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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알리바바시대」로 시침 후퇴(세계의 사회면)

    ◎전쟁후유증 심각,주민생활 피폐/행동규범 실종… 절도·약탈 만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지 1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국민들은 소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괴도 알리바바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에 따른 엄청난 파괴로 경제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아직도 풀리지 않아 이라크국민들의 생활수준은 극도로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군에서 제대한 젊은이들은 할일이 없어 자포자기의 타락행위에 빠져들고 있는가 하면 바그다드를 비롯한 많은 도시들에서 알리바바의 후예들이 절도와 약탈을 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그다드에 거주하는 한 외교관은 『현재 바그다드의 절도발생률은 사상 최악』이라며 『전에는 문이나 창문을 닫지 않고도 외출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처럼 절도행위가 만연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유엔의 경제제재를 탓하고 있다. 생필품의 절대부족으로 배급제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자신과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절도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은 이처럼 절도행위가 만연하는데 대한 이유를 다른데서 찾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국민들이 지난해 쿠웨이트를 강점하고 있는 동안 자행된 약탈등 무법행위에 익숙해져 행동규범을 잃은데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법과 질서가 계속해서 무시되고 있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특히 절도행위가 20∼30대등 젊은층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대해 많은 지식인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오랜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했지만 돈도 없고 뚜렷한 기술도 없어 할 일이 없는 실업자들이다. 현재 가장 인기있는 절도대상 품목은 자동차다. 뚜렷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라크에서 택시영업은 훌륭한 생계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가 절도대상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 절도가 극성을 부리자 부품구입이 용이한 자동차의 경우는 차값이 무려 50%나 뛰어오르는 등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의 언론들도 차량절도등 절도행위를 문제삼기 시작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이제까지 자신의 재산을 보호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에는 익숙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이제 자신의 재산보호를 위해 갖가지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전세계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불러 일으켰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이라크를 아라비안나이트속의 알리바바의 시대로 후퇴시키고 말았다.
  • 금융자율화 최우선 추진/경제력 집중 완화·고용보험제 도입

    ◎기획원 7차계획 7대사업 선정 경제기획원은 7차5개년계획(92∼96년)의 중점과제로 ▲금융자율화 ▲경제력집중완화 ▲교육및 인력확충 ▲고용보험제도입등 사회보장제 확대 ▲재정구조의 합리화 ▲부동산및 토지제도개편 ▲세계경제블록화에 대한 대응체제구축등 7가지를 선정,추진키로 했다. 경제기획원은 이에 따라 관련연구기관 및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8∼9월중 과제별 관계장관회의 등을 열어 기본방향을 확정키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남북통일에 대비한 정책과제는 정부차원의 상위과제로 추진하되 남북경제사회통합 관련부문은 7차계획의 별도과제로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금융자율화와 관련,금리자유화와 금융기관의 인사·경영자율화를 추진하고 부실채권및 정책금융의 축소를 통해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또 경제력집중완화를 위해 주식의 대중화를 촉진하고 업종및 경영전문화를 유도해 나가며 신규노동력수요를 위해 장단기 인력수급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실업자에 대한 보장책으로 고용보험제의도입을 추진하고 재정합리화를 위해 경직적인 현행 재정구조의 개편과 조세부담제고 방안을 마련해 나가기로 했다. 이밖에 부동산제도개편과 관련,주택금융제도 개선방안과 토지이용률 제고 방안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나가고 세계경제 블록화에 대비,아태지역의 협력체제를 모색하는 한편 제조업과 주요서비스산업의 해외투자를 확대해 나가도록 할 계획이다.
  • 소 첫 실업수당 지급/“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원칙 수정

    소련은 1일을 기해 수백만명의 실업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함으로써 지난 60년동안 소련사회를 지배해온 이른바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을 수 없다」는 국가방침을 완전 수정했다. 소련이 자유시장경제로의 전환을 필사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소련 노동시장은 빠른 속도로 축소되고 있는데 소연방정부의 높은 과세 때문에 새 기업들조차 문을 닫고 있는 판에 노후화된 국영 공장들은 문을 닫지 않고 배겨날 도리가 없는 실정이다. 한때 철저한 중앙집권화 방식을 채택했던 소연은 최근 경제무질서로 인해 지난해 총생산이 10%나 줄어들었다. 현재 소련의 실업자 규모에 관한 공식 자료는 아직 한번도 발행된 바 없다. 그러나 소련 경제학자들은 각종 언론매체들과의 회견에서 소련 전체 노동력의약 8%에 해당하는 1천만∼1천2백만명 가량이 금년말까지는 실업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50억 루블의 실업수당이 금년에 전국 실업자들에게 지급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같은 실업수당의 10%는 중앙정부에 의해 마련되고나머지 90%는 연방산하 각 공화국들에 의해 충당될 것으로 보인다. 소련정부는 과거 볼셰비키혁명 이후 73년동안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최대장점들중 하나가 완전고용이라고 자랑해 왔었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혁명이후 13년동안 실업은 영원히 종식됐다고 보도했었다.소련에서 일자리를 갖지 않는 것은 사실상 큰 죄악으로 간주됐었다. 그러나 전형적인 소련 노동자가 사실상 하루동안 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은 불과 2∼3시간에 지나지 않고 있으며 그중 나머지 시간은 상점 앞에서 줄을 서는데 소비하고 있다.
  • 구동독 주민들,시장경제 적응 “몸살”/동·서독 경제통합 1돌 점검

    ◎“직장은 주어진것” 인식… 직업의식 실종/기업 민영화 박차속 2백여 업체 도산/“양독경제 동일궤도 진입까지 3∼10년 소요” 7월1일은 동서독이 경제통합을 이룬지 만1년이 되는 날이다.동서독 경제·사회통합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1년전 구동독국민들은 당시 화폐가치가 없는 동독마르크화를 서독의 마르크화와 1대1로 교환했으며 많은 국민들은 통화통합으로 구동독 계획경제의 비능률적인 구조가 시장경제로 바뀌면서 경제형편도 서독수준으로 뛰어 오를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그로부터 만 1년이 지난 오늘 구동독주민들은 당시의 기대가 너무 성급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구동독의 경제가 서독의 수준이 될려면 3년,또는 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차분한 생각을 갖게 됐다.경제통합당시의 들떴던 분위기는 이제 어느곳에서도 찾아볼수 없으며 통일후 드러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현실적인 독일국민들의 기질이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제통합이후에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저조한 동독경제의 부양속도,구동독국민들의시장경제 적응력,물가상승·증태등의 국민부담증가등이 지적되고 있다. 구동독지역의 경제부양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과제는 종전 국가소유 기업들의 민영화이다.민영화대상 8천여개의 기업중 지금까지 사유화된 것은 3분의1정도에 불과하나 올들어 그 속도가 크게 빨라지고 있다.민영화작업을 맡고있는 트로이한트의 사장 빌기트 브로이엘여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올들어 이들 기업들을 인수하려는 신청건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6월30일 현재 1백60억마르크의 매각수익을 올렸으며 최근에는 하루 15∼20건의 처분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트로이한트는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올해와 내년에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밝히고 93년까지면 트로이한트의 민영화업무가 실직적으로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처분자금은 기업의 경쟁력강화에 중점적으로 투자되고 있어 올해 수익금중 90억마르크가 이 분야에 직접 투입돼 큰 효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민영화작업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2백60여개 기업이 도산하는 바람에 50여만명의 실업자가생기는 부작용도 뒤따랐다. 구동독국민들이 창의력 발휘와 책임이 뒤따르는 시장경제에의 적응문제도 큰 과제다.동독기업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서독의 60%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이때문에 처음에는 동독국민들이 더많은 임금을 받기위해 서독기업으로 몰려 들었으나 이들은 서독기업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스스로 사직을 하는 예가 많다. 동독국민들은 직업은 선택하는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회주의의 습관에 젖어 직업의식을 발휘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근무하고 있어 의식전환이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화폐통합이후 동독기업과 국민들은 정부로 부터 각종 보조금을 받아 생활형편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6월의 물가인상률은 지난 10년간의 최고치인 3·5%에 이르고있다. 독일의 행정부·국회등이 수도 베를린으로 옮기는데만 1천억마르크가 소요되는등 통일비용은 앞으로도 계속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화폐통합이후 이미 동구권을 중심으로 마르크화 경제권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화폐통합의 부작용도 긍적적인 평가속에 포용되고 있다.
  • 실직자 직업훈련에 허점/매년 40%가 중도탈락·미취업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실업자고용촉진훈련이 비현실적인 직종구성과 관리상의 허점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1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6년부터 실직자 구제와 원활한 기능인력 공급을 위해 정부예산으로 실업자고용촉진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나 지난해까지 5년간 해마다 훈련생의 40% 가량이 중도탈락하거나 취업에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공공훈련원이나 인정직업훈련원에 위탁된 실업자 1만2천67명 가운데 16.2%인 1천9백54명이 중도탈락하고 23.4%인 2천8백27명은 수료 후 취업에 실패,결과적으로 위탁훈련생의 39.6%가 훈련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 부시,왜 「최혜국대우」 연장했나/홍콩=우홍제(특파원코너)

    ◎미,「무역카드」로 중의 대소접근 견제/철폐 땐 반미감정 촉발… “득보다 실 크다”/북경,10억불 구매단 파견 등 미소작전/미 의회·인권단체 반발 심해 귀추 주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예일대학교에서 한 연설을 통해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Most Favoured Nation Status)는 중국내의 인권문제개선 등 아무런 부대조건 없이 연장 적용할 방침』이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은 미국으로서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며 최혜국대우 철폐는 중국뿐 아니라 홍콩·대만 등 동남아지역의 경제발전에도 큰 타격을 주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경당국은 다음날 성명을 발표,『현실적이며 현명한 결정』이라고 극찬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잖아도 중국은 최혜국대우 연장여부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최종 결정시한인 6월3일을 크게 의식해서 지난 5월 초순 미국에 10억달러어치 상품구입을 위한 구매사절단을 보낸 데 이어 1일에는 유럽 쪽에도 같은 규모의사절단을 파견했다. 미측에 대한 미소작전과 함께 유럽에도 중국의 시장개방 의지가 뚜렷함을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또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부시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기도 했다. 평균 관세율 3%가 적용되는 최혜국대우의 덕분으로 중국은 지난해 대미무역수지 흑자가 1백억4천만달러에 이르렀고 올해에는 1백50억달러의 흑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에겐 이 대우조치의 존폐문제 만큼 비중이 큰 경제현안이 없는 실정이다. 미·중 양국은 지난 79년 국교수립 이후 80년도부터 1년마다 경신하는 조건으로 상호최혜국대우를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측이 대미수출급증의 효과를 보고 있는 반면 미국은 중국의 수입규제정책 등으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대우조치가 미·중간의 현안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89년 「6·4천안문사태」에서 비롯된다. 미 의회와 인권단체 등은 민주화요구 시위를 무력진압한 북경정권을 응징하는 의미에서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의경우에도 부시 대통령은 『중국 수출상품의 70%를 재수출하는 홍콩경제가 억울한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대우조치의 존속을 선언했었다. 올해에도 부시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이 조치의 철폐가 홍콩·대만 등 대중 투자국들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미국으로선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 행정부측은 중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중국의 동조없이는 한반도 문제를 비롯,수많은 국제정치상의 난제를 해결하기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 걸프전 때 이라크에 다국적군을 파견하려 했을 때에도 중국으로부터 끝까지 강한 반대가 있을까봐 크게 걱정했던 미국이었다. 게다가 최근의 국제질서재편 과정에서 미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중·소 접근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최혜국대우 철폐로 북경당국의 반미감정을 더욱 촉발시킬 입장은 아닌 것이다. 이 대우조차가 철폐되면 중국의 대미 수출은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되며 대륙 남부 광동성 등지에선 약2백만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예측됐다. 한편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내 여론형성에 영향력이 큰 하원의 스티븐 솔라즈 의원(아시아·태평양담당 분과위원장) 등 인권을 중시하는 의회세력과 민간 인권단체,해외망명중인 중국의 민주인사들은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으며 대우조치 철회를 위한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특히 미 의회는 걸프전으로 드러난 중국의 대중동 무기수출에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의회는 중국이 아랍권에 핵관련 기술을 수출,이들 가운데 한 나라가 이미 원자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2개 국가도 멀지 않아 개발할 것이란 정보보고에 충격을 받고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정보기관은 또 중국이 최근 파키스탄·시리아 등지에 M11미사일을 대량수출한 것으로 밝혀냈다. 한편 부시 대통령도 이 같은 중국의 무기수출 전략을 사전에 의식,최혜국대우 연장 적용 의사를 밝히면서 『그러나 중국에 무기제조와 관련된 첨단기술 수출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최혜국대우 연장에 대한 미 의회 등지의 거센 비난과 반대움직임을 누그러 뜨리기 위해 부시 대통령이 미리 머리를 써서 이 같은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미 의회는 일단 부시 대통령이 밝힌 최혜국대우 연장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부시는 또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맞설 것으로 전망된다. 부시는 특히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하원의 지지를 포기하는 대신 앞으로 있을 90일 동안의 협의기간 안에 상원 99명의 의원 가운데 3분의1을 초과하는 34명의 지지를 획득,그의 거부권이 효력을 발휘해서 미·중 관계가 원만히 유지되도록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 「중간지대」가 단단한 사회/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재수를 하고도 또 낙방한 아들을 둔 어머니가 신문독자란에 낸 글을 본 적이 있다. 첫번 실패 때는 그토록 움츠러들었던 아들이 이번엔 오히려 『합격통지서가 조금 늦춰졌을 뿐』이라며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한 번 더 기다리실 수 있죠』라고 의연하게 3수의 각오를 밝혔을 때 그 아들의 인간적인 성숙에 마음 든든해 마냥 참담한 심경만은 아니었다고 이 어머니는 적고 있다. 그 어머니와 그 아들들,그리고 그 아버지 등으로 구성된 그들 가족은 하나같이 구김살 없고 융통성 있으며 건강한 사람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중산층일 것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이런 신변잡기도 기억된다. 그는 20년 전 결혼할 때 당시의 주택시세를 감안하여 10년쯤 뒤엔 내집을 마련하리라 믿었다. 절약하고 저축하여 결혼 10년 후 처음 목표로 한 금액의 두 배를 저축했을 때 10년 전 결혼당시 점찍어 놨던 그 비슷한 집값은 열 배가 넘었다. 다시 10년 뒤 그러니까 결혼 20년 만에 그의 봉급은 스무 배가 넘게 올랐다.그러나 집값은 보통 1백배가 넘게 뛰었다. 이 대학교수는 그러나 낙망하지 않는다. 그 동안 학문적 성취도 있고 자녀들도 남부럽잖게 키웠다. 연탄보일러일망정 연립주택도 마련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을 「행복한 중산층」이라고 당당하게 자처하고 있다. 사실 그들보다 못한 계층이 오죽 많은가. 가난과 병고로 찌든 사람들은 일터가 있어도 나갈 수가 없다. 도시 영세민들과 실업자도 그러하고 땀흘려 일하고 농토를 지키지만 서른이 넘어도 신부를 못 구하는 농촌 젊은이들은 또 어떠한가 살펴볼 일이다. 사회구성계층을 굳이 상·중·하로 나눈다면 중산층이란 막연하나마 그 중간지대 즉 상하의 중간부분일 것이다. 적잖은 발행부수를 갖고 있는 한 여성잡지의 선전문에서 「고학력 중산층을 위한 여성지」라는 문구를 봤다. 그러고 보니 중산층 말고도 상과 하 사이에 중상·중중·중하가 있는가도 생각해 본다. 「중산층」을 그저 막연한 「중산층」보다 좀 위에 두자면이 여성지의 선전문구를 근본적으로 상승지향의 인간심리,특히 예민한 여성심리를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중간계층의 형태는 다양하고 그 구성은 또한 복잡하다. 현실에 그런대로 긍정적이어서 자족할 줄도 알지만 그렇다고 무비판적이며 맹종만 하는 계층도 아니다. 행복한 일상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기존체제에 익숙하여 격변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객관적이고 또 타산적이어서 제도권 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 비판하고 부정할 줄도 안다. 중간계층은 국가사회를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했으면서도 혜택은 적게 받는 계층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증권시장에서는 개미군단이라고 불리는 피해자의 주류를 이루고 부동산과 관련해서도 그 생심에 비해서는 이른바 재테크에 서툴러 대개는 재미를 보지 못한다. 소형 마이카를 운전하면서 때로는 위험스런 고비도 넘기도 교통난에 짜증을 낸다. 그럴 때면 자동차 메이커나 도로 증설을 책임진 당국을 원망도 한다. 그들은 또한 가장 정직하고 정확하게 세금을 내고 있지만 항상 획기적인 중산층보호시책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러나시국이 불안하고 정치적인 난국에 당면해서는 「안정희구세력」이라거나 「말 없는 다수」로 지칭되면서 사회를 부지하는 확실하고 튼튼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 중산층이다. 계층의 특성상 불특정다수이고 산만하여 결집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 잠재력에 대해서는 절대로 과소평가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중산층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사회에서 중산층의 몫이 커야 하고 그 역할이 평가되어 이른바 중간지대가 단단해야 함은 이 까닭이다. 이제 지난일이지만 얼마 전 치사정국의 소용돌이도 따지고 보면 중산계층의 불만과 부족감이 상승작용을 한 데에도 큰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학생 및 재야권의 연이은 가두시위와 거센 움직임 속에서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인도에 머물러 「관찰」했을 뿐 차도에 내려서지 않았다. 외국의 분석가들은 이를 보고 한국 정치사회의 든든한 기반과 저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대부분의 시민들이 누구인가. 격변을 바라지 않고 일상에 머물되 점진적이고 단절없는 개선과 광정을 바라는 중산층인 것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지만냉정하게 사물을 관찰하는 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러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70%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결국 우리는 중산층이 기반을 형성하는 사회에 이르러 있는 것이다. 그 기반 위에서 사회를 더 단단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론 중산층 이하의 계층을 끌어올리는 정책수단이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중산층의 정당한 노력과 의욕과 역할이 인정되는 정책방안이 끊임없이 강구돼야 한다. 일본 사람들의 경우 90%가 자신을 중류계층이라 자처하고 그 가운데 81%가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여긴다. 일본 사회가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기름진 것은 국민의 대다수가 중산층이고 그들 대부분이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있는 데 근거한다는 분석이다. 다시말해 「행복한 중산층」이 두껍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된다. 사회의 중산지대에 위치한 중산층이 바라는 것은 상대적인 불이익이나 박탈감을 받지 않고 정당한 노력에 대한 평가와 대가를 얻는 일일 것이다. 그런 건전한 중산층이 굵고 깊게 형성되고 그들의 몫이 큰 사회는 매우 단단할 것이다.
  • 쌀개방 땐 농민소득 1조∼2조 감소/10년동안

    ◎비료·농약등 관련산업도 큰 타격/농경연,「미곡시장 개방영향」 분석 우리의 쌀시장이 개방될 경우 국내 쌀 생산기반이 현재의 예상처럼 크게 붕괴되지는 않지만 쌀값이 내리고 생산량이 줄어들어 농민들의 소득이 감소하며 비료·농약·농기계 등 관련산업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22일 농촌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미곡시장 개방시의 영향」에 따르면 쌀시장이 개방돼 10년간에 걸쳐 수입쌀에 부과할 관세상당액(TE)을 국내외 가격차의 30%까지 단계적으로 감축시켜 나갈 경우 국내 쌀값은 기준 연도(87∼89년 3개년 평균)에 비해 1차연도에 2.2%가,10차연도에 22.2%가 각각 내리며 생산량은 1차연도에 4.3%가,10차연도에는 10.7%가 각각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 인한 쌀소득 감소액은 1차연도에 2천47억3천만원에 그치나 10차연도에는 1조2천2백45억2천 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또 비료·농약·농기계 등 관련산업의 생산감소액도 1차 연도에 5백63억9천만원,10차연도에는 1천8백85억원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놀리는 땅도 늘어나 유휴경지는 1차 연도에 3천6백81㏊가,10차연도에 3만6천8백6㏊가 생기는 등 10년간에 걸쳐 약 20만㏊가 유휴화된다. 유휴노동력도 1차연도에 1천7백54명,10차연도에 5천8백63명이 생기는 등 10년에 걸쳐 약 3만6천 명의 비자발적 실업자가 발생한다. 이 같은 영향은 TE를 50%나 70%까지 감축시킬 경우 더욱 커져 TE를 10년간에 걸쳐 70%까지 감축할 경우 쌀소득 총 감소액은 1차연도 6천4백40억원,10차연도 2조2천8백14억원에 달하게 된다.
  • 93년 총선 겨냥한 민심수습 포석/불,로카르총리 왜 경질했나

    ◎실업자·빈민층 증가등 실정만회 처방/집권 10년 미테랑의 친정체제 재구축 15일 단행된 프랑스의 국무총리 경질은 사회당정부에 차츰 등을 돌려가는 민심을 수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93년 총선을 염두에 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다목적 정치구도로 해석된다. 미셸 로카르 총리의 사임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돌았었다. 집권 만 10년을 넘긴 프랑스의 사회당정권은 최근 들어 내치면에서 갖가지 실정이 부각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야당의 공세와 민심 이탈 현상이 두드러져 왔던 게 사실이다. 며칠전 하원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현정부의 사법권 침해를 이유로 제출된 로카르 정부 불신임안이 보여주듯 사회당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어 왔으며 사회당의 선거자금 변칙조달 사건 등도 로카르 정부에게는 큰 짐이 되어 왔다. 또한 코르시카 분리주의운동을 무마시키기 위해 제정된 「코르시카 특수지역설정안」도 현정권에 의해 원안이 크게 변질된 채 통과돼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다. 특히 국민들 사이에 불만이 높은 부분은 경제적인 측면으로 실업자가 늘고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사회당 정권의 대표적인 실정으로 지적되어 왔다. 즉 미테랑 대통령의 집권초기에는 실업자수가 2백만명 선이었으나 최근의 통계는 2백6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던 이른바 「신빈곤층」이 1백만명이나 되어 좌파집권에 따른 사회정의 구현이란 이상이 헛된 꿈으로 드러났으며 이념적으로도 실패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같은 현상들은 사회당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93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으며 이 시점에서 총리와 내각을 새 인물로 교체,이반되어가는 민심을 되돌려 보자는 처방전을 내리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복잡한 파벌로 구성된 사회당내에서도 로카르를 헐뜯는 목소리가 높았으며 특히 95년 대통령선거에서 미테랑의 후계군으로 부상되고 있는 롤랑 파비우스파,리오넬 조스펭파 등의 집중공격을 받아왔다. 그러나 물러나는 로카르 총리의 입장으로서는 사회당의 실정에 대한 「속죄양」이라기보다는 적절한 때에 한발 물러선다는 「작전상 후퇴」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즉 로카르측에서는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총리직에 연연함이 없이 물러나 95년 대통령선거를 기다리겠다는 계산을 하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크레송 총리가 새로운 정부수반으로 기용됨으로써 당정관계는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녀는 장관직을 4번이나 거친 4선의원으로 프랑스정계의 원로이며 미테랑과의 오랜 교분으로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점을 들어 일부 전문가들은 미테랑의 친정체제 강화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크레송 신임 총리는 인구학박사이면서도 경제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프랑스가 당면한 실업문제·신빈곤층 문제의 해결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며 아울러 사회문제 대처에는 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명 「대서양주의자」이기도 한 크레송 총리는 유럽통합 및 유럽전체의 국제적 위상강화 등을 주장해왔으며 그러면서도 대미 또는 대소관계에서는 문호를 더욱 넓혀야 한다는 지론을 펴고있다. 그녀는 일본 쪽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나 그동안 한국을 두 차례나 방문한 경험이 있는 등 지한파 인사의 한사람으로서 앞으로 한불관계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몸은 좌에,정책은 우로/미테랑 집권10년/프랑스 사회당정권의 변신

    ◎초기 국영화시책 실패 뒤 공산당과 결별/“자본주의체제 무시한 개혁은 환상” 체득/“우파의 향도” 극좌파 비난에도 국민지지 더 상승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10일로 취임 만 10년을 맞았다. 지난 81년 대통령선거전에 만년 야당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사회당(PS) 후보로 나서 승리,전후 최초로 프랑스에 좌파정권을 탄생시키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미테랑 대통령은 88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서구에서는 드물게 민주사회주의 정권의 장기통치체제를 구축,오늘에 이른 것이다. 취임 1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미테랑 대통령은 파리시내 팡테옹으로 프랑스 좌파의 시조인 장조례스의 묘역을 찾아 사회당의 심볼인 붉은 장미 한송이를 바쳤다. 자신과 사회당의 좌파통치 1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오늘의 미테랑 대통령이나 사회당을 두고 그 노선이 진정한 좌파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사람은 맞지 않은 것 같다. 지난 81년 「사회를 바꿔보자」는 선거구호를 내걸고 당선된 미테랑 대통령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20여 년간 우파지배 아래 짜여진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좌파정권이 어떤 모양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최저이금을 올리겠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 「휴가를 늘리겠다」는 등 무려 1백10가지에 이르는 미테랑의 선거공약은 듣기만 해도 곧 장미빛 사회가 전개될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뿌리를 내린 기업들,특히 사회구조와 국민의식이 쉽사리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국가관리 경제체제에 순응하기를 기대한 것은 당초부터 무리였다. 실업자의 증가,투자의욕의 감퇴,생산저조 및 이에 따른 국가재정의 적자 등 경제파탄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부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1년도 안 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미테랑 정권은 83년 다시 긴축정책을 펴면서 세금을 올리고 물가를 인상하는 한편 소비억제책을 썼다.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외여행 제한조치까지 취했다. 이른바 「프랑스식 사회주의건설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는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형태의 성격을 띠었을 뿐 본래의 사회주의정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때부터 미테랑의 좌파적 이미지는 퇴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테랑정권이 이념적으로 이같이 옆길로 빠져들자 84년에 들어서는 사회당에 협조해오던 공산당이 등을 돌렸다. 미테랑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가장 이상한 형태의 국가통치현상이 빚어진 것은 우파와의 「동거정부」 때문이다. 사회당은 86년 총선에서 하원(국민의회)의석의 과반수 획득에 실패,그때까지 야당이던 우파에 총리직을 내줄 수밖에 없었으며 공화국 연합의 자크 시라크 당수가 총리에 기용되어 좌파대통령에 우파총리라는 기묘한 권력구조가 형성됐다. 이렇게 되자 우파행정부는 그때까지 미테랑의 사회당정권에 의해 국유화됐던 기간산업과 은행 보험회사들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좌파정책에 수정을 가했다. 이후 88년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미테랑 대통령은 당내에서도 가장 우파 쪽으로 치우친 미셸 로카르를 총리를 기용하면서 정책집행에서 사회주의 색채를 더욱 희석시켜 나갈 것을 분명히했다. 그가 재선된 뒤 국책운영과 관련하여 새로이 내건 슬로건은 「비국영화·비민영화」였다. 더 이상 민간기업을 국유화하지 않겠으며 이미 국유화된 기업을 더 이상 민영화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당내 극좌그룹이나 공산당 등 좌파 쪽에서는 사회주의 이상의 포기 또는 무소신정책이라고까지 몰아붙이며 미테랑을 「우파의 향도」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사회당 대통령의 통치가 10년이 됐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기업활동,상품의 유통,재화의 이동·보전 등 거의 모든 경제·사회활동이 자본주의하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미테랑 대통령의 취임 10주년을 맞아 사회당 쪽에서는 그 동안의 미테랑과 사회당의 치적에 중점을 두어 홍보활동이 한창이다. 국내적으로는 평등사회를 향해 큰 진전이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쪽에서는 『미테랑 10년에 남은 것은 실업자 증가,세금인상,그리고 윤리의 타락 뿐』이라고 공박하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비난을 뒷받침하고 있는 현상들이 미테랑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결과는 미테랑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꾸준한 지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0년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을 말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는 여러 정치지도자들 가운데서 항상 1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리스 여론조사의 경우는 최근의 지지도가 55%로 81년 집권 때의 52.2%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 민주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 시험시기로 평가되기도 하는 「미테랑10년」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자면 그 체제의 논리와 구도를 존중해야 하며,이를 무시하고서는 아무리 좋다고 믿어지는 이상이라도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시행착오에서 얻어진 값진 교훈을 남기고 있다.
  • 서비스업고용 1,008만명/전체근로자의 58%… 전년비 6% 증가

    ◎실업률 2.9%… 작년 4월 이후 증가세/통계청,1·4분기 실태조사 취업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건설·음식숙박업·도산매업 등 서비스분야에 많이 몰리는 바람에 제조업의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울과 대전시의 실업률이 4.3%에 이르는 등 전체 실업자의 69.7%가 6대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은 8일 1·4분기중 전국의 취업자는 1천7백43만명으로,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인 58만6천명이 늘었으나 계절적인 요인 등으로 실업률은 2.9%로 지난해 4월 이후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산업별로는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서비스부문이 1천8만5천명으로 1년 전에 비해 6%나 증가,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56.5%에서 57.8%로 높아졌다. 광공업의 취업자도 5백5만명으로 5.1% 늘어 전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9%로 1년새 0.5%포인트 상승했다. 이 가운데 제조업 취업자는 전년동기에 비해 5.5%인 26만명이 늘었으나 서비스부문의 증가율 6%에 비해서는 0.5%포인트 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농림어업부문의 취업자는 2백29만7천명으로 1년 동안 9.1%나 감소,전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에서 13.2%로 낮아졌다. 올 1·4분기중 전국의 실업자는 52만8천명으로 작년동기보다 1만명 줄었다. 이에 따라 실업률도 1년 전의 3.1%에서 2.9%로 낮아졌으나 지난해 2·4분기의 2.1%를 최저점으로 점차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실업자의 69.7%인 36만8천명은 서울을 비롯한 대전·부산 등 6대 도시에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현상은 일자리를 찾아 신규 노동력이 대도시로 대거 유입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1·4분기중 전국의 경제활동인구는 1천7백96만명으로 1년 전보다 3.3%인 57만6천명이 증가했으며 이중 57.6%가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차산업 편중 갈수록 심화/생산직 우대 실질조치 시급(해설) 올해 1·4분기중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무려 58만명이나 늘어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산업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서비스부문에 너무 많은 인력이 편중되고 있는 등 고용구조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전체산업에서 서비스부문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57.8%로 아직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지만 우리나라 경제수준이나 산업발전 속도에 비해서는 너무 높고 빠르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마디로 제조업에 취업해야 할 사람들이 소비산업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제조업의 인력난이 가중돼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조업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요즘 종업원들을 구하지 못해 조업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 산업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능인력만 하더라도 올해 7만명 이상이나 모자라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능인력의 부족현상은 앞으로 갈수록 심각해져 94년엔 10만명을 초과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당국의 추정이다. 서비스부문에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지난 89년 이후부터 건설경기가 과열됨에 따라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건설노임이 크게 올라 공사현장에 많은 인력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분기중 건설부문의취업자는 1백36만명으로 1년새 18%인 22만명이나 급증했다. 지난 89년보다는 무려 50% 가까이 증가,건설경기 과열에 따른 근로자 유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향락산업 등 소비성분야의 인력유입억제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되고 과열현상을 보이고 있는 건설경기를 적정수준으로 진정시켜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모자라는 기능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매년 1만∼1만5천명 가량의 보충역편입자를 훈련시켜 산업체에 취업시키기로 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증대에 따라 갈수록 힘든 일을 기피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할 때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주택제공과 복리후생대책 등 보다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촉구되고 있다.
  • 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1

    ◎구동독 경제모순의 사생아 “실업 300만”/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서 대량 감원/서쪽까지 확산… 연내 5백만 넘을듯/“직장 달라” 연일 시위… 정부선 자영업지원금 증액키로 「세기사적 위업」이라는 찬사 속에 통일을 이룩한 독일이 심한 「통일후유증」을 앓고 있다. 동서간에 깊게 파였던 이데올로기의 골과 40년 분단으로 생긴 정치·경제·사회적 격차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이다. 통일된 지 6개월이 지난 현재 3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실업자들은 『우리들에게 일자리를 달라』며 헬무트 콜 총리에게 달걀세례를 퍼붓고 구동독 지역의 주민들은 『통일 후 나아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도로 건설·통신망 확충·공해퇴치 비용 등 소위 「통일비용」이 늘어나는 바람에 구서독 쪽에서 고조되고 있는 불만도 만만치 않다. 독일통일과 함께 절정에 올랐던 집권 기민당의 인기도 급락하고 있으며 라이벌 사민당은 이때다 싶어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고 있는 등 어수선하다. 통일 후의 독일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이기백 특파원이 현장취재를 통해 진단한다. 통일의 기쁨 뒤에 들이닥친 대량실업사태가 지금 독일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통일 당시만 해도 서독의 실업률은 2% 안팎이었고 동독은 형식적이나마 완전고용상태였으나 통일 반년 만에 실업률이 30%로 치솟아 현재 3백여 만 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더욱이 실업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될 전망이어서 통일독일이 심혈을 기울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일 독일노동연맹(DGB)이 주최한 노동절 행사는 히틀러가 1933년부터 행사를 금지한 이래 59년 만에 전 독일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갖는 합동집회였으나 실업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격렬시위로 이어져 투석과 화염병,그리고 최루탄이 난무하는 전투장으로 돌변했다. 60여 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베를린시내 프리드리히스하인 광장에서 진행된 집회에서 연사들은 한결같이 날로 악화돼가고 있는 실업문제의 해결과 동서독간 사회적·경제적 괴리현상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촉구했다. DGB보고에따르면 현재의 실업자 수는 완전실업자 90여 만 명,반실업자 2백10여 만 명 등 3백여 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는 그 숫자가 5백여 만 명을 넘어서 지난 32년 나치의 출현을 초래했던 경제상황 때의 실업률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디프겐 베를린시장은 집회에서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분단상태에 대해 모두가 비상한 관심을 가질 때이다. 현재 실업문제는 독일인 모두가 합심해서 풀어야 할 심각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베를린시는 실업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94년까지 4개년 고용증대계획을 세워 추진하겠으며 올해에만 3만여 명이 취업할 수 있도록 서비스업·개인 자영업지원금 등으로 11억마르크(4천5백억원)를 지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청중들의 노기를 가라 앉히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당면한 대량실업사태에 분노한 군중들은 집회가 끝난 뒤 시가행진을 벌이려다 경찰과 충돌,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며 경찰은 이에 맞서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에 나서는 등 통일 후 가장 치열한 「전투」를기록했다. 이날 시위로 경찰차 2대가 불타고 경찰관 10여 명이 부상하는 등 평상시의 시위와는 다른 피해를 남겼으며 노동자 79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처럼 통일 이후 대량실업 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것은 독일 통일을 가져온 동인이 구동독의 경제였다는 점에서 예견되어왔던 일이다. 동구권에서는 나름대로 가장 탄탄했던 동독이었지만 국가통제경제에서 자유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비능률적인 경제적 모순점들이 일시에 표출,대량실업이라는 사태를 몰고온 것이다. 공산정권 아래에서는 국민들이 국가에 의존,실업의 걱정없이 살아왔으나 이제는 시민 각자가 홀로서기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구동독인들이 실업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자유경쟁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절박하다. 특히 8천여 개의 구동독 국영기업이 사유화된 후 새로운 기업주들이 자본주의적 경제운영방식대로 군살빼기에 착수하면서 실업자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어 실업자들의 대열에 끼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통일이 원망스럽게느껴질 정도이다. 동독지역 기업들의 생산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여 %나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바 이같은 생산성 하락이 실업을 더욱 부채질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베를린의 독일경제연구소(DIW)는 통일 당시 동독지역 9백여 만 명의 일자리가 자유경제체제로 바뀌는 가운데 4백여 만 명이 떨어져나갈 것으로 추산,올 연말에는 실업자 수가 5백여 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대량실업사태로 구동독 지역 주민의 서독지역으로의 이주가 한 달 1만5천여 명에 이르러 서독지역의 실업률마저 밀어올리고 있는 가운데 40∼50대의 실업자들이 자살하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실업사태가 악화되면서 구동독의 호네커 정권을 붕괴시킨 민주화 시위의 발생지인 라이프치히시에서는 과거 월요일마다 벌였던 「월요시위」가 지난 3월부터 재연되기 시작해 직업보장과 콜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문제는 통일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과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베를린시내에서 노동절 시위를지켜본 바바라 여인(39)은 『사람들이 통일만 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며 『통일의 후유증을 청산하려면 앞으로 10년,심하면 분단의 세월 만큼 긴 반세기가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통일의 대가는 그만큼 비싸다는 얘기다.
  • “베트남 경기 타자”… 국내기업 진출 러시

    ◎임금 낮아 섬유·봉제 등 입지 유리/무역관 연내 개설… 교류 적극 지원/「도이모이」로 교역 활기… 작년 우리 수출 1억불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일본과 한국 및 자국기업에 대해 베트남과의 경제교류를 규제하고 있는 미국이 올 하반기 이를 해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베트남과의 합작투자 및 현지지사를 설치하려는 국내 기업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졌고 무역진흥공사의 베트남 무역관도 연내 개설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코오롱,맨 처음 입성 지난 75년 공산화 이후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국내 업체는 코오로상사로 80년대 초부터 직원 한 명을 상주시켜왔다. 이후 삼성·대우 등 종합상사들이 잇따라 하노이와 호치민시(구 사이공)에 직원을 파견,비공식적으로 활동해 왔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정부로부터 지사설치 승인을 받았다. 베트남은 인구가 6천5백만명이고 1인당 국민총생산은 2백달러도 채 안 되는 농업국가로 실업자가 6백만명에 이른다. 근로자의 임금도 월 2만원 수준으로 이미 우리 기업들이 상당수 진출해 있는 인도네시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임금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올라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들에게 이처럼 값싼 임금은 엄청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섬유·봉제 등 이른바 사양산업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양산업 진출 현저 베트남정부는 지난 75년의 공산화 이후 폐쇄정책을 써왔으나 지난 86년부터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도이모이」(쇄신)를 채택,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기업의 개인소유를 허용했다. 또 88년에는 신외국인투자법을 만들어 외국인의 투자 및 과실송금의 허용 등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물산은 올 연말까지 현지에 봉제공장을 설립할 계획이고 코오롱 역시 봉제공장을 세워 이를 거점으로 캄보디아·라오스 등 주변국가의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선경과 쌍용도 의류와 직물공장 건설을 추진중이며 경기실크·태흥 등 중견업체들도 셔츠·블라우스 공장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동국무역도 최근 하노이지역에 30만평의 부지를 임대,섬유공장을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올해 초에는 베트남측이 유전개발을 제의하기도 했었다. 무공관계자는 『매일 10여 건 이상의 대베트남 진출 문의가 들어온다』면서 『주로 봉제·완구업종에 대한 중소기업의 문의가 많지만 최근에는 오피스텔건설 등에 대한 부동산투자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유전개발 등 제의도 지난해 베트남과 우리나라와의 교역규모는 총 1억5천20만달러로 수출액이 1억1천6백82만달러였다. 또한 지난해 베트남의 경제계 및 정부인사가 방한한 데 이어 올해초에는 상공부·기획원 등 우리 정부와 경제계 인사들이,지난 3월말에는 무협의 대표단이 각각 베트남을 방문해서 투자환경과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귀국했다. 정부와의 공식적인 접촉과 경제인들의 단체교류가 활발해지는 것이다. 이밖에 오는 27일 열리는 베트남 무역박람회에도 국내 17개 업체가 참여하는 등 그 동안 음성적이던 교류가 빠른 속도로 공식화,양성화되고 있다.
  • “보따리장사 수익 짭짤”/파에 소련인 홍수(세계의 사회면)

    ◎돈벌이 찾아 날마다 수천 명씩 입국/암시장서 처분 뒤 그대로 눌러 앉아 소련 경제가 쇠퇴함에 따라 돈벌이를 위해 폴란드로 넘어 들어오는 소련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폴란드 당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 최근 들어 매일 수천 명의 소련인들이 폴란드로 들어와 짧은 시간 동안 암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가거나 아니면 일자리를 구해 두어 달씩 불법취업을 하다 돌아간다. 이들 소련인 보따리장수들은 바르샤바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궁전 주변에서 잡다한 물건을 늘어놓고 장사를 한다. 그들이 파는 물건은 플라스틱제 인형과 어린이들의 옷가지에서부터 TV세트와 캐비어(철갑상어의 알젓)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프랑스제 고급 화장품과 아르메니아산 코냑도 팔고 있다. 폴란드의 동부지방에서는 소련사람들이 성상과 금덩어리까지 팔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련시민들은 폴란드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국경에서 입국이 지체되고 있다고 불평한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 키예프에서 차를 몰고 왔다는 올해 45살의 한 대학교수 부인은 자기는 국경에서 3일을 기다려서야 겨우 입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폴란드 세관원들이 자기 가방들을 샅샅이 다 뒤졌으나 압수당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가전제품이 통관하기에 가장 어려웠다고 말하고 자기는 폴란드 암시장에서 3일 동안 물건을 팔아 3백50 내지 3백달러의 돈을 벌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액수는 소련에서 월평균 임금보다 3배나 많은 것이다. 그녀는 또는 국내 암시장에 갖다 팔기 위해 폴란드에서 남긴 이익금을 청바지를 사는 데 몽땅 투자했다고 한다. 한편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기차를 타고 7일이나 걸려 바르샤바에 도착했다는 다른 여행자는 핸드백과 값싼 캐비어·위스키 등을 가지고 왔다. 폴란드 내무부의 난민담당관 즈비그네프 스코칠라스는 올해 약 6백만명의 소련인들이 폴란드에 들어 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고 특히 폴란드에 계속 주저앉으려는 소련인들이 늘어나 사태가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폴란드에 입국한 소련인은 4백20만명에 달했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현재 건설업계에서 불법으로 일하는 소련인은 이미 2만 내지 3만명에 이르고 있다. 올 여름에는 이 숫자가 1백만명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관계자들은 걱정이 태산같다. 이들 불법노동자들은 한 달에 42달러를 버는데 이는 폴란드의 월 평균 임금의 4분의1 정도이나 소련의 수준보다는 4배나 많은 것이다. 폴란드의 일부 고위 관리들은 폴란드의 실업자수가 지난달에 1백30만명에 이르렀다고 지적,불법노동자의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제한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3월에는 폴란드의 자유노조가 탄생한 그다니스크 조선소의 근로자들이 소수의 소련노동자들을 고용한 데 항의하여 시위를 벌였었다.
  • 전 평양주재 동독대사/한스 마레츠키 강연내용

    ◎“남북한,TV개방등 정보교류 급선무”/상호 신뢰회복만이 통일의 첩경/「통독후유증」 교훈삼아 사전준비 더 철저히 한스 마레츠키 독일 포츠담 바벨스베르크대 교수가 10일 하오 서울대 문화관 국제세미나실에서 「독일통일과 한반도」라는 주제로 특별강연했다. 마레츠키 교슈는 지난 88년부터 통독 직적인 지난해 4월까지 마지막 북한 주재 동독 대사를 지냈으며 최근 「북한의 김일성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북한 주민의 억압된 생활상과 주체사상의 허구를 폭로,비판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소장 정종욱 교수)의 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마레츠키 교수는 「독일과 한반도 통일의 차이점」,「북한체제의 존속이유」 및 「한반도통일의 가능성」 등에 대해 1시간30분에 걸쳐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마레츠키 교수는 우선 독일과 한반도 통일의 차이점에 대해 『소련 등의 압력으로 독일,특히 동독에 있어서는 통일에 대한 열의가 희박했으나 한반도의 경우는 남북한 공히 통일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다』고 설명했다. 마레츠키 교수는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 이후 지난 60년대부터 상호 TV를 개방하는 등 정보를 교환,서로의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이 이루어졌으나 한반도의 경우는 북한의 폐쇄정책 등으로 서로간에 정보가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통일이 모색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 북한체제에 대해 마레츠키 교수는 『북한의 정치체제는 지난 20∼30년대 존재했던 소련 스탈린체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절대고립체제』라면서 『특히 스탈리니즘에 가족중심의 동양적 유교사상이 접목돼 있어 독특한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일체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남북한은 45년간에 걸친 분단상황과 특히 6·25전쟁을 겪으면서 상호불신과 이질감이 심화돼 있고 군사적·정치적 대립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상태』라고 전제하고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친 결과 정치사고의 왜곡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같은 언어도 내용 자체가 틀려져 상호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그는 이어 북한주민의 생활상에 대해서 『북한주민은 모든 것이 병영화된 사회에서 1년에 5㎏ 정도의 고기를 배급받는 등 극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개인은 일개 생산도구로 간주돼 개인성을 상실하는 인간소외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이에 따라 인간 자신의 이상실현을 위해 노동을 한다는 마르크스의 가르침은 설득력이 없고 단지 더 많은 월급을 받아 보다 더 잘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궁핍한 상황에서도 북한정권이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 『외부세계와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충성을 강요하는 주체사상을 무기로 강력한 통제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레츠키 교수는 북한의 지배층은 주민들에 대해 단순한 권력통제뿐만 아니라 매일 2∼3시간의 정치교육을 실시하는 등 심리적 측면에서 통제를 강화해 주민들이 불만이 있어도 표출을 못하는 「침묵의 사회」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일성 주체사상은 이미 통치 이데올로기 차원을 넘어서 주민들의 모든 일상생활에 작용하는 하나의 종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레츠키 교수는 이러한 북한체제의 고립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단시일내에 남북한의 통일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적어 앞으로 3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통일 돌파구 마련을 위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한총리회담을 재개하고 인도적 문제해결·경제교류·신뢰회복 등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대립과 긴장상태를 해소시켜나가려는 노력이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마레츠키 교수는 끝으로 『독일은 통일에 대비한 노력이 부족해 통독 후 동독지역의 실업자문제 등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만큼 남북한도 독일통일을 교훈삼아 통일 후에 일어날 문제들에 대한 사전준비를 하나씩 점검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남북한의 상호 이질화가 심각한만큼 통일될 경우 복수가 아닌 화합의 마음가짐이 절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 멕시코에 환경보호운동 확산(세계의 사회면)

    ◎“스모그국가 오명 벗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공해배출 주범 최대의 정유공장 폐쇄 단행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스모그의 나라 멕시코가 뒤늦게 환경보호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공해방지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나타」(쓰레기란 뜻의 멕시코말)라고 불리는 갈색구름이 사시 사철 하늘을 뒤덮고 있던 멕시코에서도 환경보존을 위한 노력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벌이고 있는 이번 공해방지캠페인은 그 동안 공해의 주범이라고 구설수에 올랐던 멕시코 최대의 정유공장을 폐쇄시킬 정도로 그 의지가 대단하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타리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말 「18데 마르조」 정유소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멕시코시티 북서쪽에 위치한 아즈카포트잘코에 있는 이 정유공장은 지난 33년 첫 가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멕시코시티에서 소비되는 휘발유의 34%를,경유의 85%를 생산해온 명실상부한 멕시코 최대의 정유공장. 그러나 이 공장은 또한 한해에 8만8천t의 오염물질을 배출할 정도로 거대한 멕시코 환경오염의 「대부」이기도 했다. 때문에 많은 환경보호론자들은 지난날 이 공장의 조업중단을 줄곧 주장해 왔으나 국가가 직접 운영을 해왔기에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공해에 관한 한 「성역」으로 치부되던 이 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한 살리나스 대통령은 『이제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단호한 환경대책을 마련,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장폐쇄가 환경오염 개선을 위한 최선책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던 멕시코 정부의 입장에 견주어 볼 때 이는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방침이 전해지자 멕시코 국민들은 물론 이웃나라 미국도 살리나스 대통령의 용단에 찬사를 보냈다. 특히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조만간 체결할 예정으로 있는 미국은 이번 조치가 자국민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앞으로 25억 달러를 투입,대기오염과 환경문제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1만5천대의 매연버스와 4만대의 택시를 우선적으로 새 저매연 차량으로 대체하고 화석연료의 사용을 자제시킨다는 것이 1차적 목표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정도 수준의 대책은 미봉책일 뿐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한 지방신문은 환경에 대한 보다 많은 투자를 정부에 촉구하며 사설을 통해 「왜 우리의 자식들을 죽이려 하는가」라고 항변하고 있다. 한 번 오염되면 회복이 좀처럼 쉽지 않은 오늘날의 환경문제는 비단 멕시코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5억 달러의 손실을 무릅쓰고 게다가 5천여 명의 실업자를 내면서도 공장폐쇄를 단행한 살리나스 대통령의 결단은 공해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여타 나라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 기초의회의원 당선자 명단(서울)

    ○종로구 ▲청운동 이두학(66·신한모방 고문) ▲효자동 이헌구(55·양곡상) ▲사직동 정명호(42·음식점 경영) ▲평창동 현효선(53·인쇄업) ▲무악동 심재득(48·보일러상 경영) ▲부암동 현수한(51·우유보급소업) ▲교남동 이만로(48·부동산임대업) ▲삼청동 천상욱(55·해태유업 근무) ▲세종로동 전종구(42·삼육개발 대표) ▲가회동 이형술(51·건자재 판매업) ▲종로 제1·2가동 홍승태(55·약사) ▲종로 제3·4가동 나재암(44·동양공사 대표) ▲종로 제5·6가동 정창희(43·부동산임대업) ▲혜화동 예상호(66·보험대리점업) ▲명륜 제3가동 박우신(53·선우건재 대표) ▲이화동 진기식(55·보건약품 대표) ▲창신 제1동 박권선(53·동대문학원장) ▲창신 제2동 전영태(49·회사원) 임와룡(53·목욕탕업) ▲창신 제3동 김헌중(61·개인경영) ▲숭인 제1동 손광일(48·자영업) ▲숭인 제2동 김성찬(56·금고이사장) ○중구 ▲태평로 제1가동 이문식(61·요식업) ▲소공동 정영광(49·수협중매인) ▲남대문로 제5가동 김부흥(49·회사원) ▲회현동 오진철(49·사업) ▲명동 김장환(60·상업) ▲충무로 제4·5가동 김사흥(55·인쇄소 대표) ▲필동 신상호(64·임대업) ▲을지로 제3·4·5가동 한경철(47·목욕업) ▲중림동 공선택(61·금고이사장) ▲광희동 이한성(47·상업) ▲신당 제1동 성하삼(41·출판업) ▲신당 제5동 오세태(61·상업) ▲신당 제6동 고장식(49·상업) ▲황학동 이종율(42·사업) ▲장충동 김영한(54·약국경영) ▲신당 제2동 원중희(48·상업) ▲신당 제3동 강길문(52·상업) 윤승호(50·상업) ▲신당 제4동 윤용섭(50·보성사 대표) ○용산구 ▲후암동 이근성(64·마을금고 이사) 김문자(49·여·표구사업) ▲용산 제2가동 임철호(59·의료보험업) 김귀남(54·축산업) ▲남영동 곽정복(56·펌프제작업) ▲이태원 제2동 육보근(54·섬유수출업) ▲한남 제1동 이천만(52·주차장업) ▲한남 제2동 안태주(57·소명산업 대표) ▲청파 제1동 김계조(56·한일기기 회장) ▲청파 제2동 이양온(57·금고 이사장) ▲원효로 제1동 윤평진(40·원진전자 대표) ▲원효로 제2동 심원섭(40·대진카텐 대표) ▲효창동 최병국(54·금고 이사장) ▲용문동 구태수(60·건축업) ▲이촌 제2동 이용주(52·금고 이사장) ▲한강로 제1동 김희옥(51·금고 이사장) ▲한강로 제2동 한광호(56·청소대행업) 한강로 제3동 김용태(48·상업) ▲이촌 제1동 윤종철(44·상업) 김흥수(53·현대산업 상무) ▲이태원 제1동 장진국(53·군수출업) ▲서빙고동 박장규(55·건설업) ▲보광동 성장현(35·학원 원장) 김무관(51·의사) ○성동구 ▲금호 제2가동 임남규(53·회사 대표) ▲금호 제3가동 정광일(60·금고 이사장) ▲금호 제4동 이복우(52·상업) ▲옥수 제1동 방효영(46·사업) ▲옥수 제2동 장기만(56·상업) ▲응봉동 민병은(61·금고 이사장) ▲금호 제1가동 김중배(45·삼진사 대표) ▲성수1가 제1동 이수영(55·금고 이사장) ▲성수1가 제2동 표종수(58·상업) ▲성수2가 제1동 김재인(66·상업) 김동천(50·상업) ▲성수2가 제2동 김태식(59·미곡상) ▲성수2가 제3동 김화목(52·사업) ▲성수2가 제4동 노승균(48·미림건설 회장) ▲왕십리 제1동 이일상(55·금성도금 대표) ▲왕십리제2동 이건상(28) 이복구(57·부동산중개업) ▲도선동 조용훈(61·공업) ▲마장동 이명재(44·부동산임대업) 문길호(63·민자중앙위원) ▲사근동 이경운(49·반도섬유 대표) ▲행당 제1동 서승린(47·동화한의원장) ▲행당 제2동 정기운(48·삼미 수출사장) ▲용답동 전이곤(40·신동아 영업소장) 김종산(50·동강피역 대표) ▲화양동 허운회(52·서비스업) 강인식(58) ▲송정동 김성균(44·성우실업 대표) ▲군자동 이성전(54·삼화전자부품) 김종환(36·건축업) ▲중곡 제1동 박원식(39·학원 경영) ▲중곡 제2동 김춘기(36·농업) 신인용(42·상업) ▲중곡 제3동 오효무(49·상업) 임동식(31·건설업) ▲중곡 제4동 이석봉(50·공업) 김세환(43·건설업) ▲능동 이재선(49·상업) ▲구의 제1동 백남식(50) 이영한(49·상업) ▲구의 제2동 권승현(65·법무사) 박영태(34·종교인) ▲광장동 최복수(41·공업) 최순칠(62·건설업) ▲자양 제1동 이금장(49·상업) 문홍열(46·건설업) 자양 제2동 김영용(35·건설업) 김세호(49·의사) ▲자양 제3동 최태순(53·상업) 이종학(54·상업) ○동대문구 ▲신설동 신포균(53·제조업) ▲용두 제1동 김덕배(57·정신기공 대표) 최병조(48·협동상사 대표) ▲용두 제2동 김영섭(50·한의원 원장) ▲제기 제1동 김구하(52·금고 이사장) 전중이(48·상업) ▲제기 제2동 조우준(54·약사) 김두억(35·공업) ▲청량리 제1동 김삼출(49·금고 이사장) ▲청량리 제2동 김영회(67·상업) ▲회기동 박정철(47·건설업) ▲이문 제2동 정수모(56·금고 이사장) 우갑진(53) ▲휘경 제1동 김흥수(52·부동산중개업) 정태갑(56·공업) ▲휘경 제2동 박영철(55·합성수지업) 김희경(44·상업) ▲이문 제1동 강대석(56·상업) ▲이문 제3동 강태희(43·회사원) 장길용(52·상업) ▲전농 제1동 최인규(59·한약전재상) 김임택(50·공업) ▲전농 제2동 이윤복(36·한약업) ▲전농 제3동 조원정(53·금고 이사장) 권영일(53·식품가공업) ▲전농 제4동 조직희(49·사업) ▲장안 제1동 임승학(44·상업) 나광현(53·상업) ▲장안 제2동 최동근(53·무역업) 인택환(39·자영업) ▲장안 제3동 강근성(46·제조업) 오영신(46·상업) ▲장안 제4동 이기오(42·사업) 이진전(43·상업) ▲답십리 제1동 박재원(52·상업) ▲답십리 제2동 윤태희(56·상업) ▲답십리 제3동 박주웅(48·경미건업 대표) ▲답십리 제4동 이재덕(54·상업) ▲답십리 제5동 이갑영(55·상업) ○중랑구 ▲면목 제2동 박시하(45·컴퓨터학원장) 정원진(36·상업) ▲면목 제4동 이해수(43·상업) 고제일(66) ▲면목 제5동 장일평(48·건설업) 김승곤(41·평민지도위원) ▲면목 제1동 강성환(34·한성기업 대표) 김교상(59·우신상사 대표) ▲면목 제6동 서재웅(47·건축업) 김해진(65·신협 이사장) ▲면목 제3동 양찬(56·남일공업 대표) 박천식(45·평민대의원) ▲면목 제7동 성백진(40·상업) 조두현(53·상업) ▲중화 제2동 김광순(41·상업) 박성완(53·약사) ▲중화 제3동 김영구(48·사회교육업) ▲묵제1동 이석창(64·예식장업) 이승우(34·한의사) ▲묵제2동 박승웅(46·상업) 강민구(35·연수원 교수) ▲상봉 제1동 김현배(48·건축업) ▲상봉 제2동 김세인(49·자동차정비업) 윤여형(41·상업) ▲중화제1동 조규용(52·건설업) ▲신내동 백현진(32·교육방송 강사) 임종만(50·관광호텔 대표) ▲망우 제1동 조동만(49·성심석제 이사) 이창호(35·광고업) ▲망우 제2동 황기환(63·축산업) ▲망우 제3동 허용욱(58·건축업) 김종진(48·출판업) ○성북구 성북 제1동 최철모(42·상업) ▲성북 제2동 이민형(53·양곡소매업) ▲동소문동 정철식(50·로얄가구침대) ▲삼선 제1동 신진옥(47·중장비사업) ▲삼선 제2동 신종현(49·금고 이사장) ▲보문동 소정환(40·개성사 대표) 이만재(38·신발도소매) ▲동선 제1동 오채형(64) ▲동선 제2동 복정안(57·새마을금고) ▲돈암 제2동 김광호(44·풍연각 경영) ▲안암동 한춘자(46·여·유아원 원장) 김형구(53·미주기공 대표) ▲정릉 제1동 권혁기(52·광희택시 대표) 이천호(53·마을금고 사장) ▲길음 제1동 김덕수(61·덕수건설 대표) ▲정릉 제2동 안돈수(43·독서실 실장) 신쾌호(51·금강철강 대표) ▲정릉 제3동 김영식(50·신협조합이사) 황의휘(49·성진기계 대표) ▲정릉 제4동 최상열(43·새마을협회장) 이명환(57·삼환기업 대표) ▲길음 제2동 서화석(48·삼성대리점) 박연수(51) ▲돈암 제1동 김길태(53·양곡업) ▲길음 제3동 유진무(48·천안종합상사) 김갑재(57·한일보일러) ▲월곡 제1동 천복성(41·슈퍼경영) ▲월곡 제3동 나광수(46·수직가내공업) ▲월곡 제4동 조기찬(64·상업) ▲종암 제1동 서해선(50·흥해섬유 대표) 박덕기(49·학원운영) ▲종암 제2동 이연경(52·양곡상) 김지운(49·출판업) ▲월곡 제2동 류성열(48·유정화학 대표) ▲상월곡동 민응설(52·태창산업 대표) ▲석관 제2동 황호산(31·대학강사) ▲장위 제1동 홍청일(52·회사원) 이삼전(44·음식점) ▲장위 제2동 안걸용(46·건축업) 김종환(32·사업) ▲장위 제3동 김승태(41·약사) 최계락(31·동일가스 이사) ▲석관 제1동 정창만(50·삼원주맥 경영) 김정규(45·신발제조업) ○도봉구 ▲방학 제1동 최중규(49·보성실업 대표) 임안순(39·사업) ▲방학 제2동 이창희(49·협성공사 이사) 정병권(36·건축업) ▲방학 제3동 안치연(37·보험대리점) 이경덕(41·무역상) ▲도봉 제1동 남궁온(56·건축업) 김순배(45·건축업) ▲도봉 제2동 김달수(63·목욕탕업) 김종채(55·상업) ▲수유 제3동 김태정(57·쌍문기업 대표) 이한봉(46·사업) ▲쌍문 제1동 이상근(51·상업) 박윤배(51·봉제업) ▲쌍문 제2동 윤용한(56·사업) 이철주(32·사업) 이학순(47·여) ▲쌍문 제3동 서정회(54·보험대리점) 조기봉(72·상업) ▲번제1동 박승호(64·학원경영) 남창우(50·상업) ▲창 제1동 현용우(51·사업) 이종호(37·상업) ▲창 제2동 박응서(59·상업) ▲창 제3동 원귀만(51·약사) 박용서(54·사업) ▲창 제4동 안미좌자(47·여) 정두호(47·소개업) ▲미아 제3동 정각호(50·가구업) 이서형(50·독서실 경영) 유대운(41·정당인) ▲미아 제4동 박문배(52·상업) 박상욱(26·의원보좌관) ▲번제2동 김규환(52·상업) 김영민(38·약사) ▲수유 제1동 이길훈(50·상업) 심상우(53·인쇄업) ▲수유 제2동 신기철(35·상업) 김영강(44·회사원) ▲수유 제4동 원중근(45·건축업) 권태섭(47·약사) ▲수유 제5동 유영규(60·상업) ▲미아 제1동 류병권(50·상업) 황경오(51·상업) ▲미아 제2동 조일제(54·건축업) 김기선(50·상업) ▲미아 제8동 남상익(53·대리점 경영) ▲미아 제5동 홍복순(33·여·사업) 최송식(57·농업) ▲미아 제6동 박종환(42·상업) ▲미아 제7동 김진수(54·사업) ○노원구 ▲월계 제1동 강기건(73·건축업) ▲월계 제2동 김종성(67·공업) 김문학(51·농업) ▲월계 제3동 김인수(34·무역업) 연득봉(50·성원개발) ▲공릉 제1동 최유학(54·덕성화공 대표) 정도열(35·상업) ▲공릉 제2동 고달영(49·칠성제화 대표) 황의덕(53·한의사) ▲하계 제1동 최경원(43·건축업) 최염(53·사슴목장 경영) ▲하계 제2동 이장식(44·의류제조업) 하재윤(43·상업) ▲중계 제2동 순정호(43·건축사) ▲중계 제1동 김동익(48·과수원 원예) 이석창(43·상업) ▲상계 제3동 이한선(49·상업) 박관주(54·운수사업) ▲상계 제4동 최원환(53·건축업) 오용근(52·건축업) ▲상계 제2동 정천득(47·상업) ▲상계 제5동 김군수(52·상업) 김선회(45·시멘트제조업) ▲상계 제6동 권중설(49·법무사) 김학겸(63) ▲상계제7동 박흥수(46·중개업) 김종옥(40·상업) ▲상계 제1동 홍원식(48·제본소 경영) 곽종상(34·전기공사업) ▲상계 제8동 심현천(42·한영철강 감사) 박상철(39·속셈학원 경영) ▲상계 제9동 송광선(35·세무사) 정태진(57·상업) ▲상계 제10동 노태숙(38·신문사지국장) 한능박(37·약사) ○은평구 ▲녹번동 이훈규(59·도업선 대표) 이종복(41·학원 강사) ▲응암 제1동 권영주(54·상업) 장구형(57·사업) ▲응암 제2동 홍순탁(48·농업) 박남선(56·사업) ▲응암 제3동 오종환(52·건설업) 손세영(38·약국 경영) ▲응암 제4동 남대우(54·건축자재 판매) 고재돈(56·경일기업 회장) ▲신사 제1동 박정운(47·금고 이사장) 고성수(44·상업) ▲신사 제2동 이성환(55·써비스업) 이재칠(37·사회체육 지도) ▲증산동 최용근(55·써비스업) 서홍석(43·상업) ▲수색동 함재희(50·상업) 유준식(35·상업) ▲불광 제1동 이도영(54·상업) 임상묵(50·약사) ▲불광 제2동 최준호(49·사업) 임무현(48·사업) ▲불광 제3동 우형철(36·사업) 이기택(38·사업) ▲갈현 제1동 김한수(59·사업) 김원락(41·건축업) ▲갈현 제2동 임동균(42·체육인) 백영진(55) ▲진관내동 김기정(52·사업) ▲진관외동 김주환(53·금고 이사장) ▲구산동 선은규(31·건축업) 김희흥(50·상업) ▲대조동 조정환(32·학원 경영) 원용구(45·건축업) ▲역촌 제1동 박기호(50·극동산업) 전우대(45·건축업) ▲역촌 제2동 윤창순(57·사업) ○서대문구 ▲충정로동 송영우(46·초원건설 대표) ▲북아현 제1동 조민행(51) ▲북아현 제2동 윤익수(48·중곡식품 대표) ▲북아현 제3동 전성장(58·상업) ▲대신동 강석종(43·그린하우스) ▲창천동 정전촌(50·요식업) ▲연희 제1동 김정현(51·한국상사 대표) ▲연희 제2동 좌두행(54·상업) ▲연희 제3동 박노현(40·요식업) ▲천연동 전재환(50·상업) ▲현저동 이봉수(52·상업) ▲홍제 제1동 조갑현(41·상업) ▲홍제 제2동 이문복(42·수정전자 전무) ▲홍제 제4동 정화진(55·상업) ▲홍제 제3동 김영일(40·평민당원) 김종채(43·중개인) ▲홍은 제1동 최용완(43) ▲홍은 제2동 정병팔(53·상업) 성명제(52·전국냉동 대표) ▲홍은 제3동 김은천(51·민자당원) 구자억(52·회사 이사) ▲남가좌 제2동 김원주(43·평민당원) 임재선(50·목욕업) ▲남가좌 제1동 정일출(49·숙박업) 박정래(53) ▲북가좌 제2동 곽재만(53·건축사업) 정일수(48·상업) ▲북가좌 제1동 정혁주(58·금융업) 김평락(48·상업) ○마포구 ▲아현 제1동 조희태(54·상업) 송윤석(54·상업) ▲공덕 제1동 이천규(54·건설업) ▲신공덕동 이봉형(63·오파상 회장) ▲도화 제1동 구우석(57·상업) ▲도화 제2동 한현덕(50·대화산업 대표) ▲아현 제2동 김성환(53·덕성 대표) ▲아현 제3동 박주서(55) ▲공덕 제2동 김원태(60·호텔 대표) ▲염리동 손용호(57·상업) 황태식(56·사진인쇄업) ▲용강동 김종열(55·용식업) ▲대흥동 심재창(52·금고 이사장) ▲노고산동 홍성환(47·상업) ▲신수동 유남렬(51·상업) 김문태(41·연합지대 이사) ▲창천동 이종일(54·약사) ▲상수동 정연우(44·사업) ▲합정동 이강필(54·묘지공원 소장) 김동휘(52·상업) ▲망원 제1동 윤동현(40·전 공무원) 채운석(50·삼원포장 대표) ▲서교동 김상열(41·중원개발 대표) ▲동교동 이종만(71·부동산중개업) ▲연남동 이인구(43·진성주택 전무) ▲성산 제1동 윤정용(44·사업) ▲망원 제2동 홍길표(47·회사원) 전병만(39·사업) ▲성산 제2동 김유현(55·공업) 윤명규(50·건축서비스업) ▲상암동 권오범(46·은일 전무) ○양천구 ▲목 제2동 이훈구(42·다보건설 대표) 위두환(50·요식업) ▲목 제3동 안동혁(43·회사원) 윤민(60·금고 이사장) ▲목 제4동 장석위(41·원일기업 대표) 이연수(46·상업) ▲목 제1동 문영민(40·신성주택 대표) 주봉규(43·대지금속 대표) ▲목제 5동 육만주(42·건설 대표) 신우경(34·여·강사) ▲목 제6동 강태원(44·건설업) 유봉길(45·유당 대표) ▲신정 제2동 이상재(49·상업) 백형규(58·상업) ▲신정 제1동 장행일(45·상일주택 대표) 전정극(61·사업) ▲신정 제6동 김재실(40·사업) 정인홍(57·운수업) ▲신정 제7동 박귀섭(55·금고 이사장) 김길선(43·회사원) ▲신월 제1동 원춘희(56·금고 이사장) 명병수(38·상업) ▲신월 제3동 박준태(40·한의원 대표) 김연호(53·사회사업가) ▲신월 제5동 황원석(42·건설업) ▲신월 제2동 위용복(44·경도건재 대표) 김종훈(61·건축업) ▲신월 제4동 박동순(42·부동산중개업) 이근석(42·청해건설 대표) ▲신월 제6동 최정철(37·유선방송업) 정인택(61·건축업) ▲신월 제7동 이종수(43·카멜상사 대표) 이운재(42·체육관장) ▲신정 제3동 이상준(54·정당인) 고광택(63) ▲신정 제4동 황득성(45·유통센터 대표) 박두성(44·건축업) ▲신정 제5동 이규섭(54·사업) 김을용(39·정당인) ○강서구 ▲화곡 제1동 김종래(39·상업) 손기학(56·건설업) 원대연(48·건설업) ▲화곡 제3동 황인호(49·공업) 금종식(46·상업) ▲화곡 제2동 장수덕(39·건설업) 김용준(44·건축업) ▲화곡 제4동 남난우(46·여) 홍동필(48·건설업) ▲화곡 제5동 권병태(38·수영장 경영) 정병옥(53·여) ▲화곡본동 최환(30·학원장) 최창영(49·건축업) ▲염창동 문경희(51·건축설계) 장동선(41·자동차매매업) ▲등촌 제1동 이춘남(50·상업) ▲등촌 제2동 김인환(54·운수사업) ▲가양동 이철우(48·산업) 방화 제1동 김용일(51·강서쇼핑 대표) 김권숙(37·상업) ▲방화 제2동 이은종(49·상업) 홍영유(47·정당인) ▲발산 제1동 송병수(55·농협 이사) 발산 제2동 류기성(44·건설업) ▲공항동 권혁길(43·강서건설 이사) 김무길(53·정당인) ▲과해동 선호선(42·농업) ○구로구 ▲구로 제2동 송태복(49·조합 이사장) 오영석(62·일신공업 대표) ▲구로 제3동 정승우(36·상업) 이형재(53·금고 이사장) ▲구로 제4동 최기석(43·유선방송 대표) ▲구로 제5동 이관수(44·대광기업 대표) 윤주철(37·공업) ▲구로 제6동 조충행(49·약국) ▲신도림동 최재무(40·체육관) ▲구로 제1동 문수정(38·여) 정달호(42·홍진기업 대표) ▲고척 제1동 변주태(43·태화상사 대표) 김영판(41·기술개발 소장) ▲고척 제2동 유정길(46·대흥공사 대표) 경길수(46·마을금고 전무) ▲개봉 제1동 오완석(55·금고 이사장) 조병옥(57·양곡업) 황규태(38·럭키화재 대표) ▲개봉 제2동 채영세(49·농장) 박홍우(47·썬스포츠 대표) ▲개봉 제3동 유근무(53·백련가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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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방분열” 위기에 선 유고/반공 시위 격화… 유고의 앞날

    ◎개혁부진·경제난 겹쳐 불만 폭발/민족분규와 맞물려 집권당 최대위기 직면 지난 9일부터 계속되던 유고슬라비아의 유혈 시위사태가 12일 야당지도자가 석방돼 한 고비 넘는가 싶더니 13일 군부가 「헌정수호」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아연 긴장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시위는 그동안 유고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민족분규와는 달리 사회당(구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세르비아공화국 내부의 민주화요구 시위지만 유고를 국가분열의 벼랑으로 한 걸음 더 밀어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르비아공화국은 6개 공화국 2개 자치주로 이뤄진 유고연방내 최대의 공화국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해 온 공화국이며 연방분열을 반대해 온 곳이기 때문에 세르비아공화국의 시위와 군부의 강경자세는 한 공화국 내부의 문제를 넘어 연방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12월 민주화를 약속하면서 집권하고도 계속 언론을 통제해 온 사회당 정부의 언론탄압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해 개별공화국 등의 자유선거에서 사회당은 4개 공화국 2개 자치주에서 패배했지만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서는 승리를 거뒀었다. 지난해 12월 세르비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은 연방해체를 반대하고 「대세르비아주의」를 내세워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약속함으로써 압도적 지지를 끌어냈었다. 그러나 그는 집권후 민주화 대신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경제개혁 과정에서는 실업자를 양산해내고 인플레를 가중시키기만 했다(90년 1백20%,91년 현재 30%를 기록). 세르비아공화국내 16개 야당 세력들은 계속되는 언론통제에 항의하기 위해 9일 집회를 가지려 했지만 공화국 정부는 원천봉쇄로 맞섰다. 경제난으로 불만이 누증된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집회가 2명이 죽고 76명이 부상당하는,2차대전후 최초·최대·최악의 사태가 돼버리자 공화국 정부는 군을 동원하고 야당지도자를 구속하는 강경책을 구사했다. 그러나 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시위대는 친정부논조를 견지해 온 언론사 책임자 해임,강경진압 책임자인 공화국 내무장관 해임,구속자 석방,언론검열 폐지 등을 요구하면서 연일 시위를 벌었다. 시위는 세르비아내 노비 사드와 니스 등지로 번져나가고 고등학생들까지 가담하는 등 하루하루 힘을 더해 갔다. 결국 공화국은 정부는 12일 구속했던 세르비아개신당의 지도자 부크 드라스코비치를 석방하고 베오그라드 TV의 두산 미테비치사장 등 지탄받던 5개 언론기관 책임자를 해임시키는 등 시위대의 요구에 굴복했다. 시위대 요구의 절반이 충족되기는 했지만 사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13일에도 시위대는 해산하지 않은채 공화국 정부의 후속조치를 지켜 보고 있다. 유고 연방정부는 13일 연방 간부회를 소집,대책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간부회는 군부가 소집을 촉구한 것으로 군부는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안보 및 헌정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강경 조치를 요구했다. 순번제인 연방대통령직을 마침 맡고 있는 세르비아출신의 보리슬라브 요비치는 시위로 말리암아 연방행정이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군부의 요구에 따라 간부회를 소집했다. 13일 간부회에서 결론을 내지는못했지만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의 측근인 요비치연방 대통령과 군부의 발언으로 볼 때 비상사태 선포 등 걍경책이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시위사태는 그동안 민족분규와 경제난으로 시달리던 유고에 또 하나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던졌다. 군부와 국영기업 노동자,언론을 기반으로 집권하고 있는 세르바아 공화국 사회당 정부가 강공으로 나올 경우 그동안 분리 운동을 펴 온 슬로베니아공화국과 크로아티아공화국은 당장 연방을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들은 세르비아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군부가 민주화를 탄압하게 되면 자신들의 분리요구에도 강공을 펼 것을 우려,연방간부회에서 군을 동원한 강경책에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연방과 세르비아공화국 정부가 시위에 굴복하게 될 경우 세르비아공화국의 사회당 정부는 권력 기반이의 흔들리고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와의 민족회담에서 입장이 현저히 약화될 것이 뻔해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 경찰 폭력 LA 발칵(세계의 사회면)

    ◎흑인 뭇매현장 시민이 비디오로 찍어 TV에… “인권유린” 여론 비등 지난 3일 0시30분쯤 로스앤젤레스 근교 210번 고속도로선상. 5∼6대의 고속도로 경찰순찰차가 헬리콥터의 지원아래 한대의 흰색 현대엑셀승용차를 뒤쫓고 있었다. 8마일 가량의 질주끝에 순찰차에 진로가 차단된 엑셀승용차는 멈춰졌다. 차를 몰던 흑인 청년 로드니 킹(25·실업자)이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지자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경찰봉과 주먹·발길질로 그를 짓이겼다. 흑인청년은 유혈이 낭자한 채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연행됐다. 당시 이 흑인청년은 왼쪽다리가 부러졌으며 얼굴에도 20바늘을 꿰매야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구타장면이 사건현장 가까이 거주하는 한 아마추어 비디오카메라맨의 필름에 잡혀 TV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전역에 방영돼 사회문제화됐다는 점이다. 이 필름은 동료 고속도로 순찰대원 1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3명의 경찰관들이 3분여에 걸쳐 경찰봉과 주먹·발길지로 흑인청년을 무자비하고 잔인할만큼 난타하는 장면을담고 있어 시청자들을 전율케했다. 사건현장 인근에 거주하는 조지 헐리데이씨(31)가 찍은 이 필름은 제보를 받은 LA지역 TV 채널의 하나인 KTLA가 5백달러에 사들여 방영,대특종을 했고 곧이어 모든 TV 네트워크들이 이를 복사,방영했다. 만일 이 아마추어 카메라맨이 이 장면을 잡지 못했더라면 이 사건은 억울한 인권유린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의외로 파문이 커지자 경찰측은 한때 언론들에 대해 사건의 진상접근을 봉쇄하면서 사건을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 매듭지으려 들었다. 그 한 예가 피의자 킹이 현대 엑셀로 1백15마일 속도로 질주했다는 경찰 주장이다. 그러나 LA 현대자동차측은 엑셀의 최대시속은 91마일이라고 밝혀 속도위반이라는 경찰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했다. 드디어 검찰측과 FBI가 본격수사에 나섰으며 톰 브래들리 LA시장은 LA시 산하 전 경찰관들의 복무자세를 다시 정립하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당국은 관련 경찰관 13명 전원해직과 직접관련 경찰관 3명을 기소하는 선에서사건을 매듭지으려 하고있으나 여론은 데릴 게이츠 LA시경국장의 문책까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미국에서 다반사로 자행되고 있는 소수민족과 흑인에 대한 공안기관의 차별대우를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공론이 수렴될지에 현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3차산업인구 1천만 돌파/통계청 발표

    ◎기형적 비대… 전산업의 55% 점유/농림어업 부문은 1년새 23만명 격감 우리나라의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부문 취업자수가 사상 최초로 1천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23일 발표한 「시도별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10∼12월)중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부문 취업자수는 1천2만9천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전(89년 4·4분기)의 9백43만2천명보다 59만7천명이 늘어난 것으로 지난 1년동안 전산업의 취업자수 증가폭(49만9천명)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이에따라 전산업 취업자 가운데 이 부문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 부문의 고용점유비는 55%로 1년전의 53.2%보다 1.8% 포인트가 높아졌다. 통계당국은 이같은 3차산업 부문의 기형적인 고용비대화가 지속되고 있는데 대해 기업가와 근로자들이 정부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시책에도 불구하고 제조업분야에 대한 투자와 취업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광공업부문의 취업자수는 지난해 4·4분기중 5백2만5천명으로 1년전보다 14만1천명이 늘었으나광공업부문의 고용점유비는 27.6%로 89년 4·4분기의 27.5%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8년 4·4분기의 광공업부문 고용점유비는 29.1%였다. 농림어업부문 취업자수는 3백18만1천명으로 1년전보다 23만9천명이 줄었다. 이에따라 농업어업부문의 고용점유비는 89년 4·4분기의 19.3%에서 17.4%로 1년 사이에 1.9% 포인트가 떨어져 농림어업부문 취업자수가 급격한 감소를 나타냈다. 실업자는 43만4천명,실업률은 2.3%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자의 73%인 31만6천명이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6대 도시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6대 도시의 평균실업률은 3.5%로 전국 평균실업률 2.3%를 크게 상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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