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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여성시대] (9)법조인

    미국 스탠퍼드 법대 ‘미 여성 법조사(史)프로젝트팀’이 최근 내놓은 연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에 특별히 많은 란을 할애하고 있다. 일류 변호사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백악관 입성,재닛 르노의 미 최초 여성 법무장관 입각,여성 및 소수민족 권리향상에 진력해온 미 법조계의진보주의 여판사 루스 긴스버거의 대법관 임명 등등….지난 1870년 미 최초의 여성 판사가 탄생한지 120여년 만에 여성 법조인들의 고위직 진출이 러시를 이루는 현상에 대해 미 사회가 부여하는 의미는 남달랐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호주,영국,캐나다에서 활동한 여성법조인들의 전기에는 변호사·판사 등 법조계내 직종과 함께 여성참정권자,인권운동가 라는 명함이 함께 따라 붙는다.20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성법조인들도 마찬가지다. 미 일리노이주의 경우 1873∼1901년 사이 100여명의 여성 법조인이 활동했다.이들의 노력으로 청소년 법정이 생겨났고 여성의 권리와 직조공장에서의여성및 아동 노동의 권리가최초로 주창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국경을 넘어선다.특히 선진국과 개도국간 여성법조인들의 교류로 아프리카 등 개도국의 여성권리및 인권을 신장시키는 역할을 주도하고있다.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을 망라,56개국 3500여명 회원으로 구성된 국제여성 판사협회(IAWJ)와 국제여성법조인 연맹(FIDA)등이 대표적이다.그리고 여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이슬람권 여성들의 인권향상을 목적으로설립된 카마라흐(KAMARAH·이슬람 여성 법조인 협회)도 유명하다. 우리시대 법조경력과 사회활동을 자신의 삶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람은세계 여성운동계의 ‘대모’ 벨라 압죽(98년 사망·미국)여사.변호사 출신으로 하원의원을 거쳐 세계 여성환경개발기구(WEDO)회장으로 일했다.여성운동사의 굵직한 매듭을 맺어온 인물이다. 90년대 들어 두드러진 특징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범죄척결에 여성 법조인들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국제 유고 전범재판소(ICTY)의 전현직 수석검사가 모두 여성이다.르완다 전범 기소와 유고문제를 병행한캐나다 출신의 루이스 아버(52),지난해 그 후임으로 수석검사에 오른 스위스의 칼라 델 폰테(52)등이다.이들은 수십명의 남성 검사들을 거느리며 거침없는 수사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재판소 부소장인 플로렌스 뭄바(51)도 잠비아 여성법조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몇몇 개도국 여성 법조인들의 고위직 진출도 특징적이다.지난달 4일 캐나다는 캐나다 사상 처음으로 베벌리 맥래클린(56)을대법원장에 임명했다.유고전범 재판소의 루이스 아버 전 수석 검사는 대법관으로 활동중이다. 최근 중국과의 세계 무역기구(WTO)협상을 타결시킨 주역인 미 무역통상대표부(USTR)의 샬린 바셰프스키 대표도 변호사 출신이다.워싱턴 카톨릭 법대를졸업,스탭포&존슨 로 펌에서 국제무역정책 관련 법으로 명성을 닦은 뒤 96년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다. 지난 81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 사법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에 임명된샌드라 오커너(69)도 미 여성법조사에 획을 긋는 인물이다.또 그녀의 출신주인 아리조나주에선 제닛 나폴리타노가 올해초검찰총장에 선출돼 제인 헐 주지사 등과 함께 여성파워를 주도하고 있다. 오커너에 이어 두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긴스버그는 내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후임으로도 거론되고 있다.미국과 영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법조인이라는 사실도 이채롭다.예일법대 출신인 힐러리는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는 12년동안에도 변호사로 활동했다.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인 체리 부스(45)도 변호사다. 국제무대에서의 여성법조인들의 헌신 및 연대활동,고위직 진출은 21세기에도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는 여성 율사(律士)들의 눈부신 활약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적 법조인으로 인정받는 이곳에서 여성들은 남성을 능가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우먼파워’를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난 8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ICTY 소장(수석검사)으로 지명,1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로 임명이 결정된 스위스 출신의 율사 칼라 델 폰테(52). 85년 스위스 지방검사 시절,이탈리아 마피아단의 범죄를 파고들어 명성을날린 폰테는 94년 스위스 최초의 여성 연방검사로 발탁된 뒤 유럽 조직폭력범죄와 마약밀매,불법무기거래 등을 파헤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최근엔 라울 살리나스 전 콜롬비아 대통령의 동생을 돈세탁혐의로 조사하고 러시아 조직범죄를 조사하는 등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거침없고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 덕분에 ‘십자군 전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판사들이 대부분이었던 역대 소장과는 달리 검사 출신으로서 전범 수사 및 재판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유고전범과 관련,전범재판소에 기소된 사건은 65건 30여명으로 모두 ‘인종청소’ 혐의로 구금돼있다. 폰테의 전임자였던 루이스 아버(52)도 캐나다 출신의 법조인.96년 10월부터 3년간 수사팀을 이끌면서 현직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을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고,보스니아 내전당시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유고연방군 총사령관 등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인류성을 말살한 무자비한 전범 용의자에 대해서는 어떤 자비도,사면도 있을 수 없다”는게 그녀의 확고한 소신이다. 몬트리올 출생인 아버는 민권과 형법 전문가로,요크대에서 법학을 가르치다 87년 온타리오주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다.인권운동에서도 이름을 날려 캐나다 민권자유연합 부의장을 거친 그녀는 현재 캐나다 대법관으로 복귀,명성을 날리고 있다. 전범재판소에서 활약하는 현직 판사로는 잠비아 출신의 플로렌스 뭄바(51)를 꼽을 수 있다.73년 초급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승승장구,24년만인 97년 대법관에 임명되는 등 잠비아 여성법조인으로선 가장 화려한 이력을 지닌 맹렬여성. 그녀는 여성 및 인권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여성평의회 잠비아 대표를 지냈는가 하면 9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조직된 ‘아프리카 인권재판소 설립을 위한 전문가위원회’에 핵심멤버로 참가하기도 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매체비평] 삼류 드라마 닮은 신문 비리사건보도

    요즘 각종 비리사건들이 신문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어쩐지 비리사건에 관한 신문보도는 통속적인 드라마를 많이 닮았다.크게는 거물 정치인에서 작게는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주로 공직자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여기에는 악역과 피해자가 있고,악당은 나중에 들통이 나서 처벌을 받고 하는 식으로 이어진다.그런데 큰 ‘도둑님’이냐,작은 ‘도둑놈’이냐에 따라줄거리가 좀 달라진다. 큰 도둑으로 통하는 정치인들이 연루된 이야기는 고급스런 추리문학에 가깝다.선과 악이 모호하며,항상 의혹투성이의 미제사건으로 끝난다.사건 이름에도 ‘비리’ 따위의 저속한 문자를 쓰지않고,‘총풍(銃風)’이나 ‘세풍(稅風)’처럼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나 ‘로비’ 같은 고급스런 표현을 쓴다. 검찰에 소환되는 용의자들도 카메라 앞에서 하도 당당한지라,도대체 누가 진짜 가해자인지 헷갈린다. 청문회다 뭐다 해서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거물들끼리 지루한 싸움을 벌이고 난 뒤에는 ‘단절된 여야관계를 풀고 정국을 정상화하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종결된다.독자들이 염증을 느낄 때쯤이면,신문은 등장인물 모두가한 통속임을 상기시켜준다. 정권도 바뀌고 잊어먹을 만하면 어제의 악역들은 착한 주인공으로 부활하기도 한다.이때 신문 인물평에는 이렇게 난다.‘업무처리가 빈틈없는 원칙주의자이며,부하들에게 신망이 두텁고…’. 작은 도둑놈 이야기는 줄거리가 좀 다르다.여기선 선악이 아주 뚜렷하다.뇌물을 준 업자,비리 공무원(대개 ‘주사’급이다),경량급 배후인물이 거론된다.사건의 전모는 즉시 밝혀지며,수갑차고 얼굴을 가린 악역들의 사진이 지면을 장식한다.악당들은 처벌받고 정의는 실현되고….어릴 때 읽던 동화와비슷하게 끝난다. 하지만 신문들은 끝까지 진실을 캐기보다는,유혹을 뿌리친 이장덕 계장이나어린 생명을 구한 장한 젊은이 같은 작은 ‘영웅 만들기’에 더 열심이다. 하지만 신문에서는 악당들이 곧 부활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뒷이야기는빼놓는다.처벌은 몇몇 말단들이 ‘직위해제’되는 선에서 끝나며,순진한 독자들은 직위해제를 진짜 ‘목이 달아난’ 것으로 믿는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진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으며,현실에서 정의는 실현되지 않음을 독자들은 안다.법과 권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게 된데에는 언론보도의 책임도 크다. 우리 언론은 날마다 ‘도둑이야기’를 팔아 돈벌이를 하지만,진짜 도둑을 찾아내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과중한 업무나 취재관행 따위를 핑계 삼아,뒷이야기가 미진해도 적당히 눈감고 넘어간다. 이래서는 신문의 앞날도 캄캄하다.서양에서 신문들은 비리를 고발하는 ‘십자군’ 역할을 하면서 기업으로도 성공했다.독자들이 우리 신문들의 삼류 드라마를 외면하게 될 날이 곧 올지 모른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포커스 투데이] 전범재판소 신임소장 칼라 델 폰테

    유고 및 르완다 국제 전범 재판소 새 수석검사(재판소장)에 칼라 델 폰테스위스 연방검사(52)가 결정됐다.15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은 11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추천한 폰테여사를 표결 시작 2분만에 만장일치로 임명을 승인했다.폰테 여사는 오는 9월 15일 새 수석검사로 취임한다. 폰테여사는 지난 94년부터 법무장관격인 스위스 연방검사로 재임해왔다.85년 지방검사 시절,이탈리아 마피아단의 범죄를 파고들어 명성을 날린 폰테여사는 스위스 최초의 여성 연방검사로 발탁된 뒤 유럽 조직폭력 범죄와 마약밀매,불법무기거래등을 파헤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최근엔 라울 살리나스 전 콜롬비아 대통령의 동생을 돈세탁혐의로 조사하고 러시아 조직범죄를 조사,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두려움없는 수사력 덕분에 얻은 별명이 ‘십자군 전사’.유엔과 국제 인권단체등은 폰테여사의 이같은 자질과 첫 검사출신 전범재판소장이란 점에서향후 유고 및 르완다 전범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캐나다 대법원으로 복귀하는 루이스 아버등 전임자들은 모두 판사 출신이었다. 폰테 검사가 해결해야할 과제도 만만찮다.유고전범과 관련,기소된 사건은 65건.30여명이 인종청소혐의로 구금돼 있지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등 정작 주범들은 체포되지 않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신간 10권 등 90권 선보여

    인류사 발전시켜온 중요 인물·사건 정리 1848년 1월24일.제임스 마셜은 여느 아침처럼 콜로마 근처 아메리칸 강가에 있는 제재소의 수로를 살펴보고 있었다.그런데 수로 밑바닥에서 광채가 빛 났다.금의 발견이었다.그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세계 5대륙의 모든 희망 과 욕망이 캘리포니아로 집결했다.“황금의 대한 꿈이 파리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 꿈을 대체했다”고 마르크스는 한탄했다. ‘황금의 열기’라는 책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황금을 찾아 나선 대물결 은 캘리포니아를 광란의 욕망으로 가득채웠다.황금의 열기는 지금 아마존의 녹색 지옥에서도 타오르고 있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황금의 열기’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 갈리마르가 21세기를 앞두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종합정리하는 ‘데쿠베르트(Dcouvertes·발견) 총서 중 의 하나이다. 1986년부터 발행된 데쿠베르트 총서는 문화사·미술·음악·철학·과학·종 교 등 각 분야별 중요한 사건과 인물 등을 다루고 있다.지금까지 370여권이 나왔으며 500권까지 발행할 예정이다.데쿠베르트 총서를 국내에서 시공사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라는 이름 으로 95년부터 발간하고 있다.시공사는 이번에 나온 10권을 포함 90권을 발 행했다.100권까지 발행할 예정이다.95년에 나온 고흐는 5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는 등 출판이 성공적이라고 시공사는 밝혔다. 이번에 나온 책은 ‘무굴제국’(발레리 베린스탱 지음 변지현 옮김),‘종교 개혁’(올리비에 크리스텡 지음 채계병 옮김),‘수의 세계’(드니 게디 지음 김택 옮김),‘베이컨’(크리스토프 도미노 지음 성기완 옮김),‘황금의 열 기’(미셸 르 브리 지음 노대명 옮김),‘화장술의 역사’(도미니크 파케 지 음 지현 옮김),‘해양 고고학’(장 이브 블로 지음 윤명희 옮김),‘십자군의 전쟁’(조르주 타트 지음 안정미 옮김),‘아인슈타인’(프랑수아즈 발리바 르 지음 이현숙 옮김),‘러시아 혁명’(니콜라 베르트 지음 변지현 옮김) 등 10권이다. ‘화장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화장의 역사와 미의 변천사 등을 담고 있다.“천사 아자젤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17세기 고전주의 시대에는 포동포동하고 발그스레한 볼이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18세기에는 감상적이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강조됐다.19세 기에는 폐결핵 환자 같은 창백함이 이상이었다.20세기에는 성형수술로 아름 다움이 만들어지고 있다”. ‘러시아 혁명’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레닌은 “러시아에서 세계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펜을 줍 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러시아 혁명은 세계혁명의 한 단계였다.그러나 러시아의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세계사를 바꿀만 한 실험이 실패로 끝났어도 유장한 역사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데쿠베르트 총서는 멈추지 않는 인류의 역사를 보다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획이다.영상세대에 맞게 다양한 컬러 사진과 그림을 과감히 사 용,‘보는 책’으로서 문고본을 지향하고 있다.글과 이미지가 이상적으로 결 합한 독특하고 신선한 편집으로 과거의 역사가 마치 오늘에 일어나는 것같은 생동감을 준다. 李昌淳 cslee@ [李昌淳 cslee@]
  • 대한매일 秘史(12회)-통감부 기관지와의 싸움

    서울 프레스의 발행인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즈모토(頭本元貞)를 서울로 불 러왔다. 즈모토는 이토의 영어 공보비서였고,1896년에 일본 내각의 기관지로 창간된 재팬 타임스의 초대 사장을 맡았던 사람이다.이토는 대한매일과 영문판 코 리아 데일리 뉴스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즈모토가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즈모토는 이토가 수상이었을 때에 그의 개인비서로 임명되었다가 1897년에 는 재팬 타임스를 창간하여 그 초대 사장이 되었다.재팬 타임스는 일본인들 이 발행한 최초의 영어 일간지로서 이토의 지원으로 발행되었다.즈모토는 한 국에 오기 전 러일전쟁 기간 중에는 영국 스탠더드(Standard)지 특별 통신원 을 맡았었다.그의 영어실력은 영국사람들도 ‘뛰어나다’고 칭찬할 정도였으 며,주일 영국대사관과도 관계가 매우 좋았다. 즈모토는 한국에 온 뒤에 처음에는 주로 통감부의 해외홍보 업무를 맡았다. 1906년 7월 26일에는 그의 주최로 신문 기자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었고, 그 직후에 발행된 코리아 리뷰 7월호에 주한 일본헌병대가 고종 측근 5명을 체포하여 심한 고문을 가했다는 기사가 실리자 이에 항의하는 공개 편지를 헐버트에게 보낸 적도 있다. 이토는 일찍부터 서구 열강의 여론에 신경을 썼고,해외홍보의 중요성을 깊 이 인식한 사람이었다.재팬 타임스의 창간도 이토의 그와 같은 생각을 반영 한 것이었다.특히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은 열강국들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 었으므로 대외홍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즈모토가 서울 프레스를 일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1906년 12월 5일자 부터였다.즈모토는 서울 프레스를 통해 대한매일과 헐버트의 코리아 리뷰를 사사건건 비난하고 일본의 침략을 선전하였다. 즈모토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발행하는 출판물들을 향하여 독(毒)기를 품 고 모략중상만 일삼는 구역질 나는 것들이라고 비난하고,선정적이고 사기협 잡꾼이라는 등으로 인신공격을 가하였다.서울 프레스는 또 헐버트를 향해 국 가 정책과 이익에 배치되는 반대운동에 자신을 팔아넘김으로써 자신들이 태 어난 나라까지 망각할 수도 있는 가련한 인간들이라는 등의 갖은 욕설을 퍼 부어 대었다.헐버트는 즈모토의 이러한 공격을 조목을 들어 맹렬히 반박했다 .헐버트는 1906년 12월호 코리아 리뷰에서도 서울 프레스 12월 26일자 논설 「안정을 위한 호소」(Plea for Peace) 등을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당시에 발행된 대한매일과 코리아 리뷰를 보면 서울 프레스가 어떤 논조로 발행되었는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이 신문은 일본의 한국침략 정책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홍보하는 한편으로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독기 서린 공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서울 프레스는 지면을 확장하는 동시에 일본의 재팬 타임스와 편집·경영 양면에서 긴밀한 협조관계를 강화했다.서울 프레스는 1907년 3월 8일자 사설 「오도된 애국심」(Misguided Patriotism)은 당시 국내에서 불붙기 시작한 국채보상운동까지도 비난하면서,마지막으로는 ‘펜과 혀를 놀려’ 이 운동을 격려하고 돕는 한국의 ‘친구들’을 공격했다.서울 프레스는 또다시 9일자 사설 ‘한국의 친구들’(Korea‘s Friends)에서 한국에와 있는 반일적인 외 국인들을 헐뜯었다.이들 논설에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 펜과 혀를 졸리는 한국의 친구들’이란 대한매일(배설)과 코리아 리뷰(헐버 트)임을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울 프레스와 공동보조를 취한 신문은 도쿄에서 발행되는 재팬 타임스였다. 서울 프레스의 3월 8일자 논설을 받아 재팬 타임스는 ‘한국의 적들’(Korea ’s Enemies)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3월 15일자로 실었다.이 사설은 서울 프 레스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어떤 경우건 反日的인 한국의 십자군들이 한국 의 敵이라는 사실을 세계는 지켜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鄭普錫 외대교수·언론사 ] '대한매일 秘史'를 오늘로 접습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
  • 대학의 역사/이석우 지음(화제의 책)

    ◎정체성 위기 맞은 대학의 나갈길 제시 대학은 중세의 산물이다. 대학은 십자군 전쟁에 따른 동·서간의 활발한 문물교류,도시의 출현,유랑하는 지식인의 등장 등이 겹치면서 12세기부터 200∼300년간에 걸쳐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원형은 아무래도 수도원에서 찾아야 한다. 비록 도시의 출현과 함께 교육의 기능이 도시성직자 또는 재속성직자들에게 넘어갔지만 중세 초기의 혼란 속에서도 고전과 고대사상,학문과 종교적 전통을 보전해왔던 수도원은 대학의 밑거름이라고 할수 있다. 현재 대학은 중대한 전환기에 처해 있다. 진리와 자유라는 상아탑적 전통은 취업이라는 현실적 목적에서 위협받고 있다. 저자는 정체성의 위기를 맞아 대학 출발의 근원을 살펴봄으로써 해법을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 한길사 1만8,000원
  • 친일의 군상/前 이화여대 총장 金活蘭(정직한 역사 되찾기)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 때 어찌 여성인들 잠잣코 구경만 할 수가 잇겟습니까.이 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벌서부터 되여 잇섯습니다.내지(일본)학도들과 함께 전문대학 법문계(문과) 반도(조선)학도들은 우렁찬 진군을 이르키어 특별지원병으로서 오는 1월20일에는 영예의 입영을 하게 되엿습니다.이번 반도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거러가야될 길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가지 리유 때문에 참렬을 못하는 것입니다.…아프로는 결전하의 국가목적에 쪼차 한사람이라도 더만히 우수한 지도원을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할 각오가 잇슬 뿐입니다.” 金活蘭(1899∼1970)이 1943년 12월25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每日新報)’에 기고한 ‘男子에게 지지안케­皇國女性으로서의 使命을 完遂’라는 제목의 기고문 중 한 대목이다. ◎이대 키운 공 크지만 ‘여성계 상징’으론 논란 여지/3·1운동 당시 한때 지하 독립운동 조직과 연계/1936년 이화학당 부교장 시절부터 변절 첫 걸음/동포청년 전쟁에 내몰고도 사과 한마디 없어/“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 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일제하 지식인이 신문에 쓴 친일성향의 글 한 두편을 통해 그의 삶 전체를 평가받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거대한 감옥’또는 ‘노예선’으로 불리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쓴 글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우선 생명에 위협이 있었느냐,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했느냐 하는 점 등이다. 모든 지식인들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몇몇 의사·열사가 이에 속할 뿐이다.그러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거의 모든 친일 지식인들은 자신의 친일행위를 반성하지 않았다.친일 지식인들이 더 비난받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때문이다. 일제시대 여성 지식인이었으며 최근 그의 이름을 딴 상(賞)제정 문제로논란이 되고 있는 김활란은 역사 앞에서 용서받을 수 있을까?답은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이유는 그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그의 이름을 딴 상 제정은 지식인 사회에서 여러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흔히 김활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가운데 하나는 ‘여성박사 제1호’다.그는 학사·석사·박사를 따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5년간 미국유학을 했다.귀국해서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절러(당시 이화여전 교장)의 뒤를 이어 1939년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했다.굳이 나눈다면 그는 친미(親美)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이다.그런 그가 ‘대동아전쟁’이 터지자 친일,반미(反美)인사로 돌변하였다. ○전쟁 터지자 반미로 돌변 “저 흑노(黑奴)해방의 싸움을 성전(聖戰)이라 했고 십자군의 싸움도 성전이라고 했다.…제일선 장병과 보조를 같이 하여 도의를 무시한 물질제일주의의 서양문명을 박차버리고 동아(東亞)의 천지로부터 미영(美英)을 격퇴하여 버리자”.김활란은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결성식(1941.12.27,부민관 대강당)에서 ‘여성의 무장’이란 주제로 미영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일제하 대부분의 친미·기독교계 인사들(白樂濬·申興雨 등)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다시 친미인사로 변신했다.그는 미군정 시절 초대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했고 이승만정권 하에서 한미(韓美)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3·1만세의거 당시 김활란은 이화학당 대학과를 마치고 모교의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그 무렵 지하독립운동 조직과 연결돼 활동하고 있었다.‘7인의 전도대(傳道隊)’를 만들어 기독교 포교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단순한 전도활동 수준을 넘는,일종의 민족운동이었다.20년대 후반 좌우 민족진영의 통합으로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뒤이어 27년 4월 여성계 민족단체로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었다.그는 근우회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이듬해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31년말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농촌교육 관련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귀국후 문맹퇴치·봉건잔재 타파 등을 내걸고농촌운동에 주력하였는데 이는 미국유학을 한 인텔리 여성의 소박한 조국에 대한 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일제 침략전쟁 미화·선전 그의 친일행보는 36년 이화학당 부교장으로 있던 시절 첫걸음을 내딛는다. 그해 말 총독부 사회교육과 주최 ‘가정의 개선과 부인교화운동의 촉진’을 위한 사회교화간담회에 참석하였다.37년 1월 그는 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조선부인문제연구회’를 결성하였고 7월 들어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애국금채회(愛國金釵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이 단체는 한일병합후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들의 부인들이 주동이 돼 전쟁물자로 바칠 금비녀·가락지를 모으기 위해 결성한 친일 여성단체였다.이후 여러 친일단체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방송선전협의회,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조선교화단체연합회,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등. 그의 활동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기독교 활동이다.38년 6월 조선YWCA의 회장으로 있던 그는 “비상시국에 있어 기독교 여자청년들도 내선일체의 깃발아래로 모여 시국을 재인식하는 동시에 황국신민으로서 앞날을 자기(自期)하는 의미에서…”(매일신보,38년 6월9일)라며 일본YWCA에 가맹을 발표하였다.당시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다가 학교가 폐교를 당하고 구속자·순교자가 잇따르던 때였다. 39년 4월 이화여전 교장에 취임한 이후 그의 친일행각은 본격화되었다.물론 그 배경에는 학교를 지키기 위한 목적도 없지는 않았다.그러나 김해 김씨인 그의 문중이 본관을 따라 ‘김해(金海)’로 창씨를 한 것과는 달리 그는 독자적으로 ‘천성활란(天城活蘭·아마기 가쓰란)’으로 창씨개명하였다.‘어차피 창씨를 해야한다면 정말 (일본식으로)창씨를 해서 자신의 독립된 일가를 세울 생각’이었다.(金貞玉의 저서 ‘이모님 金活蘭’중에서)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살아 ‘대동아전쟁’ 개전(41.12.8) 이후부터는 강연·방송은 물론 가두로 나서서 일제의 침략정책을 미화,선전하였다.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머니나 딸·동생으로서’ 징병·징용·학병 등 인력동원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촉구했다. 43년8월1일 조선인에 대한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황국신민의 무쌍(無雙)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되었다.…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공하옵신 성지(聖旨)에 다시금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위하여 불덩이 같이 끓는 피와 몸을 통털어 바쳐 성은(聖恩)에 보답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뵈일 기회는 드디어 왔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 천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매일신보’1943년 8월7일)이라고 썼다. 그는 해방직전 심한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자신을 문병차 찾아온 조카(金貞玉 전 이대교수)에게 “남의 소중한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연설을 하고다닌 죄값”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김정옥의 앞의 책 중에서) 당시 여기자 崔銀喜는 그를 두고 ‘모질고 악착한 역경을 맛보지 않고 순풍에 돛단 배처럼 산 행운아’라고 평했다.식민지 시대와 격동기를 산 지식인의 일생이 대체로 고뇌와 아픔으로 점철됐겠지만 그는 상류층의 한 층을 이루는 생애로 일관하였다. 그가 60년 가까이 이화인(梨花人)으로 살면서 일제하와 건국기에 학교를 지키고 가꾼 공로는 인정할만 하다.그러나 그를 여성교육계,나아가 한국여성계의 상징으로 내세우기에는 그의 일생 가운데 ‘흠결’은 큰 편이다.이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보기에는 그의 친일활동이 적극적이었다.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추진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보다는 그의 떳떳하지 못한 삶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김활란 연보 1899년 인천 출생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 1918년 이화여전 교수·부교장 1928년 ‘근우회’ 발기인으로 참여 1931년 미국 컴럼비아대 철학박사(‘여성박사 1호’) 1937년∼45년 애국금차회·임전대책협의회·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 1939년∼70년 이화여전 교장·이화여대 총장·이화학당 이사장 1948년∼65년 한국대표로 유엔총회 6회 참석 1950년 공보처장 1952년 ‘코리아타임스’ 사장 1954년∼61년 국제기독교선교위원회 부위 원장 1955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195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1963년 대한민국장·막사이사이상·다락방상 수상 1965년 대한민국 순회대사 1970년 별세,망우리 금란동산에 묻힘.대한민국 1등수교훈 장추서 1996년 추모문집 발간,그의 친일 논쟁을 계기로 ‘인터넷 반민특위’이 등장 1998년 이대측의 ‘김활란상’ 제정 계획 발표로 찬반논란
  • 세계사신문Ⅰ/세계사신문 편찬위원회 지음(화제의 책)

    ◎화석화된 사실에 생명 불어넣기 역사를 신문형식으로 편집해 본다면 그 생생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화석화된 역사적 사실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문의 갖가지 장치들을 빌어 쓴다. 역사적 인물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인터뷰라는 형식을 사용한 것이 그 한 예다. 또 ‘타임머신’이란 코너를 둬 신문형식이 갖는 시간적 폐쇄성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했다. 일찍이 헤겔은 역사를 자료로서의 역사,반성으로서의 역사,철학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한 적이 있다. 이 책은 특히 역사로부터 어떤 반성적 성찰을 이끌어내거나 철학하듯이 역사를 읽는 이들에게 하나의 지적 나침반이 될만하다. 이 책에서는 문명의 여명에서 십자군전쟁까지를 다룬다. 서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하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사계절 1만2,000원
  • 한울림,‘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출간

    ◎질병은 역사를 바꾸고 문명은 질병을 부른다/페스트로 중세 붕괴·종교 권위 추락/르네상스→매독 산업혁명→결핵 연관 중세는 흑사병에 의해 종식됐고 산업혁명은 결핵환자를 잉태시켰다.한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듯이 한 시대를 휩쓴 질병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응축돼 있다. 도서출판 한울림에서 펴낸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황상익 편저)는 질병을 사회와 문명 변화를 가져온 주요 인자로 본다.이러한 사회사적 접근법은 유럽인 4명중 1명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다거나 현대 질병인 암 또는 호흡기 질환이 문명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쉬 수긍이 간다. 중세에는 림프절 페스트를 비롯 홍역,결핵,인플루엔자,발한병,무도병 등 다양한 질병이 있었다.그러나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나병.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이 억압된 장원이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음습한 생활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중세라는 시대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질병이었다.십자군 운동을 통해 동방에서 귀환하는 병사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됐고 13세기 극성을 떨다 14세기 중엽 쇠퇴기에 들어갔다. 1348년에 시작된 페스트(흑사병)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페스트는 근대를 탄생케 했다.엄청난 전염력으로 유럽인구의 4분의 1을 잃게 하고 장원경제와 농노제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또 고위 성직자들이 흑사병을 피해 달아나자 중세를 지배해온 종교적 권위도 붕괴됐다.매개체인 야생쥐는 12세기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가 사라지게 된 것은 검역과 격리 등 방역조치가 이루어진 탓도 있지만 생활상의 변화도 무시할수 없다.중세의 목조나 점토로 만들어진 집이 석조가옥으로 바뀌고 집집마다 지하실이 생겨나자 주거가 안정된 쥐들은 이제 더이상 도시나 마을을 옮겨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르네상스 시대의 밑바닥에는 매독이라는 악의 꽃이 피어났다.인간해방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적 자유라는 사회 통념이 널리 퍼져 간데다 잦은 전쟁을 통해 성폭력과 매춘이 부산물로 떨어졌다.매독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항해하면셔 유럽에 전파한 것으로 전해진다.신대륙 발견은 유럽에 부를 안겨주었지만 매독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루게 한 것이다. 산업혁명은 결핵을 불러왔다.인구의 급격한 도시집중과 슬럼가의 출현,열악한 작업환경과 주거환경,장시간 노동,오염된 공기 등은 영국 노동자들을 결핵이라는 만성 질환에 걸리게 했다. 산업화는 현대인을 발암물질의 바다 한복판에 떠있게 했다.방향족 화합물, 비소 등 새로운 화학물질이 추가될 때마다 발암물질도 하나씩 늘어난다.이 때문에 모유에서 DDT가 나오고 성인병이던 암이 어린이들에게 발병한다. 황씨는 결론적으로 생산력의 단순한 팽창과 성장만이 아닌 인간을 위한 문명이 진정 인간 개개인과 인간 사회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 아편전쟁과 黑船의 교훈/宋一 외국어대 교수·경영학(時論)

    ○이이제이와 화혼양재 열강의 자본주의 봇물이 터지던 19세기의 아시아 개방과정과 20세기말 글로벌화 과정은 유사성이 많다.영국은 아편전쟁(1939∼1942년)을 일으켜 통상을 거부해 온 청(淸)을 굴복시켰다.중국인의 기호에 맞는 인도산 아편을 투입해서 중독된 아편소비자를 이용해 교역의 물꼬를 트려는 교활한 제국주의적 책략이다.청은 영국에 패한 후 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을 불러들여 열강의 상호견제를 통해 영국의 독주를 막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외교원칙으로 맞서나갔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끈 흑선(黑船)의 위압에 무릎을 꿇고 개항(開港)했다.그러나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된 근린제국(近隣諸國)과는 달리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 변신했다.그 성공비결은 서양을 배워 서양을 이기자는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과 서양의 문명은 배우되 일본의 혼은 지킨다는 ‘화혼양재(和魂洋才)’정신에 뼈를 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사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7년간의 장기불황과 아시아 경제위기에 휘말리고있는 일본의 무력증을 놓고 일본모델의 몰락이 자주 거론되고 있으나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적했듯이 ‘새로운 기적의 모색’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글로벌메카니즘에 대한 탐색전과 열도개혁에 관한 신중한 실험이 진행중인 정중동(靜中動)의 잠복기에 있다는 견해이다. 일본의 지한파(知韓派) 오기(大城裕二) 교수는 IMF체제 하의 한국을 “미국보다 더 미국적” 이라며 국산품 애용운동,수출장려운동,심지어는 금모으기운동같은 애국심까지 반(反)글로벌화로 규정하려는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의 편견을 꼬집었다.주식회사‘한국’이나 주식회사 ‘일본’의 추락이 유교자본주의의 병폐 때문인지,미국의 천하통일 시대에 지구촌을 파죽지세로 공략해가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 파괴력 때문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글로벌화는‘아편’적 미혹(迷惑)과 ‘흑선’적 압력이 결합한 미국의 쇼비니즘으로 귀착되가는 경향이 강하다. ○미 문화·기업의 파급력 이와같은 미국화가 영구히 지속될 질서이며 유일한 지구촌의 존립방식인지,아니면 자본주의의새로운 위기를 몰고올 태풍의 눈인 지는 더 두고 봐야할 일이다. 세계화가 수반한 ‘아편’적 요소는 우리 생활을 압도하는 미국의 대중문화의 위력이 잘 지적해주고 있다.지금 전세계 극장의 90% 이상이 헐리우드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음악의 80%는 미국의 팝송이다.‘타이태닉’ 한편의 영화가 벌어들인 이익은 우리가 금을 모아 수출한 7억달러의 2배가 된다.세계는 지금 부지불식간에 미국문화 증후군에 중독되어가고 있다.햄버거에서 인터넷 그리고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몇십개에 불과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지구촌의 상권과 기업생리를 지배한다.이들 다국적 기업들이 바로 무한경쟁,규제철폐,다운사이징 등 카우보이식 자본주의계율이 입력된 그들의 경영논리를 바이블로 만들어가는 글로벌 십자군이다. ○대미 경제종속 탈피해야 글로벌 체제의 최대 모순과 약점은 미국독주에 당위성을 실어주는 달러독점적 통화시스템이다.발권국의 지위에 있는 미국은 글로벌 경제에 공급할 돈줄을 쥐고 있지만 달러통화정책의 우선순위는글로벌 경제의 이익이 아닌 미국의 로컬 경제이다.자연히 세계 금융시스템은 미국 경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미국이 ‘흑선’적인 권력을 누리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예컨데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엔화강세­달러약세가 절실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으나 미국은 이 문제에 냉담하다.또한 일본이 책임을 떠맡기로 한 아시아통화기금(AMF)의 구상을 미국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내년부터 출범할 유러단일통화에 거는 기대가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한국혼 담은 세계화 모색 ‘흑선’의 출현과 아편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적지않다.우선 흑선의 압력으로 문호를 연 일본이 개방화에 성공한 것은 고유의 것과 서양의 것을 융합한 화혼양재(和魂洋才)의 정신 때문이다.세계화는 미국이 경쟁력을 갖는 미국식 경기다.농구나 미식축구에서 우리가 미국을 제압할 수 없음이 명약관화한 것처럼 한국혼과 한국토양을 담지못한 세계화는 백전백패다. 한편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구사한 ‘이이제이’의 외교통상 전략은 한국적 글로벌화의 활로를 암시하는시금석이 될 수 있다.미국 편중의 사고를 벗어나 유럽,일본,중국,동남아등 이해관계국 상호간의 역학함수를 도출해 글로벌 최적화의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화폐불임/우홍제 논설위원실장(외언내언)

    고대와 중세 서양에서는 이자를 매우 죄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불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돈은 생명체가 아니므로 자식을 낳을수 없다는 식이다.이자를 가난한 자에 대한 악랄한 수탈수단으로 보고 이를 격렬히 비난했던 것이다.로마교회는 9세기에 아예 이자금지법을 제정,모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엄한 칙령을 내렸다.교황 그레고리10세의 경우 고리대금업자에게 집만 빌려줘도 파문한다고 으름장 선언을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유태인만은 달랐다고 한다.유태인은 종교적으로 로마교회의 구속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게다가 유태교는 이자받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시절부터 이미 금융업과 상권은 자연 그들 손에 들어가게 된 것으로 서양경제사는 적고 있다.영국을 비롯,대부분의 중세 기독교국가의 왕실은 내탕금을 포함한 국고관리를 유태인들에게 맡겼다.이자놀이의 죄악은 유태인에게 떠넘기면서 돈을 불려 가는,눈 가리고 아웅식의 자기기만이라고나 할까.어쨌든 유태인은 이재술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게 됐고 수전노의 불명예도 붙어 다니게 됐다. 그러나 1090년부터 약 180년 동안이나 계속된 십자군전쟁에 의해 전비운반위험의 대가로 기독교세계에서도 점차 이자를 받는 것이 불가피해졌고 이러한 역사적흐름은 산업혁명후 근대자본주의 성립과 함께 금융업발달을 촉진시킨다.이처럼 다사다난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국제금융동향을 결정하는 가장 긴요한 독립변수로 떠받들여지는 이자이건만 엄격한 코란경전의 율법이 지켜지는 중동에서는 아직 푸대접신세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외환은행 바레인지점에 따르면 중동계 은행들은 “단기외채를 중장기로 전환할 경우 이자수수를 금하는 코란에 위배된다”며 한국의 외채상환연기협상에 난색을 보인다는 것이다.이들은 그동안 한달이내의 단기자금을 한국측 은행에 빌려주고 받은 돈은 이자가 아니라 상대방 편의를 봐주고 지급받은 수수료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자국민들의 예금·대출도 이자가 아닌 수익금과 수수료 등으로 취급하는 등 율법 우선의 금융관행이 지켜진다는 것이다.현대의 화폐불임이라고나 할까.
  • 터키 히에라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60)

    ◎BC 180년 건설된 그리스­로마 도시 유적/페르가몬왕국 창건자 아내 ‘히에라’ 위해 건립/아폴로 신전·원형극장·거대한 묘지군 곳곳에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런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대 그리스­로마 도시유적이다.멀리서 보면 하얀 솜으로 덮힌 것 같은 신비스런 언덕위의 도시이다.현재 지명은 파묵칼레이다.‘목화성’이란 뜻이다.가까이 다가가면 산화칼슘에 녹아내린 하얀 석회암 고드름이 늘어진 것 같은 기묘한 풍광을 연출한다.1만4천년간 뜨거운 물줄기에 닳고 녹아 만들어 낸 자연의 조화다.히에라폴리스는 바로 이 하얀 목화성 언덕위에 건설된 도시인 것이다.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왕은 기원전 180년쯤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였다.유메네스 왕은 전설의 왕국 페르가몬의 창건자 텔레포스 왕의 아내인 히에라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히에라폴리스는 바로 이웃의 고대도시 라오디케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급진적인 발전을 거듭했다.그러나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제국에 자진 헌납함으로써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몇차례의 대지진으로 고대도시의 많은 유적지가 파괴되었지만,아직도 2∼3세기 최전성기를 맞았을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마치 ‘신전 전시관’ 방불 이 도시의 상징은 신전들이었다.바둑판 모양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히에라폴리스에는 ‘신전 전시관’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수의 신전이 건립되었다.로마 목욕탕과 원형극장 사이에 아폴로 시전이 남아 있다.아폴로는 이 도시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히에라폴리스의 전성기는 이후 비잔틴 시대까지 계속되었다.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의 위상은 새로워졌다.기독교의 대교구가 설치되었다.초대 7대 교회의 하나가 인근 라오디케아에 세워졌다.더욱이 예수의 12제자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빌립이 순교지이기도 하다.원형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사도 빌립이 전교하던 장소에 순교 기념관이 있다. 기독교의 중심지 히에라폴리스는 11세기 이후 셀주크와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자,그 찬연했던 과거의 영광도 함께 묻히고 말았다.역사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망각되고,유명한 운천수가 뛰어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하얀 목화성,즉 파묵칼레로만 세상에 알려졌다.온천을 즐기러 몰려든 관광객들은 언덕 위에 즐비한 고대 유적지를 보고 비로소 잊혀졌던 역사의 숨소리를 듣게 된다. 온천 지대의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한 대표적인 도시 유적은 로마 목욕탕이다.열탕,온탕,냉탕,탈의실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로마식 목욕탕이다.운동을 위한 부속건물과 황제가 연회를 개최하던 대형 홀이 아직도 남아 풍요로 왔던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 온천수는 밖으로 흘러 파묵칼레의 기묘한 옥외 석회암 온천장을 형성했다.섭씨 35도 정도의 온천수는 특히 피부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있다.얼굴이 못생긴 처녀가 공주가 된다는 등 여러 종류의 토착 전설을 만들어 냈다.그래서 피부가 거칠고,무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필수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온천 수원 ‘악마의 굴’ 유명 이 도시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원형극장이 으뜸으로 꼽힌다.2세기 하드리안 황제때에 지은 원형극장은 3세기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시대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관중석은 2단으로 되어 있다.약 1만5천명의 인원을 수용했다는 대규모 극장이다.특히 중앙의 무대주변에는 아폴로 신을 주제로 한 정교한 대리석 조각이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도시 북쪽 끝에는 거대한 묘지군인 네크로폴리스가 자리잡았다.시야에 들어 오는 것만 줄잡아 수천개는 됨직하다. 소아시아 반도에서 가장 큰 묘역이라 한다.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석관형,가옥형,봉분형 등 무덤의 다양한 양식과 크기이다.신분이나 빈부의 차이에 따라 그 규모와 장식이 다를 수 있다.그런 가운데 여러 시대가 중첩되면서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었지만,그것은 오히려 온고지신의 조화로움인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서 멀지 않는 곳에 온천수의 수원으로 알려진 굴 하나가 있다.단순한 굴이라기 보다는 매우 복합적인 문화현상을 지닌 명소다.현지인들이 ‘악마의 굴’로 부르는 굴에서는 연중 유독가스가 품어져 나와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지하의 영계인 ‘하데스’로 통하는 입구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그래서 입구에 하계의 신인 플루토를 위한 신전을 짓기도 했다.이슬람이 이 땅을 지배하면서부터 신비주의 수도승들이 호흡조절을 통해 이 굴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자신의 영력을 시험해 보이는 일종의 종교적 수련장이 되기도 했다.당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건립된 성스런 도시,히에라폴리스는 십자군과 셀주크의 공격에도 견뎌왔다.그러나 1334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여행가이드/카펫·포두주 유명… 모텔­호텔 등 숙박시설 완비 히에라폴리스,즉 파물칼레는 이스탄불에서 지중해에 연한 역사도시 이즈미르 비행기로 가서,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다.이즈미르에서 데니즐리까지 약 200㎞를 철도로 간 다음 20㎞거리의 파묵칼레까지는 마을버스를 이용해도 된다.수공예품,특히 수직 카펫이유명하고 질 좋은 포도주가 생산된다.투산호텔,파묵칼레 모텔을 비롯한 여러 개의 호텔이 온천지대에서 영업중이다. 원더풀 투어(212­257­2288)와 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 파묵칼레 전문여행사이다.
  • 사랑과 사치와 자본주의/베르너 좀바르트 지음(화제의 책)

    ◎자본주의 생성의 정치·문화적 배경 근대 자본주의 연구로 유명한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1863∼1941)가 자본주의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전체상을 해명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쓴 책.사랑과 사치가 자본주의의 생성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을 강조한다.이것은 동시대 인물인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의 생성과 배태과정을 프로테스탄트의 기독교적 윤리인 정직·성실·근면·소명 등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이 책의 기본발상은 십자군전쟁을 체험한 이후유럽사회 전체가 겪어야 했던 사회변화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고,이러한 일련의 사회변화의 결과 지배계급의 전반적인 생활양식이 새롭게구성될 수 밖에 없었으며,지배계층의 생활양식의 재편성은 근대적인 경제조직을 탄생시키는데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좀바르트는 초기에는 마르크스 신봉자였으나 나중에는 반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그는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과정’과 관련,상인자본을 강조한 마르크스와는 달리 영주 또는 지주의 지대축적을 강조한다.이와 함께 자본주의는 이미 봉건사회 말기에 권력을 휘둘렀던 봉건 왕후들의 사치스러운 궁정 일상생활에서 배태되었음을 논증한다.궁정에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상 혹은 가구나 건축물 등에 대한 사치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보다 질 높은 물품을 공급해야 했으며 그 결과 각종 가공업이 발전했고 도시화가 초래됐다는 게 좀바르트의 지적이다.이필우 옮김 까치 9천원.
  • 영 작가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2권 출간

    ◎긴장감 만점 ‘중세 스릴러의 세계’/1천만부 판매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아서 코난 도일 이후 영국 추리소설의 맥을 잇는 영국의 여성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1913∼1995).그를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수도사 ‘캐드펠 시리즈’중 두 권이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도서출판 북하우스에서 펴낸 ‘성녀의 유골’(최인석 옮김)과 ‘99번째 주검’(김훈 옮김).모두 20권으로 된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미국·프랑스·일본 등 22개국에서 출간돼 1천만부 이상 판매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작가의 고향 시로프셔 주의 시루즈베리를 중심으로 한 중세 영국의 역사와아가사 크리스티를 능가하는 치밀한 구성,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에버금가는 매력적인 인물 캐드펠 수사의 추리력이 어우러진 절묘한 중세 스릴러의 세계가 긴박감을 안겨준다. ‘성녀의 유골’은 ‘캐드펠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주인공은 십자군 전쟁에서 퇴역해 수도원에 은둔한 늙은 수도사 캐드펠이다.캐드펠은 수도사와 추리소설하면 으레 떠오르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과는 달리 현학적이지 않으며 경건하지도 엄숙하지도 않다.그는 늙은 몸을 수도원에 의탁했을뿐,종교적인 경건함이나 중세적인 엄숙주의와는 거리가멀다.소설은 웨일스의 궁벽한 마을로 성녀의 유골을 찾아 나서면서 본궤도에 오른다.수도원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떠난 성골찾기 여행은 사기와 살인으로 얼룩진다.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탐욕을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빛난다. ‘99번째 주검’은 영국 역사상 실재했던 사건,곧 1138년 영국의 왕권을 걸고 사촌인 모드 황후와 각축을 벌이던 스티븐 왕이 시루즈베리를 공격한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스티븐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않아 영국 중부를 평정하기 위해 시루즈베리로 진군한 때부터 모드 황후의 오른팔 격인 로버트 백작을 응징하기 위해 우스터로 진군한 때까지를 시대배경으로 한다.이번에 선보인 두 작품에 이어 ‘수도사의 두건’‘성 베드로 축제’‘죽음의 혼례’ 등 3권이 올해안으로 더 나올 예정이다.
  • WVF총회(외언내언)

    제대군인들의 유엔총회라 할 수 있는 세계제대군인연맹(WVF)서울총회가 1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공식일정에 들어갔다.74개국 138개 참전단체가 가입한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부기구인 WVF총회를 서울에서 갖는 것은 아시아에서 두번째며 극동지역에서는 처음이다.이번 서울총회에 참석하는 60여개국 대표 300여명은 모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거나 레지스탕스활동을 벌였고 한국전쟁을 비롯한 각종 전쟁과 지역분쟁에 참여했던 역전의 용사들이다.한국전쟁에 나섰던 대표만도 55명이나 된다.누구보다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과 인권존중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전파하려는 사람들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보다 평화의 귀중함을 깊이있게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세계도처의 참전제대군인들의 평화를 갈망하는 목소리들이 이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평화없이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희망이 없다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WVF의 신조’는 자유스럽고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이를 위해 더욱 헌신할 수 있는 십자군 전사가 될 것을 다짐한다.기억속에 남아 있는 ‘어제의 용사들’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희망을 안겨주는 평화의 사도가 되겠다는 각오다. 이들이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 토론하고 다짐하며 평화를 실현시킬수 있는 방안을 채택해 각국에 권고하는 회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의를 지닌다.총회기간 동안 각국 대표들은 전방지역을 방문,한반도 분단현실을 직접 확인한다.그들이 피흘려 지키려고 했던 평화가 이 땅에서는 왜 아직도 요원한 지를 얼어붙은 북녘 땅을 바라보며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이번 총회에 상정된 52건의 안건 가운데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과 대인지뢰의 포괄적 금지협정,종군위안부 문제,핵무기 생산 및 핵실험 금지와 같은 문제는 우리와 직접 관계되는 사안들이다.자유와 평화,그것은 우리 모두의 갈망이며 쟁취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 ‘새 옷’ 입고 다가온 거장 슈베르트

    ◎예술의 전당·한국 패스티벌 앙상블의 두 무대/슈베르티아데 97­실내악과 오페라에 해설 곁들여/나,‘겨울나그네’ 여행을 떠나다­93년 독 초연… 현대악기로 재해석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인 올해 기념음악회가 심심찮게 열렸지만 레퍼토리는 늘 그 타령이 그 타령이었던게 사실.이런 섭섭함을 달래주듯 11월엔 슈베르트 초연음악회 두개가 나란히 열린다.실내악과 오페라를 해설 곁들여 보여주는 예술의전당 기획 ‘슈베르티아데 97’(7,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과 한국페스티벌 앙상블이 실내악 딸린 ‘겨울나그네’를 연주하는 ‘나,‘겨울나그네’ 여행을 떠나다’(23일 예술의전당 음악당)가 그것.구태 풍기는 가곡과 실내악을 탈피,슈베르트의 ‘신선한’ 옆모습을 엿 볼 기회다. ‘슈베르티아데 97’은 슈베르트 생전의 자기 음악 발표회에서 따온 명칭.수줍음 많던 청년 슈베르트는 신작을 작곡하면 큰 연주회장에 내놓기보다 친한 사람 몇몇을 불러 응접실에서 들려주는걸 더 즐겼는데 이를 ‘슈베르티아데’라 불렀던 것.조성진 예술의전당예술감독은 바로 이처럼 관객과 연주자가 친밀하게 대화하는 슈베르트 음악회의 본질을 보여주려 97년판 슈베르티아데를 꾸렸다. 1부에선 ‘플루트,기타,비올라,첼로를 위한 4중주’를 들려주며 2부는 ‘아내들의 반란’을 통해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 세계를 보여주는 드문 기회.‘…4중주’는 체코 기타리스트 마티카 곡을 슈베르트가 첼로를 보강해 편곡했다.아름답고 포근한,슈베르트 분위기가 물씬한 작품.‘아내들의 반란’은 피아노가 반주를 맡아 징슈필(악극)성격이 강한 단막오페라.십자군 전쟁때 싸움에 미친 남편들에 반발,아내들이 사랑을 거부하면서 일어나는 우여곡절을 중창위주로 들려준다.오디션으로 출연진을 직접 뽑은 조 감독이 1부 들머리에 해설도 덧붙인다.580­1132. 한편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의 실내악 버전을 연주한다.즉 원래 피아노가 반주하는 ‘겨울나그네’에서 피아노를 떼버리고 실내악 반주를 대신 갖다붙인 곡.이 작품의 작곡가 한스 챈더가 어디선가 귀에 익었다면 상당히 오래된 음악팬이다.그는 80년대 후반 내한,KBS교향악단과 협연한 지휘자.함부르크 국립오페라단 음악감독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실내악 ‘겨울나그네’는 원전을 현대감각과 악기로 재해석해낸 슈베르트 재발견 작업.팀파니,마림바 등 각종 타악기로 비바람소리,두들기는 소리 등 효과음을 내서 실연당한 청년의 을씨년스런 마음을 표현한다.또 ‘밤인사’는 노래 아닌 울부짖음으로 처리했고 ‘얼어붙은 눈물’ 등에선 실내악 멤버들이 무대와 청중사이를 어지럽게 어슬렁거리는 등 여기저기서 슈베르트를 실험실로 끌어들인 챈더의 기지가 엿보인다.93년 독일 초연작.테너 강무림씨가 노래하고 정치용씨가 지휘자로 초청됐다.720­5749.
  • 통일정책론/양영식 지음(화제의 책)

    ◎분단후 남북관계·통일문제 자료 정리 분단이후 현재까지의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를 방대한 현장자료를 토대로 정리.통일원 남북회담사무국 상근위원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역대정권의 통일론을 조목조목 비판한다.그는 교조주의적인 반공노선을 택했던 이승만 정부의 폐쇄적 통일론을 「십자군적 해방통일론」으로,장면 민주당시대의 백화제방식 통일논의를 수세적 소극론으로 규정한다.또 박정희 정부의 「선건설·후통일」이라는 「실력배양론」은 이승만 정권 이래의 통일회피적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5·6공화국에서 현재의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60년 4월 학생혁명세력과 87년 6월 민주항쟁세력의 통일론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끝으로 지은이는 ▲보다 견실한 민주화 ▲국부 축적 ▲초당적 통일정책 추진 ▲신축적인 대북정책 전개 ▲통일전문가 양성 등을 민족통일의 조기실현을 위한 5대 조건으로 꼽는다.박영사 2만6천원.
  • 이 토리노성당 화마 모면/예수 성의 진위 논란

    ◎전문가 “탄소연대측정결과 13세기 제품”/가톨릭 “여전히 경애로운 상징” 경의 표명 【로마 AFP 연합】 소방관들의 활약으로 지난 11일밤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 화재에서 간신히 화를 면한 예수의 「성의」는 기독교계가 간직하고 있는 성스러운 물건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위여부를 놓고 가장 논란이 많기도 하다. 가로 4.10m,세로 1.40m의 이 성의에는 상처를 입은 남자의 얼굴과 몸이 음화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기독교계에서는 이를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를 장사할때 사용한 수의로 믿어 왔다.그러나 지난 88년 교황청의 동의하에 대주교가 지명한 위원회에서 조사해본 결과는 성의의 정통성에 의구심을 갖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성의가 중세시대인 1260∼1390년사이에 『제작된』 가짜인 것으로 『95% 확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성의를 보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고 있다. 성의의 존재에 대한 첫기록은 7세기 예루살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성의는 당시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12세기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공개됐다.그러나 1202∼1204년 사이에 벌어진 제4차 십자군전쟁 기간중 사라졌다.토리노 성당의 성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자취를 감춘 성의와는 다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따라서 1353년 프랑스에 다시 나타난 토리노 대성당의 성의는 아마도 십자군 전쟁 당시 제작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이후에도 성의에 대해 『그리스도의 경애로운 상징에 존경과 경외를 보낸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성의의 신비를 더욱 고조시켰다.
  • 일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신의 대리인」

    ◎로마 교황들의 지량과 세속적 삶/십자군을 일으킨,비오2세 등 4인의 격동사/왕과의 대립 등 「성과 속」의 인간적 면모 그려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성 베드로의 후계자,전 가톨릭교회의 최고사제,서유럽 총대주교,이탈리아의 수석 대주교,로마교구의 대주교,바티칸의 원수….로마교황은 한마디로 신의 대리인이다.「로마인 이야기」로 국내 독자와 친숙한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60)의 72년도 저작 「신의 대리인」(한길사,김석희 옮김)이 나왔다. 「신의 대리인」은 냉혹한 지략으로 격동의 르네상스 시대를 헤쳐나간 로마교황들의 세속적 삶을 다룬 역사평설서.이교도인 오스만터키에 점령당한 비잔틴(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을 일으키는 데 목숨을 바친 비오 2세,수도사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에서 광신적인 신권정치를 펴자 끈기와 지략으로 맞서 교황권을 지켜낸 노련한 정치가 알렉산데르 6세,이탈리아의 통일과 독립은 교황아래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칼과 십자가」를 번갈아 휘두른 환상주의자 율리우스 2세,메디치 가문 출신답게 화려한 볼거리로 로마를 치장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최후를 장식한 복안적 사고의 평화주의자 레오 10세 등 4명이 주인공이다. 로마교황은 가톨릭 세계의 최고 실권자이지만 가톨릭계에 본격적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부터다.그동안은 이른바 「아비뇽 유수」(1309∼1377) 등에서 보듯 교황권과 왕권의 대립이 계속됐다.로마교황이 명실공히 유일한 「신의 대리인」이 된 것은 에우게니우스의 후임자인 니콜라우스 5세가 로마교황에 즉위한 1477년부터.그후 「대립교황」은 더이상 출현하지 않았으며 교황청이 로마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일도 없었다.한편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은 「신의 대리인」이었을 뿐아니라 「교황령의 통치자」였다.때문에 교황령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세속권력이 무색할 정도의 외교적 흥정과 무력행사가 교황에게 필요했다.이 책은 르네상스의 한복판에서 성과 속을 넘나들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데 무게를 둔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처녀작「르네상스의 여인들」을 비롯,「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신의 대리인」「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정신의 핵심에 접근한다.르네상스 시대를 관류하는 정신을 그는 『비좁은 정신주의의 껍데기속에 틀어박히지 않은 대담한 영혼과 합리성』(「르네상스의 여인들」)으로 요약한 바 있다.「신의 대리인」을 통해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 역시 교황의 종교적인 지위라기 보다는 담대한 영혼과 합리적인 정신 사이에서 자유롭게 사고한 르네상스적 인간군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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