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싸이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토익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원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불신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이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377
  • 도심 가스기지 폭발 큰불/12명 사망·실종­44명 중경상

    ◎주택 등 60채 전소… 주변 가스공급 중단 7일 하오 2시55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1동 606 도로녹지공원 지하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아현정압기지에서 가스관밸브 점검작업중 원인모를 불이나 지하에 매설된 도시가스관이 폭발,이 일대가 화염에 휩싸이면서 인근 가옥이 불타고 수십명이 죽거나 다치는 대형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화인은 불명 이날 화재사고로 인근 식당인 진주집주인 조수옥씨(37·여·마포구 아현동 604의29)등 4명이 숨지고 정압기지내 계량라인중 1곳에서 가스누출이 있었다는 신고에 따라 가스점검작업중이던 한국가스기술공업 직원 박상수씨(26)등 3명과 서울도시가스 직원 진상훈씨 등 8명이 실종됐으며 4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러나 실종됐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라 사망·실종자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불로 인근 주택 40채와 상가 15개소등 55채가 전소됐고 서울 3코3883호 프라이드승용차 등 차량 30대가 불타거나 부서졌으며 반경 3백m이내의 건물 유리창 수백장이 폭발에 의한 충격으로 깨졌다. 불길은 사고발생 1시간만인 하오 3시53분쯤 일단 진화됐다. 목격자들은 『불길이 30m가량 공중으로 치솟아 빌딩 15층 높이까지 그 열기가 느껴지고 도로 건너편 빌딩에까지 불똥이 튈 정도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가 나자 소방차 30대와 구조헬기 2대를 동원,진화·구조활동에 나섰으나 거센 바람을 타고 불길이 워낙 세차게 뻗치는데다 추가 폭발위험때문에 현장에 접근이 어려워 진화가 늦어졌다. 가스공사측은 사고직후 아현정압기지에 가스를 공급하는 군자 및 합정가스저장소의 가스공급밸브를 차단,복구작업에 나섰으나 피해가 워낙 커 완전복구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에 따라 작업도중 가스가 폭발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당시 마포구 아현3동 남아현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지하가스공급기지로 옮겼붙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이 정압기지 시공회사인 (주)한양 및 가스공사·서울도시가스 관계자들을 소환,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망자 및 실종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망자 ▲조수옥 ▲신원 미상 2명 ◇실종자 ▲박상수(한국가스기술공업 직원) ▲홍성호(〃) ▲오광식(〃) ▲정발헌(서울도시가스 직원) ▲진상훈(〃) ▲박범규(현장 경비원) ▲윤귀환(39·이현동 383) ▲김영배(극동도시가스 직원) ◎상공부,수습나서/대검선 “책임자 엄벌” 지시 정부는 7일 발생한 한국가스공사 아현 정압기지 폭발사고의 조기 수습과 사후 대책 마련을 위해 박운서 상공자원부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 사고대책 본부를 설치,본격적인 수습에 나섰다. 대책본부는 박청부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임종순 한국가스안전공사 이사장,선우 현범 한국가스기술공업 사장,홍민규 서울도시가스 사장,이무용 극동도시가스 사장 등 관련기관 책임자들로 구성됐다. 중앙 사고대책 본부는 신속한 일처리를 위해 서울시와 한국가스공사,한국가스안전공사 관계자를 중심으로 총괄반과 사후대책반 등 2개의 실무반을 가동한다.총괄반은 사고 수습 지휘와 사고 원인 조사,재발 방지 대책 등을 맡고 사후 대책반은 도시가스 시설 복구 및 지원과 사망·부상자에 대한 대책을 세워 추진한다. ◎사고원인 철저 규명 대검 강력부(김진세 검사장)는 7일 아현동 도시가스폭발·화재사고와 관련,사고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들을 엄중처벌하라고 서울지검에 긴급지시했다. 이에 따라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형사2부 소진 검사를 사고현장에 보내 경위를 조사하도록 했다. 검찰은 감식결과 잘못이 확인될 경우 공사책임자와 안전책임자 등을 형법상 중실화·중과실치사상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지하철공사장 철판 15층까지 튀어/사고현장 주변 이모저모

    ◎폭발현장엔 6m 깊이 웅덩이/귀고리로 사망부인 확인 “통곡” ○…사고직후 30여m이상 화염이 치솟으면서 공원 부근 아현1동 8·9·42번지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특히 이 일대가 전통 한옥과 불량주택 등이 밀집한 지역인데다 때마침 강풍이 불어 40∼50여채의 건물이 20여분만에 전소. 주민 2백여명은 안전지대에 위치한 골목길에서 자신의 집과 가게가 불길에 싸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발을 굴렀으며 일부 주민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와 집에 들어가 귀중품 등을 들고 나오기도. ○…사고당시 5∼6차례의 폭발음이 울리면서 지하철공사에 사용되는 철판 3장이 고려아카데미빌딩 15층 높이까지 올라간 뒤 떨어질 만큼 폭발은 위력적. 행인 김영수씨(43·회사원)는 『화재현장 앞길에 10여대의 차량들에 있던 승객들이 급히 내려 대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편 불기둥이 30m이상 치솟으면서 가까운 여의도는 물론 을지로 등에서도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는 것. ○…사고현장 주변은 마치 폭탄이 투하된 전장처럼 각종 시설물과 가로수 등이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소.특히 가스저장소 위에 조성된 2백여평 남짓의 도심공원에는 나무와 벤치 등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사고 직후 형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으며 폭발로 5∼6m 깊이의 웅덩이가 생겨나기도.또 공원과 인접한 골목길 등에 주차해 있던 서울1르 5903 프라이드 승용차를 비롯한 30여대의 차량들도 전소돼 거대한 숯덩이를 방불.하오 4시30분쯤 사고현장 한 주택에서 30대 남자가 인명구조대원들에 의해 구조돼 나오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울부짖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이날 폭발사고로 머리와 왼팔·양쪽발에 화상을 입은 최명숙씨(42·여·서울 마포구 아현동 606의5)는 어렵게 마련한 집과 계원들로부터 받은 곗돈 8백여만원을 날리고 한숨. 최씨는 사고현장 부근에 있는 중국집 태화장과 자신이 일하는 우기용달사무실등의 계원 50여명으로부터 15만원씩 받은 곗돈을 안방에서 계산하고 있던 중 『펑』하는 굉음과 함께 들이닥친 불길을 피하기 위해 몸만 빠져나오느라전 재산을 몽땅 날려버렸다는 것. ○…마포구청에 설치된 사고대책본부는 하오 11시쯤 조삼섭 구청장과 박청부 가스공사사장,구의회의원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고대책회의를 열고 소의국교 등 2곳에 분산수용된 이재민들에게 전세금 지급과 함께 생활필수품 수급을 논의. 또 사고원인과 책임소재를 따지지 않고 가스공사측이 전액을 피해보상하기로 서울시와 가스공사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 ○…진화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주민 50여명이 현장에 몰려와 『공원앞에는 평소 「비상대피소」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면서 『비상시에는 가스관 때문에 오히려 더맣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 뻔한데도 이곳을 비상대피소로 지정할 수 있느냐』고 격렬히 항의. ○…사고현장 부근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는 이정엽씨(43)는 사고당시 식당 2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부인 조순옥씨(38)를 찾지 못해 해메다 사망자가 안치된 서대문구 세림병원영안실에서 조씨의 귀소리를 보고 사망을 확인한뒤 망연자실. ◎대형 가스사고 일지 ▲74·11·16= 서울 응암동 남찬가스서부저장소 폭발,30명 중상 ▲78·10·16=서울 현대아파트 가스폭발,12명 부상,1백12가구 파손 ▲78·10·22=서울 명동 LP가스 폭발,재산피해 1백41억원 ▲81·8·13=안양시 보신탕집 프로판가스 폭발,10명 사망 20명 부상 ▲81·12·26=서울 대한화재보험 지하식당 가스폭발,3명 사망 1백30명 부상 ▲82·5·10=부천시 우풍회사 공장 가스폭발,31명 사상 ▲85·5·6=서울 마포·서대문구 14개동 도시가스 연쇄폭발,가옥 20채 파손 ▲90·7·22=울산시 유공 에틸렌공장 부탄가스 저장탱크 폭발,재산피해 1억원 ▲91·10·12=울산시 현대아파트 가스폭발,8명 사망 1명 부상 ▲93·11·9=여수시 삼성전자 판매장 LP가스 폭발,20명 부상 ▲93·11·29=울산시 현대미포조선소 LPG운반선 폭발,10명 부상 ▲94·1·9=광주시 무등주유소 LP가스 폭발,3명 사망 5명 부상 ▲94·4·27=전남 나주군 신진냉동 가스폭발,5명 사망 2명 부상 ▲94·8·30=서울 도봉2동 4층 건물 LP가스 폭발,1명 사망 5명 부상
  • 서울의 빌게이츠,초고속통신망시대 예견

    ◎“「세계의 정보」 손끝에서 얻는다”/“「테크노 우상」 얼굴 보자” 가는곳마다 인파/대기업 등서 앞다퉈 강연회 초빙/입장못한 컴퓨터 매니아들,로비서 귀기울여/“한국은 하드웨어 강국” 현력 강조 「빌 게이츠 신드롬」­전국이 72시간 예정으로 방한한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백만장자와는 거리가 멀게 허술한 점퍼차림으로 5일 하오 김포공항에 도착,천재의 엉뚱함과 신선감마저 느끼게 했던 빌 게이츠는 방한 이틀째인 6일부터 카리스마적 경영철학으로 세계의 컴퓨터계를 리드하는 승부사의 기질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며 일하는 것이 가장 흥미롭다.많은 사람들에게 일을 주는 것과 그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쉬운 도구를 제공해 주는 것이 기쁘다』20세기 신화의 주인공 빌 게이츠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인생철학을 밝혀 남다른 일면을 느끼게 했다. 6일 하오 2시20분 서울 호암아트홀의 대중강연장. 1천석의 홀은 꽉차 주최측은 로비 구석구석에 3대의 멀티비전을 설치,입장하지 못한 이들이 강연을 듣도록 했다.청중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빌 게이츠가 젊은층의 「테크노 우상」임을 실감케 했다. 수십 개의 인공위성을 띄워 마이크로소프트네트워크라는 세계적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하려는 그는 이날 강연에서 2005년까지 우리들의 손끝에서 정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했다. 내년에 시판될 「윈도우 95」의 선전을 겸해 방한한 빌 게이츠는 지금처럼 각각의 컴퓨터회사가 서로의 운영체제를 고집하면 컴퓨터계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문제를 지적,「대통합」의 목표를 향해 과감히 나가게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앞서 6일 상오 8시 힐튼호텔에서 열린 「미래정보기술혁명과 정보관리자의 역할」 조찬강연회는 이용태박사,경상현 체신부차관,김영태·황칠봉씨 등 국내 정보통신분야의 1인자들이 경영의 젊은 귀재 빌 게이츠의 노하우를 듣기위해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키워오면서 제휴 기업합병 등의 경영기술을 적절히 구사,제네럴모터스나 보잉을 능가하는초우량기업을 일궈낸 수완가이기도 하다. 『한국의 기업들은 메모리반도체,PC,가전제품 등 하드웨어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며 한국기업을 높이 평가하고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퍼스널 컴퓨터(PC)에 탑재돼 있는 「MS­도스」와 「윈도즈」를 개발한 세계 초일류 소프트기업의 총수.올해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최고 갑부(총재산 93억5천만달러·한화 7조5천여억원).이같은 수식어에 어울리게 국내 굴지의 대기업은 물론 관계와 언론계 등은 「황제 모시기」 경쟁을 한바탕 벌였다.컴퓨터 세대인 청소년들과 20∼30대의 컴퓨터광들은 빌 게이츠를 만나기 위해 그가 가는 곳마다 줄을 서고 있다. 『창을 열면 미래가 보인다』­「윈도우」를 발표하면서 「20세기의 마지막 우상」 빌 게이츠가 던진 이 말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의 우리 소프트업계와 청소년들에게 시사하는게 많은 듯 했다.
  • 시간은 과연 우리편일까/최호중(시론)

    올해도 한달을 남겼을 뿐이다.그렇게도 무덥고 어수선하고 짜증스럽던 한해였으니 빨리 가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이렇다 할 성취없이 또 한해를 넘기게 되는 것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사고로 크게 얼룩진 한해였지만 남북한관계를 놓고 볼때에도 특기할만한 한해였음에 틀림없다.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어느 북한대표의 폭언으로 한반도가 다시 전화에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위기감이 한동안 고조되더니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평양을 다녀온 후 남북정상회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그러던 참에 김일성이 갑자기 숨을 거두었고 김정일 후계체제가 채 굳기도 전에 우리의 참여없이 북·미 합의가 이루어지자 미진하나마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게됐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서둘러 남북 경제교류를 재개할 뜻을 밝혔고 북한은 재빨리 이를 거절했다. 이런 와중에서 통일을 비롯해서 북한주민의 인권상황,이산가족의 재회등 우리가 결코 경시할 수 없는 현안 사항들이 등한시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이러면서 올해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북한에서는 김정일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지 않았다.그 내부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길이 없다.그러니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그저 모두들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막연한 믿음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서 시간은 과연 우리편인지 조용히 한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북관계에 있어 시간이 우리편이 되려면 시일이 흐를수록 북한사정은 어려워지고 우리사정은 좋아지든가,양쪽사정이 다 좋아지는 경우라도 우리쪽이 월등하게 더 잘 돼야한다.북한사정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은 외부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네들 자신에 달려있다.미국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을 계기로 개혁하고 개방하는 변화를 보일 것인지 아니면 「우리식은 필승불패」라는 옹고집으로 버텨나갈 것인지 두고 볼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 체제의 골격으로 보아 갑작스러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것 같다. 우리 사정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도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있음은 물론이다.그런데 지난 한해가 어수선하고 짜증스러웠던 탓인지 누구라도 만사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병을 고쳐서 신한국을 만들어 모두들 신바람나게 하겠다는 말을 들어온지 2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은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여전히 과거 청산에 매달려 병인을 찾다보니 치유가 늦어지고 건실한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5년이란 기간이 길다면 길겠지만 지나고 보면 잠깐인데 이렇게 세월을 보내도 되는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선거에 의해 집권하고 의회를 중심으로 정치를 펴는 민주정치 제도하에서 선거에 이기려면 더욱 나은 정책과 정치역량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 정도일텐데,그보다는 정치가 잘못되고 사회가 시끄러워지면 그것을 내세워 권력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얄팍한 생각에 흔들리기 쉬운 인간성과 정치풍토가 걱정된다.설령 그렇게해서 누군가가 새롭게 권력을 잡았다고 해도 잘못된 나라 형편을 놓고 과거를 규명하다가 이렇다 할 성취없이 5년이 또 다 지나가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요즘 들어 해이해지고 문란해진 우리 사회기강을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아무런 까닭없이 인명을 손상하고,내것 네것 가리지 않고 마구 자기 호주머니에 챙기고,멀쩡해야 할 다리가 무너져 내려앉고,또 이렇게 된 것을 모두 지난날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할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이러고도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믿고 안심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세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이때를 맞아서 세계화로 미래를 열어나가는 우리 앞길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무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환경을 이겨내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그 길을 헤쳐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속이 튼튼하고 바닥이 단단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이 중요하고 어려운 시점에서 둘로 갈라진채 서로 맞서고 있는 우리 남과 북이 제각기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믿으면서 상대방이 잘못되기만을 바라고 있다면 이는 정말로 큰일날 일이 아닐 수 없다. 뚜렷한 근거없이 시간은 우리편이라고 믿고 아까운 세월을 허송해서는 안된다.정말로 시간이 우리편이 되도록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한시가 바쁘다.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함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 “북은 국군포로 송환하라”/조창호중위,전역식서 목멘 호소

    ◎“대한민국 만세” 43년 군생활 마감/“군인의 길은 대장부 보람” 후배에 당부/8천여 참석자,호국정신에 박수갈채/최장기 복무·최후의 6·25참전 현역 기록 『군번 212966 육군중위 조창호,저는 대한민국 소위로 43년을 보내고 오늘 하루 중위로 보내는 것을 끝으로 청춘을 바쳤던 국군의 품을 떠납니다』 26일 상오 10시30분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된 전역식에서 「돌아온 노병」조창호중위(64)는 감회어린 목소리로 전역사를 낭독했다.청춘을 북녘땅에서 잃고 돌아온 노병이 중위진급 하루만에 최장 현역복무군인 및 최후의 6·25참전용사 기록을 세우고 군문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화랑대를 몰아치던 초겨울 바람속에 1시간여 부동자세로 서있던 육사·해사·공사생도와 조중위의 모교인 연세대학군단 학생들은 한서린 「전역사」가 낭독되는 순간 솟구치는 감동에 추위도 잊은 표정이었다.그의 전역사는 한구절 한구절마다 「군인의 지표」가 되어 예비소위들의 폐부를 찔러 들어왔다. 전역식에 참석한 이병태국방장관·황명수국회국방위원장과 장병 등 8천여명은 조중위의 「불굴의 군인정신」에 내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장의 열기는 조중위가 가슴에 보국훈장 통일장을 달고 간호장교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에 오르면서 달아올랐다.행사진행을 맡은 합참 최경식대령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에 이어 가진 귀환보고에서 『북한의 끈질긴 전향공작과 고문 등을 이겨내고 조국의 품에 귀환한 조중위는 전후세대에게는 상무정신을,기성세대에게는 호국의 정신을 일깨운 참군인』이라고 조중위를 소개했다. 조중위는 전역명령 낭독이 끝나자 『육군중위 조창호는 94년 11월26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읍니다』라고 이국방장관에게 신고한뒤 이장관과 함께 열병차에 탑승,3사관학교 생도와 연세대학군단을 10여분간 열병했다.열병도중 조중위의 어깨에 부착된 다이아몬드 2개의 중위계급장은 햇빛에 더욱 반짝거렸다. 조중위는 전역사에서 『나라를 위해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자원입대했으나 적의 포로가 돼 북한공산집단을 대상으로 길고 긴 전투가 시작됐다』고 말문을 연뒤 『왼쪽눈을 실명하고 아오지탄광에서 규폐증까지 얻으면서도 43년간 자신과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터에서 배운 「죽어도 항복하지 않겠다」는 군진수칙과 신앙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인의 길이 비록 힘들고 어렵다하더라도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가장 보람찬 길임을 명심해달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조중위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으며 목소리도 잠겨들었다. 조중위가 『지난 43년간 가장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만세.대한민국 국군만세.대한민국 국군소위 만세』를 외치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장병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조중위는 이어 북한에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기 위해 남북적십자 회담에 응하고 제네바협약을 준수,국군포로를 송환하라』고 목메어 촉구했다. 전역증을 받아쥔 조중위가 헌병싸이카와 선도차의 안내 아래 누나 창숙씨(74)의 서울 서초동집으로 떠난 한참후까지도 참석자들은 조중위의 「인간승리」를 화제로 삼아 연병장을 떠날줄 몰랐다.
  • 정부 주식매각,투기판 돼서야(사설)

    한국통신주식의 공개입찰이 빚어낸 과열양상은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정부보유주식 매각에 적잖은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이번 입찰은 우선 증권시장의 장세가 호전되는 상황에서 가격을 높게 써낸 응찰자부터 낙찰시키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구조적으로 과열을 부채질하게끔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요즘의 증시여건을 고려할때 한통주 같은 성장성 좋은 우량주식이 경쟁입찰로 매각될 경우 투기판이 연출될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관계당국으로선 공기업 민영화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이같은 입찰방식을 취했겠지만 결과는 입찰가격이 오르고 이른바 돈많은 큰손들과 일부 기관이 물량을 과점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더욱이 당국은 이번 입찰로 예상보다 많은 재정수입을 얻음으로써 국고를 위해 안이한 방식을 택하고 투기를 조장했다는 곤혹스런 비난을 불러일으킨 셈이 됐다. 때문에 우리는 이번 한국통신주식 입찰을 계기로 정부보유주식의 매각에 대해 철저한 재검토가 이뤄지기를촉구한다.무엇보다 공기업은 정부의 보호와 특혜에 의해 성장한 업체인 만큼 관련당국은 매각이익을 늘리는데 애쓰기 보다는 사실상의 국유재산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배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입찰제를 자제하는 대신 당국이 해당 공기업의 수익성 성장성등을 고려,주식가격을 산정해서 공모청약등의 방식으로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매각하거나 저소득층 우선배정의 매각방식을 강구토록 당부하고 싶다. 또 입찰제를 활용할 경우에도 기업경영분석능력이 뛰어난 금융기관등에 일정한 물량의 주식을 매각해서 적정수준의 낙찰가를 끌어낸 뒤에 일반인의 청약을 받는다면 많은 국민들이 투기열중에 휩싸이는 피해는 막을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밖에도 이번 입찰과정에서 1조4천억원이 넘는 거액의 여유자금이 동원되는등 자금시장이 한때나마 크게 교란된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뭉칫돈이 보다 높은 수익을 쫓아 헤매는 모습과 갑자기 늘어난 은행대출로 시중금리가 올라가는등 자금시장이 혼조를 보인 점은 국민경제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증시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경제의 바람직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정부주식매각이 투기요소를 지니는 일이 최소화 되도록 관계당국은 빈틈없는 제도적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당국이 거액의 부동자금을 생산적인 산업자금으로 바꾸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마땅한 투자대상이 없어서 자칫 투기자금화하는 일이 없게끔 적정한 저축유인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우리는 촉구한다.
  • 정치적 파문 고려 “평가는 역사에”/검찰「12·12」수사발표 의미

    ◎기소유예 불구,“명백한 군사쿠데타” 규정/고소·피고소인 모두 불만… 파장 오래갈등 부하 장교들에 의해 현직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이 전격 연행된 79년의 12·12사태는 15년가까이 지나 군사반란으로 결론지어졌다.다시 말해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79년 발생한뒤 쿠데타의 주역들이 그동안 대통령을 두차례나 역임하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왔던 게 사실이다. 사건 주역들의 위세에 눌려 침묵을 지켜왔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전수경사령관측이 지난해 7월 19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포함,신군부측에 섰던 34명을 내란 및 반란등의 혐의로 고소해옴에 따라 사건이 표면화됐다.검찰로서도 이 사건 피해자들이 고소해온 만큼 어떠한 결론이든지 내려야 할 처지에 이르렀던 것.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오는 12월 12일 끝나게 돼 있었다.이에 따라 고소인측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지난해 고소를 하게됐고 검찰 또한 공소시효 이전에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수사에 착수했다. 공소시효를 넘길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검증을 통한 사법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고소인과 참고인들을 부르기 시작,모두 1백51명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아울러 정승화 전총장이 연행됐던 한남동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현장확인과 함께 실황조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국회의 광주회의록,12·12사건 국정조사회의록등에 대해서도 모든 검증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신군부측의 무력동원은 육군의 정식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은 군사반란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정전총장 등 고소인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반면 정전총장을 연행하거나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기 위해 「자파」의 병력을 동원한 신군부측의 변소는 거짓으로 판명난 셈이다. 신군부측의 무력동원은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던 전두환보안사령관이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전총장을 제거,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한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실행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러한 실정법위반이 드러났는데도 신군부측 관련자들에게 전원 불기소처분을 내려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군형법상 반란혐의는 사형등 「중죄」를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불기소 처분이 내려져 신군부측인사들은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된다.이들은 우리나라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로부터 당시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역사적 중죄를 짓고도 법정에 서지 않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게 됐다.후일의 「역사적 평가」는 사가들의 몫으로 돌려지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12·12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분이 국가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법률적 문제는 물론 정치·사회적 제반 요소들을 신중히 검토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신군부측 피의자들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헌정사를 후퇴시켰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제2,제3의 불법적 군사행동이나 하극상 사건의 재발을 엄중히 경고했다. 김영삼대통령도 지난해 이 사건과 관련,『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고 규정하고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고 언급한 바 있어 검찰수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공소를 제기하는 문제는 김대통령의 앞선 「언급」과 함께 검찰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모두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피의자들을 정식 재판에 회부할 경우 공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논쟁이 계속돼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는 계산을 먼저 심중에 넣은 것 같다. 이러한 난맥상은 또 장래적으로 국가안정을 저해하고 자칫 국가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신군부측 인사들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점을 고려했음도 물론이다.더욱이 전직 대통령등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경우 국민들에게 심정적으로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참작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먼저 고소인들이 검찰의 결정에 대해 불복,항고의사를 분명히 했고 신군부측 역시 「무혐의」 또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그 파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반군 수뇌 집결지 공격” 긴급명령/하오10시 40분/양측,한남동서 중화기무장 대치/밤∼다음날 새벽/최대통령 「총장연행」 재가… 신군부 승리/「그날」 일촉즉발의 순간들 「육군 26사단,수도기계화사단,공수9여단 병력 완전무장 출동하라」「전두환장군을 비롯한 반군 수뇌부가 집결한 경북궁 30경비단및 보안사령부를 공격하라」 79년 12월 12일 하오 10시 40분쯤 반군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예하 부대에 타전한 「급보」내용이다. 수경사로 자리를 옮긴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 있었던 장성들이 이날 하오 7시25분쯤 정승화참모총장의 강제연행으로 시작된 「군사반란」에 대응해 3시간여만에 일전불사의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신군부측과 육본측은 일촉즉발의 경계에 돌입했다.그러나 상황은 이미 신군부측으로 기운 뒤였다.우선 수적으로 육본측은 열세였다. 당시 전합수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에 가담한 부대는 공수 1여단(박희도준장),3여단(최세창준장),5여단(장기오준장)을 비롯,수경사 30단(장세동대령),33단(김진영대령),9사단 29연대(이필섭대령)등 수도권 핵심주둔부대 대부분과 전방의 2기갑여단(이상규준장)등 무려 5천여명의 병력이 동원됐다. 이에비해 정규군측이 실제 동원가능했던 병력은 행정병을 포함,수경사 잔류병력 1백여명과 전차 몇대뿐이었다.공수9여단(윤흥기준장)병력은 합수부측의 항의를 받은 윤성민 육참차장의 복귀지시에 따라 회군해 버리고 말았다.또 출동명령을 받은 26사단등의 병력출동도 불발에 그쳤다. 이날 밤과 새벽사이 정육참총장의 공관이 있던 한남동과 한강다리쪽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양측은 장갑차와 전차등 중화기로 무장한채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치중이었다. 상황발생 9시간50분만인 13일 새벽 5시10분 합수부측이 최규하대통령으로부터 총장연행재가를 받으면서 신군부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상황은 끝났다.서울시내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을지도 모르는 시가전의 위협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 이젠 신뢰를 쌓자/최재필(기고)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사건이 터진 후 이제 48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 사건 자체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요 그원인에 대한 설명과 분석,사후 대책 등에 대해 수많은 정보가 신문 지면을 온통 차지하고,방송 전파를 쉴새 없이 타고 있다.너도 나도 모이는 곳마다 한 목소리로 이 사건을 비난하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원인규명과 대책방안 마련에 열심이다. 그런데 왜 다리 하나 무너진 것이 이토록 큰 충격과 국민적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일까.냉정히 따져보자면 성수대교 붕괴의 직접적인 피해는 그리 크지않다.물론 이 사고로 희생당한 30여명의 사람들과 부상을 당한 이들의 개인적인 피해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건설인의 한사람으로서 필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깊이 머리숙여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그렇지만 나라전체로 볼 때 일년에 교통사고로 희생되는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많으며,이곳 저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산업재해는 또 얼마나 많은가.게다가 전반적인 환경오염으로 인한 각종 피해는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비해 몇 곱절이나 큰 희생을 낳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수대교 사건은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우리는 매일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충분히 불안해 하고 있다.핸들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은 본질적으로 불안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공작기계에 자칫 손이 빨려들어가면 큰 부상을 입게 될 것도 너무 명백하다.그래서 우리는 달리는 자동차에,돌아가는 기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사고나 산업재해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건물이나 교량,댐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의 주위를 끌지 못한다.이것들은 대지 위에 굳건히 서 있기 때문이다.내가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 바닥은 언제나 내식구와 가재도구를 받쳐주어 왔기 때문에(사실은 바닥이 이런 것들을 받쳐준다는 생각조차 해보지않고 있지만),아파트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한번도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그만큼 우리는 건물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물론 성수대교나 그 밖의 한강다리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이 성수대교와 함께 무너져 내리면서,우리는 일상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내 아파트 바닥도 불안하니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고,평소 잘 지나다니던 지하도도 언제 무너져 내릴지 불안하다.이제껏 그저 튼튼하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되던 우리의 삶터가 온통 불안해지니 이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따로 없다.결국 이토록 온 나라가 술렁거린다. 사실 알고보면 우리는 많은 믿음 속에서 살고 있다.나는 내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너는 네 맡은 일을 제대로 한다는 믿음,나는 집을 튼튼히 지어 네가 안전하게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고,너는 내가 내는 세금을 받아 한푼의 낭비도 없이 나와 내 이웃을 위해 효율적으로 쓴다는 믿음,이런 식의 상호신뢰에 의해 우리의 사회는 돌아가는 것이다.그런데 이 믿음이 여기저기서 깨어지고 있다.성수대교 붕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지켜주는 건물과 다리와 댐들이 튼튼하다고 믿고 지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그런데 문제는 이 다리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도 이것들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어제도,그제도,일년 전에도 잘 서있던 다리가 오늘 밑부분에 조그만 생채기가 하나 보인다고 해서 설마 무너지랴하는 믿음 말이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건조물들도 순간의 실수로 핸들을 잘못 돌려 자동차 사고를 내고야마는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교훈이다.건조물들의 애초의 시공,사후 보수나 관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그러나 이보다 앞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만사가 결코 완벽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항시 잊지말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 끊어진 다리/김향숙 소설가(일요일 아침에)

    멀리서,또 가까이 다가 가 보아도 집의 외양은 아주 훌륭하다.온갖 최신 자재와 기법을 동원해서 볼품없던 옛집을 남들이 다 놀랄만큼 빠른 시일 안에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켜놓은 결과에 만족한 집주인은 집자랑을 하고 싶어 자주 잔치를 벌이곤 한다.그동안의 노고를 치하받는 재미에 빠져 든 집주인은 훌륭한 집의 외양에 비해 손볼 곳이 너무나 많은 집안의 문제점들에 대해선 알고 싶어 하질 않는다.아니 알고는 있지만 그 위험성에 대해 모르는 척 하고 지낸다. 썩어가는 하수도,벽의 균열된 틈서리로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물,허약한 버팀목들.그것들은 다른 사람들 눈에 쉽게 뜨이지 않는 것이므로.또 멋진 집의 외관에 도취하는 마음이 큰 탓에 아무 일도 아니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은 지도 모른다.집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외양이나마 번듯한 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또 남들로부터 치하를 받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집주인은 가끔씩 물이 새는 벽과 갈라진 벽과 벽의 틈서리를 보긴 하지만 수리비는 오히려 집의 외양을 고치는데 쓰고 싶어 한다.손이 많이 가고 비용 또한 많이 드는 내부수리를 한다고 해서 집값을 더 올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껏 우리가 이룩한 번영이란 것의 실체가 바로 이 집장수 마음으로 지은 집의 꼴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수십명을 죽게 하고,수십명을 다치게 한 동강난 성수대교를 TV 화면으로 보는 동안 갖게 된 생각의 한 갈래이다.줄을 이었던 온갖 사건들에 면역이 된 탓에 가슴이 구두 밑창처럼 딱딱해졌다고 믿었음에도 또다시 어이없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차츰 두려워지기까지 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여러 참사들,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교통사고를 낸 당사자들이 도로에서 시비를 벌이던 끝에 뒤에서 오던 버스에 부딪혀 죽은 사고 소식들을 접할 때는 그저 난데없기만 하더니 이번에는 횡액같은 죽음이 좀 더 실감있는 것으로 다가오질 않았던가.문제의 성수대교가 우리 가족이나 내가 자주 건너 다녔던 다리들 중의 하나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로 직장으로 가는 시각이었던 까닭에 희생자가 이처럼 많은 것이겠지만 전쟁을 치르는 상황도 아닌 터에 꽃다운 나이인 수명의 여고생을 포함한,그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마치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 할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한 이 사건은 너무나 황당한 일이 아닌가.저마다 맡은 책임을 다하지 않은 무책임한 마음들이 모여 다리를 만들고 집을 만들다 보면 결국 제물이 되는 것은 우리들 사람 목숨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러한 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 한동안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관변단체들의 습성이 되다시피한 방관적 태도,시공업체의 불성실함을 지적하는 질책의 말들 속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에 대한 온갖 분석과 처방전들 또한 범람하게도 될 것이다.감리를 외국인에게 허용하겠다는 시장개방정책을 추진중이라는 빠른 사후 약방문이 벌써 나왔다고 한다. 이럴 때의 공무원 처신은 여느 때처럼 몹시 날렵해 보이지만 그 발표야말로 우리 스스로 자신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불신의 골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라 할 것이다.성수대교 시공업체인 동아건설이 엄격한 감리를 거쳐야 한다는 해외에서의 대공사는 곧잘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니 이 또한 안타까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참사도,공무원은 업자에게 업자는 또 공무원에게 책임의 화살을 쏘아대는 그러한 구조적 사슬에 의한 결과이겠지만 이젠 정말 우리들 자신들을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할 때라고 하겠다.겉모습만 휘향황 집의 규모를 더욱 늘리고 더욱 그럴싸한 모습으로 증축해 가는 일을 멈추고 뼈아픈 내부점검의 기간을 가져야 하는게 아닐까. 두동강이 난 성수대교의 흉한 모습은 바로 기형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망가뜨려진 정신의 꼴,바로 그것으로 여기는 계기가 되어 준다면 느닷없이 죽어 간 많은이들의 희생이 조금은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 영각료 수뢰 사임/메이저 총리에 타격

    【런던 AP 로이터 연합】 영국의 한 각료가 백화점 주인으로부터 수뢰한 사건과 관련,사임한 것을 포함해 21일 영국과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서 공직자들의 부패 스캔들로 인한 정치적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영국의 경우,팀 스미스 영국 북아일랜드담당 장관이 한 백화점 소유주로 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20일 인책 사임함에 따라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정부가 또 한차례 수뢰파문에 휩싸이면서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 6대기업 대표가 말하는 21세기 전략

    ◎“세계적 정보통신회사로 발돋움” 전기통신 1세기를 맞아 세계는 현재 정보사회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싸이고 있다.우리 통신기업들은 본격적인 정보사회로 들어서는 21세기를 앞두고 어떤 잔력들을 가지고있는지 알아봤다. ○한국통신 조백제 사장/첨담수준 기술확보… 세계5대회사 목표 한국통신은 21세기 세계수준의 첨단기술을 확보한 세계 5대 종합통신사업자로의 성장을 목표로 장기적인 전략 아래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정보사회를 향해 치닫고 있으며 정보사회로 이미 진입한 우리나라도 선진국들의 압력으로 국내통신시장이 개방을 앞둔 통신환경에 처하게 되었다.한국통신은 이같은 변화된 국제 통신환경에 먼저 경영사고의 민영화를 바탕으로 기본통신의 질 향상과 함께 통신망의 고도화를 추진해 나갈 것이다.국내 기본통신은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 7백만회선을 베트남 중국 러시아 등에 수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통신망 고도화를 위해서는 통신망의 디지털화를 당초계획보다 5년 앞당겨 교환분야의 디지털화는 2천5년까지,전송분야의 디지털화는 96년까지 조기완성하기로 했다.또 96년부터는 한국통신의 하이텔사업을 위해 하이텔단말기 1백만대를 보급할 계획이며 전화서비스분야에서 한단계 진보한 개인번호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이같은 사업들은 21세기 정보사회를 통신에 의한 낙원으로 실현하겠다는 포괄적인 「TOP전략」 개념에 의해 착실히 수행되고 있다.이같은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외국 통신기업들로부터 우리 통신기술의 국가경쟁력을 확보케 할 뿐 아니라 정보사회의 조기실현과 풍요로운 복지통신의 구현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통계상으로보면 고도통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91년 4%에서 2천1년엔 24%로 늘어나게 되며 주요서비스도 기본전화서비스·클로버서비스·전화정보서비스에서 입체영상전화서비스·자동통역전화서비스·개인손목전화서비스로 변하게 될 것이다. ○데이콤 손익수사장/국내외 업체와 제휴… 멀티미디어 전략화 데이콤은 유선전화사업과 무선·위성통신,그리고 멀티미디어 등 3대 핵심사업의 집중육성을 통해 오는 2천년까지 매출액을 2조원으로 늘림으로써 세계 20대 통신회사로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데이콤은 이를 위해 내년부터 97년까지 6천7백억원을 투자,96년부터 시외전화서비스를 새로 제공하고 전자화랑·전자쇼핑·전자도서관 등 각종 멀티미디어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이와함께 시내전화 및 개인휴대통신사업의 기반확보를 위해 98년까지 2백70억원을 들여 서울·부산·대전·광주·대구 등 전국 5대 도시를 연결하는 무선통신망을 구축할 계획이며 부문별 세부 경영계획은 시외전화·국제전화·전용회선 등 기본통신의 경우 통화대상국 및 지역확대,선불카드 개발 등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97년 매출액을 올해의 2천9백56억원보다 85% 증가한 5천4백64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천리안사업의 경우는 국내외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고속전송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홈쇼핑·온라인게임 등 멀티미디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학술·특허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현재 1천2백종인 천리안데이터베이스 수를 97년까지 5천여종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데이콤은 이같은 사업수행을 위해 내년부터 97년까지 6천3백억원의 자금을 시설 및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현재 매출액의 3% 수준인 연구개발 투자를 97년까지 6%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한국이동통신 조병일사장/98년까지 419억 투입… 정보인프라 구축 UR에 의해 이동통신시장 및 기본통신시장의 개방이 세계적 조류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동통신은 2천년대에는 무선종합정보통신망(무선 ISDN)을 서비스하는 세계 일류 종합정보통신 사업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한국이동통신은 92년말 무선호출시스템을 완전 국산화하여 막대한 수입대체효과를 거둔데 이어 인도에 무선호출사업을 추진하는 등 이제까지 무선호출분야 국제경쟁력 강화의 선두에 서왔다.나아가 이동통신기술의 자립화를 위해 디지털 이동통신방식인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시스템 개발에도 주도적으로 참여,98년까지 4백19억원을 투자하는 등 국가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정보인프라의 구축에 크게 힘써 나갈 것이다. 세계일류 종합정보통신사업자로 발돋움하기 위한 구체적 청사진으로는 사업을 다각화하고 개인휴대통신서비스(PCS) 등 새로운 주력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며 정보통신의 글로벌리제이션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먼저 사업 다각화를 위해 주파수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인 셀룰러패킷방식의 무선데이터서비스를 실시하고 저궤도위성을 이용한 국제간 이동통신사업과 해외이동통신사업에의 참여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개인휴대통신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3백50억원을 투입,96년 8월까지 마이크로셀을 이용하는 보행자용 PCS를 개발하고 98년 8월까지는 매크로셀기지국을 이용하는 초고속 대용량 PCS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신세기통신 권혁조사장/CDMA 조기국산화… 운용방법 수출계획 신세기통신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두번째로 채택한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상용화하여 역사적인 차세대 디지털 이동통신시대을 열고 이동전화사업의 공익적 성격을 감안하여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기간산업체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또 통신의 궁극적 목표인 언제,어디서나,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는 양질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만족·기술우위·국제화를 3대 경영이념으로 구현,국제경쟁력 확보는 물론 세계 일류의 통신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경영이념의 하나인 고객만족은 수준높은 통화품질의 구현과 신규서비스 보급과 함께 신속한 고객만족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달성될 것이다. 기술우위를 위해서는 CDMA기술을 조기에 국산화하고 매출액의 10%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한편 대규모의 집중적인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국제화는 외국인 주주와의 적극 협력을 통해 기술수준을 높이고 국제경쟁력을 확보,궁극적으로 CDMA 운용기술을 수출하는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주요사업계획은 현재 1천억원 수준인 납입자본금을 98년 4천억원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며 서비스 보급규모를 96년 인구대비 75%에서 98년 99%로 확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같은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매출액은 96년 7백53억원에서,98년 5천1백36억원,2천년 1조1천56억원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나래이동통신 김종길사장/컴퓨터·통신 결합… 해외 진출 나래이동통신의 21세기 비전은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을 통한 세계적인 통신기업으로 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통신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것이다. 나래이동통신에서는 이를 위해 장기전략을 세워 시장진입기,사업안정기,사업다변화기,사업발전기 등으로 나눠 각 시기마다의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먼저 시장진입기(93∼94년)의 목표가 무선호출기지국·교환국 증설과 음성사서함 용량 증대 등을 통해 완벽한 무선호출망을 구축하는 것이라면 사업안정기(95∼96년)에는 한글문자서비스·광역서비스를 개시해 광역통신 등 최첨단 서비스망을 구축,실현하고 신규통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97년부터 시작되는 사업다변화기에는 무선통신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종합통신기업으로 성장함과 함께 컴퓨터와 통신의 결합을 통한 세계적인 통신기업으로의 성장을 추진,98년 사업발전기부터는 이를 구현하게 될 것이다.나래이동통신에서는 이같은 계획의 실현을 위해 매년 시설투자와는 별도로 기술개발에 매출액의 10%를 투자하고 있다. ○서울이통 이봉훈사장/무선호출 개발 “대중화 앞장” 서울이동통신은 무선호출 신규서비스를 개발,보급하고 나아가 양방향 무선데이터 사업에도 진출함으로써 21세기에는 첨단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통신회사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같은 종합통신회사로의 도약은 앞으로의 통신서비스가 음성위주에서 탈피하여 비음성분야 즉 무선팩시밀리 무선데이터,압축디지털 영상 등으로 확산이 가속화되어 하나의 통신단말기로 다양한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받을 수 있는 통합정보통신시대에 돌입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의 성취를 위한 경영목표로는 우선 95년까지 국제무선호출,양방향무선호출 등 무선호출 신규 서비스를 개발 보급하게 될 것이다.이 기간까지는 흑자기반을 구축함과 아울러 매출액의 18%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여 무선호출의 대중화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96년 이후에는 개인휴대통신서비스 등 양방향무선데이터사업과 저궤도·중궤도 위성을 이용한 무선호출사업에도 진출,21세기 종합통신서비스 제공자로 성장·발전하기 위한 기술과 사업운용 경험을 축적해 나갈 것이다.
  • 파리/몽마르트(아랍서 지중해까지:19)

    ◎무명화가의 천국… 비탈길은 한폭 그림/에펠탑·센강엔 생기 가득… “아직도 문화왕국” 실감 드디어 파리! 우리 일행이 파리를 향하여 그라나다 공항에 서 있을때 「파리,멀고도 고적한 그곳」이라는 시구가 저절로 떠올랐다. 스페인의 저항시인 로르카의 시구에 파리라는 고유명사만 앞에 가져다 붙여 본것인데 바로 그라나다에서 시인이 살던 옛집을 매우 깊은 인상으로 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그러나 그보다 여로의 끝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쪽이 더 맞을 것 같다. 서울에서 사막을 향하여 출발할 때는 아득하던 한달간의 여행이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다.뒤를 돌아다 보면 사막이 펼쳐져 있고 문득 문득 떠오르는 도시마다의 어떤 정경들이 부유하는데 그런 속에서도 드디어 마지막 코스까지 온 것이로구나 하는 감회가 있었다. 더구나 파리는 젊은 시절 잠시 머물던 곳이기도 하여 어떤 조우가 이루어질지 막연한 불안감과 갈망 같은 것이 한데 어우러져 밀려왔다. 우리는 이윽고 파리 공항에 내렸고 동네 하나를 지나는 만큼의 길디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파리는 우리의 일정 중에서 유일하게 호텔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코트라에 있는 분의 친절로 이제까지는 어느 도시에서나 현지 코트라 직원의 마중과 호텔예약까지 도움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안내 책자를 보고 몽마르트에서 한국인이 하고 있는 호텔 물랭으로 정한 후 택시를 타고 그리로 향했다.그곳에 가면 한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 우선 기뻤다.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비가 흩뿌리는 어두운 날씨의 늦은 오후였다. ○한식 먹을수 있어 기뻐 일행중 한 작가는 자신이 늙은 것을 깨닫고 새삼스레 분첩을 꺼내드는 여인과 같다고 파리를 비롯한 유럽도시의 인상을 말했고 또 한 작가는 파리를 한군데도 빈 곳이 없이 아름답게 성장을 한 숙녀와 같다고 말했다. 차창에 비치는 거리를 내다보며 내게는 여러 생각이 겹쳤는데 고암 이응로선생과 남관선생도 이제 안계시다는 그런 불투명한 느낌이었던것 같다. 그분들이 파리라는 곳을 동경하여 첫발을 딛던 50년대 후반과 내가 있었던 70년대 중반,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게되는 90년대 현재의 파리에 대해,아니 그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파리를 동경하는지,왜 이곳 처마밑에 머무르려하는지,파리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지 하는 의문이 스쳤다. 박순녀작가가 쓴 「어떤 파리」라는 단편은 군사정권 속에서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얘기인데 파리가 자유의 상징언어로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울의 한 친구는 파리에서는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야 된다고 우리가 떠나올때 말했다.마음에 맞는 몇사람이 모여 개선문 앞에서 행위예술을 해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토록 파리는 세계 각 곳 수많은 사람들의 동경이 한데 모여서 더욱 도시를 파리답게 형상화 시켜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비록 지금은 모든 분야에 있어 그 중심이 뉴욕으로 옮겨가 새로운 도전이나 열기같은 것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역시 문화의 천국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과연 파리란 정말로 그런 곳일까.파리란 도대체 어떤 곳일가. 보수와 진보가 공존 하는 곳.공무원이 청렴하여 정치수준이 높은 곳,그리하여 고위층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혹은 잘못을 단죄받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곳,예술가를 무엇보다 대우하며 학생들을 위하여 배움의 길을 활짝 터 놓는 곳,교육균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어른의 층이 굳건히 형성되어 있는 곳,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고 인권이 보장되어 있는 곳,사람을 사랍답게 살게 하는 곳,흑인과 백인이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곳,그러나 최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피란민들이 매일 몰리고 있기도 한 곳,과거 월남전때나 패망후에도 월남의 난민들을 받아들였던 곳,그리고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곳,이 자유야말로 파리의 문화를 번성케한 동력이라 할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본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표현의 자유가 있는곳 대학시절 권옥연선생이 실기시간에 해주던 파리에 대한 단편적인 얘기들이 우선 떠올랐다.화가 뷔페는 물감이 없어서 색을 바르지 못하고 나이프로 긁어대기만 했는데 그 그림이 어느 화상에게 발견된 다음 일약 스타가 되었다.전람회장에가기 위해 호위차와 함께 롤스로이스에서 내리자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과 군중들의 아우성 속에 둘러싸이는 것을 선생님은 보았노라고 했다.또 사강이 1930년대 고물차를 끌고 가다가 고장이 나서 그 차를 뒤에서 밀고 있는 것을 우연히 지나다가 도와준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환기선생의 파리시절,화실에서 일하다가 아침 산책을 나가면 건물마다 유리창으로 화가들이 그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어서어서 그려야지 하는 생각에 산책을 그만두고 서둘러 돌아온다던 얘기 같은 것도 떠올랐다. 파리는 겨울에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영상의 기온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추운 곳인줄 알고 이불 보따리부터 배로 부쳤는데 왜냐하면 실제 이곳에 있어보면 배 고프고 춥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한 수많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파리에 피워올린 작품과 에피소드들도 있다.얼마나 재미있고 기이한 얘기들이 많은가.그들의 작품은 얼마나 우리의 삶을 고양시켜 주는가. 그런 많은 것들을 다 끌어 담을 수 있도록 파리는 역시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다양하고 폭 넓게 열린 곳이었다. 파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제로 쌓아올린 에펠 탑·센강·개선문·박물관·베르사유·패션과 경마 등등 이렇게 수많은 보고가 저 깊숙이 가득 쌓여 있는 파리에 대해 언어도 모르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써야하는가 나는 잔뜩 긴장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가 무엇을 보려하기보다 그냥 걸어다니며 살갗에 부딪쳐 오는 것을 그대로 느껴보기로 마음 먹었다.파리는 오히려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듯 했다.그러자 어느 정도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고 평온함이 찾아들었다. ○침묵이 느껴지는 거리 차창으로 비치는 거리는 색깔이 튀지않고 눌러놓은 회색과 베이지 색조이면서도 어딘가에서 아주 밝은 빛깔이 생기를 주고 있었다.이 생기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니 쓰레기통,자동차,고풍스런 건물 창변에 놓인 꽃,벽에 붙은 공고판,그리고 마로니에 잎과 여인들의 옷차림도 한몫 거들었다.어느 색깔도 서로가 흡수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물랭호텔로 들어서는 몽마르트 입구에 과일가게들이 많이 있었다.사과 수박 포도 자두 오렌지 등이 먹음직스럽게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치즈가게에는 수많은 종류의 치즈덩어리가,고깃간에 걸려있는 신선한 고기들도 보였다.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에는 언제나 싱싱한 생활의 냄새가 배어난다. 호텔에 도착하니 인상이 좋은 한국인 주인 부부가 맞아주었다. 어제까지 화창하고 더운 날씨여서 반팔 차림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추워지고 비가 온다고 부인이 말했다.파리의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 그 영향으로 파리지엔들 또한 변덕이 심하다고도 했다. 주인은 택시까지 나와서 우리가 치르는 택시값의 계산을 도와주었다.그때 잠시 보았을 뿐 주인은 그후 다시 우리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여주인 말이 여행을 좋아하여 언제든 며칠씩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지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밖을 내다보니 좁은 골목 비탈길에 세워진 맞은편 건물의 창이 건너다 보였다.그 창에는 우리방의 창과 마찬가지로 엷게 비치는 흰 커튼이 쳐져 있었다.누군가 분명히 살고 있을텐데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한번도 얼굴을 마주친 일이 없다.역시 사생활이 몹시 존중되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창으로 내다본 몽마르트의 골목길은 위트릴로의 그림 그대로 였다. 위트릴로의 침묵이 느껴지는 회백색 건물들과 나뭇가지,돌바닥,지나가는 사람,이런 것들을 나는 잠시 위트릴로의 마음이 되어 바라보았다.그림이란 이렇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심성의 것이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꼈다. 우리는 다섯 밤을 자기 위한 여장을 풀었다.
  • 「고개숙인 남자」 김영수수석(청와대)

    정치의 활성화는 때로 개혁에 짐이 되는 수가 많다.정치자체가 개혁의 대상일 때 그런 가능성은 더 커진다.정치실세들을 전면에 포진시킨 민자당의 체제정비는 청와대의 사정팀에겐 「새로운 강적」의 출현일 수 있다. 김영수민정수석은 이런 상황에서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중진실세들의 정치적 활동강화가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오히려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누구보다 김영삼대통령을 자주 만나고,대통령의 뜻에 정통한 사람들이다.이들이 활동공간을 넓히되 예전과 다른 정치,이를테면 정치개혁입법정신에 맞는 정치를 해준다면 정치개혁은 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다. 두번째는 중진들이 구태의연한 정치를 한다면 결코 사정의 그물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정치의 활성화는 정치자금의 수요 증대를 부르게 된다.그는 『대통령의 사정의지가 후퇴한 것도 아니고,사정의 그물코가 넓어진 것도 아니다.과거식의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사정의 덫에 걸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의도나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정치의 활성화를 스크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김수석은 「고개숙인 남자」로 자처한다.민정수석 자리란 사정의 칼날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가 훼손되기 좋은 자리로 생각하고 있다.보통자리보다 두배이상 자기관리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자리를 물러난 뒤에라도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자리에 대한 생각이 늘 「고개숙인 남자」로 행동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그래서 전화 하나라도 좀더 친절하게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성향을 따진다면 개혁적인 보수라고 할 수 있다.그는 사정의 물살이 거셀 때 도도한 물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애를 썼던 사람으로 청와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개혁의 물살에 휩싸이기보다는 강의 언덕 위에 서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척결에 매달릴 틈이 없다』와 『사정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가 그가 가장 자주 써 온 말이다.이런 사정에 대한 그의 기본자세는 대통령의 측근들로부터 오해를 사기도했다.몸을 사린다거나,개혁의지가 없는게 아니냐는 것이다.그러나 그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그것이 신념이었던 탓으로 보였다. 그가 출세가도라 할 공안검사로 발탁된 계기는 뜻밖이다.서울지검서 남들이 싫어하는 방·실화전담검사를 할때 너무 잘해 공안부장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화재가 주로 한밤에 일어나 공안부장에게 앞서 보고하는 수가 많다 보니 눈에 띌 수 있었다는 것.성실성이 검증된다. 청와대의 한 출입기자는 그를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대통령도 그의 영리함을 높이 사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그러나 그를 표현하는 「영리함」이란 단어에는 「민첩하고 똑똑하다」는 사전적인 뜻에 좀더 친근하거나 능력있다는 뉘앙스가 더해져야 한다.영어로 쓴다면 smart일까. 정치권과 검찰의 현안 가운데 하나인 「12·12고발」에 대해 그는 『고발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검찰이 다루기보다는 역사에 맡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다.그러나 기왕에 고발이 있은 이상은 검찰이 피해갈 수는 없고,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한다.그는 「12·12」에 대한 검찰의 결과발표는 『검찰의 현주소와 능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것』이라고 예고했다.검찰에 오래 몸담아온 그의 친정에 대한 애정이 이런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12·12문제에 대해 어떤 자료도 검찰로부터 받지 않고 있다.대통령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그러나 진실인 것으로 들리게 만든다.
  • 대학생시위 갈수록 흉포/진압경찰 중상 급증

    ◎날세운 쇠파이프 휘두르기 예사/올들어 뇌진탕·골절 등 1백53명 폭력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학생등 극렬시위대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이들은 최근들어 화염병과 쇠파이프·각목등으로 「중무장」, 경찰의 진압에 조직적으로 맞서고 있어 경관들이 부상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 14,15일 불법강행한 「범민족대회」에서도 참가자들이 진압에 나선 경찰에 무자비하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공권력에 도전했다. 당시 집회장 전방에는 5백여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찰의 진압에 맞서 전위대노릇을 했으며 실제로 경찰이 해산시키기 위해 진입할 때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찰은 「범민족대회」 진압에 나선 경찰과 전경 44명이 학생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돌에 맞아 팔이 부러지거나 뇌를 다치는 등의 중상을 입고 경찰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경찰병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시위와 관련해 입원한 환자가 1년동안 42명이었지만 올들어서는 이미 1백53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이 대회에서만도 학생들에게 맞아 타박상을 입은 전경등을 합치면 모두 1백10여명에 이른다. 범민련 집회시 부상을 입은 경찰 3명과 전·의경 41명등 입원치료중인 44명 가운데는 팔과 어깨뼈가 금가거나 부러진 골절환자가 16명,뇌진탕등 뇌에 부상을 입은 사람이 16명등이며 이밖에 타박상등 12명이 대부분 중상자들이어서 최근의 시위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허리골절로 치료를 받고 있는 전경 조보현수경(21)은 『서울대안으로 진입했다가 나오는데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뒤 다시 무장해제를 당한 상태에서 쇠파이프와 발길등으로 몰매를 맞아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통일을 외치는 것을 어떻게 애국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머리를 내저었다. 입원한 전경들은 『학생들이 날카롭게 간 쇠파이프를 휘둘러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병원 수간호사 성남기씨(39·여)는 『전에는 화염병에 의해 화상을 입은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골절상을 입은 사람은 20%정도 였으나 최근에는 골절이나 타박상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폭력시위의 실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차량을 비롯,방독면·취루탄발사기등 시위진압장비의 피해는 1억5천여만원에 달하고 있다. ◎범민족대회서 중상 김수일상경의 절규/“「쇠파이프 몰매」 누가 보상해 줍니까…”/5∼6명이 난타… 피토하고 실신/“대학생이 어떻게…” 부모 눈시울 『우리의 고통은 누가 보상해줍니까』 지난 14,15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5차 범민족대회」에 출동,해산작전에 나섰다가 학생들로부터 집단구타당해 병상에 누운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 29중대 김수일상경(20)의 절규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끼리 쇠파이프와 최루탄으로 맞붙어야만 하는 이땅의 현실을 마음아파했고 학생들을 이해해보려고도 노력한 김상경의 마음은 지금은 나락과 같은 고통만큼이나 찢어지는 듯하다. 김상경은 범민족대회가 서울대에서 기습적으로 열린 14일 하오10시쯤 소속부대원들과 함께 서울대정문쪽 해산작전에 나섰다. 그러나 1만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밀고나와 전경부대는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됐고 선두에서 서서작전에 나선 김상경은 아차하는 순간 학생 5∼6명에 에워싸이고 말았다. 가지고 있던 액체가스분사기로 학생들에 맞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쇠파이프와 발길질에 의한 고통이 온몸에 느껴졌고 땀과 가쁜 숨에 흐려진 방독면유리밖은 온통 칠흑의 어둠뿐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을 때 김상경은 또다시 앞이 파래지면서 아득해짐을 느꼈다. 함께 퇴각하던 페퍼포그차가 가슴을 받은 것. 페퍼포그차에 질질 매달려 정문쪽으로 끌려나온 김상경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다시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이었다. 몽둥이세례가 전신에 느껴졌다. 김상경이 피를 토하면서 의식을 잃어가자 겁이 난 학생들은 지나는 승용차를 불러세워 인근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말한 뒤 사라져버렸다. 김상경은 곧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의식을 잃었고 15일 하오가 돼서야 자신이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경찰병원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92년 경남 김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상경은 「시대의 아픔」을 체험하기 위해 의경시험을 거쳐지난해 3월 의경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김상경은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벌이는 민주화·통일운동과정에서 입은 심신의 상처에 고통스러울 뿐이다. 아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김해에서 상경한 어머니 서종임씨(48)는 『문민정부가 들어서 안심하고 아들을 의경으러 보냈는데 동년배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 파업27일… 하루손실 1백30억/현대중 직장폐쇄 배경

    ◎사측,“하청업체피해 심각한 상황”/노조 정치지향에 자율해결 못해 한달 가까이 끌어온 울산 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가 20일 사용자측의 「직장폐쇄」란 특수처방을 맞아 울산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회사측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노조측은 「총력 정면대결」을 선언하고 나섰으며 회사점거농성등을 시도할 경우 공권력의 투입 또는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등 노·사,노·정의 정면충돌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반적으로 전국의 산업현장 노사분규가 수습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현대중공업 노조의 장기파업으로 울산지역에는 예년과 같은 연대파업의 회오리에 휩싸이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사용자측과 정부당국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활동에 울산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사태가 악화되는것을 막기위해 직장폐쇄 또는 긴급조정권발동등 특단의 조치를 예고하며 협상타결을 유도해 왔었다. 이 회사 노사는 지난 4월20일부터 단체협상 41차례,임금협상 27차례의 교섭을 가졌으나 노조측이 내세우고있는 ▲임금 12.6%(9만9천4백78원)인상과 ▲인사·징계위 노사동수 ▲해고자 복직 ▲정주영명예회장 퇴진등 4개항이 걸림돌이 되어 왔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임금협상에서 현대자동차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조측 요구에 대해 업종이 다르고 회사의 경영사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인상은 어렵다고 밝히고 있으며 나머지 사항은 경영권에 속해 들어줄 수 없는 사항이라고 맞서왔다. 단체협상에서는 노사분규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해고자 복직문제등 회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항목을 내세우는등 지금까지 70여개 조항이 미합의로 남아있어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었다.특히 노조측이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자 9명중 권용목·오종쇄·사영운씨등 이른바 「권오사」에 대해서는 회사측이 어떤 경우에도 복직시키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어 협상타결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노조측이 임금등 근로조건개선에 관한 협상보다는 회사의 경영권 참여에 집착하고 있는데 대해 회사측은 이갑용위원장이 공동의장직을 맡고있는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의 중심노조인 현대중공업노조가 「제2노총」건설과 복수노조 인정을 주장하는 전노대의 정치노선을 따르면서 사태를 장기화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노조측은 법적 절차를 거친 쟁의이기 때문에 앞으로 1∼2개월정도 파업을 더 끌고가더라도 회사측이 서둘러 정당한 노동행위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전개에 따라 회사측의 직장폐쇄조치와 정부의 긴급조정권발동이 자연스럽게 거론됐다.파업으로 하루 1백30억원씩의 회사 손실을 입는 것도 두고 볼수없는 형편이지만 무엇보다 협력업체들의 손실및 경기회복등 최근의 상승무드를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이번 조치의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중공업 노사분규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은 노사양측이 자율적인 해결을 위해 조금도 양보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 궁궐:3/“경복궁 싫다”태종이 창덕궁 창건(서울 6백년만상:40)

    ◎임진왜란·인조반정·순조때 대형화제/세임금 폐출된 곳… 후원으로 비원 조성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태종은 서울 천도를 결심한다.태종은 경복궁은 창건때부터 좋지 않은 일이 잇따라 정궁을 다시 지으려했다.그러나 선왕 태조가 창건한 경복궁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조준등 중신들의 반대여론에 밀려 이궁으로 지은 것이 창덕궁이다. 정궁은 아니면서도 가장 많은 임금이 정사를 살폈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리는등 수많은 궁중 비사를 간직한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태종 4년(1404) 10월 경기·충청·강원에서 군병력과 승려 농민들을 동원,공사에 들어간 창덕궁은 이듬해 10월 완공됐다.규모는 경복궁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태종은 창덕궁에 든지 6년만에 거처를 경복궁으로 옮긴뒤에도 계속해서 정전과 누각을 지어 12년에는 정문인 돈화문을 건립했다.그리고 세종 원년(1419) 인정전이 완공돼 비로소 궁궐의 모습을 갖출 수있었다. 단종과 연산군이 폐출되는 비사를 간직한 창덕궁은 임진왜란발발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피란에서 돌아온 조정은 경복궁의 터가 불길하다고해 가장 먼저 창덕궁 중건에 착수,광해군 원년(1609)에 완공했다.이후 창덕궁은 경복궁이 중건(1867)될때까지 「조선의 정궁」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경운궁에 거처하던 광해군은 창덕궁이 완공된 뒤 「선왕의 상중」이라고 이런저런 핑게를 둘러대며 궁에 들기를 꺼려했다.그러나 마지못해 창덕궁으로 이어한 뒤 20일만에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이의신이라는 술사의 말에 의존하던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노산군(단종)과 연산군이 폐출됐기 때문에 창덕궁에 들기를 꺼려했던 것으로 「광해군 일기」는 전하고 있다. 중건 5년만에 중신들의 성화에 못이겨 창덕궁에 든 광해군은 8년뒤 인조반정으로 노산군·연산군과 마찬가지로 창덕궁에서 쫓겨나는 비운을 맛봐야했다. 광해군은 창덕궁을 창건하면서 조성됐던 후원을 재정비했는데 이곳이 오늘날의 비원이다.비원은 북악에서 뻗어나온 완만한 산기슭 6만여평에 정자와 연못을 만들어 이룩한 조선조 정원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비원 연경당 뜰에는 괴석들이 석분에 담겨 눈길을 끄는데 이들 석분은 광해군 일기에 『기화·이목·괴석을 널리 모아 동산을 만들고 정자를 지어 소요해 그 화려함이 일찍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광해군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조반정이 있던날 창덕궁엔 두번째 큰 불이 나 인정전등 몇 전각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됐다.이에 따라 인조 25년 6월 (1647) 광해군이 공들여 지었던 인경궁의 전각을 헐어 창덕궁 재건공사를 시작,그해 11월 복구공사는 완료됐다. 이후에도 크고작은 화재가 발생했으나중창은 없었다.그러나 순조 3년(1803)12월에 또 다시 대형화재가 발생,인조반정때 실화를 면했던 인정전등 주요전각이 모두 소실됐다.이듬해 완공된 인정전은 국보 2백25호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번에 걸친 대화재로 중건과 재건을 거듭한 창덕궁은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역사의 거센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남예멘 정유공장/북군 2차례 공습

    【아덴 로이터 연합】 북예멘은 11일 전투기들을 동원,남예멘의 유일한 정유공장을 두차례 공습했다고 압델 라흐만 알리 알 지프리 남예멘 부통령이 말했다. 북예멘군은 그동안 아덴시 외곽에 위치한 이 정유공장을 수차례 공격,원유저장탱크들이 화염에 휩싸이기도 했다.
  • 농정당국 붕위기 쇄신 해야한다(최택만 경제평론)

    농림수산부 분위기가 연이은 파동으로 몹시 침전되어 있다고 들린다.농림수산부는 지난해말 우루과이라운드(UR) 쌀시장개방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데 이어 농산물협상이행계획서 수정파문을 겪은 바 있다.UR파문에서 겨우 헤어나려는 농정당국은 다시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중매인의 경매행위거부파동에 휘말렸고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하자마자 또다시 농안법안개정시비에 휩싸이는 「불운의 연속」을 당했다. 농림수산부는 지난 1년에 동안 각종 파문과 파동의 책임을 지고 장관 2명이 사임하고 차관·국장·과장 등이 잇따라 해임 또는 보직을 잃는 사태가 일어났다.아마도 정부부처내에서 이처럼 파동과 파문에 휩싸여 상층부가 줄줄이 자리를 떠나는 사례는 근래에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농정당국은 파문과 파동의 뒷수습을 하느라 UR협상타결이후 농업경쟁력강화를 비롯해 산적해 있는 농정현안과제를 뒷전에 밀어놓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후 발족된 농어촌발전위원회는 중간보고서에 이어 최종보고서를 엊그제 내놓았다.정부는 지난 17일 경제부총리 주재로 농업정책심의회를 열고 농어촌발전위원회가 중간보고에서 건의한 농어촌학생들의 대학특례입학,의료보험통합,농어가경영이양금지급 등 과제를 협의했으나 관계부처가 반대하는 바람에 아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농림수산부의 또하나의 주요정책과제인 농수산물유통구조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농정당국이 본업보다는 잔업에 매달린다면 중매인의 도매행위금지 유예기간인 오는 11월이전까지 획기적인 농수산물유통혁신방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더구나 11월은 김장철이다.김장철전에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중매인의 도매행위금지조치가 실시되면 제2의 경매거부파동이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또 연말이 되면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이어서 정부와 민자당이 중매인의 도매행위금지조치를 또다시 유예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추측마저 나돌고 있다. 정부의 주요한 정책이 특정집단의 이기주의에 의해서 시행이 보류되는 해괴한 일이재연되지 않게 하려면 최소한 도매시장운영합리화방안정도는 가까운 시일안에 마련되고 도상훈련까지 완료되어야 한다.농림수산부가 과연 계획대로 그런 과제들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농림수산부 고위관계자는 『현재 농림수산부 직원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다』고 밝혔다.농림수산부 한 직원은 『오늘의 농정파문이 전적으로 농림수산부 직원들의 책임이냐』고 반문하면서 『하루하루 근무가 살얼음 위를 걸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다른 직원은 『지뢰밭을 걸어가는 기분』이라는 비유를 서슴지 않았다.이런 분위기가 더 지속되면 농정의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다. 무언가 농정당국의 분위기쇄신을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예컨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농안법관련수사를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종결하는 것은 농정당국의 분위기쇄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농업정책 관계부처 협의과정에서 관련부처가 지나친 부처이기주의를 버리고 그동안 고도성장과정에서 소외되어온 농림수산업의 발전에 한 몫을 하겠다는 사고와 자세를 갖는 다면그것은 농정당국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경제부총리는 농업정책심의회에서 부처간 조정기능을 최대한 살려 농정현안과제가 표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농정은 자연과 기후 등에 영향을 받는 업무의 특성으로 인해 추진기능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또 농정의 상당부분이 기술적이고 보수성을 띠고 있어 정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그리고 농수산관련 공직자들은 일반적으로 정책총괄과 조정기능이 약하다.따라서 경제부총리가 농림수산부의 특성과 UR이후 농정현안,그리고 현재 농정당국의 사기저하 등을 감안하여 정책조정의 묘를 기해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UR협상과정을 보면서 비로소 농정이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는 과거와 같이 농정의 사령탑을 지역적 안배케이스로 임명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인책해임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이다.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는데도 비전문인을 기용한것도 오늘의 농정파문과 무관하지 않다. 농정당국 분위기쇄신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주체는 바로 농림수산부 공직자들이다.먼저 스스로 분위기쇄신에 나서야 한다.오늘의 농정의 혼미와 파문에 무언가 구조적인 원인과 내력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갖고 분위기쇄신방안을 찾는다면 그 대안이 어렵지 않게 나올지도 모른다.
  • 예멘의 교훈/구본영 북한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90년 협상을 통해 통일을 달성한 예멘에서 최근 내전이 격화되자 통일원과 통일관련기관들이 사태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일원은 예멘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부의 통일정책전반에 걸쳐 재점검하고 있고 민족통일연구원과 대통령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은 오는 17일 「예멘통일의 문제점」에 관한 학술회의와 강연회를 각각 개최하는등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4년전 남북예멘이 하나로 뭉쳤을 때 예맨은 한국·독일·베트남·중국등 2차세계대전이후 이념대립으로 분단된 나라들로부터 가장 바람직한 통일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와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비인도적인 베트남식 무력통일은 배제한 채 독일식 흡수통일보다도 예멘식 통일에 가까운 점진적 통일방안을 상정하고 통일정책을 추진해왔다.3단계3기조통일방안이 그것이다.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뒤 엄청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된 예멘이 다시 포연에 휩싸이자 정부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14일 『자유주의체제의 북예멘과 사회주의체제의 남예멘이 대통령과 부통령,장차관을 나눠갖고 남북간에 세력균형을 꾀했으나 미봉적 통일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통일후에도 서로 다른 군복을 입을 정도로 국방과 치안을 통합하지 못한,다시 말하면 겉통일은 이뤘으나 속통일은 이루지 못한 미완의 통일이었다는 것이다. 구심점 없는 통일은 더 큰 분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예멘사태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흡수통일을 않겠다」는 식의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언젠가 갑자기 북한이 붕괴돼 통일이 급진전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철저히 대처하는 일일 것이다.남북한 경제력격차가 남북예멘이나 동서독보다 훨신 현격히 벌어져 있기도 하지만 우리와 50년 가까이 단절의 벽을 쌓아온 북한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예멘사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이때 여만철씨일가와 황광철형제등 잇따른 귀순자를 맞으며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통일에 대비,정부가 통일정책수립과 추진에 더욱 완벽을 기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불 미테랑 집권 13년… 향후 거취 관심

    ◎이례적 TV대담… 대선 앞두고 여론 저울질/EU창설 기여·외교력바탕 국익제고 평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10일 취임 13주년을 맞아 TV방송과 대담을 가졌다. 취임기념일이면 파리시내 팡테옹에 있는 프랑스 좌파의 시조인 장 조레스의 묘역을 찾아 사회당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바치는 정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이날 방송대담은 이례적인 것이다. 미테랑대통령은 최근 작은 파문을 일으킨 핵실험금지 발언을 하면서 후임자도 이 원칙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말했다.현재로서는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설 뜻이 없음을 내비추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93년 3월 좌파가 대패한 총선결과가 미테랑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된 만큼 그의 3선 출마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통령선거는 5월중순에 있다.정치 일정상 취임14주년 기념 대담이나 기자회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이번에 대담을 이례적으로 가진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미테랑은 민주국가 지도자치고는 드물게 장기 집권을 누리고 있다.숱하게 열린서방선진 7개국 정상회담에서 딴 우방국 정상은 번번이 바뀌어도 그는 줄곧 좌장의 자리에 있었다.국제정치와 외교의 「거목」인 셈이다. 집권 13년동안 그는 이런 외교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위신과 국익을 최대한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대표적인 예가 우루과이 라운드의 농업분야등 협상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실속있게 지킨 것이다. 그는 유럽통합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고 실제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테랑대통령은 1차 사회당 단독집권기에 기업의 경쟁력강화 정책으로 대미수출을 크게 늘렸고 앙드레 말로를 문화장관에 앉혀 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뤘다.이 시기에 「프랑스식 사회주의 구현」을 내세웠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형태 정책을 펴 좌파의 이미지는 퇴색했다. 또 사형제도의 폐지와 이민자의 적극적인 수용은 인권과 생산력을 신장시킨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에 치안불안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86년 우파 각료들에 둘러싸이는 동거정부를 감수해야 했고 그뒤 88년 54%의 국민 지지로 대통령에 재선돼 동거정부를 종식시켰으나 지난해 총선에서 좌파가 참패함으로써 또다시 동거정부를 구성해야만 했다. 이제 미테랑의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데다 벌써 대통령후보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어 우파내각과의 불협화음이 약간씩 감지되고 있다.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마찰이 심해질 것이 예상된다. 1년후 프랑스는 좌파체제를 계속 수용할지,우파로 갈아치울지 「미테랑 이후」를 결정해야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