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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체 내부 약화 가속 수색… 진척 없을 땐 수상 크레인 동원 검토

    선체 내부 약화 가속 수색… 진척 없을 땐 수상 크레인 동원 검토

    세월호 희생자들을 수색 중인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실종자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4층 좌측 다인실과 5층 선수 격실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1일 세월호 참사 36일째를 맞아 합동구조팀은 신규 충원된 민간 잠수사 5명을 추가 투입했지만 선체 내부 전체가 약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수색에 난항을 겪었다. 특히 선체 약화 현상이 심한 4층 선미 다인실과 5층 선수 격실은 잠수사의 안전이 우려돼 초입 부분에서만 수색이 이뤄졌다. 5층 선수가 무너진 이후에는 안쪽까지 진입하기가 어렵고 4층 좌현 선미 부분도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합동구조팀이 지난 15일 1차 선체 수색을 한 후 3층 중앙과 선미, 4층 선수와 중앙 통로에서 각각 1구가 나오는 등 총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현재 잠수부들은 장애물을 옆으로 치우는 방식으로 수색을 벌이고 있지만 실종자들이 가라앉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까지는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합동구조팀은 날씨와 조류가 안정되고 중조기가 끝나 가면서 유속이 느려져 부유물들을 제쳐 가는 현재의 방식으로 구조 활동을 계속할 방침이다. 하지만 수색 작업에 진척이 없다고 판단되면 마지막 방법으로 선체 외판 일부를 잘라내고 큰 장애물들을 들어 올리는 수상 크레인을 동원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대책본부는 밝혔다. 구조팀은 이날 오전 8시쯤 4층 중앙 좌측 통로 끝에서 여성 시신 1구를 인양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후 5시까지 사망자는 288명, 실종자는 16명으로 집계됐다. 수색이 더뎌지면서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더욱 애간장을 태웠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색 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김모(44)씨는 “선사 측이 증축 공사를 하는 등 내부를 변경했기 때문에 공사 담당자를 불러 어떤 자재를 사용하고 어느 부분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등을 발 빠르게 파악했어야 했다”며 “정부가 초동 대응 미숙으로 시간만 낭비하다 이제야 잠수사가 힘들다, 선체가 약화돼 진입이 어렵다 등의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15살 소녀를 10년간 납치, 감금해온 용의자 가르시아

    15살 소녀를 10년간 납치, 감금해온 용의자 가르시아

    미국에서 동거녀의 딸인 15살 소녀를 납치·감금하고 10년간 성폭행을 반복해온 ‘인면수심’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25세인 이 피해 여성은 지난 2004년 로스앤젤레스 남동부 산타아나에서 납치됐다. 피해 여성과 용의자는 이 도시에서 약 40km 떨어진 벨가든스에서 발견됐으며, 여성이 스스로 납치된 것을 밝혀 이번 체포가 이뤄졌다. 이번 사건을 맡은 산타아나 경찰은 성명을 통해 “피해 여성은 지난 10년간 도망칠 기회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인면수심 용의자의 이름은 이시드로 가르시아(41). 그는 피해 여성을 납치한 뒤 2007년 강제로 결혼했으며 2012년에는 아이도 낳게 했다. 이 남성에게는 납치와 성폭행, 미성년자 음란 행위와 불법 감금 등의 혐의가 걸려있다. 피해 여성은 2004년 8월 당시 자신의 모친과 교제·동거하고 있던 이 남성과 함께 실종된 것으로 처리됐었다. 가르시아는 피해 여성에게 약을 먹인 뒤 차량을 이용해 인근 컴튼에 있는 주택으로 데려간 뒤, 하룻밤 동안 차고에 가둬 도망치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그녀에게는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한 그는 수년간 피해 여성에게 “가족은 널 찾는 것을 포기했다”면서 “만일 네가 집에 돌아가면 그들은 널 강제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하며 회유와 협박을 반복했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피해 여성을 데리고 경찰의 눈을 피해 수차례 이사했다. 경찰은 “가르시아가 피해자를 수시로 신체적으로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히면서 “그는 항상 피해자를 감시하기 위해 2명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야간 청소 업무를 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조울증女 순찰차 3대 들이받고… ‘광란의 추격전’

    조울증을 앓던 30대 여성이 서울 도심에서 순찰차를 들이받고 달아나 경찰이 실탄을 쏘며 추격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0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쯤 한강대교 북단 초입에서 싼타페를 몰던 김모(37)씨가 경찰의 제지에 불응한 채 앞길을 막아선 순찰차 3대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경찰이 공포탄 1발을 쏘고 차량 바퀴에 실탄 3발을 발사했지만 김씨는 순찰차를 밀어낸 뒤 그대로 도주했다. 김씨는 차량을 몰고 50m가량을 이동했지만 결국 순찰차에 가로막혔다. 경찰은 창문을 깨고 시동을 끈 뒤 오후 3시 40분쯤 김씨를 하차시켰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다치지 않았고 다른 차량 등의 피해도 없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조울증을 앓던 김씨는 사흘 전 말없이 차를 몰고 집을 나갔고, 가족은 이날 오전 “딸이 자살할까 봐 걱정된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이후 경찰은 위치추적으로 차량 소재를 파악한 뒤 가족에게 신병을 인계하려 했으나 김씨가 반발하며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으며 순찰차가 파손됐기 때문에 공용물손상 혐의로 형사입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세월호 참사] 가명으로 식당 아르바이트 ‘기초생활자’ 가족 노모뿐… “보상금 제대로 받을는지”

    세월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실종된 구모(42·여)씨의 사연이 주위를 울리고 있다. 혈혈단신이라 팽목항에서 생환을 기다리는 가족조차 없었다. 18일 오전 4시 53분쯤 세월호 3층 선원식당에서 면장갑을 끼고 작업복 차림으로 발견된 여성의 시신이 구씨일 가능성이 높다. 고(故) 양대홍(45) 사무장은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오전 9시 20분쯤 선원식당에서 구씨와 조리실을 어렵게 빠져나온 조리원 김종임(51·여)씨의 탈출을 도왔다. 당시 3명은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배가 80∼90도 기울어진 상태라 갑판으로 통하는 문이 천장처럼 위에 있었다. 벽이 돼 버린 통로에는 손에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양씨가 벽에 다리를 걸치고 올라간 뒤 김씨와 구씨에게 손짓했다. 김씨는 같은 방식으로 올랐지만, 구씨는 오르지 못한 채 “나는 무서워서 못 가”라며 울기만 했다. 양씨는 식당에 물이 차기를 기다린 뒤 어느 정도 가까워져 구씨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의 몸이 물속 무엇인가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구씨는 지난해 5월부터 틈날 때마다 세월호에 올랐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터에 혹시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법에 저촉될까봐 가명으로 세월호에서 일했다. 오전 4시 30분쯤 일어나 조리실에서 반찬 만드는 일을 돕다가 오전 6시 선원식당이 열리면 그곳에서 작업을 했고, 7시 30분이면 다시 승객식당으로 달려가 일한 뒤 설거지와 청소 등 잡일을 했다. 이런 것을 하루 세 차례 반복했다. 2박3일 일정으로 인천∼제주를 운항하는 세월호에서 구씨는 45시간 정도 일했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하지만 받는 임금은 15만 7000원.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구씨는 돈을 받으면 꼬박 경기 남양주시 마석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게 부치고 자신은 기초생활수급비 등으로 생활했다. 10여년 전 이혼한 구씨는 자식도 없어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서 혼자 지냈다. 김씨는 “구씨는 힘든 일을 골라 하면서도 불평 한 번 없었던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면서 “이름도 가명으로 돼 있는 데다 가족이라곤 노모밖에 없어 보상이나 제대로 받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끝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양 사무장의 영결식이 18일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시신은 인천 부평승화원에 안치됐다. 양씨의 직속 부하 직원이자 ‘살신성인’의 귀감이 된 박지영(22)·정현선(28)씨가 잠든 곳이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방글라 여객선 침몰해 최소 7명 사망에 실종 수백명…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원인은?

    방글라 여객선 침몰해 최소 7명 사망에 실종 수백명…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원인은?

    ‘방글라 여객선 침몰’ ‘방글라데시 여객선’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로 최소 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실종됐다. 15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메그나강에서 수백명을 태운 여객선이 폭풍우를 만나 전복한 뒤 침몰했다고 현지관리들이 밝혔다. 사고는 250∼300명이 탄 여객선이 이날 오후 3시쯤 다카에서 남쪽지역으로 가던 중 일어났다고 현지언론과 신화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사고가 나자 현지 경찰이 수색작업에 착수했다. 다카에서는 구조선 한 척이 사고현장으로 출발했다. 여객선은 현재 물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어린이와 여성 등 시신 7구를 발견했다”면서 “많은 탑승객이 사고 직후 헤엄을 쳐 뭍으로 나와 현재 정확한 실종자 수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원보다 훨씬 많은 승객을 태운 여객선이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언론매체는 탑승객이 최소 150명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선 몬순(우기)이 시작하는 6월 이전에 종종 폭풍우가 발생한다. 230개 이상의 강이 얽혀 있는 이 나라에선 여객선이 주요 운송수단 중 하나이며 사고도 잦다. 2012년 3월에도 여객선이 전복, 최소 11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여객선이 정원보다 많은 승객을 태우고서 승객 수도 파악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고의 실종자 수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최소 12명 사망·수백명 실종…순식간에 가라앉아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최소 12명 사망·수백명 실종…순식간에 가라앉아

    방글라데시 중부 메그나강에서 15일(현지시간) 침몰한 여객선 사고 사망자 수가 최소 12명으로 늘었다. 실종자 수는 여전히 수백명에 이르고 있어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지 관리와 경찰에 따르면 침몰한 여객선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출발해 남부 지역으로 향하던 중 다카에서 50㎞ 떨어진 지점에서 폭풍우를 만나 순식간에 완전히 침몰했다. 현지 지방정부 관계자는 “얼마나 많은 승객이 탔는지 정확한 숫자를 받지 못했지만 약 250~300명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여성 두 명과 어린이 한 명 등을 포함, 12구의 시신을 발견했고 20~30명은 헤엄쳐 나왔다고 전했다. 구조 작업을 하는 해군 관계자는 강이 넓고 깊은 데다 물살이 강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원을 넘겨 승객을 태우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번 사고 여객선도 정확한 탑승객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는 수백명의 실종자 가족이 찾아와 시신이 나올 때마다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강둑으로 몰려들고 있고 일부는 실종자를 찾으러 가는 배에 함께 동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글라데시는 230여개의 강이 얽혀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여객선이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고 때문에 사고도 잦은 편이다. 2012년 5월에도 같은 지역에서 정원을 초과해 20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바지선과 충돌한 뒤 침몰, 150여 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고, 2011년에도 같은 강에서 화물선과 충돌 사고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2009년에는 남부 지역에서 과적한 배가 뒤집히며 85명이 물에 빠져 숨지는 등 수상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로 수백명 실종…탑승객 정원 초과한 것으로 추정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방글라 여객선’ ‘방글라데시 세월호’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로 최소 7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실종됐다. 15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메그나강에서 수백명을 태운 여객선이 폭풍우를 만나 전복한 뒤 침몰했다고 현지관리들이 밝혔다. 사고는 250∼300명이 탄 여객선이 이날 오후 3시쯤 다카에서 남쪽지역으로 가던 중 일어났다고 현지언론과 신화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사고가 나자 현지 경찰이 수색작업에 착수했다. 다카에서는 구조선 한 척이 사고현장으로 출발했다. 여객선은 현재 물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어린이와 여성 등 시신 10여구를 발견했다”면서 “많은 탑승객이 사고 직후 헤엄을 쳐 뭍으로 나와 현재 정확한 실종자 수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경찰은 정원보다 훨씬 많은 승객을 태운 여객선이 폭풍우를 만나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언론매체는 탑승객이 최소 150명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선 몬순(우기)이 시작하는 6월 이전에 종종 폭풍우가 발생한다. 230개 이상의 강이 얽혀 있는 이 나라에선 여객선이 주요 운송수단 중 하나이며 사고도 잦다. 2012년 3월에도 여객선이 전복, 최소 11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사고가 발생한 매그나 강은 1986년 샤미아호가 침몰해 600여 명이 사망했고 2012년에도 여객선과 화물선이 충돌해 147명이 숨졌다.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여객선이 정원보다 많은 승객을 태우고서 승객 수도 파악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고의 실종자 수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에선 여객선이 주요 운송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정원 초과 등 안전관리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침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눈] 세월호 그 후… 뉴스 프레임 어땠나/오상도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 세월호 그 후… 뉴스 프레임 어땠나/오상도 문화부 기자

    참 아팠던 4월이다. 그리고 여전히 잔인한 5월이다. 예전 같으면 푸른 녹음을 노래할 시기이지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던 참사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세월호 사고’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이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진 KBS의 보도국장이 사임하면서 ‘재난보도’와 관련된 안팎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앞뒤 맥락을 거두절미했다는 당사자의 해명이 있었지만, 국가재난방송을 책임진 주관 방송사에서 이 같은 논란이 불거졌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1968년 맥스웰 매콤스와 도널드 쇼는 ‘어젠다 세팅 이론’을 내놨다. 제한된 미디어 효과이론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의 주요 이슈가 대중에게 전이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1990년대 중반 이 이론은 ‘프레이밍 이론’으로 진화했다. 미디어가 ‘방향성’을 던진다는 것이다. 뉴스보도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사려 깊은 선택과 보도를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참사 이후 일부 언론은 몇 가지 프레임에 사로잡혔다. 갈등의 프레임, 책임 강조의 프레임, 전문가 프레임, 경마 프레임 등이다. 이 가운데 책임 강조의 프레임은 선장, 해경,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정부와 청와대를 넘어서 끝없는 폭탄 돌리기로 이어졌다. 카페리호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해군 관계자나 가짜 여성 잠수사가 등장해 전문가로 행세하는 전문가 프레임도 엿보였다. 속보경쟁에 사로잡힌 일부 방송의 경마 프레임도 도마에 올랐다. 유족들의 분노와 비탄을 가감 없이 시청자에게 노출하며 이번에도 재난보도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한 종합편성채널이 처음 노출한 화면 상단의 구조자·실종자·희생자 숫자 표기는 때론 민망할 정도였다. 한 지상파 방송은 사고 발생 첫날 보험금을 운운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수일째 뉴스속보가 이어질 무렵 방송사 편집PD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서로 치열하게 눈치만 보고 있다. 한쪽에서(속보체제를) 풀면 자연스럽게 따라가려 준비 중이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중견 방송작가는 “사건을 진지하게 되짚으려는 다큐멘터리 기획안이 (상부로부터)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최근 심야 방송을 시청하다 화면 상단의 노란 리본이 자취를 감춘 사실을 깨달았다.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난 연휴 때는 관광지마다 상춘객이 넘쳐나지 않았던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그렇게 잊히는 것일까. 미국은 9·11 사태를 연방정부 차원의 범국가 재난통신망 구축의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를 추진해 온 우리는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사고가 터지면 늘 국민 정서가 쉽게 달아 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리곤 했다. 1993년 10월, 292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서해 훼리호 참사를 우리가 쉽게 잊지 않았다면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게 만드는 ‘공감의 프레임’이야말로 지금 언론의 사명이다. sdoh@seoul.co.kr
  • 무너진 세월호 대응체계 그 뒤엔 선원간 파벌싸움

    ‘세월호’ 승무원들은 배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공동 운명체였지만, 유대감 없이 직종별로 나뉘어 반목을 빚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정상적인 협조체계가 형성되지 않아 사고 대응에 실패하고 사고를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1일 청해진해운과 전·현직 승무원들에 따르면 승무원들은 인천∼제주 간을 오가는 세월호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회 왕복 운항하는 동안은 물론 주말에도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배 안에서 거주해 왔다. 토요일에 일부 직원이 외출하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승무원은 배에 머물렀다고 한다. 가정이 있어도 대개가 지방인 데다, 가정이 없는 선원도 상당수에 달했다. 특히 일요일에는 세월호의 ‘쌍둥이 배’인 오하마나호가 인천항으로 들어오므로 선석을 비워 주고 인천대교 인근 바다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기 때문에 외출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배는 ‘직장’인 동시에 ‘집’이었다. 선박 4층에 자리 잡은 2평 남짓한 승무원 방에는 여느 살림집과 다를 바 없이 각자 캐비닛·책상·TV·냉장고 등이 갖춰져 있었다. 이처럼 배를 지붕 삼아 함께 살면서도 직원들 간의 유대감은 희박했다. 기술직은 운항 분야(항해사·조타수)와 기관 분야(기관사·조기수)로 파벌이 형성돼 서로 경원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승무원은 “운항직과 기관직은 평소 서로 말을 잘 하지 않고 식사조차도 함께하지 않았다”면서 “한쪽은 배 꼭대기에서, 한쪽은 배 밑에서 일하는 데다 서로 자신들이 선박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늬만 선장’이었던 이준석(69)씨는 이들의 화합을 도모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운항직과 기관직 간의 반목은 배를 탈출할 때 자신들끼리만 연락하고 서로 다른 장소에 모여 배를 빠져나간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들은 서비스직 승무원들에게는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했다. 서비스직 12명 가운데 3명만이 생존했으며 나머지는 사망하거나 아직 실종 상태다. 서비스직 가운데는 승객 탈출을 돕다가 희생된 직원들이 적지 않아 전원 조기 탈출로 비난받고 있는 기술직과 대조를 이룬다. 영업직과 조리직으로 나뉘는 서비스직 승무원들은 평소 친밀하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51)씨는 “팀장급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어서 그런지 ‘언니, 동생’ 하면서 허물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팀장 간에는 알력이 심해 아래 직원들이 마음고생을 했다고 전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세월호 침몰] 사망자 3명 중 2명은 단원고 학생들 묵던 4층서 찾았다

    세월호 침몰 23일째인 8일까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사망자 중 3분의 2는 4층에서 수습된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의 5층 탑승객은 7명에 불과했지만, 객실이 아닌 로비에서 14명의 시신이 수습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시 배가 기울면서 물이 차오르자 5층으로 대거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지난달 16일 사고 발생 이후 이날까지 수습된 273명 가운데 4층에서 발견된 사람이 178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4층은 단원고 학생 객실로 배정된 다인실이 집중된 곳이다. 사망자 273명 가운데 단원고 학생은 228명, 교사 6명, 승무원 6명, 일반인 29명이었다. 4명은 아직 유전자(DNA)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오전 조류 흐름이 약해진 소조기(7~10일)임에도 기상 악화로 수색에 난항을 겪었다. 최대 풍속이 초속 11m까지 빨라진 데다, 최대 파고는 3.5m로 평소보다 7배 정도 높아진 탓이다. 국립해양연구원 관계자는 “길이 146m, 높이 22m의 세월호가 바다 한가운데서 암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변에 와류(소용돌이치는 흐름)가 나타나 정조시간대가 더 짧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후 늦게 풍속이 초속 6m로 약해지고 파고도 낮아지면서 수색이 재개됐다. 오후 8시쯤 4층 선수 중앙 우현 세 번째 격실에서 2구의 남자 시신을, 오후 5층에서 2구의 여성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 9일 오전 1시 현재 사망자는 273명, 실종자는 31명이다. 한편 대책본부는 전날부터 해상수색 범위를 침몰 지점에서 약 68㎞ 떨어진 보길도·소안도까지, 항공수색은 80㎞까지 확대했다. 고명석 대책본부 대변인은 “5층 선원 객실과 기관실, 창고, 화장실 등 구조팀이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곳이 많다”면서 “이달 중순 3차 수색까지 마친 뒤 추후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뇌출혈로 쓰러진 인천해양경찰서 항공단 소속 정모(49) 경사는 목포 한국병원에서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은 뒤 이날 오전 의식을 되찾았다. 진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물속 동료 손 잡고도 못 구해… 저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아”

    “물속 동료 손 잡고도 못 구해… 저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아”

    “물에 잠겨 가는 동료의 손을 붙잡고도 구해 내지 못했습니다.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서비스직 승무원들 사이에 빚어졌던 또 다른 비극적인 사연이 생존 승무원에 의해 알려졌다. 생존 승무원 가운데 구속되지 않은 단 2명 중 한 명인 조리원 김모(51·여)씨는 7일 악몽의 순간을 떠올렸다. 김씨는 동료 이모(56·여)씨와 함께 지난달 16일 오전 9시 10분쯤 배식을 마치고 세월호 3층 조리실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겹겹이 쌓아 놓은 식판들이 엎어지고 냉장고와 대형 밥솥 안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이들은 선반을 잡고 싱크대 위로 올라가 상황을 살펴본 뒤 심각성을 느껴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어느새 조리실이 50∼60도 기울면서 밖으로 나가는 길목인 선원식당까지 바닥이 언덕처럼 가파르게 기운데다 엎지러진 식용유로 뒤범벅이 되면서 미끄러워 올라갈 수가 없었다. 김씨는 옆에 있는 가스통에 발을 딛고 파이프를 잡고 기어올랐다. 5∼6m 거리였지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선원식당까지 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중에 식당 의자가 굴러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김씨는 이씨에게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쳤지만 이씨는 계속 미끄러지다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실종됐다. 선원식당에서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무장 양대홍(45)씨, 아르바이트생 구모(42·여)씨와 합류했지만 배가 80∼90도까지 기울어진 상태라 갑판으로 통하는 문은 천장처럼 위에 있었다. 벽이 돼 버린 통로에는 손에 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 보다 못한 양 사무장이 벽에 양다리를 걸치고 지그재그로 움직여 겨우 올라간 뒤 김씨와 구씨에게 올라오라고 하자 김씨는 같은 방식으로 올랐다. 음식점에서 일할 당시 10여년간 바위산을 탄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구씨는 발만 동동거리고 있어 김씨가 재촉했지만, 구씨는 “나는 무서워서 못 가”라며 울부짖었다. 김씨는 급한 김에 허리를 굽혀 손을 내밀었지만 미치지 못했다. 잠시 뒤 식당에 물이 차올라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양 사무장은 손을 내밀어 구씨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씨의 몸이 물속 무엇인가에 끼여 있어 빠져나오지 못했다. 방법이 없자 양 사무장은 김씨에게 먼저 탈출할 것을 지시했고, 김씨는 갑판으로 나온 뒤 배 우측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9시 40분쯤 해경 헬기에 구조됐다. 타이타닉호의 최후 순간보다 더 악몽 같은 30분이었다. 양 사무장과 구씨는 아직 실종 상태다. 병원에서 부상 치료와 정신치료를 함께 받고 있는 김씨는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다”면서 “구씨가 오히려 ‘언니는 다쳐 어떡하냐’고 걱정하던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득하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세월호 침몰] ‘476’ 21일 지났는데… 또 못 믿을 탑승자 수

    세월호에 영유아가 탑승했던 정황이 속속 제기되면서 476명으로 파악된 승선자가 또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6일 해양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해경은 세월호 영유아 탑승 가능성에 대해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그동안 선미 쪽에서 젖병을 목격했다는 민간 잠수사의 증언과 사고 당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세월호 내부 동영상 등을 근거로 영유아가 세월호에 탑승했을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해경은 영유아와 함께 탔을 가능성이 있는 실종자 여성 2명의 가족을 상대로 확인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해당 가족들은 실종자가 영유아를 데리고 탑승하지 않았다고 밝힘에 따라 해경은 세월호 개찰구 쪽 폐쇄회로(CC) TV 등을 확인하며 인원 파악에 힘쓰고 있다. 세월호 탑승자 파악을 놓고 해경의 난항이 계속되는 이유는 비행기와 달리 선박은 탑승자 신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선박 회사들은 탑승자의 신분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승객들이 기재한 승선확인증만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승선확인증에도 부정확한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는 경우가 많다. 화물차량에 탄 채 승선한 인원과 무임승차 승객도 집계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청해진해운은 승선 인원에 대해 계속 말을 바꿔 왔다. 이들은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 승선 인원을 471명으로 발표했으나 이내 477명으로 정정했다. 이후 탑승 인원은 459명으로 바뀌었다가 462명으로 수정됐다. 지난달 18일 476명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지만 이 역시 언제 또 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탑승자 수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현재 남은 실종자를 다 찾더라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추가 시신을 찾아내고자 한동안 수색이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진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보코하람 “납치한 소녀 200명 내다팔겠다”

    보코하람 “납치한 소녀 200명 내다팔겠다”

    턱수염을 길게 기른 전투복 차림의 남성이 장갑차 앞에 섰다. 무장한 남성 6명이 복면을 한 채 그를 엄호하듯 옆을 지켰다. 그는 이슬람 무장세력 ‘보코하람’ 최고지도자인 아부바카르 셰카우(가운데)였다. 셰카우는 격앙된 목소리로 지난달 나이지리아 동북부 치복시(市)의 한 학교에서 납치된 여학생 276명을 언급한 뒤 “내가 그들을 납치했다”며 “노예인 그들을 시장에 내다 팔 것”이라고 말했다. 납치사건 배후로 보코하람이 지목되긴 했지만 지도자가 범행을 시인한 것은 처음이다. 5일(현지시간) AFP통신이 입수한 57분 분량의 동영상에서 셰카우는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고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셰카우는 이전에도 서구식 교육을 “이슬람에 대항하는 음모”라고 지적하면서 교사와 학생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동영상에서 “여성들은 노예다. 나는 내 무슬림 형제들이 알라가 말한 대로 이슬람 안에서 노예가 허용된다는 점을 다시 가슴에 새기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이슬람 지하드(성전) 중에 붙잡힌 여성들을 노예로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셰카우는 영어와 아랍어, 현지어를 두루 써 가며 “나는 알라의 뜻에 따라 그들을 시장에 팔 것”이라며 “사람들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다”고 말했다. 또 “9~12세 소녀들은 결혼시킬 것”이라면서 “그들은 결국 결혼을 하거나 노예로 팔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셰카우는 나이지리아 내에 있는 학교와 국제 공동체 장소를 추가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번 피랍 사건은 지난달 14일 치복여자공립학교에서 발생했다. 괴한들이 침입해 경비를 서고 있던 경찰과 군인들을 무장 해제시킨 뒤 16∼18세 여학생들을 트럭에 태워 납치했다. 이 중 53명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223명은 괴한들에게 아직까지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소녀들은 12달러에 차드나 카메룬 등 이웃 국가에 신부로 팔리고 있다고 AFP통신은 앞서 보도했다. 굿럭 조너선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전날 밤 TV에 출연해 피랍 여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실종 여학생들을 위한 항의 행진에 참가중인 하디스 발라 어스맨은 “대통령의 부인 페이션스 조너선이 경찰에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도록 지시했다”며 “정부가 시위대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서방국도 뒤늦게 지원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을 ‘잔인무도하고 끔찍한 비극’으로 규정하면서 나이지리아 당국과 공조해 대테러 작전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동영상이 진짜라고 본다”면서 “여학생 다수가 인접국으로 이동된 여러 징후를 확보했으며 사태 논의를 위해 국무부 담당자를 나이지리아로 파견했다”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1일 청계광장…전국 곳곳서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1일 청계광장…전국 곳곳서 세월호 촛불집회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 이후 실종자 무사귀환과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촛불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서울시민촛불 원탁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을 추모·위로하는 촛불집회를 서울 28곳, 전국 153곳에서 열었다고 전했다. 협의회 측은 3일과 10일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추모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전국여성연대 역시 1일 오후 7시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세월호 실종자 무사생환 염원 시민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사망자 212명’ 5층에서 많이 발견 “필사적 탈출 추측..”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사망자 212명’ 5층에서 많이 발견 “필사적 탈출 추측..”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5일째인 30일 새벽 2시쯤 세월호 4층과 5층을 집중적으로 수색한 결과 4층 선수 부분에서 단원고 학생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4명을 비롯해 5층 로비에서 여성 희생자 1명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전했다. 5층에서 시신이 많이 발견된 것은 학생들이 배 안에 물이 차오르자 탈출을 위해 5층 로비까지 필사적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 사고 해역 2km에서 떨어진 곳에서 희생자가 추가 발견됐다. 이번에 추가된 희생자는 안산 단원고 여학생으로 추정되며 구명조끼를 입은 채 사고 해역 인근에 표류 중에 발견됐다. 인근 어민이 기름 방제 작업을 위해 수심 30m 깊이에 있던 닻을 들어 올리다 희생자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사고 지점 서북쪽으로 13km 떨어진 바다에서도 세월호 구명정 3개 등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희생자 시신이 추가로 유실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으로 오전 0시 현재까지 탑승객 476명 중 구조자 174명, 실종 90명, 사망자 212명으로 확인됐다. 네티즌들은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소식, 들을 때마다 아프다”,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시신 유실 막아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모두 다 찾아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매일 매일 슬픈 소식”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JTBC 뉴스 캡처(세월호 희생자 추가 발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세월호 참사] 침몰현장 2㎞ 밖에서 시신… “내 아이도 혹시”

    [세월호 참사] 침몰현장 2㎞ 밖에서 시신… “내 아이도 혹시”

    세월호가 침몰한 지 보름째인 30일, 물살이 거센 ‘대조기’(사리)임에도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은 속도를 더했다. 지난 29일 이후 작업 여건은 악화됐지만 20여구의 시신을 추가 수습했다. 희생자들이 몰린 선체 4~5층의 왼쪽 격실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사고 현장에서 2㎞ 남짓 떨어진 해역에서 여성 시신 1구가 발견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시신 유실이 일부 확인됨에 따라 어선과 헬기 등 가용 인력과 장비를 모두 동원해 수색 작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후 잠수부 105명을 동원해 4층 뱃머리 좌측과 중앙 격실, 5층 로비 등을 중심으로 수색 작업을 이어 갔다. 구조팀은 오전에 4층 뱃머리 좌측 격실과 5층 로비를 수색해 희생자 5명을 추가로 수습했다. 시신 유실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오후에는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2㎞ 남짓 떨어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앞 200m 해상에서 기름 방제 작업에 나섰던 어민이 여성 시신 1구를 수습했다. 오후 11시 현재 사망자는 212명, 실종자는 90명이다. 당초 대조기 들어 최대 유속이 초속 2.4m에 이를 만큼 물살이 거센 탓에 수색 작업 속도가 늦춰질 것이란 우려와 달리 연이틀 수색의 성과를 거둔 데 대해 대책본부 측은 “2~3일 전부터 4층 뱃머리 좌측 격실, 4층 뱃머리 중앙 격실, 5층 로비 진입로를 개척한 이후 진입이 용이해지면서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면서도 “4층 중앙 좌측 객실의 통로 진입에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동구조팀은 현재 전체 격실 111개 중 실종자 잔류 가능성이 없는 47개를 제외한 64개 중 44개를 수색했다. 구조팀은 이날까지 실종자들이 잔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객실을 살펴본 뒤 소조기(조류의 흐름이 한 달 중 가장 느린 시기)인 오는 7일 전후까지 문을 열지 못한 격실과 공용구역을 수색하는 등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또 이달 중순까지는 그 외에 추가로 실종자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나 우선순위에서 밀린 공간도 수색하기로 했다. 세월호 침몰 이후 투입 여부를 놓고 해양경찰과 유족 사이에서 줄곧 논란을 빚었던 민간 구조장비 ‘다이빙벨’은 이날 처음 투입됐지만 20여분 만에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이종인 대표의 알파잠수기술공사 측은 다이빙벨을 싣고 간 바지선과 사고 선박을 연결하는 버팀줄을 설치한 뒤 이날 오후 3시 45분쯤 선미 쪽에 장비를 투입했다. 당초 실종 학생 등이 많을 곳으로 추정되는 뱃머리 쪽에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출항 전 해경이 수색 구역을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잠수사 3명을 태운 채 바닷속 20m까지 들어간 다이빙벨은 잠수사의 산소 공급 호스가 꼬이면서 28분 만에 물 밖으로 건져졌다. 이 대표는 “투입 과정에서 잠수부 1명의 공기호스가 다이빙벨 운용 와이어에 눌려 터졌다”고 밝혔다. 진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1일 청계광장서 열려…광주 금남로 횃불시위 눈길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1일 청계광장서 열려…광주 금남로 횃불시위 눈길

    ‘서울 세월호 촛불집회’ ‘광주 금남로 횃불시위’ 세월호 참사 이후 실종자 무사귀환과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촛불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서울시민촛불 원탁협의회는 지난달 30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을 추모·위로하는 촛불집회를 서울 28곳, 전국 153곳에서 열었다고 전했다. 협의회 측은 3일과 10일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추모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전국여성연대 역시 1일 오후 7시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세월호 실종자 무사생환 염원 시민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한편 지난달 30일 광주 금남로에서는 ‘아이들을 살려내라! 모이자! 5월 8일 금남로! 심판하자 박근혜!’라는 현수막과 함께 횃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횃불시위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광주지역본부가 주최한 것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함께 미흡한 사고 수습 논란에 휩싸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열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보름째, 실종 92명-사망 210명

    세월호 침몰 보름째, 실종 92명-사망 210명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30일 새벽 2시쯤 세월호 4층과 5층을 집중적으로 수색한 결과 4층 선수 부분에서 단원고 학생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4명을 비롯해 5층 로비에서 여성 희생자 1명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오후 2시 현재까지 탑승객 476명 중 구조자 174명, 실종 92명, 사망자 210명으로 확인됐다. 5층에서 시신이 많이 발견된 것은 학생들이 배 안에 물이 차오르자 탈출을 위해 5층 로비까지 필사적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내 새끼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자식이에요”… 유족은 절규했다

    “내 새끼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자식이에요”… 유족은 절규했다

    “지금 사퇴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저희 자식이기도 하지만, 내 새끼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자식이에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내 자식이 이렇게 됐으면 어떻게 할 건지 그 마음으로 해 주십시오.” 29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주차장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 전날까지 안산올림픽기념관에 설치됐던 임시분향소가 문을 닫고 이날 오전 10시부터 정부합동분향소가 조문객을 맞았다. 일반인의 조문이 시작되기 전인 오전 9시쯤 박근혜 대통령이 분향소를 찾아 25분가량 조문을 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박 대통령이 머무는 내내 유족들의 원망 섞인 절규와 애타는 호소가 분향소를 가득 채웠다. 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서도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은 분향소에 광고 찍으러 온 것 같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정홍원 국무총리 등 정부 관계자들이 보내온 조화는 “보기 싫다. 치워라”라는 일부 유족들의 요구에 따라 분향소 밖으로 내보내졌다.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박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둘러본 뒤 헌화와 분향을 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유족이 흥분해 “대통령이 와서 가족들한테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니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한 여성 유족은 “대통령님, 우리 새끼들이었어요. 끝까지 있으셨어야지, 현장에 있으셨어야죠”라면서 “지금 바다에 있는 아이들 구조 작업도 대통령님이 내려가서 직접 지휘하세요”라고 절규했다. 이 여성의 친척인 한 남성은 “국민이 우리나라에 안 살고 떠나고 싶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안 되잖아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박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국무회의에서 그동안 쌓여 온 모든 적폐와 이것을 다 도려내고 반드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서 희생된 모든 것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유가족 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와스타디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조문과 국무회의에서의 사과는) 진정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실천과 실행도 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장례나 추모공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팽목항의 실종 아이들을 신경써 달라”면서 “정부는 태만하고 기만적인 구조체계로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더이상의 변명 없는 적극적인 태도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날 오전 6시쯤 전날까지 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에 마련됐던 임시분향소 제단에서 영정 사진과 위패가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자식의 영정과 위패를 건네받은 부모들은 차례로 대기하던 자원봉사 택시에 올랐다. 단원고 2학년 김모군의 사진을 받아든 어머니 백모(45)씨는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원래 있던 사진은 아들의 혼이 담긴 것 같아 집으로 가져간다”면서 “이제는 화랑유원지로 옮겨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합동분향소는 많은 추모객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넓은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자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정해졌으며, 이미 발인이 끝난 희생자 162명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감금됐나…톈안먼 관련 취재 中여기자 실종

    감금됐나…톈안먼 관련 취재 中여기자 실종

    ‘6·4 톈안먼(天安門)사태’ 25주기를 앞두고 중국의 반체제 여성 언론인 가오위(高瑜·70)가 엿새 째 연락이 두절되는 등 실종 상태라고 29일 명경(明鏡) 등 중화권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명경에 따르면 가오위의 지인들은 그가 지난 24일부터 연락이 두절됐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그의 행방을 수소문 중이다. 가오위의 휴대전화는 꺼진 상태이며, 그의 아들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가오위는 톈안먼 사태와 관련이 깊은 언론인이다. 지금은 폐간된 경제학주보(經濟學周報)에서 부총편집장을 지내던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를 앞두고 학생 시위를 취재했다는 이유로 6월 3일부터 1년간 투옥됐다. 이어 1993년 10월 국가기밀누설죄로 다시 체포돼 6년 간 복역한 뒤 병보석으로 출소했다. 이런 이유에서 지인들은 오는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 25주기를 앞두고 당국이 ‘사회안정’을 명목으로 가오위를 감금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명경은 분석했다. 신문은 또 가오위가 중화권 매체와 자신의 트위터에 사법처리설이 나오는 저우융캉(周永康) 관련 기사를 활발하게 게재한 것도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명경은 “가오위는 실종 직전 국가안전부(국정원 격)사람들로부터 더 이상 저우융캉 관련 기사를 쓰지 말라는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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