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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민
    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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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달 1~12일 한국시사만화전

    촌철살인의 풍자와 웃음이 있는 만화와 캐리커처를 만나볼 수 있는 한국시사만화전이 새달 1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전·현직 신문 미술기자와 화백들이 참여하는 전시에는 정유년 닭띠해를 맞아 닭을 소재로 세태를 풍자한 재치 있고 해학이 넘치는 4컷 만화와 만평, 캐리커처, 일러스트, 캘리그라피 40여점이 선보인다. 강동헌, 김을호, 김종두, 심민섭, 안기태, 안백룡, 유기송, 유환석, 이진한, 이홍우, 장영우, 조기영, 강일구, 김태완, 박민용, 박상철, 장영석, 조남원, 최낙수 등 19명이 참여한다. (02)396-8744.
  • 미래부 차관 등 300명 ‘과학언론의 밤’…‘ 한반도 지진과 트라우마’ 포럼도 진행

    국내 과학기자와 의학기자들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자협회(회장직무대행 김길원)는 2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2016 과학언론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국내 과학 및 의학기자들과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 정부출연연구기관 기관장, 의료기관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과학언론의 밤 행사에서는 ‘2016 과학 언론상’ 시상식이 함께 열렸다.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한호성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홍태경 연세대 교수가 ‘올해의 과학자상’을 수상했고 서울신문 유용하 기자에게는 ‘올해의 과학기자상’이 돌아갔다. ‘올해의 의학기자상’은 문화일보 이용권 기자가 받았다. 또 ‘올해의 과학행정인상’은 오태석 미래부 국장, 백희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부장, 고인수 포항가속기연구소 단장이 수상했다. 이날 사전 행사로 열린 포럼 ‘한반도 지진과 지진 트라우마’에는 김학수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지헌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 단장 등 지진 및 언론 전문가 9명이 참석해 지난 9월 발생한 경주 지진과 관련해 국내 언론의 재난보도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과학기자협회 25일 ‘한반도 지진과 지진트라우마’ 빅포럼

    과학기자협회 25일 ‘한반도 지진과 지진트라우마’ 빅포럼

    한국과학기자협회(회장 직무대행 김길원)는 오는 2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7층 글로리아홀에서 ‘한반도 지진과 지진트라우마-재난보도의 발전방향 모색’을 주제로 ‘2016 빅포럼’ 행사를 갖는다. 과학기자협회 빅포럼은 한 해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의·과학 이슈를 다루는 행사다. 올해 빅포럼 기조발언은 김학수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재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의 엇박자’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지헌철 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지진 안전성에 대해 발표한다. 지 연구원은 한반도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진도 6 이상의 지진 발생 확률을 예측할 예정이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은 ‘지진트라우마’를 주제로 지진 뒤 생기는 초조, 불면, 두통, 구토 등의 증상과 스트레스를 설명한다. 또 1995년 일본 한신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전국적인 재난정신건강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현황을 비교해 설명할 게획이다. 김민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종합안전평가부 책임연구원은 국내 원전의 지진 안전성에 대한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주제발표 뒤 안영인 SBS 기자가 좌장을 맡아 심층 토론을 벌인다. 토론에는 유용하 서울신문 기자, 이진한 동아일보 기자,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인 하규섭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유용규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 과장, 이연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참여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오감만족 치즈 체험, 정부 지정 축제로”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오감만족 치즈 체험, 정부 지정 축제로”

    심민 임실군수는 임실N치즈축제를 “”치즈를 보고, 만들고, 맛보고, 만지고, 배우는 오감만족 체험축제”라고 강조했다. 심 군수는 “지역의 70%가 청정 산악지역이고 강수량이 풍부해 젖소와 한우를 사육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실N치즈축제의 특징은. -임실N치즈축제는 전국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축제다. 대한민국 치즈의 원조인 임실에서 치즈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주민들이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은 물론 적극 참여하는 한마당 잔치다. →임실N치즈축제의 지향점은. -청정 낙농지역인 임실의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농촌 이미지와 이곳에서 생산되는 임실 치즈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축제 참여를 통한 주민 결속력 강화와 소통에도 큰 의미를 둔다. 관광객들도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방침이다. →타지역 축제와 차별화되는 점은. -치즈를 테마로 한 국내 유일의 축제다. 낙농과 관광, 정보 산업을 융·복합한 6차 산업의 대표 축제다. 임실은 대한민국에서 치즈를 최초로 생산하고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했다는 자긍심이 있다. →축제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는 영향은. -지난해 축제에 10만여명이 다녀갔다. 임실군 전체 인구의 3배가 넘는다. 이 중 93%가 타지역 관광객이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100억원이다. 올해는 20만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한다. →축제의 중장기 발전방향은. -아직도 임실 치즈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축제의 인지도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하겠다.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계획이다. 지역문화 콘텐츠를 재구성하고 치즈의 상품성을 더욱 보완함으로써 정부 지정 문화관광축제로 발돋움하도록 노력하겠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인사]

    ■교육부 △한국체육대 사무국장 심민철△한밭대 사무국장 조일환△ASEM 교육장관회의 준비기획단 지원근무 오응석△중앙교육연수원 하영자△감사관실 홍수영△기획조정실 신민규△학교정책실 전용진△대학정책실 길인영△평생직업교육국 이운식 ■통일부 ◇고위공무원 승진△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 김기혁△개성공단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장 김진구△통일준비위원회 사무국장 김병대 ■부산시 ◇3급△신공항지원본부장 김부재■코트라 ◇승진 <1직급(처장)>△테헤란무역관장 김승욱 ■MBC ◇보도국△베이징특파원 김연석△런던특파원 박상규
  • 日·에콰도르 이어 필리핀도 지진 발생… “우울·불안 등 어려움 상담 지원”

    일본, 에콰도르에 이어 필리핀에서도 20일(현지시간)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최근 국내외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으로 우울·불안·불면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 등의 지원을 한다고 보건복지부가 20일 밝혔다. 국립정신건강센터 내 심리위기지원단은 16일부터 인천공항 입국장에 상담 부스를 설치하고 일본 구마모토현 등 지진 발생 지역에서 귀국하는 국민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대면 상담을 하고 있다. 심리위기지원단은 1차 심리 평가에서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1대1 대면 상담으로 대상자의 안정을 돕는다. 장기간 지원이 필요한 대상자는 권역별 국립병원과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로 연계해 계속 상담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지진피해 경험자와 국민은 24시간 실시간 전화상담(☎1577-0199)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심리위기지원단장은 “지진 발생 후의 우울·불안·불면 등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며 “다만 이런 증상이 지속하거나 악화하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심리위기지원단은 지진 이후 어두운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하거나,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날 때, 멍하게 있거나 의욕이 없을 때, 지진 장면이 계속 떠오르거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괴로울 때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신영은(인천시의원)씨 모친상 16일 인하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30분 (032)890-3191 ●한재혁(키커뮤니케이션 대표)재진(한스주얼리 대표)재준(미국 거주)씨 부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30분 (02)3010-2233 ●김태연(우리삼텍 대표이사)태진(MBC 보도국 전국부장)씨 모친상 박원주(행복가정경제연구소 실장)씨 시모상 1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 45분 (02)2258-5940 ●채의업(전 경북대 의과대학장)씨 별세 석래(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씨 부친상 심민철(전 영남대 의무부총장)이상범(전 경북대 의과대학장)최정동(중앙일보 사진부 기자)씨 장인상 17일 경북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 (053)200-6141 ●담도경(극동대 중국어학과 교수)씨 별세 담도굉(현대자동차 중국전략담당 부사장)씨 형님상 1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2227-7500
  • “수몰민 고통 치유 필요…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야”

    “수몰민 고통 치유 필요…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야”

    “섬진댐 건설로 임실 군민들이 흘린 눈물은 국가가 책임지고 닦아 주어야 합니다.” 심민(68) 전북 임실군수는 “섬진댐은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임실군민들에게는 쓰라린 애환과 시름만 안겨준 한 맺힌 인당수”라며 23일 이렇게 말했다. 이어 “섬진댐 건설로 1만 5000여 임실군민들이 수몰민으로 내몰렸지만, 당연히 선행됐어야 할 순환도로가 아직도 개설되지 않아 오지 중의 오지로 전락해 버린 지역 주민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 군수는 “순환도로가 지방도라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섬진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나 과오가 임실 군민들에게 너무나 큰 아픔을 안겨준 만큼 지금이라도 정부가 섬진댐 수몰민들의 상처 치유에 나서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이용하는 생활도로망은 국가가 가장 먼저 공급해야 할 공공재인데 이를 완공하지 않고 50년을 미뤄온 정부가 옥정호 순환도로 개설을 위해 내년이라도 국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 군수는 “임실 군민들이 옥정호 순환도로를 국비로 개설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부에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국가의 의무를 촉구하는 것”이라며 “수몰민들의 고통과 아픈 상처를 늦게나마 위로하고 치유해 주는 차원에서 순환도로 건설사업을 조기에 완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심민 전북 임실군수

    [자치단체장 25시] 심민 전북 임실군수

    심민(68) 전북 임실군수는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키 162㎝의 작은 체구지만 칠전팔기의 강한 의지와 무서운 추진력, 둘째 가라면 서운할 근면 성실함으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역대 민선 군수들이 모두 중도 하차하는 수모를 겪었던 임실군은 지난해 7월 심 군수 취임 이후 활기를 되찾았다. 지역발전의 비전이 제시됐고 조직이 안정돼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았다. 축제 등 지역 행사에 대한 주민 참여와 호응도 높아졌다. ‘새로운 변화, 살고 싶은 임실’을 군정지표로 내건 심 군수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지난 3일 오전 8시 임실군청 1층 군수실. 심 군수는 출근하자마자 조간신문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매일 전국 주요 일간지를 정독하고 간부회의를 시작한다. 정부의 지역개발·복지·농업 정책을 메모하고 군정에 반영할 수 있는지 분석한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기사는 스크랩도 한다. 언론동향 분석은 심 군수가 앞서가는 정보를 입수하고 행정에 생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8시 30분이 되자 실·과장들이 군수실에 들어섰다. 이날 간부회의는 현장 방문 계획에 따라 일정보고 형식으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군수가 행정을 꿰뚫어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바닥 민심을 훑고 있어 간부들은 작은 사항조차도 허투루 보고할 수 없다. 실제로 심 군수는 지난 10년 동안 12개 읍·면을 구석구석 누비며 주민들과 밀도 높은 접촉을 해 왔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날 일정보고에서도 심 군수는 주요 현안과 역점사업을 꼼꼼히 챙겼다. 그는 “오늘 조간신문에 옥정호 저수율이 7.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이남재 농업정책과장에게 가뭄에 대비한 내년도 농업용수 확보 대책을 지시했다. 이원섭 건설과장에게는 2017년과 2018년 국가예산 신규사업 발굴과 예산 확보를 주문했다. 김학성 행정지원과장에게는 “인구 늘리기 방안을 좀더 구체화하라”고 지시했다. 온화하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간부들은 지시사항을 받아 적기에 바빴다. 심 군수는 일정보고를 마치기 무섭게 운동화로 갈아신고 작은 수첩을 챙겼다. 수첩은 현장을 나갈 때 필수품이다. 그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크게 듣는 것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험과 소신 때문이다. 현장 방문은 농민들이 1년 농사 성적표를 받아보는 공공비축미 수매장이다. 오전 9시 관촌 수매장에 도착했다. 심 군수는 벼 포대가 가득히 쌓인 수매장을 돌며 가뭄을 이기고 풍년 농사를 지은 농민들을 격려했다. 주민들의 성명과 거주지, 농사 규모, 가정사까지 두루두루 기억하는 것은 심 군수의 주특기다. 그는 판정이 끝난 쌀가마에 직접 등급인을 찍어 주며 농민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일부 농민들이 “풍년이 들었지만 쌀값이 떨어져 실질 소득이 줄었다”고 걱정하자 심 군수는 “농사는 365일 내내 우환거리를 안고 사는 일이다. 행정에서 최대한 지원하고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농민들을 위로했다. 이어 방문한 강진면 수매장에서는 군이 전북도내 최초로 도입한 ‘농민 월급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심 군수는 “처음 도입된 제도라 거부 반응도 있겠지만 농가에서 빚을 내 농사를 짓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시범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민 월급제는 농협에서 5월부터 9월까지 매월 농사 규모에 따라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고 군에서 4%의 금리를 대신 부담하는 제도다. 농민들은 소득이 없는 어려운 시기에 무이자로 자금을 쓰고 가을에 벼를 수매해 갚으면 된다. 농민 서병준(59·강진면)씨는 “농민 월급제 도입으로 올여름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군청에서 자체 예산으로 쌀 생산비 보전사업과 벼 건조비, 육모비 등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임실은 타 지역보다 좋은 여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소개했다. 심 군수는 식사를 마치자 곧바로 덕치면 치천 지방하천 정비사업 현장을 방문했다. 홍수 피해를 예방하고 쉼터를 조성하는 이 공사는 180억원이 투입되는 지역 숙원 사업이다. 현장 곳곳을 살펴본 심 군수는 공사 일정, 공사 효과, 차기 사업 계획 등을 묻고 보완점을 주문했다. 주민대표에게는 하천이 정비되고 교량이 개통되면 새 동네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주민들도 마을 가꾸기 사업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독려했다. 이어 심 군수는 옥정호를 구석구석 살펴보며 ‘섬진강 에코뮤지엄사업’을 추진하면 임실군 미래 발전의 보물창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옥정호의 명물인 빙어의 열성화 방지와 개체수 증가를 위해 내년 예산에 사업비를 반영하라고 수행한 김인숙 과장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심 군수의 현장방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치즈테마파크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달 개최된 ‘임실N치즈축제’ 기간(3일) 동안 10만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던 임실의 자랑거리다. 축제가 성공한 것은 심 군수의 지시로 축제 현장에 국화 5만 포기를 전시하고 암소 한우고기까지 판매해 관광객들에게 먹거리와 볼거리, 체험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범한 축제를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농가소득을 증대시키는 유망사업으로 변화시켰다. 심 군수는 “2단계 사업이 끝나는 내년 봄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감만족 체험공간이 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펼쳐 보였다. 늦가을 짧은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기 시작했지만 심 군수의 일정은 끝날 줄 몰랐다. 군청에 돌아오자마자 주민들의 상담이 줄을 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강행군에 지칠 법도 하건만 심 군수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군청 직원들이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부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후 6시 30분 보건진료소장과 간담회가 있어 서둘러 군청사를 떠나는 심 군수의 뒷모습에서 군의 밝은 미래가 보였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옥정호 관광 자원으로 생태교육·레포츠 결합

    섬진강 에코뮤지엄 조성사업은 심민 군수가 가장 열정을 가지고 추진 중인 대형 프로젝트다. 경관이 빼어난 운암면 옥정호 일원에 2020년까지 280억원을 투입해 환경교육과 레포츠를 체험하는 생태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옥정호는 임실의 대표적인 자연생태 관광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심 군수가 환경부, 전북도, 수자원공사 등을 끈질기게 설득해 보호구역 지정 범위를 조정, 개발의 전기를 맞았다. 주요 사업은 에코누리캠퍼스, 붕어섬 에코가든, 에코투어링 루트, 감성투어로드를 조성하고 생태탐방선을 운항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옥정호 제2 순환도로 개설 등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교감하는 명소를 조성하는 복합적인 지역개발 사업이다. 군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붕어섬 부지 6만 6000㎡를 매입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 군수는 이와 함께 폐교된 옥정분교 부지에 콘도미니엄을 건설하고 인근 공터 2만 8000㎡에 귀촌마을을 조성한다는 청사진도 펼쳐 보였다. 심 군수는 “에코뮤지엄 조성사업이 완공되면 사계절 체류형 관광객이 크게 증가하고 치즈와 수상레저로 대표되는 임실의 관광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脫권위적이고 토론식 강의 좋은데… 소통 한계 ‘머리만 뱅뱅’

    [겉도는 해외석학 초빙] 脫권위적이고 토론식 강의 좋은데… 소통 한계 ‘머리만 뱅뱅’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들어 본 대학·대학원생들은 토론 위주의 수업 방식과 탈(脫)권위적인 모습을 최대 장점으로 꼽는다. 단점은 역시 언어 문제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었다. 국내 대학에서 졸업 요건으로 일정 숫자의 영어 전용 강의 수강을 내세우고 있고 원어민 교수의 영어회화 강의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는 현실에서 언어가 외국인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한 상황이긴 하다. 학생들은 외국인 교수가 지향하는 토론식 수업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일방적인 지식 주입 형태인 전통적 방식의 강의보다 훨씬 수업의 집중도가 높고 재미있다는 점을 꼽는다. 경영학도인 심민우(26) 홍익대 총학생회장은 “외국인 교수들은 소규모 토론 수업을 선호하는데 수업 때마다 영어 토론을 준비하는 게 학생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지만 그만큼 도전적이고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교수가 내국인 교수들보다 더 강의 준비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인문대에 재학 중인 김모(24·여)씨는 “간혹 개인 용무로 정해진 강의 시간보다 일찍 끝내는 한국 교수들과 달리 외국인 교수들은 정해진 시간을 채우며 성실하게 강의한다”며 “시청각 자료 등 보조재도 적극 활용하는 열정적인 강의가 좋다”고 말했다. 한국인 교수에 비해 탈권위적이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옹호도 적지 않다.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에 있는 이모(24)씨는 “성적 정정 등을 신청할 경우 한국인 교수들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기분 나빠 하지만 외국인 교수와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내 주장을 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소통의 한계로 외국인 교수의 수업을 기피하게 된다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필수 과목인 영어 전용 강의도 외국인 교수보다는 한국인 교수가 진행하는 수업을 경쟁적으로 선택하게 된다고 전한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박모(24)씨는 “학사 규정상 졸업 때까지 영어 전용 강의를 10개 이상 들어야 하는데 외국인 교수의 수업은 피하고 있다”며 의사소통 문제를 기피 요인으로 꼽았다.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도 종종 파열음이 나는 계기가 된다. 특히 토론식 수업이 국내 교육 환경에 맞지 않다는 반발심이 적지 않다. 부산대 공대에 재학 중인 유모(24·여)씨는 “성적이 곧 취업으로 직결되는 한국 현실에서 성적을 매기는 기준이 애매한 토론식 수업만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인맥·학맥이 중요한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 외국인 교수 밑에서 수학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짙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에서 석사 과정 중인 이모(24·여)씨는 “교수가 학생을 ‘끌어준다’는 인식이 강한 한국 대학에서 각종 인맥을 동원하기 어려운 외국인 교수 밑에서 수학한다는 것은 대학원생 입장에서는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며 “무엇보다 외국인 교수들이 정부나 기업의 연구 용역을 잘 따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오 할매(KBS1 밤 7시 30분) 파주 시골마을에서 버려진 아기를 함께 키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버려진 아이 개똥이를 학대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할매들을 찾아오고, 더이상 개똥이의 부모 찾는 일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느낀 할매들은 지역 신문 기자의 도움을 받아 아이의 부모를 찾는다는 기사를 내게 된다. 개똥이를 향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고, 자신의 자식이라며 개똥이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밤을 걷는 선비(MBC 밤 10시) 위기에 처한 양선(이유비)을 돕는 성열(이준기). 하지만 양선을 쫓는 생각시 흡혈귀는 귀(이수혁)가 성열을 잡으려 풀어둔 미끼로 여긴다. 반면 귀는 생각시 흡혈귀를 단서로 성열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귀에게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성열은 부상을 입고 쓰러진 양선을 쫓는 흡혈귀를 처단한다. 그리고 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양선을 데리고 물속으로 숨어든다. ■제보자(캐치온 오후 5시 15분)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이장환 박사의 연구 결과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는 가운데 PD추적 윤민철 PD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이 박사와 줄기세포 연구를 함께 해 오던 심민호 팀장이다. 그는 윤 PD에게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줄기세포 실험 과정에서 벌어진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게 된다.
  • “메르스에 고통·절망한 사람에게 편견 없이 평소대로 대해 주세요”

    “메르스에 고통·절망한 사람에게 편견 없이 평소대로 대해 주세요”

    “메르스를 앓았거나 메르스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섣불리 ‘괜찮으냐’고 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다가 기회가 생겼을 때 말해 주세요. 애썼고 수고했다고….” 메르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국립서울병원 심리위기지원단 심민영(39) 단장은 평소처럼 그들을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부터 유가족·격리해제자 만나고 전화 상담 2013년 심 단장 등 18명이 결성한 심리위기지원단은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착륙사고,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등 대형 사고 때마다 나서 생존자와 유가족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에 큰 도움을 주었다. 국내에 메르스 확진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가 늘어가자 심리위기지원단은 지난 16일부터 숨진 환자의 유가족 60명과 격리 해제자 등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심 단장은 “메르스로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들은 임종을 보거나 유언을 듣지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데 대한 비통함이 특히 크다”며 “대부분 유족들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특히 자신을 간병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가족이 메르스에 걸려 사망한 경우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하며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절망도 큰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섣부른 위로는 절대 금물이라는 게 심 단장의 말이다. “상담을 받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편견 없이 옆에 있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특정인에게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이런 시기가 닥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건네지요.” ●대부분 유족들 죄책감 시달려… 섣부른 위로 절대 금물 심 단장은 세월호 유가족이 느낀 고통과 메르스 환자의 유가족들이 느끼는 정신적 고통이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월호 유족들의 경우 주변의 동정이 너무 과해서 문제였다면 메르스 유가족의 경우 주변의 지지는커녕 비난까지 받다 보니 외로움이 더욱 클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심리위기지원단은 상담 범위를 확장해 메르스 완치 퇴원자에 대한 상담도 시작했다. 24시간 상담전화를 열어 두고 식사와 퇴근도 잊은 채 일하고 있다. “재난과 트라우마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인데 갈등과 분열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은 비극입니다.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평소와 같은 자세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메르스 꺾이나] ‘메르스 주홍글씨’ 왕따·눈총…두 번 우는 격리해제·유족들

    평범한 주부였던 A(36)씨의 삶은 ‘코호트 격리’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갈린다. 메르스와 상관없이 입원했던 서울의 한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며 불가항력적으로 격리됐다가 최근 퇴원했지만 이제는 ‘메르스 왕따’가 됐다. 입원 전에는 매일 동네 아기 엄마들과 수다를 떨고 틈틈이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격리 기간 동안 외롭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그는 퇴원만 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바람은 퇴원 하루 만에 산산조각 났다. 아르바이트 매장에서는 “손님도 줄었고, 퇴원한 지도 얼마 안 됐으니 당분간 쉬라”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찾아간 어린이집에서는 눈칫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통화한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격리돼 있다 나왔으니 두 달 뒤쯤 만나자”는 말조차 상처가 됐다. ●일부 “격리 해제 자녀 등교 막자” 마녀사냥 24일 국립서울병원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이후 피해 유가족과 격리 해제자들은 ‘사회적 낙인’을 가장 힘들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서울병원이 지난 16일부터 메르스 심리위기지원단을 발족해 60여명의 유가족과 격리 해제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벌인 결과다. 그 결과 이들은 바이러스 보균 또는 타인 전파 가능성이 있는 잠복기(14일)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집에만 머무르는 등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메르스로 인해 격리됐던 점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피해 유가족과 메르스 공포와 싸웠던 격리 해제자들이 사회적 낙인에 두 번 상처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의료계 “이전처럼 똑같이 대하는 게 중요” 대전 건양대병원 호흡기 내과 교수 B씨와 그의 가족도 사회적 낙인에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B씨는 16번째 메르스 환자를 돌보다 격리됐다. 이후 14일 만에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이웃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B씨 부인은 매일 울면서 “사람들이 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무서워서 외출할 수 없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 역시 친구들의 놀림에 힘겨워하고 있다. B씨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B씨 가족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다른 아파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격리 해제자를 향해 ‘스스로 신원을 밝히라’는 글이 올라오거나 격리 해제자의 자녀 등교를 막자는 식의 ‘마녀사냥’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메르스 심리위기지원단장은 “메르스로 인한 유가족 혹은 격리자는 우울, 무기력, 죄책감, 분노에 휩싸여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걱정보다는 이전과 다름없이 똑같이 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전북도, 옥정호 인근 상수원구역 재조정에 합의

    전북도, 옥정호 인근 상수원구역 재조정에 합의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26일 도청에서 ‘옥정호 수역 시·군 상생협력 선언서’에 서명하고 상수원구역 재조정 계획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생기 정읍시장, 심민 임실군수, 황숙주 순창군수 등이 참석했다. 상수원구역은 환경부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상수원의 수질 보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해 지정하는 구역을 의미한다. 이 구역이 재조정되면 기업유치, 첨단산업단지 조성 등에서 규제를 받아온 ‘규제영향지역’이 현재의 51.6%(376㎢→194㎢) 수준으로 줄어들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정은 2012년 8월 ‘상수원구역을 재조정해 인근 주민의 복리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뤄졌다. 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광역상수원구역 인접 시·군이 협의한 첫 사례”라면서 “전국적으로 팔당댐 근처 7개 지자체 등에 관련 현안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미경 기자 btfseoul@seoul.co.kr
  • [인사]

    ■교육부 △충남대 사무국장 주명현△운영지원과장 심민철△학술진흥과장 고영종 ■문화체육관광부 ◇과장급△창조행정담당관 이수명△문화여가정책과장 한민호△체육정책과장 박성락△국제체육과장 정기원△종무1담당관 송병호△종무2담당관 나경환△국립중앙박물관 문화교류홍보과장 김승규△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기획협력과장 이경애<국립중앙도서관>△자료수집과장 이신호△자료운영과장 신명숙△국립세종도서관장 성정희<임용>△감사담당관 백승필 ■헤럴드 △기획조정실장 김형곤◇헤럴드경제△온라인뉴스룸 편집장 정덕상△디자인데이터룸 편집위원 박승윤<에디터>△인터내셔널섹션 홍길용△경제복지섹션 황해창△정치섹션 신창훈 ■한국화이자제약 △컨슈머헬스케어 사업부 총괄 전무 신동우
  • [명인·명물을 찾아서] 국내 유일 성씨공원 대전 ‘뿌리공원’

    [명인·명물을 찾아서] 국내 유일 성씨공원 대전 ‘뿌리공원’

    우리나라 사람만큼 조상과 족보를 중시해 온 민족이 있을까. 이 같은 정서를 오롯이 담은 ‘뿌리공원’이 대전 중구 침산동에 있다. 요즘은 그 정서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연간 100만명이 찾을 정도로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이곳에는 136 문중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충주 박씨, 진주 강씨, 안동 권씨 등 유명 문중은 물론 대구 빈씨, 곡부 공씨, 장흥 위씨, 행주 은씨 등 희귀(?) 문중까지 즐비하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나라 문중이 286개 성에 4179개 본관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극히 적지만 국내 유일의 성씨 공원이어서 큰 관심을 끈다. 이 공원은 1997년 11월 부지 11만㎡ 규모로 문을 열었다. ‘양반의 고장’에 걸맞게 효 정신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조성됐다. 중구는 원하는 문중에 9㎡의 부지를 제공했고, 허가를 받은 문중은 자기네 성씨 조형물을 만들어 세웠다. 조형물 크기는 높이 3m, 폭 2m로 제한됐다. 재질은 대부분 오석 등 돌이다. 일부 철제를 섞어 제작한 조형물도 있지만 대리석은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허가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 기준에 맞춰 만든다. 조형물은 앞면에 각 문중의 유래와 역사적 인물이나 유명인 등을 담았고, 뒷면에는 조형물 설립자 이름 등을 자유롭게 표기하도록 했다. 전건수 중구 주무관은 “방문객의 20~30%는 외지인인데 공원이 안영IC 바로 옆이어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학생이나 관광버스로 다른 관광지를 찾았다 들르는 단체 방문객도 많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런 공원이 있는 게 신기하다’는 것부터 자신의 문중에 자부심을 느끼거나 ‘우리 문중은 왜 없느냐’는 반응 등 다채롭다. 일부 나이 든 어른들은 조형물 앞에서 절을 하기도 한다. 조형물에 새길 문구를 놓고 종원들 간에 승강이도 벌어진다. ‘벼슬이 더 높은 아들을 시조로 하자’와 ‘뭔 소리냐, 그래도 아버지인데’라고 옥신각신하고, 문중의 유래를 기록할 때 문중의 역사 인물 중 중심을 누구로 할 것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인다. 또 본관이 같아도 원씨족과 일본에서 온 씨족 간에 이견을 보이는 문중도 있다. 조형물 앞에 새겨지는 글자수는 400~500자로 제한돼 문중이 자랑하고 싶은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입성하려는 문중이 많자 중구는 2단계로 내년 상반기까지 22억원을 들여 현 공원 뒤에 1만 5000㎡를 추가로 확장해 90개 성씨 조형물을 더 만든다. 이곳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율곡 이이를 배출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로 꼽히는 덕수 이씨 등의 조형물이 들어설 계획이어서 공원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뿌리공원 안에 ‘족보박물관’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방대한 가계(家系) 기록이 담긴 족보를 보유하고 있는 민족임을 보여 주는 장소다. 2010년 지상 2층, 지하 1층에 연면적 1733㎡로 문을 연 이곳은 전시실, 수장고, 정보자료실, 문중협의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족보와 고문서 등 모두 46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눈에 띄는 유물이 여럿 있다. 고려 김방경 장군의 후손들이 1580년대 간행한 안동 김씨 성보는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진품이다. 1476년 발간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족보책인 안동 권씨 성화보 복사본도 있다. 돌로 만든 연산 서씨 석보 4판도 볼 수 있다. 12세 외손까지도 기록한 충주 박씨의 1853년에 만든 내외 자손보는 특이하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를 적은 ‘문보’와 무과 급제자를 기록한 ‘무보’도 볼 수 있다. 특히 충무공 후손들이 부채처럼 접고 펼 수 있도록 만들어 직계만 담은 휴대용 족보 ‘가승’(家乘)은 큰 호기심을 일으킨다. 심민호 박물관 학예사는 “전시실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족보를 확보해 전시하고 있다”면서 “박물관을 찾으면 시대별로 족보가 어떻게 변화됐는지, 조선시대 왕족의 족보는 어떤 모양인지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족보 보는 법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박물관에서는 종가 및 가족 문화를 가르치는 족보대학도 열린다. 뿌리공원은 꽃이 여기저기 피어 산책하기도 좋다. 공원 옆 유등천 상류에 수변무대가 설치돼 수시로 음악회 등이 열린다. 잔디광장과 정자도 갖춰져 발걸음을 멈추고 쉴 수 있다. 야영장도 있다. 텐트 임대를 포함해 하루 2만 5000원으로 비싸지 않다. 하천에선 개인이 운영하는 오리배도 탈 수 있다. 걸어서 15분쯤 거리에 오월드가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곳은 동물원, 놀이시설, 꽃동산 등으로 구성된 대전 최고의 테마파크다. 중구는 앞으로 뿌리공원을 더욱 확장해 한국 성씨의 메카로 키울 계획이다. 300억원을 들여 공원 인근에 30만㎡ 규모로 3단계 공원을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성씨 조형물을 계속 늘리고 내년에 문을 여는 효문화진흥원에 유교문화체험관과 한옥 숙박시설 등 방문객들의 체험 공간을 만든다. 뿌리공원을 단순히 보는 곳이 아닌 체험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더욱 진화시키려는 의도다. 전 주무관은 “9월 말 이곳에서 열리는 대전 효문화 뿌리축제가 7회째로 접어들면서 성씨 공원으로서 갈수록 입지를 다지고 있다”며 “뿌리공원을 최고의 명소로 키우기 위해 오는 10일부터 외지인에 한해 성인 2000원 등 입장료를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고소득 매출과 마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유망 창업 아이템은?

    고소득 매출과 마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유망 창업 아이템은?

    소갈비살 전문 프랜차이즈 불소식당이 최근 4+4+덤 메뉴를 개발하여 주목받고 있다. 4인분의 숯불 양념 소갈비살을 주문하면 숯불 양념 쭈꾸미 4인분과 소갈비살 1인분을 덤으로 주는 메뉴다. 쫄깃하고 매콤한 맛의 쭈꾸미는 숯불에 구워 먹는 재미가 있으며 식감을 살려 벌써부터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다. 덤으로 제공되는 소 갈빗살 1인분은 본사 (주)굿투비에서 가맹점에게 지원해준다. 이 밖에도, 프랜차이즈 불소식당에 관심 있는 예비창업자들을 대상으로 최대 1억 5000만 원까지 대출을 진행하고 있으며, 50호점까지는 창업비용 1천만 원 할인, 오픈 후 월세 3개월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있다. 본사 (주)굿투비에서는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하여 10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투자해 7편의 드라마(비밀의 문, 모던파머, 일편단심민들레, 폭풍의 여자, SOS,가족끼리왜이래, 아름다운당신)에 슈퍼 자막과 PPL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업계 최초 가맹점 매출 향상을 위하여 무역을 통한 수입을 가맹점주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매주 수요일 14:00 (주)굿투비 본사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113번지 2층) 대회의실에서는 20전 20승 장사의 신 (주)굿투비 이종근 대표이사의 사업설명회, 장사 비법을 진행하고 있다. 신청 및 문의는 신청자 폭주로 인해 빠른 사전 접수는 필수다. 1644-5899 대표번호로 문의하거나 홈페이지(www. Bullso.co.kr)에서 신청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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