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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고대島 파출소서 총 2정·실탄 200발 도난

    17일 오후 8시부터 18일 오전 8시30분 사이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있는 보령경찰서 원산도파출소 고대도출장소(어선통제소) 무기고에서 M16 소총 1정과 실탄 200발 및 공포탄 10발,38구경 권총 1정과 실탄 10발 및 공포탄 7발 등이 없어진 것을 이 출장소 張承鉉 순경(30)이 발견했다. 張순경은 “전날 밤 8시에 무기고를 점검한 뒤 다음날 다시 확인해 보니 자물쇠 고리가 쇠톱으로 잘려 있고 보관중이던 총과 실탄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출장소 옆에 있는 높이 1m,폭 1.5m의 무기고에는 당시 예비군 훈련용 M16 소총 13정과 권총 1정,실탄·공포탄 등이 보관돼 있었으며 이 가운데 실탄과 공포탄은 모두 없어졌다.
  • 군,검문 불응 차에 총격 4명 부상/전남 무안 민간통제구역서

    ◎피해자 “軍을 무장간첩 착각” 해안가에 매복중인 군인들이 검문에 불응한 차량에 실탄 사격을 가해 차에 타고 있던 대학생 등 남녀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6일 새벽 1시20분쯤 전남 무안군 현경면 현화리 생록마을앞 바닷가에서 매복중인 육군 모부대 소속 군인 3명이 고향 후배들과 바닷가로 놀러왔던 鄭弘基(27·무안군 현경면 평산리) 등 4명이 탄 전남 54가 6348호 르망승용차를 향해 실탄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조수석에 탔던 朴을수씨(20·목포 과학대1년)는 복부에 총상을 입고 조선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운전자 鄭씨와 李윤희(21),丁애경씨(21·회사원) 등 3명은 양손과 등에 가벼운 파편상을 입었다. 근무자들은 수상한 차량이 라이트를 위·아래로 점멸하다 수하에 불응하고 달아나 공포탄 1발을 쏜 뒤 실탄 15발을 쏘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鄭씨는 제방에서 혼자 담배를 피는 동안 10여m 전방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군인이냐,동네사람이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가 2∼3분 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간첩’일것이라고 생각해 달아났다고 말했다. 사고지점 해안가 일대는 지난 66년과 67·74년 간첩선이 출몰한 곳으로,매일 자정부터 새벽4시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사고당일은 대통령 외유에 따라 특별경계령이 내려졌었다.
  • 축협 권총 강도 검거/어젯밤 남양주서… 범행 일체 자백

    ◎“권총 3∼4년전 미군부대 앞 술집서 주워” 충남 천안시 신방동 축협지소 권총강도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柳성호씨(33·경기도 안산시 사동)가 14일 오후 9시 30분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천마산기도원 입구에서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柳씨가 어려울 때마다 천마산기도원을 찾는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잠복근무를 해 왔다. 柳씨는 경찰에서 범행에 사용한 권총은 지난 83∼84년쯤 경기도 송탄에 있는 미군부대부근 술집 앞에서 실탄 7발이 들어있는 상태로 주었으며,그동안 서울 강남의 금식기도원에서 숨어지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거당시 현금 200여만원을 소지하고 있었으며,범행사실은 인정했으나 동기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했다. 柳씨를 검거한 남양주경찰서는 이날 柳씨의 신병을 충남 천안경찰서로 인도했다. 柳씨는 지난 12일 충남 천안시 신방동 축협신방지소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직원2명을 쏘고 현금 1천여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부대내 각종 비리 소상히 기록/金 중위 사망전 메모 노트 발견

    ◎‘탄약 은닉’ 등 전역병 진술과 일치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金勳 중위는 지난 2월 숨지기 전 부대내의 총기분실·탄약은닉·음주사고 등 각종 비리를 메모식으로 노트에 적어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金중위의 아버지 金拓씨(55·예비역중장)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훈이의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대학노트 1권에는 부대내의 각종비리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면서 “소대장의 위치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당시 군기가 문란해졌음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노트에는 ‘총기 분실’ ‘탄(약)은닉 및 금기사건’, ‘총기장난,MP(헌병)체포’ ‘구타,동기끼리 때려’ ‘선임자 지적에, 선임자 멱살→소대 교체’ ‘초소근무지 총구 위협’ 등 군기 문란 행위가 89쪽에 걸쳐 적혀 있다. 이어 소대원들의 실명과 함께 ‘북쪽에 올라가기 12시간 전 음주’, ‘음주운전, 새벽 3시’라는 메모와 함께 ‘군복무규정을 지키지 않는 우리는 군인도 아니다. 우리는 거짓말쟁이다.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자책하는 메모가 영문으로 쓰여 있어 김 중위가 부대원들의 군기 문란 때문에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金씨는 “웬만한 비리라면 지휘관이 자신도 문책당할 수 있는데 노트에 이런 얘기들을 적어 놓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훈이가 부대내의 문제를 고치려고 혼자 고민하며 갈등을 빚다 반대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탄약은닉’이라는 메모만 봐도 ‘당시 실탄을 쏘다가 남으면 감춰두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박스째 다량으로 보관한 적도 있었다’는 전역병의 진술과 일치한다”면서 “당시 부대 내에 많은 비리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씨는 “훈이가 죽은 뒤 전역병들로 부터 ‘군수품을 팔아먹고 나중에 남대문시장에서 보충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군기가 엉망이었다”고 덧붙였다.
  • 이軍 발포 팔 소년 사망/클린턴 방문 앞둔 서안 팽팽한 긴장

    【라말라(요르단강 서안) AP DPA 연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동방문을 앞두고 9일 요르단강 서안 도시 라말라에서 시위중이던 17세의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하드 일야드로 알려진 17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실탄에 가슴을 맞아 병원에 이송된 후 사망했다고 말했다. ‘인티파다(이스라엘에 대한 봉기)’ 11주년을 맞아 벌어진 시위도중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요르단 서안 북쪽 도시 라말라에서는 최근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격렬한 공방을 벌여왔으며,이 과정에서 최소한 팔레스타인 주민 67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포되고 3명이 부상했다.
  • 軍紀 확립이 급선무다(사설)

    인천에서 발생한 나이키미사일 오발사고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는 터에 불발포탄 분해사고,조명탄 탄피가 민가에 떨어지는 사고까지 잇따라 발생했다. 군(軍)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인상을 피할 길 없다. 미사일이 발사 후 곧 공중에서 폭발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자동폭발장치까지 이상이 생겨 그대로 날아갔다면 가공할 대형참사는 물론이고 대치상황의 남북한간에 최악의 상황까지도 일어날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추정대로 발사장치의 회로에 이상이 있었건,발사장치를 잘못 작동했건 책임을 철저히 따져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례대로 책임규명과 문책등으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군관계 사고들이 어느 한 부대나 특정인의 잘못만이라기보다는 군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걱정하기 때문이다. 바로 군 기강(紀綱)의 해이(解弛)다. 미사일 오발만 하더라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다. 같은 날 육군 모부대에서 일어난 불발포탄 폭발사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소총실탄 한발도 철저히 관리해야 할 군에서 사병이 불발포탄을 갖고와 휴게소에서 분해까지하다니,상상하기도 어렵다. 최근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난 간첩선을 눈앞에 보면서 놓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군의 기강이 총체적으로 풀려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들이라 할 수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군은 군기가 생명이다. 서릿발같이 엄정한 군기의 확립없이 강한 군이나 우수한 전투력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군의 임무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토를 방위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변화나 민주화,장병들의 신세대화는 군기해이의 설득력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동안 32조원이나 쏟아부은 방위력 개선사업의 문제점등도 이번 기회에 철저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군이 보유하고있는 200여기의 나이키미사일을 비롯하여 비슷한 사고를 낼 위험성은 없는지 일제 점검이 필요하다. 무기체계와 관리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도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군기의 확립이다. 군기의 확립은 군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차제에 군의 군기문제를 국민적 차원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군기가 이처럼 해이해진 데는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정국 혼미 더해가는 인도네시아/수하르토 하야 再版 되는가

    ◎유혈사태후 反政 시위 6개도시 확산/위란토 해임·민주화 완결 투쟁 다짐/하비비 최대위기… 野 정권교체 가능성 인도네시아 정국이 수하르토 하야 당시의 재판(再版)이 돼가고 있다. 한번 피를 본 군중들이 비등점을 넘어섰는데 정부당국은 여전히 강경하다. 또다시 국가적 유혈사태로 치달을 듯 격앙된 분위기다. 지난주 16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뒤 시위대는 19일 다시 끓어 올랐다. 이날 대학생 3,000여명이 자카르타에서 항의 집회를 연데 이어 여섯군데 이상 지방 도시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희생자 부검 결과 실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0일에는 500여명이 최대의 유혈참극 현장 아트마 자야 카톨릭 대학에서 추모미사를 올렸다. ‘무하미디야’ 이스람교도 등 수백명은 국립기념관에서 대통령궁까지 행진도 펼쳤다. 학생들은 발포 책임자 위란토 통합군 사령과 해임, 민주화 완결 등이 이뤄질 때까지 스크럼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것은 인도네시아 입법기구 국민협의회(MPR). 지난 13일 내년 5∼6월 총선,군부 정치참여 비율축소,수하르토 축재조사 등을 규정한 12개항의 정치개혁법을 통과시켜 즉각 총선 실시,군인의 정치 참여금지,수하르토 처벌 등 국민들의 요구를 저버렸다. 군중들은 MPR의 정통성부터 하비비 대통령 하수인으로 춤춘 이번 개혁법 처리까지를 문제삼고 있지만 하비비는 정치 개혁법 없이 개혁도 없다며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은 지난 5월 군 발포에 따른 대학생 사망이 수하르토 퇴진을 촉발시켰다는 점으로 볼때 사태 진전 여하에 따라 하비비 정권에 최대 위기를 안겨줄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당수를 내세워 정권교체 시도를 가시화 하고 있다.
  • 美 중간선거 ‘돈선거’ 조짐/CNN·AP 분석

    ◎민주·공화당 대선이후 10억불 모금/공화­주요지역 후보에 160만불 지원/민주­막판 대규모 ‘실탄지원’ 나설듯 상원 의원의 3분의 2와 하원 전체 의원을 새로 뽑는 11월3일의 미국 중간선거가 자칫 ‘돈선거’로 치달을 조짐이다. 미국 CNN은 26일 공화당 선거위원회는 뉴욕·플로리다·캘리포니아 등 주요 지역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많게는 160만달러(약 20억원)의 ‘현금 실탄’을 쏟아붓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도 당장은 각 후보의 개인적 ‘역량’에 의존하고 있지만 막판에는 역시 ‘실탄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CNN은 선거에 엄청난 돈을 들이는 것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토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미국의 양대 정당은 96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10억달러에 가까운 정치자금을 모금해 왔다는 것.58%는 개인 헌금이고 27%는 기업체·노조 등으로 구성된 정치활동위원회(PAC) 후원금이며 8%는 후보 개인 차입금이다. 방송은 이어 전국적으로 공화당의 자금력이 민주당에 앞선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선거전이 치열하기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AP통신도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FCC)의 후보 재정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을 보도했다.1,037명의 후보가 지난해 모금한 자금은 모두 2억3,290만달러에 이르렀다.후보마다 2억달러 이상을 손에 쥐고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는 얘기다. 미국은 정치인에 대한 기부자의 헌금 한도는 제한하고 있으나 후보의 지출한도는 물론 후보외 당이나 개인이 후보를 위해 쓰는 돈도 규제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은 예전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자금이 워낙 많이 들어가 후유증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 경찰 장외경마장서 실탄 발사/수배 조선족 1명 잡으려

    ◎고객 100여명 대피소동 25일 오후 5시10분쯤 경기 광명시 철산동 서울경마장 4층 장외발매소에서 강도상해로 수배된 조선족 崔창림씨(33·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가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과 소속 金炳喆 경장이 쏜 실탄에 오른쪽 옆구리를 맞고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경마장 안에 있던 고객 100여명이 총소리에 놀라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金경장은 “강도상해 혐의로 수배된 崔씨가 경마장에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와 함께 출동,崔씨를 체포하려 했으나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면서 “공포탄 1발을 쏘았으나 도망가면서 계속 흉기를 휘둘러 어쩔수 없이 실탄 1발을 쐈다”고 말했다. 崔씨는 지난 8월 중순 서울 구로구 구로3동 공단역 입구에서 조선족 裵모씨(32)를 흉기로 20여차례 찔러 중태에 빠뜨려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경찰관 직무교육/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가정집 담장을 넘던 50대 절도용의자가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지난 16일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나던 10대 중학생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지 불과 3일만의 불상사다.지난 달에도 서울대병원 구내와 충남 당진에서 절도용의자들이 잇따라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범죄가 날로 흉포화되고 경찰관들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에서 총기사용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번 경우에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주택가 담장을 넘던 용의자에게 내려올 것을 설득했으나 오히려 벽돌과 각목을 던지며 반항해 공포탄 한발을 쏜 뒤 실탄 두발을 허벅지와 엉덩이에 명중시켜 결국 과다출혈로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경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범인을 죽이지 않고 검거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점이다. 탈옥 무기수 申昌源사건 이후 경찰의 총기사용 횟수는 부쩍 늘었다.지난해 1∼8월의 경우 범인을 잡기 위한 경찰의 총기사용 건수는 147건이었으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213건으로 무려 44.9%나 늘었다.‘총도 쏠줄 모르는 경찰’이라는 여론의 빗발치는 질책이 있고 난 이후의 일들이다.필요할 경우 경찰관이 총을 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모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관들의 직무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경찰관의 직무집행법에도 공무집행을 위해 총기를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그러나 정당방위에 해당할 때만 사용토록 제한하고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할 것이다.불가피하게 총기를 사용할 때도 먼저 공포탄을 쏜 뒤 실탄 한발을 하체에 맞혀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는 보편적 가치와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경찰장비관리규칙에서 총기사용 안전수칙을 따로 정해두고 있는 이유도 이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찰이 총기를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때가 가끔 있다.최근에는 더욱 자주 그런 느낌을 갖게 된다.우리의 경우 내근 경찰관들은 연 2회 70발,파출소 근무자와 교통·형사 등외근 경찰관들은 연 6회 210발을 쏘는 사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이는 선진 외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횟수는 아니다.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범인의 대퇴부 아래를 명중시켜 생포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가슴이나 머리를 맞혀 숨지게 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으니 더욱 철저한 직무교육이 요구된다. 오늘은 제 53주년 경찰의 날이다.영욕의 세월을 살아왔다.이제 정치권력에서 독립한 자치경찰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을만큼 상황은 호전됐다.진정 ‘민중의 지팡이’로 거듭나기 바란다.
  • 경찰에 대항 절도용의자/실탄 맞고 후송도중 숨져

    19일 오후 7시15분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가정집 담을 넘던 절도용의자 李승재씨(서울 구로2동)가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李씨는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서대문 경찰서 신촌파출소 소속 金동주 경장 등 4명에게 벽돌을 던지며 주택 옥상으로 올라가 반항하다 경찰이 쏜 실탄두발을 왼쪽 대퇴부에 맞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중,과다출혈로 숨졌다.
  • 경찰 총맞은 사망자는 中 3년생으로 밝혀져

    서울 노량진경찰서는 16일 “지난 15일 밤 서울 동작구 상도2동 숭실대 인근에서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나다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숨진 절도 용의자는 서울 D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李모군(15·동작구 흑석3동)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경찰,범인 뒤서 총쏴 사망/어젯 밤 상도동 주택가서

    ◎오토바이 절도범 뒤쫓다 실탄 2발 발사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나던 20대 절도 용의자가 경찰이 발사한 실탄에 등을 맞고 숨져 경찰의 과잉 총기사용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특히 용의자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데다 무기도 휴대하지 않아 경찰의 총기사용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5일 저녁 8시33분 서울 동작구 상도5동 80의 29 숭실대 근처 주택가 골목길에서 서울 노량진 경찰서 소속 흑석2동 파출소 馬상돈 순경(26)이 검문에 불응해 달아나던 20대 용의자에게 실탄을 발사,숨지게 했다.이 용의자는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 흑석3동 청호아파트 부근에서 사이카를 타고 순찰근무 중이던 馬순경은 도난 오토바이로 보이는 權모씨(43·서울 동작구 흑석동)소유의 서울 동작 다 4759 100㏄ 빨간색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20대 용의자 두명을 발견,검문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검문에 불응한 채 그대로 달아났고,馬순경은 상도5동 골목길로 1.5㎞를 쫓아갔다. 추적을 받던 용의자들은 오토바이를 버리고 양쪽 방향으로 나뉘어 도주했으며,馬순경은 이 가운데 한 명을 선택,100여m를 더 추격했다. 이때 馬순경은 경적을 울리며 여러 차례 “정지하라”고 경고했지만 용의자가 이를 무시하자 갖고 있던 38구경 권총으로 공포탄 1발을 먼저 발사했다. 그럼에도 용의자가 계속 도주하자 馬순경은 이어 실탄 1발을 발사했으나 빗나갔고,곧바로 대퇴부쪽을 겨냥해 실탄 1발을 다시 발사,총알은 용의자의 등을 관통했다.용의자는 인근 신길동 성애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0분 뒤인 저녁 9시20분 숨졌다. 경찰은 馬순경이 총기사용이 미숙해 실수를 한 것으로 보고,馬순경을 상대로 총기사용의 경위를 조사중이다. 馬순경은 지난 해 6월30일 경찰에 투신했다.
  • 무장탈영 2명 대낮 강도짓/김해서 택시 턴후 도주

    ◎군·경 1천명 수색작업 소총과 실탄을 갖고 부대를 탈영한 사병 2명이 경남 김해에서 타고 가던 택시 운전기사를 위협,금품을 강탈해 달아나 군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12일 오전 9시쯤 육군 00사단 예하부대인 부산시 영도구 모 대대 소속 李상훈 일병(20·충북 음성군 원남면 구암리 5)과 金한수 일병(21·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1308) 등 2명이 M16 소총 1정과 실탄 840발을 휴대하고 탈영했다. 이들은 영도구에서 朴모씨(53·부산시 영도구 동삼동)의 개인택시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가던중 오후 3시30분쯤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덕촌마을에 도착한 뒤 朴씨를 흉기로 위협,현금 8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군과 경찰은 이들이 택시에서 내려 덕촌교회 뒷산으로 달아났다는 朴씨의 진술에 따라 1,000여명의 병력을 배치,야산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날이 어두워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쏘면 과잉대응… 안쏘면 무능/경찰 총기사용 또 논란

    ◎일부 시민들 “가슴 겨냥한건 인권침해다”/경찰 “검거 최후수단… 오발·남용 막겠다” ‘쏘면 과잉 대응,안쏘면 무능한 경찰’ 경찰이 총기사용을 놓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지난 14일 절도범 申모씨가 경찰관이 쏜 권총 실탄을 가슴에 맞고 숨지자 과잉대응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직무집행을 위한 정당한 총기사용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는 도주자의 ‘목숨을 건지기 위한 차선책’으로 총기사용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의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억제 △무기·흉기 등 위험물 소지자가 3회 이상 투항명령에 불응한 경우 등에는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지금까지의 총기 사용 횟수는 247건으로 이 가운데 213건이 범인검거에 사용됐다. 나머지는 광견이나 축우 사살 등이다. 총기 사용으로 사망 3건,중상 16건,경상 8건 등 27건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나머지 220건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경찰관이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는 범인의 위협에 좀더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총기를 사용할 때는 대퇴부 이하를 조준하도록 한 수칙을 무시하고 가슴에 총을 쏴 사망토록 한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과잉 방어라는 일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에게 범인검거를 위한 마지막 수단인 총기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다”면서 “연간 2차례 210발씩 쏘는 사격연습 횟수를 점차 늘리는 한편 일선 경찰서별로 모의 사격연습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장치를 설치해 총기의 오발과 남용을 막겠다”고 말했다.
  • 검문 불응 車 절도 피의자에/경찰,실탄난사 중태 빠뜨려

    ◎서울대 병원서… 과잉대응 논란 경찰이 차량을 훔친 혐의를 받던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실탄을 7발이나 쏴 중태에 빠뜨려 과잉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13일 하오 5시30분쯤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1층에서 검문에 불응하고 도망가던 20대 남자를 총으로 쏴 검거했다. 이 남자는 총에 맞은 채 5m 아래 창문 밖으로 도망치다 머리를 크게 다쳐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이 위독하다. 이 남자는 도난 차량으로 수배된 서울 30가5179 아반떼 차량을 몰고 가다 경찰의 불신 검문에 걸리자 서울대병원 안으로 도망가다 경찰이 쏜 총을 맞고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동숭파출소 柳모 순경은 “도주 차량을 발견하고 뒤쫓아 갔는데 계속 검문에 불응하면서 도망가 공포탄 2발과 실탄 7발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 파출소서 달아나던 중학생 권총 쏴 중태/무면허 운전 혐의

    지난 30일 하오 11시 30분쯤 경남 마산동부경찰서 구암1파출소에서 무면허운전 혐의로 조사받던 金모군(15·마산 Y중 3년)이 달아나다 李基道 순경(37)이 쏜 38구경 권총실탄을 뒷머리에 맞고 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생명이 위독하다. 金군은 이날 친구 3명과 함께 아버지 소유인 경남 33가 8937호 프린스승용차를 타고가다 검문에 걸려 파출소에서 조사받던 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달아났다. 李순경은 金군이 300m쯤 달아나 인근 길가에 주차중인 승용차밑에 숨자 “나오라”며 권총을 쥔 오른손으로 어깨를 툭툭 치다 오발했다.실탄은 金군의 뒷머리 부분을 관통했다.李순경은 추격중 실탄 1발을 위협사격하기도 했다.
  • 10대 강도 1명 잡으려 경관 4명 실탄 12발 쏴

    경찰이 가정집에 들어가 금품을 털어 달아나던 10대 강도에게 권총 실탄과 공포탄 등 17발을 발사해 붙잡아 과잉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31일 상오 7시쯤 서울 광진구 자양2동 朴모씨(49) 집에 金모군(17·무직)이 침입,현금 74만원 등을 빼앗아 집밖으로 나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부경찰서 자양2파출소 소속 정중실 순경(24) 등 4명과 흉기로 자해 위협을 하며 달아났다. 金군은 주변에 세워져 있던 쏘나타3 택시(운전사 李중웅·54)를 탈취해 500m 가량 달아나다 주택가에 세워져 있던 차량 2대를 들이받고 멈춰섰다. 뒤쫓던 경찰관 4명은 순찰차로 도주 차량을 가로막고 자수를 권유했으나 金군이 흉기를 휘두르며 반항하자 공포탄 4발과 실탄 13발을 쏴 金군의 다리에 4발,팔에 1발을 맞힌 뒤 붙잡았다.金군은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 지뢰·탄약관리 철저히(사설)

    전국을 강타했던 집중호우가 250여명의 인명과 1조3,000억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끝났다.모처럼의 맑은 햇살아래 민·관·군이 합심하여 복구에 땀을 흘리고 있으며 특히 군병력과 자원봉사자들의 복구지원 노력이 돋보인다. 이번 물난리는 많은 문제점과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군의 탄약관리가 허술하다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경기 북부지방의 군부대에서 박격포탄을 비롯한 탄약 10여t과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 대인지뢰가 대량 유실됐다.다행히 탄약류는 대부분 회수됐지만 발목지뢰는 휩쓸려 내려간 지역이 넓은데다 지뢰의 크기가 주먹보다 작고 탐지도 어려워 거의 수거되지 않고있다.인명피해의 위험이 커 주민들은 불안하다.이미 피서객 1명이 지뢰를 밟아 부상했고 복구작업 현장에서 터지는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물난리가 시작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군장병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굳이 탄약유실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탄약관리가 군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기때문이다.탄약은 수해를 포함한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는 장소에 보관하고 관리되어야 한다.병기와 실탄은 군의 존재이유인 전투수행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또 유출됐을 경우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다. 지뢰 관리의 중요성은 더하다고 할 수 있다.지뢰는 평소 땅속에 매설돼있는 상태라 수해에 휩쓸리기 쉽고 유실됐을때 인명피해의 위험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더구나 국제적으로도 그 위험성때문에 대인지뢰 사용금지 캠페인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76년 수해때도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었다는 점에서 탄약 관리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그 당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않도록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까지 했었다.그러나 그때뿐이었고 이번 물난리에서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됐다.그때 유실됐던 지뢰가 아직도 완전히 회수되지 못했으며 농민들과 낚시꾼들이 계속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탄약과 지뢰의 유실을 계기로 군부대의 탄약관리상태를 다시한번 일제히 점검하여 허술함을 완벽하게 보완하기를 당부한다.수재복구와 함께 유실된 발목지뢰를 회수하는데도 최선을 다해야함은 물론이다. 수재에다 군이 탄약유실의 걱정까지 국민들에게 끼치는 일은 이번 수재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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