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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한국인들이 만든 선한 문화/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인들이 만든 선한 문화/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지난번 기고에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썼더니 뜻밖의 반응이 있었다. 내 글을 전혀 보지 않는 벗들이 잘 읽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벗들의 격려에 공연히 우쭐해진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단행본을 낼 요량으로 자료를 모아 보았다. 이 자료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불교, 기독교, 민족종교 등 다양한 계통의 예언이 포함됐다. 신기한 것은 이 예언들이 내린 결론이 다 엇비슷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은 미래에 세계를 정신적으로 인도할 중심 국가가 된다고 예언했다. 이것은 지난번 기고에서 소태산이 예언한 것과 같은 것이다. 백범이 한국이 높은 문화의 나라가 되기를 바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이것들을 정리해 보면 한국은 미래에 경제나 군사 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나 정신적인 면에서 만천하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한국은 협잡, 거짓, 생떼, 남만 탓하기, 무능 등등이 판을 치는 사회 같은데 높은 정신을 만들어 낸다고 하니 말이다. 특히 정치권을 보면 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많은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은 안전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여성이 밤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단다. 그래서 밤에 무엇이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슬리퍼 신고 동네에 있는 편의점에 갈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또 길에 술 취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들은 소리만 지를 뿐 위해는 가하지 않는단다. 그다음에 지적하는 것은 한국에 도둑이 없다는 사실이다. 카페 같은 데서 핸드백을 놓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도 그 백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정녕 신기하다고 한다. 유럽의 부국에서 온 친구는 지인이 지하철에서 전화기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깨 보니 전화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들은 한국의 치안 상황이 좋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처럼 치안이 좋은 나라가 외려 드문 것 같다. 앞에서 본 것처럼 한국이 그렇게 온갖 악만 들끓는 사회라면 어떻게 사회는 이렇게 안전한 것일까? 한국인들의 본성이 선해서 그럴까?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인은 선한 문화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가 이렇게 안전한 것이다. 한국인은 어떻게 선한 사회 문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조선을 이어받은 국가다.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나라다. 성리학을 만든 주자는 공자의 도통 라인을 맹자로 잡은 사람이다. 한국인들은 ‘공맹’이라는 단어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유학사에서 맹자를 강조한 사람은 주자다. 맹자는 알다시피 ‘사람은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인간은 당연히 선하겠거니 생각했다. 그 영향으로 생각되는데 과거에 문자도를 보면 ‘효제충신예의염치’ 등 온갖 인간의 선한 도리를 강조하는 것만 적어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을 어귀에 ‘효제충신’을 돌에 새겨 놓은 곳이 많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착한 심성을 강조하는 나라는 없다. 일본은 문자도가 아예 없고 중국은 그저 장수와 복을 바라는 ‘수’(壽) 자와 ‘복’(福) 자가 대세를 이룬다. 또 조선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 도리를 강조하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같은 노래를 듣고 살았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은 주군의 복수를 하고 할복해 죽는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충신장’ 같은 이야기를 즐겨 들으며 살았다. 춘향이나 심청이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들은 분명히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에 맞는 문화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의 이런 모습을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창령사 터 출토 나한불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들의 모습은 한국인 그 자체였다. 수더분하고 착하기 짝이 없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나는 이 불상들을 보면서 이런 것은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앞으로 이런 선한 문화를 세계에 선사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 “이석기 석방하라”…서울서 ‘내란음모 사건’ 이 前의원 석방대회

    “이석기 석방하라”…서울서 ‘내란음모 사건’ 이 前의원 석방대회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구명위)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내란 선동 혐의로 구속돼 수감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구명위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 등 60개 단체는 이날 오후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를 열고 “석방이 정의다.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 “국민의 힘으로 감옥 문을 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약 2만명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자들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한 재판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이 전 의원 석방을 요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회장 최병모 변호사는 “(이 전 의원의) 재판 내용을 보면 완전히 조작된 사건”이라면서 “1964년 인민혁명당 사건,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똑같이 전혀 실체가 없는 내용을 조작해 내란 선전·선동으로 처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새 정권이 수립됐음에도 아직 이 전 의원이 감옥에서 수형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성토했다.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은 지난달 이 전 의원 등 7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최 변호사는 “법원이 아직 아무런 답변도 하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재심 심리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갈라진 조국을 하나로 잇고 더는 비극적인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며 평화를 부르짖던 국회의원이 감옥에 갇힌 지 7년째”라면서 “양심과 정의,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투쟁에 100만 조합원들의 힘을 모아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구명위는 이날 오전 이 전 의원이 복역하고 있는 대전교도소 앞에서 ‘자주 평화 정치인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를 열었다. 이 전 의원의 내란 선동 사건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2013년 이 전 의원이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모임에서 ‘한반도 전쟁에 대비해 국가 기간시설의 파괴를 위한 준비를 하자’는 등의 발언을 했다며 “내란을 음모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이 전 의원이 지하혁명 조직(Revolutionary Organization, RO)을 주도하면서 대한민국 체제전복을 목적으로 합법·비합법, 폭력·비폭력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른바 ‘남한 공산주의 혁명’을 도모했다는 혐의로 고발했다. 또 이 전 의원을 형법상 내란 음모와 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 전 의원은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 받고 수감됐고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해산심판 결정에 따라 2014년 12월 강제 해산됐다. 1심 재판부는 2014년 2월 이 전 의원에게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내란죄를 저지르기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으로 이 전 의원의 형량을 낮췄고 2015년 1월 대법원은 이를 최종 확정 판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는 화제의 책이 있다.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이다. 개봉 예정 영화 ‘나랏말싸미’의 원안이라 주장하기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혜각존자 신미스님이란다. 그는 나옹, 무학으로 이어지는 여말선초의 불교 선맥을 잇는 함허의 제자이고 산스크리트어의 대가였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참여한 1등 공신이란다. 15년 세월, 연구와 집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세상에 출현한 박해진 작가. 저자는 “훈민정음은 철저하게 백성과 뜻을 함께하는 바른 소리이자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고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이란다. 작가와 신미와의 동행(同行)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대하드라마의 역사 현장에 우리는 함께한다. 편집자 주-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렇게 배웠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창제가 아니라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음을 이 책을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신미가 나고, 출가하고, 정진했던 곳을 15년간 순례하며 그의 행적을 따라 ‘조선왕조실록’ 속의 신미 관련 기록을 빠짐없이 확인했다. 집현전 학자들의 문집도 확인하며 숨은그림찾기를 거듭했다. 훈민정음은 신미가 쌓아 올린 9층 목탑이다.” -신미스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2001년 겨울, 덕수궁 중화전 해체 현장에서 함께 손과 발을 섞던 김덕문 박사(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실장)가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이 아프다. 해체하기 전 옛 장인이 남긴 모습을 기록해 달라.”며 부탁했다. 며칠 뒤 법주사에 내려갔다. 주지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글쟁이가 카메라를 들고 와? 부처님 집 잘 기록하게.”라며 요사채 한 칸을 내주었다. 대웅보전의 안팎을 드나들었다. 마지막 날, 법당의 노보살이 언 몸 녹이라고 차 한 잔 건네며 말했다.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 스님이 복천암에 머물렀는데….” 천둥, 번개가 내 머리를 치고 들었다. 금시초문이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마음 한 켠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숨겨두었던 꿈의 첫 장면이 등 뒤로 눈송이가 되어 파고들었다. 파릇파릇한 첫사랑, 첫눈이었다. 대웅보전의 대들보와 기둥, 마지막으로 남은 주춧돌을 찍으며 한순간도 노보살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복천암으로 올라갔다. 복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신미의 길을 떠올렸다. 길은 휘어지고, 이어졌다. ‘세종실록’을 따라갔다. ‘뭐야, 훈민정음과 신미는?’이라고 날마다 물었다. 답은 한길이었다. ‘찾아봐, 거듭. 자랑질하지 말고….”-신미스님은 누구인가. “신미(1403∼1480)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이다. 몰락한 유학자 집안의 자제로 불가에 입적하여 무학의 법맥을 이은 함허당(1376∼1433)의 제자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스님이다. 신미가 없었다면 한글도 없었다.” -신미 연구는 어떻게 했나. “시로 등단했지만, 서랍 한쪽에 소설을 쓰겠다는 바람을 쟁여 두고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신미의 자료를 끝까지 찾아나선 끝에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썼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신미가 만들고, 번역한 책을 남김없이 구해 읽었다. 신미는 내가 옆길로 빠질 때마다 미혹의 길을 끊었다. 전국의 헌 책방을 순례했다. 관련 책을 찾아내면 끝까지 읽었고, 읽고 나면 다음 책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로 왔다. 신미의 행장을 정리한 비문(碑文)은 남아 있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 영인본을 사서 일일이 신미 관련 기사의 원문을 입력하며 다시 번역하고, 거듭 읽었다. 15세기에 간행된 학자들의 개인문집을 남김없이 뒤졌다. 재인용은 없다. 신미가 머물렀던 절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정리된 초고는 15000매, 사진은 수만여 장이다. 1374개의 주를 달았다. 실증적 자료조사의 결과물이다. 흩어진 기록을 짜 맞추어 읽으며 신미는 분명 역사라고 확신했다. 소설은 미완성으로 두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행간을 메꿔 나가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간행했다.”-복천암, 해인사, 송광사, 현등사를 자주 찾았다고 들었다. “속리산 복천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가평 현등사는 훈민정음과 뗄 수 없는 절이다. 법주사에 머무는 5년 동안 새벽예불이 끝나면 복천암의 신미와 학조의 부도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현등사는 세종이 승하하고 난 뒤 문종이 ‘의금부 군사들은 신미가 주석하는 절에는 침범하지 말라’는 명을 내린 기사를 실록에서 읽고 찾아간 절이다. 그곳에서 함허당의 부도를 만났다. 신미가 출가 초기에 스승을 모시고 불사를 한 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절을 10년 넘게 들고 나며 신미와 수양과 효령대군 등 왕실과의 관계를 찾아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미 평전과 소설을 쓰기 위해 연구와 병행해서 현지 답사를 이어갔다. 신미의 일대기를 검증할 연구는 단편적이었다. 자료를 거듭 읽고, 찾았지만 앞과 뒤를 이어가기에는 빈 곳이 많았다. 신미와 훈민정음의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 전국의 고서점을 찾아다녔다. ‘조선왕조실록’ 영인본부터 함허당이 쓴 ‘금강경오가해설의’ 등 관련 책 2000권을 아낌없이 사서 읽었고, 관련 논문 1000편도 주제별로 분류해서 읽었다. 가난한 살림에 책값과 현장 답사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원고를 들고 형난옥 대표를 찾았을 때는 그는 좀더 규모있는 출판사가 출판해야 할 원고라고 했다. 형대표는 원고를 심청이 젖동냥하듯 다른 출판사에 소개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출판에 응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벼랑 끝을 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형대표에게 무턱대고 책만 출간해주면 세종대왕 동상 앞에 좌판을 펼치고 팔겠다며 깡을 부렸고, 형대표가 손수 전 과정을 편집하여 출간될 수 있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보람찬 일은. “신미의 전 생애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고, 책의 출간은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주었다.” -집필하며 깨달은 것은. “통(通)이다. 간절하면, 사무치게, 알아 뚫린다. 소용돌이치더라도 꼭 할 일은 하고 가야 한다.” -훈민정음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훈민정음은 위와 아래가 없는 보편성,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었다. 백성의 알지 못하는 절대고독과 불통의 벽을 허문 혁명의 도구다. ‘무소유의 오래된 미래’다. 훈민정음은 ‘앎’이다. 알면 남에게 기대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뭘 하고자 했는가. “백성이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소통만이 나라의 평안을 이끄는 지름길이다. 조선의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은 기득권이 가진 묵살과 배신의 벽을 허무는 장도리이고, 얽매임 없이 함께 꿈꿀 수 있는 불꽃의 바다다. 편민(便民·백성을 편하게 함) 정신의 실천이다.” -저자에게 신미는 어떤 분인가. “동행(同行)이다. 텅 빈 길에는 위, 아래가 없다.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주인은 훔치지 않고 흉내 내지 않는다. 세종은 제국을 꿈꾼 조선의 유일한 왕이다. 신미는 제왕의 곁에 온 또 다른 부처였다. 조선을 화엄의 바다로 당겨가려는 강렬하고 간절한 서원(誓願)이 둘을 함께 하게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집중했고, 고통을 감내했다. 새로 만든 문자 훈민정음은 ‘제국의 선언’이다. 신미는 백성이 주인 되는 제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훈민정음과 세종, 신미를 위한 향후 계획은. “집현전 학자와 기득권 세력들이 백성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쌍수를 들고 막는 바람에 만들지 못했던 책들을 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써서 나녹과 출간해 갈 계획이다. ‘아롬’은 언제나 리더, ‘모롬’은 언제나 머슴이다.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을 해나갈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 출판사와 함께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데. “영화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원안으로 한다는 약속이 있어 자문에도 응했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15년간 치열한 취재, 연구와 장인정신으로 출판한 크레딧을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다. 당연한 요구다. 왜 그것을 가로채려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사에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 환멸을 느낀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부산교육청.. 학부모 토크콘서트 8일 개최

    부산시교육청은 8일 ‘2019학년도 찾아가는 교육정책 서비스 - 참여중심 학교문화를 위한 학부모 토크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날 동래구 농심호텔 허심청 대청홀에서 오전 10시부터 낮12시30분까지 진행되며 학부모 200여명이 참석한다.교육부가 주최하고 부산시교육청이 주관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초?중등 교육혁신의 기반이자 최우선 핵심과제인 ‘혁신학교 운영 사례’를 학부모들에게 소개한다. 참가자들은 ‘미래교육과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전문가 특강과 부산다행복교육네트워크 소속 서천초 학부모의 학교 참여 사례발표에 이어 20개 분임으로 구성한 사람책 도서관 형식의 토론을 할 예정이다. 사람책 도서관은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사람책이 되어 독자와 만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장을 말한다. 사람책의 주요 주제는 학교와 교사를 믿고 이해하는 ‘다행복부모!’, ‘엄마, 학교에서 놀다!’, ‘학부모가 하는 자치활동!’, ‘엄마도 다행복학교에서 아이와 함게 성장해요!’ 등이 있다. 김석준 시 교육감은 “이번 토크콘서트는 학부모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학교 교육활동에 참여 하는 등 참여 중심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이석기 등 통진당 의원 7명, 재심 청구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9년형이 확정된 이석기전 의원 등 통합진보당 의원 7명이 5일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불거진 뒤 ‘재판거래’ 의혹이 있던 사건들 가운데 첫 재심 청구다.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은 이날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공안 검찰뿐 아니라 사법부도 정권 유지를 위해 심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이 전 의원 사건은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 이뤄진 대표적인 재판거래였다”고 재심 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내란선동’ 이석기 재심청구…“잘못된 판결 바로잡아야”

    ‘내란선동’ 이석기 재심청구…“잘못된 판결 바로잡아야”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형을 확정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법 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은 5일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 앞에서 이 전 의원 등 통진당 관계자 7명에 대한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호인단은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잘못된 판결은 바로잡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사건이 헌법과 법, 그리고 양심에 따라 다시 다뤄질 때 우리 사회는 한 발 더 전진하게 될 것”이라며 재심청구 배경을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졌던 사건을 두고 제기된 첫 재심청구다.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다른 6명은 만기 출소했으나, 이 전 의원은 아직 수감 중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 도움을 얻기 위해 전략 문건을 작성하면서 ‘사법부가 청와대 국정 운영에 협조한 사례’ 중 하나로 이 전 의원 사건을 거론했다. 법원행정처는 또 2014년 8월 서울고법이 내린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 판결의 내용과 의미 분석’ 등의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은 무죄·면소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 수사 기관이나 법관이 직무 처리 과정에서 위법을 저질렀다는 게 명확한 경우 등을 재심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도 유족이 재심 청구한다

    제주4.3 행방불명희생자도 유족이 재심 청구한다

    제주4·3 생존수형인에 이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 청구에 나선다.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는 3일 제주지방법원에 행불인수형자에 대한 재심청구서를 제출한다고 2일 밝혔다. 행불인수형인은 1948년 4·3사건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 갔지만 이후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다. 1949년 7월까지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4·3사건 수형인은 2530명이며 이중 상당수가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됐다. 이번 소송은 행불인수형자의 희생자의 93살 아내를 비롯해 자녀 8명, 손자 1명 등 모두 10명의 유족 대표가 먼저 진행한다. 재심의 특성상 청구인은 직접 재판에 참석해 피해사실을 증언해야 하지만 행불인수형자의 경우 재심 대상자들이 생존하지 않아 유족들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김필문 제주4·3희생자유족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은 “늦었지만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심에 나서게 됐고 10명이 우선 재심을 청구하고 이후 진행 상황을 보며 소송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생존수형인 18명이 제기한 재심에서 1948년과 1949년에 행해진 제주도 계엄지구 군법회의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한국 발레리나의 닮고 싶은 무용수 1위 누네즈 방한…발레 갈라 무대 오른다

    한국 발레리나의 닮고 싶은 무용수 1위 누네즈 방한…발레 갈라 무대 오른다

    국립발레단 퇴단 앞둔 김지영도 이재우와 ‘스파르타쿠스’ 선보여영국 로열발레단을 대표하는 발레리나 마리아넬라 누네즈가 발레 갈라 무대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누네즈는 오는 7월 13~14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발레 오브 서머 나이트’ 무대에서 ‘백조의 호수’와 ‘라 바야데르’ 등 주요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기완·홍향기 경쟁 발레단원 공연 아르헨티나 출신의 누네즈는 로열발레학교를 거쳐 1998~99년 시즌 로열발레단에 정식 입단한 후 20년간 전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기량을 선보여 온 무용수다. 우리나라 발레리나들에게도 ‘닮고 싶은 무용수’ 1순위로 꼽히는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의 입단 20주년을 기념해 로열발레단이 지난해 2월 마련한 공연에서는 커튼콜 때 객석의 팬들이 그를 향해 던지는 꽃으로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특히 그가 쿠바 출신의 전설적인 무용수 카를로스 아코스타와 로열발레단에서 함께 한 작품들은 발레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아코스타와 누네즈가 함께 타이틀롤을 맡은 ‘돈키호테’와 ‘고집쟁이 딸’ 등은 영상물로도 제작돼 더욱 유명하다. 누네즈가 이번 내한에서 함께 무대에 설 파트너는 같은 발레단 소속 바딤 문타기로프다. 그는 2013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2013년과 2019년 최고 남성무용수상을 수상했다. 이번 ‘발레 오브 서머 나이트’에서는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로 부임하며 국립발레단을 퇴단하는 발레리나 김지영이 프리랜서로 처음 무대에 오른다. 그는 국립발레단에서 환상의 호흡을 맞춰 온 수석무용수 이재우와 ‘스파르타쿠스’ 중 ‘아다지오’ 등을 선보인다. ‘아다지오’는 스파르타쿠스와 부인 프리기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2인무로 묘사한다. 이 밖에 김지영의 ‘빈사의 백조’ 독무 무대도 예정돼 있다. 김지영의 국립발레단 마지막 무대인 6월 23일 ‘지젤’ 공연은 이미 매진돼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관객들은 이번 무대를 통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김기완과 홍향기가 함께 춤을 추는 흔치 않는 무대도 예정돼 있다. 경쟁 관계인 두 단체 무용수들이 같은 작품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으로, 이들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 발레인 ‘심청’ 가운데 ‘문라이트 파드되’(달빛 2인무)를 선보인다. ●한서혜·이수빈 등 해외파도 무대에 이 밖에 미국 보스턴 발레단에서 활약 중인 한서혜와 이수빈,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예브게니아 오브라초바와 아르테미 벨리야코프 등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의 무대도 예정돼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백령의 바다는 북녘을 에돌지 않는다

    백령의 바다는 북녘을 에돌지 않는다

    평화가 흐르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대한민국 지도를 볼까요. 황해도 바로 아래 백령도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는 남한 땅임에도 북한과 지척입니다. 인천에서 191㎞가량 떨어져 있지만 황해도 장산곶과는 고작 13㎞ 거리이지요. 백령도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꼬박 4시간을 달려야 합니다. 이것도 상황이 나아진 것입니다. 쾌속선이 있기 전에는 인천에서 11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섬이었습니다. 가는 데 드는 수고로움은 섬의 비경을 마주하는 순간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과 연이은 감탄사로 바뀝니다. 바다에서 솟아난 기암절벽의 행렬은 장대하고, 색색의 콩돌이 달그락거리는 해변은 한없이 어여쁩니다. 미려한 자연만큼 여운을 남기는 건 섬 어디서나 시야에 걸리는 북녘입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애써 찾지 않아도 됩니다. 어딜 가나 ‘저 앞이 북한’이랍니다. 북한 앞이라고 에돌아 흐르지 않을 바다를 보며 두 동강 난 땅이 하나가 될 날을 그렸습니다.“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래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 단추를 누르시면 안전 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두무진에 놓인 탈북자를 위한 안내판이다. 백령도와 북한이 얼마나 인접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육지부와 13㎞ 떨어진 섬, 서울까지의 직선거리가 205㎞인 반면 평양까지의 직선거리는 150㎞인 섬 백령도. 섬은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다가 지금은 인천 옹진군 소속이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섬의 인구 분포는 주민 반, 군인 반이다. 그렇다고 삭막한 분위기는 아니다. 백령도 자연이 품은 절경 때문이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 효녀 심청의 이야기가 깃든 심청각, 동글동글한 콩돌이 깔린 콩돌해변 등 보석 같은 풍광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바다는 대관절 얼마나 깊고 넓은 자연인가. 얼마나 깊어야 제 안에 이리도 큰 바위를 품을 수 있는가. 그것도 한 폭이 아니라 수십 폭을 말이다. 두무진은 백령도 최고의 비경이다. 해안가에 거대한 바위기둥이 4㎞ 길이에 걸쳐 늘어서 있다. 그 모습이 머리를 맞댄 장군들을 닮았다 하여 ‘두무진’(頭武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시대 광해군 때 이대기는 두무진을 보고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기록했다. 오늘날에도 백령도를 찾은 이들에게 언제나 핫플레이스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연회장 뒤에는 두무진을 그린 회화가 걸리기도 했다. 두무진의 탄생은 약 10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다에 쌓인 사암층이 열과 압력을 받아 규암으로 변했고, 지층이 지표면에 노출된 후에는 파도와 비바람에 깎이고 쓸리며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기암은 붉은빛 도는 주황색, 흰색, 회색 등 색이 다양한데 풍화가 진행된 부분은 주황색, 새의 배설물이 묻은 부분은 흰색을 띤다. 두무진을 둘러보는 방법은 두 가지. 유람선 투어와 트레킹이다. 같은 풍경을 배에서 보느냐 두 발로 걸으며 보느냐의 차이인데, 각기 다른 감흥이 있다. 기암절벽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려면 유람선이 제격이다. 배를 타는 시간은 40분 남짓. 망망한 바다에서 기암절벽이 위용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에서 감탄이 터진다. 첩첩으로 연이어진 기암을 보노라면 배 아래가 육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30~40m 높이의 기암절벽 행렬은 길게 뻗은 산맥 같다. 봉우리가 뾰족한 산은 바다 위에 끝없이 이어지며 폭이 긴 산수화를 그린다. 선대암, 형제 바위, 코끼리 바위, 촛대 바위 등 기암은 형태에 따라 이름도 다채롭다. 볼거리는 더 있다. 운이 좋으면 코끼리바위 근처부터 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을 볼 수 있다. 백령도에는 현재 30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이 서식한다. 중국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4월쯤 서해의 먹이를 찾아 백령도로 남하하니, 이즈음부터 점박이물범을 마주할 확률이 훌쩍 높아진다. 유람선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두 번을 본대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장대함이므로.트레킹을 하며 보는 두무진은 그림에 빗대자면 세밀화에 가깝다. 유람선에서 멀찌감치 바라봐야 했던 풍경을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다. 두무진 포구에서 전망대까지 15분 안팎이니 가볍게 다녀오기 좋다. 두무진 포구의 횟집을 등지고 왼쪽 자갈길을 따라가면 통일기원비를 지나 전망대에 닿는다.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 데다가 기암절벽을 다각도로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해안가로 난 계단을 내려가면 바위기둥에 아예 둘러싸이게 된다. 가까이에서 보면 시루떡 같은 겹겹의 지층이 더욱 선명하다. 기암 하단부에는 파도에 깎여 생긴 천연동굴이 여럿이다. 청청한 바다와 압도적일 정도로 기기묘묘한 기암절벽, 두무진을 신의 작품이라 찬탄한 이대기의 심정이 헤아려지는 순간이다. 두무진과 황해도 서쪽 끝 장산곶 사이의 거리는 12㎞. 바다에 몸을 박은 바위는 12㎞ 거리에서 북녘을 바라본다. 오랜 세월 한결같기만 한 바위도 파도에 쓸리며 모습을 조금씩 달리한다. 막연하게만 보이는 통일도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백령도를 내려다보면 새 한 마리가 장산곶을 향해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란다. 통일의 꿈도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날이 있을 것이다.●효녀 심청의 이야기가 어린 곳, 심청각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간 심청. 백령도는 황해도 해주와 함께 ‘심청전’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고, 백령도 남쪽에 환생한 심청이 타고 온 연꽃이 바위가 되었다는 연봉바위가 있다. 심청각은 인당수가 보이는 백령도 북동쪽에 자리한 전시관이다. 앞마당의 효녀 심청상(왼쪽 아래 사진)은 심청각의 대표 포토존. 뱃머리에 선 심청은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기세다. 배 아래의 파도는 거칠게 일렁인다. 실제로 인당수는 백령도 사람들에게 예부터 물살이 센 곳으로 악명 높다고. 고은 시인은 ‘백령도에 와서’라는 시에 “여기 와/ 저 심청 인당수의 수평선을 보아라”라고 남긴 바 있다. 심청각 앞은 시야가 탁 트여 파란빛 바다 너머 올곧은 수평선과 장산곶 일대가 눈에 담긴다. 심청각 내부는 아담하지만 심청전 관련 자료를 알차게 모았다. 판본에서 활자본으로 발전한 심청전 소설, 심청전을 주제로 한 국악과 영화 대본, 소설의 주요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등을 전시한다. 백령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해변이 있다. 사곶해변과 콩돌해변이다. 사곶해변이 이름난 건 모래사장 때문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여느 모래사장과 다르다. 여러 명이 폴짝 뛰어도 끄떡없고 자동차가 달릴 만큼 단단하다. 얼마나 견고한지 2㎞ 길이의 사빈(모래가 평평하게 퇴적돼 만들어진 곳)은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비행장으로 사용했을 정도다. 해변은 규암 가루가 촘촘하게 쌓여 만들어졌다. 규암 가루 사이의 틈이 워낙 작아 이토록 단단한 모래층이 형성됐다고. 이러한 지질의 해변은 이탈리아의 나폴리해변과 백령도의 사곶해변, 전 세계에 단 두 곳뿐이다. 안타깝게도 모래사장 끝부분은 갯벌화가 진행 중이다. 간척 사업을 하며 주변 조류의 흐름이 변했고, 바다로 밀려가지 못한 퇴적물이 모래사장에 쌓이며 갯벌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백령도에만 있는 사곶해변과 콩돌해변 사곶해변에서는 잠시 시간을 내어 모래의 단단함을 느껴 보길 권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로 모래사장을 달려도 좋고, 해변 산책을 즐겨도 좋다. 금가루를 꾹꾹 눌러 다진 듯한 모래사장이 발에 기분 좋은 묵직함을 전한다. 콩돌해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콩처럼 작은 자갈이 가득하다. 콩돌은 파도와 바람이 보듬은 보석이다. 규암이 잘게 부서지고 오랜 시간 파도에 쓸리기를 거듭하며 둥글게 변한 것이다. 하얀색, 불그스름한 갈색, 보라색 등 색색의 올망졸망한 돌은 바라만 봐도 어여쁘다. 파도가 훑고 간 것들은 물을 머금어 더욱 반짝인다. 콩돌해변의 묘미는 맨발로 콩돌 위를 걷는 데에 있다. 콩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둥글게 살고 싶다는 소망도 품게 된다. 날 세우는 법이 없는, 밀려오는 파도에 제 몸을 내주는,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콩돌처럼 말이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32) →가는 길: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타면 소청도와 대청도를 경유해 백령도에 도착한다. 오전 7시 50분, 8시 30분, 오후 1시, 하루 세 차례 운행하며 백령도까지 4시간 정도가 걸린다. →맛집:백령도는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 황해도에 속했던 터라 황해도식 냉면집이 많다. 사곶냉면(836-0559)은 백령도의 대표 냉면 맛집이다. 슴슴한 면수에 메밀면을 말아내는 데,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맞추는 게 특징이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합친 반냉면이 잘나간다. 횟집은 두무진 포구에 몰려 있다. 해당화횟집(836-1448)은 자연산 활어회 전문점이다. 짠지떡은 백령도 별미다. 메밀과 찹쌀을 섞은 피에 김치와 굴을 소로 넣고 반달 모양 만두처럼 빚는다. 부드러운 피와 아삭한 김치의 식감이 조화롭다. →잘 곳:아일랜드캐슬(836-6700)은 백령도용기포신항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다. 숙소 앞 대로변에 대형마트, 주유소, 빵집 등이 모여 있다. 백령하늬해변펜션(010-8998-0025)은 심청각과 가까우며 바비큐장, 노래방, 족구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 ‘미몽’·‘수업료’ 등 발굴… 식민지 조선 담은 극영화는 근대 그 자체

    ‘미몽’·‘수업료’ 등 발굴… 식민지 조선 담은 극영화는 근대 그 자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영화는 모두 150편 정도(무성영화 95편, 발성영화 50여편)로 기록된다. 이는 대체로 민간에서 제작한 극영화들로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문화영화나 뉴스영화는 제외한 수치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영상자료원은 해방 이전 조선영화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을까. 1930년대 영화가 6편(무성영화는 ‘청춘의 십자로’(1934) 단 한 편), 1945년까지가 10편 정도로 일제강점기 컬렉션은 거의 비어 있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국립 필름 아카이브 기능을 담당하는 한국영상자료원은 1974년에야 설립됐고, 그 이전에는 한국영화 필름을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대접하고 보존할 여력이 없었다. 특히 조선영화 필름들은 해방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사라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를 찾으려는 한국영상자료원의 노력은 1980년대 말부터 성과를 보였다. 1989년 일본의 도호영화사로부터 ‘망루의 결사대’(이마이 다다시 감독·1943년), ‘젊은 모습’(도요타 시로 감독·1943년), ‘사랑과 맹세’(최인규 감독·1945년) 등 3편을 수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일본제국주의 말기의 국책영화라는 이유로 한동안 공개조차 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는 러시아 국립 필름아카이브인 고스필모폰드에서 조사가 진행돼 1998년 ‘심청’(안석영 감독·1937년)의 일부 2롤과 문화영화 ‘국기 아래 나는 죽으리’(1939) 등을 찾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2004~2006년 중국 베이징의 중국전영자료관을 통해서다. 1930년대 작품으로 ‘미몽’(야마자키 후지에·양주남 감독·1936년), ‘군용열차’(서광제 감독·1938년), ‘어화’(안철영 감독·1939년) 등 3편을, 1940년대는 ‘집없는 천사’(최인규 감독·1941년), ‘지원병’(안석영 감독·1941년), ‘반도의 봄’(이병일 감독·1941년), ‘조선해협’(박기채 감독·1943년), ‘병정님’(방한준 감독·1944년) 등 5편을 찾았다. 2000년대 중반의 3년 사이 8편의 일제시기 극영화가 한꺼번에 수집됐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난 2014년에는 다시 중국전영자료관을 통해 ‘수업료’(최인규 감독·1940년)를 찾기도 했다. 중국전영자료관에는 왜 온전한 조선극영화들이 보존돼 있었을까. 중국은 일제의 패전과 동시에 만주 등 일본의 점령지에 있던 필름을 신속히 모았기 때문이다. 한편 2009년에는 ‘그대와 나’(허영 감독·1941년)의 일부 2롤이 일본의 국립필름아카이브로부터 수집되기도 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조선영화를 대면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한국인이 만들어온 근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발굴작 중 대다수는 친일국책영화라는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않고 식민지 경험이라는 부끄럽고 아픈 역사가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영화는 서구와 일본 사이에서 조선인들이 스스로 개척한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필자의 의견을 말하자면 해외 아카이브에서 조선영화를 찾을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특히 1930~40년대 발성영화를 찾았던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나운규의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담긴 ‘아리랑 제3편’(1936), 전창근이 연출하고 조선영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복지만리’(1941) 같은 작품은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이소연 “악역 후유증, 눈빛이 달라져”[화보]

    이소연 “악역 후유증, 눈빛이 달라져”[화보]

    MBC ‘용왕님 보우하사’로 오랜만에 안방극장을 찾은 배우 이소연이 bnt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그는 키마, 위드란(WITHLAN), 롱샴, 프론트(Front) 등으로 구성된 콘셉트로 봄을 담은 듯한 옐로우 플라워 투피스로 여성스러움을 뽐내는가 하면, 레이어드 패션으로 로맨틱 시크 무드를 풍겼다. 이어 여배우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실크 소재 투피스를 입어 이소연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서 ‘용왕님 보우하사’를 선택했다던 이소연.그는 “심청이는 정말 밝은 캐릭터다. 아무래도 긴 작품이다 보니 그 에너지와 기운을 오래 유지하면서 연기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끌렸다”며 이유를 전했다. 이어 촬영 현장도 매우 좋다고. “아무래도 대기 시간이 길어질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연기자들끼리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는 예능에서 췄던 ‘오 나나나’ 춤을 함께 추기도 했다”며 웃으며 전했다. 실제로 이소연은 작품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본인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어떤 작품이든 동료들과 서로 의지하고 북돋아 준다고. 이어 “과거 ‘동이’ 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아직 연락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전했다. 이소연에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냐고 질문하자 “기준이라기 보다는 나에게는 없는 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때 정말 재미있다. 진짜 나는 화가 날 때 혼자 삭이는 스타일이라면, 악역은 참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평소에 못 해본 것을 연기를 통해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악역 후유증은 없냐는 물음에는 “MBC ‘동이’ 장희빈 역이나, SBS ‘천사의 유혹’ 때에는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열심히 촬영하다가 문득 거울을 봤는데 내 눈빛이 달라졌더라. 내가 아는 내 눈빛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눈빛이 있었나 하고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말 주변이 좋지 않아 말로 재미있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던 그는 MBC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등 리얼 예능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피부, 몸매 관리 방법을 묻자 “피부는 홈케어를 꾸준히 한다. 1일 1팩으로 관리하고 물도 많이 마신다”며 “몸에 살이 붙을 것 같다 싶으면 일단 굶는다. 이제는 익숙하다. 때가 됐으니까 굶어야지 라는 생각이다”고 말을 이었다. 인생 멘토가 있냐고 묻자 “지진희 선배님이 정말 멋있다. 연기자로서 멋있기도 하지만, 사람 자체가 멋있는 것 같다. 하시는 행동, 생활 패턴을 보면 바르고, 성실하고, 멋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따로 없다고. 당연히 도와야 하는 거라 생각하고 틈틈이 봉사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20대의 이소연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어떻냐고 말하자 “20대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일만 열심히 했다면 이제는 여유가 생기면서 나에게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다”며 “다른 것도 바라보면서 걸어갈 수 있는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신뢰가 가는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다던 이소연. “‘이소연 나오면 재미있겠다’라는 기대감을 주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며 “내가 성실하게 일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식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순하고 착한 얼굴은 물론 누구보다 독하고 야망 있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공존하는 이소연. 이 때문일까 선한 역-악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 필모그라피를 자랑한다. 추후 이름 하나만으로 기대감 주는 배우로 자리잡을 그의 미래를 응원하는 바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서울시의회 오한아 의원 “서울시 국악 정책, 다양한 접근방안 마련해야”

    서울시의회 오한아 의원 “서울시 국악 정책, 다양한 접근방안 마련해야”

    10일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오한아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노원1)의 주관으로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사)전통공연예술연구소와 함께 ‘2019년 서울특별시 국악발전 및 공연활성화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열린 토론회는 서울시의 국악 정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전통예술, 문화콘텐츠, 관광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서 눈길을 끌었고 각 분야 종사자 및 관련자들의 참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개회사를 맡은 김창원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전통예술 차원의 획일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문가를 모시게 된 만큼 서울시의 국악정책에 진일보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고 축사를 맡은 서울시의회 신원철 의장은 “오늘 토론회가 시민과 서울시의회, 서울시, 지역사회, 전통 예술인 모두가 힘을 합쳐 국악 발전 및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이 개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을 맡은 노원문화예술회관 김승국 관장은 “서울시가 국악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천명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며, “향후 국악정책 전문가와 민관이 함께하는 자문협의체 구성이 시급하며 각 산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의 국악 관련 기관과 단체들을 통합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는 서울시의 국악정책을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먼저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이형환 교수는 “국악 분야는 공공재적·가치재적 재화로서 정부 개입과 지원이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라며 “보존과 전승뿐 아니라 발전과 창출이라는 접근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배재대학교 관광축제대학원 정강환 원장은 국악의 구체적인 관광상품화 방안을 소개하며 “국악을 새로운 형태로 디자인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4차산업과 더불어 멀티미디어·플랫폼을 활용한 전략 구성으로 “평소 접하기 어려운 국악의 환경과 지루하다는 인식 완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유동환 교수는 “우리나라의 법제 체계가 국악을 산업으로 볼지, 예술로 볼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법적·행정적으로 국악을 포함한 전통공연예술을 통합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관련 통계가 2013~4년 이후로 멈춰있는 것은 국악이 문화 정책의 중심에서 관심 밖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경계했다. 토론자로 나선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강지현 문화예술과장은 “서울시가 올해부터 서울국악센터 연구용역 등 국악이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공격적으로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고 문화평론가이자 (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하응백 소장은 “국악의 새로운 콘텐츠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동극장 장석류 전통공연 제작PD는 “그동안의 정부 정책의 기조 및 예산의 물줄기가 장기적인 관점을 갖지 못했다”며 “정책과 예산이 유장하게 흘러가도록 인내심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한국문화재재단 김광희 국제교류팀장은 “국악 등 전통문화관광상품의 혁신적인 기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한국의집 심청전 사례를 소개했으며, 서울문화재단 임미혜 예술창작본부장은 “서울문화재단의 신규사업인 연희단 출범은 전통문화가 제도권 예술로 도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제1호 국악전공 서울시의원인 오한아 의원은 “무엇보다도 국악계의 모든 분들이 협치하고 동의할 수 있는 장기적인 관점의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그동안 서울시가 지원사업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면, 국악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환경 조성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2019년은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가 국악 발전을 위해 함께 뛰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향후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가 주기적으로 소통해 국악 분야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의정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헌재 “임신 초기 낙태 금지 위헌”…66년 만에 낙태죄 폐지

    헌재 “임신 초기 낙태 금지 위헌”…66년 만에 낙태죄 폐지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조항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1953년 제정된 낙태죄 규정은 66년 만에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따라서 임신 후 일정기간 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법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다. 270조는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자기낙태죄에 종속돼 처벌되는 범죄다. 동의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 심판에서는 태아의 발달단계나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에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다만 낙태죄 규정을 당장 폐지해 낙태를 전면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20년 12월 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낙태죄 규정은 전면 폐지된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A씨는 물론 낙태죄로 기소돼 재판 중인 피고인들에게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12년 헌재의 합헌결정 이후 기소돼 형사처벌된 사람들의 재심청구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은 단순 위헌결정과 달리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어 낙태죄 형사재판과 관련해 추가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찌질이” “둘이 사귀냐” 폭언·성희롱한 공공기관 간부 해임 정당

    법원 “지위 이용해 낮은 직급 인격권 침해” 부하 직원들에게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아 해임된 공공기관 간부가 징계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박성규)는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 부장으로 일하던 A씨는 2017년 공단 인사위원회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조직 분위기 저해 등의 사유로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 “부장 말이 법”이라고 강요하며 “찌질이”, “미친X”, “재수없다 퉤퉤”, “어휴, 또라이”, “작살 내버려야겠다, 싸가지 없는 XX” 등 모욕적인 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인턴들에게는 “알아서 하세요. 다음주부터 한 명씩 자르면 되죠”, “이 중 2명은 ‘가(최하)’ 평점을 줘서 잘라버릴 수 있다”는 등 지위를 이용해 압박하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여직원에게 “러브샷 하자고 하면 성희롱이냐”고 물으며 러브샷을 요구하거나 남녀 직원에게 공개적으로 “둘이 사귀냐”고 말한 것 등도 징계 사유로 꼽혔다. A씨는 공단 재심청구와 중앙노위 구제 신청이 모두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징계가 직원들의 일방 진술에만 의존했고, 행위에 비해 징계가 지나치게 무겁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공기관 직원도 높은 윤리의식과 성실, 품위유지 의무 준수가 요구되는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주로 직급이 낮은 신입이나 여직원,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을 상대로 인격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하는 등 괴롭힘 행위를 해 비위 정도가 중하다”며 “괴롭힘 대상이 된 직원들의 인격이나 정신적 건강, 근무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나운규(1902~1937)라는 존재와 ‘아리랑’(1926)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아니 한국영화사 전체를 관통해서도 가장 무게 있는 영화인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개봉한 지 90년도 훨씬 지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저 여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리랑’은 왜 훌륭한 영화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원로 영화인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신화화된 결과가 아닐까.‘아리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민족 영화라는 평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관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애초 나운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조선영화도 미국영화처럼 한번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이상 활동사진에 신기해하는 초창기 관객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활극적 볼거리와 속도감에 열광하는 영화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조선인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25 전쟁 시기까지 수십 차례 반복 상영되며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연 ‘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일본 신파를 극복하다 먼저 1920년대 전반기 조선영화계를 살펴보자. 조선 극영화의 시작은 ‘월하의 맹서’(1923)를 만든 윤백남의 역할이었지만 이후 조선영화를 주도한 감독은 윤백남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경손(1905~1977)이었다. 그는 고대소설을 영화화한 ‘심청전’(1925)으로 감독 데뷔해 이광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개척자’(1925)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조선영화 제작은 초창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춘향전’(1923), ‘장화홍련전’(1924), ‘운영전’(1925) 등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즉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활동사진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손은 일본영화를 모델로 삼아 상업적인 노선을 모색하는데 일본 신파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장한몽’(1926), 일본 시대극 영화를 참조한 ‘산채왕’(1926)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당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하던 조중환과 이경손이 함께 설립한 계림영화협회가 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 문화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영화 역시 ‘나의 죄’(己が罪)가 원작인 ‘쌍옥루 전후편’(1925), ‘새장 속의 새’(籠の鳥)를 각색한 ‘농중조’(1926) 등 일본 신파의 조선적 번안이 대세였다. 이처럼 연애비극이나 가정비극을 다루는 신파 서사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기본적 설정으로 안착하게 된다.나운규의 ‘아리랑’이 특별한 점은 일본 신파영화의 화법을 받아들인 시기에 등장한 영화였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어떤 의도로 만든 영화인지는 나운규의 운명 전 해인 1936년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제1집)라는 글이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양화(洋畵)를 보면 수(數)로는 서부활극이 전성시대요 또 대작연발시대다. 그리피스의 ‘폭풍의 고아들’(1921)을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더글러스의 ‘로빈 후드’(1922)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나운규가 미국영화의 “대작연발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한 나운규는 ‘아리랑’을 만들기 직전 선배 감독 이경손에게 “화나는데 서양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고, 어떻게 하면 “하품 나는 조선영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조선영화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아리랑’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서구영화의 창조적 수용 연출의 기회를 잡은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고안해냈다. 대중적 화법인 신파 양식을 기반으로 비극과 활극을 직조한 동시에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가장 핵심은 ‘아리랑’이 나운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다. 당시 “전 조선영화를 통하여 가장 우수한 장면”(‘동아일보’ 1926년 10월 7일자)으로 기록된 사막 장면은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한 나그네(나운규)가 여자(신일선)를 취하려는 악마 같은 상인을 살해한 장면은 주인공 영진(나운규)이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지주의 하수인 기호를 환상 속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정확히 반복된다. 광인의 내면세계를 일그러진 세트로 시각화해 보여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등 동시기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 작품의 인물 구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지주도 그 하수인도 조선인이라는 설정이지만 돈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본가 계급의 폭압적 행태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민족영화가 되었고,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아리랑의 실제 감독은 누구일까 ‘아리랑’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은 쓰모리 슈이치(한국 이름 김창선)라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의 실제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 시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조선영화인의 협업으로 구축되었던 조선영화 제작현장을 감안해야 한다.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사는 일본인 흥행사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인데, 그의 조카 사위 쓰모리 슈이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현대 영화의 프로듀서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조선키네마의 첫 번째 영화 ‘농중조’와 ‘아리랑’ 개봉 당시 감독 크레디트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문헌들은 두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조선영화인 이규설과 나운규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제작 현장에서 일본인이 감독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각본을 쓰고, 무성영화이지만 동작 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우들의 조선어 대사 연기를 지도한 것은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무성영화의 논리상 그들의 입에서 발성되어야 할 대사는 변사의 음성에서 들리게 된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면 쓰모리가 설령 크레디트상의 감독직을 맡았더라도 각본을 쓰고 실질적인 연출을 진행한 나운규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나운규는 계속해서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통해 ‘풍운아’(1926), ‘야서(들쥐)’(1927), ‘금붕어’(1927)라는 활극멜로드라마를 그의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세워 ‘사랑을 찾아서’(1928) 등 자신의 감독 및 주연작을 이어 나간다. ●조선 무성영화 황금기 이끌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이 이후 조선 무성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언급해야 한다. 먼저 지주와 소작민,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계급구도에 기반한 서사와 활극이 더 선명하게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이후 조선영화의 상업적 기준이 된 점이다. 또 일제 치하의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의 관념을 싣는 수단, 즉 계급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진영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카프 진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설가 심훈의 감독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8)는 단연 ‘아리랑’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달콤한 사이언스] 유전자 삽입했더니 앞 못 보던 생쥐가 심봉사처럼 눈 떴다?

    [달콤한 사이언스] 유전자 삽입했더니 앞 못 보던 생쥐가 심봉사처럼 눈 떴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은 들었던 한국 고전 ‘심청전’ 마지막 장면에는 앞을 못보는 심봉사가 죽은 줄만 알았던 딸 심청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앞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학자들은 심봉사가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 망막 이상 등 다양한 생물학적, 신체적 요인으로 앞을 보는 사람이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UC버클리) 분자세포생물학과, 로렌스버클리 미국립연구소, 오레곤대 의대, 코넬대 의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ETH Zurich) 생명공학과 공동연구팀이 망막 이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생쥐에게 광수용체 유전자를 삽입한 결과 시력을 되찾았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16일자에 실렸다. 전세계 55세 이상 성인남녀 10명 중 1명꼴인 약 1억 7000만명이 노인성 황반변성 현상을 앓고 있으며 170만명 정도는 40세를 전후해 시력을 잃을 수 있는 유전병인 망막색소변성증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망막색소변성증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다. 안경 형태의 인공망막 기술이 있지만 사용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력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장비 자체의 비용이 비싸다. 유전적 치료법들도 시도되고 있지만 망막색소변성증의 원인이 되는 유전적 돌연변이만도 250개 이상이 되기 때문에 쉽지 않다.이런 돌연변이 유전자가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를 공격해 빛을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시력을 완전히 잃더라도 10% 정도의 망막과 망막신경절 세포 일부가 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생쥐실험을 통해 시각정보를 받아 뇌로 전달하는 신경세포인 망막 신경절세포 90%를 회복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팀은 동물의 생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무해한 바이러스(아데노 관련 바이러스)에 생명공학적으로 변형시킨 녹색광 수용체를 실어 생쥐에게 주입했다. 그 결과 한 달 뒤 생쥐들은 일반 생쥐와 마찬가지로 장애물을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하고 빛 자극에도 반응하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일단 사람에게도 이 같은 치료법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에우드 이사코프 UC버클리대 교수는 “이번 기술이 사람에게도 적용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망막색소변성증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출 수 있을 것”이라며 “시력을 잃어 빛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진 사람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 봄,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봄, 그 섬에 가고 싶다

    요즘 섬을 주제로 하는 TV프로그램이 뜨면서 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섬은 관광 대상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 체험과 힐링 공간, 최근 유행하는 백패킹의 주요 코스로 인식돼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인천 옹진군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섬으로만 구성된 지자체다. 사람 사는 섬이 25개며, 무인도까지 합치면 딱 100개다. 인천항에서 뱃길로 1∼2시간이면 찾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한데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경관도 뛰어나 기존에 유명세를 타는 서해와 남해의 섬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옹진군 섬을 다녀간 이들은 대체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경치가 좋다”는 말을 남긴다. 접경지역 특성상 아직 사람들의 손이 많이 타지 않아 다른 관광지에서 느낄 수 없는 묘미와 정갈함이 배어 있다. 대부분 섬은 배에 차를 싣고 갈 수 있어 섬 관광의 아킬레스건인 교통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장정민 옹진군수는 7일 “봄 관광철이 다가오면서 섬 관광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려는 사람들에게 올해는 옹진군 섬을 찾아줄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도·시도·모도, 연도교로 연결돼 도보여행신도·시도·모도 육지화된 영종도 바로 위에 있는 신도는 삼목선착장에서 뱃길로 10분 거리에 있다. 이 때문에 1시간에 한 번씩 다니는 배 시간을 잘 맞추면 서울 서부권에서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시도와 모도는 신도와 연도교로 연결돼 있어 걸어서도 갈 수 있다. 이 섬들은 도시화된 영종도와는 다른 옛 섬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특별히 유명한 관광지는 없지만 그게 오히려 매력이다. 갈매기가 한가로이 날고 섬 주변에 오염되지 않은 갯벌이 많아 가족과 함께 찾기에 안성맞춤이다. 신도~시도~모도를 오가는 도보여행은 바다를 끼고 이뤄져 육지 둘레길과는 다른 멋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교량은 지난 1월 정부에 의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으로 결정됐다. 이로 인해 교량 조성이 가시권에 접어들어 이들 섬을 찾는 관광객들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인천시는 내년 착공, 2024년 개통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서해의 해금강’ 백령도 두무진 최고 비경백령도 옹진군 관광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백령도다. 우리나라 최북단이어서 배를 타고 4시간 정도 가야 하는 게 흠이지만 가 보면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된다. 돌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두무진이 최고의 비경으로 꼽힌다. 하늘로 쭉쭉 뻗은 대형 바위들이 군단을 이뤄 해안에 배치된 모습이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두무진으로 불린다. 흰색, 갈색, 회색, 적갈색 등 형형색색의 돌이 가득 깔린 콩돌해안은 파도에 콩돌이 일제히 밀렸다가 가라앉으며 내는 소리가 독특한 곳이다. 피부염에 특효가 있다는 자갈찜질은 이곳만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맨발로 걸으면 지압을 받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백령도에는 심청전과 관련된 지명이 산재한다. 심청이 자랐다는 곳으로 심청전 원전에 있는 ‘중화동’이 지금도 연화1리에 있고, 뺑덕어멈이 살았다는 ‘장촌’도 이웃동네에 있다. 또 심청이 중국 상인들에게 팔려가다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는 두무진 앞바다라고 전해진다. ●덕적도 서포리, 서해안 대표 해변 중 하나덕적도 섬 서쪽에 있는 서포리해변은 서해안을 대표하는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명성만큼 99만㎡ 규모의 드넓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주변은 200년이 넘는 해송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이런 멋진 광경은 영화 ‘고양이 장례식’을 통해 스크린에 담겼다. 주연배우 박세영은 “촬영 시기가 겨울이어서 힘들었지만, 아름답고 감성적인 섬 풍경을 관객들에게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덕적도에는 해발 292m의 비조봉이 우뚝 서 있다. 정상에 서면 사방에 덕적군도(소야도·문갑도·굴업도·백아도·울도 등) 전경이 펼쳐진다. 서포리해변에서 시작되는 1.2㎞의 등산로를 따라 바닷바람을 맞으며 비조봉으로 올라갈 수 있다. 밧지름해변은 비조봉 바로 아래 있는 해변으로 규모는 작지만 한적하고 경사가 완만해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다. 해변 왼쪽에는 갯바위 낚시로 유명한 큰 여(나무가 자라지 않는 암초)와 작은 여가 차례로 절경을 드러낸다. 덕적도는 자전거길이 잘돼 있다. ●굴업도, 환경·생태계 보고… 백패킹 명소굴업도 덕적군도 가운데 압권인 굴업도는 1.71㎢의 작은 섬이지만 뛰어난 환경적·생태적 가치 때문에 주목받는다. 멸종 위기 동식물이 널리 서식해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최고로 선정된 적이 있다. 주민은 28명에 불과해 환경오염 요인이 제한돼 있어 흑염소와 사슴들이 평화롭게 거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토끼섬에는 바닷물의 침식으로 해안 절벽에 생긴 깊고 좁은 통로 모양의 해식와가 해안지형의 백미로 꼽힌다. 굴업도에 가려면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배로 1시간가량 덕적도로 간 뒤 다시 배를 갈아타고 1시간 넘게 가야만 한다. 긴 여정에도 굴업도는 주말이면 백패커들로 붐빈다. 섬 남쪽 해안 끝에 있는 개머리언덕은 서해의 낙조를 감상하며 트레킹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이기에 최근 백패킹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백패킹은 야영 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여행이다. ●연평도, 빠삐용절벽… 연평해전 추모공원연평도·소연평도 연평도는 남쪽 산에 있는 전망대를 중심으로 조기역사관, 추모공원, 등대공원, 빠삐용절벽 등 볼거리가 몰려 있다. 조기역사관을 찾으면 1960년대 말까지 연평도의 상징이었던 조기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섬 포구에 조기 파시가 섰을 때는 조그만 섬에 술집이 100개를 넘었고, 정박한 배에 식수를 파는 아낙네들의 행렬이 이어져 동네 우물이 마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전망대 바로 밑에는 빠삐용절벽이 있다.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스티브 매퀸이 ‘free as winds’(바람과 같이 자유롭게)를 외치며 바다로 뛰어내렸던 절벽과 닮았다. 추모공원은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장병들을 기린다. 마을 안에 있는 안보교육관은 2010년 11월 북한군의 포격 도발사건의 아픔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체험장이다. 피격 당시 철저히 부서진 민가 3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잔해물을 전시해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연평도는 특별한 낚시 포인트가 따로 없을 정도로 섬 둘레 전체가 낚시터인 바다낚시 천국이다. 얼굴바위와 시루섬 주변이 특히 ‘물 좋은 곳’으로 꼽히는데 광어와 노래미가 많이 잡힌다. ●승봉도 이일레해수욕장… 이작도 풀등 유명승봉도·이작도 봉황새 머리를 닮았다는 승봉도는 제주도, 울릉도와는 또 다르지만 전혀 밀리지 않는 경관을 자랑한다. 이 섬의 상징인 이일레해수욕장은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와 울창한 소나무 숲, 바위 절벽 등이 조화를 이뤄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 여기서 수영과 낚시를 즐기다 물이 빠지면 바지락과 소라, 고둥 등을 잡을 수 있어 해양체험 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승봉도에서 2.2㎞ 떨어진 사승봉도는 물이 빠지면 광활한 은빛 백사장이 절경을 이룬다. 무인도라 캠핑 장소로도 적합하다. 이작도는 ‘풀등’이 유명하다. 썰물이 되면 섬에서 500여m 떨어진 바다에 동서 2.5㎞, 남북 1㎞, 면적 99만㎡의 모래벌판이 형성된다. 풀등에 오르면 마치 사막에 온 것 같다. 하루에 2차례 5∼6시간씩 풀등이 드러나면 배를 대고 들어가 산책, 족구, 수구 등을 즐길 수 있다. 1967년 개봉된 영화 ‘섬마을 선생’ 촬영지는 이작도 계남분교다. 1992년 폐교됐지만 관련 자료가 남아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네, 이기겠습니다”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재심 첫 재판

    “네, 이기겠습니다” ‘친부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재심 첫 재판

    “네. 이기겠습니다.” 6일 오후 3시 55분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42) 씨가 재심을 받기 위해 광주지법 해남지원에 들어섰다. 그는 기자들의 “한 마디 해달라”는 요구에 이렇게 말하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김씨가 수송차에 내려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힘내십시오. 김신혜씨 힘내십시오”하는 응원의 목소리도 들렸다. 김씨가 19년 만에 다시 재판을 받는 이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2000년 3월 6일 오후 6시 흰색 렌트차량을 타고 고향 완도로 내려온 날이다. 7일 오전 5시 50분쯤 버스정류장 앞 도로 위에서 아버지 시신이 발견된 지 이틀 후 긴급체포된 날로부터는 6733일째다. 김씨는 어깨까지 내려온 긴 생머리에 베이지색 롱코트, 검정색 바지를 입고 노란 대봉투 2개를 가슴에 안고 들어섰다. 19년 만에 처음 신은 하이힐이 어색했는지 호송차에서 내려 두걸음을 걷다 넘어지는 소동도 빚었다. 김씨에게 힘을 내라고 외친 최성동(52) 김신혜재심청원시민연합 대표는 “재심사건은 법원이 재량권을 갖고 있는 만큼 방어권 차원에서라도 형집행정지를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1평도 안되는 독방에 햇빛 마저 차단된 채 사람을 가둬놓고 증거를 찾아오라고 하는 모순을 되풀이하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재심재판에 무죄를 입증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얼마나 어려움이 있겠느냐”면서 “시민연합 이름으로 재판부에 다시한번 형집행정지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 인권이사인 김학자(52) 변호사는 “재판부가 공소사실과 증거에 대해 인정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모두 부인한다고 했다”며 “이날 첫 재심에서 검찰이 증거 목록을 제시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부 부인하면서 증거로 사용하지 말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김신혜씨가 원하는 불구속 재판인데 다시한번 요청했다”고 밝혔다. 법정 앞에는 김씨의 고향인 완도에서 온 50대 부부가 “진실이 밝혀져야하는데”하며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재심 첫 심리는 비공개로 1시간동안 진행됐다. 해남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黃, ‘5·18 망언 3인방’ 징계 총대 멜까?

    김순례, 최고위원에 선출돼 문제 복잡 ‘태극기부대’ 업은 김진태 제재도 부담 黃 “여러 의견 수렴돼서 잘 처리될 것” 이종명, 조만간 열릴 의총서 최종 판단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모독 발언 3인방 중 김순례 후보만이 지도부에 입성했고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김진태 후보와 청년 최고위원에 나서 ‘문재인 탄핵’을 주장했던 김준교 후보는 탈락했다.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27일 개최된 한국당 전대에서 김순례 후보는 최고위원에 출마한 8명 중 3만 4484표를 획득, 5명만 입성하는 지도부에 3위로 골인했다. 반면 김진태 후보는 2만 5924표를 얻어 3위에 머물렀다. 김준교 후보도 한 명만 뽑는 청년 최고위원 선거에서 3만 6115표를 얻으며 선전했지만 2위에 머무르며 탈락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망언 3인방에 대한 당락이 결정되면서 지도부의 부담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김진태, 김순례 의원은 이미 한국당 윤리위원회에서 5·18 망언에 따른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새 지도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서다. 전대 기간 중 이른바 ‘태극기부대’의 세 과시가 입증된 만큼 이미 징계가 결정된 ‘5·18 망언’ 장본인 중 한 명인 이종명 의원과 같은 ‘출당’ 조치를 하기가 까다로워졌다는 분석이다. 이 의원처럼 출당하자니 태극기부대의 극렬 저항이 두렵고 안 하자니 비판 여론과 형평성은 물론 당내 우경화 논란도 거세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출당 조치를 받은 이 의원은 당 윤리위 결정에 대해 재심청구를 하지 않았다. 조만간 열릴 의원총회에서 최종 판결을 받을 예정이다. 이런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황교안 신임 대표는 이날 “지금 절차가 진행 중인 걸로 알고 있다”며 “여러 의견이 수렴돼서 잘 처리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오나라, 김도훈과 사귀게 된 뜻밖의 계기

    오나라, 김도훈과 사귀게 된 뜻밖의 계기

    배우 오나라와 20년 사귄 남자친구 김도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오나라는 최근 진행된 코스모폴리탄 3월호 화보 및 인터뷰를 통해 연인인 김도훈을 언급했다. 이에 오나라가 과거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현장토크 택시’에 출연해 남자친구를 언급한 사실 또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오나라는 뮤지컬 ‘명성황후’ 공연을 함께하다 인연을 맺은 남자친구 김도훈과의 첫 키스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배우 오나라는 회식 때 토를 하는데 등을 두드려준 김도훈이 고마워 키스를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그때부터 이어진 인연은 20년째 연애 중인 장수 커플로 발전됐다. 한편 오나라는 1997년 뮤지컬 ‘심청’으로 데뷔했다. 그는 지난 1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SKY(스카이) 캐슬’에서 진진희 역을 맡았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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