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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남북 함께’ 마중물 될 여자 탁구 단일팀

    남북한 여자 탁구팀이 함께 호흡을 맞춰 뛰는 모습에 우리는 가슴 뭉클했다.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남북 여자 탁구 대표팀은 그제 현지에서 전격적으로 단일팀을 구성했다. 그 감격 속에서 이튿날인 어제 곧바로 일본과의 여자 단체전 준결승을 치러 냈다. 한반도 평화의 봄 기운이 과연 도도하게 밀려오는 것인가, 많은 이들은 떨리는 가슴에 손을 얹었을 것이다. 남북 탁구팀이 하나가 된 것은 19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 이후 무려 27년 만이다. 남북이 뭉치면 예상할 수 없는 값진 시너지 효과가 뒤따른다. 자명한 진실이 이번 대회에서 다시금 입증됐다. 토마스 바이케르트 국제탁구연맹 회장의 제안으로 현장에서 성사된 단일팀은 남북 대결 없이 4강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8강전을 치러야 했던 남북 선수들은 경기 대신 단일팀 세리머니를 펼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즉석에서 그런 성과를 이끌어 냈다는 것은 남북의 진심만 통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나 다름없다. 남북 정상이 만난 이후 역사적인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할퀴던 판문점 일대의 대남·대북 확성기가 철거되고 있다. 남북 탁구 단일팀은 정치적 고려에 휘둘리지 않은 민간의 자발적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이번 단일팀을 시작으로 체육계의 남북 교류는 급물살을 탈 희망이 커졌다. 8월 개막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일팀 논의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 말고도 조정, 카누, 농구가 단일팀 구성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모양이다. 앞으로 군사, 외교 부문에서의 후속 논의들이 착착 진행될 것이다. 그런 논의가 남북 화해의 틀거리를 만든다면 민간 교류는 실질적 평화를 지탱해 줄 실핏줄 역할을 한다. 대북 제재로 당장 경제 분야의 협력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교류가 간단없이 전개돼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올 들어 남북 예술단의 상호 방문 공연이 자연스럽게 정상회담의 물꼬를 터 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판문점 선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번 선언으로 아시안게임 공동 참가와 중단된 겨레말큰사전 등의 사업은 빠르게 속도를 낼 조짐이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9년 중단된 남북 언어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공동 학술대회도 서둘러 재개되기를 바란다. 남북 언론인 토론회, 남북 언론인 대표자회의도 다시 이어져야 한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여간한 바람에는 넘어지지 않는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꾸준한 민간 문화 교류가 한반도 평화의 잔뿌리 역할을 해야 한다. 학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등이 두루 나서고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아낌없이 지지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 [서울광장] 돈 되는 책방, 밥 되는 시/황수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돈 되는 책방, 밥 되는 시/황수정 논설위원

    어금니를 앙다물어도 아래턱이 소스라치던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맹추위에 새파래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 경기도 일산의 동네서점 ‘책방 이듬’. 열두 평 작은 공간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은 서로 초면이다. 시 읽기 모임이 있다는 페이스북의 정보를 함께 나눴을 뿐이다. 와야 할 황인숙 시인은 몸살로 두 시간째 지각이다. 그래도 누구 하나 낯을 붉히지 않는다. 한쪽에 앉았던 말쑥한 노신사가 책방 주인(김이듬 시인)에게 기타를 청하더니 줄을 고르고 노래를 불러 준다. ‘모란동백’이다. 그제야 누군가 그를 알아봤다. 저쪽 구석에서 낮은 탄성이 터진다. “아, 이제하 선생님….” 딸 같은 시인의 책방을 응원해 주려고 이제하 시인이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찾아왔다. 스카프가 멋진 팔순의 신사가 시, 소설, 그림을 넘나드는 전방위 원로 작가인 줄을 사람들은 몰라봤다. “환갑 때 내가 짓고 부른 노래인데, (가수) 조영남이 하도 졸라서 줬더랬지.” 사람들의 손놀림이 부산해졌다. 탁자 아래로 휴대전화를 살짝 내려 멋쟁이 노시인의 이력을 빠르게 훑는 눈치다. 시가 스스로 날개를 달아 영토를 넓히는 순간이다. 골목 귀퉁이에 작은 책방들이 문 열고 있다. 서점은 사라진다는데, 책방은 싸목싸목 돌아온다. 서점과 책방은 한눈에도 차이가 있다. 목 좋은 자리에 기세등등 버틴 것은 기업형 서점. 동네 모퉁이에 소리 소문 없이 쓱 스며드는 것은 책방이다. 서점은 “책 읽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든다”며 초조해하고, 작은 책방들은 “책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놀란다. 동네 책방이 올 들어 전국에 일주일에 한 개꼴로 생긴다는 통계가 있다. 책방에는 시중에서 잘나가는 베스트셀러가 없다. 힘센 출판사들이 물량 공세하는 기획서가 아니라 책방 주인의 독서 취향으로 ‘소심하게’ 서가가 채워진다. 김이듬 시인의 책방에는 시집만 꽂혀 있는 식이다. 책방들의 최근 동향에서 주목할 것은 단순한 산술적 증가세가 아니다. 유의미한 대목은 자발적 문학 인구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책방이 시나 소설 읽기 모임을 공지하면 2만~4만원짜리 티켓 수십 장은 금세 동난다. 책방 주인들을 기획취재로 여러 명 만났다. 그들은 “문학 이벤트를 찾는 사람들은 등단하려는 습작생이 아니다”라고 했다. 세탁소, 빵집이 평범한 동네 풍경이듯 그저 책방이 이웃집이라는 이유로 아마추어 탐서주의자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이것은 ‘동네발(發)’ 문학운동이다. 예민한 현업 작가들은 이런 조짐을 피부로 읽고 자극받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교통비만 달라며 동네 책방 책 읽기 모임을 자청하고들 있다. 구멍가게 같은 동네 책방들이 유명 작가들을 줄줄이 호출할 수 있는 숨은 진실이다. 이쯤에서 요령부득의 정책을 도마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동네 책방을 거점으로 문화운동의 싹이 맹렬한데, 정책의 손발은 답답할 만치 굼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동네 서점을 돕겠다는 청사진을 꺼냈다.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수준이다. 만나 본(입소문 높은) 책방 주인들 중에 정부의 정책 담당자가 한 번이라도 찾아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턱없이 낮은 마진을 강요당하는 유통 구조는 무엇보다 숨 막히는 벽이다. 반품을 할 수 없어 안 팔리는 책은 전부 책방 주인의 몫이다. 이런 문제를 정책으로 살펴 줘야 동네 책방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 반응이 없으면 처방을 바꿔야 한다. 성인 열 명 중 네 명이 지난해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고 문체부는 잊지도 않고 또 발표했다. 대책 없이 식상한 조사에 뭣 하러 자꾸 돈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책방 창업을 문의하는 전화가 현장에는 줄 잇는다. 동네 책방이 몇 개인지, 독점 출판 유통망에 멍들고 있지나 않은지 현황부터 빨리 짚어 줘야 한다. 국립한국문학관을 어디에다 짓네, 어느 문학단체가 예산 지원을 얼마밖에 못 받았네, 이런 입씨름들을 지치지도 않고 하고 있다. 의미 없고 촌스럽다. 자생적 문학운동이 실핏줄로 퍼지는 동네 책방에서 보자니 정말 그렇다. sjh@seoul.co.kr
  • [자치광장] 법 문턱을 낮춘 서울시 마을변호사/이영기 서울시 정책기획관

    [자치광장] 법 문턱을 낮춘 서울시 마을변호사/이영기 서울시 정책기획관

    변호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평범한 사람이 소송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설령 억울한 일이 있거나, 불안한 일이 있어 법률 서비스를 원할 때 마트에서 물건을 사듯이 편하게 이용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변호사를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은 법이 어렵고 일을 맡기려면 한 번에 최소 몇백만원이 든다는 점을 무시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 누구든지 쉽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바로 서울시에서 하는 ‘마을변호사’다. 시민들은 법률적인 문제가 있을 때 언제든지 가까운 동주민센터를 찾으면 된다.서울시는 2014년 19개 자치구 83개 동주민센터에 마을변호사를 위촉, 시범 운영을 했다. 반응이 좋아 지난 7월 1일 서울 시내 전 자치구 424개 모든 동주민센터에 마을변호사 803명을 위촉했다. 동주민센터별 변호사 1~2명씩을 배치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마을변호사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변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서울시에서 재능 기부를 통해 마을변호사 참여를 요청했을 때 1000명의 변호사가 동참했다. 참여 변호사들은 법률 전문가로서 사회 참여에도 관심이 많고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과 교감에도 관심이 많다. 둘째, 정기 상담일 지정이다. 서울시는 모든 동에서 매달 590회 정기 상담일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은 그중 편리한 시간대를 택해 동주민센터를 찾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동주민센터에서 무료로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변호사가 2만명을 돌파해 공급 과잉을 걱정하지만, 시민들은 변호사 만나기가 쉽지 않다. 시민들이 변호사를 만나고자 할 땐 멀리 사무실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 시내에는 변호사가 없는 동이 상당하다. 지역적으로 편중돼 서초구와 강남구에 전체 변호사 50%가 집중돼 있다. 마을변호사는 이처럼 지역에 따라 법률 서비스 불균형을 해소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제는 서울시 마을변호사를 통해 법률 상담의 인식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 사전에 예방하면 큰 수술을 면할 수 있듯 마을변호사를 찾아 효과적인 상담을 통해 거액의 소송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법은 우리 사회의 실핏줄과 같다. 시민들이 필요할 때 적절한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을변호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있지만, 시민들이 생활 주변에서 편하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가을, 그리움에 물들다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가을, 그리움에 물들다

    가을이 시나브로 깊어 갑니다. 북적대는 본격 단풍철보다 외려 요즘이 나들이하기에 더 낫지 싶습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오지의 풍모를 가진 곳을 찾는다면 강원 횡성이 어떨까요. 봉황의 울음소리 들린다는 봉명폭포까지 짧은 산행을 즐겨도 좋겠고, 백덕산의 옛 42번 국도를 따라 산길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겠습니다. 안 가면 손해인 태기산, 물안개로 수채화 같은 풍경을 펼쳐내는 횡성호도 있지요.먼저 봉명(鳳鳴)폭포부터. 발교산 자락에 깃든 폭포다. 횡성에서 가장 큰 폭포라는데, 과문한 탓에 여태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 한자를 알면 이름 풀이는 쉽다. 계곡수 흐르는 소리가 봉황(鳳)의 울음소리(鳴)를 닮았다는 폭포다.●봉황 울음소리 닮았다는 봉명폭포… 걷다 보면 야생화 천지와 조우 폭포의 들머리는 고라데이 마을이다. 고라데이는 골짜기란 뜻의 사투리다. 오래전엔 한국전쟁도 모르고 지낼 만큼 오지였다는 마을이다. 이런 곳이 서울에서 불과 1시간 40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는 게 놀랍다. 도로가 사통팔달로 뚫린 요즘엔 알음알음 찾는 도시인을 상대로 화전민, 심마니 등 산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폭포로 오르는 길섶은 야생화 천지다. 벌개미취가 어린아이 이처럼 가지런한 꽃잎을 선보이고, 물봉선과 산괴불주머니 등도 뒤질세라 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숲에 들면 곧 휴대전화가 불통이다. 그러니 휴대전화 배터리를 아낄 요량이라면 숲에 들기 전에 전원부터 꺼 둘 일이다. 제비 닮은 명맥새가 슬피 울었다는 ‘명맥바위’를 지나면 길은 곧 계곡과 능선으로 갈라진다. 왼쪽은 계곡, 오른쪽은 능선을 따라 걷는다. 어느 곳으로 가도 봉명폭포에 닿지만, 계곡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다소 수월하다. 숲은 활엽수 일색이다. 늦가을이면 불붙는 듯한 단풍을 선보이지 싶다. 들머리에서 봉명폭포까지는 30분 정도면 족하다. 천천히 걸어도 그렇다. 이끼 낀 작은 폭포 몇 개를 지나면 곧 봉명폭포다. 멀리서 거대한 암벽을 타고 폭포수가 쉼 없이 떨어져 내린다. 횡성에서 가장 큰 폭포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작은 숲이 숨겨둔 폭포치고는 제법 기골이 장대하다. 폭포 옆으로는 불퉁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쳤다. 암벽 표면은 초록빛 이끼 일색이다. 봉명폭포를 달리 이끼폭포라 부르는 건 저 모습 때문일 터다. 폭포의 높이는 30m 정도다. 폭포수가 3단으로 굽이치며 쏟아져 내린다. 수량은 많지 않다. 가을철 갈수기에 접어든 탓이다. 하지만 폭포수의 소리는 더없이 청량하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숲의 나뭇잎들을 흔든다. 누군들 봉황의 울음소리 들어봤으랴. 저마다 마음에 담아 두는 게 봉황의 소리일 터다. 이제 가을이 내려앉은 횡성의 옛길을 찾아나설 차례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옛 42번 국도다. 옛길은 백덕산 자락에 남아 있다. 백덕산은 횡성과 평창, 영월 등 3개 군에 걸쳐 있다. 높이는 1350m. 제법 큰 산이다.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으로 이름난 산이기도 하다. 능선 곳곳에 단애를 이룬 기암괴석과 단풍이 제법 잘 어우러진다.●42번 국도 옛길 8㎞ 명품숲길선 소나무·낙엽송 어우러진 풍경 반겨 옛 42번 국도는 한때 강릉과 서울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더 이전엔 ‘관동대로’라 불리기도 했다. 안흥은 둘 사이의 중간쯤에서 번성했다. 지금은 안흥의 명물이 된 찐빵 역시 당시엔 여행자와 인근 주민들이 즐겨 먹던 먹거리였을 터다. 그러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뚫렸고, 새 길에서 나앉은 안흥도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옛 42번 국도는 숲 사이에 겨우 명맥만 남아 있다. 이 길을 따라 한때 시외버스가 평창까지 오갔다는 게 좀체 믿기지 않는다. 그 흔적이 평창과의 경계 지역 고갯마루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옛길 중간쯤에 ‘명품숲길’이 있다. 상찬의 표현이 아닌 실제 이름이 명품숲이다. 산림청이 솔숲 사이 능선을 따라 조성했다. 숲길은 얼추 8㎞ 거리다. 대개 평탄한 길이어서 걷기는 수월한 편이다. 전 구간을 도는 게 가장 좋지만 초입까지만 가도 소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횡성 동북쪽의 병지방 계곡 임도도 가을 산책에 딱 좋다. 각종 낙엽활엽수와 낙엽송 우거진 숲길이 줄곧 이어진다. 무엇보다 적요해서 좋다. 여름철이면 제법 많은 피서객이 계곡을 찾지만 임도까지 들어오는 이는 드물다. 들머리에서 2㎞ 남짓 들어가면 나무 위에 ‘마음이 다한 곳 나!!’라는 이정표가 매달려 있다. 여기를 반환점 삼는 게 무난하다.●오르기 수월한 태기산에서 만나는 ‘인생 풍경’ 해넘이 횡성에서 태기산(1261m)을 빼놓으면 손해다. 가을에는 더욱 그렇다. 일교차가 큰 가을 아침이면 태기산 주변으로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넘실대는 구름을 뚫고 정상까지 솟구쳐 오르면 발아래로 강원의 산들이 섬처럼 떠 있다. 비 갠 오후라면 더 좋다. ‘인생 풍경’이라 할 만큼 멋진 해넘이 장면과 마주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오르기가 쉽다는 것이다. 국도 6호선 양두구미재에서 임도를 타면 정상까지 단박에 오를 수 있다. 거리는 약 4㎞다. 임도 곳곳에서 만나는 전망도 빼어나다. 태기산 주변으로 탐방로가 조성됐다. 올가을에 처음 선보인 길이다. 12.4㎞ 길이의 탐방로는 3개 구간으로 나뉜다. 풍력발전6호기에서 시작되는 1코스(2.5㎞) 청정자연체험 구간, 태기분교터에서 출발하는 2코스(4.5㎞) 역사문화체험 구간, 송덕사가 들머리인 3코스(6.9㎞) 자연명소 트레킹 구간 등이다. 구간마다 목재 데크를 깔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데크 주변에 가을 야생화도 심었다.●물안개 어우러진 횡성호 산책 즐기기 딱 좋아 물안개와 호수가 어우러진 수채화 같은 가을 풍경과 만나려면 포동교를 찾으면 된다. 횡성호를 따라 놓여진 여러 다리 가운데 하나다. 가을 아침이면 거의 예외 없이 다리 주변으로 물안개가 영근다. 호수를 에두른 소로를 따라 산책을 즐기기 좋다. 포동교 인근에 ‘망향의 동산’이 있다. 횡성댐 수몰민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횡성호 둘레길 가운데 가장 풍경이 빼어나다는 5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9세기 말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금삼층석탑 2기도 이곳에 있다. 한 곳만 더 덧붙이자. 청일면 고시리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2014) 촬영지가 있다.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480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다. 주인공은 무려 76년 동안 해로한 고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다. 노부부는 어딜 가든 ‘커플룩’(한복)을 입었고, 두 손 꼭 잡고 다녔고,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으며 걷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촬영지 풍경은 수수하다. 아마, 사랑도 그럴 것이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봉명폭포 들머리는 고라데이 마을(344-1004)이다. 이정표를 따르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고라데이 마을에서 숙박 시설도 운영한다. 백덕산 옛 42번 국도는 상안리가 들머리다. 내비게이션에 횡성군 서동로상안10길이나 소나무낙엽송명품숲을 입력하면 찾을 수 있다. 옛 국도 주변으로 임도가 실핏줄처럼 나 있다. 주로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산길이다. 사륜구동 차량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지만 임도가 워낙 길고 되돌릴 곳도 마땅하지 않은 만큼 초행자라면 옛 국도 주변만 편하게 돌아보길 권한다. 병지방 계곡 임도는 오토캠핑장 못 미처 시작된다. 이정표가 작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임도가 매우 좁아 차는 주변에 세워 두는 게 좋다. →맛집:횡성 하면 역시 한우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은 횡성축협에서 운영하는 축협한우프라자다. 횡성 읍내의 본점(343-9908)과 새말점(342-6680), 둔내점(345-8888) 등이 있다. 운동장해장국(345-1770)은 한우 해장국을 잘한다. 횡성종합운동장에 있다. →축제:제11회 안흥찐빵축제가 13~15일 안흥면 안흥찐빵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찐빵을 주제로 안흥찐빵 주제관과 찐빵 만들기 체험, 찐빵 많이 먹기 대회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놀거리를 준비했다. 안흥찐빵을 무료로 시식할 기회도 마련했다. 안흥찐빵은 막걸리로 발효해 차지고 구수하다. 특히 대부분 업소들이 여태 손으로 빚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맛과 풍미가 깊다. 안흥찐빵축제위원회 340-2703.
  • 혼자 또는 함께… ‘벽화마을’ 따라 걸어볼까

    혼자 또는 함께… ‘벽화마을’ 따라 걸어볼까

    가을. 걷기 좋은 계절이다. 한국관광공사가 10월에 걷기 좋은 길 9곳을 선정했다. 주제는 벽화따라 걷는 길이다. 한가위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걸어도 좋고, 친구끼리, 혹은 혼자서 차분하게 걸어도 좋겠다.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인천둘레길 11코스(인천 중구)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그럴수록 우리는 연탄이나 산동네 등 희미해져가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인천둘레길 11코스는 ‘연탄길’이라 불린다. 이름만으로도 연탄이 가득 쌓인 골목길을 누비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연탄길’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아직 붙잡고 있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미로 같은 산동네 풍경이 아직도 남아있다. 코스는 도원역을 출발해 우각로문화마을~인천세무서~금창동주민센터~창영초등학교~배다리 헌책방거리~송현근린공원~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동인천역 순으로 돈다. 거리는 5.2㎞ 정도다.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032)433-2122. 2. 묵호 논골담길 1~3길 (강릉 동해시)묵호항에서 언덕 위 등대까지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는 묵호등대마을은 전형적인 달동네다. 비록 집은 비좁지만 바다를 마당으로 삼은 덕에 조망이 시원하다. 마을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는 강렬한 리얼리티가 담겨 있다. 지역 화가들이 머구리, 어부 등 실제 주민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따라 이어진 논골담1길~2길~3길~묵호등대 순으로 이어서 걸으면 좋다. 거리는 1㎞ 정도다. 동해시 문화관광과 (033)530-2232. 3. 바우길 5코스 바다 호숫길 (강원 강릉시)강릉 바우길 5구간 바다호숫길은 경포호와 4㎞에 걸쳐 이어지는 해송숲길의 청신함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에 커피향 그윽한 안목해변과 금강소나무 숲길이 함께 어우러진다. 최근 조성된 안목항 ‘버스 타는 그림골목’도 이 코스에 있다. 5코스의 북쪽 끝인 사천진항은 강릉 물회의 진원지이다. 식도락가들에게도 권할만하다. 사천해변공원을 출발해 경포인공폭포~경포대~허난설헌기념관~강문해변~송정해변쉼터~강릉항(죽도봉)~솔바람다리~남항진 순으로 돌아본다. 거리는 16㎞. 강릉시 관광과 (033)640-5126. 4. 마비정 누리길 1~3코스(대구 달성군)마비정누리길은 마비정벽화마을을 기점으로 삼필봉, 가창 정대리, 화원자연휴양림을 각각 종점으로 하는 3개의 코스로 나뉜다. 말(馬)과 관련된 아련한 전설이 있는 마비정누리길의 중심은 마비정벽화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1960~70년대의 농촌의 풍경과 시대분위기를 토담과 벽담을 활용해 표현했다. 마을 안쪽의 사랑나무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1코스(마비정벽화마을~삼필봉)는 1.5㎞, 2코스(마비정벽화마을~가창 정대리) 5.5㎞, 3코스(마비정벽화마을 ~ 화원자연휴양림) 1.4㎞다. 달성군청 관광과 (053)668-3913. 5. 대구 골목투어 4코스 삼덕 봉산 문화길(대구 중구)골목투어는 대구의 원도심이라 불리는 중구의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골목길이다. 동네와 동네를 실핏줄처럼 이어주는 골목에서는 잊혀진 대구 역사,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그 가운데 4코스 삼덕 봉산 문화길은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길이다. 요즘 한창 뉴스의 중심에 있는 김광석길 등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출발해 삼덕동문화거리~김광석길~봉산문화거리~대구향교~건들바위 순이다. 거리는 약 5㎞. 대구 중구 관광개발과 (053)661-2624. 6. 느린꼬부랑길 1코스 옛이야기길(충남 예산군)느린꼬부랑길은 슬로시티로 지정된 대흥마을 곳곳을 누비는 길이다.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이 마을에서 유래했다. 느린꼬부랑길 1코스 옛이야기길은 의좋은 형제 공원에서 시작해 되돌아오는 코스다. 소소한 시골마을 풍경과 봉수산 중턱에 자리한 봉수산자연휴양림에서 바라보는 예당저수지 풍경, 동헌 앞에 자리한 의좋은 형제 이야기 등 슬로시티 대흥의 다양함을 만나게 된다. 예당저수지의 물결처럼 한적한 마을에는 벽화가 소박하게 그려져 있어 옛 풍경을 더해준다. 코스는 방문자센터~관록재들~봉수산자연휴양림~애기폭포~대흥동헌~방문자센터다. 거리는 5.1㎞. 대흥슬로시티 방문자센터 (041)331-3727. 7.도란도란 시나브로길 1코스(전북 전주시) 도란도란 시나브로길은 전주 한옥마을 남쪽에 있는 전주한벽문화관을 출발해 남고산성 너머 원당마을로 내려섰다가 전주천 둑길을 따라 다시 한옥마을(전주향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걷기길이다. 골목마다 재미있는 벽화들이 숨어 있는 옥류마을, 자만마을 등이 이 길의 절정이다. 특히 자만벽화마을은 글로벌한 스토리들이 벽화로 그려져 골목마다 명화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5년 전 어떤 화가가 남은 페인트를 재활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40호 이상의 집 담벼락과 대문이 갤러리로 변했다. 코스는 한옥마을(전통문화관)~남천교~산성벽화마을~관성묘~분기점~천경대~만경대~억경대~분기점~원당마을~전주천~천주교성지~전주자연생태박물관~한벽당~자만마을~오목대~향교다. 거리는 12㎞다. 전주 문화관광 콜센터 (063)222-1000. 8. 양림동 둘레길(광주 남구)광주 양림동 둘레길은 경주 ‘황리단길’과 함께 요즘 뜨고 있는 도심 골목이다. 근대역사문화마을로도 유명한 양림동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벽화로 수를 놓았다. 심지어 PC방 벽에도 근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19세기 초 이곳에 자리 잡은 미국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으며,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그 중 백미다. 또 구한말에 지어진 고래등같은 한옥과 소박한 민가, 모던한 문화 공간이 걷기 여행자를 유혹한다. 코스는 양림동 커뮤니티 센터~광주 정공엄지려와 충견상~이장우 가옥~최승효 가옥~뒹굴동굴~양림파출소~양파정~통기타거리~사직공원산책로~충현원~다형 김현승 시비~선교사묘원~우일선 선교사 사택~피터슨 선교사 사택~호랑가시나무~커티스 메모리얼홀~3.1만세운동 기념동상~수피아홀~윈스브로우홀~푸른길~정율성 거리~정율성 생가~3.1만세운동 발상지~오웬 기념각~어비슨 기념관이다. 거리는 4.5㎞. 광주 남구청 문화관광과 (062)607-2331. 9. 우수영 강강술래길(전남 해남군)우수영강강술래길은 임진왜란 당시 해전사에 영원히 남을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과 조선 수군의 본영이었던 전라우수영을 잇는 길이다. 걸음마다 충무공과 조선 수군 그리고 민초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우수영마을은 골목마다 벽화, 조형작품, 작은 갤러리 등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코스는 울돌목물살체험장~울돌목해안데크~전라우수영~강강수월래전수관~우수영유스호스텔~청룡산쉼터정자~충무사연리지~충무사~우수영해안데크~우수영항~법정스님생가~방죽샘~명량대첩비~우수영5일장~망해루다. 거리는 7.3㎞. 해남군 관광안내 (061)532-1330.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금요 포커스] 길 열리는 새만금, 그 이후에는/송하진 전북도지사

    [금요 포커스] 길 열리는 새만금, 그 이후에는/송하진 전북도지사

    지난달 26일 새만금 남북도로가 착공됐다. 남북도로 공사 구간은 12km, 약 30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길이 내 눈엔 우리 국토와 서해를 잇는 미래의 길처럼 느껴졌다. 공사 시작을 알리는 축포에 가슴이 크게 뛰었다. 남북도로는 새만금 산업단지와 국제협력용지, 관광레저용지로 진입하는 도로다. 이미 조성 중인 동서도로와는 새만금 중심에서 교차한다. 광활한 새만금을 가로지르는 대동맥인 셈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생겨갈 내부도로망은 물자와 사람을 새만금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실핏줄 역할을 할 것이다. 길은 필연적으로 문명을 잉태한다. 새만금을 가로지르는 길들, 이 거대한 대동맥과 촘촘한 실핏줄 위로 도민의 삶을 살찌울 문화와 산업들이 속속 채워지리라. 내부 개발을 기다려 온 30년의 세월이 이제는 정말 체감 가능한 성과로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가 솟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기대를 더욱 키운다. 대통령은 도민들에게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허브이자 환황해 경제권의 거점으로 키우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공공주도 매립, 국제공항과 신항만 등 물류교통망 조기 구축 등 도민과의 약속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 명시되기까지 했다. 정부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우리도 정부와 함께 뛸 채비를 마쳤다. 이미 우리 도는 새만금의 가치를 키울 농생명, 해양관광, 금융, 국제비즈니스 산업의 청사진을 그려 왔다. 정부의 약속대로 공공이 용지 매립을 주도하고 육해공을 잇는 물류 교통망이 정비되면 새만금은 중국을 포함해 15억 동북아시아 시장으로 나아가는 가장 빠르고 넓은 길로 발전할 것이다. 중국의 서진(西進)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바닷길인 ‘일로’에 동승하는 해상 무역로로서 새만금의 기능도 기대된다. 북한으로 인해 사실상 ‘일대’로의 진입이 불가한 우리 실정에서 환황해의 중심에 놓여 있는 새만금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 경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서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제조업과 첨단산업이 혼재한 시기이기에 새만금의 매력은 더욱 커진다. 새만금은 빈 도화지나 다름없다. 어떤 산업이든 가능하고 어떤 일자리든 창출할 수 있다. 도로와 신공항, 항만 등 기반시설과 그 위에 피어날 각종 산업과 첨단 ICT, 농생명산업 등, 건설업에서부터 첨단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새만금은 업종을 불문한 다양한 일자리의 산실이 될 수 있다. 새만금은 제1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핵심 공간이 될 만한 잠재력을 충분히 갖췄다. 그러나 이 모든 기대는 여전히 상상에 불과하다.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다. 지난 30년 동안 수없이 겪어온 일이다. 그렇기에 환상에 흔들리지 않고 어려움에 넘어지지 않을 자신도 있다. 전북에 온 기회를 이번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도 커진다. 새로운 길 위에서 연암 박지원을 떠올렸다. 연암은 조선이 가난한 이유를 ‘수레’에서 찾았다. 그는 ‘나라가 가난한 것은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사대부들은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연암의 일갈에서 새만금을 누빌 수레는 과연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한다. 수레의 존재 이유는 원활한 이동과 교류에 있다. 그렇다면 새만금에 필요한 수레란, 사람과 돈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공공 투자를 확대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정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즉, 새만금의 길이 금빛 미래의 길이 되려면, 길을 내는 일뿐 아니라 ‘투자와 규제완화’라는 탄탄한 두 바퀴를 갖춘 수레를 만드는 데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길과 수레를 함께 만드는 일이야말로 늦춰진 새만금의 내부개발을 앞당길 수 있는 첩경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닫혔던 새만금의 길이 열리고 있다. 모두들 속도를 이야기한다. 속도를 제대로 내려면 길과 다닐 수레의 규격부터 꼼꼼히 챙겨야 한다. 새만금을 향한 정부의 의지가 ‘길’뿐만이 아니라 ‘수레’에까지 고루 이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끝없는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 음악·영화·3D… ‘융합 예술’의 하이라이트

    음악·영화·3D… ‘융합 예술’의 하이라이트

    명품업체들은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관리를 위해 문화예술 후원에 적극적이다. 프랑스 명품업체 카르티에도 현대미술 후원을 위해 1984년 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방법은 아주 다르다. 전시를 후원하거나 유명 작가의 소장품을 구입하는 일반적인 미술재단과는 달리 전시될 작품의 제작을 의뢰하는 ‘커미션’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이렇게 제작한 작품을 소장한다.독창적 기획과 학제적인 작업으로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확장해 온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주요 소장 작품들을 보여 주는 ‘하이라이트’전이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50개국 350명 작가의 작품 1500점 가운데 핵심적인 작업 100여점을 골라 소개한다. 소장품 가운데 유일무이한 작품들, 다양한 학제적 프로그래밍을 통해 제작된 독창적인 작업들, 작가 커미션 작업들을 모았다. 생태음향 전문가, 과학자, 음악가로 활동해 온 미국의 버니 크라우스와 영국의 컬렉티브 그룹 유브이에이(UVA)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진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는 학제 간 협업과 융합예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크라우스는 전 세계 육지 및 해상동물 1만 5000여 종의 소리를 포함해 총 5000시간이 넘는 자연 서식지의 소리를 50년 가까이 녹음했다. 그룹 유브이에이는 그 녹음된 데이터를 빛 분자로 변환한 뒤 3차원 설치물로 구현했다. 캐나다,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해양지대의 일곱 가지 사운드스케이프가 벽을 타고 서서히 흘러가며 소리를 통해 원초적인 자연을 느끼게 해 준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의 개념에 기반해 뉴욕 건축가 그룹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가 제작한 비디오설치작업 ‘출구’는 데이터에 기반해 인구이동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레이몽 드파르동이 아내 클로딘 누가레와 함께 제작한 영화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는 2008년 카르티에 재단이 기획한 전시 ‘원주민의 땅, 추방을 멈춰라’에 소개된 작품이다. 유목민, 외딴섬의 주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디언 종족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뿌리, 인구와 땅의 문제, 언어, 역사 문제를 다룬다. 호주 출신의 작가 론 뮤익의 극사실주의 조각은 매혹적이고 충격적이다. 걱정스러운 눈빛의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을 가로 6.5m, 세로 1.6m, 높이 3.9m의 거대한 크기로 만든 ‘침대에서’, 실제보다 작게 만든 ‘쇼핑하는 여인’과 ‘나뭇가지를 든 여인’은 크기와 무관하게 실핏줄부터 주름, 머리카락, 피부톤까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세계적인 프랑스 SF 만화가 뫼비우스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과 드로잉작업, 중국작가 차이궈창이 화약 퍼포먼스로 제작한 작품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재단의 작가 레지던시 출신으로 세계적 예술가로 성장한 프랑스의 장 미셸 오토니엘의 초기작업과 콩고민주공화국 작가인 셰리 삼바의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회화작품도 있다. 미술작가로도 활동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더 이름을 떨친 유명인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꽃과 동물을 연관시킨 꽃병 연작을,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드로잉작업과 석판화(리소그래프) 작품을 보여 준다. 미술가 겸 음악가 패티 스미스의 설치작품 ‘산호초 바다의 방’은 스미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89년 사망)에게 헌정했던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알베롤라와 마크 쿠튀리에는 미술관 내의 라운지 벽에 월 드로잉작업을 했고 미국 작가 세라 지는 1999년 카르티에재단 공간을 위해 제작했던 대규모 설치작품을 재구상해 설치했다. 영화감독 박찬욱과 작가 박찬경으로 구성된 예술가 듀오 파킹찬스는 이번 전시의 커미션 작품으로 몰입형 3D 이미지 영상설치작업 ‘격세지감’을 선보이고 있다. 박 감독의 작품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오픈세트를 17년이 지난 현재 3D 영상으로 촬영하고 실제 영화의 소리를 입혀 색다른 시각적, 지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웹툰작가 선우훈은 현재 서울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에 대한 리포트 형식으로 웹툰을 만들어 전시장과 온라인에서 상영한다. 작가 이불이 2007년 파리 카르티에재단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 ‘천지’도 소개된다. 전시는 무료이며 오는 8월 15일까지 계속된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정다우리, 우리네 인생…전북 정읍의 전통장 ‘샘고을시장’을 가다

    정다우리, 우리네 인생…전북 정읍의 전통장 ‘샘고을시장’을 가다

    곳곳에 들어선 대형마트로 인해 많은 전통시장들이 쇠락해 가고 있다.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과 큰 온도 차를 보이는 전통시장을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해 온 전통시장이 있다.●100년 동안 한자리 지키며 서민 애환 지켜 봐 전북 정읍의 ‘샘고을시장’은 1914년에 문을 연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시장이 있던 자리에 샘이 많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이곳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백 년의 세월, 시장 점포들은 현대화되고 도로도 새로 깔렸지만 시끌벅적, 활기찬 시장 풍경은 예전 그대로다. 긴 역사를 이어온 만큼 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진하게 녹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오래된 방앗간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다. 소문난 곡창지대답게 스무 개 남짓 방앗간들이 모여 있는 곳. 어릴 적부터 방앗간 일을 배우기 시작한 대동방앗간의 안정삼씨는 50년 가까이 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방앗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추세지만, 이곳은 활기 넘치는 기계 소리와 함께 이웃 전주에서도 단골 아지매들이 무리지어 찾아온다.시장 통의 민속대장간 역시 6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정개동씨는 숙부로부터 물려받은 백 년 넘은 공구들 옆에서 호미를 만드는 작업에 빠져 있다. 정씨는 “기계로 만들면 한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지만 하루 종일 함마질을 해서 만든 것만 못하다”며 작업을 계속했다. 나형식씨의 뻥튀기 가게 앞은 뻥~ 뻥~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경하는 아이들로 늘 북적인다. 그는 틈날 때마다 시를 쓴다. 콩을 튀기러 온 손님들의 모습에서도, 눈 쌓인 시장 골목길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나씨는 “곡식을 튀길 때마다 시를 함께 튀기고 있다”며 시적(詩的)으로 말했다.●50년 된 방앗간·60년 된 대장간… 아낙네의 놀이터 시장의 터줏대감인 장금순 할머니는 3대째 같은 자리에서 순댓국집을 하고 있다. 수십 년 단골손님들의 애정은 한결같다. 순댓국으로 점심을 먹고 있던 김옥실씨는 “어릴 적 아버지 손잡고 와서 먹었던 그 맛과 지금의 맛이 변함이 없어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10여곳이 한 집 건너 한 집씩, 방앗간 수만큼 많은 미용실은 장 보러 온 아낙네들의 놀이터이자 사랑방이다. 참깨나 들깨, 떡쌀, 고추, 쑥 등을 방앗간에 맡겨 놓고 기름이 짜지고 떡이 쪄지는 동안 꼬불꼬불 멋내기 파마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 사람들과 자식 자랑 등 수다 삼매에 빠진다.이처럼 백 년의 세월을 지켜온 전통시장엔 시장을 찾는 이들의 추억과 정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상인들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통시장이 점차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고광호 시장상인회장은 “먹거리 시장을 활성화하고 친절함을 더해 관광객들을 도심 전통시장으로 유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우리 재래시장이 살아남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은 문화와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지역경제의 실핏줄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지친 도시인들의 삶까지 위로하는 다채로운 문화의 장과 쉼터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정읍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종로 뒷골목 인사동, 옛 시간을 더듬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종로 뒷골목 인사동, 옛 시간을 더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중략)…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 ‘귀천’ 中 일부) 천상병(千祥炳·1930∼1993) 시인은 세상에 소풍 나왔다가 그렇게 갔다. 독일 유학을 하였던, 서울대 상대 동기로부터 막걸리 값 몇 번 받아썼던 게 빌미가 되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이다. 막걸리 값은 어느덧 ‘간첩자금수수’라는 죄목으로 그를 전기고문 의자에 앉혔다. 친구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막걸리 값 얻어 술 마시고 시 쓰던 천상병은 졸지에 간첩이 되고 만다. 진정한 블랙코미디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수사일지에는 “100원 내지 6500원씩 도합 5만여 원을 갈취 착복"한 무뢰한으로 천상병은 국가기관 기록에 남는다. 행려병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한 그를 따뜻하게 받아 준 여인이 바로 목순옥(1935~2010) 여사였다. 목 여사는 문인들의 도움으로 인사동에 작은 찻집을 하나 내고 생계를 이어 나간다. 문단에서 이름 석 자 대면 절 서너 번씩 받을 수 있던 문필가들도 인사동 거리에서는 결코 내로라하지 못했다 한다. 인사동 골목 골목에는 이런 저런 사연들이 상처 아문 실핏줄처럼, 보드라운 이야기길을 만들어 서울 한 복판을 흐른다. 1984년 11월 7일에 길이 0.7㎞, 너비 12m에 이르는 인사동길이 제정된다. 이후 인사동은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고, 1997년 4월 13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꾸며진다. 또한 1999년 7월부터 역사탐방로 공사를 하여 2000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현재의 인사동 길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인사동 길은 종로 2가에서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하지만, 예전에는 종로에서 태화관길(현재 태화빌딩)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또한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방(坊)은 조선의 행정구역 명칭으로 하나의 구획을 일컫는다. 인사동에 골동품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부터였으며, 1970년대까지 인사동은 한국전쟁 이후 흘러들어온 골동품을 거래하던 큰 골목이었다. 하지만 가짜 고서화 사건, 금당살인사건으로 인해 1980년대부터 인사동 골목은 골동품 가게들이 점차 토속음식점, 전통찻집,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판매점이 들어서면서 현재 인사동 모습의 원형을 만들었다. 현재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길을 가리키는 ‘매니스 앨리’(Many’s Alley)로 통하며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인사동 거리에서 눈여겨 볼만한 주요 유적지 및 전통 가게들이 몇 군데 있다. 최근에 스타강사인 설민석 강사의 룸살롱(?) 발언으로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옛 독립선언 유적지인 태화관(현 태화빌딩) 자리다. 사실 태화관은 원래 이완용의 집터였기에 삼일운동 때 그 조약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으로 여기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인사동 194번지인 이 곳에서 한용운 선생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또한 인사동 주요 유적지로는 경인미술관으로 운용되는 조선 철종 때 지어진 박영효 대감댁의 터,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는 승동교회,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15인 민가다헌, 조선시대 궁중 약재를 관리하던 전의감터, 한국 전통 회화의 요람이던 도화서터,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자결하였던 충정공 민영환의 집터가 있다. 인사동에는 거개 나름의 전통을 뽐내는 점방(店房)들도 많다. 1934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통문관, 국내 최초의 전각 전문 갤러리인 문정전각, 목조각상을 소장하고 있는 목인박물관, 인사동 대표명소인 쌈지길, 다양한 전시회를 만날 수 있는 인사아트센터, 한국 최고 김치박물관인 뮤지엄김치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들린 서예도구 판매점 명산당필방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가게와 전시관 등이 있다. 인사동 골목길을 걷는 맛은 나름 운치가 있다. 대로변 번화한 거리의 번잡함을 피해 잊혀진 옛 시간이 만든 길을 걷다보면 가슴 먹먹한 추억도 한량없다. 인사동 골목길은 길을 잃어도 또 다른 길을 만나게 한다.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다. <인사동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한 번은. 아직은 명맥이 살아있는 곳. 특히 외국인 친구가 있으면 필수!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출구 인사동 방면 도보 1분/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 안국동 방면 도보 7분 4. 감탄하는 점은? -골목 골목, 구석 구석에도 관광객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 볼거리가 풍부하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비해 점점 유흥업소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 추세. 인사동의 장소성과 문화경쟁력 제고의 방향으로 인사동 거리가 유지되어 함. 6. 꼭 봐야할 곳은? -쌈지길, 경인미술관 7.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남짓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insainfo.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낙원상가, 조계사, 탑골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인사동 들리기 전 반드시 북인사 관광안내소 나 남인사 관광안내소에 들러 나들이 장소 체크하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는 아무 생각 없이 나올 수 있는 곳. 구석 구석 볼거리 많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느릿느릿 섬을 품다 시나브로 쉼이 되다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느릿느릿 섬을 품다 시나브로 쉼이 되다

    전남 신안을 흔히 ‘천사의 섬’이라 부릅니다. 관내에 1004개의 섬이 있다 해서 그리 부르는 것이지요. 수많은 섬 가운데 ‘보물섬’이라 불리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증도입니다. 1975년 중국 송·원대의 유물들을 싣고 가던 난파선이 섬 앞에서 발견된 이후 이 같은 별명을 얻게 됐지요. 40여년이 흐른 지금, 증도의 보물은 드넓은 염전과 청정 갯벌로 바뀌었습니다. 2010년 증도대교가 놓여 뭍과 연결되면서 섬의 습속이 급속히 사라져 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느릿느릿 돌아보는 게 더 어울리는 곳입니다. 오가는 길에 지도와 사옥도를 잊지 말고 둘러보세요. 증도에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목 정도로 여겨지는 곳이지만, 뜻밖에 소박한 섬 풍경과 만날 수 있으니까요.●증도로 가는 들머리 지도… 삼암봉에서 굽어본 다도해 ‘장관’ 먼저 섬이 뭍과 연결된 역사부터 살피자. 1975년에 무안 내륙과 지도가 연결됐다. 이어 지도와 송도(솔섬)가 1982년, 송도와 사옥도는 2004년에 연결됐다. 사옥도와 증도를 잇는 증도대교는 2010년에 개통됐다. 이후 네 섬은 ‘뭍이 된 섬’이 됐다. 증도로 가는 들머리는 지도다.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이 간척 돼 합쳐지면서 지금의 지도가 됐다. 지도읍에 들어서면 낡은 풍경이 객을 맞는다. 특정한 시점에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풍경이다. 볕 좋은 댓돌 옆에선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얼굴 검게 탄 여자아이는 엄마의 심부름을 잊은 듯 시장 주변을 하릴없이 기웃댄다. 바다 건너온 봄이 마을 여기저기에 나른한 기운을 한껏 풀어놓은 게다. 섬 안에 도드라진 볼거리는 없다. 다만 바닷가 끝자락에 곧추선 삼암봉(196m)에서 굽어보는 다도해 경치만큼은 일품이다. ●작은 솔섬 지나 사옥도… 해안 곳곳 염전에 돌담 예쁜 동네 품어 지도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솔섬을 지나면 곧 사옥도다. 한때 모래가 많고 옥(玉)이 생산됐다 해서 사옥도라 불렸다고 한다. 사옥도 역시 하탑섬, 원달섬, 고동섬 등 주변의 크고 작은 섬을 연결하는 방조제를 쌓은 뒤, 제방 안쪽을 매립해 현재의 형태를 갖췄다. 섬 안에 10개가 넘는다는 방조제가 이 같은 역사를 방증하고 있다. 간척지는 대부분 염전으로 개발됐다. 해안 곳곳에 염전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섬 내 당촌리는 돌담이 인상적인 마을이다. 당촌 1, 2리 모두 아름다운 돌담을 두른 집들이 많다. 다만 당촌 1리는 산자락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 오가기 불편하고, 당촌 2리 돌담길 풍경이 좀 더 정겹다. 당촌 2리에서 후촌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엔 2기의 돌장승이 세워져 있다. 오래전 마을 입구를 지키던 목장승이 썩어 무너지자 일제강점기인 1917년쯤 지금의 돌장승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 안길엔 할머니 장승, 논배미엔 할아버지 장승이 각각 서 있다. 투박한 매무새에 짐짓 근엄한 체하는 표정이 정겹다.●대교로 연결된 증도엔 태평염전·짱뚱어 다리… ‘일품’ 해넘이 사옥도와 증도는 증도대교로 연결돼 있다. 다리가 놓여지기 전까지는 사옥도의 지삿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증도까지 들어가야 했다. 증도는 흔히 ‘보물섬’이라 불린다. 신안 앞바다에서 중국 송·원나라 때의 유물이 실린 난파선이 발견된 이후 붙여진 별명이다. 이후 40여년이 흐른 오늘, 증도의 보물은 청정 갯벌로 바뀌었다. 슬로시티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구역으로 지정된 후 찾는 이가 폭발적으로 늘었다.증도에 들면 먼저 태평염전부터 찾아간다. 서울 여의도의 두 배 크기로,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라고 한다. 염전 주변엔 소금창고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위성사진에도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건물 옆에 전신주가 하나씩 세워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소금창고 양옆으로는 광활한 염전이다. 태평염전 초입의 소금박물관 맞은편에 ‘소금밭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10분 남짓 다리품 팔아 오르면 장쾌한 태평염전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소금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은 옛 석조 소금창고다. 등록문화재(361호)로 지정돼 있다. 태평염전 너머는 증동리 갯벌이다. 430만㎡(13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갯벌 표면이 눈부시게 화사하다. 갯벌 아래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갯골에선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가 먹이활동에 한창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야생의 생명과 마주하다니, 뜻밖의 횡재다. 저어새는 종의 소멸이 코앞에 닥친 녀석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3000여 마리만 남았다. 밥주걱 닮은 부리를 좌우로 저어가며 갯것들을 사냥하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갯벌 위로는 ‘짱뚱어 다리’(470m)가 놓여 있다. 증도의 명물로, 짱뚱어가 뛰어가는 모습을 모티브로 조성됐다고 한다. 다리 한 끝은 우전해수욕장이다. 검은 갯벌과 모래 해변의 공존은 어디서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우전(羽田)은 ‘새 깃털 밭’이란 뜻. 예로부터 기러기가 한겨울을 지내고 간다 해서 ‘깃밭’이라고도 불렸다. 모래 해변은 길다. 곱디고운 모래가 4㎞ 이상 뻗쳐 있다. 해변 뒤는 해송 숲이다. 천천히 걷기에 맞춤하다. 증도는 섬 안 곳곳이 낙조 전망대다. 소금밭 전망대, 화도 노둣길, 짱뚱어다리 등에서 서정적인 해넘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면사무소 뒤편의 상정봉 역시 빼어난 낙조 포인트다. 한반도 모양이라는 우전해변의 송림을 볼 수 있는 곳도 여기다. 면사무소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증동리 마을과 멀리 태평염전이 내려다 보인다.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태평염전에서 남쪽으로 5㎞ 정도 내려가면 ‘꽃섬’ 화도(花島)다. 해당화가 만발할 때면 섬이 마치 꽃봉오리 같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머지않아 해당화가 꽃술을 열면 섬은 제 본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낼 터다. 꽃섬은 1.2㎞짜리 징검다리, 노두(頭)를 통해 증도와 연결돼 있다. 날물 때만 드러나는 길이다. 꽃섬 안에 장혁과 공효진이 주연한 드라마 ‘고맙습니다’ 촬영지가 있다. 섬의 서쪽, 방축리 쪽으로 가면 제법 험한 해안절벽들과 마주할 수 있다. 여기가 바로 600여년간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송·원대 도자기 등 2만 30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된 곳이다. 증도를 ‘보물섬’으로 만든 곳이기도 하다. 현재 ‘송·원대 유물매장해역’(국가지정문화재 사적 74호)으로 지정돼 있다. 신안해저유적발굴기념비 아래 전망대에 서면 도덕도 등 크고 작은 섬과 너른 남녘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함평분기점에서 무안광주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북무안나들목으로 나온다. 현경교차로에서 77번 국도, 수암교차로에서 24번 국도로 각각 갈아타고 지도, 사옥도, 증도 순으로 가면 된다. 태평염전 주변에 소금 스파, 소금 카페 등 다양한 시설이 몰려 있다. 소금박물관 275-0829. →잘 곳: 증도는 물가가 비싼 편이다. 특히 숙박시설이 그렇다. 증도대교가 놓인 이후 펜션이 십여개에 이를 만큼 늘었지만 숙박비는 녹록하지 않다. 민박이 6만원에 이르고, 펜션은 비수기 평일에도 십여만원을 훌쩍 넘긴다. 지도읍내에 모텔이 몇 개 있다. 일번지모텔(275-1327)이 비교적 싸고 깔끔한 편이다. 지도에서 증도까지는 승용차로 20분 가량 걸린다.→맛집: 증도면사무소 아래 이학식당(271-7800), 고향식당(271-7533) 등의 식당들이 몰려 있다. 갈낙탕, 낙지볶음, 병어조림 등 내놓는 메뉴도 비슷한 편이다. 짱뚱어를 추어탕처럼 끓여낸 짱뚱어탕은 그저 ‘별미’ 정도로 생각하는 게 좋다. 태평염전의 소금 아이스크림은 주전부리로 딱이다. 맛이 제법 ‘고급지다’.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열대 무더위 날린 ‘중정의 힘’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열대 무더위 날린 ‘중정의 힘’

    서울에 골목길이 있다면 베이징에는 후퉁(胡同)이 있고 방콕에는 소이가 있다. 방콕 시내 주요 간선도로의 어마어마한 교통 체증을 피해 택시며 툭툭이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듯 누비는 좁은 길이 바로 소이다. 그러나 소이가 단순 우회로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목적지에 가기 위한 유일한 길인 경우도 있다. 방콕의 도시 구조가 워낙 특이한 탓이다. 상식적으로는 큰 길 옆에는 큰 건물이, 작은 길옆에는 작은 건물이 있는 것이 맞지만, 이 도시에서는 어쩐 일인지 그런 관계가 잘 읽히지 않는다. 크고 잘 알려진 건물을 찾아가려는데 알고 보니 소이가 복합하게 얽힌 지역의 한복판에 있는 경우도 흔하다. 혹시 운전기사가 나를 속이고 엉뚱한 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순간 다 왔다며 내려 준다. 그러니까 소이는 사람 몸으로 치면 실핏줄이면서 동시에 대동맥·대정맥이기도 하다. ●서울에 골목길이 있다면 방콕에는 소이(soi)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소이 주변의 상황이 다채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무심히 바라본 소이는 초라하고 소란스러운 곳인지 모르지만, 어떤 곳은 놀랍도록 쾌적하고 조용하다. 잠시 길을 잃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고 걸어 다니다 보면 여기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할 정도로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마주칠 수도 있다. 그곳은 아주 유명한 호텔일 수도 있고, 전통 태국 요리를 가르치는 학교일 수도 있다. 혹은 태국에 둥지를 튼 외국인이 운영하는 여행 카페, 혹은 에어비앤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이야말로 방콕의 저 무궁무진한 상가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방콕의 상가주택은 너무 흔해서 이야깃거리조차도 안 되고 특별한 관광 명소로 기능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싱가포르나 쿠알라룸푸르 등과는 다르다. 아마도 소이를 따라 워낙 넓게 분포돼 있는 탓이겠지만, 이 상가주택은 아직도 방콕의 중요한 건축 유형으로 여전히 도시적 기능과 의미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결과 여전히 진화 중이다. 즉 계속해서 새로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한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사망한 지 불과 며칠 후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제단을 만들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 또한 어쩌다 보니 검은색 상의를 입었는데, 자기들의 슬픔에 외국인이 동참한다며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몇 년 전 필자의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귀국해 지금 방콕에서 자기 사무실을 하고 있는 폰 라오하수카셈과 그녀의 파트너인 나타퐁 비치칩이 고맙게도 사전 정보를 모으고 동행까지 해 주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아마도 스마트폰과 구글 지도가 없었으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방콕 토박이인 그들도 방향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방콕에는 소이가 많고 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소위 전근대적인 도시 구조의 한계를 첨단 기술로 극복하며 다닌 셈이었다. 역설적이지만 그 덕분에 오래된 도시 구조를 굳이 바꿀 이유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술은 없던 것을 만들기도 하지만 원래 있었던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기도 한다. ●‘Home+Office’의 약자로 지어진 건물 ‘호프’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와치라탐 사팃 51이라는 소이에 있는 호프라는 이름의 새로 지은 상가주택이다. ‘Home+Office’의 약자로 지어진 이름이다. 방콕의 주요 간선 도로인 스쿰빗 가의 스카이트레인 역에서 무려 2.5㎞나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어서 택시를 타지 않으면 가기 어렵다. 택시는 작은 하천을 지나 아주 조용한 동네를 깊숙이 파고 든다. 주택가지만 여기저기에 상가와 사무실이 들어가 있다. 일본계 회사들의 간판도 보인다. 주거와 다른 기능이 섞여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층수는 3, 4층 내외지만 2층 이하의 단독주택 유형도 많이 보인다. 상가주택이 길 양옆으로 한참을 이어지다가 저 앞에 높이와 규모는 비슷하되 느낌은 완전히 새로운 건물 하나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택시가 멈췄다. 호프에 도착한 것이다. 새 건물이지만 주변의 맥락을 잘 읽고 해석한 탓에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인 규모도 그렇고 기능도 그렇고 또한 조형 언어도 그렇다. 하지만 어느 모로는 훨씬 더 신경 써서 설계하고 지은 수준 높은 건축이다. 곧이어 이 건물의 건축가인 IF(Integrated Field)의 소라킷 키차로엔로지도 도착한다. 태국의 출라롱콘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영국의 바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안내로 돌아본 호프는 지상 5층 건물이다. 1층은 주차장, 2, 3층은 사무실, 그리고 4, 5층은 주택이다. 각 공간은 좁은 실내 계단으로 연결되며 지하층은 없다. 이렇게 구성된 하나의 유닛이 대칭을 반복하며 4채가 붙어 있는 것이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다. 설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건물을 이해하기도 쉽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에 대한 관찰에 기반을 둔 건축적 아이디어가 구석구석에서 엿보인다. 건축가인 소라킷 키차로엔로지 자신이 사업의 주체로서 직접 지은 건물인 까닭도 있다. 지표면에서 7~15m 깊이까지 견고한 해양 점토 층으로 덮여 있고 지하 수위가 높은 방콕에서는 일반적으로 지하실을 잘 개발하지 않는다. 일단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장기적인 유지 관리도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차장은 지하가 아닌 지상에 있다. 초고층 건물의 경우도 자동차로 한참을 올라가서 주차해야 한다. 다만 최근의 추세를 보면 아주 고급 건물의 경우 지하 주차장을 개발하기도 한다. 방콕 시내 최고급 호텔의 하나인 수코타이 호텔에 부속된 콘도미니엄이 그런 경우다. 지상을 향해 열린 큰 중정을 여러 개 만들어 지하에도 환기와 채광이 되도록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습기로 주차해 놓은 차들에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중정 덕분에 지하 주차장이지만 별로 어둡지도 않고 공기도 상쾌하다. 이처럼 최근 태국에서는 주차장을 상당히 쾌적하게 만드는 문화가 있는 듯하다. 호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차장은 길에서 경사로로 살짝 내려가도록 돼 있는데 주변의 조경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입구 한쪽에 작은 불교 제단이 설치된 것을 보면 역시 전통의 나라 태국답다. 현재 모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는 가구를 방문해 본다. 최종적으로는 건축가 자신이 입주할 곳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신을 벗어야 한다. 물론 입주자가 원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앞뒤로 창이 있고 층고가 높기 때문에 아주 밝고 시원한 공간이다. 현재의 용도는 사무실이지만 주거로 사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주거 부분도 입주자의 선택에 따라서 별 다른 절차 없이 사무실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소규모 건축물이라 용도 변경이 쉬운 탓도 있지만 대체로 행정절차가 한국보다는 덜 엄격한 듯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이라면 용도 변경을 까다롭게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계단이 하나밖에 없고 실내를 통해서만 연결돼 있어 사무실과 주거 부분의 입주자가 동일해야 하는 것이 제약이지만, 어차피 그렇게 사용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것이라 굳이 동선을 분리할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한 가구의 폭은 6.3m인데 동남아시아 일대의 전통 상가주택의 폭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폭 안에서 계단실, 화장실, 주방, 기타 설비를 모두 한쪽으로 몰아넣어 나머지 부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은 각 가구의 정면에 그대로 표현돼 유리 커튼 월 밖에 루버 재질로 마감돼 있다. 이 루버는 처음에 보면 나무 같으나 건축가의 설명에 따르면 일종의 합성재료다. 나무를 쓰고 싶었으나 장기적인 유지 관리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구성이 훨씬 좋고 가격이 낮은 합성재료를 쓰고 그 위에 페인트를 발랐다고 한다. 설계자들이 흔히 놓치는 부분이다. ●건물 뒤편엔 녹지가 넓게 펼쳐져 쾌적한 분위기 주거 부분으로 올라가면 개방감이 더욱 커지면서 공간이 매우 다양해진다. 침실도 층고가 높고 게다가 건물 뒤편의 녹지가 넓게 펼쳐져 아주 쾌적한 분위기다. 소이 지역이 갖는 매력의 하나다. 전체 건물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역시 4층의 중정이다. 이를 중심으로 4, 5층의 실들이 배열돼 있다. 이 중정은 일종의 세일즈 포인트다. 방문객들이 그냥 잘 지은 상가주택 정도라고 생각하고 왔다가 이 중정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덕분에 분양이 잘 돼 바로 인근에 같은 유형의 건물 두 채, 그러니까 8가구를 더 짓고 있었다. 중정 바로 옆이 주방이어서 허브 가든 등으로 사용하기도 좋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열대 지역에서도 외부 공간과 실내 공간의 연결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만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덥고 습해도 바깥을 느끼고 싶어 한다. 옥상 마당을 중시하는 무지개떡 건축 이론의 설득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중정의 벽은 수직의 조경으로 대체했다. 열대 지방이라 식물이 사철 자라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건물이지만 이미 식물이 빽빽하게 벽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호프는 사업 감각과 디자인 능력을 겸비한 젊은 건축가가 기존의 상가 주택을 잘 연구하고 이를 재해석해 설계한 건물이다. 건축적으로도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보편성의 토대가 있어야 도시 건축의 유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방콕 시내의 고층 건물 중에도 ‘무지개떡’ 보여 이날 준비한 자료에는 호프 말고도 Oasis Loft, Bann Kanom Chan(설계:Anonym), Siri House(설계:IDIN) 등 여러 개의 다른 상가주택이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다 볼 수 없었다. 이미 이 건물들은 태국의 대표적인 현대건축 작품으로 해외 매체 등에 소개돼 있기도 하다. 호프는 이렇게 새로운 해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무지개떡 건축의 한 사례일 뿐이다. 상가주택의 오랜 전통 때문인지 방콕 시내의 고층 건물 중에도 무지개떡이 많이 눈에 뜨인다. 필자가 머물던 호텔 바로 옆도 그런 건물이었다. 덕분에 아침마다 16층 엘리베이터 로비 창 너머로 옆 건물 발코니에 사는 강아지와 인사하는 진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016년 8월에 개관, 방콕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마하나콘 타워 역시 초고층 주상복합이다. 대규모 상가와 209개의 주거 가구, 150실의 부티크 호텔, 그리고 옥상의 바와 전망대로 구성된 마하나콘 타워는 현재 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면서 태국 최초로 중동 지역에까지 분양 홍보를 한 건물이기도 하다. 건물 외곽을 나선형으로 파내 만들어진 부분에 수많은 발코니와 마당이 만들어지면서 전통적인 중정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도시 고층 외부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낸 것이 매우 특징적이다. 이처럼 저층의 상가주택에서 초고층 주상복합 건축까지 태국의 무지개떡 건축은 계속 진화 중이다.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지하철 노선 첫 키재기 기억… 영화골목 달군 추억을 찾아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지하철 노선 첫 키재기 기억… 영화골목 달군 추억을 찾아서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18일 18회차 답사는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안내로 종각에서 안국동 사거리로 이어지는 우정국로를 좌우로 훑어 보는 ‘종로 종축(남북) 탐방’이다. ‘서울미래유산’이란 서울 시민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 들어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말한다. 특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가치를 미래세대가 수용할 수 있어야 미래유산으로 인정된다. 기존 문화재에는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 예비문화재가 있다. 지정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과 시·도 조례에 의해 지정된 유물·유적이다. 지정문화재는 50년 이상 지난 문화재 중 역사·문화적으로 상징성이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정한다. 예비문화재는 50년이 지나지 않은 문화재 중 미래가치가 있는 것들이 지정 대상이다. 이들 문화재는 미래유산의 ‘선배’인 셈이다. 종로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3·1운동 중심지에서 찾은 숨은 보물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인 지난달 29일, 열다섯 번째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시작되는 보신각 앞에는 시국을 반영하듯 형광색 파카를 걸친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다. 미래유산 플래카드를 펼쳐 달자 아니나 다를까, 잔뜩 긴장하고 다가온다. 한 경찰이 답사 취지를 묻는 새 다른 이는 사진을 찍고 무전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1주일 전 웃대 답사 때 검문검색보다 긴장감이 더 팽팽했다. 종로 보신각 앞에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가벽이 서 있었다. 고인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쓴 수많은 메모지도 붙어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화꽃 20송이를 바칩니다’란 서촌 꽃집 ‘MOMO BLOOM’의 메모가 눈에 띈다. 마음으로, 꽃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시민들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추모벽 앞에서 답사가 시작됐다. 맑은 가을 날씨 덕에 최근 답사 참가인원이 30명을 훌쩍 넘기기가 예사다.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에 대한 설명으로 해설을 시작했다. 보신각 앞 잔디밭에 마치 야간조명쯤으로 여겨지는 작은 사각형 돌덩이가 있다. 카메라 망원렌즈로 당겨 보면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이라고 새겨져 있다.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답사에 참여한 시민 윤치영씨는 “그동안 서울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무심코 지나쳤는데, 오늘 탐방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발견하니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듯하다”며 “많은 사람의 만남의 장소인 이곳에 이런 유산이 있다니 그저 놀랍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날의 답사 기록을 서울 미래유산블로그 포스팅 공모전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았다. 지하철 수준점을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다. 보신각이 문화재인 탓에 출입이 엄격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마침 문화재 관리인이 안에 있기에 사진을 대신 찍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 주셨다. 그래서 귀한 사진을 두 장 얻었다. 또 보신각 앞에는 1919년 3·1운동 중심지였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첫 종교방송 ‘옛 기독교 방송국’ 건물세계 명곡과 서양고전음악 보급에 기여 박 해설사가 설계한 코스는 ‘다이내믹’하기로 유명하다. 이날도 종각에서 출발해 을지로와 충무로를 종횡무진 걸어가며 길 위에 남은 기존 문화재와 미래유산을 콕콕 집어냈다. 보신각에서 큰길 동쪽으로 조금 걸으면 옛 기독교방송이 있던 누런색의 서양식 빌딩이 나온다. 지금은 기독교서회가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1954년 기독교방송이 있던 자리다. 전파는 연희동 송신소에서 내보냈고, 이곳에는 연구소와 사무실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종교 방송국이 있던 장소이자 민간방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박 해설사는 “당시 기독교방송은 다른 방송에서는 듣기 어려운 서양고전음악, 세계명곡, 명가극, 성사극 등을 내보내 우리나라 서양고전음악의 보급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바로 옆에 있었던 종로서적도 지금 있었다면 미래유산 감인데, 시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2002년 6월 최종 부도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종로 ‘젊음의 거리’를 따라 답사단은 뒷골목으로 스며들었다. 관철동은 종로 뒷골목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종로를 대표하는 법정동이다. 관철동 골목길을 포함해 도시 조직 자체가 서울미래유산이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 자체의 기술력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한 곳이다. 내무부는 1952년 전쟁 복구를 위해 19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를 고시하고, 이 중 시급히 시행할 5개 지구를 정했다. 그중 한 곳이 관철동 지구로 조선시대 구불구불한 실개천변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던 도시조직이 격자형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쳤다. 관철동 삼일빌딩과 베를린 광장3.1운동 오마주와 통일 염원 담은 유산 요즘 관철동 골목은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해 있다. 고공행진하는 임대료 탓에 기존 상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건물주와 상인들의 공생 노력이 활발하다. 젊음의 거리 골목 사거리에는 ‘건물주와 세입자는 가족입니다. 임대료 인하하여 골목상권 활성화합시다. 갑이 도와야 을이 삽니다. 을이 죽으면 갑도 죽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관철동문화발전위원회 명의로 걸린 플래카드는 현명한 ‘갑’의 자세를 보여준다. 골목 몇 개를 좌우로 돌자 어느새 삼일빌딩 아래 서 있다. 연세가 높은 분들의 입에서 70·80년대 삼일빌딩의 위용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이 빌딩을 보려고 일부러 시골에서 올라온 관광객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삼일빌딩은 삼미그룹의 모태인 대일목재공업이 1968년 사옥으로 쓰려고 30억원을 들여 짓기 시작해 1971년 완공했다. 머릿돌은 1970년 3월 1일로 새겨져 있다. 삼일로에 31층 빌딩을 3월 1일 세운 것은 아마도 3·1운동 정신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는지. 그러나 정작 건축가 김중업은 설계비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1층에 KDB산업은행이 들어섰고, 건물 외벽에는 대우정보시스템이란 돌출글자로 된 간판이 붙어 있다. 삼일빌딩 건너편 한화빌딩에는 ‘베를린광장’이란 공간이 있다. 베를린시로부터 베를린 장벽 일부, 베를린 베어(Berlin Bear), 조명등과 의자를 기증받아 2005년 조성된 광장이다. 서울시와 베를린시 두 도시 간 우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통일을 염원하는 장소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관수동 명패·영화관·노가리 골목영화보고 안동장 짜장면 먹고 노가리 안주까지 이제 관수동 명패골목으로 탐사팀이 이동했다. 빽빽한 골목길 안에 상패, 명패, 트로피, 기념물을 만드는 명패사가 즐비하다. 대로변부터 골목 안까지 명패 상권이 실핏줄처럼 발달해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90년대에 명패골목으로 완전히 형성됐다. 직업군인으로 정년퇴직을 한 이용성(78)씨는 “군 생활 할 때 이곳에 명패를 맞추러 자주 들렀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명패골목은 30~40년 된 굴보쌈 골목, 생선구이집 골목과 연결돼 있었다. 필자 역시 “50년 서울살이 동안 종로 대로변만 다녀봤지 남쪽 뒷골목에 이렇게 맛집이 모여 있을 줄 몰랐다”고 거들었다. 곧이어 이번 답사의 한 축인 영화관 골목이 시작됐다. 답사팀은 종로 3가역 서울극장을 거쳐 충무로길을 따라 명보아트홀까지 걸으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32전 전승이라는 전대미문의 해전사를 들었다. 중구청은 충무로 보도 위에 충무공 해전사를 기록해 놓았다. 서울미래유산인 서울극장은 합동영화사가 세기극장(1958년 개관)을 인수해 1979년 ‘서울극장’으로 개관했다.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이었다. 영화의 길을 가던 중간에 노가리 골목에 들렀다. 이 골목은 1980년대에 형성됐다. IMF 경제 위기가 닥치자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값싼 노가리 골목을 찾으면서 상권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2년엔 을지로 노가리호프번영회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상인 번영회 중심으로 매년 5월이면 을지로 노가리 축제를 연다. 이때만큼은 생맥주 한잔이 1000원이다. 노가리는 한 마리 1000원으로 오래전부터 가격이 요지부동이다. 노가리골목 터줏대감 격인 만선호프에서 22년째 일하는 조이로(82)씨는 이날도 노가리를 다듬고 있었다. 조씨는 “금요일같이 잘 팔리는 날은 하루에 노가리 1000마리, 평소 때는 500~600마리 정도 팔린다”고 말했다. 만선호프는 조씨 조카가 운영하고 있다. 호프집 골목을 나서자 길 건너 빨간색 간판이 트레이드마크인 서울미래유산 ‘안동장’이 보인다. 1948년 피카디리 극장 근처에서 화교인 왕충요씨가 개업한 중화요리집이다. 1950년 현 위치로 이전해 2대 왕용성씨, 지금은 3대 왕홍덕씨 등 3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다. 영화와 인쇄의 대명사 충무로 을지로 개발로 1984년 대거 이전 종로와 을지로를 거쳐 드디어 충무로에 들어섰다. 충무로 인쇄골목 입구에는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충무로는 ‘영화와 인쇄의 대명사’이다. 영화판 경력에 대한 질문은 으레 “충무로에서 몇 년 일했냐”로 치환된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인쇄골목 인쇄기는 쉼 없이 돌아간다. 내년도 달력, 다이어리, 수첩을 한창 찍어내기 때문이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1980년대 시작됐다. 원조 인쇄골목은 을지로다.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을 시작으로, 경성극장, 낭화관, 중앙관 등이 을지로에 생기면서 영화 전단을 찍으려고 을지로에 인쇄소들이 생겼다. 그러다 1984년 을지로 개발로 을지로에 있던 인쇄업체 500여곳이 충무로로 이전하면서 충무로가 성황을 이뤘다. 충무로에서 영화와 인쇄산업을 서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구청에 따르면 현재도 인가업체 1000여개, 미인가업체 3000여개에서 2만여명의 종사자가 일하고 있다. 시민에게 내어준 대한극장 옥상강북 전경 한눈에… 도시락 들고 소풍도 이번 답사는 대한극장에서 마무리했다. 대한극장 8층 옥상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개공지’다. 대한극장이 서울시민을 위해 제공한 도심 쉼터로 화장실, 벤치가 갖춰져 있고 강북지역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볕 좋은 날엔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가서 까먹어도 좋은 곳이다. 답사에 참석한 홍정자(76)씨는 세운상가에 대한 해설사의 짧은 설명을 듣자 “1966년(실제 준공은 1967년) 세운상가 아파트 7층에 입주해 살았다”며 “전자상가에 점포도 하나 운영했었다”고 회상했다. 남편 이용성씨는 “차를 타고 지나쳤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걸어가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니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대한극장 옥상에서 세운상가를 바라보며 이 부부는 5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감회에 젖어 있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골목길 따라, 인생길 따라… 가득한 문화의 香

    골목길 따라, 인생길 따라… 가득한 문화의 香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고, 집의 형태가 달라졌어도 골목은 그대로 남아 추억을 환기하는 곳이 있다. 오래된 동네, 낡은 골목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의 향수를 자극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11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골목길을 추천했다. 수원 행궁동 골목 경기 수원 행궁동은 수원 화성 일대의 장안동, 신풍동, 북수동, 남창동, 매향동, 남수동, 지수동 등 12개 법정동을 일컫는 이름이다. 220여년 전 화성이 축성될 당시부터 불과 수십 년 전까지 행궁동은 수원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하지만 1997년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개발이 엄격하게 규제됐고, 자연스레 도시도 쇠락해 갔다. 이런 행궁동에 주민, 시민단체, 예술가들이 뜻을 모아 벽화를 그리면서 골목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원 화성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행궁동 골목은 벽화마을과 공방거리, 수원통닭거리, 지동시장 등 특색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수원 화성을 구경하다가 골목으로 빠지면 볼거리, 먹거리, 살 것이 가득하다. 행궁동 골목은 수원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이어져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수원시 관광과 (031)228-2409. 원주 미로예술시장 강원 원주의 중앙시장은 1970년 준공돼 얼추 5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재래시장이다.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을 걷다 최근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변신을 꾀하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시장 안엔 문화예술 시설과 맛집 등이 얽혀 있다. 1층은 고기골목, 만두골목 등 이른바 ‘먹자골목’이다.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비교적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 2층은 미로예술시장이다. 미로 같은 골목이 특징이다. 낡고 인적이 드문 2층 상가의 묵은 때를 벗기고, 젊은 예술가의 손길을 더해 재밌는 예술 시장으로 거듭났다. 골목에서 미로를 헤매다가 마음에 쏙 드는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여심을 저격하는 귀여운 물건이 가득한 가게, 젊은이가 좋아하는 주점,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공방, 벽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골목미술관 등 인상적인 곳이 눈에 띈다. 원주시 관광과 (033)737-5132. 대전 대흥동·은행동·선화동 일대 ‘대전 원도심’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 사이, 대흥동과 은행동, 선화동 일대를 일컫는다. 80년 가까이 대전의 중심지 노릇을 하다 1980년대 이후 둔산 신도시 등으로 상권이 옮겨 가면서 점차 명성을 잃었다. 그러다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조금씩 활기도 되찾아 가는 중이다. 대전 원도심 여행의 중심지는 옛 충남도청이었던 대전근현대사전시관(등록문화재 18호)과 대흥동 일대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고는 보기 힘들 만큼 중후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대흥동 일대에선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카페 ‘도시여행자’를 비롯해 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카페와 갤러리, 공방이 즐비하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여태 낡은 집에 사는 이들의 삶도 엿볼 수 있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대전시 관광진흥과 (042)270-3972. 경주 감포 해국길 경북 경주 감포공설시장 건너편에 있는 해국길은 옛 골목의 정취를 간직한 길이다. 1920년대 개항 이후 일본인 이주 어촌이 형성된 곳으로,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일본 어민이 살던 ‘다물은집’을 비롯해 적산가옥이 여러 채 남아 있다. 옛 창고와 우물, 목욕탕 건물 등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길이는 불과 600m 정도지만, 이름처럼 벽마다 그려진 해국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국길에서 나오면 감포항 북쪽 절벽에 자리한 송대말등대에 올라갔다가 문무대왕릉까지 바닷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며 경주 시내를 여행하는 일정으로 잡아도 좋다.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 단풍이 은은한 분황사, 한옥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경주교촌마을에서 가을 정취를 느껴 보자. 복어회, 교리김밥, 우엉김밥, 유부쫄면 등은 여행자의 입을 즐겁게 한다. 경주시 관광컨벤션과 (054)779-6078. 순천 철도문화마을·남제골 벽화마을 전남 순천은 우리나라에서 ‘생태 여행 1번지’로 꼽히는 곳이지만, 아름다운 자연 못지않게 문화와 사람이 어우러진 마을도 많다. 조곡동의 철도문화마을은 80년이 넘는 철도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철도국 관사가 있던 마을로, 80여년간 철도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순천제일대 옆 남제골 벽화마을은 시간을 거슬러 추억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순천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다. 600여년 전부터 형성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는 포근한 초가집과 돌담을 만난다. 마을뿐만 아니다. 순천은 가을에 더없이 황홀하게 변신한다. 화려한 갈대밭을 보여 주는 순천만 습지, 형형색색 꽃이 만발한 순천만국가정원, 야생차를 마시며 가을 정취에 빠지는 선암사까지 발길을 끄는 곳이 가득하다. 금요일과 토요일엔 신나는 야시장도 열린다. 순천시 관광진흥과 (061)749-5502.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당당한 공심이 만나 더 단단해졌죠”

    “당당한 공심이 만나 더 단단해졌죠”

    ‘나는 왜 미인형이 아닐까’ 스스로 내리깎았다. ‘네가 어떻게 연예인이 됐느냐’는 악플에 늘 상처받았다. 첫 주연으로 캐스팅됐을 때는 기쁨보다 불안이 앞섰다. “왜 내로라할 작품도 없는 나를 선택했느냐”고 제작진에게 되물었을 정도로 자신감이 바닥이었다. 지난 17일 15.1%의 시청률을 찍으며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미녀 공심이’의 공신 걸스데이 민아(23) 얘기다. 방송 초반만 해도 외부에서는 물론 스스로도 기대치가 낮았던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호평을 끌어냈다. 여기에는 못난 외모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취업준비생 ‘공심이’와 한 몸이 된 민아의 ‘뜻밖의 연기력’이 한몫했다. 그는 어떻게 처음 꿰찬 주연으로 ‘반전’에 성공했을까. “평소에 저도 (공심이처럼) 외모에 대한 악플과 자책으로 괴로워했어요. 그러다 온갖 구박에도 당당하고 할 말은 하는 공심이를 만나니 크게 위로받았죠. 대본을 받은 순간부터 걸스데이 민아라는 나를 잊고 꾸밀 생각을 내려놨어요. 이전에는 울 때도 ‘눈 동그랗게 뜨고 예쁘게 울어야지’ 했다면 이번에는 감정이입이 절로 돼서 실핏줄 다 터지고 목이 쉴 정도로 꺼이꺼이 울었죠. 그렇게 ‘이전의 나’를 깨고 나니까 ‘내가 왜 남들 시선에 그렇게 마음 아파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면서 더 후련해지고 담대해졌어요.” 2010년 걸그룹 걸스데이로 데뷔한 민아는 2011년 드라마 ‘뱀파이어 아이돌’로 연기에 첫발을 뗀 이후 ‘주군의 태양’(2013), ‘홀리’(2013), ‘달콤살벌 패밀리’(2015) 등 웹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다. 그러나 지난해 ‘응답하라 1988’로 대박을 터뜨린 같은 그룹 멤버 혜리와 달리 제대로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으로 그는 주연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드문 ‘연기돌’로 눈도장을 찍었다. “원래는 드라마 제목이 ‘야수와 미녀’였는데 방송 직전에 ‘미녀 공심이’로 바뀌자 부담감이 너무 커져서 손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신선한 얼굴이 필요해서 저를 캐스팅한 건데 제가 이걸 하기 전까지 뭔가 제대로 보여 드린 적도 이룬 적도 없어서 잘 안 되면 모든 게 제 탓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욕심을 내서 감독님을 계속 귀찮게 하고 괴롭히면서 캐릭터를 세심하게 다듬어 나갔죠.” 특히 취업 스트레스로 생긴 원형 탈모를 가리기 위해 촌스러운 일자 단발 가발을 내내 둘러쓰며 ‘현실 연기’를 펼친 게 큰 점수를 받았다. “처음엔 가발을 4회까지만 쓰기로 했는데 어느 순간 10회까지 쓰고 있더라고요. 감독님께 물어봤더니 절 슬슬 피하세요(웃음). ‘가발이 너무 반응이 좋아서 더 써야 될 것 같다’면서요. 결국 끝날 때까지 쓰게 됐죠. 가발을 한 번 벗고 쓰는 데만 1시간 반이 걸리고 하루에 2~3번씩 머리를 감을 정도로 고생했는데 가발을 벗는 마지막 장면에서 속시원하기는커녕 엄청 속상했어요. 이제 공심이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요.”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연기에 대한 확신이 단박에 든 것은 아니다. 오는 9월에는 걸스데이로 무대에 다시 복귀하는 만큼 당장 욕심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감정을 잡는 신이 어려워 2층 옥탑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는 그는 “‘연기를 계속 해도 괜찮을까’란 물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 다음 연기가 부담이 되지만 너무 부담에 짓눌리면 죽도 밥도 안 되겠죠.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보다는 제가 이룰 수 있는 것,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역할부터 차근차근 소화하며 역량을 키우려고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시의회 김인호 부의장 ‘소기업 소상공인 페어’행사서 축사

    서울시의회 김인호 부의장 ‘소기업 소상공인 페어’행사서 축사

    김인호 서울시의회 부의장(더불어민주당·동대문구3)은 5월 31일 오전 11시 청계광장에서 열린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하는 제2회 힘내라 소기업 소상공인페어’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인호 부의장을 비롯해 박운기, 오봉수, 장흥순, 김광수, 김춘수, 우미경 서울시의원, 이수만 서울시 소기업소상공인회 연합회장, 김봉식 동대문구 소상공인회 회장 등 25개 자치구 소상공인회 회장과 서울시청 소상공인과장, 박승찬 중소기업중앙회 서울지역본부장 및 소기업상공인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서울시의회를 대표하여 축사한 김인호 부의장은 “2014년도 중소기업청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소상공인 283만 업체에 555만 명 종사하고 있다. 사업을 영위하는 비중으로 28.2%에 해당하는 수치로 우리 경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라며, “이런 소상공인들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자 실핏줄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부의장은 “요즘 대형마트 등의 골목상권 침해로 소기업, 소상공인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밝힌 뒤, “이번 행사의 개최로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소기업, 소상공인의 우수한 제품들이 보다 많은 서울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김 부의장은 “서울시의회에서도 우수 소기업, 소상공인 제품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지원 활성화를 위해 관계 공무원 및 소상공회 등 관계자들과 협력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금번 행사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하는 행사로써 서울지역 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자치구별 소기업소상공인회 소속 회원들의 다양한 제품과 전시회 및 이벤트 행사가 진행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손님들 소주 한 병도 망설여”…식당 매출 급감·술집 폐업 속출

    “손님들 소주 한 병도 망설여”…식당 매출 급감·술집 폐업 속출

    조선산업이 지역 경제를 떠받쳐 온 울산 동구와 경남 거제시. 지난 10여년간 호황을 누리던 ‘조선 도시’가 고강도 산업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위기다. 2~3년 동안 불황으로 지역 경제가 흔들린 데다 구조조정이 추가로 예고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지역 경제는 상권 쇠락, 집값 하락, 인구 감소 등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면서 신음하고 있다. 울산 동구는 현대중공업과 함께 성장한 지역이다. 울산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협력업체 등에서 6만 5000여명이 조선업에 종사한다고 27일 밝혔다. 이 중 절반이 동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구의 인구가 17만 5832명인데, 동구의 가구당 인구 2.5명으로 환산하면 3월 현재 동구 전체 인구의 46%인 8만 1200여명이 ‘조선 가족’인 셈이다. 특히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에게 매달 2000억원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연간 2조원 규모다. 자재대금까지 합치면 연간 12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매월 1000억원가량이 동구에 풀렸다. 지역 경제의 동맥이자 실핏줄이었다. ●현대중공업이 내는 지방소득세 반 토막 현대중공업은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살림살이까지 책임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동구에 내는 지방세도 2014년 417억여원, 2015년 446억여원으로 연평균 400억~500억원이다. 2014년 동구 지방세 총액 1461억원을 기준으로 28.5%를 차지했다. 2015년엔 경기침체 때문에 지방세가 1375억원으로 줄었지만, 현대중공업이 낸 지방세는 더 많아져 비중이 32.4%로 높아졌다. 동구청에 내는 지방세와 별도로 현대중공업이 울산시에 납부한 지방소득세는 2013년 525억원 상당이었다. 적자가 시작된 2014년 255억원으로 반 토막 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17억원으로 줄었다. 이런 돈줄이 막히면 지역 경제는 휘청휘청할 수밖에 없다. 불황은 서민 상권에 직격탄을 날렸다.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얇아진 지갑 사정 때문이다. 동구의 음식점들은 지난해부터 30~50% 이상 매출이 감소했다. 밤 장사는 타격이 더 크다. 2~3차 회식 문화가 사라진 탓이다. 불황을 못 이긴 동구 지역 단란·유흥주점 11곳이 지난해 문을 닫았다. 5% 수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부동산 경기도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울산 부동산 브리프’에 따르면 올해 2월 울산 지역 주택매매가격 종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3% 증가했지만 동구만 유일하게 0.3% 감소했다. 주택 전세금도 하락세다. 신규 아파트 84㎡형의 실거래가가 지난해 12월 3억 3000만원에서 3개월여 만인 올 2월 2억 9000만원으로 4000만원이 하락했다. 외국인 근로감독관과 협력업체 일용직 근로자들이 거주하다 빠져나간 아파트와 원룸은 몇 개월째 빈 채로 있다. 무엇보다 동구의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다. 조선 경기 호황에 힘입어 2011년부터 늘었던 인구는 2014년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인구는 2014년 3월 최고치 17만 8201명을 기록했다가 지난해 3월 17만 6404명으로 감소했다. 올 3월에는 17만 5832명으로 더 줄었다. 현대중공업에서 감원을 시작하면 지역을 떠날 직원이 더 많을 것으로 동구청은 내다봤다. ●거제 인구 3명 중 1명 조선업 종사 전체 산업의 70% 이상이 조선 관련으로 이뤄진 경남 거제시는 더 심각하다. 대우조선해양 4만 5000여명, 삼성중공업 4만여명 등 근로자만 총 8만 5000여명이다. 거제시 인구 25만여명 중 35%에 해당한다.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거론되면서 거제시 경제는 가파르게 얼어붙고 있다. 특히 조선업계 1위와 2위를 남기고 3위는 퇴출해야 한다는 분위기인 탓이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에 이어 압도적인 2위였으나 이제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2·3위 순위를 다투고 있다. 삼성중공업 인근의 한 족발집 사장(39)은 “경기가 좋을 때는 손님들이 돈에 신경을 쓰지 않고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소주 한 병 추가도 망설이는 분위기”라며 “호황기와 비교하면 매출이 30~40% 줄었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 근처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50)씨는 “지난해부터 계속 가게 매출이 떨어져 3~4년 전보다 30%쯤 줄었다”며 “조선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매일 밤늦도록 가게 안이 북적거렸는데 요즘은 한산하다”고 걱정했다. 거제의 아파트 분양시장도 위축되고 있다. 2015년 상반기 거제 지역 아파트 분양시장은 1순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조선업체의 적자가 커지면서 하반기에 분양한 6개사 아파트는 분양률이 30~60%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아파트 시행사는 분양률이 10%를 밑돌자 계약금을 돌려주고 분양을 포기하기도 했다. 조선 기자재를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경남 고성군 회화농공단지에 있는 S업체는 거제 지역의 한 대형 조선소에서 배관제품을 수주받아 납품하는 설립 15년 된 소규모 조선 기자재업체다. 이 회사는 올 들어 수주물량이 없어 공장 가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했다. 20여명이던 현장 근로자는 4명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이 몇 달 더 지속되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고성군 지역에는 STX고성조선소와 삼강엠앤티㈜, 고성조선해양㈜을 비롯한 크고 작은 조선산업업체 70여곳이 있다. 고성군은 조선산업이 호황을 누릴 당시 조선업체가 있는 동해면 해안도로에 ‘조선특구로’라고 이름을 붙이는 등 조선산업 육성을 지원했지만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소조선업체들은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이 없는 상태에서 하청업체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력 유지를 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부산 녹산공단과 경북 경주시, 포항시, 전남 영암군 등 조선 기자재업체들이 밀집한 다른 지역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부산 김정한 기자 jhp@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수협 첫 여성 임원 강신숙 이사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수협 첫 여성 임원 강신숙 이사

    “진주가 있으면 뭐합니까, 꿰어야 보배죠, 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그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진주를 꿰어준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수협 임직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강신숙(55) 수협 지도경제상임이사를 만나려 했던 것은 수협 최초의 여성 등기임원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여상(女商) 출신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고, 친화력 속에 숨어 있을 법한 그녀의 치열한 삶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것이 더 궁금했다. → 수협 54년 역사상 최초 여성 임원이다. 힘은 뭔가. -최연소 여성부장, 최초 여성본부장, 최초 여성 임원까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표를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는 목표의식과 끊임없는 도전, 긍정적인 몰입이 여성 임원이 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 이 자리까지 올라올 것으로 생각했나. -수협에 몸담고 생활한 지 3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입사 당시에는 임원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말단 행원 시절엔 고객의 자산증식에 도움되는 최고의 금융전문가가 되고자 했고 지점장이 되어서는 남들이 인정하는 지점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 여성 후배들에게 큰 희망이 됐을 것 같다. -수협의 분위기는 보수적이다. 고위직 같은 자리에 보이지 않는 벽, 즉 유리천장이 있다. 수협의 유리천장이 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여성 후배들이 미약하지만 저를 롤모델로 삼고 벤치마킹해서 도전했으면 싶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처음으로 걸은 셈이기 때문에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 계속해서 1등을 달려왔다. 쉽지 않은 길이었을텐데. -애사심이 있었고, 업무에서 최고가 되려는 욕심도 있었다. 언제 나 자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내 평소 철학이다. 그 길을 쫓아갔더니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내 인생의 8할은 수협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 아내·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요즘은 국가적으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고, 맞벌이가 보편화되다 보니 워킹맘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관대해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사의 대다수는 여성의 몫인 것 같다. 나 또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힘든 적도 많았고, 마음의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난 사회에서의 일과 가정은 철저하게 구분했다. 출근할 때는 엄마·며느리가 아닌 회사 직원으로서, 퇴근 후에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 성공할 수 있겠구나고 느낀 시점이 있었다면. -여성 최초 본부장이 되었을 때 막연히 임원 도전 목표를 세운 것 같다. →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세안을 할 때, 칫솔질을 할 때, 거울을 볼 때 항상 마인드 훈련을 해왔다. “나는 잘할 수 있다”, “입꼬리는 항상 올리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객을 맞이하자” 등의 말을 수없이 되새겼다. 내 자신한테 하는 훈련을 아침마다 수없이 반복했다. 그 결과 사람들을 대할 때뿐만 아니라 매사에 항상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그런 평가를 내린 것 같다. → 그렇게 하다 보면 외롭거나 공허하지 않았나. -많았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보이지 않는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 → 앞으로 계획은 뭔가. -3월 3일 취임한 이후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그래서인지 새벽 2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어떻게 하면 두 마리 토끼, 건전성과 수익성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92개 조합, 435곳의 영업점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3월 말까지 구상했던 것에 대해 구체적인 세부계획을 세워 4월 1일 수협중앙회 창립기념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나.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애사심이 있기에 주인의식도 나온다. 그리고 긍정적 몰입과 열정, 끊임없는 도전이 큰 에너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피곤할 때도 있다. 원형 탈모증이 생겨 머리에 주사도 맞았다. 눈에서는 실핏줄도 터졌다.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 하지만 난 그게 슬픈 게 아니라 오히려 기뻤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하고 있구나, 이게 열정이구나고 생각했다. → 도전은 계속되는 건가. -이제 저의 목표는 ‘강한 수협, 돈되는 수협’이다. 수협 임직원이 하나 되어 명실상부한 어업인을 위한 수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 가족한테도 한마디 해달라. -제가 수협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회사일로 힘들어 할 때 가족들이 저에게 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고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으면 한다. → 박수 치고 있을 여성 후배한테도. -수협에서 누구도 걷지 못한 길을 만들어 왔다. 도로에 비유하자면 1차도로를 2차도로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여성 후배들은 2차도로에서 3차도로로 넓혀 신선한 길을 계속해서 달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가 되라고 강조하고 싶다. 끊임없이 실력을 키우고, 준비하고, 항상 깨어 있고, 긍정적인 생각과 열정을 가지고 쉼 없이 도전을 하다 보면 나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생각한다. 최용규 부국장 ykchoi@seoul.co.kr ■강신숙 이사는 전북 순창 출신으로 소녀시절 스튜어디스가 꿈이었다. 1979년 수협은행에 들어와 오금동지점장, 심사부장, 강북지역금융본부장, 강남지역본부장, 부행장을 지냈다. 전주여상과 방통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정치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 8월의 브라질, 지금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8월의 브라질, 지금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훈련하세요?”(기자) “음, 몇 시간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루 종일 운동해요.”(양궁 선수 강채영) 지난 22일, 대부분의 사람은 지인들과 회포를 풀며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기지만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는 다른 달력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흥청거리는 연말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227일’이라고 적힌 전광판이 크리스마스트리 대신 번쩍이고 있었고,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캐럴을 대체했다. ‘한계를 넘어 리우로’라고 적힌 플래카드에서는 연말 분위기는 고사하고 묘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태릉선수촌에 연말연시란 없었다. 그들의 달력은 올해 8월 열리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힘든 훈련에 숨을 헐떡이다가도 ‘만약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이 활짝 웃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태릉의 새벽, 그곳엔 열정이 있다 오전 6시. 아직 사방이 어둑어둑한 시간이지만 태릉선수촌은 시끌벅적했다. 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유도, 양궁, 펜싱, 체조, 역도 국가대표 선수 150여명이 내는 기합 소리와 운동장 스피커에서 ‘노동요’처럼 흘러나오는 최신 가요가 뒤범벅돼 태릉선수촌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지만 선수들은 늘 해 왔던 일이기 때문인지 능숙한 몸동작으로 순식간에 체조를 끝마쳤다. 이후 곧바로 조깅이 시작됐다. 두꺼운 점퍼와 모자·장갑으로 중무장했지만 선수들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계속 나왔다. 운동장 5바퀴를 돈 것으로 조깅을 끝마친 남자 펜싱 플뢰레의 손영기(31·대전도시공사)에게 힘들지는 않냐고 슬쩍 물어보니 “바닥이 얼어서 오늘은 그나마 조금 뛴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깅 정도로는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엄청난 훈련량을 견뎌 온 ‘내공’이 느껴졌다. 조깅을 마친 뒤 선수들이 급히 어디론가 향하기에 식사를 하는가 싶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웨이트트레이닝 장비가 있는 ‘월계관’이었다.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남자 유도 선수들이 웃통을 벗어젖힌 채 동료를 어깨에 얹고 훈련장을 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선수일지라도 한 바퀴만 뛰고 나면 이마부터 몸통, 발까지 땀이 안 나는 곳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인지 처음엔 제대로 붙이던 구호도 나중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곁에 있던 서정복 유도대표팀 감독에게 ‘왜 서로를 들쳐업고 뛰느냐’고 묻자 “메치기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신과 비슷한 체중의 선수를 들고 뛰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체력과 지구력을 기르는 동시에 한판승을 위한 체중 감각도 함께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유도 선수들도 ‘20년의 한’을 풀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여자 유도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조민선이 66㎏급 금메달을 딴 이후 ‘노골드’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자 유도팀을 맡고 있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코치는 더욱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스트레칭을 하는 도중 선수들의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곧바로 “자세!”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자 선수들은 이날 남자 선수들도 타기 힘들다는 외줄로프를 타기도 했다. 이 코치가 “세 번만 타자”고 소리를 지르자 선수들은 능숙하게 10m 높이의 외줄에 올라갔다. 이렇게 1시간가량 운동하면 새벽훈련이 마무리된다. 오전 7~8시쯤부터는 조식과 세면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전훈련(오전 9시 30분~낮 12시), 오후훈련(오후 2시 30분~5시 30분), 야간훈련(오후 7시 30분~9시)까지 마쳐야 하루가 끝난다. 식사·세면·수면을 빼고는 몽땅 운동에 투자하는 일정이다. ●훈련의 연속, 힘들지만 행복하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의 극한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선수들 몸 곳곳에는 영광의 상처들이 가득했다. 펜싱 사브르의 ‘맏형’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오른손과 왼손의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 10년 넘게 하루 7~8시간씩 펜싱검을 잡고 운동하다 보니 오른손 인대가 파열되고 붓는 일이 빈번했다. 이것이 반복되니 나중에는 부기가 안 빠져 오른손이 육안으로 판단하기에도 왼손의 1.2~1.3배는 돼 보였다. 게다가 손의 신경들이 많이 끊겨서 피부 감각도 둔감해진 상태다. 김정환은 “오른쪽 손은 항상 마취 주사를 맞은 것 같은 상태여서 꼬집어도 (왼손에 비해) 40% 정도밖에 아픔을 못 느낀다”며 “오른손의 경우 특정 각도로는 쟁반이나 무거운 책을 잡지 못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펜싱검을 잡을 수 있는 정도의 (악력) 강도는 충분히 돼서 문제가 없지만 일종의 직업병을 겪고 있는 중이다. 오죽하면 선수들 사이에 국가대표팀 하다가 국가유공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빙그레 웃었다. 유도 선수들의 귀는 이른바 ‘만두귀’로 변해 있었다. 의학용어로 ‘이개혈종’(耳介血腫)이라고 불리는 만두귀는 훈련 도중 상대방이랑 부딪치고 도복에 쓸리면서 실핏줄이 터지는 일이 반복돼 귀가 울퉁불퉁하게 부푼 것을 말한다. 체육계에서는 이런 모습이 만두와 비슷하게 생겼다며 ‘만두귀’로 부르고 있다.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유도 선수들도 대부분 만두귀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열심히 훈련하다가 생긴 것일 뿐”이라며 고된 훈련의 ‘훈장’처럼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2012 런던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양궁의 기보배(28·광주시청)도 하루에 많게는 400~500번 활시위를 당기다 보니 손이 성할 날이 없다. 아무리 핸드크림을 발라도 활을 쏠 때 주로 사용하는 검지·중지·약지에는 단단한 굳은살이 박여 있다. 주위에서는 ‘손이 그래서 어쩌냐‘고 걱정이지만 정작 기보배는 “굳은살이야 다른 선수들도 다 가지고 있다. 오히려 영광의 상처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힘들지만 우리에겐 목표가 있다 반복되는 훈련에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힘들긴 하다면서도 올림픽을 생각하면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여자 유도 ‘20년의 한’을 풀겠다고 나선 57㎏급의 김잔디(25·양주시청)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계훈련을 어떻게 견뎌 내는가에 따라 내년 리우올림픽에서의 메달 색깔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며 “목표는 금메달로 정하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에겐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기대를 한몸에 받은 채 2012 런던올림픽에 나섰지만 16강전에서 허무하게 탈락해 눈물을 삼켜야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부담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부담감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면서도 “부담감도 그만큼 관심을 받아서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부담감’이라고 여기며 훈련하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일본의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2년 전 한국에 온 재일교포 3세 안창림(22·남자 유도 72㎏급)의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훈련은 항상 힘들지만 이것을 견디고 시합에서 1등 하는 상상을 하면서 운동하고 있다”며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서 뛰는 것은 나의 꿈이었기 때문에 마무리를 잘해 꼭 금메달을 따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33세로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 중인 김정환은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대표팀 인생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각오로 훈련을 하고 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상대 선수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후회 없이 멋있게 시합을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상대 선수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 ‘차세대 여성 신궁’ 강채영(20·경희대)은 2016년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올림픽에 출전해 (기)보배 언니처럼 2관왕을 하고 싶다. 남보다 한 발을 더 쏘겠다는 자세로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올림픽이 끝난 뒤에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날 선수들에게 올림픽 메달에 자신이 있냐는 우문(愚問)을 건네면 그들에게선 “우리는 외국 선수보다 훈련량이 많다”는 현답(賢答)이 돌아오곤 했다. 깨어 있는 내내 계속해 훈련을 반복하는 그들이기에 스스로가 가장 많이 훈련한다고 설명하더라도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정해 준다’는 말이 있지만 태릉선수촌 선수들의 훈련량을 보면 하늘을 감동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느껴졌다. ‘월계관’에서의 힘든 훈련을 마친 뒤 리우올림픽에 대한 각오를 묻는 질문에 “열심히 준비하고, 경기장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숙소로 돌아가던 남자 유도 81㎏급 왕기춘(28·양주시청)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와우! 과학] 등에 ‘돛’ 단 낙타처럼 생긴 신종 공룡 발견

    [와우! 과학] 등에 ‘돛’ 단 낙타처럼 생긴 신종 공룡 발견

    지금으로부터 약 1억 2500만 년 전 지금의 스페인 땅을 누빈 신종 공룡이 발견됐다.최근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통신대학(UNED) 연구팀은 카스테욘 지역에서 발굴된 화석을 분석한 결과 신종 공룡으로 확인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모렐라돈(Morelladon beltrani)이라는 학명이 붙은 이 공룡은 길이 6m, 높이 2m의 중형으로 양치류나 침엽수를 뜯어먹고 산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공룡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특이한 모양새다. 모렐라돈은 등에 돛처럼 생긴 척추뼈로 이어진 부위가 약 60cm 돌출돼 있다. 멀리서 보면 낙타와 비슷하게 보일 정도. 그러나 연구팀은 이 돌출 부위의 기능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를 이끈 페르난도 에스카소 진화생물학 박사는 "이 돌출 부위는 몸의 열을 방출하는 온도 조절용이거나 영양분 저장소 혹은 구애의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면서 "돛처럼 생긴 구조는 이와 유사한 공룡의 진화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의 설명처럼 모렐라돈과 비슷하게 생긴 공룡도 있지만 덩치는 훨씬 크다. 백악기 전기 아프리카를 누빈 오우라노사우루스(Ouranosaurus)가 대표적. 용감한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오우라노사우루스 역시 초식공룡이지만 길이는 7~8m, 무게는 3~4톤에 달한다. 또한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큰 덩치를 가진 육식공룡 스피노사우루스(Spinosaurus)도 등 부위가 불끈 솟아있다. 척추 돌기가 돌출돼 생긴 이 부위는 무려 2m에 달하며 조직 내에서 실핏줄이 많이 발견돼 전문가들은 체온 조절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 최신호에 발표됐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아빠세대 경제 효과는 ‘가속’ 아들세대 과잉 투자는 ‘감속’

    아빠세대 경제 효과는 ‘가속’ 아들세대 과잉 투자는 ‘감속’

    고속도로 확충으로 ‘시간 거리’가 단축되고 있다. 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국토의 효율적 이용은 물론 엄청난 경제적 효과도 안겨주고 있다. 산업·서비스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인 만큼 사업 방식, 시설 규모, 노선을 놓고 논란도 적지 않다. 정치적 계산이 깔린 과잉 투자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서울~세종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고속도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남한) 장래 고속도로망 뼈대는 ‘7×9’ 형태를 띤다. 남북으로 7개 노선, 동서로 9개 노선을 거미줄처럼 구축하는 것이 간선도로망의 큰 틀이다. 모두 7257㎞로 대동맥에서 실핏줄까지 고속도로망이 구축된다. 이 중 지난해 말 기준으로 4221㎞(자동차 전용도로 82㎞ 포함)가 운영 중이다. 현재 공사 중인 823㎞가 2020년까지 완공되면 5000㎞ 시대를 열게 된다. 821㎞는 설계(실시설계+기본설계+타당성조사) 중이고, 장래를 내다보고 1391㎞를 추가 건설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2010년까지 고속도로 건설 투자액은 78조 2000억원에 이른다. 투자액만 놓고 보면 엄청난 재정이 투입됐다. 그렇다면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경제 효과는 얼마나 될까. 지난달 고용석 국토연구원 도로정책연구센터장이 대한교통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속도로망 구축으로 서울~지방 대도시 간 통행 시간이 서울~부산은 7.3시간, 서울~목포는 6.8시간 단축됐다. 또 고속도로망 구축으로 대도시가 국토 끝단에 위치한 분산형 국토 공간 구조의 약점을 극복하고 교류를 활성화하며 국토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나라 전체 국토의 69.6%(2014년)가 30분 이내에 고속도로 IC에 접근할 수 있다. 1970년도의 14.3%와 비교했을 때 고속도로 접근성이 55.31% 증가했다. 인구 유동이 많은 시가화지역은 83.8%가 고속도로 IC에 30분 이내 접근 가능하다.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 통행 시간 및 물류 비용 감소로 국내 산업 발전에 공헌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생산 및 고용 유발 효과) 창출에 크게 기여했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고속도로 투자에 따른 산업 성장 효과는 93조원으로 분석됐다. 투자 대비 120.4%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고속도로 투자로 인한 산업별 투자 효과는 서비스업(82.2%), 제조업(30.2%), 농업광업(8.1%) 순으로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 효과가 특히 높다. 이는 고속도로 투자를 통해 관광, 요식업 등 국민 생활 편의를 증진시키고 국민 삶의 질을 끌어올렸다는 증거다. 2010년까지의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한 비용 대비 생산 유발 효과는 165조 8000억원, 고용 유발 효과는 100만명으로 분석됐다. 같은 금액을 제조업에 투자했을 경우 생산 유발 효과는 163조원, 서비스업에 투자하면 142조원을 기대할 수 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투자한 것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용 유발 효과 역시 서비스업(138만명)이나 제조업(79만명)과 비교해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다. 고 센터장은 “고속도로 투자로 국토 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제고했다”며 “국가 산업 발전 및 국토 공간의 심리적 거리 단축, 지역 간 이동 시간(효율성) 및 통행 시간(형평성)의 격차 단축, 교류 활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기 계획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국 고속도로망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를 놓고 한쪽에서는 과잉 투자라고 비판하고 정부는 기본 인프라 구축이라고 맞서고 있다. 왜 이런 비난이 나오는 것일까. 비난의 근거로 향후 저출산, 고령화 등의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성장률 둔화를 반영하지 못한 수요 예측을 든다. 충남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를 보자.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한산해 맘껏 달릴 수 있다. ‘한국의 아우토반’으로 불린다. 이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예측 교통량은 하루 2만 2424대였다. 2010년 개통 이후 실제 교통량은 1만 662대에 그쳤다. 조금씩 늘고 있으나 지난해 교통량도 1만 4005대에 불과했다. 목표 대비 63% 수준이다. 당진~대전고속도로도 예외는 아니다. 당초 하루 교통량을 4만 791대로 잡고 추진했다. 2010년에는 1만 9382대, 지난해에는 2만 4362대를 기록했다. 결국 목표 대비 60%에 그쳐 당장은 과잉 투자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자고속도로인 천안~논산 고속도로 역시 교통량이 목표 대비 60% 수준에 그치는 등 대부분의 민자고속도로에 최소운영수익보장(MRG) 계약에 따라 혈세를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만 지원한 재정이 3105억원이나 된다. 정부는 과거 과학적이지 못한 투자에 대해 솔직히 시인한다. 그러면서도 예측 목표량 대비 실제 교통량 격차가 큰 것은 과거 국가 교통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에 건설되는 고속도로는 국가 교통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해 수요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과잉 투자 오명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평택~시흥고속도로를 든다. 이 고속도로는 목표 대비 교통량이 90% 이상이다. 과잉 투자 지적에 대해 정부는 생각이 다르다. 경제 규모 확대, 소득 증대, 자동차 증가와 지역 간 이동량이 급증하면서 고속도로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에 모두 7257㎞에 이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세운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고속도로 건설 효과를 단기간에 평가하는 데도 손을 젓는다. 경부·중부고속도로의 경우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교통량이 증가해 확장을 거듭했지만 한계에 부닥쳐 결국 서울~세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신설하기로 결정한 것을 예로 든다. 김일평 국토교통부 도로국장은 “고속도로 건설에 앞서 산업적 효과를 강화하고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통한 적정 투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결정을 배제하고 민자고속도로의 자금재조달을 통해 MRG 지원 규모를 줄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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