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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빚 못 갚는 지방공기업 퇴출시킨다

    빚 못 갚는 지방공기업 퇴출시킨다

    내년 3월부터 부채 비율이 400% 이상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사업 전망이 없어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지방공기업은 정부 요구로 해산 절차를 밟게 된다. 행정자치부는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공기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21일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법안 시행의 세부 요건들이 담겼다.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부채 비율(자본금 대비 부채 비율)이 400% 이상이거나 완전 자본잠식(누적적자가 많아져 자본총계가 마이너스인 상태) 또는 두 회계연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 상태인 지방공기업에 대해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이 직접 해산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경우 부채 상환능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 해산요구를 받은 자치단체장과 지방공기업 최고경영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따라야 한다. 전체 부채 규모 73조 6500억원에 이르는 지방공기업들은 그동안 방만한 경영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돼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치단체는 지방공기업을 새로 설립할 때 행자부 장관이 지정·고시하는 전문기관에서 타당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 지방공기업이 신규사업을 실시할 때도 마찬가지다. 타당성 검토를 수행하는 전문기관의 요건은 ▲최근 3년 이내에 공기업 또는 지방재정 관련 연구용역 실적 보유 ▲사업타당성 검토 3년 이상 경력자 5명 이상 또는 5년 이상 경력자 2명 이상 보유 등이다. 지방공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실명제도 실시된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지방공기업은 주요 사업내용과 사업 결정 관련자, 사업 담당자 등을 지방공기업 경영정보사이트 ‘클린아이’에 공개해야 한다. 또 경영 개선 명령 또는 해산 요구를 받은 단체장은 통지를 받은 날부터 60일 안에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주민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상·하수도 직영기업 등 자산규모가 1조원 이상이거나 부채규모 2000억원 이상인 지방 직영기업은 중장기경영관리계획을 수립해 경영효율성을 향상시키도록 했다. 행자부는 여론 수렴을 거쳐 내년 3월 말부터 새 지방공기업법령을 시행할 예정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검체 방치·불법 검진… 출장 건강검진제 ‘부실’

    도서·산간 지역민들의 편의를 위해 도입된 출장 건강검진 제도가 허점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진 대상자에게서 채취한 혈액, 대소변 등 검체를 상온에 방치하는 것은 물론 의사나 간호사 등 전문인력이 없는 불법 검진도 수시로 이뤄지는 것으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드러났다. 권익위는 출장 건강검진 시 검체 관리 기준을 신설하고 검진 인력의 실명제를 도입할 것을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17일 권고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검체는 채취 후 섭씨 2~8도에 냉장보관해야 하는데, 올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과 함께 전남 함평과 신안 등 출장 건강검진이 이뤄진 곳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니 차량 안에는 냉장고 대신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없는 아이스박스, 휴대용 차량냉장고 등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출장 건강검진은 채취한 검체를 병·의원까지 장거리 이송해야 하는데도 일부 출장 건강검진 기관들이 값이 비싼 냉장고를 구비하지 않고 검체를 방치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또 “검진 인력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아 70~80대 고령의 의사들이 출장 검진을 다니는 경우가 많고 검진 수요가 많은 날에는 출장 검진기관 소속 운전기사나 행정요원이 신체 계측을 실시하는 등 불법적인 형태로 검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이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검진인력 실명제를 도입하고 검체별 관리대장을 갖추도록 했다. 올해 기준 출장 검진기관은 총 747곳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쟁점 법안 연내 처리 유일한 길”… 靑 ‘차선 강경책’ 고심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쟁점 법안을 ‘직권상정’할 것을 압박하며 초강수를 뒀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돌진하는 듯한 분위기다. 경제활성화법과 노동 개혁 5법 등을 연내에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현재로선 정 의장의 직권상정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새누리당은 또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청와대도 차선 강경책을 고심 중이다. 정 의장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직권상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연내 처리를 요구하는 법안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원샷법),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등이다. 노동 개혁 5법도 이번 임시국회 내 처리를 희망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 이번 기회가 아니면 19대 국회 입법이 사실상 물 건너갈 것이라는 인식에서다. 처리의 열쇠는 정 의장이 쥐고 있다. 의장은 국회법 85조에 따라 본인이 지정한 법안 심사 기간이 지켜지지 않으면 직권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 단, 천재지변의 경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합의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지난 3일 관광진흥법(학교 앞 호텔법)이 정 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여야 합의가 없는 상태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이번에는 현재 국회 상황이 두 번째 조항에 명시된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보고 정 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겠다”는 공언도 했다.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다수결의 원칙을 규정한 국회법 54조와 헌법 49조를 근거로 들었다. 테러방지법이 계류돼 있는 정보위원회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계류돼 있는 기획재정위원회 모두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위원장까지 맡고 있기 때문에 법안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날치기 처리를 반대한다”며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국회선진화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대통령이 입법권을 발동하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은 헌법 제76조에 근거해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즉, 노동 개혁 5법 시행을 긴급명령 형식으로 발효한다는 구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시행할 때 바로 이 긴급재정·경제명령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면 국회는 곧바로 이에 대한 찬반 표결을 해야 한다. 사실상 대통령에 의한 직권상정이다. 그러나 지금이 긴급명령을 발동해야 할 정도의 위기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의 문제와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 등 적지 않은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발동 요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폐회 중이거나 개회 중이라면 국회의 집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발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청와대가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을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핀테크 앱 이용때 전자서명 허용

    핀테크 앱 이용때 전자서명 허용

    앞으로 계좌와 연동된 가계부 애플리케이션(앱) 등 핀테크 서비스를 이용할 때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전자서명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보험에 가입하거나 자동이체 방식을 설정할 때에도 다양한 본인 인증 방식을 허용하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8일 서울 종로구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핀테크 1년, 금융개혁 현장점검 회의’에 참석해 업계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핀테크 관련 규제들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금융사가 핀테크 업체에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할 때 온라인상 전자서명도 가능하도록 했다. 은행권에서는 금융사 내부 금융 서비스를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오픈 플랫폼’ 구축을 앞두고 관련 규정이 불명확해 핀테크 업체에 대한 정보 제공에 한계가 있다는 애로사항이 제기됐었다. 기존에는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고객으로부터 ‘서면동의’를 받던 것을 서면 동의에 전자서명 방식도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또 거래 정보를 제공할 때마다 건별로 동의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한 번만 동의하면 포괄적으로 정보를 핀테크 업체에 제공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온라인 보험슈퍼마켓을 통한 보험 가입 절차를 온라인 특성에 맞게 정비하고, 관련 법령에 규정된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도 페지하기로 했다. 또한 자동이체 설정에 대한 고객 동의 방식도 서면이나 공인전자서명 외에 다양한 방식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열린세상] 김영삼과 외환위기, 그리고 박근혜/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김영삼과 외환위기, 그리고 박근혜/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한 시대 멋지게 살아온 큰 정치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거산(巨山)은 평생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고, 대통령이 돼서는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각종 정치개혁 등 숱한 업적을 남겨 1960년대 이후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영광된 오늘이 있게 한 주인공 중 한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반복될 것이지만 서거 직전과 직후의 평가가 극명하게 다른 것은 분명히 설명이 필요하다.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 중 나라를 잘 이끈 대통령을 묻는 조사에서 그는 불과 1%의 지지를 얻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서거 직후 실시된 정치 발전에 대한 공헌도 조사에서는 무려 74%의 지지를 받았다. 비록 같은 조사나 질문은 아니라도 이러한 극명한 차이는 단순히 돌아가신 분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큰 비난을 받아 왔던 1997년 외환위기의 책임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가 외환위기를 막지 못해 많은 기업들이 헐값에 팔려 나갔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려야 했던 사실은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원인을 오롯이 김 전 대통령과 그 경제팀의 무능에서 찾았던 일반 국민들이 그의 서거와 함께 진실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한국 경제는 1987년 이후 매년 전년 대비 10% 이상의 임금 상승을 기록했다. 그 결과 한국의 임금은 미국의 80%, 일본의 90%, 대만의 110%에 이르렀지만 노동생산성은 대만의 90%에 머물러 있었다. 노동생산성을 훨씬 뛰어넘는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는 없다. 재벌들은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보다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시장에 군림하려 했다. 금융권은 대마불사의 논리에 따라 무책임하게 재벌 기업에 거의 무제한 대출을 해 주었다. 문자 그대로 기업, 노동, 금융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당시 경제를 살리려면 노동개혁, 기업 구조조정, 금융개혁 등 사회 전반의 개혁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했다. 김영삼 경제팀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려 했고, 한보와 기아 사태를 비롯한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원리에 따라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려 했었다. 결정적으로 그 발목을 잡은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와 민주노총이었다. 민노총이야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익집단이니 그렇다 쳐도 야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경제 활성화에 필요한 입법을 한사코 저지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 기억하는 바와 같이 참혹했다. 평온했던 중산층 가정들이 빈곤층으로 내려앉은 결정적 이유는 정치권의 근시안적 발목 잡기로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일이, 아니 더 심각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작금의 정치권은 선거에서 이기려는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국가와 국민의 불안한 미래는 도외시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1997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비교적 튼튼했지만 지금은 구조적으로 약화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경로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은 구조적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고 중국은 더이상 시장이 아니라 심각한 경쟁 상대로 등장했다. 가계부채와 공공부채는 모두 1000조원을 훌쩍 넘었고, 재정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 간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복지 지출은 한없이 늘어갈 것이다. 그런데도 민노총 등 이익단체는 불법 폭력시위를 통해 노동법 개정을 결사 저지하고 있다. 정치권은 서로 탓하며 경제 회생에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대통령도 국회를 비난하기만 할 뿐 어떻게 해서든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적극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경제위기가 가까워지는데, 책임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그 피해를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하는 것은 속수무책으로 정치권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다. 국민들이 불쌍하다.
  • [옴부즈맨 칼럼] 전 대통령 국가장과 난민 아이의 주검/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옴부즈맨 칼럼] 전 대통령 국가장과 난민 아이의 주검/이인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정책관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나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면을 기리는 슬픔에 휩싸였다. 고인은 4반세기에 걸친 우리나라 민주화 대장정의 거산(巨山)이었다.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도입했으며, 아울러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려 했던 시도는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이 남아 있다. 한편 지난 9월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다 익사해 해변에 쓸려 나온 빨간색 반소매 티셔츠의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에일란 쿠르디의 가슴 저린 주검 사진이 필자에게는 우리 국민이 함께 치러낸 장엄했던 국가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다가온다. 국민과 난민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쟁이나 재난을 당해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들 즉 국가가 지켜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국민이 바로 난민이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36년 동안의 피나는 대일항쟁, 6·25전쟁과 분단으로 점철된 동족상잔의 비극이 그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함으로써 주권과 평화를 수호하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몫이다. 그 무엇보다도 국가가 먼저 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1930년대 세계 6위 부국에서 사실상 디폴트 상태로 추락한 아르헨티나나 전후 경제 대국에서 후진국으로 쇠퇴한 필리핀(11월 26일자)과 달리 우리는 전후 최빈국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일구어 낸 세계속의 한국이 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대규모 테러가 지구촌을 뒤흔든 이 시점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조사되기도 했다(서울신문 11월 18일자 넘베오닷컴의 발표). 뿐만 아니라 2009년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한국이 통일되면 2050년까지 독일, 프랑스,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통일한국은 세계 5대 경제대국”, 서울신문 11월 6일자). 하지만 어떤 국민이든 난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의 일자리와 고령화 세대의 복지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 내야 하는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저성장, 고령화, 이념·세대·지역 간 갈등 등 사회적 난제들도 부지기수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고 국제 정치·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주요 2개국(G2) 체제 속에도 끼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3년 6개월 동안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개시키고 한·미·일 안보협력과 각종 정상회담을 통해 절실하게 외교적 성과를 도출했던 것은 열강 속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서울신문 11월 3∼6일자). 이제 개인의 이익과 정파의 이익에만 매몰돼 국가의 미래를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통합과 화합’이었다. 그 메시지는 치열한 국제 정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할 절박한 시점임을 강조한 잠언으로 다가온다. 공공성을 강조하는 서울신문이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국가 의식을 견지해 내는 내용을 중장기적인 기획 기사나 캠페인을 통해 꾸준히 제기해 주기 바란다.
  • [서울광장] YS에게 응답하라/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YS에게 응답하라/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작가 이청준은 장례를 축제라 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만나 한스런 세월의 응어리를 씻어 내고,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나누는 화합의 향연’이라고 했다. 그랬다. 그리 보였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영면의 길로 떠나던 지난 닷새, 나라는 잠시 잊고 지냈던 양김(김영삼·김대중) 정치의 추억에 잠겨 이런저런 씻김굿들을 펼쳤다. 축제였다.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빈소엔 그를 따랐던 상도동계 인사들뿐 아니라 동지와 정적의 경계에 있던 동교동계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YS가 감옥에 처넣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빈소를 찾았고, 그와 함께 옥고를 치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들을 보냈다. 많은 악수가 있었고, 위로와 격려가 나지막이 오갔다. 그런가 하면 SNS에선 그의 남달랐던 어록이 날개를 달기도 했다. “100만이 뭐꼬? 1000만은 돼야지. 누가 세리(세어)부나!”라는 말에 담긴 ‘역대급 스케일’과 “전두환은 대통령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몬 간다”는 말이 내뿜는 단호한 결기에 그를 책으로만 접했던 젊은 세대는 환호했다. 이 며칠, 민심은 작지만 또렷하게 흔들렸다. 잊고 지내던 어릴 적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처럼 느닷없는 그의 부음에 어려웠던 시절 그가 있었다는 기억을 새삼 떠올리며 그와 그 시절을 되새김했다. 1980~90년대를 다시 불러내는 복고의 열풍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은 그렇게 드라마가 아닌 논픽션의 추억을 선사했다. 기억의 조각들을 짜맞추며 많은 이들이 외환위기 앞에서 나라 경제를 망쳐 놓은 대통령은 뒤로 물리고, 목숨 건 투쟁 끝에 문민시대를 활짝 연 ‘이대한 대통령’을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 남의 머리만 빌려 쓰는 ‘무식한 대통령’이 아니라 인재를 알아보고 기꺼이 끌어다 쓸 줄 아는 열린 대통령, 전광석화와 같은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정치권의 검은 돈줄을 끊은 개혁 대통령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정권 교체만 아니었어도 그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기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들도 꺼냈다. 과거를 희구하는 레트로의 흐름이 고달픈 현실에 대한 반동이라면, YS에 대한 달라진 시선, 아니 달리 보고자 하는 의지 또한 지금의 정치 아닌 정치에 대한 반동임이 분명하다. 삼포세대이든, 노후 살림을 걱정해야 하는 그들의 부모이든, 비정규직이든, 워킹맘이든, 영세자영업자이든 저마다의 시름에 허덕이는 이 땅의 장삼이사들이 지금의 정치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지 못해 지난 시절의 정치를 들척이며 애써 스스로를 위무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나 계파정치와 같은 부정적 유산보다는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YS의 성취를 더 높이 치고 그의 갖가지 에피소드에게서 인간적 면모를 찾아내 잔웃음을 짓는 것으로 가슴속 눈물을 닦아 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민심이 어떠하든 여야는 다시 싸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떠난 것 말고 이 나라 정치에 달라진 게 없는 까닭이다. 그가 유훈으로 낸 ‘통합과 화합’은 멀리 올려다볼 비전으로야 남겠으나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실천에 옮길 행동강령으로 삼으려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기엔 대립과 불통의 관성이 너무 강하고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에 걸린 이해득실이 너무나 크다. 정권 재창출과 정권 탈환만이 존재의 이유가 된 지금의 여야엔 이런 코앞의 이해 너머를 내다볼 시력 자체가 없는 까닭이다. 망자 앞에서 정치적 적자를 다투고, 당권을 놓고 1년 열두 달 드잡이를 벌이는 이들의 머릿속에 민생이 들어 있을 리 없는 까닭이다. 김 전 대통령의 영령 앞에서 드러난 민심의 신산한 떨림을 정치권은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내일은 보이지 않고, 오늘은 보고 싶지가 않기에 어제만, 그것도 어제의 그나마 좋았던 모습들만 애써 떠올리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민심을 두려운 눈으로 봐야 한다. 왜 방송들이 저마다 ‘먹방’에 혈안이 돼 있고, 시청자들은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도 모자라 ‘응답하라 1988’까지 소환해 가며 추억을 소비하는지 정치인들은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이청준의 말을 덧붙인다. ‘세상을 떠난 사자의 모습은 뒤에 남은 자손들과 그 자손들의 삶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정치를 한다면 이제라도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응답하라. jade@seoul.co.kr
  • 黃 “나라 위해 헌신한 발자취 국민은 잊지 않을 것” 金 “민주주의·민권 위해 모든 것 바치신 희생의 삶”

    黃 “나라 위해 헌신한 발자취 국민은 잊지 않을 것” 金 “민주주의·민권 위해 모든 것 바치신 희생의 삶”

    황교안 국무총리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 조사(弔辭)에서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동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대도무문의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의 확고한 신념으로 민주화의 길을 연 의회민주주의의 산증인”이라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날 장례위원장을 맡은 황 총리는 “우리는 오늘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산이신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면서 “오랜 세월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한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 가눌 길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황 총리는 “금융실명제 도입과 군 사조직 개혁, 공직자 재산공개 등 국가개혁은 깨끗하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면서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추진하는 데도 많은 힘을 기울이셨다”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열거했다. 이어 “대통령님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노력하셨다”면서 “이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오신 대통령님의 발자취를 우리 국민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울먹이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전 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면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민주헌정사 그 자체였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자유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업적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체제의 누적된 폐해를 혁파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공고히 한 역사적 결단”이었다고 추어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 많으셨다”면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하던 하나님의 품 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라며 끝을 맺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YS에 대한 세대별 이미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세대별로 어떻게 다를까. 지난 22일 서거 후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이력과 리더십이 새롭게 부각된 가운데 그에 대해 세대별로 연상하는 각각의 키워드를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종합해 봤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갓(God·신)영삼 시리즈’, ‘YS는 못말려’ 등 생전 김 전 대통령의 직설 화법을 잘 나타내는 어록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퍼나르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재임기에 초·중·고교를 다녔던 청년 세대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못 간다”라고 했던 일화 등을 퍼나르며 ‘사이다’(자신의 감정 등을 속시원하게 대신 해 주는 말), ‘패기갑(甲)’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회사원 전모(30)씨는 “어록이나 조선총독부 철거 등의 행보를 보면 ‘사이다’이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의 원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공(功)과 과(過)가 ‘반반’인 인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선거를 맞아 대학들의 ‘선거 공백’으로 분향소 설치가 미진한 가운데 최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 등에는 분향소 설치를 촉구하는 글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 세대에게는 YS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위인전 속 인물’로 느껴지는 시대적 거리감도 있었다. 회사원 김슬기(29·여)씨는 “책상에다 ‘나는 대통령이 된다’를 붙이고는 커서 진짜 대통령이 된 의지의 사나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위인전 속 인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임기 말인 1997년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을 당시 20~30대였던 중장년들에게 YS는 국내 외환위기로 상징되는 경제적 빙하기와 뗄 수 없는 인물로 각인돼 있다. 당시 군대를 제대해 갓 복학했던 회사원 김모(41)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학교 선배들이 대기업에 합격해 입사를 기다리다 갑자기 취소돼 좌절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취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한턱 쏘는 훈훈한 미담 대신, 오히려 입사 취소된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위로의 술을 사줘야 했던 살풍경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IMF 사태가 전적으로 YS 때문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주부 김모(50)씨도 “당시는 엄마들끼리 ‘누구 아빠, 회사 갔어요?’라고 묻는 게 민망할 만큼 실직 가장이 많았던 시기”라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 시대가 비로소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노년층에게 김 전 대통령은 ‘영원한 민주화 투사’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차림의 노신사들이 많았다. 분향소 설치 첫날인 23일 조문을 하러 1시간 30분 거리를 달려왔다는 허철행(78·경기 평택)씨는 “나는 경상도 출신도 아니고 개인적인 연고도 없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존경해 왔다”며 “신군부에 맞서 23일간의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던 대쪽 같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분향소를 찾은 강대성(65·건축업)씨는 “본인이 남긴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을 평생 온몸으로 실천해 온 분”이라며 “하나회 척결이나 금융실명제 실시 등 그분의 사나이다운 면모가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전국 중구청장들 대구 중구에 모인다

    7개 특별·광역시의 중심구 단체장들이 26일 대구에서 모인다. 올해로 15년째, 횟수로는 27번째를 맞는 전국 대도시 중심구 구청장협의회가 열린다.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울산 중구, 광주 동구는 공통으로 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고, 교통 문제를 안고 있다. 공통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대응 방안을 찾자면서 ‘중구’ 구청장들은 1996년 6월부터 매년 1~2차례 모임을 가졌다. 노희용 광주 동구청장을 제외하고 모두 ‘중구청장’으로 노 구청장을 비롯해 올해 참석자는 4선인 김홍석 인천 중구청장(2·3·5·6기)을 비롯해 3선인 김은숙 부산 중구청장과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박성민 울산 중구청장이다. 최 구청장은 24일 “협의회 구성원들이 대부분 재선, 3선인 터라 지역 현안에 밝아 활발히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면서 “특히 지역의 문화자원과 관광 분야 발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다양한 주제로 논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 구청장은 이번 협의회에서 지난달 10만명이 즐긴 도심의 야간 문화축제 ‘정동야행’과 역점 사업인 노점 정비와 노점 실명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대도시 중심구 실·국 설치 기준 및 부구청장 직급 기준 개정, 도시활력 증진 지역 개발사업 자부담률 하향 조정 등 공동건의 과제도 집중 논의한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정·재계 주요 인사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이 사흘째 계속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만여명을 훌쩍 넘겼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국가 개혁을 하신 분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많은 국민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새롭게 다시 한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검사로 활약하며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홍 지사는 1996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YS키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이철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던 이기택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이분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성숙한 국가로 발전돼 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김기춘 “민주화 과업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잃어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문록에 ‘고인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를 외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유족을 위로하면서 한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산업화 토양 위해서 민주화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신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그리고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사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발걸음을 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한다’라고 조문록에 쓴 뒤 “큰 위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차남인 현철씨는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예를 표했다. 이어 오전 11시쯤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등장한 손명순 여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슬퍼했다. 손 여사는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4시간가량 빈소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처남 손성환(82)씨는 빈소를 찾아 “새해마다 상도동에서 세배를 해서 이번에도 가게 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진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수선(61·여)씨는 태극기에 싼 액자를 소중히 안은 채 장례식장을 찾아 “1970년 부산의 한 선거 유세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사진에 사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액자에 넣고 태극기에 싸서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가 “꼭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소리치니 김 전 대통령이 “꼬맹이가 귀엽다”며 사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정씨는 “살아 계셨을 때 다시 한번 직접 뵙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주범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인 김용남(64)씨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목사가 됐다더라.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으나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 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의원 30여명은 국회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정부 분향소가 위치한 국회 본관 전면에는 ‘근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대형 현수막도 새로 내걸려 한층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가 이뤄졌다.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200여곳의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6시 현재 6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사흘 동안 3000여명이 방문했다. 이곳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졸업한 장목초등학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도 “199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의 경호 담당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며 하루 종일 분향소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 그룹) 권노갑·김옥두·이훈평 전 의원과 상도동계 정병국 의원, 김덕룡·박희부 전 의원 등이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상도동계가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품앗이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국제사회 존경받는 나라 노력” 해외 주요 도시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겸 부차관보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소재 주미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미국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찾아 조문을 했다. 김 부차관보는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우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한 김 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기적적인 변모를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대한민국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 주재 우리 공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공관원들과 교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1300만명의 투명인간들이 우글거리는 중국

    1300만명의 투명인간들이 우글거리는 중국

     중국 베이징(北京)시 서북부 창핑(昌平)구에 살고 있는 양(楊)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수십만 위안(수천만원)에 이르는 양육비와 벌금을 부담할 형편이 못돼 4년6개월 된 아들을 호구(戶籍·호적)에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구이 없는 양씨의 아들은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립 유치원에도 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몇년 후면 아들을 소학교(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공립 학교는 규정상 들어갈 수 없고, 사립학교의 학비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 엄두를 낼 수 없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할 기본권을 누릴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딱한 처지에 있는 양씨 아들과 같은 중국 내 무호적자가 전체 인구의 1%인 1300만명에 이른다며 무호적자의 등록 문제가 사회 공평과 조화에 중대한 사회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중국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중문판이 24일 보도했다. 중국에서는 한 자녀 이상 아이를 낳으면 내야 하는 양육비나 벌금이 없어 호적이 없는 사람들을 ‘어둠의 사람, 어둠의 호적’이라는 뜻의 ‘흑인흑호(黑人黑戶)’라고 한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소 완하이위안(萬海遠) 부연구원이 지난해 7~8월 연구조사에 따르면 무호적자들의 60% 이상은 ‘한 자녀 정책’ 위반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다. 나머지 40% 가까이는 영아 유기와 미혼모 출산, 관련 서류 분실, 지방정부의 직무 태만 등 여러가지 이유로 호구에서 누락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호구가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사회보장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취업도 불가능하고 교육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현대 사회가 ‘실명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인 만큼 향후 생활 여건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서 원칙적으로는 무호적자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원칙과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고 이들 매체는 지적했다. 1958년부터 시행된 중국 호구 등기조례에는 “중국 공민(국민)이라면 모두 조례규정에 따라 호구를 취득해야 하며 호구를 신청할 때 그 어떤 부가조건도 요구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각 지방정부는 호구 제도를 산아제한 정책과 연계시켜 둘째 아이 이상인 경우 벌금을 내지 않으면 호구를 발급해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무호적자들은 어릴 때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자괴감을 느끼며 성장하는 데다 진학과 취직 등 정상적인 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해 장기적으로 사회 불안세력이 될 우려도 있다고 완 부연구원은 강조했다. 중국 정부도 이런 점을 우려해 지방별로 한시적으로 무호적자의 호적 취득 기회를 수차례 제공했다. 푸젠(福建)성의 경우 무호적자 어린이들에게 등록 기회를 제공해 2008년부터 2010년 5월까지 2년 반 동안 50만명이 등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한시적 무호적자 호적 취득 기회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 21일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 주재로 확대 간부회의를 열어 전국의 무호적자 문제 해결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공안부는 “합법적인 호구 등기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중국 공민의 기본적 권리로 사회공평과 조화 안정에 관계된 문제”라면서 “무호적자에 대한 호적 부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합법적 권익을 보장할 것”을 지시했다. 완 부연구원 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자 호적 관리 제도를 도입해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조건 없이 자동으로 중국 공민의 신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지난 7월 서울신문 창간 111주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란 질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0.3%에 불과했다. 박정희(33.6%)·노무현(29.3%) 전 대통령은 물론 ‘숙명의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12.8%)에 한참 못 미쳤다. 전두환(1.8%) 전 대통령에 못 미쳤고 이명박(0.9%)·노태우(0.5%)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광복 70주년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김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한 뒤 고인에 대한 평가는 ‘과’(過)보다 ‘공’(功)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분위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야권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화의 큰 산”(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긍정 일색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추모 열기나 삼삼오오 빈소와 분향소를 찾는 일반 조문객들을 보면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통령’보다는 민주화 투쟁과 금융실명제 등 개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모적 정치 갈등이 심한 데다 사회의 큰 어른, 원로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 정치군인들을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정부)도 불가능했고, 그런 측면들이 뒤늦게 평가받는 것”이라며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가 뚜렷한 상황에서 고인 같은 자유주의자가 설 땅은 없었다. 그래서 저평가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고인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하지 않는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여전히 3당 합당의 충격은 물론 임기 중 외환위기 초래, 차남 현철씨의 국정 농단 등이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한편으로 잠시 미뤄 놓은 것뿐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 따른 객관적 평가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시대적 소명을 완수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첫 정권 교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 경제 살리기,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의 혁신”이라면서 “동시에 시대적 소명에 걸맞은 인재풀을 등용했는지, 핵심 공약 사항을 완수했는지 등을 따져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념에 치우쳐 평가해서는 안 된다. 호불호에 따라 사적 감정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평가가 이뤄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모든 전직 대통령은 공과가 있다. 쿠데타처럼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자로 선출한 국민이 있고 제도적 적통성을 가진다”며 “사후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뜻하는 ‘양김(兩金) 시대’ 이후 통합·화합의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양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고 불가피하게 보스 정치나 정치의 사유화 측면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리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양성과 다원성의 기반 위에서 협의성을 높이는 소통형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총재나 제왕적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권을 손에 쥐고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다원화된 원내 시스템의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민주화 이끈 큰 어른” 아이들 손잡고 문상

    “민주화 이끈 큰 어른” 아이들 손잡고 문상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오랜 군사정부 시대를 종식시키고 ‘문민’(文民) 정부를 구현해 낸 민주화 투사로서 그의 행보가 다시 한번 회자되는 한편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 대통령 재임 시절 업적들에 대한 평가들도 나왔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빈소를 찾은 최호용(45·서울 성북구 안암동)씨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23일간의 단식도 마다하지 않은 큰 어른의 국상”이라며 “역사의 흐름도 배우고 견문도 넓히게 할 겸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이모(80·여·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도 “너무도 존경하는 분이라 몇 번 자택에도 찾아갔는데 새벽에 뉴스를 보고 놀라서 일찌감치 찾아왔다”며 “정직하고 양심이 바른 저런 분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포털의 뉴스 댓글 등에는 고인의 업적에 대한 회상이 이어졌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김 전 대통령 부고를 알리는 뉴스에는 “금융실명제와 전직 대통령 청문회 등 민주주의를 실현한 고인을 존경합니다” 등 댓글이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았다. ‘좌우 진영 논리에 관계없이 추모하고 존경해야 할 분’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대학원생 조은상(30)씨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어느 진영에서나 완전한 숭배나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 현대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앞으로 함께 회고하고 토론해야 할 인물”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박모(36·여)씨는 페이스북에서 “김 전 대통령이 ‘IMF 사태’(1997년 말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인 양 몰아대는 주장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민주화의 세례를 온전히 받은 세대로서 그가 어떤 지도자보다 열정적이었고 자존심과 철학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애도했다. 직장인 송수근(44·서울 구로구)씨는 “하나회를 숙청해 군인이 정치에 더는 개입하지 못하게 싹을 자른 일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장면이 선명하다”고 회상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금융실명제나 공직자윤리법 제정 등 고인의 생전 업적을 언급하며 ‘오늘날 필요한 시대 정신을 가졌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김 전 대통령은 결단력, 추진력에 있어 최고의 국가 지도자였다”며 “오늘날도 공무원 연금 개혁이나 노동 개혁 등 개혁 어젠다가 잘 추진되지 않고 있는데 당시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킨 금융실명제를 실현시킨 건 지하 경제에 정의를 세운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총장은 “고인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며 형식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애쓴 것 외에 집권 이후 사회 투명성 제고를 위한 요소들을 찾아내 실천했다”면서도 “그러나 사회·경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임기 말에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은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추모사] 당신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 남기고

    [추모사] 당신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 남기고

    신념과 결단으로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해 주신 김영삼 대통령님! 크나큰 감사와 사무치는 회한으로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님의 일생은 신념과 행동의 완전한 합일이었습니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나 그 열매로 쟁취한 집권 이후의 통치 과정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님의 그 모든 결단은 신념에서 비롯되고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남겨진 것 같던 의원직 제명 때나 목숨을 잃을 것 같았던 단식 막바지 때도 님이 흔들리지 않았던 덕에 동지들과 국민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지금도 대통령 취임사의 빛나던 한 구절을 기억합니다. 불굴의 신념을 받쳐 주던 정치 철학이 담겨 있는 구절이기에 나라의 앞길을 밝혀 주는 불기둥으로 삼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 이어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하셨지요. 저희는 취임 이후 내리셨던 전광석화 같던 그 모든 결단들이 평화 통일을 위한 정상회담 준비 작업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위협 요소였던 하나회 척결, 공정 분배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금융실명제 실시, 공직사회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 된 공직자 재산등록제 등등이 모두 수미일관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남북한 자유총선거에서 자유민주세력의 승리를 보장하기 어려운 요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김 주석과의 담판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많은 준비를 했고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을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기회를 만들었건만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혁에 대한 무한 감사와 함께 회한이 밀려오는 이유입니다. 이제 님은 당신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진 대한민국을 남겨주시고 떠났습니다. 저희는 님이 밝히신 민족에 대한 철학을 가슴 깊이 새기고 평화, 상생 통일을 향해 굳건히 전진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선친 생전에 매일 기침(起枕)하자마자 전화 문안을 올리셨던 님의 효심은 남기신 자녀들과 자라나는 세대들이 본받고 이어 갈 것입니다.
  • 민주화 ‘巨山’ 떠나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1927~2015

    민주화 ‘巨山’ 떠나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1927~2015

    우리 국민에게 군부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금융실명제를 도입했으며 한때 철권을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우고 일제 잔재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과감히 해체했던,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지극히 무모해 보였던 개혁을 무섭게 밀어붙였던 인물이 영원히 잠들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88세로 서거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데 이어 이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민주화를 주도하며 대한민국 정치의 격동기를 양분해 이끌었던 ‘양김(兩金)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쯤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이명박,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들이 애도를 표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조의를 표하는 등 사회 각계에서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등 해외 주요 인사들도 조의를 전했다. 외교부는 김 전 대통령 조문소를 세계 160여개 재외공관에 설치하기로 했다. 현철씨는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을 묻는 조문객들에게 “사실 2013년 입원하셔서 말씀을 잘하지 못하시고 필담으로 글씨를 좀 쓰셨는데, 평소 안 쓰시던 ‘통합’하고 ‘화합’을 딱 쓰셨다”면서 “무슨 의미냐고 여쭤 보니 ‘우리가 필요한 거라고, 우리가 필요한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화를 끝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필담을 포함해 일절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현철씨는 덧붙였다. ‘통합’과 ‘화합’이 사실상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었던 셈이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금융실명제·공직 재산공개… OECD 1년만에 외환위기

    금융실명제·공직 재산공개… OECD 1년만에 외환위기

    ■ YS가 남긴 功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내외의 다른 모든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功)과 과(過)가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역사적인 평가와 재평가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김 전 대통령 시절의 대표적인 공적으로는 ‘금융실명제 도입’ ‘군 사조직(하나회) 숙청’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일제 잔재 청산’ 등이 꼽힌다.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 등도 주요 성과로 기록됐다. 김영삼 정부의 첫 번째 업적으로 금융실명제를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모든 금융 거래를 실제 명의로 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2년 ‘이철희·장영자 거액 어음 사기 사건’ 발생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다. 제도 도입 전에는 가명이나 차명, 무기명으로도 금융 거래가 가능해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의 음성적 거래가 심각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를 발동했다. 그는 당시 “국회의 법 개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금융시장 동요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 ‘긴급명령’ 방식을 택했다”고 밝혔다. 또 “금융 거래에서 부정부패, 부조리를 연결하는 고리를 차단해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데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의 ‘검은돈’을 걷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리적 과세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금융실명제는 부동산 실명제로 이어졌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자금이 부동산 투기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1995년 1월 6일 부동산 거래 실명제 실시 계획이 발표됐다. 입법도 단 3주 만에 이뤄졌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정치 개혁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은 군의 대표적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했다. 하나회는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포함된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주도해 만든 조직이다.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에 참여한 군부세력들이 주요 회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일 만인 1993년 3월 8일 하나회 멤버였던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다음날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모두 깜짝 놀랬제”라며 웃었다고 한다. 이어 군부 실세들이 줄줄이 경질됐다. 모두 42개의 별이 날아가며 군사 정권의 종식을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전격적으로 숙청을 단행해야만 저들이 규합할 시간을 주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베일에 가려 있었던 30조원 규모의 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비리에도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쇠말뚝 뽑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과 같은 일제 잔재 청산 작업에도 힘을 쏟았다. 1993년 8월 광복절을 앞두고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지시가 떨어진 이후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8월 15일 중앙돔 해체가 시작돼 1996년 11월 13일 지상 부분 철거까지 모두 완료됐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취임 사흘째인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며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다. 17억 7822만 6070원이었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화의 첫 출발점이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자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판검사들이 잇따라 재산을 공개했고 이 과정에서 전·현직 국회의장의 부정 축재 의혹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위 관료들의 부동산 투기 정황도 대거 노출됐다. 또 청와대 국무회의나 각종 회담 자리에서 제공된 ‘칼국수’는 개혁의 상징이 됐다. 시민사회운동 활성화, 정상외교 확대, 지방자치제 부활, 2002년 월드컵 유치 등도 김 전 대통령이 일궈낸 성과다. 현행 초·중·고교에서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제도 기틀을 잡은 1995년 5·31 교육개혁도 김영삼 정부의 공으로 평가된다. 민선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켜 지방분권 시대를 연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 YS가 남긴 過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대한 기대감은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지만 동시에 금융위기 사태를 초래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은 패착으로 인식된다. 김영삼 정부는 9%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적극적인 시장 개방이 이뤄지자 1996년 12월 OECD에 가입했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40여년 만에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여권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야권은 “외화 출자, 개발도상국 지원 등 의무 사항이 많다”며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OECD 가입은 1년 만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방만한 경제 운영과 부실한 대처는 결국 ‘외환위기 사태’를 불러왔다.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맞았다. 삼미와 기아자동차, 쌍방울, 해태, 고려증권, 한라그룹이 연이어 쓰러졌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었다. 해외 금융기관들의 부채 상환 요구가 쇄도했고 정부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불 유예)을 가까스로 면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판이 김 전 대통령과 한국에 쏟아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11월 22일은 공교롭게도 18년 전인 1997년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의 개인사뿐 아니라 대한민국으로서도 잊지 못할 ‘역사적인 날’이 된 셈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공기업 민영화와 재벌 정책 등에서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 공정 거래를 강조하면서도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펼친 까닭에 ‘대재벌’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세계화’ 역시 방향 설정은 좋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만 생기면 내린 고위 공무원 경질이라는 ‘충격적 처방’은 관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과도한 사정은 역풍을 가져왔다. 정권 말 정작 자신의 차남인 현철씨가 알선 수재·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부패 척결 드라이브는 빛이 바랬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민주화 상징 인물” “임기말 경제 위기”

    주요 외신들은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을 긴급 기사로 타전했다. 외신들은 대체로 ‘한국의 민주화 지도자 출신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제목으로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각지 한인회가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외신들은 야당 대표 시절의 민주화 여정과 대통령 재임 중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을 김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고루 강조했다. AFP 등 유럽 언론들은 김 전 대통령이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출범시킨 대목에 주목했다. 영국 BBC 방송은 김 전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 가택연금을 당했던 사실과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의 북핵 시설 공습에 반대했던 일화를 전했다.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은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1993년 한국에서 군사정권을 끝내고 (실질적인) 민간정부의 시대를 처음 열었다”고 보도했다. 한편으로 외신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상황이 초래되며 그가 대통령 임기 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도 비중 있게 다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반부패 개혁을 추진 중인 중국의 언론들은 문민정부 시절 군 개혁 및 반부패 개혁 정책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중국신문망은 김 전 대통령 재임 중 하나회 척결 인사를 소개하며 “김 전 대통령이 반부패, 청렴을 기치로 개인의 배경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유재시거’(唯才是擧)를 실천했다”고 보도했다. 해외 한인회들도 잇따라 애도의 뜻을 밝혔다. 김훈 재외동포언론인협회장은 “김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에 항거해 한국 민주화운동을 이끌어내신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이라면서 “가슴 깊이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박우민 재영 한인여성회장은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신 분이란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외교부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재외공관에 통보하고 조문소 설치를 지시했다. 유제헌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도 “어려운 시절, 젊어서부터 정치에 입문해 역경을 거쳐 승리했던 분이라고 본다”면서 “잘한 일도, 또한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재계 “경제 선진화·부패 척결 일조… 경제 발전에 매진하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재계도 일제히 추모의 뜻을 내비쳤다. 경제단체들은 22일 잇달아 논평을 내고 김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공직자 재산 공개 등 우리나라가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기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경제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OECD 가입을 추진해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였고 국민들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재계는 김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투명하고 진정한 선진국이 되도록 노력하신 생전의 업적을 기리며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논평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면서 “금융, 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해 경제개혁을 이끌었고 하나회 척결과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의무화를 통해 사회 부정부패 척결에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인이 오랜 기간 민주화를 위한 열정과 헌신을 통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며 “경제 선진화 기틀을 마련한 고인의 업적을 기린다. 국민 모두 슬픔을 이겨 내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김 전 대통령이 “1990년대 확대된 경제 규모와 고도화된 산업구조에 걸맞은 규제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시장경제 체제의 효율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초래되면서 국민에게 지우기 어려운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남긴 것은 아쉬운 한계로 지적될 수 있지만 이는 경제 선진화를 위한 체질 개선의 계기였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김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청 개청, 벤처기업법 제정 등 중기·벤처 지원의 틀을 새로 마련하는 등 중소기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며 “특히 (고인은) 일류 정보기술(IT) 강국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사설] ‘민주화의 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이 어제 새벽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88세의 일기로 영면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의 아호인 거산(巨山)처럼 현대사의 굽이마다 뚜렷한 족적과 공과를 남겼다. 우리는 헌정사의 거목(巨木)을 잃은 상실감이 적지 않을 온 국민과 함께 그의 서거를 애도한다. 아울러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표한다. 이제 고인이 생전에 열망했던 민주화의 완성이나 신(新)한국의 건설은 남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 일생에는 우리 현대사의 부침과 영욕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무이한 나라다. 이 같은 기적을 거론하면서 그 눈부신 성취의 양대 축인 민주화에 앞장섰던 김 전 대통령을 빼놓고 말하긴 어렵다. 엄혹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의원직 제명과 가택 연금, 그리고 목숨을 건 23일간 단식 등 고인에게 가해졌던 혹독한 탄압과 그의 응전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가는 가시밭길 같은 역사 그 자체였다. ‘정치인 YS’에 대해서는 호오(好惡)와 포폄(褒貶)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그의 신념처럼 이 땅에 ‘민주 헌정’을 뿌리내리게 한 공적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걸어온 역정(歷程)을 되돌아보자. 그를 슬픔 속에서 떠나보내는 이 순간 고인의 과보다 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인은 평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협력과 경쟁을 통해 이 나라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 중 가장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일궈 냈다는, 세계적 평가는 많은 부분 고인과 DJ의 영전에 받쳐야 할 헌사일 수 있다. ●민주화, 군정 종식의 기수 YS 양김(兩金)이 펼친 유신 반대나 대통령 직선제 관철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 이들의 4반세기에 걸친 민주화 대장정이 대통령직선제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결합해 1987년 5년 단임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이끌어 내면서다. 그래서 YS의 14대 대통령 당선은 고인의 민주화 노력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겠지만, 헌정사에서 군 출신 대통령의 집권을 끝내고 문민 시대를 다시 열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1992년 대선에서 이겨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고인의 대통령으로서의 치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군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척결 등으로 군부에 힘이 실린, 32년간의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 시대를 연 공적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솔선한 공직자 재산공개, 그리고 금융실명제 실시 등으로 부패 척결을 제도화한 공적도 빼놓을 수 없다. 고인이 광주 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승화시키고 5공 신군부에 유혈 진압의 죄를 묻는 등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려 했던 시도도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물론 고인의 이런 정치 역정에 대해 여전히 명암과 긍정·부정적 평가가 교차한다. 어찌 보면 그가 이끈 문민정부의 공과는 훗날 사가(史家)들로부터 엄정한 재평가를 받아야 할 대목도 없지 않을 게다. 특히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명분으로 단행한 ‘3당 합당’이나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 행보가 그렇다. 전자는 집권을 위해 비판의 대상이었던 노태우 정권과 손잡았다는 점에서, 후자는 몇몇 악재와 비리로 문민정부가 흔들리는 국면에서 이를 덮으려 자의적으로 단행한 것처럼 비치면서 벌써 국민적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더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기까지 김 전 대통령에게 지워진 정치적 책임과 흠결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어받아야 할 신(新)한국 건설의 꿈 DJ에 이어 YS의 서거로 소위 ‘3김(金) 정치’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 다만 3김 정치의 한 꼭짓점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아직 생존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빛이 바래기 시작한 3김 정치식(式) 정치 행태와 강고한 지역주의로부터 우리 정치가 일정 부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없지 않을 게다. 당장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 유령처럼 배회하는 지역주의의 망령부터 배격해야 한다. YS의 상도동계니 DJ의 동교동계니 하는, 소위 가신 정치의 폐해를 상기해 보라. 차제에 정치권이 지역감정의 피해자이면서도 지역 갈등을 등에 업고 정치 생명을 연장했던 3김의 정치 행태와는 영원히 절연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양김의 퇴장은 3김 정치가 드리운 부정적 그늘을 확실히 걷어 낼 적기다. 더욱이 1987년 5년 직선제 개헌 이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아 가는 시점이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국가 정책에마저 흑백 논리로 접근해 발목을 잡던 것을 당연시하던 양김 시대의 이분법과도 결별할 때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 복지국가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다. 무릇 시민의 자유와 공공성의 조화로운 추구가 민주공화정 운영의 핵심 원리다. 그런데도 작금의 우리 사회에선 제 몫을 찾으려는 목소리는 높지만, 공동체에 헌신하는 움직임은 미약하다.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이른바 4대 개혁은 여전히 난항이다. 이는 어쩌면 김 전 대통령의 생전에 치유하려 했던 신(新)한국병이 더 위중하다는 증좌인지도 모르겠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가 이루려 했던 신한국 건설은 남은 국민 모두의 책임이 됐다. 다만 그나 그가 속했던 3김 정치의 긍정적 유산은 물려받되 부정적 측면은 소거하는 일은 여야 정치권에 주어진 엄숙한 소명이다. 그중에서도 합리적 토론과 소통으로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완성해 정치가 더는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 안 되게 하는 게 으뜸가는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며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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