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실향민
    2025-12-11
    검색기록 지우기
  • 림프종
    2025-12-11
    검색기록 지우기
  • 피아노
    2025-12-11
    검색기록 지우기
  • 투신
    2025-12-11
    검색기록 지우기
  • 아트간세
    2025-12-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16
  • [Seoul In] 15일 밤섬 실향민 고향 방문

    마포구(구청장 신영섭) 1968년 밤섬 폭파로 고향을 잃은 밤섬 실향민을 위한 고향 방문행사를 15일 오전 10시에 연다. 밤섬 보존회와 마포문화원이 함께 하는 이번 행사에는 밤섬 실향민 100여명, 마포구 관계자들이 참석해 밤섬에서 귀향제를 지낸다. 밤섬 귀향제는 2002년부터 시작해 2006년을 제외하고 매해 열렸다. 문화체육과 330-2503.
  • 겨울올림픽 유치전 72시간

    5일 새벽 강원도 평창군청 앞마당은 무대를 세우고, 의자를 배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곳에서 ‘2014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무려 3000여명의 평창군민이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결정의 순간을 지켜볼 것이다. KBS 1TV ‘다큐멘터리 3일’은5일 오후 10시 ‘평창 동계올림픽, 운명의 72시간’을 방송한다. 한국시각으로 2일부터 개최지가 최종 발표되는 시각까지 평창과 과테말라시티 모습을 따끈따끈하게 전한다. 2일 평창군청에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들어선 다섯 사나이는 마치 평창을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를 연상케 했다. 김영교씨를 비롯한 이들 평창 주민들은 ‘2014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2014㎞에 이르는 국토대장정을 이루어냈다. 현지시간으로 4일 오후 2시35분 과테말라 공항에는 또 다른 뜨거운 가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강원도 토박이 홍보단 52명이 쌈짓돈을 모아 원정 응원을 온 것. 그들은 머리에 평창을 알리는 띠를 두르고 올림픽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전을 펼쳤다. 과테말라 IOC 총회는 한국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정상이 모두 모여 치열한 유치경쟁에 나설 만큼 뜨거운 분위기. 평창이 마련한 ‘생존’ 전략은 바로 프레젠테이션이다.2003년 프라하 총회에서 실향민 할머니를 등장시켜 IOC위원들을 감동시켰던 이병남 2014 평창겨울올림픽유치위원회 평가준비부장과 전이경(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KOC위원)씨가 다시 야심차게 발표를 준비했다. 생생한 화면으로 평창의 뜨거운 염원을 그대로 전한다는 계획이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영화리뷰]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영화리뷰]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21일 개봉되는 전수일 감독의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2005)’은 네 가지 헤어짐을 다룬 영화다. 영화감독 김(안길강)은 탈출구 없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떠난다. 부산에서 고향 속초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며 그는 운전기사에게 확인하듯이 묻는다.“이거 무정차 버스 맞나요?”“예, 맞아요.” 하지만 버스는 보란 듯이 중간 지점에서 정차하길 거듭한다. 삶이 때때로 이유없이 반항하는 것처럼 말이다. 25년만에 찾아간 고향. 김은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옛 시간을 살려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장소를 지금의 주민들은 알지 못한다. 분명히 맞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도 그는 세 차례 “아니다.”는 답변을 들어야만 한다. 자신의 과거와 헤어짐, 이것이 첫번째 헤어짐이다. 어렸을 적 동생을 잃어버린 여인 영화(김선재)는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텅빈 그녀의 눈빛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하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초연하다. 미아가 돼 어디선가 살아있거나 혹은 살아있지 않을 동생의 불투명한 존재감처럼 침묵과 절망만이 그녀를 감싼다. 부주의로 인한 혈육과의 생이별. 전수일 감독이 말하는 두번째 헤어짐이다. 세번째 헤어짐은 두번째와 같은 ‘혈육과의 생이별’이되 ‘정치적인’ 생이별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속초의 한 마을, 주민 대부분은 실향민이다. 반세기 전 고향을 잃은 이들은 역사가 저질러 놓은 이별의 아픔을 억지로 감내하며 살아간다. 만남의 희망마저 역사에 의지해야 하는 이들. 그 어이없는 수모를 곱씹고 위로하며 힘겹게 생을 부지해 나가는 이들이다. 마지막은 돌아올 수 없는, 이 세상과의 헤어짐. 전쟁통에 남편과 헤어진 김의 숙모는 결국 숙부와 재회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사연 많고 한 많은 이승과의 이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가슴을 친다. 프랑스에서 해가 질 무렵 사물이 불분명하게 보이는 시점을 일컫는 말인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개’라는 길들여진 영혼과 ‘늑대’라는 들판에 놓인 영혼 사이의 시간들을 다루는 영화다. 그 가생(家生)과 야생(野生)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네 가지 헤어짐은 만남의 기약이 없기에 하나같이 신산하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한반도기 든 환영인파 “통일 철마 왔다”

    [남북열차 56년만에 달렸다] 한반도기 든 환영인파 “통일 철마 왔다”

    남북열차가 17일 평화와 세계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 철로에는 흥분과 기대감이 넘쳐흘렀다. ●한껏 달아오른 문산역 이날 경의선 열차의 출발지인 문산역은 화해와 교류,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열차 탑승객과 진행요원,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룬 역사는 오전 북측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부터 고적대 연주로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경의선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오전 10시30분쯤 문산역에 도착한 권호웅 북측 내각 책임참사를 역사 안으로 안내한 뒤 백낙청 6·15 공동선언실천위원회 남측 상임대표와 이철 철도공사 사장 등 남측 탑승자들을 소개하며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이 다소 흥분된 어조로 “분단의 역사를 뒤로 하고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은 남북이 함께 이뤄낸 위대한 승리의 역사”라고 강조하자 권 참사는 “아직까지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지는 말라.”면서도 “포부는 원대하게 갖고 소박하게 시작해 좋은 일을 많이 만들자.”고 답했다. 전날까지 비가 내리다 화창하게 갠 날씨를 소재로 이 장관이 “56년간 묵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물청소를 세게 한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권 참사는 당시까지 비가 내리던 동해선 쪽을 의식,“금강산은 아직도 물청소를 하는 것 같다.”며 재치있게 화답하기도 했다. ●부러운 실향민과 감격한 10대들 이날 행사장을 찾은 70∼80대 실향민들은 부러움과 기대가 엇갈리는 표정이었다. 일제시대 개성까지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갔다는 이근찬(77·경기 파주시 법원리)씨는 “그때 기억이 나서 나와봤어. 언젠가 나한테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말했다. 김포 통진고 2학년에 재학중인 채여경(17)·김새봄(17)양은 ‘우리는 하나, 남북 함께 만납시다’‘북측 대표 환영해요’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를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열차가 북한에 간다고 생각하니 떨린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 동영중에 다니는 이세영(14·부산 부산진구 부암동)군도 학교의 임시휴교를 맞아 역사적인 현장을 찾았다. 이군은 “직접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납북자가족 반대 목소리 이날 행사 시작 전 납북자가족모임, 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회원 등 40여명이 행사장 주변에서 납북자 송환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납북자 가족들은 애타게 생사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열차 운행을 하느냐.”며 항의했다. 행사장 출입이 제한된 납북자가족모임 소속 할머니들은 “어떻게 보지도 못하게 할 수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리다 바닥에 쓰러져 후송되기도 했다. ●도라산역 출입국 심사 오전 11시58분쯤 도라산역에서 기적이 울리자 역무원, 통일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관계자, 헌병, 취재진 등 300여명이 남북열차를 맞았다. 탑승객들은 자리에 앉은 채 출입국 통관 절차를 밟았다. 출입국사무소 직원과 세관직원 2명이 1개조로 4대의 객차에 올랐다. 이들은 탑승객의 얼굴과 사진을 대조하며 인원을 파악하고, 반출물품 목록을 일괄 제출받는 등 남북협의에 따라 절차를 간략히 끝냈다. 북쪽 손님과 탑승객들은 객차에서 밖을 향해 한반도기를 흔들기도 했다. 심사절차를 마친 뒤인 낮 12시10분쯤 도라산역 윤길수 역무과장이 오른손을 직각으로 들어 둘째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키며 파란색 수기를 둥그렇게 흔들자 열차는 북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관차 앞 방향 철로변에서 수백개의 풍선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윤 과장은 “감개무량하다. 역사적인 순간에 조그만 역할이나마 한 것이 감격스럽고 행복하다. 앞으로 열차가 시베리아·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탑승객 소감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감동적이고 새로운 한반도의 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평화정책의 가시적 성과다. ●장진구 학생(울산 제일중1) 개성역에 도착했을 때 북측 학생들을 보니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통일이 돼야 할 것 같다. ●고은 시인 가로막혔던 민족의 핏줄이 이어져 뜨거운 피가 순환하는 것이다. 이 길이 남북은 물론 대륙을 연결하는 커다란 꿈의 출발을 의미하길 바란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일제 때 민족의 수탈을 위한 철도가 이제 민족의 번영을 위한 철도가 돼간다. 통일은 이념적 동질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 상생효과를 내야 한다. ●송기인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혈관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 철길이 이어진다는 것은 마비됐던 지체가 새롭게 회복되는 그런 기회라 생각한다. 남북이 소통한다는 것은 해방 당시의 감격과 비슷한 감격이다. 경의선·동해선 공동취재단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실향민 ‘고향쌀’ 맛본다

    정부가 실향민이 ‘고향쌀’을 맛보고 조상께 차례도 지낼 수 있도록 북한쌀의 국내 반입을 첫 승인했다. 4일 농림부와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평남과 평양 등에서 생산된 쌀 8t이 지난 2일 인천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농림부는 “지난달 설 연휴 전 농림부 고시를 통해 ‘북한 쌀을 들여오는 대북 농업협력지원단체에 연간 1회에 한해 2t(25가마)씩 국내 반입을 허용’하도록 공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반입된 북한쌀은 대북지원사업단체들의 농업 기술 및 비료 지원을 받은 북한측이 국내 실향민을 위한 ‘선물용’으로 보내온 것이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폐품 모아 이웃 돕는 ‘설 산타’

    폐품 모아 이웃 돕는 ‘설 산타’

    “어려운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게 진정한 명절이지. 쌀집 점원으로 컸으니 쌀로 기부하는 거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설날만이라도 따뜻한 밥 먹고 지냈으면 좋겠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최돈산(81)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설 산타’로 불린다.5년 전부터 매년 설마다 폐지와 고철을 팔아 모은 돈으로 쌀 20㎏짜리 50포대를 구입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설을 이틀 앞둔 16일에도 최 할아버지는 홍제3동 사무소에 어김없이 쌀을 기증했다. ●홍제동 ‘설 산타’ 할아버지 20년째 운영한다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서자 최 할아버지는 넉넉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사연을 묻자 “별 것도 아닌데….”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아침마다 동네에 굴러다니는 폐지와 고철 등을 주워다 팔아 돈을 모았어.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가 명절 때 어려운 사람들 따뜻한 밥 한끼 해먹으라고 동사무소에 준 것뿐이지.” 그는 쌀 값을 마련하기 위해 1년 내내 아침마다 손수레를 끌고 마을을 돌며 폐지와 고철 등을 모았다. 손수레 한가득 차야 5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지만 하루종일 발품을 팔아도 손수레를 채우기 쉽지 않다. 이렇게 모으는 돈은 매년 200만원을 약간 웃돈다. 힘들지만 어려운 이웃들이 좀더 풍성한 명절을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절로 기운이 솟는다고 한다. 10년 전 대장암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문득 좋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향민 할아버지의 이웃사랑 “자식들은 제발 허름한 옷 그만 입고 좋은 옷 좀 입고 살라하는데 나는 그냥 이게 편해. 허튼 데 돈쓰는 것도 아깝고 말야.”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1945년 19살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내려와 갖은 힘든 삶을 산 탓에 어려운 이웃에 대한 정이 애틋하다. “내 고향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지. 거기 형님 한분이랑 남동생 두명을 두고 왔는데 지금도 살아계시려나 몰라. 대신 1년에 한번씩 강화도 양산면 바닷가에 가서 멀리서나마 고향땅 봉대산을 바라보곤 해.” 그는 서울에 내려와 마포 나루터에 있는 배 위에서 숙식을 하다 능금밭 파수꾼을 맡았고,50년 결혼하자마자 한국전쟁이 터져 육군 이기자부대 창설 멤버로 입대했다. 양양 전투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제대후 남대문 시장 쌀집 점원으로 취업하면서 겨우 안정을 찾았다. 쌀집 점원을 하며 어렵게 6남매를 키웠다. 현재 부동산중개업소는 20년 전 친지가 운영하던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말이 부동산이지 동네 노인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이정용(55) 홍제3동장은 “최 할아버지는 절약하고 사는 것이 생활화된 분이며, 어려운 이웃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이라면서 “기증받은 쌀은 동네 독거노인이나 일시적 실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틈새가정, 경로당 8곳에 등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강아연 손형준기자 arete@seoul.co.kr
  • 실향민 ‘고향 쌀’로 차례 지낸다

    북한 쌀이 이르면 이번 설부터 해마다 실향민들의 차례상에 오를 수 있게 된다. 농림부는 7일 북한의 남북협동농장 등에서 국내 실향민을 위한 선물용으로 보내오는 북한 쌀의 국내 반입을 정식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민단체에 대한 의견 수렴 등 마무리 작업을 거쳐 설 연휴 전인 다음주쯤 농림부장관 고시를 통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농림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 쌀을 들여오는 대북 농업협력지원단체에 연간 1회에 한해 2t(25가마)씩 국내 반입을 허용하도록 규정할 방침”이라면서 “수확기가 끝난 12월부터 1월초 사이에 반입해 실향민들이 갓 수확한 ‘고향쌀’로 조상께 설차례를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성과 상업성이 배제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 쌀의 반입을 허용하되 국내 쌀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규모를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농림부는 반입 허용 단체 선정 기준을 보다 구체화하고, 일부 농민단체가 우려하는 북한 쌀의 시중 불법유통 등을 막기 위한 사후 관리 대책도 철저히 준비할 방침이다. 고시가 확정되면 우선 한민족복지재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경남통일농업협력회 등 대북 농업지원 단체를 통해 모두 6t 정도의 북한 쌀이 이달부터 국내로 들어올 것으로 농림부는 예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반입이 허가되지 않아 인천항에서 반송절차를 밟고 있는 평안남도 약전농장에서 한민족복지재단으로 보내온 쌀 5t 등의 반입도 허용될 전망이다. 현재는 북한 쌀의 국내 반입에 관련된 정부내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북한 농산물에 대해서는 통일부가 농림부와 협의해 반입 여부 결정을 따른다. 이 때문에 지난해 1월 평양 용성지역에서 수확한 북한 쌀 1t은 남북 농업협력교류라는 상징적 명분으로 처음으로 반입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쌀전업농협회 관계자는 “인도적인 취지는 이해하지만, 북한에 쌀을 주는 마당에 정치적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면서 “국내 쌀 산업에 지장이 없도록 떡 등으로 반입해도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맞는 개신교 움직임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맞는 개신교 움직임

    새해 들어 개신교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평양 대부흥운동’이다. 모든 모임에서 ‘평양대부흥운동’이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고 이런저런 행사가 추진되는가 하면 북한교회 재건을 위한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1907년 1월2일부터 14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일었던 기독교 영적 각성운동이자 성령운동.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 한반도 전역으로 회개와 부흥의 불길을 번지게 해 세계교회가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부르게 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는 왜 이다지도 ‘평양 대부흥운동’에 집착하는 것일까. ●평양 대부흥운동의 핵심은 교회갱신 평양 대부흥운동은 비단 교회의 물적·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한국 교회사적 대사건’으로 기록된다. 한국 교회들이 요즘 평양 대부흥운동에 그토록 매달리는 것은 대형화 일색으로 치닫는 교회들이 ‘빛과 소금’의 종교적 역할을 되찾자는 회개와 반성 측면이 강하다. 그런 때문인지 개신교계의 가장 큰 행사인 올해 부활절연합예배의 초점도 ‘영적 각성과 한국교회의 갱신’이란 주제대로 철저하게 회개와 반성을 통한 부흥에 맞춰져 있다. 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오는 4월8일 새벽 5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부활절연합예배에는 평양대부흥회의 정신을 살린 ‘세례의 갱신’ 행사가 들어 있다. 예배에 참여하는 목회자와 신자들이 함께 회개와 갱신을 다짐하는 것이다. 최근 개신교계에서 추진 중인 성서학 학술심포지엄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된다. 한국구약학회·한국신약학회와 한국복음주의구약학회·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등 4대 성서해석학회가 5월25∼26일 사랑의교회에서 만나 평양대부흥운동의 의미를 성서와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되살려 갈라진 교회의 화합과 영적 부흥을 다시 찾자는 운동이다. ●북한 교회 재건과 주민 돕기부터 회개와 갱신을 통한 평양대부흥회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운동과 맞물려 북한 교회 재건과 북한 돕기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에 맞춰 올해를 ‘북한을 위한 기도의 해’로 선포한 데 이어 개신교 단체들이 평양에서 추진해온 교회의 준공을 서두르고 있다. 한기총이 지난 12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마련한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 기념 평화통일기도회’에서는 150여명의 국내외 교계 지도자와 실향민, 새터민들이 ‘2007 북한을 위한 기도의 해 선포문’을 통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교회와 신도들에게 북한을 위한 기도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 통합)이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4월 중순 평양에서 봉수교회 준공식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혀 눈길을 끈다. 지난 2005년 11월부터 예장통합이 북측에 지원해 재건축을 추진해온 평양 봉수교회는 지상3층(연면적 600평)에 1200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는 규모다. 예장통합은 교회 준공식에 앞서 오는 25일부터 경북 포항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평양대부흥운동 맞이 부흥행사를 개최하며 7∼10월 중 한기총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함께 참가하는 연합대성회도 열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00년부터 평양에서 평화회관 건축공사를 진행해온 통일교도 3월초쯤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북한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토요영화]

    ●토니 타키타니(EBS 오후11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화한 작품. 사랑을 믿지 않던 토니에겐 아내 에이코가 복덩이다. 에이코의 유일한 단점은 옷을 지나치게 많이 산다는 것. 조금 줄여보라는 말을 따르려다 에이코는 그만 교통사고로 죽는다.700벌이 넘는 옷을 처분하기 위해 아내와 똑같은 사이즈의 여자를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내고, 이를 보고 많은 여자들이 찾아오는데….2005년작,76분. ●비단구두(KBS2 밤12시25분) 흥행 참패 감독 만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폭에게 협박도 받는다. 영화가 망하니 제작자는 빚에 쪼들리다 도망쳐버렸고, 돈을 못 받게 된 조폭은 만수를 납치한다. 조직의 사무실에 끌려간 만수는 보스에게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치매에 걸린 실향민이자 아버지인 배 영감을 개마공원에다 데려다 주라는 것. 진짜 북한을 가라는 건 아니고 치매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니까 세트장 세워 영화찍듯이 해서 적당히 속이라고 한다. 만수로선 황당하지만 그러면 빚을 없애준다 하니 어쩔 수 없다. 조직에서 감시역으로 붙인 행동대장 성철과 함께 영화 제작에 나선 만수. 온갖 준비를 다한 끝에 배 영감을 속여 넘기려는데 잘 될 리 없다. 2000년 ‘미인’ 이후 모습을 감췄던 여균동 감독이 오랜만에 공개한 저예산 영화. 여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KBS가 지원하는 방송영화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촬영에 들어갔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해 1년 동안 묵히다 지난 6월 소규모로 개봉했다. 만수라는 영화 캐릭터는 여 감독 본인과 많이 겹친다. 영화로는 개마고원이든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고 이를 강요하는 조폭 두목과 벌이는 설전과 배 영감을 속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촬영 사고 등에서 민수가 내뱉는 대사들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여 감독은 “또 다른 통일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온다. 특히 배 영감역의 민정기와 성철역의 이성민이 눈길을 끈다. 처음엔 약간 신파조로 흐르던 민정기는 후반부로 들어가자 절제가 몸에 붙으면서 잔잔한 연기를 선보인다. 연극배우 출신인 이성민도 심드렁한 듯 설렁설렁하는 동작과 억세고 짧은 경상도 사투리로 충직하면서 코믹스러운 캐릭터를 잘 살렸다.2005년작,104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北, 민족 담보 위험한 줄타기”…보·혁, 비난

    9일 오전 북한의 핵 실험 강행에 대해 국민들은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민족 생존을 담보로 한 위험한 줄타기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단체 “한·미·일 국제공조 강화를” 보수단체인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성명을 내고 “북한 김정일 정권이 노무현 정부의 평화 번영정책을 악용해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뒤로는 핵무기 개발을 지속해 왔음이 드러났다.”면서 “노대통령이 자신해 온 한반도 평화는 전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말장난”이라고 비난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도 “한·미·일을 포함한 대북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범정부 차원의 북핵 대책기구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홍성의 상임정책위원장은 “국민의 안보불안, 경제불안에 대한 수습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상당기간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저녁 선진화국민회의 등 보수단체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북핵 실험에 반대하는 범국민 촛불집회를 열었다. ●진보단체 “北 비난할 수만은 없다”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우려와 비난을 쏟아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북한의 핵 실험은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라면서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6·15 공동선언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평화네트워크 이준규 정책실장도 “핵을 쓰지 않는다는 민족적 합의는 물론 체제 안정에도 반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핵 실험을 계기로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데에는 대체로 반대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유영재 사무처장은 “평화 군축의 측면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나 사용은 반대하지만 북한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대북 제재가 과연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지원사업을 벌여온 단체들은 사업 차질을 우려했다. 10년째 민간지원을 하고 있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강영식 사무국장은 “사태추이를 지켜보면서 후원자들의 입장을 정리해 사업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실향민과 일반시민 이북5도민회중앙연합회 김명권 사무처장은 “북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지만 정부가 강경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북한의 비위를 맞추며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지원방식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들의 반응은 대체로 양분됐다. 회사원 박필훈(28)씨는 “북한의 의도가 눈에 훤히 보인다. 벼랑끝 전술이 한두 번도 아니어서 이제 불안하기보다는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회사원 조규철(40)씨는 “전쟁이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서 공포감까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 이런 식으로 막나가는지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윤설영 서재희기자 snow0@seoul.co.kr
  • [Local]28일 임진각서 실향민 망향제

    동작구(구청장 김우중) 추석을 맞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작구협의회 주관으로 28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실향민 합동 망향제´를 개최한다.
  • 40년만에 햇빛 본 독립투사 김두화선생

    한 대학교수의 노력으로 잊혀졌던 독립투사의 항일운동이 40여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새롭게 조명된 애국지사는 일제 시절 신민회 구국운동에 참여하고 ‘105인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해암(海庵) 김두화(金斗和) 선생으로 작고한 지 40년 만인 지난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인 김 선생은 1908년 숭실중학교 대학과를 졸업한 뒤 도산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 교사로 활동했으며 항일구국단체인 신민회에도 반장(班長)으로 참여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11년 9월에 발생한 ‘105인 사건’으로 투옥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1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 김 선생은 이때 고문을 받아 오른팔이 심하게 골절돼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다. 석방된 김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이시영 등과 대종교 활동에 참여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많은 항일독립투사들처럼 그 역시 정치권 등에 편입하지 못한 채 대전의 평안도 실향민 집성촌 등에 기거하며 명멸해갔다. 한때 충남대 명예교수인 충남 연기군 남면의 성주탁 교수의 집에서 살면서 학생 계몽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김 선생은 1957년 상경해 서울 영락교회 경로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1967년 쓸쓸히 작고해 영락교회 공원묘지에 묻혔다. 김 선생의 항일독립운동이 새롭게 빛을 보게 된 것은 충남대 국사학과 김상기 교수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다. 지난 2002년 4월 성 명예교수로부터 김두화 선생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접하게 된 김 교수가 김 선생이 졸업한 숭실중학교 대학과의 후신인 숭실대와 영락교회 등을 직접 방문해 증언을 확보하는 등 1년이 넘도록 사료추적 작업을 벌인 것. 김 교수는 모은 사료를 토대로 2003년 국가에 독립유공자 지정 신청을 냈다. 결국 2년여 만인 지난해 8월, 김 선생은 어렵사리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했다. 남한에 유가족이 없는 김 선생의 묘소는 다음달 21일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으로 옮겨지게 됐다. 김 교수는 “김 선생의 사진이 남한 내에는 수십년전 숭실대 대학신문에 실린 흑백사진이 전부일 정도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한 분”이라면서 “이 같은 분이 더 이상 없도록 국가와 사회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이산가족 - 납북자 단체 “北생떼 어처구니 없어” 분노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상봉행사 중단 발표에 국내 이산가족 및 납북자 단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일부 단체는 분노감마저 표시하면서 현재와 같은 일회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권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10만명에 이르는 고령 이산가족들이 추첨을 통해 100명씩, 연간 몇 백명씩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북한측이 생사확인도 제대로 안 해 주면서 ‘우리민족끼리’를 말해봐야 소용없다. 결국 이 지경이 돼 어처구니가 없다.”고 개탄했다. 김영관 이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은 “예상됐던 일로 북측이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니깐 생떼를 쓰는 것”이라면서 “실향민의 입장에서는 일과성, 이벤트성으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상봉의 대가로 비료나 쌀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북한은 대화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점을 다시 느꼈다.”면서 “이산가족에게 사과하고 발표를 철회해야 할 뿐 아니라 정기적인 상봉 약속을 예정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북측에 촉구했다.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은 “북측이 지난 2000년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면서 이산가족문제와 납북자 문제는 인도적으로 풀어나가기로 합의해 놓고 이렇게 뒤집을 수 있는가.”라고 되물은 뒤 ““이번 조치는 납북자 가족이나 이산가족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일반 국민들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인 만큼 이제는 좀 더 잘 남쪽의 정세를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고교생 때 납북된 김영남씨의 누나 김영자씨는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이산가족이 희망을 갖고 기다렸으면 좋겠다.”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기다렸는데 안타깝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내년이라도 다시 볼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바람을 표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난민의 날 특집] 난민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난민의 날 특집] 난민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에서의 난민 보호는 어쩌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심각한 상황에 견줘 다루기 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보호 신청자 증가세가 가파른 편이고, 처리되지 않은 신청서가 계속 쌓이고 있으며, 체류 난민들의 현지 적응 문제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심각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훨씬 많은 수의 난민 보호 신청자와 난민들을 수용하는 국가들과 유엔난민기구는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난민 관련 상황 가운데 특히 더 어렵고 이 시점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사안들을 살펴본다. ●수단 다르푸르 사태 동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선 종교·인종적 갈등과 주권, 토지 다툼에서 비롯해 2003년부터 고향을 등지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170만명은 국내 유민이 되고 있고,20만명은 국경너머 차드의 난민캠프에 수용돼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에게 신변 보호와 물, 피난처, 식량, 옷, 의약품 등 생활하는 데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캠프 안팎에서 계속되는 공격으로 이 지역에서 우리의 활동은 지장을 받아왔다. 또한 무장세력들은 난민과 실향민 캠프에서 병사들을 징용함으로써 평화롭고 인도주의적인 캠프의 성격을 훼손하고 있다. ●네팔에 체류하는 부탄 난민 약 10만명의 부탄 난민이 네팔 캠프에 14년간 피난해 있으며 이들의 고난에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부탄에 귀환하거나, 네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혹은 이들을 받아줄 용의가 있는 제3국에 재정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가운데 어느 방법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난민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동티모르 최근 뉴스에서 계속되는 폭력으로 인해 10만명 이상의 실향민이 발생한 동티모르를 접할 수 있었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동티모르로 즉각 긴급 구호품을 수송하였으며, 현지 상황을 완화하려는 유엔의 인도주의적 구호 노력의 일환으로 구호팀을 긴급 파견했다.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에는 이른 시일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거의 사라진 2만여 미얀마인들이 위험하고 힘든 캠프 생활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과거 몇년간 캠프에서 구타와 살인, 다른 잔학 행위들이 보고됐다. ●파키스탄 300만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20년 이상을 피난처로 삼아온 파키스탄을 떠나 집으로 귀환했지만 아직도 260만명 정도가 본국의 불안한 치안 때문에 귀환을 결심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사실 유엔난민기구는 한국 정부의 선의와 물적·인적 자원에 있어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어 정부가 비호 신청 처리 과정을 더 갖추고 난민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아시아에서 모범적인 난민 보호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적절한 계획과 전략적으로 사용된 충분한 자원들을 통해 한국의 잠재력은 2년 안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제니스 린 마셜 객원편집인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대표 unhcr@unhcr.or.kr> ■ 변화를 원하시는 분은…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가 난민 문제를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도 한국전쟁으로 대규모 유민 사태를 경험한 바 있고 탈북 사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슴 아픈 경험 때문에라도 우리 사회는 난민이 사회의 부담을 주거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시적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고 부축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등도 한때 난민이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사회에 큰 공헌을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그만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www.unhcr.or.kr,02-773-7012)를 두드리면 된다. 유혜정 객원편집인 (UNHCR 한국사무소 행정팀장 unhcr@unhcr.or.kr> ■ 기획부터 만들어지기까지 객원편집인이 직접 지면을 기획하고 취재와 기사 작성까지 맡는, 다소 파격적인 지면이 오늘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산고(産苦)를 치러야 했다. 본지 편집국 자체 작업이라면 사나흘 걸릴 일을, 한 달 이상 공을 들여야 했다. 이 기획을 처음 구상하고 착수한 것은 지난달 9일쯤의 일이다. 세계 난민의 날 특집을 준비하다 난민 문제에 가장 정통하고 경험이 있는 전문가 집단에 지면을 통째로 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후 여러 단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한 결과, 아름다운재단 소속 공익변호사 그룹인 ‘공감’과 유엔난민기구가 적격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본지는 광고 5단을 제외하고 10단짜리 2개 지면을 할애하기로 하고 두 단체와 접촉, 취지를 설명한 뒤 매주 한번씩 이들 기관의 사무실에서 만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 기획을 구상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가급적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판단을 존중하고 본지 편집국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지 편집국은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조언에 치중하고 기획의 핵심은 이들 두 기관이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도록 했다. 사진 촬영과 그래픽 작업, 제목 작성 등은 편집국 기자들 손에 맡겨졌다. 또 점검 회의에서 정부의 난민 보호 담당자들과 난민 보호를 위해 앞장서 일해온 여러 단체 활동가들의 좌담을 마련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 기획이 나간 뒤 적정한 시점에 좌담을 갖기로 하고 이를 추진 중이다. 본지 편집국은 객원편집인 기획을 앞으로도 늘려가려 한다. 기자 집단의 한계를 벗어나 정부나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직접 지면을 꾸려보고 시민을 상대로 대화하게 함으로써 활동의 외연(外延)을 넓혀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맞혀보세요 다음 10명의 유명인 가운데 한때 난민으로 지낸 적이 있는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마들렌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나디아 코마네치 체조선수 조지 웨아 축구선수 김대중 전 대통령 마를렌 디트리히 가수 겸 배우 게오르규 솔티 지휘자 루돌프 누레예프 발레리노 답은 10명 모두
  • ‘호국·보훈’ 의미 가슴에 되새겨라

    광고업계에 독일 월드컵 축구가 일색인 가운데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상흔을 애절한 감동으로 전하는 광고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KTF의 기업광고 ‘북의 진실’편은 스포츠 애국주의의 정수인 축구 월드컵과 맞물려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KTF는 지난 2002한·일월드컵 당시 북한이 내보낸 방송을 광고에 실었다. 광고는 북한 아나운서의 “이딸리아팀과 남팀간의 경기를 보시겠습니다.…겉으로 준 볼, 슛∼머리박기 골인됐습니다. 머리박기가 그대로 성공돼서 금골을 기록하는 남조선”이라는 흥분된 멘트와 함께 “60분 대한민국 경기 중계, 형제에게 열린 뜨거운 가슴”이라는 내레이션이 겹쳐 나온다. 광고는 당시의 하이라이트를 60분간 녹화 방송했던 북한도 ‘한민족이며, 태극전사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특히 국내 광고 사상 최초로 북한과의 저작권 협의를 거친 문화 교류의 시발이란 점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KTF는 ‘북의 진실’편을 통해 가깝고도 먼 나라, 차갑고 두꺼운 벽이 가로 막고 있는 곳으로 느껴져 온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같은 동포, 같은 민족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또한 탤런트 최수종씨를 기용, 호국 선열에 대한 감동을 주제로 한 ‘나라사랑 큰나무’편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보훈처는 광고에서 “그 분들은 제 인생에 큰 나무입니다. 그 분들의 사랑이 가슴을 울립니다.”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6월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는 달’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에 앞서 KT는 개성공단과의 민간전화 개통 사실을 주제로 한 기업광고를 내보냈다. 남북관계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 흐름에 맞춰 개성공단과 대한민국에 첫 민간전화가 개통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광고는 실제 실향민을 모델로 내세워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60년을 기다려 온 목소리’란 카피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분단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현대자동차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한 손기정 옹이 당시 금메달을 수상했던 사진을 편집해 제작한 기업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당시 승리의 기쁨은 있었지만 나라는 없었다는 메시지와 2006년에는 우리나라가 승리의 기쁨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함께 전달함으로써 감흥을 전달하고 있다. 월드컵 축구 물결로 인해 6월 호국의 달의 의미가 퇴색돼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서 이런 광고들이 호국·보훈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심상덕의 서울야화] (8) 단오 그네타기

    [심상덕의 서울야화] (8) 단오 그네타기

    단오 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오는 31일이 음력 5월5일 단오절이거든요. 예전부터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네를 뛰면 여름에 모기 같은 곤충에 물리지 않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네뛰기는 인기가 있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 오르는 이 그네뛰기, 여성 스포츠 치고는 최고의 스포츠잖아요. 그 예전엔 우리나라 여성들, 말 타기도 즐겼고 그네뛰기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히 여성들에게 차별과 편견의 굴레를 씌워놓고 있던 그 예전엔 이 단오 무렵의 그네뛰기는 일상생활의 모든 억압에서 활짝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던 겁니다. 그 그네가 하늘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네 탈 때의 멋은 펄럭 펄럭 펄럭, 그 치맛자락이 펄럭이는 것도 하나의 멋이지만요. 처녀들의 머리를 묶은 그 빨간 댕기 있잖아요. 허공에 한 번 높이높이 치솟았다가 내려올 때, 그 빨간 댕기머리가 출렁 출렁하면서 나부끼는 모습. 또 그네 타는 처녀들의 치마 속으로 바람이 가득하게 들어가 치마 폭이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오르잖아요. 총각들은 처녀들의 그 그네 타는 모습을 바라보고 나면 십중팔구는 그날 밤부터 끙끙 앓기 시작하는 상사병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 서울의 경우 이 단오 무렵에, 그래요 전에는 창경궁 같은 곳에서 이 그네뛰기 대회가 열리곤 했어요. 그리고 장충단공원에서도 이 그네뛰기가 해마다 열렸구요. 특히 6·25이후에 장충단 공원에서 단오 무렵에 벌어진 그네뛰기 대회에선 평양이나 개성이 고향인 실향민들이 대회를 거의 휩쓸 정도로 그네들을 그렇게 잘 탔던 겁니다. 그네를 타고 높이높이 반공중으로 날아올라 기둥에다 매달아 놓은 방울을 발로 힘껏 걷어차는 높이뛰기 대회. 그 쇠방울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여러 번 들릴수록 그네뛰기 성적은 더 올라가는 거죠. 그리고 광복이후 한 때는 남산에서도 그네뛰기가 활발했었고요. 종로 쪽에선 전에 운현궁 별장(대원군 별장)에서 그네를 매고 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평상시엔 개방하지 않았던 운현궁 별장이었지만 뜰에 큰 나무들이 많아서 단오 무렵에 그네뛰기 하기엔 더없이 좋았었기에 이 단오무렵 만큼은 종로 구민들에게 운현궁별장이 개방되곤 했던 거죠. 또 동대문 쪽에선 4월 초파일부터 그네를 뛰기 시작해 5월 단오까지 계속 했었는데요. 특히 ‘관운장’의 화상을 모신 동묘의 그네뛰기 대회는 서울에서도 규모가 크기로 아주 유명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화여대 뒷산에서도 그네를 많이 뛰곤 했죠. 그런데 약 70년 전인 1937년. 그 ‘중일전쟁’ 이후 광복을 맞을 때 까지 우리 민속놀이의 말살정책에 따라 일본인들이 그네뛰기조차 못하게 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걸 아시는지요. 우리에겐 그네뛰기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그런 시절도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광복된 다음해 단오절에 전국적으로 다시 그네뛰기가 부활이 됐던 거죠. 그리고 규모가 제법 큰 그네뛰기 대회에선 쌀 몇 가마씩을 내걸기도 했고, 또 돼지 한 마리, 광목 한통, 양은 냄비, 검정고무신 이런 것들을 상품으로 내건 경우도 많았어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밀 때는 선녀가 달나라로 가는 듯, 돌아올 땐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또 신윤복의 그림에도 보면, 노랑 저고리에 빨간 치마의 여인네가 막 그네 줄에 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잖아요. 그리고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을 엮어주게 된 계기, 그것도 바로 단오 무렵의 그네뛰기가 있었기 때문에 몇 백년 세월이 흐르도록 일편단심 변치 않는 그런 사랑이야기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겠죠. 춘향이와 이도령 같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도, 단오를 전후해 처녀총각 젊은이들 사이에 그네뛰기가 또다시 성행했으면 좋겠습니다.
  • [발언대] 일본은 독일사례서 배워야/조윤수 외교부 기획심의관·전 베를린 총영사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평생 살았다는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 프로이센 공화국의 대관식이 거행된 유서 깊은 곳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러시아령이 돼 현재 칼리닌그라드로 불린다. 또 폴란드 바웬사가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그단스크. 옛 지명은 단치히였다. 독일제국 중심지역인 서프로이센의 주도(州都)였으나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에 할양됐다. 독일이 1·2차 세계 대전 후 국제사회의 엄중한 조치를 수용, 주변국에 할양된 영토들이다. 현재 독일의 영토는 1·2차 대전 패전으로 13%와 24%가 각각 줄었다.1871년 비스마르크 재상 주도로 독일제국이 탄생한 때의 3분의2에 불과하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자. 프랑스인은 신뢰하는 국가로 독일을 들고 있다. 폴란드도 독일의 국제기구 진출에 발 벗고 나서고 있고, 이스라엘은 유럽국가 중 독일과 가장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진정한 행동이 있었다. 브란트 총리는 1970년 12월 폴란드 유대인 수용소 기념비 앞에서 독일의 과거를 사죄하려면 무엇인가 특별히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수백만명의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을 말로 다할 수 없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또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2차 대전 후 포츠담 협정에서 잠정 경계선으로 설정된 오데르나이세 강을 독일과 폴란드의 경계선으로 인정하는 바르샤바 조약을 1970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상당한 정도의 독일 영토를 상실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국내의 반대, 특히 실향민의 반대가 높았다. 하지만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반대를 극복해 나갔다. 그러나 독일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지도자들은 확신하고 있다. 브란트 총리의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통일은 물론 현재와 같이 유럽통합의 중추역할도, 무엇보다 신뢰받는 유럽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독일 정부는 독일제국의 근간이었던 프로이센의 영토까지도 포기하면서 사죄했다. 또 독일 지도자들은 2차 대전에 참전한 장병들이 국가방위 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전쟁에 동원돼 희생된 자로 보면서 나치의 만행을 되새기고 있다. 역사교과서 공동제작, 추모비 건립, 피해자에 대한 정부배상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 강점한 한국의 영토를 자국의 영토라고 강변하면서 일부 지도자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 과거문제에 애써 눈감으려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독일 슈뢰더 전 총리는 “용기를 갖고 자신의 과거를 명백히 직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만 친구를 얻을 수 있으며 과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프랑스 간 신뢰관계가 독일의 과거사 인정에서 시작됐음을 언급한 것이다. 일본 정부 및 지도자들의 진지한 행동을 다시 기대한다. 과거사에 대한 직시가 궁극적으로 일본의 국익과 일치함을 강조하고 싶다. 조윤수 외교부 기획심의관·전 베를린 총영사
  • 성금전화 한 통화씩 모아 503억

    ‘TV는 따뜻한 나눔을 싣고’ 8년 남짓 통화수로 따지면 국내 총인구에 가까운 약 4000만 차례의 전화가 걸려왔다.ARS를 통해 한 통화에 1000원씩 모였던 성금은 무려 412억여원에 이른다. 무통장 입금까지 보태면 503억여원. 이 성금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귀 질환이나 백혈병, 암 등 난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등 약 3만 4000여명에게 따뜻한 온기와 용기를 불어넣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어머니를 돌보던 차미란(25·여)씨는 1999년 ‘사랑의 리퀘스트’를 만나 예술과 사회봉사에 대한 꿈을 이어갈 수 있었고, 지난해 어려운 가정 형편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조재선(13)양은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2002년에는 실향민 고 강태원 옹이 평생 모은 재산 200억원을 기탁해 별도 복지재단을 만들며 국내 기부문화에 역사를 새로 썼다. 모두 전화 한 통의 사랑이 모여 이룬 기적이다.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매주 토 오후 7시10분)가 18일 400회를 맞는다.1997년 10월24일 첫 전파를 쏜 이 프로그램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방송 프로그램이다. 가슴 아픈 이웃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알리며 매회 1억원 이상 성금을 모아 사랑 나눔을 실천해왔다. 저소득층 노인에게 개안수술(97년), 장애인들에게 전동 휠체어 100대 기증(2001년) 등 다양한 캠페인을 펼쳤다. 올해에는 2005년 10월부터 시작한 조혈모세포기증 캠페인과 더불어 의료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연해주 고려인 등 해외 동포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을 계획이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남북통합 ‘윈윈전략보고서’] (중) 北농지 소유권 어떻게

    [남북통합 ‘윈윈전략보고서’] (중) 北농지 소유권 어떻게

    통일 이후 제기될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는 농지 등 북한이 국유화한 재산을 누구에게 돌려주느냐 하는 ‘사유화’의 문제이다. 예컨대 북한은 농지를 국유화해 직접 소유·관리하고 있는데 통일이 되면 어떤 방식으로 분배하고, 만약 남한에 거주하는 ‘원소유자’가 소유권을 주장할 경우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4일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통합대책’에서 “북한이 국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기여를 인정, 토지·가옥·농장 등 각종 재산에 대한 주민들의 권리를 일정부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유화의 대상은 텃밭을 포함해 국영농장 및 협동농장의 농지, 농기계, 가축 등이 모두 포함된다. 농촌 주민의 주택도 예외가 아니다. 원소유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더라도 반환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원소유자를 가려낼 수 있는 공부(公簿)가 존재하거나 농장 등에 편입된 토지가 법적으로 개인 소유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농지 사유화에 관한 4가지 형태를 제시, 장단점을 비교했다. 첫째,‘원소유자에게 반환’하는 방법은 공정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평가했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북한 농민이 생활 터전을 잃을 수가 있어 통일에 대한 집단적 저항을 부를 수 있다. 남한 내 실향민으로 대표되는 원소유자를 파악할 수 있는 토지대장과 등기부가 북한의 토지개혁 당시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현재 사용자나 종사자에게 무상 또는 저가로 분배’하는 방법이다.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농업 이외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셋째, 일단 국유화를 인정한 뒤 이를 개인에게 분배하는 ‘대량 사유화’이다. 원소유자들이 집단민원을 제기할 수 있지만 속도와 공정성, 통제능력 등에서는 장점이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를 위해 ‘신탁기금’을 설립, 사유화 대상이 되는 모든 자산을 기금에 이전하고 사유화 권리증서(바우처)를 실제 사용자에게 발행해야 한다. 넷째,‘제3자에게 개별적으로 매각’하는 방법은 속도와 공정적 측면에서 불리할 뿐 아니라 북한의 농촌사회가 급격하게 해체될 우려가 있다. 보고서는 협동농장과 국영농장은 성격이 다르므로 사유화 과정도 다르게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북한의 국영농장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이고, 협동농장은 리 등의 마을 단위로 조직돼 농장 구성원의 협동적 소유를 강조한 개념이다. 북한 전체 농지의 90%가 협동농장으로 알려졌다. 농촌지역 협동농장의 경우 농지를 공동소유하다가 점차 농민들이 구매하도록 하되, 자본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물로 사들이는 안이 제시됐다. 보고서는 “초기에는 기존의 협동농장을 바탕으로 대규모 영농방식을 유지하면서 농지로부터 발생한 성과를 축적, 현물로 분할 상환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연간 수확량의 10%를 3∼5년 거치 10년 분할 납부하는 방식으로 농민들이 농지를 매입하게 한다는 것. 국영농장 및 도시근교의 소규모 농지에 대해서는 가칭 ‘농업신탁청’을 설립해 관리하거나 자치단체가 소유, 대규모 집약영농 체제를 갖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초기 북한 농민들의 ‘무임승차’에 따른 도덕적 해이와 행정 실패를 막고 나중에 공업용지 확보와 도시개발을 위해 필요한 땅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령 및 제도 정비와 관련해 통일 이후 체제 전환기의 상황을 고려, 한시적인 특별법을 만들어 국영·협동농장의 자산관리와 사유화 과정을 추진할 법적 근거를 마련토록 권고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남북통합 ‘윈윈전략’] (상) 사회 파장과 주요대책

    [남북통합 ‘윈윈전략’] (상) 사회 파장과 주요대책

    남북농업협력위원회 등 정부 차원의 경협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적지 않다. 정부가 ‘평화공존’을 표방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예기치 못한 통일 시나리오가 국내외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통일이 이뤄진다면 남북 당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통일비용을 최소화하고 남북한에서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부문을 안정화시킬 ‘윈-윈전략’은 준비된 것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농림부의 용역을 받아 이같은 물음에 대한 보고서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통합대책’을 마련했다. 농업부문에 초점을 맞췄지만 북한의 산업특성을 감안할 때 통일시 비상대책과 다름없다. 서울신문이 13일 단독 입수한 이 보고서는 “남북한 통합을 위해 농업부문에서 단기적으로 준비해야 할 핵심 내용을 분석했지만 부분적으로는 남북 전체의 대책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통일 직후 예상되는 주요 상황과 대책을 비롯해 남북 통합대책을 세 차례에 나눠 짚어본다. ●‘엑소더스’ 억제할 ‘인센티브’ 제공해야 보고서는 통일시 식량난 타개와 최저생계 유지를 위해 남한으로 이주할 북한 주민은 180만명으로 추정했다.2003년 기준으로 북한 인구 2252만명의 8%에 해당된다. 또 잠재적으로 북한 농업인구의 80%인 660만명이 일자리 등을 찾아 남한이나 북한내 도시지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이농현상이 남한에선 25년 걸렸지만 북한에서는 매우 짧은 기간에 이뤄져 양측에서 실업·주택·환경·교통·빈곤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인구이동에 대한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규제는 남북통합 차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북한내 국유농장의 민영화 과정과 적대 계층으로 분류됐던 북한 주민 27%가 취업전선에 나서면서 임금격차에 따른 인구이동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 남으면 혜택을 주고 남한으로 이주하면 불이익을 받게 하는 방안이 적절하다. 첫째, 농장의 사유화 과정에서 분배받은 토지에 경작권을 주되 처분권은 일정기간 제한하고 주택도 점유권만 주고 소유권은 나중에 인정한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되 지분의 전매는 제한한다. 둘째, 북한에 남는 주민에게는 식량과 생필품 및 농자재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생산한 농산물은 높은 가격으로 정부가 수매한다. 기초생활을 위한 보조금도 지급한다. 셋째, 남한으로 이주했을 경우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떨어지는 북한의 사회보장법을 따르게 한다. ●성인 1인당 식량 600g 북측에 지원해야 통일시 한반도 전체의 식량 부족량은 연간 1500만∼2000만t으로 분석된다.2004년 기준으로 남북한 전체의 곡물 수요는 식량과 가공용을 포함해 2490만t이지만 공급량은 928만t이다.1500만t 이상이 부족하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식량수요가 남한에 근접하면 부족량은 2100만t으로 늘게 된다. 남한은 부족분을 수입해 왔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북한 주민에 대한 식량지원은 유상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통일 직후의 혼란기에는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 북한의 협동농장 소속 농민의 1인당 연간 식량소비량 220㎏를 고려, 무상지원은 성인 1인당 하루에 600g의 식량으로 정하면 된다. 식량배급을 원하는 주민은 당국에 등록하고 나이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게 바람직하다. ●농축산물 ‘최고가격제’로 시장 안정시켜야 급격한 통일로 북한의 배급체계가 붕괴되고 도·농 전체에서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따른 ‘초(超)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북한 주민의 상당수가 빈곤계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따라서 쌀·보리·밀가루·콩 등의 기본 식량과 소·돼지·닭 등의 축산물 가격을 평시의 150∼200%로 제한, 남북 당국이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 또한 공급부족으로 각 지역에서 암거래 시장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북한내 군마다 상설시장을 만들고 국영상점이나 협동상점은 농협이 맡아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한내 농업생산의 안정을 위해 농지는 일시적으로 국유화한 뒤 실제 농사짓는 주민들에게 점차 유상분배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월남한 남쪽의 실향민들은 북쪽의 옛 땅을 되찾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백문일 이영표기자 mip@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