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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내에서 졸도한 남성 여럿이 인공호흡, 알고 보니 코로나 환자?

    기내에서 졸도한 남성 여럿이 인공호흡, 알고 보니 코로나 환자?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 안에서 한 남성 고객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뉴올리언즈에 긴급 착륙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향하던 UA 591편 안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여러 승객들이 고통 받는 승객을 살려내기 위해 가슴을 누르거나 입에서 입으로 숨을 불어넣는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항공사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승객들을 자가 격리하고 바이러스 검사를 받도록 권고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고 ABC 뉴스와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19일 전했다. 사망한 고객의 부인이 응급 의료요원에게 남편이 코로나 관련 증상을 보였다고 말한 사실이 있지만 아직 그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항공사 간부들은 전했다. 기내에서 약혼녀와 함께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켜본 승객 캐머런 로버츠는 “고객들이 심장마비로 고통 받는 그를 통로 가운데 눕혀 놓았다. 착륙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심폐소생술을 계속했다. 가슴을 누르는 것은 물론 입을 맞춰 숨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격리 중이며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로버츠는 “알다시피 가족을 잃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기내에 있었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가족은 디즈니 월드를 찾는 손님들에게 나눠주는 가방을 들고 있어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횡액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항공사는 모든 승객은 탑승 전에 양성 판정을 받은 일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지난 2주 동안 코로나와 관련된 증상이 없었다는 사실을 적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에 감염됐거나 관련 증상을 보이는 고객은 탑승하면 안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최선의 선택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인공호흡에 참여한 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여정을 계속 이어가거나 다른 비행기로 갈아 탔다면 파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9세 여아의 사망원인은 대기오염”…세계 최초 사례 나왔다

    “9세 여아의 사망원인은 대기오염”…세계 최초 사례 나왔다

    영국에서 사망한 9세 여자아이가 대기오염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 받은 세계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런던에서도 매우 번화한 도심에 거주했던 엘라 키시-데브라는 2013년 2월(사망당시 9세)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 소녀는 심장마비 및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중증 천식을 앓고 있었다. 소녀가 사망한 뒤 부검이 진행됐고, 검시관은 사인으로 급성 호흡부전과 중증 천식 및 대기오염을 꼽았다. 극심한 대기오염에 노출된 탓에 천식이 심해져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검시관의 소견이었다. 천식의 위험성을 알리고 폐 건강 증진을 목표로 활동하는 현지 자선단체인 영국폐재단 등은 이 소녀가 사망 증명서에 사망원인으로 대기오염이 기록된 역사상 세계 최초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소녀의 사망 증명서를 작성한 검시관인 필립 바러우의 보좌관은 “소녀의 어머니는 천식이 있는 딸이 극심한 대기오염을 유의했어야 한다는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면서 “대기오염은 사망한 소녀의 천식 유발 및 악화에 영향을 미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녀는 2010~2013년 천식을 앓는 동안 세계보건기구(WHO)의 지침을 초과하는 이산화질소 및 미립자 물질에 노출됐었다. 유해물질의 출처는 대부분 자동차 등 교통수단이었다”면서 “당시 런던의 이산화질소 수준은 유럽연합과 국내법이 권장하는 수준보다 높았다”고 덧붙였다.대기오염으로 어린 딸을 잃은 엘라의 어머니는 이번 공식 판결 후 “높은 수준의 대기오염은 도시에서 사는 다른 아이들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면서 “딸이 남긴 유산은 대기오염 수준을 낮추는 새로운 법을 도입하는 것이며, 이는 영국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폐재단 측은 “이번 사례는 특히 천식이나 폐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기오염이 보이지 않는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준다”면서 “이 판결은 정부와 지방 당국, 의료진 등이 국가의 대기오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기는 남미] 노숙인 시신 옆에 두고 그대로 장사한 빵집 논란

    [여기는 남미] 노숙인 시신 옆에 두고 그대로 장사한 빵집 논란

    "사람이 죽어도 장사는 계속한다." 브라질에 이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매장 안에서 사람이 죽었지만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두고 태연하게 장사를 계속한 빵집에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빵집에서 최근 벌어진 일이다. 문제의 빵집에서 사망한 사람은 매일 이 매장을 방문해 커피와 빵을 얻어가던 노숙인이었다. 노숙인은 사망한 날에도 커피와 빵을 얻기 위해 빵집을 찾았다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돌연 쓰러져 사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망한 노숙인은 결핵환자였지만 정확한 사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쉬운 건 빵집의 대응이었다. 빵집은 종업원들을 시켜 시신을 비닐봉투로 덮은 뒤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2시간. 빵집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장사를 계속했다. 당시 매장에 있던 한 고객이 "위생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인간의 도리를 생각해서라도 시신이 수습될 때까지 잠시 장사를 중단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빵집 주인은 오히려 버럭 화를 냈다. 주인은 "노숙인이 살아 있을 때 그에게 인간의 도리를 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그러면서 내게 인간의 도리를 따지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 빵집을 자주 이용한다는 한 고객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며 "문명사회의 비정함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은 "죽은 사람이 노숙인이라 그런 대접을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브라질에서 이런 사건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앞서 지난 8월 브라질 레시페의 까르푸 매장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협력업체 직원이 자사가 납품하는 상품을 진열하다 매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까르푸는 매장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우산으로 가린 채 영업을 강행했다. 여론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자 까르푸는 "상황에 대응하는 데 미숙함이 있었다"고 뒤늦게 사과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쌍둥이 이름은 ‘마라와 도나’…마라도나 이름 나눠가진 자매

    쌍둥이 이름은 ‘마라와 도나’…마라도나 이름 나눠가진 자매

    이젠 진짜 전설이 된 아르헨티나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의 성을 사이좋게 나눠 가진 쌍둥이 자매가 있어 화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고 있는 9살 쌍둥이 자매의 이름은 각각 '마라'와 '도나'다.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빠가 이런 이름을 지어두면서 쌍둥이 자매는 타의로 마라도나와 숙명적인 인연(?)을 맺게 됐지만 자신들의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언니 마라는 "의미를 모르고 그냥 불러도 정말 예쁜 이름인 것 같다"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라도나의 성을 절반으로 나눠 쌍둥이 딸들에게 나눠준 아빠 왈테르 로툰도(38)는 일명 마라도나교회에 다닐 정도로 마라도나의 열성 팬이다. 왈테르 로툰도는 쌍둥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90년 일찌감치 딸들의 이름을 지었다. 그가 불과 8살 때였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은 페널티킥으로 독일에 0대 1로 패하자 엉엉 울어버린 마라도나를 보면서 앞으로 딸들이 태어나면 꼭 마라와 도나라는 이름을 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마라도나교회를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를 한 탓일까? 2012년 기적처럼 쌍둥이 딸이 태어나면서 그는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됐다. 그는 "쌍둥이 엄마를 만나 연애를 할 때 미리 동의를 얻었다"면서 "아내 또한 딸들의 이름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라도나의 이름을 절반씩 나눠 가진 쌍둥이 자매는 상표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건 불가능하다. 쌍둥이 자매가 가진 건 단순히 이름일 뿐 상표권 소유자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마라도나'의 상표권은 그의 생전 고문변호사였던 마티아스 모를라가 설립한 법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 법인은 마라도나와 관련된 주요 표현을 모두 상표로 등록,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 회사가 등록한 상표는 '마라도나' '디에고' '(등번호) 10번' '신의 손' 등이다.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가 그에게 상표 등록을 어떤 식으로 허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라면서 "앞으로 유가족이 권리를 주장하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우승,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마라도나는 지난달 2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아르헨티나 검찰, 마라도나 주치의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

    아르헨티나 검찰, 마라도나 주치의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

    아르헨티나 검찰이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의 주치의를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29일 현지 텔람 통신과 일간 라나시온에 따르면 이날 오전 경찰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마라도나 주치의 레오폴도 루케(39)의 집과 개인 클리닉을 압수수색했다. 30명의 경찰관들이 자택을, 20명의 경관들이 클리닉에 투입됐는데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과정에 의료적 과실이 있었는지 보기 위해 의료 기록과 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수색했다고 텔람 통신은 전했다. 검찰은 특히 마라도나가 뇌 수술 후 자택에서 치료받으며 회복하는 과정서 비정상적인 점이 없었는지, 루케가 마라도나의 상태를 얼마나 자주 살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약물남용에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간호사들이 24시간 지켜봤는지, 의사를 전화로 호출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는지, 제세동기를 갖춘 앰뷸런스가 상시 대기했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딸들이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직 루케 주치의가 기소된 것은 아니며 당연히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울먹이며 자신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며 마라도나가 죽기 전 굉장히 슬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취재진에게 “당신들은 내가 책임이 있는지 알고 싶은 거지? 그를 사랑해 돌봐왔고, 수명을 연장했으며, 끝까지 낫게 한 것이 나다”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신경 전문의가 자택에서의 회복 과정까지 주관한 이유를 수사당국도 궁금해 한다고 취재진이 전하자 “여러분이 그렇게 물으면 난 신경 전문의로서 내 직업은 끝났다고 답하겠다. 난 그와 함께 끝장 났다”면서 “그는 재활치료 센터로 갔어야 하는데 원치 않았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를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자신은 왜 제세동기가 주변에 없었는지, 자택 바깥에 앰뷸런스가 없었던 것이 누구 책임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울러 고인이 “아주 슬퍼해, 혼자 있고 싶어했으며 딸들이나 가족, 주변의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60세 생일 며칠 뒤인 지난 3일 뇌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신경과 전문의 루케는 “수술이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며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지난 11일 퇴원해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집에서 회복하다 25일 정오 무렵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숨졌다. 루케는 그때 마라도나의 집에 없었으며, 집에 머물던 간호사가 당일 새벽 마라도나의 모습을 본 것이 생전의 마지막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마라도나 관 뚜껑 열어놓고 엄지 척, 법적 조치 예고에 살해 위협

    마라도나 관 뚜껑 열어놓고 엄지 척, 법적 조치 예고에 살해 위협

    “그가 이 잔인한 행동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 가만있지 않겠다.” 지난 25일(이하 현지시간)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관을 운구하던 남성들이 법정에 서게 될 전망이다. 고인의 관 옆에서 찍은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면서 엄청난 비난이 일고,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 마라도나의 관이 대통령궁 로사 카사다에 안치됐을 때 공개된 두 장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는데 사진 속의 세 남성은 관 옆에 서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뚜껑이 열린 관에 시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남성들은 엄지를 치켜 세우거나 옅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도를 넘은 인증샷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분노를 자아냈다. 마라도나의 변호인인 마티아스 모를라는 트위터에 사진 속 남성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공유하면서 “그가 이 잔인한 행동의 대가를 치를 때까지 가만있지 않겠다”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48)와 그의 아들, 다른 남성으로 이들은 곧바로 장례업체에 의해 해고됐다. 페르난데스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사진을 찍을 계획도 없었고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될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용서를 빈다”고 고개를 숙인 그는 “운구를 준비하던 중에 누군가 나를 불러서 고개를 들었고 내 아들은 젊은 애들이 그러듯이 엄지를 들었는데 사진이 찍힌 것”이라며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얼굴과 이름이 모두 공개된 페르난데스는 마라도나의 팬들로부터 살해 위협, 손목을 부러뜨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테르날 지구에서 영업을 하는 세펠리오스 피니에르 장례업체 대표 마티아스 피촌은 “오랫동안 마라도나 집안과 거래를 해온 우리로서도 아주 황망하다”면서 “우리를 믿고 장례를 맡긴 것인데 75세 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고, 동생도 울었다. 우리는 절망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망인이 된 클라우디아 빌라파네에게도 이 일을 얘기했으며 당연히 “그녀도 매우 화를 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마라도나 유족이 이 일을 법적으로 문제 삼을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어서 이들이 검찰에 의해 기소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도나는 이달 초 뇌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2주 만인 지난 25일 티그레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으며, 대통령궁에 관이 안치돼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다음날 저녁 공원묘지의 부모 묘 옆에 안장됐다. 장례를 서두르는 바람에 조문 일정을 단축했고 이를 모른 채 긴 시간 줄을 서 기다렸던 이들이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포토]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공동묘지로 운구된 마라도나의 관

    [포토]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공동묘지로 운구된 마라도나의 관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베야 비스타 공동묘지에서 전날 별세한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관을 고인의 유족과 친구들이 운구하고 있다. 마라도나는 심장마비로 60세를 일기로 사망했으며 부모가 안장된 이곳에서 영면한다. AFP 연합뉴스
  • 마라도나 추억한 히딩크 “스카이박스 걸어나온 그, 신 같았다”

    마라도나 추억한 히딩크 “스카이박스 걸어나온 그, 신 같았다”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을 추억했다. 히딩크 감독은 27일(한국시간) 네덜란드 공영방송과 인터뷰에서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경기를 다녀왔던 일화를 전했다. 히딩크 감독은 2015년 마라도나의 초청으로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경기를 다녀온 바 있다. 히딩크 감독은 “호주 대표팀 사령탑 시절 우루과이와 경기를 앞두고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에서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훈련 캠프를 차렸다”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데 누군가 전화기를 들고 다가왔다. 라디오쇼 같은 것인 줄 알고 거절했다가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전화를 받았더니 마라도나였다. 처음에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며 “마라도나가 나를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경기에 초청했고,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봤다. 마라도나가 스카이박스 발코니로 걸어 나가자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치 신이 내려온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마라도나와 같이 경기를 봤지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라도나는 경기 내내 판정을 이야기하는 등 무척 바빴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마라도나는 환상적인 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대단한 사람이었다”며 “마라도나는 많은 유혹(마약·술 등)을 뿌리치지 못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여기는 남미] “사람이 할 짓인가!”…관에 누운 마라도나와 인증샷 파문

    [여기는 남미] “사람이 할 짓인가!”…관에 누운 마라도나와 인증샷 파문

    심장마비로 사망한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관에 누워 있는 사진이 유출돼 파문이 일고 있다. 마라도나의 고문변호사 마티아스 모리아는 26일(이하 현지시간) "상조회사 직원들이 관에 누운 마라도나와 인증샷을 찍어 유출했다"면서 문제의 사진과 직원의 실명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그는 "인증샷을 찍어 유출한 XX은 디에고 몰리나라는 이름의 남자"라면서 "내 친구(마라도나)를 위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XX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엄중 경고했다. 공개된 사진은 모두 2장이다. 실명이 공개된 남자는 풍채가 좋은 청년으로 마라도나의 시신이 누워 있는 관의 뚜껑을 연 채 옆에서 엄지척 포즈를 취하며 인증샷을 찍었다. 또 다른 사진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한 청년과 중년의 남자가 마라도나의 관 주변에 서 있다. 청년 역시 엄지를 치켜세우고 포즈를 취했다. 일부 언론매체는 "파문이 일자 문제의 상조회사가 3명 직원을 즉시 전원 해고했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회사 측 설명은 달랐다. 마라도나의 염과 관을 준비한 상조회사는 3대째 운영되고 '피니에르'라는 업체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상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마티아스 피콘은 "마라도나의 시신과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정직원이 아니라 일용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라도나 유가족이 선택한 관이 워낙 무거워 평소보다 일손이 더 필요했다"면서 "일당을 주고 쓴 사람들이 어이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사장의 해명에 따르면 회사는 마라도나의 사후 모습이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혹시라도 사진이 유출될까 걱정해 염을 시작하기 전 일용직 세 사람에게 핸드폰을 요구해 회사가 보관했었다고 한다. 일용직 세 사람이 문제의 인증샷을 찍은 염이 끝나고 시신을 관에 안치한 뒤였다고 한다. 사장 피콘은 "작업이 모두 끝나 핸드폰을 돌려준 뒤 경찰이 빈소까지 이동하기 전 루트를 확인하자며 잠깐 나를 불렀다"면서 "세 사람이 이 틈을 타 비윤리적인 인증샷을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에게 정식으로 사과했지만 국민적 비난이 쇄도해 하루아침에 회시가 망하게 생겼다"면서 "이제 75살이 된 아버지는 계속 울고만 계신다"고 덧붙였다. 한편 마라도나는 1일장이 끝난 이날 오후 베야비스타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묘지엔 마라도나의 부모가 모셔져 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축구의 신‘ 떠나는데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에 마라도나 추모 인파

    ‘축구의 신‘ 떠나는데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에 마라도나 추모 인파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일대가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는 팬들로 가득 찼다. 조문 시간 마감을 앞두고 미처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동원하며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26일(현지시간) 마라도나의 시신이 안치된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주변에는 수만 명의 추모 인파가 3㎞ 넘게 줄을 늘어섰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전날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60세 나이에 세상을 뜬 마라도나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도심의 카사 로사다로 몰려들었다. 오전 6시 조문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전날 밤부터 카사 로사다 앞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린 팬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줄은 더욱 길어졌다. 아르헨티나 일간 클라린의 생중계 영상엔 인근 도로에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 조문객들이 커다란 검은 리본이 걸린 카사 로사다에 차례로 들어서는 모습이 담겼다. 내부에는 아르헨티나 국기와 등번호 10번이 적힌 유니폼이 덮인 고인의 관이 놓여 있고, 추모객들이 그 앞을 지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성호를 긋거나 힘차게 손뼉을 치기도 하고, 유니폼이나 꽃을 던지면서 키스를 날리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마라도나의 이름을 외치는 팬도 있었다. 목발을 짚은 채 일찌감치 빈소를 찾은 팬 나우엘 델리마(30)는 AP 통신에 “그(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를 세계에 알렸다”며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 위대한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뛰던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보카 주니어스의 팬인 크리스티안 몬텔리(22)는 로이터에 “마라도나를 아버지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마치 아버지를 잃은 것 같다”며 울먹였다. 이날 일반 조문객을 맞기에 앞서 가족과 지인들이 먼저 고인을 배웅했다. 전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우승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고인의 팀 동료를 비롯한 축구선수들이 함께 했다고 AP는 전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부인과 함께 관저에서 헬기를 타고 카사 로사다에 도착해 조문했다. 그는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것뿐이다. 국민에게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일간 라나시온은 전했다. 이날 아르헨티나 안팎의 언론은 “신이 죽었다” “이제 신이 하늘로 갔다”는 등의 헤드라인으로 ‘축구의 신’을 추모했다. 마라도나는 ‘신’을 뜻하는 스페인어 ‘디오스’(Dios)에 등번호 10을 넣어 ‘D10S’로 불렸다. 국민 영웅을 배웅하려는 팬들의 열기는 코로나19 공포도 넘어섰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전 국민 격리를 장기간 시행해 왔지만, 마라도나 추모 인파를 막지 않았다.이날 대통령궁 앞에 모여 고인을 추모한 팬 중엔 마스크 없이 노래하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당국은 카사 로사다에 100만명의 추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팬들의 인사를 받은 후 마라도나는 먼저 세상을 뜬 부모가 잠들어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한편 마라도나가 전성기를 보낸 이탈리아 나폴리 축구경기장 ‘스타디오 산 파올로’에 마라도나의 이름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루이지 데 마지스트리스 나폴리 시장은 26일 라디오 ‘안키오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나폴리 경기장이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명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도 마라도나를 넘어설 수 없다. 그는 나폴리 시와 나폴리 클럽의 영원한 연대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나폴리 시민들이 경기장을 그렇게 부르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나폴리 구단의 아우렐리오 데 라우렌티스 회장도 클럽 홈페이지에 공개한 추모 글을 통해 “파올로 경기장을 당신의 이름을 따 명명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팀이 걸어온 훌륭한 길의 목격자로서 당신을 계속 우리 곁에 둘 수 있을 것”이라며 이에 호응했다. 마라도나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7년을 나폴리에서 뛰는데 1987년 창단 첫 리그 우승과 함께 1989~90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나폴리 구단은 물론 본인의 축구인생에서도 황금기로 꼽힌다. 해서 고인의 고국 아르헨티나 못지 않게 나폴리 시민들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이 경기장에 이틀째 애도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장 밖 한쪽은 수많은 촛불과 꽃다발, 사진, 유니폼 등으로 수놓였다. 경기장에는 마라도나 얼굴 이미지에 ‘더 킹’(The King)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대형 걸개그림도 등장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그 ‘신의 손’… 신의 손 잡다

    그 ‘신의 손’… 신의 손 잡다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 ‘신의 손’이 신의 곁으로 갔다.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60세.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뇌경막하혈종 수술을 받고 11일 퇴원해 회복 중이었다. 구급차 9대가 출동했으나 끝내 그를 소생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60번째 생일이던 지난달 30일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은 게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 기간 마라도나의 시신은 대통령 궁에 안치된다. 마라도나는 펠레(80)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꼽힌다. 그는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 포틀랜드 전쟁 등으로 상처가 깊던 아르헨티나 국민을 축구공 하나로 위로한 불세출의 천재였다. 작지만 탄탄한 체격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수비수 서너 명은 쉽게 제치는 현란한 드리블, 위치를 가리지 않고 왼발로 쏘아 올리는 동물적인 슈팅에 아르헨티나는 물론 세계 축구팬은 탄성을 질렀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공을 자유자재로 다뤘던 마라도나는 16세에 프로에 데뷔했고 17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우승 트로피를 품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손으로 골을 넣어 세계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마라도나는 “나의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든 골”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네 번째 출전이던 1994년 미국월드컵 도중 도핑에 적발돼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며 내리막을 걸었고 사생활에서 약물 중독, 음주, 폭행, 탈세 등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1997년 그라운드를 떠난 마라도나는 프로 통산 588경기 312골, A매치 통산 91경기 34골의 기록을 남겼다.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8강까지 이끌기도 했으나 선수 시절에 견주면 크게 빛나지는 못했다. 마라도나는 한국 축구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멕시코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에서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이 전담 마크를 했다. 그 과정에서 허 이사장이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걷어차 ‘태권 축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24년 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허 이사장과 지략 대결을 펼쳐 한국에 4-1로 승리했다. 마라도나가 당시 한국 벤치를 자극해 허 이사장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2017년 방한해 허 이사장과 만나 포옹하며 화해했다. 특히 멕시코월드컵 당시 허 이사장의 깊은 태클이 담긴 사진을 선물받고 웃으며 “허정무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분”이라며 “태클 상황은 월드컵에서 나왔기에 기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축구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펠레는 트위터에 “나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고 세계는 전설을 잃었다”면서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축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메시는 “그는 떠나가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에고는 영원하다”고 인사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라도나를 추모하며 기도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교황청 대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교황청은 마라도나를 ‘축구의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이젠 하늘에서 드리블…마라도나 심장마비로 타계

    이젠 하늘에서 드리블…마라도나 심장마비로 타계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마오.’‘신의 손’이 신들 곁으로 갔다. 아르헨티나가 배출한 세계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60세.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들은 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뇌경막하혈종 수슬을 받고 11일 퇴원해 회복 중이었다. 구급차 9대가 출동했으나 끝내 그를 소생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60번째 생일이던 지난달 30일 지난해부터 지휘봉을 잡아온 힘나시아 라플라타의 경기가 열리기 앞서 생일 축하 인사를 받은 게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사흘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 기간 마라도나의 시신은 대통령 궁에 안치된다. 마라도나는 브라질 펠레(80)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로 꼽힌다. 그는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 포틀랜드 전쟁 등으로 상처가 깊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축구공 하나로 위로한 불세출의 천재였다. 작지만 탄탄한 체격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 수비수 서너 명은 쉽게 제치는 현란한 드리블, 위치를 가리지 않고 왼발로 쏘아 올리는 동물적인 슈팅에 아르헨티나는 물론 세계 축구 팬들은 탄성을 질렀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공을 자유자재로 다뤘던 마라도나는 16세에 프로에 데뷔했고, 17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정상을 밟았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손으로 골을 넣어 세계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와 관련 마라도나는 “나의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든 골”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에서 7년 간 프로 최고의 시절을 보내던 마라도나는 당시 4강에서 이탈리아를 꺽은 일로 하루 아침에 비난 대상이 되며 나폴리를 떠나는 비운을 겪었다. 그의 등번호 10번은 나폴리에서 영구 결번이다.네 번째 출전이던 1994년 미국월드컵 도중 도핑에 적발돼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며 내리막을 걸었고, 사생활에서 약물 중독, 음주, 폭행, 탈세 등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1997년 그라운드를 떠난 마라도나는 2001년 11월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세계 올스타팀과 은퇴 경기를 치렀고, 프로 통산 588경기 312골, A매치 통산 91경기 34골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8강까지 이끌기도 했으나 선수 시절에 견주면 크게 빛나지는 못했다. 마라도나는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다. 월드컵 무대에서 두 번 겨뤘다.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선수로 마라도나를 전담 수비하며 ‘태권 축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 마라도나와 지략 대결을 펼쳤던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제가 반딧불이라면 마라도나는 태양이나 환한 달 같은, 감히 기량을 견줄 수 없는 존재였다”고 돌이키며 “조금 일찍 타계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아공 때를 보면 우리와 경기를 앞두고 ‘태권 축구’를 언급하며 심판 판정을 압박하는 등 심리적인 면에서도 수가 뛰어난 승부사라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축구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펠레는 트위터에 마라도나의 사진을 올리며 “나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고 세계는 전설을 잃었다”면서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축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메시도 마라도나와 함께한 사진을 게시하며 “그는 떠나가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디에고는 영원하다”고 인사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마법사였다”고 기리며 마라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도 마라도나를 추모하며 기도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교황청 대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교황청은 마라도나를 ‘축구의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유흥업소 출입 의심해 링거살인…간호조무사 징역 30년(종합)

    유흥업소 출입 의심해 링거살인…간호조무사 징역 30년(종합)

    경기 부천시의 한 모텔에서 남자친구에게 약물을 과다 투약해 숨지게 한 간호조무사에게 중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6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씨는 2018년 10월 경기 부천의 한 모텔에서 남자친구 A씨(당시 30)에게 링거로 마취제 등을 과다 투약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자신이 근무했던 병원이 폐업하자 마취제 프로포폴과 소염진통제 디클로페낙을 처방전 없이 A씨에게 투약하고, 해당 병원의 약품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평소 집착 증세를 보인 박씨는 A씨의 휴대전화에서 13만원이 이체된 것을 보고 유흥업소에 출입한 것으로 의심, 배신감을 느끼고 A씨를 살해할 마음을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전날 박씨는 지인으로부터 진통소염제 앰플과 주사기를 받았고, 폐업한 자신의 직장에서 빼돌린 약 등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박씨는 A씨에게 ‘피로회복제를 맞자’며 프로포폴로 잠들게 한 뒤 진통소염제를 대량 투여했으며, A씨는 진통소염제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A씨는 프로포폴과 리도카인, 디클로페낙을 과다하게 투약받아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박씨는 약물을 치료 가능한 수준의 농도로 투약했다. 박씨는 재판과정에서 A씨와 경제적인 이유로 함께 자살을 모의했고 실행에 옮겼지만, 자신은 주사바늘이 빠져 살아났다고 주장하며 일관되게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1심은 “박씨는 자신의 의학지식을 이용해 피해자를 죽인 뒤 자신도 약물을 복용해 동반자살로 위장했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심도 “박씨는 피해자와 동반자살을 결의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의 (숨지기 전날) 행동은 자살을 계획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행동과 다르고 자살징후도 찾아보기 어렵다. 동반자살을 결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의 형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2심판단이 옳다고 봤다. 유족, 청와대 국민청원 통해 엄중처벌 호소 이 사건은 A씨의 유족이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려 타살 의혹을 제기하면서 알려졌다. A씨의 누나라고 소개한 청원자는 해당 글에서 “B 씨는 본인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링거로 투약했지만 링거 바늘이 빠져서 중간에 깨어나 (119에) 신고했다는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남동생 친구들에 따르면 B 씨는 남동생과 크게 싸우며 다툼이 잦았으며 3년 된 동거남이 있고 결혼까지 생각했다. B 씨는 평소 피로 해소에 좋다며 약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약하고 남동생의 친구들에게도 권했다”고 주장하면서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철저하게 수사해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하늘로 떠난 축구영웅 마라도나 장례식, 대통령궁에서 엄수

    하늘로 떠난 축구영웅 마라도나 장례식, 대통령궁에서 엄수

    60년 짧은 인생을 살고 숨을 거둔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장례식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에서 엄수된다. 라나시온 등 현지 언론은 "대통령궁 메인 홀에 빈소가 설치될 예정"이라면서 "건물 정면 외벽 리모델링을 위해 설치한 비계가 제거되는 등 이미 장례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빈소는 일반에 개방될 예정이며 조문은 26일 오전(이하 현지시간)부터 시작된다. 현지 언론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임이 제한되고 있지만 마라도나에 대한 국민적 사랑 등을 감안해 일반인의 조문이 허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주변에는 벌써부터 축구팬들이 모여들고 있다. 마라도나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제안으로 대통령궁에서 열리게 됐다. 아르헨티나 대통령비서실 고위관계자는 "마라도나의 사망소식을 접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며 대통령궁을 장례식장으로 제안했다"고 말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평소 마라도나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그는 마라도나가 사망하자 27일까지 잡혀 있던 자신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그는 스포츠채널 T&C와의 인터뷰에서 "마라도나는 국가와 국민에게 큰 기쁨을 준 선수였다"면서 "앞으로 마라도나 같은 선수가 또 나올지 모르겠다"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편 아르헨티나 과학경찰은 25일 오후 6시(한국시간 26일 오전 6시)부터 마라도나의 부검을 실시한다. 부검 결과는 당일 발표될 예정이다. 경찰은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병원 밖에서 발생한 사망의 경우 필요에 따라 진행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마라도나는 앞서 지난 3일 경막하혈종 뇌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전원주택에서 회복 중이던 마라도나는 2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간호사 등 마라도나를 살피던 측근들에 따르면 마라도나는 갑자기 시작된 원인 모를 고통을 호소하다 숨을 거뒀다. 현지 언론은 "앰뷸런스 9대가 줄지어 달려갔지만 마라도나를 살리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은 "마라도나의 죽음이 국민적 사기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가뜩이나 지친 국민들이 영웅을 잃고 더욱 힘들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진=라나시온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프란치스코 교황도 ‘아르헨티나 축구전설’ 마라도나 별세 애도

    프란치스코 교황도 ‘아르헨티나 축구전설’ 마라도나 별세 애도

    같은 국가 출신이자 ‘열성 축구팬’ 교황 “그를 위해 기도”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별세에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애도를 표했다. 열성 축구 팬으로도 유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여러 차례 마라도나를 영접한 바 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교황은 마라도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최근 몇 년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그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면서 “교황은 최근 마라도나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축구 클럽 산로렌소의 오랜 팬이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교황청 공식 웹사이트 역시 마라도나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를 ‘축구의 시인’(poet of soccer)이라고 평가했다. 마라도나의 과거 약물 중독 전력도 언급하며 “매우 특출한 선수였지만 취약한 면도 있었다”며 입체적으로 그를 조명했다. 마라도나는 로마에서 여러 번 ‘평화를 위한 축구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경기의 수익금은 교황의 자선기금으로 기탁해 저개발 국가의 교육이나 2016년 중부 이탈리아 지진 피해자를 위한 지원에 사용했다. 그는 한 경기에서 교황에게 ‘프란시스 교황께, 애정과 세계 평화의 염원을 담아 드립니다’라고 적은 운동복을 선물하기도 했다.마라도나가 이날 오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마라도나는 지난 3일 뇌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한 후 11일 퇴원해 회복 중이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이자 영웅으로, 브라질의 펠레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일약 국민영웅이 됐다. 당시 마라도나는 월드컵 MVP로도 선정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부천 링거 살인사건’ 간호조무사 오늘 대법 선고

    ‘부천 링거 살인사건’ 간호조무사 오늘 대법 선고

    1·2심 “동시 극단선택? 증거없다” 징역 30년 선고 간호조무사가 모텔에서 남자친구에게 약물을 과다 투여해 숨지게 한 일명 ‘부천 링거 살인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26일 최종 확정판결을 내린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이날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박모(32)씨를 상대로 선고기일을 진행한다. 박씨는 2018년 10월 경기 부천시의 한 모텔에서 남자친구 A(당시 30세)씨에 링거로 마취제 등을 과다 투여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프로포폴 등을 처방전 없이 A씨에게 투약하고, 2016년 8월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이 폐업하자 의약품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남자친구 A씨는 마취제인 프로포폴과 리도카인,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 등을 치사량 이상으로 투약받은 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조사됐다. 사인은 디클로페낙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사건 당시 A씨와 모텔에 함께 있던 박씨도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박씨에게 투약된 약물은 치료 가능한 수준의 농도로 확인됐다. 경찰은 박씨에 대해 위계 등에 의한 승낙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위계승낙살인죄는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처럼 속여서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살해한 경우 적용된다. 그러나 검찰은 박씨와 A씨가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고 위계승낙살인죄가 아닌 일반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박씨는 재판 과정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A씨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모의했고 실행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다만 자신은 주삿바늘이 빠져 살아난 것이라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1심은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박씨는 자신의 의학지식을 이용해 피해자를 죽인 뒤 자신도 약물을 복용, 동반자살로 위장했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역시 A씨가 자신에게 살인을 촉탁했다는 박씨의 주장에 대해 “피고인의 진술 외에 피해자가 죽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한 객관적 자료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행동은 극단적 선택을 계획한 사람에게서 보이는 행동과 다르고 자살 징후도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반성하는 태도가 없다”며 1심의 징역 30년 선고를 유지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축구전설’ 마라도나 사망에 슬픔 잠긴 아르헨…“국가애도기간”

    ‘축구전설’ 마라도나 사망에 슬픔 잠긴 아르헨…“국가애도기간”

    전설적인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60) 사망에 아르헨티나가 슬픔에 잠겼다. 마라도나가 2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한 후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성명을 통해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기간 마라도나의 시신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카사로사다에 안치될 예정이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26일부터 28일까지 일반인들이 대통령궁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장례에 앞서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유족과 협의해 이날 오후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다. 이날 정오 무렵 자택에서 숨진 마라도나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1986년 월드컵 우승을 안긴 축구 영웅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아르헨티나 전역을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다. 60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최근까지 현역 감독으로 활약해 온 데다, 이달 초 뇌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친 것으로 알려졌기에 충격이 컸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등 주요 인사를 포함한 아르헨티나인들이 줄줄이 애도를 표하며 영웅을 발자취를 회고했다. 바티칸에서 몇 차례 고인을 만난 적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고인을 추모하며 기도했다고 로이터통신이 교황청을 인용해 전했다. 마라도나는 조국 아르헨티나에 단순히 월드컵 우승컵을 넘어 큰 자부심을 안겼고, 많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준 ‘국민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마라도나 60세 일기로 눈 감아, 펠레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공을”

    마라도나 60세 일기로 눈 감아, 펠레 “언젠가 하늘에서 함께 공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60세를 일기로 생을 접었다.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로 1986년 월드컵 우승을 조국에 바쳤고 감독으로도 이름을 떨친 그는 25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을 거뒀다. 이달 초 뇌에 혈전이 발견돼 수술을 받아 성공한 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현지 일간 라나시온은 이날 아홉 대의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으나 마라도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60세 생일이던 지난 10월 30일 자신이 이끌던 팀 힘나시아의 경기를 앞두고 생일 축하를 받았는데, 그것이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등번호 10번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이자 영웅이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와 더불어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 태어나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며,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나폴리 등을 거쳤다. 작지만 단단한 몸에 화려한 드리블, 위력적인 왼발 킥으로 그라운드를 평정했다. 일찌감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A매치 91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었다. 34년 전 월드컵 우승 때 잉글랜드와 준준결승 때 이른바 ‘신의 손’으로 득점했던 일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어쨌든 우승했고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그의 차지였다. 은퇴 후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와 중동, 멕시코 등에서 프로팀을 이끌다 지난해부터 아르헨티나의 힘나시아 라플라타 감독을 맡았다.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마라도나에겐 약물 스캔들도 이어졌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도중 도핑 테스트에 적발돼 중도 귀국해야 했고 마약 중독 치료도 여러 차례 받았다. 마약과 알코올 복용, 비만 등으로 과거에도 심장 문제를 겪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기행이나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들로 언론을 장식하고 사생활을 둘러싸고도 말들이 나왔지만, 이같은 논란 속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한 축구 실력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었다. 축구 레전드의 비보에 아르헨티나와 전 세계 축구계가 슬픔에 빠졌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사흘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카사로사다에 시신을 안치해 26일부터 28일까지 일반인들이 추모할 수 있게 했다. 펠레는 “분명히 언젠가 하늘에서 우리가 함께 공을 차게 될 것”이라고 애도했고 고인이 몸 담았던 팀 나폴리도 작별을 전했다. 이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도 마련될 예정이다.같은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는 “모든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축구계에 아주 슬픈 날이다. 그는 떠나지만 영원하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 난 그와 함께 산 아름다운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유족과 친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신의 손’에 당했던 잉글랜드의 레전드 개리 리네커는 “우리 세대 선수 가운데 최고였으며 모든 시대에 가장 빼어난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에 몸담았던 아르헨티나 출신 오시 아르딜레스는 “우정과 축구, 비교할 바 없이 최고를 베풀어준 것이 고맙다. 간단히 말해 축구 역사에 최고의 선수다. 함께 한 즐거운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그 중 어떤 것이 최고였다고 말하기 불가능할 정도다. RIP(영원한 안식을) 내 친구여”라고 애도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오늘 난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게 됐고, 세계는 한 영원한 천재에게 작별을 고하게 됐다. 역대 최고 중 한 명이었다. 필적할 이가 없는 마술 같은 존재였다. 그가 너무 일찍 떠난다. 끝을 모르는 업적을 남기고, 결코 다른 이가 채울 수 없는 틈을 남기고 떠난다. 에이스여 영원한 안식을. 결고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네이마르, 해리 케인, 마커스 래시포드 등도 천재의 떠남을 슬퍼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양극 사이를 넘나들다… 콘크리트 속 자연과 인간의 공생

    양극 사이를 넘나들다… 콘크리트 속 자연과 인간의 공생

    #건축을 향한 여정 안도 다다오가 복서였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는 우연히 고서점을 지나가다 발견한 르코르뷔지에 전집에서 그의 스케치를 보고 자신도 건축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순간의 일이었으나 당시 그의 결정이 우연만은 아니었다. 안도는 일본 목구조 속의 빛과 공간감에 대해 감각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르코르뷔지에의 스케치에 반하면서 건축을 향한 신념은 굳어져 갔다. 무엇보다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답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남들이 대학을 갈 때 배낭을 둘러메고 거장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러시아 횡단을 시작한다. 목적지는 유럽이었다. 1965년 25세가 되던 해 안도는 유럽 여정을 마치고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경유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뤼니테 다비타시옹을 찾아 스케치에 전념했다. 그러곤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바라보며 건축의 원형을 서양에서 구하려고 했던 초기의 자기 생각을 되짚어 보고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간 마르세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프마르탱의 작은 오두막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인생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의사가 수영을 엄격히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오솔길을 내려와 지중해의 바닷속으로 들어간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의 유해는 해변가에 눕혀졌고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대가와의 만남은 공간적으로 이어졌다. 마르세유를 떠난 여객선은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인도를 향해 떠나고 있었고, 안도는 배고픔을 잊은 채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라투레트 수도원 남쪽 파사드의 음률을 음미하고 있었다.#공간 건축을 향하여 필자는 파리 유학 중 1992년 9월 퐁피두센터에서 안도의 강연을 들었다. 그의 모습은 모노크롬 그대로였다. 짧은 커트의 단발머리와 수도승 같은 그레이톤의 재킷을 입고 있었다. 강연에서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저에게 건축은 두 대립되는 사이(間)를 고민하고 방황을 계속한 끝에 자신의 의지를 예리하게 갈고닦은 그 순간에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것은 공간의 형태, 서양과 동양, 내부와 외부, 추상성과 구상성, 부분과 전체, 역사와 현재, 과거와 미래, 그리고 단순성과 복잡성 등으로 결코 한자리에 머물 수 없는 양극 사이에 존재합니다.” 안도는 자연을 재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자기만의 공간언어가 필요했다. 안도는 공간언어 체계를 르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이라는 두 거장에게서 가져왔다. 르코르뷔지에로부터는 수평성의 자유로운 벽의 개념을, 칸에게서는 바로크의 침묵의 벽을 연구했다. 안도는 두 거장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건축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근대 건축에서 건축과 공간을 해석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는 중력과 대응하는 자세에 있다. 그 해석은 정적인 공간과 동적인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정적인 공간은 수직적 개념이고 동적인 공간은 수평적 개념을 지향한다. 수직의 빛은 천창을 통한 신비로운 빛을 지향하고 수평의 빛은 다양한 오브제와 만나는 수평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자연과 교감하는 공간 안도는 초기의 주택 프로젝트에서 자연과 건축의 조화로운 공간 개념을 정(靜)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정의 개념은 주위 환경이나 장소성을 중요시하게 되는데 동양에서의 집의 개념은 건물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영역’을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그의 관심사가 지역성이나 주변의 자연환경에 집중하는 이유이다.공간의 경험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고베의 ‘바람의 교회’에서는 로코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긴 복도를 만들어 인간의 육감을 통한 공간을 연출했고, 시간을 공간에 불러들이면서 움직임이 있는 동(動)의 건축으로 진화한다. 시간은 건축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추상적인 시간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공간을 빌려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간의 개념은 공간의 폐쇄성을 무너뜨리고 공간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체험적 공간 속으로 유도한다.자연과 건축공간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그는 초기의 연작을 통해 건축 공간 속에 자연을 표현하는 방법의 단계별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빛의 교회’에서는 정적인 공간 속에서 빛의 연출을 통해 잔잔한 무브망(움직임)을 유도하고 있으며, ‘바람의 교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교감시키는 선적 공간이 대두되고 있다. ‘물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진입로의 긴 여정은 새로운 공간 건축을 유도하는 시도가 됐다. ‘물의 교회’에서는 자연과 사계절에 대응하는 건축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정적인 건축 속의 움직임 그의 초기 작품은 일본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정적인 공간에서 점진적으로 서양의 공간언어에서 오는 체험적이고 동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도는 많은 회고록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스승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는 르코르뷔지에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 안도가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사사한 것 중 중요한 근대 5원칙이나 공간의 개념을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는 오히려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시노’ 주택에서는 필로티를 적용하는 대신 외벽이 지하까지 박혀 있으며 외부의 창은 수평성 대신 수직성을 띠고 있다. 또한 도미노이론에 대해서는 기둥의 하중을 분리해 공간에 자유를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기둥의 상징적 의미가 상실되며, 따라서 최대한 지면과 접하는 벽이 기둥보다 더 자연과 교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초기의 작품에서 기둥은 일본 신사의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거나 오브제와 프레임의 역할로서 끊임없이 변하는 경계를 주시하고 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을 설계할 당시 안도는 밀폐된 공간(3.6×14.5m) 속에서 수도승처럼 참선하며 빛, 소리, 온도가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공간 속에서 무의식의 상태가 됐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새소리와 함께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됐을 것이다. 자연의 빛에서 침묵이 만들어지고 온기와 새소리는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한 곳에 머물거나 어떤 부류에 속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인위와 자연, 움직임과 멈춤, 형태와 공간, 단순과 복잡, 이것들의 양극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다.#탈중심의 즐거움 필자는 학부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 한 건축가의 특강을 듣고 건축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정림건축에서 근무하던 중 당시에 유행하던 해체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파리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세계 철학의 중심지 파리에 해체주의에 대한 담론은 없었고 학생들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보고 뿌리도 없이 유행에 휩쓸리는 한국 건축의 한계를 경험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하는 파리의 하늘 밑에서 나 자신의 존재는 없었다. 존재의 가치가 소외된 자신은 무한히 자유롭다. 하루를 끝내는 석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의 순수를 노래하는 어느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돌아가자. 대자연의 어머니의 품으로. 역사로부터 지켜지는 것은 아름답다. 너의 지친 노동으로부터 바람의 숨결로 너를 쉬게 하리라.” 콘텍스트는 땅을 읽는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논리적 혹은 합리적으로 대하는 자세가 아닌 경제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콘텍스트 건축’은 태와 터가 지닌 역사의 주위를 맴도는 자연환경, 예를 들면 바람이 어떻게 불고 빛의 강도는 어떠한가 하는 식의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콘텍스트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순수의 정신이야말로 이 시대에 사라진 휴머니티를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초기의 작품에서 정리되고 있다. ‘메종 드 고기리’의 부지는 개발업자들의 땅 나누기 수법에 자연이 난도질당한 곳이었다. 콘텍스트가 죽은 곳에서 건축물의 공간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밤나무가 우거진 대지를 처음 접했을 때 밤나무를 어떻게 내부 공간 깊숙이 끌어들일까 하는 화두가 계획의 중심이 됐다. 대지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과 감성을 포착하는 것, 그것이 감성적 콘텍스트 계획의 시발점이다.‘메종 드 나튀르’는 부암동의 성벽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콘텍스트가 강한 부암동의 지형들에 순응해 자신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전통 공간에서의 채와 마당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외부의 공간이 하나의 시나리오를 가지면서 다양한 시퀀스를 제공한다. 시나리오적 공간과 전통 공간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이다. 빛과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정적인 공간과 이야기가 있는 동적인 공간이 있는 작품이다.‘메종 드 테르’는 정제된 매스가 자연의 소리와 만나는 소리의 집이다. 개울가의 소리를 담기 위한 발코니 공간과 새들이나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중정의 공간을 계획했다. 비어 있는 마당의 즐거움은 잔잔한 그림자와 작은 공연장의 소리를 담아낸다. 자신의 내부로의 느낌이 있듯이 건축공간도 내부의 공명에 의해 존재를 나타낸다. 움직임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대상의 중심에 빠질수록 의식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중심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변방의 한가로움을 탐하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내면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오늘도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다. 건축가 전인호
  • 고 휘트니 휴스턴의 의붓아들 사망, 팝디바 모녀에 이어 잇단 비극

    고 휘트니 휴스턴의 의붓아들 사망, 팝디바 모녀에 이어 잇단 비극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난 ‘팝 디바’ 휘트니 휴스턴의 의붓아들 바비 브라운 주니어가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브라운 주니어는 전날 오후 로스앤젤레스(LA)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응급의료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현장에서 브라운 주니어에 대해 사망 선고를 내렸다고 밝혔다. 타살 정황은 없다면서 고인의 사망 원인과 경위에 대한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브라운 주니어는 1980∼90년대 인기 댄스가수 바비 브라운이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친아들이고, 그와 1992년 결혼해 2007년 파경을 맞은 휘트니 휴스턴에게는 의붓아들이었다. 휴스턴과 브라운 사이에는 친딸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이 있었다. 외신들은 브라운과 휴스턴 가족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휴스턴은 8년 전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 휴스턴이 코카인을 흡입한 뒤 욕조 안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익사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녀의 친딸 크리스티나 브라운은 2015년 조지아주 자택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6개월 동안 혼수 상태에서 치료를 받다가 22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엄마처럼 마리화나, 코카인, 모르핀 등 각종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너무나 닮아 있어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전 부인과 딸에 이어 아들까지 잃은 브라운의 딱한 처지를 위로하는 댓글이 소셜미디어에 쇄도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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