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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의환향의 계절/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그날 우리 애국가는 참 아름다웠다. 흡사 자석처럼 우리를 앉은 자리서 일으켜 세우고 발부리부터 적셔와 가슴에 이르러 눈물이 되게 한 그 감동의 물결에 대한 기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머리에 희끗희끗하게 권위가 얹힌 그 도도한 바스티유 오케스트라가 황색 피부의 젊은 한국인 지휘자 정명훈의 은빛 지휘봉을 따라 그토록 아름다운 「애국가」를 연주한다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경이로운 일인지를 우리는 만끽했다. 그래서 관객들은 기립한채 두팔에 쥐가 나도록 박수쳤다. 이 위대한 「금의환향」이 고마워서,박수밖에 해줄 수 없는 일이 미안해서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이렇게 빛나는 젊은이를 갖게 된 대한민국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가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가 온갖 역경딛고 성공을 이룩하는 동안 그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던 조국이라지만 그래도 영광을 한아름 조국의 품에 안겨주는 이 효성스런 아들이 고맙고 대견해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정명훈에게 조국이란 무엇일까. 위대한 예술가로 성장하여 당대에 우뚝선 봉우리들과 키겨루기를 해야 하는 그에게 초라한 극동의 작은나라에 지나지 않는 조국은 부담스럽고,애물이기만 한 것이었을까.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던 같은 무렵,서울 사간동의 갤러리 현대 뒤뜰에서는 백남준의 서울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며 세계적인 행위예술의 대가로 백남준과 비견될 수 있었던 고 조셉 보이스를 위한 「오귀굿」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였다. 이날도 그랬듯이 백남준의 행위예술에서는 「무당굿」이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어린날 그의 집에서 섣달그믐이면 펼쳐지던 재수굿과 그것을 관장하던 「애꾸무당」은 그의 예술혼을 관류해오는 중요한 정서의 서서였다. 전쟁중에 공중추락하여 시베리아의 한 촌락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조셉 보이스는 타르타르족의 샤만에 의한 신비한 능력으로 회생했다. 그로부터 거듭난 보이스가 그의 눈빛에 담고 있던 그 귀기서린 안광을 백남준이 알아보았고 그렇게 우정은 출발했다고 그는 피력하고 있다. 백남준도,비디오 아트의 창시자가 되어 세계속에 명성을 굳히기까지 조국은 그를 지원하지도 않았고 알아주지도 못했다. 알아주기는 커녕,행위예술이 지닌 「실험성」을 「해괴한 짓」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농후하다. 그래도 그의 예술정신속을 흐르는 지하수는 무당굿이다. 그 백남준에게서 나라와 관계된 일화 한가지를 들은 적이 있다. 가난한 고학생으로 미국에 있던 때였다. 카네기재단에서 선발하는 음악 장학생에 그가 응모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선발권을 가진 책임자는 백남준의 대목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신청자가 일본인이면 불합격이고 한국인이면 합격이다』­. 그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그 책임자는 줄리어드 음대와도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중에도 한국의 음악유학생이 줄리어드에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전쟁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녀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는 열성이 그토록 높은 나라』이므로,한국출신의 음악도에게는 특별배려를 해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더 거슬러 오르면 이런 일도 있다. 해방이 되고,건국이 되었을때의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너무도 미미한 존재였다. 이 무명한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조금이라도 빠르게 좋은 명성을 높이는 첩경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분이 있었다. 「배재」「이화」로 꽃피워 온 사립명문의 선생님이던 S씨다. 그 분은 그 「첩경」이 청소년의 예술적 재능을 집중 발굴하여 세계무대에 내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분을 찾아다니며 서둘러 예술계통의 중고교를 창설했다. 그렇게 설립된 예술학교가 오늘날 예술인력양성에 끼치고 있는 공훈은 그분이 당초에 예상했던 결과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음악한국」을 인정하게 된 원천이 그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해준 것도 없는 조국이라고 자책하지만 그래도 하느라고 해온 노고가 우리나라에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것이 아니라도 조국은 조국이다. 일부러 찾아가서 외국공연을 후원할만한 동포는 아직 못 두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치는,너무 두들기다가 팔에 쥐가 날 지경인 동포관객들 앞에서 아름다운 국가를 연주할 수 있는 조국이라면 예술가에게 훌륭한 조국일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하고 공들인 성공이라도 금의환향할 수 있는 곳이 없으면 그 성공은 빛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대한민국은 충분히 자격이 있는 조국이다. 어린 시절 분홍빛 이데올로기를 쫓아 먼길을 헤매다가 초로의 명예로운 석학이 된 재소과학자 장학수씨의 귀국도 금의환향이다. 이념과 인생의 방황을 고국청년에게 알리고 싶어 모국어로 자서전을 펴내기 위해 일시 귀국한 그는 『가능하다면 가족을 데리고 영구귀국해서 여생을 조국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게도 대한민국은 훌륭한 조국이다. 사랑하고 싶고,봉사하고 싶은 조국이 없다면 천재들에게 무엇이 성공을 자극하겠는가. 걸핏하면 자학하고 스스로 업신여기는 우리나라지만,그 나라가 없으면 어떤 「금의환향」도 의미가 없다. 이 나라가 더이상은 자해의 상처를 입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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