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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선으론 알기 힘든 암 전이여부 진단/감마카메라(첨단의료기기:8)

    ◎인체 모든 장기 대상… 임산부는 피해야 X­선을 투과시켜 얻은 영상으로 판독하기 어려운 악성종양의 전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어 X­선 진단을 한단계 끌어올린 감마카메라. 지난 50년대초 미국 UCLA 케이슨박사가 처음 개발한 감마카메라는 핵의학 진단법의 하나이다. 즉 방사선중 감마선을 인체의 장기에다 입을 통하거나 몸밖에서 쏘아 원하는 장기에서 나오는 감마선을 감마카메라가 포착,사진을 찍는 것이다. 고려의대 핵의학과 이민재교수는 『개발 초기의 감마카메라는 정적인 사진을 표출하던 수준에서 동적상태까지 잡아내는 감마카메라 단층촬영(STECT)단계를 거쳤다』면서 『최근에는 사이클로트론을 만들어내는 반감기가 짧은 단수 명동위원소를 이용하는 PET 시대로 진전돼왔다』고 설명한다. 적응부위는 뇌·갑상선·폐·심장·간·신장·전신 등으로 이체의 거의 모든 장기가 해당된다. 장점으로는 ▲조기에 악성종양의 전이를 알 수 있으며 ▲간세포의 병변과 심근경색의 경우 어느부위에 어떻게 진행되는 경색인지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이밖에도 ▲검사법이 간편하고 안전하며 ▲한번 찍어서 모든 검사가 가능하며 여러번 반복해 시행할 수 있다. 시술시 어느부위에 병변이 진행되는지 판독하는 예민도는 뛰어나지만 악성종양의 종류를 식별하는 정확도는 떨어지는게 흠. 현재 전국적으로 약 50여개 병원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종합병원급은 거의 구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사기간은 20분∼24시간으로 종류에 따라 다양하며 동·정맥류 등의 경우는 빠른시간에 끝나고 전신골주사 때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별한 부작용이 보고된 예가 없으며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대체로 5천∼1만원이면 검사할 수 있다. 단 갑상선 검사를 할때 주사하는 방사성 옥소(Iodine) 때문에 젖을 먹어야 하는 부인이나 임산부는 피해야 한다.
  • 파행증 동맥우회수술로 치료가능

    ◎50∼60대 발병… 다리가 쑤시거나 저려/사지동맥경화로 혈액공급 줄기 때문/심하면 발가락썩기도… 식이·운동요법 중요 길 가던 노인들이 멈춰서서 다리를 주무르며 쉬다가 걷고,또다시 쉬다가 걸어가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파행증.최근들어 특히 동물성 식품의 섭취가 많은 서구식 식생활로 바뀌면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대 흉부외과 안혁교수는 『미국의 경우 매년 수십만명이 파행증 수술을 받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파행증에 대해 무지한 상황』이라며 『일반인은 물론 일부 의사들조차도 파행증 자체를 병으로 생각지 않고 으레 나이가 들면 그런가보다고 단정지어 버린다』며 지적한다. 「절뚝거린다」는 의미를 가진 파행증(Claudication)은 다리부분에 혈액공급량(산소공급량)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대개 50∼60대에 많이 발병한다.발병원인은 만성적으로 사지로 가는 동맥이 심하게 좁아지거나 막혀서 일어나는 동맥경화증이 주요 인자.발생하는 부위도 다리에 한정되지않고 머리부분에 생기면 뇌졸증,심장부분에서는 협심증과 심근경색등으로 나타난다. 파행증은 동맥의 내경이 점차 좁아져 가만히 있으면 혈액 공급에 차질이 없으나 많으면 5∼10배이상의 혈액공급이 요구되는 운동때및 걸을 때 근육에 혈액공급부족현상이 발생,종아리 부위가 저려오거나 심하게 몸이 쑤시고 아픈 동통으로 나타난다. 또 다리로 가는 혈류 양이 감소됨으로써 다리 영양상태가 점차 나빠지게 되는 파행증은 ▲다리부위의 털이 잘 안자라거나 빠지기도 하고 ▲발이 차며 ▲피부가 얇아지며 번들거린다.더욱이 근육이 위축되거나 발톱발육에 이상이 생기고 심하면 발가락이 썩는 괴사 현상으로 발전,다리를 잘라야 하는 불행이 올 수도 있다. 진단은 보행검사를 해봄으로써 알아내고 중증의 정도는 걷기 시작,통증을 느낄때까지의 거리인 파행거리를 보고 경중을 판정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이 질환이 동맥경화증에 의한 것이므로 고혈압·당뇨병·흡연·고콜레스테롤증·비만 등의 위험인자를 없애는 운동및 식이요법이 필요하다. 또 대표적 치료방법은 하지동맥우회수술로 좁아지거나 막혀진 동맥을 우회해서연결해 주는 것으로 70∼80%이상이 회복할수 있다. 안교수는 『파행증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임을 알고,초기 증상이 나타날때 뿐 아니라 일단 발가락부위에 괴사가 일어났더라도 수술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포기하지말고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 장영자씨 가석방

    지난 82년 거액어음 사기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해온 장영자씨(47·여)가 건강이 악화돼 복역 9년10개월여만인 31일 낮12시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법무부는 31일 『 장씨가 형기의 65.9%를 복역,가석방요건이 충족된데다 협심증,경련성 동맥수축,우측 관상동맥 협착증 등 지병때문에 더이상 수감생활이 어렵다는 인도적 판단에 따라 가석방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씨는 현재 팔과 다리,손 등 온몸이 부어있는 상태인데다 전신통증을 호소하면서 목발을 짚고 화장실에 다니고 있으며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을 잘수 있는 상태』라고 말하고 『특히 급성 심근경색증등으로 심장마비 급사의 위험이 높다』고 덧붙였다. 장씨는 지난 84년말부터 지병이 악화,88년에는 한때 영등포구치소로 옮겨져 연세대병원 등지에서 통원 및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청주시내 병원에서 수시로 치료를 받았다.
  • “주씨 사인은 심장마비/부검의/갈비뼈 8대 골절… 출혈 없어”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 회원 주기성씨(69)의 사체를 부검한 서울대이정빈교수(46·법의학)는 18일 『주씨의 직접적 사망원인은 의학적으로 관상동맥 경화증에 의한 심장마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이날 하오8시50분 사체부검 직후 『주씨가 장기간에 걸쳐 심한 관상동맥 경화증과 심근경색증을 앓아왔음이 이번 부검을 통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이날 부검결과 주씨의 갈비뼈 가운데 좌측 3번에서 5번까지와 우측 2번에서 6번까지 등 모두 8개가 골절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교수는 이와관련,『피하출혈이 전혀 없는 점으로 미루어 외부타격에 의해 생긴 골절은 아닌것 같다』고 말하고 『손바닥같은 말랑말랑한 물체로 압박을 받아 골절이 생겼을 때는 피하출혈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로부터 부검결과를 통보받은 주씨의 유족들은 부검결과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채 이날밤 10시15분쯤 시신을 영구차에 싣고 선영이 있는 전남영광으로 향했다.
  • 환절기 심장병 돌연사 급증/평소의 4배…거의가 40∼50대 직장인

    ◎혈관 축소로 협심증 악화/과로·과음 피하고 적당한 운동을/관상동맥이상·부정맥환자 조심해야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환절기를 맞아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늘어 평소 건강관리에 대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한창 연령의 40∼50대 직장인들이 돌연 사망하거나 쓰러지는 경우가 많아 경계를 요한다. 돌발적인 사망의 원인은 협심증,심근경색증 등의 관상동맥질환과 심장의 박동이 고르지 못한 부정맥으로 압축된다. 심장마비의 주된 원인은 심장근육에 혈관을 공급해주는 관상동맥혈관이 꽉 막히는 심근경색증이다. 연세대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의 김현승교수(심장내과)에 따르면 관상동맥은 직경의 길이가 반으로 줄어들어도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나 3분의 2이상 좁아지면 앞가슴중앙의 압박감 및 통증,숨이 차는 등의 협심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차가운 가을이나 겨울로 바뀌는 환절기에는 관상동맥과 모세혈관이 추위로 오므라들면서 협심증이 악화돼 심근경색증을 일으켜 사망하는 일이 많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의 경우 평소에는 월평균 1백여명이 심장질환으로 찾아오나 가을 및 초겨울에는 부쩍 늘어 3백∼4백명씩이나 된다. 심장마비의 또 다른 원인인 부정맥은 협심증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한창 일할 나이의 직장인층에서 심근경색증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긴장이나 갈등·경쟁의식 등 스트레스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크고 운동부족·과로·흡연·콜레스테롤이 많은 육류섭취 등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일본의 영양생태학자 스가하라(관원명자)박사는 연구를 통해 ▲책임감이 강해서 언제나 무리를 해서라도 업무를 계속하는 형 ▲상관·부하 모두에게 마음을 많이 쓰는 형 ▲젊은 시절 체력단련으로 몸에 자신이 있고 밤늦게까지 교제·음주한 후 수면부족상태하에서 업무하는 형 ▲높은 칼로리의 식사·과식·고콜레스테롤의 미식을 하는 형 등이 심장질환으로 위험을 겪거나 돌연사할 확률이 높다고 분류하고 있다.
  • KBS앵커 박성범씨/심근경색증으로 입원

    KBS­1TV 저녁 9시뉴스 진행자인 특임보도본부장 박성범씨(51)가 11일 하오 지병인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내과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박씨는 이날 하오 4시30분쯤 KBS본관 사무실에서 9시뉴스를 준비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며 고통스러워해 직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9시뉴스는 당분간 마감뉴스를 진행해오던 박대석 TV편집 2부차장(46)이 맡게 됐다.
  • 「김일성 이후의 북한」세미나/김학준씨 발표 요지

    ◎“남ㆍ북한 교류물꼬 2∼3년내 트인다”김일성 생존말기 「제한된 교역ㆍ협력」시도 예상/대미관계등 개선… 동독식 온건개혁 추구할 듯 「김일성이후의 북한」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한국지역사회연구소(이사장 장성만)주최로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김학준박사(대통령사회담당보좌역)는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사후가 아니라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이미 그 변화의 조짐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수년내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실체를 인정,대화를 통해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박사는 또 2∼3년내에 북한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 교류와 교역,협력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켜 이 시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박사의 발표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시간은 항상 사회과학자들을 망신시켜 왔다』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교수의 말처럼 어떤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이후 전개된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권의 변화는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산권의 변화를 예측한 사회과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특히 정보가 극히 통제돼 있는 페쇄체제인 북한에 대해 그 미래를 전망하기란 매우 어렵다. 공산권의 변화이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2∼3년 또는 3∼4년안에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북한은 소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동유럽국가들과 달리 중국이라는 또하나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동유럽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소련에 인접,개혁과 개방의 도미노현상을 피할 수 없었으나 북한은 그 진원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셋째,유고와 알바니아를 제외한 동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 2차세계대전후 소련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됐고 그 이후에도 소련군에 의해권력이 유지돼 대소의존도가 매우 컸지만 북한은 소련군에 의해 정권을 수립한후 곧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확립,자주노선을 밟아옴으로써 소련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변화에 대한 또다른 견해는 북한도 1∼2년,적어도 2∼3년내에 반드시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현재 공산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세계사적이며 문명사적인 조류로써 「인류사에 일대 획을 긋는 피할 수 없는 전환」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자그대로 「혁명적 변화」라고 일컬어지는 이 물결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할수 있겠느냐하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는 첫째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소련의 대북압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고르바초프의 한 군사담당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동유럽에 대한 것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 발언을 전후해 김일성을 비난하거나 북한의 실정을 폭로하는 기사들이 소련언론에 계속 게재되기 시작했다. 특히 6.25의 남침설이 소련학자에 의해 입증되고 있으며 김일성일인 지배체제 확립의 핵심기둥이 되어온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신화를 파괴하는 내용마저 공개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서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발표된 직후 『이는 고르바초프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김일성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는 외신의 보도처럼 소련의 대북개방압력은 매우 크며 북한이 이를 거부할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최근 북한내부에서도 조직화되고 정치세력화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김일성의 지도노선 또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으며 이는 북한의 변화를 예측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수 있다는 지적이다. 셋째,테크노크랫의 부상도 북한의 변화와 관련지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실용주의노선을 추구하는 테크노크랫의 부상은 변화의 조짐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폭이 넓어질수록 변화의 속도는더욱 빨라질 것이다. 나는 북한의 변화가 멀지 않았다는 후자의 주장에 동조한다. 다만 북한은 「김일성 개인의 국가」이기때문에 김일성사후가 아닌 김일성이 살아있을때 그 자신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올해 78세인 김일성은 지난해만도 2차례 심근경색을 겪었을만큼 건강이 좋지않으며 곧 무력화될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한 김정일의 세습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남민족해방전략을 고집해온 김일성이 대남관계의 물꼬를 트지않은 상태에서 사망,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을때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정책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북한변화의 길도 김일성 스스로가 닦아 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고르바초프와 같은 권력자나 공산당이 주체적으로 개혁하는 소련식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서방세계로부터의 계속된 지원을 바탕으로 반체제세력이 집권을 하는 헝가리식의 변화도 겨우 불만이 노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일반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정권에 도전해 협상과정을 거쳐 집권에 이른 폴란드식도 근로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전혀 돼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네커체제의 붕괴후 들어선 크렌츠가 물러나고 또다른 세력이 집권,보다 온건한 개혁노선을 추구해온 동독식의 변화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된다. 루마니아식의 혁명적인 변화도 배제할수는 없으나 조직화된 반체제정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은 김일성 생존말기에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완만하고 단계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한소정상회담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미ㆍ일과의 관계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남북한전면개방과 인적교류」를 선언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를 일단 거부한다고 선언했으나 결국은 수용할 것으로 생각한다.또 앞으로 몇년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의 교류ㆍ교역ㆍ협력이 시작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대비책은 바로 우리 스스로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길이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 윤보선 전대통령 별세/어제 하오

    ◎지병 악화로 퇴원 직후… 향년 93세 해위 윤보선 전대통령이 18일 하오 8시50분쯤 서울 종로구 안국동 8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윤 전대통령은 그동안 지병인 당뇨병으로 고생해오다 노환으로 인한 급성심근경색증세까지 겹쳐 지난 3월30일 서울대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하오부터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며 증세가 악화돼 하오 8시쯤 퇴원,자택으로 옮겨진 직후 곧바로 운명했다. ◎정부와 장례 협의 유족들은 장례절차에 대해 장지는 충남 아산으로 하며 가족장으로 5일장을 치르되 22일이 일요일인 점을 감안,월요일인 23일 상오 9시 고인이 다니던 안동교회에서 영결예배를 치르기로 희망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장례절차는 총무처와 협의를 거쳐 19일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위는 1897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영국 에든버러대를 졸업했다. 일제치하에서는 중국 상해의 대한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고 해방직후에는 미 군정청농상국 고문을 거쳐 정부수립이 되면서 초대 서울시장이 되었고 이어 상공부장관으로 영전됐다.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야당에 몸담은 그는 54년 3대민의원선거에서 종로갑구에서 출마,원내에 진출한 이래 4,5대때 잇따라 당선됐으며 6대때는 전국구로 진출했다. 60년 4ㆍ19이후 의원내각제의 민주당 정권출범과 함께 제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5ㆍ16군사혁명으로 이듬해 하야했다. 63년 5대 대통령선거에 민정당 대통령후보로 출마,박정희후보와 싸웠으나 고배를 마셨고 67년 6대 대통령선거때 신민당 후보로 다시 박후보와 한판승부를 겨뤘으나 패했다. 70년대에 들어서는 정치 2선으로 물러났으나 유신체제하에서는 재야의 중심인물로 반정부활동을 적극 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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