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심장병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 구로
    2026-07-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15
  •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학과 필수모듈인 어학 파트에서 ‘초급 그리스어’를 들을 거라고 말했을 때, 홍은 조금 놀란 듯했다. 당장 졸업 작품부터 준비해도 모자랄 세 번째 학기였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쪽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차라리 일본어를 듣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홍이 종용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언어라 그런지 학생 수는 다른 수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원탁으로 빙 둘러앉은 좁은 강의실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학생들이 흘리는 땀내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났다. 교수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어 학습 동기를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리스 계통이지만 자신은 그리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아마 높은 확률로 거짓말일 것임이 분명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아마 수업 하나쯤은 먹고 들어가려는 심산이겠지. 사실 그런 학생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이쪽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저쪽은 할머니가 러시아인이고, 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삼촌이 루마니아인이래, 하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디흔해서, 그런 일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곧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인 내가 그리스어 수업을 들으려는 이유를 내심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 호기심 어린 미소에 힘입어, 그럭저럭 교수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가령,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어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에 희랍어가 등장한다는, 꽤 그럴듯한 말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학습 동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였고, 이들에게 그 이유ㅡ‘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을 읽기 위해서’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독일어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사람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보고 싶어서요. 금발로 덮인 두피 곳곳에 희끗한 새치가 돋아난 중년의 교수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빙긋 웃더니,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이 학생이 아주 ‘야심 찬 계획’(ambitionierten Plan)을 가져온 것 같다는 모호한 농담을 던졌다. 그는 말했다. 그 계획에 이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 방언을 익혀야 하는지.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고전 그리스어의 아티카 방언, 이오니아 방언과 아이올리아 방언까지.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같은 작자들을, 화자가 사라진 언어를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아냐면서. 시대와 지역별로 나눈 그리스어의 기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설명 방식은 내 어깨를 점점 짓눌렀다. 마치 모든 학생 앞에서 나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당장 밝혀내겠다는 듯. 그의 눈빛은 이제 처음 드러냈던 조소를 넘어 약간의 경멸마저 내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것, 그 사실에 관해서라면 이미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수업에서 학습 동기를 제대로 밝혔더라면, 어쩔 수 없이 나의 ‘계조모’(Stiefgroßmutter)라고 소개해야 했을, 적어도 내가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아오리스트(Aorist)인 나의 할머니 하나코 씨로부터 말이다. * 시제(Tense)는 시간(Time)과 시상(Aspect)과 함께 작동한다. 할머니의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 내가 그 노트를 처음 발견한 것은 라이프치히대학 문창과에서 석사 첫 학기를 보낸 직후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학기 과제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초봄이었다. 많이 아프셔? 출국하기 전에도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제 쓰러지셨어, 라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말했다. 또?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조금 지친 목소리로 첫 학기도 보냈는데 한국에 한 번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무 음악도 영화도 틀지 않은 채 맞은편의 화면을 응시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노란 경로를 따라 비행기 모형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반도 오른편에 있는 섬나라를 바라보았다. 문득 홍의 고향인 하코다테와 후추시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궁금했다. 엄지와 검지를 펼쳐 그 사이를 가늠해 보았다. 겨우 손톱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너비였다. 부모님은 대학에 합격한 후에야 유학에 대한 나의 의지를 인정했다. 엄마는 애초부터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왜 거기까지 가서 또 글을 쓰려고 하냐고. 대체 돈은 언제 벌 셈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내심 형과 함께 시장의 곡물 가게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로 도망간 형 대신 아버지의 쌀가게 일을 도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아 보였다. 불과 삼 주 뒤에 죽음이 임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혈색에,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나중에 병실 복도에서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부터, 할머니의 정신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뺨을 매만졌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애가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뱃가죽이 등에 눌어붙었느냐면서.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거울에 비춰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손길이 낯설기도 했고 멋쩍기도 했다. 할머니가 그 정도로 내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살며시 놓았다. 나는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할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반달 모양으로 일렁이면서 반짝였다. 그녀의 눈 밑에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았을 것임이 분명한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할머니는 해외 생활은 잘 맞는지, 음식은 어떤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약간의 시차를 둔 채 차분히 물어왔다.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잠시 창밖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그랬다. 할머니는 서른이 다 되도록 취업하지 않은 나의 처지를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묻는 것은 미래뿐이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현재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문학을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사람은 가족 중에서 할머니가 유일했다. 입원하기 전부터 종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끼고 살았던 할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는지, 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는지, 독일의 문학 수업에서는 정말 그리스 신화들을 중요하게 읽는지, 평소 자신이 궁금해했던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나로서는 평생 장사를 하면서 살아온 외할머니와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방향이나 밀도가 전혀 다른 할머니의 목소리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면서도, 가슴속에서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가족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궁금해진 것들도 많았다. 가령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 홍과 같은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의 발자국-그 삶의 궤적에 대해. 그러고 보니 너 마침 잘 왔다. 한참 동안 질문을 쏟아내던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다고, 혹시 집에서 노트 한 권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트요? 희랍어 노트 말이야. 요즘에도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계시냐고, 내가 깜짝 놀라 묻자,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옆에 앉아 있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지 어서 갔다 오라는 듯 문을 향해 조용히 턱짓했다. 나는 외투를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생긴 노트인데요? 아오리스트. 네? 표지에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라고 적혀 있어.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오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왜 이리 군말이 많아. 일단 가져와. 그러면 다 설명해 주겠다고, 할머니는 힘도 없으면서 내 엉덩이를 팡팡 내려치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냈다. 갔다 오면서 밥도 먹고 와. * 아오리스트(Aorist)는 무정시제이다. 아오리스트로 포착된 사건은 완결적으로 제시되며, 문맥에 따라 과거에만 묶이지 않고 다양한 시간으로 퍼져 나간다. α -(아니다) όριστος(규정된, 한정된)는 정해지지 않은(αόριστος)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όριστος는 ὅρος(경계)에 맞닿아 있다. ‘무정’은 ‘부정’(不定)일 수도 있고 ‘미정’(未定)일 수도 있다. ‘부정’(不定)과 ‘부정’(否定)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구별되어야 한다. * 사실 할머니의 일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그때 우리는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지도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시기여서,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같은 나이인데도 열 살은 더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외할머니에게선 느낄 수 없던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내게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건 그날, 내가 절반쯤 남겨 버린 짜장면을 할머니가 자신 앞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미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와 배가 부른 상태였다. 조금 전부터 할머니가 내 그릇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갑자기 그릇을 가져가 처음 보는 아이가 남긴 잔반을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가 입이 짧은 모양이구나.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부모님을 바라보자, 아버지가 아무리 그래도 잔반을 드시냐고, 아직 출출하시면 한 그릇을 더 시켜 드리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됐다. 그냥 딱 한 입 정도만 더 먹고 싶었어. 그리고 할미가 손주가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데. 그깟 잔반이 뭐가 대수냐. 할머니가 반대편 손으로 냅킨을 꺼내 들며 덧붙였다. 이제 가족인데. 당시, 나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마 아버지의 남동생 내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나이가 어린 엄마를 가족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분위기를 내심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할머니 사이의 감정적 거리는 꽤나 오랫동안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할머니는 구포동에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에 홀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분기 보고서를 쓰듯, 의무적으로 식재료를 잔뜩 사서 할머니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때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괜히 할머니의 방안을 둘러보곤 했다. 안방의 벽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할머니를 조금씩 알게 됐다.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이제 돈 쓰는 법도 좀 배우세요. 평생 고된 일만 하시고. 저희가 하지 말라고 해도 식당 일에, 식모 생활에… 몸 쓰는 일만 하셨잖아요-그녀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용돈을 줘도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저금하는 사람.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두 아들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 데 평생을 보낸 사람. 그러나 정작 두 아들은 일본식 반찬을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집에 두고 가고, 먼저 간 남편은 자신을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일생을 거부당한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상처받은 사람이 할머니였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한 시간이 지나 정해진 칭찬의 레퍼토리가 모두 소진되면, 마치 알람 시계라도 설정해 놓은 사람처럼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할머니의 기만당한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었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쏜살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아버지의 진심을, 아직 오지 않은 불편한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머니 인생도 굴곡이 많았지. 아버지는 종종 제사를 지낼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친모가 아니라 계모라는 사실, 친모는 아버지를 낳은 지 이 년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때 들었다. 구포동 할머니는 192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조선으로 넘어와 구포에 정착했다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조선인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병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고 했다. 일본인 송환 때 돌아가지 않으신 걸 보면 아는 친척도 없으셨던 모양이야. 우리한테는 아들을 조선에서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전쟁 중에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물세 살 때 할아버지를 만난 거라고 아버지는 덧붙였다. 아버지 바람기가 보통이 아니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 제사상에 할아버지의 영정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그 시절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포동 할머니를 들이기 전까지 집안에 몇 명이 거쳐 갔는지. 다들 하나 같이 화장이 진한 술집 여자들이었다고 했다. 구포동 할머니는 어린 아버지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다른 여인들처럼 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산만한 아버지를 따끔하게 혼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이 사람이 아니면 싫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싫다고. 어머니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어린 아버지의 고집에, 할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쌀가게 사모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참 박하게 사셨지. 같이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를 않나. 그때만 해도 말을 좀 어눌하게 하셨으니. 대놓고 쪽발이라고 부르는 못된 인간들도 많았어. 나나 동생도 사춘기 때는 참 못됐지. 길가에서 친구들이랑 걷다 어머니를 만나면 일부러 못 본 척하고 피해 다녔으니. 어머니도 숨통 트일 때라곤 가끔 일본인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게 전부셨을 거야. 거기 모임 이름이 뭐랬더라, 부영회였나?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나는 그 모임의 이름이 ‘부용회’(芙蓉會)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떼로 별난 할아버지 곁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할아버지의 권유로 이른 나이에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해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얼마간 가엾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하나코라는 인간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에게 할머니란 그저 어머니, 지극히 언어적인 의미로서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 무정시제 연습 55 지배하다 현재 시제 : 지배하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무정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지만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정 시제 연습 178 잃어버리다 현재 시제 : 잃어버리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현재에도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다 무정 시제 : 나는 과거에 잃어버렸으나,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으나, 그 일은 그때 한 번으로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만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미완료가 아니다. 과거에 발생한 그 일이 현재에 하나의 상태로 고정돼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완료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 영원히 재현할 수 없다. 늘 불완전한 중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死語(사어)로부터 비롯되었다. * 홍과 만난 것은 베를린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학원 친구의 소개로 시내에 있는 한식집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홍은 내가 살고 있던 사설 기숙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한 번 외식을 할 때마다 잔고가 추락하는 독일의 미친 물가 덕에, 우리는 제법 큰 공용주방이 있는 나의 기숙사에서 함께 요리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홍이나 나나 독일의 행정은 지긋지긋해했지만, 맥주만은 사랑했다. 홍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나 하코다테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것,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얼마간 비참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잦은 변화 속에서도 자상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홍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나의 친부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가와도 교류가 없었다. 친부는 고등학교 때까지 복싱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을 당한 뒤부터 구포시장의 도축업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심장병으로 죽은 그는 나에게 자랑할 만한 번듯한 직업조차 남기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 아들보다는 딸을 원해 내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어버려, 늘 사람들에게 나는 남자라고 해명하게 만든 사람.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들은 친부에 대한 전부였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 계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읊어 놓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재혼한 뒤부터는 나에게도 번듯한 아버지가 생겼으니까. 나는 새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곡물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모호한 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은근히 조장했다. 친구들과 격투기 시합을 볼 때면 우리 아버지도 복싱을 했었다고 말했고, 식당에서 시킨 소고기가 생각보다 적어 보일 때는 아버지가 축산업을 해서 아는데, 라는 말로 운을 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오류는 있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할머니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하시지 않았어? 언젠가 홍이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홍은 그 할머니가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그 말을 하려 했다. 때가 되면 홍의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다닐 나의 가족들을 구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일본인이셔. 술에 취한 그날에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말을 고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그럼 너, 어떻게 보면 일본인 혼혈인 거네?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한 그 미소가 좋았다. 그 미소가 나도 모르게 거짓을 사실처럼, 허구를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데 부모님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닌데…. 얘 좀 봐. 21세기에 무슨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야. 피곤함에 지쳐 있던 홍의 눈빛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됐고. 할머니 이야기 좀 더 해 봐. 혹시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즈음 홍은 소논문을 위해 일본 여성들의 이주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해명하는 일을 포기했다. 구포동 할머니가 도쿄도 후추시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오랫동안 부용회라는 재한일본인 처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사람이었다고 아버지에게 들은 그대로 말했다. 쌀가게에서 나오는 수익을 몇 번이나 빼돌려 해방 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들의 생계를 돕고, 홀로 이국땅에서 죽은 그들을 위해 손수 장례까지 치러 주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장례식 끝나고 할머니 노트 가져왔는데. 노트? 무슨 노트? 그게… 할머니가 좀 특이한 분이셨거든. 그리스어 공부가 취미셨어. 나는 서랍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의 노트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에, 엄마가 버리려던 것을 겨우 말려서 들고 왔다고. 구포동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썼던 수십 권의 노트들 중 하나라고 했다. εἰ μέν κ᾽ αὖθι μένων Τρώων πόλιν ἀμφιμάχωμαι 만약 내가 여기 머물며 트로이의 도시를 두고 싸운다면, ὤλετο μέν μοι νόστος, ἀτὰρ κλέος ἄφθιτον ἔσται 내게서 귀향은 사라지겠지만, 불멸하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필사하셨어, 라고 나는 말했다. ‘일리아스’의 문장이래. 왜? 그야 나도 모르지. 잠깐 줘 봐. 홍이 할머니의 노트를 들고 가더니 빠르게 뒤쪽의 페이지를 훑었다. 할머니랑은 한국어로 소통했어? 응.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어가 침투해오는 부산식 한국어긴 했지만. 너희 할머니 작가였어? 무슨 소리야? 너 뒷부분 안 읽어 봤어? 그냥 필사노트라 앞쪽만 읽었는데? 홍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노트를 건넸다. 그러고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서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말대로 뒤페이지에는 앞쪽의 시제 연습과는 달리 꽤 긴 산문이 있었다. 모두 그리스어로 기술돼 있었다. 할머니는 그 위에 일본어로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홍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국의 문자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 모든 아오리스트는 언어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존재다. 그러나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오리스트는 단일하고 완결된 사건이지만 지속성과 반복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아오리스트는 사라짐이 아니라 한순간의 존재다. 아오리스트는 불멸하는 명성을 추구한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 헤매고, 떠나왔으나 정주하지도 귀향하지도 않으며, 죽었으나 결코 죽음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치 나의 아이처럼. 마치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처럼. 알 수 없는 것으로 끊임없이 남겨 두려 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영원한 탐구가 가능해진다. 나는 무정시제이다. 나는 한 명의 아오리스트다. * 그리스어 수업은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끝났다. 홍의 말대로 나는 이미 수준급의 그리스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시간이 갈수록 기가 죽었고, 독일어로 작품을 써내느라 수업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날이 잦았다. 그리스어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졸업작품을 최종적으로 제출한 늦가을부터였다. 홍과는 그즈음을 전후로 헤어졌다. 나는 학업에 뜻이 없었고, 독일에 계속 체류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홍은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이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깔끔하게 돌아섰던 마지막조차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국에는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아직 잘 모르겠어. 교수님이 졸업 작품을 출간해 보자고 하시는데. 너는 마음에 안 들지? 홍의 즉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말 부분을 좀 더 고치고 싶어서. 신중하게 써야지. 홍이 말했다. 너희 할머니 얘기잖아. 나는 그 말에도 잠시 주춤했다. 이번에도 홍의 대답이 곧장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너희 할머니’라는 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일본에서 보고 싶은 게 있어. 겸사겸사 한국도 잠시 가고. 다른 계획은 있어? 그냥 친구들이나 만나겠지. 그간 미룬 성묘도 좀 가고. 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건 좀 궁금하네. 뭐가? 너희 할머니가 쓴 글들. 너는 마지막까지. 왜,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간 미국행 준비로 바빴는지 홍의 얼굴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아니, 라고 말하면서 홍이 미지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너만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래전처럼 화면 속의 경로를 응시했다. 홋카이도와 도쿄. 고료카쿠 타워와 도쿄 타워. 이제 나는 그곳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오쿠니타마 신사와 유쿠라 신사로부터. 내가 한때 가깝다고 느꼈던 공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소들에 대한 체감까지 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웅크려 있던 그 수많은 장소들의 생동감까지 잃고 있는지는. 언젠가 홍과 함께 하코다테시의 도심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홍은 유년을 보낸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 했고, 그해 여름, 우리는 홍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떠났다. 홍은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이 여기서 살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 시절이 자신에게 정말로 존재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때 이곳을 떠났고, 떠남에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이 지극히 아오리스트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고로 접근하니, 그 모든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건으로 남겨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모를 잃었고,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잃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친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기고 있지 않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이름 아래에는 ‘손자’라고 적힌 칸이 있었고,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버지는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기입을 맡았는데 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냐…. 작은아버지란 사람은 여전히 엄마와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 장례식장 구석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에서 몇 년 만에 내려온 형과 마찬가지로 몇 년 만에 만난 사촌 동생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에겐 애도할 권리조차 없구나. 그런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 학기에 교수가 기말과제를 내주며 했던 말-이번 학기에는 신화적 원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이 연이어 생각났다. 그때 느낀 박탈감은 이미 완결되었다. 그러나 그 박탈감이 아직까지 어딘가에서 지속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서…. 너는 이야기를 만들지. 그날 병원에서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왜 그러고 싶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져다준 노트를 유심히 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계속 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 없는 진심이었다. 엄마에게도, 한국에서 글을 쓰던 친구들에게도, 라이프치히 학우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심. 변주하다 보면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손을 덥석 잡아들었다. 그러지 마. 네?…. 나는 당황했다. 그런 신음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머니가 나보다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비록 할머니에게 나는 지극히 언어적인 차원에서의 손자에 불과했지만.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평생토록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사람은 그 부정조차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이중부정이 삶을 긍정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비타협의 상태로 남겨 둔다면 어떨까? 미정도 부정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왕복운동으로 인해 삶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비록 할머니의 글에 신화와 문법에 대한 오독이 있을지라도, 나는 할머니가 노년에도 조화나 타협을 포기한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예술가 하나코는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현재와의 연결성이 불확실한 아오리스트였다. 어쩌면 그래서 여전히 그리스어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오리스트를 쓰기 위해. 아오리스트로 말하기 위해. * 나는 무덤이 되고 싶다. 한때 무정시제라는 언어체계였으나 그 야성적인 규칙에서마저 빠져나가 버린, ‘정해지지 않았다’는 규정에서조차 탈출해 버린 야성의 시간이 묻힌, 어느 범박한 무덤*이 되고 싶다. * 후추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했다. 할머니의 노트를 넣은 백팩을 메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식당은 신사 근처였다. 신사 정문에서 본당까지는 꽤나 기다란 돌길이 일자로 뻗어 있다. 홍과 하코다테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유쿠라 신사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말끔하게 도색된 유쿠라 신사의 도리이와 달리, 이곳의 석조 도리이에는 검은 이끼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밝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단지 회색빛으로 수수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 길을 따라 양쪽에 늘어선 나무 도리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역의 기둥들은 차라리 무덤가에 꽂힌 묘목들에 가까워 보였다. 할머니의 소설은 이곳, 오쿠니타마 신사의 어둠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을 떠났던 어린 할머니와 같은 나이인 여덟 살 소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신사로 들어선 소녀. 그러나 어째서인지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안티고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얼굴 위로 노란 등빛이 번진다. 나는 할머니의 소설을 손에 쥔 채 그들의 맞은편에 쭈그려 앉는다. 이곳에는 빛이 없지만 저곳에는 빛이 있다. 그 빛 속에서 소녀는 부모님에게 신사의 전설을 듣는다. 대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부인의 순산을 기원했던 이곳에는 늘 행복과 결연의 신이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고. 앞으로 우리 딸은 어떻게 살려나. 그런 물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오로지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마치 미래를 단정 짓듯, 혹은 예언하듯 미래형의 아오리스트로 기술된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미래를 잃지 않는다. 비록 단발성과 완결성으로 끝난 사건일지라도, 아오리스트의 불확정성이 이미 완결된 운명적 사건에 대한 상상을, 그 미래에 관한 끝없는 고투를 가능하게 한다. 그 습작에서 할머니는 농사꾼이었던 남편과 다시 사별하게 된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헤어지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그를 더욱 극진히 간호했고, 사별하게 될 남편은 무려 일 년을 더 살게 된다. 그 일 년 동안, 할머니는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조선어가 서툴러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분명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할머니는 소설에서도 할아버지와 결혼한다. 시장 사람들에게 쌀가게 사모님으로 불리고, 결국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주사에 뺨을 맞고, 결국 이번에도 임신했던 아이를 유산한다. 그러나 유산할지언정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아이와 함께 육 년을 살게 된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던 해, 피란길에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그가 죽기 두 달 전,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향인 후추시에 방문한다. 바로 이곳에 와서 아이와 함께 밤의 축제를, 가부키극을, ‘거대한’(μέγα) 건물과 ‘넓은’(εὐρὺ) 하늘, ‘꺼질 줄 모르는’ (ἄσβεστον) 불빛들을 지켜본다. 어느새 그들이 바라봤던 집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하늘의 풍경도, 그들을 비추었던 불빛도 희미해진다. 시간은 아이를 잃고 하나코 씨를 잃는다. 돌길 한편에 쭈그려 앉아 그들을 바라봤던 나도 잃어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반대로 무언가 분명 거대하게 남을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하늘을 바라봤던 사람의 심장에 단발성의 고통이 있었고, 그것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넓었는지 미래의 자신은 분명 알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한때 이곳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들을 밝혔던 불빛, 한순간의 빛과도 같은 그 시간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순간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은 어느새 내가 될 것이며, 나는 미래에도 이곳에 있다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 “동갑내기 중 나만 주름이 쭈글쭈글”…‘고속노화’ 알고보니 ‘이 음식’ 탓

    “동갑내기 중 나만 주름이 쭈글쭈글”…‘고속노화’ 알고보니 ‘이 음식’ 탓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빨리 늙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트륨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주름이 늘어날 뿐 아니라 습진 같은 피부 질환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22일(현지시간) 짠 음식이 피부 노화를 앞당긴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보도했다. 많은 사람이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고혈압이나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트륨 함량이 높은 음식이 피부까지 늙게 만든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나트륨 권장 섭취량은 하루 2000㎎ 미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미국 국민은 권장량보다 약 1100㎎ 이상을 초과 섭취하고 있다. 미국 의료기관인 웨스트레이크 피부과의 티머시 트란 박사는 “나트륨을 과다 섭취하면 여러 문제가 생기는데, 피부가 가장 먼저 이런 불균형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콜라겐 생성 방해…주름 늘어나나트륨은 피부를 건조하거나 붓게 만들고, 피부를 탱탱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단백질인 콜라겐 생성까지 방해한다. 트란 박사는 “나트륨이 피부의 수분을 방해하고 산화 스트레스를 촉진하면 피부가 콜라겐 분해에 더욱 취약해진다”며 “시간이 지나면 피부가 처지고 잔주름이 생기며 거칠어진다”고 말했다. 피부가 건조해 보일 수도 있다. 짠 음식을 먹어 혈중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 세포 안에 있던 수분을 혈관 밖으로 끌어 당긴다. 싱가포르 큐티스 의료 레이저 클리닉은 “피부가 건조하고 각질이 일어나며 주름이 도드라지고 생기 없어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습진 발생 위험도 20% 증가피부에 쌓인 나트륨은 습진을 유발하는 역할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트륨을 하루 1g만 더 섭취해도 습진 악화 가능성이 20%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트륨은 습진의 만성 염증을 일으켜 피부 노화를 가속화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피부가 자연스럽게 건조해지는데, 과도한 나트륨 섭취가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설명이다. 가공식품 피하고 집에서 요리를전문가들은 피부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라고 조언한다. 대신 견과류, 콩, 생선, 저염 치즈 같은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게 좋다. 집에서 요리하면 저염 식단을 실천하기 쉽다. 냉동식품보다 소금을 훨씬 적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통조림 식품은 물에 헹궈 보존 과정에서 생긴 과도한 소금을 제거하고, 허브와 향신료로 간을 맞추는 것이 좋다. 바나나처럼 칼륨이 풍부한 음식을 짠 음식과 함께 먹으면 나트륨으로 인해 몸이 붓는 증상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 “할인매장 냉동고서 알몸 상태인 女의사 시신 발견”…발칵 뒤집혔다

    “할인매장 냉동고서 알몸 상태인 女의사 시신 발견”…발칵 뒤집혔다

    미국의 한 할인매장 냉동고에서 30대 여성 의사의 시신이 발견돼 경찰에 수사에 나섰다. 1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지역의 한 할인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매장 내 직원 전용 구역에 있는 냉동고 안에서 헬렌 마시엘 가레이 산체스(32)를 발견했다. 산체스는 발견 당시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으며 의식이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소아 심장병을 전문으로 하는 니카라과 출신 마취과 의사로 밝혀졌다. 그는 지난 13일 이 매장에 들어왔으나 물건은 구매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산체스가 매장 직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원 전용 구역으로 이동해 냉동고에 들어간 뒤 밤새 그곳에 머물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타살 혐의는 없으며,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산체스의 가족과 만나 산체스에게 정신적 또는 개인적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다. 산체스의 가족은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 펀드 미’(Go fund me)를 통해 모금을 진행하고 있으며, 산체스의 시신을 고향 니카라과로 송환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가족 측은 “산체스의 헌신은 수많은 어린이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다”고 슬픔을 표했다. 해당 매장은 사건 조사를 위해 일시적으로 폐쇄됐다가 당일 오후 문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 고객들은 “매장에서 시신이 발견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 대기오염 오래 노출되면 심각한 심장병 생긴다 [사이언스 브런치]

    대기오염 오래 노출되면 심각한 심장병 생긴다 [사이언스 브런치]

    대기 오염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보건 문제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대기오염은 심장마비와 뇌졸중 발생에 주요 역할을 하며, 2021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246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인한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 캐나다 토론토대 의대, 대학 보건 네트워크(UHN) 의료 영상학과 공동 연구팀은 심하지 않은, 일반적 대기 오염 물질에라도 장기간 노출되면 관상동맥 질환을 새로 유발하거나 심화시킨다고 6일 밝혔다. 이는 여성과 남성 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북미 방사선학회’(RSNA) 연례 회의에서 발표됐다. 연구팀은 도시 대기에서 흔히 발견되는 초미세먼지(PM2.5)와 이산화질소(NO2)에 대한 장기 노출과 심장 질환 간 연관성에 주목했다. PM2.5는 차량 배기가스, 산업 배출물, 산불 연기 등에서 발생하고, 머리카락 두께의 약 30분의1에 불과하기 때문에 폐 깊숙이 침투해 혈액을 타고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산화질소는 주로 차량, 발전소, 산업 공정에서 화석 연료를 연소할 때 발생하는 유해 기체다.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캐나다 토론토 3개 대형 병원에서 심장 단층촬영(CT)을 한 성인 남녀 약 1만 1000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환자의 거주지 우편번호를 바탕으로 CT 검사 전 10년 동안 개인별 평균 대기오염 노출량을 추정했다. 연구팀은 관상동맥 질환의 대표적 지표인 칼슘 점수, 총 플라크 부담량, 폐쇄성 협착증을 평가했다. PM2.5 농도가 1㎥당 1㎍(마이크로그램) 증가할 때마다 관상동맥 내 칼슘 축적은 11%, 플라크 증가 가능성은 13%, 폐쇄성 협착증 가능성은 23% 증가했다. 이산화질소에 대한 장기 노출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지만, 초미세먼지의 영향보다는 작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기오염 미세 입자 물질에 대한 장기 노출이 여성에게는 칼슘 축적과 폐쇄성 협착 악화와 밀접했고, 남성은 칼슘 축적, 플라크 증가 가능성을 더 높였다. 연구를 이끈 케이트 헤네만 토론토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대기 오염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의 핵심 요인이라는 증거를 보여준다”며 “규제 기준치 이하거나 근접한 수준의 오염도, 심지어 일반적 도시 평균 대기 수준에서도 심장 질환의 초기 징후와 연관된 만큼, 심혈관 질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기 질 개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치매 위험 20% 낮추는 것으로 나타난 대상포진 예방접종…치매 진행 속도도 늦췄다

    치매 위험 20% 낮추는 것으로 나타난 대상포진 예방접종…치매 진행 속도도 늦췄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이 치매 위험을 20% 낮추는 결과가 관찰됐다. 이는 특이하게도 사전에 설계된 대규모 임상시험이 아닌 독특한 보건 정책에 따른 자연 실험 결과를 추적 관찰해 얻어냈다. 스탠퍼드 의과대학 연구진이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들은 영국 웨일스에서 우연히 발생한 ‘자연 실험’ 상황을 활용했다. 웨일스 보건 당국은 2013년 9월 1일 당시 만 79세를 대상으로 이후 1년간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시행했다. 만 80세 이상이었던 주민은 접종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결과 비슷한 나이대의 주민 중에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한 그룹과 하지 않은 그룹이 자연히 구분됐다. 연구 책임자인 파스칼 겔트제처 박사는 이러한 환경이 임상시험의 무작위 대조 시험과 거의 유사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대상포진 백신 접종 그룹, 치매 진단율 20% 낮아 연구진은 접종 정책 시작 시점에서 치매가 없었던 28만여명의 노인들의 건강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들은 미접종 인구에 비해 이후 7년 동안 치매 진단을 받을 확률이 20% 더 낮았다. 연구진이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했는데도 대상포진 백신 접종과 낮은 치매 진단율 사이에는 “매우 강력하고 명확하며 지속적인” 연관 관계가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 진단을 받을 확률도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들이 더 낮게 나타났다. 더 놀라운 점은 이미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이 관찰됐다는 점이다. 백신 정책이 시작될 당시 이미 치매를 앓고 있던 그룹 중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비접종자에 비해 9년 동안 치매로 사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이는 백신이 치매 진행 속도를 늦췄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기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던 고령자 중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절반이 치매로 사망한 반면,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약 30%만 치매로 사망했다. 실제 임상시험과 유사한 대규모 자연실험 이 관찰 사례는 특정 지역에서 이뤄진 대규모 보건 정책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건강 기록을 활용한 이전 관찰 연구들이 가지고 있던 편향 문제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백신을 접종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건강 관리를 더 잘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식사를 더 꼼꼼하게 챙기고, 운동을 하고, 의료 서비스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등이다. 그래서 단순히 백신 접종만으로 치매 위험이 감소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웨일스의 대상포진 예방접종 시행 결과 접종 자격이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 간에 교육 수준이나 다른 백신 접종률, 당뇨병·심장병·암 등 다른 질병 유무 등 거의 모든 특성이 서로 비슷했다. 원인 규명은 아직…대규모 임상시험 계획 다만 이번 연구에서도 몇 가지 한계점과 더 살펴봐야 할 점들이 있었다. 일단 백신이 정확히 어떤 작용을 거쳐 치매 위험을 낮추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단순히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를 특정해 재활성화를 줄이는 건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또 당시 접종된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으로, 바이러스 단백질만 사용하는 최신 대상포진 백신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또는 더 강력한 효과를 낼지는 더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당시 접종된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는데, 그 원인과 작용도 향후 밝힐 과제다. 겔트제처 박사는 이번 발견을 바탕으로 대규모 무작위 대조 시험을 시행해 백신이 실제로 치매 위험을 낮추는지 입증할 계획이다. 웨일스 사례에서 백신 접종 그룹과 비접종 그룹 간 치매율 차이가 약 1년 반 뒤부터 나타났기 때문에 임상시험에서도 그 효과를 비교적 빨리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겔트제처 박사는 기대했다.
  • 하루 커피 4잔씩 마셨더니 ‘반전’ 효과…“수명 5년 연장”

    하루 커피 4잔씩 마셨더니 ‘반전’ 효과…“수명 5년 연장”

    하루에 서너 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특정 질환자의 노화 속도를 늦춰 수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영국 의학 그룹(British Medical Group)이 정신분열증이나 양극성 장애와 같은 심각한 정신 질환(SMD)을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커피를 하루에 3~4잔 마실 경우 환자의 수명이 5년 더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SMD 환자들은 심장병, 암, 노화 등에 취약해 정신적으로 건강한 또래에 비해 평균 15년 정도 수명이 짧은 경향이 있다. 연구진은 SMD 환자들이 매일 3~4잔의 커피를 마실 경우 염색체 끝 부분의 DNA를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텔로미어의 길이가 길어지는 효과를 확인했다. 텔로미어는 일반적으로 SMD 환자에게서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나고, 식단 등 환경 요인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 결과 3~4잔의 커피를 마신 참가자들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은 참가자들과 비교했을 때 텔로미어 길이가 더 길었다. 연구진은 “매년 평균 70개 염기쌍이 감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커피를 마신 그룹에서 생물학적 나이가 5년 더 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연구진은 하루에 커피를 5잔 이상 마실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 텔로미어와 수명이 짧아졌다고 경고했다. 커피의 하루 최대 섭취량 4잔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및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포함한 여러 국제 보건 당국이 권장하는 최대 일일 섭취량과 일치한다. 커피가 이러한 효과를 나타내는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커피의 ‘항산화 효과’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커피에는 클로로겐산(CGA), 카페스톨, 카웰, 트리곤넬린 및 멜라노이딘과 같은 여러 생체 활성 화합물이 포함돼 있다”면서 “이들은 모두 강력한 항산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클로로겐산(CGA) 등의 화합물은 SMD의 일반적인 병태생리학적 특징인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전염증성 사이토카인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텔로미어가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에 모두 매우 민감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커피 섭취가 노화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는 인구 집단의 세포 노화 보존에 잠재적인 보호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러프버러 대학의 생명과학 분야 수석 교수인 엘리자베스 아캄 박사는 “커피를 단일 물질처럼 취급했다”면서 “커피에 함유된 다양한 화합물 중 어떤 성분이 어떤 용량으로 혈류에 흡수됐는지 알 수 없다”고 이 연구의 한계에 대해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커피에 노화를 늦추는 효능이 있다는 점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지금 당장 커피를 노화 방지 음료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커피 속 카페인 또한 적정량일 때는 유익할 수 있지만 과량 섭취 시 수면 장애·불안·탈수 등 부작용을 겪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국내 카페인 1일 섭취 권고량은 성인 400㎎ 이하, 임산부는 300㎎ 이하다. 평균적으로 커피전문점의 즉석제조 커피 한 잔에는 109.3㎎의 카페인이 함유돼 있다.
  • ‘생명 살리는 천사’ 아프리카서 25년 의료 봉사

    ‘생명 살리는 천사’ 아프리카서 25년 의료 봉사

    아프리카 케냐와 말라위의 열악한 의료 현장에서 25년 동안 80만 명에 가까운 주민에게 진료와 보건 서비스를 전해 온 한국인이 ‘제37회 아산상’의 주인공이 됐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25일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케냐 ‘성 데레사 진료소’를 이끌고 있는 정춘실(59) 소장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상금은 3억 원이다. 정 소장은 1995년 영국에서 수녀로 종신서원을 한 뒤, ‘생명을 살리는 실질적인 방법을 배우겠다’며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2000년 아프리카로 향했다. 의료 시설이 거의 없는 케냐 빈민 지역에서 ‘성 데레사 진료소’를 설립·운영했고, 말라위 ‘음땡고 완탱가 병원’ 책임자로 의료·행정 체계를 정비하며 지역 의료 기반을 세웠다. 최근에는 케냐 칸고야 지역에 새 진료소 건립을 주도했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총 6개 부문에서 18명(단체 포함)이 수상했다. 의료봉사상은 17개국에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844명을 무료 수술하고 3000여 명의 현지 의료진을 교육해 온 김웅한 서울대 의대 교수(62)가 받았다. 사회봉사상은 27년간 노숙인과 고립·은둔 청년을 돌봐온 김현일(59)·김옥란(53) 씨 부부에게 돌아갔다. 부부는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과 청년 회복기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운영하며 취약계층의 자립을 지원해 왔다. 
  • 숙면 위해 멜라토닌 오래 먹었다간 심장병 걸린다 [달콤한 사이언스]

    숙면 위해 멜라토닌 오래 먹었다간 심장병 걸린다 [달콤한 사이언스]

    바쁜 일상과 끝없는 긴장과 스트레스, 긴 스마트기기 사용 시간 등으로 현대인의 수면 질은 최악 수준이다. 수면 장애는 면역력 저하, 우울증, 치매, 심혈관 질환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특히 불면의 밤을 지내는 사람들은 숙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멜라토닌은 뇌에서 분비되는 생체 호르몬으로 수면제와는 달리 자연 수면을 유도하는 등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멜라토닌도 장기간 복용하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주립대(SUNY) 의대 연구팀은 수면을 촉진하고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멜라토닌 보충제를 장기간 먹으면 심혈관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7~10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미국 심장협회 2025 과학 세션’에서 발표됐다. 멜라토닌은 인체 내 송과선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호르몬으로 어두울 때는 분비량이 늘어나고 밝을 때는 줄어들어 수면-각성 주기를 조절한다. 한국에서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됐지만,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다. 연구팀은 불면증 환자 13만 명의 5년 치 건강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1년 이상 멜라토닌을 복용한 불면증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5년 이내에 심부전 발생 위험이 9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멜라토닌 장기 복용자 중 4.6%, 복용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는 2.7%가 심부전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심부전으로 병원에 입원할 가능성도 멜라토닌 장기 복용 집단은 19%, 비복용 집단은 6.6%로 3.5배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했다. 1년 이상 복용하지는 않더라도 멜라토닌을 90일 간격으로 2회 이상 처방 받은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부전 위험이 82% 증가했다. 또, 멜라토닌 복용한 사람들은 다른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도 2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처방전 기록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처방전 없이 구매해 복용한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실제 멜라토닌 복용으로 인한 건강상 위험은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에케네딜리추쿠 나디 SUNY 의대 박사는 “이번 연구는 멜라토닌이 안전한 수면 보조제로 알려졌지만 장기 복용할 경우는 심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멜라토닌 장기 복용은 적절한 의학적 근거 없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 “잠들기 전 스마트폰 그만 보세요”…치명적 ‘이 질환’ 위험 35% 증가

    “잠들기 전 스마트폰 그만 보세요”…치명적 ‘이 질환’ 위험 35% 증가

    밤에 인공 조명에 노출되면 심장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잠들기 직전까지 휴대전화 화면을 보는 행위 역시 인공 조명 노출에 해당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심장협회(American Heart Association, AHA)에 따르면 야간에 인공 조명 노출 수준이 높을수록 뇌의 스트레스 관련 활동이 증가하고 동맥이 염증을 일으키며 심장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HA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번 연구는 2005년부터 2008년 사이에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PET/CT 스캔을 받은 466명의 성인(평균 연령 55세)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PET/CT 스캔은 뇌의 스트레스 활동과 동맥의 염증을 단일 스캔으로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전문적인 영상 기술이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피실험자의 PET/CT 스캔 결과와 거주지 주변의 야간 밝기를 위성 이미지로 분석했다. 이 데이터에는 별빛, 달빛, 대기광과 같은 자연광은 제외됐다. 그 결과 야간에 높은 수준의 인공 조명에 노출될수록 ▲뇌의 스트레스 관련 대사활동 증가 ▲혈관 내 염증 증가 ▲향후 심장질환 발생 위험 증가 등 세 가지 지표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인공조명 노출이 증가할 경우 심장 질환 위험이 5년 추적 기간 동안 약 35%, 10년 추적 기간 동안 22%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 저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심장 PET/CT 영상 임상시험 책임자 샤디 아보하셈(Dr. Shady Abohashem) 박사는 “뇌가 스트레스를 인지하면 면역 반응을 유발하고 혈관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신호가 활성화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과정이 동맥 경화를 유발하고 심장마비 및 뇌졸중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교통 소음이 높거나 동네 소득이 낮은 등 추가적인 사회적·환경적 스트레스가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참가자들에게서 심장 질환 위험이 더욱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빛 공해가 단순한 성가심이 아니라 심장 질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아보하셈 박사는 도시 차원에서 불필요한 실외 조명을 줄이거나 동작 감지 센서가 있는 가로등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개인의 건강을 위해 밤 시간의 실내 조명 제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침실을 어둡게 유지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TV 및 개인 전자기기와 같은 화면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 연구가 이전에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한 관찰 연구였으므로 야간 빛 공해와 심장 질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 대상이 주로 백인(89.7%)이었고 한 병원에서만 데이터를 수집했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더 광범위한 인구 집단을 대표한다고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 연구의 전체 내용은 오는 7일부터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미국 심장 협회 학술 회의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 “소파와 한몸·스마트폰 삼매경”…25년 뒤 내 외모 이렇게 변한다 ‘충격’

    “소파와 한몸·스마트폰 삼매경”…25년 뒤 내 외모 이렇게 변한다 ‘충격’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인류의 25년 뒤 예상 이미지가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활동량 부족과 디지털 중심의 생활습관이 지속될 경우, 인간의 외모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걸음 수 추적 앱 ‘위워드(WeWard)’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 부족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며 음식 주문부터 업무 회의, 사교 활동까지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이 소파에 앉아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휴대전화로 소셜미디어(SNS)를 끝없이 내려다보는 ‘둠스크롤링’(doom-scrolling) 시간까지 더해져 비정상적으로 긴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보내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에 위워드는 “지금처럼 앉아서만 사는 생활을 계속하면 2050년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라는 주제로 인공지능 모델을 제작했다. 이 모델은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데이터를 챗지피티(ChatGPT)에 입력해 생성됐다. 위워드는 AI가 예측한 인물을 ‘샘(Sam)’이라 명명하며 “운동 부족이 신체 외형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적으로 시각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샘의 모습은 허리가 굽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목이 앞으로 기울어진 상태다. 눈 주변은 처지고 눈은 충혈됐으며 피부 색소침착과 탈모도 나타났다. 다리와 발목은 부어있다. AI 분석 결과에 따르면 좌식 생활이 길어질수록 비만, 자세 불균형, 시력 저하, 피부 노화 등 다양한 신체 변화가 나타난다. 움직이지 않아 소비되지 못한 에너지가 지방으로 축적되면서 복부 비만이 심화되고 장시간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는 자세는 거북목을 유발한다. 이에 따라 만성적인 어깨·목 통증이 발생하며, 화면에서 방출되는 블루라이트는 피부 노화와 색소침착을 가속화한다. 또한 오랜 시간 같은 거리의 화면만 응시하면 눈의 피로, 건조, 두통, 시야 흐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장시간 앉아 있는 습관은 다리와 발목에 체액이 고여 부종을 일으키고 심하면 혈전이나 정맥류로 악화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앉아있는 생활습관이 뇌졸중, 심장병, 당뇨병, 암, 심지어 치매 위험까지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워드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공포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 얼마나 움직이지 않는지를 경고하기 위한 시도”라며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샘처럼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남자가 손해?” 같은 운동해도 女가 男보다 심장병 예방 2배 효과…왜?

    “남자가 손해?” 같은 운동해도 女가 男보다 심장병 예방 2배 효과…왜?

    남성이 심장병 위험을 낮추려면 여성보다 약 2배 많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에스트로겐 수치와 근육 섬유 구성과 같은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같은 시간 운동해도 여성이 남성보다 심장 건강에 더 큰 효과를 본다는 설명이다.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얼러트는 남성이 여성과 같은 수준의 심장병 예방 효과를 보려면 약 2배의 운동량이 필요하다는 중국 샤먼대와 저장대 공동 연구팀의 최근 연구 결과를 3일 보도했다. 女 주 4시간 = 男 9시간 운동 효과연구진은 37~73세 영국 성인 8만 5000명 이상에게 7일 동안 손목에 가속도계(신체 움직임과 활동 수준을 측정하는 장치)를 착용하도록 했다. 이후 약 8년 동안 각 참가자의 건강 상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빠르게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춤추기 등 호흡과 심박수를 높이는 중강도~고강도 신체 활동을 주당 약 4시간 한 여성은 관상동맥 심장질환 위험이 약 30% 낮아졌다. 남성이 비슷한 효과를 보려면 같은 종류의 신체 활동을 주당 약 9시간 해야 했다. 이미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패턴이 나타났다. 관상동맥 심장질환 진단을 받은 여성은 주당 약 51분의 신체 활동만으로도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을 30% 줄일 수 있었다. 반면 남성은 약 85분의 운동이 필요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핵심 원인”여성과 남성이 신체 활동에서 이렇게 다른 결과를 보는 데는 명확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다. 이 호르몬은 신체가 운동에 반응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에스트로겐은 지구력 운동 중에 신체가 연료로 더 많은 지방을 태우도록 돕고,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한다. 세포 내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작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혈관 건강을 돕는다. 여성은 또한 지근섬유(느린 연축 근육 섬유)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 근육은 효율적이고 피로에 강하다. 대부분의 운동 지침이 권장하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신체 활동에 적합한 근육이다. 정확한 측정으로 신뢰도 높여이번 연구는 사람들에게 기억에 의존해 활동량을 회상하도록 요청하는 대신 장치로 측정한 활동량을 사용했다. 이는 신체 활동에 대한 데이터가 정확했다는 의미다. 한계점도 있다. 활동량은 단 1주일 동안만 측정됐고, 이후 사람들을 약 8년 동안 추적했다. 관찰 연구이기 때문에 결과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이 고려되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영국 바이오뱅크 연구에서 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참가자들은 일반 인구보다 더 건강하고 덜 취약한 경향이 있다. 연구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운동 권고안 바뀌어야 할까그럼에도 이 연구 결과는 현재 운동 권장 사항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심장협회,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현행 운동 지침은 성별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러한 획일적 권장 사항에 의문을 제기하며, 남녀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ㅇ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가 남성에게 “운동 시간을 두 배로 늘려라”는 메시지는 전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여건에 맞춰 신체 활동을 꾸준히 늘려가되, 총 운동 시간이 많을수록 심장 건강에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 “93세 맞아?”…이길여 총장, 자선 골프대회서 매끄러운 시타 ‘화제’

    “93세 맞아?”…이길여 총장, 자선 골프대회서 매끄러운 시타 ‘화제’

    올해로 93세인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의 골프 시타 영상이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일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최근 유튜브 채널 ‘길병원TV’에 올라온 이 총장의 골프 시타 영상이 공유됐다. 앞서 이 총장은 지난달 19일 경기도 안산 더헤븐CC에서 개최된 ‘제2회 가천심장병어린이돕기 자선 골프 대회’에서 시타를 했다. 이 총장은 이날 분홍색 상의에 흰색 바지, 검은색 선캡을 쓰고, 프로골퍼 김영과 나란히 서서 시타를 준비했다. 이 총장은 진행자의 “하나, 둘, 셋”이라는 구호에 맞춰 매끄럽게 스윙하고, 깔끔한 피니쉬 자세까지 선보였다. 이 총장의 스윙이 놀랍다는 듯 행사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인공지능(AI) 영상인지 의심했다”, “20년 전 영상 아니냐”, “93세에 저만큼 스윙 파워 나오는 게 말이 안 된다”, “허리 꼿꼿하게 펴고 돌리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93년생인 나보다 건강한 것 같다”, “비결이 궁금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1932년생인 이 총장은 공식 석상에 나타날 때마다 건강한 모습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난 2023년 91세였던 이 총장은 가천대 한마음페스티벌 워터 축제에서 가수 싸이의 무대를 앞두고 등장해 ‘말춤’을 선보여 모두의 놀라움을 샀다. 동창회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자신의 모교인 대야초등학교에서 동문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비슷한 연배의 동문들 사이에서 이 총장은 유독 어려 보이는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이 총장은 1957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해 1958년 인천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1964년 미국 유학과 1977년 일본 니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여의사 최초로 의료법인을 설립해 종합병원 길병원을 열었고, 2012년 국내 사립대학 최초로 4개 대학을 통합해 가천대학교를 출범시켰다.
  • “잠잘 때 이렇게? 심장 망치는 습관”…심장마비 위험 42% 더 높아, 뭐길래

    “잠잘 때 이렇게? 심장 망치는 습관”…심장마비 위험 42% 더 높아, 뭐길래

    잠잘 때 켜두는 작은 불빛도 심장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성인 9만명을 조사한 결과, 밝은 침실에서 자는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자는 사람보다 심장마비 위험이 42% 높았다. 국제학술지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지난 23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침실의 야간 조명이 심장마비뿐 아니라 심부전, 관상동맥질환, 부정맥, 뇌졸중 위험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영국에 사는 8만 8905명을 대상으로 손목에 빛 측정 센서를 착용하게 했다. 일주일 동안 24시간 빛 노출량을 측정한 뒤, 9년 반 동안 건강 상태를 추적했다. 참가자들의 평균 나이는 62세였고, 57%가 여성이었다. 측정 결과 총 1300만 시간 분량의 빛 노출 데이터가 수집됐다. 연구진은 낮 시간(오전 7시 30분~오후 8시 30분)과 밤 시간(오전 12시 30분~오전 6시)의 빛 노출을 구분해 분석했다. 침실 밝을수록 위험도 증가밤에 가장 어두운 환경에서 잔 사람들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중간 정도 밝기의 침실에서 잔 사람은 심장마비 위험이 20% 높았다. 더 밝은 침실은 27%, 가장 밝은 침실은 47%나 높았다. 나이, 성별, 인종, 계절, 소득 수준, 운동량, 흡연, 음주, 식단 등을 모두 고려한 뒤에도 가장 밝은 침실의 심장마비 위험은 42%나 높게 유지됐다. 이는 야간 빛 노출이 다른 요인과 무관하게 심장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생체리듬 교란이 심장 위협우리 몸은 생체리듬이라는 내부 시계를 가지고 있다. 이 시계는 혈압, 심박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 등을 조절하는데, 빛이 가장 중요한 신호 역할을 한다. 밤에 빛이 눈에 들어오면 이 리듬이 깨진다. 잠을 잘 때 정상적으로 떨어져야 할 혈압이 높게 유지되고, 아침에 나와야 할 호르몬이 엉뚱한 시간에 분비된다. ‘싸우거나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교감신경계와 ‘쉬고 소화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부교감신경계의 균형도 무너진다. 단기적으로는 심박수 증가, 염증, 혈전 생성이 나타난다. 수년간 지속되면 동맥이 굳어지는 동맥경화증이 생겨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동맥에 생긴 플라크가 터지거나 좁아진 혈관에 혈전이 생기면 심장 근육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심장마비가 발생한다. 교대 근무자들이 밤에 밝은 빛에 노출되면서 심장병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은 수십 년간 알려져 왔다. 이번 연구는 침실의 작은 불빛이나 전자기기의 불빛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과 젊은 성인이 더 취약여성은 남성보다 야간 빛의 심장 손상 효과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관상동맥질환과 심부전에서 그랬다. 이전 연구에서도 여성의 생체리듬이 같은 밝기의 빛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결과가 있었다. 젊은 성인들도 나이 든 사람들보다 심부전과 심방세동 위험 증가 폭이 컸다. 나이가 들면 생체리듬 시스템의 민감도가 떨어져 야간 빛에 덜 반응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낮에 밝은 빛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13%, 심부전 위험이 28%, 뇌졸중 위험이 27% 낮았다. 하지만 생활 습관, 특히 운동량을 고려하자 이런 보호 효과는 사라졌다. 밝은 낮에는 사람들은 야외에서 신체 활동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고, 운동 자체가 심장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운동을 제외하고 분석해도 밝은 빛의 보호 효과가 다시 나타났는데, 이는 낮의 빛 노출과 신체 활동이 함께 심혈관 건강을 지킨다는 의미다. 어두운 침실로 심장 지켜야이번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빛 노출을 일주일 동안만 측정했고, 가로등인지 침실 조명인지 텔레비전인지 스마트폰인지 등 구체적인 빛의 출처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참가자의 97%가 백인이고 교육 수준과 소득이 높으며 건강한 편이어서 일반 인구를 대표하기 어렵다. 또한 관찰 연구라서 연관성만 보여줄 뿐 인과관계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다. 이번 연구는 야간 빛 차단이 새로운 예방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전적 위험 요인과 달리 빛 노출은 조절할 수 있다. 암막 커튼 설치, 전자기기 끄기, 꼭 필요한 경우 어두운 적색등 사용, 침실을 어둡게 유지하기 등이 도움이 된다. 교대근무나 불가피하게 빛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식단, 운동, 정기 검진 등으로 다른 심혈관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심장 건강을 위해 어둠이 중요하다. 숙면 시간뿐 아니라 잠자는 동안의 어둠 자체가 심장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밝혀졌다.
  • [K당뇨 노트] 한국인에게 흔한 2형 당뇨병의 특징과 원인

    [K당뇨 노트] 한국인에게 흔한 2형 당뇨병의 특징과 원인

    당뇨병은 더이상 특별한 사람의 병이 아니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14.8%)이 당뇨병을 가지고 있으며,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3명(28%)이 환자다. 게다가 30세 이상 성인 10명 중 4명(41.1%), 65세 이상 성인 2명 중 1명(47.7%)이 이미 당뇨병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당뇨병 전 단계에 속한다. 즉 30세 이상 성인 중에서 혈당이 정상인 사람은 절반(44.1%)도 안 되고, 65세 이상에서는 혈당이 정상인 사람이 4명 중 1명(24.3%)밖에 되지 않는다. ‘당뇨병’은 국가적으로 함께 맞서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당뇨병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첫째, 당뇨병 환자 중 절반 이상(53.8%)이 비만을 동반하고 과체중에 해당하는 환자도 거의 20%(19.7%)다. 정상 체중이거나 저체중인 환자도 전체 환자의 4명 중 1명꼴로 누구나 안심할 수 없다. 실제 환자의 60% 이상이 복부 비만이며 환자의 70%쯤은 지방간을 동반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즉 한국인의 당뇨병은 체중보다는 ‘보이지 않는 지방’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인슐린 저항성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은 인슐린을 분비하여 당을 우리 몸에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게 해 주며 결과적으로 혈당을 낮춘다. 복부에 내장지방이 쌓이거나 간에 지방이 쌓이면 인슐린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렇게 혈당 조절에 실패하면 췌장은 더 많은 인슐린을 만들려다 결국 지친다. 특히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등으로 19~39세 청년층 당뇨병 환자가 약 30만명에 이른다는 점은 ‘큰’ 경고 신호다. 셋째, 합병증 위험이 높다. 당뇨병 환자 열 명 중 여섯 명은 고혈압을, 일곱 명은 고콜레스테롤혈증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는 당뇨병이 단순히 혈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심장병, 뇌졸중, 신장질환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신 질환임을 보여 준다. 한국형 당뇨병은 유전적 요인과 생활 습관 변화가 겹쳐 나타나는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이 이미 1400만명에 이르고, 이들 중 상당수가 고위험군이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 습관 관리가 예방과 치료의 기본이다. 채소와 통곡물이 풍부한 식사, 규칙적인 운동, 복부비만 관리가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맞춤형 치료제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대사 특성에 따라 약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지방간·비만·심혈관 위험을 동시에 고려한 병용 치료 전략도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당뇨병은 특별한 누군가의 병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불청객’이다. 지금 바로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가까운 병의원에서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예방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당뇨병이 발병했다 해도 모두 무서운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생활 습관과 환자에게 맞는 적합한 약물 치료만 제대로 하면 일반인과 차이 없이 건강한 삶을 이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래 가톨릭의대 부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 딸기·사과·코코아… ‘치질’ 예방에 딱

    딸기·사과·코코아… ‘치질’ 예방에 딱

    현대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다. 2023년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의 하루 평균 좌식 행동 시간은 9시간, 청소년은 11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좌식 행동 시간이 길어지면 심혈관 질환은 물론 치질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영국 버밍엄대 영양과학과, 뇌혈관·운동·환경생리학과 공동 연구팀은 차·딸기류·사과·코코아 등 플라바놀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혈관 건강에 도움을 줘 치질과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생리학 저널’ 10월 29일 자에 실렸다. ‘동맥 혈류매개 확장’(FMD)은 동맥 내 혈류가 증가할 때 동맥이 확장하는 현상이다. FMD를 바탕으로 동맥 탄력성을 측정하는데 혈관 기능이 1% 감소할 때마다 심장병, 뇌졸중,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질환 위험은 13%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연구팀은 체력 수준이 높은 20명과 체력이 약한 20명으로 구성된 젊은 성인 남성에게 각각 고(高)플라바놀 코코아 음료(695㎎ 함유)와 저(低)플라바놀 코코아 음료(5.6㎎)를 마시게 한 다음 2시간 동안 앉아 있게 했다. 연구팀은 실험 전후로 참가자들의 대퇴동맥과 상완동맥의 FMD, 동맥 혈류량,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 다리 근육 산소화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플라바놀 함유 음료를 마시지 않고 앉아 있는 경우에는 체력이 좋은 사람들에게서도 FMD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고플라바놀 음료를 섭취하면 체력이 좋고 나쁨을 떠나 팔다리 동맥에서 FMD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샘 루카스 버밍엄대 교수(운동생리학)는 “좌식 생활이 길어짐에 따라 나타나는 혈관 건강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플라바놀이 풍부한 식품과 음료를 섭취하며, 짧은 산책이나 규칙적인 일어나기 등으로 활동 부족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잠들 때 TV 안 끄는 습관…“심장병 위험 56% 폭증” 경고 나왔다

    잠들 때 TV 안 끄는 습관…“심장병 위험 56% 폭증” 경고 나왔다

    심야 시간대에 TV나 스마트폰 화면, 형광등에서 나오는 빛에 노출되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호주 플린더스대 수면건강연구소 소속 대니얼 윈드레드 박사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참가자 8만 8905명을 2013년부터 2022년까지 9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선별된 참가자들의 손목에 일주일간 조도 센서를 채우고, 매일 오전 0시 30분과 6시 사이 심야 시간대에 측정된 빛의 조도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을 이 조도에 따라 ▲A그룹(중앙값 0.62㏓·럭스) ▲B그룹(2.48㏓) ▲C그룹(16.37㏓) ▲D그룹(105.30㏓) 등 네 집단으로 분류했다. 이를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A그룹은 보름달이 뜬 밤하늘 수준, B그룹은 야간 비상구 유도등 수준, C그룹은 침실 간접조명 수준, D그룹은 TV나 스마트폰 화면 수준의 밝기에 노출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데이터에서 참가자들의 심근경색, 심부전, 심방세동, 뇌졸중 발생 기록을 살펴봤다. 분석 결과, 심야 시간대 빛에 가장 많이 노출된 D그룹은 A그룹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유의미하게 크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심부전 56%, 심근경색 47%, 관상동맥질환 32%, 심방세동 32%, 뇌졸중 28%씩 발병 위험성이 컸다. 이러한 연관성은 심혈관질환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신체 활동량, 흡연, 알코올 섭취, 식단, 수면 시간, 사회·경제적 지위, 유전 등 요인을 조정하더라도 변함이 없었다. 일부 질환은 성별 또는 연령별로 발병 위험에 차이가 있었다. 관상동맥질환의 경우 밤에 밝은 빛에 노출된 여성이 동일 조건의 남성보다 발병 위험이 컸다. 또 60세 이하 연령층에서 야간 빛 노출에 따른 심부전·심방세동 발병 위험이 비교적 크게 늘어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야간 빛 노출을 피하는 것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줄이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야간 조명과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 사이의 구체적인 인과 관계는 이번 연구에서 자세히 입증되지 않았다. 참가자 대다수가 백인 고학력·고소득자라는 점, 문제가 된 빛의 광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됐다. 다만 연구진은 “야간의 빛 노출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혈압 및 혈당 조절, 혈액 응고 등 대사 과정이 어지럽혀져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멜라토닌은 수면-각성 상태 조절 등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호르몬이다. 연구를 이끈 윈드레드 박사는 “커튼을 완전히 닫고, 조명은 어둡게 하고, 잠들기 전에는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피하는 게 심혈관 건강을 지키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학협회 저널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실렸다.
  • 건강하면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면 건강하다 [사이언스 브런치]

    건강하면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면 건강하다 [사이언스 브런치]

    행복을 명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행복 같은 긍정적 마음 상태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많다. 행복한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흡연이나 음주 같은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피하는 경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마니아 “1918년 12월 1일” 알바율리아대 회계학과, 루리우 해티가누 의약학대 의학부, 파키스탄 수학·통계 과학 연구센터 공동 연구팀은 123개국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성 질환 사망률이 감소하는 ‘행복 임계점’을 규명하고, 행복이 공중보건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최신 의학’ 10월 21일 자에 실렸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전체 사망의 약 75%가 심장병, 암, 천식, 당뇨 등 만성질환, 비전염성 질병(NCD)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전적, 환경적, 행동적 요인이거나 이들의 복합 결과로 파악된다. 연구팀은 NCD 위험에 다른 요인이 있는지 주목했다. 연구팀은 123개국을 대상으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반복적으로 관찰한 ‘균형 패널’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변수 간 비선형적 관계를 포착하기 위한 ‘패널 평활 전이 회귀 모델’(PSTR)을 이용해 알코올 소비량, 비만 유병률, 도시화율, 초미세먼지(PM2.5) 노출, 보건 의료비 지출, 1인당 GDP, 거버넌스 품질을 통제 변수로 하고, 국가별 삶의 질 지수가 30~70세 국민의 만성 및 NCD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주관적 웰빙을 의미하는 행복은 삶의 질 척도에서 10점 만점에 2.7이라는 최소 임계점을 넘어야 인구 건강 자산으로 기능한다. 10점 만점에서 0은 최악의 삶, 10점은 최상의 삶을 뜻한다. 최소 임계점을 넘어서면 행복도가 높아질수록 NCD 질환 사망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임계점인 2.7점은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행복감이 극도로 낮은 상태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상태는 ‘겨우 버티는’ 정도다. 이 기준점을 넘어서 국가 전체 행복이 1% 증가할 때마다 해당 국가의 30~70세 NCD 사망률은 약 0.4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임계점인 2.7을 초과한 국가는 그 이하 국가들에 비해 1인당 의료비 지출이 높고, 사회 안전망도 견고하고, 거버넌스도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123개국 평균 삶의 질 척도는 5.45점이었으며, 최저는 2.18점, 최고는 7.97점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에 따르면 건강과 행복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보였다. 정부가 비만 예방 확대, 알코올 소비 규제 강화로 건강한 생활을 장려하고, 대기질 기준을 강화해 환경을 개선하고, 1인당 보건 의료비 지출을 늘리면 삶의 질 척도는 2.7 이상으로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울리아 크리스티나 루가 루마니아 알바율리아대 교수는 “행복은 아무리 지나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한계점 2.7점에 못 미쳤을 때는 행복이 소폭 개선되더라도 NCD 사망률의 측정 가능한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뱃살 빼고 전립선암·유방암 예방까지…버리던 ‘이 음식’의 놀라운 반전

    뱃살 빼고 전립선암·유방암 예방까지…버리던 ‘이 음식’의 놀라운 반전

    호박씨가 체중 감량은 물론 암과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슈퍼푸드로 주목받고 있다. 식이섬유와 아연이 풍부한 호박씨는 가을철 건강 관리를 위한 최적의 간식이라는 평가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20일(현지시간) 호박씨의 건강 효능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호박 속을 파낼 때 나오는 미끈하고 끈적한 씨앗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안에는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가득하다. 일반 크기의 호박 하나에는 수백 개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비롯한 핵심 영양소가 풍부해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운동량이 줄어들고, 짧아진 낮 시간으로 인해 정신 건강도 나빠질 수 있어 가을철 영양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영양사 베스 체르보니는 “호박씨는 식물성 단백질과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항산화제 역할을 하며 특정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호박씨 1온스(약 28g)에는 단백질이 8.5g 들어 있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체르보니는 강조했다. 껍질째 먹든 까서 먹든 호박씨는 식이섬유의 좋은 공급원이다. 미국심장협회에 따르면 껍질째 먹을 경우 1온스당 약 5g의 식이섬유를 섭취할 수 있고, 껍질을 벗기면 2g 미만이다. 호박씨의 효능은 이뿐만이 아니다. 마그네슘도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마그네슘은 심장과 뼈 건강에 도움을 주고, 혈압을 낮추며 편두통을 예방한다.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 주디스 와일리로젯 교수는 “마그네슘은 신체의 여러 기능을 돕는 미네랄”이라고 말했다. 호박씨에는 수면을 촉진하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도 들어 있다. 또한 1테이블스푼에는 약 6.6㎎의 아연이 함유돼 있어 하루 권장량의 절반 가까이를 섭취할 수 있다. 아연은 염증 감소와 관련이 있다. 이 항산화 성분은 고혈압 예방에도 도움을 주며, 이는 당뇨병 예방으로 이어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호박씨 섭취가 유방암과 전립선암을 포함한 암 발생 위험 감소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박씨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볶으면 항산화 성분이 더 증가하고 소화도 쉬워진다. 양념을 곁들이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버터와 시나몬, 설탕을 조금 넣거나 소금을 살짝 뿌리면 좋다. 다만 과하지 않게 조절해야 한다. 체르보니는 “무염이나 저염 제품을 선택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 말라 보인다고 심혈관 질환 안심했다간… [달콤한 사이언스]

    말라 보인다고 심혈관 질환 안심했다간… [달콤한 사이언스]

    겉으로는 뚱뚱해 보이지 않는 ‘마른 비만’인 사람들도 비만한 사람만큼이나 동맥 손상이 쉽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맥마스터대 의대, 공중 보건 연구소, 혈관 및 뇌졸중 연구소, 온타리오 암 연구소, 토론토대, 퀘벡 라발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맥길대, 몬트리올대 부속 병원, 몬트리올대, 몬트리올 심장 연구소, 토론토 서니브룩 보건 과학 연구센터, 세인트 조셉 병원, 웨스턴 온타리오대, 캘거리 알버타 보건 서비스 센터, 미국 댈하우저대 공동 연구팀은 마른 비만한 사람들의 경우 복부 깊은 곳과 간에 끼어 있는 지방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맥을 손상한다고 20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메디슨’ 10월 17일 자에 실렸다. 내부 장기에 끼는 내장 지방과 간이 지방이 축적되는 지방간은 제2형 당뇨(성인 당뇨), 고혈압, 심장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동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지 않다. 이에 연구팀은 캐나다의 ‘건강한 심장 및 정신 연합’(CAHHM)과 영국 바이오뱅크에 참여한 성인 남녀 3만 3000명의 자기공명영상(MRI)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방 분포와 동맥 건강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내장 지방은 경동맥 지방 축적과 동맥벽 두께 증가와 일관되게 관련돼 있었고, 간 지방도 내장 지방보다는 약하지만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였다. 경동맥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며, 이 동맥이 좁아지면 뇌졸중과 심장마비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연구 결과는 콜레스테롤 수치나 혈압 같은 전통적인 심혈관 위험 요소를 고려하더라도 내장 지방과 간 지방이 동맥 손상을 예측하는 데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팀에 따르면 내장 지방과 간 지방은 대사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겉으로는 과체중이 아닌 사람이라도 체내 지방이 많은 경우 염증과 동맥 손상이 있을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소피아 아난드 맥마스터대 의대 교수(혈관질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비만 측정에 오랜 기간 사용된 체질량 지수(BMI)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숨은 지방이 심장 질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의 실마리를 던져준다”라며 “중년 성인에게는 눈에 보이는 체중뿐만 아니라 숨겨진 지방이 심혈관 위험을 조용히 높일 수 있는 만큼, BMI와 허리둘레 이외에 지방 분포의 영상 기반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피부에 난 ‘이것’, 뇌가 보낸 SOS였다…“우울증 조기 신호일 수도”

    피부에 난 ‘이것’, 뇌가 보낸 SOS였다…“우울증 조기 신호일 수도”

    피부에 나타나는 발진이나 습진 같은 증상이 자살 충동과 우울증 등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 연구팀은 피부질환을 겪는 정신증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우울증과 자살 위험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3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그레고리오 마라뇽 보건연구소 연구팀은 태아 때 ‘외배엽’ 세포층에서 피부와 뇌가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해 정신건강 문제와 피부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신경정신약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연구 책임자인 호아킨 갈반 박사는 “피부질환을 앓는 사람 중 30~60%가 정신과적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우리는 반대 방향에서 접근했다.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지,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현실감 상실, 환각, 망상 같은 정신증을 겪은 481명의 환자를 조사했다. 검사 결과 14.5%가 발진, 가려움증, 빛 과민증 같은 피부 증상을 보였다. 이런 경향은 남성(10%)보다 여성(24%)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모든 환자에게 4주간 항정신병 약물 치료를 실시한 뒤 정신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그 결과 정신증을 겪으면서 피부질환도 함께 앓고 있던 환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우울증과 자살 위험을 보였다. 피부질환이 있는 환자 중 25%가 자살 충동이나 자살 시도를 경험했지만, 피부질환이 없는 환자는 7%만이 그런 증상을 보였다. 갈반 박사는 “이번 발견은 피부질환이 있는 환자가 첫 정신증 발병 후 피부질환이 없는 환자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맞을 위험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확인된다면 피부질환이 정신건강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치 혈액검사가 암이나 심장병 위험을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피부 증상이 정신증 초기 단계에서 질병의 심각도와 좋지 않은 단기 결과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예후가 나쁠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찾아내 맞춤형 조기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런 연관성이 나타나는 이유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피부와 신경계가 발생학적으로 같은 기원을 가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갈반 박사는 “양극성 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불안장애, 우울증 같은 다른 정신질환에서도 이런 연관성이 적용되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5년 유럽 13개국에서 실시된 별도 연구에서는 피부과 환자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이는 일반인(4.3%)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불안장애는 환자의 17.2%에서, 자살 충동은 12.7%에서 나타났다. 건선, 아토피 피부염, 습진, 다리 궤양 등이 이런 정신과적 동반 질환과 가장 관련이 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