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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플러스-국제]

    말레이機 추정 잔해 동일 기종 확인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서 발견된 실종 말레이시아기(MH370편)의 잔해 추정 물체가 실종기와 같은 기종인 보잉777의 부품으로 확인됐다고 AFP가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FP는 “말레이시아 항공으로부터 이 같은 정보를 얻었다”는 압둘 아지즈 카프라위 말레이시아 교통차관의 말을 전하면서, 인근 해상에서 사고를 당한 보잉777기는 MH370이 유일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종기 잔해로 최종 판명되더라도 수많은 변수가 있어 정확한 사고 지점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美 NSA, 日장관·대기업도 감청”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1기 내각의 장관들과 일본은행 총재, 대기업 등을 감청했다고 폭로전문 매체 위키리크스가 31일(현지시간) 밝혔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NSA는 2006년 9월부터 1년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미야자와 요이치 경제산업상 등 정부 관료와 주요 기업의 전화번호 35개를 감청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와 재무성 당국자 번호는 물론 대기업 미쓰비시의 천연가스 부문과 미쓰이의 석유 부문 번호도 포함됐다. IMF, 그리스 구제 금융 참여 유보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의 구조 개혁과 채권단의 그리스 부채 탕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 구제금융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IMF는 지난 29일 열린 회의에서 “그리스 정부는 개혁 이행 능력이 부족하고, 중기적으로 부채를 감당할 가능성이 낮다”며 860억 유로 규모의 3차 구제금융 참여 결정을 유보했다. 독일 등 채권국은 부채 탕감에 반대하고 있어 향후 구제금융 협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中 궈보슝 前부주석 당적 박탈 중국 공산당이 30일 중국군 부패의 ‘몸통’으로 알려진 궈보슝(郭伯雄)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당적을 박탈하고 최고인민검찰원에 정식 수사를 명령했다. 궈 전 부주석은 지난 4월 연행돼 기율검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아 왔다. 이로써 지난 3월 조사 도중 방광암으로 사망한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이어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기간 군 최고 수뇌부 2명이 모두 처벌받게 됐다. 탈레반 새 지도자에 물라 만수르 지난 29일(현지시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의 후임으로 조직 내 2인자인 물라 아크타르 무하마드 만수르가 추대됐다고 30일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후계자 선정에도 31일 열릴 예정이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회담은 무기한 연기됐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지난 7일 14년 만에 처음으로 평화협상을 열고 회담을 지속하기로 한 바 있다.
  • [책꽂이]

    [책꽂이]

    더 나은 철학의 삶을 위한 다섯 가지 대답(뤼크 페리·클로드 카플리에 대담, 이세진 옮김, 더퀘스트 펴냄) 프랑스의 전 교육부 장관이자 ‘유럽의 살아 있는 지성’으로 불리는 뤼크 페리와 작가 클로드 카플리에가 ‘살 만한 삶’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나눈 철학적 대화. 각 시대의 철학자들은 어떻게 살 만한 삶, 더 나은 삶을 찾고자 노력했고 어떤 답을 얻었는지 짚어 나간다. 356쪽. 1만 5000원. 실크로드 7개의 도시(발레리 한센 지음, 류형식 옮김, 소와당 펴냄) 누란, 쿠차, 투르판, 사마르칸트, 장안, 돈황, 호탄 등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찾아낸 고문서를 통해 본 실크로드의 역사. 노예계약서, 전당포 영수증, 사막에서 실종된 형의 재산을 찾기 위한 동생의 소송 서류, 여행자가 부적으로 지녔던 기도문 등 사소한 삶의 편린들에서 진정한 역사를 읽는다. 512쪽. 3만 2000원.
  • 말레이機 추정 잔해 아프리카 섬에서 발견 미스터리 풀리나

    말레이機 추정 잔해 아프리카 섬에서 발견 미스터리 풀리나

    지난해 3월 8일 실종된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의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가 인도양 건너 아프리카 동부 마다가스카르 인근 섬에서 발견됐다. 승객과 승무원 239명을 태우고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이 여객기는 이륙 40여분 만에 통신 두절과 함께 실종돼 항공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실종 지점에서 약 5700㎞ 떨어진 해변에서 수거된 이 물체가 실종 항공기의 일부로 확인된다면 사고 발생 509일 만에 처음으로 잔해가 발견된 셈이 된다. 29일(현지시간)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동쪽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 북동쪽 해안에서 항공기 날개의 일부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전했다. 길이 3m, 폭 1.5m의 이 흰색 물체는 인근 호텔의 청소부들에게 발견됐다. 조개 껍데기로 뒤덮여 있어 오랫동안 물속에 잠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팀을 급파했던 나지브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발견 이튿날 성명을 내고 “(잔해 발견) 위치는 말레이시아 조사팀에 제출된 해류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며 실종기 잔해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 뒤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항공안전국에서 정밀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7개월간 말레이시아, 중국, 베트남, 인도 등과 공동 수색팀을 꾸려 호주 서안 6만㎢ 해상을 뒤졌던 호주교통안전국(ATSB) 관계자는 “당초 수색 범위인 인도양 동남부에서 약 4800㎞나 떨어진 레위니옹에서 발견됐으나 해류를 고려한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반면 레위니옹 섬을 관할하는 프랑스 항공당국은 “확답하기에 시간이 너무 이르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프랑스 해군 출신 항공전문가인 자비에 티틀만은 이 물체가 실종 여객기와 같은 보잉 777기의 날개 뒤편에 위치한 ‘플래퍼론’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날개의 방향을 잡아주는 플래퍼론은 보잉 777기 특유의 곡선을 띠고 있다. CNN은 “수년간 이 일대에서 같은 기종의 추락사고는 없었다”면서 “형태와 색깔, 표식번호 등 세 가지 요소가 사고기의 잔해임을 증명한다”고 보도했다. 이 물체엔 정비번호로 추정되는 ‘BB670’이 적혀 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와 제조사인 보잉사 관계자도 “보잉 777기의 잔해물이라는 데 확신을 갖고 있다”고 AP에 밝혔다. WSJ는 프랑스 당국의 조사가 사고기 파편인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실종 여객기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를 규명하는 데 방점이 찍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물체가 사실상 실종기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고 다음 단계인 사고 원인 규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보잉사 기술자들이 속속 조사팀에 합류하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2009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이륙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447편도 대서양 상공에서 갑자기 사라졌으나 수색팀이 발견한 작은 파편이 단서가 돼 해수면으로 수직 추락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 물체가 MH370편의 잔해로 확인되면 여객기 공중 폭발로 쏠리던 추정이 급작스러운 인도양 바다 위 해상 추락으로 돌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가장 설득력을 얻은 MH370의 실종 이유는 연료가 새는 데 따른 회항과 공중 폭발이었다. 세간을 떠돌던 ‘음모론’도 사그라들 전망이다. MH370편이 목적지인 베이징과 반대인 인도양 남부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조종사의 고의 항로 이탈설, 러시아나 북한의 납치설, 미군과 태국군의 합동 군사훈련에 따른 격추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여객기가 실종되던 날 인도양 해상에서 거대한 섬광이 목격됐다며 화물칸에 실린 수하물의 내역을 공개하라고 말레이시아 정부를 압박해 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프랑스령 레위니옹>
  • 보잉 “인도양서 발견 잔해 ‘실종 말레이기’ 맞다...최종확인 수일 걸려”

    보잉 “인도양서 발견 잔해 ‘실종 말레이기’ 맞다...최종확인 수일 걸려”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 해안에서 지난해 실종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 여객기의 일부로 추정되는 잔해가 최초로 발견돼 언론과 관련당국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잔해가 위치한 장소는 인도양에 위치한 프랑스령 레위니옹(La Reunion) 섬으로 해변을 청소하던 노동자들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신고를 받은 프랑스 항공교통 당국은 항공사고 전문가들을 파견했으며, 조사 끝에 이 잔해가 실종된 MH370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고 밝혔다. 리오 티옹 라이 말레이시아 교통부 장관 역시 잔해의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팀을 파견했다. 보잉 사 측 관계자는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잔해가 보잉777의 일부가 맞다고 믿고 있다며 “최종 확인을 위해서는 며칠 더 소요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94년 처음 보잉 777이 도입된 이래 MH370을 포함해 해당 기종이 추락한 사고는 단 다섯 건에 불과하며 이 중 해상에서 실종된 기체는 MH370이 유일하다. 따라서 아직 추가 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해당 잔해가 MH370일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 MH370 여객기는 지난해 3월 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이후 실종됐다. 이번에 잔해가 발견된 위치는 MH370기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위치로부터 약 6000㎞ 떨어진 장소다. 해당 기체 잔해를 찾기 대한 대규모 수중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호주 해안으로부터 약 5000㎞ 떨어진 위치이기도 하다. 한편 항공전문가 자비에르 틸트만은 자신의 트위터에 발견된 잔해 사진과 보잉 777 기체 도면을 비교하는 글을 올리고 그 구조가 서로 상당히 유사하다며 해당 잔해가 MH370에 속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러시아판 ‘살인의 추억’… ‘연쇄살인마’ 잡고보니 할머니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찰은 최소 10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 후 유기한 연쇄살인 용의자를 체포했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된 용의자는 놀랍게도 무려 67세의 할머니였다. 최근 러시아투데이(RT) 등 현지언론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찰이 연쇄살인 혐의로 타마라 삼소노바(67)를 체포해 조사 중에 있다고 보도했다. 다소 믿기 힘든 이번 사건은 얼마 전 트미트로바 거리 인근에 위치한 호수에서 한 목잘린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조사 결과 드러난 이 시신의 신원은 발렌티나 울라노바(79). 인근 CCTV를 조사하던 경찰은 삼소노바가 시신 일부가 담긴 검은색 가방을 운반하는 것을 발견해 용의자로 긴급 체포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경찰이 삼소노바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집에서 발견된 수 권에 달하는 일기장에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의 추억'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기 때문. 용의자가 직접 쓴 이 일기에는 지난 10년 간 10여 건의 살해 내용이 세세히 기술돼 있어, 경찰은 그간 이 지역에서 벌어진 미해결 실종 및 살인사건과 일일히 대조 중에 있다. 또한 용의자의 집에서는 12년 전 이 지역 거리에서 사지가 절단된 채 발견된 남성의 명함도 발견됐다. 이 살인사건 역시 미해결로 남았는데 자연스럽게 삼소노바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경찰은 "과거 지역에서 벌어진 몇몇 실종사건도 삼소노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면서 "용의자의 집에서 톱과 칼 그리고 목욕탕에서는 혈흔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용의자가 한 건의 살인사건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한 상태" 라면서 "정말 용의주도하고 교활한 살인자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라오스 등 강제실종 사례에서 교훈 얻어야”

    “라오스 등 강제실종 사례에서 교훈 얻어야”

    29일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열린 ‘강제실종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마리 에일린 바칼소(왼쪽) 비자발적실종반대아시아연합(AFAD) 사무총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라오스와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등에서 강제실종 관련 문제를 경험한 전문가들이 납북자 문제 등 북한인권 관련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는 국제회의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성폭행과 출산...가출한 11살 아기엄마 “찾지 마세요”

    성폭행과 출산...가출한 11살 아기엄마 “찾지 마세요”

    성폭행을 당해 아기까지 낳은 여자어린이가 돌연 사라져 경찰이 찾고 있다. 아르헨티나 투쿠만 경찰에 따르면 여자어린이는 최근 동생들과 함께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지만 아직까지 사라진 아이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실종여아는 올해 만 11살 어린이지만 아기를 둔 엄마다. 여자어린이는 지난해 성폭행을 당해 아기를 가졌다. 성폭행사건이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신중절이 거절된 이 여자어린이는 올해 아기를 낳았다. 아이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정신적 충격이 이기지 못해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자어린이는 실종된 날 동생들과 함께 여느때처럼 집을 나섰다. 하지만 동생들만 학교에 들여보내고 자신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부모가 딸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 건 방과 후 동생들이 귀가한 뒤였다. "왜 누나는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동생들은 "누나는 오늘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답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아이를 찾고 있지만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여자어린이의 이모라는 사람이 연락이 닿았다는 말을 전해왔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여자어린이는 이모와의 전화통화에서 "스스로 집을 나온 것이니 제발 찾지 말아달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여자어린이가 성폭행과 출산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가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관계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면서 "여자어린이가 있을 만한 곳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제의 성폭행사건은 지난해 발생했다.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아 묻혀 있던 사건은 여자어린이가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병원 측 신고로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용의자 2명을 검거해 DNA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가세타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김무성 “한국전 참전 美용사들에 감사” 묘역 찾아 큰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미국 워싱턴DC 방문 이틀째인 27일(한국시간)에도 안보 행보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한국전 참전용사 묘역을 방문해 한국식 ‘큰절’을 두 차례 올리며 참전 영웅들에 대한 존경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을 방문해 한국전 기념비에 헌화하며 함께 자리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김 대표는 헌화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코리아’의 역사나 이름도 모른 채 공산주의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미군이 참전해서 3만 6940명이 전사하고 9만 2134명이 부상하고 8157명이 아직 실종 상태다. 이분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전 참전 당시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 대령을 소개하면서 “이분의 꿈이 유리벽을 세워서 전사한 동지들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것”이라면서 “미국 의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우리 한국 새누리당 의원들이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이어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한국전 참전 당시 사망한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를 찾았다. 그는 “월턴 워커 장군은 낙동강까지 전선이 밀려오는데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장본인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이고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운명을 지켜주신 노장군님께 존경의 뜻을 담아 이렇게 왔다”면서 한국식으로 절을 두 번 하겠다”고 말한 뒤 수행단과 함께 큰절을 두 번 올렸다. 김 대표는 손수건으로 묘비에 묻은 새똥을 손수 닦아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오후에는 ‘한국의 사위’로 불리는 친한파 정치인인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를 만나 10분간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호건 주지사는 림프종암으로 투병 중이라서 공식 행사에는 불참했다. 호건 주지사는 김 대표에게 “한국의 사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 대표는 “주지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빠른 쾌유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워싱턴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레드벨벳 공항패션, ‘러블리 vs 시크’

    레드벨벳 공항패션, ‘러블리 vs 시크’

    대세 걸그룹 레드벨벳의 공항패션은 어땠을까. 25일 오전 ‘SM타운 오사카 콘서트’ 참석차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한 레드벨벳은 각각 특색 있는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 블랙 & 화이트, 레드벨벳의 시크 캐주얼 슬기, 아이린은 블랙 앤 화이트를 적절히 매치한 시크 캐주얼룩을 선보였다. 슬기는 화이트 셔츠에 블랙 진, 여기에 자수가 돋보이는 캐주얼 무드의 스니커즈를 매치해 편안하면서도 시크함이 묻어나는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아이린은 화이트 롱 셔츠로 하의실종 패션을 선보였다. 여기에 블랙 클러치, 반짝이는 글리터와 레터링 디테일의 슬립온으로 시크한 포인트를 더했다. ▶ 여름 느낌 물씬! 레드벨벳의 러블리 캐주얼룩 조이, 예리, 웬디는 러블리한 캐주얼룩을 선보였다. 조이는 마린룩을 연상하게 하는 네이비 원피스에 화이트 폴더 크로스백과 메탈 디테일이 돋보이는 슬립온으로 러블리 캐주얼룩을 완성했다. 예리는 화사한 화이트 원피스에 아이스 블루 컬러의 크로스백과 트로피컬 패턴이 돋보이는 스트랩 샌들로 러블리한 느낌은 물론 바캉스룩으로도 손색없는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웬디는 스트라이프 원피스에 화이트 백팩, 와펜이 돋보이는 블랙 슬립온으로 블랙 앤 화이트지만 러블리한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한편, 이날 레드벨벳의 공항패션을 완성한 슬립온과 샌들, 가방은 프랑스 패션 브랜드 블랙마틴싯봉 제품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野, 완전국민경선제 협상마저 거부해선 안 돼

    오픈프라이머리, 즉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을 놓고 여야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선제 제안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그제 ‘오픈프라이머리의 본고장’인 미국 방문길에 오른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현역 정치인에게 유리하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반대 논거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파 보스가 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대의를 부정할 순 없다. 야당은 국민공천제 도입을 위한 협상의 문마저 닫아걸지는 말기 바란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한국 정치사에서 한 번도 시행해 본 적이 없다. 버지니아주를 비롯한 미국의 19개 주에서 채택하고 있는, 우리로선 미답(未踏)의 길이다. 그래서 시행하는 데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을 법하다.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기득권 정치구조 고착화나 정당정치를 통한 책임정치의 실종 가능성 등 새정치연합 측의 반대 논리도 일정 부분 설득력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 개혁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임은 분명하다. 여야 공히 기회 있을 때마다 ‘계파 공천’, ‘돈 공천’ 등 각종 폐해를 거론하며 국민공천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해 왔지 않나. 물론 정치결사체인 정당 내에서 계파의 존재는 의견의 다양성 차원에서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계파 패권주의’다. 다시 말해 국민보다는 공천권을 틀어쥔 계파 보스의 눈치를 보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이로 인해 국회의원들이 정파 싸움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게 한국 정치의 후진적 현주소라면 완전국민경선제를 시도해 볼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다만 단점이 전혀 없는 진선진미한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내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의 전제조건들은 일리가 있다. 즉,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금지규정 폐지, 정당 노선·정책 실종 방지 제도적 장치 마련, 사회적 약자 우선 배려 등은 여야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할 조건이란 뜻이다. 국민공천제가 성공하려면 상대 당 지지자들이 특정 당 유력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본선 경쟁력이 없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역선택’ 방지가 급선무다. 이를 위해 각 당 후보를 뽑기 위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비선거인 오픈프라이머리를 여야가 같은 날 치러야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부작용만 우려해 제도 개혁을 망설인다면 정치 발전은 요원하다. 야당이 전제조건을 내세워 국민경선제 협상에서 발을 빼지 말기를 당부한다. 우리는 국민공천제 공론화 과정 자체가 정당정치의 민주화나 국민의 정치참여 확대 등 한국정치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 [사설] 종식 선언 앞둔 메르스 사태, 교훈은 잊지 말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신규 환자가 어제 날짜로 21일째 발생하지 않았다. 추가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메르스로 자가 격리됐던 사람들 가운데 마지막 1명이 오늘 0시를 기해 격리에서 풀려났다. 누계 환자 수 186명, 총사망자 수 36명도 변동이 없다. 이로써 지난 5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두 달여 만에 메르스는 통계 수치로 보면 거의 종식됐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달 초 메르스 사태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만큼 메르스 환자가 ‘0’이 될 때까지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최종 환자가 완쾌된 시점에서 28일이 지난 후 메르스 종식을 선언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공식적인 메르스 종식은 다음달 중하순쯤에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가 달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으로 사실상 메르스 종식 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메르스발(發) 불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는 정부와 방역 당국의 무능, 병원의 허술한 환자 관리 등 우리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냈다. 종식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무엇보다 메르스 대응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는지 등을 찬찬히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후진국 수준이던 정부와 방역 당국의 위기관리 역량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메르스 확산은 메르스의 감염력을 낮게 보고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성모병원에서 격리 범위를 좁게 잡는 등의 오판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에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공개를 지연시켜 병원 내 감염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도록 방치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의 책임이 무겁다. 대형 병원들의 오만과 허술한 환자 관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서울병원은 결과적으로 80여명에게 메르스를 전파시킨 슈퍼전파자인 14번째 환자가 응급실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사흘 내내 병원 곳곳을 누비게 했다. 메르스 초기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이 이 병원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갖가지 의혹이 나도는 것은 결국 병원의 책임이다. 메르스 환자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에 감염될 정도로 우리의 응급실은 각종 전염병의 온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응급실 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감염 가능성을 알고도 목욕탕에 가고 여행을 한 ‘민폐 환자’들의 실종된 시민 의식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마저 인정한 정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지금 관련 조직 확대나 수장의 승격이 거론되고 있다.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오히려 상 주자는 격이니 공무원들은 뒤에서 대형사고만 터지길 기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정부는 ‘조직 타령’ ‘전문가 타령’만 하며 엉뚱한 일을 벌이지 말고 ‘메르스 실패 백서’나 만들라. 실패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면 ‘제2의 메르스’가 닥칠 때 또다시 우왕좌왕할 것이다.
  • 아이 잃어버린 곳 주변 페북에 자동 실종정보 뜬다

    아이 잃어버린 곳 주변 페북에 자동 실종정보 뜬다

    앞으로 아동 실종이 발생한 곳 인근에 위치한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뉴스피드(실시간 업데이트 콘텐츠)에는 실종 아동에 대한 정보가 자동으로 뜨게 된다. 경찰청은 22일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과 ‘아동실종 경보 협약’을 맺었다.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페이스북 실시간 아동 실종 경보를 시행하는 나라가 됐다. 페이스북 실종 경보는 보호자가 실종자의 신상 공개에 동의하면 즉시 발령된다. 위치 기반 정보를 활용, 실종 장소 인근에 있는 모든 사용자의 타임라인에 실종자의 사진과 이름, 나이, 체격, 몸무게, 특징 등 개인 정보와 실종 일시 및 장소가 노출된다. 2011년 이후 국내 18세 미만 아동의 실종 신고는 연평균 2만 5011건에 이른다. 실종 아동 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실종 신고 접수 후 첫 12시간이 지나면 찾지 못할 확률이 58%에 이른다. 실종 초기 12시간을 ‘골든타임’으로 부르는 이유다. 경찰은 국내 페이스북 사용자가 1400만명에 이르는 데다 페이스북 친구 간 정보 전파력이 크다는 점에서 실종 경보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최숙희 경찰청 아동계장은 “실종 사건은 발생 초기 시민 제보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면서 “페이스북 실종 경보는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제보를 받는 일종의 공개 수사”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부터 페이스북 실종 경보를 시행한 미국에서는 시행 석 달 만인 지난 4월 이를 통해 11세 여자 어린이를 발견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언론사와 은행 등 기관을 통해 실종 정보를 전파하는 경보 제도를 운용했고, 지난해 7월부터는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미아 발생 시 신속히 아동을 수색하는 ‘코드 아담’(실종예방지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실종 아동 신고는 112와 함께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 번호인 182로도 할 수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ICT] 더 오래 더 다양하게… 4배 더 빵빵해진 손 안의 충전지

    [ICT] 더 오래 더 다양하게… 4배 더 빵빵해진 손 안의 충전지

    8282, 1004…. 공중전화부스 앞에 긴 줄이 늘어서고 전 국민이 네 자리 숫자로 통하던 그때. 그 누구도 무선호출기 이른바 ‘삐삐’의 몰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하기 시작한 휴대전화는 빠르게 삐삐를 몰아냈다. 모두가 휴대전화를 삐삐 실종의 주범으로 여겨온 가운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범이 있었으니 바로 리튬이온 2차전지(리튬이온 배터리)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열리면서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22일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올해 모바일·정보기술(IT) 기기용 리튬이온 배터리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9%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스마트폰의 등장에 힘입어 2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던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2012년 2% 성장에 그치는 등 내림세를 기록했지만 2013년 4%, 2014년 7%에 이어 올해 다시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률을 회복할 기세다. 1991년 일본 소니가 처음으로 선보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를 성냥갑만 한 크기의 알루미늄 캔에 담아 충전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기존의 2차전지보다 가벼우면서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전압과 출력도 높아 자동차나 전동공구에도 쓰일 수 있고 카드뮴, 납 등 유해 물질도 전혀 없어 친환경적이다. 앞서 등장한 니켈-카드뮴 배터리(1960년대), 니켈-망간 배터리(1980년대)는 에너지 용량과 사용시간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충전을 하면 할수록 용량이 줄어든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휴대전화, PC 등 모바일·IT 기기의 극적인 발전과 보급을 불러왔다. 집이나 사무실 한쪽에 매여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는 원통형 리튬 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노트북의 탄생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휴대전화는 사용 시간이 길어지자 점점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만능 제품으로 거듭났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디지털 모바일 시대를 여는 신호탄을 쏜 셈이다. 특히 2010년 스마트폰의 등장은 휴대전화 업계에 ‘배터리 용량’ 경쟁을 불러왔다.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본 통화 기능 외에도 인터넷, 동영상, 음악, 영상촬영 등 휴대전화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됐고, 에너지 용량이 주요한 경쟁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삼성, LG 등 우리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배터리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에 가세했다. 실제 휴대전화 초창기 배터리 용량은 큰 이슈가 아니었다. 당시 제품 스펙 설명서를 보면 배터리 용량보다는 배터리 사이즈가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1998년 10월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던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스타택’의 배터리 용량은 기본형이 400밀리암페어아워(mAh)에 불과했다. mAh는 배터리 용량을 표시하는 단위로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전류량을 말한다. 10mAh라면 완전 충전 시 시간당 10mA의 전류를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2년 국내에 출시돼 삼성전자 사상 처음으로 1000만대 판매 돌파 기록을 세운 일명 ‘이건희폰(SCH-X430)’과 2006년 출시 14개월 만에 1000만대 판매 기록을 남기며 인기를 끌었던 삼성전자의 ‘벤츠폰(SPH-E3200)’의 배터리 용량은 700mAh 에 불과했다. 2010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첫 스마트폰 갤럭시S가 1500mAh의 배터리를 기본 장착한 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숫자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 이후 매해 15%씩 배터리 용량을 높여왔다. 갤럭시 S2는 1650, S3는 2100, S4는 2600, S5는 2800mAh 배터리를 장착했다. 배터리 업체들의 고민은 이제 양에서 질로 옮겨 왔다. 2002년에 비해 배터리 용량은 4배 이상 늘었지만 스마트폰의 기능 역시 더욱 다양해지면서 체감 사용시간은 4배 이상 길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스마트폰 디자인 트렌드도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데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손에 두르고 목에 거는 등 속속 등장하고 있는 입는 기기에 적합한 배터리 개발도 요구된다. 업계 관계자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스마트폰을 넘어서 IoT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한번 충전해 오래 쓸 수 있도록 용량을 키우는 것은 물론, 안전하고 어떤 형태의 기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자유성을 가진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리튬 배터리 시장은 삼성SDI(26.46 %)와 LG화학(20.23%) 등 국내 업체가 46.69%의 점유율로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파나소닉과 소니, 히타치맥셀 등 일본 업체는 전체 28.30%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2013년까지 출하량이 계속 줄었지만 엔저 영향으로 지난해 소폭 성장을 이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시리아서 실종, 미국기자 참수 ‘스페인 기자 실종..충격’

    시리아서 실종, 미국기자 참수 ‘스페인 기자 실종..충격’

    ‘시리아서 실종’ 이라크의 수니파 무장반군 이슬람국가(IS)가 19일 미국 기자 참수 영상을 공개했다. 희생된 기자는 2년 전 시리아에서 실종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이라크 반군 IS는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4분짜리 영상을 통해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를 참수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1분이 조금 넘는 연설을 끝낸 그는 흉기를 들어 폴리를 참수한다. 시리아에서 5년 가량 활동하며 미국 글로벌포스트 등에 시리아 상황을 전해오던 폴리는 2년 전 시리아에서 실종됐다. 한편 오는 21일(현지시간) 스페인 언론협회는 시리아서 활동하던 스페인 프리랜서 기자 3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시리아서 실종, 이라크 반군 IS..미국기자 참수 ‘스페인 기자 실종..충격?’

    시리아서 실종, 이라크 반군 IS..미국기자 참수 ‘스페인 기자 실종..충격?’

    ‘시리아서 실종’ 이라크의 수니파 무장반군 이슬람국가(IS)가 19일 미국 기자 참수 영상을 공개했다. 희생된 기자는 2년 전 시리아에서 실종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날 이라크 반군 IS는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4분짜리 영상을 통해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라이트 폴리를 참수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습을 승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해당 영상에는 검은 복면과 검은 옷을 착용한 이라크 반군 IS 대원 한 명과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미국 기자 폴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IS 대원은 미군의 이라크 공습에 대해 “이슬람교도들의 일상을 앗아갔다”고 비판한 뒤,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 지도자 아래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그 결과로 당신 국민이 피흘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1분이 조금 넘는 연설을 끝낸 그는 흉기를 들어 폴리를 참수한다. 시리아에서 5년 가량 활동하며 미국 글로벌포스트 등에 시리아 상황을 전해오던 폴리는 2년 전 시리아에서 실종됐다. 한편 오는 21일(현지시간) 스페인 언론협회는 시리아서 활동하던 스페인 프리랜서 기자 3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스페인 언론협회 엘사 곤살레스 회장은 “스페인 기자 3명이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활동하다 사라졌다”며 “적어도 지난 7일간 행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사진 = 서울신문DB (시리아서 실종)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시리아서 실종, 스페인 기자 3명 연락두절’..IS 납치 가능성은? ‘경악’

    시리아서 실종, 스페인 기자 3명 연락두절’..IS 납치 가능성은? ‘경악’

    ‘시리아서 실종’ 오는 21일(현지시간) 스페인 언론협회는 시리아서 활동하던 스페인 프리랜서 기자 3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스페인 언론협회 엘사 곤살레스 회장은 “스페인 기자 3명이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활동하다 사라졌다”며 “적어도 지난 7일간 행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종된 언론인은 안토니오 팜플리에가, 호세 마구엘 로페즈, 알렌 사스트레로 알려졌으며 외무부는 실종된 기자 수색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시리아서 실종 사진 = 서울신문DB (시리아서 실종)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시리아서 실종, 스페인 기자 3명 어디로?

    시리아서 실종, 스페인 기자 3명 어디로?

    ‘시리아서 실종’ 오는 21일(현지시간) 스페인 언론협회는 시리아서 활동하던 스페인 프리랜서 기자 3명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스페인 언론협회 엘사 곤살레스 회장은 “스페인 기자 3명이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활동하다 사라졌다”며 “적어도 지난 7일간 행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리얼스토리 눈 ‘수원 여대생’ 사건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눈물

    리얼스토리 눈 ‘수원 여대생’ 사건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눈물

    수원 여대생, 리얼스토리 눈 리얼스토리 눈 ‘수원 여대생’ 사건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눈물 MBC ‘리얼스토리 눈’이 20일 수원 여대생 실종사건을 다뤄 화제다. 지난 13일 소진(가명)씨는 수원역 번화가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한 친구는 “언니가 일본에 다녀온 뒤 반가움에 그날 술을 좀 많이 마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소진씨의 남자친구 박진호(가명)씨는 “한 병을 마신 뒤부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술을 깨기 위해 한 가게 앞 노상에 앉은 두 사람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 중년 남성이 그들에게 접근해 “여자친구가 토했다. 닦아줘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이에 남자친구는 술집에 두고 온 지갑을 찾으로 나섰고 10분 사이 여자친구는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남자친구 박씨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면서 “나만 아니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어머니는 딸을 회상하며 “우리 딸 정말 예쁘지 않냐. 이렇게 밝고 예쁜 아이인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딸이 돌아오면 먹이려던 삼계탕을 버리지 못하는 심정을 밝혀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수원 여대생 남자친구 “나만 아니었으면 실종되지 않았을 텐데”

    수원 여대생 남자친구 “나만 아니었으면 실종되지 않았을 텐데”

    경기도 수원에서 납치돼 살해당한 여대생의 남자친구가 심경을 고백했다. 20일 방송된 MBC ‘리얼스토리 눈’에 출연한 남자친구 A(23)씨는 “여자친구에게도 미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나만 아니었으면 실종되지 않았을 건데,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는데…”라며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13일 오후 A씨와 여자친구를 포함한 일행이 4시간 동안 마실 술은 소주 9병이었다. 여자친구의 지인은 “언니가 일본에 다녀온 뒤 반가움에 그날 술을 좀 많이 마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둘 다 주량이 한 병 정도 될 것”이라며 “한 병씩 먹은 뒤로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계속 먹었는지…”라고 말했다. A씨는 여자친구와 술을 깨기 위해 한 가게 앞에 앉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A씨는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학생 일어나 봐, 여자친구가 토했잖아. 닦아줘야지’라고. 그래서 봤더니 왼쪽 머리에 토사물이 묻어 있더라”고 밝혔다. 그는 “물티슈를 사려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지갑이 없었다. 그래서 술 마셨던 가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CCTV를 보니까(내가 그랬더라)”고 설명했다. A씨는 “차라리 (가족들이) 욕을 하거나 그냥 뭐라고 하면 좋은데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라며 슬퍼했다. 실종된 여대생은 결국 지난 15일 평택의 한 배수지에서 실종 33시간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여대생을 납치했던 피의자는 14일 강원도 한 저수지 부근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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