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문신씨 파리시청서 예술50년 회고전
◎오는 10월3일까지… 한국인으론 처음/「서울·파리우호협정」후 첫 문화교류/초기유화 비롯 조각1백여점 전시
파리 시청(오텔 드 빌) 건물 동쪽벽에는 빨간 바탕에 흰글씨로 「MOON SHIN」이라고 쓴 커다란 깃발이 걸려 있다.이 건물 안의 생 장(성 요한) 전시실에서 「문신 회고전」(7월31일∼10월3일)이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한국인 미술가의 파리 전시회가 이렇듯 「당당한」 것은 드문 일이다.
올해 69세인 조각가 문신씨의 작품활동 50년 발자취를 뒤돌아볼 수 있도록 작가 자신이 고른 조각작품 63점과 회화 37점이 여기 전시돼 있다.문씨는 『전시장 공간때문에 작품을 절반밖에 들여놓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으나 그의 예술혼과 작품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 전시회가 단순히 한 작가의 50년을 정리하는 회고전에 멈추는 것은 아니다.전시회 도록의 첫장에 실린 자크 시락 파리시장의 인사말에서 보듯 1991년 11월12일 이해원 서울시장과 파리시장이 조인한 우호도시 협정 체결의 결과로 이루어진 공식 문화교류행사중의 하나다.
전시된 조각 작품들에서는 문씨 특유의 좌우대칭 균형미가 강조되고 있다.파리의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우주 자연 조화 창조 힘 신비 시 유머 등을 발견한다.에로티시즘이 지적되기도 하는데,매끄럽게 표면처리된 반구형의 쌍들에서 언뜻 여체의 곡선을 느낄 수 있다.작가 자신이 에로티시즘의 의도적 도입을 부정하고 있는 것을 믿는다면 이는 우연일 것이다.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우주를 향하여」(1985 높이 2m85cm) 「화합」(1988) 브론즈인 「개미」(1970) 등이 사람키를 넘는 큰 작품들이고,흑단을 재료로 한 좀더 작은 크기의 아담한 작품들도 있다.
또한 그가 조각으로 전향하기 전인 시절의 유화작품 「자화상」(19 43) 「벽돌집이 있는 풍경」(19 58) 「생선」(19 50)등이 있다.나머지 회화는 대개 조각을 위한 밑그림이다.
구상회화에서 추상조각으로 넘어간 이 작가의 지난 길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이 모든 작품들은 19 90년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19 91년 헝가리 수도 부타페스트를순회했던 것들의 일부이다.특히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내 두 나라는 전시회 끝난 지 얼마뒤 곧 전란에 휘몰려들어갔기 때문에 『조금 늦었더라면 길 위에서 작품들이 포탄을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문씨는 가슴을 쓸어내린다.유럽을 돈 이 작품들은 이번 파리 전시가 끝나면 마산의 문신미술관에 소장된다.
전시회 일반 공개 전날 저녁에 열린 리셉션에는 두 나라 인사 약 5백명이 참석했다.부재중인 자크 시락 파리시장을 대신한 자크 투봉 부시장(국회의원),알랭 마들랭 한불친선협회장(국회의원),프랑수아 바블레 조형미술협회장등 프랑스 미술계 인사들,노영찬 주불대사,조성장 파리한국문화원장,심재성 주불대사관공보관 그리고 한묵씨등 재불 한국인 화가들이 나왔다.
바블레 조형미술협회장은 작품들을 극찬하고 내년 2월 그랑 팔레 전시에 참여해 주도록 권유했다.이에 대해 문씨는 『마산 문신미술관 개관을 또 미룰 수는 없기 때문에 수년내에 국외전시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씨는 유명한 생 장 전시실에서 전람회를 열게 된 첫 한국인이다.이번 전시회는 문씨 개인이 프랑스에서 오래전부터 쌓아온 명성과 서울·파리 두 도시의 특별한 관계가 어우러짐으로써 한국의 미술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