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심려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습도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310
  • 피랍日人 피살 확인…고이즈미 “파병 유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발견된 아시아인의 시신이 일본인 인질 고다 쇼세이(24)의 시체라고 31일 확인, 발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날 고다의 참수에도 불구,“단호한 태도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바그다드에서 발견된 시체의 지문 등 신체적인 특징을 도쿄로 전송해 경찰청 전문가들이 감식한 결과 고다 쇼세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마치무라 외상은 “테러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단호한 자세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도 자위대의 이라크 재건 지원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고다 쇼세이의 유해는 쿠웨이트를 거쳐 일본으로 운구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다의 유해가 일본으로 옮겨지면 그의 주소지인 후쿠오카현 경찰당국이 부검, 사인을 가리기로 했다. 고다의 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심려를 끼쳐서 미안하다.”며 정부측의 구출 노력에 감사를 표시하고 “이라크인들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고다의 시신은 이라크 경찰관들에 의해 30일 오후 9시쯤 바그다드 하이파 거리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발견 당시 시체는 두 팔이 뒤로 묶여 있었으며, 머리는 참수된 채 등쪽에 놓여 있었다. 이로써 지난해 3월 이라크전쟁 이래 이라크에서 숨진 일본인 희생자는 모두 5명으로 늘었다. 일본인 인질이 살해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범행단체의 자위대 철수 요구를 즉각 거부했던 고이즈미 총리도 정치적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2월14일 만료되는 자위대 이라크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고다 참수 사실 확인 과정에서 보인 일본 정부의 허술한 정보관리가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가 30일 새벽 미군으로부터 “피랍된 일본인과 신체적 특징이 일치하는 시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확인중”이라는 단서를 붙여 언론에 발표하고, 가족들에게도 이를 알렸지만 결국 고다로 추정된다고 발표된 이 시체는 이라크인으로 최종 발표되는 소동이 있었다. taein@seoul.co.kr
  • [반론] 문광부에 로비한 적 없다/이문원 독립기념관장

    서울신문 2004년 8월3일자 10면의 ‘독립기념관 로비의혹 내사’ 제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독립기념관은 기획예산처의 ‘정부보조기관 등 경영혁신 추진계획’에 따라 2000년 말 정원을 114명에서 89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그러나 기사내용처럼 ‘당시 독립기념관 몇몇 간부가 상급기관 로비를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20만∼30만원씩 걷으려다 반발을 사자,간부들의 초과근무수당을 신설하는 편법으로 300만원가량을 마련’한 사실은 없다. 독립기념관의 초과근무수당 규정은 이미 1986년 9월15일 이사회 의결로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었고,구조조정과정에서 문화관광부에 어떠한 금전적 로비를 한 사실이 없다.당시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감축은 시설관리부문을 민간에 위탁하는 사항이었던 만큼 시설관리 담당 직원이 아닌 간부직원은 구조조정 대상도 아니었다. 독립기념관은 경찰에 근거 없는 진정서가 접수되는 바람에 기사가 보도되어,국민과 관계기관에 심려를 끼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앞으로 이같은 음해에는 단호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이문원 독립기념관장
  • 우리당 ‘원톱’ 시스템으로…辛의장 19일사퇴

    우리당 ‘원톱’ 시스템으로…辛의장 19일사퇴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19일 의장직을 사퇴한다.새 의장은 당헌당규에 따라 다음 순번의 이부영 상임중앙위원이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선친의 친일(親日)행적 파문에 따른 신 의장의 사퇴로 여야의 과거사 진상규명 공방은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 신기남 의장-천정배 원내대표의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돼 왔으나 앞으로는 천 원내대표 중심의 ‘원톱’ 시스템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신 의장 비서실장인 김부겸 의원은 18일 “신 의장이 사퇴 결심을 굳혔고,19일 공식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부친 문제로 사퇴하는 것은 문제라는 당내 의견도 있으나 신 의장은 자신의 거취가 과거사 규명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이같은 뜻을 중진을 비롯한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이로써 신 의장은 지난 5월17일 정동영 전 의장으로부터 의장직을 승계한 지 석달여 만에 낙마하게 됐다. 신 의장은 이날 오후 여의도 광복회관으로 김우전 광복회장을 찾아가 “선친 문제로 독립유공자께 심려를 끼쳐 매우 죄송하다.”고 부친의 친일 행적을 사과했다. 신 의장은 광복회 방문 직후 이부영 위원을 만나 사퇴의 뜻을 밝히고 향후 당 운영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권파를 중심으로 당 내부에서는 “신 의장 사퇴를 계기로 천정배 원내대표 중심의 원내정당으로 당을 운영해야 한다.”며 지금의 ‘당 의장-원내대표’의 투톱체제 대신 원내대표 원톱체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 신임 당 의장과의 관계설정이 주목된다.한편 신 의장의 사퇴를 계기로 여권은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 등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열린우리당은 이날 국회에서 ‘과거사 진상규명 추진을 위한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어 과거사진상규명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과거사 진상규명특위 구성 작업에 착수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선친 친일’ 辛의장 기나긴 2박3일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18일 오후 2시 김부겸 비서실장,김희선 의원과 함께 서울 여의도 광복회 사무실을 찾았다.김우전 회장과 김유길 사무총장 등 임원들에게 “돌아가신 선친 문제로 독립 유공자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친일진상규명 노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머리를 숙였다.신 의장이 거듭 용서를 구했지만 김 회장은 끝까지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으면서 “앞으로 민족정기를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니 마음이 뿌듯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날 방문은 당 의장으로서 사실상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땀을 뻘뻘 흘리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제라도 용서를 빌 수 있어 홀가분하다.”고 말하는 신 의장의 표정 역시 ‘기나긴 2박3일의 장고(長考)’ 이후 의장직 사퇴를 결심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신 의장 선친의 친일행적 파문이 불거진 것은 지난 16일 저녁 6시30분쯤.경남 창원지역 공단을 둘러본 뒤 부산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신 의장은 김형식 부대변인으로부터 한 시사 월간지의 ‘선친 친일 행적’ 보도 사실을 전달받았다. 잠시 얼굴이 굳어졌지만,다시 냉정을 되찾은 듯 기자간담회를 열라고 지시했다.그리고 꼼꼼한 성격의 ‘메모광’답게 버스 안에서 기자간담회 내용을 메모했다.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선친의 일본군 헌병 복무 사실을 시인했다.그는 17일 울산 방문과 일본 민주당 의원 간담회 일정을 소화하는 등 버티기에 들어갔다.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당 의장으로서의 거취문제는 절대 가볍게 처신할 일은 아니다.”고 즉각 사퇴 거부 의사도 밝혔다.천정배 원내대표 역시 긴급 원내대표단 회의를 갖고 “연좌제는 안 된다.”고 말했고 김희선 의원 역시 ‘사퇴 불가론’을 펴며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신 의장은 그날 오후와 밤 문희상 의원,김부겸 비서실장 등 가까운 의원들을 잇따라 만나 대책을 논의한 뒤 대구·경북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그리고 밤새 통음한 것으로 알려졌다.한 측근 의원은 “당의 앞날과 친일진상규명법의 연착륙을 위해 (사퇴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박광태 ‘함박웃음’ 이광재 ‘표정관리’

    26일 정치인 2명을 웃음짓게 한 사법부 판결이 나왔다.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민주당 소속 박광태 광주시장이 주인공.현대 비자금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박 시장은 무죄판결에 활짝 웃으며 구치소를 나섰고,4·15총선에서 ‘금배지’를 단 이 의원은 3000만원 벌금형을 받았지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돼 미소를 지었다. 이 의원은 이날 법원 1심 선고 직후 개인성명을 내고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국민 여러분과 특히 대통령께 많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그는 “지난 1년여 동안 대검 중수부의 수사와 90일간의 특검수사,이후 재판과정 등을 거치면서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다.”며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앞으로 의정활동을 더욱 열심히 해 국민들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썬앤문 문병욱 회장 등으로부터 1억 5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그럼에도 그는 항소여부에 대해 “변호인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사건을 털어내고 가고 싶은 심정’이라는 측근의 전언을 감안하면 항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가 자금수수 사실을 인정했지만,벌금형 선고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만큼 자칫 항소를 통해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는 뜻이 엿보인다.유죄판결을 조용히(?) 받아들인 여권 실세 진영과 달리 이날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광태 시장측과 민주당은 떠들썩했다.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오늘 무죄선고로 박 시장 구속이 결국 정치적 목적 아래 진행된 정치공작이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졌다.”며 “현 정권은 박태영 전남지사에 이어 박 시장마저 회유하려다 뜻대로 안 되자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구속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어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호남지역 단체장을 정치적으로 암매장시키려 한 현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호남 주민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는 “현대건설 임건우 전 부사장이 의원회관에서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진술내용과 의원회관 사무실 구조나 의원회관 통로 등 객관적 사실이 너무 다르다.”며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뉴스플러스] 이명박 “서울시 봉헌파문 사과”

    이명박(얼굴) 서울시장이 14일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내용의 글을 낭독해 파문을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는 글을 띄웠다. 이 시장은 싸이월드 개인 홈페이지 ‘www.cyworld.com/MBtious’에 올린 글에서 “지난 5월31일 참석했던 행사는 서울지역 기독청년들이 모여 서울의 발전과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리였다.”면서 “어떠한 종교적 편향이나 정치적인 목적 등 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이번 일로 시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적었다.
  • 탄핵방송 심의 각하 결정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는 공정성 여부가 논란이 돼왔던 지상파 TV 3사의 대통령 탄핵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문제를 논의한 결과,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각하했다. 지난달 30일과 1일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어 논의한 방송위는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심의하지 않고 다수의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심의는 방송법령과 심의 규정에 따라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9명의 방송위원들은 이틀간 회의를 열어 공정성 여부와 방송사에 대한 제재 방안 등을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다가,표결로 들어가기 직전에 각하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노성대 위원장은 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우리당 진상조사단, 김천호사장과 국제통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25일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피살된 김선일씨의 실종 사실을 지난 3일 알았고,15일쯤부터 무장세력과 접촉했다고 밝히고 “최대한 빨리 귀국하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조사단(단장 유선호 의원)은 25일 저녁 국회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조사단이 김 사장 및 임홍재 주 이라크 대사와 나눈 국제통화 내용을 소개했다.유 단장과 조사단원인 정의용·최성·윤호중·이화영 의원은 오후 3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국회방송실내 스피커폰을 이용해 이라크 한국대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 대사 및 김 사장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아무런 요구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열린우리당 진상조사단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선일씨의) 행방이 묘연해졌음을 안 것이 6월3일부터였고,10일까지는 경찰이나 병원을 찾아다녔다.”고 말하고 “이런 사실을 한국대사관에 알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6월14일에서 16일 사이 김선일씨의 억류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고,납치 사실은 이라크 현지 직원들과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협상은 억류 무장세력들과 한 것이 아니라 팔루자에서 가장 큰 무장세력을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김 사장은 지난 23일 연합뉴스 바그다드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는 “6월10일께 김씨가 무장세력에 의해 억류중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었다. 김 사장은 “15일부터 무장세력과 2∼3회 정도 만나면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협상 과정에서 그들은 ‘곧 풀어줄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했고,금전 등 요구 조건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무장단체로부터 ‘절대 무사하니 안심하라.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끝까지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그래서 20일까지는 김씨가 납치된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납치사건이 잘 해결될 줄 알고 대사관에 신고를 하지 않아서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협상 대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매우 당황했다.”며 “태도가 바뀐 이유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와 이라크 현지 직원 2명으로 구성된 협상팀과 함께 팔루자에서 (협상측) 단체를 접촉했다고 밝히고 “(상대측에서) 여러 명이 나왔는데 높은 사람이 와서 우리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얘기했다.”고 협상 상황을 설명했다.김 사장은 “처음에는 협상측 무장단체가 김선일씨를 납치한 단체와 상하관계라고 했는데 나중에 상하관계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직속세력이 아닌,관계가 없는 다른 세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해 사실상 엉뚱한 세력과 협상을 벌이다 구출 시기를 놓쳤을 가능성을 내비쳤다.그는 또 “팔루자의 (협상) 단체에서는 ‘한국사람들이 (자기들과) 별 상관이 없으니까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했고,우리는 지금까지 그쪽 단체를 믿었으나 하루아침에 뒤집혔다.”고 말하고 “그 이후에는 경황이 없었고 변호사가 (상대측과) 계속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안됐다.”고 덧붙였다.그는 “(김씨가) APTN의 비디오 테이프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아마 억류한 측이 그렇게 시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 그는 “최대한 빨리 (한국에) 들어가겠다.정리하고 난 이후 들어가겠다.”고 말했다.그는 “(현지)대사관으로부터 귀국을 막는 압력을 받은 일은 전혀 없고,오히려 빨리 한국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김선일씨가 고인이 됐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이루 다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다.”면서 “김씨는 이라크에서 봉사하려는 마음에 아랍어 공부도 했는데,기금을 조성해 김씨가 당한 일을 김선일의 이름으로 이라크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복수’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홍재 주 이라크 대사는 우리당 조사단과의 통화에서 “지난 20일 김천호 사장에게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피랍사건을 알게 됐고,21일 아침 7시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 긴급 협조를 요청했으며 다국적군 사령부에도 연락을 취했다.”고 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靑·檢 갈등 진정국면] 말 아끼는 宋총장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16일 오전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송광수 검찰총장은 경주로 가고 있었다. 이날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14차 마약퇴치국제협력회의’개회식에 참석한 송 총장은 기자들이 모여들자 “(저의 발언으로)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자신의 발언으로 대통령이 강력하게 질타한 소감을 물은데 대한 답변이었다. 강 장관의 대국민사과와 일맥상통하는 수준이었지만,‘사전에 강 장관과 직접 의견을 조율했느냐.’는 질문에 송 총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그는 강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총장의)여과되지 않은 발언은 의혹을 증폭시키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는 전언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송 총장은 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문제와 자신의 거취 등에 대한 질문이 잇따르자 “오늘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행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답변을 피했다. 송 총장은 이어 울산지검을 초도순시한 자리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송 총장은 울산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이 당초 발언에 대한 소신과 강 장관과의 조율 여부 등을 또다시 다투어 묻자 “이 정도 해두자.”고 한마디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경주 김상화·울산 강원식기자 shkim@seoul.co.kr
  • [靑·檢 갈등 진정국면] 말 아끼는 宋총장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16일 오전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송광수 검찰총장은 경주로 가고 있었다. 이날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14차 마약퇴치국제협력회의’개회식에 참석한 송 총장은 기자들이 모여들자 “(저의 발언으로)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자신의 발언으로 대통령이 강력하게 질타한 소감을 물은데 대한 답변이었다. 강 장관의 대국민사과와 일맥상통하는 수준이었지만,‘사전에 강 장관과 직접 의견을 조율했느냐.’는 질문에 송 총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그는 강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총장의)여과되지 않은 발언은 의혹을 증폭시키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는 전언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송 총장은 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문제와 자신의 거취 등에 대한 질문이 잇따르자 “오늘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행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답변을 피했다. 송 총장은 이어 울산지검을 초도순시한 자리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송 총장은 울산에 도착한 직후 기자들이 당초 발언에 대한 소신과 강 장관과의 조율 여부 등을 또다시 다투어 묻자 “이 정도 해두자.”고 한마디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경주 김상화·울산 강원식기자 shkim@seoul.co.kr˝
  • 한나라 “국민께 심려끼쳐드려 죄송”

    여야 정치권은 1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결정을 수용하면서 이를 계기로 진정한 상생의 정치를 열자고 입을 모았다.그러면서도 사상 초유의 탄핵사태에 대한 책임론에서는 뚜렷한 입장차를 보였다. ●헌재 뜻 존중…상생의 정치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성명을 통해 “헌재의 탄핵 기각결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온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 사필귀정의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탄핵안 가결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은 대국민 성명에서 “국민 여러분께 불안을 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탄핵 소추는 불행한 일이었고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면서 “이제 정치권과 모든 국민이 민생·민족 문제를 생각하며 국민 화합과 통합,경제건설에 매진할 때”라고 강조했다.민주노동당은 “대통령은 새롭게 취임하는 각오로 보수와 진보가 서로 협력·경쟁하도록 상생의 정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 책임론은 입장 엇갈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의회 쿠데타를 지도했던 세력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헌재에서 지적했듯이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헌법상 의무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 없이 새로운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고 헌법·법률 위반 판결을 지적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탄핵기각] ‘방패’ 대통령측 대리인단

    ‘방패’를 맡았던 대통령측 문재인(51) 변호사 등 대리인단측은 “탄핵사유 일부를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문 변호사도 기각결정 직후 감개무량한 듯 눈물을 글썽이며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문 변호사는 “헌재 결정은 가벼운 법 위반으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한다는 국민의 건강한 상식을 법적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대법관을 역임한 이용훈(61)변호사도 “헌재가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고 순수 법률적 판단을 내려 대리인단의 의견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환영했다.그러나 일부의 탄핵찬성 여론을 의식하듯 문 변호사는 “국론이 분열된 것이 가슴 아팠다.대통령도 헌재의 지적에 따라 헌법을 존중하는 자세를 더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70)변호사는 원로답게 정치권을 따끔하게 질타했다.그는 “정당한 이유도 없이 대통령을 탄핵해 두달동안 국민에게 걱정과 심려를 끼친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문 변호사도 “정치권은 탄핵으로 인한 국정공백,사회적 비용 등을 되돌아보고,상생·통합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활동했던 그는 “앞으로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문 변호사는 헌재를 나서며 “그동안 포토라인에 서는 게 매우 싫었는데 오늘은 정말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정은주기자 ejung@˝
  • [탄핵기각] ‘탄핵 족쇄’ 벗고 黨개혁 매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은 한나라당의 진로와 역학구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가 비록 탄핵안을 기각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위헌으로 규정하고,선거법 위반혐의 등도 인정함으로써 한나라당도 다소 부담을 덜게됐다는 게 중론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4일 헌재의 탄핵안 기각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더이상 탄핵문제를 놓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탄핵안 가결로 국민들에게 불안과 심려를 끼친데 대한 사과도 잊지 않았다. 특히 박 대표의 대국민 사과는 당내 논란 끝에 내린 결정이다.원희룡 의원 등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박 대표의 강도높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반면 강경파 의원들은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한나라당은 이날 헌재의 탄핵안 기각 결정과 박 대표의 대국민 사과로 그동안 숨통을 조이던 ‘탄핵의 족쇄’에서 어느 정도 풀렸다고 보고 당 개혁과 체질 개선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밖으론 상생정치와 민생·경제 챙기기에 주력하면서 안에선 디지털·정책·원내정당화를 위한 콘텐츠 마련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2기 내각과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입장은 가변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부·여당이 개혁을 내걸며 대야 강경기조를 유지할 경우,유화전략을 펴는 박 대표의 입지는 축소되고 그동안 대여투쟁을 주도해온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특히 ‘김혁규총리기용론’의 향배가 한나라당의 정국대응 수위를 조절할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전광삼기자 hisam@˝
  • [탄핵기각] ‘탄핵 족쇄’ 벗고 黨개혁 매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은 한나라당의 진로와 역학구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가 비록 탄핵안을 기각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위헌으로 규정하고,선거법 위반혐의 등도 인정함으로써 한나라당도 다소 부담을 덜게됐다는 게 중론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14일 헌재의 탄핵안 기각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더이상 탄핵문제를 놓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탄핵안 가결로 국민들에게 불안과 심려를 끼친데 대한 사과도 잊지 않았다. 특히 박 대표의 대국민 사과는 당내 논란 끝에 내린 결정이다.원희룡 의원 등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박 대표의 강도높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반면 강경파 의원들은 탄핵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한나라당은 이날 헌재의 탄핵안 기각 결정과 박 대표의 대국민 사과로 그동안 숨통을 조이던 ‘탄핵의 족쇄’에서 어느 정도 풀렸다고 보고 당 개혁과 체질 개선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밖으론 상생정치와 민생·경제 챙기기에 주력하면서 안에선 디지털·정책·원내정당화를 위한 콘텐츠 마련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2기 내각과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입장은 가변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부·여당이 개혁을 내걸며 대야 강경기조를 유지할 경우,유화전략을 펴는 박 대표의 입지는 축소되고 그동안 대여투쟁을 주도해온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특히 ‘김혁규총리기용론’의 향배가 한나라당의 정국대응 수위를 조절할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전광삼기자 hisam@
  • 儒林(8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8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평소에 한빙계(寒氷戒)를 지어놓고 ‘불망어(不妄語)’,즉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철저히 지켜나가던 스승 한훤당은 그러나 그로부터 6년 뒤 순천의 시장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약을 먹고 사사당한다. 바로 그 순간 매계의 시신도 고향 금산에서 관이 쪼개져 참시를 당해 사흘이나 장사를 지내지 못한 것처럼 스승 한훤당의 시신도 시장거리에서 사흘간이나 거적에 둘둘 말린 채 방치되었으니,한갓 망령된 말이라고 무시하였던 한훤당의 운명도 결국 요동의 점쟁이가 내린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점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것이 불과 15년 전. 그렇다면 조광조의 운명도 매계는 물론 스승 한훤당의 비극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쓴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팽손이 조광조를 쳐다보며 물었다. “갖바치네.” 조광조가 대답하자 양팽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갖바치라면 피장이 아닙니까.일개 피장이가 어찌 신명의 뜻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매계에게 점괘를 내린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미천한 일개 복자가 아니었던가.” “너무 심려치는 마시옵소서.” 양팽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매계도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와 일단 생명은 보존하였으며,대감께오서도 일시 재앙의 화를 면치 못하시지만 천층 물결 속에서 헤엄쳐 나와 곧 주상의 부르심을 받고 환향하게 되실 것이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갖바치가 만든 태사혜를 신은 채 조광조가 말하였다. “이 말의 뜻은 여전히 무슨 뜻인가 알 수 없지 않은가.” 조광조는 갖바치가 쓴 마지막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매계는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는데,그렇다면 나는 바위 밑에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이 말을 들은 양팽손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일찍이 채소권(蔡紹權)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아 한 쪽 발에는 검은 신을 신고,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더이다.이를 본 김안로(金安老)가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양팽손의 말 역시 김정국이 지은 ‘사재척언(思齋言)’에 실린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채소권은 권신 김안로의 처남이었으나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 훗날 김안로가 흉적으로 참화를 입을 때 무사할 수 있었던 문신인데,그는 천성이 부드럽고 탄솔(坦率)하였다고 한다.‘사재척언’에 의하면 채소권은 조금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날 아문에 출사하면서 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한 쪽 발에는 검은 가죽신을 신고 가니,아전들이 입을 가리고 서로 웃었다고 한다.근무를 마치고 자신의 매형인 김안로를 만나자 이를 본 김안로가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 김안로의 말은 ‘꽃이 필 때 어떤 빛깔은 진하고 어떤 빛깔은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나고 뒤에 나오는 차이뿐 꽃은 꽃일 뿐이다.’라는 말로 처남 채소권의 소박한 심성을 꽃의 아름다움으로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오니 대감께오서 한쪽 발은 검은 가죽신을 신고,한 쪽 발에 흰 가죽신은 신은 것은 김안로 대감의 표현대로 꽃 빛이 옅고 짙은 차이뿐 다른 뜻은 없을 것입니다.” 양팽손은 짐짓 조광조를 위로하기 위해 가볍게 말을 흘렸다.
  • 儒林(86)-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평소에 한빙계(寒氷戒)를 지어놓고 ‘불망어(不妄語)’,즉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철저히 지켜나가던 스승 한훤당은 그러나 그로부터 6년 뒤 순천의 시장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약을 먹고 사사당한다. 바로 그 순간 매계의 시신도 고향 금산에서 관이 쪼개져 참시를 당해 사흘이나 장사를 지내지 못한 것처럼 스승 한훤당의 시신도 시장거리에서 사흘간이나 거적에 둘둘 말린 채 방치되었으니,한갓 망령된 말이라고 무시하였던 한훤당의 운명도 결국 요동의 점쟁이가 내린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린다.’는 점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그것이 불과 15년 전. 그렇다면 조광조의 운명도 매계는 물론 스승 한훤당의 비극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쓴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팽손이 조광조를 쳐다보며 물었다. “갖바치네.” 조광조가 대답하자 양팽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갖바치라면 피장이 아닙니까.일개 피장이가 어찌 신명의 뜻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매계에게 점괘를 내린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미천한 일개 복자가 아니었던가.” “너무 심려치는 마시옵소서.” 양팽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매계도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이 뒤집혀 나와 일단 생명은 보존하였으며,대감께오서도 일시 재앙의 화를 면치 못하시지만 천층 물결 속에서 헤엄쳐 나와 곧 주상의 부르심을 받고 환향하게 되실 것이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갖바치가 만든 태사혜를 신은 채 조광조가 말하였다. “이 말의 뜻은 여전히 무슨 뜻인가 알 수 없지 않은가.” 조광조는 갖바치가 쓴 마지막 문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천년의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매계는 바위 밑에서 사흘 밤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는데,그렇다면 나는 바위 밑에서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이 말을 들은 양팽손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일찍이 채소권(蔡紹權)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아 한 쪽 발에는 검은 신을 신고,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다녔다고 하더이다.이를 본 김안로(金安老)가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양팽손의 말 역시 김정국이 지은 ‘사재척언(思齋言)’에 실린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채소권은 권신 김안로의 처남이었으나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 훗날 김안로가 흉적으로 참화를 입을 때 무사할 수 있었던 문신인데,그는 천성이 부드럽고 탄솔(坦率)하였다고 한다.‘사재척언’에 의하면 채소권은 조금도 의복과 관대에 마음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날 아문에 출사하면서 한 쪽 발에는 흰 가죽신을 신고 한 쪽 발에는 검은 가죽신을 신고 가니,아전들이 입을 가리고 서로 웃었다고 한다.근무를 마치고 자신의 매형인 김안로를 만나자 이를 본 김안로가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꽃 빛이 짙고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되고 후에 된 것뿐이다.” 김안로의 말은 ‘꽃이 필 때 어떤 빛깔은 진하고 어떤 빛깔은 옅은 것은 다만 먼저 나고 뒤에 나오는 차이뿐 꽃은 꽃일 뿐이다.’라는 말로 처남 채소권의 소박한 심성을 꽃의 아름다움으로 칭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오니 대감께오서 한쪽 발은 검은 가죽신을 신고,한 쪽 발에 흰 가죽신은 신은 것은 김안로 대감의 표현대로 꽃 빛이 옅고 짙은 차이뿐 다른 뜻은 없을 것입니다.” 양팽손은 짐짓 조광조를 위로하기 위해 가볍게 말을 흘렸다.˝
  • ‘신강균‘ 국장·CP 경질

    MBC는 12일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인터뷰 사고 책임을 물어 사장 직권으로 배귀섭 보도제작국장과 김현주 책임프로듀서(CP)를 전보 조치하고,9시 뉴스데스크를 통해 대국민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후임에는 김재철 보도국 부국장과 김학희 CP를 발령했다.MBC는 뉴스데스크 마지막 부분에서 “지난 9일 ‘신강균‘에서 다른 여성의 전화 인터뷰가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의 인터뷰로 잘못 방영된 것은 ‘있을 수 없는 방송사고’”라면서 “MBC 이미지를 훼손하고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리며,아울러 한나라당과 전여옥 대변인에게도 사과드린다.”고 밝혔다.이와 별도로 MBC는 제작진의 책임도 물을 방침이다.인사부 관계자는 “곧 인사위원회를 열어 신강균 진행자를 포함한 해당 제작진의 책임 유무를 따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
  • [노탄핵안가결-’3·12’파장] 종교·예술계 성명

    종교계와 진보예술단체는 각각 성명과 논평을 내고 국민불안을 초래한 정치권을 질타하면서 국민들에게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데 대해 깊이 사과해야 할 것”이라며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 공명정대하게 판단하고,국무총리는 난국관리와 수습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도 성명에서 “여야정치인들이 정치상황을 탄핵정국으로 몰고가 극도의 불안과 국가경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이번 사태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부족한데서 비롯된 결과”라며 “이사태를 새로운 정치문화창출의 소중한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국가내란에 준하는 이런 행위를 저지른데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엄정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국민적인 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족예술인총연합(회장 황석영)은 “대통령 탄핵 가결은 참여민주주의를 살해한 정치적 폭력이자 대국민 배신행위”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도 “국민의 뜻을 저버린 국회 수구 세력의 폭거”라는 성명을 냈다. 이종수기자 vielee@˝
  • 儒林(4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는 서둘러 관복을 입기 시작하였다.의관을 정제하는 것을 도와주던 부인 이씨가 말했다. “바깥 날씨가 몹시 찹니다.속옷을 껴입도록 하시지요.” 흑단령(黑團領)을 입으려던 조광조는 부인의 말에 옷을 더 껴입었다.조광조의 아내는 한산 이씨로 첨사(僉使) 이윤형(李允泂)의 딸이었다.조광조가 열여덟 살에 혼인하였으니 벌써 부부로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다.두 사람 사이에 두 아들이 있고,금실은 몹시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일찍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동료 진사 중 아내와 화합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 아내를 버리려고 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조광조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의지하여 그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칠거지악’이란 유교에서 이르던 아내를 버릴 수 있는 7가지의 경우,즉 ‘시부모에게 불손한 경우’‘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음탕한 경우’‘질투하는 경우’‘나쁜 병이 있는 경우’‘말 많은 경우’‘도둑질한 경우’를 가리킴인데,뛰어난 유학자이면서도 조광조는 아내를 버리려 하는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꾸짖어 말하였던 것이다. “부부는 인륜이 비롯되는 곳이며,만복의 근원이라 관계가 지극히 중하다.부인의 본성이 어둡고 자각이 없어서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남편된 자가 마땅히 바르게 다스려나가 감화케 해서 함께 가도(家道)를 이룩하는 것이 후덕한 일이다.만일 거느리는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급히 버리려 한다면 천박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하물며 이 일은 가정 안의 일이라 외인이 감히 의논할 일이 못되는 것이니 자기가 잘 생각해서 처리함이 옳을 것이다.” 조광조가 남긴 ‘정암집’에 실려 있는 이 기록을 보더라도 조광조가 얼마나 ‘집안의 도리’,즉 가도에 충실하였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심려치는 마시오.날이 밝으면 곧 돌아올 것이니.” 조광조는 표정이 어두운 부인 이씨를 보며 다정하게 말하였다. 부인 이씨는 흰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그것은 지난 6월,아버지이자 조광조의 장인이었던 이윤형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관복을 갈아입고 군사들을 따라가는 조광조에게 부인 이씨는 목이 메어 말하였다. “부디 몸 건강하시옵소서.” 그러나 이씨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된다.왜냐하면 곧 돌아올 테니 심려치 말라는 조광조의 말은 그대로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그길로 의금부에 갇혀 죄인이 된 조광조는 곧 능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됨으로써 살아생전에는 아내 이씨는 물론 두 아들과도 영영 상봉하지 못하였다. 조광조는 선전관 금오랑이 이끄는 군사들에 압송되어 곧 의금부에 갇히게 된다.의금부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조광조는 자신이 죄인으로 착수(捉囚)될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국가의 비상사태로 주상으로부터 급히 입궐하라는 어명을 받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입궐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갑자기 칼을 빼어든 무사 한 사람이 조광조를 가로막고 암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조광조를 압송하던 군사들이 가로막고 나서 조광조는 간신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훗날 알려진 것이지만 조광조를 암살하려던 무사의 이름은 박배근(朴培根).그는 벌써부터 조광조 일파를 제거해야 한다는 30인의 무사 중 한 사람으로 홍경주의 밀명을 받고 사림파의 괴수인 조광조를 단칼에 척살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미 의금부에는 김식을 비롯한 8명의 동료들이 갇혀 있었다.마침내 조광조가 옥에 갇힘으로써 사림파는 한순간에 일망타진됐다.이때가 인시(寅時).조광조의 체포로 마침내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결은 훈구파의 승리로 끝나버린 것이다.˝
  • 儒林(4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는 서둘러 관복을 입기 시작하였다.의관을 정제하는 것을 도와주던 부인 이씨가 말했다. “바깥 날씨가 몹시 찹니다.속옷을 껴입도록 하시지요.” 흑단령(黑團領)을 입으려던 조광조는 부인의 말에 옷을 더 껴입었다.조광조의 아내는 한산 이씨로 첨사(僉使) 이윤형(李允泂)의 딸이었다.조광조가 열여덟 살에 혼인하였으니 벌써 부부로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다.두 사람 사이에 두 아들이 있고,금실은 몹시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일찍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동료 진사 중 아내와 화합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 아내를 버리려고 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조광조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의지하여 그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칠거지악’이란 유교에서 이르던 아내를 버릴 수 있는 7가지의 경우,즉 ‘시부모에게 불손한 경우’‘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음탕한 경우’‘질투하는 경우’‘나쁜 병이 있는 경우’‘말 많은 경우’‘도둑질한 경우’를 가리킴인데,뛰어난 유학자이면서도 조광조는 아내를 버리려 하는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꾸짖어 말하였던 것이다. “부부는 인륜이 비롯되는 곳이며,만복의 근원이라 관계가 지극히 중하다.부인의 본성이 어둡고 자각이 없어서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남편된 자가 마땅히 바르게 다스려나가 감화케 해서 함께 가도(家道)를 이룩하는 것이 후덕한 일이다.만일 거느리는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급히 버리려 한다면 천박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하물며 이 일은 가정 안의 일이라 외인이 감히 의논할 일이 못되는 것이니 자기가 잘 생각해서 처리함이 옳을 것이다.” 조광조가 남긴 ‘정암집’에 실려 있는 이 기록을 보더라도 조광조가 얼마나 ‘집안의 도리’,즉 가도에 충실하였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심려치는 마시오.날이 밝으면 곧 돌아올 것이니.” 조광조는 표정이 어두운 부인 이씨를 보며 다정하게 말하였다. 부인 이씨는 흰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그것은 지난 6월,아버지이자 조광조의 장인이었던 이윤형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관복을 갈아입고 군사들을 따라가는 조광조에게 부인 이씨는 목이 메어 말하였다. “부디 몸 건강하시옵소서.” 그러나 이씨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된다.왜냐하면 곧 돌아올 테니 심려치 말라는 조광조의 말은 그대로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그길로 의금부에 갇혀 죄인이 된 조광조는 곧 능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됨으로써 살아생전에는 아내 이씨는 물론 두 아들과도 영영 상봉하지 못하였다. 조광조는 선전관 금오랑이 이끄는 군사들에 압송되어 곧 의금부에 갇히게 된다.의금부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조광조는 자신이 죄인으로 착수(捉囚)될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국가의 비상사태로 주상으로부터 급히 입궐하라는 어명을 받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입궐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갑자기 칼을 빼어든 무사 한 사람이 조광조를 가로막고 암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조광조를 압송하던 군사들이 가로막고 나서 조광조는 간신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훗날 알려진 것이지만 조광조를 암살하려던 무사의 이름은 박배근(朴培根).그는 벌써부터 조광조 일파를 제거해야 한다는 30인의 무사 중 한 사람으로 홍경주의 밀명을 받고 사림파의 괴수인 조광조를 단칼에 척살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미 의금부에는 김식을 비롯한 8명의 동료들이 갇혀 있었다.마침내 조광조가 옥에 갇힘으로써 사림파는 한순간에 일망타진됐다.이때가 인시(寅時).조광조의 체포로 마침내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결은 훈구파의 승리로 끝나버린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