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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역사학자 앰브로즈저 「국제질서와 세계주의」

    ◎1938∼1991 미의 대외정책 영향 분석/고립주의서 세계주의 전환,해외 병력 배치/“파괴력이 반드시 통제력 아니다” 미국인에 교훈 현대 미국외교사를 다룬 책 가운데 대표적인 저작물로 꼽히는 「국제질서와 세계주의」(원제 「세계주의의 부상­1938년이후 미국의 외교정책」)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스티븐 앰브로즈 지음,을유문화사 간).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 발발 1년전인 1938년부터 부시대통령 당시 걸프전에 이르기까지,미국이 세계의 주역으로 등장한 뒤 수립한 대외정책과 그 영향을 분석했다.미국 뉴올린스대학 석좌교수로 있는 지은이는 아이젠하워·닉슨 전대통령 전기를 비롯해 현대 군사·외교정책에 관한 저서를 10여권 낸 저명한 역사학자다. 미국 외교는 20세기초까지 고립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이는 1823년 「외국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며 아울러 식민지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먼로주의에서 비롯됐다.1904년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반구에서 국제경찰력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아메리카대륙권으로 복귀하는 데 그친다. 지은이는 그 까닭을 『자본주의 후발국인 미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함에 따라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제국주의를,유럽 열강과의 관계에서는 반식민주의를 주장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2차대전 종전후 미국은 대외정책에서 「세계주의」로 탈바꿈한다.2차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인은 자국의 취약성을 알게 됐고,전쟁발발 가능성은 해외에서 초기에 차단해야 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됐다.이때부터 미국은 전쟁재발을 막기 위해 대규모로 재무장하는 한편 집단안보정책을 수립,병력과 미사일을 해외에 배치하게 된다. 그렇다고 「세계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나 경제적 필요 때문에 등장한 것만은 아니라고 지은이는 분석한다.미국은 2차대전중 스스로 「힘의 위대함」을 깨닫고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는 『자유가 모든 곳을 지배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자유의 십자군」을 발진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60년대말에는 힘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70년대 들어서는 중국,검은 아프리카,남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된다.『1980년대말 미국은 역사상 어느때보다도 더욱 부유하고 강력하지만,더욱 취약하기도 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은이는 결론짓고 있다. 이 책은 역사서가 갖춰야 할 객관성과 주관성을 잘 조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 학계가 현대사를 해석하는 두 관점,곧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지은이가 인간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한다는 데 있다.베트남에 대한 정책실패로 재출마를 포기한 존슨전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지은이는 『존슨은 동남아시아에 민주주의와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원했지만 단지 죽음과 파괴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그리고 「파괴력이 반드시 통제력은 아니다」라는 교훈을 미국민에게 주고 있다.〈이용원 기자〉
  • “부패와 투쟁하는 한국의 십자군”/인 언론,김 대통령 방문 특집

    ◎개혁정책 큰 성과… 인서도 모범 될 것 인도 델리에서 발행되는 대부분 신문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인도방문활동에 대해 1면 또는 정치면 2∼6단으로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김대통령 인도방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특히 인도의 가장 유력한 신문인 「타임스 오브 인디아」와 「힌두」지는 김대통령의 방문이 양국간 유대 강화의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김대통령의 개혁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인도에도 모범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지는 25일자 4면 전면을 할애,「역사 바로세우기」를 집중 설명하면서 『김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국민들에게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직시하도록 강력한 단합을 이룬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힌두지도 25일자 1면과 6면에 걸쳐 「부패와 투쟁하는 십자군」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김대통령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인도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자금의 선거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부패와 투쟁하는 십자군으로 보여지기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파이낸셜 익스프레스」 「패트리어트」 「내셔널 해럴드」 「힌두스턴 타임스」지 등도 1∼3면 등에 김대통령 환영사진과 함께 한­인도 유대강화 등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이코노믹스 타임스」지도 6면에 「새로운 새벽을 밝힌 환상적 선구자」라는 제하의 특집기사에서 『김대통령은 대부분 개척자들과 달라 자신이 이루려하는 새로운 질서와 이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설명.
  • 일본은 「국가 폭력」 핏줄을 잇는가(박갑천 칼럼)

    어느 겨레고 역사는 영욕으로 엇결린다.특히 우리처럼 힘이 약했던 겨레에겐 굽잡혀지낸 아픈 자국이 더 많을밖에 없다.고려때 원나라에 여자를 바쳐야했던 일도 그것이라 하겠다. 고종때 쳐들어온 그들은 동남동녀를 요구한다.그후로도 까딱하면 여자를 바치라 을러대므로 고려조정에서는 「과부처녀 추고별감」이라는 이름의 희한한 관아를 만들어 그일을 맡게 했을 정도다.충렬왕∼공민왕때까지의 80년동안 그 문제로 사신이 50여차례나 갔다왔다 했다지 않던가.원제국을 뒤집어놓은 요화 기황후도 끌려갔던 공녀아닌가 생각되고 있다.쓰린 역사는 근대에 들어서도 더 살똥스럽게 되풀이된다.태평양전쟁때 일제가 군대위안용으로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그러모아 일선으로 보냈던것 아닌가.원나라때는 그래도 왕실이나 귀족의 후궁·궁녀·시첩·시비로 되었다.한데 일제는 불특정다수인의 욕구배설에 충당했으니 버력입어 마땅할 무도함이었다. 제1차 십자군원정(1096∼99)에 따라간 여자가 5천명이었다 한다.또 알브레히트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슈트라스부르크에 입성했을때(1298)는 8백명이,스페인 알바공의 네덜란드원정때(1567)는 말탄 여자 4백명과 걷는 여자 8백명이 따라갔다.그러나 그들은 매춘부.한데 일제가 끌어다 망가뜨린건 우리 처녀들이었다. 일제는 그들을 일러 정신대라 했고 지금도 그리 부른다.하지만 「정신」이란 말뜻은 고약하다.소동파의 유후론등에 의할때 『남보다 앞서 자진하여 나아감,솔선함』같이 쓰이니 말이다.끌려간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앞장서 자진해 간 걸로 표현되다니.「조선조」를 「이조」라 하는 따위 독소섞인 그들의 말을 무심코 쓰는 사례가 「정신대」.달리 갈음됐으면 한다. 오는 3월께 유엔인권위가 『이른바 정신대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비인도적 전쟁범죄』라 규정한다고 들린다.보상도 「위로금」 아닌 「법적배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다.그러나 배상으로 된다해서 짓밟힌 한살이가 보상되겠는가.참으로 잔인한 「국가폭력」이었다. 민주화했다는 오늘의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의 미화등 국가폭력의 맥을 잇는 작태를 곧잘 내발려온다.독도를 자기들땅이라 우기는 것도 침략주의 조상의 핏줄을 이은 떼거리.이웃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을 쓰렁쓰렁하게 만드는 그들이 아닌가.시마네켄(도근현) 고시보다 3백60여년이 앞선 「패관잡기」에는 대마도가 우리땅이더라마는.
  • 종말론(외언내언)

    한글사전은 「사이비」를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다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따라서 사이비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탈을 쓴 혹세무민 집단이다.이 집단들은 허무맹랑한 교리를 내세워 신도들을 현혹한다.그 대표적인 교리가 종말론이다. 사이비교주들은 종말론으로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영생」과 「영원불멸」을 미끼로 활용한다.종말론의 뿌리는 깊다.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1·2차세계대전등 그때그때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해왔다. 종말론을 신봉하던 프랑스 「태양사원」신도 16명이 23일 알프스산악지대에서 불탄 시체로 발견돼 성탄절을 앞둔 프랑스국민들을 경악케 했다.이들은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단지 환상일뿐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하지만 프랑스경찰은 타살의 혐의가 짙은것으로 보고 있다. 종말론에 의한 참사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종말론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된것은 78년 미국 「인민사원」사건.이 교단의 교주 짐 존스는 남미 가이아나밀림에 건설한 종교촌락에서 어린이 3백명을 포함한 신도 9백14명을 음독자살하게 하는 희대의 참극을 연출했다.일본 도쿄의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옴진리교」도 종말론으로 신도들을 현혹했다.사회주의 붕괴후 동구권에도 종말론 바람이 일고 있다.9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는 신을 자칭하며 종말론을 강조한 사이비 교주 2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우리사회도 사이비종교의 종말론 때문에 여러차례 소동을 겪었다.87년 구원파의 오대양사건으로 32명이 떼죽음을 당했는가 하면 92년에는 다미선교회가 그해 10월28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속여 신도들에게 학업과 생업을 버리도록 강요해 가정을 파괴하는등 반사회적 행위를 저질렀다.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사이비종교는 이땅에서 추방되어야 한다.히로뽕이나 코카인이 인간의 육체를 좀먹는 마약이라면 사이비종교는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해치는 정신적 마약이기 때문이다.
  • 사이비 종교(외언내언)

    한글사전은 「사이비」를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다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따라서 사이비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탈을 쓴 혹세무민의 집단이다.이 집단들은 허무맹랑한 교리를 내세워 신도들을 현혹한다.그 대표적인 교리가 종말론이다. 종말론 자체는 그릇된 교리가 아니다.그러나 사이비교주들은 이것으로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영생을 약속하는 미끼로 활용하고 있다.종말론의 뿌리는 깊다.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1·2차세계대전등 그때그때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절망과 구원의 신앙이었다. 우리사회도 사이비종교의 종말론때문에 여러차례 소동을 겪었다.87년 32명이 집단자살의 참극을 빚었던 구원파의 오대양사건은 온세상을 놀라게 했고 92년에는 다미선교회가 그해 10월28일에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속여 신도들에게 학업과 생업을 버리도록 강요하고 가정을 파괴하는등 반사회적 행위를 해 교주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신도들로부터 3억5천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지난해 1월12일 구속된 영생교조희성교주도 종말론으로 신도들을 현혹했다.그는 『곧 세상의 종말이 온다.「동방의 메시아」 「구세주」 「이긴자」인 나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외치면서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는가 하면 기혼자에게는 이혼을 강요하고 미혼자에게는 결혼을 못하게 하는등 어처구니 없는 사기행각으로 세상을 농락했었다. 일본 도쿄의 지하철독가스 살포사건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오우무진리교」도 종말론을 앞세운 사이비종교라고 한다.사이비종교의 사회적 폐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신앙의 자유를 구실삼아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사이비종교는 이 땅에서 추방되어야 한다.히로뽕이나 코카인이 인간의 육체를 좀먹는 마약이라면 사이비종교는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정신적 마약이기 때문이다.
  • 시체·탄피·올가미 어지러이/스위스·가 「태양사원」 집단자살 현장

    ◎20여명 머리에 총상… 10살짜리도/가인희생자중 기자·공직자 포함 ○…「태양의 사원」신자들이 집단으로 숨진 스위스 셰이리의 농가에서 발견된 희생자 대부분은,노끈에 목이 묶이고 플라스틱백을 머리에 뒤집어쓴채 숨져있었고 20명은 머리에 총상이 있었다.23구의 시체 가운데 프랑스인은 5명,캐나다인 4명,스위스인은 7명인 것으로 일단 신원이 밝혀졌으며 희생자중에는 10살된 어린이도 있었다.현장주변에서는 22구경소총 탄피 52개가 발견됐도 희생자 19명은 붉은 카펫이 깔린 한 방에 발을 중앙으로 하고 머리를 바깥쪽으로 향한 모습으로 원을 이룬채 모여 있었다. 희생자중 몇몇은 붉은색과 검은색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이는 이들이 입문단계에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셰이리 마을주민들은 이들 신자들이 항상 옷을 잘입고 예의바른 사람들이었을 뿐 사이비종교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술회.주민들은 신도들이 단순히 「장수식」에 관심이 있어 채소를 가꾸기 위해 이곳에 이주해 온 것으로 믿었다는것. ○…캐나다 당국은 5일 스위스에서 불에타 숨진채 발견된 이른바 「태양의 사원」 교도 48명 가운데 기자등 퀘벡주 출신 4명이 포함돼 있다고 확인. 퀘벡주 경찰당국은 이들 퀘벡주 출신 사망자들은 신문기자인 조셀린 그랑 메종(44),몬트리올 동부 리셸리외 시장인 로베르 오스티기(50) 부부,퀴벡주정부 재무부직원인 로베르 팔라르도(47)등 4명이라고 밝혔다. 한편 「태양의 사원」 신도들의 집단 자살로 추정되는 이번 화재사건을 수사중인 스위스 경찰은 스위스 서부와 남부 2곳의 산장의 화재가 타이머 또는 전화로 작동되는 원격 전자조종장치에 의해 발생했다고 밝혔다. ◎교주 주레는 누구/종말론 신봉 민간요법의사 출신/“불로 신판” 주장하며 예수자처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교집단 「태양의 사원」은 「새로운 예수」를 자처하는 뤽 주레(46)가 교주로 캐나다에 본부를 두고 있다. 벨기에 출신으로 민간요법의사로 활동했던 주레는 종말론을 퍼뜨리며 스위스와 캐나다에 여러개의 사이비 종교집단을 만들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신도들을 사로잡았다. 주레는 「불에 의한 심판」 등을 주제로 「파국」이나 「파멸」의 불가사의한 힘을 강조했으며 지난해 7월 불법무기 소지죄로 유죄판결을 받은뒤 스위스로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은 그리스도의 십자군으로 자처하는 「태양의 사원」 신도들이 지난 17세기 유럽에서 비밀리에 종교활동을 폈던 사교집단 「장미십자회원」이나 「Q37」이라는 신비주의 종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지만 이 단체의 정확한 성격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미남형에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어 신도들의 호감을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주레의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현지 경찰들과 수사당국은 이번에 집단으로 숨진 채 발견된 사람들 중에 그의 시신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미제 소시지(외언내언)

    한·미간 소시지분쟁이 「미국의 판정승」으로 끝난것 같다.보사부가 최근 발표한 식품유통기한제도 개선안은 한·미간에 말썽이 되어온 가열냉동소시지 유통기한을 90일로 연장할 수 있게 해놓았다.그동안 우리 식품규정에서 30일로 묶여 비행기편으로 제한 수입되던 미제 소시지가 선박편으로 대량수입돼 오래 두고 팔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시지는 잡고기 제품이다.보통 햄을 만들때 나오는 부스러기 고기를 갈아 돼지기름을 많이 넣고 양념과 첨가제를 가미해 만드는 것이다.원래 상등육을 얻을수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정육 이외의 먹을수 있는 부위를 모두 이용한 서민식품이었다. BC9세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병사들이 만들어 먹은 것으로 기술된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로마시대와 십자군전쟁을 거쳐 서구에 퍼지고 이민따라 미국에 들어갔다는게 식품사가의 추적이다.이제는 미국의 대표적인 식품같이 되어 그 종류만도 3백여종에 이른다.이 소시지가 봄부터 여름내내 우리 식품당국을 괴롭혔던 것. 분쟁 발단은 보사부가 지난 3월22일 냉장상태로 수입해야하는 미국산 소시지를 냉동상태로 변칙수입,유통해왔다는 이유로 당시 부산항에 들어와 있던 1백30만달러어치의 소시지를 압류,폐기처분토록 한것.냉장소시지를 냉동시켰다가 다시 실온상태에서 판매할 경우 부패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보사부의 입장이었다.미국산 소시지 유통기한도 제조일로부터 90일이던 것을 30일로 단축했던 것.미국은 과학적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관세무역일반협정(GATT)본회의에 한국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한국에도 다자간 쌍무협정에 따라 모든 대응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각서를 보냈었다. 식품유통기한은 식품성분 제조 가공방법 포장방법 유통관리체계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수 있어 이번에 전반적으로 조정했다는 것이 보사당국의 설명이지만 미국육류수출협회측의 『바람직스럽다』는 환영의 평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 D데이와 독일인들(임춘웅칼럼)

    1944년 6월6일은 2차세계대전중에 서방연합군이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유럽대륙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작전을 개시한 날이다. 이날은 우리의 해방과도 적지않은 관련이 있어서 우리들도 기억해 둘 만한 날이기도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영국·캐나다·프랑스 등 서유럽국가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역사적인 날이다.우선 나치독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켰다는 의미가 있다.프랑스를 비롯한 대륙국가들은 나라를 되찾았으며 영국은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날이다. 무엇보다 미국에게는 유럽을 해방시킨「십자군」으로서 세계 위에 군림하는 초강국의 위치를 확고히 한 역사적인 시점이다.영광스럽고 자랑스런 역사인 것이다.그래서 지난 6일과 7일 이틀동안 미국의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은 50년전의 같은 날짜 1면기사 전면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실어 감격을 되새기고 있다. 6일 노르망디에서 벌어진 50주년 기념행사도 그들의 영광된 역사만큼이나장중했다.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등 19개국 수뇌가 참가했고 생존해있는 4만1천여명의 참전용사가 초대됐다.미국은 항공모함과 최신예 전함들을 오마하 해변에 배치해 미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관심이 가는것은 이처럼 요란한 행사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감회다.이번 행사에 독일사람이 초대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데 헬무트 콜 독일총리의 코멘트가 흥미롭다.콜총리는 이 행사에 초대되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결코 요청한 일도 없다고 밝히면서 미국·캐나다·영국인들이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프랑스 해변에서 죽어간 그들 병사들을 추모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논평했다.그런데 그 논평 중에『나치 전체주의로부터 독일인의 해방을 포함해 모든 유럽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라는 대목이 있다. 최근 독일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차대전이후 태어난 독일인의 64%가 독일의 「항복」을 「해방」으로 보고 있다.이조사를 실시했던 여론조사 전문가는 「64%」가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독일인들이 나치즘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패망」이외의 다른대안이 없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독일인들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서 얻은 것보다 패배해서 얻은것이 더 많았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패배」를 자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그러나 독일인들은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일단의 군장교들이 히틀러를 암살하려했던 그해 7월20일을 「독일해방의 날」로 기념하려 계획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한시대의 종언이었고 또한 한시대의 시작이었다.나치독일은 서방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 돼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같은 회원국가들 모두가 「노르망디 상륙」50주년을 자축하고 있던 날 뒷전에서 독일의 오늘과 역사를 되씹는 혼란속에 묻혀 지냈다.역사의 유산은 하루아침에 소멸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역사를 스스로 반성하고 새출발 하려는 각고의 아픔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역사적 사실을 끈임없이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일본과의 차이점이다.
  • 종말과 영생(외언내언)

    한글사전은 「사이비」를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다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따라서 사이비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탈을 쓴 범죄적집단이다.허무맹랑한 교리를 내세워 신도들을 현혹한다.그대표적인 교리가 「종말론」이다. 종말론 자체는 그릇된 교리가 아니다. 그러나 사이비교주들은 이것으로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영생을 약속하는 혹세무민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종말론의 뿌리는 깊다.2세기중반 초대교회때의 몬티누스가 선두주자이고 12세기의 요아힘피오레,16세기의 재세레파,19세기의 윌리엄밀러,20세기의 찰스 다이어등이 그뒤를 이었다. 종말론은 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세계대전등 당시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50년,75년,87년,92년등 여러차례 소동을 일으켰다.87년 32명이 집단자살의 참극을 빚었던 구원파의 오대양사건은 온세상을 전율시켰고 92년에는 다미선교회가 신도들에게 학업과 생업을 버리도록 강요하고 가정을 파괴하는등 반사회적행위를 해 교주가 구속되기도했다. 신도들로부터 3억5천만원을 갈취한 혐의로 12일 구속된 영생교 조희성교주도 종말론으로 신도들을 현혹했다. 그는 『곧 세상의 종말이 온다.「동방의메시아」 「구세주」 「이긴자」인 나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것』이라고 외치면서 재산을 갈취했는가 하면 기혼자에게는 이혼을 강요하고 미혼자에게는 결혼을 못하게 하는등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생교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이비종교가 있고 희생되고 있는 신도들은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검찰은 이번사건을 계기로 종교의 탈을 쓴 범죄집단의 뿌리를 뽑아주기 바란다. 또 우리 종교지도자들도 종말론같은 그릇된 신앙형태가 나오는데에는 자신들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 석궁/명중률에 “짜릿”/동호인들 급증

    ◎조작법 쉽고 스트레스 푸는데 적격/“화살 떠날때까지 겨냥자세 유지를”/공중사격 금물… 사냥장소등 즐길 공간 확대 시급 올들어 실내 석궁장이 크게 늘면서 석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현재 야외 석궁장을 포함한 전국의 석궁장은 4백여개로 국내에 석궁이 본격 소개된 4∼5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또한 90년대에 들어서 외국으로부터 석궁이 다량 수입되고 있어 장비를 구비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석궁이란 총신 위에 활을 부착해 화살을 레일에 장전한뒤 방아쇠를 당기면 화살이 발사되는 총과 활의 합성기구.석궁은 기원전 260년경 중국 소림사를 비롯해 세계 여러나라에서 유래되어 중세 십자군전쟁 등 전쟁에서 무기로 사용되어 왔으나 지금은 주로 경기용이나 레저용으로 사용된다.특히 구미 등지에서는 엽총 못지 않은 사냥도구로도 크게 인기를 얻고있다.이밖에 석궁은 가축 마취제와 구명밧줄을 발사하는데도 효과적으로 이용된다. 레저용으로서의 석궁은 10여m 길이의 좁은 공간에서도 10여분만 조작방법을 익히면 남녀노소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간편함 때문에 최근들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석궁은 국궁이나 양궁보다 명중률이 높아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데 그만이며 사격이나 활쏘기의 장점을 갖춰 집중력과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는데도 좋다.또 엽총이나 공기총과는 달리 법적규제가 없어 소지가 자유로운 것도 장점.일부에서는 법적규제의 미비로 석궁이 흉기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으나 우리나라의 총기 사고율이 극히 적은것을 감안한다면 크게 우려할 것은 없다는 시각이다. 석궁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가까운 실내 석궁장에 찾아가서 자신의 관심도와 석궁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필수적이다.석궁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생기고 쏘는 실력이 늘면 대한석궁동우회등에 문의해 자신에 알맞는 레저용 석궁을 할인기간중에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쏘는 방법은 사격요령과 거의 동일하며 거리에 따라 달리 조준하여야 한다.현은 좌우로 삐뚤지 않도록 개머리판 양옆에 양손가락을 붙여 정확히 당기며 방아쇠를 당길때는 화살이 레일에서 완전히 벗어날때까지 가늠자에서 눈을 떼지 말고 목표물을 주시해야 한다.한적한 야외에서 과녁판을 가지고 가서 연습하는 것도 괜찮고 수렵3종면허를 얻고 허가지역으로 사냥을 하는것도 좋다.그러나 파괴력이 크므로 항상 안전에 주의하고 특히 공중사격은 화살이 낙하시 매우 위험하므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사냥할때에도 앞이 탁 트인 곳에서는 화살의 낙하지점을 잘 알수 없으므로 가급적이면 사격을 삼간다. 현재 석궁계는 동호인이 2만명에 이르고 석궁경기의 올림픽 정식종목선택을 겨냥하고 있으나 비약적인 성장의 이면에 문제점 또한 지니고 있다.우선 석궁을 제대로 즐길만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단조로움 때문에 석궁의 참맛을 느끼기엔 역부족인 실내석궁장의 석궁 보급및 상업적 목적의 개설 외에도 석궁소지인이 석궁을 제대로 즐길수 있도록 골프처럼 필드를 한바퀴 돌면서 하는 컨트리 크로스보우 경기장 건설 등이 석궁계 전체나 협회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할것이다. 이와함께 현재 턱없이 높은 석궁의 가격을 적정하게 낮춰야 할것이다.현재 석궁동호인들이 중심이되어 수입하는 석궁의 시판가격은 30만∼1백50만원선으로 수입가격의 5배가 넘는다.세금과 광고료,회원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관계자의 말을 감안한다 해도 과다한 영리상의 이득을 겨냥하고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긴 힘들다.
  • 후세인의 도발은 고도의 전략행위(해외사설)

    사담 후세인이 저지른 것은 미친짓인가 전략전인가.걸프전쟁 2주년을 앞두고 1991년1월에 일어났던 똑같은 문제에 대한 응수도 그때와 똑같다.즉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다. 한달전부터 거듭되어 온 이라크 독재자의 도발은 조지 부시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큰 이유다.바그다드에서 볼 때 부시의 선거 패배는 신의 심판이 었다.사담 후세인은 임기말의 부시가 반격할 힘이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에 쿠웨이트를 빼앗아간 인물을 모욕하는 즐거움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정치적 계산과 개인적 감정을 구분하지 않는 그는 결코 속죄하는 일이 없으며 오로지 복수에 몰두했다. 사담 후세인은 광신자인 듯하다.그는 자신을 마호메트의 직계로 만든 가승을 공표했고 걸프전쟁 동안에는 꿈에 마호메트가 나타났다고 발표했다.그는 자신을 같은 고향 출신으로 십자군 전쟁때의 영웅이던 살라딘과 동일시했다.그는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로니아 왕이며 위대한 정복자인 나부쇼도노소르의 후계자로 자처했다.이 왕이 후세인의 손을 잡은 모습을 보이는 거대한 그림이 바그다드 성벽들에 있다. 지난 몇주의 사태 진전에 대해 설명하자면 길어진다.우선,대외적인 동기가 있다.사담 후세인은 조지 부시를 벌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빌 클린턴을 시험하려고 했을 것이다.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이라크 언론들은 미국의 새대통령을 줄곧 헐뜯어 왔다.임박한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을 바그다드­워싱턴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본 것이었다. 친미 아랍 세력들이 군대 파견을 내켜하지 않는 상황도 이라크에는 좋은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특히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정부는 서방측의 군사 보복이 무엇보다도 결과적으로 회교 교조주의자들을 고무하게 될것을 겁내고 있다.오늘날 진실로 위협적인 존재는 이란이기 때문이다. 내부적 동기는 다음과 같다.사담 후세인은 외적의 힘입이라는 유령을 흔들어 군을 장악하고 있다.그는 군의 전선을 외적 쪽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과녁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는 경제 제재로 점점 고통이 심해지는 국민들에게 그 책임이 자신에 있지 않고 아랍 세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이라크를 해치는 서방의 악마에게 있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그는 미국이 새로운 전쟁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므로 자신을 뒤엎지 못할 것은 뻔하고 단순한 보복 폭격 정도라면 자신의 권력을 더 튼튼히 해준다는 역설적 결과를 계산했다.이라크 국민의 저주 대상은 그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이 되니까. 사담 후세인에게 딱 맞는 앵글로색슨의 속담이 있다.『그는 미쳤지만 여우같다』
  • 동구민주화의 공신 「자유라디오」(특파원코너)

    ◎폐쇄된 구소 등 공산주의국가에 「자유의 실상」 전해/억류 고르비도 이 방송듣고 정세판단/동구붕괴에 이젠 중·북한으로 눈돌려 동구 붕괴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사회주의 국민들이 자유세계의 실상을 몰랐다면 지금도 그들 사회가 지상 낙원이라고 믿어 불가능했으리라는 분석이다.그런 의미에서 독일 뮌헨에서 공산주의국가에 지구촌 소식을 전해온 「라디오 자유유럽」과 「라디오 자유」두 방송국은 동구민주화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두 방송국은 동서대결이 해소된 이후에 그 대상이 사라져 이제 마지막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북한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두 방송국이 지난 40년간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방향전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극동지역국의 방송국 명칭은 「라디오 자유아시아」이며 방송국 소재지로는 대만과 하와이,캘리포니아중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방송운영책임자인 윌리엄 마슈국장은 최근 『이제 동구에서 전체주의와 독재·억압·검열등이 사라져 과거와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며 『당초의 방송국 설립목적을 살리기 위해 극동지역 대상 방송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두방송은 세계대전후 동서냉전의 산물로 51년 미중앙정보부가 동구에 자유의 전파십자군을 보내려는 목적에서 공개적으로 설립,운영하다 71년 미국과 독일정부가 운영을 인계했다.현재 1천7백명의 직원이 23개국어로 방송을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가 독립하기 직전 당시 메리외무장관은 『자유방송이 없었더라면 발트3국 민주회복과 동구 민주혁명은 불가능 했을것』이라며 91년 노벨평화상 대상으로 두 방송을 추천했었다.미로스라프 프라하대주교도 체코민주화후 뮌헨 슈테판성당서 감사미사를 올리며 『자유의 목소리는 철의 장막을 거두었다』고 두 방송의 공헌을 치하했다. 소련 비밀경찰(KGB)은 이 방송의 청취를 방해하기 위해 같은 단파로 역방송을 하기도 했으며 81년에는 방송국에 폭탄을 장치,방송요원 8명이 부상하기도 했다.KGB책임자인 오레그 카루진장군은 후에 『사람을 살상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단지 독일정부에 충격을 주려고 했던것』이라고 회고했다. 고르바초프전소련대통령도 집권초기에는 미국과 독일에 심리전 방송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으나 지난해 여름 불발 쿠데타로 크림지역서 억류돼 있을때 자유라디오 방송을 청취,정세를 알고 모스크바로 돌아가게 됐다고 실토했었다.그뒤 옐친러시아대통령은 이 방송국 모스크바지국 설치를 승인했다. 소련이 방송대상인 자유라디오와 동구가 대상인 라디오 자유유럽은 이제 부쿠레슈티에서 바르샤바·키예프에 이르기까지 동구의 주요한 도시마다 지국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최근 국제정세가 변했고 연 2억달러가 드는 이 방송국 재정지원을 조만간 중단할 방침이다.이에따라 방송국측은 서구기업중에서 스폰서를 구해 계속 전파를 보내기로 했으며 현재 미국 IBM사와 독일 폴크스바겐사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 수단내전 10년… 전쟁고아 10만 육박

    ◎정부군의 「반군사냥」에 부모 희생/밀림서 헤매다 맹수밥되기 일쑤/국제 원조도 정부서 도중차단… 아사자 급증 「이동중 강물에 휩쓸려 희생되기도 하고,맹수의 사냥감이 되기도 하며,매일같이 먹이를 찾아 숲과 들판을 누비는 일단의 무리」 이것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슴이나 얼룩말 이야기가 아니다.바로 지금 이순간 동부아프리카 수단의 전쟁고아들이 전쟁과 가뭄,국제사회의 외면속에서 연명을 위해 하루하루 겪고 있는 실제 생활상이다. 집권 회교도아랍인들과 기독교도 흑인들사이의 10년가까운 내전으로 1백만명 이상이 사망한 수단은 현재 곳곳이 전쟁고아들로 들끓고 있다. 어림잡아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거의 전부가 5살에서 15살 사이의 흑인남자어린이들.어른들의 전쟁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한 또다른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이들의 참혹상은 가히 「성전」이라는 미명하에 전쟁터로 내몰렸던 13세기 소년십자군단을 능가한다. 83년 내전발발이후 수단정부군과 회교민병대는 반군토벌을 앞세워 남부 흑인마을들에 대한 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이때 학살표적인 어른들과 도망엄두를 못내는 여자아이들은 거의 살해되거나 납치되지만 사내아이들은 뿔뿔이 인근숲속으로 도망친다.이곳에서 하나둘 모여 무리를 지은 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같은 운명의 다른 마을 또래들과 합류,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천명까지 유랑군단을 형성한다. 이들의 목적지는 「절망의 소년공화국」「저주받은 유치원」등으로 불리는 전쟁고아 집단수용소.그곳에는 먹을 것과 의약품,학교와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철부지들의 고난의 장정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수용소를 구경도 하기전에 목숨을 잃는다.독초를 잘못 먹거나 강물을 건너다 물살에 휩쓸려 희생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며 곳곳에서 사자,하이에나,악어에게 생명을 빼앗긴다.이곳에 흔한 익지않은 망고열매를 따먹고 장을 손상당한 많은 아이들은 사소한 질병이나 상처에도 쉽게 목숨을 잃고 있다.그뿐아니라 더러는 숲속에서 반군이나 회교민병대에 의해 살해되기까지 한다.그러나 이처럼 죽을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수용소에 도착해봐야 맹수의 습격만 없을뿐 먹을 것과 쉴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목격되는 것이라고는 같은 처지의 경쟁자들과 이곳에서 사망한 어린이들의 무덤뿐이다.그나마 전선의 확대로 수용소가 폐쇄되면 또다시 들판과 숲으로 나가 유랑을 계속해야만 한다. 현재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남부지역일대에 임시가설한 수용소에 수용돼있는 고아들의 수는 약5만명.이보다 많은 고아들은 지금도 주린 배를 채우기위해 들녘을 헤매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을 도와줄 손길은 어디에도 없다.수도 카르툼의 정부와 회교민병대는 이들을 잠재적 반군으로 인식,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물론 호시탐탐 제거를 노리고 있다.같은 집단인 반군측도 당장 눈앞의 전투에 급급,전투력이 없는 이들을 성가시기만 한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한때 구호품을 보내주고 관심을 보였던 국제구호단체나 서방국들마저 걸프사태당시 수단정부의 이라크지지를 기점으로 등을 돌려버렸다.설사 구호품을 보내주어도 이제는 정부군이 반군수중에 들어간다며 압수하고 있다. 이같이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도처에서 목숨을 앗아가는 최악의 생존조건속에서 이들은 삶을 방어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즉 자신들의 협력에 의지해 이 형벌의 시대를 나고 있다.그러나 수단의 내전이 끝날 조짐은 아직껏 보이지 않고 있다. 수용소근처에 살고있는 한 가톨릭성직자는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허기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런 것은 없다』는 말로 이들의 비참한 운명과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몰인정의 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 이젠 카다피의 선택만 남았다(해외사설)

    유엔안보리의 대리비아 제재조치는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문제에 유엔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행동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실효성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현재로서는 유엔의 조치가 제한적인만큼 테러를 지원하거나 음모하는 국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처음부터 카다피를 막다른 골목에 가두어 두손들도록 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만약 카다피가 유엔의 의도를 간과해 고집스럽게 버틴다면 석유금수조치 등 다음 단계의 제재조치가 뒤따를것은 분명하며 카다피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유엔의 조치는 리비아가,그리고 그 추종자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이슬람에 대한 십자군 원정」이나 「서구진영의 유엔안보리 도구화」가 아니며 2백70명의 무고한 항공기승객을 학살한데 대한 인류 양심의 징벌이 순수하게 담겨져 있다. 카다피가 외국의 군사공격을 받게되면 자신의 편에 서리라고 믿고 있는 아랍연맹도 물론 카다피의 혐의를 수긍하고 있으며 유엔의 참뜻을 이해하고 있다. 아랍권에서 인식되는 「단결」이란 보통 이성적인 목적이 담겨 있다기 보다는 외세침략에 대한 감정적인 연대 의식이며 현실적인 의미보다는 인종적인 유대감이 강하다.그러나 이번 리비아문제에 있어서만은 카다피의 「형제」들도 아랍권의 단결보다는 유엔의 조치를 이해하고 제재조치에 동참하고 있다. 더욱이 유엔의 조치를 실행에 옮긴 갈리 유엔 사무총장도 이집트의 유능한 외교관 출신의 아랍인이며 갈리 총장은 취임이래 인류공동사회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리비아문제에 있어서도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것이 돋보인다. 유엔과 갈리 사무총장의 이성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카디피는 잘못 판단해서는 안되며 유엔이 다음 조치를 취하기전에 리비아는 여객기 폭파범을 국제기구에서 재판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엔이 결국은 그의 목적을 실현해 국제사회의 정의를 보여줄 것을 확실하니까 말이다.
  • 「안보리제재」 나흘째 기류/리비아사태 “풀리는가 꼬이는가”

    ◎「범인 자발적 인도」 진의 불명/미,“강공땐 아랍권 자극” 우려/“제재효과 나타날까”… 서방등 「국익점치기」 분주 리비아가 17일 문제의 팬암기 폭파용의자 2명의 인도 가능성을 흘리고 나서 앞으로의 사태진전과 관련,관심을 모으고 있다. 용의자들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리비아인 이브라힘 래그웰변호사가 밝힌 용의자 인도 조건은 「공정한 재판에 대한 보장」.따라서 이러한 조건만 충족되면 용의자들은 미국이나 영국 법정에 출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비추고있다.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제안이 과연 리비아 정부의 의사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리비아는 그동안에도 「인도」또는 「인도불가」를 거침없이 번복해왔을 뿐더러 이번에도 변호사를 중계로한 용의자들 자신의 의사라는 점에서 신뢰성을 부여하기가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구속장소의 명시▲정보기관원 배재▲변호인 접견허용▲기소죄목명시▲언론의 왜곡보도 시정 등의 보장과 함께 배심원제 법정보다는 판사들이 심리하는 법정을 원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용의자들의 미국이나 영국행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서방의 제재실행에 강경일변도로 맞서온 리비아자세로 봐서는 일단 한걸음 물러서는 제스처로 볼 수 있다.전문가들은 그동안 유엔의 제재실행으로 가뜩이나 「서방 제국주의에의 굴복」인상을 꺼리고 있는 리비아가 용의자인도 명분을 상실하고 미국등 서방도 사태의 조속해결을 위한 뾰족한 방책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점쳐왔다.즉 제재개시를 계기로 이 사태는 양당사자간 용의자의 단순인도 차원을 넘어섰다고 판단,리비아의 버티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수 있을지,그리고 서방이 이 사태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왔다. 현재의 실력대결 상태가 서방과 리비아 어느쪽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는 아직은 분명치 않다.제재가 발효된지 4일째를 맞기까지 미국등이 기대했던 제재효과는 표면상으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있다.리비아는 제재가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던 그들의 호언장담대로 평온상태를 유지하고있고 오히려 미국의 눈치를 보아가며조바심하고있는 것은 대리비아 국익챙기기에 급급한 주변 아랍국들과 일부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이다.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이 리비아를 팬암기사건 범인국가로 지목한 정치적 의도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미국입장에서 사태장기화에 따라 져야하는 또다른 부담이다. 그렇다고 미국등이 추가 강경수단을 구사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아직은 크다.국제적인 명분이나 사전공감대가 확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강경수단은 자칫 이 사태가 「서방의 아랍 전체를 상대로 한 신십자군전쟁」이라는 리비아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아랍및 이슬람국가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없지않다. 리비아의 입장에서는 사태의 장기화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당장은 제재의 효과가 미미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리비아의 경제를 피폐상태로 몰고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제재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뒤에 군사공격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리비아를 짓누르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인도용의」를 밝힌 리비아와 「공정재판을 보장하겠다」는 미국측의 완화된 태도는 조기해결 가능성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그리고 사태해결이 외부환경에 크게 좌우되는 이 사건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리비아제재」 이후 현지표정/외국인들,출국로찾기에 부산

    ◎시가는 평온… 국제석유시장 초긴장 ○…유엔 안보이의 대리비아 제재가 발효된 15일 하루 동안 리비아인들은 대부분 정상 출근했으며 수도 트리폴리에서는 택시들이 거리를 오가고 시민들은 쇼핑을 하거나 신문을 사보는 등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유지. 리비아인들은 유엔의 항공 봉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수입이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인듯 크게 우려하지 않는 모습들. ○…리비아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트리폴리 시민들을 대피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부분이 아시아계인 외국인 약1백만명은 리비아에 남기로 결정해 대조. 아드자비아 근처의 파나마 정유회사에서 일하는 한 미국인은 자신을 포함한 50여명의 미국인 동료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남아 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외국인들은 리비아를 빠져나가기 위해 트리폴리 국제공항에 아침부터 속속 도착,분주히 출국로를 모색하기도. ○…리비아는 인근 아랍국과의 항공로가 차단되자 몰타와 리비아간을 오가는 페리호 운항을 기존의 주1회에서 주5회로 늘리기로 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 ○…아랍세계들은 언론을 필두로 유엔의 대리비아 제재조치가 『전체 아랍을 굴복시키려는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라면서 강경 어조로 비난했으나 아랍 정부들은 대체로 유엔의 제재조치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대조. 특히 이라크는 아랍 세계가 단결해 유엔의 조치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스스로 유엔의 제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별다른 호응은 얻지 못한 듯. ○…세계의 유가는 리비아산 원유에 대해 유엔의 금수조치 가능성이 논의되고 이라크산 석유의 제한 수출이 재개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도는 가운데 15일 강보합세를 나타냈다. 국제적 석유거래의 기준유종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이날 런던 선물시장에서 5월인도분이 14일보다 배럴당 10센트가 오른 18·69달러에 계약되었으며 뉴욕 상품거래소에서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5월 인도분이 전날보다 배럴당 6센트 오른 19·92달러에 매매되었다.
  • 외언내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계에서는 이세상이 언제쯤 끝날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지구의 종말을 날짜까지 예언한 선지자들(?)이 계속 출현했다.이른바 시한부 종말론.2세기중반 초대교회때의 몬티누스가 시한부종말론의 선두주자이고 12세기의 요아힘피오레,16세기의 재세례파,19세기의 윌리엄 밀러,20세기의 찰스 다이어등이 그뒤를 이었다.◆시한부종말론은 초대교회때의 기독교박해,십자군원정,세계대전등 당시의 긴박하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대변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1950년,1975년등 몇차례에 걸쳐 소동을 일으켰다.그러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종말론」은 성서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예수 그리스도는 종말의 시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그날과 그때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태복음 24장36절).따라서 종말의 시기는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다.그런데도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예언한다는 것은 반성서적이다.◆종말론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의 하나이지만 시한부 종말론은 교리의 범위를 벗어난 이단의 사설이란것이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또 종말론은 하나님의 심판 보다는 「항상 깨어있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보다 큰뜻을 두고있다.성서의 가르침은 거의가 비유로 되어 있는데 종말론도 비유를 통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그런데 최근 우리사회에 또다시 시한부 종말론이 극성을 떨고있다.『92년10월28일 예수가 재림하시고 이때 휴거(휴거·공중에 들리어 올라감)의 영광을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고 외치는 일부 선교회 회원들.사람이 많이 모이는 역주변이나 도심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참으로 민망스러운 세태의 한단면.신앙의 자유도 좋지만 이런일은 반사회적인 행위로 규제되어야 한다.
  • “중재의 명수” 케야르 총장/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드디어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이 미ㆍ이라크싸움 중재에 나설 모양이다. 유엔안보리가 25일 대 이라크 경제제재를 위한 무력사용을 승인한 직후 케야르 사무총장이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에게 한 회담제의를 이라크가 수락함으로써 페만사태의 평화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첫 대좌가 오는 30일 이뤄지게 된 것. 지난 82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후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케야르는 분쟁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하는 「현장중재」에 능한 직업 외교관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 70세의 페루출신인 그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업적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란ㆍ이라크전의 마무리,앙골라 내전종식,소련군의 아프간 철군 실현 등은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법에 정통,분쟁 당사국의 협상대표들을 논리정연한 이론으로 설득시켜온 그는 또 제3세계 출신이라는 이점을 지녀 운신의 폭도 넓은 편이다. 일부 외신은 이번 페만사태의 도발자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아랍주의 깃발을 내걸고 외세추방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번 페만사태를 계기로 아랍권이 친이라크ㆍ반이라크ㆍ중도입장 등 자국의 이해에 따라 편이 갈리고 있는데다 거의 모든 나라가 이라크에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코너에 몰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미국과의 싸움을 말려주기를 내심은 원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중재자의 출현을 기다려온 것은 부시 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부시 대통령이 무력으로 쿠웨이트를 강점ㆍ합병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사우디파병을 결정했을 때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줬던 미국국민들 사이에서도 지난주부터 『미국이 십자군이 될 필요가 없다』는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 또 페만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중될 전비부담은 국민들의 대정부불만으로 증폭될게 뻔해 오는 가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에겐 큰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과 이라크,두 당사자만이 아니라 세계가 전쟁을 바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터질 수 있다는게 역사의 교훈이다. 때문에 「분쟁의 소방수」 케야르 총장의 이번 미ㆍ이라크 싸움 말리기에 거는 세계의 기대는 자못 크다.
  • “미국은 십자군이 될 필요없다”/미 보수파,페만개입에“볼멘소리”

    ◎“국익이 우선… 이상주의적 모험은 곤란/분쟁해결에 전세계의 공동대응 마땅” 미국내에서 수주전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도를 나타냈던 부시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대해 불평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미국의 외국사태 개입에 대해 새삼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는 보수파들이 이러한 불평에 앞장서고 있어 시선을 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보도했다. 현재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은 좌우 양파에서 다같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의원들의 경우는 보수파라도 위기의 시기엔 대통령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 미유엔대사 커크 패트릭이나 컬럼니스트 패트릭 부캐넌과 같이 보수파 견해를 선도해온 정책연구가와 논평가들은 거리낌없이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대 중동 군사개입이 장기화되면 부시 대통령도 결국 그의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에서 거센 비판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이다. 좌파들의 비판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전 법무장관 렘지 클라크를 비롯한 소수의 재향군인들은 「중동개입정책 반대연합」을 결성했다. 중도좌파의 생각을 대변하는 잡지인 「네이션」은 24일자 사설에서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잡지는 부시의 대응책을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개입」이라고 지칭하면서 「시작은 요란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는 헐리우드의 대작 영화」에 비유했다. 미국의 개입정책에 대해 전통적으로 비판해온 일부 의원들은 『왜 미국은 항상 그런 일을 저질러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면서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근년의 미국 정치에서 대외개입에 대한 좌파의 비난은 단골 메뉴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좌파가 중동사태에 대해 비교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파가 부시의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정책에 대한 보수파들의 볼멘소리는 소련의 위협이 감소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한 대토론회에서 나왔다. 이 보수파 토론회의 근저에 깔려 있던것은 「보수파들은 소극적인 국제주의자」라는 사실이라고 헤리티지 재다의 버튼 파인스 부소장은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우파들은 진보주의자들과 더불어 미국의 세계문제 개입과 군비증강 비판에 앞장섰다.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이 공산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공의 임무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졌다. 공산주의가 죽자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세계적 역할은 실제적인 국가이익에 바탕을 두어야지 대외 재난을 초래할지 모르는 고상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파에 대한 비판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고립주의,즉 반개입주의로 회귀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레이건 백악관에 재직했던 컬럼니스트 부캐넌은 『말과 공약이 너무 앞서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라크로 하여금 쿠웨이트를 토해 내게 하는 것이 미 지상군의 사용을 고려할 만큼 미국의 중요한 이해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CSIS(전략국제연구센터)의 대외정책 전문가 에드워드 러트와크의 비판은 강도가 더하다. 그는 『미국인들이 그곳에 가서 목숨을 바쳐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오일 때문이라면 유럽 일본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알바니아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반동적이며 절대군주 정권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켜야할 정치적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잡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의 편집자인 보수주의자 톰 베텔은 『쿠웨이트의 오일이 아랍 전통의상을 걸친 몇몇 토후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독재자의 장악 아래 들어갔다고 해서 왜 미국인들이 분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시 정책에 비판적인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또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아랍 세계와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지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대외개입에 통상적으로 반대해온 진보파들은 대부분 강력한 친이스라엘주의자들이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험한 적인 이라크에 타격을 주는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친이스라엘파 가운데도 커크패트릭 여사 같은 사람은 부시의 개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페르시아만에서 갖고 있는 미국의 이해가 단독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과 광범위하게 나눠 갖고 있는 국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이들 나라들로부터 실질적인 기여를 끌어내 사태해결의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컬럼니스트 폴 지고트는 보수주의자들이 부시의 페르시아만 사태 개입 명분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보수주의자로서의 부시에 대한 회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만일 레이건이 이번과 같은 개입정책을 단행했다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부시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 이라크 강경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인 잡지 내셔날 리뷰의 편집자 존설리반은 『앞으로 부시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가 대외 개입문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진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이번페르시아만 사태가 서방측의 승리로 끝날 경우 신고립주의 성향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아메리카의 새진로」/포린 어페어즈지 진단

    미국은 냉전체제의 종식에 발맞춰 종래의 대외 전면개입 위주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국내목표와 국제목표,현실과 이상사이에 조화를 갖춘 새로운 외교정책으로의 변화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90년 봄호에 실린 이 잡지의 편집장 윌리엄 G 하일랜드의 「미국의 새 진로」란 논문내용을 간추린다.〈편집자주〉 ◎「냉전의 틀」탈피 미외교 새좌표 선택 고심/이념ㆍ안보 퇴색… 경제문제 주요이슈로 부상/극단적인 고립주의ㆍ범세계적 십자군역 모두 배제해야/“자원한계”인식,현실에 맞는 정책도입 필요 2차대전 이후 지속돼 오던 냉전체제의 변화에 따라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의 대폭 감축을 추구하는등 대소 견제와 대외전면 개입을 근간으로 했던 지난 40여년간의 미외교정책에 새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 새 외교정책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미국의 막강한 힘과 풍부한 자원을 어떤 목표를 위해 쓸 것인가,새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둘 것이며 이를 위해 어떤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 될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전면 개입을 위주로 한 미 외교정책은 동서 양극의 냉전체제 지속과 동측으로부터 제기되는 위협에 대처할 필요성에 따라 당연시됐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이 새로운 세력권으로 부상함으로써 미소 두 초강대국은 더이상 국제정치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기 어렵게 됐으며 또 동구 공산주의의 붕괴와 소련의 약화에 따라 동서 분단의 근본배경이 뒤흔들림으로써 냉전체제 자체가 무너지게 됐다. ○환경ㆍ테러에 큰비중 그리고 지정학적 요소와 군사적 대비태세를 중시했던 냉전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앞으로는 이념이나 군사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경제적 요소가 주요문제로 부상하는 한편 환경이나 테러와 같은 문제들의 중요성이 커지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이 아직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해도 이젠 과거와 같이 모든 일에 미국이 나서기에는 미국의 자원이 제한돼 있음을 미국은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과거 여러 형태의 반공산 동맹을 결속시켜 주던 위협이 점차 사라지고 보다 경쟁적으로 변모해 가는 세계에서 미국은 이제 제한된 자원만으로 보다 정상적(normal)인 외교정책을 펴나가는게 필요하다. 즉 외교정책이 추구하는 국제적인 목표와 점점 더 시급해져 가는 국내정책상의 목표 사이에 경중을 좀더 신중하게 가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소위 「평화배당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이같은 국내정책과 외교정책간에 빚어질 갈등의 전조가 되고 있다. ○내ㆍ외정책 신중하게 냉전시대에는 국가안보가 모든 것에 우선했지만 이제 그 우선여부의 선택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거세지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인데 방위비 분담 문제는 앞으로 미외교정책에 있어 중요사안이 될게 틀림없다. 그러면 힘의 균형와 경제안보,인권보장과 자유민주체제의 수호 등 여러 목표들 가운데 미국은 어떤 원칙아래 부담을 떠맡을 것인가. 미 역사에 있어 인권이나 민주와 같은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와 지정학적 필요 사이에는 언제나 갈등이 존재했지만 냉전시대에는 인권이나 민주체제가 현실정치에 밀려 뒷전에 처져있어야 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무너지는 것과 함께 목표와 현실간에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이는 동구에서의 공산주의 몰락,니카라과 선거에서의 차모로의 승리,중국의 천안문사태 등을 놓고 벌어지는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게 어떤 정책 때문인지,또 목표와 현실사이의 적절한 균형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쟁을 보면 잘 드러나고 있다. 동구의 대변혁과 니카라과 선거에 대한 한쪽의 입장은 대소 견제와 전면개입의 미 외교정책이 이같은 결과를 가져온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따라서 아직 그 고삐를 늦춰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쪽에선 자유와 인권을 향한 인간의 물리칠 수 없는 욕구 자체가 동구와 니카라과의 현상황을 가져온 것이지 미국의 외교정책이 그같은 결과를 부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천안문사건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록 야만적 인권탄압이긴 해도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선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너무 중요하다는 주장과 미국의 대중국 관계를 중국의 인권존중 여부에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지금 외교정책을 재조정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즉 국가안보와 지정학적 필요라는 이제까지의 우선순위를 인권과 민주체제라는 도덕적 가치로 대체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며 민주라는 이름아래 외국에서의 반란등을 지원하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는 지정학적 필요란 현실이 인권이란 이상에 밀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미 외교정책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 해도 외교정책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항상 도덕적 가치의 추구에 있는 것인 만큼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경제정책과 국가안보사이에 마찰이 빚어지면 항상 안보를 위해 경제가 희생돼야 했다. 그 결과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국의 경제상태는 위험에 처하게 됐다. 미국경제의 위험한 상태가 어느정도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현세계를 움직이는 주도적 힘은 군사력이나 정치이념이 아니라 바로 경제력이며 미국은 그 경제력에 있어 이제 주도권을 잃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선 미국경제가 재건돼야 한다는데는 의견이 일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경제를 어떻게 재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 처방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재건 우선 과제 미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선 소위 쌍둥이 적자라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감축이 관건이 된다. 그러나 재정적자의 경우 군사전략과의 마찰로 인해 적자삭감 노력이 지지 부진하며 무역적자의 경우도 대미 최대 무역흑자국인 일본과의 무역 마찰이 미일 동맹관계에 균열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미 경제의 재건을 위해서도 먼저 냉전이후 시대의 장ㆍ단기적인 대미 위협에 대한 현실적 평가와 미 외교정책에 있어서 대일 의존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반영한 새로운 정책이 도입돼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막대한 외채문제,미국의 외국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 증가 등도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같은 모든 것들이 합쳐져 미국은 결국 과거와 같은 많은 역할을 떠맡기엔 미국의 자원이 너무 제한돼 있으며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외교 및 방위정책을 재조정해야 함을 재확인하게 된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ㆍ경제ㆍ군사적 행동은 소련과의 대결 양상이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것이란 전제아래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미군의 대규모 해외주둔도 그 지역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이름아래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감에 따라 미국은 한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을 재조정하는데 있어 미국이 해외주둔군을 감축시키거나 대외 공약의 이행을 축소시켜 나갈 때 그로 인해 그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에 처하지는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명쾌한 대답을 내려줄 원칙은 있을 수 없다. 독일 통일을 예로 들더라도 미국은 통일독일이 유럽의 균형을 깨는 것을 막기 위해 통일독일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은 견제해야 할 필요성과 소련이 또다시 유럽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등장하는데 대비,통일독일이 상당한 강대국이 될 필요성이란 두가지 상충되는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요즘과 같은 화해의 시대에 이처럼 미묘한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정책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독일문제등 딜레머 지금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난 50년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 직후 트루먼대통령이 승인했던 것과 비슷한 새 외교정책일 것이다. 트루먼은 다양한 단계의 봉쇄를 상정해 놓고 여러 기준의 정책을 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정책을 승인했던 것이다. 미국의 새 외교정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할 점은 결코 극단적인 고립주의나 무차별적인 세계적 개입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정리=유세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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