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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사 ‘이산상봉·광복절’ 특집프로 다채

    오는 15일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55주년 광복절을 맞아 각 방송사마다 풍성한 특집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산가족 상봉 KBS,MBC,SBS는 14∼18일 수시로 뉴스특보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생중계한다. 생방송 외에 KBS는 15∼17일 특별 기획 ‘북녘땅 고향은 지금’을 마련했다.송도원 해수욕장,성불사,함흥냉면 등 조선중앙TV가 촬영한 원산,사리원,함흥의 명승지와 별미 등을 소개하고 각 지역 출신 실향민을 초대해 이야기를나눈다.또 이산가족 상봉을 총정리하는 ‘이산가족 교환방문 3박4일의 표정’(18일 밤10시)을 방송한다. MBC는 가수 현미와 코미디언 남보원이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과 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동행 취재한 ‘현미 남보원의 이산가족 상봉’(14일밤11시5분)을 방송한다. 또 남북의 대중문화와 유행,패션 등의 비교를 통해 남북한 생활상의 변화를살펴보는 ‘서울 50년,평양 50년’(16일 오후7시25분),상봉을 앞둔 이산가족의 기쁨과 설렘을 담은 ‘그후 50년 어머니,내일 뵙겠습니다’(14일오후5시45분)를 내보낸다. SBS는 월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조명한 ‘묻혀진 반세기의 그리움-월북가족’(12일 밤10시50분),남북 이산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뒷얘기를 듣는 ‘반세기 만의 망향가’(14일 밤12시5분)등을 방송한다. ■55주년 광복절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세 편의 다큐멘터리가 눈에 띈다.KBS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이끌어냈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완결편인 ‘종군위안부 7년간의 기록-숨결’(13일 오후8시)과 미국 PBS가 제작한 한국인 종군위안부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침묵의 소리’(14일 밤11시30분)를 준비했다. EBS는 서울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통해우리나라의 뼈아픈 현대사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어느 일본군 위안부의 잃어버린 55년’(15일 오후8시)을 방영한다. 이밖에 KBS는 백범의 통일관을 알아 보는 ‘발굴 스티코프의 비밀수첩,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12일 오후8시),연해주에 사는 한민족의 모습을 담은 ‘연해주에서 만난 4개국 한민족’(15일 오전11시)를 방송한다. MBC는 20여년 동안 한국 정치범을 도운 일본 가즈꼬 여사의 이야기를 다룬‘가즈꼬 여사는 70에 한국을 보았다-한·일 인권의 가교’(14일 오전11시5분),일제 당시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던 ‘선감원’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고발한 드라마 ‘선감도’(15일 밤10시5분)를 방영한다. EBS는 일본 오사카시에서 일고 있는 재일 민족학급의 풀뿌리 민족운동을 소개한 ‘섬나라 속의 섬-재일 민족학급’(14일 오후8시),흥사단 국토탐험대어린이들과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어린이 다큐멘터리 ‘특집 난할 수 있어요’(15일 오후5시50분)등을 준비했다. ■라디오 특집 KBS 1라디오는 15일 오전 7시15분 ‘안녕하십니까 김종찬입니다’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와 문제점,앞으로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본다.EBS는 6·25때 헤어진 어머니에게 50년간 매일 편지를 써온 이창남씨의 사연 등을 다룬 ‘만남’(14일 오전11시)을 방송한다. 장택동기자
  • [대한시론] 대인지뢰 금지조약과 경의선 복원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국제법]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남북한장관급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등 남북관계는 바야흐로 화해협력의 시대로 줄달음질치고 있다.더욱이 지난 7월 31일 남북한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된 구체적 실천조치 중에는 서울∼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철도를 복원시키는 계획이 포함돼 있어 가슴을 더욱 설레게 한다.경의선에 얽힌 사연을 가진 실향민들은 이제 멈추었던 철마를 다시 타고 고향마을까지 한달음에 내달리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이다. 그러나 오는 29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되는 대로 구체화될 것이라는 경의선철도 복원사업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중 가장 큰 장애물이 지뢰제거작업이다.지뢰 제거비용은 물론이고 제거의기술적 어려움이 보통 아니다.그러나 남북 쌍방은 철도복원을 위해 이렇게지뢰제거에 협력하자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무장지대의 다른 지역에경쟁적으로 계속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그러므로 향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이용에는 엄청난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이 계속 따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 쌍방이 일명 ‘오타와조약’이라고 일컫는 대인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대인지뢰금지조약이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인지뢰금지조약이란 대인지뢰의 사용·비축·생산·이전의 금지 및 파기의 합의이며,1997년 12월 3일 서명,1998년 3월 발효했다.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남북한을제외한 137개국이 서명하고,비준한 나라는 91개국에 달한다.현재 전세계 64개국에는 약 1억1,000만개의 지뢰가 매설돼 있으며 이 지뢰로 인해 전투요원들보다 매달 무고한 2,000명의 민간인이 이 순간에도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고 있다.또 그 피해자들은 정부당국으로부터 피해방지 및 구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인도적인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특히 캄보디아를 비롯한 분쟁지역에서 지뢰피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도 국방부 국감자료에 따르면,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지난 1992부터 1998년 9월까지 6년동안 모두 48건의지뢰사고에 총 41명 사망,46명의 부상이 있었다.그 중 군인사망은 25명,부상은 31명이고,민간인 사망 비율이 36%였다.현재 비무장지대에는 한국전쟁 이후 아직도 매설여부가 판단되지 않은미확인 지뢰지대가 20여 만평에 달하고,탐지 불가능한 대인지뢰도 약 100만발 정도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매설하는데는 개당 3∼30달러에 불과한 대인지뢰가 제거하는데는 개당 300∼1,000달러가 필요해 현재 한반도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데는 통일 이후 총 30억∼10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또한 제거방법이 땅을 갈아엎는 게 유일한 방법으로 이에 따르는 환경손실과 인명손실은 감히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따라서 비무장지대는 통일이후에도 ‘죽음의 벨트’로 수십년간 남을 것이라고 한다.동서독의 경우에도 통일이후 예상치 않은 엄청난 지뢰 제거비용이 통일비용을 누증시켰다. 한국정부는 북한군의 전차부대 남침을 지연시키고,한반도에서는 비무장지대에만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없다는 점을 표면으로 내세워 대인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그러나 북한의 대전차부대 방지무기는 대전차지뢰이지 대인지뢰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걸프전시 미군사령관 슈워츠코프와 전 한미연합군사령관을 비롯한 군사전문가들도 지뢰가 군사력의 억지보다는 연합군의 기동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침지연 논리에 반박했다.더구나 남북이 대인지뢰금지조약에 현재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대인지뢰를제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남북한은 가입후 최소한 10년 6개월이 지나야 대인지뢰 제거의무를 진다.또 이 가입은 남한만 단독 가입하자는 것이 아니고남북 쌍방이 동시에 가입하자는 것이다.그래서 남북이 경의선철도 복원사업을 위한 지뢰제거 협력을 하는 계기로 쌍방이 대인지뢰금지조약에 동시에 가입해 지뢰제거 공동작업을 하는 것은 향후 계속적인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과 남북한의 실질적인 군축협력을 위해 매우 유익할 것이다.
  • [네티즌 이슈] 주한미군과 미국

    *더이상 굽신거리지 말자 나의 공식적인 출생지는 ‘서울시 중구’이지만 사실 처음 세상 빛을 맞이한 곳은 동두천 외가에서였다.실향민이셨던 외조부모님께서는 그래도 북녘땅과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두실 작정이셨는지 경의선 철도가 눈앞에 보이는동두천땅에 터를 잡으셨을 것이다.어릴 때 동두천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뛰놀았지만 절대로 갈수 없었던 데가 있었다.바로 밤이면 조악한 영어 간판과 색색의 꼬마전구가 켜지고 코 큰 양키들이 넘치던 곳이었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흘렀지만 기지촌은 여전하고 양키들의 폭력과 멸시가횡행하며 이따금 우리의 누이들이 죽어 나가는 곳.최근에는 한강의 독극물방류사건에다 매향리 사태까지 불거졌다.현재 진통을 거듭하는 SOFA 개정협상이 큰 주목을 끄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7월 말 동두천시의 소요록페스티발도 그런 경우다.한데 이제 반미 감정이 그런 것으로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자 보수언론과 대통령도 국익을내세우며 국민들의 분통을 잠재우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반미’가 아닌 ‘평등’관계의 회복이다.또 그 ‘반미’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과거의 막막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이다.이런데도 미국의 행동만 트집잡으면 보수세력은 용공이니,근시안적이니,감정적이니하면서 호도하는 데 혈안이다. 현재 한창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SOFA.하지만 그 끝은 그리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오히려 미국은 남북 해빙 무드에 딴지를 걸든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더욱 베팅하고 싶어 안달이다.또 여전히 만만한 상대를 대하듯 거드럼을 피우고 있다.때문에 이번 SOFA 협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자기 점검의 계기이며 동시에 자존을 세우는 기회일 수 있다.우리가 이번에도 어깨를 굽신거리게 된다면 또다시 힘없는 상대로 완전히 낙인찍히고 만다.또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우리의 주장을 완강히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시 핏발을 세우고 외쳐야만 한다.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한 양키여! 고우 홈”하라고. 우먼드림 컨텐츠팀 이혁상 nomad@womandream.com. *감정적 反美운동 도리어 손해. 주한미군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미군이 온지 어언 50년이다.옛날 한국전쟁전후,없이 살던 때엔 초콜릿과 사탕을 쥐어준 코 높은 양키들을 졸졸 따라다녔단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지만 동맹국으로서 젊은이들의 피를 뿌려가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지켜주었다.일부에서는 미국의 국익이 있기 때문에 치른 전쟁이고 분단 책임이 미국에 있으므로 실은 그 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좀 억지라고 본다.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 땅이 어떻게 됐을 것인가.지금 이만한 경제성장을 한 것은 미국이 도와줬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젠 우리도 좀 컸다는 것이다.물론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고 당당한 것은 좋다.SOFA 협상도 그런 점에서 다시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하지만 불평등 협상은 그것대로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잘해 나가면 된다. 일본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키나와기지를 둘러싸 평화시위를 벌였다.하지만 우리의 매향리는 어떤가.일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반미의 시퍼런 서슬로 이번 문제를 키우려고 안달이다.이건 우리 국익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결코 좋은 게 아니다.매향리 문제는 매향리 주민대표와 협상해 우리 정부가 좋은 방편을 찾으면 되고 한강 독극물 방류도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면 된다.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주둔군 협정도 재조정하면 되는 것이다.이게 순리적이고 말끔하다.하지만 감정적인 것만 두드러지고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끓다가 식는 악순환은 제발 보지 말았으면 싶다. 미국은 우방이다.밤낮 ‘물러가라 물러가라’ 데모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커지고 우리 자존을 회복한 만큼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무조건 냄비가 끓는다고 손을 대 냄비를 불에서 꺼내야 할까? 아니다.차분히 미국을 봐야 한다.주한미군을 봐야 한다.아직 휴전 상태인데다가 동북아의 향후 세력 균형을 위해서도 반드시 미군은 있어야 한다.우리에게 정녕 국익이 무엇인가를살피면서 주한미군,나아가 대미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뜨거워서는 어떤 것도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튜터라인 대표 홍 성 건 htil@chollian.net
  •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 상봉 준비에 들뜬 하루

    오는 15일 꿈에 그리던 북한땅을 밟을 이산가족 방문단에 선정된 100명의이산가족들은 가슴졸이며 기다렸던 ‘낭보’에 밤잠을 설쳤다.일요일인 6일에는 북한에 가져갈 선물을 고르며 들뜬 하루를 보냈다. 이들이 갖고갈 선물은 손목시계,속옷,한복,족보,과자,카메라,현금 등 다양했다.하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은 100명 모두 똑같았다.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과 함께 해방 직후 서울에 들어온 박영일씨(76·서울 양천구 목동)는 6일 북한에 있는 누나 혜준씨(78)와 동생 임준씨(64)에게 줄 첫번째 선물로 족보를 챙겼다. 박씨는 “재산을 모두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대한적십자사로부터 1,000달러 이내에서 선물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비싼 선물보다는북한에 있는 후손들에게 조상을 알려주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족보를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남동생 경희(60),여동생 경수씨(66)를 만날 임경옥씨(69·경남 김해시 외동)는 “50년전 헤어진 동생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밤잠을 설쳤다”면서“경희에게는 카메라를,경수에게는 한복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강성덕씨(72·여·대구시 달서구 진천동)는 평양에 사는 큰언니 순덕씨(75)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 6명의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강씨는 “남쪽에있는 손자들처럼 북한에 있는 언니의 손자들도 초코파이를 좋아할 것 같다”면서 “초코파이와 생전의 부모님 사진,달러, 의약품 등을 갖고 갈 계획”이라며 기뻐했다. 허리 통증으로 10일 전 입원한 김금지씨(70·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병원에서 방북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오빠를 만날 기회를 겨우 잡았는데 몸이 아파불안하다”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빠를 꼭 만나겠다”고 투병 의지를 불태웠다. 김씨는 오빠 어후씨(74)에게 줄 선물로 자녀의 결혼식과 자신의 환갑때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손목시계,손자들이 부른 노래 테이프 등을 준비하라고 간병중인 며느리에게 일렀다. 장정희씨(70·여·서울 양천구 신월7동)는 쌓였던 긴장이 풀리고 궂은 날씨가 이어져서인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몸살이 났다.코트와 쌍가락지,영양제 등을 준비한 장씨는 “고향에 가기 전까지동생들에게 줄 모시적삼을 꼭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부인 이옥녀씨(72)와 딸 현실씨(51)를 만날 김사용씨(7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가난 때문에 남들처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공공근로와 행상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김씨는 “아내와 딸에게 근사한 옷을 선물하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답답하다”면서 “남은 기간 곰곰이 생각해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방북단 탈락 26명…”다음엔” 희망 안버려 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이 확정된 지난 5일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지의 생사가 확인된 126명 가운데 최종명단에 끼지 못한 실향민들은 또다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선물보따리를 도로 풀었다. 우원형(64·禹遠亨·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뜬눈으로 지샌 뒤 6일 새벽경기도 파주시 수양사를 찾았다. 이번에도 북한에 살아 있는 여동생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을달래기 위해서다.아들 병희(丙熙·32)씨는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아버지께서는 126명의명단에 든 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면서 “여동생에게 줄 한복과 의약품도 준비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평남 신천 출신 강재필씨(74·여·전남 광주시 북구 인동)는 “북한에 사는조카들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의 생전 사진이라도 건네받으려 했다”면서 “100명이라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너무 좋은 일아니냐”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북한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분들 모두 한을 풀고 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야 이번에 못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장홍진(張洪珍·59·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씨는 “북한에 계신 누님을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다음 기회를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달러,약,옷가지 등 누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는데…”라고 섭섭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나보다 20∼30살이나 많은 분들이 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위안했다”면서 “다음에 방북단을 선정할때 탈락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얘기도 들리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北가족 확인하고도 못만나다니…”

    8·15 이산가족방문단 남측 최종 방문자 선정기준이 발표된 4일 서울 중구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실향민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대상자에 들지 못한 것을 항의하기 위한 실향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실향민들은 별관 2층에 있는 ‘이산가족찾기 신청접수처’로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에 포함됐는지 여부와 최종 명단의 발표시기 등을 물었다. 이산가족찾기 신청 접수처의 자원봉사자 조유정(趙有貞·22·여·적십자간호대학 2년)씨는 “근무 시작전인 오전 9시 이전부터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북에 자식을 두고온 한 할머니는 이날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이번방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훨씬 더 많은데 극소수에게만 수혜가 돌아가 속상하다”고 울먹였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안용덕(安龍德·78·경기도 고양시 상항동)씨는 “북에 아내와 형제,자식이 모두 있는데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하면 혹시 가족들이 북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상봉신청을 못했다”며 “이산가족 100명이 북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상봉신청을 하기 위해 적십자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민회 1층에 있는 이산가족통합센터는 이따금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접수하려는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을 뿐 비교적 한산했다.평소와 다름없는 10여명이 상봉자 선정 등을 전화로 문의해 왔다. 송한수기자 onekor@
  • 해방전후 경의선 기관사 이순복씨 “철마 다시 달리다니…”

    “끊겼던 철마(鐵馬)가 다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해방 전후까지 경의선 열차를 몰았던 노기관사 이순복(李順福·76·서울 도봉구 창동)씨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반세기 만에 경의선을 복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내 고향이야 경기도 연천이지만 열차를 타고 남과 북의 고향 땅에가고 싶은 실향민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면서 “남북의 동포들에게 신나는일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에서 신의주 사이의 경의선 철도는 1945년 9월 미·소 양군의 남북 주둔과 함께 운행이 공식 중단됐다.그러나 이씨에게는 서울역을 출발,개성을거쳐 좁쌀밭이 펼쳐져 있는 신막,사과향이 코를 찌르던 황주,말끔한 교복을입은 학생들이 인상적이었던 평양 거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2년 이상 기관사 보조원으로 일한 뒤 용산 철도원 양성소에서 3년간의 엄격한 과정을 마쳤다.42년 2월 20대 1의 경쟁률을뚫고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에 입사했다. 이씨는 열차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지급된 주머니 시계와 푸른 제복과 모자, 노란색 완장 등을 착용한모습이 멋져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기관사가 된 뒤 처음 배정받은 노선이 처녀 운행구간이던 경원선과 경의선이었다. 해방 직후 만주나 북에서 남쪽 고향을 찾아 열차 꼭대기도 마다않고올라탄 귀향민들을 싣고 내려올 때에는 ‘이제 나라를 찾았다’는 감격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이씨는 “해방 후 남북이 갈려 운행이 중단될 때만 해도그저 잠시 그러려니 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그 뒤 서울지방철도청 등에서 운전관리 업무 등을 맡아오다 83년 서울지방철도청장 등을 역임한 뒤 85년 은퇴했다. 당시 함께 경의선과 경원선을 몰았던 기관사들은 이제 고작 손가락에 꼽을정도만이 살아 남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러면서도 “기회만 닿는다면 당시 가깝게 지냈던 평양의 철도원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말도빼놓지 않았다. 김경운 송한수기자 kkwoon@
  • 실향민 ‘상속 소송’

    북한에 부인과 아들을 남겨둔 채 월남해 재혼한 뒤 자수성가한 실향민이 “남한의 아들이 가로챈 재산을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게 주겠다”며 소송을 내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에서 결혼해 3남2녀를 둔 S씨는 6·25 전쟁 중 장남과 차남을 데리고월남해 다시 결혼한 뒤 장남과 차남을 호적에 올렸고,새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두아들을 얻었다. S씨는 자수성가해 4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지만 남한에서 새 부인과 가정불화로 이혼소송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5월 노인성 치매에 걸렸다.이 과정에서 후처 소생의 아들(41)은 지난 9월 S씨의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S씨는 지난 5월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반혼수 상태에서 “재산의 반은 북한에서 어렵게 살고 있을 처자식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반은 장학사업 등에 쓰려고 했는데 새 부인과 그 자식들이 몽땅 가로챘다”며 월남한 동생을 특별대리인으로 지명해 서울지법에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을 냈다.하지만 S씨는 이달 초 86세의 나이로 숨졌다. S씨측소송대리인인 배금자(裵今子) 변호사는 “치매 상태에서 이뤄진 소유권 이전등기는 원천무효”라면서 “S씨의 재혼은 현행법상 금지된 중혼(重婚)이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 혼인무효소송을 내면 남쪽 아들이 가로챈 재산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측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北가족 확인’ 126명 환희·초조

    북쪽의 가족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남쪽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6명은 50년 동안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피붙이를 만난다는 기대에 설레면서도 ‘상봉자 1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북쪽의 친지가 모두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거나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실향민들은 대한적십자사에 거칠게 항의하는 등 가슴 아파했다. 28일 적십자사를 찾은 평북 사성군 중강면 출신 김확실(金確實·84·여·서울 성동구 응봉동)씨는 “부모님과 3남4녀의 형제 중 넷째 여동생만 살아있다”면서 “고향 친구들이 축하 전화를 걸어 ‘동생을 만나면 친지들이 살아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김씨는 “그동안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덧붙였다. 평북 철산군 봉천리가 고향인 이영찬(李永燦·86·인천시 남동구 구월2동)씨는 “1.4후퇴 때 고향에 두고 온 부인과 아들 딸을 50년만에 보게 된다는그 자체만으로도 꿈만 같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북에 남동생 2명이 생존해 있는 평북 평안군 평안면이 고향인 강보희씨(73·대전시 도마동)는 “명단이 발표된 뒤 저녁에 가족끼리 모여 ‘100명 안에들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고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함남 홍원 출신 염경빈씨(66·서울 도봉구 도봉동)는 “두 남동생과 여동생은 살아 있지만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확인하고 밥을 한 숟갈도 들지 못했다”고 흐느꼈다. 상봉 명단에 들지 못한 실향민들의 항의전화와 방문이 이어지자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대책본부 박성은(朴誠恩·44) 사업운영팀장은 직접 자료를 갖고나와 선정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적십자사를 찾은 개성 출신 장금옥씨(張金玉·79·여·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85년 이산가족 교환방문 때도 신청했었는데 뽑히지못하고 이번에도 명단에 들지 못했다”면서 “북에 있는 큰 아들(59)의 생사만이라도 꼭 확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평남 용강면이 고향인 이시걸(李時杰·65·경기도 안산시 와동)씨는 “가족확인이 된 사람 중에 우리 고향 사람이 있는지 보러 왔다”면서 “만나러 가는남쪽 사람에게 가족사진을 건네줘 북에 있는 가족에게 내가 살아있다는것만이라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실향민 이윤성씨가 운영하는 냉면집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는 28일 점심때 평상시보다 2배나 많은 200명 가량의 실향민들로 붐볐다.이성협(李性頰·75·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고향에 가보진 못해도 자유로운 서신왕래로친지들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내 핏줄 있나요” 문의전화 빗발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200명 가운데 북쪽의 가족의 생사가 확인된 138명의 명단이 발표된 27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는 실향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7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생사가 확인된 북쪽 가족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며 알려주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전화를 통해 북한에 아내 오상연씨(77)와 아들 김희종씨(54)가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한 평양 출신 김일선씨(80·부산시 사하구 당리)는 “지난 47년아내와 아들과 함께 월남,서울 상도동에서 살았으나 6·25때 토목기사라는이유로 다시 북쪽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했다”면서 “내가 북에 있다는 사실을 안 아내가 아들과 함께 북으로 찾아 왔으나 다시 만나지 못하고 지금까지헤어져 살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명단이 발표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송성수씨(70·경기도 고양시 화정동)는 “6·25가 터지기 전 육군 1사단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는바람에 고향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에 있던 부모,동생들과 헤어지게 됐다”면서 “남동생 셋과 여동생이 모두 살아 있어 만날 수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고향 평안도 대동군 시족면에 20대의 꽃다운 아내와 3살과 젖먹이였던 아들,딸을 남기고 온 최경일씨(76·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는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얌전하고 요리 솜씨가 좋았다”면서 “아들과 딸도 벌써50대 중년이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명단이 발표되자 항의전화도 많이 걸려왔다. 자원봉사자 김윤미씨(25·여)는 “‘60대나 70대 이산가족들은 북의 가족을만나게 되는데 80대인 나는 왜 안되느냐’는 고령 이산가족들이 눈물 어린전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치용씨(80·강원도 춘천시 석사동)는 적십자사에 전화를 걸어 “북에 아내와 아들·딸이 있는데 나이가 많아 이번 기회가 아니면 가족을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면서 “60,70대들도 많이 선정됐는데 80세인 내가 왜 빠진것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통일나비’ 새달20일 훨훨난다

    북한과 남한지역의 호랑나비 암수를 교접시킨 ‘통일 호랑나비’가 나비의고장인 전남 함평에서 곧 탄생한다. 21일 함평군에 따르면 지난달 북한과 인접한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민통선지역에서 호랑나비와 암끝검은표범나비,배추흰나비 등을 10마리씩 채집해 같은 종류의 함평산 수컷나비와 교접,각각 1,000∼1,500개의 알을 채란한 뒤부화에 성공했다. 함평군 곤충연구소 유리온실에서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 이들 나비 애벌레는 다음달 20일쯤 번데기 등의 변태과정을 거쳐 ‘통일 나비’로 화려한 날갯짓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군은 이들 나비를 대량 증식해 실향민들이 통일을 기원하는 각종 행사나,판문점 등지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북한을 향해 날리도록 할 계획이다. 군은 또 남북정상회담 답방이 이뤄지면 그 행사장에서도 통일 염원을 담은나비날리기 행사를 갖고 휴전선 비무장지대에도 방생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함평군 곤충연구소와 북한의 김일성대학 생물학과 간에 민간차원의 환경생태분야 교류협력을 추진하고,정부가 주관하는 비무장지대 생태관광자원화 및 생태보전을 위한 공동연구에도 적극 참여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산 호랑나비 유충이나 성충 채집이 현실적으로 어려워민통선지역 나비를 활용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크다”며 “나비를 통해 겨레의 염원인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李총리, 간부회의서 통일부 질책

    18일 아침에 열린 국무총리실 간부회의에서는 통일부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16일 북측이 보내온 200명의 명단을 언론에 공개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의전화 접수까지,준비 부족으로 우왕좌왕했다는 대한매일 등의 언론보도가집중 거론됐다. 이한동(李漢東)총리는 “신원 확인을 위해 애태우는 실향민들이 전화가 불통돼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이 총리는 이어 “국가 대사(大事)인 남북문제와 관련,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대비하라”고 단호하게 당부했다고 김덕봉(金德奉)공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회의에서는 공무원의 ‘주(株)테크’ 얘기도 나왔다.공무원의 재테크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공무와 관련된 부당행위는 엄단해야 한다는 데 결론이 모아졌다.이에 따라 우선 국무조정실 심사평가조정관실을 중심으로 실태파악에 나서기로 했다.차후 감사원,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보조를 맞춰나갈 계획이다. 한편 지난 1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는 이 총리 내외와 오찬을 함께했다.지난주 끝난 국회 대정부 질의를 무사히 마친 데 대한 격려 차원에서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취임 직후부터 터져나온 금융파업과 의료대란,축협통합 등 이른바 6대 대란을 대과(大過)없이 마무리한 것을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이자리에서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내 현안에 대한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운기자 jj@
  • 韓赤 이산가족 창구 이모저모

    북한이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보낸지 3일째인 18일에도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들른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이산가족들은 벌써 상봉이라도 한 듯 울음을 터뜨렸고,일부는 “상봉단 1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며 적십자사 직원들에게 매달렸다. ■변호사 박찬운(朴燦運·37·사시26회)씨는 국민학교 교사로서 월북했던 외삼촌 리길영씨(71)를 만나기 위해 상봉신청서를 작성한 뒤 “우리 집안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가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외가는 좌익,본가는 우익,처가는 월남자 가족”이라며 “집안의복잡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시에 합격하고도 검사 진출은 엄두도 못내고 변호사를 선택했으며,외삼촌이 오시면 자세한 사연을 물어 가족사를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국군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외삼촌은 월북했고충남 인민위원장이던 외할아버지는 국군에게 처형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춘자씨(72·여·경기도 이천군 율면)는 “이미 재혼해 남편을 볼 면목은 없지만 50년전헤어졌던 남편을 꼭한번 만나고 싶다”며 전 남편인 김희영씨(72)의 망부가(望婦歌)에 조심스럽게 화답했다. ■12남매중 셋째 오빠 림순응씨(65)의 생사를 확인한 영숙씨(5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오빠가 살아있기만 빌던 어머니는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오빠를 찾았다”며 “이제서야 오빠의 생사를 확인했는데 100명의 상봉단에 들지 못하면 어쩌냐”며 상봉이 이루어지길 간절히소망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무작정 적십자사를 찾거나 북측에서 보낸 200명의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이유를 따지기 위해 온 사람도 제법 많았다.이영준씨(78·서울 서대문구 천연동)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고향에보내 준다더니 왜 나를 명단에서 제외시켰느냐”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이산가족‘ 박사논문 준비 재미교포2세 김영란씨

    “마지막 분단국이란 오명을 깨려는 한민족의 의지를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실감합니다” 북한에서 보내온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들로 붐비는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구관 2층 민원실에서 한 젊은 여성이 서투른 한국말로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수첩에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미교포 2세김영란(Nan Kim·31)씨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이산가족의 개념과 월북가족의 생애사’를 쓰기 위해 지난 1월 한국을 찾았다. 김씨에게 남북정상회담과 후속 조치로 이루어지는 이산가족 상봉은 더없이좋은 기회가 됐다.김씨는 생생한 이산가족의 아픔을 듣고 자료를 수집하기위해 북한이 방문단 명단을 보낸 16일 적십자사로 달려왔고 이산가족들과 더가까워지기 위해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김씨는 지난 87년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해 프리랜서 기자 활동과 94년 뉴저지에 있는 ‘더 레코드(The Record)’지 기자 활동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를집중취재했다. “매년 광복절을 취재하면서 분단의 고통을 만났습니다.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고통을 전해주고도 싶었습니다” 김씨는 93년 북한의 핵문제로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최악으로 흐를 때 분단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복잡한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남한과 북한을 각기옹호하는 ‘분단된 교포사회’도 김씨에게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는 한많은 한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잊지 않았던 김씨는 95년버클리 대학원에 진학했고 문화인류학을 선택했다.분단의 고통과 이산가족의아픔,그중에서도 특히 월북가족들의 고통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산가족의 개념이나 월북자 가족과 월남자 가족들이 남북한 이념대립에서겪는 고통에 대한 연구가 현재까지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는 김씨는 “연좌제라는 기형적인 제도와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이들의 심리적 고통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월남자를 배신자라고 여겨왔던 북한의 태도 역시 이산가족 문제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왔다고 김씨는 분석한다. “오는 12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한민족의 한이 배어 있는 체계적인 논문을준비하겠다”고 말한 뒤 민원실 창구에서 서성이는 실향민 노인에게로 다가서는 김씨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이창구기자 window2@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동질성 회복 어떻게

    “남북이 하루빨리 이질감을 극복하지 않으면…”과거 남북한의 화해나 통일을 말할 때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전제를 내놓곤 했다.분단 55년만에 남북한은 다시 만나 함께 살기 힘들 만큼 이질적이 된 것일까.그러나‘6·15 공동선언’ 이후 국민들이 북한동포들에게 느끼던 이질감은 조금씩동질감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남북 사이 문화적 이질화의 실체는 어떤 것이고,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TV로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솜씨에 감탄했던 사람들이 적지않았다.그리고는 다음 순간 김위원장의 말씨가 우리 이웃에 사는 북한 출신 실향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적지않게 놀라기도 했다. 분단 이후 남북 사이의 언어가 심각하게 이질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곧’을 북한에서는 ‘인차’라고 한다든지,‘몸무게를 줄여야지’를 ‘살을 깎아야지’라고 하는 등 다른 표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렇다해도 서울 토박이와 경남·전남 토박이가 서로 만났을 때보다 결코 이해가 어렵지않다는 것을 김위원장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다양해진 언어생활은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특히 북한이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우리말로 고쳐쓰고 있는 것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표현하는 등 어색한 점도 없지않다지만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을 ‘돌간흙무덤’으로 부르는 등 일부 북한의 우리말고고학 용어들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남쪽학계에 수용되는 추세다. 남북의 다양성은 예술분야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남북예술교류가 시작되면 무용계 사람들은 북한 전통예술인들의 춤사위가 동구의 영향이 진하게느껴지는 데 놀랐다. 반대로 북한쪽에서는 남한의 춤사위에서 서구전통의 개입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냉전 시대라면 ‘이질감의 심화’로 비쳤을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바람직스러운 다양성’으로 해석된다. 생활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최근 북한의 가정을 방문했던 사람들에따르면 저녁식사를 할 때 아버지와 큰아들이 겸상을 하고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다른 상에 모여앉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오히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남쪽보다 북쪽이 더 큰 것 같았다고 전한다. 관혼상제에서도 제사 등의 형식은 달랐지만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민족 고유의 전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식생활에서도 이른바 밥공장을 이용해야하는 협동농장의 상황이 조금 다르고,남쪽에 조미료를 사용한 짙은 양념에 입맛이 길든 반면 북쪽은 순수 담백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다. 교육면에서 북한은 1945년부터 2년의 유치원 교육과 4년의 인민학교,6년의고등중학교 등 12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100% 문맹퇴치를 1990년에 달성했다.12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하거나,공장·농장에서 일하거나,군대에 입대하는 3개의 길이 열려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 이상 일하면 공장이나 농장에에서 일하는 사람도 직장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북한의 문맹퇴치율은 오히려 남한보다도높다.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남한과 북한의 높은 학력은 통일 이후동질성 회복에 큰 자산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문화적 이질감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 혹은 통합과정에서 그렇게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대신 어떤 종류이든 ‘균열’양상이 보인다면 그것은 이질감 보다는 남한 주민들의 북한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서도 통일 이후 동독주민들은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설움과 열등감을 맛보았다.서독주민들은 동독 출신과 이웃에 살게 됐을 때 공포심마저느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서독 주민의 긴밀한 교류가 오히려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장수현 부산외국어대교수는 “조선족과 북한난민에 대한 남한주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안하면 경제적·사회문화적 격차가 심각한 남북주민들이 만날 때 독일보다 훨씬 심각한 불신과 갈등이빚어질 것”이라면서 “따라서 단순한 문화의 이질감 극복이라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사설] 이산가족 상봉 차질없게

    북한 적십자회가 보내온 8·15 이산가족 상봉단 후보 200명 명단에 포함된남쪽 가족들의 생사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 과정에서 생이별반세기를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애절하고도 기구한 사연들이 단편적으로나마 소개되고 있다.분단이야말로 엄청난 민족적 비극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정상간에 모처럼 합의된 8·15 이산가족교환 방문은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성사돼야 한다. 남북 적십자는 상대방이 통보해온 명단 가운데 각각 100명씩을 대상자로 압축해 오는 26일 최종 상봉자 명단을 확정한다.북측이 보내 온 이산가족 상봉후보 명단을 정부가 공개한 것은 상봉단 선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남쪽 가족을 찾아내는 데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언론의협조로 남쪽에 사는 이산가족들을 공개리에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게 됐기때문이다.국민들도 남쪽 가족을 찾는 당국의 확인작업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양쪽이 통보한 명단중 생존이 확인된 사람이 17일100명을 이미 넘어섰다.따라서 탈락자에 대한 배려를 위해 남북이 전향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번 광복절 상봉단은 규모면에서 숫자가 적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 1세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마당이다.남쪽에 사는 60대 이상 고령자만 해도 69만여명에 이르고 있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가족 상봉의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다.또 국군포로나납북자 귀환 등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상응하는 북한의 성의 표시를 촉구하는 등 이런저런 훈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과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비록이번 방문단 교환은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한 ‘시범적 차원’이지만 머지않아 모든 실향민을 위한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15년간의 단절 끝에 이어질 이산가족 재회는 그 규모를 떠나 평화공존, 나아가 평화통일로 가는 노둣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새긴다면 정치권을 포함한 모든 관련 당사자들은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이산가족 문제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6일 북측 명단이 공개돼 이산가족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는데도 통일부 이산가족상담창구 등에는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관련자들의각성이 크게 요구된다.
  • 장충식 신임 韓赤총재 인터뷰

    지난 12일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선출된 장충식(張忠植) 단국대 이사장은 “남북이 민족화해라는 커다란 걸음을 시작하는 중요한 때에 인도적 차원의 교류를 담당할 적십자사의 총재라는 큰 일을 맡아 두려움이 앞선다”면서 “서두르지 않고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 신임 총재는 “이산가족들이 서로 안부라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면서 “이번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을 만나는 실향민은 100명이지만 서로 신뢰를 쌓는다면 곧 1,000명,1만명으로 늘 것”이라고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우선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우리 겨레가 ‘이산가족 교환·상봉’이라는 큰 사업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때에 능력에 부치는 중직을 맡게 돼 두려움이 앞섭니다.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100명의 실향민이 헤어진 북쪽의 친지를 만나게 돼 있지만너무 숫자가 적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100명에 불과하지만 일단 교류의 물꼬가 터지면 그 숫자는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습니다.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일입니다.북한은지난 수십년 동안 폐쇄적인 사회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이산가족 고향 방문등이 빨리 이뤄지면 좋겠지만 북쪽도 개방으로 인한 충격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북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당장 개방의 수위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동안 남북 체육회담 등에 많이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86년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 대표,89년 남북체육회담 수석대표,91년남북 단일 청소년축구단 단장 등을 지냈습니다.특히 남북 단일 청소년축구단을 이끌고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나갔던 감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약 40일동안 북쪽 사람들과 함께 지냈는데 헤어질 때 서로 눈시울을 붉히며 아쉬워했습니다.남이나 북이나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는 한 겨레라는 것을 진하게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친께서 독립운동을 하셔서 중국 땅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평북 용천에서 자랐습니다.남쪽으로내려온 뒤에 평안도 사투리를 쓰지않았지만 ‘고향 사람’들을 만나니 자연스럽게 고향 사투리가 튀어나오더군요.그래서인지 북쪽 사람들도 저를 참 좋아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요즘 우리가 북쪽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냐는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오히려 앞으로 더 많이 도와줘야합니다. 형제끼리 어려울 때 돕지 않으면 누가 돕겠습니까.어려울 때 도와주면서 생색을 내고 대가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지금 북한은 안팎으로몹시 어려운 상태입니다.우리가 도와야 합니다.앞으로 식량 지원 등 적십자가 주관하는 인도적 차원의 북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래야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지난 정권까지는 남북이 회담을 하면서도 서로 무리한 요구를 해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 어려웠습니다.이런 현상은 서로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앞으로는 서로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한국전쟁으로 남북은 서로 큰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이제 젊은이들에게 이 상처를들추는 교육보다는 한 겨레로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그리고 서로에 대해정확히 알 수 있는 ‘통일 교육’을 해야 합니다. ◆서울·평양 남북 적십자 사무소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계획 등이 있습니까.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는 힘든 단계입니다.이산가족 상봉 등 대북사업은 적십자사 혼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관련 부처와 많은 협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시급히 추진할 것은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 등 안부를 주고 받는 일입니다.저도 이산가족입니다.고향에 가 사촌 형제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하지만 서두른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적십자사 총재로서 가장 중점을 둘 사업은 무엇입니까. 아직 정식 취임 전이라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는 힘듭니다.거듭 말씀드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특히 북쪽 사람들을만나 본 제 경험으로는 정치색을 배제하면 같은 겨레라 금방 형제처럼 가까워집니다.적십자사는 정치색을 배제한 대북 지원 사업에 주력,북한이 문호를개방하는 시기가 앞당겨지도록 힘쓸 생각입니다.북한이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이산가족 교류 사업도 활성화될 것입니다. 전영우기자 yw
  • 방북 이산가족 선정 절차는 공개 않기로

    대한적십자사는 5일 북한 방문 이산가족 신청자 7만5,900명 가운데 방문단의 4배수인 400명을 컴퓨터로 추첨한다. 한적은 4일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선위원회 2차회의를 열어 ▲연령 ▲가족관계 ▲과거 신청 여부 등 세 가지 인선기준을 적용,추첨하기로 했다.그러나 북한 방문단 후보자 400명 명단은 비공개하기로 해이산가족 방문단 선정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한적 관계자는 “컴퓨터로 추첨하는 실향민 400명과 오는 16일 북측에 전달할 생사 및 주소확인용 후보자 200명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적은 북측이 16일 통보해 올 생사 및 주소확인용 200명 명단에서 남측 가족의 생존 사실이 100명을 초과해 확인될 경우 남측 이산가족에게는 8월15∼18일 북측 실향민 100명의 서울 방문 이후 재북 가족의 생존 사실을 개별 통보할 방침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애타는 실향민들 전화 폭주

    “내래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야요,꼭 좀 이산가족 상봉방문단에 넣어 주시라요” 이산가족 상봉 방문단 추첨을 이틀 앞둔 3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의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와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방문단에 꼭 넣어달라’는 전화가 수백여통씩 걸려왔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그동안 접수한 상봉 신청은 8만5,000여건.방문단 규모가 100명이므로 중복 신청이나 부실 기재자 등을 뺀다해도 경쟁률이 800대1을 넘는다. ‘고령에 시한부 인생이니 방문단에 포함시켜 달라’는 읍소형에서부터 ‘내 신청서가 제대로 접수가 됐느냐’‘접수번호를 가르쳐 달라’‘한번만 신청해도 추첨 대상에 포함되느냐’‘신청 마감이 언제냐’등의 전화도 하루 종일 걸려온다. 신청서를 접수하러 와서 신청서 작성을 못하거나 앉아서 눈물만 흘리는 실향민도 많다.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직원 이윤환(李潤煥·26)씨는 “‘죽기 전에 고향에꼭 가게 해달라’고 울먹이는 실향민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면서 “신청서에 자신의 애달픈 사연에 붉은색으로 밑줄을 긋거나 ‘신청서에는 상봉 희망자로 자식만 써넣었는데 조카 등 친척도 추가해 달라’고 하는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일부 실향민들은 방문단 추첨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며 하루 빨리 면회소가설치되기를 희망했다.함북 청진 출신 장진송(張辰松·81)씨는 “요즘은 고향땅에 가고 가족을 만나는 꿈을 꾼다”면서 “50년간 기다려왔는데 단 한번의 추첨으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91살된 실향민 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는 한근식씨는 적십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버지는 당장 내일이라도 고향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고 연장자로서 당연히 방문단에 뽑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면서 “컴퓨터 추첨은 재고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함남 흥남 출신 최영호(崔榮鎬·78)씨는 “하루에 100명씩 만나면 몇년이지나도 내 순서는 안 올 것”이라면서 “빨리 면회소를 설치해 많은 이산가족들이 동시에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영우기자 ywchun@
  • 이산가족 3박4일 상호방문, 남북적십자회담 합의서 서명

    남북 적십자대표단은 광복절인 오는 8월15일부터 18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실향민 100명을 포함한 151명 규모의 이산가족 방문단을 서울과 평양에 동시 교환키로 30일 합의했다. 또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전원을 9월 초에 송환하고,송환 즉시(북한 표현으로는 ‘직후’) 후속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를 협의,확정키로 했다. 남북 적십자회담 대표단은 이날 오후 북한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3차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합의서에 서명했다. 남북은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위해 7월 중 실향민 200명의 명단을 사전에상호 교환,생사 확인작업을 벌인 뒤 최종적으로 100명의 방문단을 선발키로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이산가족 방문단은 단장 1명,이산가족 100명,수행원 30명,기자단 20명 등 151명으로 구성된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의 관건인 면회소는 이르면 9월 중 판문점 또는 금강산에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면회소는 매월 이산가족 수백명의 흩어진 가족들을 찾아 생사 및 주소를 확인하는 한편 상봉 주선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양측은 9월 초 장기수 송환 즉시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면회소설치를 확정한다는 문구를 합의서에 명시했으며 문구 수정 과정에서 북측은장기수 송환‘직후’라는 표기를 주장한 반면 남측은 송환‘즉시’라는 용어를 쓰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아울러 남북은 9월 초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한다고 합의함으로써 남측은 비전향 장기수 중 북송을 희망하는 59명 전원을 북한으로 보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27,29일에 이어 세번째로 진행된 이번 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은 27일 ▲이산가족 상봉 방문단 교환 직전인 8월 초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이산가족면회소 추후 논의 등을 주장하다가 29일에는 ▲9월 초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차기 적십자회담서 이산가족 면회소 협의 타결로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남측도 면회소 8월 중 설치,국군포로 및 납북자문제 등에 유연한 자세를 보여최종 타결을 이끌어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남북 적십자회담/ 대상 선정 어떻게

    8·15 이산가족 선정방법 및 규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선정방법/ 지난달 28일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접수를 마감한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2만5,000여명이 신청했다.대한적십자사는 7월3일 컴퓨터 추첨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적십자사는 이 가운데 북한에 직계가족이 있는 70세 이상의 고령 1세대에게우선권을 준다.이어 나이와 출신지역,이산가족의 촌수,방북신청서 제출 횟수등을 종합해 선정한다. 80세 이상,70∼79세,60∼69세 등 나이에 따라 가중치가 부과되며,실향민의출신지역 인구비율도 고려된다.부부와 부모,자녀 등 직계가족을 찾는 사람에게도 우선권이 돌아간다. 88년 남북이산가족찾기,90년 민족대교류,92년 고령자 이산가족 고향방문,98년 이후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 신청자를 대상으로 신청 횟수와 대기기간에따라 가중치를 준다. 적십자사는 일단 방문단 인원의 2배수인 200명을 선정,북측에 통보할 예정이다. 북한 인민보안성이 통보받은 남측 이산가족의 북측 상봉대상자의 생사 여부와 상봉 가능성을 확인한 뒤우리측에 결과를 통보하면 적십자사가 방북단을최종 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는 데 7월 한달이 꼬박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산가족은 몇명/ 현재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남한 거주 이산가족은 이산 2~3세대를 포함해 766만7,000여명. 출신도별로는 황해도가 191만6,000여명으로 가장 많다. 이중 52세 이상의 이산가족 1세대는 12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60세 이상을 나이별로 보면 ●80세 이상 6만3,000여명 ●75~79세 7만9,000여명 ●70~74세 12만 1,000여명 ●65~69세 17만 6,000여명 ●60~64세 24만8,000여명이다. 이도운기자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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