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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나토 유고공습에 ‘촉각’

    북한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고 공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나토 모자를 쓴 미국의 ‘유고 때리기’를 남의 일로 보지 않는 셈이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코소보상황을 생중계하다시피 하고 있다.특히 중앙통신은 최근 짐짓 “이라크에 이어 유고를 공격하고 있는 미국의 다음 타격목표는 조선반도”라고까지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그 연장선 상에서 후속 반응을 내놓았다.“미국이 우릴 공격하면 부나비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대미(對美) ‘경고’였다. 지난 93∼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설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북한으로선 조건반사적 반응인 셈이다. 미국의 유고 융단폭격이 북한에 ‘교훈’이 될지,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은밀한 유혹’을 더욱 부추길지 현재로선 불확실하다. 미국평화연구소의 한반도전문가 스코트 스나이더는 미국의 유고 공습이 북한을 조심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크 모치츠키는 한반도에서 미국이 비슷한 행동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면 북한이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유고는 나토 전투기에 실탄을 발사할 능력을 갖춘 게 고작이나 북한은 (한국의) 대도시를 향한 대규모 공격으로 엄청난 참사를 초래할 능력이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다만 북한은 이왕 벌어진 미국의 유고 개입사태가 장기화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통일부 김형기(金炯基)통일정책실장은 “북한은 미국이 ‘베트남 수렁’에 빠져든 것처럼 코소보사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이 경우 미국의 ‘윈­ 윈전략’이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본영기자
  • 「오늘 ‘4·19’ 39돌」시위 주역 모임 ‘사랑방회’

    “독재와 부정에 항거하다 쓰러진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4월 혁명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그날의 외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태평로국회의사당과 경무대 앞은 총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의와 자유를 부르짖는학생들의 물결이 이어졌다. ‘4·19 사랑방회’는 이들이 혁명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회장은 김금석(金金石·60)씨.당시 고려대 3학년이던 김씨는 혁명의 불씨가 됐던 4·18 고려대생 시위를 이끈 주인공이다. 60년 4월13일 대학생 대표들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의논하려고 광화문 ‘수향다방’에 모였다.그러나 정보가 새면서 대표 학생들은 그뒤 학교 안에 갇히는 처지가 됐다. 신입생 환영회가 열린 4월18일 고려대 운동장에는 2,0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하지만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고문과 이세기(李世基)의원 등 4학년 학생들은 학생처장실에 붙들려 있어 시위를 이끌 수 없었다. 김씨 등은 어쩔 수 없이 선배들을 대신해 시위대를 이끌고 태평로 국회의사당으로 갔다.맨 앞에 서서 구호를 외쳤던 그는 곧 경찰에 붙잡혔으나 유진오(兪鎭午) 당시 총장의 중재로 풀려났다. 19일에는 학생들과 경무대로 몰려갔다.경찰은 시위학생들을 향해 붉은 물감을 탄 물을 소방호스로 뿌려댔다.그래도 해산하지 않자 공포탄과 실탄을 발사했다.눈 앞에서 동국대 법학과 3학년 노희두 학생이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첫 희생자였다. 김씨는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난사하는데도 여학생과 중학생·초등학생까지 거리로 몰려나왔다”면서 “부상자를 위해 시민들이 앞다퉈 헌혈을 했다”고 회고했다. ‘4·19 사랑방’은 혁명 10주년인 70년 시위를 주도했던 고려대 서울대 중앙대 동국대 출신 300여명이 만들었다.하지만 2년 뒤 10월유신으로 강제 해산됐다. 그러나 95년 4·19가 ‘혁명’으로 위상이 정립되면서 부활했다.회원들은대학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거나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다.이기택 고문과이세기·김중위(金重緯)의원을 비롯,박찬세(朴贊世)전통일원연수원장,김대운(金大運)동국대 교수,김칠봉(金七峰)전성남중고동창회장,탁연복(卓然復)천아건설 부회장,최인환(崔仁煥)전교통방송본부장,김병일(金炳鎰)전서울신문 광고국장 등이 회원이다. 김회장은 “자유·민주·정의의 4월혁명 정신이 잊혀져 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혁명정신을 되살려 경제난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권총·실탄 소지 절도용의자 경찰 총맞고 도주하다 숨져

    차량번호판 절도 용의자가 경찰이 쏜 총에 허벅지를 맞고 달아나다 피를 많이 흘려 숨졌다.전과 6범인 이 용의자는 강도상해 혐의로 수배중이었고,차에서는 권총과 실탄 등이 발견됐다.11일 오전 10시5분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율량동 모 카센터 앞 길에서 도난차량 발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이 차량 소유주 임모씨(35·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현대2차아파트)를 검거하려다 흉기를 휘두르며 완강히 저항하는 임씨에게 공포탄 2발과 실탄 7발을쐈고 1발이 허벅지를 관통했다. 임씨는 피를 흘린 채 차를 몰고 4㎞가량 도주한 뒤 청원군 북일면 모 공군부대 후문 부근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숲속으로 달아나다 쓰러진 상태로 경찰에 발견돼 청주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출혈 과다로 오전 10시 40분쯤 숨졌다. 경찰조사 결과 임씨는 충북 31거 8855호 도난 차량(라노스)의 번호판을 훔쳐 자신의 포텐샤에 달고 다녔으며 지난 1월 6일 강도상해 혐의로 청주 동부경찰서에 의해 지명 수배중이었다.
  • 경찰,용의자와 대치중 권총쏴 창고 열던 주민2명 부상

    8일 오전 7시15분쯤 경북 구미시 원평동 李모씨(51)집 창고앞에서 절도용의자 양모씨(42·서울 강동구 길동)와 대치하던 구미경찰서 원동파출소 金홍영 경사(39)와 司空영일 순경(27) 등 2명이 양씨가 흉기를 들고 완강히 저항하자 38구경 권총 실탄 5발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양씨는 왼쪽 허벅지에 2발,오른쪽 허벅지에 1발을 맞았으며 창고문을 열어주던 李씨와 부인 전모씨(46) 등 2명은 각각 왼쪽 발목과 왼쪽무릎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중이다. 앞서 金경사 등은 이날 오전 7시5분쯤 인근 모텔 객실에 절도범이 침입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양씨를 발견했으나 놓쳤다.金경사 등은 인근 수색에 나서 모텔과 인접한 李씨집 창고안에 양씨가 숨어있는 것을 확인,자수할 것을요구하며 대치했었다. 경찰은 金경사 등을 상대로 총기 사용수칙 준수여부와 사건경위 등에 대해조사중이다.
  • [규제개혁 현장점검]벤처기업 지원대책

    벤처기업.-‘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지난해 뭇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말 가운데 하나다.그만큼 벤처기업에 거는 정부와 국민의 기대는 크다.이같은 성원을 배경으로 지난해 벤처기업에 대한 수많은 지원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벤처기업이 창업할 때까지의 관련제도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와견주어도 우리가 손색이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올림픽 금메달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정부가 마련해 지난해 말 제정된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은 벤처 기업 창업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우선 법인설립자본금을 5,000만원 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또 대학교수나 연구소 연구원이 벤처기업의 임직원을 겸할 수 있도록 했다.‘1실험실 1창업운동’을 기치로 한 이 법이 만들어져 누구나 기술력만 있으면 손쉽게 벤처 회사를 차릴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말 2,042개이던 벤처기업이 3월 말 현재 2,565개로 늘어났다.대학내 벤처기업도 27개(지난해 말)에서 두배 가량 늘어났다.벤처기업협회 金鮮烘 연구실장은 “벤처기업 창업에 관한 한 사실상 아무런 규제나 제약이 없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벤처기업에 대한 규제는 풀렸지만 실제 운용 면에서는 여러가지 어려움이따른다.무엇보다 창업 후 직면하는 도전은 바로 자금난이다.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 등에는 은행의 담보요구와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연대보증 요구로자금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벤처창업자들의 애로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金실장은 “막상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를 상품화할 ‘실탄’(자금)이 없다는 호소가 전체 애로사항의 99%에 이른다”고 말했다.“창업만 있고 육업(育業)은 없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또 애써 개발한 기술이 올바로 검증받지 못하는데다 제대로 보호되지 않아 애로를 겪는다.金실장은 “과거에 없던 미래기술이다 보니 상품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평가전문인력을 대폭 확충해 범정부 차원의 평가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설령 상품가치를 인정받더라도 이를 생산으로 연결할 자금을 대출받기가 쉽지않다.가장 큰 장벽은 은행의 부동산담보 요구와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연대보증 요구다.벤처협회측은 “정부가 기술신용대출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아직은 담보와 연대보증이 있어야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기술신용을 보다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기업 성공의 확률이 낮은 벤처 기업 부문이 파산을 두려워하지않고 기업 활동을 펴나가기 위해서는 파산법 등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도 자주 지적된다.산업연구원의 이선원장은 “파산해도 쉽게 재기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것이 창업 붐을 촉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 도주자 총쏴 사망…대법 “경찰 정당방위 벗어나”

    용의자가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더라도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상황에서 경찰관이 실탄을 발사해 숨지게 했다면 국가도 40%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徐晟 대법관)는 지난달 31일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사망한 차량절도 용의자 崔모씨의 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국가의 상고를 기각,국가에게 40%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崔씨가 길이 40㎝ 흉기를 휘두르는 등 격렬하게 저항한 상황에서 경관이 총을 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2m 거리를 두고 달아나는 崔씨의 등에 실탄을 발사한 것은총기사용 허용 범위를 벗어난 위법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건 당시 현장에는 다른 경관과 시민이 있어 추격이 가능했고 흉기가 몸 가까이에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총기사용이 정당방위를 벗어난 것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숨진 崔씨는 97년 3월 서울 망원동에서 도난차량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을 흉기로 위협한 뒤 달아나다가 경찰관이 쏜 실탄을 맞고 숨졌다.가족은 이에 국가를 상대로 1억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며 1·2심 재판부는 국가가 6,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任炳先
  • [오늘의 눈] 창설30돌 통일부 위상

    2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 회의실.1일로 30돌을 맞은 통일부 창설을 자축하는 조촐한 기념식이 열렸다. 지난 69년 국토통일원으로 첫걸음을 디딘 이래 ‘이립(而立)’의 연륜을 쌓은 셈이다.그럼에도 장년기의 통일부 위상은 여전히 초라한 느낌이다. 대북 정책 총괄부서인 통일부의 올해 예산은 491억원에 불과하다.정부 전체예산의 0.07%에도 못미친다. 다른 대북 유관부서에 비해 ‘실탄’뿐만 아니라 ‘손발’도 적다.현인원이498명으로 외교통상부·국방부·국가정보원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북 정보가 풍부한 것도 아니다.정보 수집이 본령인 국정원은 논외로 치자.방대한 해외 공관망을 통해 북한 동정을 접하는 외교부와도 게임이 안될 정도다. 물론 통일부의 ‘본업’은 각 부처의 대북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일이다.그러나 이 고유기능마저 최근 ‘도전’받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지난달 22일 朴相千법무장관은 3·1절 특별사면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미전향장기수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고위정보당국자도 “이 문제를 국군포로 송환 등과 연계,보내기로 해북한과 접촉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 직후 통일부의 반응은 “우린 아는 바 없다”였다.“어차피 대통령 중심제인데 (우리는)조용히 일해야 한다”며 함구자세였다.金大中대통령이 25일취임 1주년 회견에서 국군포로 등과의 맞교환을 제안할 때까지 별다른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이 때문에 통일부의 적극적인 분발을 요구하는 지적도 많다.최근 청와대의한 고위관계자조차 장기수 문제로 부처간 혼선을 빚자 법무부·통일부를 모두 꼬집었다.그는 법무부가 출소 남파간첩 송환문제를 불쑥 꺼낸 것은 잘못이라고 ‘판정’했다.동시에 통일부에는 ‘왕따’에 대해 불평하기에 앞서“발표기관을 찾아 조율하는 적극성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통일부가 뒷짐을 지고 있기엔 한반도 안팎의 소용돌이가 너무 거세다는 생각이다.빌리 브란트 전서독총리는 90년초 방한때 통독 시점에 대해 질문받았다.통독의 견인차였던 그의 입에서는 “운명의 여신이 미소짓지 않는다면 우리 생애에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답이 나왔다.하지만 그의 귀국 몇달후 ‘통일 사태’가 들이닥쳤다. [具本永정치팀 차장]
  • 한나라, 이젠‘정계개편 저지’집회

    1일 여의도 한나라당 중앙당 사무처에는 모처럼 활기가 감돌았다.당내 여의도연구소가 중앙당사로 이전되기 전 사용하던 근처 빌딩 사무실의 보증금 10억원이 오후에 입금됐다. 사무처 직원들의 밀린 임금 가운데 일부를 우선 지급했고 나머지는 대여(對與)규탄집회를 위한 ‘실탄’으로 비축했다.당 지도부는 “당분간 집회비용에 여유가 생겼다”며 반색했다. 내친 김에 지도부는 인천에 이어 대구,부산,동해안 지역 등에서 장외집회를 갖거나 서울에서 권역별 옥내집회를 벌이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휴일인 7일에는 李會昌총재를 비롯한 당직자,당원이 대거 관악산을 오른다. 한나라당이 계속 장외투쟁으로 치닫는 것은 여권의 정계개편 구상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다.“여권이 정계개편을 포기할 때까지 장외투쟁 기조를 밀고나가겠다”는 것이다.‘정계개편은 곧 야당파괴’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李총재가 전날 구미집회에서 안기부 정치사찰 의혹을 둘러싼 요구사항을 사실상 철회하고 ‘대통령의 정계개편 포기 선언’을 영수회담의 ‘유일한’조건으로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지도부는 이날 金大中대통령의 ‘동서화합형 정계개편 추진’발언이알려지자 진의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아직도 멀었다”며 투쟁 의지를다졌다.安澤秀대변인은 주요당직자회의 직후 “여권이 야당을 파괴하려는 정계개편의 망상을 버리지 않고는 여야간 총재회담은 물론,다른 차원의 대화도 추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辛卿植사무총장도 “여당이 총장간 대화를 제의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며 “여권이 몇몇 야당 의원을 상대로 영입을 위한 물밑교섭을 벌인다는 말이있지만 동요하는 의원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관 파출소서 권총자살 주식투자 실패 비관 추정

    21일 오전 10시40분쯤 서울 성북1동 파출소내 화장실에서 이 파출소 소속趙秀衡경사(57·강북구 미아9동)가 권총으로 실탄 1발을 머리에 쏴 자살했다. 경찰은 오는 6월 정년퇴직 하는 趙경사가 최근 주식투자로 2,000만원을 날린 점 등으로 미뤄 생활고와 퇴직후에 대한 고민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李鍾洛 jrlee@
  • 만년필형 권총 반입 첫적발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서 요인암살 등을 위해 쓰이는 만년필형 권총(사진)이 국내로 반입되다 처음으로 적발됐다. 만년필형 권총은 33㎝ 떨어진 거리에서 3㎝ 두께의 탈지면을 관통할 정도로 위력적이다. 서울지검 외사부(姜忠植 부장검사)는 15일 朴大福씨(46·전과8범)를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張容誠씨(39·무역업)를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또 김포공항 경찰대 감찰반장 柳모경장을 수배했다. 朴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필리핀을 오가며 무역을 해오다 12월2일 필리핀 현지인으로부터 5만원을 주고 호신용으로 만년필형 사제권총 1정과 실탄 3발을 구입한 뒤 柳경장의 도움으로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朴씨는 공항입국심사대 앞에서 柳경장에게 권총을 건네주고 무사히 통과한 것으로 드러났다.金載千 patrick@
  • 충남 고대島 파출소서 총 2정·실탄 200발 도난

    17일 오후 8시부터 18일 오전 8시30분 사이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에 있는 보령경찰서 원산도파출소 고대도출장소(어선통제소) 무기고에서 M16 소총 1정과 실탄 200발 및 공포탄 10발,38구경 권총 1정과 실탄 10발 및 공포탄 7발 등이 없어진 것을 이 출장소 張承鉉 순경(30)이 발견했다. 張순경은 “전날 밤 8시에 무기고를 점검한 뒤 다음날 다시 확인해 보니 자물쇠 고리가 쇠톱으로 잘려 있고 보관중이던 총과 실탄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출장소 옆에 있는 높이 1m,폭 1.5m의 무기고에는 당시 예비군 훈련용 M16 소총 13정과 권총 1정,실탄·공포탄 등이 보관돼 있었으며 이 가운데 실탄과 공포탄은 모두 없어졌다.
  • 군,검문 불응 차에 총격 4명 부상/전남 무안 민간통제구역서

    ◎피해자 “軍을 무장간첩 착각” 해안가에 매복중인 군인들이 검문에 불응한 차량에 실탄 사격을 가해 차에 타고 있던 대학생 등 남녀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6일 새벽 1시20분쯤 전남 무안군 현경면 현화리 생록마을앞 바닷가에서 매복중인 육군 모부대 소속 군인 3명이 고향 후배들과 바닷가로 놀러왔던 鄭弘基(27·무안군 현경면 평산리) 등 4명이 탄 전남 54가 6348호 르망승용차를 향해 실탄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조수석에 탔던 朴을수씨(20·목포 과학대1년)는 복부에 총상을 입고 조선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운전자 鄭씨와 李윤희(21),丁애경씨(21·회사원) 등 3명은 양손과 등에 가벼운 파편상을 입었다. 근무자들은 수상한 차량이 라이트를 위·아래로 점멸하다 수하에 불응하고 달아나 공포탄 1발을 쏜 뒤 실탄 15발을 쏘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鄭씨는 제방에서 혼자 담배를 피는 동안 10여m 전방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군인이냐,동네사람이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가 2∼3분 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간첩’일것이라고 생각해 달아났다고 말했다. 사고지점 해안가 일대는 지난 66년과 67·74년 간첩선이 출몰한 곳으로,매일 자정부터 새벽4시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사고당일은 대통령 외유에 따라 특별경계령이 내려졌었다.
  • 축협 권총 강도 검거/어젯밤 남양주서… 범행 일체 자백

    ◎“권총 3∼4년전 미군부대 앞 술집서 주워” 충남 천안시 신방동 축협지소 권총강도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柳성호씨(33·경기도 안산시 사동)가 14일 오후 9시 30분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천마산기도원 입구에서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柳씨가 어려울 때마다 천마산기도원을 찾는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잠복근무를 해 왔다. 柳씨는 경찰에서 범행에 사용한 권총은 지난 83∼84년쯤 경기도 송탄에 있는 미군부대부근 술집 앞에서 실탄 7발이 들어있는 상태로 주었으며,그동안 서울 강남의 금식기도원에서 숨어지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거당시 현금 200여만원을 소지하고 있었으며,범행사실은 인정했으나 동기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했다. 柳씨를 검거한 남양주경찰서는 이날 柳씨의 신병을 충남 천안경찰서로 인도했다. 柳씨는 지난 12일 충남 천안시 신방동 축협신방지소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직원2명을 쏘고 현금 1천여만원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부대내 각종 비리 소상히 기록/金 중위 사망전 메모 노트 발견

    ◎‘탄약 은닉’ 등 전역병 진술과 일치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金勳 중위는 지난 2월 숨지기 전 부대내의 총기분실·탄약은닉·음주사고 등 각종 비리를 메모식으로 노트에 적어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金중위의 아버지 金拓씨(55·예비역중장)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훈이의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대학노트 1권에는 부대내의 각종비리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면서 “소대장의 위치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당시 군기가 문란해졌음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노트에는 ‘총기 분실’ ‘탄(약)은닉 및 금기사건’, ‘총기장난,MP(헌병)체포’ ‘구타,동기끼리 때려’ ‘선임자 지적에, 선임자 멱살→소대 교체’ ‘초소근무지 총구 위협’ 등 군기 문란 행위가 89쪽에 걸쳐 적혀 있다. 이어 소대원들의 실명과 함께 ‘북쪽에 올라가기 12시간 전 음주’, ‘음주운전, 새벽 3시’라는 메모와 함께 ‘군복무규정을 지키지 않는 우리는 군인도 아니다. 우리는 거짓말쟁이다.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자책하는 메모가 영문으로 쓰여 있어 김 중위가 부대원들의 군기 문란 때문에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金씨는 “웬만한 비리라면 지휘관이 자신도 문책당할 수 있는데 노트에 이런 얘기들을 적어 놓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훈이가 부대내의 문제를 고치려고 혼자 고민하며 갈등을 빚다 반대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탄약은닉’이라는 메모만 봐도 ‘당시 실탄을 쏘다가 남으면 감춰두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박스째 다량으로 보관한 적도 있었다’는 전역병의 진술과 일치한다”면서 “당시 부대 내에 많은 비리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씨는 “훈이가 죽은 뒤 전역병들로 부터 ‘군수품을 팔아먹고 나중에 남대문시장에서 보충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군기가 엉망이었다”고 덧붙였다.
  • 이軍 발포 팔 소년 사망/클린턴 방문 앞둔 서안 팽팽한 긴장

    【라말라(요르단강 서안) AP DPA 연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동방문을 앞두고 9일 요르단강 서안 도시 라말라에서 시위중이던 17세의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지하드 일야드로 알려진 17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실탄에 가슴을 맞아 병원에 이송된 후 사망했다고 말했다. ‘인티파다(이스라엘에 대한 봉기)’ 11주년을 맞아 벌어진 시위도중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요르단 서안 북쪽 도시 라말라에서는 최근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격렬한 공방을 벌여왔으며,이 과정에서 최소한 팔레스타인 주민 67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포되고 3명이 부상했다.
  • 軍紀 확립이 급선무다(사설)

    인천에서 발생한 나이키미사일 오발사고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는 터에 불발포탄 분해사고,조명탄 탄피가 민가에 떨어지는 사고까지 잇따라 발생했다. 군(軍)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인상을 피할 길 없다. 미사일이 발사 후 곧 공중에서 폭발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자동폭발장치까지 이상이 생겨 그대로 날아갔다면 가공할 대형참사는 물론이고 대치상황의 남북한간에 최악의 상황까지도 일어날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추정대로 발사장치의 회로에 이상이 있었건,발사장치를 잘못 작동했건 책임을 철저히 따져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례대로 책임규명과 문책등으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일련의 군관계 사고들이 어느 한 부대나 특정인의 잘못만이라기보다는 군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걱정하기 때문이다. 바로 군 기강(紀綱)의 해이(解弛)다. 미사일 오발만 하더라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다. 같은 날 육군 모부대에서 일어난 불발포탄 폭발사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소총실탄 한발도 철저히 관리해야 할 군에서 사병이 불발포탄을 갖고와 휴게소에서 분해까지하다니,상상하기도 어렵다. 최근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난 간첩선을 눈앞에 보면서 놓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군의 기강이 총체적으로 풀려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들이라 할 수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군은 군기가 생명이다. 서릿발같이 엄정한 군기의 확립없이 강한 군이나 우수한 전투력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군의 임무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토를 방위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변화나 민주화,장병들의 신세대화는 군기해이의 설득력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동안 32조원이나 쏟아부은 방위력 개선사업의 문제점등도 이번 기회에 철저히 개선돼야 할 것이다. 군이 보유하고있는 200여기의 나이키미사일을 비롯하여 비슷한 사고를 낼 위험성은 없는지 일제 점검이 필요하다. 무기체계와 관리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도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군기의 확립이다. 군기의 확립은 군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차제에 군의 군기문제를 국민적 차원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군기가 이처럼 해이해진 데는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정국 혼미 더해가는 인도네시아/수하르토 하야 再版 되는가

    ◎유혈사태후 反政 시위 6개도시 확산/위란토 해임·민주화 완결 투쟁 다짐/하비비 최대위기… 野 정권교체 가능성 인도네시아 정국이 수하르토 하야 당시의 재판(再版)이 돼가고 있다. 한번 피를 본 군중들이 비등점을 넘어섰는데 정부당국은 여전히 강경하다. 또다시 국가적 유혈사태로 치달을 듯 격앙된 분위기다. 지난주 16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뒤 시위대는 19일 다시 끓어 올랐다. 이날 대학생 3,000여명이 자카르타에서 항의 집회를 연데 이어 여섯군데 이상 지방 도시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희생자 부검 결과 실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0일에는 500여명이 최대의 유혈참극 현장 아트마 자야 카톨릭 대학에서 추모미사를 올렸다. ‘무하미디야’ 이스람교도 등 수백명은 국립기념관에서 대통령궁까지 행진도 펼쳤다. 학생들은 발포 책임자 위란토 통합군 사령과 해임, 민주화 완결 등이 이뤄질 때까지 스크럼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것은 인도네시아 입법기구 국민협의회(MPR). 지난 13일 내년 5∼6월 총선,군부 정치참여 비율축소,수하르토 축재조사 등을 규정한 12개항의 정치개혁법을 통과시켜 즉각 총선 실시,군인의 정치 참여금지,수하르토 처벌 등 국민들의 요구를 저버렸다. 군중들은 MPR의 정통성부터 하비비 대통령 하수인으로 춤춘 이번 개혁법 처리까지를 문제삼고 있지만 하비비는 정치 개혁법 없이 개혁도 없다며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은 지난 5월 군 발포에 따른 대학생 사망이 수하르토 퇴진을 촉발시켰다는 점으로 볼때 사태 진전 여하에 따라 하비비 정권에 최대 위기를 안겨줄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당수를 내세워 정권교체 시도를 가시화 하고 있다.
  • 美 중간선거 ‘돈선거’ 조짐/CNN·AP 분석

    ◎민주·공화당 대선이후 10억불 모금/공화­주요지역 후보에 160만불 지원/민주­막판 대규모 ‘실탄지원’ 나설듯 상원 의원의 3분의 2와 하원 전체 의원을 새로 뽑는 11월3일의 미국 중간선거가 자칫 ‘돈선거’로 치달을 조짐이다. 미국 CNN은 26일 공화당 선거위원회는 뉴욕·플로리다·캘리포니아 등 주요 지역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많게는 160만달러(약 20억원)의 ‘현금 실탄’을 쏟아붓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도 당장은 각 후보의 개인적 ‘역량’에 의존하고 있지만 막판에는 역시 ‘실탄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CNN은 선거에 엄청난 돈을 들이는 것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토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미국의 양대 정당은 96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10억달러에 가까운 정치자금을 모금해 왔다는 것.58%는 개인 헌금이고 27%는 기업체·노조 등으로 구성된 정치활동위원회(PAC) 후원금이며 8%는 후보 개인 차입금이다. 방송은 이어 전국적으로 공화당의 자금력이 민주당에 앞선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선거전이 치열하기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AP통신도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FCC)의 후보 재정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을 보도했다.1,037명의 후보가 지난해 모금한 자금은 모두 2억3,290만달러에 이르렀다.후보마다 2억달러 이상을 손에 쥐고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는 얘기다. 미국은 정치인에 대한 기부자의 헌금 한도는 제한하고 있으나 후보의 지출한도는 물론 후보외 당이나 개인이 후보를 위해 쓰는 돈도 규제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정치 분석가들은 예전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자금이 워낙 많이 들어가 후유증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 경찰 장외경마장서 실탄 발사/수배 조선족 1명 잡으려

    ◎고객 100여명 대피소동 25일 오후 5시10분쯤 경기 광명시 철산동 서울경마장 4층 장외발매소에서 강도상해로 수배된 조선족 崔창림씨(33·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가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과 소속 金炳喆 경장이 쏜 실탄에 오른쪽 옆구리를 맞고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경마장 안에 있던 고객 100여명이 총소리에 놀라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金경장은 “강도상해 혐의로 수배된 崔씨가 경마장에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와 함께 출동,崔씨를 체포하려 했으나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했다”면서 “공포탄 1발을 쏘았으나 도망가면서 계속 흉기를 휘둘러 어쩔수 없이 실탄 1발을 쐈다”고 말했다. 崔씨는 지난 8월 중순 서울 구로구 구로3동 공단역 입구에서 조선족 裵모씨(32)를 흉기로 20여차례 찔러 중태에 빠뜨려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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