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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닌텐도 DS 성공신화 뒤, 신음하는 서드파티들

    닌텐도 DS 성공신화 뒤, 신음하는 서드파티들

    지난해 국내 게임기 시장을 휩쓸며 100만대 가까운 엄청난 물량을 판매한 일본의 게임회사 닌텐도. 그러나 이 닌텐도의 성공신화 뒤에서 닌텐도에 게임을 공급하고 있는 다른 게임 개발사와 유통사들, 일명 ‘서드파티’들이 한숨짓고 있어 닌텐도가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한채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닌텐도의 승승장구 뒤에서 한숨짓는 서드파티들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는 지난해 1월 중순 국내에 정식 발매됐다. 한국닌텐도는 이에 맞춰 국내 톱스타들을 줄줄이 기용해 대대적인 TV 광고를 진행했고 ‘두뇌개발’’여성용 게임’등 컨셉트로 사용자층을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20~30대 직장여성, 40~50대 중장년층까지 넓히며 초고속 성장했다. 국내 판매량은 지난해 9월30일 기준으로 58만대. 업계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수요를 포함하면 연말까지 100만대 가까이 팔렸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 5년동안 소니사가 플레이스테이션2를 135만대 정도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판매량이다. 그러나 정작 닌텐도DS용 게임을 개발해 게임기 보급에 일조한 ‘서드파티’들은 판매량 부진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일본의 한 게임전문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일본내에서 총 259개의 닌텐도DS용 소프트웨어가 판매됐다. 이 중 닌텐도가 직접 발매한 48개 타이틀의 전체 점유율의 76.3%를 차지한 반면 서드파티들이 내놓은 211개 타이틀은 23.7%의 점유율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국내에서 더 두드러진다. 게임기는 불티나게 팔렸지만 서드파티들의 소프트웨어 판매는 비참한 수준. 업계에서는 지난해 닌텐도DS 소프트웨어가 130만장 정도 판매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닌텐도는 지난해 9월30일 기준으로 120만장의 자사 타이틀을 판매했다고 밝혔다.서드파티들의 소프트웨어는 5만장도 안팔린 것. 결국 국내 닌텐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96%가량을 닌텐도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닌텐도가 지난해 게임기와 자사 타이틀을 묶고(끼워팔기) 초특급 모델을 써 광고를 하는 등 자사 마케팅에만 열중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국 닌텐도측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며 “기술 및 그외 상세지원 내용에 대해서는 서드파티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밝혀왔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방지 노력 미흡 닌텐도DS의 선풍적인 인기에는 ‘불법복제’라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국내 닌텐도DS판매는 ‘R4’라는 게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하드웨어가 나오면서 급증했다. 몇만원을 주고 복제 메모리인 R4를 구입하면 수많은 게임을 불법복제해 즐길 수 있기때문에 많은 게이머들이 닌텐도를 구입했다. 불법복제의 만연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서드파티들. 가뜩이나 홍보도 덜된 소프트웨어들이 팔리지도 않게 된 것. 반면 닌텐도는 게임기 판매시 자사 게임을 끼워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겨왔다. 업계에서는 닌텐도가 불법복제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게임기만 팔아도 상당한 이익을 남기기 때문에 불법복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같다”면서 “다른 휴대용 게임기의 경우 운영시스템인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불법복제를 방지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서드파티들을 보호해온 것과 비교하면 닌텐도의 노력은 크게 미흡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에 닌텐도측은 “(불법복제에 대해)현재 형사 고소를 실시한뒤 적법한 절차를 밟고 있다”며 “앞으로도 단호한 자세로 각종 법률에 의거 법적인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빠른 인터넷망과 다양한 유통경로를 가진 국내에서 ‘법적인 대응’에만 몰두하는 닌텐도측의 자세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술적인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한 불법복제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사제휴/ 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공격 투자로 新동력 찾아라”

    ‘공격 투자를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 주요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를 통해 본 올해 경영 화두이다. 지난해 주된 키워드는 ‘창조, 도전, 글로벌’이었다. 무자년(戊子年) 새해에는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투자 확대 언급이 유난히 많았다. ●방어보다는 공격 경영 재계는 2일 일제히 시무식을 갖고 새 출발 의지를 다졌다. 환율·유가·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 경영여건이 좋지 않지만 ‘수세 경영’보다는 ‘공격 경영’ 분위기가 압도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올해는 위기와 기회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며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또 하나의 출발점을 만들자.”고 주문했다. 고객 최우선, 글로벌 경영, 미래 대비라는 3대 추진목표도 제시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고객 가치경영을 통한 ‘그룹 매출 100조원 시대’를 주문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단기 성과에 안주 말라.”고 거들었다. 최근 실적 개선에 따른 긴장 완화를 경계하기 위한 채찍질로 풀이된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해외 공략(글로벌 경영)에 무게를 뒀다. 신 회장은 “내수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로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자.”고 독려했고, 이 회장은 “올해를 새로운 성공신화 창출의 원년으로 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빠른 변화 주문… 투자 언급도 유난히 많아 과감하고 빠른 변화에 대한 주문도 잇따랐다. 최근 ‘회사내 회사’(CIC) 등 큰 폭의 조직 개편을 단행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투자를 두려워말라.”고 일침을 놨다. 그는 “경제흐름이 바뀌는 시기에는 고객의 요구도 크게 달라진다.”며 “필요한 투자를 두려워하거나 실기(失機)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에 복귀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올해 투자를 2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최소한의 리스크(위험)는 감내한다는 각오로 (투자에)임해달라.”고 말했다.‘비극태래’(否極泰來·좋지 않은 일들이 지나고 나면 좋은 일이 온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던져 눈길을 끌었다. ●신사업 발굴로 재계서열 바꾼다 인수·합병(M&A) 의지를 계속 다지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500년 영속 기반 구축을 통해 그룹 주가 10만원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분위기를 띄웠다. 매출액(25조원), 영업이익(1조 9000억원), 신규투자(2조 9200억원), 공채(2600명) 목표도 각각 늘려잡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신규사업과 신시장 개척을 통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자.”며 맞불을 놨다. 저가항공 진출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현대건설 인수 등을 염두에 둔 듯 “올해를 적극적인 사업기반 확대의 원년으로 삼자.”고 독려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사업구조 고도화(선진화)를 나란히 강조했다. 경제단체를 각각 이끌고 있는 조석래 효성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손경식 CJ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가치 경영’과 ‘창의적 기업문화’를 각각 주문했다. ●재계 맏형 삼성만 유일하게 침묵 이날 침묵을 지킨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은 해마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던 대규모 신년하례식을 열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의 신년사도 내지 않았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 수원사업장에서 시무식을 갖고 “창조적 혁신을 통해 창립 40주년이 되는 2009년에는 세계 1위의 전자회사가 되자.”고 역설했다. 한 그룹 임원은 “입사 이래 이렇게 조용한 시무식은 처음”이라며 “올해 사업계획도 확정되지 않아 그룹 매출 목표와 투자규모를 밝히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그룹의 촉각은 ‘미래 대비’보다는 당장 발등의 불인 ‘삼성 특검팀’ 진용과 수사범위 파악에 온통 쏠려 있다. 최용규 안미현 김태균기자 hyun@seoul.co.kr
  • [신년사설] 서민이 잘사는 게 경제 살리기다

    2008년 새해 첫날 평범한 서민이 행복한 사회를 생각한다. 서민의 삶을 무자년 새해의 화두로 삼는 것은 그것이 바른 정치를 여는 출발점이요, 좋은 경제를 펼치는 지향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민이 누구인가.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잘 것 없고, 내세울 만한 생존의 무기를 갖지도 않았으며, 제 앞가림 하기에도 벅찬 약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이면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 되고,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산업화 이전 절대빈곤의 시절에도 우리는 꿈을 안고 살았다. 비록 오늘이 고달퍼도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었기에 부지런히 일했다. 올해 정부수립 60주년을 맞는다. 우리는 선진국들보다 한참 늦게 출발했지만 최단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수했으며, 지금은 정보화의 선두 대열에 당당히 서게 됐다.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채 안 되는 최빈국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 강대국 식민지배의 치욕을 겪은 나라들 가운데 우리만큼 성공한 나라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서민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사에 빛나는 한국 성공 신화의 주역이 바로 서민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지금 가파른 비탈로 내몰리고 있다. 취업난과 고용불안으로 이태백과 사오정이 일상화하고, 집값 폭등으로 내집 마련 꿈이 더 멀어졌으며, 고유가에다 물가불안, 금리불안까지 겹쳐 서민생활은 갈수록 고단하기만 하다. 참여정부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서민의 삶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념만으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마침내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서민은 참여정부를 떠받치는 기둥이었지만 지난 대선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에는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달라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서민의 꿈이 배어 있다. 따라서 오는 2월25일에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과제는 자명하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이다. 경제를 살려 밑바닥 서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제 살리기의 핵심은 서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 시대에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를 살리자면 우선은 기업의 투자의욕을 왕성하게 북돋워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돈벌이가 되는데 투자를 마다할 기업인은 없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공정한 경쟁과 효율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복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친기업, 친시장 정책이 반드시 반서민 정책을 의미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성장의 혜택이 서민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한편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따뜻한 경제’를 지향할 때 비로소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주창해온 탈(脫)여의도 실용주의 정치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 정치는 이념과 정략에 매몰되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집권하든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을 원활하게 추진하려면 정치가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줘야 한다. 우리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한 실용주의 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이명박 정부 5년의 실험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자 한다. 그 첫걸음이 인사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 이념, 계층을 떠나 능력 본위로 인재를 두루 기용하는 것이 실용의 정신에 부합하는 인사일 것이다. 인재를 찾는 노력을 막바지까지 기울이고, 주변의 보수적 목소리에만 함몰되지 않기를 당부한다. 지난 정권과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불거진 지역·계층간 대립을 해소하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권력을 독점할 생각을 버리고, 지연과 학연에 얽매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권자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전임자의 예를 반추해 언행에서 국가 최고지도자의 품격을 잃지 말고. 신뢰와 희망을 주는 리더십을 보여 주기 바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집권 초부터 정치과잉으로 민생경제 살리기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총선 공천과 각종 자리를 둘러싼 비리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통치구조를 포함, 개헌에 대한 입장도 정리해 적절한 시점에 공개하고 국민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남북관계가 착실하게 발전해 가기를 희망하며, 미·일과의 관계를 강화하되 중국과의 기존 우호관계도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늦어지면 그만큼 기득권층의 저항이 커지기 마련이다. 정부와 공기업 부문의 거품 빼기와 연금개혁, 교육개혁에 주력해 주기 바란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혁신 없이 교육개혁을 성공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가난한 집 자녀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대학입시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노사정의 대타협으로, 전투적 노사관계를 시장친화적 고용관계로 바꿔 나가되 불법 파업과 폭력 등 공공질서 파괴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고실업과 양극화 문제의 해법은 일자리 창출에서 찾아야 한다. 청년 실업자와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복지정책이다. 이를 위해 고용효과가 큰 중소기업 살리기에 역점을 두되 무리한 경기부양은 삼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갈 수 있다고 믿는다.‘따뜻한 시장경제’를 세워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서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01일 TV 하이라이트]

    ●신년기획 역동! 대한민국(KBS1 오전 10시) 전세계의 신년맞이 현장과 남극 세종기지 등 우리나라 과학전초기지, 축제가 열리는 서울, 여수, 부산을 하나로 잇는 대규모 신년축제의 막이 오른다.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가두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 새해를 맞아 전세계를 향해 달리는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산업현장을 소개한다.   ●세계명작드라마 와신상담(EBS 오후 8시50분) 월나라는 갑작스런 홍수로 수확량이 줄자 식량난에 허덕이게 된다. 석매는 오나라에서 식량을 빌려오자고 제안한다. 구천의 명을 받은 범려는 식량을 빌리러 오나라로 향한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식량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간언을 올리고, 이번 재난을 틈타 구천을 잡아들이라 청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한꺼번에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대 로마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다. 검투사의 대결부터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공연까지 새롭게 재현됐다. 공연에 사용된 가면과 청동 조각상, 모자이크 등 이탈리아 전국의 박물관과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져온 70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산(MBC 오후 9시55분) 화완은 “중전은 이제 산 송장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뜻을 펼칠 생각을 정후겸에게 말한다. 그게 뭐냐고 정후겸이 묻자 화완은 “너라고 용상에 오르지 못할 일이 없지 않냐?”고 대답한다. 한편 절망하던 산은 옛 동무 대수와 송연을 만나 술에 만취해 궐로 들어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혜빈은 송연을 불러들이는데….   ●미워도 좋아(SBS 오전 8시30분) 태양마트 이곳저곳에는 새해를 알리는 문구들로 장식돼 있고, 동희는 새해 첫출근하는 윤진에게 인사를 하지만 무시당한다. 업무를 점검하던 윤진이 직원에게 동희의 찬방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가 소문난 찬방 매장을 코너로 몰기가 힘들다는 대답을 듣자, 구석으로 못 옮기면 아예 빼버리라고 명령한다.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45분) 왜 초기 CD의 연주시간은 보통 74분일까?기술적인 한계 때문일까? 아니다. 놀랍게도 한 지휘자의 개인적인 결정 때문이었다는데….CD의 연주시간까지도 결정했던 막강한 권력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2008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21세기 클래식계의 제왕 카라얀의 음악세계를 돌이켜본다.
  • [민속학으로 풀어본 ‘쥐’] 설화에 나타난 ‘쥐’의 캐릭터

    함경도 지방의 창세가(創世歌)에 보면 불과 물의 근원을 알려준 새앙쥐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이 세상이 생길 적에 미륵이 해와 달을 이용하여 별을 만들고, 옷을 짓는데, 그 크기가 엄청났다. 미륵은 날곡식을 그대로 먹었는데, 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곡식을 먹을 때마다 익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였으나 물과 불의 근본을 모르는 미륵은 풀메뚜기를 잡아다가 불기를 치며 물었다.‘풀메뚜기야 물과 불의 근본을 아느냐!’ 풀메뚜기는 자신은 모르지만 풀개구리는 알 것이라고 하였다. 역시 풀개구리를 잡아와 볼기를 치며 물과 불의 근본을 물으니 풀개구리도 자신은 모르나 새앙쥐는 알 것이라고 추천하였다. 새앙쥐를 잡아다 물으니 ‘가르쳐 드리면 무슨 공을 주시겠습니까?’했다. 이에 미륵은 ‘네가 가르쳐 준다면 이 세상의 모든 뒤주를 네가 차지하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새앙쥐는 ‘그렇다면 가르쳐 드리지요. 불의 근본은 금정산에 들어가서 한쪽이 차돌이고 한쪽이 무쇠인 돌로 툭툭 치면 불이 날 것이니 알 것이오. 그리고, 물의 근본은 소하산에 들어가면 샘물이 솔솔 솟아나서 물의 근본을 이룬 것을 알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미륵은 새앙쥐의 말을 듣고 금정산과 소하산에 들어가 불의 근본과 물의 근본을 밝혀 냈다. 이때부터 이 세상은 물과 불을 쓰게 되었다. 민속학자 임석재가 채집한 함경도 성인굿에서 서술되는 천지개벽 신화의 전개양상은 조금 다르나, 귀결점은 같다. 애초에 땅 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륵을 석가가 사술(詐術)로써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한다. 이 석가가 쥐로 하여금 불을 마련하게 한다. 여기서도 쥐가 불을 처음 마련한다는 점에서 창세가의 쥐와 동일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쥐는 인간을 창조한 미륵신에게 불의 근원과 물의 근원을 가르쳐 주는 정보력을 과시한다. ‘황금구슬’이라는 옛날 이야기에 쥐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잉어를 놓아준 대가로 얻은 황금구슬로 부자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쁜 할머니에게 속아 황금구슬을 도둑맞자 그 집의 개와 고양이가 황금구슬을 되찾으려고 나쁜 할머니의 집에 가서 대왕쥐를 잡는다. 개와 고양이가 대왕쥐를 잡는 이유는 쥐에게서 황금구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쥐는 집안의 곳곳을 돌아다녀 집안 사정이나 집안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를 완전히 꿰뚫어 알고 있는 정보체로서 인식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설화로 볼 때, 우리 선조들은 쥐는 비록 작지만 어느 곳이나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어서 여기저기에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조그만 정보통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쥐가 정보화(IT) 시대에 걸맞는 안성맞춤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제2 한강의 기적 새해 새꿈 심장이 뛴다

    제2 한강의 기적 새해 새꿈 심장이 뛴다

    연간무역 7000억달러 시대가 열렸다. 중계무역 국가인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제외하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중국에 이어 9번째다.1988년 연간무역 1000억달러 달성 이후 19년만에 이룬 세계에서 네 번째로 빠른 성장이다. 올해 연간 수출액은 3700억달러. 하루 수출규모만 10억달러이다. 세계 경제사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그리 장밋빛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고속성장의 엔진이었던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수출산업이 위협 받고 있다. 약진하는 후발 개도국의 저가 공세, 고유가와 낮아지는 환율이 성장의 반대편에서 길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다시 한 번 도약해야 할 때다. 경제의 70%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수출은 우리 경제의 동맥이다. 피돌기가 멈추면 경제는 곧 사망이다. 끊임없이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성장엔진과 틈새시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울산항 자동차 야적장. 수출선박에 선적되는 자동차들이 긴 꼬리를 물고 배에 오르고 있다. 라이트를 켠 수출 자동차의 행렬이 화려한 궤적을 그린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향한 우리 경제의 힘찬 피돌기다. 글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NFL] 뉴잉글랜드 사상 첫 16전승

    ‘불패(Undefeated)!’ 미프로풋볼(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퍼펙트(16전 전승)로 정규시즌을 매조지했다.16전 전승은 NFL 87년 사상 처음이다.1972년 마이애미 돌핀스도 전승으로 정규시즌을 끝낸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는 팀 당 14경기였고,1978년부터 16경기가 됐다. 뉴잉글랜드의 퍼펙트 신화는 역전 드라마에다가 풍성한 기록 잔치가 곁들여져 더욱 극적이었다. 뉴잉글랜드는 30일 이스트 러더퍼드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뉴욕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서 4쿼터에만 15점을 몰아치며 38-35로 역전승했다. 1쿼터에서 선제 터치다운을 내주고 3점짜리 필드골을 뽑아낸 뉴잉글랜드는 2쿼터에서도 터치다운 1개와 필드골 2개를 낚았지만 터치다운 2개를 거푸 찍히며 전반을 16-21로 끝냈다.3쿼터에 터치다운 1개를 주고받은 뉴잉글랜드는 마지막 4쿼터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쿼터백 톰 브래디의 65야드 패스를 받아 상대 엔드존을 뚫은 와이드리시버 랜디 모스의 활약에 29-28로 승부를 뒤집은 것. 뉴잉글랜드는 1점짜리 보너스 킥 대신 다시 득점을 시도하는 2점짜리 ‘투 포인트 컨버전’을 성공해 31-28로 달아났다.뉴잉글랜드는 경기 종료 4분46초를 앞두고 러닝백 로렌스 머로니가 다시 터치다운을 찍으며 승기를 잡았다. 자이언츠는 1분여를 남기고 와이드리시버 플락시코 버레스가 터치다운을 보탰으나 흐름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브래디는 터치다운 패스 50개째를 배달하며 2004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슈퍼스타 쿼터백 페이튼 매닝이 세운 한 시즌 최다 터치다운 패스(49개)를 3년 만에 갈아치웠다. 이날 터치다운 2개를 기록한 모스도 시즌 23개로 1987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뛰던 와이드리시버 제리 라이스가 수립한 한 시즌 최다 터치다운 기록(22개)을 넘어섰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데스크시각] 법 좋아하는 정치인/박대출 정치부 부장

    “좋은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다.”(A good lawyer,a bad neighbour.) 벤저민 프랭클린의 독설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인물의 법 인식이다.“그는 변호사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다.”미국 변호사의 조크다.“송사(訟事)는 3대가 시끄럽다.”우리의 속담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일단 부정적이다. 법은 야누스다. 두 얼굴을 갖고 있다.‘법대로’란 말부터 그렇다. 본질은 이성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요체다. 감정이 섞이면 정반대다. 막무가내로 나갈 때 얘기다. 속된 말로 ‘배째라’와 같다. 이성과 폭력이 동의어가 된다. 대법원 로고에는 여인이 나온다. 저울과 법전을 양손에 들고 있다. 원조는 테미스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여신은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이성과 무력이 양립한다. 그래서 다들 송사를 멀리한다.3대째 시끄러운 게 싫기 때문이다. 예외 부류가 있다. 여의도의 정치인들이다. 법을 어지간히 좋아한다. 걸핏하면 법에 매달린다. 고소 고발이 습관화됐다. 갈수록 늘고 있다. 민주화 이후 급증 추세다. 김대중 정권 때 본격화됐다. 현 정권에선 가히 정점이다. 청와대의 언론 송사가 22건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이름으론 4건이다. ‘금권’‘관권’‘타락’‘혼탁’…. 이전 선거 때의 단골 메뉴들이다. 늘상 신문지면을 도배했다. 그런데 이번엔 자취를 감췄다. 세상이 달라졌다.10년만에 정권이 교체됐다. 선거판도 바뀌었다. 바뀌면서 ‘이명박 세상’이 왔다. 관권선거 논란이 사라졌다.‘가는 권력’의 정치 개혁 의지 탓일까. 대못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일까. 차떼기 논란도 없었다. 네거티브 공방에 쏠린 탓일까. 삼성특검법 때문일까. 차떼기란 말은 엉뚱한 데서 잠시 불거졌다. 신당 경선 과정에서 나왔다. 이해찬 후보측이 정동영 후보측을 겨냥한 비판이었다. 투표인들을 차에 실어 날랐다며 “차떼기 선거”라고 했다. 두 악(惡)이 실제로 없었는지, 네거티브 공방에 덮인 착시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수법이 교묘해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일보 전진이다. 십보, 백보 전진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대신 고소 고발이 늘었다. 지난 총선 때의 두배라고 한다. 구악이 물러나니 신악이 나타났다. 의혹 공세가 판을 쳤다. 공격에 역공에, 막가파식 송사가 난무했다.‘감정적 공방’이 부추겼다. 정치력은 실종됐다. 본질은 발목잡기다.5년간 발목잡기 공방으로 옥신각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발목 잡는다.”고 외쳐댔다. 한나라당은 발목 잡힐 일만 쏟아낸다는 반박이다. 선거용 공방이 ‘묻지마 고소’를 양산했다. 막가파식 고소에 감각도 무뎌졌다. 법이 정치에 희롱 당하는 꼴이다. 정치권의 외상심리가 으뜸 요인이다. 대선 후면 끝이라는 식이다. 정치권 스스로 취소한 전례가 많다.‘화합’의 이름으로 그래왔다. 그만 물고 뜯고 손을 잡자는 논리가 동원된다. 정치의 법 농락은 선거 후로 연장됐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닐 성싶다. 일단 대상들이 너무 많다. 고소 고발된 의원은 20명이 넘는다. 교섭단체도 가능하다는 검찰의 푸념이다. 서로가 부담스러울 만하다.‘화합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은 상존한다. 고소 고발, 그리고 취하. 정치권의 상식처럼 돼 버렸다. 그들만의 통념이다. 독선일 뿐이다. 그들만의 상식을 뒤집어야 한다. 국민 모두의 상식으로 바꿔야 한다. 정치권만의 상식도 배반이 필요하다. 이번엔 끝까지 가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화해는 또 하나의 정치 술수다. 법 좋아하니 법으로 끝내면 된다. 정당한 공세인지, 부당한 공세인지 따지면 된다.‘제2의 설훈’‘제2의 김대업’인지 옥석만 가려내면 된다. 법의 몫이다. 꼼수는 저울과 칼로 응징해야 한다. 또다시 흥정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종착역은 법정이다. 박대출 정치부 부장 dcpark@seoul.co.kr
  • 2007년 사라진 ‘별’

    올해도 친숙하던 많은 동시대인들이 생을 접고 저 세상으로 갔다. 세밑을 맞아 우리들 곁을 떠난 ‘진별’들의 생을 반추해 본다.●정·관계 5공 시절 외무부장관을 지낸 이원경(85·8월4일)씨가 별세했다. 제1회 외교관 공채시험에 합격한 고인은 외무부 의전국장·차관 등을 거쳐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12·13대 국회의원이었던 지연태(79·12월21일)씨도 유명을 달리했다. 황정일(52·7월29일) 주중 정무공사는 베이징에서 식중독 치료를 받다 숨져 의료사고 여부를 놓고 외교마찰이 일기도 했다. 해병대 초대 사령관을 지낸 신현준(92·10월15일) 예비역 중장은 미국에서 별세했다. ‘통영 대꼬챙이’로 불린 이일규(87·12월2일) 전 대법원장은 1975년 대법원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 8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릴 때 유일하게 반대했다. 민복기(94·7월13일) 전 대법원장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10년간 재임한 최장수 대법원장이었다. 이종원(83·8월27일) 전 법무장관과 이범준(79·11월30일) 전 교통장관도 해를 넘기지 못했다.●사회·학계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인 윤한봉(59·6월27일) 민족미래연구소 소장이 지병인 폐기종으로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잠들었다. 독도 의용수비대 김경호(79·6월16일) 선생도 별세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 배후를 추적해온 권중희(71·11월16일)씨도 세상을 떠났다. 평생 고아들의 무료 진료와 사회사업을 위해 헌신한 김종원(93·3월26일) 선린병원 설립자도 타계했다. 군 복무 중이던 장병들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서 근무 중이던 윤장호(27·2월27일) 하사는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해병대 박영철(20·11월6일) 상병은 총기탈취사고의 희생자였다. 국제법 권위자로 프랑스 문화재 반환과 독도 영유권 분쟁 해결에 앞장서 온 백충현(68·4월11일)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1990년 국내 최초의 의학대사전을 발간한 이우주(89·4월25일) 전 연세대 총장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약리학자였다.KAIST 초대 원장을 역임하며 국내 물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이주천(77·9월27일) 교수도 생을 달리했다. 1993년 3월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1호 이인모(89·6월16일)씨도 북한에서 사망했다. 기독교계의 대표적 진보인사로 도시 빈민과 노동자를 위한 종교운동에 힘썼던 김동완(65·9월12일) 목사도 소천했다.●문화·체육계 연예가는 벽두부터 잇따른 자살로 패닉에 빠졌다.1월 탤런트 겸 가수인 유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20여일 만에 영화배우 정다빈의 자살 사건이 겹쳤다. 개그우먼 김형은은 교통사고로 2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고,‘큰손’ 장영자씨의 사위였던 인기 탤런트 김주승과 원로 연기자 최길호는 암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당뇨합병증과 싸워 오던 중견 탤런트 홍성민의 사망소식도 팬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문단에선 2월에 ‘분명한 사건’‘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등을 남긴 오규원 시인,5월엔 ‘국민 수필가’ 피천득과 ‘강아지똥’의 아동문학가 권정생,11월엔 ‘수난이대’의 소설가 하근찬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화가·무용평론가로 이름을 날린 팔방미인 예술인 김영태, 원로출판인 홍석우 탐구당 대표, 한국 서예계의 거목 여초 김응현도 치열하게 생을 살다간 문화인으로 남았다. 원로 가수들의 부음도 전해졌다.2월 ‘키다리 미스터 김’의 주인공 이금희에 이어 5월엔 ‘이별의 인천항’ 등을 히트시킨 원로가수 박경원이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도 우리 곁을 떠났다. 대표적인 창작국악 작곡가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인 이강덕을 비롯해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조선시대 마지막 무동’ 김천흥,‘대동굿’ 명예보유자 최음전,‘영해별신굿놀이’ 보유자 김미향,‘북청사자놀음’ 보유자인 여재성 등이 역사 속 인물이 됐다. 원로무용가 송범, 한국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았던 원로성악가 바리톤 윤치호, 가요 ‘잊혀진 계절’ 등을 쓴 작사가 박건호, 정명조 천주교 부산교구장 등도 역사의 뒤안으로 돌아섰다.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투수였던 박동희(39)씨가 3월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한국 체육계의 큰 별인 조상호(81) 전 체육부 장관은 8월25일 뇌출혈로 별세했다. 최은택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2월 66세로 유명을 달리했으며 국내 최초로 프로복싱 동양챔피언에 올랐던 강세철(81·5월)씨, 김성은(64·8월)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회장도 세상을 떴다.●경제계 ‘마지막 개성상인’이자 40여년 화학산업의 외길을 걸은 송암 이회림(90·7월)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이 세상을 떴다. 박경복(85·7월)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93년 OB맥주의 아성을 무너뜨려 ‘하이트 신화’를 세웠다. 경제기획원 전신인 부흥부 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신현확(87·4월) 전 총리도 올해 진 큰 별이다.5·6 공화국 시절 ‘금융계의 황제’ 이원조(74·3월) 전 은행감독원장도 유명을 달리했다. 강권석(57) 기업은행장은 편도종양 치료를 받다 12월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86)씨도 8월 남편 곁으로 갔다.●해외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지난 9월 미얀마 양곤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다 진압군 병사의 총격을 받고 50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는 마지막까지 비디오카메라를 놓지 않아 감동을 주었다.`컵라면´ 등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만든 일본 닛신(日淸)식품의 안도 모모후쿠(96) 회장이 1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미국의 자선 사업가 브룩 애스터는 지난 8월 폐렴으로 105세로 생을 마감했다. 초대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보리스 옐친은 4월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지난 9월 세계적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타계, 팬들의 애도가 지구촌 곳곳으로 이어졌다. 첼리스트 겸 지휘자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러시아가 배출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티콘 흐레니코프 등의 거장들도 떠났다. 소피아 로렌의 남편이자 `길’`닥터 지바고´ 등의 대작을 남긴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 네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차지했던 스웨덴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왕과 나´‘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할리우드 명배우 데보라 카도 `진 별’이 됐다.각부종합
  • [이지운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中, 의전으로 후쿠다 체면 살리기

    중국이 27일 방문하는 ‘친중파’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 ‘접대’를 위해 적지않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26일 홍콩 언론 등이 보도했다. 후쿠다 총리는 27일 밤 베이징에 도착한 뒤 28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회담하고 오후에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및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회담할 예정이다. 홍콩 매체들은 “후 주석이 28일 후쿠다 총리를 위해 마련한 만찬은 당초 원 총리가 주최키로 한 것을 격상시킨 것”이라면서 “중국이 그만큼 후쿠다 방문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만찬과 함께 베이징 대학에서의 강연은 중국중앙TV를 통해 전국으로 중계될 것으로 전해진다. 실현된다면 외국 국가원수로선 첫 사례다. 신화통신은 중·일 관계 해빙을 전망하는 칼럼을 내는 등 언론도 환영일색이다. 후쿠다의 전기가 중국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저자가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계 주간지의 전 편집자인 량다오진(楊道金)인 것으로 보아 당 중앙의 의도가 일정 정도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저자는 “후쿠다 총리의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는 중·일 평화우호조약의 체결로 양국 교류에 견고한 기반을 쌓은 인물”이라고 전하면서 후쿠다 총리를 “(중국에 정통한) 지중파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평했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26일 “중국으로서는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겠다.’고 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후쿠다를 최대한 도와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나아가 중국은 내년 상반기 후진타오 주석의 방일도 예정돼 있기 때문에 먼저 손님 접대를 잘 해야 하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번 후쿠다의 방중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치적으로 중국은 일본에 타이완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원하고 있지만, 이는 일본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대 중국 견제카드’여서 중국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어렵다.시장경제지위 인정 문제 등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양국간 현안인 동중국해에서의 협력 문제도 내년 후 주석의 방일 때 선물로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중국에 놀러갔느냐.’는 식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의전’으로라도 후쿠다의 체면을 살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jj@seoul.co.kr
  • “李 당선자 총각때 中처녀와 보랏빛 사랑”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총각 때 중국 처녀를 좋아했다는 사실에 중국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다. 신화통신은 24일 이 당선자가 자신의 저서 ‘신화는 없다’를 통해 25세 총각 시절인 1966년 태국 티파니 나라티왓에서 겪은 러브 스토리를 스스로 공개했다고 소개했다. 경리부 말단사원이던 이 당선자는 당시 태국 남부 열대우림 지역인 이곳에서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현장사무소 옆 중국음식점 주인 딸인 여주인공과는 우물에 마실 물을 뜨러 갔다가 만났다.‘신화는 없다’ 284쪽에는 여주인공 첸링(錢玲)에 대해 “물을 긷다가 마당 한쪽을 보니 스무 살 안팎의 백옥 같이 생긴 처녀가 몰래 나를 바라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집 안으로 사라졌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당선자는 저서에서 “나도 넋을 잃고 처녀가 사라진 쪽을 향해 멍하니 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점점 물을 뜨러 가는 횟수가 잦아졌으며 첸링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접근을 해왔다.”면서 “그녀와 몇 차례 만나자 우리는 거리의 찻집에서 만나는 단계로 발전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내가 못생겼다는 것이 괴로웠다.”면서 “특히 나는 눈이 작아 당신과 어울리지 않으니 방콕에 가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털어 놨다. 이에 첸링은 “당신 얼굴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위가 바로 맑은 눈”이라며 “도대체 누가 당신을 못 생겼다고 했느냐.”며 이 당선자를 격려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찻집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안 첸링의 아버지가 딸에게 금족령을 내렸으며 이 당선자에게는 마당 출입 금지령을 내리는 바람에 두 사람의 보랏빛 사랑은 사그라졌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새해 해맞이 우리가 최고”

    “새해 해맞이 우리가 최고”

    ‘굿모닝 2008’ 2008년 무자년(戊子年) 새해를 맞아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해맞이 축제가 벌어진다. 전국의 자치단체에서는 ‘해맞이는 이곳이 최고’라는 주제로 다양한 일출 행사를 마련,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포항 호미곶, 삼족오 연에 소원 담아 띄워 해맞이 명소 가운데 단연 으뜸인 경북 포항의 호미곶에서는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올해 해맞이 행사는 고대신화에 나오는 삼족오를 형상화한 가로 20m, 세로 50m 크기의 초대형 연에 관광객들의 소원을 담아 새해 일출시간에 맞춰 띄운다. 또 새해소망을 담은 2008개 연날리기와 어선 50척의 해상 V자 퍼레이드 행사가 마련된다. 해맞이 행사장에는 꽁치 1만 2000여마리로 꾸민 높이 9m의 과메기 홍보탑도 들어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 것으로 보인다. 숙박 문의 011-521-7340.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다.1월1일 간절곶 일출시간은 오전 7시31분21초로 포항 장기곶보다 1분, 강릉 정동진보다 7분쯤 빠르다. 각계 초청인사와 일반 신청인 등 모두 2008명이 동시에 일출시간에 해를 향해 국궁을 쏘는 희망의 활쏘기 행사가 펼쳐진다. 숙박 문의 (052)239-5301. ●한라산 야간산행 즐거움도 만끽 2008년 1월1일 새벽 0시부터 한라산 야간산행이 허용된다. 5인 1조의 그룹 해맞이 등산객에 한해 야간 산행이 허용되며 성판악, 관음사 2개 코스에 등산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유도 로프와 깃발 등이 설치됐다. 한라산 해맞이 등산객들은 미끄럼방지를 위한 아이젠과 장갑, 손전등, 모자 등 방한장비를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성산일출봉에서도 31일부터 3일간 일출축제가 열린다. 경남 창녕 우포늪과 전남 순천만을 보유한 경남도와 전남도는 새해 첫날 손을 맞잡고 2008 람사르 총회 성공 기원과 영호남 화합을 기원하는 해맞이 행사를 펼친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순천만에서 치러지는 해맞이 행사에는 영호남 주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다. 참가자들은 새해 소망을 종이에 써 순천만을 상징하는 흑두루미 등에 달고 호남을 대표하는 남도무용과 농악 공연이 선보인다. 경남 진동만에서 생산된 각굴과 홍합을 가마솥에 삶아 함께 먹는다. ●소망 기원 ‘해맞이 열차´ 운행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31일 KTX와 새마을, 무궁화호를 이용해 동해안과 남해안, 태백산 등 해돋이 명소를 찾아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신년 해맞이 열차’를 운행한다. ▲정동진 해돋이&묵호 순환(무박2일·6만 4000원), 청량리역 출발 ▲동해 영덕 해돋이 관광열차(무박2일·5만 8000원), 서울역 출발 ▲간절곶 해돋이 & 경주 기차여행(무박2일·6만 9000원), 서울역 출발 ▲경포대 해돋이 축제열차(1박2일·12만 9000원), 청량리역 출발 ▲남해 해돋이 여행(무박2일·5만 9000원), 용산역 출발 ▲외도 선상해돋이 & 보성차밭 열차여행(1박2일·19만 9000원), 용산역 출발 ▲땅끝 해돋이 & 보길도 열차여행(1박2일·19만9000원), 용산역 출발, 해맞이 열차 상품 문의 1577-7788. ●익산 등선 해넘이 축제 열어 전북 익산시는 ‘제3회 웅포 곰개나루 해넘이축제’를 금강의 햇무리를 배경으로 31일 오전 11시부터 웅포면 곰개나루 공원에서 연다. 군산시도 새만금특별법과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축하하는 ‘제5회 새만금 해넘이·해맞이 행사’를 옥도면 야미도 일대에서 연다. 전국종합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자동차 폐타이어가 꿈틀대는 동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무대를 단박에 매료시켜 버린 신인작가 지용호(29). 귀밝은 미술애호가라면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못쓰는 자동차 타이어로 금방이라도 살아 꿈틀댈 듯한 동물 조각을 만드는 별난 작가. 그의 첫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1월1일까지. ‘뮤턴트’(mutant·돌연변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번 전시에는 모두 16점이 연작 형태로 나와 있다. 못쓰는 타이어를 주재료로 말, 늑대, 소 같은 동물의 전신이나 머리 부분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작가가 온통 거친 무늬의 검은색으로 형상화한 동물들은 얼핏 두렵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돼지 코를 한 용의 머리, 닭의 꼬리를 가진 목이 긴 늑대, 힘없이 처량한 사자의 모습 등은 다분히 신화적인 기괴함마저 느끼게 한다.하지만 폐타이어 동물들의 처량한 눈빛은 존재의 나약함을 넘어 인간의 파괴적 행위로 훼손되어 가는 자연의 운명을 웅변하기에 충분하다. 현대문명의 산물인 재료(폐타이어) 자체가 던지는 상징적 메시지가 무엇보다 강하다. 재료는 기발하지만 형식과 기법면에서는 순수 전통조각의 맥을 잇는다. 철, 스티로폼으로 기본 뼈대를 만든 뒤 그 위에 근육부위에 맞춰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트랙터 등 다양한 타이어를 붙인다. 근육을 표현하는 데 해부학적 지식이 토대가 됐음은 물론이다. 현재 뉴욕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작가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 등 국제 미술시장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상어’는 지난달 열린 필립스 뉴욕 컨템퍼러리 경매에서 14만 5000달러(약 1억 3000만원)에 낙찰됐다.(02)736-1020.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명박 시대-17대 대선 평가와 전망] 한나라,‘중도실용’ 각인 성과

    [이명박 시대-17대 대선 평가와 전망] 한나라,‘중도실용’ 각인 성과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승리로 막을 내렸다. 헌정 사상 두번째로 맞이한 수평적 정권교체이자 10년 만에 이뤄진 개혁·보수 진영 간의 권력이동이다. 서울신문의 대선 여론조사·분석을 전담했던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 소장 이남영 세종대 교수, 김형준 명지대 교수, 김욱 배재대 교수의 좌담을 통해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에서 던진 의미를 성찰하고 이후의 정국 흐름을 전망해 본다. 황진선 서울신문 정치담당 부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 이명박 당선의 정치적 의미 ●이남영 교수 역사적으로 볼 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라는 의미가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민주화 세대로 사회 진출 후 산업화 현장을 누볐다. 역사적 부담이 되어 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김형준 교수 두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87년 이후 5번의 선거를 통해 보수정권 10년, 진보정권 10년을 거쳐 다시 보수정권으로 회귀했다. 좌·우로의 ‘진자운동’은 정치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같은 교체주기는 앞으로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김욱 교수 두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정치의 일상화’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민주화에 대한 전통적 갈망이 표면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치가 개혁·평화와 같은 거대 슬로건보다 일자리 등 일상적인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명박 당선의 핵심 요인 ●이남영 교수 실제 지표가 어떠했든 국민들은 경제·교육 등 국가 근간을 이루는 주요 정책들이 실패했다고 체감했다. 이같은 ‘체감의 벽’을 정동영 후보나 진보진영 후보들은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 우선 범여권의 안일함을 지적할 수 있다.2002년 후보단일화 같은 ‘한방 신화’에 젖어 있었다.BBK에 모든 걸 걸다 보니 국민에게 어필할 정책이 없었다. 다른 요인은 전통적으로 ‘도덕성’을 후보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 왔던 유권자들이 이번엔 ‘업적’에 대한 평가와 기대치에 따라 투표했다는 점이다. ●김욱 교수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 덕분에 한나라당은 고공비행을 할 수 있었다. 범여권이 네거티브에 매몰돼 실패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의지할 수단이 없는 선거구도였다. ●김형준 교수 덧붙이자면, 지난번 한나라당 경선은 영남출신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승리한 경선이었다. 이것이 한나라당에 수구가 아닌 중도실용의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중도와 보수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 이번 대선의 특징 ●이남영 교수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의 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끝났어야 하는데 미진했다. 이 때문에 본선에 와서도 검증문제로 수개월을 끌었고 정책이나 이념이 선거구도의 변수가 되지 못했다. ●김형준 교수 역대 선거에서 힘을 발휘했던 세가지 프레임이 실종됐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일찍 탈당해 여당이 없는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여야 프레임’이 사라지고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만 만들어졌다. 둘째 ‘진보·보수’ 프레임도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면서 깨졌다. 셋째 ‘이슈 프레임’이 없었다. 경제살리기가 하나의 쟁점으로 합의된 상태에서 각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대립쟁점이 형성되지 못했다. ●김욱 교수 더 큰 요인은 여야가 모두 분열되면서 선거가 다자구도로 짜여졌다는 점이다. 선거구도가 불안정하니 정책대결이 이뤄지기 어려웠다. ■ 이번 선거의 긍정적 측면 ●이남영 교수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지역연고에 함몰돼 표를 던지던 유권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중도실용을 표방한 정권이 출현함으로써 통치스타일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형준 교수 ‘돈선거’가 완화됐다는 점은 성과다.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465억원을 썼다는데 이번엔 300억원대밖에 안된다고 한다. 조직보다 홍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긍정적 조짐이다. 또 지역·이념·세대가 아닌 실리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됐다. ●김욱 교수 일상적인 정권교체의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꼽고 싶다. 또 문국현 후보 등 새로운 세력이 등장함으로써 한국의 정당정치가 다당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점도 평가할 대목이다. ■ 대선 이후 정국전망 ●이남영 교수 범여권이 총선을 위해 이명박 특검을 집요하게 활용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특검의 영향력을 차단·완화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이회창 신당이 창당되는 데다, 한나라당 역시 박근혜 세력 포용이라는 난제를 안고 있다. 앞으로 2∼3개월이 이명박 정권 5년의 시험대가 될 수밖에 없다. ●김형준 교수 특검은 진보진영의 재편성도 가져올 것이다.52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는 것은 정동영 체제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 남으려면 신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이 뭉치는 수밖에 없다. 연결고리는 특검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선 특검이 있고 내부의 박근혜 세력과 외부의 이회창 세력이 건재하는 한 전당대회가 있는 7월까지는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안전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김욱 교수 이명박 특검은 정치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이 당선자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범여권과 타협하면서 최악의 대결을 피해야 한다. ■ 박근혜·이회창의 진로 ●이남영 교수 총선을 앞두고 공천의 상당 부분을 박근혜 전 대표측에 할애해야 하는데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 대통령이 모든 세력을 끌어 안고 지분 나누기식으로 당을 재편하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얼마나 받게 될지도 의문이다. 이회창 후보가 15.1%를 얻었는데 상당한 규모다. 이 정도면 충남·대전권에선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김욱 교수 이회창 후보는 충남지역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 충남을 연고로 둔 국민중심당과 연합해 지역에 기반을 둔 새 정치세력의 등장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양한 이념·지향을 가진 세력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 범여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남영 교수 대선 정국에서 가장 신선하게 다가온 세력은 문국현 진영이다. 갓 데뷔한 정치 신인이 10년 역사의 민노당을 제쳤다.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갖고도 26%의 득표율에 머문 정동영 후보로선 지역 기반도 없는 혈혈단신 후보가 5.8%를 얻은 사실을 곰곰히 새겨 봐야 한다. 총선 때 신당에 합류할 것이란 예상도 있지만 과연 새롭게 떠오른 세력이 낡은 배에 오르려 하겠는가. ●김형준 교수 만약 내년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진영이 당권을 장악한다면 수도권의 개혁성향 후보들이 문국현 쪽과 결합할 가능성도 있다. 정동영 후보가 일선에서 퇴진한 상태에서 대통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소선구제 아래서는 수도권을 한나라당에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욱 교수 다당제는 대통령 중심제와는 잘 안 맞는다. 소선거구제와도 안맞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이를 반영하는 새 선거제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 이명박 당선자의 과제 ●이남영 교수 싫더라도 참여정부와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정책도 상당 부분 인수받게 된다. 재평가하면서 수정할 부분은 고치면 된다. 다만 대북관계 등 몇가지 대립되는 지점이 있다. 이 역시 연속성과 일관성을 추구하는 가운데 수정·보완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김형준 교수 노무현 정부의 상징적 정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북핵과 평화체제,3불정책, 부동산정책 등이다. 만약 집권 초기부터 전임 정부의 정책을 청산하는데 매달리다 보면 경제살리기는 뒤로 밀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전임 정부의 것이라도 정치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김욱 교수 이명박 정부도 큰 틀에선 개혁세력이 지금까지 만들고 다져온 정책들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큰 성과가 복지확대인데, 성장을 중시한다고 이미 주어진 복지를 빼앗는 것은 국민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차기정부 임기 초 최우선 과제 ●이남영 교수 업적·성과중심으로 치달아선 안 된다. 그러다 보면 허점이 생기고, 그걸 메우려다 보면 실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군사정권 시절처럼 ‘하면 된다.’식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은 지치고, 그것이 실패할 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청계천 신화’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한반도 대운하도 조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없다. ●김형준 교수 역대 대통령들이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은 집권 초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정치에 쏟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 안 된다. 정치는 당과 국회에 맡겨야 한다. 다음으로 합리적·화합적 인사가 중요하다. 야당에 국가적 과제에 관한 중요 정보는 기꺼이 제공하고 동조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김욱 교수 이 후보의 당선은 국민들이 보수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두터워진 중도층이 보수쪽으로 잠시 이동한 결과다. 중도층의 특성상 정부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실정이 이어지면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한다.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中-印 첫 합동 군사훈련

    中-印 첫 합동 군사훈련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과 인도가 사상 처음으로 지상군 합동 훈련에 들어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인민해방군 소속 육군 100명과 인도 육군 100명이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교외 산악지대에서 테러 진압을 위한 연합 군사훈련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작전명 ‘제휴 2007’인 이번 훈련은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두 나라가 지상군 훈련을 함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내년에는 인도에서 합동훈련을 갖기로 했다. 중국에게 이번 군사훈련은 미국의 군사적 포위 전략에 맞선다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군사적 협력을 포함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인도를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인도 국방부 수탄슈 카르 대변인은 “이번 훈련은 양국 관계 개선에 중요한 이정표”라고 말했다. 중국의 관영 언론 매체들도 이번 군사훈련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일본·호주 등과 이른바 ‘삼각 동맹’을 형성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미국이 이 삼각동맹에 인도를 끌어들여 ‘아시아판 나토’의 구축을 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어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인도는 지난 9월 미국, 호주, 일본, 싱가포르 등과 벵골만에서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며 이 지역에서의 해군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2005년부터 이어져오며 ‘반미 동맹’으로 발전 가능성이 엿보였던 ‘중국-러시아-인도’ 외무장관 회담도 현재 사실상 와해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MD)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는 중·러와는 달리 인도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중국은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는 등 지역에서의 군사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한때 이번 훈련의 성사 여부에 회의적인 관측이 제기됐었다. 훈련을 앞두고 중국 티베트 남부와 인도 북부의 접경 삼각시대에 인도군이 설치한 요새와 초소 문제로 두 나라 사이에 빚어진 분쟁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훈련이 성사됨으로써 양국간 관계 개선의 의지가 확인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합동훈련에 참가한 양국군대의 수는 200명에 불과하지만, 두 나라가 국경 분쟁으로 수십년간 앙숙 관계였던 만큼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협력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히말라야산맥 국경선을 놓고 국지전을 펼친 바 있다. 중국과 인도의 군사력 규모는 각각 병력 250만(세계 1위)과 113만(세계 3위)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jj@seoul.co.kr
  • [베트남 진출 기업] LG전자

    [베트남 진출 기업] LG전자

    베트남 ‘1위 신화’를 이어간다. 올해는 가전업계 1위,2010년엔 전 제품 1위를 차지한다.LG전자의 베트남 시장에서의 목표다. LG전자는 베트남 시장에 가장 성공적으로 뿌린내린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에서 TV, 에어컨,DVD,CD롬 등 4개 제품 판매 1위다. 1999년 에어컨 현지 생산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2002년 베트남 에어컨시장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시장 점유율 30%를 기록했다.LG전자는 올해 매출 2억달러로 현지 가전시장 1위에 오른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2010년에는 매출을 5억달러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재성 LG전자 베트남 법인장은 20일 “베트남은 지난 수년간 경제성장을 했지만 아직 프리미엄 가전 보급률이 낮다.”면서 “고급 제품과 차별화된 프리미엄 마케팅으로 LG전자를 베트남 국민들이 선망하는 전자업계의 한류스타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LG전자는 베트남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통한다.LG전자는 베트남에서 한류열풍을 만들었던 드라마 ‘대장금’의 여주인공인 이영애씨를 모델로 대대적인 한류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한류 마케팅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미스 베트남’을 TV모델로 기용하는 등 현지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LG전자의 ‘다리 마케팅’도 현지에서 화제다. 베트남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하노이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3.7㎞의 탕롱(Thang Long)대교는 LG전자의 후원으로 예전의 우중충함을 뒤로한 채 완전히 새모습으로 단장했다. 양쪽 180개의 가로등에 LG전자의 광고판은 물론 하노이의 장점을 설명하는 광고판도 함께 부착했다.LG전자가 베트남과 함께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LG전자는 현지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로 통한다. 베트남 진출 초기부터 각종 장학 사업과 환경 보호 및 소외계층 지원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8년째 현지 시각장애 환자 무료개안 수술 지원을 벌이고 있다. 또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문화교류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장학퀴즈와 같은 형식인 TV프로그램 ‘LG 올림피아 퀴즈’도 후원하고 있다. 우수학생은 호주의 대학과 연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한다. 때문에 교육열이 높은 베트남에서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기업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활동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사회공헌활동에 힘입어 LG전자는 지난해 ‘올해의 베트남 대표 기업인상’을 받았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이명박 시대-해외반응·주요국 관계] “부패의혹 눈 감아”

    [이명박 시대-해외반응·주요국 관계] “부패의혹 눈 감아”

    |워싱턴 이도운·도쿄 박홍기·베이징 이지운·파리 이종수특파원|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Landslide)’ 승리를 거뒀다고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대건설 회장과 서울시장을 지낸 이 당선자가 ‘친기업’ ‘친미’라는 정치 브랜드를 갖고 있으며, 그 점이 유권자의 마음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또 지난 10년간 계속된 진보적인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당선에 영향을 미쳤으며, 북한 문제도 중요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AP통신은 대선 결과를 상세하게 전하며 “한국인들이 이 후보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그에게 제기된 부패 의혹들에 대해 눈을 감았다.”고 논평했다. CNN은 그가 재산형성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고 그 때문에 취임 전에 특별검사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의 교민들은 한국 TV 채널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된 선거 개표 상황을 지켜봤다. 스칼렛 엄 한나라당 해외동포분과 남가주 위원장은 “이 당선자가 경제를 살리고 해외 동포의 참정권도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던 교민들은 투표 직전까지 이메일을 통해 정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등 득표활동을 벌였으나 큰 차이로 패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봉수 남가주 정동영후원회 상임대표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은 고생을 할 것이며 이 당선자 탄핵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NHK 등 “10년 만에 정권교체” NHK 등 일본 언론은 ‘10년 만에 정권교체’ ‘10년 만에 보수정권 탄생’이라는 등의 제목으로 한국의 대선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특히 출구조사 결과를 속보로 전하면서 향후 한국의 정국을 분석했다. 또 북한 지원에 대한 급격한 변화는 없지만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노무현 대통령 때와 달리 한층 가까워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교도통신은 선거과정에서 이데올로기나 지역감정을 둘러싼 대립이 엷어져 한국의 정치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이 당선자가 경제계 출신의 첫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재일본대한국민단(민단) 배철은 선전국장은 “정치적인 교류도 활발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관계자들도 이날 중앙본부에서 TV를 통해 대선을 지켜봤다. 조총련의 한 관계자는 “6·15 및 10·4 공동선언을 차질없이 진행, 통일의 길을 닦았으면 한다.”며 말을 아꼈다. ●신화통신 득표순위 등 상세보도 신화통신과 CCTV 등 중국 언론매체들은 19일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출구조사 결과를 속보로 전하면서 한국 대선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한국 대통령 선거와 한반도 평화 관계’라는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남북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CCTV는 시간별 뉴스마다 한국 대통령 선거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CCTV의 한 유력한 저녁 뉴스 분석 프로그램은 이명박 당선자의 경력이나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점 등을 거론하며 “경제 발전에 대한 바람이 반영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프로그램은 BBK 특검법으로 향후 이 당선자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갖기도 했다. 신화통신도 같은 날 ‘한국 대통령 선거 시작’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유권자 숫자 등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득표 순위를 전달했다. 반관영 통신 중국신문사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내년 4월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獨언론 “노무현 실정 반사이익”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이날 “이명박 당선자가 노무현 정권의 실정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는 “유권자들에게 주요 이슈는 경제였으며 기업가 출신의 이 당선자가 투자를 끌어오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은 유권자들에게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AFP통신도 “대기업 CEO 출신인 이 당선자가 경제 살리기 공약과 대북 강경 정책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했다. dawn@seoul.co.kr
  •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이명박 시대-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그는 누구

    ■ 정치 입문~청와대 입성 ‘정치인 이명박’이 걸어온 길은 ‘기업인 이명박’과 달랐다.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하며 달려온 출세가도가 아니었다.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도 했다. 정치무대를 떠나 전공인 건설이 아닌 금융분야에서 제2의 신화를 꿈꾸다 여의치 않아 접고는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도약기를 거쳐 최고 권좌에 오르게 됐다. ●현대와의 결별… 정치 입문 그는 ‘왕 회장’으로 불리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을 만류하면서 현대그룹과 결별하게 된다. 이후 왕 회장의 상대 진영인 김영삼(YS) 진영으로 합류, 지난 1992년 14대 총선 때 전국구(비례대표)로 국회에 등원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1995년 지방선거 때 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YS가 밀던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하고 만다. 첫번째 정치적 시련이었다. 그 이듬해 15대 총선을 준비하며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다. 여당의 중진 이종찬 국민회의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98년 이 당선자는 다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총선 때 적발된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아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했다. 당시 비용 초과 지출을 폭로했던 김유찬 당시 비서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명박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서울시장으로 화려한 재기 이후 2년간 미국에서 ‘정치 방학’을 보내며 와신상담하다가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에 나섰다.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한나라당에서 5선의 중진 홍사덕 의원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해 후보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본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으면서 세번째 서울시장 도전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내건 청계천 복원과 시내 5개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중앙차로제 도입을 내걸었다. 막상 당선되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주변에선 적잖이 만류했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4년 만에 해결했다.‘제2의 신화’는 ‘청계천 신화’로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로서 주목받게 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지독한 경선 2006년 6월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이 당선자는 다시 여의도 정치로 들어온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는 그가 살아온 세상과 달랐다. 한나라당의 벽은 높고 높았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당내에서 철옹성을 세우고 있었다.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자보다 높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는 높기만 하던 당심을 허물기 위해 민심을 공략했다.‘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 성공한 경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해 추석 전후로 북한의 핵 실험 후 지지율 40%를 돌파,‘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표측과 사사건건 갈등하며 극한의 대치에 이르기도 했다. 고비마다 특유의 승부수로 돌파해 나갔다. 이상득 부의장의 동생 평이다.“내가 명박이보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나도 대기업(코오롱) 최고경영자(CEO)까지 해봤다. 하지만 명박이에게는 나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 담대하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명박이는 그걸 가지고 있다.” 그는 땅 투기 의혹과 ‘도곡동 땅’ 차명 의혹,‘BBK 주가조작 의혹’ 등 ‘지독한 경선’을 거쳐 지난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다. 박 전 대표와 불과 2452표차(1.5%)밖에 나지 않는 신승이었다. 그나마 현장 투표에서 500여표 뒤진 것을 여론조사에서 뒤집었다. ●더 지독한 본선…‘BBK 공세’와 김경준의 귀국 경선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주요 당직을 놓고 친박(친 박근혜)과 친이(친 이명박)의 갈등은 계속됐다. 박 전 대표가 ‘오만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쏜 최측근 이재오 최고위원은 물러나야 했다. 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세도 거셌다. 자녀들의 ‘위장 전입’과 위장취업으로 한때 이 당선자는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틈새를 파고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회창 후보는 “불안한 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집요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도 박 전 대표에게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며 “도와달라.”고 SOS를 보냈고 박 전 대표는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BBK 수사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당선자의 측근들이 검찰에 불려나가 수사를 받았고 본인도 서면조사를 받았다. 급기야 대선을 한달 앞두고 ‘BBK 의혹’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범죄인 인도 송환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대선판은 요동쳤다. 검찰수사 결과 ‘BBK 주가조작’에 이 당선자는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여론은 냉정했다. 검찰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BBK와 이 당선자가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론이 출렁거렸다. 이 당선자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운다. 부부가 살 집 한채 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오랜 기업인 생활을 끝내고 공인으로 나섰던 10여년 전부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작정했다.”며 “재산 환원은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바르게 키워 주신 어머니와의 약속이자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당은 소위 ‘이명박 특검’을 내세워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였다. 여야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며 극한 대치를 이뤘다. 대선을 불과 사흘 앞두고 밤 11시30분에 대선후보 TV합동토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적으로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고비와 시련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9일은 공교롭게도 이 당선자의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대통령 당선으로 세번째 축하 케이크를 받게 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유년기~현대건설 회장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사상 처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당선자는 만 35세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월급쟁이’들의 우상으로 통했다. 기업인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는 92년 정계입문 후 시련을 딛고 마침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생활 27년, 정계입문 15년 만의 일이다.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등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가난과 싸웠던 소년 시절 소년 이명박을 키운 건 가난과 어머니였다. 목장 목부로 일하던 이충우씨의 4남 3녀 중 다섯째로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다른 형제들의 이름은 상(相)자 돌림이지만 본인만 ‘명박’인 이유는 “어머니가 보름달이 치마폭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시고는 ‘밝을 명(明), 넓을 박(博)’자를 넣어 지었다.”고 설명했다. 족보에는 ‘상정’(相定)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소년 이명박은 가족들과 함께 1945년 11월 귀국선에 오른다. 하지만 배는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가족들은 구조됐지만 살림살이와 짐은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맨몸뚱이만 귀국했다. 고향에 대한 첫 기억은 포항 시장통의 가난이었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가난이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들러 붙었다.”고 말했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교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중학교 때 영양실조로 쓰러져 넉 달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등록금을 가져오라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린 이명박은 철들기도 전에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좌판을 벌였다. 김밥, 풀빵, 엿, 아이스크림, 뻥튀기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생활비를 벌었다. 어머니는 엄격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가난했지만 자식들을 당당히 키웠다. 자식들에게 “정직하다면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새벽 4시면 가족들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심부름으로 이웃집 일을 하러 가더라도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얻어 먹으면 안 된다. 음식을 준다고 받아 와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다. 가난은 그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군의관은 “이런 몸은 군대에서도 안 받아 준다.”고 병역 면제 처분을 내렸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집에 돌아온 막내아들을 부둥켜 안으며 “내 자식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가 팽개치고 있었구나.”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엄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이명박은 그 때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6·3사태로 옥고 그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고교 진학도 말렸다. 집안의 기둥 작은형(이상득 국회부의장)의 학비를 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학비는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동지상고 야간부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가족들은 상득이형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이사갔다. 이 당선자는 이태원 재래시장 환경미화원으로 돈을 벌며 살림에 보탰다. 하지만 학업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돈이 없어 중퇴하더라도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낫지 않겠나.”하고 생각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수험서를 사서 입시를 준비, 고려대 상대에 붙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이태원 시장 상인들이 새벽에 쓰레기 넝마주이 일을 맡겨준 덕에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단과대 학생회장이던 64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며 6·3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죄목은 내란선동죄였다. 어머니는 그가 구속됐을 때도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가르쳤다. 출소 후 한달 여 만에 인생의 스승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는다. 그는 “돈 벌면 어머니에게 새옷 한벌 사드리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현대그룹 입사… 초고속 승진 거듭 청년 이명박은 여느 운동권 출신과 달리 정치권이 아닌 기업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의 취직은 쉽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발목을 잡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나라가 열심히 사는 젊은이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박 대통령의 배려로 그는 당시 중소기업이던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왕 회장’으로 불리는 오너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9세에 이사,35세에 사장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써내려 간다. 그는 종업원 96명의 현대건설을 16만명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군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현대그룹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오너가 정해 주는 목표치를 항상 초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너와 경쟁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기업인 시절 ‘왕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에피소드도 많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 맞서 금고를 지킨 ‘태국 금고 사건’은 그 중 하나다. 현대건설 과장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불도저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 기술자들이 텃새를 부려 공사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과장은 밤새도록 불도저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혀 나중에는 불도저를 직접 몰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 이웃들은 현대건설 사장과 살고 있는 부인 김윤옥씨를 가리켜 “세컨드(둘째부인)아니냐.”고 뒷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현대건설 사장 시절 사업상 건설부 장관실을 방문했을 때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이 당선자를 장관실로 안내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이 당선자가 따지자, 장관 비서는 “사장 비서를 어떻게 장관실로 모시냐. 빨리 사장 데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에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초·중·고 학적부 열어보니 궁핍했던 시절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초·중·고교 성적은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행동발달사항에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평이 인상적이다.2학년 때는 담임교사로부터 “경솔하다.”는 평도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결석이 없었지만 4학년에서 6학년까지는 몸이 아파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4학년 때 16일,5학년 때 5일,6학년 때 32일을 병으로 결석했다. 이 당선자측은 “가난으로 인한 영양실조 탓으로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도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많았다.1학년 때는 결석이 74일에 이른다. 담임 교사로부터 “명랑하고 온순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지상고 시절에는 지금처럼 석차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당선자는 성적이 가장 안 좋았을 때가 3등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장래 희망으로 ‘관리’(官吏)를 썼고, 이 당선자의 부모도 ‘본인과 동일’이라고 기재했다.‘취미 또는 특기’란은 영어로 적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특기는 ‘체육(탁구)’이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이명박 시대] 서울광장·고향 포항 표정

    [이명박 시대] 서울광장·고향 포항 표정

    이명박 당선자의 ‘원동력’은 역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청계천이었다. 압승을 예고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 이 당선자를 애타게 기다리던 지지자들은 밤 11시쯤 당선자 부부가 서울광장에 나타나자 일제히 ‘이명박, 대통령’을 연호했다. ●서울광장 깜짝 방문… 당선 축하 케이크 받아 1000여명의 지지자들은 당선·생일·결혼기념일의 ‘트리플 경사’를 맞은 이 당선자에게 촛불이 환하게 켜진 5단 케이크를 선물했다. 한 지지자는 “오늘이 새 대통령의 66번째 생일이자 결혼기념일이라 더욱 뜻깊다. 새로운 5년이 열렸다.”며 감격했다.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 신화’가 시작된 청계천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도록 ‘푸른 축제의 밤’을 즐겼다. 이 당선자가 “앞으로 제가 어려울 때도 지금처럼 사랑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지지자들은 함성과 박수로 답했다. 오후 5시부터 청계천에서 이 당선자를 기다렸다는 최경환(47)씨는 “당선자를 보니 추위도 가셨다.”면서 “5년 동안 든든한 팬으로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명박 당선자의 상징색인 파란 풍선을 든 지지자들은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 대형 전광판에 ‘당선 확실’이란 방송 자막이 나오자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선자의 지지모임인 MB연대 소속 300여명은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에서 이 당선자가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발표되자 2700발의 폭죽을 터뜨리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청계천 복원하듯 경제도 살려 주길” 청계천과 서울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은 이 당선자에게 ‘청계천 신화’처럼 경제살리기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최정현(30)씨는 “경제살리기가 말만큼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국민의 염원을 이뤄줬으면 한다.”면서 “임기가 끝날 때 청계천처럼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경제업적을 이루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군자(70·여)씨도 “어른의 경험을 공경하고, 사회의 질서도 바로잡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울광장에서 만난 신형식(55)씨는 “BBK 동영상 공개 등으로 표 차이가 거의 안 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충격”이라면서 “국민이 선택한 만큼 경제살리기라는 대의를 이루기 바란다.”고 밝혔다. 청계천을 찾은 이영아(23·여)씨는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지만 이후에도 BBK로 인해 정국이 혼란을 겪을까 우려된다. 혹시 국민을 속인 것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무진(20·대학생)씨는 “BBK라는 문제가 있었지만 국가 현안에 비하면 별 문제가 안 된다.”면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대통령이 돼달라.”고 주문했다. 경제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바람도 많았다. 김연수(37·여)씨는 “간신히 내 집을 마련했는데 이자비용이 너무 많다.”면서 “주택금리를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중학교 교사인 윤영혜(30·여)씨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저렴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많이 지어주었으면 좋겠다.”면서 “학생들도 직장이 튼튼한 부모 밑에서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외지인들에 과메기 등 정성껏 대접 “우리 동네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니 꿈만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고향 경북 포항은 19일 밤새도록 축제 분위기에 젖었다. 이 당선자가 살았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 속칭 덕실마을에는 마을 주민 등 500여명이 모여 방송사들의 출구 조사에서 이 당선자가 50% 이상의 압도적인 표차로 이기자 ‘이명박’ ‘대통령’ 등을 연호하며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밤 9시쯤 TV에서 이 당선자의 당선확정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감격의 눈물을 훔치는 주민들도 보였다. 덕실마을은 이 당선자가 4세 때 일본에서 들어와 2∼4년(주민간 기억이 다름) 살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지금은 31가구에 67명이 산다. 흥해농협 풍물패는 마을회관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한껏 흥을 돋웠다.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국밥과 포항 특산물인 과메기 등으로 정성껏 대접했다. 이 마을에 사는 이 당선자의 사촌형수 류순옥(76)씨는 “서방님이 대통령이 된다니 꿈만 같다.”면서 “앞으로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역사에 길이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축하했다. 이 당선자의 먼 친척이자 마을이장인 이덕형(58)씨도 “(경주 이씨) 입향조 어른이 마을에 정착한 지 500년만에 대통령을 배출했다.”면서 “먼저 쓰러진 국가경제를 일으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의 모교 동지상고(현 동지고)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동문회측은 학교 정문과 시내 곳곳에 ‘동지상고 9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라고 쓰인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다. 졸업생과 교직원, 학생 등 200여명이 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개표 과정을 지켜보다 이 당선자가 당선권에 접어들자 “이명박 동문 대통령 당선 만세”를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 당선자 고교 동기인 최근국(66)씨는 “이 당선자는 동지상고(야간)를 수석으로 입학,3년 내내 주경야독을 하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집념이 강하고 성실한 친구였다.”며 “장차 큰 일을 할 인물이라고 친구 사이에 소문 나 있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엄주백 동지고 교장은 “이 당선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오늘은 개교 61년만에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경주 신혜원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이명박 시대-盧정책과 비교] 노무현·이명박의 스타일

    [이명박 시대-盧정책과 비교] 노무현·이명박의 스타일

    이번 선거를 후보간 경쟁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현직 대통령, 즉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결구도로도 보는 시각이 있다. 이 당선자와 노 대통령은 이념이나 스타일, 역정 등에 있어서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직과 차기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본다. ●성공신화와 험한 정치역정 두 사람 모두 분야는 다르지만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일반고가 아닌 상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가난과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한 사람은 고졸의 변호사가 됐고, 또 한 사람은 20대에 현대건설 이사가 됐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도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다. 노 대통령은 ‘3당 합당’ 반대로 부산에서만 네 차례 낙선을 했다. 이 당선자는 1992년 민자당에서 전국구 공천을 받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되기까지 정치생명이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두 사람은 96년 총선 때 서울 종로에서 대결한 바 있다. 당시 이 당선자가 승리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가 되고, 피선거권이 박탈되기도 했다. ●원칙주의 vs 결과우선주의 노 대통령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소신’이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어려움도 겪었고 이것이 발판이 돼 대통령까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원칙을 정하면 입장을 바꾸는 법이 없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을 정하는 데는 명분과 절차를 중요시했고 그래서 ‘토론하자’라는 말이 노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반면 이 후보는 ‘불도저’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결과물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목표를 정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결혼식날 오전까지 일하고 오후에 식장으로 달려갔을 정도로 ‘일벌레’였다. 하지만 사안을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위기를 정면돌파로 대응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노 대통령의 경우 2002년 대선 당시에는 후보단일화를 결단하고 당선 후에는 ‘재신임’을 선언했다. 특히 선거 당시 장인의 좌익활동이 공격을 받자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한마디로 논란을 잠재웠다. 이 당선자는 ‘이명박 특검’을 놓고 정치권이 극한 대치 상황을 보이자 특검을 전격 수용했다. 앞서 BBK 논란이 불거지자 “BBK와 관련이 있다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고 대통령직을 걸고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화법이 비슷하다? 노 대통령은 임기 내내 특유의 화법으로 곤욕을 치렀다. 선거 기간 이 당선자도 마찬가지였다.“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를 비롯, 관기·마사지걸 발언, 운동권·중견배우 비하 발언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노 대통령의 경우 솔직함에서 비롯된 화법이고 이것이 선을 넘어 문제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내용상으로는 공감을 얻는 경우가 많지만 형식적으로 ‘대통령 화법’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때로는 정치인 목적으로 직설화법을 쓰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 당선자의 경우 내용이 주로 문제가 됐다. 장애아 낙태 발언과 각종 비하 발언은 상대 후보들로부터 ‘철학의 부재’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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