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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무엇을 남겼나

    ‘8·15 상봉’은 분단의 상처와 냉전의 고통을 일깨웠다. 홍안의 소년은 백발로 돌아왔고 잠시 나갔다 온다던 남편을 기다리다 고희를 훌쩍 지난 새색시들의 모습들은 한반도의 치유안된 상처와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산가족 문제해결 물꼬 남북한은 이번 만남으로 이산가족 문제와인도적 문제의 해결 물꼬를 트게 됐다.9·10월 방문단 후속 교환,면회소 설치시기 및 장소 논의도 이어진다.비전향장기수 송환,조총련고향방문 행사도 열린다. 이번 상봉은 ‘6·15 공동선언’의 첫 구체화 조치란 점에서 무게를갖는다. 경협 및 사회문화 교류 등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상봉에 대한 북한언론의 신속하고 중립화된 보도,양측의 상호비방자제,관계자들의 유연해진 태도 등 일련의 상봉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남북 양측의 변화를 실감했다.이같이 달라진 모습과 보다 설득력있게 다가온 남북화해의 당위성은 남북화해 분위기와 교류협력의 추진력을 더할 전망이다.서로를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보이고 동족간의 신뢰와 민족의 정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됐다.냉전시대 쌓아놓았던 마음의 벽과 금기를 헐어내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것이다. ◆남은 과제 그러나 50년 만의 생이별끝에 3박4일간 만남은 이산가족들에겐 너무 짧았다.17일 밤 이산가족들은 평양과 서울에서 잠들 수없었다.“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아직도 이들 냉전의 희생자들에게 어떤 보장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상봉가족 제한으로 가족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했고 고향 집을찾아가거나 성묘를 할 수도 없었다.이산가족 1세대만도 123만명.방문단에 끼지 못한 고희와 팔순을 넘은 수십명의 실향민들은 북한에 있을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며 가족상황을 적은 대형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에서 호텔로,음식점에서 비원으로 방문단행렬 주변을 맴돌아 보는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산가족들이 이번 상봉에서 떨군 눈물과 한(恨)은 지구상 유일한 냉전의 희생자로 남아있는 한민족이 왜 과거의 금기와 유산을 넘어서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석우기자 swlee@
  • 금융권 ‘통일 마케팅’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통일이나 이산가족과 연계된 금융상품과 사은행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17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빛은행이 95년부터 시판한 ‘통일로미래로통장’은 최근 가입문의가 폭주하며 판매실적이 3,500억원을 돌파했다.이 상품은 지급이자의 1%를 통일염원성금으로 출연하며 가입고객에게는 0.1%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준다.20억원의 기금 가운데 18억원을 음악회,북한동포돕기 걷기대회,통일문학작품공모,독립유공자자녀장학금 등에 사용했다.9월30일이전 가입자에게는 추첨을 통해 금강산여행권과 도서상품권 등을 준다. 외환은행은 북한가족 상봉비용을 신용으로 대출받을 때 1,000만원까지 금리를 0.5%포인트 낮춰주고 있다.연말까지 운용한다.대출을 받으려면 호적등본 등 남북한 이산가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내야 한다.이달말까지 정기예금 가입고객에는 추첨으로 금강산여행권 등을준다. 한솔신용금고는 ‘한솔통일기원통장’ 수신고가 시판 17일만에 170억원을 넘었다.예금액의 0.1%포인트를 적립해 이산가족 상봉단 모두에게 축하금으로 30만원씩 지급했다.나머지 금액은 통일기금으로 출연한다. 교보생명은 실향민들의 고향방문자금을 지급하는 ‘두리하나 저축보험’을 판매하고 있다.가입후 1년째에는 고향방문자금 200만원,2년째부터는 매년 통일여행자금 200만원씩을 지급한다.보험가입자가 여행경비를 받지않을 때에는 만기에 8.5%의 금리를 적용,목돈을 지급한다. 국민카드는 다음달 말까지 대한적십자사에 통일지원금을 기부하는‘통일기원 민족사랑 큰잔치’를 연다.행사기간 10만원이상 이용한회원들 가운데 200명에게 금강산여행권을 제공한다.LG화재는 ‘통일보험료를 잡아라’라는 퀴즈이벤트를 이달 말까지 연다. 백문일기자 mip@
  • 한민족 하나로 남북 이산상봉/ 각계 표정

    “정말 기쁩니다.다음번엔 나도 고향땅을 밟았으면…” 상봉단에 포함되지 못한 대부분의 실향민들은 15일 TV를 통해 50년 만의 상봉을부러움 속에 지켜봤지만 남북관계 개선으로 우리들도 헤어진 가족을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이금례씨(75·여)는 이날 오전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북으로 떠나는 이산가족을 태운 버스를 보면서 “혹시 동향 사람이 있으면 북에 있는 금봉 언니(84)와 여동생 복삼(63)의 소식을 알아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이곳에 왔다”며울먹였다. ■함북 청진 출신의 황영숙씨(67·여·경기도 남양주시)는 “마치 내가 상봉의 당사자인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흥분된다”면서 “남북간왕래가 계속돼 나이 많은 실향민들이 다 고향 땅을 볼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한숨지었다. ■황해도 수안이 고향인 박영규씨(70·경기도 의정부시)는 TV로 이산가족 방북단의 출국 장면을 보며 “지금이라도 저 행렬에 끼여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다”면서 “9월과 10월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가능해진다니 나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 조창선씨(72·서울 관악구 봉천7동)는 “남북이 모여서 논의하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이번 일은 전 세계에 우리저력을 과시한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비전향 장기수 신인영씨(71)도 “내가 북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라며 흐뭇해했다. ■납북자들의 생환을 촉구하는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우영) 회원 7명은 이날 정오 서울 워커힐호텔 앞에서 ‘납북자 송환’이라고 적힌어깨띠를 두르고 “남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 우리는 왜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나요”라며 정부측에 납북자의 생사 확인과 함께 조속한 생환을 호소했다. ■가족들이 모두 TV 앞에 모여 앉아 함께 눈물을 지었다는 허유영씨(27·여·서울 서대문구 홍은3동)는 “이번에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은 TV를 보면서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라면서 “중국 대만과 같이 우리도 남과 북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박경식씨(53)는 “북한 방문단이 오는 장면을 보고 싶어 로비까지 내려와 TV를 시청했다”면서 “아픈환자지만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단
  • [오늘의 눈] 이념 녹여버린 혈육의 情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15일 이산가족 상봉장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 홀은 삽시간에 ‘눈물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남측 혈육들이 흘린 눈물은 홀을 가득 채우고 한반도 산하로 흘러넘쳤다.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은 실향민들,이제나 저네나 북녘 땅만 바라보는 1,000만 이산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 더한 까닭이다. 50여년 동안 차곡차곡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이들의 한(恨)은 이날차라리 통곡이 되어 전국에 메아리쳤고 분단 현실의 아픔을 어떤 필설보다 생생히 전달했다.이념과 냉전의 국제질서에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새삼 확인했던 역사의 장(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이산가족 상봉이 며칠동안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성 신파극’에 그쳐서는 안된다.역대 남북 정권들이 그랬듯 체제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더더욱 안될 것이다. 이들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50여년간 분단의 고통이 농축된,민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든 역사적 결정체란 의미다. 눈물을 눈물로 그치지 않고 대승적으로 승화·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반세기 전,남북한이 서로에게 겨눴던 분노와 증오가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면 상봉의 눈물과 그 감격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추진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20여 전 혹독한 냉전기에도 서슬퍼런 이념의 굴레를 녹이며 독일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엔진이 된 것이 바로 동서독의 이산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이날 TV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을 온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남북 화해와 통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15년 전역사적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의 체제와 정권유지를 위해 왜곡됐던 사실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기념비를 세웠던 남북 정상들이 이산가족은 물론 분단으로 고통받는 7,000만 겨레의 눈물마저 닦아줄 날을 기대해본다.[오 일 만 정치팀 기자 oilman@]
  • 남북離散 상봉/ 北혈육 맞는 南가족들

    북측 상봉단을 맞을 남측 이산가족과 평양에서 친척들을 만나게 될남측 방북단은 50년만의 상봉을 하루 앞둔 14일 각기 숙소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과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설레는 마음에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북에서 올 가족들을 기다리는 남측 이산가족들이 묵고 있는 올림픽파크텔의 5∼17층 객실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실향민들은 같은고향 사람이나 옆방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흥분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으며 준비한 선물을 꼼꼼히 챙겨보기도 했다. 채성신(蔡誠信·73)씨는 “긴장이 돼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첫방북단인 100명이 잘해야 이산가족 상봉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생각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객실 복도를 서성였다.채씨는 “방북단에 같은 고향인 영변 출신이 7명이나 된다”면서 “평양으로출발하기 전에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앞으로도 계속 모임을 갖기로했다”고 덧붙였다. 김원찬(金元燦·77)씨는 “1·4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같이 가자고울며 매달렸던 두 여동생이 떠오른다”면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 눈시울을 붉혔다. 북한 상봉단을 맞을 남쪽 가족들은 투숙 시간인 오후 3시 이전에 대부분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했다.지방에서 119구급차에 실려온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남측 상봉자중 최고령인 조원호씨(100·여)는 북에서 내려올 둘째아들 리종필씨(70)를 만나기 위해 충남 아산시 탕정면 자택에서 119구급차를 타고 오후 1시30분 호텔에 도착했다.조씨는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연신 “죽기 전에 종필이를 꼭 만나야 한다”는 말을 되뇌였다. 충북 청주에서 119구급차로 올라온 박성녀씨(88·여)도 큰 아들 여운봉씨(68)의 얼굴을 알아보겠느냐는 질문에 “50년을 기다려온 자식인데 어떻게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김일성대 교수로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아들 조주경(趙周璥·68)박사를 만날 어머니 신재순씨(89)는 “부처님에게 감사 드릴 뿐”이라면서 “곱던 아들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계속염주를 만졌다. 이창구 전영우기자 window2@[본사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 특별취재단 명단]◆단장 최홍운 편집국 부국장◆부단장 정종석 정치팀장,배성국 사회팀장◆정치팀 이목희·한종태·황성기·강동형·이석우차장,진경호·오일만·김상연·주현진기자◆경제팀 조현석기자◆디지털팀 육철수차장,김재천기자◆사회팀 황진선·오승호차장,전영우·이창구·안동환·이송하·조태성·윤창수기자◆전국팀 김인철차장,김용수·심재억기자◆국제팀 강충식기자◆문화팀 황수정·이순녀기자◆특집기획팀 정운현차장,최광숙·장택동기자◆체육팀 곽영완차장,류길상기자◆행정뉴스팀 박록삼기자◆사진팀 이종원차장,남상인·김명국·이호정·이영표기자◆뉴스피플팀 이춘규·김환용·이진아기자◆대표 e-mail jshwang@ 또는 mhlee@
  • 집중취재/ 남북교류 특별법 제정 시급

    *상속-경협등 법적분쟁땐 속수무책.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교류 확대에 따라 가족법과 남북교류협력법을보완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8·15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 화해분위기를 달구고 남북 교류의 활성화를 가져와 이산가족간의 중혼(重婚)과 상속문제,북한의부동산 문제와 남북 문화·경제교류 확대에 따른 이중계약·지적재산권 등 법적 분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법률 적용이나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가능성도 예상돼 법적 문제해결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족법과 관련해서는 ▲고령 이산가족의 중혼인정 여부와 효력 범위 ▲북한주민의 호적취득 여부와 절차 ▲북한 상속인의 상속권 인정여부와 상속대상과 범위 등이 주요 대상이다. 남북교류 증가에 따른 경협이나 관광 등을 통해 남북이 법률상의 갈등을 빚을 개연성도 있다.남쪽의 개인이나 회사가 북한 법정에서 재판받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북한법 전문가들은▲투자보장협정 ▲2중과세 방지제도 ▲결제제도 ▲지적재산권제도 ▲상사 등 민사분쟁 해결제도 ▲기업가들의 안전보장 제도 등에 대한법적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지난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통일정국에 대비,대통령령으로 ‘특수법령과’를 신설했다.동·서독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법률문제 등 외국사례연구와 남북한 법령을 비교하며‘통일법’을 준비해 오고 있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도 지난 94년부터 통일에 대비한 사법정책을 마련하고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따라 예상되는 법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북한법과 사법정책에 대한 연구작업을 계속해왔다. 법률 전문가들은 “법무부와 대법원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가족법과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연구를 이제는 공론화해 공감대를 모아 나가야할 때”라면서 “남북 이산가족과 경협과 관련해 예상치 못했던 법적 문제가 대두될 수 있으므로 ‘이산가족특별법’ 등 특별법 제정이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종락기자 jrlee@. *외국의 사례. 중국과 대만은 이미 70년대부터 통일에 대비,법적인 문제를 정비해왔다. 이들 국가는 우선 중혼문제에 대해 87년 ‘중혼에 있어서는 후혼(後婚)이 유효하고 부부가 각기 재혼한 경우에도 중혼한 날로부터 옛 혼인관계가 소멸한다’고 규정했다. 대만은 이 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87년 11월1일 이전에 중혼 또는 사실혼 관계가 있어도 간통죄 처벌을 면해주고 있다. 또 상속문제에 관해서도 대만과 중국은 ‘대륙지구와 대만지구 인민 관계법’에 따라 양국민이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했다. 중국은 상속재산이 중국에 있는 경우 대만거주 상속인은 본인과 대리인을 통해 상속에 참여할 수 있으며 분쟁이 발생하면 중국 인민법원에 제소할 수 있게 했다. 대만은 ‘대만지구와 대륙지구 주민관계 조례’를 통해 훨씬 상세하게 상속문제를 규정하고 있다.중국 주민의 상속권을 인정하되 상속개시 2년이내에 서면으로 상속의사를 표시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상속권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중국인이 대만내 재산을 상속할 경우에도 총액은 200만 대만달러를 초과할 수 없으며 부동산 상속은 불가능하다. 역시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재산권에 대해 ‘동독지역의 토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지주에게 반환하고 예외적으로 금전보상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막대한 보상비용으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종락기자. *남북 가족법 어떻게 다르나. 남북한 가족법은 남녀평등과 일부일처제,중혼(重婚) 금지 등 기본원칙에 큰 차이는 없다.그러나 남한은 개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반면,북한은 집단주의 원칙과 혁명적 이념에 기초하고있어 상속·이혼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혼과 이혼=남한은 금치산자(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어 법원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은 자)도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얻어 결혼할수 있지만 북한은 정신장애자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북한은 또 법적으로 만혼(晩婚)을 장려하고 있다.중혼의 경우 남한은 전혼(前婚)이 해소되면 후혼(後婚)을 인정하지만 북한은 극단적 일부일처제를강조,전혼이 해소되더라도 후혼은 무효로 규정하고 있다. 남한은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을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경솔한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있다. ◆부모자녀 관계=결혼외 자녀에 대해 남한은 부모의 인지(認知)절차를 거쳐야 결혼중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반면 북한은 결혼외 자녀도 결혼중 자녀와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계부·계모나 양부·양모와 법적 관계를 맺더라도 친부모와의 관계가 소멸되지 않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새 부모와 관계가 성립되면 친부모와의 관계가 소멸된다. ◆가족과 상속=북한은 지난 55년 호주·호적제도를 폐지하고 남한과다른 신분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남한은 피상속인의 재산 일체를 상속대상으로,채무도 포괄승계(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 승계)가원칙이다.반면 북한은 사실상 소비재에 한정된 개별재산만이 상속대상에 포함되며 채무의 한정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 *사법정책담당관 韓勝판사. “세밀한 부분까지 말할 수 없지만 남북관계의 진척 여부에 따라 호적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법부 차원에서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남북한 사법체계의 통합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한승(韓勝·사시 27회) 판사는 “이산가족의재결합이 현실화하면 복잡한 가족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미 형성된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이산가족 본인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방향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 판사는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라 야기될 가족법적 문제는 크게호적상의 문제,중혼(重婚)관계,상속관계,부모자녀관계가 있다”면서“이 가운데 특히 중혼관계와 상속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어지기 전 맺었던 전혼(前婚)의 인정 여부,전혼에서 태어난 2세들의 입적문제,북한 또는 남한 가족들에 대한 상속 가능 여부 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케이스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이들이 재결합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차분히 준비하면서 법적 문제를 대비해야겠지요” 그러면서도 한판사는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른 가족법적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전망했다. 대법원은 지난 90년대초부터 관련 학계,검찰 등과 함께 ‘특수제도연구위원회’를 구성,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사법통합 방안 등을 연구해왔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소송사례와 예상 쟁점.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이산가족의 거리는 한층 가까와졌지만 중혼(重婚)이나 상속,부동산 등 법적 문제들이 현실화돼 이들의 ‘완전한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이로 인한 소송도 잇따라 관련 법규 정비가 시급한 실정이다. ◆북의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다=북에 아내와 두 자녀를 남겨둔 채 6·25때 월남,자수성가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S씨(지난달 사망·당시 86세)는 지난 5월 “북에 남은 가족에게 물려줄 재산30억원을 남에서 재혼한 뒤 얻은 자식들이 가로챘다”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했다. 실향민 2세인 Y씨도 지난 2일 “어머니가 북에 있는 큰 형 몫으로 남겨둔 재산을 막내 동생이 가로챘다”며 막내 동생을 상대로 상속등기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살아있는 내 가족,호적에 올려달라=8·15 이산가족 북측 상봉자 명단을 통해 북에 있는 동생의 생존을 확인한 김재환씨(70)는 지난달 27일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했던 동생의 호적을 되살려 달라”며 서울가정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냈다. 호적상에 사망이나 실종선고된 월북 가족의 생존이 확인된 경우,각각 ‘호적정정 신청’과 ‘실종선고 취소신청’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관련 법 정비 시급=남에서 재혼한 사람이 북에 두고 온 아내의 호적을 되살리려면 현행 민법이 금지하고 있는 중혼에 해당된다.남북가족간 재산 상속이나 증여의 경우 남북을 넘나드는 재산반출·반입을 해야하지만 이에 대한 관련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북한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법조계 관계자들은“이산가족의 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행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록기자
  • 남쪽 7남매의 북 큰형맞이

    “누님이 지은 모시적삼 입고 고향서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꼬…” 50년만에 서울에서 만날 큰 형 권중국(權重國·70)씨를 맞을 준비를 한 13일 중호(重浩·56·서울 광진구 노유동)씨의 32평짜리 집은 7남매가 모여 선물 보따리를 꾸리느라 마치 잔칫집처럼 북적거렸다.서울에 사는 조카와 일가 친척 등 20여명이 하루 종일 집안을 가득 메웠다. 고향 경북 영주에 사는 순희(順姬·76·여),계희(桂姬·74·여),차희(且姬·66·여),중후(重厚·62),춘례(春禮·59·여)씨도 새벽 3시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중호씨 집 근처에 사는 막내 중수(重守·50·광진구 중곡동)씨까지 7남매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50년만에 만날 형 얘기로 꽃을 피웠다. 지난 49년 결혼해 신접 살림을 차리고 있던 중국씨는 이듬해 6·25가 나자 고향에서 인민군으로 징집돼 가족과 헤어지게 됐다.10년동안 수절하던 형수는 형제들의 권유로 개가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떴다. 7남매는 형님이 어떻게 변했을까,시누이는 어떤 여자일까 등 정담을 나누면서 선물 가방에 가족사진첩,목걸이,시계,오리털잠바,내의,양말 등을 정성스레 담았다.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남동생 중후씨가 “형님 환갑이 지난 10년전부터 형님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3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조금만 더 사셨으면 꿈에도 못 잊던 큰아들을 만날 수 있으셨을 텐데…”라고 말하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둘째 계희씨는 “50년만에 만나는 동생에게 내 손으로 지은 옷을 입히고 싶었다”며 손수 만든 하얀 모시적삼을 어루만졌다.계희씨는 “이 옷을 입고 부모님 산소에 술이라도 한 잔 따라야 할 텐데…”라면서 “형제가 50년 동안 갈라져 산 것도 억울한데 왜 고향에도 못 가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씨가 고향에서 손수 베껴 만든 소학(小學)책까지 꼼꼼히 챙기던 7남매는 “조카 부부와 손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인데 50년 동안쌓인 이산의 한을 어떻게 선물보따리 하나로 풀 수 있겠느냐”면서도 “뭐 하나라도 더 보낼 것이 없는지 챙겨봐야 하겠다”면서 근처 시장으로 향했다. 한편 평양으로 가족을 만나러 갈 실향민과 서울로 오는 가족을 맞을 남쪽 가족 모두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면서 짧은 여름밤을 하얗게새웠다. 전영우기자 ywchun@. *방북탈락 이산가족-실향민들 추가상봉 소식에 '환호'. “우리도 갈 수 있다니 정말이냐” “정말 고향 방문이 가능하냐”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방북 언론사 사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산가족상봉이 9,10월에도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는 소식이 알려진 13일 밤 ‘8.15 방북단’에서 탈락한 이산가족들은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일 안에 북의 가족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8.15 상봉 명단’에 포함됐으나 109세의 노모를 만나는 장이윤(張二允·72)씨에게 순위를 양보했던 우원형(65·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장옹에게 양보할 때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로부터 ‘다음번 이산가족상봉에는 1명이 가더라도 최우선적으로 포함시키겠다’는 말을들었는데 이처럼 빨리 갈 수 있게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기뻐했다. 6·25때 고향 충남 청양에서 의용군으로 징집돼 소식이 끊긴 셋째형 이상두씨(68)의 생존사실을 이번 명단 교환 때 확인한 상기(相起·60·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씨는 “탈락 소식을 들었을 때 누이와 남동생과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서로 위로했지만 섭섭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면서 “다음번에형을 꼭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다려야겠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황해도 평산군이 고향인 정순용(鄭順溶·61·여·강원도 춘천시 동면)씨는 “최종 명단에서 탈락해 절망했는데 한가닥 희망을 가지게돼 기쁘기 그지 없다”면서 “북한에서 우리 네자매를 특히 귀여워해 주신 고모와 삼촌에게 남쪽에서 태어난 손아래 여동생 3명을 꼭 소개시키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처음부터 명단에 들지 못했던 실향민들도 추가적인 이산가족상봉 소식을 반겼다. 부인 장정희(張貞姬·71·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는 이번에 최종명단에 들어 북으로 두 명의 여동생을 만나러 가지만 자신은 명단에서 탈락한 평양 출신 김학구(金學九·82)씨는 “북에 살아 있는 일흔다섯살이 됐을 누이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심장이 안 좋지만 꼭 건강을 회복해 고향땅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고희를 맞은 이종권씨(70·인천시 남동구 구월동)는 “친지끼리 모여 고향 황해도 해주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면서 “고향에서 한번 더 고희연을 갖고 싶다”고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전영우기자
  • 방송사 ‘이산상봉·광복절’ 특집프로 다채

    오는 15일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55주년 광복절을 맞아 각 방송사마다 풍성한 특집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산가족 상봉 KBS,MBC,SBS는 14∼18일 수시로 뉴스특보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생중계한다. 생방송 외에 KBS는 15∼17일 특별 기획 ‘북녘땅 고향은 지금’을 마련했다.송도원 해수욕장,성불사,함흥냉면 등 조선중앙TV가 촬영한 원산,사리원,함흥의 명승지와 별미 등을 소개하고 각 지역 출신 실향민을 초대해 이야기를나눈다.또 이산가족 상봉을 총정리하는 ‘이산가족 교환방문 3박4일의 표정’(18일 밤10시)을 방송한다. MBC는 가수 현미와 코미디언 남보원이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과 누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동행 취재한 ‘현미 남보원의 이산가족 상봉’(14일밤11시5분)을 방송한다. 또 남북의 대중문화와 유행,패션 등의 비교를 통해 남북한 생활상의 변화를살펴보는 ‘서울 50년,평양 50년’(16일 오후7시25분),상봉을 앞둔 이산가족의 기쁨과 설렘을 담은 ‘그후 50년 어머니,내일 뵙겠습니다’(14일오후5시45분)를 내보낸다. SBS는 월북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조명한 ‘묻혀진 반세기의 그리움-월북가족’(12일 밤10시50분),남북 이산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뒷얘기를 듣는 ‘반세기 만의 망향가’(14일 밤12시5분)등을 방송한다. ■55주년 광복절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세 편의 다큐멘터리가 눈에 띈다.KBS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이끌어냈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완결편인 ‘종군위안부 7년간의 기록-숨결’(13일 오후8시)과 미국 PBS가 제작한 한국인 종군위안부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침묵의 소리’(14일 밤11시30분)를 준비했다. EBS는 서울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통해우리나라의 뼈아픈 현대사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어느 일본군 위안부의 잃어버린 55년’(15일 오후8시)을 방영한다. 이밖에 KBS는 백범의 통일관을 알아 보는 ‘발굴 스티코프의 비밀수첩,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12일 오후8시),연해주에 사는 한민족의 모습을 담은 ‘연해주에서 만난 4개국 한민족’(15일 오전11시)를 방송한다. MBC는 20여년 동안 한국 정치범을 도운 일본 가즈꼬 여사의 이야기를 다룬‘가즈꼬 여사는 70에 한국을 보았다-한·일 인권의 가교’(14일 오전11시5분),일제 당시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던 ‘선감원’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고발한 드라마 ‘선감도’(15일 밤10시5분)를 방영한다. EBS는 일본 오사카시에서 일고 있는 재일 민족학급의 풀뿌리 민족운동을 소개한 ‘섬나라 속의 섬-재일 민족학급’(14일 오후8시),흥사단 국토탐험대어린이들과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본 어린이 다큐멘터리 ‘특집 난할 수 있어요’(15일 오후5시50분)등을 준비했다. ■라디오 특집 KBS 1라디오는 15일 오전 7시15분 ‘안녕하십니까 김종찬입니다’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와 문제점,앞으로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본다.EBS는 6·25때 헤어진 어머니에게 50년간 매일 편지를 써온 이창남씨의 사연 등을 다룬 ‘만남’(14일 오전11시)을 방송한다. 장택동기자
  • 독자의 소리/ 8·15 상봉 실향민 결핵약 선물 피했으면

    언론보도를 보면 이번 8·15상봉을 앞둔 실향민들은 가족을 만날 기대에 밤잠까지 설치고 있으며 북쪽의 가족들을 위해 생활에 도움이 될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있다.지금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의약품이 부족하다고한다.특히 결핵약의 부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많은 국내외 구호단체가우선 지원품목으로 정해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상봉을 앞둔 일부 실향민들이 선물로 결핵약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핵에 대해 잘 알고있는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조언하고자 한다. 결핵은 만성전염성 질환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처방으로 최소한 6개월 동안의 규칙적인 투약기간이 필요하며,치료중 중단하거나 불규칙적으로 치료할 경우 약제 내성이 생겨 치료가 더욱 어려워진다.초기치료에 실패해 재치료를 받을 때는 치료기간도 길어질 뿐만 아니라 치료 성공률도 높지 않으므로 처음에 잘 치료해야 한다.이러한 질병에 대한 약을 정확한 처방없이 선물처럼 준다면 약제에 대한 내성만 갖게 돼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따라서 결핵약품 및 항생제 계통의 약품에 대해서는 좀더 체계적인 통로를 이용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김성광[서울 송파구 풍납동]
  • [대한시론] 대인지뢰 금지조약과 경의선 복원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국제법] 남북정상회담 이후 6·15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남북한장관급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등 남북관계는 바야흐로 화해협력의 시대로 줄달음질치고 있다.더욱이 지난 7월 31일 남북한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된 구체적 실천조치 중에는 서울∼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철도를 복원시키는 계획이 포함돼 있어 가슴을 더욱 설레게 한다.경의선에 얽힌 사연을 가진 실향민들은 이제 멈추었던 철마를 다시 타고 고향마을까지 한달음에 내달리고 싶은 마음 간절할 것이다. 그러나 오는 29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되는 대로 구체화될 것이라는 경의선철도 복원사업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중 가장 큰 장애물이 지뢰제거작업이다.지뢰 제거비용은 물론이고 제거의기술적 어려움이 보통 아니다.그러나 남북 쌍방은 철도복원을 위해 이렇게지뢰제거에 협력하자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비무장지대의 다른 지역에경쟁적으로 계속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그러므로 향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이용에는 엄청난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이 계속 따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 쌍방이 일명 ‘오타와조약’이라고 일컫는 대인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대인지뢰금지조약이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인지뢰금지조약이란 대인지뢰의 사용·비축·생산·이전의 금지 및 파기의 합의이며,1997년 12월 3일 서명,1998년 3월 발효했다.현재 미국 러시아 중국 남북한을제외한 137개국이 서명하고,비준한 나라는 91개국에 달한다.현재 전세계 64개국에는 약 1억1,000만개의 지뢰가 매설돼 있으며 이 지뢰로 인해 전투요원들보다 매달 무고한 2,000명의 민간인이 이 순간에도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고 있다.또 그 피해자들은 정부당국으로부터 피해방지 및 구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인도적인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특히 캄보디아를 비롯한 분쟁지역에서 지뢰피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도 국방부 국감자료에 따르면,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지난 1992부터 1998년 9월까지 6년동안 모두 48건의지뢰사고에 총 41명 사망,46명의 부상이 있었다.그 중 군인사망은 25명,부상은 31명이고,민간인 사망 비율이 36%였다.현재 비무장지대에는 한국전쟁 이후 아직도 매설여부가 판단되지 않은미확인 지뢰지대가 20여 만평에 달하고,탐지 불가능한 대인지뢰도 약 100만발 정도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매설하는데는 개당 3∼30달러에 불과한 대인지뢰가 제거하는데는 개당 300∼1,000달러가 필요해 현재 한반도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데는 통일 이후 총 30억∼10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또한 제거방법이 땅을 갈아엎는 게 유일한 방법으로 이에 따르는 환경손실과 인명손실은 감히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따라서 비무장지대는 통일이후에도 ‘죽음의 벨트’로 수십년간 남을 것이라고 한다.동서독의 경우에도 통일이후 예상치 않은 엄청난 지뢰 제거비용이 통일비용을 누증시켰다. 한국정부는 북한군의 전차부대 남침을 지연시키고,한반도에서는 비무장지대에만 지뢰가 매설되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없다는 점을 표면으로 내세워 대인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그러나 북한의 대전차부대 방지무기는 대전차지뢰이지 대인지뢰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걸프전시 미군사령관 슈워츠코프와 전 한미연합군사령관을 비롯한 군사전문가들도 지뢰가 군사력의 억지보다는 연합군의 기동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침지연 논리에 반박했다.더구나 남북이 대인지뢰금지조약에 현재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대인지뢰를제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남북한은 가입후 최소한 10년 6개월이 지나야 대인지뢰 제거의무를 진다.또 이 가입은 남한만 단독 가입하자는 것이 아니고남북 쌍방이 동시에 가입하자는 것이다.그래서 남북이 경의선철도 복원사업을 위한 지뢰제거 협력을 하는 계기로 쌍방이 대인지뢰금지조약에 동시에 가입해 지뢰제거 공동작업을 하는 것은 향후 계속적인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과 남북한의 실질적인 군축협력을 위해 매우 유익할 것이다.
  • [네티즌 이슈] 주한미군과 미국

    *더이상 굽신거리지 말자 나의 공식적인 출생지는 ‘서울시 중구’이지만 사실 처음 세상 빛을 맞이한 곳은 동두천 외가에서였다.실향민이셨던 외조부모님께서는 그래도 북녘땅과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두실 작정이셨는지 경의선 철도가 눈앞에 보이는동두천땅에 터를 잡으셨을 것이다.어릴 때 동두천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뛰놀았지만 절대로 갈수 없었던 데가 있었다.바로 밤이면 조악한 영어 간판과 색색의 꼬마전구가 켜지고 코 큰 양키들이 넘치던 곳이었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흘렀지만 기지촌은 여전하고 양키들의 폭력과 멸시가횡행하며 이따금 우리의 누이들이 죽어 나가는 곳.최근에는 한강의 독극물방류사건에다 매향리 사태까지 불거졌다.현재 진통을 거듭하는 SOFA 개정협상이 큰 주목을 끄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7월 말 동두천시의 소요록페스티발도 그런 경우다.한데 이제 반미 감정이 그런 것으로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자 보수언론과 대통령도 국익을내세우며 국민들의 분통을 잠재우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반미’가 아닌 ‘평등’관계의 회복이다.또 그 ‘반미’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과거의 막막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이다.이런데도 미국의 행동만 트집잡으면 보수세력은 용공이니,근시안적이니,감정적이니하면서 호도하는 데 혈안이다. 현재 한창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SOFA.하지만 그 끝은 그리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오히려 미국은 남북 해빙 무드에 딴지를 걸든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더욱 베팅하고 싶어 안달이다.또 여전히 만만한 상대를 대하듯 거드럼을 피우고 있다.때문에 이번 SOFA 협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자기 점검의 계기이며 동시에 자존을 세우는 기회일 수 있다.우리가 이번에도 어깨를 굽신거리게 된다면 또다시 힘없는 상대로 완전히 낙인찍히고 만다.또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우리의 주장을 완강히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시 핏발을 세우고 외쳐야만 한다.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한 양키여! 고우 홈”하라고. 우먼드림 컨텐츠팀 이혁상 nomad@womandream.com. *감정적 反美운동 도리어 손해. 주한미군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미군이 온지 어언 50년이다.옛날 한국전쟁전후,없이 살던 때엔 초콜릿과 사탕을 쥐어준 코 높은 양키들을 졸졸 따라다녔단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지만 동맹국으로서 젊은이들의 피를 뿌려가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지켜주었다.일부에서는 미국의 국익이 있기 때문에 치른 전쟁이고 분단 책임이 미국에 있으므로 실은 그 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좀 억지라고 본다.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 땅이 어떻게 됐을 것인가.지금 이만한 경제성장을 한 것은 미국이 도와줬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젠 우리도 좀 컸다는 것이다.물론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고 당당한 것은 좋다.SOFA 협상도 그런 점에서 다시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하지만 불평등 협상은 그것대로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잘해 나가면 된다. 일본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키나와기지를 둘러싸 평화시위를 벌였다.하지만 우리의 매향리는 어떤가.일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반미의 시퍼런 서슬로 이번 문제를 키우려고 안달이다.이건 우리 국익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결코 좋은 게 아니다.매향리 문제는 매향리 주민대표와 협상해 우리 정부가 좋은 방편을 찾으면 되고 한강 독극물 방류도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면 된다.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주둔군 협정도 재조정하면 되는 것이다.이게 순리적이고 말끔하다.하지만 감정적인 것만 두드러지고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끓다가 식는 악순환은 제발 보지 말았으면 싶다. 미국은 우방이다.밤낮 ‘물러가라 물러가라’ 데모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커지고 우리 자존을 회복한 만큼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무조건 냄비가 끓는다고 손을 대 냄비를 불에서 꺼내야 할까? 아니다.차분히 미국을 봐야 한다.주한미군을 봐야 한다.아직 휴전 상태인데다가 동북아의 향후 세력 균형을 위해서도 반드시 미군은 있어야 한다.우리에게 정녕 국익이 무엇인가를살피면서 주한미군,나아가 대미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뜨거워서는 어떤 것도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튜터라인 대표 홍 성 건 htil@chollian.net
  •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 상봉 준비에 들뜬 하루

    오는 15일 꿈에 그리던 북한땅을 밟을 이산가족 방문단에 선정된 100명의이산가족들은 가슴졸이며 기다렸던 ‘낭보’에 밤잠을 설쳤다.일요일인 6일에는 북한에 가져갈 선물을 고르며 들뜬 하루를 보냈다. 이들이 갖고갈 선물은 손목시계,속옷,한복,족보,과자,카메라,현금 등 다양했다.하지만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과 설렘은 100명 모두 똑같았다. 광복군 출신으로 김구 선생과 함께 해방 직후 서울에 들어온 박영일씨(76·서울 양천구 목동)는 6일 북한에 있는 누나 혜준씨(78)와 동생 임준씨(64)에게 줄 첫번째 선물로 족보를 챙겼다. 박씨는 “재산을 모두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대한적십자사로부터 1,000달러 이내에서 선물을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비싼 선물보다는북한에 있는 후손들에게 조상을 알려주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족보를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남동생 경희(60),여동생 경수씨(66)를 만날 임경옥씨(69·경남 김해시 외동)는 “50년전 헤어진 동생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밤잠을 설쳤다”면서“경희에게는 카메라를,경수에게는 한복을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강성덕씨(72·여·대구시 달서구 진천동)는 평양에 사는 큰언니 순덕씨(75)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 6명의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강씨는 “남쪽에있는 손자들처럼 북한에 있는 언니의 손자들도 초코파이를 좋아할 것 같다”면서 “초코파이와 생전의 부모님 사진,달러, 의약품 등을 갖고 갈 계획”이라며 기뻐했다. 허리 통증으로 10일 전 입원한 김금지씨(70·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병원에서 방북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50년 넘게 기다려온 오빠를 만날 기회를 겨우 잡았는데 몸이 아파불안하다”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빠를 꼭 만나겠다”고 투병 의지를 불태웠다. 김씨는 오빠 어후씨(74)에게 줄 선물로 자녀의 결혼식과 자신의 환갑때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손목시계,손자들이 부른 노래 테이프 등을 준비하라고 간병중인 며느리에게 일렀다. 장정희씨(70·여·서울 양천구 신월7동)는 쌓였던 긴장이 풀리고 궂은 날씨가 이어져서인지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몸살이 났다.코트와 쌍가락지,영양제 등을 준비한 장씨는 “고향에 가기 전까지동생들에게 줄 모시적삼을 꼭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게 웃었다. 부인 이옥녀씨(72)와 딸 현실씨(51)를 만날 김사용씨(7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가난 때문에 남들처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공공근로와 행상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김씨는 “아내와 딸에게 근사한 옷을 선물하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답답하다”면서 “남은 기간 곰곰이 생각해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방북단 탈락 26명…”다음엔” 희망 안버려 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이 확정된 지난 5일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지의 생사가 확인된 126명 가운데 최종명단에 끼지 못한 실향민들은 또다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선물보따리를 도로 풀었다. 우원형(64·禹遠亨·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뜬눈으로 지샌 뒤 6일 새벽경기도 파주시 수양사를 찾았다. 이번에도 북한에 살아 있는 여동생을 만날 수 없는 슬픔을달래기 위해서다.아들 병희(丙熙·32)씨는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아버지께서는 126명의명단에 든 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면서 “여동생에게 줄 한복과 의약품도 준비하셨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평남 신천 출신 강재필씨(74·여·전남 광주시 북구 인동)는 “북한에 사는조카들을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과 오빠의 생전 사진이라도 건네받으려 했다”면서 “100명이라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너무 좋은 일아니냐”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북한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분들 모두 한을 풀고 왔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야 이번에 못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개풍군이 고향인 장홍진(張洪珍·59·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씨는 “북한에 계신 누님을 만날 날을 손꼽으며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다음 기회를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달러,약,옷가지 등 누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는데…”라고 섭섭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나보다 20∼30살이나 많은 분들이 주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옳다고 위안했다”면서 “다음에 방북단을 선정할때 탈락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는 얘기도 들리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北가족 확인하고도 못만나다니…”

    8·15 이산가족방문단 남측 최종 방문자 선정기준이 발표된 4일 서울 중구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실향민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대상자에 들지 못한 것을 항의하기 위한 실향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실향민들은 별관 2층에 있는 ‘이산가족찾기 신청접수처’로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이산가족 방북단 100명에 포함됐는지 여부와 최종 명단의 발표시기 등을 물었다. 이산가족찾기 신청 접수처의 자원봉사자 조유정(趙有貞·22·여·적십자간호대학 2년)씨는 “근무 시작전인 오전 9시 이전부터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북에 자식을 두고온 한 할머니는 이날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이번방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이 훨씬 더 많은데 극소수에게만 수혜가 돌아가 속상하다”고 울먹였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안용덕(安龍德·78·경기도 고양시 상항동)씨는 “북에 아내와 형제,자식이 모두 있는데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하면 혹시 가족들이 북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상봉신청을 못했다”며 “이산가족 100명이 북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상봉신청을 하기 위해 적십자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민회 1층에 있는 이산가족통합센터는 이따금 이산가족상봉 신청서를 접수하려는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을 뿐 비교적 한산했다.평소와 다름없는 10여명이 상봉자 선정 등을 전화로 문의해 왔다. 송한수기자 onekor@
  • 해방전후 경의선 기관사 이순복씨 “철마 다시 달리다니…”

    “끊겼던 철마(鐵馬)가 다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해방 전후까지 경의선 열차를 몰았던 노기관사 이순복(李順福·76·서울 도봉구 창동)씨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반세기 만에 경의선을 복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내 고향이야 경기도 연천이지만 열차를 타고 남과 북의 고향 땅에가고 싶은 실향민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면서 “남북의 동포들에게 신나는일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에서 신의주 사이의 경의선 철도는 1945년 9월 미·소 양군의 남북 주둔과 함께 운행이 공식 중단됐다.그러나 이씨에게는 서울역을 출발,개성을거쳐 좁쌀밭이 펼쳐져 있는 신막,사과향이 코를 찌르던 황주,말끔한 교복을입은 학생들이 인상적이었던 평양 거리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2년 이상 기관사 보조원으로 일한 뒤 용산 철도원 양성소에서 3년간의 엄격한 과정을 마쳤다.42년 2월 20대 1의 경쟁률을뚫고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에 입사했다. 이씨는 열차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지급된 주머니 시계와 푸른 제복과 모자, 노란색 완장 등을 착용한모습이 멋져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기관사가 된 뒤 처음 배정받은 노선이 처녀 운행구간이던 경원선과 경의선이었다. 해방 직후 만주나 북에서 남쪽 고향을 찾아 열차 꼭대기도 마다않고올라탄 귀향민들을 싣고 내려올 때에는 ‘이제 나라를 찾았다’는 감격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이씨는 “해방 후 남북이 갈려 운행이 중단될 때만 해도그저 잠시 그러려니 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그 뒤 서울지방철도청 등에서 운전관리 업무 등을 맡아오다 83년 서울지방철도청장 등을 역임한 뒤 85년 은퇴했다. 당시 함께 경의선과 경원선을 몰았던 기관사들은 이제 고작 손가락에 꼽을정도만이 살아 남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러면서도 “기회만 닿는다면 당시 가깝게 지냈던 평양의 철도원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으면 좋겠다”는 말도빼놓지 않았다. 김경운 송한수기자 kkwoon@
  • 실향민 ‘상속 소송’

    북한에 부인과 아들을 남겨둔 채 월남해 재혼한 뒤 자수성가한 실향민이 “남한의 아들이 가로챈 재산을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게 주겠다”며 소송을 내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에서 결혼해 3남2녀를 둔 S씨는 6·25 전쟁 중 장남과 차남을 데리고월남해 다시 결혼한 뒤 장남과 차남을 호적에 올렸고,새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두아들을 얻었다. S씨는 자수성가해 4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지만 남한에서 새 부인과 가정불화로 이혼소송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5월 노인성 치매에 걸렸다.이 과정에서 후처 소생의 아들(41)은 지난 9월 S씨의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S씨는 지난 5월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반혼수 상태에서 “재산의 반은 북한에서 어렵게 살고 있을 처자식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반은 장학사업 등에 쓰려고 했는데 새 부인과 그 자식들이 몽땅 가로챘다”며 월남한 동생을 특별대리인으로 지명해 서울지법에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청구 소송을 냈다.하지만 S씨는 이달 초 86세의 나이로 숨졌다. S씨측소송대리인인 배금자(裵今子) 변호사는 “치매 상태에서 이뤄진 소유권 이전등기는 원천무효”라면서 “S씨의 재혼은 현행법상 금지된 중혼(重婚)이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 혼인무효소송을 내면 남쪽 아들이 가로챈 재산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측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
  • ‘北가족 확인’ 126명 환희·초조

    북쪽의 가족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남쪽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6명은 50년 동안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피붙이를 만난다는 기대에 설레면서도 ‘상봉자 1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북쪽의 친지가 모두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거나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한 실향민들은 대한적십자사에 거칠게 항의하는 등 가슴 아파했다. 28일 적십자사를 찾은 평북 사성군 중강면 출신 김확실(金確實·84·여·서울 성동구 응봉동)씨는 “부모님과 3남4녀의 형제 중 넷째 여동생만 살아있다”면서 “고향 친구들이 축하 전화를 걸어 ‘동생을 만나면 친지들이 살아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김씨는 “그동안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덧붙였다. 평북 철산군 봉천리가 고향인 이영찬(李永燦·86·인천시 남동구 구월2동)씨는 “1.4후퇴 때 고향에 두고 온 부인과 아들 딸을 50년만에 보게 된다는그 자체만으로도 꿈만 같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북에 남동생 2명이 생존해 있는 평북 평안군 평안면이 고향인 강보희씨(73·대전시 도마동)는 “명단이 발표된 뒤 저녁에 가족끼리 모여 ‘100명 안에들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고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함남 홍원 출신 염경빈씨(66·서울 도봉구 도봉동)는 “두 남동생과 여동생은 살아 있지만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확인하고 밥을 한 숟갈도 들지 못했다”고 흐느꼈다. 상봉 명단에 들지 못한 실향민들의 항의전화와 방문이 이어지자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대책본부 박성은(朴誠恩·44) 사업운영팀장은 직접 자료를 갖고나와 선정 과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적십자사를 찾은 개성 출신 장금옥씨(張金玉·79·여·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85년 이산가족 교환방문 때도 신청했었는데 뽑히지못하고 이번에도 명단에 들지 못했다”면서 “북에 있는 큰 아들(59)의 생사만이라도 꼭 확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평남 용강면이 고향인 이시걸(李時杰·65·경기도 안산시 와동)씨는 “가족확인이 된 사람 중에 우리 고향 사람이 있는지 보러 왔다”면서 “만나러 가는남쪽 사람에게 가족사진을 건네줘 북에 있는 가족에게 내가 살아있다는것만이라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실향민 이윤성씨가 운영하는 냉면집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는 28일 점심때 평상시보다 2배나 많은 200명 가량의 실향민들로 붐볐다.이성협(李性頰·75·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고향에 가보진 못해도 자유로운 서신왕래로친지들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내 핏줄 있나요” 문의전화 빗발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200명 가운데 북쪽의 가족의 생사가 확인된 138명의 명단이 발표된 27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는 실향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7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생사가 확인된 북쪽 가족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며 알려주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전화를 통해 북한에 아내 오상연씨(77)와 아들 김희종씨(54)가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한 평양 출신 김일선씨(80·부산시 사하구 당리)는 “지난 47년아내와 아들과 함께 월남,서울 상도동에서 살았으나 6·25때 토목기사라는이유로 다시 북쪽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했다”면서 “내가 북에 있다는 사실을 안 아내가 아들과 함께 북으로 찾아 왔으나 다시 만나지 못하고 지금까지헤어져 살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했을 아내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명단이 발표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송성수씨(70·경기도 고양시 화정동)는 “6·25가 터지기 전 육군 1사단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지는바람에 고향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에 있던 부모,동생들과 헤어지게 됐다”면서 “남동생 셋과 여동생이 모두 살아 있어 만날 수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고향 평안도 대동군 시족면에 20대의 꽃다운 아내와 3살과 젖먹이였던 아들,딸을 남기고 온 최경일씨(76·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는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얌전하고 요리 솜씨가 좋았다”면서 “아들과 딸도 벌써50대 중년이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명단이 발표되자 항의전화도 많이 걸려왔다. 자원봉사자 김윤미씨(25·여)는 “‘60대나 70대 이산가족들은 북의 가족을만나게 되는데 80대인 나는 왜 안되느냐’는 고령 이산가족들이 눈물 어린전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치용씨(80·강원도 춘천시 석사동)는 적십자사에 전화를 걸어 “북에 아내와 아들·딸이 있는데 나이가 많아 이번 기회가 아니면 가족을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면서 “60,70대들도 많이 선정됐는데 80세인 내가 왜 빠진것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통일나비’ 새달20일 훨훨난다

    북한과 남한지역의 호랑나비 암수를 교접시킨 ‘통일 호랑나비’가 나비의고장인 전남 함평에서 곧 탄생한다. 21일 함평군에 따르면 지난달 북한과 인접한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민통선지역에서 호랑나비와 암끝검은표범나비,배추흰나비 등을 10마리씩 채집해 같은 종류의 함평산 수컷나비와 교접,각각 1,000∼1,500개의 알을 채란한 뒤부화에 성공했다. 함평군 곤충연구소 유리온실에서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 이들 나비 애벌레는 다음달 20일쯤 번데기 등의 변태과정을 거쳐 ‘통일 나비’로 화려한 날갯짓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군은 이들 나비를 대량 증식해 실향민들이 통일을 기원하는 각종 행사나,판문점 등지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북한을 향해 날리도록 할 계획이다. 군은 또 남북정상회담 답방이 이뤄지면 그 행사장에서도 통일 염원을 담은나비날리기 행사를 갖고 휴전선 비무장지대에도 방생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함평군 곤충연구소와 북한의 김일성대학 생물학과 간에 민간차원의 환경생태분야 교류협력을 추진하고,정부가 주관하는 비무장지대 생태관광자원화 및 생태보전을 위한 공동연구에도 적극 참여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산 호랑나비 유충이나 성충 채집이 현실적으로 어려워민통선지역 나비를 활용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크다”며 “나비를 통해 겨레의 염원인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해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李총리, 간부회의서 통일부 질책

    18일 아침에 열린 국무총리실 간부회의에서는 통일부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16일 북측이 보내온 200명의 명단을 언론에 공개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의전화 접수까지,준비 부족으로 우왕좌왕했다는 대한매일 등의 언론보도가집중 거론됐다. 이한동(李漢東)총리는 “신원 확인을 위해 애태우는 실향민들이 전화가 불통돼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강하게 질책했다고 한다.이 총리는 이어 “국가 대사(大事)인 남북문제와 관련,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대비하라”고 단호하게 당부했다고 김덕봉(金德奉)공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회의에서는 공무원의 ‘주(株)테크’ 얘기도 나왔다.공무원의 재테크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공무와 관련된 부당행위는 엄단해야 한다는 데 결론이 모아졌다.이에 따라 우선 국무조정실 심사평가조정관실을 중심으로 실태파악에 나서기로 했다.차후 감사원,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보조를 맞춰나갈 계획이다. 한편 지난 17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는 이 총리 내외와 오찬을 함께했다.지난주 끝난 국회 대정부 질의를 무사히 마친 데 대한 격려 차원에서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취임 직후부터 터져나온 금융파업과 의료대란,축협통합 등 이른바 6대 대란을 대과(大過)없이 마무리한 것을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이자리에서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내 현안에 대한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운기자 jj@
  • 韓赤 이산가족 창구 이모저모

    북한이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보낸지 3일째인 18일에도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들른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이산가족들은 벌써 상봉이라도 한 듯 울음을 터뜨렸고,일부는 “상봉단 1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며 적십자사 직원들에게 매달렸다. ■변호사 박찬운(朴燦運·37·사시26회)씨는 국민학교 교사로서 월북했던 외삼촌 리길영씨(71)를 만나기 위해 상봉신청서를 작성한 뒤 “우리 집안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가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외가는 좌익,본가는 우익,처가는 월남자 가족”이라며 “집안의복잡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시에 합격하고도 검사 진출은 엄두도 못내고 변호사를 선택했으며,외삼촌이 오시면 자세한 사연을 물어 가족사를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국군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외삼촌은 월북했고충남 인민위원장이던 외할아버지는 국군에게 처형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춘자씨(72·여·경기도 이천군 율면)는 “이미 재혼해 남편을 볼 면목은 없지만 50년전헤어졌던 남편을 꼭한번 만나고 싶다”며 전 남편인 김희영씨(72)의 망부가(望婦歌)에 조심스럽게 화답했다. ■12남매중 셋째 오빠 림순응씨(65)의 생사를 확인한 영숙씨(5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오빠가 살아있기만 빌던 어머니는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오빠를 찾았다”며 “이제서야 오빠의 생사를 확인했는데 100명의 상봉단에 들지 못하면 어쩌냐”며 상봉이 이루어지길 간절히소망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무작정 적십자사를 찾거나 북측에서 보낸 200명의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이유를 따지기 위해 온 사람도 제법 많았다.이영준씨(78·서울 서대문구 천연동)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고향에보내 준다더니 왜 나를 명단에서 제외시켰느냐”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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