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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실종 109명/대부분 지리산 계곡서 희생/남부 폭우

    ◎8,000명 동원 수색… 흙탕물에 유속 빨라 어려움 지난달 31일부터 지리산 일대를 포함한 영·호남 지역에 시간당 150㎜가 넘는 기습폭우가 쏟아져 2일 현재 46명이 숨지고 63명이 실종되는 등 모두 10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이는 본사가 취재망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지역별로는 ▲경남 79명(사망 37,실종 42) ▲전남 18명(사망 5,실종 13) ▲전북 7명(사망 1,실종 6) ▲대구·경북 4명(사망 2,실종 2) ▲울산 사망 1명 등이다.인명피해는 실종자 신고가 이어지고 사체 수색작업 또한 계속돼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날 현재 사망 33명,실종 62명 등 9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잠정 집계했다.또 경남·전남 지역에서 주택 100여채가 붕괴되고 농경지 4,443㏊가 물에 잠겼으며 곳곳에서 도로와 교량,철도,하천이 유실되는 등 594억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재해대책본부는 덧붙였다. 피해 지역에는 해당 지역 119구조대와 공무원,경찰,군인,주민 등 1,500여명이 나서 실종자에 대한 밤샘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흙탕물과 빠른유속 때문에 큰 애를 먹었다. ▷사망·실종◁ 지리산 일대의 대원사 계곡,피아골,뱀사골에서만 15명이 죽고 28명이 실종되는 등 4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 계곡에서는 1일 상오 6시쯤 金종국씨(42·거제시 옥포2동 혜성아파트)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지는 등 9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다. 이날 상오 0시30분쯤에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연곡사 피아골 계곡에서 야영을 하던 洪원석씨(31·전북 고창군 해리면)등 5명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지고 洪씨 부인 金정미씨(27) 등 11명이 실종됐다. 1일 상오 4시쯤에는 경남 합천군 삼가면 덕진리에서 산사태가 발생,姜병호씨(38·합천군 삼가면 덕진리 726)의 집을 덮쳐 姜씨와 아들 이훈군(12),어머니 洪복달씨(73),아내 유위숙씨(32)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수색 및 구조작업◁ 2일 하루동안 긴급 지원된 행정자치부 소속 119중앙구조대원 30여명을 비롯,지역 119구조대 및 군·경 등 1,500여명이 동원돼 계곡 하류를 중심으로 고무보트와 잠수기구 등을 이용,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이날 100∼200㎜의 많은 비가 내려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섬진강의 유속이 7∼8노트나 돼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흙탕물 때문에 시계마저 제한돼 잠수 수색작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 경남 진주소방서 119구조대와 진주경찰서는 진주시 수곡면 원외리 덕천강 덕천교 밑에서 남자 어린이 1명과 어른 남자 2명,여자 2명 등 5명의 시신을 인양했다. 11명이 실종됐던 덕천강의 경우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창촌다리에서 북방리에 이르는 4㎞에 걸쳐 소방대원과 공무원 등 100여명이 정밀 수색작업을 벌였다. 한편 지난 1일 하오 6시30분쯤 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덕천강변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던 사천소방서 소속 李정근 구조반장(46·지방소방장)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李내원 구조구급대장(35·지방소방위)은 중상을 입었다. □특별취재반 ▲사회팀 金煥龍 朴峻奭 기자 ▲전국팀 李正珪(부장급) 林松鶴(차장급) 姜元植 崔治峰 金守煥 南基昌 기자
  • “사선 넘은 전우 명예 찾아주오”

    ◎6·25때 민간인 유격대 ‘백골병단’ 용사들/647명 적후방 침투 3개월 활동 “전과 혁혁”/360여명 전사… “종전후 돌아온건 무관심뿐” “물질적인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조국을 지키려고 사선을 넘나들었던 우리가 그에 걸맞는 명예를 찾자는 것뿐입니다” 지난 51년 북한군 점령지역에 침투돼 수백명의 전사자와 실종자를 낳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유격대 ‘백골병단’ 용사들.이들은 지금도 이름없이 산화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처절한 가슴을 달랠 길 없다. 백골병단은 1·4후퇴를 즈음해 적 후방교란을 위해 급조한 유격대였다. 육군본부는 민간인 647명을 차출,대구 육군보충대에서 불과 3주간의 특수훈련만 시키고 51년 2월 강원도 북한군 점령지역으로 인민군 복장을 시켜 투입했다. 비록 3개월 동안의 유격활동이었지만 혁혁한 전과를 올혔다. 양양군 인구리에 주둔했던 인민군 69여단의 궤멸은 이들의 공이었다.백골병단 대원들은 69여단의 작전계획,병력 등이 기록된 전투상보를 갖고 상급부대로 가던 인민군 장교 4명을 생포,전투상보를국군 수도사단에 전달해 대승을 거둘 수 있게 했다. 대남 빨치산 사령관 임무를 띠고 남한으로 내려오던 인민군 중장 길원팔(吉元八)을 인제군 가리산리 필례마을에서 생포한 것도 이들이었다.그러나 길원팔과 함께 붙잡힌 인민군 여장교가 탈출,이 때부터 인민군 부대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시작됐다. 인제군 용대리에서 1만여명 규모의 인민군 부대에 맞서 싸우다 60명이 목숨을 읽었다. 단목령은 이들에게 비극의 자리였다.일주일 동안 굶은 채 격전을 치른 대원들은 이곳에서 120여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죽었다.끝내 살아남은 사람은 647명중 283명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정부의 무관심.생존자들중 일부는 대한유격참전동지회를 만들어 국방부에 여러차례 훈장도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훈장수여는 전쟁직후 이미 끝났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동지회 全仁植 회장(69·당시 작전참모·대위)은 “우리가 훈장을 받겠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흐려져가는 호국정신을 다시 살리자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국군포로 송환(정직한 역사 되찾기)

    ◎‘실종 45년’ 2,000명 생존 추정 올해는 6·25전쟁 발발 48주년,종전 45주년이다.반세기 동안 죽은줄로만 알고 있던 국군포로들이 버젓이 살아서 돌아오는 현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이는 그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해온 우리의 국군포로 송환 문제 인식에 일대 각성의 전기를 가져왔다.18일은 이승만 정부의 반공포로 석방 45주년이기도 하다 최근 梁珣容 일병의 귀환은 94년 趙昌浩 소위의 귀환과 함께 생존 국군포로의 존재를 명확히 했다.100여명의 생존자 명단까지 확인되고 있다.북한에 억류돼 강제노역 등 어려운 삶을 연명해온 이들은 대부분 70세 전후.더이상 기다릴 여유도 없다.이들의 송환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야말로 민족상흔 치유의 첫걸음이 된다.그 현실과 대책을 살펴본다. ◎정부의 해결방안/송환문제는 남북관계 진전 봐가며 추진/정착돕게 연금지급 근거법 등 제도 정비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문제와 관련,정부는 두갈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1차적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다.북한은 6·25전쟁 포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때문에 전쟁포로의 존재 유무를 놓고 소모적 공방을 벌이기 보다는 우선 생사확인부터 해보자는 취지다.송환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보아가면서 추진키로 했다. 또 지난해 탈북자보호법을 만든데 이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귀환자지원법’을 제정키로 했다.국군포로나 강제납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북한 주민의 귀순과 다르다. 지원내용도 달라야한다.정부는 지난해말 귀환한 梁珣容씨 같은 국군포로에게 정당한 수준의 연금을 지급할 근거규정도 마련키로 했다. 인도적 차원에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송환 추진이 당연하다.제네바 포로협약을 근거로한 송환 공식요구,유엔 총회 및 안보리에서 문제제기 등을 생각할 수 있다.남북경협과 포로송환을 연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를 쟁점화함으로써 지금도 어려운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가능성을 정부는 염려한다. 曺龍男 통일원 인도지원1과장은 “북한은 현재 국군포로가 없으며 강제납치한 경우도 없다고주장하고 있다”면서 “남북관계의 확실한 진전 없이는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밝혔다.유가족들이 여러 국제기구를 통해 개인 차원에서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방법도 있으나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국군포로 및 강제납북자 유가족과 민간단체들은 정부의 태도가 불만이다.李哲承 건국50주년기념사업준비위 회장은 “국군포로와 함께 6·25 당시,그리고 그 이후 강제납북된 민간인들을 송환하기 위해 유엔과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기념사업준비위는 국군포로 송환 촉구 100만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2만2,562명 전사/6·25 희생국군 분류/1만7,020명 실종처리/민간 7,000여명 남북 국방부는 6·25전쟁에서 실종된 국군숫자가 4만1,95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중 2만2,562명이 추후에 전사처리 되었다. 나머지 1만7,020명을 실종으로 처리했고 2,372명을 미확인으로 분류했다. 국방부의 실종자 분류는 정확한게 아니다.주로 유가족 증언을 토대로 한탓이다.유가족이 신고해오면 전사로 처리하고 제보가 없는 경우 실종으로 분류했다. 현재 생존 국군포로는 2,000명 안팎일 것으로 관계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6·25전쟁 기간동안 납북된 민간인을 뜻하는 실향사민(私民)은 7,000여명이다.동진호 선원 등 전쟁후 납북억류자는 450명이다. ◎기고/지만원 군사평론가/‘戰士일생 관리’시스템 갖춰라 ○희생자 보상 형편없어 군이 무기를 구매할 때는 무기의 일생을 관리하기 위한 ‘종합군수지원’(ILS;Integrated Logistic Support)시스템을 운영한다.그러나 정작 전사(戰士)들의 일생을 관리하는 ILS시스템은 만들어져 있지 않다.군이 스스로의 일생을 관리하는데 게을리해온 것이다. 94년 10월 趙昌浩 소위가 64세의 나이로 귀환했다.그에게는 밀린 봉급,퇴직금,연금조로 1억6,000만원이 지급됐다.조국을 위해 아까운 일생을 송두리채 희생당하고 탈출해온 노전사에게 주어지는 돈 치고는 너무나 초라했다. 98년 4월 梁珣容씨가 72세의 나이로 귀환,기자회견을 가졌다.그에게는 45년간 밀린 사병봉급 200만원이지급됐지만 그는 이 돈을 군에 반납했다.그에 대한 국가의 대접이 겨우 이런 식이냐는데 대한 섭섭함과 항의의 뜻이었을 것이다.결국 그에게는 탈북자지원법에 따라 6,400만원 지급이 결정되긴 했지만,이 또한 국가의 도리가 아니었다. ○희생의 대가 충분히 정부는 ‘국군포로(귀환자)특별법’을 연내로 제정하고 적십자 기구나 유엔 등의 협력을 얻어 북한에 남아 있을 포로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주관 주체도 아직은 만들지 않고있는 듯하다.전사들의 일생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이 준비돼 있지 않은 것은 바로 군 자신들의 수치요,직무유기다.그러나 더 부끄러운 것은 전우애의 실종이다. 200만원을 돈이라고 지급하는 군수뇌의 식견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군전체가 72세의 나이로 적진을 탈출해온 기막힌 영웅들을 열열이 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현역 장병들과 향우회에서는 실직자들에게는 봉급의 10%를 떼어주면서도 그 기막힌 고통을 치르고 돌아온 전우를 위해 단 한푼의 성금도 갹출하지않았다.눈만 뜨면 외치는 전우애는 과연 무엇이며 이들이 목숨바쳐 따랐던 상관이란 과연 무슨 존재들이란 말인가. 전쟁이 나면 70만 현역은 누구나 다 포로가 될 수 있다.그들도 포로가 되면 두사람의 노병들처럼 북에서는 아오지탄광에서 혹사 당하고,남에서는 불청객에 가까운 대우를 받게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희생당하는 자만 억울하다.그러면 다음 전쟁에는 누가 나가 싸우려 할 것인가.국가는 위기에 처했을때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달라고 당당히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지금의 우리 국가는 그런 입장에 서있지 못하다. ○보병전 개념 수정해야 이번 기회를 통해 군은 두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하나는 전사의 일생관리를 책임지는 곳은 군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집행은 다른 행정부처에서 하더라도 마스터플랜과 시스템은 군이 만들어야 한다.아울러 월남전에 참가했던 병사가 고엽제 질환과 유사한 질환을 앓으면 무조건 보상해주어야 한다. 또다른 하나는 실속없이 사상자와 포로를 대량으로 양산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보병전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지금의 전쟁은 전자전과 화력전이다.군은 이에 대한 충분한 장비를 구비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은 현대적 장비를 가지고도 19세기식 보병전에 집착하고 있다.세상이 모두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군만 변화의 사각지대가 아닌지 생각해주기 바란다. ◎작년 탈북 국군포로 梁珣容씨 인터뷰/“편지왕래 물꼬라도 텄으면”/북에 남겨진 전우 생각하면 가슴 찢어져/정확한 숫자 조사·국제여론 유도 아쉬워 지난해말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梁珣容씨(72)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고향집에서 살고 있다. 실명한 왼쪽 눈,몇 개만 남은치아,절룩이는 다리….45년간 긴긴 억류의 흔적은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북녘에 남겨진 동료들을 생각하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귀환후 첫 6·25를 맞는 느낌은. ▲지금도 미귀환 포로로 북한 공산체제 아래서 온갖 고난을 당하고 있을 동료들이 생각납니다.제네바협정을 지키지 않는 북한당국에 대해 우리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정부에 바라는 사항은. ▲미국은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골까지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는데 우리는 포로는 물론 전사자 조사 조차 제대로 안돼 있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백발노인이 자식의 생사를 알기 위해 찾아와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봤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북한을 상대하려면 처음부터 너무 크게 시작하면 안됩니다.우선 편지왕래라도 하여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도 국력이 신장됐으니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북한이 전쟁포로들의 생사여부라도 확인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지원금 수령을 계속 거부할 것인지요. ▲지난 4월 귀환 기자회견을 마치고 동생(병용·64)이 연금수령을 거절하며 국방부관계자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여기가 조국이구나’하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지요.북한에 억류됐던 세월동안 조국이 그리웠고,나이가 들면서 고향 선산에 묻히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습니다.돈이 탐나서 돌아온게 아닙니다.하지만 46년전에 일등병이었는데 지금도 일등병 연금을 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정부가 관련법을 고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바뀐 법에 의해 책정된 연금은 받아야지요.
  • 상훈치탈 ‘제자리 걸음’

    ◎79명중 충청작전관련 鄭鎬溶·崔世昌씨만 박탈/全·盧 前 대통령 등 14명 대상 제외… 憲訴제기 상태 5·18은 193명의 사망자와 47명의 실종자(95년 검찰발표 기준)를 낳았다.그리고 광주시민 모두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그러나 그 희생을 있게한 ‘공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은 훈장을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이른바 충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훈장을 받은 사람은 당시 특전사령관 鄭鎬溶씨와 제3특전여단장 崔世昌씨 등 79명(2개단체 포함).이들중 鄭씨와 崔씨만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공로로 받은 상훈을 취소토록 규정하고 있는 5·18특별법 제7조에 의거 지난해 훈장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5·18특별법에 따라 법원에서 최종 유죄판결을 받은 16명중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충정작전이 아니라 ‘국가안보 공헌’명목으로 훈장을 받았다는 이유와 ‘상명하복 관계에 있던 영관급 이하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국방부측 논리로 치탈대상에서 제외됐다.全 전대통령은 전쟁영웅에게나 수여되는 최고훈격의 태극무공훈장을,盧 전대통령은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국방부는 ‘3년이상 형을 받은 자에대해 서훈을 취소한다’는 상훈법 8조 적용도 검토했으나 지난 63년 제정된이후 적용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이 또한 무산됐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상자를 축소하기 위해 5·18특별법과 상훈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특히 ‘유죄가 확정된 全·盧 전 대통령 등 14명에 대해 훈장을 박탈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출돼 있는 상태다. 헌법소원을 제출했던 卞禎洙 변호사(68·정일종합법률법인)는 “일단 헌법소원이 심판에 회부되면 180일 이내에 위헌여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면서 “이는 헌법재판소의 명백한 직무태만”이라고 비난했다.그는 새 정권에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6·25 실종자 이번주부터 신고접수

    국방부는 이번 주부터 1만9천여명에 이르는 6·25 실종자에 대한 확인 및 신고 절차를 거쳐 보훈 혜택을 주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유가족들은 전국 주요 향토사단 내 ‘실종자 신고 센터’에 비치된 참전실종자 1만9천409명의 명단을 확인한 뒤 실종자와 신고자의 관계를 확인할수 있는 호적등본 2통과 6·25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 2명의 인우(隣友)보증서 각 2통을 제출하면 된다. 실종자 명단 확인 및 신고장소는 다음과 같다. △서울·경기=국방부 민원실(02)748­5018 △강원=36사단(0371)741­6697,68사단(0397)73­4115△충청=계룡대(042)550­0404 △영남=50사단(053)320­6681,53사단(051)741­4245 △호남=35사단(0652)259­6683,31사단(062)260­6672 △제주=제주방어사령부(064)40­4009
  • 국군포로 80명 北 생존 확인/국방부

    ◎명단공개후 송환요구 적극 검토 정부가 신원을 파악한 북한 생존 국군포로는 80여명으로,정부는 이들의 생존확인과 송환을 북한에 적극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국군포로로 94년 귀환한 趙昌浩씨와 이번에 귀환한 梁珣容씨 등의 진술을 토대로 정리된 북한 생존 국군포로는 8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趙·梁씨 등의 진술을 육군 병적 원본 등과 비교·검토해 봐야 최종적인 숫자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동안 북한에 억류돼 있는 생존 포로의 안전을 위해 생존 가능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하지만 정전협정의 틀이 아닌 남북화해교류 및 불가침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들의 명단을 공개해 이들의 생존여부 확인과 송환을 북한에 요구하는 문제를 검토키로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오는 30일 열리는 국가안보회의(NSC)의 실무조정회의와 상임위등을 거쳐 국군포로의 명단공개여부가 최종 결정되면 국내 가족들과 접촉하거나유엔 등 국제기구와 제3국 등의 협조를 얻어 생존 여부를 확인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국방부는 6·25참전 실종자 4만1천971명 가운데 전사처리된 사람은 2만2천562명이고 여전히 실종자로 분류된 사람은 1만9천409명이라고 밝혔다.
  • 국군포로 빨리 送還돼야(社說)

    정부가 북한에 억류중인 국군포로 송환(送還)문제를 향후 남북대화에서 최우선적으로 제기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송환노력도 적극적으로 기울여 나가기로 한 조치는 바람직하다.이 문제는 金大中 대통령의 대선(大選)공약이기도 해 국방부와 통일원 등 관계부처는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뤄 생존(生存) 국군포로 전원이 하루빨리 송환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북한 또한 인도적(人道的) 차원에서 생존 국군포로에 대해 확인조차 해주지 않는 태도에서 벗어나 6·25전쟁 당시 붙잡아 간 국군포로는 몇명이나 되는지 밝히고 현재까지 억류하고 있는 포로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돌려보내주기 바란다. 6·25때 포로가 됐다가 지난 해 12월 45년만에 북한을 탈출해 귀환한 梁珣容씨가 24일 육군회관에서 면역(免役)신고식에 이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 현재 50∼60명의 국군포로가 살고 있다고 증언했다.백발(白髮)이 성성한 노병(老兵)의 때늦은 전역신고를 통해 우리는 아직도 민족상잔(相殘)의 비극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있었다.사실 실명(失明) 상태의 한쪽 눈을 하고 한쪽 다리마저 불구가 된 그의 신고식에 참석한 남한의 전처와 북한에서 다시 결혼해 얻은 두딸을 보는 그 자체가 참담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梁씨는 휴전 직전인 53년 7월 금성전투에서 중공군(中共軍)에게 붙잡힌 뒤 처음에는 포로교환에 기대했고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통일될 날만을 기다렸다고 한다.정부를 원망하며 기다리기 40여년,최근에는 아오지탄광 귀신이 다 됐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는 것이다.지난 56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공민증을 받았으나 외출조차 하지 못하는 탄광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지난 94년 처음으로 趙昌浩 소위가 북한에 생존 국군포로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국군포로실종자대책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해 왔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이번 梁씨의 증언내용은 함께 탄광생활을 했다고 이름까지 밝힌 국군포로 7명에 대해 국방부가 확인함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지금까지 억류하고 있는 국군포로는 한명도 없다는 북한측의 발표는 이번 梁씨의 증언을 통해 또 한번 사실 아닌 억지임이 드러났다.앞으로의 남북대화에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최우선과제로 삼겠다는 정부의 노력에 기대하면서 북한측도 성실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기를 촉구한다.
  • ‘45년만에 免役 신고’ 탈북 국군포로 梁珣容씨 증언

    ◎“국군포로 50∼60명 北 생존”/7명 이름 공개… 5명 실종자 명단서 확인/대부분 탄광 배치… 자녀들도 막장 생활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붙잡힌 국군 포로의 대부분이 노령으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고 현재 50∼60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귀환 국군포로 梁珣容씨(72)가 24일 밝혔다. 45년만에 북한을 탈출,지난해 말 귀환한 梁씨는 이 날 육군회관에서 면역(免役)신고를 한 뒤 이같이 말했다. 국방부는 특히 梁씨가 이름을 밝힌 생존 국군포로 7명 가운데 5명이 6·25전쟁 실종자 1만9천여명의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김수동 이차식 임점용 양재구 강성용씨는 실종자 명단에 들어 있어 실제로 생존 국군포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용환기 이영찬씨는 전사자 명단에 올라 있다. 梁씨는 “국군포로들은 56년 6월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면서 대부분 탄광에 배치되고 극소수만 협동농장 등으로 옮겨졌다”며 “당시 아오지 탄광에만 국군포로 5백여명이 있었으며 미군 포로 3명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들은 대부분 탄광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결혼했고 자녀들도 대를 이어 채탄작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梁씨는 “지난 해 9월 국제적십자사 식량 조사단이 함북지역을 방문했을때 노숙자와 부랑아 등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실시됐고 일부 주민들은 특정 지역에 격리되거나 외출하지 못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북한당국은 95년 8월 노동력 부족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결혼 최저연령을 남자는 25세에서 29세,여자는 23세에서 27세로 상향 조정했으나 먹고살기가 힘들어 주민들 사이에 결혼을 기피하고 이혼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梁씨는 북한을 탈출한 뒤인 지난해 10월 중국에서의 첫 상봉에 이어 이날 본처 朴옥임씨(72)와 재회했다. 朴씨는 일제말 결혼한 남편이 53년 입대해 행방불명된 뒤젖먹이였던 두 딸을 의지해 왔으나 이들마저 병으로 잃고 시동생 집에 얹혀살아왔다고 말했다.
  • 美 살인 회오리/남동부 44명 사망

    【버밍햄 AFP DPA 연합】 미국 남동부 일원에 8일 밤(현지시간)부터 9일 새벽 사이에 강력한 회오리 바람인 토네이도와 함께 벼락을 동반한 폭풍우가 일어 최소 44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가장 큰 피해를 낸 앨라배마주의 버밍햄 일대에서는 사상 최악의 토네이도로 적어도 32명이 사망하고 19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1백50여채의 가옥이 파괴됐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지역에서도 토네이도로 11명이 숨졌으며 미시시피주에서는 토네이도가 트레일러 주택 주차장을 강타하면서 1명이 사망했다. 재해대책 관계자들은 실종자들이 많은 점을 들어 파괴된 가옥의 잔해 속에서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 印尼 시위자 38명 실종/印尼紙 보도

    【자카르타 DPA 연합】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도시인 족자카르타에서 정치·경제적 개혁을 촉구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난 뒤 38명이 실종됐다고 이 지역 미디어 인도네시아지(紙)가 학생들과 법률단체 관계자들을 인용,6일 보도했다. 족자카르타의 이슬람대학 법률구조협회 관계자인 이완 사트리아완은 실종자로 분류된 사람들중에 한 호주인 기자와 아시아 프레스 저팬 소속의 한 일본인 기자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 千里行軍 참변(사설)

    천리행군(千里行軍)훈련을 하던 특전사 장병 7명이 어처구니 없게도 숨지거나 실종된 사고는 충격적이다.이 부대는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주어진 특수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이런 부대 특성상 평소에도 강도높은 훈련을 반복하며 상승(常勝)부대의 위용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이번 사고는 바로 강군(强軍)의 상징인 이 부대에서 일어났다는데 더욱 충격적이다.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한치 오차도 없는 준비가 선행돼야 마땅한데도 이번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비록 봄철이라 하더라도 갑작스런 기상악화에 대비해 방한복과 야영장비,침구 등을 철처히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막강(莫强)특전사 용사들이 이런 준비도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그 험난한 훈련에 나섰다는 사실이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다.실제 전시(戰時)상황이 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는지 전율할 대목이다.방심(放心)이 빚은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악천후를 만났다면 아무리 전진만 있는 특전사라 하더라도 물러나 안전지대로 대피했어야 했다.이런 판단은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의 몫이다.지휘관은 수하(手下)장병들을 잘 이끌어 싸움에 이겨야 하지만이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도 지닌다. 이번 사고는 이와 같은 책무를지닌 지휘관의 판단착오 때문에 빚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더구나 탈진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속출했고 사고직전에는 2명의 실종자들이 나오기도 했다니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군당국은 유족과 국민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하고 철저히 사고원인을 규명해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것이다.또 군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고발생시간을 실제와 다르게 발표했다는 유족들의 주장에 대한 해명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아울러 재발 방지 대책도 세우기 바란다.
  • 산악훈련 特戰司 6명 사망/대위 1명 하사 5명

    ◎행군중 악천후에 탈진… 1명 실종/영동 민주지산 기습폭설·추위에 부상자 속출 【영동=韓萬敎·朱炳喆 기자】 천리행군을 하던 특전사 군인 7명이 산속에서갑자기 몰아닥친 폭설과 추위로 탈진해 숨지거나 실종됐다. 육군은 2일 특전사 예하 흑룡부대(대대장 중령 李춘일) 소속 부대원들이 1일 하오 10시45분쯤 충북 영동군 용화면 민주지산(해발 1천249m)에서 훈련도중 폭설과 추위로 金光錫대위(28·충남대·학군 30기)등 6명이 탈진해 숨지고 1명은 실종됐다고 밝혔다.또 탈진증세를 보인 부상자 6명은 국군대전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들 부대원들은 지난 28일 충남 칠갑산을 시발점으로 천리행군에 들어가오는 6일까지 민주지산을 거쳐 속리산∼백운산∼월악산∼대마산을 종주하는대대 전술종합훈련을 벌이던 중이었다. 군당국에 따르면 사고당일인 1일 하오 1시쯤 이들은 10여명씩 조를 이뤄전북 무주군 하두면에서 민주지산으로 향했으며 출발한지 3시간여만인 하오 4시쯤 민주지산의 5부능선(해발 600∼700)를 지나는 순간 강추위와 눈보라를 만났다.당시 기온은 영하 6도(체감온도 영하10도),적설량은 30㎝ 가량이었다. 이들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강행했다.그러나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기상악화가 계속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하오 9시25분쯤 중간합류지인 민주지산의 아래쪽인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 도착한 선발대원들은 곧바로 관할부대에 상황을 보고하고 헬기지원을 요청했다.그러나 기상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하고 119구급조대가 급파돼 후송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한편 육군은 부대 관계자 등을 상대로 악천후에 대비한 안전준비와 훈련강행 여부 등 사고경위를 조사해 지휘관을 문책키로 했다. ◇사망자 ▲金대위(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하안아파트) ▲李秀峯 중사(24·인천시 남동구 구월1동) ▲李光岩 하사(23·경북 경주시 용감동 용감 주공아파트) ▲韓五煥 하사(22·경남 의령군 낙서면 경곡리) ▲全海境 하사(22·대구 수성구 범어3동) ▲吳洙南 하사(19·전남 해남군 송지면) ◇실종자 ▲정승구 하사(22) ◇부상자 ▲朴동원 중사(24) ▲文창옥 하사(21) ▲河재성 하사(23) ▲南상균 하사(24) ▲洪종익 일병(21) ▲양재근 이병(22) ◎金 대통령,산악훈련 사망장병에 弔意 【런던=粱承賢 특파원】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영국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은 2일 장병 6명이 훈련중 탈진,사망했다는 金重權 비서실장의 전화보고를 받고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표시하며 입원중인 군인들의 쾌유를 빈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또 金실장에게 사후처리에 만전을 기할 것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朴智元 대변인이 전했다.
  • 폭풍속 어선 침몰 7명 실종/어제 마라도 부근

    ◎선장 등 5명은 구조 24일 하오 4시 30분쯤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 남동쪽 58마일 해상에서 경남 마산선적 저인망어선 제 95행복호(134t·선장 황승철)가 항해중 높은 파도에 침몰했다. 사고로 선장 황씨 등 선원 5명은 부근에 있던 어선 제 92소양호(134t)에 의해 구조됐으나 나머지 선원 7명은 실종됐다. 제주해경은 사고 해역에 구난함2척을 파견,실종자 수색 작업중이나 폭풍주의보가 발효된 궂은 날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종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유재양(52·부산시 동래구 연산3동)△정낙현(35·경기도 동두천시 생년동 430)△최성만(38·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510의27)△정일준(25·광주시 북구 우산동 181)△이주락(28·울산시 중구 복삼2동)△안창만(42·부산시 서구서대신동 3가 703)△장재규(38·광주시 동구 금남로 4가 39).
  • 좌초 화물선 실종선원 3명 구조/울산 앞바다서 44시간만에

    15일 울산 서생 앞바다에서 좌초한 파나마선적 4천400t급 화물선 뉴바론호(선장 로메오 퀴톤 54) 실종선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경구조대는 16일 2명을 추가로 구조하고 3구의 시체를 인양했다. 이에 따라 이날 모두 3명의 선원이 구조됐다. 울산해경에 따르면 상오 7시30분쯤부터 구난함정 등 3척과 해경 헬기로 본격적인 실종자수색에 나서 사건발생 44시간 만인 이날 하오 11시 30분쯤 뉴바론호 선상에서 1등 기관사 델핀 나르트소(35)와 조타수 미구엘토 에트칸씨(27) 등 선원 2명을 구조,울산병원으로 옮겨 치료중이다.인양된 사망자의 신원은 기관장 자임 테오도로(55),3등 기관사 마셀로 파스트라나(41),실습기관사 나자레스 콘셉포톤씨(24)로 확인됐다. 해경은 앞서 진하리 대송마을 앞바다에서 표류하던 선원 1명도 구조했다. 해경은 아직 생존선원이 선상이나 선실 내에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색작업을 계속중이다. 이로써 뉴바론호 선원 20명 가운데 현재까지 3명이 구조되고 5명이 사망,12명이 실종됐다. 한편 사고해역 일대 해안가에는 사고선박에서 나온 기름이 파도에 밀려 계속 확산되고 있어 서생면 일대 2백90여㏊에 이르는 미역과 우렁쉥이 전복 양식장 등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
  • 6·25 실종국군 보훈혜택 추진/국방부

    ◎유가족 신고·심사거쳐 전사자 처리 6·25 전쟁 실종자 1만9천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전사자로 처리돼 유가족이 보훈혜택을 받게 된다. 국방부는 30일 전사자 처리기준 및 절차를 대폭 완화,6·25 실종자 명단에 대한 유가족의 확인 및 신고,심사 과정을 거쳐 실종자를 전사자로 처리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사자로 처리되면 보훈 혜택을 받게 돼 미망인 등 유가족에게 월 45만원의 연금이 지급되며 전사자의 위패를 국립묘지에 봉안할 수 있다. 실종자 명단 공개 및 신고기간은 오는 7일부터 12월말까지이며 구비서류는 실종자와 신고자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호적등본 2매와 6·25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 2명의 보증서 각 2매 등이다.보증이 어려우면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정황 자료를 제출해도 된다. 명단 확인 및 신고장소는 다음과 같다. ▲서울·경기=국방부 민원실 (02)748­5018 ▲강원=36사단 (0371)741­6697,68사단 (0397)73­4115 ▲충청=계룡대 (042)550­0404 ▲영남=50사단 (053)320­6681,53사단 (051)741­4245 ▲호남=35사단(0652)259­6683,31사단 (062)260­6672 ▲제주=제주방어사 (064)40­4009
  • 선박 충돌 4명 실종/제주근해서/대형 상선 어선 받고 도주

    27일 상오 4시50분쯤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 남동쪽 70마일 해상에서 2만∼3만t급 상선으로 보이는 선박이 조업중이던 전남 여수선적 207대방호(선장 곽형신)를 들이받은뒤 달아났다고 제주해양경찰서가 밝혔다. 이 사고로 대방호가 침몰하고 박병래(53·부산 영도구 영선동2가) 김명철(34·경남 창원시 안민동) 김정동(49·부산 중구 동광동) 차동수(23·경남 창녕군 영산면) 등 4명이 실종됐다. 제주해경은 하오 12시25분쯤 사고를 접수받고 헬기와 경비함 3척을 동원해 실종자 수색작업을 폈으나 추가 생존자와 달아난 선박을 찾지 못했다.
  • 인 연락선 전복/최소 90명 실종

    【뉴델리 AP 연합】 21일 인도 동부의 비하르주에서 연락선이 전복돼 최소한 승객 90명이 실종됐으며 이들중 상당수가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PTI등 인도 통신들이 보도했다.뉴델리에서 1천50㎞ 떨어진 비하르주의 주도 파트나 부근에서 전복된 이 연락선은 사고 당시 규정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싣고 갠지스강을 건너던 중이었다. 구조대가 생존자를 찾고 있는 중이며 이 배에 모두 몇명이 타고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실종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이라크성지 이란인 순례 허용/후세인,17년만에

    ◎새달 4일부터… 관계정상화 전조 【바그다드 AFP 연합】 사담 후세인 이란 대통령은 지난 80년 이란­이라크 전쟁발발 이후 처음으로 이란인들에게 이라크내 회교 시아파 성지 순례를 허용키로 결정했다고 이라크 국영 바그다드 라디오가 18일 보도했다. 바그다드 라디오는 이 결정이 “이라크가 이란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는 9월 4일부터 발효된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후세인 대통령의 주재 아래 열린 집권 바트당과 국가최고기관인 혁명평의회의 연석회의에서 이뤄졌다. 이 방송은 이라크의 이 결정이 지난 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이후 양국간에 놓여진 관계정상화의 “걸림돌들을 무시하고” 이뤄진 조치라고 이라크의 한 대변인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이란과 이라크는 17년 동안 양국 국민의 상호방문을 금지해 왔으며 지난 88년 유엔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맺었지만,지금까지 9년동안 전쟁포로(POW)와 실종자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타협점을 찾지 못해 아직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 KAL 희생자 보상 받으려면

    ◎진단서 없으면 법원 확인절차에만 1년 걸려/실종자는 ‘일괄 사망처리’ 정부 특별조치 필요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로 희생된 승객이 각종 보험에 가입돼 있을 경우,유가족들이 보험금을 제때 받으려면 정부가 사체의 신원확인전이라도 사망사실을 확인해줘야 한다. 보험약관에 따르면 보험 계약자가 사망했을 경우,법정 상속인이나 수익자로 지정된 사람은 계약자의 사망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사망 진단서를 받기위해 필요한 신원확인이 될 때까지는 계약자가 사망했다하더라도 실종자로 간주돼 사실상 보험금을 지급받을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어 정부가 특별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이에대해 “사망 진단서가 없는 이상,실종자로 처리되며 실종자가 사망한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재난 발생일로부터 1년이 걸리는 법원의 실종선고 확정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때문에 이 기한 이전에 보험금을 받으려면 삼풍백화점 사고때처럼 정부가 실종자를 일괄적으로 사망자로 처리해주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법 27조에는 추락한 항공기나 침몰한 선박에 타고 있었던 사람,전쟁터에 나갔던 사람이나 사망의 원인이 될 위난을 당한 사람으로서 그 생사가 이같은 상황이 끝난뒤 1년이 되도록 분명하지 아니하면 법원은 이해관계인이나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실종선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
  • 살아 있다던 내딸은 어디에…/김태균 사회부 기자(현장)

    ◎생존명단 보고 달려온 부정 실종 말듣고 “망연” “살아있다던 우리 딸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KAL기 사고로 딸이 실종된 전봉호씨(48·사업·마포구 공덕동)는 7일 가슴에 두번이나 못이 박히는 고통으로 몸서리쳐야 했다. 멀쩡하게 살아있을줄 알았던 딸 영(22·U대학 영문과 1년)양이 아직 실종자 명단에 올라있다는 사실을 이날 새벽 현지에 와서야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5일 하오 5시쯤 괌에 사는 외삼촌 백남정씨(41)를 방문하기 위해 문밖을 나서던 맏딸 영이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새벽 TV뉴스를 통해 사고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으로 딸의 생사를 기다렸다.그러던중 아침이 되자 TV를 통해 나오는 생존자 명단에서 딸의 이름이 집주소와 함께 또렷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7일 밤 전씨는 남다른 기쁨에 들떠 피해자 가족들을 싣고 괌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특별기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다쳤을까,많이 다치지는 않았겠지”“처음 딸을 보면 뭐라고 말을 해줄까,아빠를 보면 알아보기는 하겠지”“같이 간 다른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하지만 괌 퍼시픽 스타호텔에 마련된 사고대책본부에서 생존자 명단을 확인한 순간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껴야 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딸의 이름은 생존자 명단에 없었다.미친듯이 딸이 입원해 있다고 알려졌던 메모리얼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출입조차 시켜주지 않았다.갖은 노력끝에 “그런 이름 없다”는 내용의 절망적인 병원측의 확인전화를 받을수 있었다.부정확한 생존자들의 이름이 영문표기와 뒤섞여 잘못 알려졌던 것이었다. “딸의 생존가능성에 대해 별다른 기대는 두지 않고 있습니다.하지만 불확실한 확인으로 딸을 두번 잃은것 같아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다” 이날 상오 니미츠 힐의 사고 현장을 버스안에 앉아 먼발치서 지켜보던 그는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친듯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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