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실종 위기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정부 부채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여권 사진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비펜트린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음반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56
  • [주말 영화]

    ■잘못된 만남(OBS 토요일 오후 1시 50분) 한적한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나란히 볼일을 보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그때 지나던 택시가 아들을 치고 갈 뻔한 상황을 모면하고 그 택시를 쫓게 되면서 어린 시절의 베스트 프렌드 일도와 호철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서울에서 고향 영덕으로 발령받아 교통경찰을 하게 된 열혈 경찰 일도와 고향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택시기사 호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둘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웃사촌이 되면서 운명적 앙숙으로 지내게 된다. 15년 전 고등학교 시절의 삼각관계를 시작으로 군대에서 고참과 졸병으로의 만남, 그리고 이제는 이웃사촌을 넘어 과속과 신호 위반을 잡는 경찰과 과속과 신호 위반을 해야 먹고사는 택시기사로 다시 만났다. 그렇게 얄팍한 우정으로 철천지 ‘웬수’의 유쾌한 만남이 시작된다. ■미시시피 버닝(EBS1 토요일 밤 11시 5분) 1964년 미시시피에서 활동하던 인권운동가 세 명이 실종된다. 연방정부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앤더슨과 워드를 미시시피로 보낸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백인 우월주의 비밀결사조직 KKK와 관련이 있는 보안관 때문에 수사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숱한 회유와 취조 끝에 마침내 부보안관의 아내가 인권운동가들은 살해되고 이들의 시체는 유기됐다고 실토한다. 위기감을 느낀 KKK 측은 FBI에 단서를 건네 줄 법한 인물을 지목해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 니콜 키드먼 주연 ‘스트레인저랜드’ 메인 예고편

    니콜 키드먼 주연 ‘스트레인저랜드’ 메인 예고편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스트레인저랜드’가 오는 8월 6일 개봉을 확정하고 메인 예고편을 공개했다. ‘스트레인저랜드’는 호주 아웃백 황야에 사는 한 가족이 불시에 불어 닥친 모래폭풍에 휩싸인 후 아이들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40도를 웃도는 건조하고 황량한 호주 아웃백 황야 근교 소도시로 이사 온 캐서린(니콜 키드먼)과 매튜(조셉 파인즈) 부부는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무더위와 황량한 소도시의 삶에 지친 두 아이는 엇나가기만 한다. 어느 날 황야에서 불어 온 모래폭풍과 함께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캐서린 부부는 아이들을 찾고자 모든 삶을 내던진 채 황야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서서히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번에 공개된 메인 예고편은 딸을 잃어버린 엄마 ‘캐서린’으로 분한 니콜 키드먼의 절규로 시작된다. 모든 것을 잃은 듯 허망한 표정, 뜨거운 황야를 향해 “내 딸을 돌려줘”라고 소리치는 그녀의 연기는 “최고의 연기투혼”이라고 평한 극찬에 어울릴 법하다. 여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눈을 뗄 수 없게 끌고 가는 비밀스러운 사건들이 기대를 높인다. 사라진 아이들을 찾고자 필사적인 캐서린과 매튜 부부와 달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딸 릴리의 모습은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모래폭풍이 불던 밤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카피에 이어 사막 한가운데 누군가 서있는 장면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높인다. 이 작품은 2015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부문 공식 경쟁작으로 선정되는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 국내 제4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장엄한 미장센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열연”이라고 평했고 뉴욕타임즈는 “배우들의 열연이 뛰어난 킴 파란트 감독의 인상적인 데뷔작”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내며 주목을 받았다. ‘포스터 제인 캠피온’이라 불리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호주 여성 감독 킴 파란트가 메가폰을 잡은 미스터 스릴러 ‘스트레인저랜드’는 내달 6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시간 112분. 사진 영상=엔케이컨텐츠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떠돌이 개가 내 유일한 친구” 어느 거지 소년의 사연

    “떠돌이 개가 내 유일한 친구” 어느 거지 소년의 사연

    “어느 날, 떠돌이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내 유일한 친구가 돼줬어요”라고 말하는 11세 소년 롬멜 퀴미날레스. 그는 필리핀 메트로마닐라의 퀘존시(市) 거리에서 먹을 것과 돈을 구걸하며 살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외지로 돈을 벌러 갔지만 애인이 생겨 돌아오지 않아, 다른 8명의 형제와 함께 집에 남겨졌다. 함께 사는 20세 누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벌이가 충분하지 않다. 형들 중 한 명은 마약에 중독됐고 다른 세 명은 입양돼 떠났다. 세 남동생 가운데 두 명은 집 나간 어머니와 살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함께 거리에서 구걸생활을 하다가 실종되고 말았다고 롬멜은 말하고 있다. 롬멜은 홀로 구걸을 하며 길거리에서 잠을 잔다. 집에 돌아갈 수 있을 때는 돈이 어느 정도 생겼을 때뿐. 이런 생활을 롬멜은 1년 전부터 이어왔다. 그런 그의 앞에 떠돌이 개 바쥐가 나타났다. 거리 한편에서 바쥐를 꼭 껴안고 잠든 롬멜의 모습을 누군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상에 퍼지면서 화제가 됐다. 롬멜이 바쥐와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견공은 믿음직스럽게도 소년을 항상 지켜주고 있다. 그가 마약에 취한 다른 소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나 강도를 당할 뻔한 순간에도 바쥐가 맹렬히 짖어 위기를 모면하게 해줬다고 한다. 그런 롬멜과 바쥐의 길거리 생활이 최근 필리핀의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롬멜은 이제 부모가 없는 삶에 익숙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가 가끔 집에 오기도 하지만 이는 먹을 것과 돈을 얻기 위해 오는 것뿐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롬멜은 구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길거리 생활은 위험에 처할 순간이 많다. 주변에 경찰이 있다고 해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언젠가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에게 체포돼 갖고 있던 모든 돈을 빼앗긴 적도 있다. 풀려나기 전 그들은 그 돈으로 담배를 사고 있었다고 소년은 회상한다. 이렇게 구걸한 돈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는 집에 돌아간다. 하지만 버스에서는 개를 데리고 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숨겨서 탈 수밖에 없다. 개를 데리고 탄 사실이 발각돼 버스에서 쫓겨날 때도 있지만 이내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고 한다. “책은 살 수 있지만 학교에 갈 돈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롬멜.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현지 방송은 롬멜이 거주하고 있는 칼루칸시의 사회복지과와 그가 구걸하고 있는 퀘존시에도 협력을 구했다. 또 인터넷상에서는 많은 사람이 롬멜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런 노력으로 마침내 롬멜은 한 초등학교의 2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됐다. 롬멜은 이제 꿈에 그리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주말에는 여전히 구걸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롬멜의 장래희망은 동물을 도울 수 있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열린세상] 공적 담론 형성 통해 정치적 양극화 해소해야/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열린세상] 공적 담론 형성 통해 정치적 양극화 해소해야/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직전 40%였던 대통령 지지율은 한 달 후 29%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집권당 지지율은 43%에서 40%로 감소한 반면 제1야당은 3% 포인트 오른 22%였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59%였던 대통령 지지율은 한 달 후 13% 포인트 빠졌고, 여당은 4% 포인트 줄었으며 제1야당은 2% 포인트 감소했다(갤럽 여론조사 결과).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은 국가적 재난에 대한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고 해서 청와대와 ‘동패’(同牌)의 관계인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증가한 것은 아니다. 상관관계가 낮았다. 최근 20주 동안의 조사에서 집권당 지지율은 일관되게 40% 초반대에 머물렀고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됐을 때에도 38%를 기록했다. 또 다른 특징은 집권세력이 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메르스 전쟁에 앞장선 당 소속 서울시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위에 올라도 제1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통령과 정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 관행은 한국 정치 현실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단순 지지율 변동 폭만을 고려한 추론이라 일반화할 수 없지만 국민들은 제1야당을 집권 대안 세력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석해도 될 듯싶다. 무엇보다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 줄어든 수치만큼 ‘지지하는 정당 없음’ 응답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성이 관찰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지지하는 정당 없음’ 응답률은 최저 29%에서 최고 43%의 범위에 있었다. 제1야당의 지지율이 ‘지지하는 정당 없음’보다 더 높았던 때는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꾼 직후, 6·4지방선거 직전과 선거 후 한 달 정도였다. 당명 개정과 선거 국면에서 야당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싫은’ 여당을 견제하려면 어쩔 수 없이 찍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만이 지지율 상승의 주요 요인이었다. 유권자들이 이슈 혹은 정책에 대한 입장을 비교하여 지지할 정당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논란, 세월호 참사 책임규명 회피, 성완종 리스트 공개의 경우 집권당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인식이 평가적 태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아니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집단이기주의, ‘특별한 이유 없이 싫다’ 혹은 ‘영 내키지 않는다’는 편견적 감정이나 정서적 거부감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된다. 이성보다는 편견적 감정이나 정서적 거부감에 기초한 직관적 판단이 정치적 태도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지적은 심리학 연구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통섭적 차원의 범학문적 연구’를 통해 직관에 근거한 도덕적 가치 판단이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핵심 독립변인이라고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편 복지를 비난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건 보편 복지 정책이 성실함과 노력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게으름과 무책임을 조장한다는 그들의 도덕적 가치관에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아야만 사회가 변화한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공적 담론 재구성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고 강조한다. 주류 언론이 정치인들의 수사를 그대로 받아 적고 인터넷 언론들은 신문과 방송의 보도내용을 적절히 편집해서 뉴스로 가공하며 종편의 각종 시사프로그램이 정치인 프레임을 반복하는 언론 환경에서 공적 담론은 프레임 개발자들이 설정한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다. 심리학자와 언어학자에 따르면 정책은 정치인 자신이 옳다고 믿는 도덕적 가치 판단의 결과물이다. ‘옳음과 그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타협이 실종된 갈등만 난무하는 부정적 정치 모습에 대한 묘사는 그만두고 다양한 도덕적 가치가 경쟁하는 공적 담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40%나 되는 무당파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의지를 자극하려면 권력 취재원의 입에 의존해 특정 프레임을 확대 재생산하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대신 정치 세력이 제안한 정책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 구체적 관계를 탐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야말로 언론이 정치적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 [사설] 새누리당 친박·비박 이참에 ‘딴살림’ 차려라

    박근혜 대통령의 주도로 시작된 ‘거부권 정국’은 여권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뉜 새누리당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싸고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집권당의 이러한 갈등으로 정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이 됐다. 이미 청와대의 거부로 당·정·청 회의는 당분간 열리지 않게 됐고 6월 국회 역시 예정됐던 상임위들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15조원 안팎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논의도 실종 상태다. 사실상 국정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는 내년 4월 총선의 공천권 행사와 깊숙하게 연관돼 있다. 친박 의원들은 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로 이어지는 비박 지도부가 내년 공천에서 친박 세력을 물갈이할 것으로 보고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역전의 기회를 엿보며 결정적인 때를 기다려 온 친박 의원들이 ‘거부권 정국’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유 원내대표 사퇴 압력은 내년 4월 총선은 물론 2017년 대통령 선거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다. 국회법 개정안에 많은 친박 의원들이 찬성해 놓고 뒤늦게 그 책임을 유 원내대표에게 돌리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노릇이다. 친박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공개 경고를 신호탄으로 유 원내대표 사퇴를 노골적으로 촉구하는 것이 ‘배반의 정치’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친박계는 한술 더 떠 일종의 ‘공포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박심(朴心)과 당심(黨心)이 정면충돌하는 일종의 ‘치킨게임’ 양상이지만 중재에 나서야 할 중진들도 무기력화된 상태다. 집권당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창피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제 오후 비공개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강력히 주장했다. 회의 직전 비박 재선 의원 20명은 친박계가 제기한 원내대표 사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의회 민주주의와 정당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밝히면서 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친박 집권 세력의 일방적인 국정운영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당선됐고 또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압도적 분위기에서 재신임을 결정한 유 원내대표의 임기를 존중하는 것이 상식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당내 계파 간에 정책을 둘러싸고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지금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 간 싸움은 도를 넘어섰다. 국민들은 작금의 당청 간, 여당 계파 간 싸움에 지쳐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리더가 아니며 국민의 정치를 위해 솔선수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집권당의 분열을 막고 선도해야 할 상황에서 되레 당내 권력투쟁에 불을 붙이는 것은 올바른 리더십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국민을 위한 정치’에 있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당·청 관계를 수습할 책임이 있다. 지금처럼 당내 분열이 확대 재생산되고 이를 치유할 자정 능력이 없다면 각각 당을 만들어 차라리 내년 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맞다. 허구한 날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싸움이나 할 거라면 빨리 딴살림을 차려라.
  • [열린세상] 메르스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과제/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메르스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과제/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어제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참상은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국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줬다. 지난 65년간 대한민국은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욕되지 않을 정도의 국가 발전을 이뤄 냈다. 6·25의 잿더미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신생국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난 나라, 한류를 꽃피우는 문화강국, 150만 외국인이 함께 사는 희망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이런 모습이 대한민국의 참모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불만, 불신, 불안이라는 3불의 격랑 속에 외부 충격에 쉽게 좌초될 것 같은 난파선의 형국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자긍심,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시민의식,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은 실종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운명공동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단어가 난무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세월호에 이은 국민들의 3불 상처가 쉽게 치유될지 의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다음의 과제들을 남겼다. 첫째, 정부 불신은 국민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막연한 불안감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부 불신을 증폭시킨다. 특히 위기 초기에 어떻게 정부가 대응하느냐는 위기극복 성패와 위기 전개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을 준다. 위기 발생 초기에 어떻게 하면 국민 신뢰를 높이고 국민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 글로벌 시대에 국가 위험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에 상존한다. 최근 발생하는 국가 위험은 여러 분야가 얽히고설킨 복합계 양상을 띠고 있고 짧은 기간에 광범위한 지역에 전파되는 강력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위험 예방이 최선이지만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위험 발생만을 문제 삼으면 위기 대응보다는 축소, 은폐, 왜곡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위기 발생의 불가피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관용성은 제고될 필요가 있다. 셋째, 다양한 형태의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려면 역할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사전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안보위험 외에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인구 밀도도 높다 보니 다양한 재난 위험, 경제·사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 위험의 범주를 재검토해 안보 분야 외에 파급효과가 크고 복합적이며 위험한 사안은 사전에 국가 위험으로 명확히 분류하고, 위험 발생 즉시 청와대가 책임지고 초기 단계부터 개입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이 위험관리 성패의 관건이 된다. 넷째, 조직 확대, 예산 확충, 매뉴얼 마련 등 외형적인 개혁을 넘어 부처 간 실질적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진행 중인 정부3.0에 위기관리 협업 구축을 중점과제로 추가해 협업을 일상화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안전한국훈련, 을지훈련 등 기존 국가 위기훈련을 지역 특성과 결합된 맞춤형 훈련으로 전환하고 지역별 반복 순회 훈련을 강화해 전국 단위의 획일적·형식적 훈련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언론과의 협력 관계 설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인터넷신문을 포함해 1만 4000개가 넘는 언론매체가 취재 경쟁 중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오보와 과장 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외신을 통한 국가 이미지 훼손이나 과장 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끝으로 민간 전문가, 시민단체 등 사회적 역량이 제대로 활용되는 동시에 원활한 협조가 이뤄질 수 있는 거버넌스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훼손된 공동체 의식과 시민정신을 복원하고 정부 불신을 불식하는 문제 또한 어렵지만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 시마다 보여 줬던 국민들의 자랑스럽고 단합된 저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기회로 승화시키는 위험지성이 우리 사회 전역에 만개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위기가 더 큰 대한민국으로 발전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
  • [시론] 돌아온 6·25, 그리고 통일교육을 생각하며/박찬석 공주교대 초등윤리교육과 교수

    [시론] 돌아온 6·25, 그리고 통일교육을 생각하며/박찬석 공주교대 초등윤리교육과 교수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각인과 치유 노력 속에서 살고 있다. 정부는 6·25전쟁에서 발생한 군인들의 유해 발굴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납북 가족이나 실종자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전쟁 발발 6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전쟁의 명백한 사실과 문제 해결에 대해 묻고 깨닫는 일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통일 교육도 많은 방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반공 교육을 통일 교육으로 인식했다. 이런 반공 일변도의 태도가 현재와 같이 전환된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한 바탕에서 오늘날 정부는 북한과 안보적 갈등을 벌이면서도 교류 협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의 통일 의지 고양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으로 많은 통일 강사들은 남북한 간에 벌어진 전쟁의 역사를 모른다고 하면서 북한의 침략상을 목 놓아 외치며 강연을 하고 있다. 이런 취지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의 북한 체험교육도 많이 실시되고 있다. 그들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살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많은 내용을 시민들이나 학생들에게 전파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북한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하나의 민족임을 깨닫게 된다. 혹은 우리 민족이 정말 한 민족일까 하는 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한 긍정과 부정의 측면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단체대로 많은 기회를 이용해 북한 이탈 주민들이나 통일 강사들을 통일 교육 현장에 참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다른 차원의 통일 교육도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통일은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교류를 위한 노력을 전개해야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통일 교육은 우리 사회가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평화 교육이다. 물론 북한에 너무 손만 내밀다가는 큰코 다치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 사회와 학교는 다양한 의견을 갖는 분들을 초대해 통일 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통일을 생각하는 한 우리 사회는 의미 있는 통일을 준비하는 교육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환경 조성은 바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기 때문에 가능해진 역사적 산물이다. 물론 많은 국민들은 더 좋은 통일 교육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단 70년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결연한 의지와 실천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아직도 진정한 안보와 평화를 위한 통일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도 많이 있다. 반북 및 안보 분위기로 주도되는 통일 교육이나 평화적 통일을 중시하는 통일 교육이 상존한다. 오늘날의 통일 교육은 그래도 평화를 이야기하고 안보를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6·25전쟁을 겪고 분단된 휴전 상태다. 또한 그 전쟁과 휴전을 해소해 평화와 통일로 매진하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룩해 놓은 값진 평화의식, 안보의식이 이제라도 조화를 이루면서 통일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그런 취지에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각급 학교나 지역 단체들에서 하는 통일 교육은 평화 위주이든 안보 중심이든 민족, 민주, 평화를 실천하는 교육으로 전개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이나 교육계에서 호기로 여겨지는 사안이 발생할 때 일방적으로 일회성 통일 교육에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 통일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과 국민들이 북한의 핵이나 인권, 미군 문제에 극단적인 감정을 갖는, 일시적·감상적 통일 논의에 젖게 해서는 안 된다. 통일 교육이 당위에서 사실로 전환돼야 한다는 말이다. 평화를 말하는 통일 교육이든 안보를 말하는 통일 교육이든 각각의 지향은 의미 있는 것이며, 서로 너무 미워하지 않고 통일의 길을 진척하는 길이야말로 위대한 통일을 향한 국민 통합인 것이다. 그동안 통일 교육은 반공 교육, 통일·안보 교육 그리고 민주화 이후 평화통일 교육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한 역사적 사명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통일 교육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양함 속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와 안보 그리고 상호 이해를 생각하는 통일 교육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 [문화마당] 중세 대한민국/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중세 대한민국/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전후 반 세기 만에 강소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 앞에 놓일 만한 수식어로는 ‘현대’가 제격이다. 현대는 문명의 발전 단계를 가리키는 역사학 용어로, 시간상으로 현재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새로운 문명 단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21세기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단순히 현대사회로 볼 수는 없다. 시간상으로는 비록 동시대를 살고 있으나 문명의 발전 정도에 따라 원시사회부터 최첨단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명 단계가 혼재한다. 한국도 한편으로는 현대사회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근대적 특성 또한 여전하다. 전통적 유산이 강하게 작동하는 분야일수록 그렇다. 그런 분야가 한둘이 아니지만, 아마도 정치 분야가 선두일 게다. 정치의 탈중세(근대화)를 가늠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근대적 강령과 정치적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정당의 출현 및 그런 정치 시스템의 정착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정당이라는 외형은 갖추고 있으나, 그 속은 딴판이다. 정파를 부르는 명칭부터 지극히 중세적이다. TK나 PK는 그래도 지역적 기반을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데 비해 DJ·YS·JP 등의 명칭은 그 자체로 중세적 봉건영주를 연상시킨다. 이른바 3김 시대에 가신(家臣)이라는 단어가 널리 유행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정치인의 영문 이니셜 약칭은 그 사람이 추구하던 정치적 비전까지 일부 포함하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민주화가 더 진행됐다는 현재 정파의 이름은 더욱 가관이다. 친노·친이·친박 등도 모자라 반노(反)나 비박(非朴) 같은 명칭을 듣노라면, 지금 우리가 도대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심한 자괴감이 든다. 정치세력으로서 자기들 주장을 명칭에 담아내기는커녕, 단순히 누구에 반대한다거나 누구 편이 아니라는 부정적 표현으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은 몰상식이요, 전근대적이다. 중세 조선에서도 인물 중심의 정파들이 명멸했다. 그래도 보스의 이름으로 정파의 이름을 삼지는 않았다. 동인·서인·남인·북인과 같이 지역적 공간을 기준으로 삼거나, 노론(論)·소론(少論)과 같이 세대별 차이를 명칭에 드러냈다. 따라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명칭은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그래서 중세만도 못한 용어다. 그런데도 이런 명칭이 난무하는 현실은 한국의 정치가 얼마나 낙후된 상태인지 잘 보여 준다. 중세가 불투명한 인치(人治)의 시대라면 근현대는 투명한 법치(法治)의 시대다. 그래서 중세 때는 국왕이 똘똘하면 나라가 그럭저럭 잘 굴러갔고, 국왕이 아둔하면 나라가 삐걱거렸다. 그래도 나라에 곤경이 닥치면 국왕이 직접 자성의 교지를 반포하고 스스로 근신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메가톤급 인재(人災)가 꼬리를 물며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작금의 위기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들리는 바로는 근신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법치에 더해 인치마저 실종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갑갑하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공적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고, 인왕산 자락과 여의도를 사적(私的) 연계망이 촘촘히 감싸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불안하다. 지금도 꽤 더운데, 조만간 더 더워져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 [금주 개봉작] 공포 스릴러 ‘트리하우스’ 예고편

    [금주 개봉작] 공포 스릴러 ‘트리하우스’ 예고편

    공포 스릴러 영화 ‘트리하우스’가 25일 개봉을 앞두고 예고편을 선보였다. ‘트리하우스’는 제목 그대로 나무 위에 지어진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곳에 갇힌 두 친구가 정체불명의 대상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어느 날 칼리안 형제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초등학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한 남매가 같은 방식으로 실종되면서 마을에는 흉흉한 기운이 감돈다.   연쇄 실종사건으로 마을의 큰 축제가 취소되고 킬리안 형제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인적 드문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들은 나무 위에 지은 집 ‘트리하우스’를 발견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형제는 그곳에 올라갔다가 실종된 남매의 누나 엘리자베스와 마주한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의 엘리자베스는 커다란 형체가 자신의 동생을 데려간 것을 제외하곤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형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급히 마을로 돌아간다. 동생이 형을 기다리는 동안 트리하우스 밖에서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 이들은 결국 마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공개된 예고편은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한 숲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산한 숲 속 분위기는 불길한 기운을 유지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특히 한정된 공간인 트리하우스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인물들은 관객들의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트리하우스’는 ‘좀비 다이어리즈’와 ‘파라노말 다이어리: 클롭힐’ 등의 공포물을 연출한 마이클 G. 바틀렛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0분. 사진 영상=이놀미디어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다코타 패닝 주연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 예고편

    다코타 패닝 주연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 예고편

    다코타 패닝 주연의 심리 스릴러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이 7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예고편을 공개했다. 영화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아 실종 사건 7년 후, 또 한 명의 아이가 실종되면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이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 ‘낸시’(엘리자베스 뱅크스)는 7년 전 사건의 범인이었던 ‘로니’(다코타 패닝)와 ‘앨리스’(다니엘 맥도날드)를 조사한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사건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코타 패닝은 2005년 개봉작 ‘숨바꼭질’ 이후 10년 만에 스릴러 장르로 다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7년 전 영아 실종 사건의 주범이자 또 다른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받는 18세 소녀 ‘로니’로 분했다. 공개된 예고편은 어린 두 여자 아이가 갓난아기를 유괴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7년 후 유아 실종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아 실종사건의 범인들이었던 로니와 앨리스는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후 “진실을 둘러싼 엇갈린 진술”이라는 카피처럼 로니와 앨리스는 서로 상반된 진술을 내놓으며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과연 로니와 앨리스 중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또 7년 전 영아 실종사건과 이번 사건은 어떤 연관이 있을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진실을 찾기 위한 형사 낸시의 추적 과정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통해 실종된 아이의 행방에 대해 궁금증을 끌어올린다. 베스트셀러 작가 로라 립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모든 비밀스러운 것들’은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에이미 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7월 2일 개봉 예정. 사진 영상=와이드릴리즈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北, 조건부 ‘당국 간 대화 용의’ 정부 성명

    北, 조건부 ‘당국 간 대화 용의’ 정부 성명

    북한은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아 남북 당국 간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중국 국경지역에서 월경한 우리 국민에 대한 송환 의사를 통보해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한·미 군사훈련 중단, 5·24 조치 해제 등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해 실제 대화가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북남 사이에 신뢰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당국 간 대화와 협상을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이어 “남북 사이의 교류 협력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장치 철폐”를 요구했다. 또 “남조선 당국은 미국과 결탁하여 북침 전쟁 책동을 벌임으로써 북남 관계 개선의 좋은 기회들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전격적인 대화 제의는 한반도 문제를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또 향후 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을 남측에 돌릴 수 있는 ‘명분 쌓기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성명에 대해 대화 의지를 높여 정부에 관계 개선 노력을 촉구하는 성격도 있다고 분석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화 필요성마저도 거부하던 북한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북측은 이날 북한적십자 중앙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지난 5월 북측 접경지역에 불법 입국한 우리 국민 2명을 17일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송환 대상자는 중국 여행 중 북·중 접경지역에서 실종됐던 이모(59)씨와 진모(51·여)씨다. 하지만 정부는 이씨와 진씨가 실종되고 한 달 이상 지난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이 이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북측의 ‘전제 조건’ 요구를 일축했다. 통일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은 부당한 전제 조건을 내세우지 말고 당국 간 대화의 장에 나오는 한편, 남북 간 동질성 회복에 기여하는 민간 교류에도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한림대 교수들 “노건일 총장 체제 종말을 고함”

    강원 춘천 한림대가 ‘갑질 서약서’로 논란을 빚는 가운데 평교수 10명 가운데 7명이 노건일(74)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동참하는 등 퇴진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한림대교수평의회는 9일 교내 교수평의회 사무실에서 ‘노건일 총장 체제의 종말을 고함’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노 총장은 부임 뒤 총장배 축구·농구대회, 한마음 등반대회 등을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연구업적기준 등 각종 규정도 수시로 개정한 뒤 이를 소급적용하는 등 전횡을 일삼으며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대학이 대화는 실종되고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만이 난무하는 병영체제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성명에는 한림대 평교수 241명 가운데 69.7%에 달하는 168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누군가는 교육부의 구조조정 시책에 대응하기 위해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막말과 호통, 독단과 아집, 협박과 보복으로 점철된 노 총장의 시대착오적 리더십은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과 자존감, 의욕, 사기를 꺾어 오히려 대학 위기를 돌파해야 할 구성원의 집단 역량을 소진해버렸다. 노 총장이 추진한 일들을 철회하고 즉각 퇴진하는 것만이 한림대를 살리는 길”이라며 노 총장 퇴진을 촉구했다. 교수평의회는 성명 발표에 이어 학생회관과 일송아트홀 등 교내 곳곳을 돌며 노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침묵행진을 벌였다. 교수평의회는 10~11일 노 총장 퇴진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과 선전전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학생들도 교수들의 노 총장 퇴임 움직임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신준영(철학과 1학년)씨는 “총장이 교수들에게 강제 서약을 요구하는 등 독단 행정을 일삼고 있다. 학생들의 입장도 듣지 않고 소통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유팔무 한림대 교수평의회 의장은 “한림대 교수들은 그동안 노 총장의 온갖 몰상식과 비정상 행태를 보고서도 혹시 학교에 누가 될까 밖에 알리지 않고 강압과 모욕을 참고 견뎠다. 하지만 노 총장은 이미 한계선을 넘었다.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것 같아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림대 관계자는 “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조정안을 제시하는 등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노 총장은 2012년 3월 취임 때부터 이사장의 사돈이 총장에 취임하면 족벌경영 체제가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교수평의회의 반발을 샀다. 노 총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포토] 침몰한 중국 여객선 내부 수색과정 공개

    [포토] 침몰한 중국 여객선 내부 수색과정 공개

    중국 장강에서 침몰한 여객선 둥팡즈싱 호의 선체가 인양된 뒤 내부를 수색하는 모습의 사진이 공개됐다. 중국 신화망 등 현지 언론의 7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 경찰 및 수색대는 지난 6일 둥팡즈싱 호 내부에 대한 최후 수색을 마쳤다. 공개된 내부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이 심한 상태였으며 일부 객실은 천장 부분이 거의 붕괴돼 있어 사고 당시의 충격을 짐작케 했다. 후 카이홍 중국 국무원 홍보국 부국장은 내부 수색을 마친 뒤 이번 침몰사고로 431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으며, 추가 생존자는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둥팡즈싱 호는 지난 1일 밤 탑승객 456명을 태우고 난징을 출발해 장강을 거쳐 충칭으로 향하던 중, 후베이성 젠리현 인근에서 폭우와 회오리 바람을 만나며 침몰했다. 당시 탑승객 대부분은 50~80대 노년층이어서 인명피해는 더욱 컸다. 조사 결과 둥팡즈싱 호에는 위급상황 발생시 자동으로 해사국 등에 상황을 신고하는 자동신고장치 및 항해용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이 확인됐으며, 이로 인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현지는 이번 사고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물결로 가득 차 있으며, 예능방송 등을 일시 중단하는 등 애도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비수기 잊은 주택시장 재건축도 본격 기지개

    펄펄 나는 주택시장에 비수기가 실종됐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5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우며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는 재건축 연한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되면서 재건축 시장도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분위기다. 3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30일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 2444건으로 실거래가 조사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성수기인 3~4월(각 1만 3000여건)에 맞먹는 수준이다. 봄 이사철이 끝나가는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1만건이 넘은 것은 2006년 이후 처음이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연립·다세대도 같은 기간 5647건으로 성수기인 3월(5424건)을 넘어 연중 최고치인 4월(6547건)에 육박한 수준이다. 단독·다가구 주택도 거래량이 2105건으로 4월(2107건) 거래량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 돼 연중 최고치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가 늘면서 아파트값도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5월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0.34% 올라 3월 이후 월 0.3% 이상의 상승 곡선을 이어갔다. 유형별로는 아파트값이 0.48%로 상승을 주도했다. 서울 0.44%, 대구 0.79%, 광주 0.59% 등이다. 청약경쟁률도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우미건설이 화성 동탄2신도시에 짓는 ‘동탄린스트라우스더센트럴’의 전용면적 75㎡은 지난달 28일 기타 경기지역 청약에서 317.5대1의 최고경쟁률(평균 38.2대1)을 기록했다. 반도건설의 ‘동대구 반도 유보라’는 전용 84㎡ A형에 5만 5000명이 몰려 경쟁률이 평균 584.4대1로 치솟았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 대분화 우려” 근거는 도대체 무엇?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 대분화 우려” 근거는 도대체 무엇?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 대분화 우려” 근거는 도대체 무엇?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29일 오전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남쪽에 위치한 섬인 구치노에라부지마(口永良部島)의 산 정상 부근에서 폭발적인 분화가 발생했다.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9분쯤 산정상 부근 화구에서 검은 분연이 분출했으며 화쇄류(火碎流)까지 발생해 해안 부근까지 도달했다. 화산에 의한 연기(분연)는 9000m 높이까지 치솟은 가운데, 폭발은 계속되고 있다고 NHK는 전했다. NHK는 분연의 폭도 2km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했다. 일본 기상청은 ‘분화 경보’를 발령하고, ‘분화경계레벨을 ‘3(입산규제)’에서 주민 피난이 필요한 ‘5’로 격상했다. 일본 기상청이 ‘분화 경보’를 발령한 것은 2007년 12월 분화 경계의 단계가 도입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구치노에라부지마는 가고시마현 남쪽 해상의 야쿠시마(屋久島)에서 서쪽으로 12㎞ 떨어진 면적 38㎢의 섬으로 섬 전체가 야쿠시마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야쿠시마 당국은 구치노에라부지마 주민 약 80가구 130여명에게 섬 밖으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가 있는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초(町) 총무과는 오전 10시 30분 현재 분화에 의한 사상자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의 위기관리센터에 관저 대책실을 설치했고, 해상보안청은 대형 순시선을 파견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에서는 작년 8월 3일에도 분화가 발생, 주민들이 섬 밖으로 대피했다. 한편 이번 분화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더 활발해진 듯한 일본 내 화산 활동이 재차 주목받게 됐다. 전 세계 활화산의 7%에 해당하는 110개 활화산이 있는 일본에서는 근년 들어 주목할만한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잇따랐다. 가깝게는 작년 9월 27일, 나가노(長野)현과 기후(岐阜)현에 걸쳐 있는 온타케산(御嶽山)에서 대규모 수증기 폭발이 발생해 사망 57명, 실종 6명이라는 전후(戰後) 최악의 화산 관련 인명 피해를 낳았다. 입산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의 활화산 사쿠라지마(櫻島)에서는 2013년 8월 분연 높이가 5000m에 이르는 분화가 발생했다. 사쿠라지마의 쇼와(昭和)화구는 올해만 500회 이상의 분화를 기록했다. 또 2013년 11월에는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 니시노시마(西之島)에서 해저 화산 폭발로 인해 직경 약 200m, 해발 약 20m의 새로운 육지가 생긴 것이 확인됐다. 아울러 도쿄 방문 관광객이 즐겨 찾는 하코네온천이 있는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箱根)산에서는 지난달 하순 이후 화산성 지진이 수천 회 탐지되고, 일부 지점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확인되면서 경계수위가 높아졌다. 지난 6일자로 하코네산에서 화산분화 경계 수준이 평시의 ‘1’에서 ‘2’로 올라간 상태다. 일부 학자들은 300여년 전 대분화를 일으킨 후지(富士)산의 분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후지산에서 1707년 호에이(寶永) 대분화 때와 비슷한 분화가 발생해 용암이 흘러나올 경우 68만 9000명이 피난 대상이 될 것으로 일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주민 약 27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중앙정부 기관인 내각부와 시즈오카(靜岡), 가나가와(神奈川), 야마나시(山梨) 등 후지산 주변 3개현이 처음 합동으로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내각부의 의뢰를 받은 화산 전문가들은 2013년 5월 정리한 화산 재해 대책 관련 제언에서 동일본대지진 후의 일본 열도가 혼슈(本州) 북부의 산리쿠(三陸) 앞바다에 큰 지진이 발생한 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9세기 상황과 비슷해 대규모 분화가 단기간에 연속해서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20세기 이후 일본에서 규모 9 이상을 기록한 지진은 동일본대지진을 포함해 모두 6차례였고, 이 가운데 5차례 지진의 경우 발생 다음날∼3년에 걸쳐 가까운 화산이 분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300년 전 대분화 후지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300년 전 대분화 후지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300년 전 대분화 후지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29일 오전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남쪽에 위치한 섬인 구치노에라부지마(口永良部島)의 산 정상 부근에서 폭발적인 분화가 발생했다.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9분쯤 산정상 부근 화구에서 검은 분연이 분출했으며 화쇄류(火碎流)까지 발생해 해안 부근까지 도달했다. 화산에 의한 연기(분연)는 9000m 높이까지 치솟은 가운데, 폭발은 계속되고 있다고 NHK는 전했다. NHK는 분연의 폭도 2km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했다. 일본 기상청은 ‘분화 경보’를 발령하고, ‘분화경계레벨을 ‘3(입산규제)’에서 주민 피난이 필요한 ‘5’로 격상했다. 일본 기상청이 ‘분화 경보’를 발령한 것은 2007년 12월 분화 경계의 단계가 도입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구치노에라부지마는 가고시마현 남쪽 해상의 야쿠시마(屋久島)에서 서쪽으로 12㎞ 떨어진 면적 38㎢의 섬으로 섬 전체가 야쿠시마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야쿠시마 당국은 구치노에라부지마 주민 약 80가구 130여명에게 섬 밖으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가 있는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초(町) 총무과는 오전 10시 30분 현재 분화에 의한 사상자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의 위기관리센터에 관저 대책실을 설치했고, 해상보안청은 대형 순시선을 파견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에서는 작년 8월 3일에도 분화가 발생, 주민들이 섬 밖으로 대피했다. 한편 이번 분화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더 활발해진 듯한 일본 내 화산 활동이 재차 주목받게 됐다. 전 세계 활화산의 7%에 해당하는 110개 활화산이 있는 일본에서는 근년 들어 주목할만한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잇따랐다. 가깝게는 작년 9월 27일, 나가노(長野)현과 기후(岐阜)현에 걸쳐 있는 온타케산(御嶽山)에서 대규모 수증기 폭발이 발생해 사망 57명, 실종 6명이라는 전후(戰後) 최악의 화산 관련 인명 피해를 낳았다. 입산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의 활화산 사쿠라지마(櫻島)에서는 2013년 8월 분연 높이가 5000m에 이르는 분화가 발생했다. 사쿠라지마의 쇼와(昭和)화구는 올해만 500회 이상의 분화를 기록했다. 또 2013년 11월에는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 니시노시마(西之島)에서 해저 화산 폭발로 인해 직경 약 200m, 해발 약 20m의 새로운 육지가 생긴 것이 확인됐다. 아울러 도쿄 방문 관광객이 즐겨 찾는 하코네온천이 있는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箱根)산에서는 지난달 하순 이후 화산성 지진이 수천 회 탐지되고, 일부 지점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확인되면서 경계수위가 높아졌다. 지난 6일자로 하코네산에서 화산분화 경계 수준이 평시의 ‘1’에서 ‘2’로 올라간 상태다. 일부 학자들은 300여년 전 대분화를 일으킨 후지(富士)산의 분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후지산에서 1707년 호에이(寶永) 대분화 때와 비슷한 분화가 발생해 용암이 흘러나올 경우 68만 9000명이 피난 대상이 될 것으로 일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주민 약 27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중앙정부 기관인 내각부와 시즈오카(靜岡), 가나가와(神奈川), 야마나시(山梨) 등 후지산 주변 3개현이 처음 합동으로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내각부의 의뢰를 받은 화산 전문가들은 2013년 5월 정리한 화산 재해 대책 관련 제언에서 동일본대지진 후의 일본 열도가 혼슈(本州) 북부의 산리쿠(三陸) 앞바다에 큰 지진이 발생한 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9세기 상황과 비슷해 대규모 분화가 단기간에 연속해서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20세기 이후 일본에서 규모 9 이상을 기록한 지진은 동일본대지진을 포함해 모두 6차례였고, 이 가운데 5차례 지진의 경우 발생 다음날∼3년에 걸쳐 가까운 화산이 분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도 위험하다?” 대분화 발생시 예상 피해는?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도 위험하다?” 대분화 발생시 예상 피해는?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도 위험하다?” 대분화 발생시 예상 피해는?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29일 오전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남쪽에 위치한 섬인 구치노에라부지마(口永良部島)의 산 정상 부근에서 폭발적인 분화가 발생했다.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9분쯤 산정상 부근 화구에서 검은 분연이 분출했으며 화쇄류(火碎流)까지 발생해 해안 부근까지 도달했다. 화산에 의한 연기(분연)는 9000m 높이까지 치솟은 가운데, 폭발은 계속되고 있다고 NHK는 전했다. NHK는 분연의 폭도 2km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했다. 일본 기상청은 ‘분화 경보’를 발령하고, ‘분화경계레벨을 ‘3(입산규제)’에서 주민 피난이 필요한 ‘5’로 격상했다. 일본 기상청이 ‘분화 경보’를 발령한 것은 2007년 12월 분화 경계의 단계가 도입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구치노에라부지마는 가고시마현 남쪽 해상의 야쿠시마(屋久島)에서 서쪽으로 12㎞ 떨어진 면적 38㎢의 섬으로 섬 전체가 야쿠시마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야쿠시마 당국은 구치노에라부지마 주민 약 80가구 130여명에게 섬 밖으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가 있는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초(町) 총무과는 오전 10시 30분 현재 분화에 의한 사상자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의 위기관리센터에 관저 대책실을 설치했고, 해상보안청은 대형 순시선을 파견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에서는 작년 8월 3일에도 분화가 발생, 주민들이 섬 밖으로 대피했다. 한편 이번 분화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더 활발해진 듯한 일본 내 화산 활동이 재차 주목받게 됐다. 전 세계 활화산의 7%에 해당하는 110개 활화산이 있는 일본에서는 근년 들어 주목할만한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잇따랐다. 가깝게는 작년 9월 27일, 나가노(長野)현과 기후(岐阜)현에 걸쳐 있는 온타케산(御嶽山)에서 대규모 수증기 폭발이 발생해 사망 57명, 실종 6명이라는 전후(戰後) 최악의 화산 관련 인명 피해를 낳았다. 입산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의 활화산 사쿠라지마(櫻島)에서는 2013년 8월 분연 높이가 5000m에 이르는 분화가 발생했다. 사쿠라지마의 쇼와(昭和)화구는 올해만 500회 이상의 분화를 기록했다. 또 2013년 11월에는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 니시노시마(西之島)에서 해저 화산 폭발로 인해 직경 약 200m, 해발 약 20m의 새로운 육지가 생긴 것이 확인됐다. 아울러 도쿄 방문 관광객이 즐겨 찾는 하코네온천이 있는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箱根)산에서는 지난달 하순 이후 화산성 지진이 수천 회 탐지되고, 일부 지점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확인되면서 경계수위가 높아졌다. 지난 6일자로 하코네산에서 화산분화 경계 수준이 평시의 ‘1’에서 ‘2’로 올라간 상태다. 일부 학자들은 300여년 전 대분화를 일으킨 후지(富士)산의 분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후지산에서 1707년 호에이(寶永) 대분화 때와 비슷한 분화가 발생해 용암이 흘러나올 경우 68만 9000명이 피난 대상이 될 것으로 일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주민 약 27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중앙정부 기관인 내각부와 시즈오카(靜岡), 가나가와(神奈川), 야마나시(山梨) 등 후지산 주변 3개현이 처음 합동으로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내각부의 의뢰를 받은 화산 전문가들은 2013년 5월 정리한 화산 재해 대책 관련 제언에서 동일본대지진 후의 일본 열도가 혼슈(本州) 북부의 산리쿠(三陸) 앞바다에 큰 지진이 발생한 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9세기 상황과 비슷해 대규모 분화가 단기간에 연속해서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20세기 이후 일본에서 규모 9 이상을 기록한 지진은 동일본대지진을 포함해 모두 6차례였고, 이 가운데 5차례 지진의 경우 발생 다음날∼3년에 걸쳐 가까운 화산이 분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 폭발하면?” 끔찍한 재앙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 폭발하면?” 끔찍한 재앙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분화 “후지산 폭발하면?” 끔찍한 재앙 일본 화산폭발, 가고시마 화산 29일 오전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남쪽에 위치한 섬인 구치노에라부지마(口永良部島)의 산 정상 부근에서 폭발적인 분화가 발생했다.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9분쯤 산정상 부근 화구에서 검은 분연이 분출했으며 화쇄류(火碎流)까지 발생해 해안 부근까지 도달했다. 화산에 의한 연기(분연)는 9000m 높이까지 치솟은 가운데, 폭발은 계속되고 있다고 NHK는 전했다. NHK는 분연의 폭도 2km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했다. 일본 기상청은 ‘분화 경보’를 발령하고, ‘분화경계레벨을 ‘3(입산규제)’에서 주민 피난이 필요한 ‘5’로 격상했다. 일본 기상청이 ‘분화 경보’를 발령한 것은 2007년 12월 분화 경계의 단계가 도입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구치노에라부지마는 가고시마현 남쪽 해상의 야쿠시마(屋久島)에서 서쪽으로 12㎞ 떨어진 면적 38㎢의 섬으로 섬 전체가 야쿠시마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야쿠시마 당국은 구치노에라부지마 주민 약 80가구 130여명에게 섬 밖으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가 있는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초(町) 총무과는 오전 10시 30분 현재 분화에 의한 사상자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총리 관저의 위기관리센터에 관저 대책실을 설치했고, 해상보안청은 대형 순시선을 파견했다. 구치노에라부지마에서는 작년 8월 3일에도 분화가 발생, 주민들이 섬 밖으로 대피했다. 한편 이번 분화로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더 활발해진 듯한 일본 내 화산 활동이 재차 주목받게 됐다. 전 세계 활화산의 7%에 해당하는 110개 활화산이 있는 일본에서는 근년 들어 주목할만한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잇따랐다. 가깝게는 작년 9월 27일, 나가노(長野)현과 기후(岐阜)현에 걸쳐 있는 온타케산(御嶽山)에서 대규모 수증기 폭발이 발생해 사망 57명, 실종 6명이라는 전후(戰後) 최악의 화산 관련 인명 피해를 낳았다. 입산 규제가 계속되고 있는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의 활화산 사쿠라지마(櫻島)에서는 2013년 8월 분연 높이가 5000m에 이르는 분화가 발생했다. 사쿠라지마의 쇼와(昭和)화구는 올해만 500회 이상의 분화를 기록했다. 또 2013년 11월에는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 니시노시마(西之島)에서 해저 화산 폭발로 인해 직경 약 200m, 해발 약 20m의 새로운 육지가 생긴 것이 확인됐다. 아울러 도쿄 방문 관광객이 즐겨 찾는 하코네온천이 있는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箱根)산에서는 지난달 하순 이후 화산성 지진이 수천 회 탐지되고, 일부 지점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확인되면서 경계수위가 높아졌다. 지난 6일자로 하코네산에서 화산분화 경계 수준이 평시의 ‘1’에서 ‘2’로 올라간 상태다. 일부 학자들은 300여년 전 대분화를 일으킨 후지(富士)산의 분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후지산에서 1707년 호에이(寶永) 대분화 때와 비슷한 분화가 발생해 용암이 흘러나올 경우 68만 9000명이 피난 대상이 될 것으로 일본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주민 약 27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중앙정부 기관인 내각부와 시즈오카(靜岡), 가나가와(神奈川), 야마나시(山梨) 등 후지산 주변 3개현이 처음 합동으로 대피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내각부의 의뢰를 받은 화산 전문가들은 2013년 5월 정리한 화산 재해 대책 관련 제언에서 동일본대지진 후의 일본 열도가 혼슈(本州) 북부의 산리쿠(三陸) 앞바다에 큰 지진이 발생한 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9세기 상황과 비슷해 대규모 분화가 단기간에 연속해서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20세기 이후 일본에서 규모 9 이상을 기록한 지진은 동일본대지진을 포함해 모두 6차례였고, 이 가운데 5차례 지진의 경우 발생 다음날∼3년에 걸쳐 가까운 화산이 분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