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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건·고르바초프 핵 군축 회담도 불발 끝 ‘해피엔딩’

    레이건·고르바초프 핵 군축 회담도 불발 끝 ‘해피엔딩’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합의문 없이 마무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지만 정상회담 결렬 자체가 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정상회담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핵 군축 협상 가운데 1986년 10월 열린 두 번째 회담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총 네 번의 회담을 가진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나 군비경쟁 중단과 축소를 논의했다. 이듬해인 1986년 두 정상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마주 앉았지만 회담은 빈손으로 종료됐다. 협상에서 발목을 잡은 의제는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SDI는 미국이 대륙간탄도탄과 핵미사일 등을 격추시키는 방법을 연구한 계획으로, 이른바 ‘스타워스’ 계획이라고도 불렸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SDI를 실험실 수준으로 제한하라고 요구했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 반발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해 이를 거부했다. 당시 양측이 얼굴을 붉히고 회담장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의견이 충돌했다는 후문이다. 레이캬비크 회담을 두고 ‘실패한 회담’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이는 향후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오히려 큰 역할을 했다. 두 정상이 회담이 결렬된 데 대해 반성하고 핵무기의 위험을 인식하는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1987년 워싱턴에서 이뤄진 세 번째 만남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에 서명했다.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조약은 당시 냉전 해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후 1989년 12월 3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몰타에서 만나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한다. 실패한 줄만 알았던 레이캬비크 회담은 시간이 흘러 역사적으로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역시 70년 이상 적대 관계를 이어 온 양국 정상이 비핵화와 제재 완화라는 핵심 쟁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레이캬비크 회담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속 회담과 관련해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며 협상의 불씨를 남긴 만큼 향후 후속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문화마당] 출판의 미래… ‘연결’/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출판의 미래… ‘연결’/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디지털 경제에서 우리는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초예측’(웅진지식하우스)에서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는 물리적 재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정의한다.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대량소비를 통해 가격을 파괴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이롭게 하는 자본주의 경제 작동 원리다. “재벌이라도 출판을 잘할 수는 없어. 출판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야.” 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늘 말하곤 했다. 출판은 태생적으로 소수 미디어다. 책엔 분명히 수백만명에게 영향을 줘 사회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힘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수천명 정도의 독자가 만족하는 것으로 운명을 다한다. 이런 환경에선 규모나 협업보다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절히 반응하는 예민함이 출판의 진정한 가치를 이룬다. 교과서, 학습지, 전집 출판사 등 ‘규모의 경제’를 적용할 만한 몇몇 영역을 제외하면 출판사 전체가 중소기업 규모를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그룹이라 해도 한 해 매출액이 고작 400억원 내외에 불과해 다른 제조업 규모로 보면 중기업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가. 다품종 소량생산. 이것이 출판의 눈부신 자부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어려웠기에 신문이나 방송 등과 달리 출판은 소수의 독자만 존재하는 책에도 기꺼이 자본과 노동을 투자했고, 공적 담론으로서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편집의 힘을 유지하면서 표현의 자유도 한껏 떠받치는 ‘책의 다양성’을 확보해 왔다. 그런데 인간과 인간을, 인간과 사물을, 즉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데 들이는 비용이 파격적으로 낮아지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지금껏 상상할 수 없었던 곳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출현하고, 이를 실행하는 단위도 집단에서 개인으로 줄어든다. 출판 영역도 이를 피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가치’를 확보하기만 하면 일인 미디어가 매스미디어를 능가하고 독립출판이 전문출판을 압도하는 현상이 언제든 일어난다. 지난 몇 해 동안의 베스트셀러들이 이를 증언한다. 2015년에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2016년에는 ‘초판본 진달래꽃’이, 2017년에는 ‘언어의 온도’가, 2018년에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이 출판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종이책, 서점, 도서관 등으로 이루어진 출판 유통 환경에서는 발견되지도, 도달할 수도, 소통시킬 수도 없던 독자들이 디지털 정보기술을 통해 연결되면서 저절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한 것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텀블벅 등 소셜네트워크 도구나, 관심의 사회적 무게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정체성 가치를 표현할 소소한 기회면 충분하다. 이에 따라 요즘 출판계에서는 팬덤에 기반을 두고 스몰 플랫폼을 직접 구축하거나 이를 활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는 출판 모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요다는 ‘판타지 유니버스 창작 가이드’를 텀블벅에서 펀딩 중인데,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목표 금액 500만원을 넘겨 현재 6778만 5500원을 모았다. 인쇄하기도 전에 4만원짜리 책을 3000부가량 판매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의 작가 이슬아는 학자금 대출 2500만원을 갚으려고 월 1만원에 전자우편으로 매일 에세이를 보내 주는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는데, 구독자가 수천명에 이른다. 이 에세이들을 책으로 묶어 ‘일간 이슬아’를 독립출판했는데, 현재까지 5000부나 팔렸다. 초연결사회에서는 누구나 규모의 경제를 시도할 수 있다. 연결의 규모가 생기면 생산의 규모는 저절로 이룩된다. 독자와 연결돼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출판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
  • [월드피플+] 독학으로 ‘핵융합로’ 만든 14세 美 천재 소년

    [월드피플+] 독학으로 ‘핵융합로’ 만든 14세 美 천재 소년

    우리나라라면 수학공식이나 달달 외울 14세 소년이 첨단 물리학의 집합체인 ‘핵융합로’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미국 USA투데이, 폭스뉴스 등 현지언론은 멤피스에 사는 잭슨 오스왈트(14)가 실제 작동하는 핵융합로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잭슨이 만들어낸 소형 핵융합로는 놀랍게도 인터넷을 통한 독학과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 덕에 가능했다. 처음 잭슨이 핵융합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불과 12살 때. 이후 소년은 인터넷에서 이와 관련된 정보와 제작방법을 찾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어 이베이를 통해 진공부품, 펌프 등 관련 장비를 사들여 제작에 들어간 잭슨은 13세 생일을 맞이하기 불과 몇시간 전인 지난해 1월 19일 마침내 소형 핵융합로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보도에 따르면 잭슨의 핵융합로는 5만볼트의 전기를 사용해 중수소 가스를 가열하고 핵을 융합시켜 에너지를 만든다. 다소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핵융합(核融合, nuclear fusion)은 두 개의 원자핵이 모여 하나의 무거운 원자핵을 형성하는 현상으로, 핵융합로는 이 현상을 에너지로 전환시켜 전력 등으로 활용시키는 장치다. 흔히 ‘인공 태양’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며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분야이기에 어린 소년의 성취는 무척이나 놀랍다. 잭슨은 “처음 핵융합로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이라면서 “집에 있는 오래된 놀이방을 개조해 실험실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베이에서 필요한 부품을 샀으나 내 프로젝트에 맞게 개조해야 했다”고 덧붙였다.잭슨의 이른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부모의 뒷받침 덕이었다. 어린 아들을 위해 빈방을 실험실로 제공했고 총 1만 달러(약 11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제공했다. 또한 전문가들에게 부탁해 방사능과 전기 작동의 위험성을 아들에게 교육시켜 안전한 실험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아빠 크리스는 “솔직히 아들이 정확히 무엇을 만드는지 이해하지는 못했다”면서 “다만 안전이 최우선이라 생각해 이에대한 지원에 노력했다”며 웃었다. 보도에 따르면 핵융합로를 만들어 낸 종전 최연소 기록은 지난 2008년 당시 14세였던 미국인 학생 테일러 윌슨이 갖고 있었다. 때문에 현지언론은 잭슨이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새로운 최연소 기록을 세운 것으로 평가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와우! 과학] 수컷없이 임신하고 알 낳는 큰가시고기 발견

    [와우! 과학] 수컷없이 임신하고 알 낳는 큰가시고기 발견

    대부분의 어류와 양서류, 수생무척추동물은 암컷의 체외에서 수정이 이뤄지지만, 이러한 체외수정의 과정 없이 알을 낳은 물고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큰가시고기(학명 Gasterosteus aculeatus)는 일반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암컷이 산란하고 이후 수컷이 정액을 뿌려 알이 부화할 때까지 돌본다. 하지만 영국 잉글랜드 중부 노팅엄대학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체외수정이나 수컷과의 교류 없이 체내에서 ‘완벽한 알’을 키워낸 암컷 큰가시고기 ‘메리’를 발견했다. 메리는 수정 과정에서 수컷과 접촉한 적이 없으며, 연구진은 메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임신 기간이 끝날 무렵 안락사를 시킨 뒤 곧바로 제왕절개수술을 시도했다. 그 결과 메리의 뱃속에서 발견된 알 중 총 56개가 부화에 성공했으며, 이 알들은 모두 실험실 내에서 성체로 성장했다.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중 20마리가 연구진의 관찰 대상이 되고 있다. 메리에게서 태어난 알들은 보통 알들처럼 매우 건강한 상태였다. 비록 메리는 희귀한 연구사례를 남기고 안락사됐지만, 일반적으로 암컷 큰가시고기는 알을 낳은 즉시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암컷 큰가시고기가 수컷과의 체외수정 과정 없이 부화할 수 있는 알을 낳은 사례는 이번이 세 번째다. 다만 이번 사례는 당시 태어난 새끼가 건강을 유지하며 현재까지 살아있다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높다. 노팅엄대학의 앤드류 맥콜 교수는 “비록 어류에게서 보기 드문 매우 희귀한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지만, 이 사례는 우리가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 전반에서 일어나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많은 동물들이 알을 낳으며, 매우 일부의 포유류 또는 어류만이 뱃속에 알을 간직한 채 성체의 새끼를 낳는다. 다만 이런 현상은 매우 보기가 드문데, 이 작은 큰가시고기는 혼자서 이러한 현상들을 보여준 것이라 매우 놀랍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메리가 체외수정 없이 부화가 가능한 알을 낳을 수 있었던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지 못했으나, 아마도 암컷과 수컷의 성기를 모두 가진 자웅동체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연구진은 처음 메리를 발견해 실험실로 데려왔던 장소를 찾아가 다른 어류 종을 채취하고, 같은 현상을 보이는 어류가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지난 20일 네이처가 발행하는 온라인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日에 수탈·학살당한 홋카이도 소수민족 ‘울분의 역사’

    日에 수탈·학살당한 홋카이도 소수민족 ‘울분의 역사’

    지난 15일, 일본 정부가 홋카이도의 소수민족인 ‘아이누 민족’을 ‘원주민’으로 인정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아이누 문화를 활용한 지역진흥책을 위한 교부금 창설도 법률안에 포함됐다. 아이누 민족은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일본 북부와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쿠릴 4개 섬 등 러시아 극동에 거주해 온 소수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철광석을 중심으로 온갖 수탈의 대상이었다. 이번 조치가 아이누 민족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일본 정부의 숨은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쿠릴 4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어느 아이누 이야기’는 아이누 민족의 불행한 역사와 되풀이되고 있는 슬픈 오늘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 오가와 류키치는 1935년 조선인 노동자와 아이누 민족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930년대 노동자 모집 광고를 보고 홋카이도로 갔지만, 자신의 역할이 강제 징용된 사람들을 감시, 구타하는 일임을 알고 집단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한 그가 은거한 곳이 바로 아이누 마을이었는데, 거기서 오가와 나쓰코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류키치의 아버지는 그를 찾아 한국에서 온 가족을 따라 떠났고, 모자는 아이누 마을에 남겨졌다. 홋카이도는 대대로 아이누 민족의 세거지였고, 윌터 등 서너 개 소수민족이 더불어 살았다. 이곳에 흔히 야마토라 불리는 일본 민족의 마수가 뻗치기 시작한 것은 1870년 이후다. 일본은 홋카이도를 개발해 각종 자원을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수탈했다. 1930년대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이 확대되면서 광물 등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주요 기지가 됐고,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에게는 무덤과 같은 곳이 됐다. 자원만 수탈당한 것이 아니다. 숱한 아이누 민족이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다. 1983년 홋카이도 대학교 동물실험실에서 처음 아이누족의 유골이 발견됐고, 이후 1995년에는 무려 1000여 구의 유골이 발견됐다. 대부분 아이누족이었고, 윌터를 포함한 소수민족과 조선 동학군 유골도 이곳에서 발견됐다. 홋카이도 대학이 홋카이도, 사할린, 쿠릴열도 등에서 발굴해 모아둔 유골로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도 함구하고 있다.어머니와 이부(異父) 형 슬하에서 자란 류키치는 아이누 민족의 정체성을 하나씩 몸에 익혔다. 아이누로서의 자각이 강한 사나에를 만나 1962년 결혼하면서부터는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됐다. 1970년대 초반부터 아이누 민족의 권리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그는 1983년 무렵에는 아이누 민족 운동가들과 더불어 홋카이도 대학과 일본 정부에 아이누 민족 유골 수습과 학살 경위를 밝힐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1997년에는 ‘홋카이도구 토인보호법에 기반한 공유재산재판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해 아이누 민족의 권리 보호를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아이누 민족은 일본의 일원이면서도 숱한 박해와 고난의 나날을 보냈다. 류키치는 소수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민족적 차별과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아이누 민족의 모멸감을 울분을 토하듯 써내려간다. ‘어느 아이누 이야기’는 일본의 소수민족 문제를 세계에 증명하는 하나의 좌표가 될 만한 책이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세계와 연결되는지 ‘어느 아이누 이야기’는 작지만 큰 울림을 전해 준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강제로 이빨 뽑은 뒤 안락사”…치과 실험에 동원된 래브라도

    “강제로 이빨 뽑은 뒤 안락사”…치과 실험에 동원된 래브라도

    안락사를 앞둔 실험실 개들을 두고 안락사를 막으려는 사람들과 예정대로 안락사시키려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벌어졌다. 더 로컬 등 스웨덴 현지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연구진은 인공치아이식(치아 임플란트) 실험에 래브라도 품종의 개 6마리를 이용한 뒤 실험이 끝나면 개를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했다. 연구진은 실험에 이용되는 개들이 다른 개에 비해 이빨을 한 개씩 더 가지고 있고, 이를 임플란트로 교체하는 방식과 뼈 및 조직의 변화를 살피는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현지의 동물보호단체가 실험 및 안락사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시민 8만 명 이상이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의미의 서명도 했다. 그러나 해당 대학 연구진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해당 대학 연구진의 한 관계자는 “(실험에 동원된 개를 풀어주라는 동물보호단체의 의견과) 일치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는 매우 중요할 것”이라면서 “동물실험은 일부 연구에서 여전히 필요한 부분이다. 의학 및 치료법을 개발하고 더 나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동물실험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현지 동물보호단체 측은 “수많은 시민들의 서명운동 참여에도 불구하고, 해당 대학 연구진은 2주 안에 실험을 모두 마친 뒤 안락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현지의 수의사들도 나서 치과 연구에 동물이 동원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이어지자 해당 대학 연구진은 수의사를 대동하고 연구를 진행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래브라도 6마리는 차가운 실험실에서 강제로 이빨이 뽑힌 뒤 안락사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과학과 인문학·사실과 가치의 경계는 없다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과학과 인문학·사실과 가치의 경계는 없다

    최초의 SF로 여겨지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손에서 창조된 괴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실험을 하다가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 내고, 괴물은 빅터에게 창조의 책임을 요구한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켄슈타인’의 테마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영화와 소설에 나타나고 있다. 21세기의 실험실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거친 새로운 생명이 매일 태어난다.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는 이처럼 과학을 담아내고 성찰하며 때로 예측한다. 홍성욱 교수의 ‘크로스 사이언스’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현대의 고전과 명작, 대중문화를 통해 과학을 성찰하는 색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서울대 교양과학 강의 ‘과학기술과 대중문화’에 바탕하여 집필되었다. SF 영화에는 기술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책임질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는 괴짜 과학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현실의 과학자들에 비해 많이 과장된 모습이지만, 핵전쟁과 환경파괴를 겪은 인류가 과학에 대해 경계하고자 하는 바가 전형적 인물로 집약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편 대부분 남성으로 나오는 괴짜 과학자들과 달리 여성 과학자의 대중적 이미지를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여성 과학자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 퀴리는 그의 딸이 집필한 전기를 통해 ‘슈퍼우먼’이자 완벽한 영웅으로 신격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실제 그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현실의 여성과학자들은 과학계 여성에 대한 편견과 결혼, 출산 등으로 수많은 난관을 마주하게 되고, 마리 퀴리의 시대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마리 퀴리의 삶을 살피는 일은 과학자의 영웅담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도 이어진다.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라는 두 문화가 통념과 달리 분명하게 구분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과학 역시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인간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과학이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잘못된 과학적 해석에 이르렀던 사례들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백인 남성들과 여성, 흑인, 동성애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던 이분법적 과학은 과학의 이름으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곤 했다. 과학은 사회 속에 있고 시대를 구성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우리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인류의 미래를 그려나간다. 그렇기에 저자는 일상에서 과학을 사고하는 일이 우리가 삶을 총체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과학에 대한 성찰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 [와우! 과학] 모기, 생각보다 귀가 밝다…청력의 놀라운 비밀

    [와우! 과학] 모기, 생각보다 귀가 밝다…청력의 놀라운 비밀

    모기는 여름철 불청객이다. 일본 뇌염이나 말라리아 같은 위험한 질병을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설령 그런 질병을 옮기지 않더라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만으로도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독특한 소리를 내는 것과는 반대로 정작 모기 자신은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기는 피를 빨아먹는 대상의 냄새나 내쉬는 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청력은 귀머거리에 가까워서 주변 몇 인치 거리의 소리만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빙햄턴 대학의 론 마일즈와 코넬 대학의 론 호이, 로라 해링턴 교수는 이 가설에 의문을 품고 외부의 소음을 완전히 차단한 실험실에서 이집트 숲 모기(Aedes aegypti) 수컷의 청력을 테스트했다. 연구팀은 이 모기가 암컷의 소리에는 반응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암컷 모기 소리를 녹음한 후 다양한 거리에서 들려줬다. 그 결과 수컷 모기는 최대 10m 떨어진 거리에서도 암컷 모기 소리에 반응했다. 그러나 수컷 모기의 소리와 다른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전 연구에서는 암컷 모기의 소리에만 반응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거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의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기는 더듬이를 이용해서 소리의 진동을 감지하기 때문에 고막을 지닌 포유류처럼 청각이 좋지는 않지만, 모기의 작은 크기를 생각하면 10m도 상당한 거리다. 비록 모기가 먹이를 찾거나 천적을 피하는 데 청력이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짝짓기에 도움이 된다면 최대한 좋은 청력을 지니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렸다. 모기의 귀가 얼마나 밝은지 연구하는 일이 과연 유용성이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은 청력을 비롯한 모기의 감각 능력과 행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을 밝힐 뿐 아니라 해충 구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소리를 이용해서 수컷 모기를 더 효과적으로 잡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알을 품은 암컷의 수를 줄여 모기의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다. 어쩌면 귀에 거슬리던 모기 소리가 모기를 잡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이은경의 유레카] 과학기술 유산 찾아보기

    [이은경의 유레카] 과학기술 유산 찾아보기

    올해부터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사에서 중요했던 제품, 기구, 건축물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해 말 과학관 관련 법률 개정으로 과학기술 유산들을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하여 관리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낯설게 들릴 수도 있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란 ‘과학기술 역사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과학기술의 문화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과학 잡지, 최초의 국산 라디오나 자동차,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은 과학기술 유산의 보존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과 경제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의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그동안 우리는 발전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사용 가치가 없어진 과학기술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새 물건, 기계, 장비를 들이면 이전 것들을 내다버리거나 구석에 밀어두고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러므로 만들어진 뒤 많은 시간이 지나 가치를 인정받은 후에야 지정되는 문화재 제도로는 이렇게 빨리 사라지는 과학기술 유산을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로 막상 여유와 관심이 생겨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자취를 살펴보려 하니 많은 중요한 유산들이 이미 없어졌거나 남아 있더라도 잘 관리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하루가 다르게 신기술과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때에 몇 십년 지난 옛 기술과 물건을 굳이 등록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본 또는 진품이 갖는 아우라와 역사성 때문이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에서 원작이 가진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함이다. 예술작품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과학기술 자료 역시 오직 그때 그곳에서 생산되고 사용되는 과정에서 고유한 가치를 얻게 되고 이를 통해 아우라를 가질 수 있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을 주도해온 서구 과학관들은 이런 점에서 한국의 과학관들보다 유리하다.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는 인류 최초의 달 착륙에 사용되었던 아폴로 11호 관련 실물이 전시돼 있다. 직접 보면 생각보다 작고 평범하다. 21세기 관람객의 눈에는 ‘이 정도 기계로 정말 달에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소박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달에 다녀온 장비라는 바로 그점이 관람객들을 그 전시에 불러들이고 우주과학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영국의 과학관은 왓슨과 크릭이 ‘직접’ 얼기설기 만들었던 모형을 보여주면서 DNA 이중나선구조를 설명한다. 그 앞에서 관람객들은 두 젊은 과학자가 그 모형을 가지고 연구에 골몰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반짝반짝 멋지게 만들어진 모형이 가질 수 없는 힘이다. 이미 없어져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노력하면 우리도 진품을 전시해놓고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다.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등록제도는 그 출발점이다. 여기에 과학기술자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관심이 더해질 때 한국 과학기술이 걸어온 길을 보여줄 남부럽지 않은 컬렉션을 가질 수 있다. 지금 당장 오래된 실험실 선반이나 캐비닛, 시골 할아버지 댁의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둔 창고를 뒤져보자. 뜻하지 않게 중요한 과학기술자료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 “도서관 따뜻함도 누군가에겐 노동”

    총학생회, 파업 노동자와 연대 검토 학생들 공대위 결성 지지 활동 나서 노조도 학생과 소통 부족 유감 표명 본부, 오늘 민노총 일반노조와 협상 “저는 따뜻한 도서관을 원합니다. 그 따뜻함이 누구의 노동 위에 있는지 알게 된 지금, 그 누군가의 노동이 제대로 보장되기를, 도서관보다 더 추운 바깥에서 집회를 열고 덜덜 떨어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고, 그들이 가진 기술로 다른 이들의 꿈을 지원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본부와 총학생회는 따뜻한 도서관을 위해 제대로 노력하길 바랍니다.” 서울대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냉골 도서관’ 논란이 빚어지자 이 학교 학생이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며 쓴 글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7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기계실 점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행정관과 도서관 등 3개 건물 기계실에 들어가 난방 장치를 끄고 무기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파업이 시작되자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은 “민주노총은 학생을 볼모로 잡은 억지 파업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도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도서관은 파업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게시물에는 150개 정도의 댓글이 달리면서 파업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댓글을 통해 “총학생회의 요구는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냉골 도서관은 노동자의 기본권인 쟁의권 행사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학생들도 “총학생회가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둔 고시생들을 도서관에서 몰아내는 것은 부당하다”, “노조가 죄 없는 학생들을 인질로 삼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파업이 시작된 7일 이후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게시된 파업 관련 50여개 글 가운데 다수는 파업에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파업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자 학생들은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결성하고 지난 9일부터 ‘#당신의 노동은 나의 일상입니다’ 등 해시태그를 통해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활동에 나섰다. 10일에는 중앙도서관 기계실을 방문해 연대의 뜻을 전했다. 총학생회와 노조는 이날 오후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노조는 학생들과 미리 소통하지 못해 피해를 끼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총학생회는 공대위에 들어가 연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최분조 서울일반노조 부위원장은 “학생들과 소통이 충분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도서관 기계실을 점거한 이유에 대해서는 “동물 실험실 등 난방이 필수적인 곳을 최대한 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서울대 파업은 처음이라 사정을 잘 몰랐다”고 전했다. 노조와 대학본부는 지난 8일에 이어 11일 협상을 재개한다. 노조는 지난해 9월부터 대학과 모두 11차례 교섭과 두 차례의 조정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성과급·상여금 등 노동조건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기계·전기 노동자들은 “성과급·상여금·명절휴가비가 전혀 없고,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복지 포인트에서도 차이가 크게 난다”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당신의 노동은 나의 일상입니다 서울대 냉골 도서관이 만든 착한 연대 “도서관 따뜻함도 누군가에겐 노동”

    “저는 따뜻한 도서관을 원합니다. 그 따뜻함이 누구의 노동 위에 있는지 알게 된 지금, 그 누군가의 노동이 제대로 보장되기를, 도서관보다 더 추운 바깥에서 집회를 열고 덜덜 떨어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고, 그들이 가진 기술로 다른 이들의 꿈을 지원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학본부와 총학생회는 따뜻한 도서관을 위해 제대로 노력하길 바랍니다.” 서울대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냉골 도서관’ 논란이 빚어지자 이 학교 학생이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며 쓴 글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7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기계실 점거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은 “민주노총은 학생을 볼모로 잡은 억지 파업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도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도서관은 파업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게시물에는 150개 정도의 댓글이 달리면서 파업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댓글을 통해 “총학생회의 요구는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냉골 도서관은 노동자의 기본권인 쟁의권 행사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학생들도 “총학생회가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둔 고시생들을 도서관에서 몰아내는 것은 부당하다”, “노조가 죄 없는 학생들을 인질로 삼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파업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자 학생들은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결성하고 지난 9일부터 ‘#당신의 노동은 나의 일상입니다’ 등 해시태그를 통해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활동에 나섰다. 10일에는 논란의 중심이 된 중앙도서관 기계실을 방문해 연대의 뜻을 전했다. 총학생회와 노조는 이날 오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노조는 학생들과 미리 소통하지 못해 피해를 끼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총학생회는 공대위에 들어가 연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최분조 서울일반노조 부위원장은 “학생들과 소통이 충분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도서관 기계실을 점거한 이유에 대해서는 “동물 실험실 등 난방이 필수적인 곳을 최대한 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서울대에서 처음 파업을 하다 보니 사정을 잘 몰랐다”고 전했다. 노조와 대학본부는 지난 8일에 이어 11일 협상을 재개한다. 지난해 3월 서울대학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기계·전기 노동자들은 “성과급·상여금·명절휴가비가 전혀 없고,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복지 포인트에서도 차이가 크게 난다”며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혁신 조달 ‘시동’, 첨단 시제품 시범 구매 착수

    혁신 조달 ‘시동’, 첨단 시제품 시범 구매 착수

    조달청이 올해 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혁신 시제품 구매’ 시범 사업을 실시키로 하는 등 혁신 조달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무경 조달청장은 “개청 70년이라는 의미에는 조달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 의지를 담고 있다”면서 “그동안 물건을 잘 사주는 것에서 탈피해 필요한 물건을 발굴하고 중소·벤처기업이 공공조달시장을 통로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이자 신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으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적극적인 ‘전략적 조달자’로 역할 변화를 강조한 것이다. 혁신 시제품 구매는 상용화 직전 단계의 제품을 조달청 예산으로 구매하면 공공기관이 사용하고 그 결과를 공유해 상용화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이 ‘테스트베드’로 기능을 맡게 된다. 드론·미래자동차·바이오 헬스·핀테크 등 정부혁신 8대 선도사업과 안전·환경 등 국민생활문제 해결 분야를 중심으로 4개 제품을 선정한 뒤 매년 확대할 계획이다. 조달청은 2월 중 모집공고를 실시한 뒤 기술평가를 거쳐 각 분야 전문가와 수요기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지원 제품을 선정할 계획이다.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드론’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해 지난해 군사용 드론이 우수조달 물품으로 첫 지정하는 성과를 경험했다. 올해는 기상용·실종자 수색용·방송 중계용·대기 오염물질 측정용 드론 등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지난달 30일에는 과기부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성과와 공공조달 연계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과기부는 혁신적 R&D 성과 최적화를, 조달청은 혁신 제품의 사업화를 통해 공공조달에서 실제 구매가 이뤄지도록 뒷받침한다. 정 청장은 “실험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술개발 성공 제품들이 연간 123조원에 달하는 공공조달 구매력을 활용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신기술, 융·복합 제품의 판로를 개척해주는 혁신 조달을 확대해 경제 활력 제고 및 기술력있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파커 태양탐사선 두 번째 궤도비행 시작 - 4월 4일 근일점 접근

    [핵잼 사이언스] 파커 태양탐사선 두 번째 궤도비행 시작 - 4월 4일 근일점 접근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가 첫번째 태양 궤도 비행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건강한 상태로 계획된 24개 궤도 중 두번째 궤도비행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 12일에 발사된 파커 탐사선은 11월 5일 태양의 첫 접근비행에서 2400만㎞ 이내까지 플라이바이한 후에도 거뜬하게 살아남았다. 탐사선은 지난 19일 기준, 오는 4월 4일 두 번째 플라이바이에 도전하기 전에 태양으로부터의 가장 먼 거리인 원일점에 도착했다. 파커는 이미 첫 번째 궤도에서 17기가바이트의 과학 데이터를 전송했으며, NASA 관계자는 성명서에서 4월까지 관측 데이터를 모두 보내올 것이라고 밝혔다. “첫 궤도는 참으로 매혹적이었다”이라고 밝히는 파커 프로젝트 매니저 앤디 드리스먼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 실험실 연구원은 “우리는 탐사선이 태양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반응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팀의 예측이 매우 정확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파커로부터 온 데이터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롭고 잠재적인 발견들이 대량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태양 미스터리를 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번 파커의 첫 번째 플라이바이는 거리 기록을 깨뜨렸다. 이제까지 역사상 태양에 가장 근접한 기록을 세웠던 1976년 헬리오스-2의 기록(4300만㎞)을 2400만㎞로 깬 데 이어, 첫번째 근일점 통과에서 파커는 초속 95㎞로 근일점을 통과함으로써 가장 빠른 우주선 속도 기록도 아울러 세웠다. 탐사선은 두 번째 통과에선 비슷한 거리에서 날아갈 것이지만, 앞으로는 태양에 더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기록을 깨뜨릴 것이다. 2025년 후반에 잡힌 마지막 플라이바이에서 파커는 태양에 616만㎞까지 접근할 예정이며, 태양 중력에 의해 속도는 초속 190㎞까지 찍게 된다. 이는 서울에서 대전까지를 단 1초에 주파하는 속도다. 현재 두 번째 태양 플라이바이를 준비하면서 엔지니어들은 이미 지구로 전송된 탐사선의 데이터를 원격으로 비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NASA 관계자는 성명서에서 업데이트된 위치 정보와 네비게이션 정보, 약 한 달 분량의 명령을 탐사선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총 24개의 플라이바이를 실시하는 파커 태양 탐사선에는 4개의 관측장비가 탑재되어 있는데, 이들 장비는 태양의 내부 활동과 태양풍의 고속 원인, 그리고 태양 표면 온도보다 수백 배나 높은 태양 코로나의 비정상적인 고온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최대한의 데이터를 수집할 예정이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옛 서울대 농생대 임학임산학관, 1인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변신

    옛 서울대 농생대 임학임산학관, 1인을 위한 창작공간으로 변신

    옛 서울대 농생대 건물 가운데 하나인 임학임산학관이 1인 창작자를 위한 창작공간으로 변신한다. 경기도는 올해 60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르면 오는 7월부터 농생대 임학임산학관 개조 공사를 시작, 내년 3월 ‘메이커 스페이스’로 개관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메이커는 디지털 기기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1인 창작자를 일컫는 말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메이커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장비를 지원하는 공간이다. 임학임산학관은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위치한 옛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건물로 지상 3층, 3050㎡ 규모다. 도는 이곳에 3D 프린터, 레이저 커팅기, 목공, 금속가공기 등 다양한 장비와 제작실험실, 공동작업실, 제작품 전시장 등을 갖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도는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를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휴식과 복합문화공간인 ‘경기상상캠퍼스’로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농생대 22개 건물 가운데 7개 건물을 리모델링해 청년 창업 지원 공간 및 도민 문화향유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2016년 6월 첫 개관 후 현재까지 총 누적 방문객수 43만여명을 기록하는 등 경기도를 대표하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후석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임학임산학관은 당초 메이커스페이스 조성을 위한 리모델링이 예정된 곳으로 빈 건물이란 점에서 일부 오해를 산 측면도 있다”면서 “이 공간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하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메이커문화를 경기도 전역으로 파급.확산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이중섭·박수근 위작 유통, 매우 심각…검증 없는 레조네, 위작이 진품 둔갑하는 통로 우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이중섭·박수근 위작 유통, 매우 심각…검증 없는 레조네, 위작이 진품 둔갑하는 통로 우려”

    최명윤 이사장이 말하는 근현대 미술 거장의 ‘위작 감정’“이중섭, 박수근이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이미 나와 있는 책을 정리하는 수준의 ‘카탈로그 레조네’(작고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사진으로 싣는 도록·이하 레조네)는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기왕에 나와 있는 수십권의 책을 단순 정리하는 레조네는 왜 거액을 들여서 만들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레조네를 만드는 것은 결단코 반대합니다. 그런 것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 이중섭이나 박수근 작가의 기념재단이 할 일이지요.” 미술계에서 최근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의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사업에 대해 미술 감정 및 문화재 복원 전문가인 최명윤(70) 한국미술과학연구원 이사장은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중섭·박수근 뿐만 아니라 이우환(82) 등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 위작 문제와 관련해 ‘과학적 감정’을 제시해 왔다. 이에 미술계 일부는 미운털이 박힌 것처럼 그를 탐탁잖게 본다. “레조네, 정부 아닌 기념재단 사업과거 출판 도록 작품, 진위 논란 많아레조네 게재작, 명확한 근거 입증해야”최 이사장은 “레조네가 자칫하면 위작을 진품으로 인정하는 통로가 되고, 정부가 만든 레조네에 실린 위작은 정부가 진품으로 보증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라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레조네라고 하면 거기에 실린 그림들에 대해 명확한 근거와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먼저 출판된 자료가 있어서 게재한다는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먼저 출판된 자료의 그림이 박수근 진품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지금도 진위 논란이 되는 그림도 많은데….” 수개월간 인터뷰를 조른 끝에 지난 24일 서울 성북구 개운사길에 있는 한국미술과학연구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은 화학 실험실처럼 약품과 물감, 유리병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벽면엔 캔버스에 노랑 물감을 묻혀 걸어둔 게 보였다. “이게 뭐냐.”라고 물어보니 그는 “시장에 나온 물감을 종류별로 그림을 그려두고 먼지도 날아드는 일반적 실내에서 얼마나 빨리 굳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품 사진은 찍지 말라고 했다.그러면서 레조네 제작을 반대하는 이유를 계속 말했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이트에는 박수근, 이중섭 카탈로그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물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공개된 박수근의 자료를 보면 1953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소개된 그림의 경우 국전에 출품됐다는 참고자료를 찾아볼 수 없고, 또한 박수근 사후 20주년, 30주년 전시기념으로 제작된 화집에 실린 기록만을 진품의 근거로 제시한 경우도 있습니다. 박수근 사후 만들어진 화집의 예를 들면 전시회 도록에는 200여 점이 실려 있지만, 실제 전시공간에는 불과 30~40점밖에 걸릴 수 없어 전시회 도록에 실린 그림들에 대한 검증절차가 꼭 필요합니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현재 진행된 레조네 사업은 과거의 모든 전시화집에 실린 그림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선행 연구결과로 채택되어 있어 박수근의 진품으로 세탁하는 통로로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현재 카탈로그 레조네 사업은 공식적으로는 끝났으나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디, 거장들의 작품이 보통 가격입니까. 레조네를 만들어야 한다고 기를 쓰고 주장하는 이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레조네 용역비로 정부가 댄 돈도 세금인데….” “미술계 싸움닭?…먼저 시비 걸지 않아위작 감정에 ‘과학적 감정’…희비 엇갈려검경 감정의뢰에 답할 뿐…이게 나의 일”엄정한 위작 판별로 그에게 미술계의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쌈닭? 관심 없다”고 했다. “제가 먼저 어떤 작품에 대해 진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화랑에서 가짜 그림을 팔고 있다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그들이 뭘 팔든지 관심이 없어요. 검찰이나 경찰의 감정의뢰가 오면 제 나름의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검증한 결과를 수사기관에 넘겨줄 뿐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욕하고, 씹는 사람 절대 대다수는 한 번도 나를 만나 보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감정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데 왜 싸움닭인가. 그러나 걸어오는 싸움(작품 진위 논쟁)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상 뒤에 죽도와 목도가 보였다. “이런 게 왜 여기 있느냐”라고 묻자 “건강을 위해 검도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어서 젊은 사람을 당할 수가 없어. 가만있다가 상대가 죽도를 치켜들고 들어올 때 재빨리 반격하지.” 검도 기술 설명에 위작 논란과의 싸움이 연상됐다. “작품 진위 판별에는 손해 보는 사람이 있고, 이익 보는 사람도 생기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모두 다 나를 좋아하겠어요.”이중섭·박수근의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가히 ‘국민 화가’로 부를만하다. 최 이사장에게 위작 유통이 얼마나 심각하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는 한참을 말하지 않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매우 심각”이라고 짧게 말했다. ‘요즘 유통되는 작품 과반이 위작이냐.’라고 직설적으로 묻자 그는 “박수근은 더 심각하다”고 에둘러 답했다. 그리곤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꾹 닫았다. 이중섭·박수근 화백 작품 2800여 점이 모두 위작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 2017년 났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05년부터 12년 동안 지난한 싸움을 해왔다. 한국 미술계 사상 최대의 위작 스캔들이 밝혀지는 데에는 그의 감정결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의 ‘과학적 검증’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가진 인문학 지식과 과학 기법을 합쳐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진짜다’, ‘가짜다’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짜라고 판단을 했으면 왜 이게 가짜인가에 대해 객관적인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럴 때 과학 기기의 도움을 받습니다. 눈으로 보고 말로 설명해도 충분하지만, 과학 기기를 써서 동질성을 확인시켜주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언제까지나 ‘척 보니 좋아’, ‘척 보니 진품 맞아’ 이런 것 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가자는 것이고, 그렇게 노력하자는 겁니다.” “‘척 보면 좋아, 진품 맞아’ 하지 말고과학 기법 동원해 객관적 입증 노력감정 기법, 위조범 탓에 메모하지 마라”위작 감별에 동원되는 기기가 질량분석기, 원소분석기, 시편제작기, 고배율 현미경 등이라고 했다. 이런 고가의 기기를 갖출 수 없어 일부 전문기관과 협약을 맺고 있다고 했다. 설명이 계속됐다. “그림이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노후화와 진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급속한 인위적 노후화에는 차이가 납니다. 액자의 변형과 스타일, 못에 쓴 녹, 캔버스에 낀 먼지, 물감의 상태 …. 그래도 첨예하게 대립하면 소장자와 이해 당사자의 동의 아래에 그림의 아주 일부를 떼어내 조사합니다. 그러면 캔버스 조사뿐만 아니라 작가 특유 습관이 나옵니다. 위작범은 바깥으로 드러난 색깔만 따라하니 적발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분석 기법이 새나가면 위작범에게 피해갈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메모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국과수가 위조 서명을 감별하듯 화가 특유의 필압(筆壓)도 분석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감정 기법을 설명하면서 쓰지 말아 달라고 세 번 이야기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알려줘도, 일반인에겐 입도 벙긋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정 결과를 수사기관에 “위작임” “위작으로 판단됨” “감정불가” “진품”으로 회신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박수근은 가난한 화가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수근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문짝에 거적때기만 있어도 집이라고 하던 시절에 서울 숭인동에 기와집을 샀고, 1963년 전농동에 2층 양옥집을 사서 이사했습니다. 이게 박수근이 가난했을 것이라는 위작범의 생각과 내가 보는 박수근에 대한 생각의 차이점이자 위작 감정의 시발점입니다.” 그는 쉼없이 말을 이었다. “이중섭도 마찬가지로 돈이 없어서 담뱃종이에 그림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표현을 위해 담뱃종이를 쓴 것이라고 봅니다. 종이 살 돈이 없어 장판지 찢어서, 아무 종이나 막 찢어서 주야장천 그렸다는 이야기는 웃기죠. 대부분의 담뱃종이 그림에는 이중섭이 서명하지 않았거든요. 다음에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품 스케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요게 재미있으니깐 전시할 때 몇 개 담뱃종이에 그려낸 것이 있습니다만. 화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 겉모습만 보고 따라 그리니 위작이 금방 들통나지요.”사무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한쪽 벽면에 가위, 펜치, 드릴, 핀셋, 줄톱 등의 공구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감정을 의뢰받은 그림의 액자를 해체할 때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책상 뒤 작은 서가에는 CD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동안 분석했거나 감정했던 미술, 복원했던 고미술품의 자료와 감정 및 복원 과정을 담아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위작 다툼 상대와 관련해 “매너가 좋은 최고의 화상에 유명 대학교수와 같은 일류 평론가, 예리하게 파고드는 변호사가 붙은 거대한 카르텔 같은 집단”이라고 평했다. “위조범, 작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 부족자연적 노후화, 인위적 급속한 노후화 차이” 왜 그림 진위 감별 업무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게 나의 일”이라며 “대학원에서 작품평가방법론, 감정방법론 이런 것을 가르치는데, 그럼 난 뭘 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감정을 하지 말고, ‘입 닥치고 있으라’라는 것이겠지만 난 그들에게 오히려 ‘나쁜 짓을 하지 말든지, 걸리지 말든지 하라’고 역으로 말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에 걸려 압수된 물품에 대해서는 검경은 진위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압수를 당하지 않았으면, 검경이 나한데 안 물어볼 거잖아요.” 그가 ‘과학적 감정’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박수근, 이중섭 대규모 위작사건’과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이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서울옥션이 2007년 5월 경매에서 판매한 작품으로 45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당시 국내 미술품 경매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격주간지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2008년 1월 창간호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제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빨래터’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20명 이상의 위원이 진품이라고 한 작품을 그는 과학검증을 통해 확인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법정까지 갔다. “법원의 주문은 ‘원고의 모든 청구는 기각한다. 피고의 재판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입니다. 또 대법원에 사건검색을 하면 사건 일반 내용에 원고 패소로 확인됩니다. 그런데 대다수 일반인은 문제의 빨래터가 법정에서 ‘진품이라고 추정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1940~1960년대 서울에서 몇 곳 안 되는 화방 가운데 두 곳을 운영했다. 최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화방 심부름을 많이 하면서 찢어지고 물감이 엉겨붙어 실려 온 ‘사고 작품’을 많이 봤다. 미대생이어서 작품 손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작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보존과학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프랑스 8대학 조형미술대학원, 랄페르복원기술연구소에서 복원기술을, 고등장식미술학교인 아르데코에서 벽화를 청강생으로 접했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미술품이나 문화재 복원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는 것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를 분석하고, 훼손 요인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훼손 요인을 분석하는 상태조사 방법과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진행하는 과학적 분석 방법은 일맥상통하기에 그림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노련한 전문가 사후 감정 어렵다는 건 오해미술재료 기술사 정리 중…정확히 감정 가능”2016년 문제가 된 원로 작가인 이우환 작품 3점에 대해서도 그는 “위작”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정작 작가인 이우환은 “내 작품이 맞다”고 했다. 문제의 작품은 1978년, 1979년에 그린 것으로 돼 있다. 법원도 모사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 이사장은 문제 그림의 캔버스 재료의 제작기술을 토대로 2010년대 제작된 것임을 입증해 보여줬다. 이런 최 이사장에게도 난감할 때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떤 그림의 진위를 밝혀달라고 합니다. 그 작가에 대한 비교 대상의 그림도 없이 말입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그래서 ‘미술 재료 기술사’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양화가 도입된 지 100년 남짓합니다. 초기의 30~40년은 작품 수도 적고 하니 다음으로 미루고, 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60~70년 정도를 정리하고자 합니다.” 두꺼운 바인딩 파일을 가져와서 쑥 내밀었다. 열어보니 물감, 캔버스 등의 실물 일부가 표본으로 붙어 있었고, 연도 작가 등이 쓰여 있었다.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시작한 연도, 재료를 구입하는 곳, 어떤 미술 재료를 사용하는지를 취재해 모은단다. “재료기술사는 개인이 하기에는 버겁지만 시작한 일이니 앞으로 10~20년쯤 뒤에는 완성될 것으로 봅니다. 일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소장자들은 현재 위작 감정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죽고 나면, 감정이 어려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재료 변천에 대한 작가별 과학재료 기술사가 정립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감정 뒷이야기를 더 들을까 해서 같이 저녁을 하자고 했더니 최 이사장은 “검도 승단 심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셰일가스 채굴하려 히로시마 원폭 기술 쓰겠다는 중국

    셰일가스 채굴하려 히로시마 원폭 기술 쓰겠다는 중국

    중국이 셰일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원자폭탄에 쓰이는 기폭장치 기술을 이용할 계획을 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자오퉁(西安交通)대 장융밍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10여 년의 연구 끝에 강력한 충격파를 이용한 채굴 공법을 개발했다. 이 채굴 공법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기폭장치에 쓰인 기술과 같은 원리다. 어뢰처럼 생긴 기폭장치를 지하로 내려보낸 뒤 강력한 전류를 발생시키면 플라스마 형태의 이 전류가 엄청난 충격파를 주위로 내보내 암반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핵무기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 연구팀은 실험실 연구를 마친 후 오는 3월이나 4월 쓰촨(四川) 지역에서 이를 실제로 적용할 계획이다. 화학물질이 섞인 물을 대량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존 수압파쇄공법과 달리 이 공법은 환경 측면에서도 더 나은 공법이라는 게 중국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중국은 31조 6000억㎥ 규모의 셰일가스를 보유해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미국과 호주가 보유한 셰일가스를 합친 양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이다. 하지만 2017년 중국의 셰일가스 생산량은 60억㎥에 그쳤다. 셰일가스를 적극적으로 채굴해 수출까지 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 내 전체 천연가스 생산량의 6%에 불과한 수치이다. 이처럼 중국의 셰일가스 생산이 저조한 것은 지하 수백m에 매장된 미국의 셰일가스와 달리 중국 셰일가스의 80%가 지하 3500m의 깊은 땅속에 있는 까닭에 기존의 수압파쇄공법으로는 채굴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셰일(Shale·혈암)은 지하에 넓고 얇게 형성된 진흙 퇴적암층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함유하고 있다. 수압파쇄 공법은 시추공을 뚫은 후 모래와 화학물질이 섞인 물을 고압으로 뿜어내 암반을 깨뜨려 가스 등을 퍼 올리는 공법을 말한다. 그런데 땅속 3500m에 있는 셰일가스에 이 공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압력의 물을 뿜어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기술로는 이를 감당할 펌프와 파이프를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장융밍 교수팀은 10여 년의 연구 끝에 강력한 충격파를 이용한 채굴 공법을 개발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공법을 이용하다가는 자칫하면 큰 재난을 부를 수 있는 탓이다. 지하에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할 경우 인공 지진을 만들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연구팀이 새 공법을 시험할 쓰촨 지역은 2008년 8만 7000명의 사망자와 37만명의 부상자를 초래한 쓰촨 대지진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인근에는 중국 최대의 수력발전 댐인 싼샤(三峽)댐과 세계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 등이 있어 셰일가스 채굴 당시 발생할 충격파로 인한 인프라 시설 붕괴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봄이 오나 봄’ 이유리X엄지원, 몸 체인지 “시청자 사로잡은 60분”

    ‘봄이 오나 봄’ 이유리X엄지원, 몸 체인지 “시청자 사로잡은 60분”

    ‘봄이 오나 봄’이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23일 방송된 MBC 새 수목드라마 ‘봄이 오나 봄’(극본 이혜선, 연출 김상호, 제작 제이에스픽쳐스)이 23일 첫 선을 보인 가운데 닐슨 수도권 기준 1부 2.1%, 2부 2.2% 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두 여자의 몸이 체인지 된다는 신선한 소재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등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과 감각적인 영상미를 비롯해 배우들의 명품 연기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봄이 오나 봄’은 자신밖에 모르는 앵커와 가족에게 헌신하는 배우 출신 국회의원 사모님의 몸이 바뀌면서 두 여인이 진정한 자아를 회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코미디 드라마다. 어제(23일) 방송된 ‘봄이 오나 봄’ 1, 2회에서는 캘리포니아 양자역학 연구소의 유전자 치환 실험실에서 사람의 몸이 바뀌는 실험에 성공해 즐거워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총기난사가 일어났고 어수선한 틈에 봄일(김남희 분)이 약을 훔쳐 나오는 장면이 그려지며 첫 장면부터 시청자들을 극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어 장면이 전환되자 지저분하지만 나름의 규칙을 가진 김보미(이유리 분)의 집과 깔끔하고 체계적인 습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봄(엄지원 분)의 일상이 번갈아 나왔고 MBS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오르게 된 김보미의 야망 넘치는 모습과 국회의원인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이봄의 모습이 차례로 그려지며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을 보여주어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이후 캘리포니아 양자역학 연구소에서 몸이 체인지 되는 약을 훔쳐 도망친 봄일이 봄삼(안세하 분)을 찾았으며 봄일이 가지고 있는 약을 순식간에 늙는 약으로 오해한 봄삼이 김보미에게 몰래 약을 먹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봄삼이 세운 계획이 틀어지면서 김보미와 함께 이봄까지 몸이 체인지 되는 약을 먹게 되었고 결국 두 사람의 몸이 바뀌게 되면서 극은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속으로 빠져들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이유리와 엄지원의 1인 2역이 예고됐었던 ‘봄이 오나 봄’은 몸이 체인지 된다는 신선한 소재로 첫 방송부터 이목을 끄는 동시에 유쾌한 장면들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으며 몸이 바뀌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로 극에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것은 물론 여기에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인 영상미까지 더해지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 올렸다. 뿐만 아니라 바뀐 서로를 연기하는 이유리와 엄지원은 흡입력 있는 연기로 극을 이끌어 나갔고 이종석은 까칠한 보도국 팀장의 면모를 보이며 이유리와의 앙숙케미를 제대로 살려냈으며 최병모는 양면성을 가진 국회의원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등 60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들며 특징이 살아 있는 캐릭터들로 인해 앞으로 전개될 흥미로운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한편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봄이 오나 봄’은 오늘(24일) 밤 10시 3, 4회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문화마당] 책이 아니라 ‘읽기’를 서비스하라/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책이 아니라 ‘읽기’를 서비스하라/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월정액 구독을 통한 전자책 ‘무제한 대여 서비스’가 출판계의 핫이슈다. 예스24 북클럽이 한 달 5500원, 7700원 두 요금제로 전자책을 무제한 읽을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밀리의 서재와 리디북스도 각각 한 달 9900원과 6500원에 무제한 전자책 읽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구독 모델로 책을 판매해 ‘출판의 넷플릭스’가 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는 게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아마존 킨들 무제한 서비스가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뒤 영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이 모델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국내 웹소설 서비스에서는 이미 익숙한 형태이기도 하다. 수백억원 이상 벤처 투자가 일어나는 출판의 새로운 사업 모델 역시 모두 이 방식에서 출현한다. 밀리의 서재는 2018년 한 해 동안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리디북스도 벌써 2016년 200억원을 투자받았다.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는 회사들이지만, 미래 가치를 높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제한 구독 서비스를 두고 콘텐츠 공급자인 출판사 쪽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본 투 디지털’이었던 웹소설과 달리 종이책 기반의 전자책이 이들 서비스를 통해 유통될 경우 현재의 출판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경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의 콘텐츠 소비 습관이 종이책 구매에서 전자책 대여로 바뀌면서 안 그래도 줄어드는 종이책 시장을 급속히 위축시킬까 걱정한다. 또 음반시장에서처럼 전자책 구독 모델이 유통업체 배만 불리고 콘텐츠 생산자를 따돌리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려운 환경에서 출판 다양성을 지켜 온 현재의 출판문화 생태계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제한 대여’라는 말은 실제로는 마케팅 구호에 불과하다. 출판 시장에 끼칠 영향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새로운 시도 없이 독자를 창출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우려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음악 1곡은 보통 4분이면 들을 수 있고, 드라마는 1시간, 영화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이들은 ‘무제한’ 느낌을 주는 서비스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책은 소비 시간이 아주 길다. 일부 대중물을 제외하면 1주일에 1권이 보통이다. 생활에 바쁜 30대가 전자책의 주요 이용자임을 고려하면 잘해야 한 달에 1~2권이 고작일 것이다. 전자 도서관의 경우 욕심껏 내려받고도 기한 지나 자동 반납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무제한 대여라고 다를 리 없다. 전자책 대여 서비스가 가장 활발한 미국 시장에서도 전자책은 종이책을 죽이지 못했다. 디지털펍트랙에 따르면 미국 전체 출판시장에서 전자책 점유율은 2013년 28%로 정점에 오른 후 2017년 현재 21%까지 떨어졌다. ‘무제한’ 대여 서비스 역시 자연스레 어느 수준에서 ‘제한’되면서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공존할 것이다. 따라서 독자를 잃어 가는 중인 출판산업 전체를 생각할 때 이 서비스를 통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잃어야 할 까닭이 없다. 중국의 경우 전자책 신규 이용자의 3분의1 정도가 이 서비스를 통해 생겨났다. 상당수는 무제한 대여 서비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구매’해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의 본질은 책이 아니라 읽기를 판매하는 데 있다. 좋은 콘텐츠를 독자가 바라는 어떠한 형태로든 읽을 수 있게 서비스하는 것은 출판이 져야 할 당연한 임무다.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영국 하퍼콜린스의 최고경영자 찰리 레드메인은 말했다. “원하는 콘텐츠를 기대한 만큼의 품질로 제공하고, 적절한 가격으로, 소비하고 싶어 하는 플랫폼에 쉽게 접근하게 해 준다면 소비자들은 콘텐츠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독자가 거기 있는 한 출판은 어떠한 서비스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 24개 사회공헌캠프 고도화해 지역혁신 생태계 조성

    24개 사회공헌캠프 고도화해 지역혁신 생태계 조성

    지역을 근간으로 하는 케이블TV 사업을 통해 성장해온 CJ헬로는 기업의 역량을 지역민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방송통신업 역량과 지역 관계망을 활용해 지역 끝단까지 챙기는 세심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역 발전에 힘쓰고 있다. 또한 나눔과 기부 중심의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역사회 위기 극복을 돕는 것을 비롯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지원 서비스 ‘이어드림’, 셋톱박스를 통해 독거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는 ‘헬로안부알리미’ 등 기술 기반의 방송접근권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 전국 24개 사회공헌캠프를 출범하고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해결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지역혁신 리빙랩(Living Lab) ‘꿈마을 연구소’를 출범했다. 24개의 사회공헌캠프를 고도화한 것. 리빙랩이란 삶의 현장을 실험실로 삼아 사회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법을 찾는 시도를 말한다. 꿈마을 연구소는 지역마다 당면한 문제가 다르고 실정도 다르다는 점에 집중했다. CJ헬로는 업을 통해 축적해온 지역밀착 네트워크와 ICT 역량을 기반으로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협업해 지역 현안을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지역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꿈마을 연구소의 시작은 강원도 ‘우리집 전기저금통’ 사업이다. 강원 지역 에너지 자립 체계를 형성해 청정 강원을 만들기 위한 사업으로, 각 가정의 실시간 에너지 정보를 IoT를 활용해 모바일로 제공한다. 강원지역에 퍼져있는 CJ헬로 영업조직이 각 가정을 방문해 전기저금통 설치를 돕고, 지역 채널을 통해 홍보 활동을 펼치며 강원도 내 에너지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실버케어’ 분야의 리빙랩 사업도 진행 중이다. 독거노인 가구에 IoT 스마트 토이 ‘효돌이’ 보급 사업에 CJ헬로 인터넷 등 인프라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효돌이는 손자 손녀의 모습을 한 봉제 인형으로, 맞춤형 센서로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건강관리 기능, 치매 예방 놀이와 애교 등으로 어르신의 말벗이 되는 감성 케어 기능이 탑재돼 있다. 그동안 독거노인의 안전을 지켰던 ‘안부알리미’ 서비스를 생활·감성 관리 영역으로 확장해 사회 고립형 독거노인의 우울증과 치매를 예방하고 안전 문제 해결을 돕는다. 도시재생 분야도 꿈마을 연구소의 한 축이다. 경남 창원 완월동에 마을 안전을 위한 안전 솔루션을 기획하고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다. 지역민, 지자체 등 지역사회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화재감지기와 속보기, 보안등, 센서등 등의 안전설비를 설치하고 골목 정비에 나서 마을 내 안전취약 구역 정비에 나섰다. 지역사회와 협업해 완월동의 안전생활여건을 개선하는 한편 향후 일자리, 복지, 교육 문화 등의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마을 공동체 활성화에 나설 계획이다. CJ헬로 관계자는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만큼 지역사회에 과실을 나눠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사회공헌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면서 “꿈마을 연구소를 지자체, 지역 전문가, 시민단체 등 지역 구성원들과 함께 지역 현안을 발굴하고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 리빙랩 사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안전 지키는 리빙랩·폐휴대전화… 성동은 스마트 포용도시”

    “안전 지키는 리빙랩·폐휴대전화… 성동은 스마트 포용도시”

    “리빙랩(Living Lab)과 폐휴대전화를 활용, 성동구를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마트 안전 도시’로 만들겠습니다.”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기해년 새해를 맞아 민선 7기 비전인 ‘스마트 포용도시’ 구현을 본격화한다. 정 구청장은 지난 18일 서울신문 신년 인터뷰에서 “교통 대변혁을 이끌 리빙랩을 위한 준비를 모두 끝냈다. 삼성전자와 함께 버려지는 스마트폰을 재활용해 안전 대혁신도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빙랩과 폐휴대전화 재활용을 통해 항구적인 안전이 담보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구청장께서 생각하는 리빙랩은 뭔가. -리빙랩은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실험실이다. 주민들이 정책 결정과 시행, 이후 보완·수정에도 참여하는 게 핵심이다. 리빙랩 원리는 덴마크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나왔다. 개발자들이 장애인들에게 가장 편리한 휠체어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나눠 준 뒤 의견을 직접 들었다. 학생들이 사용하면서 불편한 점을 얘기하면 개발자들은 반영해 휠체어를 업그레이드시켰다. 이 과정을 반복,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게 요즘 상용화된 ‘조이스틱 전동휠체어’다. 이 원조 개념을 토대로, 성동구민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최적의 도시를 만들려 한다. →리빙랩을 어느 분야에 가장 먼저 적용하려 하나. -초등학교 통학로다. 관내 모든 초등학교 통학로에 리빙랩을 실시하려 한다. 이를 위해 지난 1년 간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치 기반 스마트 지도를 만들었다. 스마트 지도 위엔 폐쇄회로(CC)TV, 신호동 등 관내 모든 안전시설이 다 표시될 뿐 아니라 교통사고 최다 지역 등 안전사고 내용도 모두 표기된다. 주민들은 이 온라인 플랫폼에 언제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통학로 근처에 간판이 툭 튀어 나와 있어 위험한데 시정해 달라, 통학로 야간 조명이 어두운데 밝게 해 달라, CCTV를 설치해 달라는 등 초등학교 통학로와 관련된 모든 내용은 다 올라온다. 그러면 교통안전전문가들이 즉시 대책을 조치하고 공개한다. 이 과정이 무한 반복되며 최상의 통학로를 구현해 나간다. 항구적인 리빙랩으로 항구적인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다.→지금 이 시대, 리빙랩이 왜 필요한가. -보통 정책은 의견을 수렴하고 발표하면 끝이다. 1년 지나면 1년 전과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 하지만 리빙랩은 정책을 계속 살아 숨 쉬게 한다. 계속 살아 숨 쉬는 정책, 이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하다. 불확실성 시대엔 유연성이 생명이고, 유연성을 살릴 수 있는 게 리빙랩이다. →폐휴대전화 재활용은 뭔가. -요즘 스마트폰은 1년 정도 지나면 폐품이 된다. 재활용을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카메라 화소는 CCTV보다 더 좋다. 고성능 CCTV다. 스마트폰을 가로등 같은 곳에 부착만 하면 CCTV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불법 주정차 단속도 할 수 있고,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곳의 주차 상황도 실시간 파악, 화재 때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 폐휴대전화로 교통과 안전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성동구는 지난해 말 ‘서울시 스마트시티 테스트베드 교통안전 분야 특구’로 지정됐는데, 특구 지정 관련 제안서에 리빙랩과 폐휴대전화 활용이 들어가 있나. -그렇다. 지난해 17개 자치구가 공모에 참여해 9곳이 1차 선정됐고, 2차 제안서 발표를 통해 성동구가 확정됐다. 3년간 시비 15억원을 받는다. →이 밖에도 스마트 포용도시를 위해 새로 추진하려는 게 있나. -‘인공지능(AI) 스피커’다. 이를 통해 전담 주치의가 75세 이상 노인 가정을 직접 찾아 건강 관리를 하는 ‘효 사랑 주치의’를 보완하려 한다. 주치의는 매일 각 가정을 방문할 순 없다. 가정을 방문하지 못하는 기간, AI 스피커가 주치의 역할을 하도록 하려 한다. AI 스피커에 주치의 처방전을 입력해 약 먹을 때, 운동할 때 등을 다 확인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쉽게 말해 AI 스피커가 24시간 주치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올해 200~300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방지, 스마트 포용도시 등 구청장께서 추진하는 정책은 정부보다 한 발 앞선다는 평가를 듣는데, 그 비결이 뭔가. -기초자치단체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기초단체는 주민들과 늘 밀접하게 있기 때문에 주민 요구를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고, 그 요구에 따라 개선책을 연구하고 마련할 수 있다. 주민과의 접촉과 연구가 정책을 발굴하는 힘인 것 같다. →강남·북 균형발전 못지않게 성동구 내 균형 발전도 중요할 듯하다. 낙후 지역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려 하나. -현재 여건 개선이 필요한 곳으론 용답·송정·마장·사근동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엔 도시재생으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동체를 회복하겠다. 용답·마장동 도시재생은 이미 시작됐다. 송정동은 저층주거지 재생을 위한 ‘2018년 도시재생활성화 지역(근린재생일반형)’으로, 사근동은 지난해 연말 서울시 도시재생 희망지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도시재생 성공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100억, 200억원 들여 도로를 새로 깔고 주차장 짓는다고 해서 재생이 되는 게 아니다. 도시 기능을 새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새로운 기능이 도시에 들어와야 하고, 그 기능으로 도시가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성수동은 낙후지역에서 도시재생을 통해 말 그대로 되살아났다. 작고 예쁜 가게들과 소셜 벤처를 중심으로, 도시의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냈다. 이젠 자체 성장동력이 생겨 스스로 진화할 수 있게 됐다. 용답·송정·마장·사근동에 대해서도 이처럼 확실한 비전과 목표를 갖고 도시재생을 하려 한다. 마장동은 축산물시장 냄새가 안 나고 깨끗하게, 송정동은 골목이 살아나게, 사근동은 마을 주민들과 한양대 학생들이 상생·공존할 수 있게 하려 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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