 듯 평안한 몸짓으로 나무 줄기부터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잎 한 장까지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마음 깊은 곳에 담아냈다. 400살 정도로 짐작되는 평중리 이팝나무는 키가 18m나 되는 큰 나무로, 땅에서 솟아오른 줄기가 둘로 나뉘어 자랐다. 두 개의 줄기 중 하나는 곧게 서고, 다른 하나는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는 듯 비스듬히 오르다 다시 곧게 섰다. 비스듬히 솟은 줄기가 중간 너머쯤에서 오래전에 부러진 것은 아쉽지만,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리지는 않았다. 미추(美醜)에 대한 느낌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평중리 이팝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팝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1962년에 천연기념물(제36호)로 지정한 것도 그래서일 거다. 너른 들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팝나무 그늘에 정성껏 세운 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도 평중리 이팝나무의 운치를 더해 준다. 농촌 마을에 어울리는 이팝나무와 정자의 풍경은 평화와 풍요를 갖춘 우리네 농촌의 전형적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대풍(大豊)을 예감할 만큼 꽃이 활짝 피어났을 때의 광경이라니. 해마다 이 즈음이면 손가락 꼽아가며 농부가 보내 올 꽃소식을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농촌의 풍경을 살갑게 하는 나무 오랜만에 고향 땅에 와서 햇빛과 바람의 집을 찾은 듯, 시인은 만개한 이팝나무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래도록 나무 앞을 떠나지 못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야 할 시인은 고향 이팝나무꽃의 은은한 향기를 마음 깊은 곳에 고이 담아 두려는 듯 마냥 경건한 눈길로 나무를 어루만졌다. 시인의 날숨과 나무의 들숨이 하나 되는 풍경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마을 안쪽에서 털털거리는 경운기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순간 나무와 시인이 고요하게 나누던 낮은 숨결이 흐트러지고, 농촌의 정겨운 일상이 나무 곁에 스며들었다. 경운기를 이끌고 나오는 농부의 얼굴에는 이팝나무꽃 을 닮은 순백의 빛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바로 내게 봄마다 꽃 소식을 전해주는 농부 이순옥씨였다. 농부의 경운기가 살짝 멈춘 이팝나무 아래로 달려가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활짝 피어난 이팝나무꽃 아래에서 환하게 반기는 이씨의 밝은 표정에 이팝나무꽃 향기가 살포시 배어 나왔다. 글 사진 순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전남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634.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으로 나가자마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600m 가면 도로가 둘로 나뉜다. 왼쪽 길은 새로 낸 도로이고, 오른쪽은 평중마을로 이어지는 옛 도로다. 오른쪽 도로 270m 전방에 이팝나무와 작은 정자가 보인다. 나무 앞 길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안쪽에는 자동차를 세울 공간이 넉넉지 않으니 정류장 근처에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에 다가가는 게 좋다. ‘평중리 35번지’라고 한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자료는 틀렸으니 주의해야 한다.
  • ‘흰 쌀밥과 물만 먹어야 사는’ 희귀병 여성

    ‘흰 쌀밥과 물만 먹어야 사는’ 희귀병 여성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우스개 속담이 현실인 한 여성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미켈라 스태포드(53)는 10여 년 전부터 음식에 부작용을 보이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증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99년. 평소와 똑같이 음식을 먹은 뒤 급작스러운 두통에 시달린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에 대한 몸의 부작용을 느끼고 식사 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태포드의 몸이 받아들이는 음식의 성분은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흰 쌀밥과 물 밖에 남지 않았다. 튀김음식과 구운 음식 등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설탕, 오일, 지방, 버터, 밀가루 등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들 성분이 첨가된 음식을 먹을 경우 두통 뿐 아니라 설사와 몸 전체에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 계속되기 때문. 신경학 전문가인 카롤린 레이 박사는 “아무 영양소도 없이 흰 쌀밥만 섭취할 경우 몸에 심각한 무리가 올 수 있다.”면서 “특히 비타민과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부족할 경우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단 한 번도 스태포드처럼 심각한 음식 부작용 증상을 본 적이 없으며, 학계에서도 치료 사례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10년 넘게 물과 밥만 먹고 생활한 스태포드는 “쌀밥 이외에 다른 음식을 먹게 되면 최소 1주일은 일어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면서 “가장 힘든 것은 매일 몸에 기력이 없어 움직이기 어렵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정해진 탓에 최대한 덜 움직이려 애써야 한다는 그녀는 결국 자신의 희귀병을 인정하고 회사도 그만둔 채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더 이상 가족과 즐거운 식사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슬프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병을 알리고 치료법을 구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길섶에서] 보리밥/주병철 논설위원

    보릿고개(춘궁기)를 경험한 우리나라 베이비부머(baby boomer·1955~1964년생)에게 보리밥은 학창시절 아련한 추억의 ‘인증샷’쯤 된다. 보리밥은 반지르르한 하얀 쌀밥 때문에 귀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거무튀튀한 색깔에 맛은 별로 없고 먹고 나면 금방 배고팠다. 보리밥 하면 중학교 1학년 때가 떠오른다. 1970년대에는 쌀이 부족해 도시락에 보리를 섞는 ‘혼식 캠페인’이 있었다. 하루는 교감선생님이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러 내 도시락을 높이 들고는 ‘혼식은 이렇게 해오는 거야.’라며 칭찬을 해줬다.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더 넣었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창피하던지 얼굴이 발개졌다. 이후 한동안 ‘보리밥 신드롬’을 앓았다. 까맣게 잊었던 보리밥을 다시 맛보고 있다. 건강식을 위해 식탁에 쌀밥과 현미밥이 함께 놓인 지 오래인데, 최근에 쌀밥과 보리밥이 교체됐다. 귀하게 여겼던 쌀밥은 자취를 감추고, 보리밥이 현미밥과 함께 어깨를 겨룬 것이다. 보리밥 파이팅이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사라진 것의 소중함은 되돌려질 수 없는 상실로 인해서 더 간절하다. 다시 만날 수 없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라면 간절함의 깊이는 더하게 마련이다. 산업화 이전 대다수 민초들이 겪고 넘어야 했던 이른바 보릿고개의 추억은 어찌 보면 잊어야 더 좋을 아픈 경험일 터. 그런데 많은 이들이 어려운 그 시절의 보릿고개를 자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뭘까. ‘갯마을 하진이’(박형진 지음, 보리 펴냄)는 그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부대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정겹게 반추한 책이다. 고향 전북 부안군 변산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50대 중반 농사꾼 시인의 유년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어울려 쏘다니며 울고 웃던 고향 친구들과의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축으로 어렵던 그때 그 시절을 수채화처럼 풀어낸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구수한 호남 사투리로 끌어간, 동화 같은 사건들. 배 속의 회충 탓에 반복하던 배앓이, 명절에만 먹어보는 흰 쌀밥의 희열,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해대던 밭 서리….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악동들의 천진한 놀이며 장난에 얹힌 추억들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40대를 넘긴 세대라면 너나 없이 겪었을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공유의 시간들이 간절해진다. 책은 단순한 추억 건져내기에 머물지 않은 채 묘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무난하게 읽히는 낭만과 추억의 이야기들엔 시인 특유의 앙금들이 또렷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진 이웃들, 벌어먹고 살 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거나 가출한 친구들…. 편하게만 읽어도 좋을 어린시절의 추억 여행에 담긴 상실과 그리움의 메시지는 어른, 아이의 관심을 모두 잡아끄는 독특한 울림으로 살아난다. 고향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향해 저자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집을 떠나 돈 벌어 오겠다는 동무들은 이제껏 단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면 하진이는 갯벌로 나가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 애들도 하진이를 그리워할까요?” 95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몸무게 61㎏’ 4세 초우량아 “볼 살이 눈 덮을까 걱정”

    또래보다 몸집이 다섯배나 큰 중국의 초우량 남자아이의 사진과 일상생활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올해 4살인 루하오는 흔히 보는 우량아와 달리, 태어날 당시 2.6㎏의 정상 몸무게였지만 3개월이 지난 후부터 급속도로 몸이 불기 시작했다. 광둥성에 사는 루하오의 부모에 따르면 키 110㎝인 이 아이는 지난해에만 10㎏이 불어났고, 최근에는 61㎏을 돌파했다. 또래보다 유독 쌀밥을 좋아한다는 루하오는 먹는 양도 친구들에 비해 3배 이상이다. 루하오의 부모는 아이의 볼살이 불어나면서 눈을 가릴 정도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며 걱정스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비만의 원인으로는 먹는 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운동량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이는 평소 유치원까지 잠시 걷는 것도 극도로 싫어해 부모가 매일 오토바이에 태워 등하교를 시키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줄 때까지 울어대서 어쩔 수 없다.”면서 “루하오는 걷는 것을 매우 귀찮아하지만 다행히 축구는 좋아해서 매일 한두시간씩 뛰놀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운동 뒤 오는 허기 때문에 더 많은 음식을 찾는 아이의 모습에 부모의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루하오의 아빠는 “병원 3곳을 찾아가 봤지만 서로 각기 다른 원인을 이야기했다. 아직까지도 비만의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면서 “아이의 건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까 매우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高경위가 ‘제 발로’ 유치장 들어간 까닭은

    高경위가 ‘제 발로’ 유치장 들어간 까닭은

    경찰청 수사과 고유석(30) 경위. 그는 지난 19일 ‘죄 없이’ 유치장에 감금됐다. 앞서 오전 10시 40분. 그는 ‘제 발로’ 서울 수서경찰서 유치장을 찾았다. 담당 경찰관에게 입감의뢰 요청을 한 뒤 유치인 보호관과 신체검사실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간이 신체검사’를 받았다. 통상 유치실에 들어가기 전에 죄질 등에 따라 옷을 전부 벗고 가운을 입은 뒤 신체 곳곳을 확인하는 ‘정밀 검사’나 속옷 상태에서 위험물 소지 등을 점검하는 ‘간이 검사’, 옷을 입은 채 소지품을 체크하는 ‘외표 검사’를 받는다. 이어 11시 20분. 금속탐지기를 거친 뒤 곧장 유치실 3호실로 입감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혔다. 어두운 실내 조명과 쇠로 된 잠금장치 소리에 위축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답답하고 처량했다. 가림막이 설치된 변기에 앉기가 수치스러워 용변도 보지 못했다. 식사로 나온 단무지, 김치, 콩나물국, 쌀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를 닦은 뒤에는 오후 4시까지 20㎡가량의 유치실 내부를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도대체 그는 왜 이곳에 와 있는 걸까? 이 이색 체험은 전국 유치장 개선방안의 하나로 마련됐다. 유치장의 대대적인 진화를 앞두고 실제 정책 입안자가 직접 불편한 점을 도출하기 위해 경험해 본 것이다. 이 경험은 고스란히 이번 개선안에 반영됐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경찰청의 ‘인권친화적 유치장 운영 개선 계획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고 경위처럼 신임 경찰관들이나 간부후보생 등도 이 같은 유치장 체험 프로그램을 거쳐야 한다. 이달까지 전국 경찰서 139개 유치장 시설 등도 전면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우선 유치실 내부가 밝아진다. 침침하고 어두울수록 심리적 불안정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유치실 조도를 200룩스(lx) 수준으로 밝게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자해를 막기 위해 날카로운 쇠창살도 둥근 안전창살로 교체한다. 문을 여닫을 때 마찰음이 심했던 출입문 쇠철봉도 소음 없는 자물쇠로 바꾸기로 했다. 또 유치장 1, 2층 사이에 가림막을 설치해 보온·단열 효과도 높이기로 했다. 유치인 면회 절차도 개선된다. 면회인이 유치장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동선을 고려한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약도도 제공한다. 교육용 유치장도 생긴다. 경찰청은 경찰교육원이나 수사연구원에 올 하반기까지 유치장을 설치하고, 교육과정에 유치장 체험 프로그램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현재섭 경찰청 수사과장은 “최대한 유치인 입장을 배려해 이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담배·과음 No!… 탄수화물 섭취 줄이세요

    대사증후군은 대표적인 생활습관병이다. 나쁜 생활습관과 영양 과잉이 대사증후군의 주범인 만큼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대사증후군이 왔다 해도 생활습관을 고치면 대사증후군이 유발하는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생활지침을 가져야 할까. 첫손에 꼽히는 지침은 금연이다.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담배의 유해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과음도 경계해야 할 나쁜 습관이다. 소주를 기준으로 1일 주량을 한두잔 이내로 줄여야 한다. 과음을 하면 고열량의 알코올 때문에 당질 대사에 과부하가 걸리고, 술을 마실 때 고열량 안주를 많이 먹게 돼 자신도 모르게 과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식도 금물이다. 대사증후군을 예방·치료하려면 평소 먹는 양의 80% 정도로 양을 줄여야 한다. 특히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는 대사증후군의 가장 큰 적이다. 흰 쌀밥이나 국수 등을 줄이는 대신 적당량의 육류를 섭취해야 하며, 채소와 생선을 골고루, 싱겁게 섭취한다. 또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을 하도록 한다. 가장 쉽고, 좋은 운동이 걷기다. 1분에 110보 정도의 속도로 30분 정도 걸으면 3000∼3500보가 되는데, 이런 페이스로 매일 5000보 이상 걸으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도 대사증후군의 주요 원인이다. 허갑범 회장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를 원만하게 수용하고 소화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정기적으로 혈압·혈당·콜레스테롤 등을 측정해 이상이 나타날 경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며,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에 대해서는 응급증상을 숙지해 발생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최수종씨 등 ‘100인 이사회’ 연예인·대학생 사랑의 밥 나누기

    [독거노인 사랑잇기] 최수종씨 등 ‘100인 이사회’ 연예인·대학생 사랑의 밥 나누기

    25일 오전 8시 서울 이화동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일회용 도시락통에 흰 쌀밥을 담는 사람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태조 왕건으로, 대통령으로 TV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최수종씨였다. 연예인 봉사단체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 이사장인 최씨는 이날 부인 하희라씨 등 연예인 13명, 대학생 40여명과 함께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밥 나누기’ 활동을 펼쳤다. TV 속 배우가 아닌 평범한 ‘나눔인’으로 참여했지만, 인기 연예인들의 등장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종합복지관에서 도시락배달 봉사를 한다는 이수련(67)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보니 신기하다.”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일하지는 않는데, 참 고맙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최씨 등은 종로구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배달했다. 참여한 연예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능미씨는 종합복지관에서 30여분 떨어진 창신동의 독거노인댁을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방문했다. 남씨는 “그동안 받은 사랑을 부족하나마 돌려 드리는 것 아니겠느냐.”며 “노인들을 직접 방문해 식사도 전하고 건강도 확인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봉사”라고 말했다. 남씨는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연이어 시작된 무료 점심 급식에서 노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체하지 않도록 급하게 드시지 마세요.” 여배우가 직접 말을 건네자 노인들은 아이처럼 “함께 사진을 찍자.”며 반가움을 전했다. 김흥수씨 등 배우들은 최수종씨와 함께 출연하는 드라마 ‘프레지던트’ 촬영을 아침까지 마치고 행사에 참여했다. 이들은 점심 급식판을 노인들이 앉은 자리까지 전하고 청소 등 뒷정리까지 하며 복지관 곳곳을 챙겼다. “모자란 반찬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인기 여배우 왕지혜씨는 노인 한분 한분에게 부족한 반찬과 밥을 챙겨 드렸다. 홍창주(70) 할머니는 “꼭 손녀를 보는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대학생 김기현(21·여)씨는 “오늘 자리를 통해 봉사의 의미와 더불어 노인들의 현주소와 독거노인 문제를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세대공감] 세월따라 변한 ‘부의 상징’

    [세대공감] 세월따라 변한 ‘부의 상징’

    농산물 수입개방이 되기 전인 1986년 봄. 초등학교 1학년 꼬마는 소풍에서 자신의 짝지가 완전 부잣집 딸이란 것을 알게 됐다. 꼬마가 태어나서 한번도 하나를 온전히 먹어보지 못한 노란 바나나. 짝꿍의 소풍 가방에는 바나나가 무려 3개가 나왔다. 하나는 선생님 것. 하나는 짝의 것. 그리고 하나는 꼬마에게 쥐어졌다. 금지옥엽으로 자란 짝지의 어머니가 자신에게도 나눠주라고 챙겨준 것이었다. ‘바나나 한개를 혼자 먹다니.’ 이후 1학년 꼬마에게는 바나나가 ‘부의 상징’이 됐다. 이젠 바나나는 가장 싼 과일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꼬마에겐 여전히 바나나가 ‘있는 집’의 상징으로 생각된다. 세태가 급변하면서 경제력의 척도를 나타내는 물건도 바뀌고 있다. 세대마다 깊게 각인된 ‘부의 상징’은 여전히 “우리 때는 저거 있으면 정말 사는 집이었지.”라는 말을 끄집어낸다. 세대별 부의 상징을 찾아봤다. 친구의 메이커 운동화 흙 묻히며 심술냈어요 서울 봉천동의 김진화(24·여)씨는 초등학교 시절 ‘메이커 운동화’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4학년 때까진 어머니께서 사 주신 신발을 아무 말 없이 신었지만 5학년이 되고 나서 ‘메이커’에 눈을 떴다. 메이커라고 해 봤자 아는 것은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가 전부. 꼬마였던 김씨는 이런 브랜드들을 하나 하나 외며 친구들 앞에서 제법 아는 척 했다. 당시 김씨의 눈에 메이커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하나 같이 잘사는 집 아이들이었다. 아버지의 직업이 의사, 사업가, 유명 학원장 등이었다. 한마디로 그때 김씨의 학교에서는 메이커 운동화가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던 것. 이런 친구들은 새로 산 티가 나는 운동화를 친구들 앞에서 내밀며 괜스레 자랑하고 다녔다. 김씨는 “솔직히 부럽기는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산 운동화는 밟아 줘야 오래 신는다며 일부러 흙을 묻히기도 했죠.”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서울 신월동에 사는 송유경(26·여)씨는 마음의 여유가 곧 부의 상징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송씨는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출판사에서 성인을 위한 영어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송씨는 돈을 버는 데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적은 돈이라도 여유롭게,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보다는 천천히 좋아하는 일을 조금씩 하며 살고 싶다. 웰빙이 곧 부의 기준인 셈이다. 송씨는 “세상에 돈이든 보석이든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있지만 마음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나요? 전 마음이 부자이고 싶어요.”라며 미소지었다. 외제차 부럽지만 엄두는 못 내죠 서울의 회사원 최영민(27)씨에게 부의 상징은 소위 ‘명품 외제차’이다. 결혼식에 번쩍번쩍하는 외제 승용차를 몰고 오는 친구들은 완전 선망의 대상이다. 최씨는 “남자가 명품 자동차를 몰고 예쁜 여자가 옆에 타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면서 “여자와 사귈 때도 고급 승용차가 있으면 작업이 더 잘 된다.”면서 부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최씨는 명품 자동차를 사기 위해 딱히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최씨는 “부의 상징은 단지 상징일 뿐 내가 하기에는 막연한 거리감이 있다.”면서 “이제 직장생활 1년차인데 아껴서 장가갈 돈 모으는게 더 급하죠.”라고 말했다. 그에게 명품 차는 아직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갓 입학한 여대생들은 명품 가방에, 명품 구두까지 갖춘 졸업반 여대생들은 옷이 날개인 듯 명품 의류에 필이 꽂힌다. 서울에 사는 피아노 강사 김영희(34·여)씨에게 부의 상징은 ‘교정기’이다. 김씨는 요즘 들어 TV에서 유명 스포츠 스타나 탤런트들이 교정을 통해 과거에 비해 확연히 예뻐진 모습을 보며 교정의 효과에 새삼 놀란다. 김씨는 “그동안 절친들이 미용을 위해 교정을 한다는 것에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시큰둥했던 자신이 후회스럽다.”면서 “연예인들은 물론 주변 친구들이 교정을 하고 달라진 모습에서 부러움과 환상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사귀는 이성도 없어 결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 김씨에게 교정기는 그야말로 탁월한 성형 효과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이다. 김씨가 교정기를 부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웬만한 사립 대학의 등록금에 맞먹는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 하지만 김씨는 일주일 전 큰 마음을 먹고 교정을 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지난 1년 간 피아노 강사를 하며 모은 돈을 쪼개 나를 위해 투자할 생각”이라면서 “현재 학원 수업 도중 틈날 때마다 주변 치과에 들러 교정하는 데 드는 비용을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등촌동에 사는 대학생 지은송(25·여)씨의 부의 상징은 ‘직업’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취업만 해도 성공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일을 하느냐가 성공을 넘어서 그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서다. 지씨는 “취업난으로 불안한 마음은 대학입학 때부터 항상 있어 왔던 일이잖아요. 그래서 대학입학 때부터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씨는 현재 졸업을 1학기 남겨두고 휴학 중이다.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 근처에서 살며 매일 하루에 4시간씩 자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엔 떨어졌지만 올해는 꼭 붙겠다는 각오다. 지씨는 “매일 반복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합격할 저를 생각하면 다시 한 번 힘이 나요.”라며 밝게 웃어 보였다. 모두가 안정적인 공무원, 고시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도전의식이 없다고 비판하는 어른들에게 지씨는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 안정적인 것을 찾는 게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아닐까요. 미래에 제가 안정적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게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대답한다. 사는 곳이 자신의 경제력을 말해주죠 ‘부동산 광풍’이라는 말은 순천에 사는 주부 정연순(48·여)씨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만 같다. 전세살이로 전전하다 8년 전에 마련한 시골 마을의 1층 단독주택이 정씨의 보금자리. 넓은 집은 아니지만 정원에는 봄꽃이 봉오리를 틔울 준비를 하고 있고 누렁이 한 마리도 있다. 아담한 보금자리다. 하지만 정씨는 “우리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부의 상징은 바로 아파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씨의 생각에 아파트는 보금자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씨는 서울 강남의 남동생 부부가 내려와 아파트값이 떨어졌다느니, 어느 곳에 신도시가 개발되는 데 괜찮을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를 실감했다. 정씨는 몇년 전 서울에 갔다가 강남에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들을 봤다. 벽면은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로 뒤덮여 있고 꼭대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정씨는 문득, ‘저런 아파트가 아니어도 살기 좋은 집은 많은데 굳이 저런 아파트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정씨는 “아파트를 부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투기가 발생하고 땅값이 오르는 것 아니냐.”면서 “집을 부의 상징이 아닌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이나 서초 등 사는 지역도 부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쌀이 부족하니 보리혼식을 합시다’. 제주에 사는 김성진(58)씨는 1960년대에 한참 나돌았던 이 구호를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온다. 제주에는 쌀이 턱없이 부족해 사람들은 보리밥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제주는 논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다른 지역보다도 쌀 부족 현상이 심했다. 1960년대 제주에서는 ‘쌀밥’이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당시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집은 곧 부잣집”이라면서 “제사상에 쌀밥과 쌀떡을 올리는 집 아이들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친구들을 데려와 제사상에 올려진 쌀밥과 떡을 슬쩍 보여주곤 그걸로 며칠 동안 목에 힘을 주고 다녔지.”라며 미소를 지었다. 평범한 집이라도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면 쌀밥을 먹고 싶은 게 아이들의 인지상정. 김씨는 “운동회 날이면 어머니께서 모처럼 쌀밥을 지어서 보리밥 위에 한두 숟갈 얕게 얹어서 도시락을 싸 주었지.”라며 “도시락을 열었을 때 하얀 쌀밥이 눈에 들어오면 지금 말로 완전 대박”이라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TV는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었지 서울 목동에 사는 김성일(58)씨는 텔레비전을 꼽았다. 김씨는 “지금이야 엄청나게 화질도 좋고 선명한 큰 텔레비전이 많이 있지만 제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흑백 텔레비전은 마을에서 하나 있을까말까 했어요.”라며 그 시절을 떠올렸다.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에 한대 있던 텔레비전은 아이들이 그 집으로 모이게 했다. 마음씨 좋은 집주인 아저씨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텔레비전 보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 집 아들이 문제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텔레비젼을 보지 말라며 생떼를 썼기 때문. 그때마다 김씨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부끄러웠다. 김씨는 “기분은 무척 나빴지만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꾹 참았지만 나름대로 마음의 상처였는지 가끔 생각하면 씁쓸하네.”라고 말했다. 김씨는 부잣집 아들의 구박에도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다. 김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바뀔 수 없는 것은 그때의 추억”이라면서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때 다같이 사람들이 웃고 울던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경기 안양에 사는 김기숙(52·여)씨는 부의 상징이란 곧 ‘가방끈’이라고 단언했다. 전남 함평 출신인 김씨가 학창시절을 보낸 1970년대만 해도 까만 교복을 입고 여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손에 꼽을 정도. 설사 학교에 다닐 수 있어도 운이 좋으면 초등학교 때까지 혹은 초등학교 3, 4학년까지 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4남매의 첫째였던 김씨도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초등학교만 나온 게 전부였다. 김씨는 “3학년인가 4학년인가 그때쯤 아버지가 이제 학교 다니지 말고 집에서 일하고 동생들 돌보라고 하셨을 때 난 학교를 가겠다고 소리 지르면서 집을 뛰쳐나갔던 게 생각난다.”면서 “첫째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던 아버지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하며 한숨울 내쉬었다. 결국 김씨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있도록 허락했다. 몇몇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김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 애들이 지나갈 때면 저도 모르게 집에 숨었어요.”라면서 “지금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선생님, 교수가 됐는데 저도 똑같이 공부했다면 그 친구들처럼 자신 있게 명함을 내밀수 있지 않았을까 하면서 혼자 웃곤 해요.”라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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