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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 년의 시간을 건너는 방법

    천 년의 시간을 건너는 방법

    “이 사람아! 나는 종을 위해 한쪽 눈을 바쳤어. 혼을 담아야 천 년의 소리가 나오는 거지. 잔재주 부리면 끝이야, 끝!”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천 년의 소리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 증권회사 CF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주철장 원광식 씨(중요무형문화재 112호, 68세). 그를 만나기 위해 충북 진천의 작업장으로 찾아갔을 때, 느릿느릿 마당으로 걸어 나온 그의 첫마디는 이랬다. “뭐 들을 말이 있다고 기어코 온다는 거여.” 열일곱 살에 종 만드는 일과 인연을 맺었으니 그가 종에 미쳐 보낸 세월도 50년이 넘었다. 결혼하고 석 달 만에 쇳물이 튀어 한쪽 눈을 잃었을 땐 다 접자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런데 밤에 눕기만 하면 자꾸 귓가에 종소리가 맴돌았다.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땅덩이가 생기고 나만치 종 많이 만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전국 방방곡곡, 아시아 여기저기에 그가 만든 종이 7천 개가 넘는다. 새해 첫날을 여는 보신각종도 그의 작품이고, 화재로 소실되었던 낙산사 종도 그의 손을 거쳐 복원되었다. 무엇보다 그를 명실상부 대한민국 명장으로 만든 것은, 맥이 끊겼던 전통적인 종 제조기법인 ‘밀랍 주조 공법’의 재현이다. “죽어라 파고들면 뭐라도 생긴다”는 게 그가 50년 외길인생에서 몸으로 얻은 진리다. 그는 여태껏 제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가져본 적 없다. “헌다고 맘을 먹었으면 딸라 빚 아니라 땡빚을 얻어서라도 해야 하는 겨.” 그는 돈 많이 주는 사람보다는 뜻이 맞는 사람과 하는 일이 즐겁고, 그렇게 만든 종이 더 좋은 소리를 낸다고 믿는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엔 한 가지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의 소리. 그런 종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기존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천 년여 전 신라 장인들의 비법을 찾아, 7~8년간 중국과 일본을 떠돌며 자료를 모으고, 이를 토대로 수없이 종을 만들고 또 부수었다. 그를 애태웠던 ‘밀랍 주조법’의 비밀은 흙에 있었다. 경주 감포 지역에 있는 활석과 이암만이 1,200도의 쇳물 온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기술을 이어받은 고려 종이 신라 종만 못한 것도 흙의 문제였다. ‘날개’를 단 그는 돈이 생기는 대로 옛 종들을 복원하는 일에 몰두했다. 누가 돈을 주는 일도 아니었다. 문화재 훼손을 이유로 본을 뜨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인간문화재를 박탈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그깟 인간문화재 가져가라고 혀. 언제 그런 거 보고 종 만들었나.” 그렇게 만든 150개의 종들은 모두 진천군에 기부, 2005년 진천종박물관을 세웠다. “미쳐야 미친다”던가. 그는 이제 종소리만 들어도 구조 설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당좌의 위치가 높은지, 낮은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배가 고프다. 사형 주물법을 주로 쓰는 일본의 국보 종들을 밀랍 주조법으로 복원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시아의 불교국가들을 무대로 제대로 된 종을 선보이고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에밀레종을 복원해 이제는 녹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그 소리를 모두에게 들려주는 것이 평생의 숙원이다. 올해는 동국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실상사종을 복원할 계획이다. 천 년을 간다는 범종은 긴 세월 동안 그 입자가 서서히 부서지며 더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쇠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그날, 마지막으로 내는 소리가 그 종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다. “내 마지막 수명이 다하는 날 당신의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겨.”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우리가 한 생을 다해 부서지고 또 부서져 내는 마지막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 평생을 바쳐 만든 종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천 년의 세월 동안 울리고 또 울려, 숨 가쁘게 앞으로만 달려가는 중생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토닥일 테니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천 년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 [종교플러스]

    ●템플스테이 운영사찰 신청접수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은 2009년도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을 20일까지 모집한다.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되면 불교문화사업단으로부터 시설 및 운영자 교육지원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을 원하는 사찰은 2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갖추고, 프로그램 운영자를 확보해야 한다. 희망 사찰은 불교문화사업단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사찰 홍보물, 조감도 및 가람 배치도, 시설 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된다. 현재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은 87곳이 지정돼 있다. ●겨울생명평화학교 13일 개최 생명평화결사는 13일부터 15일까지 전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2009 겨울생명평화학교’를 개최한다. 도법 스님과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지난 5년간의 순례를 통해 제시한 화두인 ‘단순 소박한 삶을 위하여’가 주제.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 명상, 숲길걷기, 공동체 대화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도법 스님의 ‘단순 소박한 삶과 마을운동’, 황대권 공동체위원장의 ‘아쉬람, 공동체 마을 만들기’ 강연도 있다. ●내일 용산참사 희생자 시국법회 시국법회추진위원회(공동대표 수경스님 외)는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 5일 오후 6시30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용산 참사 희생자를 위한 시국법회’를 연다. 법회는 수경 스님의 여는 말을 시작으로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의 추모사와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의 법어 순으로 진행된다.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의식과 함께 108배 참회정진도 있다. 시국법회에는 스님 100여명을 비롯해 유족대표, 신도 5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회가 끝난 뒤 조계사~청계광장까지 추모행진도 갖는다. ●고 탁명환 소장 15주기 추모식 이단사이비연구의 선구자인 고 탁명환 소장의 15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월간 현대종교 주최로 열린다. 추모식은 월간 현대종교 탁지원 발행인의 사회로 진행되며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 장기기증운동본부장 박진탁 목사가 각각 설교와 추모사를 한다. 이날 추모식은 고 탁 소장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연구 사료를 엮은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탁지일 저) 출판기념회도 겸한다.
  • “5년간 걸으며 여유로운 몸·마음 찾았어요”

    “5년간 걸으며 여유로운 몸·마음 찾았어요”

    지난 5년간 전국을 돌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세상에 외쳐온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단장 도법(59) 스님이 오는 14일 5년간의 탁발순례를 마무리한다.‘종교는 나를 가두는 닫힌 신앙이 아닌,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루기 위한 열린 사상’이라며 먼 길을 떠났던 도법 스님이 순례 회향을 앞둔 9일 기자들과 만나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제는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삶을 털고 아담하고 소박하게 살아간다는,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2004년 3월1일 탁발순례를 시작한 지리산 노고단에서 14일 생명평화기원제를 갖는 것으로 5년여의 순례를 마무리하는 도법 스님.스님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년간 걷고 걸으면서 훨씬 더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과 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향 소감을 밝혔다. 5년간 전국 3만리를 돌아 아침명상과 걷기순례,그리고 지역 인사들과의 허물없는 대화모임을 이어오며 만난 사람만 해도 8만여명.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세상의 고민과 불만,그리고 민초들 속에서 거듭 ‘나’를 내려놓으며 걸었던 그 험난한(?) 길 끝에 선 스님은 분명 종전보다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5년 순례가 10년 선방 생활보다 훨씬 더 유익했다.”고 말하는 스님.“우리들은 부처님은 거룩하고 밥은 중요하고 똥은 더럽다며 부처님만을 신비스럽게 존중하지만 밥 없는 부처님,부처님 없는 밥,밥 없는 똥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며 모든 존재의 평등을 강조한다. “나에게 유익하면 남에게도 유익하고 남에게 유익한 것이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 세상 이치인데 생명과 평화가 위협받고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 세상은 바로 이 본래의 이치와는 정반대로 사는 ‘전도몽상’이지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남 없이 모두 연관돼 있고 거룩하다.’는 동체,그 거룩하고 귀한 존재들을 모두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자비’.바로 부처님이 늘상 역설한 ‘동체대비’이다.그래서 스님은 “연꽃을 환히 피울 때 더 생명력을 갖추는 연못을 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본래 부처’를 시행하려는 방식인 선(禪)과 보살행.스님은 “이 ‘본래 부처’를 위한 새로운 대승불교 운동이 일지 않는 한 한국 불교의 미래는 없다.”며 선불교와 보살행 불교의 지성화를 꼭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순례를 마친 스님이 돌아갈 곳은 전북 남원,지리산 자락 산내면의 제 절 실상사.“논에선 벼를 자라게 하고,산에선 나무를 키우는 이타행의 물같은 존재로 살겠다.”는 스님은 부처님이 말하는 연기의 가르침을 따라 2000여 산내면 주민들과 함께 단순 소박하게 민주적으로 살 수 있는 대안 공동체를 일굴 꿈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편 도법 스님과 장정을 함께한 순례단은 13,14일 단출한 회향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13일 오후 서울역에서 길놀이를 펼친 뒤 숭례문을 떠나 청계광장을 질러 도착한 종로 보신각에서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명상을 한다.순례 내내 했던 그 의식이다.이어서 오후 4시 서울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전국 순례 5년 닫는 마당’을 열 예정.이 자리에선 순례단장 도법 스님을 비롯한 단원들이 함께 감사의 말을 하며 음악인 한태주,시인 김해자,소리꾼 정유숙,바리톤 정찬경 등의 공연도 열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현장 귀농학교’ 4기생 모집

    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1년 동안 농사 살림을 직접 살아보는 정착 과정의 교육과정인 ‘현장 귀농학교’ 제4기생을 모집한다. 이번 귀농학교는 남원, 봉화, 횡성, 장수, 하동, 거창 등 9개 지역에서 실시한다. 대상자는 이론 및 실습과정의 귀농학교 수료자로, 다음달 29일 서울 양재동 인드라망 교육센터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02)576-1886.
  • [어린이 책]책갈피마다 은은한 부처님 가르침

    안도현 시인이 작정하고 불교동화를 썼다. 제목에서부터 심상찮은 메시지가 읽히는 책 ‘호미를 먹은 쥐’(임양 그림, 파랑새 펴냄)다. 하지만 편견은 금물이다. 불교 교리나 사상을 직설적으로 노출시킨 동화가 아니란 사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비칠 듯 말 듯 책갈피 구석구석에서 은은히 배어나는, 요령많은 동화책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친구’ ‘나눔’ ‘겸손’ 등 크게 셋. 모두 10편의 짧은 동화가 묶였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들 이야기가 단순히 지은이의 머릿속에서 창작된 것들이 아니라, 인도의 전설과 민담에 기초했다는 사실이다. 전설과 민담에 부처의 가르침이 덧입혀진 이야기(자타카)를 10여년 동안 인도에서 불교학을 공부한 지리산 실상사 재연 스님이 번역해 이를 시인이 글맛을 살려 새롭게 썼다. 짧은 이야기들은 무심히 화두를 던지듯 깊은 사색을 해보라고 주문한다. 책 들머리를 장식하는 ‘망고나무는 내 친구’는 우정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웅변한다.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매단 망고나무.4형제가 차례대로 나무를 찾아가 열매를 달라고 말을 건다. 그런데 나무를 부르는 첫마디가 다 제각각이다. 맏형은 “어이∼”, 둘째형은 “큰형”, 셋째형은 “삼촌”, 그리고 막내는 “친구야!”. 망고나무의 마음을 제일 크게 움직인 건 누굴까. 망고열매를 몽땅 얻은 주인공은 바로 막내였다. 그윽한 메시지들이 먹선 꿈틀대는 채색 동양화들과 기막히게 호흡을 맞췄다. 초등생.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평생 가꾸고 다듬어 온 내 사유의 총화”

    “평생 가꾸고 다듬어 온 내 사유의 총화”

    5년째 전국을 돌며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이어오고 있는 전 실상사주지 도법(59) 스님이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불광출판사)을 펴냈다. 생명평화의 삶을 화두로 살아온 스님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한 끝에 세상에 자신있게 내놓은 결정체. “진리의 사랑 길에서 꽃 한 송이를 주웠다. 그 꽃의 이름은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이다. 한 인간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출가 후 일관된 길을 걸어오면서 가꾸고 다듬어온 내 사유의 총화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해서 ‘대쪽 스님’으로 불리는 도법 스님이 서문에서 ‘내 사유의 총화’라고 당당하게 밝혔듯 이 책은 ‘구도자 도법’ ‘인간 도법’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생명평화의 세계관과 철학, 생명평화경, 생명평화 수행체계, 대중들과의 대화로 나뉘지만 변함없이 관통하는 사상이자 정신은 역시 인드라망처럼 얽혀진 존재의 ‘관계’인 그물코다. 모든 생명이 연관을 맺어 그물코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세계를 하나로 묶는 큰 원칙인 대동소이와 생명평화에 관심을 가질 것을 끊임없이 외친다. “사람들이 ‘대동’은 못 보고 ‘소이’에만 매달리니 갈등과 다툼이 생기죠. 종교가 할 역할은 ‘대동’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생명평화운동입니다.” 그래서인지 스님은 책에서 생명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지침으로 ‘생명평화경’을 제시했고 이 ‘생명평화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행법으로 만든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 명상’을 직접 녹음한 CD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생명평화경’은 불교를 비롯해 인류사에서 가꿔졌던 모든 세계관을 함축한 것. 불교의 화엄사상부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천도교의 가르침까지 담겼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마음가짐에서 ‘법화경’ 속 보살상과 일치하는 대승보살의 실천가를 봅니다.‘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과 ‘동체대비의 삶을 살라.’고 한 부처님,‘사람을 하늘로 인정하고 존중하라.’고 한 천도교엔 모두 생명 평화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2만 5000여리를 걸으며 각계각층의 대중들과 대화를 나눠온 도법 스님. 다음달 4일부터 100일간 서울지역 순례를 한 뒤 12월 중순쯤 탁발순례를 마무리하는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남은 일이 있다면 붓다, 예수, 간디의 안목과 마음을 담은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즉 생명평화의 삶을 온전히 내 삶이 되게 하고 친구의 삶, 이웃의 삶, 세상의 삶이 되게 하는 일일 터이다. 할 수 있는 한 그 길에 전력할 뿐 그 밖의 다른 일이 또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지리산서 제7회 종교인 대화마당

    종교환경연대는 다음달 21∼23일 2박3일간 지리산 실상사 마을에서 ‘마을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의 제7회 종교인 대화마당을 연다. 행사는 지리산 숲길 걷기와 농활 체험마당, 마을공동체와 관련한 대화마당, 친교의 시간인 어울림마당으로 진행된다.(02)720-1654.
  • [열린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열린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삭발하고 지리산에 머문 지 석 달째다. 세상 최고의 예술작품도 자연 만큼 아름답지도, 역동적이지도 못하다고 새록새록 느끼는 하루하루다. 새 소리에 잠을 깨면 솔숲 새로 어느덧 동살이 희붐하다. 눈부시게 청초한 산목련과 새뜻한 으아리, 소담스레 꽃들을 단 까치수염 곁으로 여름 햇살이 스며들면, 꽃잎에 연 이슬들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발을 옮기면, 솔향기를 함빡 담고 와 볼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은 그지없이 청량(淸凉)하고,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에 나무들이 제 생긴 대로 화답하여 내는 교향곡은 더 없이 청염(淸艶)하다. 몸을 낮추어 가까이 들여다보면 손톱보다 작은 참꽃마리 하늘색 꽃잎이 그지없이 아리땁고, 서서 멀리 바라보면 첩첩이 이어진 지리산의 품이 마냥 너그럽고 웅대하다. 자연은 읽을수록 의미가 샘솟고, 늘 감동해도 다함이 없는 무진장의 텍스트다. 이리 자연을 벗하는 것 이상으로 즐거운 일은 고운 이들을 만나는 일이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IMF 이후 서울은 급속도로 타락했다. 대화의 소재는 돈 버는 것과 감각에 즐거운 것 일색이다. 이 판에서 올바른 삶에 대해 말을 꺼내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십상이었는데, 여기 오니 그 반대다. 서울에선 타인의 것을 취해 내 것으로 삼는 길에 대해 고민하는데, 여기는 타자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방편에 대해 성찰한다. 세속의 탐욕과 부패가 싫어, 출가한 사람, 귀농한 사람, 활동가로 뛰는 사람, 대안교육을 하러 온 사람들이 실상사, 인드라망공동체, 생명평화결사, 귀농학교, 작은 학교를 매개로 공동체를 이룬 탓이다.‘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한국 버전이다. 여기 사람들은 다른 전원마을이나 생태마을처럼 나 혼자 자연 속에서 잘 살고자 하지 않는다. 스님, 농민, 학생이 한 데 어울려 버스를 빌려 대운하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 순례를 하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채의식에 시달리던 필자도 신나서 그들과 함께 하였고 따로 광화문에도 갔다. 그날 강경진압이 예고되었는 데도 수많은 시민들이 태평로에 운집하여 강렬한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촛불이 맺힌 사람들의 눈동자는 야생화보다 아름다웠다. 그를 보며 “자연보다,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좀 더 어여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자들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밉살스러운 것에 대하여 저항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두울 때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이들의 저항이 있었고, 이것이 모여 세상을 바꾸었다. 극우파 사람들도 지금 한국 사회에 부조리와 부패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금이 있어 바다가 썩지 않듯, 이 저항하는 주체가 있었기에 세상은 그나마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게다. 세상 이치가 이럴진대, 군대만 갔다 오면 공손해져서 돌아오는 복학생들, 자유로운 지성의 광장이어야 할 대학에서마저 폭력을 행하거나 이를 수용하는 학생들, 아무 비판도, 질문도 없이 대학생활을 소일하거나 새내기부터 취업공부에만 매달리는 예스맨들이 오늘의 한국 대학에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가정, 교육, 사회, 국가의 시스템이 모두 억압에 길들여지도록 강요하고 내면화하는 복종의 문화인 탓이다. 이를 깨고,‘발칙한’10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구속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실명으로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고 있다. 그들에게서 ‘추한 것에 저항하는 주체’의 싹을 본다. 그 싹들을 밟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우는 행위다. 먼저 싹을 틔운 이들은 그 싹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싹들이 오롯이 자라 서로 의지하며 숲을 이루고 꽃들로 흐드러져 세상 곳곳으로 향기를 날릴 때, 사람들은 말하리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숲이 저기 대한민국에 있다고.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 교수
  •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

    [지리산 산마을이야기] 전북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www.maedong.org)인 ‘매동’은 마을 왼쪽 능선에 고양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묘동’으로 불리다가 훗날 그 형세가 매화처럼 아름답다 해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지리산 정상 천왕봉부터 멀리 반야봉, 가깝게는 삼정산(1261m) 조망이 가능한 곳으로 지난주에 잠시 언급한 ‘지리산길’의 출발점이자 삼봉산∼백운산을 경계로 도(道)를 달리한 경남 함양군 마천면과 더불어 변강쇠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녹색농촌마을로 인기몰이 마천면 오도재 정상의 변강쇠 공원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매동마을에도 ‘변강쇠 백장공원’이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강쇠가 이곳의 장승들을 뽑아 땔감으로 쓰다가 대방장승이 크게 노해 팔도 장승을 모이게 하고 벌을 내린 곳”이라는 것. 공교롭게도 이 이야기 역시 오도재와 벽송사, 그러니까 마천면 일대에 비슷하게 전해 내려온다. 산내면 대정리에 속한 매동은 소년대, 유평, 백장 등으로 조그맣게 나뉘는데 매동만 놓고 보면 50가구가 채 못 된다.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니 민박집도 여럿 되지만 간판을 내건 곳은 전무하다. 그저 여염집 살림살이와 밥상을 그대로 제공하는 셈이다. 주민들 대다수는 논농사를 포함, 표고버섯, 고사리, 고추, 감자,(하우스)상추, 가지 등을 재배하는데 고사리의 경우 전 농토의 30%를 차지하며 농가 전체 연 수익도 얼추 1억원 정도란다.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작물이다. ●“고시 패스 스무명도 넘어” 소문난 명당 바로 뒷산엔 실상사 말사인 서진암이 있는데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이길춘(65)씨는 “이곳에서 공부해 고시 패스한 사람이 스무 명은 될 것”이라 귀띔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보물 제40호 석등이 있는 백장암, 그리고 단일 사찰로는 문화재가 제일 많다는 실상사 등을 지척에 두고 있다. 비 피해, 눈 피해, 산사태 피해, 바람 피해 없이 매화처럼 곱고 강하게 견디어온 마을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이 이 근방을 붉은 피로 물들일 때도 용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교육열도 대단해서 현역 박사, 교수, 교사, 은행장까지 줄줄이 배출했다며 이길춘씨의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장직을 맡기도 했던 이씨는 도지사에게 편지를 써 마을 앞에 직행버스가 정차하도록 했고, 마을회관 앞 주차장 공사나 녹색농촌테마마을 지정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재춘(59)씨는 매동은 물론 산내면 일대를 손금 보듯 빤히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내리 13대째 살고 있는데다 1967년부터 지난해까지 무려 40년간 집배원으로 일한 덕이다. 짬짬이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도맡거나 편지를 대신 읽어주기도 했는데 군대에서 보낸 아들의 편지 앞에선 같이 울어버린 적도 많다. 오토바이는커녕 자전거도 없던 시절엔 ‘숙박구’라 하여 중간에서 잠을 자고 편지를 배달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토끼하고 발맞춘 시골골짜기”이다. 겨울엔 특히 더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3∼4㎞씩 걸어도 내다보는 이 하나 없이 “두고 가시오.”라는 목소리만 들려올 땐 서글퍼질 정도였다고.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일 뿐이지 대체로 산골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존경받는 직업이었다고 술회한다. 남편이 빨간 가방을 메고 산내면 일대를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아내 차금남(53)씨는 30년 가까이 한봉을 해왔다. 가난과 함께 성장했던 터라 근면 성실이 몸에 밴 부부다. 이씨는 아직도 푸른 제복을 입고 있다. 묵직한 가방은 진즉에 내려놓았지만 그이는 요즘 태양과 땅과 바람과 빗줄기가 전하는 풍요한 소식들을 들고 논밭으로 향한다. 그가 대신 읽어줄 자연의 소리가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법도 하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 (www.emountain.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5) 경남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5) 경남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

    경남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은 ‘복숭아꽃이 만발하다’는 뜻인데, 행정구역 개편때 마천에서 으뜸가는 수도마을이라 하여 ‘도마천’이라고 했다가 그 후엔 그냥 줄여서 ‘도마’라고 부른다. 청주 한씨의 정착촌으로 마을 입구 경치 좋은 천변에 ‘도원정’이라고 쓰인 아담한 정자가 있다. 여름철엔 피서객들 차지지만 원래는 청주 한씨의 누각이다. 한때는 가구 수가 60여호에 달하던 것이 지금은 40 호가 좀 못 된다. 도마는 지리산꾼들에게 소위 ‘칠암자 코스’로 불리는 산행 기점이기도 하다. 실상사에서 시작해 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 이렇게 일곱 개의 암자를 거쳐 주능선 삼각고지와 연하천대피소 사잇길로 붙게 되는데, 준족이라도 배낭이 가볍지 않다면 꼬박 하루를 쏟아 부어야 닿을 수 있는 먼 거리다. 따라서 당일산행으로 부담없이 즐기려는 이들에겐 영원사부터 역순으로 시작해 이곳 도마마을에서 끝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붉은 단풍 듬성듬성 흐드러진 마을엔 지붕을 새로 얹는 공사 소음만 간간이 들려올 뿐 대체로 적막하다. 남원 산내면이 고향인 양향순(69) 할머니는 50년 가까운 마천 생활 덕에 경상도 사투리가 더 입에 붙는다. 산내와 마천은 행정구역으로 나뉜 도경계일 뿐, 이곳에선 전라도 경상도를 나누는 일조차 무의미하다. 코앞 마천에서 시집온 곽기선(73) 할머니는 큰아들이 쉰을 넘겼으니 결혼한 지 족히 반백 년이 넘고도 남는다.“나는 말주변도 없고, 할 말도 없소.” 손사래를 치지만 불쑥 찾아온 손님을 매정히 몰아내진 않는다. 볕 좋은 툇마루에선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1915m)의 위용이 우뚝하다. 이 마당을 놀이터 삼아 삼형제가 자랐다. 다른 집들이 그렇듯 지금은 죄다 객지에 나가 있지만 할머니의 아들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천왕봉이 올려다보이는, 혹은 천왕봉이 내려다보는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무수한 꿈을 꾸었을 것이다. 젊어서 상봉(천왕봉)엘 딱 한 번 올라가봤다는 곽기선 할머니. 손에 잡힐 듯 저렇게 가까운데도 이제는 평생을 두고 다시는 올라서지 못할 머나먼 산이 되었다. 여든다섯의 신봉옥 할아버지는 4년 전쯤 이 일대를 휩쓸고 간 수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태풍 루사는 마천면 일대의 지리산기슭을 흉칙하게 긁어 놓았다. 견성골에 물이 넘치면서 애꿎은 집이 쓸려 나가고 무너진 흙더미에 깔려 사람이 죽기도 했다. 어디 수마의 기억뿐일까. 낮에는 군인의 편에서, 밤에는 빨치산의 편에서 살며 생명을 부지했던 한국전쟁의 몸서리치는 악몽 속에는 “죄 없는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만이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8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이 댁도 예외는 아니어서 객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몸져누운 아내와 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구의 몸만 남았을 뿐이다. “군수에게도 도지사에게도 얘기를 해봤지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라곤 노인들뿐인데 버스가 다니는 마천까지는 한참이거든. 하루 두어 번씩이라도 마을버스를 놓아달라고 건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어요.” 말을 마친 신 할아버지는 낮은 지팡이에 의지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노거수 그늘로 흔들리듯 사라지신다. 지붕 공사를 끝냈는지 마을은 다시 고요와 적막 속으로 무겁게 젖어 들었다. ● 교통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도마마을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면소재지 마천에서 마을까진 약 2㎞로 두 곳을 오가는 버스는 없다. 택시요금은 4000원 안쪽. 그 외 부산, 대구, 전주 등에서도 함양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백무동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글·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 기자(www.emountain.co.kr)
  • [종교플러스] 불교 귀농학교 새달 4일 개교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9월4일부터 11월2일까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인드라망 교육센터에서 제21기 불교귀농학교를 개설한다.귀농을 꿈꾸거나 대안적 삶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강의.9월14∼16일 지리산 실상사지역공동체에서 현장실습도 있다.31일까지 수강생 모집.(02)576-1886.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함양 삼봉산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둘러싸여 전형적 산악 지역인 경남 함양의 삼봉산(1186.7m)은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통한다. 함양읍과 마천면,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솟은 삼봉산과 그 아래 백운산(902.7m)∼금대산(847m) 능선은 엄천강 물줄기에 의해 지리산과 나뉘었지만, 삼봉산 기운은 서쪽 투구봉(1068m)에서 팔령을 지나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를 가르며 연비산(842.8m)∼안산(641m)∼아홉새드리를 거쳐 천왕봉을 출발한 백두대간과 맞닿는다. 이 혈맥이 육십령∼덕유산으로 이어지니, 남녘의 큰 산줄기 지리산과 덕유산의 양대 기운을 모두 품은 산이라 할 수 있다. 동서로 길게 누운 삼봉산은 급경사가 많아 대체로 산세가 험한 편이다. 반면 남원 산내 쪽으로 신라 고찰 실상사와 백장사, 마천 쪽으로는 금대암 등 좋은 절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실상사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을 비롯해 석등, 철제여래좌상 등의 보물이 여러 점 있고, 백장사에는 국보 제10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금대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수령 500년의 전나무가 자라고 있는 등 문화재와 볼거리도 다양하다. 삼봉산 산행 들머리는 크게 네 군데로 나뉜다.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 국도상의 팔령에서 투구봉으로 오르는 길이 약 4.75㎞, 상죽림을 거치는 길은 2.6㎞, 동쪽 오도재에서는 3.9㎞쯤 된다. 서쪽의 남원 산내면 백장사에서도 오를 수 있다. 네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해 정상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지리산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백운산, 금대산을 거쳐 내려오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삼봉산∼백운산 구간은 숲이 우거진 곳이 많지만 금대산과 가까워지면서 자주 시야가 트이며 겹겹이 두른 지리산 봉우리들이 잘 보인다.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의 등구재는 산내와 마천, 즉 전남과 경남을 잇는 고갯마루다.‘등구’라는 지명은 ‘거북이 기어 올라가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고 곶감이 달기로 유명한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바로 등구 마천이다. 오도재를 출발해 삼봉산, 백운산, 금대산을 차례로 거쳐 금대암으로 내려서는 데 약 5시간이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들이 손짓하듯 서 있는 오도재 임도. 거기서 10분쯤 올라가면 잠시 쉬어가기 좋은 정자 관음정이 나오고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삼봉산 정상에 닿게 된다. 지리산 전망대답게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엔 하봉∼웅석봉을 주축으로 한 동부능선이, 서쪽으론 반야봉∼만복대로 이어진 서북릉이 주르륵 펼쳐진다. 등구재 안부를 통과하면 꾸준한 오르막이 계속되고, 무성한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면 곧 백운산. 삼봉산에서 30분 남짓 걸린다. 반쪽짜리 무덤 때문에 백운산 정상 표지석이 구석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 수풀이 무성할 땐 잘 보이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석∼무덤과 일직선 나무 사이에 지리산 천왕봉이 가깝다. 백운산에서 금대산도 지척이다. 바위가 많은 금대산에 다가설수록 등산로는 삼봉산 구간과 달리 시야가 탁 트이며 조망이 시원하다.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서면 마천 일대와 걸어온 오도재∼삼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외로운 고사목 하나가 바위틈에 뿌리를 두고 앙상한 뼈처럼 꽂힌 곳도 있다.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위에 올라서니 멀리서 보던 산불감시초소 건물이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산이다. 하산은 금대암 쪽으로 하며 정상에서 금대암까지 20분이면 충분하다. 금대암 사찰 뜰에는 눈앞의 지리산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볼 수 있게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자. 글 정수정 사진 황소영(월간 MOUNTAIN 기자)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4) 부안 능가산 내소사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4) 부안 능가산 내소사

    한반도 서쪽 끝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능가산 자락에 소담한 연꽃 형상으로 앉은 내소사(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국립공원 안에 들어있어 철을 가리지 않고 신도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항상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손을 맞는 정갈한 고찰이다. 언제 어디에서건 평상심을 허물지 않는 법랍 높은 선지식(善知識)을 닮았다고나 할까.‘맑고 때 묻지 않은 사찰’을 들 때 빠지지 않는 도량,‘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절집’의 명성만큼 내소사는 숱한 사연과 스님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승경전 능가경을 설했다는 ‘능가산’.‘능히 모든 마장(魔障)을 끊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 담긴 불가의 마음속 성지이자 길지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내소사의 주봉인 관음봉이 능가산이라 불리면서 이 내소사는 ‘능가산 내소사’로 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1300년 고찰 내소사(來蘇寺)에 ‘내생(다음 세상)에 반드시 소생(蘇生)하라’는 창건주의 절절한 원이 서렸음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찰이 처음 섰을 때의 이름은 내소사가 아닌 소래사(蘇來寺)였다고 한다.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惠丘)라는 스님이 대소래사와 소소래사 등 두 개의 절을 세웠는데 대소래사는 불 타 없어지고 지금의 소소래사만 남았다는 것이다. 원 이름인 소래사는 고려시대 정지상의 ‘제변산소래사’를 비롯한 시문들과 조선 중종25년(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명확히 등장한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소래사와 내소사란 표현이 혼용되지만 조선 숙종 26년(1700년) 조성된 ‘영산회 괘불’에 ‘내소사’란 이름이 처음 나오고 이후 ‘해동지도’‘변산내소사사자암중건기’등 18∼19세기 문헌엔 모두 내소사로 기록되어 있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을 놓고 세간에서는 “이곳 석포리에 상륙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절에 찾아와 큰 시주를 한 뒤 이를 기념해 이름을 바꿔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친다. 이곳은 당시 나당 연합군에 맞서 싸운 백제의 마지막 저항지였던 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절에 시주한 소정방의 이름 ‘소’자 에 절의 개명을 연결한 것이 맹랑해 보이지만 실제로 ‘부안군지’에는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사대주의에 빠진 학자들이 이야기를 허투로 꾸며 군지에 올린 사실이 나중에 확인됐고 부안군과 사찰측이 그 기록을 삭제키로 합의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한다. 사찰의 이름이 바뀐 연유는 아직도 명확치 않다. 하지만 소래사면 어떻고 내소사면 또 어떠한가.“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일이 소생되기를 바란다.”는 큰 뜻에 차이가 없을 바에야…. 아무튼 학계에서는 ‘부안지’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 전하는 “경오년에 변산에 큰 불이 나 사찰과 임야가 모두 불탔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1810년경 대소래사가 화재로 없어진 것으로 본다. 남은 소소래사는 1633년 청민(靑旻)이 중건했고,1902년 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만허(萬虛)가 보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600m에 걸친 전나무숲을 관통해 천왕문에 서면 기둥의 예사롭지 않은 주련이 눈에 든다. ‘鐸鳴鐘落又竹(탁명종락우죽비) 鳳飛銀山鐵城外(봉비은산철성외) 若人問我喜消息(약인문아희소식) 會僧堂裡滿鉢供(회승당리만발공)’/목탁소리 종소리 죽비소리 어울리니, 은빛 산속에 봉황새가 날아드네. 누가 내게 무슨 기쁜 일 있나 묻는다면, 당우(堂宇)에서 스님들께 발우가득 공양 올린다고 하리. 내소사에 주석하며 호남지역에 선풍을 크게 일으킨 해안(海眼·1901∼1974) 대종사가 득도하면서 남긴 오도송. 얼핏보면 산 속에서 수행하며 부처님께 예불하고 공양 올리는 기쁨의 평범한 표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저 스스로를 범부(凡夫)라 부르며 평생 수행에 몰두했던 선지식의 ‘칼날 같은 사자후’라는 주지스님의 귀띔에 주련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소문났던 해안 스님은 내소사에서 만허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해 호남 선(禪)불교의 여명을 밝힌 인물. 평생 수행과 정진으로 일관해 ‘호남지역의 대도인(大道人)’으로 추앙받았는데 늘상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절은 전쟁을 하는 곳이야. 죽느냐 사느냐 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생명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란 말이야.” 환갑을 맞던 해에는 스스로 자신의 장례를 치르며 “다시 태어났다는 각오로 새롭게 수행자로 거듭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일주문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오르면 내소사를 중창시킨 해안 스님을 비롯한 고승들을 모신 부도전이 있다. 해안 스님의 부도앞 비석엔 ‘해안범부지비’라 쓰여져 있다. 뒷면에 탄허 스님이 쓴 비문 ‘生死於是 是無生死(생사가 이곳에서 나왔으나 이곳에는 생사가 없다)’에 눈길이 쏠린다. 해안 스님 입적후 제자들이 오대산의 탄허 스님을 찾아가 어렵게 부탁해 받은 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내소사의 사격과 선풍이 변치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왕문 앞에는 ‘할아버지 당산목’이라 불리는 수령 700년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일주문 앞에도 비슷한 나이의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할머니 당산목’이라 이름붙인 점이 흥미롭다. 과거엔 음력 정월 대보름 전날밤 이 느티나무 앞에 제수를 차려 내소사 스님이 주관해 절안에서 재를 모신 뒤 내소사 입구 느티나무에서 마을사람들과 합동으로 동제를 지내곤 했단다. 토속신앙과 불교가 융화된 독특한 당산제로 다른 지방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1914년 실상사(實相寺) 터에서 옮겨왔다는 봉래루 누각을 지나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아상(我相)을 버리고 나 자신을 낮춘다.’는 바로 그 하심(下心)으로 몸을 옮기면 이내 대웅전으로 치닫는다. 계단을 올라 허리를 펴면 맞은 편 정면에 단청이 모두 지워진 알몸의 소박한 대웅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kimus@seou.co.kr ■미완의 대웅전이 된 까닭은 내소사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ㅁ’자 가람배치의 정점인 대웅보전(보물 291호)이다.1633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조선중기의 대표작격 전각. 전각의 단청은 모두 벗겨졌지만 “남길 것도 가져갈 것도 없는 무소유의 경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이렇듯 이름난 전각이지만 누가 어떻게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대신 숱한 설화들만 전한다. 설화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대웅보전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大虎)선사가 지었고, 관세음보살상 등의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푸른 새가 그린 것으로 통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대웅전 건립공사를 맡은 화공이 단청을 하는 동안 절대 안을 들여다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여러 날이 지나도 기척이 없어 궁금해진 이 절의 사미승이 문틈으로 엿보니 푸른 새 한 마리가 붓을 문 채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새가 마무리를 안 하고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미완의 대웅전으로 남게 됐다.”설화의 내용대로 대웅보전의 동쪽 도리중 하나는 바닥 색칠만 한 채 단청을 넣지 못했다. 천장의 공포 한 군데에도 목침 크기만 한 빈 공간이 있는데 법당을 지을 때 동자승이 재목을 감추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의장(意匠)과 기법도 독창적이다. 아주 복잡한 구조의 다포식 구조이지만 못을 쓴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순전히 나무로만 깎고 짜맞춘 솜씨가 그야말로 구도의 경지 그 자체이다. 법당 안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탱화도 모두 일품. 특히 삼존불을 모신 후불벽의 ‘백의관음보살 좌상’은 남아있는 백의관음보살중 가장 큰 것. 백색 옷으로 전신을 감싼 채 바위에 앉은 모습인데 총 6칸 흙벽에 단숨에 그려나간 신심이 엿보인다. 대웅전 전면의 8짝 봉합창문을 장엄(莊嚴)하고 있는 꽃 문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연꽃, 국화, 모란 등 여러 꽃무늬를 조각한 꽃문살인데 마치 꽃잎이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고 정교하다. “부처님집 방안은 용봉도 날고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온갖 꽃비가 내리는구나.” 조계종 문화부장을 지낸 혜자 스님이 자신의 책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에 남긴 글이다.
  • [종교플러스] 조계종 19일 소의경전 편찬세미나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는 종단의 소의경전(所依經典·근본 경전으로 의지하는 경전)인 ‘금강경’의 한글·한문본 편찬을 위한 세미나를 19일 오후 2시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연다. 지안 스님(은해사 승가대학원장)의 기조강연과 김선근 동국대 교수, 김호귀 동국대 강사, 통도사 강주 우진스님,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각묵 스님 등이 주제발표와 논평에 나선다.(02)2011-1812.
  • 山寺체험

    山寺체험

    ‘휴가철 산사 체험도 맞춤시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국의 산사들이 다채로운 수련과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산사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수련회 형식으로 신행 차원에서 신도들을 맞았으나 일반인들의 발길이 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개발해 내놓고 있다. 기존의 수련회를 바탕으로 템플스테이, 단기 출가, 참선 명상, 다도에 이어 한문 학당, 심지어는 영어 캠프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올 여름 휴가기간에도 1박2일, 혹은 2박3일 일정의 가족용 주말 프로그램부터 7박8일간의 단기 출가가 전국 사찰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구례 화엄사,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부산 범어사 등 대규모 사찰들에선 전통적인 수행 중심의 템플스테이가 어김없이 진행된다. 가장 흔한 프로그램은 전통사찰에서 한국불교의 전통을 느끼고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그 내용도 종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부안 내소사는 매주 주말 트레킹을 겸한 생태체험 행사를 진행하며, 보성 대원사와 서산 부석사는 매주 주말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이어간다. 경주 골굴사의 ‘선무도 주말 템플스테이’를 비롯해 김천 직지사, 경주 기림사, 동해 삼화사 프로그램도 언제나 참여할 수 있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다. 도심과 도시 인근 사찰들이 마련하는 선(禪) 수련회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늘고 있다. 서울 길상사가 매월 넷째 주말에 운영하는 ‘선수련회’, 고양 흥국사가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에 진행하는 주말 템플스테이가 대표적인 예. 서울 조계사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운영하는 ‘템플라이프’와 서울 묘각사의 ‘내마음 내려놓기 템플스테이’처럼 외국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적잖이 눈에 띈다. 연령층과 대상을 살피거나 사찰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도 인기를 더하고 있다. 인천 강화국제연등선원의 ‘청소년 영어 캠프’와 강화도 전등사의 ‘전통문화체험 템플스테이’, 선기공과 선무도를 체험할 수 있는 경주 골굴사의 ‘청소년 화랑 수련회’가 그 대표적인 예. 여기에 공주 마곡사의 ‘소년소녀가장을 위한 템플스테이’나 공주 영평사의 ‘해외 입양인 100명 초청 템플스테이’처럼 소외계층을 배려한 특별 행사도 생겨나고 있다. 지리산 산행프로그램과 함께 진행되는 실상사의 ‘지리산의 아침’이나 실상사 화림원에서 진행되는 ‘단식 좌선’,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 다도 아카데미’, 평창 월정사의 ‘박물관 어린이 수련법회’ 등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다. 단기 추가 수행 프로그램으로는 해남 미황사의 ‘참사람의 향기’를 비롯해 평창 월정사의 ‘단기 출가학교’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사찰 템플스테이 일정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홈페이지(www.templestay.com) 참조.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이용재 지음, 멘토프레스 펴냄) 환기미술관, 미당 고택, 박수근미술관, 명성황후생가, 김옥길기념관, 이상 고택, 의재미술관 등을 통해 시대와 역사를 들려주는 대중교양서. 건축평론가인 저자는 김수근 김중업 이희태 등 한국 건축 1세대 건축가를 비롯해 2세대인 김원 김홍식 우규승 김인철 방철린 조성룡,3세대인 승효상 김개천 이종호 김억중 등의 작품세계를 살핀다. 또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노이슈타트 등 외국 건축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야사, 설계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소개한다.‘H형강’‘코르텐강’‘필로티’ 등 건축용어들도 쉽게 풀이했다.1만 5000원.●위대한 버림(이준엽 엮음, 빨간우체통 펴냄)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성도(八相成道)에 따라 8명의 스님이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사상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엮었다. 중앙승가대 총장인 종법 스님, 전 동국역경원장 월운 스님, 능인선원 주지 지광 스님 등이 부처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부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 이르기까지 팔상성도를 차례로 설명한다.1만 1000원.●욕망하는 몸(루돌프 셴다 지음, 박계수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중세 사람들은 처녀의 피나 순결한 아이들의 피는 나병에 특효가 있다고 믿었다.11세기 이후 널리 퍼진 전설에 따르면 아멜리우스라는 사람은 나병에 걸린 친구인 아미쿠스를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였다고 한다. 중세 독일의 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의 작품 ‘가련한 하인리히’를 보면 순결한 시골처녀가 나병을 앓는 기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제공하려 하는 장면도 나온다. 머리에 얽힌 사연으로는 참수형이 유럽에서 18세기 말까지 공개적인 의식으로 거행됐으며 민속 축제와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도 소개한다.2만 8000원.●신나고 탑나고 절나고(장영훈 지음, 담디 펴냄) 풍수미학을 전공한 저자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주요 사찰의 풍수이야기. 저자에 따르면 신라시대 왕들은 ‘왕이 곧 부처’(王卽佛)라는 명목으로 절을 지어 통치수단으로 활용했으며, 불국사가 궁궐을 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사찰들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통과해야 높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대웅전에 이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면 당나라에서 입국한 스님들을 중심으로 “내가 곧 부처”라며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이 유행하자 일주문과 대웅전을 가깝고 나란히 배치한 절들이 지어졌다. 그 대표적인 사찰이 바로 실상사다.1만 5000원.●앤디 워홀의 철학(앤디 워홀 지음, 김정신 옮김, 미메시스 펴냄) 스스로 “녹음기와 결혼했다.”고 말한 앤디 워홀은 평생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대화를 녹음했다. 이 책은 워홀이 그런 녹음기의 기록을 몇 가지 테마로 나눠 정리한 것.8살 때부터 백반증을 앓아 살갗이 하얘지고 딸기코였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체념, 섹스와 마약에 대한 탐닉, 가난한 이민자 가족 출신인 그가 돈에 대해 가졌던 집착 등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1만 5000원.●디테일-가까이에서 본 미술사를 위하여(다니엘 아라스 지음, 이윤영 옮김, 숲 펴냄) 시각예술의 이미지 속에 묻혀 있는 창의적인 사유의 광맥을 캐낸 미술교양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권위자인 저자는 미술작품과의 온전한 소통을 위해서는 ‘아는 만큼 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저마다 독창성이 살아 있는 개별 미술작품에 지식과 정보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작용하기 쉽기 때문이다.3만원.●대한민국 정책지식 생태계(김선빈 등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정책지식이란 정부가 국정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지식을 가리키는 말. 나아가 정책지식 생태계라고 하면 이런 정책지식을 만들어내는 주체, 지식의 이용자인 정부의 중요 의사결정자,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 등 의사결정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관들이 상호작용하는 관계와 시스템을 지칭한다. 이 책은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정책지식 생태계’의 조성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2만 8000원.●벌(모리스 메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이너북 펴냄) 희곡 ‘파랑새’로 유명한 벨기에의 노벨문학상 작가의 대표적인 자연관찰 에세이.20년간 양봉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꿀벌들의 세계를 한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벌들이 유모, 시녀, 건축가, 석수, 채집가 등 인간사회와 비슷한 분업활동을 통해 놀라운 문명사회를 이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8800원.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禪수행 50년 지리산 황매암 일장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禪수행 50년 지리산 황매암 일장 스님

    인도의 달마대사가 중국 쑹산(嵩山)의 소림사 토굴에서 9년 면벽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40대 승려가 찾아와 무릎 꿇고 뵙기를 간곡히 청했다. “바다와 같은 자비심으로 제게 불법을 깨우쳐 주십시오.” “법을 구하려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야 한다. 부질없는 소리 말고 돌아가거라.” 승려는 갑자기 품고 있던 칼을 뽑아 왼팔을 댕강 잘랐다. 달마대사가 다시 물었다. “네가 구하려는 것이 무엇이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대사가 미소를 지으며 “네가 찾았다 해도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느니라. 하하하.” 그 말 한마디에 승려는 평생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어 “마음이라, 형상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을 붙잡고 왜 그리도 스스로를 할퀴었던가.”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승려는 달마대사에게 넙죽 엎드렸다. 달마대사에서 시작한 선불교가 중국에 비로소 전파되는 순간이었다. 이 승려가 바로 중국 선불교의 제2대 조사인 혜가(慧可·487∼593)스님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서산대사 또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을 통해 부처의 마음을 선(禪), 그 말씀을 교(敎)라고 설파했다. 말없음으로 말없는 데 이른 것은 ‘선’이요, 말로써 말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라고 하면서 선과 교의 독특한 차이점을 밝혔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새삼 ‘마음이란 무엇일까’라는 물음표를 던져본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내 마음’은 과연 어디쯤 가고 있을까. 불안한 마음, 두려운 마음, 노여운 마음은 자꾸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반가운 마음, 푸근한 마음은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문득 찾아든다. 지난 14일 이런저런 상념을 떠올리며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은 한 암자를 향해 떠났다. 차로 4시간 남짓, 남원시 인월면 사거리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위치를 물었더니 “암자의 그 스님은 참 훌륭하신 분”이라는 설명과 함께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지리산 실상사 방향으로 30분쯤 오르다 해발 600m 지점에 이르러 외길 숲 사이로 ‘황매암(黃梅庵)’이 나타났다. 출가한 지 50년째 선수행(禪修行) 중인 일장(日藏)스님, 한라산 자락 토굴산방 ‘목부원’에서 15년 동안 수행안거하다가 2004년 이곳에 ‘황매암’을 창건, 조용히 참선 정진 중이다. 성철스님의 스승이기도 한 동산 큰스님의 막내상좌로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가장 귀감으로 삼는다. 그래서 2005년 ‘선가귀감’의 언해본을 쉽게 한글로 번역·출간해 그 뜻을 폈다. 또 1999년에는 생전의 성철스님한테 받은 ‘만선동귀집’을 편역했다. 이 두권은 불교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특히 스님은 선서화(禪書畵)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의 불사전(佛事展)과 장학모금전에 참여하면서 이같은 존칭을 얻었다. 스님은 속세와 담을 쌓고 토굴수행을 하기에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의하지 않는다. 까닭에 별도의 약속도 없이 무작정 황매암을 찾아 합장했다. 지리산 중턱을 감아도는 맑고 고운 바람과 풍경(風磬)소리를 배경으로 차방에서 스님과 마주 앉았다. 주위에는 온통 5월의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어제는 백초(百草)를 캤지요. 취나물, 다래넝쿨, 오미자, 감잎 등 새잎이 돋아나니까 그걸 캐서 몇 단지 만들어 발효를 시켜 둡니다. 여름에 냉수 타서 마시면 속이 깨끗해요.” 스님은 출가 후 얼마 있다가 심장병이 악화돼 참선방에서 나와 일찍부터 토굴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고독과 절망을 이기는 것이 간단치 않았다. 하루는 성철스님한테 찾아갔다. 순 한문으로 된 ‘만선동귀집’을 건네받았다. 그날로부터 옥편을 옆에 끼고 공부에 몰입했다. 출가 초기에는 한 성당에서 호주 출신 신부와 1년 동안 지내며 교리공부를 했다. 이해되는 대로 몇줄씩 써서 벽에 붙였다. 이것을 볼 때마다 마음의 고향을 느꼈다고 했다. “스님, 마음이란 무엇인가요?” “형체도 없는 것을 사람들은 닫아 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실천해야 합니까?” “진실해지면 표현도 진실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식과 위선이 많아집니다. 매일 있는 오늘이지만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시간, 이 환경은 두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바로 처음의 모습을 (마음에)담는 것입니다. 매순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또 여한 없이 밝은, 닫힘이 없이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 속이 내 속이고, 그 사람의 삶이 없이 결국 내 삶도 없지요.” “스님이 그리는 ‘선서화’도 그런 맥락인가요?” “달마스님의 9년 면벽이 천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살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부하다 보니 어느날 말이 곧 허구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붓으로 써서 절방 여기저기에 붙여 놨습니다. 나중에는 ‘웃는 기왓장’도 넣었고, 색칠도 해봤더니 그림쟁이라고 하더군요. 본업이야 중노릇인데, 지나가는 누구나 그걸 보면서 잠시 마음의 고향을 느끼면 그만이지요.” 스님은 20년 전 내원사에 있을 때 잘 아는 지인이 암에 걸려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병문안을 갔다. 이때 촛불이 그려진 연하장 크기의 선서화를 선물했다. 환자는 세상의 빛을 본 것처럼 좋아하며 머리맡에 붙였다. 얼마 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적처럼 살아나 주위를 놀라게 했다. 화제를 돌렸다. 첩첩 산중의 암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궁금해졌다. 갈등과 분열, 대립과 양극화, 도덕성 상실 등등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스님은 지체없이 “그건 다 우리의 거울이지요.”라고 말했다. 남을 탓할 필요 없이 각자 자신의 거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 어떤 캠페인으로 고쳐질 것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성장과정이 너무 쉬워요. 그러다 보니 우여곡절도 있고 혼란한 모습을 보이지만 나아집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유한이 아니라 무한입니다. 오늘의 발전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봄직하지요. 산은 무질서합니다. 수많은 가시덤불과 높고 낮은 언덕이 있거든요.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온갖 개성들이 함께 모여사는 사회입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운명은 우리 각자가 하나씩 풀면서 꾸려나가야 합니다. 빈그릇을 보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가득차 있으면 유한한 법입니다. 때를 닦아내려면 걸레가 깨끗해야 합니다.” “스님, 그렇다면 이 시대의 리더는 어떠해야 합니까?” “능한 사람이 아닌 스스로 나의 허물을 돌아보고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어두운 알 속을 깨고 나오는 것이지요. 어둡다는 것은 무지가 아닙니다. 무엇엔가 사로잡혀 있으면 전체를 못봅니다. 전체를 밝게 봐야지요. 촛불이 방안에 하나 있는 것보다 10개 있으면 더욱 환해집니다.” 그러면서 그림 하나를 꺼낸다. 촛불 하나가 힘차게 그려져 있고 일휘등명(一 燈明), 보공시방(普供十方)이라는 글씨가 휘갈겨 있었다. 스님은 “밝은 등불(꿈, 희망, 용기) 하나, 이웃들에게 공양합니다.”고 풀이했다. “종교는 주변이 행복해져야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바탕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1년에 천끼 넘게 먹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먹습니다. 다만 라면을 만날지, 아니면 진수성찬을 만날지는 지나온 밥그릇의 바탕에 따라 정해지겠지요. 생활습관이 바로 ‘업’입니다.” ■ 그가 걸어온 길 ▲경남 울산 출생(속성 천씨). ▲1958년 13세때 출가, 범어사 ‘동산스님’의 막내 상좌(上佐). 이후 송광사, 해인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1980년 제주 한라산 자락에 ‘목부원’을 창건하고 수선.10여년간 경전 강독.‘청화스님’이 입적 직전 목부원(현 자성원)에 머물면서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번역한 곳으로도 알려짐. ▲2004년∼현재 전남 남원의 지리산 산중에 ‘황매암(黃梅庵)’을 세우고 참선정진 중. ▲주요 저서 편역으로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1991년 불광출판)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2005년 불광출판)이 있다. ▲그외 숙생의 화업(畵業)으로 여러 차례 불사전(佛事展)과 장학모금전에 참여, 현존 선서화의 대가로 유명함. 실상사의 연관스님과는 절친한 도반. 성철스님을 사형(師兄)으로 모심(성철스님은 1936년 ‘동산스님’한테 사미계를 받았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북 부안 변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북 부안 변산

    산, 들, 바다가 어우러진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는 예로부터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부해서 시인묵객과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땅이다. 조선조 암행어사 박문수도 변산의 풍요로운 자연자원을 빗대어 생거부안(生居扶安)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변산은 말 그대로 변방에 있는 산들의 집합체다. 살기 좋은 땅을 병풍처럼 에두른 실한 울타리가 변산이다. 변산반도는 의상봉(509m)·쌍선봉(459m)·옥녀봉(432m)·관음봉(424m) 그리고 낙조대와 망포대의 절경과 직소폭포·분옥담·선녀탕 등이 으뜸 절경으로 꼽힌다. 변산반도는 산줄기로 둘러싸인 반도의 중앙부를 내변산(산의 변산), 그 바깥의 해식단애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터 잡은 채석강·적벽강·모항·변산해수욕장 등 한 폭의 병풍으로 비유될 만한 곳을 외변산(바다의 변산)이라 부른다. 변산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머리로 삼는 내소사는 옛날 선계사·실상사·청림사와 함께 변산의 4대 명찰로 꼽혀 왔으나 세 절은 없어지고 서기 633년(백제 무왕 34년)에 혜구두타 라는 고승이 지은 내소사만 천년을 삭이며 이어오고 있다. 내소사 전나무 숲을 헤치고 곰소만 앞 바다의 푸른 어둠을 향해 퍼져가는 내소사의 저녁 종소리는 ‘소사모종(蘇寺暮鐘)’이라고 해서 변산8경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산은 낮아도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들의 품이 깊고 넉넉한 변산은 석가모니가 설법을 했던 능가산, 또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으로도 불렸다. 내소사 일주문 편액에는 ‘능가산 내소사’라고 적혀있다. 관음봉이 병풍을 두른 듯 둘러싸고 있는 대웅보전(보물 제 291호)은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로만 깎아 만들었다. 연꽃과 국화꽃모양으로 깎은 꽃창살도 아름답다. 보종각에 있는 고려 동종(보물 277호)은 소실된 청림사에 있던 종이 조선 철종 때 내소사로 옮겨진 것이다. 내소사∼관음봉∼재백이고개∼직소폭포∼월명암∼남여치로 이어지는 산길은 변산의 안팎과 산등성이와 계곡의 아름다움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의 여유로움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총 산행 시간은 6시간 정도 걸린다. 내소사에서 관음봉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비탈이다. 내소사에서 청련암으로 가는 임도로 오르다가 청련암을 앞두고 왼쪽으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세봉 동쪽의 안부에 가닿는다. 산등성이에 오르면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와 툭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이 즐거움이다. 또한 직소폭포 아래 조성한 인공호수는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조망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 산상호수를 끼고 이어지는 호젓한 산책로를 지나 자연보호헌장비에서부터 월명암까지 다시 오르막이므로 산이 낮다고 얕잡아 보지 말고 끝까지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한다.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아침 바다의 물안개와 암자 뒤편의 낙조대(448m)에서 서해로 떨어지는 저녁 해의 풍광 또한 변산8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산행을 마치고 난 뒤 새만금간척지와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속하는 채석강, 변산해수욕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먹거리가 풍부한 것이 변산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부안을 대표하는 맛으로는 백합죽이 유명하지만 새만금간척사업으로 갯벌이 메워져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주꾸미와 갑오징어도 지금이 제철이다. 곰소젓갈단지 주변 식당에서는 다양한 젓갈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젓갈백반 등도 있다. 격포항과 곰소항 주변에 횟집들이 모여 있다. 최근에는 횟집마다 ‘이순신상차림’이란 이름의 거나한 밥상을 내놓고 있다. 천일염과 젓갈을 사기 위해 일부러 곰소를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글 이영준· 사진 김도훈(월간 MOUNTAIN 기자) # 여행정보 숙박과 식당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내소사 입구의 입암마을 뿐이다. 입암마을은 팜스테이 농촌체험마을로 운영되는 서정적인 풍경의 민박집들이 많이 있다. 숙박 1일 3만원선. 입암마을 이장 김신 (063)581-1077, 정든민박 582-7574, 친절민박 582-7602, 초가민박 583-2485. 편하고 깔끔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격포항이나 해수욕장 주변에 모텔들이 몰려 있다. 모텔적벽강 582-8998, 채석강 리조트 583-1234 모항비치텔 584-8867∼8.
  •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6)준비된 귀농만이 성공의 길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6)준비된 귀농만이 성공의 길

    막상 귀농을 결심해도 선뜻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디서 귀농 정보를 얻고, 어떻게 관련 교육을 받을지부터 막막하다. 특히 시골에 연고가 없는 도시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잘 찾아보면 귀농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귀농 선배’들의 생생한 영농·정착 노하우를 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 정보와 귀농 교육, 농사 체험 등 철저한 사전 준비가 귀농 성공을 이끈다.”고 강조한다. ●귀농 준비자 3명 중 1명은 아무 준비 없어 과연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귀농 준비도’는 어느 정도일까. 농림부가 최근 발표한 ‘귀농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귀농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경우가 35%에 달했다. 반면 귀농 교육을 계획 중이거나 수료한 경우는 22%, 농업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는 19%로 나타났다. 이밖에 귀농 관련 책을 구입해 읽는 경우가 12%, 귀농 관련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경우 6%의 비율을 보였다. 농림부 관계자는 “귀농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귀농과 관련된 직·간접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3명 중 1명 이상은 준비 없이 맨주먹으로 귀농에 뛰어들어 실패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귀농 준비자들이 정보를 처음 접하는 수단은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매스컴’을 통한 경우가 42.9%로 가장 많았다. 농업 관련 교육은 20.5%, 가족이나 친구·이웃은 24.8%, 인터넷은 8.1%를 차지했다. ●충분한 정보는 귀농 성공의 필수 조건 귀농을 단순히 시골로 이사를 가는 것쯤으로 쉽게 생각하면 십중팔구 낭패를 보게 된다. 전문가들은 “귀농 결심은 관련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 뒤 이뤄져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귀농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각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귀농학교 등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귀농이 자신에게 맞는지부터 어떤 농사일을 하는 게 적합한지까지 갖가지 정보와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귀농학교로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있다. 회원을 대상으로 귀농교육을 제공하며, 특히 도시민을 대상으로 한 농업 교육이 주로 이뤄진다. 귀농에 대한 정신·이론 교육 등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색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농업기술센터나 귀농상담실을 통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업 기술 교육이 중심이 된다. 귀농을 희망하는 도시민 등에게 능력에 맞는 단계별 상담 및 품목별 영농기술교육, 농기계 교육, 현지 지도 등이 이뤄진다. 자금·주택 확보 등 안내도 받을 수 있다. 대개 무료로 제공돼 교육에 대한 부담도 적다. 천주교와 불교 등 종교단체들이 운영하는 귀농학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특히 지리산 인근의 ‘실상사 귀농학교’는 높은 귀농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도시민이라면 가까운 곳의 농촌 체험 현장부터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농촌정보문화센터 김귀영 연구원은 “귀농에 앞서 주말농장을 통해 농촌생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거나 앞서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은 훌륭한 복안”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넷은 귀농 정보의 바다 바쁜 도시민들은 인터넷 동호회나 블로그 등을 통한 정보 습득이 효율적이다. 귀농학교와 귀농 단체들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각종 정보과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농림부에서 운영하는 ‘우리농’ 블로그(blog.daum.net/af2006)는 귀농 지원 정책 등을 쉽게 설명해 놓았다. 국내 최대 온라인 귀농 동호회인 ‘귀농사모(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refarm)’는 다양한 귀농 상식과 관련 법률을 제공하며, 농자재와 부동산 직거래도 가능하다.‘앙성댁의 귀농일기(angsung.com)’,‘새낭골 귀농일기(www.senang.co.kr)’ 등 사이트를 통해 ‘귀농선배’들의 생생한 귀농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은퇴형? 돈벌이? 내 성향 파악부터 날로 사는 게 팍팍해지는 요즘, 문득 귀농을 떠올리게 되고 귀농을 해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아도, 뚜렷하게 속시원한 대답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그만큼 귀농을 하는 방법이나 형태도 다양하고, 살아가는 모습이나 추구하는 이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귀농을 하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남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귀농을 하려 하면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아 결국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생태적 삶을 위한 귀농이다. 이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도시적 구조에서 벗어나 자립을 통한 삶의 영위를 목표로 하는 귀농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생태적 순환의 고리에 가깝게 살기 위해 영농의 규모도 최소화하고, 유기농업을 하는 것이 이런 형태 귀농의 실천 과제다. 이러한 형태의 귀농을 원하는 사람은 전국귀농운동본부(www.refarm.org) 등 기관을 통해 교육도 받고, 정보도 수집하면 원하는 방향의 귀농을 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둘째, 귀농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화에 따라 농촌에 희망이 사라진 것만은 아니다. 자본력이 있고, 열정적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전문적인 영농교육을 이수해 자신의 꿈을 이룰 토대를 마련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전국 농협이나 한국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www.kaff.or.kr)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셋째, 농업보다 농촌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마을의 각종 행정일을 맡아 보는 사무장이나, 마을 간사 등 여러 명칭의 행정적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 이런 일을 수행하려면 업무 능력보다 마을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나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사람이어야 한다. 농림부나 한국농촌공사로 문의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요즈음 가장 많은 문의를 받고 있는 은퇴형 귀농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장 먼저 ‘내가 정말 끝까지 살 수 있는가?’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은퇴를 하고 약간의 자금을 가지고 배산임수 남향의 터에 흙집을 짓고, 문전옥답 작은 텃밭에서 행복하게 살아 보자는 꿈을 이루려면 실로 만만치 않은 자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꾸미노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게 사실이다. 은퇴한 분들에게는 전원마을 조성 사업지구 중 전북 진안군 등에 조성되는 30여호 정도의 마을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농촌공사나 관련 지자체에 문의하면 된다. 어떤 경우든 귀농을 할 때는 농촌 고유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지역에서 살아온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내가 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야 귀농을 한 자신에게나 지역사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성여경 전국귀농운동본부 소장
  • [책꽂이]

    ●내가 너를 사랑한 도시(윌리엄 케네디 지음, 장영희 옮김, 지식의 날개 펴냄) 미국 사회를 암흑으로 몰고 간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밑바닥 인간들의 삶을 그린 소설. 미국 뉴욕주의 주도 올버니가 무대다.20여년전 ‘억새인간’ ‘섬꼬리풀’ 등의 제목으로 번역돼 나온 적이 있다. 원제는 ‘아이언위드(Ironweed)’.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레그스’ ‘빌리 펠런의 가장 큰 도박’ 등과 함께 ‘올버니 3부작’으로 불린다.1만 2000원.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임경선 지음, 뜨인돌 펴냄) 일본 문단은 현실주의 스타일을 선호하고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내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엔 그런 결론이 없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흔해 빠진 러브스토리’‘대중성과의 영합’이란 오명을 쓰고 평론가들의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 하루키를 알아준 것은 미국 문단. 트루먼 커포티,J D 샐린저, 어윈 쇼, 존 업다이크, 레이먼드 카버 등을 데뷔시킨 문예주간지 ‘뉴요커’는 일본인으론 처음으로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이 책에선 하루키식 프리스타일 창작론 등을 소개한다.8500원. ●예언자의 에메랄드(쥘리에트 벤조니 지음, 손종순 옮김, 문학동네 펴냄)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의 보석, 일명 ‘신의 계시’라 불리는 전설의 에메랄드 ‘우림’과 ‘툼밈’을 찾기 위해 두 남자가 벌이는 모험을 그린 팩션소설. 터키를 건국한 무스타파 케말 등 실존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엮어간다. 우림과 툼밈은 여호와가 선지자 모세의 형 아론에게 내린 흉패(胸牌)에 박혀 있던 보석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상징한다. 저자는 ‘피렌체 여인’ ‘서른 개의 바람’ ‘바르샤바의 절름발이’ 등의 작품을 낸 프랑스 역사소설계의 거장.1만 3000원.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신정일 엮음, 다산책방 펴냄) ‘우리땅 걷기모임’ 대표인 저자가 엮은 시선집. 조선시대 국토의 대동맥인 삼남대로(해남에서 서울까지 400여㎞)와 영남대로(부산에서 서울까지 380㎞)를 직접 걸은 저자는 “길 위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실상사의 돌장승’(신경림),‘문의(文義)마을에 가서’(고은),‘선운사 동구에서’(서정주) 등의 시가 담겼다.9500원. ●타르 베이비(토니 모리슨 지음, 신진범 옮김, 들녘 펴냄) 소통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아내를 살해하고 하류 인생을 전전하다 발레리언 부부 별장에 숨어든 선과 제이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꿈꾸지만 가치관의 충돌로 갈등한다. 주로 흑인여성을 이야기 중심에 두고 따뜻한 사랑을 그려온 작가답게 불완전한 등장 인물들의 삶을 통해 사람들간의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 태생인 저자는 1993년 흑인여성으론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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